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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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사람들(1)
2019년 10월 08일 13시 56분  조회:2877  추천:2  작성자: 김정룡


도올은 나의 가장 훌륭한 스승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1)


50세 이전에 내가 좋아했던 인물을 회상해보면 거개가 죽은 사람들이었다. 막연하게 천하를 통일했던 시황제, 중국강토를 가장 넓게 만든 강희제, 모택동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유럽사람 치고 난쟁이지만 천하를 호령했던 나폴레옹, 낙후했던 농노제국가인 러시아를 자본주의 반열에 올려놓은 표트르 대제 등등의 위인들을 좋아했다. 그때는 좋아했다기보다 숭배했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진실일 것이다.

좋아한다는 것과 숭배한다는 것의 차이는 좋아하는 사람이면 내가 따라 배울 수 있고 얼마만큼 흉내 낼 수도 있지만 숭배의 대상은 내가 도무지 따라 배울 수 흉내 낼 수 없었던 위대한 위인들이다.

지천명 나이가 되어서야 좋아하는 것과 숭배하는 것을 구분할 수 있고 이상에서 현실로 돌아서는 길을 찾았으니 늦은 건지, 빠른 건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철이 든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내가 숭배했던 대상은 모두 죽은 사람들이었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모두 현재 지구상에 함께 숨 쉬고 있는 살아있는 사람들이다. 내가 인생에서 이런 전환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아마 한국생활이 크게 작용했던 것 같다.

2000년대 초반 어느 날 한국 00교회 도서실에서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 제목이 특이했다. 아마 이 제목을 보고도 그냥 지나칠 남자는 없을 것이다. 펼쳐보았다. 저자는 도올∙김용옥이었다. 그때는 나로서는 이 사람 뭘 하는 사람인지? 처음 접하는 인물이었다. 대충 페이지를 넘기니 내가 좋아하는 고전지식으로 풀이한 책이었다. 언어학도 좀 있고 말이다. 그에 의하면 동양에서의 사람 인(人)은 남자와 여자를 포함하고 있는데 비해 서양에서는 사람은 남자이지 여자가 아니다. 즉 Man은 사람이자 남자만 뜻할 뿐 여자는 Man 앞에 Wo를 붙여 Women이라 부른다. 동양에서 여자가 시집가도 남자의 성을 따르지 않고 친정의 성을 그대로 사용하는데 비해 서양에서는 여자가 시집가면 남편의 성을 따른다. 이 관습이 아마 이 언어학적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된다. 도올∙김용옥 교수는 동양의 문화적인 진화와 서양의 문화적인 진화사로 여자의 존재를 해부했다.

<여자란 무엇인가?>는 그의 처녀작이자 굉장히 깊이 있는 책이었다.

그 후 어느 날 TV를 켰더니 화면에 사진에서 보았던 도올∙김용옥 교수가 나타났다. 그런데 그의 모습이 이상했다. 책가위에 등장한 그의 사진모습은 머리숱이 나처럼 많았는데 TV에는 중머리다. 어느새 스님이 되었나? 그런데 옷차림은 스님의 모습이 아닌 중국 전통복장 다부산자다. 머리 모습과 옷차림이 어울리지는 않았다. 오뉴월에 오이를 거꾸로 먹는 것도 제 나름이라는 속담이 있듯이 어색해 보였지만 한편 특이해 보였다.

그날 내가 본 그는 <노자철학>을 강의하고 있었다. 강의수준이 굉장했다. 확 끌려들었다.

강의를 잘하려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지식이 풍부해야 한다.

한 방울의 물을 전하려면 한 통의 물이 필요하다는 속담이 있듯이 선생은 아는 것이 굉장히 많아야 한다. 아는 것이 많은 사람이 모두 강의를 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강의는 세상만사 지식을 두루 많이 갖춰야 강의를 잘 할 수 있다. 도올은 진짜 아는 지식이 바다처럼 넓고 깊다. 국내에서 고려대철학과도 다니고 신학대학도 다녔다. 그가 젊었을 때는 한국과 중국 문이 굳게 닫혀 있어 대만국립대학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일본 동경대학교에서 동양철학 전공으로 여전히 석사를 마치고 현대문명의 본산지인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동양철학을 전공하여 박사하위를 취득했다. 그러니까 동양에서 좋다는 대학을 다 다녔고 또 미국까지 가서 현대문명의 본산지라고 말할 수 있는 최고 학부 하버드에서 서양문물도 읽혔기 때문에 지식섭렵이 방대하다. 그 분의 말씀에 따르면 36세까지 책만 읽었다.

둘째 강의자와 수강자 사이 정서교감이 잘 되어야 한다. 도올은 특이한 제스처로 강의한다.

목소리도 고음으로 특이하다. 옛날과 현재를 오가면서 한국사회 부조리에 대해 거침없이 두들긴다. 수강자들은 그의 강의를 들으면 체증이 확 풀린다. 답답했던 속이 뻥 뚫린다. 그의 강의 재간은 수강자들의 정서를 꿰뚫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강약 조절을 잘 해야 한다.

노래를 잘하는 기교 중에 강약 조절이 있다. 강의도 노래와 마찬가지로 강약조절을 잘 해야 한다. 너무 지나치게 같은 톤으로 소리 높게 질러대는 식의 강의는 식상하다. 너무 낮은 톤으로 시종일관 유지해도 수강자들이 잠이 온다. 중요하지 않는 부분에서는 조금 톤을 낮췄다가 포인트가 중요하다싶으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 중점과 비중점이 뚜렷해진다. 강약조절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절주이다. 영어로 말하면 리듬이다. 도올은 이 면에서도 뛰어나다.

총적으로 도올은 강의를 연예인이 연기하듯 재미있게 해서 청중이 많다. 영어식으로 말하자면 팬이 많다.

그 후 그는 KBS, MBC,SBS 지상파 방송 삼사에서 모두 강의했고 동양전통문화인 유∙불∙도를 모두 다 강의했다. 내가 시청한 강의만 120회 정도는 된다.

나는 그의 강의를 좋아하게 되니 자연적으로 그의 저서를 읽기를 좋아했다. 모두 40여권의 저작이 있는데 나는 모조리 사서 읽었다. 그래서 나도 아는 지식이 매우 많게 되었다.

내가 도올을 좋아하게 된 것은 그의 풍부한 지식과 재미있는 강의만은 아니다. 그가 나를 매료시킨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그의 배포가 크고 배짱이 두둑한 것이다.

나는 그의 배짱을 두 가지로 나눠 말하고 싶다.

하나는 교수를 그만 두는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그 누구도 감히 건드리지 못하는 기독교를 향해 독설을 날린 것이다. 도올은 1982년 하버드를 졸업하고 모교인 고려대학교 철학과 부교수로 부임하게 되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중국전통 두루마기를 휘날려 눈길을 끌었다. 수강자는 보통 수백 명이었다. 인기가 좋았다. 그토록 잘나가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양심선언'을 발표하고 교수를 때려치운다. 당시로서는 교수를 그만두는 일은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든 대사건이었다.

교수를 그만두더니 50넘은 나이에 한의학을 전공하여 한의원을 개원했다. 그의 배움의 욕망은 끝이 없다. 노력이 기가 막히다. 이런 그의 노력이 나를 감동시켰다. 도올(檮兀)이란 호는 매우 둔하다는 뜻이다. 그가 이 호를 지은 까닭은 스스로 머리가 둔하기 때문이란다. 머리가 둔하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엇었다는 것이 그의 고백이다. 나는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단 액면 그대로 넘어갈 수밖에.

어느 나라든지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성역이 있다. 한국에서의 성역 중 하나가 바로 기독교다. 그의 표현을 빌려 말하자면 불교는 뒷심이 없어 가장 글발이 있는 조계종 총무원장도 일개 평검사한테 조져 대는데 비해 한국 기독교는 건드릴 수 없는 성역이다. 왜일까?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 기독교의 믿는 구석은 바로 미제국주의다. 도올 다운 표현이다. 요한복음 강해란 책이 출간되자 기독교계에서 말이 많았다. 도올은 뒷공론으로 나를 헐뜯지 말고 학문적 논쟁을 하려면 TV공개 토론하자고 기독교계에 선전포고를 했다. 뒷공론이 심했던 기독교계는 어찌된 영문인지? 응전하지 않고 조용해졌다.

필자가 보기에도 한국 기독교는 문제가 많다. 기독교 삼대 정신인 박애, 자유, 평등은 온데간데없고 온통 기복신앙으로 가득 차 있다. 한국기독교 영향을 받은 연변조선족사회 기독교신자들도 이상해졌다. 예를 들어 10년 전 한국비자발급이 어려울 시절에 여러 차례 비자가 불허되었다가 친구의 권유로 교회에 헌금 50위안 냈더니 비자가 덜컥 나왔다는 것이다. 이 인과관계가 성립된다면 예수는 인류의 구세주가 아니라 심양영사관 영사인 셈이다.

도올은 이와 같은 한국기독교가 잘못 나아가고 있는 폐단에 독설을 날리고 기독교의 배타성, 오만성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한다.

도올은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쉽게 말하자면 뜻이 같은 사람들을 모아서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혈혈단신으로 사상가답게 비판한다. 대한민국에서 정치를 마음대로 씹어도 괜찮지만 기독교는 함부로 씹으면 큰 일 나는 줄 알고 있다. 이러한 살벌한 사회정서에도 불구하고 비판하는 정신은 실로 대단한 용기다.

한 사람이 잘 나가면 사회적으로 씹히기 마련이다. 도올도 학계와 언론으로부터 무척 많이 씹혔다. 그러나 도올은 그 어떤 공격에도 꿈쩍 않고 자신이 가야할 길을 간다.

나는 개인적으로 도올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즉 한국학계 분위기는 공자 왈, 맹자 왈은 동양철학 전공자들의 전유물이고 칸트를 말하려면 독일에 가서 철학을 배운 자만의 소유이고 등등 지식인들의 ‘울타리 의식’이 굉장히 강하다. 이런 닫힌 분위기에서 도올은 어려운 학문을 저서와 TV강의를 통해 대중화 했다는 것은 굉장한 하나의 혁명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나는 일본어 전공자로서 이른바 문∙사∙철이라고 하는 인문학에 대해 매우 취약했었는데 도올을 통해 굉장히 많은 지식을 섭렵하게 되었고 지금은 역사문화이야기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도올은 나에게 있어서 우리민족 중에서 살아 있는 가장 훌륭한 스승이다. 한 사람을 좋아하게 되면 그를 닮아간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나의 글을 예리하다고 평가하는데 알게 모르게 아마 도올의 스타일을 닮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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