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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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식숭배와 박(匏) 신앙
2008년 05월 18일 08시 58분  조회:6502  추천:73  작성자: 김정룡

생식숭배와 박(瓢)신앙

 

 

 임동권 씨는 그의 저서 <<한국민속학논고>>포포편의 서두에서 “가을에 농촌을 여행하면 지붕위에 희고 둥근 박이 복스럽게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한국적인 정취를 한층 돋우거니와······”라는 말로 시작했다. 이러한 풍경은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마을에서도 볼 수 있다. 즉 한족(漢族)마을에서는 가끔씩 보이는 현상이지만 조선족마을에서는 가가호호 빠짐없이 보이는 풍경이다. 따라서 이러한 풍경이 조선족마을과 한족마을을 구분하는 요소 중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하지만 박에 대한 숭배의식이 도대체 조선민족에게서 먼저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한족에게서 먼저 생겨난 것인지에 대해선 단언하기 어렵다(일설에 의하면 박 신앙은 동남아에서 먼저 생겨났고 후에 중국에 전파되었다고 한다.) . 왜냐하면 중국천지창조신화에 박씨(朴氏) 부부가 천지를 개벽했다는 전설이 있고, 복희와 여와가 박에서 나왔다는 신화도 있고, 또 맹강녀(孟姜女)가 박에서 탄생했다는 이야기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이러한 박에 대한 굵직한 신화전설이 있기는 하지만 박에 대한 민속이 발달하지 않았다.

 박에 대한 민속, 풍속이 가장 풍부하고 또 뿌리 깊은 것은 아마 세상에서 한민족이 으뜸일 것이다. 한민족은 박의 실용성을 초월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다. 그 실례를 나열해 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농촌의 도로 세거리목이나 사거리 변에 판류가 산포되고 식도가 꽂혀 있으며 그 옆에 바가지를 엎어놓은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이것은 가정에서 발병이 있을 경우에 간단한 고사, 동토 잡이, 푸닥거리 또는 사망이 있을 적에 하는 짓이니 병역을 예방하고 악귀를 축출하려는 양귀법의 일종이다.

 둘째 치질, 황달, 소아의 태독에는 바가지 파편을 불에 태워서 그 분말을 환부에 바르면 완치된다고 한다.

 셋째 역병이 유행할 때에는 무녀나 가족이 바가지를 마룻바닥에 엎어놓고 소리 나게 문지르며 또는 바가지를 장간(長竿) 끝에 매어 세워두면 무병하다고 하며 <<동국세시기경도잡지>>의 상원조에 의하면 남녀 유아들은 겨울부터 박 삼편을 청, 홍, 황색으로 물들여 배용했다가 상원 전야 중에 남몰래 노변에 버리면 소액이 된다고 하였다.

 넷째 민간에서 바가지의 파편이 아궁이에 들어가는 것을 극히 꺼려하고 또 식탁 위에 바가지를 엎어놓으면 가내 불화가 생긴다고 한다.

 다섯째 장사(葬事)가 있을 때 출장할 관을 실내에서 외부로 운반해 나올 때 문턱 밑에 바가지를 엎어놓고 관을 들고 맨 앞에 나오는 사람이 토족으로 밟아 깨어지도록 한다.

 여섯째 혼사 때 의식에 앞서 납폐를 드릴 때 채단을 든 자의 앞에 바가지를 놓고 토족으로 깨어지도록 하며 또 신랑의 가교가 신부 집 문전에 도착하면 신랑 집 가족의 한 사람이 박이나 호박을 통째로 가져다 땅에 던져 깨트린다.

 일곱째 전승민담에 입에 붙은 표주박이야기가 있다. 요약해서 적으면 옛날에 어른의 명을 받고 급수에 간 소년이 물을 어른에게 올리기 전에 제가 먼저 물을 마신 바, 표주박이 입에 딱 붙어버리고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덟째 고대소설 흥부전에 의하면 바가지 속에서 신기한 조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흥부네 바가지에는 금은보화가 쏟아져 나왔지만 놀부네 박 속에서는 무당, 사류(蛇類), 오물이 속출하였다.

 아홉째 <<삼국유사>>의 기록에는 난생으로 되어있으나 민담에 의하면 신라의 박혁거세는 박 속에서 탄생했다고 하며 그래서 성을 박의 음을 따서 박 씨라 했다 한다.

 열째 세조가 단종의 왕위를 찬탈하려고 동분서주할 때 함께 모의에 가담하려는 사람들과 뜻을 같이 한다는 결의를 맺을 시에 표주박으로 술을 권하고 받아 마시는 수작(酬酌)을 했다고 한다.

 열한째 한민족은 타향살이 길에 나설 때 반드시 몸에 쪽박을 차고 다녔다.

 열두째 조선족은 신혼 첫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일가친척이 모인 앞에서 신랑이 부엌에서 온돌에 앉아 있는 신부를 향해 바가지를 던진다. 만약 바가지가 하늘을 향하면 남아를, 땅을 향하면 여아를 생산한다고 한다.

 열셋째 조선족은 잔칫집에서 바가지를 물독에 엎어놓고 반주하면서 오락을 한다.

 위 열세 가지 실례로부터 우리는 한민족이 세상에서 바가지에 대한 민속이 가장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왜 인간은 박을 숭배하게 되었을까?

 <<생식숭배문화사상>>의 저자 조국화(趙國華) 선생은 중국역사에서 박에 대한 신화전설을 종합하고 분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박 혹은 과류의 인간탄생신화가 실제로는 여성의 자궁이 인간을 탄생시킨다는 상상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또 “여자가 생산 시에 양막이 파열되어 양수가 흐르고 태판이 벗겨지고 또 양수가 혈액과 혼합되어 흘러나온다. 자궁의 오물 특히 분만 시의 양수는 일단 분만 시에 신생아가 흡수하면 곧 질식하여 죽는다. 옛사람들은 양수와 혈액이 태아의 생존에 일종 위협이 된다고 착각했다. 이러한 원시적인 연상사유가 여성이 분만 시에 흐르는 양수와 혈액을 과장하여 홍수로 상상하게 되었다. 따라서 영아의 무사강생은 곧 그들을 박 혹은 과류로 상징되는 자궁이 보호한 결과라 생각했다.”고 논증했다.

 한민족의 박에 대한 숭배의식도 생식숭배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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