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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문장]소질교육은 호구가 없는
2007년 12월 24일 08시 49분  조회:1897  추천:0  작성자: 리은호
소질교육은 호구가 없는 "참된 아이"이다.
등해건 발표시간:2007-07-02 12:00 광명네트   
    전 교유부 부장은 중앙에 올리는 글에서 응시교육을 근심걱정하면서 노력하여 이 고질을 치료해야 한다고 호소하였다. "교육의 응시화는 련계되는 면이 매우 큰 문제이므로 교육부문의 노력만으로는 효과를 보기가 매우 힘들것 같은데 중앙에서 중시를 돌릴것을 건의한다." 교육응시화를 억제하기 힘든 정황에 대응하여 교육부 전 부장 하동창은 중앙령도한테 글을 올리여 전 사회가 모두 "소질교육"을 관심할것을 호소하였다.
    "소질교육"이 "참된아이"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일찍 <한서-리순전>에는 "말이 길들지 않으면 빨리 갈수 없고 사가 소양을 하지 않으면 나라에 귀중한 사람이 될수 없다."는 설법이 있다. 1999년 6월 당중앙과 국무원에서는 개혁개방이래의 제3차전국교육회를 소집하고 하나의 강령성문건-<교육을 심화하고 소질교육을 전면적으로 추진시킬데 관한 결정>을 발표하였다. 하지만 우리는 이 "참된 아이"가 소질교육이 기세드높던 지난세기로부터 지금까지 기초교육령역에서 "귀여움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접수하지 않을수 없다. 어떤 의의로 말하면 교육부 전 부장 하동창선생은 <임금의 새옷>에서 나오는 그 용감하고 성실한 아이역을 한것이다. 그러나 나는 "소질교육"의 어색함은 절대로 "응시교육을 몇마디 욕하는것으로 해결될수 있는것이 아니며 "응시교육"을 뒤엎으면 "소질교육"이 떳떳하게 되는것도 아니라고 본다.
    기초교육의 일선에 있는 젊은 교원으로서의 나는 교육이 응시화된후의 극단적인 공구리성주장에 권태를 느끼고 반감을 느끼지만 "응시교육만 "크게 욕하는것은 위험하고 불합리한것이며 이런 정서화된 날조는 아무런 문제도 해결할수 없다는것도 알고있다. "응시"는 교육자체의 론리로서 선천적인 선악의 상표가 없다. "응시교육"원죄의 심리상태로 중국기초교육의 미래를 연구토론하는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찾는것"과 다를리 없다. "소질교육"이 "우뢰소리는 높고 비방울이 작은" (혹은 리론에만 열광하고 현실에는 조용한) 근원은 바로 이 "참된 아이"에게 "호구"가 없기때문이다. 소질교육이 이렇듯 쉽게 이화되고 가리워질수 있는것은 다음과 같은 문제만 설명하여줄뿐이다. 소질교육은 아직도 하나의 체제내의 강성적인 힘이 형성되지 않았기에 온정한 집행력과 효과예기가 결핍하며 완전히 추상적인 교육자각의 기초우에 건립되였으므로 결과는 "높이 떠서 높이 가는" 교육령역형식주의의 새로운 유희로 되였다.
    "응시교육"의 굳센것을 돌이켜보면 "소질교육"의 나약함을 알수 있다. 우선 응시교육은 전통이 있고 제 형태가 된 교육모식이 있어 답습할수 있지만 소질교육은 리론의 번화한 표상만 있고 유효한 조작성이 있는 교육모식이 없기때문에 자유로 량을 헤아리게 되고 그 결과는 각지의 소질교육이 형형색색으로 되고 구성도 복잡하게 되였다. 다음 교육자로 말하면 응시교육은 일련의 리익과 관련되는 기제로 예속하고 규범화할수 있는데 례를 들면 대학입시성적은 장금 가급금 및 직위와 관련된다. 소질교육은 기본상 교육평가 교유자원배치 등에서 엄중하게 균형이 잡히지 않으므로 실천동력이 결핍하다. 셋째, 교육을 받는 학생으로 말하면 응시교육은 일종 공리경향이 명확한 전도교육(전도와 관계되는 교육의 생략어)이고 약속의 실행이 직접적이다. 소질교육은 처음부터 "공리를 초월한" 착오적인 자리정함이 있으며 자아실현의 현실주의 생로는 끊어녾았다.
    이는 우리가 호적제도의 울타리하에 있는 사회제도를 반성하지만 성시에 있는 공민을 증오할수 없는것과 같다. 우리는 소질교육의 허약함을 반성할수 있지만 응시교육의 억세고 사나운것을 원망할수가 없다. 응시교육은 혹시 혁실할 필요가 있으며 교육의 응시화는 극단화한 주향은 반드시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한 층면의 화제이다. 소질교육으로 말하면 다른 사람(응시교육)은 어찌하여 그렇게 리유가 정당한가고 나무라지 말고 나같은 "참된 아이가 어찌하여 오래동안 하나의 체제화된 "호구"를 타지 못했는가를 반성해야 한다. 혹시 제도설계가 무력한 원인외에 너무나 뛰여나고 너무나 응시교육에 대립하여 자체로 자신을 과분하게 표방한것 등이 오늘의 위기를 초래한것이다.
2007년 12월 23일 0시 55분 초고를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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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1 ]

1   작성자 : 리은호
날자:2007-12-24 08:55:37
번역을 완성한후의 소감: 소질교육은 교육의 리상이고 응시교육은 리상을 실현하는 실천방식이다. 교육의 리상과 교육의 실천방식을 대립시켰으니 그 해결책을 찾는것이 힘들지 않을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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