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솔직한 사람의 사업이다.
교육은 솔직한 사람의 사업이다.
“교육은 솔직한 사람의 사업이리고 한다.” 인터넷에서 이런 말을 본적이 있다. 그 뜻인즉 솔직한 사람만이 학생을 솔직한 사람으로 배양할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생각하는 한마디 말이 있는데 그 말이 바로 "말로 전달하는것보다 행동으로 시범하는것이 낫다."(身教胜过言传)였다. 그러니 교육을 하는 사람은 우선 솔직한 사람이여야 한다.
빈곤한 국가에서 교육을 발전시키려 하니 어느 학생이나 다 대학교에 보내 좋은 교육을 받게 할수 없다. 그러니 선발시험을 통하여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을 고등학교에 진학시키고 그들을 인재로 배양해야 하는것이다. 그러니 선발은 피면할수 없는것이다. 관건은 어떤 사람을 선발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에 있는것이다.
한때는 그 선발의 표준이 출신이였다. 나는 "출신이 빈농이면 사상품성이 우수하다는 판단이 있었기때문"이라고 리해한다. 이러한 사람들이 우수한 교육을 받고 권리를 장악하면 모든 일을 대다수 사람들에게 유리하게끔 처리할수 있다고 여겼을것이다. 그래서 한때는 대학입시시험을 치지 않고 그냥 추천하여 보내는 방식을 취하였다.
그후 이러한 방식이 불합리하다는 판단이 생겼을것이다. 공평하지 못하다는것이다. 사람의 사상품성은 출신 하나에만 의하여 정해지는것이 아니라 교육을 받는것과 관계된다는 판단을 하였기때문인것 같다. 그것은 낡은 사회에서 신분제도를 정한것과 다를리 없는것이다. 귀한 가족에서 태여났다고 귀한 신분을 가지는 그러한 신분제도를 실시하던 등급사회로 돌아간것과 같은것이다. 그래서 공평한 선발기회를 주기로 한것 같다. 그것이 대학입시이다. 대학입시를 통하여 성적이 우수한자를 선발하는것이다. 그리하여 한때 눌리웠던 사람들의 적극성이 최대한도로 발휘되였다고 한다. 이것이 우리의 일부 선배 그리고 우리 시대에까지 연속된 그 끝없는 공작열정에서 보아낼수 있는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누가 말하지 않아도 그냥 잘하려고만 하고 누구한테도 뒤떨어지려고도 하지 않는 그런 마음가짐이 생긴것이다.
그러나 그 대학입시는 이제 결함이 많다는것이 점차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그 결함을 응시교육이라고 하였다. 즉 시험점수를 더 많이 얻기 위해 하는 교육이라는것이다. 그래서 그런 교육을 받은 사람이 많은 결함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그러면 대학입시를 다시 취소해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대합입시는 취소해서는 안되며 대학입시는 그래도 지금까지 제일 공평하고 공정한 선발방식이라고 여기고있다. 그러면 문제는 선발내용에 있는것이다.
선발을 통하여 우수한 사람을 선발하여 어느 한 방면의 우수한 인재로 배양하려고 하였으니 선발의 내용은 그 인재의 배양방향 혹은 발전방향과 일치되여야 하는것이다. 그렇게 하자면 선발내용을 발전과 유관되는 내용으로 고쳐야 한다. 례를 들어 예술방면으로 발전할 학생은 예술방면의 능력의 비교를 통하여 우수한자를 선발해야 하고 체육방면으로 발전할 학생은 체육방면의 능력의 비교를 통하여 선발해야 하며 수리화방면으로 발전할 학생은 수리화방면의 능력의 비교를 통하여 선발해야 하는것이다. 그래야 진정으로 인재를 선발했다고 할수 있는것이다.
나의 경력으로 보아도 응시교육을 하였다 하여 응시하는것만 고려하지 않았다. 그에 비해 그냥 교학만 하고 필요한 귀납 정리 같은것을 하지 않아 자신으로 그러한 것을 귀납하고 정리하였던것으로 기억된다. 교학방식의 개변은 어떠한 방면에서 과당시간에서의 리해를 깊이 하는것 같지만 다른 한 방면으로 보면 그렇게 쉽게 리해하였기에 학생들의 에습 복습등 중요한 학습절차를 생략한것 같다. 그리고 학습내용이 너무 많기에 어느것을 하고 어느것을 하지 않겠는가? 내가 발전하려는 방면이 어느 방면이 아니라고 해도 대학입시를 위해서는 그 방면의 지식을 더 많이 보아야 하니 어떻게 자신의 예술이거나 체육방면의 특장을 배양할 시간이 있겠는가?
그러니 고쳐야 할것은 교육방법이 아니라 선발내용과 교육내용이다. 이것을 교육을 하는 사람의 솔직한 말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이러한 말을 하지 않고 어떤 교학방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척 말하는 것은 솔직한 사람의 처사라고 할수 없는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선발이 있는만큼 어느 과목의 시험을 치지 않는다 하여 능력이 차한 사람이 선발된 가능성이 없을것이고 선발의 경쟁이 없어지지도 않을것이다. 선발을 통하여 우수한자를 선발한다고 하였으니 확실하게 우수한자가 선발되여야 할것이 아닌가?
하나의 자대를 더 사용하면 한 부류의 인재가 더 생긴다고 한다. 그러면 대학선발도 유일한 하나의 자대만 사용하면 틀리는것이다. 어느 방면의 인재를 선발하려면 거기에 맞는 자대를 사용해야 한다. 체육인재를 선발하려면 체유인재에 맞는 자대를 사용해야 하고 예술인제를 배양하려면 에술인재에 맞는 자대를 사용해야 하고 수리화인재를 배양하려면 수리화인재에 맞는 자대를 사용해야 하며 정치사상공작인재를 배양하려면 정치사상공작인재에 맞는 자대를 사용해야 한다. 그렇게 하여도 경쟁이 있을것은 물론이고 우수한 자만이 대학에 입학할수 있을것이다. 진정으로 어느 한 방면의 능력이 돌출한 사람이 그 방면의 인재로 될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것이다.
교육을 잘 하려면 사회 가정 학교의 배합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육리론이 점점 더 복잡해지고 교육전용개념이 새롭게 나지는 바람에 이제는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교육을 리해할수 없는 정도로 되였다. 그러니 교육에 대한 사회 가정의 감독 혹은 협조가 점점 못해지게 되는 것이다. 결국 교육은 저도 모르게 자신을 고립시키는 길로 오르게 되였다. 가정 사회의 협조가 힘들어짐으로 하여 교육의 난도도 점점 커지는것이다.
그러나 교육자체만 발전하면 교육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한다. 그런 거짓말을 언제까지 할것인가? 공자의 말을 생각하게 된다. 자신이 바르면 학생이 그대로 따라할것이고 자신이 바르지 못하면 시켜도 하지 않을것이다. (己身正,不令而行;己身不正,虽令不从。)
교육을 하는 사람이 우선 솔직해야 한다. 그래서 교육은 솔직한 사람의 사업이라고 한다.
2008년 12월 22일 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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