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에너지의 원론적인 의미’(본지 9월 12일 2면)에서 우리는 개념과 특성을 살펴보았다. 사람들은 긍정에너지를 갈구하지만 대부분 경우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을 짚어보고 대안을 찾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다. 곰곰히 따져보면 긍정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는 맹신부터가, 전기에너지를 충전하듯 입력식으로 하는 방법부터가 잘못됐다. 그런 방식 대로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긍정에너지는 실천 가운데서 조금씩 루적(沉淀)되는 것이다. 실천을 거쳐야 나만의 긍정에너지로 가라앉는다. 구체적인 일에 얽혀있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고달픔과 부딪쳐서 생긴다는 뜻이다. 고민과 부대낌 속에서 생성된 긍정에너지라면 믿음직하다. 그 밖의 것은 별로 도움이 안되는 정보에 그쳐버린다. 그래서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는 것보다 하나라도 행동에 옮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현실적이고 생산적인 사람일수록 생각이 깊고 행동에 빈틈이 적기 마련이다.
현장에서는 긍정에너지가 실천력을 팽배시킨다. 우리가 현장을 강조하는, 실행을 중시하는 리유는 따로 있다. 동질성을 띤 많은 힘들(노력, 주력, 진력, 압력, 의지력, 응집력, 집행력, 추진력, 상승력…)을 집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력(힘차게 밀고나가는 강한 힘)이 넘치는 실천은 거세차다. 박력을 충만시키는 저력(속에 간직한 든든한 힘)은 단단하다. 지와 행의 점진적 결합, 유기적 통일이 그 견고함이다. 그 결정(结晶)체에는 향심성이 작동하고 있다. 옳고 바른 것을 지향하는 구심점은 여러 힘들을 규칙적으로 뭉쳐 출력을 최대화한다.
많은 힘들의 복합반응은 긍정에너지가 폭발적인 위력을 갖게 한다. 갑자기 엄청난 기세로 터지는 막강한 력량인듯 싶지만 실은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이다. 돌파구를 여는 것은 용맹함이지만 그 힘은 충동에서보다도 루적에서 형성된다. 우리 몸과 마음에는 무궁무진한 힘과 지혜가 비축돼있지만 우리는 제대로 발굴하지 못한다. 그 힘을 끌어내는 것이 실천 현장임은 알지만 나서는 데는 린색하다. 시련을 거친 긍정에너지는 기능으로 장착된다. 이런 선순환의 물고를 튼 것은 턴넬 같은 시간을 현장에서 견뎌낸 장인들이다.
‘불평, 불만, 부정, 부실, 불신, 불복, 불손, 불순, 불친절, 불통, 불용(不容)…’ 등 요소들도 우리의 모습이다. 특히 ‘불평 불만’은 리성을 잃고 조화로움을 깨뜨리며 자타를 해친다. 긍정에너지는 이런 요소들을 가차없이 반대하고 부정한다. 그런데 그 부정은 긍정을 위한 부정이다. 그리고 그 반대는 일이 되게끔 하기 위한 반대이다. 자기의 잘못된 점들, 다른 사람의 모자람을 돌이켜보고 보듬어야 한다. 긍정에너지로 일깨운다면 충동을 바로잡을 수 있고 소극적인 요소들을 적극적인 요소로, 실패의 과정을 교훈적 의미로 전환시킬 수 있다.
꾸준히 탐구하고 드팀없이 실행하는 것이 긍정에너지를 쌓는 항시적인 행동원리이다. 살아 움직이는 힘, 생동성에는 활성화가 내포된다. 생동하는 힘은 어려움에 눌리지 않으면서 초극성을 띤다. 긍정에너지는 언제 어디서나 존재하고 약동한다. 우리가 행해야 하고 지켜야 하며 키워야 할 긍정에너지는 다름아닌 앎의 실천이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행하며 행하는 만큼 알게 되는 오래된 미래이다.
2017-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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