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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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820 ]

520    교원의 이미지 댓글:  조회:5274  추천:0  2015-07-07
                              교원의 이미지         교원은 인생의 좋은 교훈을 주고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고대희랍의 철학자 아이리스토텔레스는 육신을 낳아준 어머니보다 인간정신을 키워주는 교원이 더 고상한 사람이라고 말하였다. 말 그대로 교원은 바람직한 삶의 본보기로 되여야 한다. 그러나 상품경제의 충격과 가치관념의 변화, 사회분배의 불합리, 금전의 유혹 등으로 기본자세를 잃고있는 교원들도 나타나고있어 우려된다.     옛날에 전문적내용을 기술적으로 가르쳐 립신양명의 길을 열어주는 대가로 보수를 요구해야 한다는 교직관과 인생을 진지하게 사는 자세를 보여주고 학생과 교원이 서로 친구가 되여 대화를 나누면서 진리를 탐구하고 생도(生徒)의 륜리적감각을 길러 주고 인격을 함양시키는 신분임을 자각하여 보수를 받아서는 안된다는 소크라테스식의 교직관이 있었다.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의 심목속에서 교원직은 경제수입이 보잘것없고 보람이 별로 없으며 립신출세의 지름길이 아닌 천한 직업으로 간주되고있다. 한편 교원을 구름우에서 안개만 마시고 살고있는 가장 신성한 천직(天职)이라는 말로 둥둥 띄워주면서 생활담보, 사회적지위 등을 등한시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특히 오염되지 않았던 이 성지에도 공리주의가 슬며시 기여들어와 초불정신을 먹칠하고있다. 학교에서 수금문제가 비리로 나서는가 하면 청렴을 긍지로 알던 교원들속에서도 탐욕과 슬그머니 손을 잡은 사람들이 나타나고있다. 졸업장이 돈과 바뀌여지고 가짜대학생, 연구생도 부끄럼없이 나오고있다. 학생의 성적,《벼슬》도 돈이라는 요술사에 의해 좌우되는 일도 한두번이 아니다.     교원이《태양아래 가장 신성한 직업》이라고 할 때 성직(升职)이 되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해야 할 일이기에 성직(诚职)이 되기도 한다. 교원이 우선 갖추어야 할 정신은 헌신성이며 사랑의 감정이다.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원초적인 자연성을 거룩한 인간성으로 승화시키는 유일한 교육기점이다.     사욕은 교육자의 길에서 가증스러운 걸림돌이다. 살아움직이는 생명, 미래를 이끌 인간들에게 정신적감화를 주어 최선의것을 발로케 하는 교원의 고도의 륜리적배경 과 장기간의 학문수련을 필요로 하는 교직의 본질은 변색해서는 안된다.     교원을 옛날에는 선비출신이라고 했다. 선배는 학식있는 사람이고 학식이 있으나 벼슬하지 않는 사람이다. 선비로 되자면 지사(志士)적기질과 학자적기질, 시인적기질 을 갖추어야 한다. 즉 청렴, 봉공의 의식을 갖춘 사람ㅡ 이것이 곧 인민교원의 이미 지이다.                                     1998년 12월 22일
519    컵, 커피와 그리고 생활 댓글:  조회:5305  추천:2  2015-07-03
   졸업한지 2년이 되는 졸업생들 여럿이 빈해를 떠나는 나를 보러 왔다. 신사숙녀로 번진 그애들이 너무 어엿하였다. 어떻게들 보내고있는가를 묻자 가뜩이나 부글거리던 속심을 터쳐놓은듯 중구난방으로 불평, 불만을 터뜨려놓았다. 사회생활은 학교에서 꿈꾸던것과는 너무 실망이라는둥, 사업이 힘들다는둥, 심리압력에 가슴이 막 답답해진다는둥, 상하관계를 어떻게 맞춰야 할지 걱정이라는둥… 제자들마다 이 사회의 고아들인듯 더없이 상심해서 울상이였다.    나는 그저 시무룩이 웃으며 커피나 마시라면서 일회용이 아닌 물컵을 있는대로 다 꺼내놓았다. 모양새도 각각이고 크기도 저마끔인데 사기로 만든것, 유리로 된것, 비닐로 만든것, 우아한것, 보잘것 없는것… 여러가지였다. 그것은 대화의 문을 열기 위한 전략이였다.    “내 집에 온 손님이 아니라 다 내 자식들 같으니 체면을 차리지 않겠습니다. 제각기 커피를 타 마시세요…” 학생들은 제 마음에 드는 컵을 골라 커피를 탔다. 나는 짐짓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여러분은 지금 저마끔 제일 좋아보이는것을 골라쥐였지요?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비닐컵은 아무도 욕심내지 않는군요. 물론 당연한 현상입니다. 허, 다 알아들으면서도 왜 그리들 어리둥절해있습니까?    바로 컵을 고르는 심리에 여러분의 번뇌의 근원이 있어요. 만약 생활을 커피라고 한다면 사업, 금전, 지위 등은 모두 물컵에 비유할수 있고 컵은 우리들이 생활이라는 커피를 담는 도구에 지나지 않아요. 컵이 좋고 나쁘고 보기좋고 싫든간에 담긴 커피의 질에는 아무 영향도 없지요. 만약 그냥 컵의 겉모양과 재질에만 신경을 쓴다면 무슨 심리여유가 있어서 커피가 단지 쓴지를 알수 있겠어요. 그게 바로 스스로 번뇌를 찾는게 아니겠어요…”     나는 계속하여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한 녀자애가 고중을 졸업하고 대학에 붙지 못하자 고향에 돌아와 고향소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이 못되여 학생들이 의견이 분분하여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머니가 딸의 눈물을 닦아주며 ‘한말지식을 되로 쓰는 사람이 있고 한되지식을 한말로 써먹은 사람이 있니라. 너에게 맞는 일이 꼭 있을테니 락심말아라’라고 위안해주었습니다. 녀자애는 외지에 가서 취직하였는데 손발이 굼뜨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경리가 해고해버렸습니다.    다시 집에 돌아온 녀자애는 삶의 의욕마저 잃었습니다. 역시 어머니가 고무격려해주었습니다. ‘얘야, 세상엔 손발이 잰 사람도 있고 굼뜬 사람도 있네라. 여태 공부만 하던 네가 어떻게 남들처럼 대번에 손이 잽싸지겠니? 너무 조급해말아라.’    다시 용기를 추스린 녀자애는 선후로 방직공질도 해보고 시장관리원, 회계일도 해보았지만 시종 여의치 않아 집에 돌아오군 했습니다.    그녀가 서른살이 넘었을 때 천부적인 언어재능으로 어느 롱아학교의 보도원으로 취직했습니다. 후에 그는 자기절로 장애인학교를 꾸리고 여러 도시에 장애인용품체인점을 꾸려서 크게 성공하였습니다. 어느날 그녀는 파파 늙은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지난날 내가 실패할 때마다 전도가 암담해 죽을 생각밖에 없었는데 엄마는 어찌하여 그냥 신심을 불어넣어주었나요?’    어머니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한뙈기 밭이 있다고 하자. 밀을 심어서 잘 안되면 감자를 심어보고 그도 적합하지 않으면 해바라기를 심어보고 그나마도 안되면 메밀을 뿌려놓으면 분명 꽃이 필수도 있지 않겠니? 우리 농촌에서는 그것을 그루바꿈이라고 하니라. 아무튼 한알의 종자에는 그에 알맞은 땅이 있기 마련이다.’    누구에게나 잠재능력이 있는데 발휘하기에 달렸습니다. 성공을 벼르는 사람은 자기의 분투의 길을 찾을것이고 좌절당하고 락심천만한 사람은 주저앉을 자리를 찾을것입니다.    두 이야기의 내용은 달라도 하나의 주제에 귀결됩니다. 말하자면 생활을 사랑하며 좌절하더라도 의지를 굽히지 말라는것이지요? 성공하려면 소힘줄 같은 끈질김이 있어야 하겠지요?    달리기를 할 때 대개 가장 빠른 서너명이 결승점에 이르면 나머지 사람들은 이내 맥이 풀려버리겠지요? 몇몇은 예정된 코스를 끝까지 달릴 용기조차 잃어버리고는 중도에 관중석으로 들어가버리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일부러 넘어지는것으로 구겨진 체면을 살리려 하고요. 뒤떨어져있는데도 죽기내기로 뛰는 사람이 있을 경우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그가 어리석게 꼴찌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리유때문이지요,    우승을 따내려 하는 마음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뒤떨어졌으되 기어이 결승점까지 달려가는 선수, 그를 위해 손에 땀을 쥐고 응원하는 마음, 이것이 바로 미래지향적인 심태라 할수 있습니다.    반디불은 미미해도 어둠속에서 다소라도 자기 생명의 빛을 뿌리고있기에 존재의 리유를 가지는게 아닐가요? 누구나 주위를 환히 밝히는 큰 홰불이 될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작더라도 신념이라는 자기만의 홰불을 높이 추겨든다면 여러분 모두가 인생마당에 퍼그나 유익한 빛이 될것입니다. 인생은 생각하는대로 되지는 않지만 자신이 애써 가꾸는대로는 거듭나게 될것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할수 있음을 안다면 부단히 성장한다는것을 의미하고 자기가 무엇을 할수 없음을 알면 당신은 부단히 성숙하고있다는것을 설명해준다는 명언이 있죠. 행복의 앞문이 닫겼더라도 다른 문이 열릴수도 있음을 믿으세요. 그러나 우리들은 흔히 오래동안 그 닫힌 문만 지켜보다보니 열려져있는 다른 한 문을 보지 못한다는 명언도 있지요. 물론 명언대로 되는 인생은 아닙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고생이 가장 훌륭하고 확실한 교육입니다. 공리공담을 많이 늘어놓았는데 여러분의 인생은 공리공담도 되지 말고 급공근리도 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랍니다, 진심으로요…"                                                                                             연변일보 2015-7-3  
518    초불눈물 흐를 때 댓글:  조회:5170  추천:1  2015-07-01
                                초불눈물 흐를 때       여느때처럼 밤도와 교수준비를 하느라니 발칙하게도 또 전등이 껌벅 눈감아버린다. 세맡은 아홉평방 문간방이 밀봉한 궤속같이 칠흑으로 꽉차서 숨이 다 갑갑해난다.    《에익, 말할놈의 전기!》저도 모르게 점잖지 못한 화증을 내뱉으며 그자리에 벌렁 누워버릴 때 안달아난것은 숙제가 밀린 딸애이다.《아버지, 초불켰어요.》하는 소리가 재촉은 아니여도 그냥 퍼더버릴가 하는 해이해진 마음속에 그 싹수없는《고질병》이 도져 다시 책에 눈길을 박느라면 밤은 어느때나 되였는지 가물가물한 초불 빛에 눈맥이 다 풀어진다. 그래서 속절없이 지름길로 찾아든 늙음을 한탄하며 말없이 초불을 망연히 지켜보노라니 애잔한 그 빛속에 고달픈 명상이 자꾸 너울거린다.     언제부터 누가 교원을 초불에 비유했는지…퍽도 유래가 깊어있을《초불정신례찬》에서 자부와 긍지를 안고 영원한 동경속에 자기를 잊고 일하는 우리 교원들이 아 니였던가!그러나 이 시각 녹아내려 형체마저 없어지는 한대 또 한대의 초불에 애상에 젖은 사색을 태우게 되고 급기야는 가슴답답한 뒤끝에 반발심 비슷한 체념의 불똥만 남는것은 웬일일가? 정녕 초불에만 비유해야 할 우리 교원들이라면 교원이 발산하 는《신비로운》빛속에 예나 다름없이 그 숙명적인 자아희생의 처량한 그림자가 비껴 있기때문일가?     아닌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비춰주는것과 자기를 희생하는것이 합쳐 우리 교원들의 형상을 이룬다면 이러한 진실은 너무나 불공평하다. 우선 교원사업의 실질과 그 실질로부터 체현되는 진정한 숭고함과 희생정신을 근본적으로 반영하지 못했기때문이요, 다음으로는 시대적색채의 바래임과 더불어 그 소극적인 면이 날로 들어나기때문 이다. 어페일지는 모르겠으되 목적, 의도적이고 의지적이며 쌍변적이고 정감적이며 창조적활동인 교육사업이 어찌 단순한 흐름식지식수출 더우기는 속절없는 소모만이랴!    가령 이러한 수출, 소모에《위대한》가치가 있다면 근근히 교원의 지식과 재능이 제자들에게 기계적으로 옮겨진다는 그것뿐일것이다. 실로 창조성을 잃은 교수사업이라면 저차원적인 단일한 류출, 단순한 수고로움과《경의》로운 단항적소모밖에 더 되겠는가,     이러한 의미에서《초불찬가》를 유의적인《기송》이라고 눌러생각하면 마음풀리는 최면곡이 되겠지만 차라리 무심한《혹평》이라고 말하는것이 듣그럽긴해도 실사구시적이 아닐가? 마치 교원의 운명속에는 선천적으로 자아매몰만 있을뿐 자아가치창조는 불가능한것으로 인정한다면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수 없다.    구사회에서는 불우했던 훈장들이 이런《초불정신》을 미신하여 검은머리가 희도록 전전긍긍 한평생을 분주하게 죽은 글을 가르치다가 죽어갔지만 참고 견디며 세상과《다투지》않았던지는 모르겠다.    아무튼《초불정신》은 우리 시대 교원들에게도 비장한 위안으로 될수 있어도 진정한 분발과 향상, 헌신성을 가져다줄수는 없다. 이러한《정신기둥》으로는 가르치는 즐거움과 즐거운 가르침이 있을수 없다. 그러니 가르침과 고생스러움과 고생스러운 가르침을 잘 알고있는 청년세대들이 마주서면《존경》을 높이들지만 돌아서면《온역 신》을 피하듯 멀찍이 하는것이 기성사실이 아니며 신성한 교단에 지망자가 날로 적어지는것도 현실이 아니란 말인가?    물론 우리는 어디까지나 다른 사람을 비춰주는《초불정신》의 고귀한 일면을 제창해야 한다. 그러나 그 경우 그저 달가운《훼멸》을 대가로 후대양성사업이 완수된다고만 생각하는것은 용인할수 없는 몰각이다.    교원의 형상에서 숭고한 리상과 헌신정신은 기본핵으로서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따라서 교원들의 대상자는 무감각하고 수동적인 지식창고가 아니라 미래의 화폭 을 그려주고 력사를 창조하여 아로새겨주어야 할 무한히 활약하는 심령세계인것처럼 인생행로에서 리정비가 되여야 한다. 교원의 형상은 광명을 전파하는 프로메테우스마냥 희망을 품고 지식의 왕국을 탐색하고 창조하고 개척하는 성스러운 한길에서 불멸의 홰불이 되여야 한다.     태양은 낮에 빛난다.휘황찬란하다. 초불은 평범하다. 허나 사심이 없다. 초불의 평범함과 태양의 휘황찬란함을 함께 지닌 사람들ㅡ그들이 바로 인민교원이다.                               1990년 5월 6일
517    분필례찬 댓글:  조회:5314  추천:0  2015-07-01
                              분필례찬       닳고닳고 모지라져서 락서질을 좋아하는 조무래기들마저 왼눈으로 보는 분필꽁다리들을 담장한구석에 쏟아버리려던 나의 손이 오늘따라 저도 몰래 무춤해지며 마음의 호수에 잔물결인다. 마침내 버려져 값없이 나딩구는 분필들이《왜 쓰다쓰다 요모양 요꼴이 되니 마구 내버리는거예요?》하고 올롱한 눈길로 항의하는듯싶어서이다.     하긴 그렇기도 하다. 20여성상 내손에서 구을리고 닳아빠져 내버린 분필이 천대 였던가? 만대였던가? 여느때는 마음이 늙은 표징인지 속절없는 분필꽁다리들에 공연히 왼심이 기울어지며 애틋한 그 무엇이 가슴 그들먹이 피여오른다. 사무상앞에 선채로 망연한 상념에 잠기노라니 자꾸만 분필꽁다리들이 알른거리면서 펼쳐지고 모여오는 생각들을 보듬게 되고 엉뚱하게 분필의《족보》를 떠올리게 된다.     우스운 추리일는지…아무튼 분필의 래력을 따져보면 석회는 분필의 아버지가 될것이다. 분필의 아버지는 벽에 진 얼룩들을 지울수 있을뿐이다. 하지만 작디작은 분필은 인류의 령혼을 미화지 않는가? 나는 제딴엔 오묘한 진리나 터득한듯싶어 더욱 생각이 외곬으로 빠져든다. 따라서 반짝 련상의 불꽃이 튕기여 서정의 갈밭에 불을 달아준다.     재여보아야 반뽐도 채 안되는 분필이다. 그러나 교원의 손에서 조약하면 지식의 꽃다발을 엮고 칠판우에서 련마하면 신묘한 사상의 불꽃을 튕긴다. 짧디짧아도 하나의 긴 금빛교량마냥 학생들을 지식의 대하를 건네여주고 마술사의 신비한 사다리마냥 지혜의 고봉에 오르게 한다. 분필은 아쉬움 없이, 원망 한마디없이 자신을 갈아 인류의 광명을 바꿔오고 자기의 한목숨 다바쳐 인류의 정신세계에 문명의 새 아침을 펼쳐 주는 숭고한 희생자이기도 하다. 분필은 비록《죽어》가지만 오히려 살아가고 그 자신은《무지》하지만 오히려《유식》하다.     분필을 녹쓸줄 모르는 은빛보습에 비할수도 있으리라. 몽매의《황무지》를 갈아 탐구의《이랑》을 지어 락후의《잡초》를 덮어버리니 말이다. 분필의 활무대는 작다. 하지만 모든 시간과 공간을 뛰여넘어 다윈의 지팽이를 짚고 인류의 기원지도 답사하고 마야문화, 바빌론의 비밀도 캐여본다. 분필은 수만년 인류의 문명사도 압축할수 있고 계림의 산수, 사하라사막, 아마존강도 주름잡을 수 있다…인류의 4대기적도 현 연시켜주고 수학의 미궁도 돌파하고 우주의 비밀도 탐색하며 달나라의 환형산에도 오르게 한다.     어찌 그뿐이랴!하얀 분필끝에서 오색찬란한 조화의 대천세계가 펼쳐질수도 있어 사색의 시내물에 심상의 작은 배도 노저어보게 하고 서정의 우물에 즉흥의 드레박도 드리워준다. 이끼돋은 력사의 돌무더기 사이로 회억의 쪽수레도 몰아가고 언어의 바다에서 정감의 진주도 줏게 하며 꽃피는 글동산에《만물상》도 세워보게 한다. 미의 옷을 떨쳐입고 아름다운 정조의 불붙는 산마루에도 치달아오르게 하며 도덕의 샘물가에서 함양된 정서, 순화된 인격의 순도도 비쳐보게 한다.     분필의 생명권은 너무도 협소하다. 한생을 다 바쳐가지만 서법예술의 운치도 남기지 못하고 불후의 기념비에 만세류전의 비문도 쓰지 못한다. 그러나 작디작은 분필이야말로 후대에게 하나 또 하나의 지식의 보물고를 열어주는 금열쇠가 아니겠는가!     서정도 마르고 상념도 진했으나 분필의 하얀넋에 깃든 그 뜻은 다할길 없는듯,                           1991년 11월 8일      
516    <시조산책100보> (21-30보) 댓글:  조회:4731  추천:0  2015-07-01
                     1. 시비를 캐지마라 시시비비 부질없다                          주객이 전도되고 흑백이 뒤바뀌고                          힘으로 리익챙기며 타자를 말살하매                        2. 인생은 빈잔인데 욕망으로 채우잔다                          미주는 곯아있고 고배만이 넘치는데                         공수래 공수거인걸 잘안다며 웨그러냐                        3. 권력은 영존할세 권세가야 그리되랴                         손에쥔 权봉이라 나름대로 휘두르쟈                         에라잇, 물렀거라 다다익선 하리로다                        4. 이마에 주름깊다 속상하지 마옵시라                          피다가 시들어진 청춘의 흔적인듸                          백발은 로년꽃이라 그멋 또한 좋을시고                        5. 꽃이야 곱다마는 철모르고 만개하며                          절승이 기관인들 곳곳마다 있으리오                          인생도 그와같거늘 자아도취 금물일세                        6. 호을로 앉았으매 적막한줄 몰라하네                          명상의 깊은늪에 자맥질이 좀 좋은가                          더불어 사는세상도 생각만은 독주하세                        7. 로쇠해 후둘후둘 거동마저 말째건만                          금전욕은 왕성할사 어찌그리 로망인가                          고래희 고개길에는 무심무욕 지팽인듸                        8. 一笑一少 一怒一老 웃음이야 나쁠손가                         웃으면 따라웃어도 따라울이 없는기라                         기막혀도 웃음터지니 앙천대소 가슴찢다                        9. 펼치면 손바닥을 부르쥐면 주먹인데                          약자도 부르쥐면 강타안길 마치될가                          힘없는 두주먹으로 눈물이나 닦으리라                      10.  거짓은 믿게하고 진실은 감추더라                           흰천을 물들이는 물감독이 이렇든가                           편견은 무지보다 더 진리에서 멀어져라
515    <시조산책100보> (11-20보) 댓글:  조회:5795  추천:0  2015-06-30
                      1. 사람이 잘나서냐 앉은자리 높다해도                          제복이 사람이라 앉은자리 빛이나도                          인생은 무상하거늘 일취월장 장구하랴                         2. 보이면 보인대로 느껴지면 느낀대로                          생각나 생각대로 욕심나니 욕심대로                          멋겨워 살자하느니 자률아 썩비켜라                         3. 집이라 백채인들 한곳에서 자는것을                          세끼를 진수성찬 만포식에 폭음해도                          위장은 맛을 모르니 너무 그리 혹사마세                         4. 인촌은 유정한데 세상속이 말세인가                           물욕이 횡행하니 리기리욕 난당일다                           두어라 홍익인간을 어느뉘가 내세울고                         5. 이름을 부르렴아 내 존재의 의미인데                           장자를 불러줘야 자기인듯 좋아하네                           관두소 고관대작도 주마등이 아니든가                         6. 처음이, 맨처음이 어디이고 무엇인가                           때묻지 않은 처음 신성한 그 처음엔                           원죄도 없으려니와 부패균도 없었으리                         7. 사진첩 번져가면 감구지회 절절하다                           희망도 화사하던 인생의 봄 언제던가                           황혼이 깃드는 길에 飞来片片 락엽뿐이                         8. 황둥개 꼬리젓냐 꼬리질이 개흔드니                           꼬리가 개보다 더 총명하다 하리로다                           세상엔 개를 흔드는 꼬리질이 꽤많으니                         9. 화날때 셈을세면 량책이라 니르지만                           남의탓 화를내면 자학이라 하지만은                           비리에 눈꼴사나워 줄욕나도 인지상정                        10. 세월이 마음앞서 살같이 달려가네                           말없이 못본듯이 무정한 세월령감                           가는듯 다시오는듯 한숨쉰들 무삼하리      
514    <시조산책100보> (1-10보) 댓글:  조회:5635  추천:0  2015-06-29
                      1. 잔풀과 거목들은 화평공처 잘하는듸                                루만금 부자님네 빈천자를 기시하네                                      아느냐 삼대거슬러 가난뿌리 같았니라                          2. 이국땅 호텔에서 딸라벌이 여의한지                                 춤추고 노래하는 배달겨레 체네들이                                       꽃같고 나비같다만 눈물겨워 못보것다                          3. 짐승도 기를탓에 번성하고 살찌는데                                  성은이 망극해도 민초들은 굶주리니                                        득민심 득천하인걸 몰라서냐 그러신가                          4. 태양도 열불나서 지구촌을 달구느뇨                                  북빙양 사라지고 온실남새 심는다나                                        가물에 폭풍에 홍수 첩첩재난 뉘탓인고                          5. 이러보 순돌에미 호박떡을 맛볼라나                                 울넘어 주고받는 이웃의 정 풋풋해서                                       가난한 시골이라도 사는멋이 좋았더라                          6. 고달파 잠이들면 희로애락 네뚜릴세                                  눈떠야 별을 보듯 꿈을 꿔야 웃어보지                                        수면에 스물세해라 인생칠십 반생반사                          7. 백년도 못살면서 천년욕심 성화같아                                  먹을사록 냠냠하며 축재하고 蓄妾하다                                         계하수 되여진후에 후회락루 목메는다                          8. 지난날 민초들은 야위여서 말째였소                                  지금은 저저마다 살찐다고 야단일세                                        걱정도 팔자이여라 小食하면 되는것을                          9. 백년을 장수함에 불원이야 있으랴만                                  생명에 집착하면 병도 절로 생기니라                                        섭리인 생로병사를 순리대로 맡기옵셔                         10. 옛날엔 잘사는게 대역부도 하다더니                                  언제는 가난한게 영광이라 고양터니                                        지금은 돈만 많으면 시대호걸 되는도다
513    고향을 잃은 친구 댓글:  조회:5490  추천:0  2015-06-24
                                  고향을 잃은 친구      《구름도 울고 넘는 울고 넘는 저 산아래 /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건만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산골짝에 물이 마르고 / 기름진 문전옥답 잡초에 묻혀있네…》    고향을 그리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노래에 눈을 감노라니 며칠전 불쑥 찾아왔던 고 향친구가 생각난다.     십여년전에 마누라가 죽자 무작정 연길에 들어와 삼륜차를 몰며 홀아비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친구다. 그러면서도 넥타이랑 매고 주말마다 무도장출입을 하면서 폼을 내기도 하던 친구다. 그런데 그날은 몇끼 굶은 사람처럼 초췌하고 어깨가 축 처졌다.    《이 시간에 어쩐 일루…?》     친구는 대답대신 마라초를 말아 굴뚝같이 연기를 뿜어올렸다. 이윽해서 하는 말 이 한심했다.    《생각다못해 널 찾아왔다. 급히 세집을 맡아야 하겠는데ㅡ돈 좀 빌리려고…》     발편잠을 잘수 있는 제집 한칸 없이 도시생활을 해오던 문간방 늙은이의 모습에 형언할길 없이 마음이 쓰렸지만 한편으로는 돈꾸러 친구를 찾아온데는 기분이 찜찜했다. 더구나 몇해전에도 석탄 살 돈이 없다고 찾아와서 손을 내밀던 친구였다. 그때 돈도 아직 갚지 못한 친구였으니 말이다.    《들을라니 또 녀자를 얻어 살림을 차렸다며?》    《응, 또 갈라졌어, 셋째딸년네 집에 얹혀살았는데 딸이 외국에 가고나니 죽지 떨어진 회토리가 되였다. 딸없는 사위란 말이 있지 않니? 그놈이 어찌나 구박하는지 따로 나야지…》    《그러게 내가 뭐랬니? 알맞춤한 과부나 얻어 고향에 가서 닭, 개나 치면서 살라고 그랬지, 도시엔 얼굴밖에 없는 곳이야, 늘그막고생이 마지막고생이다.》     직통배기인 나인지라 에누리없이 몰아주었다.    《후ㅡ 인제 고향에두 갈수 없게 되였어, 그런 사정이 있으니 더 묻지 말아다오.》     대답대신 땅꺼지게 한숨을 토해냈다.     워낙 못한 술몇잔을 마시더니 혀꼬부라진 소리로 가사와 곡조를 제멋대로 둘러맞추며 넋두리를 하는것이였다.    《찾아갈곳이 못되더라 / 내가 버리고 떠난 고향이길래 / 수박등 흐려진 선창가 / 전선대에 기대서서 울적에 / 똑딱선 프로펠라소리가 / 이 밤도 처량하게 들린다. 물우에 복사꽃같이 / 물우에 그림자같이 / 내 고향이 꿈에 어린다…》    친구는 단돈 몇백원에 인격마저 무너져내리고 있었다. 이런 사람이 어찌 내 친구 한사람일가? 자기가 살던 고향을 뒤로 하고 무작정《도시진출》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을 련상하지 않을수 없다. 땅팔고 집 팔고 솔가하여 도시에 들어온 사람들속에서 성공한 사람들보다 실패한 사람들이 더 많은 현실이 아니던가! 저마다 제잘난 멋에 산다지만 제 앉을자리 설자리 찾지 못하고 부평초같은 삶을 사는 그 모습이 안타깝다. 하늘이 무너져내릴가 걱정하는 기나라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사람들은 농민들의 도시진출을 제2차인구대류동이라 하면서 락후한 농경문화에서 해탈하여 새로운 생존환경을 개척하려는 몸부림이라고 한다. 탁상공론이야 어려울것 있으랴만 현실은 락관할바가 못된다. 결코 나무한그루를 보고 수림을 보았다고 하는것이 아니리라. 농민들의 확정적이고 목적, 의도적인 집단적거사가 아니라 보다 쉽게, 보다 편하게 살려는 무모한 급공근리(急功近利)의 개체활동일뿐이다.    결과는 어떤가? 숭어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격으로 세세대대 땀으로 걸구고 피로써 지켜온 향토를 헌신짝 벗어던지듯하고 도시에 몸을 잠근뒤의 인생고가 얼마나 눈물겨우랴!    우리 조선족농민들이 못살겠다고 떠난 고장에 한족들이 찾아들어 울타리를 둘러막고 보금자리를 마련해간다. 어느것이 더 바람직한 인생자세일가?《불귀, 불귀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라며 도회지생활에 미련두고있는 내 친구같은 사람들의 행각이 동정을 살수 있을가? 인생은 뜬구름이 아니요, 부푼 욕망만으로 사는게 아니다.     헌 자전거를 절컥거리며 택시, 자가용이 흐르는 도시의 네거리 명멸하는 가로등 아래 후줄근한 그림자를 끌고가는 친구, 가기는 가더라만 보금자리를 잃은 그 넋이 안식할곳 어디메냐? 친구야, 친구!네가 버린 고향이라지만 그래도 향촌에는 아직 사람냄새가 정겹고 더불어 사는 멋이 있더라. 성실한 로동의 향기가 땀흘린자를 저버리는 법은 없다. 울밑에 호박심고 터밭에 남새심으며 살수 있는 고향으로 친구야, 어서 가거라, 이렇게 혼자 중얼거리다가 저도 모르게 친구대신 옛노래 불러본다.    《새들도 집을 찾는 저 산아래 / 그 옛날 내가 살던 고향이 있었건만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 / 지금은 어느 누가 살고있는지 / 바다에는 배만 떠있고 / 어부들 노래소리 멎은지 오래일세》     고향을 잃은 친구야!넋이라도 있다면 꿈속에서라도 네 고향에 어서 가거라.                                   2003년 9월 9일   
512    알맞춤해야지 댓글:  조회:5403  추천:0  2015-06-24
                                              알맞춤해야지      《순오지(旬五志)》《소소식 방세뇨(小小食放细尿)》라는 말이 있는데 문자와는 별 개로 지나친 탐리는 불가함을 이르는 말이다. 우리 말 속담에도《작작 먹고 가는 똥 누지》라는 말이 있는데 듣기에 퍼그나 야하고 상스럽지만 뚝배기보다 장맛이 낫다고 뜻만은 심히 교훈적이다.말하자면 알맞춤 먹어 배설에 애먹지 말라는것이 아니라 역시 소득을 탐내지 말고 제 힘에 맞게 분수를 지키는것이 좋으며 그게 또한 편하 기도 하다는것이다. 표현이야 여하튼 과히 경세지언이라 하리라.    인간식위천(食为天)이라 하지만 과식해서 좋은 점이 없다. 사람은 너무 배가 부르면 자연히 권태로와지고 사유가 둔감해지면서 사지를 놀리기 싫어한다. 상식적으로 배가 부를가말가 할 때가 생리상에나 정신상 최적이라 한다. 옛날 늙은이들은《밥배 따로, 술배가 따로》라고 했지만 죽이 풀어져도 가마안에 있다고 결과적으로 만포식이 과식으로 되는게 아니랴?    마찬가지 도리로 사상이 너무 과격해도 좋은 점이 없듯이 리욕도 도를 넘으면 스스로 화를 빚게 된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런 도리를 모를 사람이 어데 있으랴만 대자연이 인간에게 지혜를 부여할제 동시다발(同时多发)적으로 무한정의 욕망까지 심어준 탓인가? 백사에 많으면 좋은줄만 아니 인간이야말로 딱한 동물이 아니랴!철인 엥겔스는 력사의 최후단계는 희극이라 하였지만 인간의 탐욕의 종말은 백에 백이 비극적일수밖에 없었다. 이를 경계하여 니체는《인생의 행운은 곧 가벼운 빈곤을 유 하는데 있다.》는 계률을 내놓았다.    물욕에 오장륙부가 동동 떠있는 사람들에게는 설복력이 너무나 약한 사치스러운 설교가 되겠으나 한번쯤은 음미해볼 필요가 있지 않은가? 무엇을 가벼운 빈곤이라 하는가?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오늘날 딱맞는 눈금자는 없으니까 스스로의 물욕을 절제하는것으로 리해하면 될것이다. 외국의 억만갑부들이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시키는 그 고매한 사상경지가 이를 설명하지 않는지…    물론 서발막대 휘둘러도 거칠것 하나 없고 쌀독에 거미줄칠 지경이라면 최대의 불행임에 틀림없다. 인간의 첫째 수요가 생존이고 다음은 포식이며 연후에 발전을 추 구하기 마련인바 이는 인간의 속성인것이다. 문제는 물극상반(物极上反)이다.    이런 재미있는 우화가 있다. 옛날 한곳에 극히 가난한 사람이 있었는데 신령님께서 하도 가긍하여 그에게 점금술을 가르쳐주었다. 그후부터 얼핏 손가락질만 하면 모든게 금덩이로 변하는데 대번에 엄청찬 부자가 되였다. 하지만 그는 자꾸자꾸 금덩이를 만들었다. 나중에 너무 많아서 어디다 둘곳이 없게 되였다.결국 너무 넘치는것도 골치거리였다. 그러다가 그의 손이 우연히 딸애의 머리에 가닿았는데 아이마저 그만 금아이로 변해버렸다. 그때에야 끝없던 황금욕에 일대혁명이 일어났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남은것은 자신이 너무 비참해졌다는 생각뿐이였다.    이야기는 조금 황당하지만 어떤 계시를 주지 않는가? 이야기에서처럼 극한에 이른 부유는 극도의 빈궁과 마찬가지로 물질로 인해 빚어진 두 극이라는것을 시사해준다. 이런 견지에서 지나친 부유는 최저의 가난과 대등하다고 할수 있다. 재물이 너무 많아서 주체할길 없고 관능적인 온갖 향수가 궁극에 이르렀다면 오직 남는것은 권태 와 허무, 무엇으로도 보상할수 없는 실락감뿐이다.    다시 음식먹는것에 비유해보자. 례컨대 어떤 사람이 영양과잉으로 비만증에 걸려 까딱 움직이기도 싫고 누워서 숨쉬기조차 기쁘게 되였다면 영양실조로 피골이 상접한 기아자와 같다. 죽음의 변두리에 이른것이다. 그래도 후자는 구제할 여지가 있다. 생존수요만큼 영양을 공급한다면 아사지경에서 곧 벗어나고 뒤이어 건강한 사람으로 될수 있지만 전자는 구제불능이다. 계속하여 영양을 충족시키면 죽음을 가속화할것이 고 반대로 영양공급을 중단한다 해도 역시 죽을것이다. 미국 강철대왕 카네기가 말했듯이 부유때문에 죽는 치욕을 면할길 없을것이다.    백사에 알맞춤이란게 있다. 음식도 알맞춤먹어야 감식이고 꽃도 반쯤 피였을 때 제일 매혹적이고 술도 반쯤 취했을 때 제격이다. 저수지라 해서 한정없이 채우기만 하는게 아니라 때때로 수문을 열어 저수량을 조절해야 언젠가 터지는것을 예방할수 있다. 재부의 축적도 마찬가지이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재부는 기쁨을 가져다줄수 있 지만 재부를 가지려 한다면 즐겁지 않다는것이다. 즉 물질주의자들이 아무리 부유해 도 얼마를 가지고있고 얼마를 쓸것인가에 신경쓰는 사람보다 즐겁게 살아가지 못한다 는것이다.    이는 사람이 변비증에 걸렸을 때와 같은 경우이다.뒤는 잘 풀리지 않는데 입은 살아서 자꾸만 받아들이려고 할 때만큼 속이 뒤집혀지는 일은 없을것이다. 농노들에 게서 농노들에게서 받아들이기만 해서 밀가루가 재가 되는데도 그냥 농노들의 고혈을 짜내는《죽은 넋》에 나오는 쁠류쉬낀같은 탐욕주의자들은 영원히《가벼운 빈곤》이 어째서 행운인지 알지 못한다. 더 바랄것이 없을정도로 만족을 얻었다면 벌써 정신이 긴장해지고 마음이 초조해지면서 이상야릇한 번뇌에 모대기게 된다. 그러면서도 더 가지지 못해 안달하는것은 모든 탐욕자들의 통병이다.    크고 호화로운 집에 무엇을 꽉 채워넣었다면 그의 추구에는 꿈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그러나 작은 집의 주인은 비록 부족감에 시달릴수 있지만 그래도 지향과 향상과정에서 산다. 그에게는 꿈이 많고 그 꿈은 또한 아름다운 법이다.특히 각종 부정축재는 필사적으로 일해서 모은 재산보다 기쁨지수가 높지 않다고 한다.   소화불량에 비대증, 변비까지 겹쳐있다면 얼마나 편치않을가?식생활이든 경제생 활이든 작작 먹고 가는 똥 누기가 그래도 좋을것 같다.                                               2003년 6월 10일  
511    (웅변고) 겨레의 얼을 지켜 한생을 댓글:  조회:4760  추천:0  2015-06-24
       겨레의 얼을 지켜 한생을      존경하는 선생님들!친애하는 벗들!    한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치욕은 무엇일가요? 그것은 바로 인간으로서의 존엄 과 인격가치를 훼멸당하는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용서못받을 어리석음은 무엇일가요? 그것은 자기를 잃어가면서도 그런줄 모르고 끝까지 자아을 찾지 못하는 그것입니다.    한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슬픈 조우는 무엇일가요? 그것은 곧 인간이 인간으로 되는 중핵인 얼을 잃은 인간으로 전락되는것입니다.     인간의 이런 치욕, 우매와 슬픈 최후가 옹근 민족의것이 될 때 민족의 수치, 민족의 우매, 민족의 쇠망이라 할것입니다. 그래서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서 민족자질제고, 민족경제의 진흥, 발달의 소망을 품고 탐색하고 분투하면서 비약을 도모하는 현시대 가 아닙니까?  주지하다싶이 민족이라 하면 무엇보다도 민족어교육이 기본으로 되고 민족의 진흥이라 하면 곧 민족의 얼과 슬기와 지혜의 정화인 민족문화재부의 축적을 종국적목적으로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당의 영명한 민족정책, 민족어문정책의 빛발이 포근히 감싸주어 마음껏 자기 민족문화자주권을 행사할수 있는 우리 조선족들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어생 활권내에는 스스로 혀를 깨무는 사람들이 비일비재이니 심사숙고할 일이 아닙니까? 례를 든다면 우리는 종종 조선어무용론의 뇌까림소리를 듣게 되고 자기 자녀교양에서 100%의 한어화를 긍지로 삼고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냥 존재한다는것입니다.    이도저도 아닌 한어를 한답시고 그 좋은 제 말마저 바로 번지지 못하는 사람들, 크고작은 회의나 연설식장에서 청중의 민족성분이야 여하튼 한어를 해야만 체면이 선 듯이 자부하는 이 사회의《중견》들을 볼 때, 대중이 알지 못하는 외래어단어를 마구 람용하여 잡탕말이 되여진 그런 문풍을 숭상하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유식》 이나《현대의식》을 과시하려는 이들을 일견할 때 당신은 왼고개가 탈리지 않습니까? 더구나 자기가 조선족이라는것을 밝히기 꺼려하는 사람들이 있다할 때 실로 조상의 해골도 자리차고 일어나 꾸짖을 일이 아닙니까?    이런 이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아야 할것입니다. 우리의 뼈짬속에 백두의 정기가 고여있고 우리의 혈관속에서 흐르는 피에 반만년 찬란한 문화사를 엮어온 배달민족의 얼이 융화되여 있을진대 중화의 진흥에서 민족인다운 어엿한 모습과 자기 특유의 슬기와 지혜로 공헌해야 중화대가정속에 떳떳한 일원으로 나설수 있다는것을, 그가 상인이든, 농민이든, 로동자이든, 대학생이든, 학자이든, 작가이든 그리고 고급간 부이든 우선 인간이며 민족적인간임은 피할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창조해왔고 그 후대들이 대를 이어 창조해나갈 물질문화재부의 모든 가치는 민족군체의 창조이자 곧 민족인 개개의 가치창조로 되기때문에 더욱 그 러합니다. 묻거니와 세계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이 독특한 국민성, 민족정기와 남다른 문화를 향수하지 않으며 그것을 지켜 목숨까지 바쳐가면서 그 모든 슬기와 재능을 자 기들의 국어, 민족어로 나타내지 않는가요?    누가 만약 민족언어문자를 그저 동일민족군체내에서의 교제도구, 수단, 부호로만 인식하였다면 얼마나 가련한 사유방식입니까? 세계 모든 민족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말과 글은 우리 자신의 얼굴이자 얼로서 우리의 선조들이 사랑으로 다듬어온 문화의 재부이며 불멸의 유산이기도 합니다.    바로 그러기에 간악한 일제놈들의 피비린 문화말살정책과 탄압속에서 살아온 망국노의 36년. 창씨개명까지 강요당하면서도 불같이 뜨거운 사랑의 마음들을 백두산 칡넝쿨처럼 얽히게 하고 그 끈질긴 힘으로 끝끝내 불사조처럼 살아남게 한것이 바로 우리 말,우리 글이 아닙니까? 참으로 세기와 더불어 줄기차게 쏟아져내려 장하를 이룬 백두폭포처럼 굴함이 없고 기백있는 우리 말, 우리 글이라 하겠습니다.    언어를 떠난 인간은 상상할수 없으며 민족어를 빼앗긴 민족만큼 불행한 민족은 없을것입니다. 이와같이 언어란 개인에게 있어서는 곧 그 인격이요, 민족에게 있어서 는 곧 민족자체라 할수 있습니다. 저 유명한 로빈손이 27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절해 고도에서 외로이 생명의 홰불을 태울 때 가장 큰 불행과 고통이 무엇이였겠습니까? 그것은 삶의 고달픔도 생사고비의 위험도, 이성에 대한 갈구도 아니였습니다.    그것은 참을길없는 지리한 고독을 물리쳐줄 힘인 언어생활을 잃은것입니다. 자기의 모국어에 대한 련련한 정으로 하여 앵무새와 한두마디 말을 주고받으면 한낱 미물 일지라도《로빈손》이라고 불러주고《굿빠이》라고 말하였을 때 왈칵 솟구쳐오른 그 뜨거운 눈물에 담긴 의미가 과연 무엇이였을가요? 그렇습니다. 이렇듯 인간은 말을 떠나서 살수 없으며 자기 민족어를 떠나 사는 비애는 무엇보다 큼니다.    믿어지지 않는다구요? 때때로 객지의 려관방에 홀로 누워 고독에 모대길 때 우리 말로 된 시 한구절이라도 나직이 외워보십시오. 먼산에 적설이 녹아내리듯 만시름이 풀어지고 애틋한 사랑의 정이 봄물마냥 차분히 스며들것입니다. 흥겨울 때 아리랑 한 곡조 넘겨보십시오. 부드럽고 그윽한 그 정서와 선률을 받쳐주는 우리 말의 아름다운 음향이 은방울소리처럼 귀맛당길것입니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에 마음을 칭칭 동여나 보십시오. 도라지, 양산도, 산천가의 가락은 어떠합니까? 열두가락 가야금소리 둥기당 둥기당당 심금을 뜯을 때 어깨춤은 어찌하여 절로 나며《좋다!좋지!》의 여운은 어찌하여 길게 메아리치더이까? 울밑에 봉선화 피는 그 한때처럼 아기자기한 정서를 안겨주어서 그처럼 푹 취하는게 아니며 감미로운 미주를 마신듯, 꽃내음 향긋한 꽃다발을 안은듯 기쁨을 주는 우리 말소리여서 그늘졌던 마음도 가신듯 푸르게 열리는것이 아니겠습니까?    정녕 그렇습니다. 말할수록 하고싶고 들을수록 듣고싶은 우리 말입니다. 때로는 산곡간에 돌돌 흐르는 청계수처럼 맑고 잔잔하고 때로는 천지의 폭포처럼 쏟아져내려 가슴을 쾅쾅 울려주고 때로는 비수처럼 날카롭게 가슴을 푹 찌르는 우리 말, 백의겨레의 가슴가슴에 감동의 메아리로 전해지는 우리 말입니다.    그러기에 타관땅 낯설은 거리에서 까닭없이 고독을 느끼다가도 문득 가슴가득 정을 안겨주는 그 소리ㅡ우리 겨레의 말소리를 들었을 때 그처럼 반가울수 없으며 생면부지이나 와락 두손을 부여잡고 흉금을 터놓고싶어지는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말인즉 그 겨레의 정서와 사유와 감정까지 윤색해주고 떨어버릴래야 떨어버릴수 없는 민족혼과 더불어 숨쉬기때문입니다.     나는 감히 단언할수 있습니다. 자기 민족어에 대한 태도롤부터 매개인의 민족적 인격가치가 단정된다고, 그렇습니다. 자기민족어에 대한 애착이 없다면 자기 민족에 대한 정애가 있을수 없으며 조국애란 더구나 운운할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민족어가 살아있어야 민족이 살이있고 앞길이 창성할수 있듯이 조상의 빛나는 얼을 오늘에 되살려 더욱 눈부시게 하고 대를 이어 지켜가도록 선배된 우리의 마음가짐부터 바로합시다. 민족문화전통의 계주봉이 우리 세대에 와서 녹쓸게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이 땅의 모든 우리 민족지성인들이여!한생이 진하도록 겨레의 얼인 우리 말 우리 글을 지켜 빛나게 합시다!                                       1996년 6월 20일
510    석양 댓글:  조회:5587  추천:0  2015-06-24
                                                석 양      조화로운 우주만물이 베풀어주는 극치의 경물중에서 해돋이는 자체의 특이함으로써 사람들을 무척 현혹케 한다. 그래서 동서고금의 수많은 시인과 문필가들이 해돋이를 감상하기 즐겨했고 정채로운 필치로 불후의 걸작을 남겼던것이다.    물바래 부서지는 만경창파우에 그렇듯 장려한 화폭을 펼쳐보이는 바다의 해돋이든, 헌산준령 칼벼랑우에서 바라보는 산우의 해돋이든, 망망한 리해천리 뭉게이는 안개를 서서히 젖히며 장관을 드러내는 밀림의 해돋이든, 지리한 밤의 장막을 찢어버리고 밝아오는 저 동녘하늘가에 위대한것의 탄생을 고하며 빛과 열, 광명과 생명을 인간세상에 소생시키는 해돋이는 그 어느것이나 매혹적이 아닌것이 없다.    그러나 나는 서산에 지는 해, 저 불타는듯한 락조를 두고 명상에 잠기는것도 매우 즐긴다.《거칠은 광야에 외로운 연기 피여오르고 지는 해 대하에 잠겨 쟁반같구나.》라고 한 옛시인의 주옥같은 시구에는 물론 딱히 알수 없는 서글픔이 담겨있지만 석양은 그로서의 돋특한 경치를 갖고있음을 어쩌랴!    한낮을 빛과 열로 우주를 축복햏주던 해는 서천에 기울무렵 역시 금방 솟아오를 때의 그 눈부신 빛발로 하늘을 물들이듯 연분홍 채단을 서서히 펼치며 수집은 처녀애마냥 발가우릿한 얼굴에 행복과 자랑의 미소를 함뿍 머금고있다.    만리 쪽빛하늘도 지평선기슭에 닿은 부분은 온통 붉게 물들어 엷은 구름층과 더불어 눈부신 금관을 쓴 이 우주의《왕자》를 그토록 장엄하게, 그토록 청신하고 아름 답게 안받침해주었다. 이윽고 현란하던 우주의《왕자》의 휘늘어진 옷자락에 검은 반점이 하나, 둘 생기더니 나중에는 하나로 뒤엉켜 암혹생의 우울한 기분으로 하늘과 산봉우리와 전야를 무겁게 해준다. 아쉬운듯 서쪽하늘가에 너울거리는 해님의 등근 얼굴은 새날의 광명을 묵묵히 기약하며 어둠의 장막을 밑으로부터 끌어올리더니 급기야 자취를 감춰버린다. 때를 같이하여 석양의 잔광도 조화를 이룬 갖가지 색갈로 창공을 비춰보고는 스러져버린다.    이윽고 하늘에도, 먼 산봉우리에도 노을빛은 가뭇없이 사라져버리고 군림하는 밤의 장막이 넓은 옷자락을 펼쳐 축복받은 대지를 고요와 평화의 꿈나라로 포근히 싸안 아준다.                                    1988년 5월 20일
509    느낌에 생각이 따라(95-100) 허수네아비야 외 4수 댓글:  조회:5203  추천:0  2015-06-22
                         (96)  그대 시인에게                                      야 조                                  그대 시를 쓰시는가                                몽롱해진 의식으로                                    신경을 배배 탈아서                                        모호를 엮어내리는가                               나만의 감각 떠올라라                                 꾸지도 않는 꿈결따라                                     문법은 가라 해탈만이                                         새 경지에 이르리라                               그대 신들려 있는가                                 알쏭달쏭이 숨박꼭질로                                     알둥말둥을 얼싸 안느냐                                         시는 고상한자의 명함                              몰라도 읽어야 하나니                                읽노라면 더 알리로다                                    전통의 막은 내리워라                                        모더니즘 행차하는도다                              그대 맑은 리성 밀어내고                                비리성으로 다시 고치고                                    그래서 초인적감각님이                                        말하자는 시의 핵이 뭐야?                             그래도 써내려 가려는가                               읽는이 갸웃둥하는 멋이 좋아                                   읊어보라, 깨득은 백년후에 하고                                       먼저 천하의 맛을 새김질하면서                                     (97)  유서 쓴다는 지구                                                    야 조                            정말인지는 잘 모르지만                          벌것벗은 어머니 지구가                          헝클어진 시간을 빗으며                          혈루로 유서를 쓴다하오                            피부는 뜯기고 할키우고                          속은 들쑤셔 성한곳없소                          광란에다 도착증도 심한                          자식들 왕거미 만들었소                            유선암도 걸렸나 젖줄기                          끊기고 마르고 썩어들고                          배가죽이 찢기고 골수도                          병들어 간도 앓는가보네                            그래도 짓빨고 짓뭉개고                          파헤치고 무한정 강탈로                          앙상하게 뼈만남은 지구                          하늘도 저주하는 설운몸                            오염의 찌꺼기로 뒤덮힌                          자궁속 생명도 마르는데                          탐욕에 혈안이된 자식들                          자멸의 열쇠를 절렁대오                                  (98)  봄이 와야                                                                                          야 조                               봄은 상기 아니왔나                               봄이 와야 남산바람                               봄날 구름 몰아다가                               봄비 살살 내려주지                                 어매 봄이 몰래왔네                               산에 고운 아지랑이                               뒤산 붉은 진달래꽃                               고운 입술 열었잖아                               봄날 너와 단둘이서                               봄이 웃는 꽃동산에                               봄의 사랑 심어놓고                               봄빛 고운 노래할가                              (99) 허수네 아비야                                       야 조                              재등의 조밭머리에                         어느새 나와섰구려                         허수네 허수아비님                         넥타이 중절모차림                                              차림은 어방사한데                         아무도 아랑곳없어                         사정은 딱하지만도                         맨날을 한자리이니                                                   빈소매 펄럭이면서                         우우우 목청돋구어                         새떼를 쫓아야하지                         조이삭 다털리느니                           맨날을 요란떨어도                         허랑한 몸짓하나로                         구실을 하자는건가                         허수애비 많은 세상                            (100)   내게 시를 시로 다오                                         야 조                                 시는 짓는가?                               쓰는가? 짓든지,                               쓰든지 짜든지                               가슴에 화끈하게 닿아서                               마음속에                               속속 스며들고                               생각속에                               훌쩍 들어서는                               그런 시야,                               넌 어디있니?                                 간지러운듯                               느낌은 없고                               전달은 하는듯                               울림이 없고                               애매몽롱해                               잠꼬대같은                               시는 다가고                               내게는 참으로                               시다운 시를                               반갑게 주려무나
508    꽃과 녀인 댓글:  조회:4839  추천:0  2015-06-15
                                 꽃과 녀인      꽃시절, 화사하게 만발한 백화야말로 자연경관의 극치이며 미와 희망, 사랑의 대명사가 아니랴, 이렇듯 인간세계의 최고의 길상물인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가? 없을게다. 정말 그런 인간이 있다면 그는 마음이 굴속같이 어두운자가 아니면 차디찬 돌심장을 가진 악마일테니까.    영화로운 그 한철, 활짝 웃고 선 꽃송이에 마치 부르기라도한듯 고운 나비들이 날아와 련정을 흘리고 꿀벌이 붕ㅡ붕 꿀을 빚느라 화심을 파고들제 고운가슴 고스란 히 열어주는 꽃을 허랑하다고 해야 할가? 헌신적이라 해야 할가? 예로부터 탐화봉접이라 했다. 꽃이 아름다운것은 꽃의 잘못이 아니다. 방종하고 허랑한것은 이 꽃, 저 꽃 희롱하며 제멋에 겨운 나비들이다. 꽃은 대자연의 걸작으로서 자기의 자연미로써 생명의 빛을 발산하고 그렇게 존재의 리유를 현시할뿐이다. 그러나 꽃은 류달리 현란한 그만큼 단명하다. 조물주가 꽃에 미를 집대성화 하였지만 영원한 아름다움은 약속해 주지 않았다. 왜그랬을가? 아마 꽃으로 살다가 꽃으로 죽어가는 그 성결함속에 완전완미함을 지켜가라는 뜻이 아닌지…    물론 옛날 맹호연이《간밤에 비바람 몰아쳤으니/흩날린 꽃잎은 얼마나 되랴!》하고 애절하게 읊조린것처럼 때 아니게 덮쳐든 비바람에 지는 여린 꽃은 애달프기 그지없다. 그러나 철지나 스스로 지는 꽃잎을 지지말라고 말려낼수 없는 일, 우리는 꽃잎이 지는 현실을 참을수 없다면 열맥익은 가을을 기대하지 말아야 할것이다.    지는 꽃이 서러워 꽃무덤 지어놓고 하염없이 눈물짓던 림대옥의 마음이야 천고의 한이 되였겠지만 꽃을 스치던 나비의 꽃날개에 얹혀 꽃시절이 조용히 떠나갈 때 꽃 이파리가 속절없이 지는게 아니라 자연의 섭리에 좇아 모습을 바꾸는것이라고 생각하면 락화의 비애가 수천년을 내리 눈물로 씌여지지는 않았으련만…   《흐르는 물 무정해도 / 지는 꽃은 뜻이 있나니…》무정한 세월에 도전이나 하듯이 제한몸 소리없이 무너져내리며 푸른잎에 받들린 금빛열매의 꿈을 가지마다에 걸어놓고 생명찬가에 감탄부호를 찍는것이라고 여기면 너무 랑만적일가? 락화의 한으로가 아니라 알찬 열매를 맺는 지혜로 우리에게 생명철학을 가르치는 꽃은 얼마나 갸륵한가!새 생명의 잉태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꽃의 최후는 비장하고 위대하지 않으랴!꽃은 원인, 열매는 결과!이런 불후의 진리를 꽃은 수억년을 써내려왔으리라.    그런데 언젠가 스러지는 꽃을 두고 제딴에 애상에 잠겨 읊조려본적이 있다   《불고가는바람을 / 탓해서 무엇하랴 / 그래서 꽃은 한자리에 / 다소곳이 피고 // 꽃피고 지는 사연 / 알아서는 무엇하랴 / 바람은 그래서 / 오고감이 스스럽다 // 하지 만 멋모르는 새들은 / 스러지는 꽃을 두고 / 락화의 한을 / 바람에 묻는다 // 꽃과 바람 / 마음맞지 않는 / 불우한 련인이라고 / 누가 말하는가.》    이렇게 뇌까리노라니 바람새 세찬 세월 흩날리는 이 땅의 우리 배달겨레의《꽃》들이 떠올려진다. 자고로 녀인들을 꽃에 비유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노래에도《녀성은 꽃이라네. 생활의 꽃이라네…정다운 안해여, 누나여, 그대들 없다면 생활으 한자리가 비여있으리》하고 찬미하고있다. 누군가는 이 사회가 일단 녀성을 잃는다면 50% 의 진실한것, 60%의 선량한것,70%의 아름다운것을 잃는다고 하였다. 참으로 실감나는 론단이라 해야 하겠다.   그런데 녀인들이 정히 꽃의 숙명을 타고났다면 행운일가? 비애일가? 꽃의 아름다움을 가졌다는것은 행운이겠지만 십일무홍(十日无红)은 분명 비애가 아닐수 없다. 그리고 길섶의 작은 꽃들이 파리를 꿀벌로 잘못 볼수도 있듯이 아름다운 꽃들에 나비와 꿀벌만 날아드는게 아니라 파리도 날아와 앉는다는게 또 자연이기도 하다.   인간사회도 마찬가지다. 모든것이 상품화되고있는 특정된 시대에 녀성세계의 백화원에도 꽃바람만 산들거리는게 아니라 락화를 재촉하는 비바람도 세차게 불어친다. 꽃은 어떠한 비바람에도 무참하게 질수 있다. 한편 그 자신이 하나의 유혹이면서도 또한 자신이 무엇엔가 유혹당하기를 은근히 바라는게 꽃의 성질일지도 모른다.    꽃피는 봄이 왔다해서 모든 꽃이 피는것이 아니듯이 모든 녀인들이 다 성결하고 고귀한 꽃다운 삶을 사는게 아니다. 어떤 녀인들은 장미꽃같은 인생을 꽃피울수 있고 또 어떤 녀인들은《악의 꽃》이 되거나 독버섯이 되기도 한다.    인생사계절에서 청춘은 봄, 가장 랑만적인 꽃시절이다. 꽃같은 녀인들의 아름다움은 웅성세계를 정복하는 무기요, 자랑거리이며 일종의 재부이다. 젊음과 미모는 충분히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게 할수 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이 곧 참된 인생을 개척하는데 담보로 되는것은 아니다.  《정》과《욕》을 팔고사는 어지러운 바람속에 많은 녀인들의 순정의 등불이 꺼져버렸다. 이제 정조따위는 낡은 양말이나 벗어던지듯이 던져버리고《인육시장》에서 방탕한 삶을 도모하는 녀인들은 아름다운 꽃이 아니다. 이런 시점에서 꽃과 바람은 마음맞는 련인이라고 말할수 있으리라.    옛날에는 뒤골목에서 웃음을 팔고 몸을 파는 녀자들을 로류장화(路柳墙花)라고 하였지만 기실 그저 암컷일뿐 꽃은 아니였다. 현대파 로류장화들이 우리 배달녀인들속에 너무 많다. 노여워 마시라. 10년여년전에 벌써 수도권에서 몸파는 매춘녀가 몇천명을 넘었고 전국적으로 몇만명을 넘었다. 날로 흉용팽배하는 물욕의 소용돌이속에서 얼마나 많은《꽃》들이 더 휘말려들어갔는지 아무도 모른다.    력사적으로 다재다난했던 백의녀인들, 일제시대 간악한 왜군들의 성노예로 끌려간 수십만의 처녀들을 생각하면 피눈물이 쏟아질 일이지만 지금은 스스로 원해서 성봉사를 하니 얼마나 가소로운가, 새 사회에서 얼마든지 꽃다운 삶을 살수 있으련만 바람따라, 감각따라 끝까지 가려는 그녀들이 언젠가는 후회의 늪에서 발버둥치리라.    녀성은 행복의 꽃이라고도 한다. 대자연속의 꽃들은 알찬 열매를 기여함으로써 새 꽃떨기로 이 대지를 수놓아간다. 우리의 참된 녀인들도 생활의 꽃으로 피고지면서 행복의 열매를 맺는다. 이런 녀성이야말로 아름다운 꽃이며 생활의 단꿀을 제공하는 원천이다. 녀성은 아름답기에 사랑스러운것이 아니라 사랑스럽기에 아름다운것이 아니겠는가?    대자연의 꽃은 우선 피여야 열매를 맺는다. 이 세상의 모든 열매는 한때 자기의 꽃을 가지고있었다. 그러나 모든 꽃들이 다 열매를 맺는건 아니다. 인생마당에 꽃으로 태여나서 그렇듯 어엿하게 곱게곱게 피여 자기 생명의 빛발을 뿜어올리보지도 못하고 더러운 돈바람에 값없이 흩날리는 녀인들의 삶은 얼마나 슬프고 가긍한것인가,    꽃은 꽃마다 제나름으 매력과 향기를 가지고있다. 하지만 모든 아름다운 꽃이 다 향기를 풍기는건 아니다. 꽃중에 녀왕이라는 모란은 그렇듯 삐여나게 우아하지만 향기가 없다. 향기없는 꽃은 그저 눈을 즐겁게 할뿐이다. 이렇듯 꽃은 색채가 짙다해서 향기가 짙은게 아니다.오히려 순박하고 순결해 보이는 흰색의 꽃들이 더 그윽한 향기를 내재하고있다. 타고난 미모의 녀성이라해서 모두 훌륭한 녀인인것은 아니다. 홍안박명이라던가? 그녀들은 자기의 말없는 추천장을 내들고 멋진 삶을 시작하는것 같으나 결국 운명이 비참하다. 서시도, 양귀비도, 초선이도, 왕소군도,    꽃은 단명하다. 그러나 아쉬움대신 열매를 남기고 간다. 녀인들로 말하면 청춘은 화려한 꽃잎이다. 녀인들이여, 그대 만약 꽃이 되고싶다면 련꽃을 닮으라!맑고 깨끗한 련꽃은 아침에 가장 아름답게 핀다. 아침나절에 활짝 피지 못하면 한낮에도 끝끝내 만개하지 못한다. 녀인은 꽃!청춘은 꽃잎!인생의 아침꽃잎이다.    청춘의 꽃잎을 아끼시라.파리의 날개짓을 꿀벌의 꿀빚는 모습으로 착각하지 마시라. 스스로 청춘의 꽃잎을 허타이 날리지 말고 달콤한 열매를 맺는 진정한 행복의 꽃이 되시라                             2003년 7월 10일  
507    산행 댓글:  조회:6155  추천:1  2015-06-15
                                          산 행      군자는 대로행이라지만 나는 무덕자ㅡ소인이여서인지 산행이 늘 좋더라. 가을 산길은 불붙는 단풍에 내 마음도 불타서 좋고 겨울 산길은 숫눈길우에 나만의 하얀발자국을 찍어서 좋고…그래서 아무리 외로와도 말없이 오르게 된고 아무리 멀어도 혼자만 걷고싶다.   《곱게 핀 함박꽃 반겨웃는 산기슭에 / 안개타고 내렸나 숲속에 숨었나 / 산열매 무르익는 오솔길은 걷기도 좋아…》라는 명가사의 랑만에 취해서라기보다 옛날 조선의 리인로할아버지가《지팽이 짚고 청학동 찾아드니 / 숲속에서 원숭이만 처량히 운다.》고 읊었듯이 클클하도록 감상적인 기분에 젖어들고싶은 내 집착이다.    골깊은 산길은 비탈지고 한산하고 적막하다. 안내하는이도 없다. 꿈속에서처럼 어데론가 뻗어간 산길따라 무작정 걷다가 지쳐서 돌아서더라도 그냥 걷고싶은 산행이다. 이 길엔 넘어져도 거들어줄 사람도 없다. 만고풍상에 시달린 로송이 긴 팔을 드리우고 선 그아래 천년고독이 굳어져버린 청석우에 앉아 땀을 들이노라면 산새우는 소리에 가슴이 따갑다. 마음이 쩌릿해진다. 상념도 무거워진다.    산새는 왜 자꾸 저렇게 울가? 산이 좋아 산에 사는 산새련만 산의 고독을 우는 새, 고향을 잃고 헤매다가 쓰러진 어느 한많은 나그네의 원혼일가?《산새도 오리나무우에서 운다 / 산새는 왜 우노? 시메산골 / 령넘어 갈랴고 그래서 울지//…불귀불귀 다시 불귀 / 삼수갑산에 다시 불귀!…》하고 읊은 소월님도 이런 산길을 걸으며 피맺힌 정한을 쏟았을가?    시골서 훈장질할 때에는 이래저래 산길을 많이도 걸었다. 산열매도 따고 버섯도 캐고…산을 내리는 황혼의 산풍경은 어찌 그리 감명깊던지…무심코 머리를 들면 구름을 불태우는 석양이 슬프도록 아름다왔다. 그윽하고 청정한 산속, 일부분의 세계를 내버림으로써 근심걱정없이 옹근 세계를 향수한다는 덕망높은 은사들의 삶의 취향이 이런 정경에서 기인되는것일가? 세상살이에 구겨진 시골훈장의 마음같은건 알것없다는듯 제멋에 피여 고즈넉한 청산을 수놓은 나리꽃, 도라지꽃, 함박꽃의 청초함은 무수한 감동을 찍어준다.    산행의 의미는 명산에 오르는 멋에 있는것이 아니라 산행 그자체에 있다. 깊은 전설이 깃들어있다는 그 한가지 리유때문에 몇번이고 올랐던 두만강기슭의 한왕산이 새삼스럽게 떠오른다. 허위허위 산정에 올라보면 무너진 성벽에 제왕의 꿈이 푸른 이끼로 말라있고 청풍만 소슬하여 살아있음을 확인하는듯 내 옷자락을 잡아끈다.    술한잔 부어서 산신령께드리고 세월과 더불어 가버린 영웅들을 그리며 두만강을 굽어보면 물결을 출렁이며 세상에 얽힌 번거로움을 씻어버리라고, 부담을 잊은 여유로운 삶을 살라고 속삭인다.    그렇다, 산길을 걸으면 마음이 한결 담담해지고 삶의 의미를 다시 씹어보게 된다. 붐비는 인파속, 경쟁의 팔굽에 떠밀리고 자신도 남을 떠밀어야 하는 인생마당에서 홀로라면 소외당한듯 고독과 불안이 뒤따를수도 있지만 개체생명의 독존이라는 의미에서 잠시나마 자기를 찾을수 있다.    산행같은 자기만의 인생의 오솔길을 걸어갈 때 자유공간은 보다 넓어질것이고 누구누구에 대비해 욕망을 팽창시킬 필요도 없고 승벽심 달구어가며 쫓기듯 허위적거려야 하는 위김감을 아니 가져도 좋을것이다. 남의 눈치를 보아가며 이른바 일치성을 도모할 일도 없고 허영심에 공연한 어깨힘 살려야 하는 거짓도 소용없다.    돌이키면 나의 산행집착은 서러움도 많던 동년의 그 산자락에서 기원되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숙명적으로 사회의《못생긴 새끼오리》였으니까, 고독은 반평생 내 충실한 친구였다. 모두가《우리는 큰길로 걸어가네》를 부르며 대활보하던 그《격정시대》에는 더구나 그랬다. 붐비며 떠들썩 사는 세상에서 소외당하는 아픔이 어떤것인가는 인생의 넓은 길에서만 활개친 사람은 모른다.    하루밤 울어보지 못한 사람은 인생의 반쪽만 쳐다보며 살아가듯이, 그러나 나는 주어진 운명대로 생활의 뒤골짜기에서 묘연한 희망의 비탈길을 끈덕지게 톺아올랐다. 세상엔 끝까지 울퉁불퉁한 길이란 없는법, 그리고 길은 걷는자에게 정복되는법, 안생 의 저곡에도 나아갈 길은 있었다. 행운이 나에게 동정의 손길을 내밀었는지 아무튼 후반생은 나도 생활의 큰길로 모두와 함께 걷는다.    하지만 나는 의연히 고독한 인생의 산길에 집념을 달린다. 그게 내게는 마음편하다. 서로들 깎아내리며 자기를 내세우는 안스러움이 없어 제격이다. 모두가 한결같이 한방향으로 내뛰면 일등은 언제나 하나밖에 없다. 그게 심통이 나서가 아니다. 사면팔방으로 제가끔 내뛰면 앞설수도 있다. 그런 일등이 욕심나서가 아니다. 늘쩔늘쩍 걷더라도 자기만의 공간에서 자신을 찾고 또 지켜간다는 의미에서《산행》은 또 다른 삶의 한가지 방식이 아닐가?    홀로걷는 산행에는 떠들썩한 축복소리도 없고 영예의 꽃다발도 없다.그러나 혼자 느껴보는 해돋이, 석양이 있고 분발심과 오연함이 있어서 좋다. 그래서 산행에 나서면 노상 떠오른 시구가 있다.  《꿈이 익는 가을 산속 / 락엽도 푸르던 그 시절의 해묵은 이야기 쌓여있는데 / 나홀로 어느길로 갈가 / 갈라진 오솔길에 바장이다 / …욕망은 두 길우에 날아예건만  /동시에 걸을수 없는데 / 지친 내 발길은 / 곤혹에 발목잡혀 / 여길가 저길가 바장이다 / 금빛 깔린 저 길은 / 누군가의 발자취 찍혀있으리니 / 뭇짐승 헤매던 /험한 저 숲길에 내 발자국 찍을가부다…》                       2003년 6월 15일  
506    아이러니 유머러스 댓글:  조회:5500  추천:0  2015-06-15
                              아이러니 유머러스      제딴엔 제일 멋지고 안성맞춤인 제목이라고 써놓고보니 영어도 잘 모르면서 갖잖 게 외래어로 멋을 부린것 같아서 혀를 깨문듯 찜찜한 기분이나 독자들이여, 부디 나무람 마시라. 결코 희떠운 제새를 부리자는것이 아니라 글의 내용에 얽매이다보니 그렇게 되였으니, 정안되겠으면 필자자신의 유머러스로 웃고넘겨주라.    기실 아이러니란 별게 아니고 우리 말에 풍자, 반어에 해당되는 말이고 유머러스란 다 아시는 유모아로서 역시 익살, 해학, 풍자의 의미가 곁들어있을뿐이다. 한즉 한마디로 이중적풍자의 의미로 선택한 제목이 되겠다.    유모아는 사람들을 웃긴다. 유모아가 왜 우스운가? 다른 기타 요소가 있겠지만 주로는 그것이 상규적인데서 벗어나 어딘가 뒤틀어져있기때문이다. 이런 유모아는 경우에 따라 즉흥적으로 튀여나오는 일반 유모아와 달리 만들어내는것이 아니라 지혜의 잉여, 사상의 번뜩이는 섬광이다. 말하자면 모종의 사회페단이나 인간의 렬근성 등에서 기인된 비틀린 정서에서 한걸음 물러나 랭철한 안목으로 직시하기에 참지 못할 쓰디쓴 웃음의 소재가 착안되는것이다. 물론 이런 유모아는 류달리 강한 배짱과 대바른 성품을 가진 지성인에게서만 가능하다.    웃음이 때로 반항의 표시가 되듯이 유모아도 반항적인바 굽어들줄 모르는 정신의 산아인 인류의 유모아는 사회성을 띠게 되고 력사적인것으로 된다.그러기에 모자를 기우뚱 제껴쓰며 한바탕 웃고나서 곧 잊어버리는 휘파람같은 유모아와 달리 비극성적이며 또 희극성적으로 인간사회의 허위와 비리를 조소, 질타하며 인간의 그 모든 고난과 비애를 웃음의 연기로 타래쳐오르게 한다.   《돈끼호떼》를 낳은 쎄르반떼스의 유모아,《죽은 넋》을 낳은 고골리의 유모아,《카멜레온》을 낳은 체호브의 유모아,《아Q정전》을 낳은 로신의 유모아, 그리고 오헨리, 몰리에르, 챠플린 등 모든 문호, 유모아대사들의 걸작들이 전범으로 된다. 그러나 그들은 유모아대사이기전에 온몸이 눈물에 젖은 선지선각자들이였다. 그들의 유모아가 세인을 포복절도하게 하면서 나중엔 눈물어린 사색을 안겨주는것은 그들 자신에게 보통인이 도저히 미칠수 없는 심각한 고통이 있었기때문이다. 하기에 이런 유모아대사들의 날카로운 필봉은 사회의 암흑면과 일체 권위의 허위적껍데기를 한겹 한겹 벗겨보일수 있었으며 바로 그래서 모든 추악한것을 불사른 불길이기도 하였다.    눈물머금게 되는 그런 유모아시대는 영영 지나갔는지는 몰라도 우리 이 시대에도 로신같은 유모아대사가 의연히 수요된다.우리의 현실생활에 웃지도 울지도 못할 유모아소재가 많고도 많기때문이다. 필자는 여기서 그것을 중국식아이러니 유머러스로 이름짓는다.    례를 들어보자.《햄버거》란것이 우리 주위에 처음 나왔을 때 잘사는 집의 귀공자들이 행세거리로 자랑삼아 먹었지만 서방나라들에서는 고속도로로 운행하는 자동차운전수들이나 로임계층에서 아무때나먹을수 있는 편의음식이다. 그저 외제이면 다 고급적이고 귀족적인것일거라는 맹목적인 가치관념이 낳은 기형이라할가,    한시기 골목골목에 일종의 풍경으로 되였던 당구치기도 마찬가지이다. 원래 당구는 외국에서 연미복입은 시사들이 삼팡을 마시면서 심심풀이하는 사치한 놀음인데 우리 여기서는 할 일이 없이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2원을 내고 한판치는 눅거리도박수단으로 되였다.    지금은 중소학교의 소년소녀들이나 휴대하는 BP기가 한창 류행되던 그때는 값도 엄청나서 신분을 과시하는 패물로 되였는데 그때 발달된 국가들에서는 언녕 젓소들의 뿔에 달아주어 젖짤시간을 알려주는 통신도구였다. 한창 류행되였던 청바지도 원래는 미국서부지구의 양키들이 말을 타는데 편리하고 질기여서 선호한 로동복일따름인데 여기서는 멋쟁이 신사숙녀들이 비싼 행세복이 되였다.   수림이 깊으면 별의별 새가 다있다고 중국에는 희한한 아이러니도 많다. 소학교졸업생이 거부가 되고 중학교졸업생이 날품팔이에 나서고 대학교졸업생이 취직등기표를 쓰기에 분망하다. 소학교도 채 다니지 않은 벼락갑부가 무슨 문학상을 설치하여 심리평형의 낚시를 작가들에게 던졌고 초중도 졸업못한 사람들이 석사증을 만들어 돈벌이한다. 가짜상품이 너무 많아서 세상에 어머니를 제외하고 죄다 가짜라는 판이고 가짜연구생은 자꾸자꾸 쏟아져 나오지만 진정한 학자는 날로 줄어만간다.    거실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넓지만 도시인의 흉금과 아량은 반비례로 좁아지고 있다. 거실에 대한 요구는 갈수록 넓지만 도시인의 흉금과 아량은 반비례로 좁아지고있다. 사람들의 돈주머니사정은 좋아지고 있지만 국민들의 머리는 빈곤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있다. 그리고 또…    이 모든 아이러니 유머러스는 쓴웃음이라도 자아내지만 웃지도 울지도 못한것들 이 많아서 념려된다. 례하면 우리 나라에서는 어디에 자연경관이 발견되면 개발과 더불어 생태환경을 파괴하는것이 문제시된다. 공장과 기업소들에서《주인공》들은 일터마저 지킬수 없으나《공복》들은 돈벌이에 재미를 보고있다. 교육계에서는《자격미달》의 제1선교원은 많지만《불합격》령도자는 아예 없다. 탐오수뢰분자가 반탐오국장이 된 경우가 푸술하고 법맹이 법원원장으로 된 웃음거리도 있었다. 나쁜일을 한 사람일수록 덕과 사회질서에 대해 누구보다 요란하게 웅변을 토한다. 허풍을 잘 치는 사람일수록 그의 앞길에 청운의 첩경이 펼쳐지고있다.    이런 비정상의 사회기후, 인문환경에서 아이러니 유머러스가 생성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보다 밝고 문명한 현대사회에서 상술한 아이러니 유머러스가 나타나 는것은 또한 시대의 착오, 불행이 아닐수 없다.    산물은 맞불을 놓는 방법으로 끄기도 한다. 비리한 아이러니 유머러스는 역시 풍자, 유모아로 타매해야 한다. 비록 유모아에 제한된 무기력이 고유하지만 그래도 로신식유모아가 기대되는바이다.                           2002년 8월 23일     
505    흘러가느니 이같을진저 댓글:  조회:4757  추천:0  2015-06-15
                      흘러가느니 이같을진저          공자 내가에 이르러《흘러가느니 이 같을진저…》라고 하였다던가. 불세출의 공성인께서 류수의 막무가내한 귀일(归一)을 두고 어떤 섭리를 깨치셨는지 아니면 류수같은 불귀(不归)의 인생이 속저없음을 깊이 개탄하셨는지?  《론어. 옹야》에《지혜로운자 물을 즐기고 어진자 산을 즐기니라.》하였다면 조금은 어페가 있는듯싶다. 청산도 절로절로, 록수도 절로절로, 산수간에 나서자라 절로절로 늙어가는 인생인데 범부속자(凡夫俗子)인들 이 강산 락화류수 흐르는 물에 무심할수 있으며 꽃잎지여 떠내리는 락화의 한을 애달파하지 않으랴!    내 본디 어진 성품은 타고나지 못하였으되 세상에 넘치는 인간악이 미운줄은 알아서 반목도, 협잡도, 권모술수도 없는 무주공간에 활개치며 그 청정함을 좋아하게 되였다. 후에 도회지문명의 혜택속에 살면서부터 차차 심령에 기름때 오르고 보이는 곳 탁류마다가 주접스러워 저도 모르게 부정에 젖게 되자 더구나 청산록수를 그리워하게 되였다. 물론 예전에 비해 훨씬 지혜로워졌다거나 어질어빠진 군자가 되였다는것은 아니다. 인생경험이 나이에서 쌓이는것이 아니요. 지혜를 낞는것도 백발이 아님에랴.    이제 사무한신(事无闲身)이 된 인생의 막바지에 허수함과 회의만 갈마들어서인지《죽장망혜(竹杖芒鞋)로 청산을 찾아 즐기는 날은 시든 내 삶의 뒤뜨락에 무지개 서는날이다. 물이 하도 맑아서 가재가 나와 하늘을 구경하고 해뱇이 들어가 모래알을 헤는 그 속에 두발을 잠그고 하염없이 청산을 바라보노라면 오장륙부가 말끔히 가셔지듯, 시린 가슴에 서정도 각별하여 제사 마치 청운거사(青云居士)가 된듯하다.    때에《청산은 내 뜻이요, 록수는 님의 정이…》하는 소리가 싱겁게 새여나오는데 물은 그새에도 어서가자고 따라오라고 지절거리며 앞서거니 뒤쫓거니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그 설쳐대는 꼴이 하도 야속하고 얄망궂어서 속으로 꾸짖는다.  《록수야, 잠간 멈추지 못하겠느냐?무슨 사연 그리도 급해서 다시 못올 길을 밤낮으로 서둘러대느냐? 그 누가 부르는듯 흘러와도 흘러가도 뒤한번 돌아보지 아니하고 흘러도 련달아 흐르는거냐? 오냐, 산이 싫어서가 아니라 바다가 좋아서라고, 그래도 청산을 못잊어 울어예며 간다고 발명하지 말아. 지심에서 솟아올라 떠나자고 마음먹은 너를 내사 막을 힘도 없거니와 이 세상에 흘러가는것 너뿐이 아닌데야 너만 탓할 까닭도 없겠지라.》    이렇게 혼자 물을 타매하고나서 머리를 드니 저 하늘가에 바람이 숨어버린 별무리를 스쳐흐르고 바람따라 가노라고 구름도 정처없이 흐른다.천년전의 시간도 저렇게 흐른건 아닌지…이 땅에도 보이던것, 보이지 않던것 다 흘러갔다. 창생의 사랑을 받다가 죽어간 충혼도, 만민의 저주를 받다가 죽어간 넋도 연기처럼 사라졌다. 오는 래일은 죽음을 당겨오는데 래일을 찾아가라는 희망이란 놈의 그 엄청난 거짓말때문에 인간은 래일에로 줄달음쳐갔던가?    아아, 참으로 무정세월 약류파(若流波)인것을 내 젊어서 알았던가, 세월따라 아득히 굽이쳐간 려로의 장하에 비낀 시비와 성패, 공과 죄를 뉘라서 헤아릴손가, 내앞에 장강의 도도한 흐름은 없어도 탁주한병 앞에 놓고 고금의 많은 이야기를 웃음속에 부치고싶건만 그럴 흉금이 내게 없고 허심탄회할 벗도 없으니 부질없는 상념만 잔물결에 띄워본다.    갈래갈래 실개천 모이고 합치여 강하를 이루면 흉용팽배하는 급류로 협곡을 뚫고지나면서 절승경개도 명승고적도 아랑곳없이 갈길만 재촉하는 류수, 무변광야를 복된 생명수로 누비며 잔잔히 흐르다가도 바람이 일고 구름이 뒤번지면 격랑을 솟구치는 너의 분노와 파괴의 연유를 인류는 해석하지 못한다. 그러나 너는 확실히 력동적이고 매력적인 대자연의 우렁찬 악장임에는 틀림없다. 비록 차고 더움과 크고작은 구별이 있겠지만 류수는 어데서나 류수요, 세류이든 급류이든 청류이든 탁류이든 너는 무정한 류체이다. 허지만 청산을 고별할 때까지는 수줍은 순정 그대로였건만 인류의 문명권내에 들어서면 가두어지고 소모되고 나중에 탁류로 전락하고 마는것은 너의 비애냐?우리 령장들의 비애냐? 내 좁은 가슴에 대하는 흐를수 없고 실개천만 조잘거리니 너의 그 사연 다 알바없구나.    류수야!네 아름다운 의지대로 흘러흘러라. 외곬으로만 흐르던 내 상념 곁길로 빠져흐르는구나. 너는 아느냐? 모르느냐? 이 세상엔 네 흐름보다 더 불가항력적이여서 그 어떤 전제주의자도 말려내지 못하는 호한한 흐름이 있단다. 그게 무어냐고? 흘러들어도 흘러들어도 끝끝내 다 메우지 못한 저 바다보다 더 큰 욕망의 바다에로 쏟아져 흐르는 인심의 류향이란다. 너는 높은데서 낮은데로 흐르지만 인심은 높은데서 높은데로 흐르거니 네어이 비길소냐? 이 골물 저 골물 합수하여 주절주절 흘러가는 인심의 격류에 이 골령 저 골령의 마을과 마을이 흘러가는것은 참으로 슬픈 흐름이 아닐수 없다.    그 옛날 망국의 설음을 짓씹으며 흰옷의 서러운 사람들이 여기로 흘러들었다. 끈덕진 생명의욕으로 무딘괭이를 휘둘러 화전일구고 땀으로 걸구어 피로써 지켜낸 복된 고향이 이 골 저 골에 있었더란다. 영영 다시 못가고만 향수의 눈물머금고 눈을 감은 할배, 할매들의 고달픈 넋들은 저 북망산기슭에 세기적 꿈을 묻었건만 지금 그 후손들이 다시 제 살길을 찾아 흘러나갔다.    반갑기만 하던 시골의 서정도 도시의 가면구 쓴 얼굴앞에선 너무 무색해졌던가, 높은 저 고개너머엔 유혹의 세계가 눈부시고 뛰여들지 않고서는 못견딜 욕망의 바다 출렁이거니 류수야, 너도 보았지, 청수동의 처녀들도, 강역마을 새각시들도 그 누가 불러낸듯 다 흘러나가고 왕거미줄을 치는 집들만 늘어갔다. 다만 보이느니 힘없는 할머님네와 장가못서 열통이 뒤번진 로총각대군들의 애꿎은 담배연기만 허물어져가는 울바자굽을 맴돈다.    청계천에 오구작작 물장구치던 개구쟁이 하나도 보이지 않고 글소리도 정답던 학교들이 하나하나 문을 닫았다. 뻐스가 통하는 남산고개길에 외로운 할미꽃처럼 등을 꼬부린 할머니들이 이마에 손을 얹고 멀리 가버린 손녀를 기다리고 선 그모습 눈물겨웁더라.    마을마다에 슴배인 가난과 락망이 홍혼에 조으는데다 흘러가과마는 조상들의 삶터를 이제 지켜갈자가 누구냐? 전통은 유구한것, 전통이 유구할수록 관성도 커지는법이라고 자타를 위안하랴, 강물을 메울수 없듯이 전통은 베버릴수 없다고 마른 선동을 하랴, 낡은 전통이 모든 새로운 사회형식가운데 침전되여 떠내리고 격변기의 인심의 류동은 필연적이라고 아예 체념해버랴야 하나《산이 높고 물이 막혀 갈길이 없는가 하였더니 / 버들방천 만말한 꽃밭을 지나니 또 한 마을이 나타났네.》를 기대하기는 영원히 그런것 같구나.    내 본디 세상물정에 밝지 못한데다가 세속에 잘 어울리지 못하여 경세지언 같은 미문은 지어내지 못하고 다만 얼마간 하잘것없는 글이나 지어서 답답한 제 마음이나 위로할뿐이라 이 모든것 앞에서 망연하기만하다. 다행히 타고난 고지식한 성미대로 별로 기피하는것이 없이 보는대로 듣는대로 직언하기 꺼려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아, 맑고맑은 고향의 강이여,》라거나《눈물젖어 그려보는 내고향 산골…》하는 식의 우직한 문자유희를 해놓고는 뒤늦게야 사리를 어겼음을 깨닫고 얼굴 붉힌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다. 오늘 언감생심《흘러가느니 이 같을진저…》에 덧없는 사색을 얹어보는것도 제 혀를 깨물기식이 아닐지…찬물에 젖은 두발 이제 어디로 옮겨가야 하나?…  
504    사향별곡 댓글:  조회:5858  추천:0  2015-06-15
                                   사향별곡      사랑과 죽음이 문학의 영원한 주제라면 고향떠나 세월없이 떠도는 수많은 가슴들 에 피맺히도록 무시로 엉켜도는 향수는 인생극의 영원한 주제가 아닐지…                   짐승은 모르나니 고향이나마                   사람은 못잊을것 고향입니다.                   생시에는 생각도 아니하던것                   잠들면 어느덧 고향입니다.      가끔씪 혼자소리로 읊조려보면 가슴이 뭉클하도록 진한 감동이 묻어나오는 소월님의 명시이다. 그렇지 않으랴!타향천리 해저무는 차창가에 어스름이 스며들 때나 달이 휘영청 밝아서 잠못이루는 밤, 차거운 베개가에 꿈도 고달플 때 나그네의 가슴이 짜릿하도록 갈마드는 향수야말로 형언할길 없는것이여늘,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력대의 명시인들이 그처럼 많은 불후의 사향가를 우리에게 남겨주고 갔겠는가?    이 지구촌에 사는 그 모든 종족들이 다 자기 향토에 대한 정이 지극하겠지만 현대 우리 배달민족만큼《나의 살던 고향》에 대한 집념이 강한 민족은 드물것이다. 실로 지난세기 10년대 간악한 일제놈들의 철제하에 망국노가 되여 나라잃은 설음을 짓씹으며 살길찾아 천애지각에 흩어져야 했던 우리 조상들의 향수의 정이야말로 력사적비극의 심각성을 띠지 않을수 없게 되였다. 따라서 그 사향의 정에 고유한 비애는 민족우환의식을 강화하게 되였는바 말 그대로 수난민족의 비가였다.     《…두만강을 건넜을 때 / 앞을 가린 눈물에도 / 반드시 / 내 나라를 / 찾겠다 맹세하였소.》이렇게 피터지게 입술을 깨물던 절치부심ㅡ그것이였다.    남부녀대하고 피눈물을 휘뿌리며 두만강을 건너 살벌한 만주벌 거친 풀숲에 괴나리보짐을 풀어놓고 부대일구며 새 삶터를 개쳑해야 했던 수십만의 흰옷 입은 실향민, 그렇게 어렵게 살아가는 나날, 꿈속에서도 고향이 그리워 죽어서라도 고향에 묻히고싶다는 소망으로 힘입어 끈질기기도 했던 우리 조상들, 하지만 대다수가 끝내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이 땅에 묻힌 불귀객이 되였으니 눈감고 황천 갈 때 그 망향이야말로 구곡간장에 한으로 서렸으리라.    사람은 궁핍하게 되면 본원에로 환원하게 되고 처지가 가장 여의롭지 못할 때 향수도 가장 절절해진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의 사향은 그런 일반적인 생명개체 정서의 공리적추구와 분출같은 심리차원에 맴도는것이 아니였고 전통적리성의력사적 섬광만도 아니였다. 비참한 생활에서의 그 본원적인 공간지향ㅡ귀향의 숙망은 일종 심리우환을 덜어내는 경로로 충당된것도 아니였다. 그것은 바로 빼앗긴 내 나라, 내 고향을 찾아야 한다는 국국항쟁의 군체응집력이였다.    그토록 향토의식이 골수에 박혔던 실향민의 후예들인 우리가 지난세기말에 이르러서 제2차인구대류동의 격류를 일으켰다. 제3,4세대들이 리향은 조상들의 실향과 결과적으로 같은것이라 할수 있으나 생활의 핍박과 자발적이라는 엄연히 다른 본질적 차이가 있다. 그때의 우리 조상들에게는 자기의 때묻은 고향을 지키느냐 내버리느냐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지만 우리 현세대들에게는 자유적선택기제가 충분히 주어졌 기에 물은 낮은데로 흐르고 사람은 높은데로 향한다는 속담처럼 자기의 가치취향에 따라 서슴없이 정든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생존환경개척에 나섰다. 하여 근 한세기를 내려 줄기차게 땀으로 걸구어왔고 피흘려 지켜온 배달족의 마음이 흔들리고있다. 백년 뿌리내린 옹근 민족사회가 밑으로부터 뒤흔들리고있다.    월강민의 후손들이 다시 리향민 지어는 월경민의 대오를 짓게 된 이런 사회현상을 력사발전의 불가피적인 추세라 한다면 아무도 가타부타 할수 없고 더구나 막아낼수는 없다. 그러나 정착의식의 가변운 포기는 락관할바 못되며 우리 민족발전행정의 경사는 더구나 아니다. 누군가는 조상들이 물려준 고향이 아무리 소중할지라도 실질적인 부(富)를 줄수 없을 때 주저없이 버려야 한다고 삶의 질적개변은 도시진출에 있으니《촌놈》의 모자를 팽겨치라고 선동하였지만 그게 다 소시민적, 근공리적인 타산에서부터 출발한 추구이지 민족군체리익을 도모하는 원견은 아니다.    고향에서 쫓긴듯이 떠난 사정이라면 떠날 때 뒤한번 돌아보지 않고 다시는 발길을 안돌린다고 마음먹지만 가슴의 깊은 골방에서는 누구보다 향수가 끓으리라. 그리고 마음의 옹이 풀리고 풋풋한 여유가 생겼을 때 옛정은 봄풀처럼 파랗게 살아날것이다. 내사 자신이 속절없고 미워져서 스스로를 위안하려고 다시 소월님의 사향시를 되새겨 볼뿐이다.                                                 고향이 마음속에 있습니까?                         내 마음속에 고향이 있습니다.                                                                       제넋이 고향에 있습니까?                         고향에도 제넋이 있습니다.                               2001년 3월 23일
503    (느낌에 생각이 따라 91-95)어데도 안정은 없다 (외 4수) 댓글:  조회:6520  추천:0  2015-06-14
                     (91)  민들레만가                                   야 조                                             민들레야 쓴맛으로 좋거니와                         꽃은 청순해서 사랑스럽더라                            화사해야 향기로운 꽃이던가                               사랑스러워 아름다운 꽃이여                        저만의 공간에서 생명가불러                         자기만의 권리로 피고지나니                            홀로피여 내둑에 노란외로움                                                     그래서 슬픈사랑 눈물겹더라                        그몹쓸 돈바람 불기전까지는                         시골이라 곳곳의 벌방들에도                             청순한 민들레꽃 향기롭더니                               지금은 눈물젖은 추억뿐일세                                 (92)   무지개추억                                           야 조                                      남산에                                          무지개 잡는다고                                                천방지축 쫓아가던 옛날                                    철없던                                          시절은 어이 색바램없는                                                일곱빛                                                   아롱다롱한 무지개빛일가?                                      소낙비                                          한바탕 죽탕치면                                                못견디게 끌리던 무지개                                     지금은                                           그마저 자주보기 어렵네                                                 인생은                                                       무지개라고 노래하더라만                                              (93) 어데도 안정은 없다                                                         야 조                                               리욕이 디스코를 추고                                                   향락이 강남스탈 되여                                                         어데도 안정은 없더라                                                깊은 골령의 험한봉에                                                    아아한 산정에도 없다                                                          심령의 안식을 찾지마                                                 인간의 발길 닿는곳엔                                                     새들도 둥지털려 없고                                                           바람도 잠들수 없더라                                                 사느니 인간의 삶이란                                                     뺏지않고 짓밟지 않고                                                           못사는 괴물이 되였다                                              (94) 피바람에 피가 내린다                                                            야 조                                                                                      바람이 분다                                                              지구촌 곳곳에                                                        계절풍 아니라                                                              피바람 분다                                                           비가 아니다                                                              총포성 곳곳에                                                        혈해 흐른다                                                              광란의 살륙전                                                          비내려 강물붓고                                                              바다가 되지만                                                        피가 모인 피바다                                                              살인마가 웃는구나                                                                    95)     그러면 얼마나 좋으련                                                                    야 조                                                                 소경은                                                                  세상은 원래                                                                     꼴불견 없는                                                                        락원같다 여길거                                                                  귀멀면                                                                   그냥 세상이                                                                      화기애애하니                                                                         복락원같다 할거                                                                    벙어린                                                                    속창 터져도                                                                       구설수 몰라                                                                          마음이 상할리야                                                                   욕심이                                                                    없는 마음은                                                                       세상을 다가진듯                                                                          만복이 넘칠거이                                                 
502    밤길을 걷다 댓글:  조회:6225  추천:0  2015-06-08
                                   밤길을 걷다.                                         최 균 선      교통이 불편하기로 말이 아니던 그 시절을 겪어본 사람들치고 한번도 밤길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것이요 먼먼 밤길을 걸으면서 다리뼈가 맏아들이라는 속담의 뜻을 몸으로 터득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을게다. 그러나 밤길에도 산속의 밤길, 가랑잎에 쪽잠도 그립도록 밤새워 밤길을 재우쳐본 경험은 참으로 각별할것이다. 칠십고래희를 바라보는 나도 멀고 험난한 밤길을 지치도록 걸어본 체험이 있다.    스므살 잡던 그해였다. 초겨울, 목재소 두마리를 몰고 화집령을 넘고 고동하를 지나 목재판으로 들어갔다. 사흘째 되던날 고동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산판을 향해 길을 재우쳤다. 고동하 림장지휘소 서북쪽으로 뻗은 옛날 소철길을 따라 70리쯤 가면 우리 공사의 산판이 나진다고 해서 황소걸음을 채질하며 걸었지만 길은 축나지 않고 어느덧 날이 어두워졌다. 몇십리나 걸었는지 가고가도 산판에 등불은 보이지 않고 어둠만이 천고의 밀림을 무겁게 휩싸고있었다.    안내할 이도 없었고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가다가는 서고 주밋거리다가 다시 걷노라니 흐릿한 밤하늘인지라 남쪽도 알수 없고 북쪽도 알수 없고 몇리나 남았는지도 알수 없는 외가닥길만 숨박곡질하듯 어둠속에 숨어버리였다. 그냥 갈가? 그래도 한걸음 더 나아가지도 못하고 돌아서지도 못했다. 무시무시한 밀림의 밤, 그 고요와 적막함과 으스스 등곬을 파고내리는 공포의 전률은 나서 처음이였다.    그런대로 힘센 둥글이만 믿고 불안한 걸음을 재촉하는데 멀리 수림사이로 한오리 불빛이 새여나와 내눈에 닿았다. 천만다행이라 안도의 한숨을 쥐여짜면서도 시름은 여전히 바장거리였다. 고요하면 두려움이 있고 두려움이 있으면 더구나 적막한 법이라. 조심스러운 움직임속에 고요가 뒤따라서고 어둠속에서 움직이며 움직이는것으로 희망의 등불을 부르며 허둥지둥 앞으로 걸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말라고 하였지만 누군가 걸어서 길이 생겼거늘 막다른 골목에야 이르랴싶었다. 길을 알지못하여 길이 헛갈렸지만 그런줄도 모르고 발길이 시키는대로 소궁둥이에 희망을 얹고 마음이 앞서달렸다. 절망하지 않으면 다른 골령에 들어섰더라도 다시 돌아나오면 될것이다. 마침내 무주공산에서 기진맥진해 쓰러지지 않고 목재군들의 장막이 웅기중기 들어선 개활지에 이르렀다. 숨이 활 풀리였다.    그런데 이런 맹랑한 일이라구야. 그곳은 지신공사의 산판이였다. 십여리 골안을 헛탕친것이였다. 그러나 빈궁이 독판치는 그 시대였어도 인정은 푸근했다. 앳된 청년이 겁도없이 허둥댄것이 안쓰러웠던지 시래기국에 밥을 말아주던 식당아줌마가 그렇게 고마울수 없었고 새 날이 밝으면 가라고 극진하게 말리는 인부들의 풋풋한 인정도 가슴뜨겁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약정된 오늘 도착하지 못하여 공연히 야단칠 어른들의 얼굴들이 떠올라서 더 앉아뭉갤수가 없었다.    골안을 빠져나가 서쪽골안으로 한 15리 들어가면 광신공사 목재판이 나진다고 하기에 용기를 내여 떠났다. 인제 방향이 서고 목적지가 정해져서 무서움도 멀찍이 물러섰다. 소고삐를 허리에 매고 련이어 말아문 담배불로 어둠을 쫓으며 그렇게 걷고 또 걸었다, 산짐승도 잠든시간, 별빛을 빌어 걷는 길은 인생길이 어떠한가를 암시하는듯 싶었다. 산속의 길은 언제나 적막을 깔고 누워있다. 캄캄한 산속의 밤길도 외롭지 않을수 있었던것은 밭갈고 씨뿌리며 정들었던 체대가 덜썩 큰 검정소와 얼룩배기때문이였으리라. 그리고 두려움속에서 주저앉지 않고 내처 걸으면 귀속을 찾을수 있다는것을 밀림의 밤길이 일깨워준듯 싶었다    마침내 허위단심 우리 우리공사의 산판에 이르렀을 때는 한밤중이였다. 흰자위가 커진 아바이들의 핀잔반 칭찬반을 들으며 잔뜩 얼어든 몸과 피곤을 난로가에 뉘였을 때 안도의 한숨도 침먹은 지네처럼 게나른해졌다. 극도로 지친 나그네에게는 한귀퉁이 잠자리가 행복의 보금자리였고 등걸잠을 잤지만 꿈도 곯아빠진 숙면이였다.    기실 혼자걷기가 처음이였지 산속의 밤길은 걸은 경험이 두번이나 있었다. 첫번째는 열일곱살나던 해 8월, 삼도만림장에서 한달남아 풀베기를 하다가 앞당겨 나오는 일군들과 함께 밤길을 걸어 흥도자(현태양향소재지)이른것이고 두번째는 열여덟살나던  196 0년 7월 선발대로 고동하에 림장에 들어가서 이듬해 3월하순 귀가할 때이다, 눈석임물이 좔좔 흘러내려서 더 집재할수 없게되자 하산명령이 내렸다. 몇달이나 밀림속에 갇혀 고역을 치러야 했던 목재군들은 하산명령을 접하자마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아예 이 밤으로 떠나는게 좋다고 발설을 내였다.    이튿날 70리를 걸어 고동하역에서 소철을 타고 팔가자에 나와서 화룡기차를 타도 될것을 성미급하고 집생각이 간절했던지라 모두 밤도와 떠난다고 설레발치는 바람에 나도 덩둘해서 이불짐을 메고 나섰다. 그도그럴것이. 산판에서 여덟달 넘게 쿠리로 살다보니 집에 계신 홀어머니 생각이 불붙듯 하였던 나이다.    삼삼오오 떼를 지어 걸었고 밤도와 가는 귀향길이여서 걸음도 힘찼다. 남산고개를 넘어 옛날 독립군들이 넘나들었다는 게굴라즈골안을 나와 다시 몇고개를 넘고 천수동을 빠져나와 와룡에서 대충 아침을 먹고 내처 걷고 걸어서 오후 두시차를 탈수 있도록 관지역까지의 걸음을 재우친 그 길은 참으로 고난의 행군이였다. 게다가 나를 따라 나선 명애라는 광신촌처녀가 기진맥진해서 그녀의 이불짐까지 덧얹어서 지고 걸었지만 마음이 앞서달리는 귀향길인지라 별로 힘든줄도 몰랐다.    200리 먼길을, 그것도 제시간에 대여야 하는 길을 걸어본 사람은 대통도 짐이 된다는것을 체험했을것이다. 기실 먼길을 걸을 때 자신의 마음이 더 무거운 짐이다. 마음이 가벼우면 백근짐도 가벼운법이다. 그리고 졸리기는하고 길은 가야 할 때 앞사람의 등짐을 잡고 본능적으로 걸을수도 있다는것을 믿을것이다.    그렇게 나는 청년시절에 세번이나 산속의 밤길을 걸어보았다. 그래서 가끔씩 내가 걸었던 그 산속의 험난한 밤길과 나의 인생길을 점철시켜놓고 반추해본다. 오래동안 돌아설수도 없는 역경에 처한 사람의 인생행로는 혼자 묵묵히 걷는 나그네의 밤길이다. 그러나 그는 휘적휘적 걷고 또 걷는다. 비록 남보다 제일 먼저 새벽을 맞기위한 지어먹은 행보가 아니다. 그러나 밤길을 걸어야 할 운명이라면 새벽은 그에게로 먼저 손짓하게 되여있다.    이처럼 일단 인생길에 오르면 좋든궂든 내처 걷게 되여있는 삶의 도보요 주막은 멀어도 어디에든 기어이 닿고야 말겠다는 끈기를 지팽이로 삼고 걷지않으면 안되는 운명의 길이다. 남이야 지름길로 가든, 탄탄대로를 따라 노래를 부르며 가든 내앞에 놓인길만을 걸어야 한다. 되돌아설 리유가 없다. 돌아서도 동서남북 세상은 넓어도 내가 가야 할 그 어둠속에 뻗은 불가피면의 밤길이다.    먼먼 밤길을 걷는것은 어스레한 외눈박이 가로등아래에 소풍처럼 그렇게 기분이 들리는 발걸음이 아니다. 먼길에는 동반자가 있으면 길이 꽤 줄수 있다. 그런데 함께 가다가 곰을 만나서 아무말도 없이 먼저 나무에 올라간 친구같은 그런 동반자라면 홀로걷기만 못하다. 이미 나진길이라도 낯선곳에서 혼자걷는 길이라면 초행길이요 더구나 어두은 밤을 헤치며 가야하는 산속의 길은 걸어본 사람만이 그 절실한 체험에 공감할것이다. 내가 걸은 길이 무섭고 힘들었노라고 옛말처럼 구수하게 말해주어도 잘믿기지 않을것이다. 하지만 나는 먼먼 인생의 밤길을 걸어 오늘 인생의 황혼,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무도 나의 다리를 대신할수 없다. 숙명으로 이어진 나의 길이요 그길을 걷는 주체는 나이다. 안내자가없다. 나혼자 걷는다. 눈을싸맨 나귀가 석마돌을 돌리며 먼길을 떠난듯이 내처 걷는 길일지라도 그냥 걸어야 한다. 그러나 몸뚱이가 걷는게 아니다. 인간의 근본지표는 정신으로서 내육체안에 무엇이 있다. 그것은 정신만이 아니다. 나를 앞으로 떠미는 무엇이 있다. 보이지도 잡을수도 느낄수도 무게도 없는 그것이 무엇일가? 바로 삶에 대한 욕망이고 자존의 끈기이다. 인생길에는 그것이 요긴하다. 그래서 나는 황혼길도 바지런히 걷고걷는다.                          1961년.11. 6 ㅡ 2009년 9 월 15 일   (2015년 장백산 3기에)          
501    느낌에 생각이 따라(87-90) 희망의 저류 외 3수 댓글:  조회:6190  추천:3  2015-06-04
                     (87)         꽃                                                               꽃은                                  반쯤 피고                                  반쯤 닫히고                                  향기를 아끼더라                                                                   말은                                  반쯤 하고                                  반쯤 삼키며                                  내속을 감추어라                                                                   노래도                                  후렴은 있되                                  3절까지를 다                                  불러서 무엇하랴                                                          활짝                                  웃기보다는                                  미소만 머금은                                  모습이 예쁘더라                                    지구촌                                  한끝은 봄날                                  한끝은 겨울인                                  인생현장 아니던가                                2014년 6월 10일                                    (88 )  너를 믿어라                                        야 조                                그대여 속상하고                              정신이 산란해도                              믿음만 꺾지마라                              눈물이 뚤렁해도                                량지가 있는사람                              고통도 삼키나니                              더운피 사품치면                              자강도 푸들치리                                세상에 성인없고                              군자도 없는것을                              자유를 줄사람은                              더구나 없는것을                                인촌엔 천당없고                              지옥도 필요없다                              내바로 옥황이요                              지옥도 내가연다                                                           (89 )  희망의 저류                                         야 조                               세상엔 강바닥까지                                꽁꽁 언 강이 없다                             흐름은 무적의 힘!                               얼음장밑에 격류는                                고기도 역류하거니                             막지말라 바다길을                                                         인간의 의식의흐름                                희망도 주춤하는듯                             저류로 고패치나니                               눈덮힌 보리밭에도                                생명찬가가 드높고                             매화의 찬웃음 곱다                                                         절망은 만성적자살                                사막에 오아시스는                             강자만의 몫이더라                               꿈은 깨여졌더라도                                다시 둥-글줄 알라                             초생달 만월되듯이                               인간생명의 세기는                                역류에서 가늠된다                             격랑은 꿈의 물결!                             90)   수요와 탐욕은                                     야 조                           사람아, 돼지를 욕하지 말아라                             탐식해도 배부를만큼 먹더란다                         새는 먹이로 죽고 고기는 미끼                             탐하다가 죽는다고 비웃지말라                           미물인 새도 가지 가려서 앉고                            고기도 물속 차고더움 아는데                         만물의 척도인양해도 보았느냐                            복속에서 복을 모름은 우리들뿐                           만족은 끝없어도 수요에는 계선                            필요에도 정도가 있는데 저봐라                         동서남북 불만족의 대문을 열고                            어서오라, 많을소냐 많지않도다                           새의 날개에 금덩이 달아주듯이                            돼지입에 금빛사슬 씌워준다면?                         우리도 철새같은 인생인데 어찌                            만족을 등지고 류리방황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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