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의 고뇌와 애환
—2008년 “CJ”상, “해란강문학상” 수상작품 심사평
김호웅
이번 심사는 조룡남, 장정일, 김호웅, 허휘훈, 리혜선 등 중견문인들이 맡았고 충분한 론의와 비교를 거쳐 강호원의 단편 “쪽빛”을 “CJ상” 수상작으로, 김양금의 수필 “늙은 버드나무”, 전춘매의 조시 “성밖도 성이다”, 김경화의 단편 “원점”을 “해란강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상기 수상작들은 리얼한 필치, 원숙한 문학적 장치와 기법으로 우리의 삶을 원색(原色)으로 보여주고있으며 밑바닥인생과 디아스포라들의 고뇌와 갈등을 통해 새로운 삶의 지평을 열고있다.
김경화의 단편 “원점”은 그 제목이 암시하는바와 같이 우리 생활을 있는 그대로, 아무런 과장과 분식(粉饰)도 없이 원점에서 원색으로 보여준다. 작금의 우리 사회를 보면 경제적불황으로 말미암아 남성은 가정을 유지할 힘을 상실하고 녀성은 타락의 늪에 빠지기 쉬운데, 이 작품의 주인공 “언니” 역시 렴치와 정조 같은것은 헌신짝처럼 내동댕이친다. 그녀는 설사 못난이요, 불구자라 하더라도 배불리 먹여주고 등 따뜻하게 입혀주기만 하면 그런 남정들의 품에 안겨 기생(寄生)하는 몰렴치한 녀인이다. 하지만 그러한 녀인의 타락을 부른것은 지지리 못난 가난이요, 그 장본인은 라태하고 무책임한 남성사회에 있음을 이 작품은 은근히 꼬집고있다. “언니” 남편은 가출해 오래동안 객지로 떠돌고있는 안해를 찾을 대신 "빨리 돈이나 부치라고 해라. 쌀이 거의 다 떨어진다" 하고 소리를 치는데 이러한 루추한 모습을 보면 그야말로 김동인의 소설 “감자”를 련상케 한다.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언니”는 “가출이 아니라 어느 풀숲으로 잠간 소피를 보러 갔다”고 하면서 “그래, 그동안 아무런 일도 없었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언니는 잠시 오줌이 마려웠을뿐이야…” 하고 능청을 떨고있는데 이러한 아이러니는 작중 인물의 도덕적타락에 대한 신랄한 야유가 아닐수 없다.
강호원의 단편 “쪽빛”은 한국의 어느 한 외딴 섬에 있는 공장에서 벌어진 중국동포 정호와 한국인 우반장(禹班長)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다룬 작품이다. 인간평등주의 사회에서 지내온 중국동포와 가부장적인 수직론리에 젖은 한국인 사이에는 자연 갈등과 충돌이 생긴다. 중국동포 정호는 육중한 철판들이 부딪치고 쇠를 갈아내는 소음으로 진동하는 로동현장, 고된 로동과 변덕스러운 기후때문에 육신은 무너질것 같은데, 설상가상으로 한국인 우반장의 시도 때도 없이 퍼붓는 훈계와 욕설을 받아야만 한다. 우반장은 입만 열면 “씨팔, 씨팔” 하고 10살 손우인 정호에게 거리낌 없이 반말을 쓴다. 하지만 우반장에게서 “병신”이란 말을 듣는 순간 정호는 천둥같이 노해서 쇠파이프를 들고 길길이 뛴다. 결국 정호는 사장에게 들통이 나서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제야 우반장이 공장을 떠나는 정호를 붙잡고 “나는 집에 로모도 없구 툭 털면 먼지라카지만두 형님은 연변에 마누라에 자식들까지 두고 온 묌이 아닌겨?” 하고 한사코 붙잡는다. 이처럼 이 작품은 적절한 배경을 통해 분위기를 잡고 치렬한 갈등과 충돌을 통해 극적긴장감을 고조시키고나서 자연스럽게 화해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화해를 가능케 한것은 물론 두 밑바닥인생의 가슴속에 고여있는 따뜻한 인간애와 민족적동질성이다. 이 작품의 제목은 “쪽빛”인데 그것은 바다나 하늘의 색갈인 동시에 피줄의 색갈이며 격렬한 파란(波蘭)과 충격(衝擊) 뒤에 오는 평온과 순수의 빛이 아닐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 작품은 치밀하게 계산한 상징을 내적장치로 깔고있다고 하겠다.
김양금의 “늙은 버드나무”는 자칫하면 평범한 수필로 지나쳐버릴수 있는 작품이다. 자고로 “나무”를 다룬 시인묵객이 하도 많기때문이다. 하지만 작가는 버드나무를 소재로 다루었으되 내가에 실실이 늘어진 능수버들도 아니요, 공원이나 관광지에 소소리 높게 자란 버드나무도 아니요, 길거리에 초라하게 서있는 늙은 버드나무에 눈길을 돌린다. 그리고 그 모습을 리얼하게 묘사한다. “터덜터덜한 줄기들에는 작으면 사발만큼, 크면 대야만큼한 혹들이 험한 바위너설처럼 덕지덕지 붙어있는” 늙은 버드나무, “허리만 한 아름이지, 키는 잘리고 잘려 기둥뿐인 난쟁이” 늙은 버드나무, “정수리에는 수관도 없이” 가냘픈 새 가지 몇대만을 겨우 키워냈기에 초라한 로구(老軀)에 찢어진 양산을 쓴것 같이 위태로와보인다”고 했다. 여기서 “늙은 버드나무”라는 메타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현대문명에 의해 소외되는 우리의 전통적인 모습일수 있으며 획일주의와 편의주의적인 발상에 의해 비틀리고 찢기고 재단되는 인간의 생명이요, 자연의 모습일것이다. 늙은 버드나무라는 메타포를 적절하게 구사하고 버드나무라는 관습적상징을 개인적상징으로 전환시킨데 이 작품의 성공비결이 있다고 하겠다.
전춘매는 연변을 떠나 북경에 살고있는 녀성시인이니, 일종의 디아스포라적인 문화신분을 갖고있다고 하겠다. 향수는 디아스포라문학의 영원한 주제인데 이를 어떤 방식으로 시화(詩化)하는가가 중요하다. 시인은 호화로운 북경성에 살고있지만 자기 자신이 설 자리는 없다고 느낀다. 그래서 성밖에 성을 쌓는다. 성밖의 성은 하나의 허구요, 공상의 세계다. 이를 구체적으로 이미지화할 때 비로소 시가 성립된다. 시인은 성밖의 성을 두고 “바라만 보다가/ 보습날 하나 박고/ 바라만 보다가/ 씨 한번 뿌리고/ 그렇게 바라만 보다가/ 하아얀 마음의 기둥에/ 그리움의 기와를 얹어/ 소망으로 채워가는/ 또 하나의 고향집”이라고 했다. 공상속의 성을 다양한 이미지로 구상화(具象化)시키는 솜씨가 범상치가 않다. 또 시인은 북경골목의 평범한 랭면집을 찾는데 “이빠진 랭면그릇 상처 사이로/ 추억의 실바람이 싸늘히 불어와/ 세월너머 할머니의 랭면맛을 더듬게 한다.”고 했다. 얼마나 예리한 시적발상이며 얼마나 자연스러운 련상인가? 녀성글쓰기의 장점도 십분 살렸다고 본다.
수상작들이지만 언어를 한결 더 다듬어써야 할 보편적과제를 안고있다. 김경화의 단편 “원점”의 경우는 플롯이 산만하고 세부묘사가 결여되여있어 인물이 살지 못했으며 김양금의 수필 “늙은 버드나무”는 의론을 한 가닥으로 잡지 못해 현대문명에 의한 인간소외의 문제냐, 아니면 생명력의 찬미냐 하는 주제의 분열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전춘매의 조시 “성밖도 성이다”는 기승전결의 내적구조를 갖지 못해 느슨하게 풀린 감을 준다.
수상자 여러분에게 모두어 축하를 드리면서 이로써 심사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