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평론/론문
다문화사회와 소수자의 목소리
3. 경계의 공간과 숙명적인 공존
김호웅 연변대학 교수
디아스포라는 지역적공간이나 정신적공간에 있어서 아주 미묘한 “중간상태(median state, 中間狀態)”에 처해 있고 “경계의 공간(liminal, 閾限)”을 차지하고 있어 보다 넓은 영역을 넘나들수 있으며 그들의 작품세계는 모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양가성 내지 혼종성으로 특징지어진다. 바꾸어 말하면 디아스포라문학은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자아를 표현하게 되며 두 문화형태의 혼종성 또는 공존상태로 나타난다. 여기서 두 민족의 어색하면서도 아이러니한 공존 상황을 석화의 시「연변 2, 기적소리와 바람」에서도 볼 수 있다.
기차도 여기 와서는/ 조선말로 붕 ―/ 한족말로 우(嗚) ―/ 기적 울고/ 지나가는 바람도/ 한족바람은 퍼~엉(風) 불고/ 조선족바람은 말 그대로/ 바람 바람 바람 바람 분다// 그런데 여기서는/ 하늘을 나는 새새끼들조차/ 중국노래 한국노래/ 다 같이 잘 부르고/ 납골당에 밤이 깊으면/ 조선족귀신 한족귀신들이/ 우리들이 못 알아듣는 말로/ 저들끼리만 가만가만 속삭인다// 그리고 여기서는/ 유월의 거리에 넘쳐나는/ 붉고 푸른 옷자락처럼/ 온갖 빛깔이 한데 어울려/ 파도를 치며 앞으로 흘러간다.
이 시는 상이한 것들이 갈등이 없이 공존하는 다문화적인 혼종성, 쉽게 말하자면 조선족과 한족이 연변땅에서 공존, 공생해야 하는 숙명 내지 필연성을 유머러스하게 이미지화한다. 제1연에서는 기차와 바람을 의인화하면서 우(嗚)―”와 “붕 ―”, “퍼~엉(風)”과 “바람”과의 대조를 통해 조선족과 한족의 언어적인 상이성을 확인한다. 그렇지만 제2절에서는 미물인 새들도, 납골당의 귀신들도 서로 상대방의 소리와 언어에 구애를 받지 않고 의사소통을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두 문화형태 간의 대화와 친화적인 관계를 하늘을 날며 즐겁게 우짖는 새와 납골당에서 구순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귀신이라는 메타포를 통해 유머러스하게 표현함으로써 몽환적인 색채를 십분 살리고 있다. 제3연은 이 시의 기승전결(起承轉結)의 내적 구조에서 보면 “전(轉)”과 “결(結)”에 속하는 부분인데 연변의 풍물시라고 할 수 있는 “6.1” 아동절의 모습을 색채적 이미지를 구사함으로써 다원공존, 다원공생의 논리로 자연스럽게 매듭짓고 있다.
박옥남 역시 조선족과 한족의 잡거지역, 즉 두 문화의 경계지대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소설「마이허」를 내놓았다. 이 작품은 2006년 한국 재외동포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마이(蚂蚁)”이란 중국어로 개미라는 뜻이고 “허(河)”란 강이라는 뜻인데 이 개미허리처럼 짤록짤록한 강줄기를 사이 두고 상수리촌이라는 한족마을과 물남마을이라는 조선족마을이 이웃해 살고 있다. 작품은 두 마을의 색다른 풍속과 습관을 비교하면서 배경을 제시한다.
민족이 다르면 언어도 다른 법이다. 그러나 말을 시켜보지 않아도 마이허가에 나와 빨래질을 하는 모습 하나만 보고도 어느 녀인이 상수리의 여인이고 어느 여인이 물남마을 녀인인줄 대뜸 알아맞힐수 있다. 먼저 빨래하러 나서는 모습부터가 다르다. 상수리의 여인들은 큰 대야에 빨랫감을 넘치게 담아 옆구리에 끼고 나오지만 물남의 녀인들은 빨랫감을 담은 대야를 똬리까지 받쳐서 머리 위에 이고 나온다. ……
한 편의 감칠맛 나는 비교문화론적인 에세이다. 좀 더 보자. 상수리촌 녀인들이 남편을 개떡 같이 여기는 습관이 있다면 물남마을 남성들은 오히려 안해를 패서 문밖으로 쫓아낸다. 상수리촌 남자들은 열에 아홉은 부엌일에 능숙하지만 물남마을 남자들은 종래로 부엌간에 들어가는 법이 없이 안해가 밥상을 챙기기를 기다린다. 상수리촌 사람들은 집짓기 전에 토담부터 쌓아올리지만 물남마을 사람들은 뜰 주위를 막는 법이 없이 이웃과 통마당을 쓴다. 상수리촌 사람들은 임자가 눈앞에 보이지 않으면 남의 인분(人糞)이래도 자기 집 마당으로 끌어들이지만 물남마을 사람들은 도적질을 수치로 생각한다.
이처럼 풍속도, 습관도 완판 다른 한족마을과 조선족마을 사이에 청춘남녀의 사랑이 싹트나 그것은 애정의 비극으로 끝난다. 물남마을의 처녀 신옥이는 쑥색군복을 입은 퇴역군인에게 시집을 가는게 소원인데 그녀가 짝사랑을 했던 퇴역군인 총각은 방정맞게 임자가 있는지라 꿩 대신 닭이라고 상수리촌 두부방 쑨령감네 막내아들과 눈이 맞아 돌아간다. 마침내 소문이 파다하게 퍼지고 부모에게까지 들통이 나는데, 신옥이는 아버지에게 늘씬하게 얻어맞는다. 어머니는 아버지를 말리면서도
“빌어묵을 지집아가 죽을락꼬 환장이 났노? 무신놈의 망신살이 뻗쳐 해괴하게 되놈이 뭐고, 되놈이. 눈깔이 뒤집힛나? 오늘 니 죽고 내 죽고 그라고 마자고마. 이놈의 지집아야” 하고 아래턱을 달달 떤다. 이튿날 마을회관에서는 마을의 부녀들이 신옥이를 끌어다가 그녀의 “비행에 대해 침을 튕기며 공노했다.” 동네 안에 총각이 없어 하필이면 상수리의 되놈이였더냐, 시집을 못 가 바람이 났더냐, 쑨령감네 두부방에서 같이 자기까지 했다던데 그게 정말이냐, 처녀자로서 얼굴 깎이는 줄도 모르는 년, 동네 안에 나쁜 물을 들이기 전에 마을 박으로 쫓아내야 한다느니 뭐니, 좌우지간 입 가진 아낙마다 한 마디씩 질매(叱罵)를 했다. …이튿날 신옥이는 마이허 물굽이 쪽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이 작품의 에필로그에 해당하는 제4장을 보면, 신옥이가 죽어간 이야기는 이제 물남마을 사람들에게 까마득한 옛이야기가 되고 그들은 열에 아홉은 외국으로 돈벌이를 떠나 마을은 다 퍼먹은 김칫독이 되었는데, 상수리촌 사람들이 들어와 헐값으로 집을 사들이고 벽돌을 실어다 텃밭 둘레에 담을 쌓기 시작한다. 처녀 구하기가 고양이 뿔 구하기보다 어렵다면서 우는 소리를 하던 와중에 물남마을의 총각 하나가 장가를 간다. 한국 가서 돈을 벌어 부쳐주는 누나 덕분에 용케도 홀아비 신세를 면하게 된 귀식이라는 총각이 상수리촌의 한족처녀를 신부로 맞아들인 것이다.
신옥이의 애정비극을 생각 할 때, 조선족총각이 한족처녀를 데려왔으니 물남마을로 놓고 말하면 어깨가 으쓱할 일이지만, 이 작품의 마지막 결혼장면이 보여주듯이 한족들에 의해 조선족마을은 완전히 잠식(蠶食)을 당했고 한족 습속대로 스스럼없이 처신하는 신부에 비해 신랑의 존재는 꾸어온 보리자루처럼 무색하다. 이민족의 물결에 휩싸인 조선족신랑의 앞날은 어떻게 될 것인가? 아래에 논의하겠지만, 박옥남의 다른 단편소설「장손」에서 답을 구할수 있을것이다.
다문화사회와 소수자의 목소리 글싣는 순서
1. 들어가는 말
2. 이민열조와 주변부 문화의 붕괴위기
3.경계의 공간과 숙명적인 공존
4.정체성의 분열과 동화의 비애
5.맺는말
전체 [ 5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