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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說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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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친절은 사회를 움직이는 황금의 쇠사슬이다 댓글:  조회:1675  추천:0  2010-06-18
    친구의  친절한 선물은 아무리 사소한것일지라도 가치있게 받아들이라. 친절한 마음씨만으로도 이미 하나의 선물이기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당신이 친절한 태도로 남에게 베푼 유쾌함은 당신에게 되돌아오며 가끔은 리자까지 붙어서 되돌아온다.   -A. 스미스-    
39    남자의 세계 댓글:  조회:2327  추천:0  2010-06-08
  □ 분별있는 남자(라 로슈푸코)   분별있는 남자는 여자를 가볍게 취급하고 함께 어울려 농담을 하고 노래를 부르는 일밖엔 하지 않는다.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절대로 여자와 의론도 하지 않고 맡기지도 않는다.   □ 여자에의 환상(모옴) 어떤남자라도 한 여자를 자기것으로 하려고 생각했을 때는 그 사람이 자기사랑을 위해 가장 적합한 여자라고 여긴다.그리고 자기자신이 이렇게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하지만 그것이 잘못이라고 깨닫게 되는 것은 딴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을 경우다.   □ 남성의 부도덕한 행위의 원인(알렝) 만약 모든 여성이 같은얼굴,같은성질,같은마음을 하고 있었다면 남성은 절대로 부정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뿐만 아니라 연애도 하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한 여인과 함께 되어 죽을 때까지 그것만으로써 그칠것이다.     □ 여자의 효용(고리키) 가령 남자가 아무리 자기자신을 잊고 일에 열중하더라도 그 마음 한구석에는 언제든지 한 여자가 숨어있다.즉 남자를 일하게 하는데 있어서 여자는 효과적인 현상금이다.  
38    여성의 세계 댓글:  조회:1693  추천:0  2010-06-08
    □ 여자의 잔인한 마음(고리키) 여자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면 가엾게 여겨주는 마음으로 살인조차 서슴치 않고 한다.거짓말같거든 한번 여자 앞에서 진심으로 슬픈표정을 가지고 제발 죽여달라고 사정해보라. 그러면 여자는 가엾게 생각하고 반드시 당신을 죽여준다.   □ 여성의 운명을 결정짓는것(쇼펜하우어) 여성에 있어서는 또한가지의 일 즉 어떤 남성의 마음에 들었느냐 하는 것만으로써 그 운명이 결정된다.   □ 여자가 보는 남자의 질투(모르와) 여자는 사랑하지 않는 남자가 질투심이 강하면 이를 싫어하지만 사랑하는 남자가 질투를 하지 않는다면 여자는 골을 낸다.   □ 여성에 있어서의 자존심(스탕달) 관대한 성격의 여성은 애인을 위해서라면 천번이라도 자기 목숨을 바친다.그러나 문을 열고 닫는 일에 있어서라도 자존심을 손상케하는 말다툼이 일어난다면 영원히 그 애인과 절교하고 만다.이런점에서 곧 여성들의 면목이 나타난다. 
37    생명은 죽음을 위해 존재한다 댓글:  조회:1851  추천:0  2010-06-08
          □ 생명은 죽음을 위해 존재한다(노발리스)생명은 죽음의 시초다. 생명은 죽음을 위해서 존재한다.죽음은 끝이며, 동시에 시작이다.분리된 것이면서 동시에 보다더 긴밀한 자기결합이다.  □ 이유없이 사는 삶은 삶이 아니다(카뮈)목숨을 잃는다는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나라도 필요하다면 목숨을 버릴 만한 용기가 있다. 하지만 이 목숨의 뜻이 없어지고 우리들의 생존이유가 소멸함을 본다는 것은 참지 못할 일이다.인간은 이유도 없이 살아갈 수는 없다.  □ 자기자신의 태도(베르그송)의식하고 있는 존재에 있어서 존재한다 함은 변화하는 것을 말하고 변화한다는 것은 경험을 쌓는 것을 말하고 경험을 쌓는다 함은 무한히 자기자신을 창조해 가는 것을 말한다.  □ 인생의 지침(쇼펜하우어)인생의 지침이 될 만한 확고한 자석을 늘 손에 쥐고 있으려면 그리고 절대로 미혹됨이 없이 인생을 늘 올바른 빛 아래 응시하고 있으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이 세상을 보상의 장소로서 말하자면 일종의 형무소나 유형지로 보는 습관을 몸에 갖추어야 한다.  
36    살면서... 댓글:  조회:1406  추천:0  2010-06-02
           미치도록 노력해보았나?              그럼 후회따위는 하지말아라...    
35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댓글:  조회:1698  추천:0  2010-06-02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다.            생각이 맑고 고요하면            말도 맑고 고요하게 나온다.            생각이 야비하거나 거칠면            말도 거칠게 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말로써 그의 인품을 엿볼 수 있다.           -법정스님
34    희망속에 행복이 있다 댓글:  조회:1231  추천:0  2010-06-02
□ 희망속에 행복이 있다(포우)희망은 영원히 인간의 가슴속에 솟아난다. 인간은 언제나 현재의 행복은 없고 항상 앞으로 행복해진다.그러니까 장미밭의 싸움을 시작하자.  □ 희망은 인류의 식량이다(스티븐슨)희망은 영원한 기쁨이다. 인간이 소유하는 토지와 같다.해마다 수익이 오른다. 결코 다 써 버릴 수 없는 확실한 재산이다.  □ 인생에는 실망이 많다(스탕달)상상력이 풍부한 사람은 상냥하고 한편 의심이 많다. 소박한 마음까지 그러하다.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의심이 많아지는 모양이다.그만큼 인생에는 실망이 많았다.  □ 버릴 것은 일찍 버려라(헤라클레이토스)처음 결심한 일을 끝까지 몸에 지니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잡념 때문에 마음이 끌리니까 그러하다. 무슨 일이나 한 일을 성취하려면 그외의 딴일을 생각하지 말라.여러 가지 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일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긴요하다. 영원히 명예로운 일을 취하고 버릴 것은 처음부터 버려라. 
33    나는 싫다,"그렇지만"이라는 말이. 댓글:  조회:1583  추천:0  2010-05-28
32    마음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다 댓글:  조회:1497  추천:0  2010-05-28
  □ 나쁜버릇을 고치면 행복은 벌써 눈앞에 왔다(파스칼)사람은 그렇게 결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여러모양으로 보이는 결점의 근원은 늘 하나다. 한가지 나쁜 버릇만 고친다면 자연 딴 버릇도 고쳐진다.한가지 나쁜 버릇이 열가지 나쁜 버릇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 인류 최대의 불행(힐티)인류 최대의 불행은 농사가 흉작하였다거나 재난을 만났다거나 또는 나쁜 사람으로부터 타격을 받았다거나 하는데서 온다기보다 우리 개개인이 서로 화목하지 못한데서 일어난다.자기 주위사람 즉 아내,남편,부모,형제,친척,친구,이웃 등과의 화목이 행복의 시작이다.  □ 마음의 주인은 자기자신이다(신채근담)사람은 대자연과 일대일의 존재다. 자신을 벗삼고 어디든지 구속을 받지 않고 내마음의 주인이 되어 산다면 그보다 평안한 세상은 없다.즉 대자연의 만물을 자신의 마음에 지배할 수 있어야 한다.불행을 한탄하고 행복을 바라니까 근심을 얻는다. 사람이 물건에 구속을 받으면 한가닥의 머리칼에도 자신을 묶고 만다.  □ 행복을 잡는 마음가짐(카네기)일을 시작할 때에 그일이 고통스럽다는 선입관을 가지면 피로가 부쩍 느는 원인이 된다.일은 가벼운 태도로 시작하라. 정력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보면 가벼운 태도로 도리어 무거운 일들을 처리해 나가고 있다. 
31    여자여! 그대는 위대하도다 댓글:  조회:1602  추천:0  2010-05-27
    □ 모성애는 자녀교육의 힘이다(플로베르)물오리는 날적부터 헤엄을 치듯이 어린이들은 나면서부터 착한일을 할 수 있는 천성을 지니고 있다.어린이들이 하는일에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물오리의 헤엄을 금하는거나 다름없다.어린이들을 가르치려면 그 천성을 옆에서 도와 주는 것이 중요하다.  □ 자녀교육을 위한 자세(스피노자)아이들을 양육할 때 우리들에게는 그 재료의 선택이 허용되지 않는다.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매우 상대적인 정도에서 아이들을 되도록 나쁘지 않은 방면으로 인도하는 수밖에 없다.  □ 여자여! 그대는 위대하도다(고리키)모든 여성들 앞에 머리를 숙이자. 그녀들은 <모세>를 낳았고 <마호메트>를 낳았고 위대한 예언자<예수>를 낳았다.우리들을 위하여 지칠줄 몰랐다.그리고 위대한 모든 인물은 그녀들의 자식들이고 그녀들의 젖을 먹고 자라났다.  □ 어버이와 자녀(구울드)과거의 어버이는 자녀에게 무조건 어버이에게 존경하기를 바랐다.그러나 현대에 와서 어버이들은 그러한 규범 아래서 어린이의 의식을 압박하는 일은 거의 적어졌다.   오히려 많은 어버이들은 자녀와 거리를 없애고자 친밀해지기를 원한다.
30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댓글:  조회:1520  추천:0  2010-05-27
    □ 참사랑의 발로(톨스토이)죽음의 공포보다 강한 것은 사랑의 감정이다. 헤엄을 못치는 아버지가 자식이 물에 빠진 것을 건지기 위해서 물속에 뛰어드는 것은 사랑의 감정이다.사랑은 나 이외의 사람에 대한 행복을 위해서 발로된다.인생에는 허다한 모습이 있지만 그것을 해결할 길은 오직 사랑 뿐이다. 내자신을 위해서는 약하고 남을 위해서는 강하다.  □ 마음과 감정에서 솟아난 사랑(로렌스)사랑은 순전히 마음과 감정에서 솟아난다. 그러니까 어디 가든지 희생적이고 복종적이고 헌신적이다.  □ 사랑은 행복의 샘이다(힐티)건강은 그것만으로써 하나의 보배이긴 하나 가령 건강하지 않더라도 때에 따라 사람은 매우 행복할 수 있다.그러나 사랑 없이는 누구든지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행복할수 없다.  □ 남녀에 있어서의 사랑(스탕달)남자는 사랑을 받고 있는줄 알면 기뻐하지만 그렇다고 빈번히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는 말을 듣는 날에는 진저리를 낸다.여자는 날마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는 말을 듣지 못하면 혹 남자의 마음이 변하지나 않았나 하고 의심을 품는다.   
29    재물의 주인은 따로 있다 댓글:  조회:1831  추천:0  2010-05-24
    세상의 재물이라는 것도 진정한 주인은 따로 있는 것 같다. 주어진 재물을 제대로 쓸 줄 모른다면 그에게는 그 재물이 화가 되는 것이다. 재물을 가질 만한 그릇이 되었을 때, 그가 가진 재물은 진정한 재산의 가치로서 쓰일 수 있을 것이다.- 최복현의《책 숲에서 사람의 길을 찾다》중에서 - * 재물은 필요합니다.그러나 그 재물이 사람을 따르도록 해야지사람이 재물을 따라다니면 재물의 종이 되고 맙니다.자기가 노력하여 얻은 재물이지만 그것이 '나의 것'이 아니라'나에게 맡겨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살 때그의 삶은 한층 더 풍요로워지고그 재물도 더욱 빛이 납니다.
28    세상사람은 재물을 모으는 일에 몰두한다 댓글:  조회:1474  추천:0  2010-05-24
  인간이란 거의 전부가 멀지 않아 땅속에 묻힌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지나치게 재물을 모으는 일에 몰두하고있다.                                                                          -솔로-       솔로 (Solow, Robert Merton 1924~) 경제성장이론을 크게 발전시킨 공로로 1987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1947년 하버드대학교를 졸업하고 1949년 석사, 1951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9년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기 시작했으며, 1958년에는 정교수가 되었다. 1961~62년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일한 뒤 1962~68년에는 이 위원회의 고문으로 활동했다.   1950년대에 솔로는 국민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여러 가지 요인들의 상대적인 기여도를 보여주는 수리 모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그는 전통적인 경제이론가들의 사고와는 반대로, 지속적인 성장을 달성하는 데는 자본 축적이나 노동력의 증가보다 기술 진보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새로운 기계의 발명이나 노동력의 숙련도 증진과 같은 질적인 향상으로써 효율성과 생산성을 제고하는 것이 단순히 기계나 공장의 수를 늘리는 양적인 투자에 비해 훨씬 중요하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와 같은 연구결과는 1960년대부터 각국 정부로 하여금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기술적인 연구개발에 보다 많은 투자와 노력을 기울이도록 설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7    소는 불평을 부리지 않는다 댓글:  조회:1401  추천:0  2010-05-24
  만약 인간의 가치가 일로써 결정이 된다면 소는 어떤 인간보다도 가치가 있을것이다. 소는 일을 잘하고 또 절대로 불평을 부리지 않는다.                                                                   -고리끼-       막심 고리키[막심 고리끼](러시아어: Максим Горький), 1868년 ~ 1936년)는 러시아의 작가이다.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시코프(러시아어: Алексе́й Макси́мович Пешко́в)이다. 볼가 강 연안에 있는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출생하였다. 가난하여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사환·접시닦이·제빵 기술자 등 온갖 일을 하였다. 1892년 처녀작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하였다. 1895년 《러시아의 부》지에 《체르카시》를 발표하여 크게 절찬을 받았고, 이어서 〈오를로프 부부〉 등의 단편을 발표하였다. 1905년 사회 민주당에 가입하였으나, 군대의 민중 학살 사건에 항의한 것 등으로 인해 회원에서 제외되고 투옥되었다. 1906년 세계 지식인들의 석방 요청에 의해 석방된 후,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서 망명 생활을 하였다. 1913년 귀국하여 《유년 시대》 등을 집필하는 한편, 무산 계급 작가 양성 지도에 힘을 쏟았다. 1932년 소련 작가 동맹 제1회 대회 의장에 취임, 후진 작가의 육성과 노동자 지식인들을 위해 일하다가, 사망하였다. 스탈린의 대숙청 당시 부하린 등이 고리키를 독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이 재판은 다른 대숙청의 재판과 마찬가지로 조작재판의 혐의가 짙다. 그는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을 창조한 최초의 사람으로서, 소련 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26    군자는 말에는 더디지만, 일을 함에는 민첩하다 댓글:  조회:1725  추천:0  2010-05-14
              가지를 잘 쳐주고 받침대로 받쳐 준 나무는 곧게 잘 자라지만, 내 버려 둔 나무는 아무렇게나 자란다. 사람도 이와 마찬가지여서 남이 자신의잘못을 지적해 주는 말을 잘 듣고 고치는 사람은 그만큼 발전한다. 군자는 도(道)를 근심하고 가난을 근심하지 않는다.   군자는 말에는 더디지만, 일을 함에는 민첩하다.   군자는 말을 잘하는 사람의 말에만 귀를 기울이지 않고 말이 서툰 사람의 말에도 귀담아 듣는다.   군자는 말이 행함보다 앞서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군자는 모든 것을 공경하나 신체의 공경함을 가장 으뜸으로 생각한다. 신체란 부모의 가지이니 어찌 공경하지 아니하랴? 그 몸을 공경하지 못하면 이는 곧 부모를 상하게 함이며, 부모를 상하게 함은 뿌리를 상하게 함이니, 그 뿌리가 상하면 가지도 따라서 망하게 된다.  군자는 세 가지 경계할 바가 있다. 젊었을 때는 혈기가 잡히지 않았기에 여색을 경계하고, 장년이 되면 혈기가 바야흐로 굳세므로 다투는 것을 경계하고, 늙으면 혈기가 이미 쇠하였음으로 탐욕을 경계하라.  군자는 스스로 재능이 없음을 근심하며, 남이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하지 않는다.   군자는 타인의 좋은 점을 말하고 악한 점을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소인은 타인의 좋은 점은 말하지 않고 악한 점만 말한다.   군자는 행위로써 말하고 소인은 혀로써 말한다.   군자에게 용맹만 있고, 예가 없으면 세상을 어지럽게 한다. 소인에게 용맹만 있고, 예가 없으면 도둑이 된다.   그 지위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政事)를 논하지 말아라.   길은 가까운 데에 있다. 그런데도 이것을 먼 데서 구한다.                                                                                                                                                                                                -공자   
25    행복한 인간이란 댓글:  조회:1518  추천:0  2010-05-14
   
24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댓글:  조회:1492  추천:0  2010-05-14
  □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톨스토이)국가를 다스리는 대통령과 손재주를 가지고 번영을 위하여 싸우는 직공과의 사이에는 단 하나의 차이점이 존재할 뿐이다.즉 전자의 직무가 후자의 직무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직무를 훌륭하게 완수한다는 점에서 보면 그 도덕적가치는 다름없다.  □ 의지는 커다란 힘이다(고리키)인간은 일할 수 있는 동물이다. 이와같이 작은 인간도 일하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한없는 힘이 솟아난다.이렇게 작은 인간이라도 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어떤 일이든지 해낼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한다.  □ 시작이 절반이다(아우렐리우스)거창한 일이라도 우선 시작해보라. 손이 일에 착수 했다는 것으로써 일의 반은 이룬 셈이다.그러나 아직 반이 남아있을 것이다. 한번 더 착수해보라.그러면 일은 모두 마무리 되는 셈이다.  □ 노력과 소득(처칠)인간이 끊임없이 계속하는 노력에 의하여 달마다 또는 해마다 만들어내는 소득과 일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꾸준히 계속해서 들어오는 소득, 이 두가지만큼 서로 다른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23    삶의 지혜를 가져다 주는 명언 모음집 댓글:  조회:1682  추천:0  2010-05-12
행복의 문 하나가 닫히면 다른 문들이 열린다.그러나 우리는 대게 닫힌 문들을 멍하니 바라보다가우리를 향해 열린 문을 보지 못한다.    헬렌 켈러 '노(no)'를 거꾸로 쓰면 전진을 의미하는 '온(on)'이 된다.모든 문제에는 반드시 문제를 푸는 열쇠가 있다.끊임없이 생각하고 찾아 내어라.    노먼 빈센트 필 희망이 도망치더라도 용기를 놓쳐서는 안된다.희망은 때때로 우리를 속이지만,용기는 힘의 입김이기 때문이다.    부데루붸그 인생에는 진짜로 여겨지는 가짜 다이아몬드가 수없이 많고,반대로 알아주지 않는 진짜 다이아몬드 역시 수없이 많다.    타거 제이 아내인 동시에 친구일 수도 있는 여자가 참된 아내이다.친구가 될 수 없는 여자는 아내로도 마땅하지가 않다.    윌리엄 펜 당신만이 느끼고 있지 못할 뿐....당신은 매우 특별한 사람입니다.    데스몬드 투투 내가 만일 인생을 사랑한다면, 인생 또한 사랑을 되돌려 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루빈시타인 삶이란 우리의 인생 앞에 어떤 일이 생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존 호머 밀스 힘든 장애물에 부딪혀 넘어지고 실패하는 것은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실패 역시 꿈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슈레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 과업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다. 다른 모든 것은 그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마리아 릴케 진정 우리가 미워해야 할 사람이 이 세상에 흔한 것은 아니다.원수는 맞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정작 내 마음속에 있을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알랭 희망은 잠자고 있지 않는 인간의 꿈이다.인간의 꿈이 있는 한, 이 세상은 도전해 볼만하다.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꿈을 잃지 말자, 꿈을 꾸자.꿈은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에겐 선물로 주어진다.    아리스토 텔레스 재능이란, 자기 자신을, 자신의 힘을 믿는 것이다.넘어져라! 넘어지지 않으면 자전거는 탈 수 없다.     무명씨 행복은 깊이 느낄 줄 알고, 단순하고 자유롭게 생각할 줄 알고삶에 도전할 줄 알고 남에게 필요한 삶이 될 줄 아는능력으로부터 나옵니다.    스톰 제임슨 자기 자신을 싸구려 취급하는 사람은 타인에게도 역시 싸구려 취급을 받을 것이다.    윌리엄 헤즐릿 '오늘'이란 너무 평범한 날인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잇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괴테
22    한 세대의 영웅호걸이 될 뜻을 품어야 한다 댓글:  조회:2678  추천:0  2010-05-12
사람마다 한 세대의 영웅호걸이 될 장한 뜻을 품어야 한다.                                                                                                                      -주은래-     좌로부터 주덕(朱德), 주은래(周恩来), 모택동(毛泽东), 류소기(刘少奇)。   저우언라이(周恩来)는 중국공산당의 주요인물이며 중화인민공화국의 총리(1949~76)와 외교부장(1949~58)을 역임했다. 혁명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고 후에 중국정부의 외교문제를 전담했다. 중국공산당 초기인 1921년부터 지도자적 역할을 했으며, 20세기 중국의 위대한 정책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정책 시행에 뛰어났고 세부사항을 파악하는 데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 언제나 당 지도부에서의 위치를 유지하면서 내부 갈등으로부터 비롯된 숙청에서 살아남았다. 우아함과 섬세함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친화력있고 실용적이며 설득력있는 사람으로 정평이 났다.   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나 저장 성[浙江省] 사오싱[紹興]에 살고 있던 큰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이곳에서 초등교육을 받았다. 1913년 톈진[天津]에 있는 명문 중학교인 난카이중학교[南開中學校]에 입학했으며, 졸업한 뒤에 계속 공부하기 위해 1917년 일본으로 갔다. 1919년 5·4운동으로 불리는 학생시위가 베이징에서 크게 일어나자 톈진으로 돌아왔다. 1920년 체포될 때까지 학생시위와 유인물 발간에 적극 가담했다. 1920년 가을에 석방되어 근로장학생제도의 일환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그가 공산주의자로 평생을 보내겠다고 결심한 것은 바로 프랑스에서였다. 1921년 7월 상하이에서 중국공산당이 창립되자 유럽 지부의 조직책이 되었다. 1924년 여름 중국으로 돌아와 국민혁명에 참가했다. 이 혁명은 쑨원[孫文]이 이끄는 국민당이 중국공산당의 협조와 소련의 지원을 받아 광둥[廣東]에서 일으킨 혁명이었다. 이 무렵(1925) 덩 잉차오[鄧穎超]를 만나 결혼하게 되는데, 그녀는 당시 학생운동 지도자로서 나중에 중국공산당의 주요일원이 되었다. 저우언라이는 장제스[蔣介石]가 교장으로 있던 황푸군관학교[黃埔軍官學校]정치부 주임에 임명되었고, 1926년 겨울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서기가 되었다. 1927년 3월 장제스의 북벌군이 상하이 외곽에 도착했을 때 그는 국민당 군대를 위해 노동자들을 동원, 폭동을 일으켜 상하이를 장악했다. 그러나 장제스가 상하이 입성 후 곧 공산주의자 동료들을 숙청하자 우한[武漢]으로 도망쳐 목숨을 부지했다. 중국공산당은 우한에 새로운 근거지를 마련하고 이곳에서 국민당 좌파인사들과 긴밀히 협조했다. 같은 해 4월 우한에서 열린 제5차 전국대표대회에서 공산당 중앙위원 및 정치국위원으로 선출되었다. 국민당 좌파인사들이 공산당과 결별하게 되자 그는 난창[南昌] 사건(1927. 8)으로 알려진 공산당 봉기를 일으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국민당이 난창을 재탈환하자 광둥 동부지역으로 퇴각했고 곧 홍콩을 거쳐 상하이로 도피했다.   1928년 제6차 전국대표대회가 열린 모스크바를 방문하여 공산당 내의 자신의 지위를 확인받았다. 이어 모스크바에서 중국으로 돌아와 무너진 공산당 조직을 재건하는 데 힘썼다. 1920년대 후반 중국공산당 본부는 상하이에서 지하활동을 벌이면서 도시 근로자의 봉기에 주력했으나, 주요대도시를 장악하려는 공산당의 시도는 큰 피해만 냈을 뿐 실패를 거듭했다. 1931년 저우언라이는 상하이를 떠나 장시[江西]로 갔는데, 1928년 이래로 주더[朱德]와 마오쩌둥[毛澤東]이 이곳에서 공산당 지방근거지를 착실히 다지고 있었다. 1932년 공산당 본부는 상하이 경찰의 가중되는 압박을 이기지 못해 장시 지역으로 옮겨갔다. 저우언라이는 마오쩌둥의 뒤를 이어 주더가 지휘하는 홍군(紅軍)의 정치위원이 되었다. 처음에 그는 장시 소비에트에서 마오쩌둥으로부터 정책통제권을 빼앗은 공산당 지도자들과 동맹을 맺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결국 마오쩌둥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맺게 되었는데, 이 관계는 평생 동안 변하지 않고 지속되었다. 장제스의 계속되는 토벌작전으로 인해 공산당은 마침내 1934년 10월 장시 소비에트와 중국 중남부의 기타 소비에트 지역을 버리고 중국 북부의 새로운 근거지를 향해 장정(長征)에 나섰다. 마오쩌둥은 장정중에 당기구의 통제권을 장악했고 저우언라이의 중앙군사위원회 서기직도 넘겨받았다. 저우언라이는 그 이후로 충실하게 당내 마오쩌둥의 지도력을 보좌했다.   1935년 10월 산시 성[陝西省] 옌안[延安]에 이르러 장정은 끝났다. 이곳에서 공산당의 근거지를 확보하자 저우언라이는 당의 주요협상자가 되었고, 국민당과 전략적으로 연합을 맺는 어려운 일에 착수했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 국민의 항일감정에 호응하고 파시즘에 대항하라는 모스크바의 이른바 신(新)인민전선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 1935년 후반 중국공산당은 '항일'이라는 기치 아래 국민당을 비롯한 모든 애국인사들과 연합하겠다고 제의했다. 1936년 겨울 장제스가 국공내전을 중지하고자 하는 부장(部將)들에 의해 산시 성 시안[西安]에서 체포되자 저우언라이는 곧 그곳으로 갔다(→ 시안 사건). 그는 반란을 일으킨 장군들에게 장제스를 살해하지 말라고 설득한 뒤, 장제스가 공산당에 대한 공격을 중지하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공산당과 연합전선을 편다는 조건 아래 그의 석방을 성사시켰다. 1937년 7월 중일전쟁이 발발한 직후 그는 연합전선 구축을 성사시켰고, 그 이후로 1943년까지 국민정부에 파견된 공산당측의 대표로 활약했다. 1945년 8월 일본이 항복한 지 2주 만에 마오쩌둥을 수행하여 충칭[重慶]으로 가서 장제스와의 평화회담에 참가했다. 6주 후에 마오쩌둥이 옌안으로 돌아간 뒤 그는 충칭에 남아서 협상을 계속했다. 1946년 미국이 후원하고 조지 C. 마셜 장군이 주재한 국민당과의 평화협상에도 대표로 참가했으나 이 협상은 결렬되었다. 이때 그는 국민당에 환멸을 느낀 진보적 정치가와 지식인들에게 공산당의 이미지를 좋게 심는 수완을 발휘했다. 그리고 이 점은 1947년 전면적인 내전이 재개되었을 때 장제스가 결국 몰락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총리가 된 저우언라이는 중국의 대규모 민간 관료체제를 관리하는 주요행정가가 되었다. 외교부장을 겸임하면서 외교문제에서도 중책을 수행했고 이 직책을 사임하고 난 뒤에도 계속 중추적 역할을 했다. 1950년 2월 14일 모스크바에서 30년 기한의 중·소상호우호동맹조약에 서명했고, 1954년 제네바에서 열린 한국과 인도차이나 관련 회담에서 중국 사절단 대표로 참가했다. 1955년 인도네시아의 반둥에서 열린 아프리카·아시아 회의에서 아시아 비동맹국가들에 대한 중국의 지원을 제의했다. 1956~64년에 유럽·아시아·아프리카 등지를 여행했고, 아프리카의 상황이 '혁명 직전'이라고 공언했다. 1964년 모스크바를 방문했으나 중국과 소련 사이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를 해소할 수는 없었다. 1971년 7월 미국 특사 헨리 A. 키신저가 베이징을 방문하여 저우언라이를 처음 만난 후 외교관·협상가로서 그의 명성은 미국 언론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72년 2월 베이징에서 열린 마오쩌둥과 미국 대통령 리처드 닉슨 사이의 역사적 회담은 대부분 저우언라이가 조직·성사시킨 것이었다. 1972년 방광암에 걸린 뒤에도 정치를 계속했다. 1975년 제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제1차회의에서 중국공산당을 대표하여 공업·농업·국방·과학 기술의 현대화를 실현시키자고 주장했다. 그가 죽은 지 3개월 뒤인 1976년 4월 많은 공산당원·학생·노동자·간부·군인 등이 그를 기념한다는 명분으로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모였다. 그들은 당시 권력을 장악하고 있던 4인방(四人幇)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4월 5일 이 집회는 4인방에 의해 무력 진압되었는데, 이를 '톈안먼 사건'이라고 한다.   저우언라이는 공산당에서의 지도적 위치를 끝까지 유지했다. 1956년 당내 4명의 부주석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출되었다. 1960년대 후반에 있었던 문화대혁명 이후에 린뱌오[林彪]가 당내의 유일한 부주석이 되었지만, 그는 정치국 상임위원회 제3인자가 되었다. 문화대혁명 기간에 마오쩌둥 사상을 지지하는 극단주의자들에게 제동을 거는 주된 역할을 했고, 혼란스러운 시기에 유일하게 안정의 구심점이 되었다. 1970년대 초 문화대혁명의 기운이 쇠퇴하는 동안 덩샤오핑[鄧小平]과 기타 전직 온건지도자들을 권좌에 복귀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의 주요저작은 〈저우언라이선집 周恩來選集〉에 수록되어 있다.   50년대초 주은래(周恩来)와 부인 등영초의 합영 
21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는 인생길 댓글:  조회:1184  추천:0  2010-04-28
  세월이 빠르다는것은 누구나 느끼고 있는 사실이요. 나이를 먹으면 그사실이 더욱 확연해집니다.   프앙스 로망롤랑이 한 말이 생가가납니다. "인생은 왕복표를 발행하지 않기때문에 한번 출발하면 다시는 돌아올수 없다.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무심결에 잊고 지내왔던 말이여서 그런지 우리 가슴에 다끔한 충고로 다가옵닏.   지금도 우리는 다시 돌아옷루 없는길을 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언제라도 쉽게 돌아올듯이 가볍게 가고 있습니다. 이길로 가는것이 맞는지 이사람과 함께 가도 괜찮은지   우리는 여러가지것을 생각해봐야 하는데도 기분에 따라 이리저리 왓다갔다 합니다.   한참 시간이 흐른뒤에야 "아, 그때 그사람 얘기를 듣는것이 아닌데..." 하면서 후회하게 되지요.   그때 비로소 다시 돌아갈수 없다는 사실에 큰 상실감과 견딜수 없는 불행을 느낍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행보는 한걸음 한걸음 신중해야 합니다.   인생길은 다시 되돌아올수 없는 일방통행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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