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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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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不同으로 인한 차별이 없었으면 댓글:  조회:2601  추천:1  2013-05-31
             다문화가정으로 살면서 겪는 아픈 이야기    황민우군은 얼마전 방송된 SBS ‘한밤의 TV연예’에 출연해 악성 댓글 때문에 속상한 마음을 고백했다. 특히 “나에 관한 나쁜 이야기는 참을 수 있다. 하지만 네티즌들이 엄마를 향해 악성 댓글을 다는 것을 보고는 많이 울었다”는 말을 통해 힘들었던 심경을 전했다. “뿌리부터 쓰레기” “열등 인종 잡종이잖아” “다문화 XX가 한국 산다는 게 X같다” “매미(어머니)가 베트남” “애미와 함께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황민우군을 공격한 악플들은 한국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황민우군을 경멸하고 조롱 하는 그야말로 인종차별적인 모욕이 가득하다. 단지 다문화가정출신이 배경이라는것 이유이다. 140여만 다문화사회를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것은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처럼 가슴 아플수밖에 없다. 2005년도에 있었던 일이다. 투자비자로 체류기간 연장하러 갔을때 "식당에서 일하는거죠? 우린 다 알고 있습니다..."담당공무원이 하는 말이였다. 그때 당시는 한국에 입국할 방법이 많지 않아서 투자비자를 빙자해서 입국하고 식당이나 현장에 일하거나 또는 불법체류자로 전락되는이들도 많았던 현실이였다. 그렇지만 서류도 검토하지 않고 민원에게 이런 언사를 던진다는것은 편견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내가 만약 한국보다 더 잘 산다는 미국에서 온 투자자였다 해도 과연 이런 질문을 던질수 있었을까? 지금은 동포정책이 많이 좋아져서 한국에 올수 있는 방법도 많고 본인이 조금만 노력해서 공부하면 한국에 장기체류할수 있는 정책도 많아졌다. 게다가 체류기간 연장 한번 하려면 마치도 잘못을 저질러서 신문이라도 당하다듯이 이런저런 질문세레를 받던 예전과는 달리 최선을 다해 도와주려고 서류를 안내하는 공무원들의 모습도 쉽게 찾아볼수가 있다. 하지만 아직도 사회적인 문제는 많다. 한국인과 결혼하여 몇 년씩 살다가 서로가 성격이 맞지 않거나 상대의 잘못으로 인해 이혼을 하는 결혼이민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들은 화해권고결정이나 조정화해서를 받고 이혼을 하면 더는 체류기간을 연장할 수가 없다. 상대의 귀책사유로 판결문을 받는다 해도 귀책사유를 뒷받침할수 있는 객관적인 서류를 첨부해야만 체류기간연장이 가능해지는것이 보편적이다. 한국인들도 연해할때는 상대방이 없으면 죽을거 같아서 결혼을 하게 되어 가정을 이루게 되는것이 보편적이다. 그렇게 죽고는 못살겠다고 하다가도 서로가 헤여지는 부부가 너무나 많다. 오죽했으면 이혼전문변호사마저 인기직종으로 떠오르랴. 그런데 하물며 문화가 다른 이민자들이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하면 어찌 그것이 무조건 끝까지 생활을 해야 되듯이 이혼을 하면 마치도 위장결혼이라도 한듯이 취급받아야 된다는 말인가? 다문화를 웨치고 소통을 논하지만 말고 不同으로 인한 차별이 없도록 정책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시대이다.
7    부딪치면서 스스로 답안을 찾자! 댓글:  조회:1471  추천:2  2013-05-19
     "노력할수록 행운이 따른다.”, 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다. 살다보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이럴 때면 나는 비관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남의 탓 아닌 내 탓이라는 마음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갖추려고 한다. 여기서 노력한다는 것은 부딪힌다는 것이고 행운이라는 것은 찾은 답을 지칭하는 것이다. 모국생활을 하면서 우리 동포들은 체류부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스스로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과연 얼마만큼의 노력을 해왔는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보자. 김씨는 5월말이면 3년 만기가 된다. 중국에 가면 1년 후에야 다시 입국할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돈 좀 써서라도 출국하지 않게 하는 방법 있으면 도와달라고 사무실을 찾아왔다. 친구의 소개로 00사무실을 찾아가니 2백만 원이면 연장 해준다고 해서 계약금까지 지불했다고 한다. 그런데 돈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신문을 보고 우리 사무실을 찾아왔다고 했다. 상담을 하면서 알아보니 그는 귀국하지 않고도 1년10개월 연장이 가능한 조건이었다. 그는 식당에서 계약 체결하고 출입국에 취업신고 한 상태로 일하고 있었다.      내가 정상적으로 충분히 연장가능한데 왜 귀국하지 않으려고 돈 지불하면서까지 연장하려고 했냐고 물었더니, 사람들이 가야 된다고 해서 연장이 되는 줄 몰랐다고 했다. 계약을 체결해도 제조업만 가능하고 식당은 안 되는 줄로 알았단다. 계약금 20만원은 받지 못한다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너무나 안타까웠다. 아직 새파란 30대 젊은 친구인데 단 한번이라도 출입국에 가서 직접 상담을 받거나, 1345에 문의를 했었다면?….     가끔 신문기사들을 보면 일부 대행사들에서 과대수수료를 받는다거나, 동포들을 돈 취급을 하고 있다는 등등 여행사나 행정사사무실에 대한 안 좋은 기사들을 접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극소수의 사무실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일 때문에 동포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대행사들의 이미지를 안 좋게 만들어서 가슴 아프기도 하다. 또한 극소수인 그런 사무실로 인해 동포들이 피해를 당하는 것은 더구나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처럼 마음 아픈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동포들도 달라져야 된다는 생각이다.    동포들은 한국에 관광하러 온 것도 아니고 소비하러 온 것도 아니다. 대부분 동포들이 한국에 돈 벌러 왔고 친인척 찾아 여기서 거주하려고 왔다. 그만큼 우리 동포들 자신이 이제는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외국인이 아닌 한국에 장기체류하는 거주자의 생각으로 살아갈 필요가 있다. 인터넷시대이고 컴퓨터만 켜만 많은 정책들이 오픈 되어 있는데 하루에 몇 분의 시간만 투자해도 우리의 체류에 도움 되는 정보를 충분히 접할 수가 있다. 여기서 컴퓨터를 몰라도 된다. 우리 동포들을 위한 신문만 20여 종 된다고 한다. 신문내용들만 잘 살펴보아도 출입국정책을 충분히 인지하고 도움 받을 수 있다. 글을 잘 몰라도 된다. 1345에 전화를 하면 상담원들이 너무나 상세히 상담을 잘 해준다. 지금은 예전처럼 상담 대기시간이 긴 것도 아니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보면 동포들이 너무 많은 것을 모르고 사무실을 찾아오기 때문에 서류대행만이 아닌 상담을 해야 할 시간이 더 많아진다. 가끔씩은 대행사마다 하는 말이 다르다면서, 정확하게 알려주어도 믿지 못하거나 반복해서 물을 때면 답답하기도 하다.     이제는 과대수수료를 내지 않도록 동포들이 스스로 변해야 할 시대이다. 대행사들에 대한 불만보다는 동포들 스스로가 하나하나 부딪히면서 답을 찾고 중국이나 출입국에 가는 불편함을 덜기 위해 대행사를 찾는다면, 동포들과 대행사들 사이의 불미스러운 일들도 줄어들 것이다.
6    중국동포라는 브랜드로 승부해야 댓글:  조회:1381  추천:0  2013-05-19
    브랜드라는 단어는 이전에는 제품의 상표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제품의 차별화를 가리킨다. 지금은 브랜드가 경쟁력시대이다. 브랜드가치에 따라 제품의 가격이 달라진다. 국가도 브랜드다. 그래서 한국물건이라면 믿고 사는 세계인들이 많다. 신용사회로 발전되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그만큼 세계적으로 브랜드가치를 높였다는 것이다. 필자는 동포사회도 이제는 브랜드로 승부해야 된다는 생각이다.    하루가 멀다하게 중국이 발전되고 있는 현실이 보여주다시피 중국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세계에서 3번째로 넓은 땅, 16억 인구에 계속 오르는 GDP 경제상승률을 보면 어느 방향이든 발전이 가능하다. 중국은 세계2위의 경제대국인 동시에 한국의 최대 교역상대국이다. 지금까지 대중국 무역은 중간재를 수출하여 중국에서 가공을 하고 제3국으로 수출하는 가공무역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런 발전과 발전가능성을 공존하는 현실에서 중국동포들에게는 지금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많은 동포들은 눈앞의 이익만 우선시하고 미래지향적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한국사회에서 동포들에 대한 평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동포라고 하면 3D업종에서 힘들게 일하면서 돈을 벌려고 온 근로자이고 한국인들의 일자리를 빼앗고 무질서한 조선족이라는 이미지를 남겨질 뿐이다.    중국동포들은 중국 16억남짓 인구에서 200여만 조선족이라는 소수민족으로 살아왔다. 그래도 백의민족의 문화와 예의범절을 지켜오고 한글을 고수하면서 민족성을 지켜왔다, 지금은 5천만 인구밖에 안 되는 한국사회에 50여만 동포가 살고 있다. 이제는 동포사회도 변할 때가 되었다. 중국동포는 중국어에 익숙하고 한국어에 숙련된 그 어느 나라 사람들도 따라갈 수 없는 지적자산을 갖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자라온 문화 환경으로 중국의 법률과 사회시장에 익숙하고 오랜 한국생활로 한국사회에 대해 그 어느 나라에서 온 외국인보다 차별화된 브랜드다.    지난 2012년 5월 2일 한·중 FTA 협상개시가 선언되었고, 제1차 협상이 5월 14일 진행되었다. 이로써 한국은 한·EU FTA와 한·미 FTA에 이어 중국과의 FTA 협상이 진행됨으로써 세계 3대 경제권과 FTA를 체결하는 전 세계 유일한 국가로 발돋움하게 되다, 이제 FTA협상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중국동포 브랜드가치도 훨씬 높아질 것이다.    3년체류만기나 5년 만기가 되어 중국에 갔다 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말한다. 중국은 물가가 올라도 너무 올라서 한국보다 더 비싼 것도 많더라고,이제는 놀아도 한국에서 놀아야겠더라고...이렇게 말하면서 발전된 중국경제성장앞에서 한숨을 내쉰다.    이제는 한숨으로 세월을 보낼 때가 아니다. F-4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하고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다고 불만으로 살아갈 것이 아니다. 프로강사교육, 중국무역, 관광통역 가이드, 간호사, 면세점 등등의 많은 교육프램그램으로 동포들을 손짓하고 있다. 이런 교육들은 단기적으로 이익창출을 못할 뿐만 아니라 일시적인 시간과 투자를 필요로 한다. 하지만 100세 시대에 진입한 현실 앞에서 우리 동포들이라고 나이들어서도 현장에서 일하고 청소부나 하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는 없다. 중국어와 한국어를 알고 중국과 한국문화에 익숙해진 우리는 중국동포라는 브랜드로 나만의 기업, 나만의 사업 등등 나만의 것을 만들어서 멀리를 내다봐야 한다. 중국동포라는 브랜드를 승화시켜서 한국사회에서 이미지를 높이고 중국동포가 한국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을 보여주어 중국동포에 대한 이질 된 감정이 없어지는 그런 날이 하루빨리 왔으면 좋겠다,
5    성심을 다하면 귀인을 만나는 법 댓글:  조회:2151  추천:2  2013-05-16
   여행사를 운영한지도 어언간 강산이 한번 바뀔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사람들은 아직도 나를 ‘사장님’이라는 직함보다는 “老师:선생님”라고 부르는데 더 익숙해진 듯하다. 돌이켜보면 한국에 체류하는 동안 교사생활을 그만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지금도 한국회사에 중국어강의를 나가고 있으니 말이다.    2002년 비즈니스비자로 한국에 왔을 때 나는 통역이나 중국시장조사관련 일을 시작했고 2004년부터는 여행사를 운영하게 되었다. 당시 여행사가 우후죽순처럼 많은 상황에서 외국인으로서 내가 자리 잡는다는 것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여행사사업이 그렇게 생각처럼 순조롭게 되는 것도 아니고 사업의 지속성이 없었고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투잡으로 시작했던 것이 중국어 과외였다.     처음에는 안산에서 서울 충무로까지 왕복 4시간씩 허비하면서 중국어 가르치는데 열과 성을 다했다. 시간당 수강료도 얼마 되지 않아 수입에 비해 힘들고 지칠 정도였다. 그래도 기뻤다. 친척 한사람 없는 한국 땅에서 나를 믿고 나의 지식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최선을 다했더니 나의 열정에 감동되어 그분은 안산에 살고 있는 지인 한 분을 소개해주셨다. 그렇게 인연이 되어 안산에서 조금은 편하게 중국어 과외를 할 수 있었다. 서울까지 다니던 시기를 생각하면 안산에서 수업은 땅 짚고 헤엄치기처럼 너무나 편안했다. 나는 그 고마운 마음을 학생한테 더 정성들여 글 가르치는 것으로 보답했다. 나는 학생의 컨디션에 따라 때로는 10분, 20분씩 수업시간을 더 늘리기도 하고 때로는 학생에게 내 돈으로 맛 나는 음식을 사주면서 음식문화체험학습을 시키기도 했다. 학생어머니는 내가 50분 시간을 칼같이 끝내는 여느 과외선생님들과는 달리 진실 된 마음으로 학생을 책임지고 가르쳐줘서 너무 고맙다고 했다. 학생어머니를 통해 나는 그 학생이 다니는 학원에 중국어 강사로 취직하게 되었다. 학원 강사를 하려고 남들은 몇 번씩 면접보고 이력서 넣고 한다는데 너무나 쉽게, 그것도 생각조차 하지 않았는데 기회를 얻다보니 내 기쁨은 두 배도 아닌 백배 천배였다. 학원에는 학생반과 성인반이 있었는데 나는 시키는 대로 수업을 맡았다. 학원에서 간단한 번역 같은 것을 의뢰하면 나는 무보수로 해주기도 했다. 그래도 기분이 좋았다. 재미있었다, 기뻤고 즐거웠다. 뜻밖에 학원에서 내가 가르치던 성인 반 학생이면서도 (주)00회사 교육담당이셨던 이차장님을 통해서 그 회사 중국어 출강을 할 수 있게 스카우트되었다. 당시 자가용이 없었던 나는 강의하러 버스로 이동하다보면 가끔씩 사유로 출발이 늦어질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나는 공단지역이라 강의료에 맞먹는 택시비를 지불하면서도 수업시간을 맞춰 약속을 지키곤 했다. 그것이 인연이 되고 행운이 되어 그 후로부터는 시간당 수강료도 높은 회사출강만 하게 되었다.   그동안 나를 알고 계셨던 분들은 내가 하는 수업에서 힘이 되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본인은 물론 가족과 동료, 가까운 지인에 이르기까지 내가 하는 여행사사업을 도와주었다. 그들은 나의 제자이면서도 고객이었고 영업부장이였다. 제자들로부터 여행사고객을 소개받다보니 어쩌면 오늘까지도 老师라는 호칭이 더 익숙해지는 것은 당연한 거 같다.    나는 그들을 ‘귀인’ 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나를 운이 좋다고 한다. 그렇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이 좋은 운을 만들고자 나의 순수하고 진실 된 마음이 뒷받침 되었기에 가능했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리고 사람들은 나보고 "귀인"을 잘 만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귀인을 만나기까지 나는 그들에게 슈퍼우먼 같다는 별명을 가질 만큼 최선을 다해 뛰고 또 뛰었다. 원하는 것보다 맡겨준 일에 최선을 다하는 나를 보고 그들은 하나같이 돈 욕심내도 괜찮을 텐데 너무나 순진하다고 했다. 하는 일을 늘 핑계 없이 즐기면서 하는 내 모습에 함께하는 그들도 기쁘다고 했다. 이런 나의 마음이 그들에게 좋게 보였기에 그들은 내가 하는 일이면 무조건 도와주려했고 내가 하는 일에 디딤돌이 되어 주고자 했을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누구나 인간관계를 떠나서 살수 없고 사람과 사람사이는 신비할 정도이다. 어떤 사람은 사랑의 실로 이어질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악연의 끈으로, 어떤 사람은 우정의 끈으로……, 이렇게 많은 사연들이 얽히고설키는 것이 인간세상이리라. 중국동포들은 한국에 오는 순간 우리한테는 비록 언어는 통한다고 하지만 모든 것은 생소할 따름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마음대로, 원하는 수당을 받으면서 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는 조금씩만 욕심을 줄이고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꼭 좋은 일이 많이 생길 것이고 ‘귀인’이 나타날 것이라는 생각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것이 여행사 운영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프로강사가 되고자 오늘도 이 밤을 지새워 가면서 교학연구를 놓지 않는 이유인거 같다
4    불통(不通)하면 진통(陣痛)한다 댓글:  조회:1919  추천:4  2013-03-29
    중국무역 등 중국으로 진출하려면 중국어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죽을 때까지 배워도 다 배우지 못한다는 중국어로 한국인이 비즈니스를 하려면 언어의 장벽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런 언어의 장애는 통역으로 대체하게 되는데 통역 대부분이 중국에 살고 있는 조선족이다. 그런데 필자는 통역을 원망하는 한국인, 한국인을 비방하는 통역을 너무 많이 보아왔다. 서로 상부상조하면서 한중무역발전에 공조해야 할 한민족이거늘 왜 이런 아이러니한 일들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까?   한국인들은 조선어와 한국어가 같다고 착각한다. 조선족들은 중국어 교육을 받으면서 중국에서 살아온 것만큼 한자를 직역해서 조선어로 배워왔기에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일 없어요", "선생질"등 단어들을 들으면 거부감을 표시하면서 통역의 자질을 의심하는가 하면 "드라이브"와 "드라이버"를 혼동해하면 통역을 무시하기도 한다. 순수한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콩클리쉬"를 사용하는 한국인 자신들의 자질문제에 대한 반성은 없다. 언어가 같다고 착각할 것이 아니라 생활해온 환경에 대한 이해부터 해야 된다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중국에 대한 이해도 너무 부족하다.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은 발전도상의 나라라고 인식하고 있다. 후진국이기 때문에 인건비가 싸고 제품의 질이 나쁘다는 고정관념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동북지역에 몇 번 다녀온 경험이 있으면 중국을 다 아는 것처럼 본인의 눈높이로 시장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무조건 싸다는 생각으로 시장조사를 시작하는 한국인들은 통역이 말하는 가격에 처음에는 놀라다가 나중에는 통역이 커미tus을 챙기는 것이라고 인지해버리는 경향까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중국 연길에서는 인민폐 20원이면 택시로 시내에서 불편 없이 이동할 수 있지만 상해에 가면 웬만한 이동거리에 인민폐 100원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듯이 중국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분만 보는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필자는 중국이 어떻더라고 논하는 한국인들에게 늘 “중국 어디에 가보신거죠?”라는 질문을 한다. 왜냐하면 중국 전체가 그렇게 좋거나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통역으로서의 소질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하고 한국인들을 만나면 돈 벌 기회가 생겼다고 돈욕심을 앞세우는 일부 통역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필경 소수일 뿐이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인들이 중국과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진행하려면 우선 통역들과 소통을 앞세워서 그들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만 된다는것이다.   요즘은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한국에서도 소통이 시대의 화두로 떠오를 정도인데 중국이라는 외국에서 통역과의 소통마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비즈니스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통역과의 소통을 이루려면 중국에 대해서 우선 잘 알아야 하고 중국에서 살고 있는 조선족에 대한 이해도 깊이 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통(通)이 안 되면 결국 진통(痛)으로 돌아오는 것은 한국인 몫이기 때문이다.
3    달라진 아이의 일기 댓글:  조회:1977  추천:6  2013-03-24
                                             요즘은 5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한다. 이처럼 세월이 빨리 흘러서인지 우리 사회도 빨리 움직이는 것 같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절주도 빨라진 것 같다. 모두가 숨 가쁘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음의 여유 없이 무언가 원하는 것을 바라고 종종걸음을 걷는 것 같다. 오죽했으면 광고에마저도 빠름, 빠름, 빠름이라고 했겠는가? 이런 시대의 흐름을 발맞추어 살아가려는 것은 인간의 본능인 듯하다. 빠르게 흐르는 시대의 변화에 적응이라도 하듯이 20여 년 전부터 우리 동포들도 한국행을 선택했고 그 속에서 지금은 50여 만 동포가 숨 쉬고 있다. 그들이 한국행을 선택한데는 공동한 목표가 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닌 내 아이를 보다 잘 먹고 잘 살게, 그리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는 동포정책이 좋아져서  H-2소지자 자녀는 만18세까지 한국에서 부모와 동반체류가능하게 되었고 만25세 이하도 출입국에서 인정하는 국가기능사자격증만 취득하면 F-4비자로 장기체류할 수 있는 길이 열려져 있다. 이처럼 좋은 정책이지만 많은 가족들의 자녀 초청서류를 접수할 때면 나는 마음 아픈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제 겨우 13살인 딸이 부모 몰래 중퇴하여 전학수속증명서를 떼 오지 못해서 안타까워하던 김00의 어머님, 아빠와 엄마는 전화통화만 하면 싸우니까 중국에서 살던 한국에서 살던 사는 재미가 없다고 하던 20살도 되지 않은 박00의 한숨소리는 지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더욱이 이런 일들은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에 더욱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나도 10여 년 전 한국에서 여행 사업을 해보고자 중국에 아이와 남편을 남겨둔 채 홀로 한국 땅을 밟았다. “    오늘 어머니가 한국에서 왔다. 어머니가 해준 밥이 이렇게 맛있는 줄 몰랐다. 한국에 가지 않으면 안 될까? 나는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하면 길가에서 자도 되는데….” 이것은 당시 8살밖에 되지 않은 아이의 일기장에 발견한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있노라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가슴이 뭉클해났다. 한국에 가 있는 동안 어린아이의 가슴에는 보이지 않는 멍이 들고 있었던 것이다.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지 않은가!”    나는 그 일기장을 보고 많은 깨달음을 얻고 얼마 안 지나서 아들을 한국에 데려왔다.    한국에서 아이를 공부시키며 생활한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문화가 달라 학교생활 적응에 힘들어하는 아이 때문에 아픔을 겪어야 했고, 남들처럼 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학원도 보내게 되니 경제적인 부담도 커져만 갔다.  그러나 세 식구가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행복했다.     일에 지쳐 집에 오면 효도 안마를 해주는 아이의 따뜻한 손길, 날이 너무 덥다며 팥빙수를 만들어 주는 아들, 중국에 있을 때는 친구가 최고인줄 알더니 주말이면 가족과 함께 할 줄 아는 가정적이 되어버린 남편.     그동안 한국에 정착하면서 나름대로의 고민을 하면서 살았기에 지금 생활에 만족하며 사는지도 모르겠다. 가족 모두가 한국에 정착한 지금, 아이는 벌써 중학교 3학년생이 되였고 부모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던 일기장은 가족과 함께한 즐거운 이야기들로 채워져 가고 있다.    세상에 자식농사만큼 소중한 것이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인데 현실에서 눈앞에 보이는 돈보다는 자식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줄 수 있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은 없을듯하다.      한국에 와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 주말부부가 아닌 식구들이 함께 하는 그런 가족이 많았으면 좋겠고 기능사격증 따기가 힘들다고 중국에 다시 가버리는 아이들이 없었으면 좋겠다. 아직은 한창 공부할 20대인데 돈 벌러 보내는 부모보다는 30대를 위한 준비로 자아를 찾을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주는 부모가 많았으면 좋겠다.    부모사랑을 먹지 못하고 자라온 동포4세이다. 이제 겨우 가족이 함께 했는데 또다시 돈으로 인해 아이들이 받는 상처가 없었으면 좋겠고 부모와 함께 있어 행복한 아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지금도 부모들의 코리안 드림으로  방황하고 심적으로 지쳐있는 아이들이 나의 아들애처럼 행복한 가정애가 담긴 일기로 바뀌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2    혜택은 정책을 따르는자에게 댓글:  조회:2034  추천:2  2013-03-24
2007년3월부터 취업방문제가 실시되였다. 그로인해 올해는 년초부터 취업비자 5년만기 귀국자가 많이 나타났다. 그래서인지 올해는 5년만기시 집에 가지않고 연장할수 있는 방법이 없는가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고 상담도 많이 했던거 같다. 돈 지불해도 괜찮으니 연장할수 있는 방법없냐는 질문을 받을때마다 나도 같은 동포로서 마음이 아프다.그동안 한국생활에 적응할대로 적응한 많은 동포들에게 누구나 자유롭게 왕래할수 있는 재외동포법이 중국동포들에게도 하루빨리 실행되였으면 생각을 가져보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재외동포법이 통과되지 않은한 동포들에게 꼭 하고싶은것은 정책을 따르고 정책의 혜택을 받으라고 말하고 싶다.     정책을 알고 정책을 따르면 정책의 혜택을 받게된다.     1. H2비자로도 영주권신청 가능하다. 황**는 2007년도 6월에 H2취업비자로 입국후 외국인고용지원센터에 계약체결후 출입국에 취업신고를 하는 정상적인 절차로 연속해서 4년이상 근무한조건으로 지난해에 영주권을 취득했다. 그도 건설현장에 다니면서 큰돈을 벌고싶은 욕심이 생긴것도 한두번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영주권을 따게 되니 마음놓고 하고싶은 일을 할수있고 5년만기가 되여온 아내도 결혼비자 허가를 받고 가족도 함께 할수있어서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르겠다고 했다. 생각할수록 정책을 믿고 따르기를 잘했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2. 개인간병인으로 일하던중 3번이나 자리를 옮겨도 F4변경 가능하다. 박**는 입주해서 개인간병으로 일한지 3개월만에 환자가 사망했다. 그집을 나와서 2주만에 다른집을 찾아 입주해서 개인간병으로 중환자였던 그 환자마저 2개월도 지나서 세상을 떠났다. 청천벽력같은 현실앞에서 이거 뭔 팔자냐고 앞이 캄캄했지만 그래도 아픈사람을 도와주는것을 기쁨으로 여기고 열심히 일한덕에 열흘도 되지않아 새로운 입주간병인 일을 찾아서 8개월정도 일을 하고 있고 F4로 변경할수 있었고 이제는 영주권까지 욕심내보고 싶다고 한다.주위사람들은 같은집에서 일한것도 아닌데 어떻게 F4변경 했냐고 질문한다고 했다. 박**는 입주간병인으로 들어갈때마다 고용계약체결했고 출입국에 취업신고도 제때에 했던것이다. 뿐만아니라 이미전 일했던 고용주들도 진실되게 일하는 그녀의 착한 마음에 감동되여 추천서와 재직경력서등서류도 적극적으로 마련해주었던것이다. 그녀는 힘들고 지치고 번거로웠지만 번마다 정책대로 취업신고하고 일해온 자신이 너무 대견스럽다면서 영주권욕심도 내고싶다고 했다.   3. 2010년도 하반년부터 주말을 이용해서 9개월교육 수료받으면 H2비자를 취득할수 있는정책이 있었다.그때 모두들 돈벌이에 열중하고 교육은 형식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였다 김**는 재간은 배우면 내것이 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공부를 해서 전기기능사자격증을 취득했다. 올해 기능사자격있으면 F4변경해주는 정책이 나오자 그는 기쁜마음으로 체류자격변경했고 지금은 당당해서 회사에서 기술공으로 여유있는 마음으로 일할수 있어 너무 즐겁다고 한다.   이외에도 제조업에서 연속2년이상 근무한 조건으로 아내를 초청해서 아내가 얼마전에기능사자격증을 따서 F4로 변경할수 있어서 저렴한 돈으로 가족이 함께할수 행복하다는 박**, 5년만기는 다가오고 고향에 돌아갈상황은 되지 못한 황**는 나이 50이넘었지만 3개월동안 두문불출하고 공부해서 젊은애들도 따기 힘들어하는 정보기기운용기능사자격증을 따고 F4로 변경할수 있어 요즘은 그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살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정책을 알고 정책대로 하면 많은 혜택의 수혜자는 동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지않은 동포들이 아직도 정책보다는 눈앞의 이익에 더 관심갖는이들이 많다. 그렇지 안으면 과대대행료를 내서라도 쉽게 본인이 원하는것을 이루려고 하는 마음을 많이 갖고 있다.,
1    법과 질서를 지키고 당당해졌으면 댓글:  조회:1786  추천:1  2013-03-24
외국인투자비자로 입국해서 여행사를 운영한지도 벌써 10년이 된다. 몇 년전에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체류기간연장하러 출입국에 갔는데 담당직원은 서류를 보지도 않고 "식당에서 일하는거죠?"하면서 3개월밖에 연장이 안된다고 했다. 진짜로 사업하고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황당했다. 그때는 투자비자를 빙자해서 입국 후 식당이나, 제조업 등 단순업종에서 일하는 외국인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지만 외국인에 대한 무시와 편견도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이다. 이런 아픔을 직접 체험하면서 한국생활을 해왔던 나는 동포들에게 체류자격이나 체류기 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다는 것을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안다. 이런 이유로 나는 여행사를 운영하면서도 모든 동포들이 자기의 권리를 찾고 보호받고 혜택 받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아 조사과에 가서 조사를 받거나 강제출국명령을 받는 것을 보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동포정책이 아무리 좋아진다 해도 법을 위반한 사람에 대해서는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요청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국동포 김모씨는 제조업에서 표준근로계약을 체결하고 1년이상 근무하여 F-4로 체류자격변경신청을 했다. 그런데 불허되었다. 원인은 1년전에 음주운전을 하여 200만원 벌금을 했기 때문이다. 출입국관리법에는 3년 이내에 2백만 이상 벌금을 하면 F-4신청할 수 없고 3년 전이라 해도 법을 범한 약식명령결과에 따라 불허통지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박모씨는 기능사자격증을 취득하고 F-4로 체류자격변경신청을 했다가 출국명령서를 받았다. 억울하다고 생각했지만 자기가 이미 저지른 범죄사실 앞에서 출입국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4년전 마작을 놀다가 300만원을 벌금한적 있고 2년 전에는 폭력으로 150만원을 벌금한적 있었다. 출입국관리법에는 3백만 이상 벌금을 하면 출국명령을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고 모씨는 출입국에서 50만원짜리 벌금통지서를 받고 벌금을 납부하지 않는 방법이 없냐고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1년 넘게 체류지변경신고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출입국관리법에 의하면 체류지는 변경된 후 14일 이내에 변경신고를 해야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개인집에서 가사도우미로 있던 최모 여인은 F-4체류자격변경신청을 접수시킨 후 출입국에 출석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당황한 마음에 우리사무실로 찾아왔다. 최모 여인에게 벌금한적이 없냐고 몇 번이고 물었지만 없다고 했다. 그러면 겁내지 말고 출입국에 출석하라고 했더니 5년전에 3만원벌금을 낸적이 있었다고 했다. 무단횡단을 하여 벌금을 낸 것이고 오래전 일이라서 잊고 있었다고 했다. 물론 조사받고 반성문을 쓰고 체류자격변경을 했지만 사소한 사건을 겪고 최모 여인은 절대로 신호등도 위반하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영주권 신청을 했던 오모씨는 출입국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범죄를 저 지른 것이 없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불안한 마음으로 출석했다. 재정입증서류로 통장을 제출했는데 마사지업소에서 근무하고 월급을 받았던 것이 확인되었던 것이다. 다행히 일한지가 2달도 안되었기에 처분을 받고 6개월 후에 재신청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동포2세인 강모씨는 국적신청을 해서 F-1비자를 받게 되었다. F-1비자는 일을 하면 안된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100만원 벌금을 했고 그 후 고치지 않고 또 불법취업을 하다가 신고되어 출국명령을 받았다. 동포들이 하루 12시간씩 힘들게 일하면서 출입국관리법을 터득하고 정책을 알고 이해하기는 쉽지는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때에는 가까운 여행사나 행정사에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체류지변경신고 같은 것은 주소지관할구청에 가면 과태료를 지불하지 않고 신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하면 국적신청 후 3개월이 지나면 H-2취업비자로 변경이 가능 한 정책도 있다. 나는 사무실을 찾아오는 모든 동포들에게 정책을 잘 알지 못해서 불이익을 당할때면 그 어떤 노력으로라도 도와주고 싶고 또 도움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동포들한테서 친절하게 도와주 어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때면 하는 일에 성취감을 느끼면서 얼마나 행복한지 모르겠다, 하지만 음주운전, 마작, 환치기, 불법취업, 폭행, 무단횡단, 무면허운전, 위장결혼 등의 법과 질서를 지키지 않고 돈을 줄테니 도와달라고 할 때면 가슴이 미여지듯 아프다. 위의 예와 같은 범법사실들은 모든 동포들이 체류기간이 연장이나 체류자격변경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아직까지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하여 마음이 더 아프기도 하다. 법과 질서를 지키는자 만이 법의 보호를 받으면서 인권을 요구하고 자유를 원해야 되는 것이 아닌가싶다. 어느 나라에 가서도 범죄행위로 인해 받는 불이익은 본인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 다시한번 해본다. 올해 10월기준으로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등록외국인이 140여만 명라고 한다. 한국은 분명히 다문화국가로 진입하고 있다. 이로 인한 의사소통의 장애와 문화차이에 대한 이해부족은 한국인과 외국인들이 서로가 넘어야 할 벽이라고 생각한다. 그 가운데서 60만여명이 되는 중국동포는 언어가 통하고 고국인 것 만큼 상대적으로 문화차이가 적은 우점을 갖고 있다. 이런 강점을 갖고 있는 중국동포들은 솔선수범하여 한국사회가 모든 외국인에게 갖고 있는 편견과 소외에 대한 시선을 바꿀 수 있도록 법과 질서를 지키고 당당하게 살아가는데 기여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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