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기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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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531 ]

511    앞으로 살아갈 당신에게(1) 댓글:  조회:800  추천:0  2024-10-12
안내말: 근년에 필자는 105세(일본의 세이로카 국제병원 원장 히노하라 시게아키)현역의사가 죽기전에 꼭 남기고 싶다는 말을 묶은 책 “앞으로도 살아갈 당신에게”를 인생필독서로 읽고 있다.  이 책은 히노하라 시게아키가 쓴 많은 책중에서 죽음을 앞두고  어느분의 인터부에 응해 꼭 한 달을 거쳐 36 개 물음에 화답한 내용을 “앞으로도 살아갈 당신에게”로 정리한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필자는 책의 구구절절에 푹 빠져 들면서 단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독자들과 함께 공유하고저 오늘부터  36개 질문을  기를 나누어 추려서 올린다. 필자는 올리는 글의 순서를 36번부터 거꾸로 시작함을 알린다.                                             ㅡ편자 문; 선생님처럼 평생현역으로 일하고 싶는데 어떻게 해야 나이에 상관없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답; 나는 100세가 넘어서도 병원 현장에서 의사로 일했다. 당신은 그걸 가리켜 생애에 현역이라고 하는 모양인데 부러운 듯이 말해줘서 기쁘지만 지금 이 순간 나의 모습이 여러분이 상상하는 현역 의사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지금 나는 몸이 아파서 직장인 세이로카 국제병원에 매일 출근하며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 전국을 돌면서 열었던 강연회도 이전만큼 할 수 없다. 당신이 상상하는 현역과는 다를 수 있지만 그래도 나는 스스로 여전히 현역이라고 생각한다. 라이프위크(일생을 걸고 추구하는 목표)라는 말이 있는데 일을 한다는 것은 나에게 삶 그 자체다.  회사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얼마를 버는지 그런 것이 일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얼마나 사회에 환원할 수 있는가, 좀 더 말하면 자신에게 주어진 생명이라는 시간을 얼마나 남을 위해 쓸 수  있는가가 내게는 일을 한다는 의미다. 그것은 사명이라고 바꾸어  말할 수 있다. 특정한 누군가를 위해서도 좋고 사회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도 좋다. 리타(利他)정신이 있는데 한 인간에게 있어 일에 끝은 없다.  그렇게 생각하기에 이렇게 훨치어 생활을 하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는다. 자신의 사명과 마주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삶과 일하는 것이 일체화하는 그런 상태가 가장 리상적인 현역의 모습이다. /오기활                              2024.10.12.  
510    로인의 성(性) 유감(有感) 댓글:  조회:618  추천:0  2024-10-09
몇 해 전 한국 텔레비를 시청하며 화제에 오른 것인데 사연은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칠순 안팎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연행된 안건이다. 이 두 분은 배우자가 없이 자식들에게 얹혀 살았는데 이들은 동네 경로당과 산책길에서 만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아들에게서 받은 10만원 수표 3 장을 할머니게보이며 돈자랑을 했다. 용돈이 쫄리던 할머니가 부러워하는 눈치를 보이자 할아버지는 이 돈을 주겠노라며 둘이 재미를 보자며 할머니를 꼬드겼다. 이를 할머니가 승낙하기에 두분은 은밀한 장소를 찾아 가서 일을 벌렸다. 그런데 할아버지의 아무리 노력해도 일을 “성사”하지 못하고 아쉽게 포기해야 했다.  서로간 옷맵시를 수숩한 후 할머니가 약속대로 돈을 요구하나  할아버지는 “일을 못하지 않았는가”며 불응해 나섰다. 이에 둘이서 심한 언쟁으로 옥신각신 하다가 나중에는 경찰서를 찾아가기로 했다.  이 사건은 결국 경찰서의 중재로 할아버지가 약속한 액수의 절반돈을 할머니에게 주는 것으로 매듭을 지었다.  또 한가지 얘기이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변호사 시절에 하루는 스무살 된 청년과 70이 넘은 로파가 간통죄로 고소당한 안건을 링컨이 접수하게 되였다.  “어떻게 손자와 할머니벌 로파와 사랑이 가능할까?”  는 생각으로 링컨이 “두 분은 어떤 관계입니까?”고 물엇지만 두 사람은 고개를 떨구고 말이 없었다. 링컨은 결론을 미루고 집에 돌아와서 칠순이 넘은 로모에게 사건의 진상을 얘기하고 “어머니,  일흔이 넘은 로인도 사랑이 가능한지요?”고 물었다. 링컨은 어머니가 불가능하다면 무죄로 처리하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어머니의 대답은 뜻밖이였다.  “그럼, 가능하고 말고, 본래 사람이란 겉만 늙는 것이란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이지.” 다음날 링컨은 어머니의 말씀을 참고로 이 안건을 간통죄로 처리하였다. 상기의 두 가지 사건은 우리가 시사 할 바가 크다. 요즘 100세 시대에 여러 가지 로인의 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는데 그중 유독 로인들의 성문제는 홀시되여 아예 론의 하지도 않는 경향인데 이는 “잘못된 것이다.”  기실은 로인들 스스로나 또는 사회 주변에서 로인들의 성문제를 표면에 올리거나 말하자면 꺼려해서 그렇지 로인들의 여러 문제 중에서 성 문제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대낮에도 팔짱을 끼고 다니며 서로 포옹하거나 키스를 해도 전혀 이상스럽게 생각하지 않는데 로인에  대해서만은 리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자녀들까지도 성 얘기가 나오면 부모가 주책이 없다, 망신스럽다며 부정시하고 도외시한다. 심지어 성문제가 상당히 개방된 서구라파에서까지 로인의 성에 리해가 적고 무시한다고 한다.  로인들이 남녀간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지만 남성의 경우는 90세가 넘어도 애기를 낳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60-80세에도 성적인 의욕이 있고 “한 달에 한두번 정도의 성생활을 한다”는 남성이 60%가 넘는다고 한다. 녀성의 경우도 페경이 되면 비록생식할 수는 없으나 성적 요구가 있다고, 녀성로인의 20%가 성 관계를 가진다는 통계가 있다. 정신 의학자에 따르면 “페용성위축의 법칙”에 의해 성기를 안 쓰면 안 쓰는 것만큼 퇴화하지만 계속해서 사용하면 “활용성 발달의 원리(活用性发达的原理)”에 의해 7,80세까지 성욕과 성생활이 유지될 수 있다고 한다. 생리적으로 성적 요구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신적인 욕구가 감퇴되고 삶의 보람을 잃기에 수명이 단축된다고 한다.  [로인의 전화] 상담에서 재혼 상담이나 이성을 소개해 달라는 내용이 47%에 달한다는데 이로보아 로인들이 성 문제, 이성 문제를 얼마나 관심하는지를 알 수 있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남성로인의 경우가 녀성 로인보다 조건이 좋은 편이다.  80세 남성들의 83%가 배우자가 있는 반면에 녀성의 경우 70세 후  배우자가 있는 로인이 13%란다. 게다가 성에 서 남성 로인의  경우가  녀성 로인보다 관대하다. 할아버지가 젊은 녀자 친구와 함께 차를 마이면 눈을 감아 주는데 할머니가 남자 친구와 함께 차를 마신다면 “주책스럽다, 자식 망인이다”... 는 것으로 늙어서도 녀성은 불리를 감수하고 참아야 하는 실정이다.  로인의 성 문제가 이렇게 중요하다고해도 여러 가지 여건상 현실적으로 많은 문저점들이 있다. 자녀들의 립장에서 보면 재혼 문제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부모들의 재혼으로 재산 문제, 부양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물론 경제적 능력이 있는 로인들은 자녀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도 별 문제가 없지먼 대부분의 로인들은 사실상 수입이 없기에 경제적으로 자녀들에게 의존해야 하기에 재혼으로 인하여 자녀들에게 두가족의 부담이 될 수 있다. 로인들에게는 비단 성 문제뿐만 아니다. 나이가 들고 기력이 쇠퇴해지면 삶이 허무해지고 고독해지기 마련이다. 그러한 고독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을 떠나서 말 동무라도 할 수 있고 위로를 받고 싶은 대상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효자도 악처만 못하다”는 옛말까지 있다.  동고동락하는 조강지처가 한 날 한 시에 똑 같이 죽는 경우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로인들이 언젠가는 혼자서 고독하게 지내다가 저세상으로 간다. 이것이 오늘의 로인 문제이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이 길을 가야하니 이는 우리 모두의 문제로 나선다. 우리의 사회가 로인의 성 문제에 대해서 인간의 본질적 욕망이라는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따뜻한 눈길을 보낼 수 있는 인식전환으로 로인들의 성 문제에 합리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일전에 어느 친구가 보내온 “당신은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함께 할 친구가 있습니까?”는 글로 이 글을 맺는다. “당신은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함께 할 친구가 있습니까 ?.   대만에서 ‘미래의 노후’라는 주제로 웹 영화가 많은 네티즌의 공감을 샀다고 합니다.   영화속 줄거리는 산속에서 혼자 사는 노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네명의 자식들은 모두 장성해 교수가 되었거나 해외에 나가 사업를 하고 있고 노인만 자식들이 모두 떠난 산골집에서 혼자 살아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과 손자가 멀리서 찾아온다는 소식에 그는 정성껏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합니다.   하지만..., 곧이어 오지 못한다는 전화를 받게되고 준비했던 음식들은 주인을 잃고 맙니다.   이때, 창밖의 하늘마저 우중충해지고 노인은 친구를 불러 함께 식사 할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누렇게 색이 바랜 낡은 수첩을 한참 동안 뒤적거려도 함께 식사할 만한 친구를 찾지 못합니다.   마침내, 창밖에서는 비가 쏟아져 내리고,  결국 노인은, 부엌 식탁에 앉아 가득 차려진 음식을 홀로 먹게됩니다.   마지막 장면 위로, "인생의 마지막 10년을 함께할 친구가 있습니까? "라는 자막이 흐릅니다.   대만 최고 베스트셀러 작가 '우뤄취안 著, " 우리는 그렇게 혼자가 된다" 는 미래, 나의 자화상은 어떤 모습이 될지 잠시 명상에 잠기게 합니다''.. !   /오기활            2024년 10월 7일
509    주옥같은 고전명언(4) 댓글:  조회:859  추천:0  2024-10-01
과학 서적은 새로운 것을 읽고 문화 서적은 오래된 작품을 읽어라.                     ㅡ 라틴      영국의 작가이자 정치가였던 라틴의 말이다. 라틴은 런던 출생으로 1831년 자유당 당원으로 의회에서 활동했다.  그는 희곡도 썼으며 꼼꼼하게 세부 묘사를 한 소설들을 발표하여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가 과학 서적은 새로운 것을 읽으라고 한 것은 오래된 과학서적에는 낡은 리론이나 시간이 지나면서 오류로 검증된 내용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과학은 늘 진보하므로 가장 최근의 내용을 접하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이다. 이와는 달리 문학서적은 오래된 작품들을 읽을 것을 귄하고 있다. 오래된 작품이란 고전을 말하는데 새로운 문학 작품들 중에는 아직 서툰 것들이 많으므로 수백 수천 년을 내려오도록 꾸준히 사람들에게 읽혀지는 명작들을 읽는 것이 유익하다는 말이다. /오기활           2024년 10월 1일
508    “잔소리와 연설은 짧을수록 좋다” 댓글:  조회:563  추천:0  2024-09-28
지난 13일, 중한합작연변동룡운수유한공사개업식에서 한 한국KSS(주) 윤장회부사장의 연설이 너무나도 인상이 깊었다. “…잔소리와 연설은 짧을수록 좋다는 선인들의 권언을 명심하여 이상으로 발언을끝입니다.” “니먼호?(你们好)”부터 시작된 그의 연설은 한국측대표로서 생각외로 짧았지만 그렇게도 열정적인 박수갈채를 받았다. 사업을 보면 상급지도자거나 어느 부문의 책임자들의 연설효과는 저마다 다랐다. 말하자면 청중들 전원이 기침소리 하나 없이 연설자를 주목하고 연설이 끝나면 그칠 줄 모르는 박수갈채를 보내는 연설이 있는가 하면 이곳저곳에서 기침을 한다든가, 우왕좌왕 수근거리고 신문장을 펼치락 하거나 심지어 연설이 끝나기도전에 박수를 쳐대고 연설이 끝나도 박수조차 없는 연설이 있다. 연설자로서 강연이 잘 된다고 느낄 때만큼 기분이 좋은 일이 없다면 반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을때만큼 비참한것도 없다고 생각된다. 이 두가지 결과를 초래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연설자가 쏟은 노력과 준비의 량에 따라 결정된다. 긴 연설이라 해서 쏟은 노력이 많고 준비가 잘된것이 아니며 짧은 연설이라 해서 노력이 없고 준비가 안된 연설이라고 할수없다. 청중들은 연설자의 강연을 듣고 싶어하고 연설자의 주견과 경험을 알고 싶어한다. 그런데 가치가 없고 청중을 낮게 보거나 이렇게 하라는둥 저렇게 하라는둥 식의 가르치는  연설은 청중들의 호응이 없게되고 청중을 자기와 똑 같은 세계에서 산다고 느끼며 세심한 배려로 그들의 관심과 지성에 경의를 표한다면 청중들의 시선과 마음은 시종일관 연설자를 떠나지 않을것이다. 개업식이 끝난후 필자가 윤부사장을 만나 그의 “짧은 연설”에서 받은 감명을 피로하니 윤사장은 이렇게 얘기했다. “준비없는 연설과 긴긴 연설은 남을 존중하지 않는 실례로 됩니다. 더욱이 절주빠른 경쟁년대에 긴긴연설은 타인들의 사업을 해치기도 합니다.” 이에 비춰 한마디를 부언한다. “녀성들의 치마와 연설은 짧을수록 좋다” /오기활                      2024년 9월 28일
507    사흘에 한 번 마시는 술은 “금”이다 댓글:  조회:485  추천:0  2024-09-25
술은 유태인과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에는  “아침 술은 돌, 낮술은 구리, 밤의 술은 은, 사흘에 한 번 마시는 술은 금이다”고 적혀있다. 하지만 유태인이 정신을 못차릴 정도로 취하는 일을 보기 드믈다고 한다. 그들은 어릴 적부터 와인의 맛을 알고 있단다. 안식일의 즐거움의 일부로 술은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에서는 적당하게 술을 마시면 “머리의 작용을 좋게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술이 도를 지나치면 지혜를 잃게 된다고 훈계하기를 잊지 않았다. 랍비들은 오랜 동안 술은 사람에게는  좋은 약이 되며 술이 있는 곳에는 약이 적어도 된다고 말해 왔다. 그리고 “술은 마음의 문을 열게 하고 사람을 안락하게 만든다”고 말했다.  유태교는 량 극단을 싫어한다. 하기에 현인들은 술의 즐거움을 설명해줌과 동시에 지나치지 말라고 충고해 왔다. 밤이 되면 다른 민족의 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해 골아떨어졌지만 대부분의 유태인들은 적당히 술을 마시고 책장을 뒤적였으며 좋은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뭐든지 알맞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때로는 잘못해서 궤도를 벗어날 때에도 최소한의 균형은 잊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만약 사람이 강점만 지니고 있으면 어떠한 엄한 요구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누구나 약한 면을 지니고 있는 법이다. 알맞게 약점을 보이는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다고 새삼 약점을 장려해여는 뜻은 조금도 없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의 자존심, 탐욕, 게으른 마음 같은 것은 용서되여야 한다. 언제나 긴장만 하고 있다면 사람은 오래 견뎌내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소 약한 것은 오히러 건전하다고 봐야 하겠다.   /오기활                2024년 9월 25일  
506    주옥같은 고전명언 (3) 댓글:  조회:675  추천:0  2024-09-19
질그릇을 걸고  활쏘기 내기를 하면  솜씨가 좋다. 은이나 동을 놓고 내기 하면 주저하게 된다. 황금을 걸고 내기 하면 혼란해진다.                            ㅡ장자   마음이 무엇을 탐하면 무엇이든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우리는 가끔 마음이 잡히지 않아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는 자신이 왜 그런지를 곰곰이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닻줄이 끊겨 이리저리 표류하고 있으면 있을수록 세상이란 마치 너울치는 성난 바다가 되여 버린다. 이는 다 게걸스런 욕심이 마음의 평정을 앗아간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을 정갈하게 다스리려면 욕심을 버려야 할 것이다. 두 개의 사과가 있으면 자신이 다 차지하려고 하지 말고 처음부터 하나씩 나눈다면 그것이 바로 마음을 평정하는 지혜가 아닐까. 마음의 감동은 두 개를 다 차지하려는 욕심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오기활                    2024년 9월 19일
505    {력사수기}그 가족이 보고 싶다 댓글:  조회:574  추천:0  2024-09-13
1965년 어느 날, 도문시 외사과 주동현 과장과 시인사국 책임자로 기억되는 남현우씨가 나를 찾아왔다. 그때 나는 왕청현 석현진 수남대대 7대(달라자) 정치대장과 공청단 지부서기를 담임했었다. 손님들이 나를 찾은 사연이다. “우리가 달라자에 훌륭한 농업기술원을 소개할터니 이사호로 한집(5명)을 받으시요. 이 집은 조선서 왔는데 받으면 시에서 새집을 지어줍니다.”  나는 농업기술원이라는 말에 귀가 솔깃하였다. 그때만도 우리 마을에 전기도 없었던 동네에 시에서 농업기술원을 보내준다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먼저 생산대 대무위원회서 토론한 후, 다시 사원대회를열고 토론 끝에 이사호를 받기로 하겠다고 답을 드렸다. 며칠 후, 우리 생산대는 안창하를 호주로 한 가족 5명을 받았는데 이따라 봄이 되자 시에서 투자한 자금으로 안창하네 새집을 짛었다. 안창하는 46세로 인물체격이 좋고 성질이 활달하고 웃기를 좋아하고 이야기를 구수하게 잘 하였다. 그래서 동네서는 안창하네를 좋아했고 안창하네도 내가 자기네를 받았다는 사연을 알게 되여 나를 무척 좋아하고 존중하였다. 나는 안창하게서 진달래꽃을 꿀에 담궈먹으면 무릎관절에 좋다는 것, 술을 마신 후 솔잎을 씹으면 술 냄새가 안 난다는 것, 속앓이 치료는 박속이 특효라는 것, 돼지방목사료로 뚝감자(돼지감자)가 좋고 겨울철 돼지사료로 매초사로(여름에 생풀을 썰어서 소금을 쳐가며 땅속에 저장하는 청사료)가 좋다는 것을 듣고 내가 생산대 집체양돈장 사양원을 할 때 우리 생산대에서 도문서 처음으로 매초사료를 했다. 우리 생산대에서는 안창하를 받은 첫해부터 그를 농업기술원으로 배치했는데 그는 첫 해에 벼모재배 륙상육묘법을 채용해 우리들의 전통적인 랭상모육모법에 종지부를 찍었다. 안창하의 벼 한육모농법은 한전밭에서 벼모를 자래우기에 마른 일로 노력투자를 줄이고 벼모가 건실하고 모살이가 쉽기에 산량이 높은데서 도문에서 소문을 떨치기 시작한다. 그런데 1966년에 시작된 '문화혁명' 이듬해 초봄에 도문시 해당부문에서 안창하가 조선특무라며 체포해 갔다. 그때 우리는 정말 놀랐다. 그 후 안창하가 6개월이란 격리심사를 받고 문제가 풀렸다며 시 해당 책임자들이 또 다시 안창하를 데리고 우리 마을에 왔다. 해당 일군들의 교대에 따르면 안창하의 원명은 김창하, 김창하는 조선서 어느 농업대학을 졸업하고 어느 고장의 농업기술원으로 배치받고 한창 활약할 때 이미 가정이 있는 상황에서 어느 지역에서 공공버스기사로 일하는 나어린 처녀의 미모에 반해 그녀와 결혼을 약속하였는데 가정이 있는 정황에서 조선서는 안 되니까 중국으로 가자고 계획하고 한창 마땅한 기회를 노리던 중에 중국 흑룡강성에서 왔다는 안 씨 령감을 알게 되어 그를 꼬셔 그와 함께 중국에 가자는 합의를 했단다. 조사에서 밝힌 김창하네 가족은 이러했다. 김창하는 안 씨 령감을 삼촌으로 하고 자기 이름을 안창하로, 자기 아들(김문성, 20대 초반)은 동생으로 안창남으로 개명하고 처녀(경옥매)를 부인으로 하고 로모까지 5명이 조선 남양에서 한동안 체류하며 기회를 찾다기 물이 얼어붙자 두만강을 쉽게 건너 도문에 왔다. 그때 이네들은 이외로 불행을 당하면 집단자살을 시도하고 저마다 몸에 쥐약을 휴대했단다. 그런데 이들이 두만강을 건너자 도문변방부대에 발각되어 구속되였다. 한 동안의 조사를 거쳐 변방부대에서는 이들을 북송하기로 결정하고 어느 날 도문 국경다리로 이네들을 이송하는데 호송하는 전사들의 감시가 엄격한데서 집단자살의 기회를 찾을 수 없자 혼자서라도 자살을 시도한 김창하가 불시에 국경다리 우에서 뛰어 내렸다. 그런데  김창하는 다행히도죽지 않고 다리와 기타 뼈가 골절되어 병원으로 호송, 유혈이 심하여 도문변방부대전사들의 수혈까지 받고 몇 달 간 병원치료를 받고서 신체가 호전되자 도문시정부 해당부문에서 이들을 도문의 교구인 달라자에 배치하기로 결정하였다. 김창하가 구속된 기간에 안 령감은 홍광향 수남대대 흥진툰의 어느 과부와 결혼하여 달라자를 떠났다. 몇 해 후 김창하네 일가족은 조선정부로부터 합벅적인 조선공민으로 인정받고 경옥매가 조선나들이까지 하면서 일가족이 중국서 아무런 걱정없이 정상적인 생활을 하였다. 몇 년후 달라자는 농업생산대로부터 남새생산대로 바뀌고 김창하가 계속하여 남새기술원을 맡았다. 그는 남새기술원을 맡고 몇년 사이에 남새모 영양단지재배, 비닐하우스 남새생산, 지면피복 남새생산, 대면적 비닐피복 남새생산 등 과학영농으로 아주 높은 산량을 따낸 데서 그의 사적과 이름이 연변은 물론 성내에 알리게 되였다. 그후에 나는 연변농학원입학하고 학교를  졸업하고 도문시 홍광향정부와 시정책연구소에서 사업하다가 1984년에 사에 입사하여 도문주재기자로 김창하를 취재하고 추적보도를 하였다.   감농군 김창하   필자는 대표적인 몇 편의 기사를 추려서 이 글에 올린다.   ㅡ 김창하는 74고령에 새해의 농사준비로 현금 5만원을 투자해 사람들의 화제로 되였다. “시내 공장들이 문을 닫고 일군들이 제때에 로임을 못 타다 보니 올해의 남새가격이 형편없이 내렸는데 그나마 잘 팔리지 않아서 장사가 정말 힘들었습니다.” “작년보다 생산량은 거의 곱절 증가했는데 수입은 기대 이하로 줄었습니다.” “비록 수입이 적다고 해도 머리만 잘 쓰고 부지런히 일하면 한 해의 수입이 4, 5만원은 문제없지요.”  김창하 노인은 새해에 원유의 비닐하우스 3채(매 채 500평), 벅돌온실 한 채(500평)에서 비닐하우스 4채, 벅돌온실 한채(200평)를 .더 짓고저 현금 2만 4천 5백 원을 투자해 15톤의 강관, 벽돌, 비닐박막, 세멘트 등 모든 건축물자를 준비하였다. 그리고 1500원을 투자해 닭똥을 사와 새해부터  비닐박막하우스에 몽땅 닭똥을 편 남새농사를 하게 된다. 김창하는 도문서 과학영농의 전도사로 불리고 있다. 집체생산 때에 대전의 오이가 한창 수확철인데 가을배추를 심기 위해 부득불 오이넝쿨을 거두어야 하는 실정에 비추어 그는 '배추모영양단지재배'로 달라자에서 대전오이의 수확기일을 한 달이나 연장시킨데서 길림성에서 처음으로 대전오이산량을 헥타르 당 10만 킬로그램을 따낸 기적을 창조하였다.  “작물과 늘 대화하고 직접 손으로 만지며 느끼고 생각하면서 농사를 지어야만이 제일 적합한 농사법을 찾아낼 수 있다.” 이는 김창하의 반복적인 체험이였다. 김창하는 내년 남새생산계획을 올해에 값이 눅고 잘 팔리지 않던 남새품종을 선택하고 비닐하우스면적이 많은만큼 남새품종을 다양화했다. 그는 제때에 시장정보를 장악하고 해성지구에서 많이 들어오는 남새품종을 줄이였다. “하는 사람이 자신이 있고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누가 무어라고 해도 끝까지 신념을 지키면서 늙어 죽을 때까지 하려고 합니다.”    ㅡ2006년 10월 중순이었다. 이 날도 내가 김창하와 인터뷰를 끝내고 자리를 뜨려는데 김창하가 나에게 가슴속에 품었다는 이런 말을 실토하였다. ―오대장이 노력하여 나의 생전에(그때 나이 84) 우리 희성이를 (김창하가 중국서 낳은 아들) 중국공민으로 만들어주세요. 내가 조선서 데리고 온 큰아들(김문성)은 제 노력으로 중등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도문침직공장에 분배를 받아서 시름을 놓았는데 중국에서 낳은 둘째가 조교라는 데서 한창 나이에 기가 죽어 있소.(그가 중국서 낳은 1남2녀가 모두 조교) ―호금도가 주석으로 된 후 생산대에서 모든 사원들에 게 호금도 주석이 제기한 “8개 영예,  8개 수치’를 암송하도록 포치 하였는데 어느 날 사원대회에서 우리 둘째가 외울순서가 되자 대장이 “희성이는 조교니깐 안 외워도 된다.” 면서 집에 돌아가라고 하기에 희성이가 집에 돌아와 “내가 중국에서 태여났는데 왜 조교냐”며 나에게 성풀이를 하면서 온 밤을 울었다오. 이에 나는 할 말이 없었소.  오대장도 알지만 조선 탈북자를 말하면 우리가 60년대에 탈북했지요. 그래서 근년에 탈북자들을 조직하여 한국으로 보내준다는 사람들(브러커)이 수차나 우리 집을 찾아와서 우리를 한국으로 보내주겠다고 하는데 나는 번마다 “나의 몸속에는 중국인민들의 붉은 피가 흐르니까 나는 중국을 절대 배반할 수 없다”며 번번이 거절했지요. ―어떻게 해서라도 오대장이 내가 죽기 전에 나의 중국아들을 중국공민으로 꼭 만들어주오. ……… 귀로에서 나의 머릿 속에는 “나의 몸 속에 중국인민의 피가 흐른다”, “나는 중국을 배반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이 맴돌아쳤다. 그래서 원고를 쓰기 먼저 주공안국 외사처 리영학 처장에게 김창하네 정황과 그의 간절한 요구를 반영하는 편지를 띄우고도 어쩐지 시름이 놓이지 않아서 며칠 후에 직접 리영학 처장을 찾아가 그로부터 돕겠다는 답복을 받아냈다. 며칠 후 리영학 처장이 해당일군을 도문에 파견하여 김창하네 가족정황을 조사 하고 구체적인 사업을 추진하는 도중에 김창하의 부인 경옥매가 불시에 세상을 뜨자 몇 달 후에 김창하도 사망하다 보니 그들의 생전에 둘째가 중국공민으로 넘었다는 희소식을 몰랐다. (선후하여 세 자식이 모두 중국공민으로 넘었음) 나로 말하면 김창하부부가 생전에 마음에 간직한 한을 풀지 못하고 사망한 것에 가슴이 아팠다   경옥매의 장사비결은 믿음을 주는 것  ㅡ 어느 해의 도문 남새가격이 10년 전의 가격으로 하락하였다. 많은 남새농들이 단 한 푼어치의 수입이라도 더 올리기 위하여 새벽 4시부터 장보러 다니느라 법석대는데 시장과 근 10킬로 떨어진 경옥매(59살)는 거의 매일 아침 7시 반이 넘어야 장마당에 도착하지만 그녀를 기다리던 손님들로 잠간 사이에 그의 채소가 와닥닥 팔린다. 그래서 장사꾼들이 “남도치 노친에게 꿀이라도 묻었는가?”며 부러워했다. 경옥매는 주머니 남새포장이든 상자남새포장이든 내용물의 품질이 겉과 속이 똑 같고 근도 확실하였다. 그러기에 남새를 사는 사람들이 남새포장을 헤쳐 볼 수도 없고 근을 달아 보지도 못했다. 경옥매는 혹시 믿음이 안 가서 기어코 저울에 달아보겠다는 손님들과는 “만약 근이 모자라면 모자라는 근량의 값을 곱절로 경옥매가 내고 근량이 넘으면 넘는 만큼 량의 값을 손님이 곱절로 내야 한다.”는 언약을 맺어야 하기에 손님들이 감히 검근을 못했다. 경옥매의 상업도덕 또한 사람들을 감복시켰다. 한번은 집에 와서 장부를 따져보니 남새 값을 50원을 더 받은 것을 발견하고 끝내 임자를 찾아서 더 받은 돈을 돌려주었다. 이에 돈을 더 준 것을 모르고 있던 젊은 여성이 과실까지 사가지고 그를 찾아와서 “내가 앞으로 잘 살면 꼭 보답해 드리겠습니다.”며 감사를 올렸단다. 이 몇 년래 경옥매네 량주가 장삿길에서 주은 돈 만원과 1000원을 주인을 찾아 준 미담이 사람들의 구전으로 되고 있단다.    고추농사도 다이어트다   김창하의 아들 김희성은 20여 년간의 과학영농으로 외국나들이 못지 않은 돈을 번다고 한다. 김희성은 “적지 않은 농민들은 실패가 두려워 남의 뒤를 따라서 농사를 짓지만 나는 실패를 보더라도 모험을 무릅쓰고 앞선 과학농사를 하기에 다른 집들보다 돈을 먼저 더 많이 벌수 있다”고 한다. 김희성의 과학농사비법은 “남새농사의 핵심기술은 식물의 광합작용을 잘 터득하여 규모화농사에 실용하는 것이다.”이다. 그에 따르면 핵심기술을 장악하기 위해 10년 이상을 탐구했고 또 시험 후 보급을 대면적 규모로 하였다. 어떤 때는 몇 만 원씩 손해를 보기도 했지만 일단 성공할 땐 노력은 곱절 절약하고 생산속도와 수입을 배 이상을 올렸다. “사람의 노력으로 온도는 올릴 수 있으나 햇빛은 만들지 못합니다.” 그에 따르면 그의 남새농사의 노하우가 “햇빛을 충분히 활용해 식물의 광합작용을 과학적으로 이용하는 것.”으로 식물의 광합작용을 빌어 물, 비료 등 모든 영양가를 랑비 없이 열매를 결과하는 식물의 기관에만 공급 하는 것이다. 그가 터득해낸 고추 다이어트농사는 고추나무의 크기와 풍채는 원래의 반으로 줄었지만 달리는 고추개수는 전보다 곱절로 달렸다. 다이어트농사로 시장의 남새 값이 눅을 때는 고추가 적게 달리게 하여 인력과 물력을 절약하고 시장 값이 비쌀 때는 많이 달리게 하여 수입을 올렸다. 그의 고추밭은 4년이나 닭똥비료를 내지 않았지만 닭똥비료를 낸 밭들보다 고추대가 튼실했고 고추산량이 훨씬 높았다. 과학영농으로 그는 자기네보다 15일 먼저 고추모를 낸 집들과 첫 수확기일 같았다.  어느 날, 그가 안산촌의 한 녀성이 남보다 1원식 더 비싼 값으로 고추를 도매하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이튿날 그는 그 녀성을 찾아가 고추종자 출처를 물었더니 감사하게도 고추종자 포장지를 주었다. 그는 이듬해에 그 종자를 인입해 3년간에 “저온에 강하고 맛이 매운”고추종자를 배육해냈다. 그리고 네 번째 해에 자기가 배육한 고추종자를 대면적에 보급 하였는데 연길, 왕청, 훈춘에서까지 찾아와 전부 도매해갔다. “농사는 책대로만 해도 안됩니다. 많이 보고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며 작물과 대화하고 손으로 느끼면서 자기만의 농법을 부단히 창신해야 합니다.’ 이는 그가 '머리농사법'으로 찾은 또 하나의 과학영농철학이다.          문화가 남새 농을 살찌웠다 김창하네 가정은 신문잡지가 오면 서로 빼앗는 '싸움'이 습관화 되었다. 한번은 필자가《길림신문》을 내놓자 김창하(84세)와 경옥매(67세)가 문턱을 사이 두고 '신문뺏기'를 벌였다. 이 가정의 신문독서열이 오죽했으면 다섯 살짜리 손자가 떼질을 쓰다가도 어른들이 신문을 보면 떼질을 멎는다고 한다. 김창하로인은 대부금을 맡아서라도 책을 사서 본다며 해마다 신문잡지 주문에만 4, 5백원을 투자, 몇 년 전에 한 마대나 되는 책을 도적을 맞힌 것이 생각만 해도 아깝단다. 그는 부지런히 읽고 생각하면서 남새모내기법을 터득하였다고 자랑했다. 그는 남들이 '버리는 농사'를 주어서 남들과의 경쟁을 피하며 “남이 없으면 내가 있고 남이 많으면 나는 줄인다.”는 전략과 전 술을 신문잡지에서 배웠다고 한다.   “새해에 신문에서 다시 만납시다!” 이는 김창하 량주가 필자를 바래는 새해의 약속이다. 역시“신문이 없으면 못산다.”는 량주이다. 지금 김창하가 중국서 낳은 세 자식은 모두 중국공민으로 국적을 바꾸고 한국 나들이를 하고 있다. 필자는 김창하네 가족으로부터 사랑은 국적도 년령차도 없는 삶의 추구이자 일종의 모험이라는 것, 문화가 농사를 살찌운다는 철학적 도리를 심심히 터득하였다 이 시각 필자는 연변의 농업발전에 막강한 기여를 한 농업기술자 김창하, “나의 몸에는 중국인민의 피가 슴배여 있다며 탈중국을 포기한 인간맛이 풍기는 김창하,  “신문잡지가 없이는 못산다”는 학습형 농민가족 김창하네가 무척 그립다. /오기활              2024년 9월 5일  
504    감사한 마음은 겸허한 마음에서 우러난다 댓글:  조회:600  추천:0  2024-09-12
사람의 본성에 좋아하는 특징의 하나가 감사를 받는 일이 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일에든 감사하는 습성을 지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볓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듯이 거의 모든 일에는 좋은 면과 바람직하지 못한 면이 있다. 사람에게 강한 면과 약한 면이 함께 존재하듯이. 두루 살펴보면 아니다거나 약하다고 여겨지는 면이 종종 도움이 되는 요소들이 포함되여 있다. 무슨 일이든 덮어놓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감사하는 마음은 겸허한 마음에서 우러난다.  누구나 겸허해지면 자기 스스로 보는 시야가 크게 넓어진다. 여태까지는 상대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나 물건이 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물건을 팔아야 하는 상인이 다름 없다. 허리를 굽히는 상인이 거만하고 잘난 척 하는 상인보다 고객이  퍽 많은 법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굴해지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상대편의 마음에 들도록 무슨 일에든 허리를 굽히라는 것도 아니다. “겸허함은 자랑스러움이라는 샘에서 솟아나는 물”이라 하겠다. /오기활                    2024년 9월 11일
503    교사절에 떠오르는 백부님의 당부 댓글:  조회:1010  추천:0  2024-09-09
지난 1987년에 도문시 홍광소학교에서 조직한 교사절기념행사에 처음 참가한후부터 해마다 교사절이 오면  백부님이 그리워난다. 농사군인 백부는 해방직후에 소학교 교장을 지낸 “기와집 7촌숙”을 늘 외우면서 어느 동네의 누구는 농사를 지으면 해마다 첫 곡식을 찧어서는 첫 인사로 아들을 앞세우고 아들 담임선생님댁에 갖다드렸다며 우리더러 교원을 존중하라고 교시했다. 백부는 교원을 “사회의 스승”이라면서 “스승의 그림자는 밟지 않는다”고 하였다. 1962년 2월로 기억된다.  어느날 백부는 도문중학 2학년에 다니는 나를 데리고 장마당으로 가더니 꿩 한자웅을 사가지고 담임선생님(권경혁,28세)댁에 찾아갔다. 마침 선생님의 량부모님도 자리에 계셨다. 백부는 나더러 선생님의 량부모님과 선생님내외분에게 큰절을 올리게 한 다음 자신도 년하로 짐작되는 선생님의 부모님에게 큰절을 올린후 정좌를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였다. “부모없는 조카를 선생님께 맡겨놓고 언녕 와서 인사를 올리지 못해 크게 죄송합니다” “...교원은 교편(敎鞭)을 잡았다고 하는데 권선생님이 잡은 채찍으로 내 조카를 사람으로 만들어 주십시요…” 아들벌이 되는 젊은 담임앞에서 자세를 낮추고 부탁하던 백부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백부는 교원인 큰 사위(최웅석)도 스승처럼 모셨다. 백부는 친척이나 사회적인 시비를 자신 스스로 가르지 못할것들이 있으면 일일이 기록했다가는 외지에서 사업하는 큰 사위가 방학에 오면 하나씩 내놓고 물으며 정답을 찾았다. 그래서 매형은 장인을 만나는것이 제일 “두렵다”고 하였다. 교원을 존대함은 교원이란 존재가 “사회의 스승”이라는 신뢰뿐만이 아닌 성실하고 공정한 직무를 수행하는 공인(公人)이기때문이다. 교원은 사회적책임과 륜리도덕을 전제로 한다. 교원이 갖춰야 할 도덕성이 없으면 그는 교수기계일뿐 참다운 교사라 할수 없다. 도덕성은 교원자격의 첫째이고 인격과 지적성장의 토대이다. “먼저 인간이 되라”는 말이 있다. 인류의 공정사로 불리는 교원은 초인간적인 몸관리, 마음관리, 정신관리, 얼굴관리 등 인격관리가 필요하다. 일본은 2009년부터 교사의 전문성향상을 위하여 “교원면허갱신제”를 도입하여 매 10년마다 교원자격을 갱신한다고 한다. 교원절을 맞으며 태교에 대한 좋은 글 한단락을 음미해 본다. 잉태가 하늘의 선물이라면 태교는 사람을 만드는 제2의 창조작업이다. 태교는 훈련이 필요하다. 마음훈련, 감각훈련, 사랑훈련 그리고 “좋은 엄마”가 되는 훈련. 좋은 엄마가 좋은 아이를 낳는다. /오기활                  2024년 9월 9일        
502    주옥같은 고전명언(2) 댓글:  조회:704  추천:0  2024-09-07
진실로 날마다 새로워지면 나날이 새로워지고 날로 새로워진다.                      ㅡ 대학 자기계발을 권유한 말이다. 이란 책은 전문이 불과 1천7백 53자로 된 소책자인데 그 내용은 수신(修身), 제가(齐家),치국(治国), 평천하(平天下)의 핵심을 설명한 것으로서 의외로 어렵다. 위구절은 그 안에 있는 말이다.  수신이니 수양이니 하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 남의 강요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단련코자 하는 자각적 노력이 있을 때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것을 설명한 말이 위의 구절이다.  옛날 은라라의 명군인 탕왕은 이 말을 세수대야에 새겨놓고 “수신”의 결의를 새로이 했었다고 한다. 그 세수대야는 일상생활에서 쓰는 것이 아닌 제사 때 손을 씻기 위한 대야였다는 설도 있다.  그야 어쨌든 이러한 결의가 없으면 인간은 제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진보를 바랄 수 없는 법이다. /오기활                                  2024년 9월 7일  
501    “세 개의 문제” 댓글:  조회:655  추천:1  2024-09-01
미국 대통령 링컨의 얘기이다.  어느 아침에 링컨 대통령이 정원을 산책하는데 어린이 형제가 지나가다가 그에게 인사를 했다. 대통령은 손주머니에서 후두 다섯개를 꺼내 한 어린이에게 주면서 둘이 나누어 먹으라고 했다. 그러자 호두를 받아든 동생이 형에게 두 개를 주고 자기가 세 개를 가지려 했다.  형이 말했다.  “아, 내가 형인데 세 개를 주어야지 왜 두개를 주나?”  동생은 지지 않고 자기가 대통령에게서 직접 받았으니까 옆에 있던 사람은 두 개를 받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 모습에 대통령은 벙긋이 웃고 있었다. 뒤따라온 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아이들이 왜 저렇게 다투는가고 물었다.  대통령이 대답했다.  “세 개의 문제로 그런다네”  “세 개의 문제라니요? 무슨 말씀입니까?”  “아니, 세 개의 문제를 모른단 말인가?” 온 세계의 사람들이 바로 이 세 개 때문에 싸우지 않는가? “나는 세개! 너는 두 개!”하고 말이야. 모두들 공평하게 가지면 되는데 무슨 조건을 붙여서라도 세 개가 자기 몫이라고 주장하니까 싸우게 되지. 그때서야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말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이였다.      ㅡ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 인간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다툼은 상대방보다 더 가지려고 하는 데서 비롯된다. 친구, 연인, 가족 등 따지고 보면 모두 좋은 사이인데도 서로 양보하기보다 더 많이 가지려고 하기 때문에 불협화음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 한번 조용히 생각해 보자.  우리가 그러한 립장에 놓였을 때 상대방이 더 많이 가지게 하면 어떨가? 하나 주었으니 하나를 기대하는 욕심을 버린다면 어떨가?  먼저 더 가지려고 하지 말고 먼저 베풀자. 먼저 베푼다면 어떤 관계에서도 따뜻한 웃음꽃이 필것이다. 세상의 모든 문제는 배려와 리해, 사랑이면 다 해결된다. 이런 명언을 명심하자.  “주는 것이 제일 현명한 리기주의다. 가지려면 먼저 주라.” / 오기활                       2024년 9월 1일
500    88년전 올림픽에서 불렸던 조선 응원가(애국가) 댓글:  조회:634  추천:0  2024-08-23
88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비둘기가 날고 성화가 타오른 다음 가 장엄하게 울려퍼질 때 이를 듣고 있던 서양 할머니 한 분이 수건으로 눈언저리를 훔치고 있었다.  (왜 한국 국가를 듣고서 서양할머니가...)하는 의문이 많았다. 리유가 없이는 울 수 없는 법. 이 할버니의 나이는 70세, 국적은 스페인, 이름은 롤리타 탈라벨라 안 이였다. 1936년 8월 1일, 나치스 치하의 베를린 올립픽 개막식이 끝나고 가슴에 일장기를 단 조선선수 김룡식, 리규환, 장리진, 손기정, 남승룡 등이 모여앉아 잡담을 하고 있을 때 재독동포 한 사람이 헐레벌떡 그들의 자리로 달려왔다.  그는 억센 평안도 사투리로 자신이 지었다는 “조선 응원가”를 불러주겠다면서 구깃구깃한 악보 한장을 꺼내 들고 손짓, 발짓, 고개짓으로 장단을 맞추며 그 노래를 불렀다.  조선 웅원가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달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 ... 그 일이 있은 지 보름 후에  손기정 마라톤 선수가 제일착으로 경기장 안에 뛰여들자 관중석 한쪽에서 돌연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서너 명의 재독동포 앞에서 미치광이처럼 두  손을 저으며 지휘하고 있는 이가 바로 보름전에 조선 응원가를 불러주던 바로 그 젊은이였다.  그 젊은이의 이름은 안익태(安益泰), 그는 베를린 올림픽에 조선 선수들이 참가한다는 소식을 듣고서 애국가를 응원가로 림시변통했다.  애국가를 짓게 된 그는 미국 커티스 음악학교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있을 때 로스안젤레스의 한국인 교회를 들른 일이 있었다. 그 교회에서 부른 애국가 곡조가 이별할 때 부르는 슬푼 민요였다.  슬픔을 이겨내고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애국가 곡조가 절실하다고 생각한 그는 전세게 40여 개 국가를 수집 검토해 가며 5년 만에 지어낸 것이 베를린올림픽 개막식에서 처음 불렀던 바로 그 애국가인 것이다.  1948년 한국의 수립과 더불에 그 노래가 정식 한국의국가로 채택되였을 때 안익태는 리승만 대통령에게 이런 편지를 올렸다. “이 애국가는 본인이 지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본인은 다만 하느님의 령감(灵感)을 대행한 것뿐입니다.”  반세기 전 나라 없이 출장한 올림픽 개막식에서 처음 불렸던 그 노래를 지금은 별세하고 없는 안익태씨의 미망인(未亡人)인 안 녀사가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눈물이 없이 이 노래를 들을 수 있었겠는가. / 오기활                 2024년 8월 23일  
499    주옥같은 고전명언 댓글:  조회:884  추천:0  2024-08-20
             백세인생을 풍요롭개 해주는                                                               주옥같은 고전명언(1) 안내말: “력사속에서 배우라. 혹은 고전에서 배우라”는 말을 흔히 하거나 듣는다.  분명 우리들이 현대를 살아가는 데, 그리고 미래를 전망하는 데 있어서 기필코 력사와 고전을 배우게 되고 터득하게 된다. 왜냐면 고전은 인간의 영지(英智)를 모아놓은 결정(结晶)이며 력사는 인간의 고투(苦斗)를 집대성해 놓은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런 선현(先贤)들의 지혜를 배우고 익히는 것은 이같이 복잡한 현실을 살아감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고전이든 력사의 기록이든 그 량이 방대하여 어떤 순서로 읽어나가야 좋을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  이에 필자는 독서를 하면서 력사에서 배우고 고전에서 배운 명언들 중에서 주옥같은 알맹이 명언을 간추려 필기한 필자의 “독서필기”를 독자들과 공유하고저 오늘(8월 20일) 부터 “백세인생을 풍요롭개 해주는 주옥같은 고전명언"이란 제목에 올린다. 별도로 미숙한 “독서필기”로 독자들과 친숙하려는 간절한바람을 ‘안내말’에 올린다.   ㅡ 편자     “지혜로운 사람도 한 가지 실수는 있고 어리석은 사람도 한 가지 재주는 있다.”                              ㅡ 사기 이 명언은 아무리 지자(智者)라 하더라도 실수는 있을 것이니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다. 또한 둔자라 하더라도 더러는 잘 하는 일도 있을 것이니 반드시 어리석다고만 할 수는 없음을 꼬집은 말이다.  이 말도 본디는 속담으로 쓰여 왔던 듯하다. 례컨대 유방을 섬겼던 한신이 조나라를 멸망시킬 때 적의 참모였던 이좌차를 회유하여 군사로 맞아들인 다음 조나라 토벌 작전에 대하여 의견을 청한 일이 있었다. 그때 이좌차는 먼저 상기 구절을 인용한 다음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즉 그는 겸손을 다하며 “우(둔)자의 일득(一得)”을 강조했던 것이다.  원래 이 속담의 진정한 노림수는 “지자의 일실”을 비웃은 것이 아니라 “우자의 일득”쪽에 력점을 두었던 같다. 아무리 하찮은 사람의 의견이라도 귀를 기울일 만한 가치는 있는 법이다. 그것을 미리부터 틀렸다고 단정 짓는 태도는 교만이라 아니할 수 없으며 또한 자타간에 아무런 득도 없다. /오기활                                   2024년 8월 20일
498    노을 같은 사람들 댓글:  조회:962  추천:0  2024-08-14
 살기 힘든 세상에 “나”보다 “어려운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남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데 너무나 린색하다. 그러면서 남을 돕는 누군가를 보며 “분명히 우리보다 잘 사는 사람일거다...”며 오해를 한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 봉사활동이나 좋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도움의 손길을 전해주는 사람들 중에는 부자도 있지만 빠듯한 살림살이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사람들은 가진 것은 적어도 누구보다 넉넉한 “마음 부자”들 이다.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양보하는 사람은 “노을 같은 사람들”이다. 노을은 자신은 저물어가면서도 서녘하늘을 온통 오랜지 빛으로 물들인다. 노을이 그처럼 아름다운 것은 헌신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야기가 있다.  어느 자전거 경매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경매장 맨 앞자리에 한 소년이 앉아 있었는데 그의 손에는 5딸라짜리 지페 한 장이 쥐여 있었다.  드디여 경매가 시작되였다. 소년은 더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다는 듯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들고 “5딸라요!”하고 외쳤다. 그러나 곧 옆에서 누군가 “20달러!”하고 외쳤고 그 20딸라를 부른 사람에게 첫 번째 자전거가 락찰되였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경매도 마찬가지였다. 자전거는 5딸라로는 어림도 없이 더 비싼 가격에 팔려나갔다. 보다 못한 경매사는 안타까운 심정에 소년에게 말했다.  “꼬마야, 자전거를 사고 싶거든 20딸라나 30딸라쯤 값을 불러라.”  이에 소년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자만 아저씨, 제가 가진 돈이라곤 전부 이뿐이에요.”  경매사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다시 말했다.  “그 돈으로 절대로 자전거를 살 수 없단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돈을 더 달라고 하려무나!”  “안돼요. 저희 아버지는 실직을 하셨고 엄마는 아파서 돈을 주실 수가 없어요. 하나밖에 없는 동생한테 꼭 자전거를 사주겠다고 약속했단 말이에요.”  소년은 아쉬운 듯 고개를 떨구었다. 경매는 게속 되였고 소년은 자전거를 사지 못했다. 하지만 여전히 체일 먼저 5딸라를 외쳤다.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씩 소년을 주목하게 되였다. 드디여 그날의 마자막 자전거가 나왔다. 이 자전저는 그날 나온 경매중 가장 좋은 것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대하던 것이였다.  곧 경매가 시작되였다.  “자, 최종의 경매에 들어갑니다.이 자전거를 사실 분은 값을 불러 주십시오.”  소년은 풀이 죽은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역시 손을 들고 5딸라를 외쳤다. 아주 힘없는 작은 목소리였다. 순간, 경매가 모두 끝난 듯이 조용해졌다. 아무도 다른 값을 부르지 않는 것이였다.  “5딸라요. 더 없습니까? 다섯을 셀 동안 아무도 다른 값을 부르지 않으면 이 자전거는 어린 신사의 것이 됩니다.”   경매사의 말에 사람들은 모두 팔짱을 끼고 경매사와 소년을 주목하였다.  “5,  4, 3, 2, 1”  마침내 소년에게 자전거가 락찰되였다는 경매사의 말이 떨어졌다. 소년은 5딸라지페를 경매사의 앞에 내 놓았다. 순간,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 소년을 향해 일제히 박수를 치는 것이였다.   실로 이들은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양보하는 “노을 같은 사람”들이 아닌가... / 오기활                                          2024년 8월 14일.                                                                                            (연변 로인절을 맞으며)
497    100년 전 파리올림픽이 산출한 사랑의 기적 댓글:  조회:685  추천:0  2024-08-11
사랑과 평화의 집합체인 올림픽에 출전해 금메달을 목에 거는 것은 모든 운동선수들의 평생의 꿈이자 최고의 영광이다. 1924년 조정경기(좁고 긴 경기용배로 하는 해양경기)에서 당시 세계 최고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던 미국의 빌 헤이본즈(이하 벨로 간칭)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벨은 금메달을 위해 밤낮을 가리지 않고 땀을 흘리던 중 마침내 그렇게 그리고 그리던 파리 올림픽 출전이 눈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그는 미국 대표팀이 파리로 떠나는 날 공항에 나타나지 않았다.  바로 그 쯤에 그의 안해가 출산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였다. 처음에 빌은 올림픽에 출전해야 할지, 아니면 안해 곁을 지켜야 할지 망설이였다. 올림픽에 출전만 하면 그가 금메달을 따는 것은 어렵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코치나 동료 선수들, 안해와 그의 담당의사마저 올림픽에 출전해야 한다고 벨을 설득했다. 하지만 벨은 평생의 꿈인 올림픽 금메달을 포기하고 안해 곁에 남아 아이가 태여나기까지 기나긴 산고를 함께 지켰다. 비록 금메달은 목에 걸지 못했지만 빌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28년 뒤, 제15회 헬싱키 올림픽 남자 조정 싱글 만메터 경기가 끝난 뒤 빌에게 전보 한 통이 날아 왔다.  “사랑하는 아버지, 제가 세상에 태여날 때 어머니 옆에서 저를 기다려 주신 것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아버지가 28년 전에 받으셨을 금메달을 목에 걸고 집으로 갑니다. 아버지의 사랑하는 아들- 프랭크로부터.” 금메달을 포기하고 기다렸던 그의 아들- 프랭크가 28년 전 벨이 출전하려 했던 그 종목, 조정 싱글 만테터 경기에서 당당하게 금메달을 따낸 것이다.   살다보면 두 가지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 괴로운 순간이 있다. 한 가지를 선택하면 다른 한 가지는 잃어야 하는 그런일이 우리네 인생 속에 숨어 있다. 그래서 인생은 괴로움의 련속이라고 한다.  자신에게 다가온 황금 같은 기회를 버리고 가까이 사랑하는 사람을 택하는 사람, 이런 사람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아무나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없기에 벨이 더욱더 아름답고 보귀한 것이다. 세상에 마음을 비취주는 벨 같은 사람이 많았으면 한다. 이런 사람은 세상 누구보다 사랑을, 진실한 사랑을 아는 사람이다. 이런 애틋하고 진실한 사랑의 기적을 창조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다. 밤하늘을 밝혀주는 별이 있듯이 이 세상에 마음을 밝혀주는 사랑이 있다. /오기활           2024년 8월 11일일
496    넷째 손가락에 결혼 반지를 끼는 리유 댓글:  조회:738  추천:0  2024-08-06
주먹을 쥐어보자. 그리고 주먹을 쥔채로 엄지 손가락부터 다셋째 손가락까지 따로 따로 하나씩 펴보면 오직 넷째 손가락만이 마음 먹은 대로 곧게 펴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반대로 다섯 손가락을 활짝 편후 다섯 손가락을 하나씩 각각 구부려 보자. 이상하게도 다섯째 손가락을 구부리려면 넷째 손가락이 엉거주춤하면서 함께 구부러진다. 그런데 우리가 이 저정쩡한 넷째 손가락이 펴기 어렵고 다섯째 손가락을 구부리려면 그도 함께 구부러지는데 왜 이 손가락에  결혼 반지를 끼는 리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부부생활에서 각자가 혼자서 삶을 안다고 주장하거나 혼자서 고집하며 거드럭거리지 말고 혼자서는 펼 수 없는 넷째 손가락처럼 겸손하고 또 다섯째 손가락이 구부릴 때 넷째 손가락이 함께 나서 싫은 일이라도 기꺼이 함께 한다는 의미로 이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낀다 (결혼식에 끼워 준다). 사랑은 믿음과 더불어 함께 하지 못하면 죽음과 파멸, 별리와 절망을 안겨 준다. 사랑에는 칼과 가위보다도 바늘과 실이 필요하다. 깨고 자르는 것보다 꿰매고 덧대고 이으면서 보듬는 게 사랑이니깐. 바로 넷째 손가락처럼 교만하지 않고 돕는게 사랑이요 모든 걸 감싸주며 모든 걸 나누는게 사랑이다. 건강은 가장 순수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가장 완전하고 가장 편안한 휴식은 건강 자체이다. / 오기활                    2024년 8월 6일
495    건강은 무엇을 위해 필요한가요? 댓글:  조회:810  추천:0  2024-08-01
건강은 모든 이의 진솔한 소망이며 애타는 갈망이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건강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건강을 누리기에 합당한 사람은 건강한 사람으로서 해야 할 구실을 다 하는 사람이다. 건강을 위하여 합당한 사람은 그 자신이 빛이고 볕이다. “녀인의 입술보다 더 진한 정념”을 농익게 하는 것은 불같이 뜨겁고 빨간 불꽃이다. 밝음과 따사로움이 여기에서 나온다.   나로 하여금 나의 보람있는 일을 하도록 나로 하여금 나의 가치를 실현시키도록 나에게 주어진 것이 바로 건강이다.   빛이 되고 볕이 되여 밝음과 따사로움을  주라고 너에게 휴식을 주기 위한 작은 그늘이나마 만들라고 네 가슴을 태우기 위한 작은 불꽃이나마 되라고 네 배고품을 덜기 위한 작은 까치밥이나마 되라고 나에게 주어진 것이 건강이다.   스스로 열매 맺아 자꾸만 주는 게 건강의 궁극이다. 나만 튼튼해서 잘 먹고 잘 살자고 건강해지려고 하면 받기만 하고 주지 않기 때문에 죽은 사해(死海)와 다름 없다. “주는 건강”은 나날이 새로와지지만 “고인건강”은 쉬 썩고 잃게 된다.   그래서 건강은 삶의 깊은 정신적 만족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나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오기활            2024년 8월 1일
494    시대의 길잡이 댓글:  조회:1057  추천:0  2024-07-25
내가  도문시 홍광향당위에서 사업할때인 1983년에 “당지부서기는 군중의 마음속 기둥이 되여야 한다.”는 글을  에 투고하여  처음 발표하였다. 그러니까 이를 시작으로 올해까지 내가 과 맺은 인연이 꼭 40년이다.  40년간 나는 많은 원고를 투고하면서 편집부와 기자들의 지도와 배양하에 “우수통신원”이란 영예까지 지니였다. 40년의 체험으로 나는 을 “시대의 길잡이다”고 부른다.        호도거리농업생산책임제“길잡이”  내가 1983년에 중공도문시당위 정책연구원에서 사업할 때는 농촌서 호도거리생산책임제를 전면적으로시달할 때였는데 농촌의 많은 로당원, 특히는 토지개혁에 참가했던 로간부들이“문화혁명이 끝나더니  다시 토지혁명을 한다”며 자기들이 혁명이 대상으로 된듯이 불안해하였다. 특히 집체때 수입이 쾐찮던 벌방지구의 농촌간부들이 아쉬운 마음으로“헤쳐놓으먼 못 산다”고 걱정하였다.. 1983년 말, 나는 농촌에 다니며 조사연구를 했는데 도문시 월청진 마패촌의 로당원 최형송이 호도거리책임제후 첫해에 6남 1녀 자녀들의 특장에 따라 농업, 철목가공, 기와가공, 운수업으로 “다각경영련합조”를 조직하여 사상 처음 인구당 수입을 1300원으로 올올렸다. 나는 이들의 사적을 전형적인 경험으로
493    인사란... 댓글:  조회:865  추천:0  2024-07-24
 한 사람의 목숨이 이미 하늘에 의해 정해졌다고 하여 수명(寿命)을“천명”(天命)이라고 한다.    사람의 목숨에 대하여 이런 말이 있다.  ㅡ 날때부터 부모한테서 받은 기가 넉넉하면 윗길의 목숨을 얻고 부모중 어느 한쪽의 기가 넉넉하게 치우치면  중길의 목숨을 얻고 쇠약한 부모의  기를 받으면 아랫길 목숨을 얻는다.그나마 몸닦음, 마음 닦음까지 못하면 짧은 명을 면할수 없다.    까닭에 하늘이 준 명에만 기대여 한숨만 짓지 말고 먼저 사람으로서 할 바를  옳게 하고 한껏 갈고 닦은 다음 천명을 기다려야 한다.  에 이런 말이있다.   “몸을 닦아서 천명을 기다린다 하였으니 반드시 인사(人事)를 다하여 하늘의 뜻을 따라야 한다”     “인사”란 무엇인가?  인사란 인간생활의 양상과 여건이며 인간끼리의 공존 법칙이고 기틀로서  적극적인 자률능력으로 자신을 이기고 자신을 단련하는 것이다.     은 사람으로서 “할 바”를, 즉 사람이 “할 일과 해야 할 일”을“인사”라고 했다.   먹고 싸고 자는 것도 사람이 할 일이요, 핑게를 대지 말고 어려움과 탐냄을 이겨내고 자신을 갈고 길러 굳게 세우며 자신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는 것도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인사란 인간생활의“상식”이다. 건강과 장수는 어떤 비결이 있는 게 아니라 바로 흔해빠진“늘 하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오늘도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어제처럼 만사가 귀찮다는듯 찌푸린 얼굴로 투덜대며 짜증 섞인 하품을 한다면 말이아니다. 아침을 이렇게 시작하며 세속적인 비상식에 빠지면 그 하루가 피곤에 찌들리고 만다.    그러니 우리는 “할 바를 하며, 늘 하는 바를 하면서”모두가“천명”을 지켜야 할것이다.     /오기활                       2024년 7월24일  
492    분수있는 삶이란 댓글:  조회:748  추천:0  2024-07-23
분수(分数)란  셈을나누다”, “어떤 수를 다른 수로 나눈 몫을 분자와 분모로 나타내는것”을 말한다. 분수의 “분”은 몫이란 뜻이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기의 몫이 있고 자기의 형편과 처지, 자기의 실력과 정도가 있다. 거기에 맞게 사는것을 분수를 아는 삶이라고 한다. 분수를 삶의 자대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 사람의 삶의 척도에 따라 그 사람을 “분 수 넘친다“ “분수를 모른다“ “분수를 지킨다“로 평가한다. 그러니까 분수는 사람 을 분별 하는 “슬기”라고 할수 있다. 이런 얘기가 있다. 어떤 사람에게 귀여운 애완견과 나귀가 있었다. 그는 늘 애완견을 데리고 놀면서 맛이 있는것이 생기면 애완견을 줬다. 이에 나귀가 시샘을 했다. 어느 날 나귀도 주인의 귀여 움을 받으려고 주인 곁으로 다가 가서 장기것 재롱을 부렸다. 그 바람에 그만 주인이 나 귀의 뒷발에 채워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주인은 하인들을 시켜 나귀를 실컷 때려주고 다시는 날뛰지 못하게 말구지에 매여 놓게 하였다. 분수 없이 논 나귀는 “나도 잘 보이려고 했는데…”하면서 후회 막급이였다. 이렇게 나귀마냥 자신의 능력이나 위치를 모르고 자기의 분수를 지킬줄 모르는 사람이 많을 때 사회는 어지럽고 거칠며 자기의 분수를 아는 사람이 많을 때 사회는 신사적이고 살맛이 날것임은 두말할것 없다. 누구나 다 똑 같지 않음은 정상이다. 인간의 재능은 똑 같은것이 아니다. 그것을 “개인차”라고 부른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자기의 분수나 능력을 모르고 불평과 불만으로 평생을 보내다가 가치있는 일을 한 가지도 못 하고 저 세상으로 간다. 필자는 삶을 분수(4/4)로 셈을 나눈다면 분수있게 산다는것을 “남보다 좀 적게, 좀 낮게, 좀 부족한 4/3으로 사는것” 이라고 정의를 내린다. 즉 욕심을 분모로 한다면 욕심에 넘친 가분수(4/5)가 아닌 욕심보다 좀 적은 진분수(4/3)로 말이다. “분수에 맞게 그칠 줄 알고(知止)” “분수에 맞게 만족을 아는(知足)” 지지, 지족의 삶이 분수있는 삶이다. 가분수로 살면 머리가 무거워 몸을 쉽게 움직일수 없다. 과욕은 금물 이다. 먼 길을 가려 면 쓸데없는 짐을 버리고 가볍게 해야 한다.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자신의 능력범위 안에서 정직하게 살자. 고양이가 호랑이로 될수 없듯이 겸손하고 정직한 삶만이 분수있는 성실한 삶이라 하겠다. /오기활           (《길림신문》2010.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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