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가슴에 심은 내 사랑의 손
허복순
이 소설의 어떤 序
이 세상에서 너를 처음 만나던 날, 너의 왼쪽가슴이 내 바른손에 스치였지. 본의 아니고 우연이였어. 스친 것 치고는 너무 했었지. 내 오른손에 너의 봉긋한 왼쪽가슴이 쥐여졌으니깐. 옷깃 한번만 스치어도 500겁 인연이라 했었지. 그렇다면 너와 나의 인연은 얼마나 될까.
난 바보 같이 잘 모르겠어. 그걸 사람이 헬 수 있나. 부처님이나 헬 수 있는 윤회의 논리이지. 그래도 감격스럽고, 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서로를 알지 못했던 우리의 인연이 억겁의 연륜으로 이어진 윤회의 소산이라는 것, 아무리 억겁의 연륜으로 거대한 윤회의 산을 넘어도 결국은 네가 이생에서 내 사랑이라는 것만 감회의 행복일 뿐이지.
그날, 우리는 공원의 산책로에서 서로 마주쳤지. 우리가 산책로의 인공호수 외나무다리에서 서로를 스칠 때 너는 나와 어깨가 스치는 걸 피하려다가 그만 좁은 외나무다리에서 떨어질 뻔했었지. 만약 내가 왼손으로 너의 오른쪽 허리를 부둥켜안아 잡지 않았더라면 넌 큰 사고를 당할 뻔 했었어. 그런데 말이야. 우리에게 더 큰 사고가 터지고 말았지. 내가 왼손으로 너의 오른쪽 허리를 부둥켜안았을 때 나의 오른손이 너의 왼쪽가슴으로 뻗어갔고, 너의 가장 소중한 왼쪽 젖가슴이 내 손에 쥐여졌어.
우연치고 너무 아름다운 우연이고, 실수치고 너무 화려한 실수였지. 그때 내 오른손에 쥐여진 것은 너의 왼쪽 젖무덤 뿐만 아니라 너의 심장이였어. 아주 찰나였지만 내 손에서 박동하던 그 심장은 수만 년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억겁의 인연을 재생시키는 심장이였지.
그때부터 너와 나의 아름다운 사랑은 시작되였어. 그리고 너의 왼쪽 젖가슴은 내가 너의 마음의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였고, 그 속에서 박동하는 너의 심장은 너의 열렬한 사랑을 분출하는 거대한 엔진이였지.
내 사랑의 손은 늘 너의 왼쪽 가슴에 심어져 있었어. 내 사랑의 손이 너의 왼쪽 가슴에 심어질 때마다 나는 너의 가슴을 애무하며 너의 심장을 만졌지. 너는 내 사랑의 손에 너의 자그마하면서도 풍만하고, 탄력이 있는 가슴을 내여주면서 너의 뜨거운 사랑으로 내 젊은 피를 뜨겁게 해주었지.
그렇게 인연이 되여 우리는 행복하고도 달콤한 결혼생활을 8년 동안 영위해왔어. 너의 두 가슴은 이제 내가 사랑의 손을 깨끗이 씻는 샘터가 되였지. 그래서 내 사랑의 손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손으로, 가장 행복한 손으로 되여 너의 거대한 우주를 가질 수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너의 왼쪽 젖가슴을 사랑해온지 8년이 되던 그날, 나는 갑자기 6년이란 긴 출장을 가게 되였어. 단 하루라도 너의 왼쪽 젖가슴에 내 사랑의 손을 묻거나 씻지 못하게 된다면 내 사랑의 손은 불안에 떨 것이야. 하지만 별 수가 없지. 내가 안 가겠다고 버틴다 해서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출장이니까. 결국 나는 6년이란 긴 출장에 끌려가고 너의 왼쪽 젖가슴은 내 잠실에 그리움으로 남겨야 했어.
아, 내 사랑하는 그대 왼쪽 젖가슴이여! 잘 있어다오. 나 금방 다녀오리다. 6년의 긴 출장을 단숨에 다녀오리다. 오늘 밤도 너의 아름다운 왼쪽 젖가슴에서 발사된 너의 사랑의 혼신 같은 별이 내 손 끝에 스친다.
1
불안한 손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6개월 동안의 신물 나는 심문과 조사 끝에 간수소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다. 지금까지 집에서는 엄친아로, 학교에서는 우수생으로, 직장에서는 모범공무원으로 늘 떠받들려 살아왔는데 이렇게 수갑을 찬 모습으로 법정에 서리라고 나는 꿈에서마저 생각지 못했었다.
나는 죄가 없다. 재정부장으로서 국장님의 한 팔이 되여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국장님이 다 알아서 해준다고 했으니까 감옥에 가는 일은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오늘저녁에는 안해의 품으로 돌아가 내 사랑의 보물인 그녀의 젖무덤들을 애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은 몹시 설렜다. 나는 한밤중에 호출전화를 받고 일어나 손에 쥐이는 대로 옷 한 벌 주어입고 나온 채 다시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보고 싶다. 만지고 싶다. 보동보동한 안해의 젖무덤들을. 잘 있었겠지. 아마도. 그 사이 안해의 젖무덤들을 애무하지 못해서 나는 잠마저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안해의 가슴을 떠난 내 손이 몹시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오른손이 허전했고, 밤에는 더구나 뭐든지 쥐고 만지작거려야 그나마 잠들 수 있었다.
법정에 도착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객석을 한번 눈빛 질하였다. 아는 사람의 얼굴을 찾았다. 아무도 없었다. 국장님도, 내 사랑하는 안해도 보이지 않았다. 태산처럼 믿었던 국장님이 보이지 않자 조금 불안해난다. 날 버린 건 아닐까? 손끝이 저려난다. 저도 몰래 손풍금이 쳐진다. 안해의 가슴과 헤여진 후로 생긴 버릇이다. 불안할 때면 자꾸 안해의 젖무덤들이 생각나고 그 사랑스런 것들과 장난치던 손동작을 하군 한다. 안해가 보이지 않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보고 싶지만 또 나의 이런 몰골을 보여주기 싫기도 하니 안도의 숨이 내쉬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출장 갔다가 돌아온 듯 그냥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더 좋을 듯하다.
드디어 재판을 시작하였다. 변호사석에는 국장님이 담보했던 그분은 없었다.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던 국장님인데 설마 약속을 어긴 건 아니겠지 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이 갈마들면서 슬그머니 당황해난다. 가슴이 세차게 뛰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오른손은 또 빠르게 움직인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안해의 젖무덤들을 애무하던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갑자기 익숙한 아카시아향이 코를 자극한다. 아! 왔구나. 사랑하는 안해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면바로 안해의 눈길과 마주쳤다. 그녀는 조금 초췌해지긴 했어도 역시 아름다웠다. 내가 결혼 첫 날밤 사랑의 선물로 사주었던 하얀 잠옷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안해의 그 애잔한 눈길은 내 가슴을 아프게 찔러온다. 저도 몰래 목이 메어오면서 눈물이 그들먹이 고여 오른다. 사내대장부가 웬 눈물? 나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안해의 봉긋한 가슴사이에로 난 길이 유표하게 내 눈길을 끈다. 안해의 젖무덤들도 격동으로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며 반갑다는 듯 인사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내 손길이 날마다 다가가던 안해의 가슴 길, 다시 더듬어 가고 싶다. 가슴노출이 너무 심해 잠실에서만 착용하기 편하고, 밖에 입고 나갈 수 없는 잠옷원피스로 우리 둘만의 사랑 기념일에만 입으라고 내가 사줬던 옷이었지만 오늘 안해는 그 옷을 입고 나왔다. 남들 보기에는 참 격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었을 것이고, 미치지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는, 오늘의 상황과 절대 맞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세속의 비난을 받더라도 나만을 위한 안해의 뜻있는 옷차림에 내 가슴은 찢어진다. 절대 실망시키지 말아야 할 텐데…
“조용하시오. 최종판결문은 사후에 다시 공포하겠습니다. 탁, 탁, 탁!”
종결을 알리는 법관의 망치소리는 내 머리를 치는 것 같았다. 일순 나는 멍해졌다. 내가 죄범이 된다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구원이라도 바라는 듯 아내를 돌아보았다. 눈물이 차올라 예쁜 안해의 얼굴마저 희미하게 보인다. 안해는 놀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잠시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의자등받이를 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안해는 왼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부여안고 오른손을 들어 왼쪽젖무덤을 호되게, 호되게 때리고 있었다.
“제발 그러지마. 네 가슴을 아프게 하지 마.”라고 나는 안해의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달래주고 싶었지만 나에겐 이제 자유가 없다.
간수소생활은 점점 힘들어져 갔다. 하루 이틀이면 나갈 줄 알았건만 일은 점점 복잡해져갔고, 다시 돌아갈 희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는 거의 밤마다 실면을 했다. 두 사람의 열띤 몸부림에 신나게 춤춰주던 스프링침대는 딴딴하고 차가운 감방바닥으로 바뀌였고, 은은한 아카시아향이 풍기는 아내의 탐스러운 젖가슴에 묻혀서 행복을 꿈꾸던 얼굴은 문틈으로 새여나오는 퀴퀴한 화장실 내음에 절어서 찌그러져 있다.
손을 들어 콧가로 가져간다. 내 손안에서 꼼지락거리며 놀아주던 그 몽글몽글한 것의 아카시아향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아서 나는 한껏 들숨을 쉰다. 은은한 향이 머릿속을 감돌아치면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눈이 부시다. 스르르 눈이 감겨진다.
자오록한 연무 속 저 멀리로부터 안해가 하얀 드레스를 두 손으로 받쳐 올린 채 해바라기처럼 웃으면서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하얀 가슴 전체가 점점 가까워져온다. 숨이 차오른다. 잡으려고 손을 뻗쳤다. 두 손에 넘치게 차오를 것만 같던 가슴이 구멍 난 고무풍선처럼 갑자기 쑥 가라앉으면서 밋밋하게 느껴진다. 놀란 손은 놓쳐버린 거나 아닌가 싶어 가슴주변을 부지런히 더듬는다. 뭔가 잡혀진다. 내 손을 간지럽게 하던 그 보동보동한 느낌이 아니다. 어딘가 많이 쭈그러져 있다. 갑자기 내 손을 확 뿌리친다. 이어서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귀뺨이 얼얼해 잠에서 깼다.
“야 이 변태새끼야? 죽고 싶니?”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질과 발길질이 날아든다. 나는 상황파악을 하지도 못한 채 한바탕 두들겨 맞았다.
꿈이였다. 안해가 아니였다. 옆에 누웠던 폭행죄로 들어온 사람의 가슴이였다. 나는 매 맞는 몸의 고통보다 잃어버린 꿈속의 안해가슴이 더 아쉬웠다. 그 후로 나는“변태새끼”라는 별명을 가졌고, 아무도 가까이에 누우려고 하지 않아 다시는 그런 꿈을 꿀 기회조차 없었고, 화장실 가까이 제일 구석에 밀려나 지린내를 맡으면서 차가운 벽에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안해의 품이 그립다. 젖 뗀 아이가 엄마가슴을 찾듯이 아내의 가슴이 그립다. 결혼해서 8년 동안 우리는 하루밤도 떨어져 자본적이 없다. 잘 때면 꼭 안해의 젖가슴을 만져야만 잠들 수가 있었다. 혹시라도 잠이 잘 안 올 때면 한참씩 안해의 젖무덤을 조물락거리고 있어야 소르르 잠이 들곤 하였다. 내가 손을 아내의 젖가슴에서 온밤 떼고 있지 않아서 불편하기도 하고, 잠에 지장이 될 법도 하였건만 안해는 단 한 번도 귀찮을 부린 적 없이 다 받아주곤 하였다.
사실 나는 첫눈에 안해의 가슴에 반해 사랑을 추구해왔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안해의 가슴은 뭔가 달라보였다. 다른 여자들하고 뭐가 다른지를 발견 못했지만 왠지 달랐다. 그것이 궁금해서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계속했다. 꼭 알고 싶었다. 도대체 어디가 남다를까? 안해의 젖가슴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안해와 결혼을 하고서야 나는 안해의 신비한 젖가슴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안해의 젖가슴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젖가슴이었다는 그 행복감을… 나는 안해와 처음 잠자리를 하던 그때를 떠올렸다. 안해의 젖가슴은 정말 너무 예쁘고 호함져서 내 눈이 황홀했다. 손이 떨려왔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손이 닿는 순간 찡하는 전율이 흐르면서 손은 순간적으로 튕겨 나왔다. 다시 시도해봤다. 내 손바닥이 닿는 순간 그 부드러운 촉감은 내 온몸에 전율이 쫙 흐르게 하였고, 그것을 조물락조물락 할 때는 내 호흡이 거칠어지고,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크게 들리였다. 보동보동한 안해의 젖무덤이 손에 잡혀올 때 내 전신은 전율하였고, 무언가가 불뚝 일어섰으며, 조심스럽게 입술이 다가갔을 때 마치 엄마의 젖을 입에 문 갓난아기처럼 내 입은 달콤했고, 내 마음도 그렇게 평온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안해는 종래로 브라자를 하지 않았고 가슴에 무한한 자유의 공간을 주었다. 남들처럼 철 테두리를 한 브라자를 입혀 산처럼 높이지도 않았고, 솜 같이 부드러운 브라자를 씌워 부드러움을 강조하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안해는 순수를 추구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통통 튀는 자신감 넘치고 매력적인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부터 내 손은 안해의 가슴을 떠나 본적이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일반 신혼부부들은 서로 껴안고 키스로 인사하지만 나는 입술보다 두 손을 동그랗게 하고 안해의 젖가슴부터 만져보았다. 안해도 거기에 습관이 되여 입술대신 가슴을 쑥 내민다. 안해는 가슴보호 장치를 하는 습관이 없어서 그녀의 젖가슴은 아무 때건 만져도 느낌이 좋고 편하였다.
그렇게 내 손을 떠나지 않던 안해의 젖가슴들과 갑작스럽게 생리별을 한 나의 두 손은 너무 허전하여 무엇이라도 잡기 않고서는 내 몸의 일부가 아닌 듯 감각이 없어지고, 어떤 때에는 찡하니 저려나기도 했으며, 갑자기 손끝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려워나기도 하였다. 낮에 일할 때 손에 무언가가 잡혀있으면 조금 나아지는 듯하였고, 손을 움직여 무언가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피가 거침없이 통하는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안정되기도 하였다. 밤이면 증세가 더 심했다. 가려워서 쉼 없이 긁다보니 손바닥이 터져서 피가 막 흘렀다. 자면서 긁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손을 테이프로 감고 잤다. 그랬더니 손이 부어나고 손끝이 새까맣게 절맥하기 시작하였다. 검사를 받아보면 아무 이상이 없단다.
드디어 판결서가 내려왔다. 직무남용, 횡령죄로 6년 도형이 언도되였다. 6개월간의 간수소생활이 끝나고 나는 감옥으로 이송되였다. 감옥은 간수소보다 여러 가지 시설이 구전하여서 생활하기에 많이 편했다. 가끔 활동실에서 취미에 따라 운동도 할 수 있었고, 컴퓨터로 주어진 내용을 열람할 수도 있었다. 독서실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8대의 컴퓨터와 많은 서적들이 마련되여 있었다.
나는 조용한 독서실에 들어섰다. 매일 같이 만지고 일하던 컴퓨터를 이런 환경에서 마주하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 나는 천천히 컴퓨터 앞에 다가가 컴퓨터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컴퓨터를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십여 년간 출근하면서 힘들다고 투정부렸던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가 새삼 느껴진다. 자리에 앉았다. 비록 사무실의 포근한 가죽의자가 아니고 딴딴한 나무걸상이였지만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마치 내 자리는 원래 여기야 하고 말해주는 듯싶었다. 오른손을 올려 마우스를 잡았다. 아프던 손이 서서히 풀리는 것 같았다. 멈췄던 박동을 다시 시작한 듯 손은 서서히 원색을 회복해가는 것이였다. 포근하게 한손을 꽉 채워주는 느낌, 아! 나는 저도 몰래 신음소리를 냈다. 번개에 치이기라도 한 듯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가슴을 잡은 것 같은 이 감각 너무 좋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머리를 숙여 마우스에 키스를 했다. 손을 들어 그것을 두 손에 꼭 쥐고 가슴에 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마우스가 있다면 내손이 외롭지 않을 것 같았고, 잠도 잘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내꺼야. 내 사랑하던 아내 가슴이 이런 방식으로 날 찾아온 거구나. 나는 모든 걸 망각한 채 아내 가슴의 포근함을 찾았다는 희열에 들떠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격이였다. 이거면 될 것 같았다. 마우스만 있다면 긴긴 6년 세월 사랑하는 아내의 젖무덤들을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내 손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내 손은 매일 잠깐씩 감옥독서실에서 마우스를 만지며 아내의 젖무덤에 대한 그리움증후군을 달래여 갔다.
2
불안한 가슴
나는 불안한 가슴을 붙안고 법정으로 향했다. 속으로는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라고 수없이 되뇌이였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면서 법정대문에 들어섰다. 나는 비록 신을 믿지 않았지만 잠간 멈춰 서서 두 손을 합장한 후, 신께 빌었다.
“만약 신이 계신다면 신께 빕니다. 저의 남편은 착한 사람으로 절대 나쁜 일을 안 했을 거예요. 제발 무사히 풀려나오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간절히 빌게요. 저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그 어떤 대가도 치르겠습니다.”
나만의 기원의식을 치르고 마음을 추스른 후, 나는 법정에 들어섰다.
남편의 뒤 모습이 보인다. 나는 천천히 앞쪽으로 걸어가 남편이 잘 보이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슴이 후두득후두득 뛴다. 늘 깔끔하게 다듬어져있던 남편의 머리는 아무렇게나 흘러내려 귀를 덮고 있었고, 어깨도 축 처져 내려앉았다. 변하지 않은 건 하얀 두 손뿐이였다. 손목에 채워진 시퍼런 수갑에 대비된 손은 더 희여 보였고, 두 손바닥은 마주향해져 있었으며,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낸 채 다섯 손가락을 번갈아가며 피아노 치듯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불안을 털어내기 위한 손동작이겠건만 왠지 나는 저 동그란 손안에 내 가슴이 들어가 있는 듯 이상하게 그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가슴도 같이 반응하면서 옴찔옴찔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어이가 없다. 이 억장이 터지는 순간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이상했다.
남편의 손 신경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 가슴에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편도 아마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어서 손의 움직임으로 긴장을 완화시키고, 몸은 법정에 있지만 머리는 행복했던 시간에 머무르고 싶었을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정지되어 있는 듯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고, 남편의 손가락만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듯싶었다. 귀는 닫히고 눈은 한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남편의 손과 내 가슴만 움직이는 듯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그 손의 움직임이 뚝 멈추어졌다. 남편이 갑자기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놀라움에 커다랗게 둥글어진 눈동자에 순간 그늘이 비껴가더니 눈물이 그들먹이 고여진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눈물은 사라지고, 잔잔한 애수가 흘러내려 내 가슴을 아프게 적신다. 거기에는 몇 년 동안 헤어져야 할 지 모르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억울함, 나에 대한 걱정, 리별의 아쉬움과 사랑의 복잡한 감정이 서로 융합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제복을 입은 사람에게 등을 떠밀린 채 그는 앞으로 한 발작 옮긴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린다. 이번에는 가슴을 향하여 리별의 눈길을 던졌다. 가슴이 찔려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가슴을 움켜잡았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휩쌌다. 그는 입가에 알릴 듯 말 듯한 웃음을 싣더니 결심한 듯 결연히 몸을 돌리고 빠르게 멀어진다. 그와 동시에 그의 두 손은 또다시 옴찔옴찔 피아노 건반을 치기 시작하였다
결혼한 지 8년이 되어가건만 우리는 하룻밤도 떨어져 잔적이 없었고, 여자들만의 특수시간을 빼고는 아름다운 정사를 치르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남편은 첫날밤의 그 정열과 흥분을 전혀 식힐 줄 몰랐다. 그날도 우리는 폭풍우 같은 사랑을 나누었고, 지친 남편은 손으로 내 가슴을 꼭 부여잡은 채 혼곤히 잠들어 있었다.
“당신밖엔 난 몰라…”
한밤중에 갑자기 들려오는 핸드폰음악소리에 화들 놀란 남편의 손은 내 가슴에서 쑥 빠져나가며 전화를 들었다. 남편의 손에서 떨어져나간 가슴은 갑자기 내 몸에서도 튕겨나가는 듯 일순 가슴이 썽하니 차갑게 느껴졌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국장님의 전화를 받고 불려나간 남편의 두 손은 지금까지 다시 돌아오지 못한 채 수쇄에 채이였고, 얼어든 내 가슴은 정상 체온을 찾지 못한 채 떨고 있다.
남편이 없는 빈집에 들어서기가 두려웠다. 임자를 잃은 내 가슴은 주인과 만났던 그 자리에만 가면 반응한다. 주사바늘이 두려워 바들바들 떨어대는 아이처럼 나는 화닥화닥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집 문을 연다. 발을 들여놓았다. 습관적으로 마중 나오던 주방 쪽으로 눈길이 간다.
“왔어? 우리 여왕님!”
남편은 앞치마를 두른 채로 달려 나오면서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쓱쓱 문지르고는 두 손을 펼쳐 조심스럽게 한손에 하나씩 가슴을 잡고, 두 가슴사이에 얼굴을 묻으면서 냄새를 킁킁 맡고는 “향이 참 좋아!” 하고는 두 가슴에 한 번씩 입 맞춘 후에야 나는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는 날마다 하는 의식이였다.
남편의 지나친 가슴사랑이 나는 싫지가 않았다. 남편은 조건이 좋았었다. 높은 자리에 계시는 부모님 덕에 부러운 것 없이 커왔고, 학업이나 일자리도 순풍에 돛단 듯이 잘 풀려 일류대학을 나와서 모모국의 재회과에 분배되었고, 이듬해에 재회과 과장으로 승진하였다. 그 즈음 또 모모국 부국장으로 발탁된다는 소문이 돌 때에 나하고 첫 만남을 가졌었다.
대학도 못 나오고 일개 작은 옷가게의 이름 좋은 사장인 나하고는 조건이 훨씬 우월했건만 첫눈에 나한테 반하여 열렬히 사랑을 추구해왔다. 후에 내가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물었더니 사실은 내 가슴에 반했었다고 하였다. 내 가슴이 다른 여자의 것하고는 달라보였다고 하였다. 내 가슴이 다른 여자하고 달랐다면 그것은 브라자를 하지 않은 것이였을 것이다. 나는 여자들의 필수인 브라자를 종래로 하지 않는다. 웬 일인지 나는 그것만 두르면 가슴피부가 막 가려워나고, 누가 뛰는 심장을 움켜잡고 있는 듯 숨 막혀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가슴은 맞춤하게 크고 예뻐서 치켜세워주거나 모아주는 공능이 있는 브라자를 하지 않아도 보기 싫지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남편의 눈에 더 큰 매력으로 보였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가슴 덕에 조건 좋은 남자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였다.
그래서인가 남편의 가슴사랑은 지나칠 정도로 집착에 가까웠다. 마주치기만 하면 가슴을 만지지 않고는 그냥 지나치지를 않는다. 주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거실에서도 침실에서도 남편의 두 손은 늘 내 가슴을 찾아다녔다.
밤이 싫었다. 남편이 그리웠다. 솔직히 가슴을 만져주던 남편의 손이 더 그리웠다. 아직도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기약이 없다. 어쩐지 마음이 불안하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도무지 신심도 생기지 않았다. 힘들었다. 내 가슴이 더 힘들어 했다. 요즘 들어 남편생각만 하면 내 가슴이 아파온다. 내 가슴을 칼로 오리고 파가듯이 너무 아팠다.
밥 한 술 뜨려고 주방에 가면 앞치마 밑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꼭 쥐어주던 그 손이 생각나면서 그 손 모양처럼 가슴통증이 쭉 뻗치여 온다. 나는 저도 몰래 아픈 가슴을 잡는다. 남편의 손 모양대로 문지른다.
화장실에 들어선다. 물을 튼다. 샤와 할 때 보통사람은 머리부터 씻고, 일부 사람들은 아래부터 씻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가슴부터 씻는다는 말은 못 들었지만 나는 가슴부터 씻는다. 물줄기가 가슴을 친다. 눈물도 따라 흐른다. 유두에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작은 가시벌레인 듯 유두를 아프게 자극한다. 나는 그런 가시벌레를 털어내려는 듯 두 손가락으로 유두를 잡고 힘주어 문지른다. 빨갛게 껍질이 일 때까지,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문지른다.
힘든 샤와를 마치고 거실소파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불을 켜지 않은 방안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 밤의 장막이 드리운 창밖을 응시한다. 아무 생각도 없는 텅 빈 머리는 메인보드(主板)가 없는 컴퓨터 상자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다. 손은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잡고 TV시작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TV가 켜졌다. 푸르스름한 TV형광판의 불빛에 방안은 조금 밝아진다. TV화면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초점 없는 눈길은 TV화면을 바라본다. 남편의 웃는 얼굴이 비친다. 내 무릎을 베고 누워 한손에는 리모컨, 한손은 쑥 올라와 내 왼쪽가슴을 잡고 조물락거리고 있다. 갑자기 가슴통증이 또 시작된다. 저도 모르게 왼쪽젖가슴을 잡고 문지른다. 한참을 문지르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이마에선 땀이 흐르고, 온몸은 물먹은 솜처럼 해 나른해 난다.
나는 힘겹게 일어서서 휘청휘청 침실로 향한다. 온몸을 그대로 침대에 던지면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남편이 없는 이 밤을 또 어떻게 지새워야 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결혼해서부터 나는 알몸으로 잠을 자는 습관이 생겼다. 남편의 가슴 사랑 때문이였다. 잠잘 때도 남편의 손은 내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두 손으로 내 젖가슴을 꼭 쥐고야 잠이 든다. 이상하게도 자면서도 놓지를 않는다.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웠으나 후에 습관이 되니 나 또한 그 손을 떠나서는 잠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 일 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잠을 자본적이 없다. 남편의 손을 떠난 가슴이 마음대로 흔들리는 것이 마치 한겨울의 찬바람이 뼈를 파고들 듯 내 가슴을 파고들어 차갑게 시려났다. 나절로 붙잡고 잠간 잠들었다가도 손이 풀리면 또 깨여난다. 시린 가슴을 덥히려고 별짓 다 했다. 베개를 올려 놓아보기도 하고, 두꺼운 이불을 올려보기도 하고, 뜨거운 물주머니를 올려보기도 하면서 갖은 방법을 다했지만 나아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난생 입지 않던 브라자도 착용해봤다. 엷고 가벼운 것, 해면을 두텁게 감싼 것, 꽉 조여 주는 것, 점점 조여지는 쪽으로 바꾸어봤지만 가슴이 내 몸을 리탈한 것 같은 아픔만 더 커질 뿐 증상은 나아지지를 않는다. 오늘에는 또 무엇으로 가슴을 잡을까 궁리하다가 나는 테이프를 가져다가 가슴을 꽁꽁 동이기 시작했다. 숨도 못 쉴 만큼 동이고, 자리에 누었다.
“제발 오늘은 잠 좀 자자, 내 가슴아!”
나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마구 때렸다. 이렇게 된 내 신세를 한탄하고, 나를 두고 간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의 손을 떠나지 못하고 아파하는 가슴을 미워하며 소리 내여 울었다. 울다가 잠들었다. 꿈을 꾸었다. 누군가 내 가슴이 화근이라며 손을 뻗쳐 작고 예리한 수술 칼을 잡고 왼쪽 가슴을 베여갔다. 지나친 통증 때문에 나는 “아!” 하고 소리 질렀다. 눈을 떴다. 나는 가슴을 만져봤다. 다행히 테이프에 감긴 가슴은 그대로였다. 나는 식은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그렇게 밉던 가슴을 정작 잃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그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였다. 남편의 사랑인 가슴을 잃는다는 건 남편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감겨진 테이프를 한 겹, 한 겹 풀어낸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더라도 절대 남편의 사랑인 내 가슴을 혹독하게 굴지 않고, 아끼고 보듬어서 돌아오는 날까지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돌려주리라고 나는 남편과 무언의 약속을 굳게 해가기 시작했다.
3
행위의 예술
인간은 사회라는 큰 치륜과 가족이라는 작은 치륜이 존재가치라는 피대로 함께 돌아가는 것 같다. 동물적인 각도로 보면 인간은 사회라는 범위에서 령역을 부단히 늘이기 위해 지위, 권력, 재부 등을 목표로 싸우고 있으며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사랑을 동력으로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전제하에서 본능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 사회라는 큰 치륜을 돌릴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받는 충전소일 것이다.
그런데 큰 치륜을 돌릴 수 없게 된 지금, 내 머리는 텅 비여있다.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 큰 치륜은 더 이상 작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작은 치륜만이 운전도 필요 없이 무의식의 지배하에 한 인간의 생명을 영위하고 있었다.
식사 때가 되면 밥맛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는다. 일 하라고 하면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수면시간이라 등을 끄면 억지로 눈을 감지만 잠은 안 온다. 잠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 같았다. 나라는 인간의 영혼 속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생명의 느낌인 안해에 대한 사랑과 내 손에 익고, 내 피 속에서 흐르는 산소처럼 떠나서는 숨을 쉴 수 없는 안해의 가슴이 없어서이다. 안해의 가슴을 그리워하는 건 내 의식을 벗어나 이젠 무의식으로 반응한다. 내 몸이 반응하니 나도 어쩔 수 없다. 괴롭다. 6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제 열 배가 더 되는 시간을 안해의 가슴에 대한 애무가 없이 감방에서 살아야 한다니 그 끝이 묘연하기만 했다.
그리움이 사람을 짝태처럼 말릴 수도 있고, 인격을 변태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으며, 심지어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나의 감옥생활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내가 아내 유방들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대용물을 찾은 것이였다. 컴퓨터 마우스가 내 의식 속에 잠재해있는 안해의 가상유방을 그려주는 예술의 신으로 나서주고 있었다. 마우스만 잡고 있으면 내 손의 그리움통증은 많이 진정되었다. 마우스는 내 손안에 들어와 있던 안해의 유방과 사이즈가 맞아 내 손안에 마우스가 잡혀 있으면 내 마음까지 평온해졌다. 그래서 나는 활동시간이면 무조건 컴퓨터 앞에 마주앉았다. 열람할 내용은 많지 않았다. 열린 인터넷이 아니고, 내부선로에 의해 정해진 내용만 볼 수 있으니 인젠 다 외울 정도였다.
무엇을 작업하면 마우스를 많이 움직여 안해의 유방을 애무하던 내 기분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는 내 의식 속의 살아있는 안해의 유방을 직접 그려보기로 하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림에 남다른 천부를 가지고 있었고, 화가의 꿈을 키우며 그림공부를 십여 년 동안 해왔었다. 끝까지 미술 쪽으로 발전하고 싶었지만 앞으로의 전망을 보면 금융 쪽이 낫다는 부모들의 판단에 의해 나는 재정대학에 지망하게 되였고, 그것이 오늘의 비극을 초래한건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컴퓨터에는 마침 일러스트프로그램이 깔려 있었다. 나는 일러스트를 켜놓고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내의 풍만하고, 아름다운 젖무덤을 상기하며 마우스를 움직여 가는 재미에 빠졌다.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머리속 려행을 한다. 행복했던 순간으로 들어간다. 손은 계속하여 움직인다. 조물락조물락, 갑자기 누군가 “야 이 변태새끼야, 그게 네 마누라 거니? 잘 생겼구나.” 하면서 내 뒤통수를 친다. 눈을 떠보니 숱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서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킬킬 웃고 있었다. 화면에는 녀자의 가슴이 그려져 있었는데 내가 봐도 너무도 아름다운 꿈에도 보고 싶던 안해의 젖가슴이였다. 깜짝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내 안해의 가슴이 이렇게 생생한 화면으로 그려질 수가 있을까. 일면 기쁘면서도 또 안해의 소중한 가슴이 여러 사람한테 공개된 것에 미치도록 화가 나기도 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마우스를 꽉 움켜쥐였다. 빠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마우스가 조각났고, 손에서는 피가 흘러내려 내 발등에 뚝뚝 떨어졌다. 눈에서는 열기가 나는 듯 뜨끈뜨끈해났고, 누군가를 잡아먹을 듯이 날카로운 시선이 뿜겨져 나갔다. 모든 걸 부셔버리고 싶었다. 이름 모를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나의 독기어린 시선에 눌렸던지 “미친 새끼!”하는 말만 남기고 다들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마우스에 대한 집착은 더 심해가기만 하였다. 나는 기회만 되면 마우스를 잡았지만 사람들의 눈 때문에 머리속에 가득 차 넘치는 아내의 젖가슴을 차마 그려내지는 못하고 뭘 그릴까 궁리하다가 아무 것이나 주변에 보이는 물건들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밥상, 걸상, 책장, 신발장 하여튼 보이는 대로 그리면서 부지런히 마우스를 조물락거렸다. 차츰 흥분이 되고 열정이 오르면 저도 몰래 가슴이 그려지는데 나는 그 가슴을 책상의 가운데 걸상의 등받이 양쪽의 설계인양 동그랗게 모양을 내면서 그리운 가슴을 보물찾기 하듯 설계도 안에 숨겨가며 그려나갔다. 하지만 얼핏 보면 그건 그냥 책상이나 걸상의 조형이여서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고 나만 그 속에 빠져버렸다.
나의 설계 도안은 점점 완벽해져 갔고, 어떤 조형을 만들면 가슴을 눈치 보지 않고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머리를 쓰기 시작하다보니 대부분은 둥근 모양, 걸상등받이도 위쪽에 둥글게 조형을 만들었는데 거기가 가슴모양을 그려 넣기 가장 적합한 모형이였다. 량쪽에 동그랗게 올려붙이고 다음에 유두까지 그렸지만 그건 얼핏 보면 그냥 잡기 쉽게 하기 위한 인체구조를 배려한 설계로 보였다. 나는 눈만 감으면 안해의 젖가슴 혈액선의 분포까지도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참 눈을 감고 느낌을 찾은 다음 섬세하게 그 선을 하나하나 그려 넣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보기에는 그건 그냥 나무자체의 자연선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이 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내 영혼을 불어넣은 설계는 누가 봐도 립체감이 났고, 그건 그림이라기보다 살아 숨쉬는, 목마른 령혼의 웨침과도 같은 마른나무들의 생명에 대한 갈구의 목소리였다. 누구라도 한번 눈길을 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다시 들여다보도록 흡인하는 힘이 있었다. 한참씩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마력의 설계도들이였다. 그래서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릴라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앉아 말없이 숙연한 기분으로 구경하군 하였다. 나는 감옥의 인기 인물로 마술그림을 그리는 “천재인물” 로 소문이 나게 되였다.
나의 설계실력이 인정을 받아 목공실에 배치되였고, 가구설계와 기술 감독을 책임지게 되였다. 인제는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직접 가슴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공장에 가보니 기계설비는 낡았고, 그렇게 정밀한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둥그스름하지도 않은 네모 형으로 밖에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것을 동그랗게 만들려면 수공작업이 필요하였는데 여기서는 그런 작업에 필요한 공구가 없었다. 나는 그중 크기가 맞춤한 모형 하나를 집어 들었다. 비록 가슴하고는 차이가 많았지만 나는 그걸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조각에 쓸 만한 공구라고는 드라이버뿐이였다. 그런데 드라이버는 끝이 예리하지가 않아서 작업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먼저 드라이버를 날이 서게 가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드라이버를 망치 모서리에 대고 쓸면서 갈았다. 드라이버를 조각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큼 조각칼로 만드는데 석 달이란 시간이 걸렸다. 저녁이면 그 나무모형을 가만히 침실까지 가지고 와서는 손에 꼭 쥐고 잤다. 만지작거리면서 가슴의 감각을 찾았고, 다음날 작업할 부분을 미리 생각해두었다. 안해의 가슴을 찾은 나의 손은 안정을 많이 찾았다. 터실터실한 네모난 나무모형이지만 그래도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면서 실물과 똑같이 만들어보겠다는 목표를 세우니 감옥생활의 고달픔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나의 모든 신경은 아내의 가상가슴을 만드는데 집중되여 있었다. 작업실만 가면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예리하게 날이 선 드라이버로 정성껏 모형을 만들어 나갔다. 한 번, 두 번 쉼 없이 깎고, 또 깎았다. 생생히 떠오르는 안해의 젖가슴을 모형으로, 그것을 만지던 손끝의 감각을 되살리며 한 홈씩 정성껏 깎아갔다. 정성이 지극하면 바위에도 꽃이 핀다고 나무모형은 점차적으로 실물과 가까워졌다. 일 년이라는 간고한 작업 끝에 안해의 가상젖가슴은 끝내 완성되였다. 완성품을 손에 꼭 쥔 나는 자신의 작품에 수백 번 입을 맞춘 후, 심장소리가 들리는 내 가슴에 꼭 붙여 대였다. 내 손은 흥분에 가느다랗게 떨려왔고,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나무로 만들어진 안해의 가상유방을 보물 다루듯 소중히 간직하였다. 제일 안전한 곳이 어디일까를 고민하다가 그래도 베개 밑이 제일 합당하다고 생각되여 베개 쪼르래기를 열고 깊숙이 넣어두었다. 나는 밤이면 슬며시 아내의 가상유방을 꺼내어 손에 꼭 쥐고 만지작거렸다. 한 일 년쯤 만지다보니 손 기름이 묻어서 반질반질해졌고, 조금만 느낌이 다르다 싶으면 또 다시 머리속의 모양대로 수정작업을 하였다. 나는 크기도, 모양도, 심지어 유두까지도 세밀하게 다 가공을 하였고, 조금 틀린 부분의 혈액 선은 밤이면 손톱으로 긁어가면서 완성해나갔다. 감옥에서 만든 나무유방은 내 손때가 묻고, 내 땀이 슴배어 들었고, 내 피도 함께 슴배어 들어간 안해에 대한 사랑을 담은 내 영혼이 숨 쉬는 가슴이였다. 유일한 부족 점이라면 탄성이 없는 것이였다.
나는 또 머리를 굴려가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하면 안해의 가상유방에 살결을 부여하고, 탄성을 부여해야 할지에 대해 오래 동안 고민과 번뇌를 거듭해갔다. 그러나 나무유방에 그 어떤 신경을 넣어줄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안해의 가상유방에 살결을 부여하고, 탄성을 부여할 수 있는 대안은 바로 내 손에 그런 감성을 키우는 일임을 깨우치게 되였다. 나는 매일 같이 안해의 젖무덤을 매만질 때 느꼈던 감수를 기억해내며 매일 밤 안해의 가상유방을 만지작거렸다. 무엇보다 마음의 도(道)가 중요했다. 그렇게 나는 또 안해의 가상유방을 수행에 가깝도록 일 년 동안 만지작거려서야 겨우 안해가 가지고 있던 유방의 살결과 탄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의 손은 결국 안해의 가슴에 대한 감성을 움켜지고 말았다. 이제부터 살결과 탄성이 살아있는 안해의 가상유방은 긴 내 감옥생활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고 희망이였다.
4
그리움의 암증
힘든 일 년이 지나고 서서히 두 번째 해에 들어섰다. 그동안 마음도 몸도 많은 안정을 찾아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그른데 없다. 남편에게 6년이라는 판결서가 내려졌을 때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 내렸고,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까지도 의심을 가지게 되였으며, 나에 대한 사랑마저 거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칠 것 같았다. 8년 동안 속아서 살았다는 생각에 리지를 잃어버린 나는 옷장 문을 열고 남편의 물건이라는 물건은 몽땅 끄집어 내였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가져다 버려 버리고 이 집에서 그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버리고 싶었다. 텅 빈 옷장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제야 막혔던 숨이 조금 쉬어지는 것 같았다. 빈 서랍들이 퀭하니 입을 벌리고 날 비웃는 것만 같았다. 화가 난 나는 서랍을 와락 잡아 당겼다. 덜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서랍이 통째로 빠져나와 내 발등에 떨어졌다. 나는 갑자기 느껴오는 통증에 저도 몰래 “아!” 소리를 내며 머리를 숙여 발등을 움켜잡았다. 마음의 아픔인지 육체의 아픔인지 알지 못하는 괴로움의 눈물이 아픈 발등을 적시였다. 한참을 그렇게 퍼더버리고 앉아서 내 아픈 마음을 달래고 발등을 문지르며 마음껏 울었다.
몽롱한 눈물 속에 비쳐드는 통 빠진 서랍장에는 두 다리를 모아세우고, 머리를 다리사이에 파묻은 채 웅크리고 앉아서 억울한 듯 서글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편이 앉아있었다.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손을 넣어 남편을 끄잡아 당겼다. 문득 서랍장 밑에서 딴딴한 무엇인가가 손에 맞혀왔다. 꺼내 보니 고급스러운 노트였다. 남편이 이런 노트를 쓰는 걸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고, 눈물마저 쏙 들어 가버렸다. 뭘까? 긴장감이 들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손도 약간 떨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노트를 펼쳤다.
첫 장에는 정성스레 하트모양으로 오려서 붙인 사진 한 장이 있었다. 내가 처음 보는 사진이였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도망갔던 눈물이 또다시 줄줄 흘러내려 사진을 적신다. 나는 사진이 젖어들까 얼른 손으로 닦아 내렸다. 그것은 우리 둘이 첫 정사를 치른 후, 웃 몸을 채 가리지도 못한 채 침상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첫날을 기념한다며 사진을 찍는 걸 내가 결사적으로 말렸었는데 이렇게 여기에 와 붙어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 일기였다. 그날부터 남편은 사랑일기를 시작한 것 같았다. 남들 보면 안 되는 적라라한 그런 우리 둘만의 사랑이야기들이였다. 젖가슴에 대한 남편의 깊은 사랑이 페이지마다에 넘쳐나고 있었다. 가슴을 특별히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다. 또박또박 쓴 글줄에서 남편의 사랑을 읽을 수 있었고, 그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눈물은 어느새 싹 날아나고 나는 글줄에 빠져들어 킥킥 거리면서 웃기까지 하였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도 망각한 채 그렇게 한 장, 한 장을 넘기였다. 그러다가 갑가지 벌떡 일어났다. 일기장에 더 이상의 사랑이야기는 없고 이상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다음 장에는 날짜와 수자, 그 다음 장에는 누군가의 이름과 수자. 점점 뒤로 가면서 완전 장부책이였다. 나는 뭔가 느낌이 안 좋았다. 이거 뭐지? 남편의 이번일과 무슨 관계가 있겠다는 감이 왔다. 나는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한밤중에 시댁에 찾아가서 시아버님 앞에 책을 내 놓았다. 령도 직에 오래 계셨고, 또 가족이니까 옳바른 방도를 내세워줄 수 있는 제일 믿음직한 적임자는 시아버님이셨다. 우리들의 밤 이야기가 시아버님한테 공개되는 걸 부끄러워할 상황이 아니였다. 아버님은 보시더니 알았다며 본인이 알아서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이제나 저제나 남편이 금방 풀려 나올 줄 알았는데 반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남편밖에 모르는 내 가슴은, 타들어가는 내 마음도 모른 채 시도 때도 없이 남편이 그립다고 그리움을 통증으로 호소해왔다. 이런저런 가슴 띠를 다 해봐도 별 소용이 없었는데 언젠가 사극을 보다가 첫날밤을 보내는 여자가 가슴 띠를 푸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천으로 몇 겹으로 두른 걸 한 겹, 한 겹 풀어나가는 데서 령감을 얻어 나도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싶어 천 파는 매장에 가서 부드럽고 탄성이 있는 걸로 열 메터 되게 사왔다. 너비를 세 등분하여 세 개의 가슴 띠를 만들었다. 낮에는 한 벌을 하고 저녁이면 두벌, 통증이 느껴질 때는 세벌로 가슴을 꽁꽁 동이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너무 동이고만 있어서 그랬던지 가슴주변의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라서 뜨끈거렸고, 주변을 만져보니 터덜터덜하고 여기저기 알맹이가 뭉쳐져 있었으며 도톰하게 살아있던 유두도 기죽은 듯 쑥 들어가 있었다. 이러다 낫겠지 싶어서 계속 견디려고 했는데 며칠 더 지나 보니 유두에서 분비물까지 흘러나왔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강검진 일이 아직 두 달 정도 남았지만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검사받으러 갔다. 의사선생님은 기본검사를 끝내고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재검사를 권유했다. 나는 더럭 겁이 나서 엄중하냐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조심히 물었다. 의사선생님은 “아직 뭐라고 대답은 못하겠습니다. 아직은 나이가 어리시니까 희망을 갖고 결과를 기다려 봅시다.” 라는 애매한 답을 해주셨다.
“그러니까 뭐지? 희망을 가지라고. 그러면 희망적이지 않은 결과의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눈앞이 캄캄해나고 하늘이 빙빙 돌아가는 것 같았다. 간신히 집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졌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 덮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위가 캄캄해나니 그제야 안전해진 듯싶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불로 덮어버린 것 같았다. 근심도, 걱정도, 그리움도, 병마도 다 덮어진 듯싶어서 안도의 숨이 나온다. 나는 사랑받는 녀자가 되고 싶었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나만 생각해주고 사랑해주는 바보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었다. 고맙게도 내 가슴은 그런 사랑을 받게 해주었다. 나는 행복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젖이가 돋아난 작은 입으로 나의 깜직한 유두를 한입에 그득 물고 젖을 쫄쫄 빨아대다가 저도 몰래 힘주어 물어서 “아파!” 소리를 내면서 행복한 아픔을 느껴보고 싶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내 행복의 카드인 가슴이 병났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사랑하는 남편도 다시 만날 수 없고, 사랑하는 아기도 있을 수 없게 된다면 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목이 메어오려고 한다. 나는 “응!” 하고 목에 힘주어 올리 치미는 설움을 억지로 삼켰다. 아닐 거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나는 병마를 쫓기라도 하려는 듯 힘껏 머리를 흔들었다. 생각하면 찾아온다는데 그런 생각을 털어버려야지. 웃으면 복이 온다니까 웃어보자. 나는 스튜어디스처럼 입을 벌리고 앞이 여섯 개가 보이게 미소를 지어보았다. 나는 웃음을 멈추고〈나는 행복합니다〉노래를 불러보았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기다리던 오늘 그날이 왔어요
즐거운 날이예요
움츠렸던 어깨
답답한 가슴을
활짝 펴봐요
가사의 마디마디가 왜 이렇게 나하고는 정반대일까? 나는 불행한 녀자인가 봐! 참았던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울면 불행이 찾아볼까 두려워 나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이불깃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머리를 이불에 파묻었다. 소리가 나오려고 한다. 나는 다시 반듯하게 누웠던 몸을 번져서 이불을 껴안은 채 덥힌 얼굴을 베개 속에 깊숙이 파묻으며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하여 소리의 전파를 막으려고 애썼다. 이마로 베개를 누르며 입술을 깨물고“윽윽!”하고 울음을 집어삼켰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삼일은 하루가 삼추 같았다.
“아니겠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신이 나한테 그렇게 무정할 수가 없을 거야. 암이면 어떡하지? 맞을 거야. 내가 가슴을 너무 학대했어. 숨도 못 쉬게 동이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병난 거야. 내가 죄인이야.”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잠옷 바람으로 거실을 밤새 오락가락하면서 중얼거렸다. 드디여 기다리던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미친 여자처럼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통화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였다.
“안녕하세요. 김은혜 씨 맞은 신가요?”
“네.”
나는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가 훈육을 기다리듯 기여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검사결과가 나왔어요. 아홉시로 예약해드릴 테니 가족분하고 함께 오셔서 상담을 받으시면 됩니다.”
“제가 암인가요?”
“죄송한데요. 저희는 알 수 없고요. 직접 오셔서 교수님을 만나보세요.”
전화기가 맥없이 나의 손에서 미끌어 떨어진다. 바탕화면이 켜지면서 그이의 웃는 얼굴이 나타나 나를 그윽히 바라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는 그이의 얼굴에 나의 눈물이 뚝뚝 떨어져 말쑥하고 영준한 그이의 얼굴을 흐린다. 나는 허리 굽혀 전화기를 주어 들어 손바닥으로 남편의 얼굴을 깨끗이 닦아준 후, 그대로 가슴에 꼭 갖다 대며 눈을 스르르 감는다.
“여보, 제발 날 좀 도와줘. 살려줘! 당신이 제일 아끼는 내 가슴 좀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내가 너무했어. 당신을 찾는 내 가슴이 밉다고 학대했어. 용서해줘. 다시는 안 그럴게. 내가 잘못 했어. 여보, 제발… 흑흑흑!…”
결국 나는 유방암의 진단을 받았고, 바로 일주일 후에 수술날자가 잡혔다. 왼쪽가슴을 절제해야 한단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서서히 수술실로 빨려 들어가는 나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5
행위와 그리움의 변주
만나면 뭐라고 먼저 말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집에 있기는 할까?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겠지? 먼저 웃어야 하나? 아니면 먼저 포옹해야 할지? 예전처럼 안해의 가슴에 직접 손을 대기에는 왠지 자신이 없었다. 집문 앞에 다달았다. 비번이 바뀌였을까? 번호를 찾는 손가락이 흔들려서 정확히 누를 수 없었다. 비번이 바뀌지는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간신히 수자를 입력하니 “드르륵!” 하는 기계음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익숙한 아카시아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행복이 밀려든다. 깨끗하게 치워진 집은 그대로이다. 변한 것이 없었다. 텅 빈 거실에는 빈 소파만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 싶었다. 주방 쪽에 눈길을 주었다. 꽃묶음과 정히 차려진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카시아 꽃 한 묶음이 메시지 한 장을 눌러주고 있었다.
돌아온 걸 축하해요. 고생 많으셨지요.
저는 당신을 만날 면목이 없는 사람으로 됐어요.
절 찾지 마시고 힘들겠지만 부디 행복하시기를 바랄 게요.
은혜로부터
민국이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귀에서 윙 소리가 났다. 이런 상황을 예견 못한 건 아니지만 정작 닥치니 믿었던 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이 가슴이 허무해났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깊숙이 떨어뜨렸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두 손으로 다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손 틈 사이로 새어나와 손등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 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진다. 한참 후, 민국이는 고개를 들고 밥상위의 종이 통에서 휴지 몇 장 뽑아서 눈물을 닦고는 그대로 상우에 내던지고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었다. 뚜껑 하나를 여니 그가 좋아하는 감자를 얹은 돌솥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고 있었다. 다음의 돌솥 뚜껑을 열었다. 거기에는 그가 좋아하는 돼지갈비찜이 만들어져 있었다.
은혜의 손맛, 얼마나 먹고 싶었던가? 그는 숟가락을 쳐든 채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숟가락을 든 오른손 등으로 눈물을 쓱 문지르고는 밥 한 술 듬뿍 떠서 입에 밀어 넣고 갈비 하나를 쥐여서는 게걸스럽게 고기를 물어뜯는다.
민국이는 휘청이는 걸음으로 침실로 들어갔다. 은혜의 아키시아 내음이 풍겨온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침실은 조용하고 아늑하다. 민국이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손으로 침대시트를 부드럽게 어루쓴다. 천천히 침대에 올라가 반듯하게 눕는다. 눈을 뜬 채 천정을 한참동안 멍하니 쳐다보더니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몸을 뒤번져 누워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 숨을 멈춘 듯 그 자세로 죽은 송장처럼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민국이는 몸을 천천히 일으키더니 침대에서 내려섰다. 옷장 앞에 다가서더니 옷장 문을 연다. 떠날 때와 똑같이 민국이의 옷이 옷걸이에 곱게 줄느런히 걸려 있었다. 아직도 아카시야향이 그대로 묻어 있는 옷들에서 은혜의 사랑의 손길이 느껴졌다. 은혜와의 첫 데이트기념으로 함께 사 입었던 커플티를 꺼내어 침대 우에 곱게 펴놓았다. 티라도 짝을 맞춰 줘야지 하는 생각에 은혜의 옷장 문을 열었다. 옷걸이는 텅 비여 있었고, 아래쪽에 큰 옷상자 하나만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았다. 헉―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백 개도 넘을 법한 형형색색의 브라자가 꼴독 담겨져 있었다. 민국이는 눈이 번쩍 뜨이였다. 종래로 브라자를 하지 않던 사람인데 이게 왜 이렇게 많이 있을까? 그 사이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새로 생긴 “습관인가?” 하는 생각에 이름 못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민국이는 미친 듯이 그 브라자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여 있는 힘껏 당기고 찢어댔다. 제일 밑에는 부드럽고 얇은 천이 길게 둘둘 말려져 있었는데 아무리 당겨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나서 확 잡아당겨 낚아챘더니 그 안에서 책 한권이 뚝 떨어져 나왔다. 펼쳐보니 은혜의 일기장이였다.
2020년 9월 10일
자기야. 나 아파. 많이 아파. 가슴이 아파. 아파서 잘 수가 없어 여러 가지 브라자를 해봐도 안 돼. 어떡하면 좋아? 좀 알려줘 봐.
2020년 10월 10일
오늘은 자기 생각나서 우리가 함께 보던 사극드라마 다시 봤는데 옛날 녀자들은 브라자를 안 하고 천으로 동인 걸 발견했어.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봤는데 괜찮네. 많이 좋아졌어, 고마워 자기야.
2020년 11월 10일
자기야 어떡해? 나 병났어. 가슴이 너무 아파. 오늘 검사 받았는데 느낌이 안 좋아. 암일 수도 있대. 나 암이면 어떡해? 죽는 거잖아. 자기 얼굴도 못 보구 죽으면 안 되는데… 나 좀 도와줘, 제발, 암만 아니게 해줘. 나 무서워. 자기야.
2021년 12월 10일
자기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한쪽 가슴 잃어버리게 생겼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왼쪽가슴. 내가 죄 지은 거야. 자기 가슴도 잘 지키지 못해서… 내가 이 몸이 되여서 자기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안되겠지? 자신이 없어. 언제든지 올 때까지 고이 기다려 준다구 했는데 약속 못 지켜서 정말 미안해… 아예 죽어버릴까.…
민국이는 일기책을 집어던지고 자기 머리를 마구 잡아 뜯으면서 울부짖는다.
“내가 나쁜 놈이야. 내기 미친놈이야! 다 내 탓이야.내 잘못이야. 내가 네 가슴을 너무 탐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내가 날마다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내가 네 가슴 빼앗아 왔구나. 미안하다. 은혜야!”
실컷 발광을 하고난 후, 민국이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벌떡 일어서더니 거실로 뛰어가 가방을 열어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가슴모형을 꺼내 방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발로 마구 짓뭉개버린다. 마치도 은혜의 가슴을 뺏어온 장본인이 이 모형인 듯 발이 터져 피가 나오도록 뭉개고, 또 뭉갰다.
민국이는 찢겨진 발바닥의 아픔도 잊은 채 거리에 뛰쳐나가 목 터지게 부른다.
“은혜야, 사랑해!”
그리고는 “은혜야, 기다려 내가 갈게. 꼭 기다려. 난 네 가슴만 사랑한 거 아니야. 나는 널 사랑하는 거야. 가슴도 네 가슴이라서 사랑하는 거야. 한 쪽이 아니라 두 가슴 다 없어도 괜찮아. 사랑해, 은혜야! 기다려 은혜야! 나 왔어. 은혜야!…”
민국이는 목 터지게 외쳐대면서 자신의 숙명적인 사랑 은혜를 찾아 온 거리를 누벼갔다.
이 소설의 어떤 結
내가 3년이란 긴 출장을 다녀왔을 때 너는 나와의 재회를 거부했었지. 그때 나는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였어. 나는 긴 출장을 나가 있었던 동안 너의 왼쪽가슴이 너무 그리워 위대한 조각가로 변신하였고, 나무의 재질로 된 너의 가상유방을 창조했었지. 그게 내가 긴 출장을 견딜 수 있었던 유일한 예술작업이였어. 그런데 너는 날 떠나려고 했었지. 나는 진짜 눈물이 났고, 너를 죽도록 원망하기도 했어.
그런데 말이야. 너 역시 내 사랑의 손이 그리워서 너의 왼쪽젖가슴을 너무 조이던 그리움의 암증으로 유방암이란 무서운 병에 시달려 왼쪽가슴을 제거했다고 했어. 그래서 너는 자신의 왼쪽가슴이 없는 현실로 나를 받아들이기 힘겨워 했었지. 너는 바보로 되였어. 물론 나는 너의 왼쪽가슴을 많이 사랑했었지만 내 진정한 사랑은 바로 너였어. 네가 그 무서운 유방암을 이기고 생존해주었다는 것, 나에게는 커다란 은혜였고, 신의 은총이었지. 네 왼쪽젖가슴이 비록 제거되였지만 그게 너에 대한 내 전부의 사랑만 아니였어. 이제 너의 비여진 왼쪽젖가슴에 내 사랑의 손을 영원히 묻어둘 거야. 그래서 네 사랑의 심장을 내 손에서 영원히 놓지 않으려고 생각해.
결국 너는 내게 다시 돌아왔어. 너의 빈 왼쪽젖가슴에 더욱 위대한 사랑을 심어가지고 말이야. 나에게 너의 식을 줄 모를 사랑이 있다면 그게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한 것이지. 너의 변치 않는 사랑이 있고, 나의 열렬한 사랑이 있다면 너의 왼쪽가슴에 아름다운 선물이 다시 탄생하게 될 것이야. 그렇게 너와 나는 다시 재회를 했고, 우리의 사랑 탑은 저 우주에까지 거대하게 솟았지.
우리의 위대한 사랑 탑은 또 다른 어여쁜 생명을 탄생시켰어.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딸아이가 축복처럼 왔지. 딸아이는 너의 오른쪽 젖만 먹고도 튼튼하게 무럭무럭 자라주었어. 이제 “엄마, 아빠!” 하고 종알거리면서 우리에게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주고 있지.
아, 내 사랑하는 그대 왼쪽젖가슴이여!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선물을 가져다 준 그대 왼쪽젖가슴이여! 거기서 윤회마저, 억겁의 세월마저 넘어주는 우리의 영원한 사랑이 분출되였어. 오늘 밤도 너의 아름다운 왼쪽젖가슴에서 발사된 행복이 내 손 끝에 따뜻하게 스친다.
2022. 송화강 6기 발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