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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목,사랑에 울다
허복순
이 소설의 어떤 序
그는 조선에서 간도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그런데 간도 땅에는 향기로운 산돌배가 있었지만 자신의 고향 조선 길주의 사과처럼 맛좋은 사과는 없었다.
그가 간도 땅에서 오래 살아갈수록 고향의 사과맛이 그리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다녀오는 동생에게 부탁하여 길주의 사과나무가지를 베어오게 했다.
그는 간도의 산돌배나무에 조선의 사과나무가지를 접목했다. 그로서 3년후에 그 접목한 산돌배나무에 사과도 아니고 돌배도 아닌 커다란 과일이 달렸다.
그가 먹어보니 그 맛은 천궁의 선도에 가까웠다. 사과의 진한 맛과 산돌배의 강렬한 향이 너무 잘 어울렸다. 그는 자신이 조선의 사과나무가지를 접목한 산돌배나무에 그 맛좋은 과일의 이름을 어떻게 달아줄까 고민을 했다.
그는 오랜 고민끝에 그 과일의 이름을 사과배라고 지어주었다. 조선사과와 간도산돌배의 융합에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였다.
사과배, 그는 중국조선족의 과일로서 중국조선족의 문화를 담고 있었다.
그렇게 사과배는 100년의 세월을 중국조선족의 삶과 동반해왔다. 사과배는 중국조선족기원의 전설이였다.
사과배, 사과배!
1. 사과배광주리
늦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스미고 들어온다. 강주리(康宙吏)는 모진 세파를 이겨 낸 사내답지 않게 찬 가을바람에도 몸을 오싹 떨었다. 나이가 원쑤라더니 강주리도 자신이 나이 륙십을 먹고 몸의 열기도, 마음의 정열도 식은 것이라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다리에는 아직 힘이 있어 가파른 뒤산고개를 씨엉씨엉 오를 수 있었다.
이 뒤산고개의 전체에 강주리의 만무과원이 펼쳐져 있다. 강주리는 30여년동안 매일 같이 이 뒤산고개를 오르내렸다. 다만 이 뒤산고개의 한곳만 강주리가 36년동안 발길을 돌리지 않았었는데 그곳이 바로 싸리나무숲이였다. 그런데 오늘 강주리는 36년의 긴 세월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아픈 상처와 그리움을 다시 터치우면서까지 싸리나무숲으로 찾아들고 있다.
오래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싸리나무숲에는 싸리나무가 너무 무성하여 사람이 아니라 뱀새끼 한마리조차 기어들 수 없을 정도로 틈이 없었고, 싸리나무도 너무 굵어서 사과배광주리를 겯을만한 여린 싸리대도 거의 없었다. 강주리는 빈틈없이 무성한 싸리나무숲을 마주하는 순간 숨이 콱 막혀왔다. 30년전 집집마다 배광주리를 겯을 때에는 서로 얼굴까지 붉혀가며 대 좋은 싸리나무를 베여가느라고 싸리나무대밑 그루터기만 앙상하던 풍경하고는 너무 대조적이였다.
“쓸만한 싸리대가지가 없네그려. 하긴 사과배광주리를 겯지 않은지도 30여년이 되였으니 싸리대가지만 늙어버릴 수밖에… 나무는 늙으면 진이 빠져 노긋함이 사라지고, 사람은 늙으면 미운 정도 그리움으로 받아들여지는 법이지. 이 싸리나무숲을 다 뒤져 좋은 싸리대가지를 솎아보았자 사과배광주리 몇짝도 겯지 못하겠네그려.”
강주리는 사과배광주리를 겯을 좋은 싸리대가지가 모두 늙어버린 싸리나무숲을 어이없이 바라보며 담배 한가치를 뽑아물고 싸리나무숲앞 둔덕에 걸터앉았다. 산공기를 안주하는 담배맛은 별미였다. 강주리는 힘껏 한모금 들이 빨았다가 입을 동그랗게 모아 연기동그라미 네개를 련속 만들어 천천히 내보내였다. 그 네개의 연기동그라미들은 네 사람의 얼굴로 되였다가 가물가물 흩어지며 조용히 하늘로 비껴갔다.
가족이라는 건, 혈육이라는 건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그리움의 암증덩어리로 마음을 괴롭혔다. 싸리나무대가지를 베던 곳에 오니 그들을 잃어버린 아픈 상처와 그리움은 더했다.
강주리는 긴 세월을 장죽으로 빨듯 오래동안 담배 한가치를 태우며 싸리나무숲에서 사랑으로 이어졌던 허무한 그리움을 가슴 아프게 달래다가 다 타들어 간 담배불이 손가락을 뜨겁게 데쳐서야 담배불을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주리는 착잡한 감정과 얼기설기 엉킨 상념에서 빠져나와 손바닥에 침을“퉤!”하고 뱉고는 토낫을 들고 싸리 나무숲에 들어가 어린 싸리나무대가지만 골라 베기 시작했는데 반나절 정도 넓은 싸리나무숲을 헤매서야 겨우 사과배광주리 두어짝 겯을 싸리대가지를 벨 수 있었다. 그는 싸리대가지를 크게 한단 묶어 한쪽에 밀어놓고 허리를 쭉 펴며 아래를 굽어보았다.
만무과원의 산자락에 덩실하게 세워진 사과배박물관의 널따란 앞들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드는 모습과 조선족 한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아들이 핸드폰카메라를 들고 딕톡생방송으로 사과배판매홍보를 하는 모습이 희미하게 시선에 안겨 들었다.
요즘은 무슨 세상인지 핸드폰 하나만 들었다하면 모든 걸 척척 해결하니 참으로 요지경 같은 시대로 매일 같이 별별 신기한 일들도 많이 쏟아져서 강주리의 머리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들 강선도가 작년부터 만무과원에서 엄청난 물량으로 쏟아내는 사과배를 한 겨울 내내 길옆 토굴에서 추위에 떨며 이듬해 봄까지도 다 처리하지 못하여 나중에는 사이좋은 친구가 운영하는 양돈장에 돼지먹이로 실어다주고, 한끼 술대접이나 받던 국면을 타파하여 지금은 딕톡생방으로 한두달 내에 후딱 팔아치우니 강주리는 웃음주머니에 돈주머니까지 잘랑거렸다.
강주리는 금방 슬픔으로 가득 찼던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가득 채웠다. 36년동안 자신의 피땀으로 써왔던 인생의 성적표였다. 만무과원도, 자랑스러운 아들도…
기분이 좋아진 강주리는 베여놓은 싸리단을 훌쩍 어깨에 멘후“으쌰!”하고 단숨에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는 무거웠던 마음을 추스르며 싸리대가지단을 메고 휘청휘청 산을 내려와 산중턱에 자리한 아담한 귀틀집 앞마당에 부려놓았다.
36년전 이 귀틀집은 본래 사과배를 지키던 움막이였는데 그해 가을 강주리가 왕리화와 함께 도망을 와서 한해 겨울 살다가 이듬해 봄에 두 사람이 사랑의 힘으로 새로 지은 귀틀집이였다.
강주리는 꼬박 10년만에 귀틀집의 자물쇠를 열었다. 그는 36년의 긴 세월동안 세번만 이 귀틀집의 자물쇠를 열었다가 닫았다. 10년에 한번씩 귀틀집을 보수하기 위해 자물쇠를 열었던 것이다. 매번 흙벽을 다시 바를 때마다 그는 아픔과 그리움을 눈물에 이겨 발랐었다. 그에게 모종의 희망이 기약 없이 심어져 그는 아직도 이 귀틀집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싱긋한 싸리나무의 냄새와 토벽의 흙냄새가 어우러져 제법 구수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강주리는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내쉬면서 그 속에서 왕리와의 향을 찾는다. 3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남아있을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기억 속의 그 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고 저도 몰래 눈물이 흘렀다. 강주리는“먼지가 들어갔나?”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눈물을 닦는다. 무색함에 흐르는 눈물에게 하는 혼자만의 변명이였다.
강주리는 열세살적부터 부모들을 따라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부업에 뛰여들었는데 그 솜씨가 웬만한 어른들 몇명이 겯는 분량을 당할만큼 잽쌌다. 그렇게 시작된 강주리의 사과배광주리 겯기는 스물네살까지 이어졌었다. 겨우 십이년에 불과한 사과배광주리를 결었던 인생이였지만 그 십년은 강주리의 일생에서 행복과 불행으로 반죽된 파란만장한 시절이였다.
강주리 나이 18살에 겯은 사과배광주리를 팔러 나갔던 부모님이 차사고로 동시에 돌아가셨다. 강주리는 하루아침에 고아로 되였으며 대학생의 꿈을 갖고 다니던 고중공부도 그만두어야 하였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홀로 사과배광주리를 겯어 가면서 외로운 생계를 유지하였다. 암흑 같던 그 시절에 삶의 의욕마저 잃었던 강주리가 삶과 죽음의 십자로에서 방황할 때 강주리의 손을 잡아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청매와 홍매의 죽마고우로 함께 자라온 한마을의 한족처녀 왕리화였다.
왕리화네는 강주리의 고향마을인 용지마을에서 유일한 한족집이였는데 왕리화의 아버지와 엄마가 산동에서 변강지원호로 용지마을에 와서 왕리화를 낳았으니 왕리화도 용지마을에 고향을 둔 토박이였다. 용지마을에 한족학교가 없다보니 왕리화는 강주리와 같이 조선족학교를 다니게 되였다. 왕리화가 한족애라고 애들한테 놀림을 당할 때마다 강주리는 늘 왕리화를 두둔해나서군 하였다. 왕리화네 부모도 그 일로 강주리를 무척 고마워하시면서 한족집에서 잘하는 전병(煎餠)이나 옥수수떡(锅贴)을 자주 가져다주었다. 간식이 없던 시기라 강주리는 그것이 별미였고 그로부터 둘은 더욱 친해져서 늘 붙어 다니곤 하였다.
강주리가 학교를 중퇴하자 왕리화는 공부를 그만두지 말라며 날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찾아와서 배워주었고, 강주리가 광주리를 겯을 때면 왕리화는 싸리나무대가지도 옆에서 섬겨주면서 그가 학비를 벌어 다시 학업을 이어가기를 은근히 바랐고 지지해주었다. 강주리는 그것이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음을 알았지만 그러는 왕리화가 싫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왕리화도 대학시험에서 락방하여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돕게 되였고, 그들은 매일같이 붙어있었다. 왕리화의 따뜻한 사랑은 강주리의 언 가슴을 녹여주었으며 그들에게 사랑의 씨앗도 움트게 하였다.
그러나 왕리화네 부모들이 한사코 그들의 사랑을 반대하고 나섰다. 처음에 강주리 아버지와 왕리화 아버지는 형님 동생하며 아주 가까웠다. 왕리화의 아버지는 본래 돈이라면 무서운 사람이였고, 거의 수전노에 가까웠다.
그는 이 용지마을에서 사과배광주리 겯는 솜씨가 제일 좋은 강주리네와 친해야 광주리를 잘 겯는 솜씨를 배워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자신만의 속셈이 있었는데 그래서 딸 왕리화가 강주리와 친하게 지내는 걸 말리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은근히 왕리화가 강주리에게서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솜씨를 잘 배워 왕리화도 강주리처럼 사과배광주리를 많이 겯어주기를 바랐었다. 그래서 진심인지는 몰라도 늘 강주리의 아버님하고 두집 혼사롱담도 허물없이 주고받았다.
“형님. 그 집 강주리를 우리 집 데릴사위로 주오. 그러면 우리 례장금(财礼)두 아이 받겠소.”
그때마다 강주리 아버지도 기분이 좋아 허허 웃으면서“그럼 우리야 좋지. 돈도 안 내고 참한 며느리 얻는 건데…”라고 즐겁게 받아주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잃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강주리에게 딸을 주려고 하지 않았으며 갖은 방법으로 그들의 래왕을 막아나섰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딸을 구슬려도 보고, 말을 듣지 않으니 때리기도 하였으나 죽어도 강주리한테 시집가겠다는 딸앞에서 마지막 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고향 산동에서 례장금 10만원을 받고 신랑감을 물색해놓고는 이제 데리러 오면 보내기로 약속을 해놓았다. 그리고는 왕리화가 도망이라도 갈가봐 산동의 신랑감이 올 때까지 왕리화를 집안에 가두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때 왕리화가 천방백계로 강주리에게 자신을 구출하여 멀리 도망가자는 쪽지를 내보내지 않았더라면 강주리는 아마 왕리화를 산동에서 온“신랑감”에게 빼앗기고 말았을 것이였다.
부모를 잃고, 일가친척도 없이 외톨이인 강주리가 왕리화를 구출해내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하여 강주리는 왕리화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는데 기껏 멀리 달아난다는 것이 겨우 용지마을과 60여리 상거한 용천(龍泉)마을의 뒤 산 산중턱이였다.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는 가출하여 자신들의 고향 마을에서 60여 떨어진 이 용천골로 숨어들어 사과배움막에서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의“축복 받지 못한 사랑”을 이어 나갔다.
해빛도 잘 들지 않는 산중턱의 사과배움막에서는 왕리화의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밤낮으로 울려 퍼졌다.
我家住在黄土高坡,
大风从坡上刮过,
不管是西北风还是东南风
都是我的歌 我的歌
2. 쌍둥이사과배
한겨울의 추위도 그들의 불같은 사랑앞에서는 녹아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의 불길은 두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었고, 겨우내 부지런히 손을 놀려 겯어놓은 사과배광주리는 움막앞에 산처럼 쌓이여서 그들 사랑의 견증인인듯 움막앞을 지키였다.
따뜻한 봄이 되자 강주리네는 사과배광주리를 팔아서 모은 돈으로 움막앞에 자그마한 귀틀집을 짓고 두 사람의 보금자리를 만들었고, 앞마당에서 외홀로 자라던 돌배나무에 산동에서 가져온 사과나무가지를 접목해놓고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였다.
강주리는 왕리화를 꼭 껴안고 속삭이였다.
“왕리화, 우리 영원히 함께 하자. 넌 나의 유일한 사랑이고, 내 하늘이고, 영원한 나의 우주야. 하늘이 무너져도 나만 믿어. 꼭 행복하게 해줄게.”
튼튼한 강주리의 넓은 품은 세상의 모진 비바람을 막아주는 병풍처럼 왕리화의 불안한 가슴에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강오빠, 죽을 때까지 난 오빠 한사람만 사랑할 거야 믿어줄 거지?!”
물기를 가득 머금은 함초롬한 눈으로 쳐다보는 왕리화의 동그란 눈에 강주리는 대답대신 뜨거운 입술을 갖다대였다.
이듬해 봄에 접목된 돌배나무에는 사과보다 더 시원하고, 돌배보다 더 부드럽고 달콤한 쌍둥이사과배가 열리였고 두 사람도 사랑의 결실인 이란성쌍둥이를 보았다. 강주리는 딸인 큰아이에게 강선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아들인 작은아이에게 강선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강주리와 왕리화는 이란성쌍둥이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면서 힘든 줄 모르고 신나게 사과배광주리를 겯었다.
왕리화는 강주리가 결어준 쌍둥이광주리요람에 쌍둥이들을 누이고 자장가를 부르며 한손으로는 요람을 흔들어 애들을 잠재우고 다른 한손으로는 부지런히 싸리대를 섬기면서 남편의 사과배광주리 겯기를 도와나섰다. 강주리도 쌍둥이광주리요람에서 해죽해죽 웃어대는 쌍둥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왕리화의 노래가락을 따라 부지런히 손을 놀려 광주리를 엮어갔다.
배는 사과를 사랑하였지
사과도 배를 사랑하였지
배와 사과의 사랑으로
쌍둥이사과배가 태여났지
앞쪽 사과배광주리에는
예쁜 사과배가 웃어주고
뒤쪽 사과배광주리에는
튼튼한 사과배가 웃어주네
아빠는 사과배광주리를
멜대에 지고 춤을 추며
엄마는 뒤에서 노래 부르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
에헤야, 쾌지나 칭칭 나아네
그런 행복한 축복 속에서 강주리는 힘든 줄도 모르고 하루저녁에 사과배광주리 여덟 짝씩 겯어냈다. 그때 사과배광주리 하나에 1원씩 했으니 강주리는 하루 저녁에만 8원 벌이를 할 수 있어서 당장 갑부가 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용천의 골짜기에서 이란성쌍둥이오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고, 래년에는 새품종으로 쌍둥이사과배를 더 많이 심어 살림을 꽃피우려는 설계도까지 그려가면서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늘도 그들의 행복한 새살림에 시샘이 났는지 그들이 아름다운 설계도를 펼치기도 전에 난데없는 불행을 소리 없이 선사해왔다. 태여난지 겨우 반년이 지난 이란성쌍둥이오누이가 엇바꿔 앓기 시작한 것이였다.
오늘은 선화였다.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숨넘어가게“으앙!”하고 울다가 흰 눈자위가 위로 올라가면서 기절을 하는 것이였다. 선화의 혼절은 강주리와 왕리화에게 두려움을 가득 안겨주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는데 강주리는 두짝 사과배광주리요람을 내오고, 왕리화는 두 아이를 앞쪽 뒤쪽 사과배광주리요람에 넣어준다. 강주리는 힘든 줄도 모르고 멜대의 량쪽 채에 사과배광주리요람을 매달고 부리나케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렸다. 왕리화는 그 뒤를 달음박질하듯 엉엉 울며 뒤따라갔다. 가까운 향소재지의 병원에서 간단한 구급을 거치자 아이는 곧 깨여나고 진정 되였다. 그렇게 한바탕 들볶고 나면 강주리의 온몸은 물주머니로 되고, 왕리화의 얼굴은 눈물바다가 되였다. 이렇게 하루를 힘겹게 넘기면 그 다음 날에는 선도가 또 선화와 똑같은 증상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역시 향소재의 병원에 가서 간단한 구급을 하면 개복이 되였다. 차츰 강주리와 왕리화도 이란성쌍둥이의“귀신 병”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여 갔지만 사흘이 멀다하게 들볶아대는 두 아이때문에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아마도 큰 병원에 가서 애들 병의 뿌리를 뽑아야지 그냥 이렇게 구급책으로 해결하다가는“큰일 날 것이다”는 주변의 권고와 향소재지병원의 의사들 권고에 따라 그들은 큰 병원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솔직히 그들도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손에 쥐인 것이 없어서 도무지 엄두를 못 낸 것이였다.
강주리와 왕리화가 제일 먼저 찾은 큰병원은 연변병원이였다. 그러나 연변병원에 와보아도 진찰결과는 역시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일이라면 좋은 병원을 찾아도 병의 근원을 찾지 못하고, 완치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제 그들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강 오빠(康哥), 하늘에서는 무엇때문에 우리에게 이렇게 혹독한 벌을 내릴까요? 아니 왜 나한테 이런 벌을 주는 걸까요? 내가 뭘 잘못했을까요? 저의 조상들이 내린 벌일까요? 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타민족인 조선족남자에게 시집가서 혈통이 다른 아이를 낳아서일까요?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한나라, 한 지역, 한 마을에서 서로 정을 나누었는데 그게 죄라면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요? 강 오빠! 우리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왕리화는 너무 애가 나고, 억이 막혀서 병원복도에서 강주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이렇게 넋두리까지 했다.
“우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큰 병원에 가보자. 장춘의 성급병원에 가도 안 되면 북경의 수도병원이라도 가보는 거야. 돈 없으면 이 내 몸의 피마저 깡그리 팔아서라도 우리 저 애들을 건강하게 키우자. 이런 모습은 왕리화, 너 답지 않은 모습이잖아.”
강주리의 속도 이미 억장이 무너질대로 무너져 그의 자신감마저 모두 빠져버렸지만 그래도 그는 사내대장부답게 왕리화에게 거대한 산처럼 턱 버텨주었다.
며칠후 그들은 빚까지 내여서 장춘의 성급병원으로 찾아갔다. 그곳 역시 진찰결과로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아마도 뇌간의 바람기 같은데 이렇게 빈번하게 발작하면 종신의 뇌간질(뇌전증)로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거 혹 떼러 왔다가 혹 하나 더 붙이는 격이였다. 그들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일순 그들의 눈앞은 캄캄해났다. 이란성쌍둥이오누이 둘 다 종신의 간질병환자로 될 수 있다는 말에 그들은 자신들이 죽음의 바다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너무 기가 막혀 이제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을 결심하고 벼랑끝에 선 사람들처럼 다시 평온하고 강인해졌다. 갑자기 그들에게는 죽더라도 네 식구가 함께 죽을 것이고, 어떻게든 이대로 숙어들지는 않겠다는 강한 집념이 생겼다. 그들은 실망을 가득 안고 연변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에서 하루밤 자는 로정이건만 왕리화는 선화를 품에 안은채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샜다. 잠을 안자도 정신은 말짱했다. 머리는 회전을 멈춘채 아무생각이 없었다. 조양천에서 잠간 렬차가 멈췄고 한 아주머니가 왕리화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그 아주머니는“응. 애, 얼굴에 그늘이 졌군.”라고 하는 것이였다. 왕리화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눈길도 주지 않은채 멍하니 있었다. 왕리화의 무감각한 반응에도 아주머니는 또 한마디 하였다.
“이란성쌍둥이구만. 다 남자로 태여날 운명인데 엇갈렸군. 쯧쯧…”
그 말이 왕리화의 예민해져 있는 신경을 건드렸다. 아이 한명만 안고 있는데 쌍둥이인줄은 어떻게 알았지? 왕리화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쏘아보듯 그 녀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되물었다.
“무슨 말씀인가요? 이란성쌍둥이인걸 어떻게 아셨어요? 엇갈리다니요?”
워낙에 민감한데 이런 말을 들으니 머리뚜껑이 열리는 같았고 지금까지 참았던 모든 것이 분출구를 찾은듯 쏟아져 나오려고 하였다. 왕리화의 두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그 녀인은 태연하게 입술만 움직이는 낮은 소리로 중얼중얼 하면서 왕리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충격으로 차가워진 왕리화의 손을 꼭 잡아준다. 그러자 그 손에서 어떤 전률이 전해졌는지 왕리화의 눈의 독기는 풀려나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 녀인은“서시장뒤골목”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남겨두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왕리화는 미친개에게 물린듯 기분이 언짢았지만 심신이 너무 피곤한 상태라 그날 그 일을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먼 길에 녹초가 된 강주리와 왕리화는“개굴도 제 굴이 제일이라”고 자기들의 귀틀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쌍둥이를 사과배광주리요람에 각자 따로 재우고 그들 둘은 불도 지피지 않은 차가운 구들에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녹이려는듯 꼭 끌어안고 누웠다. 이렇게 힘들 때일수록 부부의 사랑만큼 힘이 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왕리화는 강주리의 왼쪽팔베개에 머리를 얹고, 그의 든든한 가슴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일에 단련된 강주리의 탄탄한 팔근육이 꿈틀거리는 감각을 느껴가면서 한생 그의 팔에만 안겨있다면 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나 이겨내지 못할 난관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안해갔다.
강주리의 오른손이 왕리화의 등 밑으로 비집고 들어와 그녀의 허리를 힘껏 끌어당겨 꼭 끓어 안는다. 부부는 말이 필요 없었다. 이렇게 서로를 보듬어주면 그것이 곧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여 두려울 것 없다. 그들은 서로의 심장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혼곤히 잠들었다.
아이들의 빈번한 병원놀이에 그사이 그들은 마음을 잡고 일하지도 못했고, 조금 마련해놓았던 가산마저도 치료비로 다 쓰다보니 집안은 서발막대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었다. 가장집물이라야 간단한 부엌도구에 둘이 덮고 자는 이 큰이불 한채 외에는 온통 사과배광주리를 겯다가 만 싸리대가지만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마치 싸리나무숲에 싸리나무를 얼마간 베여내고, 그 자리에 로천잠자리를 만든 상황과 흡사했다. 오히려 사과배광주리요람에서 잠자고 있는 쌍둥이의 잠자리만이 그나마 불난 집에 겨우 살아남은 온전한 꽃병처럼 어둠이 흐르는 방안에 한줄기 해살이 되여 주었다.
얼마나 잤을까? 강주리와 왕리화는 잠결에 아이의 숨이 넘어가는듯한 울음소리가 들리는듯했다. 너무 깊은 잠에 빠진 그들은 꿈으로 착각했다가 갑자기 이란성쌍둥이오누이 중에 어느 애가“아픈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이번에는 선도였다. 선도는 방금까지 우는 것 같더니 잠이 든듯이 잠잠했다. 그들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왕리화가 그의 코에 손을 갖다대어보니 숨이 미약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또다시 사과배광주리요람에 잠이 든 선화와 병이 발작한 선도를 눕힌 후, 강주리가 양쪽 멜대 채에 걸어 메고 병원으로 줄달음쳤다. 지치고 지친 몸의 피곤이 채 풀리지 않았지만 그들은 선도를 구급하기 위해 달음박질을 했는데 모성과 부성이 초인간적인 힘을 내준 것이였다. 그들은 정신없이 뛰고 있었기에 발이 땅에 닿는 느낌마저 없었다. 그들의 몸과 정신은 구름 위를 날아예는 것 같았다.
병원에 들어서니 새벽 두시다. 그들은 선도를 안고 미친듯이 응급실 문을 두드렸다. 자다가 깬 의사는 부석한 얼굴로 아이를 들여다보더니“애가 웃고 있네요.”라고 하면서 선도에게“딱!”하고 윙크를 보냈다. 선도는 언제 그랬나 싶게“까르륵!”하고 웃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할 말을 잃었다. 죽을힘을 다해 정신없이 달려왔건만 선도는 아무 일이 없었다. 졸지에 다리맥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왕리화는 한바탕 통곡을 하였다. 얼마나 울었을가? 창백한 얼굴에는 피기 하나 없었고 푹 꺼져들어간 두눈에는 어두운 그늘이 비껴 있었다. 얼굴에 남아있는 채 마르지 않은 눈물자욱만이 그가 숨쉬고 있는 생명체임을 말해주는 상 싶었다.
왕리화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령혼이 빠져나간 꼭두각시처럼 아이를 안은채 병원문을 나와 어스름이 깔려있는 새벽의 서시장 뒤골목을 미친 녀인처럼 배회하였다. 그녀는 기차에서 만났던 여인의“서시장뒤골목”이란 말에 홀린 것 같았다.
3. 도둑맞은
쌍둥이사과배 하나
쌍둥이는 병원을 전전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별탈없이 무사히 첫돐생일을 맞이하게 되였다. 그래서 왕리화와 강주리는 아름다운 희망에 마음이 부풀어 이란성쌍둥이오누이의 첫돐생일을 착실하게 준비해갔다. 강주리는 밤낮을 거의 패가며 사과배광주리를 정신없이 겯어갔는데 하루에 스물짝도 넘게 겯어냈다. 사과배광주리의 시세도 올라서 지금은 사과배광주리 하나에 3원씩 받을 수 있었다. 1년전까지 사과배광주리 한짝에 1원씩 하던 수준에 비하면 이젠 사과배광주리 겯는 부업이 강주리에게 커다란 치부책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경제상황에서 하루에 60원씩 벌 수 있다는 것 금전벌이나 다름이 없었다. 강주리가 열흘만 부지런을 떨고 애를 쓴다면 이란성쌍둥이오누이의 첫돐생일을 남부럽지 잘 쇠여줄 수 있었다. 강주리는 눈물이 나도록 행복했었다.
왕리화는 고운 색동천을 사다가 손수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족이여서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지을 줄을 몰랐지만 용천마을에 내려가 전통바느질을 잘하는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피까지 줄줄 흘려가며 한뜸, 한뜸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만드느라 한달을 넘게 고생을 하더니 이란성쌍둥이오누이의 첫돐생일 전날에야 완성을 했다. 그 사이 선화의 혼절증세가 여러번 발작해서 왕리화는 병원과 줄달리기를 해서 얼굴도 많이 수척해졌다. 강주리도 밤낮으로 사과배광주리를 겯어 돈을 벌어들이느라고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섰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행복하여 자신들이 몸이 야위어가고 피곤해가는 것도 몰랐다. 왕리화는 쌍둥이들에게 자신이 지은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입혀보았다. 강리화는 아장아장, 강선도는 되똥되똥 걸음마를 타기 시작한 두 아이는 넘어질듯 신나게 복장표현을 하였다. 용천 뒤산 산중턱의 오두막 같은 귀틀집에서 오래간만에 강주리와 왕리화의 웃음소리가 밝게 들렸고, 애들의 아장거림에 용기를 주는 박수소리가 들렸다.
래일은 이란성쌍둥이의 첫돐생일이라 만단의 준비를 다 해놓은 강주리와 왕리화는 선화와 선도를 사과배광주리요람에 눕혀 잠을 재우고, 그들도 밤이 늦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왕리화는 큰시름을 던듯 오랜만에 강주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수염이 더부룩한 남편의 꺼슬꺼슬한 얼굴을 매만지며 정겹게 속삭이였다.
“강 오빠, 그 사이 고생 많았어요. 낼부터는 우리 쌍둥이오누이가 제발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무탈하게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래일부터 우리 쌍둥이오누이가 절대 아프지 않게 할 거예요. 저 애들이 두번 다시 아프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저는 그 어떤 짓이라도 다 할 수 있어요. 오빤 날 원망하지 않을 거죠? 하지만 오빠에 대한 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믿어주실 거죠? 내가 강 오빠를 한생 괴롭히는 미안한 일을 하더라도…”
눈물에 촉촉이 젖은 왕리화의 기다란 속눈썹에 매달린 눈물방울이 달빛에 반짝이였다. 왕리화의 피눈물이 나도록 애타고 괴로웠을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강주리는 말없이 그녀를 품에 꼭 껴안으며 물기가 함초롬한 그녀의 눈을 뜨거운 입술로 포개여 주었다. 강주리는 손으로 왕리화의 머리를 어루쓸며 나지막이 왕리화가 좋아하는《사과배꽃(苹果梨花)》을 자장가처럼 불러주다가 둘은 혼곤히 잠들었다.
사과배꽃 바람에 흔들리지
밝은 달빛이 가슴을 비추면
나는 그대를 사무치게 그리지
에헤, 에헤, 에헤야
그대의 무정함을 미워하지
나를 버린 그대를 미워하지
온종일 나는 두려움에 떨고
꿈속의 혼령은 기댈 곳 없네.
이 노래는 1940년대 상해를 달구었던 가수 장로(张露)가 1965년에 발표한《사과꽃(苹果花)》이었는데 왕리화가 배“梨”자 하나를 더 첨가하여《사과배꽃(苹果梨花)》으로 부르던 노래였다.
애들이 첫돐생일 옷인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곱게 차려입고 생일상을 받고 있었다. 선화는 엉뚱하게 생일상에 올라있는 천사의 날개를 쥐었고, 선도는 수판을 쥐였다. 그러자 첫돌잡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선화는 커서 공중아가씨가 될 것이고, 선도는 커서 상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강주리와 왕리화는 축하객들의 덕담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첫돌 생일상을 물린후 선화와 선도는 마당에서 퐁퐁 신나게 뛰여다녔다. 앓는 애들 같지가 않았다. 강주리와 왕리화는 건강을 되찾고 활기에 찬 쌍둥이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한참을 신나게 뛰여다니던 선화와 선도는 동시에 넘어졌다. 하여 강주리와 왕리화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각자 한 아이씩 일으켜 세우고 품에 안았는데 강주리는 선도를 안고, 왕리화는 선화를 품에 안았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더니 왕리화와 강선화를 휘감아 다시 하늘로 타래 쳐 오르더니 순식간에 왕리화와 강선화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강주리는 선도를 안은채 선자리에서 발을 구르며“리화야! 선화야!”라고 목이 터지게 부르며 하늘로 쫓아오르려고 했다. 그러자 강주리의 몸도 무겁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더니 2미터도 날아오르지 못하고, 제 자리에“쿵!”소리와 함께 추락하고 말았다.
강주리가“리화야! 선화야!”하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여나고 보니 그것은 꿈이였다.
강주리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옆자리를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비여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고 보니 자신의 곁에 누웠던 왕리화가 보이지 않는다. 무릎걸음으로 사과배광주리요람에 다가가 보니 선도만 쌔근쌔근 잠이 들어있고, 선화를 재웠던 사과배광주리요람은 비여있었다. 시계는 새벽 세시를 슬프게 가리키고 있었다.
강주리는 그 사이 선화의 병이 또 발작하여 왕리화가 자신이 잠든 틈에 혼자 병원에 갔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왕리화와 강선화는 병원에 오지 않았었다. 강주리는 갑자기 당황해났다. 혹시 도중에 어디에선가 사고가 난건 아닌지 별의별 나쁜 궁리를 다 하면서 오던 길을 되돌아 산길을 훑었다. 없었다. 혹시 집에 돌아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뛰다시피 다시 되돌아왔다. 그러나 왕리화와 강주리는 돌아오지 않고 선도만 엄마가 해준 예쁜 한복저고리의 소매를 사탕처럼 쫄쫄 빨며 강주리를 향해 생글생글 웃어줄 뿐이다.
아까는 급해서 보지 못했는데 선화가 자고 있던 사과배광주리 속에는 종이쪽지 하나가 달랑 놓여있었다. 강주리가 다급히 그 종이쪽지를 꺼내 펼쳐보니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강 오빠,
미안해요.
나 선화만 데리고 오빠를 떠나가요. 날 나쁜 년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어요. 오빠한테 나 실망했어요. 우리의 앞날이 보이지 않아요. 저와 선화를 받아주고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찾았어요. 저는 선화를 예쁘게 잘 키워낼 거예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빠를 선택한 것이 죽도록 후회돼요. 렴치가 없지만 절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저와 선화를 찾느라 애 쓰지도 마세요. 아무리 찾으려고 애를 써도 오빠는 우리를 절대 찾을 수 없을 거예요. 부디 우리 선도만은 잘 키워주세요. 만약 오빠가 선도마저 잘 키우지 못하신다면 저는 오빠를 절대 용서하지도 않을 거예요.
배신자로부터
강주리는 왕리화가 남긴 종이쪽지를 다 읽고 난후,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머리속에서는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그물을 치고 있었고 그 매듭의 고리를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머리속에는 오로지“이거 꿈이지.”라는 한 가지 생각만 반복적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얼마후 강주리는“왕리화는 절대 나를 이렇게 떠날 사람이 아니야.”라는 한마디만 입속으로 거듭 씹고 있었다. 그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강주리가 알고 있는 왕리화라면 절대 이럴 여자가 아니였다. 그는 대답을 찾으려는듯 왕리화가 남긴 쪽지를 읽고 또 읽었다. 왕리화가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말은 충분히 리해가 갔지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말은 죽어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왕리화가 강주리에 대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는 말은 비수마냥 강주리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왕리화의 배신자라는 말은 오래도록 강주리의 머리속에 남아서“나는 당신을 절대 배신하지 않아요.”라는 사랑의 맹세로 들렸다.
강주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 본적이 없었고, 자신의 눈을 의심해본적이 없었다. 그는 또 한번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자신을 믿는 것이 곧 왕리화를 믿는 것이니까.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거라고, 꼭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고 싶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왕리화에 대한 믿음은 긴 시간 속에서 서서히 허물어져 가기 시작했고 그 믿음의 자리에는 왕리화의 배신이 싹처럼 자라서 강주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였다. 또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강주리는 분노와 원망으로 왕리화를 저주하면서 살아갔고, 그 다음 5년은 자신이 왕리화보다 선도를 더 잘 키우겠다는 오기로 버텼다. 그 후의 시간은 왕리화를 잊으려고 몸부림치며 살았다. 하지만 왕리화를 잊으려고 할수록 선화가 눈에 밟혀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갔다. 그렇게 왕리화가 자신을 떠나간 30여년동안 강주리는 단 하루도 왕리화와 선화를 잊어본적이 없었다. 하여 왕리화가 선화만 안고 자신을 떠난 시간이 20년이 되었을 때 강주리 마음에서의 왕리화에 대한 미움은 서서히 사라지고 또다시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게 되였다. 강주리는 선도를 대학에 보내고 집에 혼자 남게 되자 왕리화와 선화에 대한 그리움을 더 이상 떨칠 수 없게 되여 뒤늦게야 왕리화를 찾아나섰다. 어떤 결과라도 좋으니 그냥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강주리는 왕리화를 찾아 석달동안 연변 전역을 돌아다녔지만 왕리화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강주리는 맨 마지막으로 왕리화를 찾아 산동에도 다녀왔지만 왕리화네 부모마저 어디로 간곳을 모르는 그로서는 역시 헛물만 켜고 말았다. 그렇게 강주리는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왕리화와 강선화의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후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강주리는 작은 쌍둥이배광주리를 엮으면서 그리움을 달래였는데 행복의 뒤끝에 강주리의 아픈 기억을 불러주는 일도 따라왔다. 그것은 종이박스에 사과배를 포장하여 판매한 세월도 30년이 훨씬 넘어왔는데 갑자기 싸리나무로 결은 사과배광주리에 사과배를 포장해달라는 엉뚱한 주문이 들어온 것이었다. 모종의 아련한 추억의 장난이라 할까, 아니면 어려서부터 스물네 살까지 사과배광주리만 겯어 왔던 강주리의“고리백정”천직의 본성이라 할까, 사과배광주리에 대한 아픔으로 한생을 괴롭게 시달리면서도 가끔 아픈 기억이나 모진 그리움으로 잠 못드는 밤이면 겯어둔 사과배광주리가 몇짝 있었는데 그걸 아들 강선도가 핸드폰카메라에 담아 딕톡방송에 옛 추억거리로 올린 것이 화근으로 되여 갑자기 한 고객이 흥분에 떨며 사과배광주리에 관심을 보이더니 기어코 자신이 주문하는 사과배를 그 사과배광주리에 담아달라고 억지를 부려왔었다. 하여 아들 강선도가 그 고객의 주문한 사과배를 강주리가 아픈 추억과 모진 그리움의 소산으로 결은 사과배광주리에 담아 보낸 것이 나비효과로 수많은 고객들의 광주리사과배의 주문으로 이어져 강주리는“핍박에 양산에 오른 격”으로 다시 본격적으로 사과배광주리를 엮기로 하였다. 이제 강주리의 만무과원에서는 또다시“광주리사과배”가 탄생할 조짐이였다.
4. 쌍둥이사과배의
재회
강주리는 옛날 왕리화와 함께 살며 이란성쌍둥이를 낳고, 그들을 키우던 귀틀집에 기거하며 다시 사과배광주리나 겯으면서 여생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리화의 가출은 그에게 거대한 분노를 폭발시켰었고, 오래동안 그녀에 대한 증오와 원망으로 시달렸다. 그러나 36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에 대한 미움은 천천히 그리움으로 바뀌여 왔다. 그래서 그는 이 저주의 귀틀집을 해마다 보수하면서까지 고수해왔다. 이제 강주리에게 남은 것은 죽기 전에 왕리화의 소식이라도 알고, 이란성쌍둥이 딸 강선화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게 된다면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았다.
강주리는 귀틀집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싸리대가지를 삶던 가마부터 부시고 물을 가득 부운후 부엌에 불을 넣었다. 그리고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도구들을 들추어내고, 사과배광주리를 앉아 겯을 구들을 깨끗이 청소했다. 이제 이 귀틀집안에서 새살림을 시작해도 괜찮을 정도로 귀틀집안은 다시 윤기가 알른거렸다. 강주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와 아까 베여다 부려놓은 싸리대가지 단을 풀어 낫으로 싸리대가지들을 반으로 쪼갠후에 다시 안아 귀틀집안의 가마에 넣고 삶기 시작했다. 이렇게 삶아두면 낼부터 주문 들어온 사과배광주리 두어개를 금방 겯을 수가 있었다.
강주리는 두손을 앞으로 내들고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시늉을 해보았다. 36년동안 사과배광주리를 겯지 않았던 그의 두손은 이미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이렇게 넣고, 이렇게 빼고,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수순마저 그의 기억에서 뒤죽박죽이 되여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한참을 벙어리가 수화(手話)를 하듯 법석을 떨어서야 겨우 그의 빈손에서 사과배광주리가 겯어지기 시작했다.
“십년을 사과배광주리를 겯어오며 사랑을 나누고, 이란성쌍둥이를 먹여 살리던 고리백정의 솜씨가 300년의 세월이 흐른다고 잊어질 수야 없지. 오래동안 내 마음의 문이 닫히여서 잠간 손끝이 무뎌졌을뿐이지. 이제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사과배광주리를 엮어보아야겠어. 그래서 잃어버린 내 사랑 왕리화 내 딸 강선화를 다시 찾을지도 모르지. 아, 선화야! 너도 이제 예쁜 처녀가 되였겠구나. 아, 우리 딸 선화!…”
강주리는 자신의 빈손에서 겯어지는 사과배광주리에 흡족했지만 자신의 사랑과 피줄을 잃은 슬픔에 빠져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강주리는 자신의 슬픈 감정을 이기지 못해 귀틀집 밖으로 나와 아무런 기약도 보아낼 수 없이 시퍼렇게 깊어만 가는 가을하늘을 쳐다보았다. 마치 자신의 눈물을 하늘바다에 흘려주기라도 하듯이.
바로 그때였다. 아들 강선도가 조금 아래 산중턱에 자리 잡은 사과배박물관 쪽으로부터 헐레벌떡 뛰여올라오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 아버지! 광주리사과배주문이 또 들어왔어요. 산동 청도에 거주하는 고객이 무려 열 광주리나 사겠다고 해요. 아버지 일주일내로 사과배광주리 열짝을 겯을 수 있지요?”
강주리는 흥분에 젖어있는 아들의 분위기를 맞추어주며“할 수 있고말고. 내가 누구냐. 광주리잖아.”하고 방금전의 슬픔을 어느새 던져버렸던지 환하게 웃어주었다.
“아버지, 이 고객이 요구하는 사과배광주리의 모양은 아주 특별한데 이렇게 쌍둥이사과배광주리로 만들어 달래요. 이 사진을 보세요.”
강선도는 핸드폰을 강주리의 눈앞에 들이밀며 핸드폰모니터에 떠있는 사과배광주리모형을 보여주었다.
“쌍둥이사과배광주리”란 말에 강주리는 놀란 기색을 지으며 강선도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아 오래도록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굳어지더니 두눈이 당장이라도 빠져나올듯이 커졌다.
핸드폰의 모니터에 떠있는 사과배광주리의 모형은 전에 강주리가 왕리화와 함께 이란성쌍둥이를 키울 때 두 오누이의 요람으로 결었던 사과배광주리 두개가 한데 붙은 요람광주리였다. 강주리는 세상에 이런 요람광주리는 단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거 어디서 난거니? 누가 보내온 거야.”
강주리는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다급히 물었다. 몸속의 피가 골물이 터진듯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산동의 딕톡 친구인데 직접 물어볼게요.”
선도는 강주리의 곁에서 핸드폰에 대고 한족말로 물었다.
“핑궈(苹果), 이 그림 어디서 난 거냐고 우리 아버지가 물어보는데요?”
그러나 핸드폰에서 잠시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 시각에 딕톡에 온라인 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나 딕톡 창에는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나타나 강주리를 보면서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은 36년 전 왕리화의 젊고 예뻤던 모습 그대로였다. 강주리는 갑자기 심장에 무엇인가 찔려오는 느낌을 아프게 받으며 오른손에 쥐었던 강선도의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왼쪽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는 몸의 평행을 갑자기 잃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가슴을 부여잡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
강주리가 다시 깨여났을 때는 병원이였다. 의사는 갑자기 만성심장마비가 일어났는데 급성이였으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강주리는 잠간 저승에 한번 다녀온 것이였다. 잠간 들렸던 저승에서 그는 왕리화의 얼굴을 보았고, 왕리화와 똑 같게 생긴 처녀도 보았다. 그러나 강주리는 아들 강선도에게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았고, 약간 수심이 비꼈지만 평온한 얼굴로 말없이 수걱수걱 주문 들어온 쌍둥이사과배광주리만 부지런히 겯고 있었다. 하지만 강주리의 내심에서는 풍랑이 일고 있었다.
아들의 딕톡친구라는 핑궈라는 그 젊은 녀자의 얼굴은 왕리화가 젊었을 적의 얼굴로 강주리의 눈앞에서 몹시 알른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왕리화가 아니였을 것이였다. 이제 그녀도 거의 륙십이 되였을테니까. 그 젊은 녀자는 어디서 살고 있는 누구인지? 왜 젊었을 적의 왕리화의 얼굴을 그렇게 닮았는지? 강주리의 머리에는 온통 의문투성이였지만 그렇다고 그걸 아들 선도를 통해 자세히 물어볼 립장도 아니였다. 지금까지 선도에게 비밀로 해왔던 가슴 아픈 지난 이야기를 들춰야 하니까. 그것보다 더 두려운건 그 결과였다. 그 애가 강선화가 아니라면 강주리의 가슴앓이는 죽을 때까지 계속 될 것이고 만약에 맞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선도는 요즘 사과배박람회때문에 아버지의 귀틀집에 안 올라온지도 사흘이 넘었다. 강선도가 만무과원에서 전국각지의 사과배주문고객들을 모신다고 하니 기쁜 일이였다. 그래서 강주리는 아들을 조용히 불러 왕리화를 똑 떼여 닮고 쌍둥이사과배광주리요람을 주문해온 그 핑궈라는 처녀애의 신상에 대해 물어볼 기회마저 없으니 대중없이 속만 타들어갔다. 강주리는 사과배광주리를 겯으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린다.
“선도, 너도 이제 네 엄마와 네 누나에 대해서 알 때가 되였구나. 너희들 이란성쌍둥이오누이가 다시 재회할 수만 있다면 나는 래일 죽어도 원이 없을 것이여!…”
강주리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울적한 기분을 털어버리려는듯 예전에 왕리화가 즐겨 부르던《사과배꽃(苹果梨花)》의 노래를 절절하게 부르며 36년전에 떠나간 반쪽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시작했는데 그의 손에서는 쌍둥이사과배광주리가 잽싸게 겯어져 나갔다.
苹果梨花迎风摇曳
月光照在怀里
想起了你想起了你
嗳嗳, 嗳嗳, 嗳嗳
只恨你无情无义
一心把人弃
害得我朝朝暮暮
梦魂无所依
그때 갑자기 선도가 문을 떼고 들어서며 놀라운 소리로 묻는다.
“아버지도 이 노래 부르실 줄 아시네요? 이건 헤여진 애인이 그리워서 부르는 노래인데. 아버지도 잊지 못할 애인이 있었나요?”
“거기 앉거라. 아버지의 첫사랑 이야기 해줄가?”
강주리는 선도를 조용히 불러 곁에 앉혔다.
“네.”
강선도는 궁금증을 보이며 강주리 곁에 앉았다.
“나와 한마을에서 같이 자란 한족녀자가 있었는데 얼굴이 예쁘고 마음이 착했어. 그런데 동네아이들이 한족애라고 왕따를 시켰어. 나는 그런 걸 못 봐주는 성격이거든. 그래서 사나이의 영웅본색으로 그 애를 지켜줬지. 그렇게 청매와 홍매로 자란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였어. 그런데 내가 부모두 없구 돈두 없으니 그 집 부모님들은 우리의 사랑을 견결이 반대했어.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딸을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내려고 했지.”
한생 혼자 살아온 아버지에게 이와 같은 로맨틱한 련애사가 있었을 줄을 전혀 몰랐던 선도는 신기한듯 아버지 곁으로 더 밀착해 다가앉으며 물었다.
“아버지, 너무 멋있어요. 그후에는?”
“나는 그 한족처녀를 데리고 도망을 갔어. 바로 지금 이 귀틀집을 짓기 전의 터에 있던 사과배움막으로 왔었어. 해빛도 들지 않고 음침했던 그 움막은 추운 겨울에 대방의 얼굴에 입김을 불어도 금방 서리가 앉을 정도로 추웠고 두 사람이 누우면 등을 돌릴 수도 없이 비좁았어.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어. 우리의 마음은 사랑으로 뜨거웠으니까.”
그때를 떠올릴 때 강주리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담배 곽에서 담배 한 가치를 뽑아 입에 물었다.
강주리의 사랑이야기에 푹 빠졌던 강선도는 아버지가 담배를 입에 물자 눈치있게 강주리 먼저 라이터를 주어들고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강주리는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더니 습관적으로 천천히 담배연기를 내 뿜으며 네 개의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강주리는 그 네 개의 동그라미가 흩어져 사라질 때까지 넋을 잃은듯 지켜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뒤이야기가 졸려진 선도는 강주리에게 바투 다가앉으며 재촉했다.
깊은 상념에 잠겼던 강주리는 비장한 얼굴로 강선도를 바라보더니 아주 슬픈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한해겨울 우리 둘은 부지런히 사과배광주리를 겯어 집 지을 돈을 벌었고, 이듬해 봄에 우리는 그 사과배움막을 헐고 그 자리에 아담한 귀틀집을 지었지. 우리는 손수 산에 가서 나무를 베여다 귀틀을 쌓고 손수 흙을 이겨 발랐었지. 그리고 우리는 곧 이란성쌍둥이오누이를 보았어. 이란성쌍둥이오누이가 태어나자 우리는 이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했었어. 그런데 나같이 지지리 복없는 놈에게 주어졌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어. 이란성쌍둥이오누이가 엇바꾸어 가며 기절해 넘어가는 병을 앓아서 우리는 병원을 제집 나들듯이 하면서 두 아이의 병을 치료도 못하고 오히려 빚만 가득 졌었지. 그때 진짜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어. 그러다 우리는 이란성쌍둥이오누이의 첫돐생일을 맞게 되였지. 애들의 첫돌생일을 잘 쇠여주기 위해 우리는 꼬박 한달동안 밤잠도 한번 제대로 자보지 못했어. 돈줄이라야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일밖에 없었으니 나는 밤낮이 따로 없이 사과배광주리를 겯었고 그녀는 돈을 아끼려고 색동천을 사다가 손수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지었는데 바느질 한번 못해본 처지라 동네할머니들에게서 어렵게 배워가며 고생고생 해서 겨우 만들었어. 나는 지금처럼 이렇게 구들에 앉아 사괘배광주리를 겯었고, 그녀는 내 등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쌍둥이들이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며 바느질을 했지. 등에서 등으로 전달되는 따뜻한 체온은 우리 서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였어. 그녀는 생일옷을 만들면서 얼마나 바늘에 찔렸는지 몰라. 나는 그녀의 바늘에 찔려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바라볼 때 내 마음에서도 피가 흘렀어. 나는 사랑하는 녀자를 고생시키는 자신이 너무 싫었고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눅이 들어 있었지. 그래서 더 악착스럽게 사과배광주리를 엮었어. 그때는 그것이 유일한 출로였으니까. 일하다가 너무 졸리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싸리대가지를 베고 누워 잠간 눈을 붙였다가 또다시 일어나서 일했어. 그때 엄청 힘들었지만 그녀와 함께라서 행복했고 그 어렵고 암담한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었어. 그런데 이란성쌍둥이오누이의 첫돐생일날 새벽에 그녀는 나에게‘지치고 힘들고 희망이 안 보여서 더는 같이 살수 없으니 행복을 찾아 가요’라는 쪽지 한장만 달랑 남기고 이란성쌍둥이오누이 중에서 녀자아이만 안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
강선도는 화가 난듯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나쁜 여자네요. 그래서 찾아다녔어요?”
강주리는 잠간 창밖을 응시하더니 무겁게 답했다.
“찾지 않았어. 너무 화가 나고 자존심 상했고 또 몸도 마음도 지쳐 있어서 찾아다닐 여력두 없었어. 애만 아니라면 그냥 그대로 죽고 싶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다 내려놨어. 그냥 그들의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을뿐이야.”
강선도는 측은한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나서 볼가요?”
강주리는 그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꽤 길어진 이야기를 급급히 마무리하고는 오히려 되물었다.
“우리 박물관에 투자했던 그 핑궈라는 녀자애는 본이름이뭐냐? 부모님은 뭐하는 사람이래?”
강선도는 의아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다그쳐 물었다.
“왜요? 핑궈가 아버지의 애인을 닮기나 했나요? 아버지가 어제 핑궈의 딕톡초상을 보고 쓰러지던 것도 이상하구요. 딕톡의 고객이라 본명은 모르겠어요. 성은 왕가래요. 그리고 한족이예요. 어려서부터 어머님하고 둘이 청도의 사자구(沙子沟)라는 어촌에서 살았는데 어머님이 생선장사를 해서 힘들게 공부시켰대요. 지금은 잘 살아요. 섬에 고기배도 몇척 있대요.”
강주리는 핑궈라는 젊은 녀자가 은근히 강선화가 아닐가 하는 의심을 가졌었는데 한족이라는 말에 눈에는 실망의 빛이 어리였다.
“박람회일때문에 핑궈는 오늘이나 래일쯤 며칠먼저 도착하여 함께 준비하기로 했어요. 이제 오면 아버지가 직접 자세한걸 물어보세요.”
강선도는 아쉬워하는 아버지의 표정을 읽으며 위안라도 해주듯 이제 핑궈가 오면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강선도는 급히 몸을 일으키며 밖으로 나갔다.
강주리는 뛰여나가는 아들을 잡지 않았다.왕리화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이 어수선해진 강주리는 일손을 놓고 그전에 왕리화가 하던것처럼 싸리나무단을 베개로 삼아 베고 누웠다. 싱그러운 싸리나무의 향이 코를 자극한다. 왕리화의 그립던 향이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싸리나무단을 적신다. 강주리는 모든 것을 망각하려는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튿날 저녁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청아한 목소리로《황토고원》을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그 가락은 마치도 옛날 왕리화가 그의 귀전에 다가와 불러주는 것 같았다. 그 노래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강주리는 노래소리를 찾아 문을 밀고 마당에 나섰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왕리화가 강선도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귀틀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강주리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이럴 수가? 왕리화가 어찌 선도의 손을 잡고 내 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강주리는 자신이 저승의 문턱을 넘어선 줄로 알았다. 그런데 현실이였다. 강주리는 이제 자신이 환각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되여 자신의 집나간 정신줄을 잡으려는듯 두눈을 꼭 감았다.
갑자기 노래소리가 뚝 멈추었다. 강주리는 천천히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에 왕리화가 서있었다. 강주리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는 젊은 왕리화였다. 강주리는 다리가 후두두 떨려오고 심장이 세차게 뛰였다. 강주리는 입을 크게 벌리고“왕리화!”하고 불렀는데 갑자기 머리의 량쪽 태양혈에서 툭 하는 피줄이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앞이 캄캄해난다. 강주리는 눈앞에서 사라지는 왕리화를 잡으려는듯 손을 내민채 귀틀집의 앞마당에서 또다시 쓰러졌다.
강선도는 사과배박람회에 참여하려고 온 핑궈를 아버지에게 소개시켜주려고 왔는데 강주리가 갑자기 쓰러지니 강선도와 핑궈는 동시에“아빠, 아빠! 정신 차리세요?”하며 애타게 부르짖었다.
구급차가 왔고 강선도와 핑궈는 다시 강주리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사람의 원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작은 의료장비로 무장되여 응급실침대에 누워있는 강주리를 쳐다보며 핑궈는 유리창에 매달려 슬프게 울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핸드폰을 꺼내 영상통화버튼을 누른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강주리 쪽으로 향하고 울먹이며 부르짖는다.
“엄마, 어떡해? 아빠가 쓰러지셨어?”
“뭐라고?”
그러자 핸드폰의 저쪽 공간에서 한 녀인이 엎어지듯 달려와 화면에 놀란 얼굴을 보이며 류창한 조선말로 애타게 웨친다.
“강오빠, 강오빠! 웬 일이야? 어서 정신을 차려요? 날 두고 먼저 가면 안되요? 나 아직 용서도 못 받았는데…… 강오빠!”
갑자기 거쿨진 손이 강선화의 손에서 핸드폰을 와락 빼앗아내더니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갈린 목소리로 웨친다.
“아빠라니? 누가 네 아빠야! 저 녀잔 누구야?”
강선도의 과격한 반응에 핑궈는 놀란 눈을 치뜨고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져 버렸다.
강주리를 오빠라 부르는 그 녀인의 가슴을 허비는듯한 울부짖음은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통해 기다란 병실복도의 저 끝까지 메아리가 되여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5. 사과배나무에
다시 걸린 사랑
핑궈는 강주리의 병상황이 궁금하여 담당의사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저 환자분 상황을 알고 싶어요? 생명의 위험은 없으신 거죠? 언제면 깨여날가요? 정상인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의사선생님은 초들초들 마른 입술을 감빨며 긴장한 눈빛으로 물어보는 처녀의 눈길을 피하며 대답하였다.
“환자분하고 어떻게 되시는가요? 가족 분들한테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핑궈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딸입니다.”
의사는 의심스럽다는듯 쳐다보더니 너무도 진지한 핑궈의 얼굴에서 거짓말이 아님을 느꼈는지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다행히 경한 뇌출혈이라서 뇌속에 흘렀던 피는 기본상 다 흡수된 상태구요. 환자의 뇌활동도 정상으로 나와 있어요. 그런데 언제 깨여날지는 저희들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본인이 깨여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작용하거나 혹은 또 어떤 새로운 충격을 받으면 인차 깨여날 수도 있고요.”
핑궈는 착잡한 심정으로 의사사무실을 나와 힘없이 병실로 향했다. 핑궈가 병실문을 열려는데 웬 녀자의 애달픈 부름소리가 들린다.
“강오빠, 강오빠! 눈 떠봐! 내가 왔어. 이렇게 가면 안 되잖아. 우리 같이 가기로 약속했잖아 흑흑…”
핑궈는 잠간 머뭇거리였다.
강선도가 보온병에 물을 받아들고 다가오며 물어왔다.
“무슨 녀자의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누가 왔나요?”
핑궈는 강선도의 손을 잡아끌며“우리 잠간 밖에 나가 얘기 좀 하자.”하고 말하며 둘은 병원 밖 화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선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핑궈가 내 친누나라는것에 너무 놀랐어요. 우리를 두고간 엄마가 미운거지 누나는 잘못이 없는데 내가 너무 흥분했어요. 그리고 그 사이 고마웠어요. 아버지가 괜찮으시니 인제 돌아가세요. 나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핑궈는 대답대신 머리를 들어 병실 쪽을 응시하더니 강선도의 물음과는 상관없이 동문서답을 한다.
“선도야, 박람회 날이 며칠 안 남았는데 가서 일봐. 여기 걱정은 말구. 나와 엄마가 아버지를 잘 돌봐드릴테니까.”
핑궈는 물기어린 측은한 눈길로 선도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선도는 핑궈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으려는듯 한참을 마주 바라보더니 불안한듯 손에 쥐고 있던 보온병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더니 결심한듯 되물어왔다.
“누나는 언제 알았어요? 우리의 존재를? 엄마는 어떤 분이세요? 왜 우리를 버렸대요?”
강선화는 말없이 보온병을 만지작거리는 불안한 강선도의 손에 자신의 손을 따뜻하게 얹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너랑 핑궈라는 이름으로 딕톡에서 대화한 사람은 우리 엄마야.”
강선도는 튕기듯 벌떡 일어났다. 손에 쥐였던 보온병이 땅에 떨어져 박산나면서 뜨거운 물이 끌신을 신은 선도의 발을 적시였다.
고중입학축하편지를 보내주신 사람도, 그사이 후원자라면서 힘들 때마다 손을 내밀어준 사람, 인생의 갈림길에서 헤맬 때마다 같이 고민해주시고 조언을 해주시던 사람, 고향에 돌아와 지역특성을 발휘해 특산품회사를 차리라고 길을 밝혀준 사람도 바로 아버지의 아픈 사랑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왕리화였다.
‘아! 어머니는 늘 내 옆에 있으셨구나.’
꿈속을 헤매던 강주리는 아스라하게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我家住在黄土高坡,
大风从坡上刮过,
不管是西北风还是东南风
都是我的歌 我的歌
‘아. 왕리화의 노래다. 밤새 사과배광주리를 겯을 때 졸리면 어깨 겯고 앉아서 서로를 위로하던 노래였는데…… 오랜만에 들어보네. 리화가 보고 싶다. 한평생 잊고 살려고 노력했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노래를 들으니 또 생각나는구나. 잊으려고 애쓸수록 더 그리웠던 왕리화!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나보다. 아마도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것 같네.’
강주리는 왕리화의 노래를 들으며 깊은 그리움에서 헤매였다.
‘앗, 뜨거워!’
강주리는 갑자기 뜨거움을 호소했지만 소리가 안 나간다. 누군가 내 손을 뜨거운 물수건으로 닦아준다. 손을 치우려고 하는데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 손길이 부드럽다. 싫지가 않다.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다.
그때 그의 귀전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미안해, 날 많이 원망했지? 그래도 난 믿어. 오빠는 날 미워하지는 않았을 거야. 내가 한시도 잊지 않고 오빠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나 오빠를 버리지도 않았고 배반하지도 않았어. 우리의 이란성쌍둥이오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어.…… 그때 우리 애들 많이 아팠잖아. 그러다 우연히 점쟁이를 만났는데 우리 애들이 18살 될 때까지 만나면 안 된대요. 안 그러면 둘 다 죽거나 적어도 한명은 못산다고 했어요. 내가 미신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 쌍둥이가 엇바꿔 앓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오빠도 알잖아요. 그때의 그 막막함을…… 그리고 생일을 넘기지 말고 새벽 1시 정각에 집 나가라고 해서 새벽에 도망간 거예요. 생일을 앞두고 사라진 우리때문에 오빠가 얼마나 황당하고 화나셨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져요. 선도를 두고 가는 내 마음에서도 피가 흘렀어요. 그렇다고 점쟁이 말을 믿고 멀리로 가서 살겠다고 오빠한테 실토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말하면 절대 안 보낼테니까. 그래서 저는 그런 엄청난 결정을 했었어요. 그래서인지 우리 애들 다 건강하게 잘 자랐잖아요. 그거면 된 거 아닌가요? 선도가 결혼한다고 하면 결혼식에는 꼭 참가하려고 했었어요. 그때 예쁘게 잘 키운 선화를 데리고 와서 오빠와 선도한테 용서를 빌려고 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쓰러지면 어떡해요. 그러니 어서 일어나세요. 깨어나셔서 나에게 큰 벌이라도 내려주시란 말이예요. 우리 얘들이 시집 장가가는 것도 봐야지요.”
‘아! 리화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꿈이면 제발 깨지 말거라.”
강주리의 심장박동은 빨라졌다. 꿈에서 깨지 않으려고 눈을 더 꼭 감았다. 뜨거운 눈물방울이 손등에 뚝뚝 떨어진다.
‘리화가 운다. 안 돼. 행복하게 해준다고 약속했는데……. 울지 마!’
왕리화의 눈물은 강주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강주리는 있는 힘껏 무거운 손을 들어 리화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하였으나 팔이 말을 듣지 않는다.
갑자기 병실 안에서 왕리화의 새된 목소리가 들린다.
“의사선생님, 의사선생님, 손가락이 움직였어요."
문밖에 서서 병실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쏟고 있던 강선도와 강선화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의사사무실을 향해 뛰여간다.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부산스럽다. 소독수냄새가 심하게 났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며 분주하다. 손가락이 뾰족한 것에 찔려온다. 강주리의 눈앞에서 네개의 동그라미가 흔들거린다. 동그라미 안에는 그립던 얼굴들이 들어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왕리화, 강선도, 강선화였다.
‘어, 동그라미 하나는 비여있네. 저 동그라미에는 누가 들어가야지. 내 자리인가?’
점점 멀어져가는 동그라미를 붙잡으려는듯 강주리는 손을 내밀었다.
왕리화가 싸리대가지를 섬겨주면 강주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광주리를 겯어나간다. 귀틀집 앞마당에 지금까지 자라온 사과배나무는 이제 튼튼한 로목으로 자라 있었다. 강주리와 왕리화가 돌배나무에 사과가지를 접목했던 사과배나무였다. 강주리와 왕리화는 그 사과배나무의 튼실한 가지에 쌍둥이사과배광주리그네를 매어놓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강선화와 강선도를 불렀다. 이란성쌍둥이오누이는 기다렸다는듯이 쌍둥이광주리그네에 들어가 앉는다.
강선도가 익살스레 강선화에게 묻는다.
“누나, 처음 앉아보는 느낌이 어때?”
“나 처음 아니거든, 18살 때 대학입학시험이 끝나고 여기 한본 왔었어. 엄마랑 함께…”
강선화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래? 근데 그때 왜 우리를 만나지 않고 그냥 갔어? 우리를 찾아왔으면 꼭 만나주고 갔어야지. 그랬더라면 우리 모두 더 큰 미움과 그리움을 채우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강선도는 강선화에게 섭섭한 소리를 했다.
“집에 자물쇠가 잠겨 있었고, 사람이 산 흔적이 안 보였어. 마을로 내려가서 수소문해서 사는 집 찾아갔었지. 들여다보니 나와 우리 엄마가 앉아야 할 자리에 다른 엄마와 딸이 앉아있었어. 네 식구가 단란히 앉아서 저녁밥을 먹고 있었어. 그래서 한발 늦었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날 엄마가 한참 집안을 들여다보더니 그냥 가자고 해서 집에 돌아왔지. 돌아가는 내내 엄마가 많이 울었어. 그래서 나도 더 물어보지 못했지.”
강선화는 그때의 그 안타까운 상황을 선도에게 말해주었다.
“아, 우리 뒤집에 살던 아줌마와 그 집 딸이야. 아버지가 농장을 도맡으면서 일군들을 많아 쓰다보니 밥해주는 아줌마가 필요했거든. 그래서 밥은 우리 집에서 같이 드셨어. 그 아줌마는 지금도 우리 사과배박물관의 총무로 일하고 계셔. 우리민족의 전통음식은 그 아줌마 따를 사람 없거든. 엄마가 오해했구나.”
강선도는 그 오해를 풀어주려고 애를 썼다.
“작년에 네가 사과배박물관의 투자상을 찾을 때 엄마가 우리 집 고기 배를 50만원에 팔아서 너한테 투자하라고 나에게 준 거야. 그때에야 엄마도 나에게 네가 내 동생이라면서 우리가족이야기를 다 들려주셨어.”
“나는 동네사람들이 내가 이란성쌍둥이오누이 남자애였다가 쉬쉬 거릴 때도 또 내 엄마가 여자아이만 데리고 달아났다고 했을 때도 믿지 않았어. 아버지가 내 엄마가 죽었다고 한 말만 등신처럼 믿었어. 그처럼 아버지는 내게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고 평온했으니까.”
강선도는 동네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자신을 후회하는 듯했다.
“엄마는 내가 아들인걸. 어떻게 알았을까?”
강선도는 아직 자신이 채 풀지 못한 궁금증을 강선화에게 털어놓았다.
“18살 때 왔다간후로 엄마는 쭉 너를 지켜보고 계셨던 것 같아. 그리고 내 사업에 널 추천해주신 것도 우리 엄마거든.”
엄마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강선도는 강선화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먹먹해났고, 엄마의 숨은 사랑에 행복감이 그들먹이 괴여 올랐다.
“너, 사과배박람회민속혼례의식에 모델로 나설 분들을 섭외해놨어?”
강선도는 눈물을 쓱 문지르며 그제야 생각난듯 대답했다.
“아, 그거 미처 련계 못했어. 어떡하지? 당장 섭외 못하면 우리 둘이 대신할가?”
선화는 곱게 눈을 흘기며 나무랐다.
“형제간이 결혼하는 거 봤어?”
“그럼 어떡해? 래일인데 갑자기 어디 가서 사람을 구하겠어.”
선화는 웃으면서 귀틀집 앞마당에 나란히 앉아 사과배광주리를 겯고 있는 엄마와 아빠 쪽을 가리킨다.
“저기, 준비된 모텔 두 분이 있잖아.”
“알았어. 이 기회에 우리 엄마아빠의 결혼식부터 먼저 올려드리자.”
이란성쌍둥이오누이는 약속이나 한듯 그네에서 튕겨 일어나며 박람회 준비하러 간다고 강주리와 왕리화에게 말하고는 산아래로 뛰여내려갔다.
강주리와 왕리화는 일손을 멈추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멀어져가는 이란성쌍둥이의 뒤모습을 바라본다.
강주리는 둘만 오붓하게 남자 왕리화에게 물었다.
“그런데 점쟁이는 언제 찾아갔어?”
왕리화는 아문 상처에서 다시 피흐르듯 눈시울을 붉히며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가 장춘병원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선화가 또 발작했잖아요. 그런데 병원까지 가보니 아무 일도 없었던 그날 새벽녘이였어요. 지금도 그 점쟁이가 눈에 선해요.”
왕리화는 천천히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난 나한테 물었어요.‘왕리화, 넌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어? 인제 진짜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거니? 잘 생각해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잖아.’그때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인물이 있었어요. 기차에서 만났던 그 신비한 아줌마와‘서시장뒤골목’이라고 하던 그 말이 갑자기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신이 벗겨진줄도 모르고 선화를 안은채 맨발로 허둥지둥 서시장뒤골목으로 갔어요. 이 골목 저 골목 정신없이 헤맸지요. 내가 찾아갈 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아이를 안고 미친년처럼 날이 희붐히 밝아 올 때까지 새벽거리를 누비며 걸었어요. 걷고 걷다가 지치고 힘들어서 룡마루가 높은 집 넓은 기둥에 기대여 잠간 쉬려고 앉았어요. 그런데“삑!”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대문이 천천히 열렸어요. 잠기지 않은 대문이 내 팔꿈치에 닿았던 것 같았어요. 나는 너무 추워서 애가 감기라도 걸릴가봐 몸을 녹일려고 렴치불구하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올리는데 갑자기 전등불이 찰칵 하고 켜지면서‘어서 들어와요.’하는 한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화들짝 놀란 나는 잠간 망설였지만 무엇에 끌린듯 문고리를 당겼어요. 어스름한 불빛아래 한복을 차려입은 한 녀인이 책상을 마주한채 올방자를 틀고 앉아있었어요. 그 녀인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눈을 감은채 ‘용케도 잘 찾아 왔구만.’라고 한마디 하더군요. 나는 그 으스스한 분위기가 섬뜩해나서 도망치듯 되돌아나오려는데‘쌍둥이는 한집에서 살면 하나는 잃게 돼 있네.’라고 그 녀인이 한마디 하는거에요. 그 말에 나는 몸을 돌렸어요. 물에 빠진 놈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나는 두려움도 잃고 바투 다가가 앉았어요. 그래서 점쟁이가 시키는대로 다 했지요. 우리 얘들을 살릴려고. 절 많이 미워했나요?”
강주리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미워했지, 근데 믿었어.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만큼 당신 마음도 그럴 거고 언제든 꼭 돌아올 거라고 기다렸지. 그런데 당신은 날 안 믿었네.”
왕리화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듯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나도 믿었어요. 그러니까 18년후에라도 찾아간 거죠. 그런데 눈앞에서 다른 녀자랑 새 가족이 함께 있는걸 보니까 믿음이 무너지더라고요. 그런데 만약 그런 일 없어도 너무 미안해서 차마 앞에 나서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부터 선도와는 련계를 가졌어요. 선도는 내가 엄마인줄을 모르지만…”
강주리는 손을 들어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왕리화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래, 어떻게 살았어? 힘들지 않았어?”
왕리화는 살며시 강주리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귀인을 만나서 선화를 잘 키웠어요. 집을 나가긴 했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래서 고향 산동으로 떠났는데 차마 부모님 만날 면목이 안서더라고요. 가도 받아줄지도 모르구요. 그리고 혹시라도 당신이 찾아올가봐 걱정이 되기도 해서 생각을 바꾸었어요. 그래서 산동역에서 내려 무작정 아무 차나 타고 종점까지 갔는데 거기가 어촌이였어요. 거기에서 자식이 없는 늙은 양주가 우리를 받아주었고 날 양딸로 삼고 같이 살았는데 돌아가실 때 고기배 세척을 남겨주었어요. 한척은 팔아서 선도가 민속박물관 지을 때 보태주었고 한척은 우리 선화가 무역회사 꾸릴 때 선도와 합작하는 조건으로 팔아서 보태주었어요. 그리고 한척이 남았는데 어떻게 할가요? 팔아서 우리 세계려행이나 다닐가요?”
왕리화는 이십대소녀처럼 흥분하며 강주리의 손을 잡고 흔든다.
강주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왕리화를 바라보더니 팔을 뻗쳐 왕리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속삭인다.
“난, 아무데도 안가. 이 귀틀집에서 사과배광주리나 겯으면서 살 거야. 선도를 도와 만무과원도 봐줘야 하고. 함께 할 거지?”
왕리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과 함께라면 난 뭘 해도 좋아요. 내가 쌍둥이사과배광주리를 주문했잖아요. 사과배농사를 짓다가 고향 떠난 많은 사람들이 추억의 소장품으로 그 쌍둥이사과배광주리를 관상용으로 집에 두겠다고 해서 주문한 거예요. 그럼 여기에다 북경의 올림픽경기장인 새둥지(鸟巢) 건물처럼 쌍둥이사과배광주리 모양으로 된 산장을 짓고 살가요? 사과배광주리가 우리를 끝가지 붙잡아 두네요.”
사과배나무 사이에 매달린 쌍둥이그네도 그 말을 알아듣기라고 한듯 여유롭게 흔들흔들 춤을 춘다.
귀틀집 주변을 둘러싼 사과배나무들에는 사과배들이 주렁주렁 탐스레 열려있었는데 뒤늦게 맞는 환갑년의 결혼식이 부끄러운듯 한쪽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향긋한 사과배향을 타고 용천골을 넘어 저 멀리까지 전해갔다.
이 소설의 어떤 結
그는 연변돌배였다. 그녀는 산동사과였다.
그들은 한 마을에서 태여났고 청매와 홍매의 죽마고우로 함께 자랐다.
그들의 고향은 사과배가 많이 나는 고장이였다. 그래서 그들은 어려서부터 사과배광주리를 함께 겯으면서 서로의 사랑을 불태웠고, 그 결합으로 그들은 이란성쌍둥이오누이를 낳게 되었다.
그들은 한 그루의 사과배나무로 되여 쌍둥이사과배를 자신들의 가지에 열었지만 그 쌍둥이사과배는 엇바꿔 시름시름 앓으며 도사리(과실이 자라는 도중에 떨어진 것)의 운명으로 자랄 번 하였다.
그래서 산동사과는 독한 마음을 먹고 쌍둥이사과배의 한쪽을 따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로인해 연변돌배는 반쪽만 남은 쌍둥이사과배 한쪽만 키우며 눈물의 세월을 보냈다. 연변돌배는 산동사과를 미워도 했고, 원망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가지에서 외롭게 자라는 쌍둥이사과배가 도사리의 운명을 면하게 튼실하게 자라갈 때 연변돌배는 산동사과를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그렇게 아픈 세월이 36년이 흘렀을 때 산동사과가 자신이 데리고 갔던 쌍둥이사과배 한쪽을 도사리가 아닌 어여쁜 사과배로 키워 다시 연변돌배를 찾아왔다.
연변돌배와 산동사과는 다시 만났다. 그들은 이제 행복을 찾았다. 그들의 사과배나무가지에는 도사리가 없었다. 감칠맛 나는 사과배만 달려있었을뿐이다.
2023. 도라지 2기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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