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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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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허복순 프로필 댓글:  조회:6  추천:0  2024-12-08
허복순 프로필   1973년, 길림성 룡정시 출생. 룡정시작가협회 회원. 연변작가협회 회원. 백천전자문학회 회장. 단편소설《그대 가슴에 심은 내 사랑의 손》《춤추는 백조》《원나잇 스탠드》               《천평에 사랑을 담다》 중편소설《접목 사랑에 울다》,《'동키 그랑데'의 일생》《재혼에 울고 웃는 여자》 수필:《엄마의 청어가시》등 다수
6    접목, 사랑에 울다 댓글:  조회:41  추천:0  2024-12-08
                              접목,사랑에 울다   허복순           이 소설의 어떤 序       그는 조선에서 간도로 이민을 왔다고 했다.     그런데 간도 땅에는 향기로운 산돌배가 있었지만 자신의 고향 조선 길주의 사과처럼 맛좋은 사과는 없었다.     그가 간도 땅에서 오래 살아갈수록 고향의 사과맛이 그리웠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향으로 다녀오는 동생에게 부탁하여 길주의 사과나무가지를 베어오게 했다.     그는 간도의 산돌배나무에 조선의 사과나무가지를 접목했다. 그로서 3년후에 그 접목한 산돌배나무에 사과도 아니고 돌배도 아닌 커다란 과일이 달렸다.     그가 먹어보니 그 맛은 천궁의 선도에 가까웠다. 사과의 진한 맛과 산돌배의 강렬한 향이 너무 잘 어울렸다. 그는 자신이 조선의 사과나무가지를 접목한 산돌배나무에 그 맛좋은 과일의 이름을 어떻게 달아줄까 고민을 했다.     그는 오랜 고민끝에 그 과일의 이름을 사과배라고 지어주었다. 조선사과와 간도산돌배의 융합에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였다.     사과배, 그는 중국조선족의 과일로서 중국조선족의 문화를 담고 있었다.     그렇게 사과배는 100년의 세월을 중국조선족의 삶과 동반해왔다. 사과배는 중국조선족기원의 전설이였다.     사과배, 사과배! 1. 사과배광주리          늦가을의 쌀쌀한 바람이 옷깃을 스미고 들어온다. 강주리(康宙吏)는 모진 세파를 이겨 낸 사내답지 않게 찬 가을바람에도 몸을 오싹 떨었다. 나이가 원쑤라더니 강주리도 자신이 나이 륙십을 먹고 몸의 열기도, 마음의 정열도 식은 것이라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다리에는 아직 힘이 있어 가파른 뒤산고개를 씨엉씨엉 오를 수 있었다.     이 뒤산고개의 전체에 강주리의 만무과원이 펼쳐져 있다. 강주리는 30여년동안 매일 같이 이 뒤산고개를 오르내렸다. 다만 이 뒤산고개의 한곳만 강주리가 36년동안 발길을 돌리지 않았었는데 그곳이 바로 싸리나무숲이였다. 그런데 오늘 강주리는 36년의 긴 세월동안 가슴에 묻어두었던 아픈 상처와 그리움을 다시 터치우면서까지 싸리나무숲으로 찾아들고 있다.      오래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았던 싸리나무숲에는 싸리나무가 너무 무성하여 사람이 아니라 뱀새끼 한마리조차 기어들 수 없을 정도로 틈이 없었고, 싸리나무도 너무 굵어서 사과배광주리를 겯을만한 여린 싸리대도 거의 없었다. 강주리는 빈틈없이 무성한 싸리나무숲을 마주하는 순간 숨이 콱 막혀왔다. 30년전 집집마다 배광주리를 겯을 때에는 서로 얼굴까지 붉혀가며 대 좋은 싸리나무를 베여가느라고 싸리나무대밑 그루터기만 앙상하던 풍경하고는 너무 대조적이였다.      “쓸만한 싸리대가지가 없네그려. 하긴 사과배광주리를 겯지 않은지도 30여년이 되였으니 싸리대가지만 늙어버릴 수밖에… 나무는 늙으면 진이 빠져 노긋함이 사라지고, 사람은 늙으면 미운 정도 그리움으로 받아들여지는 법이지. 이 싸리나무숲을 다 뒤져 좋은 싸리대가지를 솎아보았자 사과배광주리 몇짝도 겯지 못하겠네그려.”     강주리는 사과배광주리를 겯을 좋은 싸리대가지가 모두 늙어버린 싸리나무숲을 어이없이 바라보며 담배 한가치를 뽑아물고 싸리나무숲앞 둔덕에 걸터앉았다. 산공기를 안주하는 담배맛은 별미였다. 강주리는 힘껏 한모금 들이 빨았다가 입을 동그랗게 모아 연기동그라미 네개를 련속 만들어 천천히 내보내였다. 그 네개의 연기동그라미들은 네 사람의 얼굴로 되였다가 가물가물 흩어지며 조용히 하늘로 비껴갔다.     가족이라는 건, 혈육이라는 건 끊으려야 끊을 수 없고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영원한 그리움의 암증덩어리로 마음을 괴롭혔다. 싸리나무대가지를 베던 곳에 오니 그들을 잃어버린 아픈 상처와 그리움은 더했다.     강주리는 긴 세월을 장죽으로 빨듯 오래동안 담배 한가치를 태우며 싸리나무숲에서 사랑으로 이어졌던 허무한 그리움을 가슴 아프게 달래다가 다 타들어 간 담배불이 손가락을 뜨겁게 데쳐서야 담배불을 비벼 끄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강주리는 착잡한 감정과 얼기설기 엉킨 상념에서 빠져나와 손바닥에 침을“퉤!”하고 뱉고는 토낫을 들고 싸리 나무숲에 들어가 어린 싸리나무대가지만 골라 베기 시작했는데 반나절 정도 넓은 싸리나무숲을 헤매서야 겨우 사과배광주리 두어짝 겯을 싸리대가지를 벨 수 있었다. 그는 싸리대가지를 크게 한단 묶어 한쪽에 밀어놓고 허리를 쭉 펴며 아래를 굽어보았다.      만무과원의 산자락에 덩실하게 세워진 사과배박물관의 널따란 앞들에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드나드는 모습과 조선족 한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아들이 핸드폰카메라를 들고 딕톡생방송으로 사과배판매홍보를 하는 모습이 희미하게 시선에 안겨 들었다.     요즘은 무슨 세상인지 핸드폰 하나만 들었다하면 모든 걸 척척 해결하니 참으로 요지경 같은 시대로 매일 같이 별별 신기한 일들도 많이 쏟아져서 강주리의 머리로는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래도 아들 강선도가 작년부터 만무과원에서 엄청난 물량으로 쏟아내는 사과배를 한 겨울 내내 길옆 토굴에서 추위에 떨며 이듬해 봄까지도 다 처리하지 못하여 나중에는 사이좋은 친구가 운영하는 양돈장에 돼지먹이로 실어다주고, 한끼 술대접이나 받던 국면을 타파하여 지금은 딕톡생방으로 한두달 내에 후딱 팔아치우니 강주리는 웃음주머니에 돈주머니까지 잘랑거렸다.      강주리는 금방 슬픔으로 가득 찼던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가득 채웠다. 36년동안 자신의 피땀으로 써왔던 인생의 성적표였다. 만무과원도, 자랑스러운 아들도…     기분이 좋아진 강주리는 베여놓은 싸리단을 훌쩍 어깨에 멘후“으쌰!”하고 단숨에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그는 무거웠던 마음을 추스르며 싸리대가지단을 메고 휘청휘청 산을 내려와 산중턱에 자리한 아담한 귀틀집 앞마당에 부려놓았다.       36년전 이 귀틀집은 본래 사과배를 지키던 움막이였는데 그해 가을 강주리가 왕리화와 함께 도망을 와서 한해 겨울 살다가 이듬해 봄에 두 사람이 사랑의 힘으로 새로 지은 귀틀집이였다.     강주리는 꼬박 10년만에 귀틀집의 자물쇠를 열었다. 그는 36년의 긴 세월동안 세번만 이 귀틀집의 자물쇠를 열었다가 닫았다. 10년에 한번씩 귀틀집을 보수하기 위해 자물쇠를 열었던 것이다. 매번 흙벽을 다시 바를 때마다 그는 아픔과 그리움을 눈물에 이겨 발랐었다. 그에게 모종의 희망이 기약 없이 심어져 그는 아직도 이 귀틀집을 지키고 있는 것이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싱긋한 싸리나무의 냄새와 토벽의 흙냄새가 어우러져 제법 구수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강주리는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내쉬면서 그 속에서 왕리와의 향을 찾는다. 3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 남아있을리 만무하지만 그래도 기억 속의 그 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고 저도 몰래 눈물이 흘렀다. 강주리는“먼지가 들어갔나?”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눈물을 닦는다. 무색함에 흐르는 눈물에게 하는 혼자만의 변명이였다.      강주리는 열세살적부터 부모들을 따라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부업에 뛰여들었는데 그 솜씨가 웬만한 어른들 몇명이 겯는 분량을 당할만큼 잽쌌다. 그렇게 시작된 강주리의 사과배광주리 겯기는 스물네살까지 이어졌었다. 겨우 십이년에 불과한 사과배광주리를 결었던 인생이였지만 그 십년은 강주리의 일생에서 행복과 불행으로 반죽된 파란만장한  시절이였다.      강주리 나이 18살에 겯은 사과배광주리를 팔러 나갔던 부모님이 차사고로 동시에 돌아가셨다. 강주리는 하루아침에 고아로 되였으며 대학생의 꿈을 갖고 다니던 고중공부도 그만두어야 하였다. 그는 울며 겨자 먹기로 홀로 사과배광주리를 겯어 가면서 외로운 생계를 유지하였다. 암흑 같던 그 시절에 삶의 의욕마저 잃었던 강주리가 삶과 죽음의 십자로에서 방황할 때 강주리의 손을 잡아준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청매와 홍매의 죽마고우로 함께 자라온 한마을의 한족처녀 왕리화였다.      왕리화네는 강주리의 고향마을인 용지마을에서 유일한 한족집이였는데 왕리화의 아버지와 엄마가 산동에서 변강지원호로 용지마을에 와서 왕리화를 낳았으니 왕리화도 용지마을에 고향을 둔 토박이였다. 용지마을에 한족학교가 없다보니 왕리화는 강주리와 같이 조선족학교를 다니게 되였다. 왕리화가 한족애라고 애들한테 놀림을 당할 때마다 강주리는 늘 왕리화를 두둔해나서군 하였다. 왕리화네 부모도 그 일로 강주리를 무척 고마워하시면서 한족집에서 잘하는 전병(煎餠)이나 옥수수떡(锅贴)을 자주 가져다주었다. 간식이 없던 시기라 강주리는 그것이 별미였고 그로부터 둘은 더욱 친해져서 늘 붙어 다니곤 하였다.     강주리가 학교를 중퇴하자 왕리화는 공부를 그만두지 말라며 날마다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찾아와서 배워주었고, 강주리가 광주리를 겯을 때면 왕리화는 싸리나무대가지도 옆에서 섬겨주면서 그가 학비를 벌어 다시 학업을 이어가기를 은근히 바랐고 지지해주었다. 강주리는 그것이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음을 알았지만 그러는 왕리화가 싫지가 않았다. 그러다가 왕리화도 대학시험에서 락방하여 집으로 돌아와 부모님을 돕게 되였고, 그들은 매일같이 붙어있었다. 왕리화의 따뜻한 사랑은 강주리의 언 가슴을 녹여주었으며 그들에게 사랑의 씨앗도 움트게 하였다.      그러나 왕리화네 부모들이 한사코 그들의 사랑을 반대하고 나섰다. 처음에 강주리 아버지와 왕리화 아버지는 형님 동생하며 아주 가까웠다. 왕리화의 아버지는 본래 돈이라면 무서운 사람이였고, 거의 수전노에 가까웠다.     그는 이 용지마을에서 사과배광주리 겯는 솜씨가 제일 좋은 강주리네와 친해야 광주리를 잘 겯는 솜씨를 배워 더 많은 돈을 벌수 있다는 자신만의 속셈이 있었는데 그래서 딸 왕리화가 강주리와 친하게 지내는 걸 말리지 않았을뿐만 아니라 은근히 왕리화가 강주리에게서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솜씨를 잘 배워 왕리화도 강주리처럼 사과배광주리를 많이 겯어주기를 바랐었다. 그래서 진심인지는 몰라도 늘 강주리의 아버님하고 두집 혼사롱담도 허물없이 주고받았다.    “형님. 그 집 강주리를 우리 집 데릴사위로 주오. 그러면 우리 례장금(财礼)두 아이 받겠소.”      그때마다 강주리 아버지도 기분이 좋아 허허 웃으면서“그럼 우리야 좋지. 돈도 안 내고 참한 며느리 얻는 건데…”라고 즐겁게 받아주었다.     하지만 부모님을 잃고 가진 것 하나 없는 신세가 되어버린 강주리에게 딸을 주려고 하지 않았으며 갖은 방법으로 그들의 래왕을 막아나섰다.      처음에는 좋은 말로 딸을 구슬려도 보고, 말을 듣지 않으니 때리기도 하였으나 죽어도 강주리한테 시집가겠다는 딸앞에서 마지막 수를 쓸 수밖에 없었다. 고향 산동에서 례장금 10만원을 받고 신랑감을 물색해놓고는 이제 데리러 오면 보내기로 약속을 해놓았다. 그리고는 왕리화가 도망이라도 갈가봐 산동의 신랑감이 올 때까지 왕리화를 집안에 가두어버리기까지 했다.     그때 왕리화가 천방백계로 강주리에게 자신을 구출하여 멀리 도망가자는 쪽지를 내보내지 않았더라면 강주리는 아마 왕리화를 산동에서 온“신랑감”에게 빼앗기고 말았을 것이였다.     부모를 잃고, 일가친척도 없이 외톨이인 강주리가 왕리화를 구출해내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다. 하여 강주리는 왕리화를 데리고 야반도주를 했는데 기껏 멀리 달아난다는 것이 겨우 용지마을과 60여리 상거한 용천(龍泉)마을의 뒤 산 산중턱이였다.     사랑에 빠진 청춘남녀는 가출하여 자신들의 고향 마을에서 60여 떨어진 이 용천골로 숨어들어 사과배움막에서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부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면서 그들의“축복 받지 못한 사랑”을 이어 나갔다.      해빛도 잘 들지 않는 산중턱의 사과배움막에서는 왕리화의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밤낮으로 울려 퍼졌다.       我家住在黄土高坡,      大风从坡上刮过,     不管是西北风还是东南风     都是我的歌 我的歌  2. 쌍둥이사과배       한겨울의 추위도 그들의 불같은 사랑앞에서는 녹아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랑의 불길은 두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덥혀주었고, 겨우내 부지런히 손을 놀려 겯어놓은 사과배광주리는 움막앞에 산처럼 쌓이여서 그들 사랑의 견증인인듯 움막앞을 지키였다.      따뜻한 봄이 되자 강주리네는 사과배광주리를 팔아서 모은 돈으로 움막앞에 자그마한 귀틀집을 짓고 두 사람의 보금자리를 만들었고, 앞마당에서 외홀로 자라던 돌배나무에 산동에서 가져온 사과나무가지를 접목해놓고 두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였다.     강주리는 왕리화를 꼭 껴안고 속삭이였다.    “왕리화, 우리 영원히 함께 하자. 넌 나의 유일한 사랑이고, 내 하늘이고, 영원한 나의 우주야. 하늘이 무너져도 나만 믿어. 꼭 행복하게 해줄게.”     튼튼한 강주리의 넓은 품은 세상의 모진 비바람을 막아주는 병풍처럼 왕리화의 불안한 가슴에 믿음의 씨앗을 심어주었다.    “강오빠, 죽을 때까지 난 오빠 한사람만 사랑할 거야 믿어줄 거지?!”     물기를 가득 머금은 함초롬한 눈으로 쳐다보는 왕리화의 동그란 눈에 강주리는 대답대신 뜨거운 입술을 갖다대였다.     이듬해 봄에 접목된 돌배나무에는 사과보다 더 시원하고, 돌배보다 더 부드럽고 달콤한 쌍둥이사과배가 열리였고 두 사람도 사랑의 결실인 이란성쌍둥이를 보았다. 강주리는 딸인 큰아이에게 강선화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아들인 작은아이에게 강선도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강주리와 왕리화는 이란성쌍둥이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면서 힘든 줄 모르고 신나게 사과배광주리를 겯었다.      왕리화는 강주리가 결어준 쌍둥이광주리요람에 쌍둥이들을 누이고 자장가를 부르며 한손으로는 요람을 흔들어 애들을 잠재우고 다른 한손으로는 부지런히 싸리대를 섬기면서 남편의 사과배광주리 겯기를 도와나섰다. 강주리도 쌍둥이광주리요람에서 해죽해죽 웃어대는 쌍둥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왕리화의 노래가락을 따라 부지런히 손을 놀려 광주리를 엮어갔다.        배는 사과를 사랑하였지     사과도 배를 사랑하였지     배와 사과의 사랑으로     쌍둥이사과배가 태여났지     앞쪽 사과배광주리에는     예쁜 사과배가 웃어주고     뒤쪽 사과배광주리에는     튼튼한 사과배가 웃어주네     아빠는 사과배광주리를     멜대에 지고 춤을 추며     엄마는 뒤에서 노래 부르네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다     에헤야, 쾌지나 칭칭 나아네       그런 행복한 축복 속에서 강주리는 힘든 줄도 모르고 하루저녁에 사과배광주리 여덟 짝씩 겯어냈다. 그때 사과배광주리 하나에 1원씩 했으니 강주리는 하루 저녁에만 8원 벌이를 할 수 있어서 당장 갑부가 되는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그래서 그들은 이 용천의 골짜기에서 이란성쌍둥이오누이를 키우면서 아이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꿈꾸었고, 래년에는 새품종으로 쌍둥이사과배를 더 많이 심어 살림을 꽃피우려는 설계도까지 그려가면서 이 세상의 그 누구도 부러울 것이 없었다.     하늘도 그들의 행복한 새살림에 시샘이 났는지 그들이 아름다운 설계도를 펼치기도 전에 난데없는 불행을 소리 없이 선사해왔다. 태여난지 겨우 반년이 지난 이란성쌍둥이오누이가 엇바꿔 앓기 시작한 것이였다.     오늘은 선화였다. 갑자기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숨넘어가게“으앙!”하고 울다가 흰 눈자위가 위로 올라가면서 기절을 하는 것이였다. 선화의 혼절은 강주리와 왕리화에게 두려움을 가득 안겨주었다. 그들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는데 강주리는 두짝 사과배광주리요람을 내오고, 왕리화는 두 아이를 앞쪽 뒤쪽 사과배광주리요람에 넣어준다. 강주리는 힘든 줄도 모르고 멜대의 량쪽 채에 사과배광주리요람을 매달고 부리나케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렸다. 왕리화는 그 뒤를 달음박질하듯 엉엉 울며 뒤따라갔다. 가까운 향소재지의 병원에서 간단한 구급을 거치자 아이는 곧 깨여나고 진정 되였다. 그렇게 한바탕 들볶고 나면 강주리의 온몸은 물주머니로 되고, 왕리화의 얼굴은 눈물바다가 되였다. 이렇게 하루를 힘겹게 넘기면 그 다음 날에는 선도가 또 선화와 똑같은 증상으로 발작을 일으켰다. 역시 향소재의 병원에 가서 간단한 구급을 하면 개복이 되였다. 차츰 강주리와 왕리화도 이란성쌍둥이의“귀신 병”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여 갔지만 사흘이 멀다하게 들볶아대는 두 아이때문에 하루도 마음이 편한 날이 없었다. 아마도 큰 병원에 가서 애들 병의 뿌리를 뽑아야지 그냥 이렇게 구급책으로 해결하다가는“큰일 날 것이다”는 주변의 권고와 향소재지병원의 의사들 권고에 따라 그들은 큰 병원으로 가보기로 하였다. 솔직히 그들도 그런 생각이 없었던 것은 아니였지만 손에 쥐인 것이 없어서 도무지 엄두를 못 낸 것이였다.     강주리와 왕리화가 제일 먼저 찾은 큰병원은 연변병원이였다. 그러나 연변병원에 와보아도 진찰결과는 역시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답답한 일이라면 좋은 병원을 찾아도 병의 근원을 찾지 못하고, 완치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제 그들은 육체적이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강 오빠(康哥), 하늘에서는 무엇때문에 우리에게 이렇게 혹독한 벌을 내릴까요? 아니 왜 나한테 이런 벌을 주는 걸까요? 내가 뭘 잘못했을까요? 저의 조상들이 내린 벌일까요? 부모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타민족인 조선족남자에게 시집가서 혈통이 다른 아이를 낳아서일까요? 사랑에는 국경도 없다는데 한나라, 한 지역, 한 마을에서 서로 정을 나누었는데 그게 죄라면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잖아요? 강 오빠! 우리 이제 어떻게 하면 좋아요.”     왕리화는 너무 애가 나고, 억이 막혀서 병원복도에서 강주리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이렇게 넋두리까지 했다.    “우리 무슨 수를 써서라도 더 큰 병원에 가보자. 장춘의 성급병원에 가도 안 되면 북경의 수도병원이라도 가보는 거야. 돈 없으면 이 내 몸의 피마저 깡그리 팔아서라도 우리 저 애들을 건강하게 키우자. 이런 모습은 왕리화, 너 답지 않은 모습이잖아.”     강주리의 속도 이미 억장이 무너질대로 무너져 그의 자신감마저 모두 빠져버렸지만 그래도 그는 사내대장부답게 왕리화에게 거대한 산처럼 턱 버텨주었다.      며칠후 그들은 빚까지 내여서 장춘의 성급병원으로 찾아갔다. 그곳 역시 진찰결과로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아마도 뇌간의 바람기 같은데 이렇게 빈번하게 발작하면 종신의 뇌간질(뇌전증)로 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거 혹 떼러 왔다가 혹 하나 더 붙이는 격이였다. 그들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만 같았다. 일순 그들의 눈앞은 캄캄해났다. 이란성쌍둥이오누이 둘 다 종신의 간질병환자로 될 수 있다는 말에 그들은 자신들이 죽음의 바다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너무 기가 막혀 이제 그들의 눈에서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그들은 죽음을 결심하고 벼랑끝에 선 사람들처럼 다시 평온하고 강인해졌다. 갑자기 그들에게는 죽더라도 네 식구가 함께 죽을 것이고, 어떻게든 이대로 숙어들지는 않겠다는 강한 집념이 생겼다. 그들은 실망을 가득 안고 연변으로 돌아오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에서 하루밤 자는 로정이건만 왕리화는 선화를 품에 안은채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샜다. 잠을 안자도 정신은 말짱했다. 머리는 회전을 멈춘채 아무생각이 없었다. 조양천에서 잠간 렬차가 멈췄고 한 아주머니가 왕리화의 옆자리에 앉았다. 아이를 유심히 들여다보던 그 아주머니는“응. 애, 얼굴에 그늘이 졌군.”라고 하는 것이였다. 왕리화는 들었는지 말았는지 눈길도 주지 않은채 멍하니 있었다. 왕리화의 무감각한 반응에도 아주머니는 또 한마디 하였다.    “이란성쌍둥이구만. 다 남자로 태여날 운명인데 엇갈렸군. 쯧쯧…”     그 말이 왕리화의 예민해져 있는 신경을 건드렸다. 아이 한명만 안고 있는데 쌍둥이인줄은 어떻게 알았지? 왕리화는 번쩍 정신을 차리고 쏘아보듯 그 녀인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되물었다.     “무슨 말씀인가요? 이란성쌍둥이인걸 어떻게 아셨어요? 엇갈리다니요?”     워낙에 민감한데 이런 말을 들으니 머리뚜껑이 열리는 같았고 지금까지 참았던 모든 것이 분출구를 찾은듯 쏟아져 나오려고 하였다. 왕리화의 두눈에서는 불이 일었다. 그 녀인은 태연하게 입술만 움직이는 낮은 소리로 중얼중얼 하면서 왕리화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충격으로 차가워진 왕리화의 손을 꼭 잡아준다. 그러자 그 손에서 어떤 전률이 전해졌는지 왕리화의 눈의 독기는 풀려나고 눈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그 녀인은“서시장뒤골목”이라는 밑도 끝도 없는 말을 남겨두고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왕리화는 미친개에게 물린듯 기분이 언짢았지만 심신이 너무 피곤한 상태라 그날 그 일을 지나쳐버리고 말았다.     먼 길에 녹초가 된 강주리와 왕리화는“개굴도 제 굴이 제일이라”고 자기들의 귀틀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쌍둥이를 사과배광주리요람에 각자 따로 재우고 그들 둘은 불도 지피지 않은 차가운 구들에 서로의 체온으로 몸을 녹이려는듯 꼭 끌어안고 누웠다. 이렇게 힘들 때일수록 부부의 사랑만큼 힘이 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왕리화는 강주리의 왼쪽팔베개에 머리를 얹고, 그의 든든한 가슴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일에 단련된 강주리의 탄탄한 팔근육이 꿈틀거리는 감각을 느껴가면서 한생 그의 팔에만 안겨있다면 이 세상에서 두려울 것이나 이겨내지 못할 난관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위안해갔다.     강주리의 오른손이 왕리화의 등 밑으로 비집고 들어와 그녀의 허리를 힘껏 끌어당겨 꼭 끓어 안는다. 부부는 말이 필요 없었다. 이렇게 서로를 보듬어주면 그것이 곧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여 두려울 것 없다. 그들은 서로의 심장소리를 자장가로 들으며 혼곤히 잠들었다.     아이들의 빈번한 병원놀이에 그사이 그들은 마음을 잡고 일하지도 못했고, 조금 마련해놓았던 가산마저도 치료비로 다 쓰다보니 집안은 서발막대 휘둘러도 거칠 것이 없었다. 가장집물이라야 간단한 부엌도구에 둘이 덮고 자는 이 큰이불 한채 외에는 온통 사과배광주리를 겯다가 만 싸리대가지만 여기저기 널려있어서 마치 싸리나무숲에 싸리나무를 얼마간 베여내고, 그 자리에 로천잠자리를 만든 상황과 흡사했다. 오히려 사과배광주리요람에서 잠자고 있는 쌍둥이의 잠자리만이 그나마 불난 집에 겨우 살아남은 온전한 꽃병처럼 어둠이 흐르는 방안에 한줄기 해살이 되여 주었다.      얼마나 잤을까? 강주리와 왕리화는 잠결에 아이의 숨이 넘어가는듯한 울음소리가 들리는듯했다. 너무 깊은 잠에 빠진 그들은 꿈으로 착각했다가 갑자기 이란성쌍둥이오누이 중에 어느 애가“아픈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으로 동시에 눈을 번쩍 떴다. 이번에는 선도였다. 선도는 방금까지 우는 것 같더니 잠이 든듯이 잠잠했다. 그들은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왕리화가 그의 코에 손을 갖다대어보니 숨이 미약하게 느껴졌다. 그들은 또다시 사과배광주리요람에 잠이 든 선화와 병이 발작한 선도를 눕힌 후, 강주리가 양쪽 멜대 채에 걸어 메고 병원으로 줄달음쳤다. 지치고 지친 몸의 피곤이 채 풀리지 않았지만 그들은 선도를 구급하기 위해 달음박질을 했는데 모성과 부성이 초인간적인 힘을 내준 것이였다. 그들은 정신없이 뛰고 있었기에 발이 땅에 닿는 느낌마저 없었다. 그들의 몸과 정신은 구름 위를 날아예는 것 같았다.     병원에 들어서니 새벽 두시다. 그들은 선도를 안고 미친듯이 응급실 문을 두드렸다. 자다가 깬 의사는 부석한 얼굴로 아이를 들여다보더니“애가 웃고 있네요.”라고 하면서 선도에게“딱!”하고 윙크를 보냈다. 선도는 언제 그랬나 싶게“까르륵!”하고 웃기까지 하였다. 그들은 할 말을 잃었다. 죽을힘을 다해 정신없이 달려왔건만 선도는 아무 일이 없었다. 졸지에 다리맥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은 왕리화는 한바탕 통곡을 하였다. 얼마나 울었을가? 창백한 얼굴에는 피기 하나 없었고 푹 꺼져들어간 두눈에는 어두운 그늘이 비껴 있었다. 얼굴에 남아있는 채 마르지 않은 눈물자욱만이 그가 숨쉬고 있는 생명체임을 말해주는 상 싶었다.     왕리화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령혼이 빠져나간 꼭두각시처럼 아이를 안은채 병원문을 나와 어스름이 깔려있는 새벽의 서시장 뒤골목을 미친 녀인처럼 배회하였다. 그녀는 기차에서 만났던 여인의“서시장뒤골목”이란 말에 홀린 것 같았다. 3. 도둑맞은  쌍둥이사과배 하나     쌍둥이는 병원을 전전하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별탈없이 무사히 첫돐생일을 맞이하게 되였다. 그래서 왕리화와 강주리는 아름다운 희망에 마음이 부풀어 이란성쌍둥이오누이의 첫돐생일을 착실하게 준비해갔다. 강주리는 밤낮을 거의 패가며 사과배광주리를 정신없이 겯어갔는데 하루에 스물짝도 넘게 겯어냈다. 사과배광주리의 시세도 올라서 지금은 사과배광주리 하나에 3원씩 받을 수 있었다. 1년전까지 사과배광주리 한짝에 1원씩 하던 수준에 비하면 이젠 사과배광주리 겯는 부업이 강주리에게 커다란 치부책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경제상황에서 하루에 60원씩 벌 수 있다는 것 금전벌이나 다름이 없었다. 강주리가 열흘만 부지런을 떨고 애를 쓴다면 이란성쌍둥이오누이의 첫돐생일을 남부럽지 잘 쇠여줄 수 있었다. 강주리는 눈물이 나도록 행복했었다.     왕리화는 고운 색동천을 사다가 손수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녀는 한족이여서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지을 줄을 몰랐지만 용천마을에 내려가 전통바느질을 잘하는 할머니들을 찾아다니며 열심히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그녀는 바늘에 손가락을 찔려 피까지 줄줄 흘려가며 한뜸, 한뜸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만드느라 한달을 넘게 고생을 하더니 이란성쌍둥이오누이의 첫돐생일 전날에야 완성을 했다. 그 사이 선화의 혼절증세가 여러번 발작해서 왕리화는 병원과 줄달리기를 해서 얼굴도 많이 수척해졌다. 강주리도 밤낮으로 사과배광주리를 겯어 돈을 벌어들이느라고 눈에 벌겋게 핏발이 섰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행복하여 자신들이 몸이 야위어가고 피곤해가는 것도 몰랐다. 왕리화는 쌍둥이들에게 자신이 지은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입혀보았다. 강리화는 아장아장, 강선도는 되똥되똥 걸음마를 타기 시작한 두 아이는 넘어질듯 신나게 복장표현을 하였다. 용천 뒤산 산중턱의 오두막 같은 귀틀집에서 오래간만에 강주리와 왕리화의 웃음소리가 밝게 들렸고, 애들의 아장거림에 용기를 주는 박수소리가 들렸다.     래일은 이란성쌍둥이의 첫돐생일이라 만단의 준비를 다 해놓은 강주리와 왕리화는 선화와 선도를 사과배광주리요람에 눕혀 잠을 재우고, 그들도 밤이 늦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왕리화는 큰시름을 던듯 오랜만에 강주리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그녀는 수염이 더부룩한 남편의 꺼슬꺼슬한 얼굴을 매만지며 정겹게 속삭이였다.     “강 오빠, 그 사이 고생 많았어요. 낼부터는 우리 쌍둥이오누이가 제발 더 이상 아프지 않고, 무탈하게 잘 자라주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래일부터 우리 쌍둥이오누이가 절대 아프지 않게 할 거예요. 저 애들이 두번 다시 아프지 않을 수만 있다면 저는 그 어떤 짓이라도 다 할 수 있어요. 오빤 날 원망하지 않을 거죠? 하지만 오빠에 대한 내 사랑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믿어주실 거죠? 내가 강 오빠를 한생 괴롭히는 미안한 일을 하더라도…”     눈물에 촉촉이 젖은 왕리화의 기다란 속눈썹에 매달린 눈물방울이 달빛에 반짝이였다. 왕리화의 피눈물이 나도록 애타고 괴로웠을 마음을 너무 잘 알고 있는 강주리는 말없이 그녀를 품에 꼭 껴안으며 물기가 함초롬한 그녀의 눈을 뜨거운 입술로 포개여 주었다. 강주리는 손으로 왕리화의 머리를 어루쓸며 나지막이 왕리화가 좋아하는《사과배꽃(苹果梨花)》을 자장가처럼 불러주다가 둘은 혼곤히 잠들었다.       사과배꽃 바람에 흔들리지     밝은 달빛이 가슴을 비추면     나는 그대를 사무치게 그리지     에헤, 에헤, 에헤야     그대의 무정함을 미워하지     나를 버린 그대를 미워하지     온종일 나는 두려움에 떨고     꿈속의 혼령은 기댈 곳 없네.       이 노래는 1940년대 상해를 달구었던 가수 장로(张露)가 1965년에 발표한《사과꽃(苹果花)》이었는데 왕리화가 배“梨”자 하나를 더 첨가하여《사과배꽃(苹果梨花)》으로 부르던 노래였다.     애들이 첫돐생일 옷인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곱게 차려입고 생일상을 받고 있었다. 선화는 엉뚱하게 생일상에 올라있는 천사의 날개를 쥐었고, 선도는 수판을 쥐였다. 그러자 첫돌잡이를 구경하던 사람들이 선화는 커서 공중아가씨가 될 것이고, 선도는 커서 상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강주리와 왕리화는 축하객들의 덕담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첫돌 생일상을 물린후 선화와 선도는 마당에서 퐁퐁 신나게 뛰여다녔다. 앓는 애들 같지가 않았다. 강주리와 왕리화는 건강을 되찾고 활기에 찬 쌍둥이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웃음을 멈출 줄 몰랐다. 한참을 신나게 뛰여다니던 선화와 선도는 동시에 넘어졌다. 하여 강주리와 왕리화는 부리나케 달려가서 각자 한 아이씩 일으켜 세우고 품에 안았는데 강주리는 선도를 안고, 왕리화는 선화를 품에 안았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회오리바람이 불어오더니 왕리화와 강선화를 휘감아 다시 하늘로 타래 쳐 오르더니 순식간에 왕리화와 강선화는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추었다. 강주리는 선도를 안은채 선자리에서 발을 구르며“리화야! 선화야!”라고 목이 터지게 부르며 하늘로 쫓아오르려고 했다. 그러자 강주리의 몸도 무겁게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더니 2미터도 날아오르지 못하고, 제 자리에“쿵!”소리와 함께 추락하고 말았다.     강주리가“리화야! 선화야!”하고 소리를 지르며 깨어여나고 보니 그것은 꿈이였다.      강주리는 불길한 예감이 들어 옆자리를 손으로 더듬어 보았다. 비여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켜고 보니 자신의 곁에 누웠던 왕리화가 보이지 않는다. 무릎걸음으로 사과배광주리요람에 다가가 보니 선도만 쌔근쌔근 잠이 들어있고, 선화를 재웠던 사과배광주리요람은 비여있었다. 시계는 새벽 세시를 슬프게 가리키고 있었다.      강주리는 그 사이 선화의 병이 또 발작하여 왕리화가 자신이 잠든 틈에 혼자 병원에 갔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왕리화와 강선화는 병원에 오지 않았었다. 강주리는 갑자기 당황해났다. 혹시 도중에 어디에선가 사고가 난건 아닌지 별의별 나쁜 궁리를 다 하면서 오던 길을 되돌아 산길을 훑었다. 없었다. 혹시 집에 돌아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뛰다시피 다시 되돌아왔다. 그러나 왕리화와 강주리는 돌아오지 않고 선도만 엄마가 해준 예쁜 한복저고리의 소매를 사탕처럼 쫄쫄 빨며  강주리를 향해 생글생글 웃어줄 뿐이다.      아까는 급해서 보지 못했는데 선화가 자고 있던 사과배광주리 속에는 종이쪽지 하나가 달랑 놓여있었다. 강주리가 다급히 그 종이쪽지를 꺼내 펼쳐보니 거기에는 이렇게 씌여있었다.       강 오빠,      미안해요.      나 선화만 데리고 오빠를 떠나가요. 날 나쁜 년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 없어요. 오빠한테 나 실망했어요. 우리의 앞날이 보이지 않아요. 저와 선화를 받아주고 행복하게 해줄 사람을 찾았어요. 저는 선화를 예쁘게 잘 키워낼 거예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빠를 선택한 것이 죽도록 후회돼요. 렴치가 없지만 절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저와 선화를 찾느라 애 쓰지도 마세요. 아무리 찾으려고 애를 써도 오빠는 우리를 절대 찾을 수 없을 거예요. 부디 우리 선도만은 잘 키워주세요. 만약 오빠가 선도마저 잘 키우지 못하신다면 저는 오빠를 절대 용서하지도 않을 거예요.                                                            배신자로부터               강주리는 왕리화가 남긴 종이쪽지를 다 읽고 난후,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머리속에서는 얽히고설킨 실타래가 그물을 치고 있었고 그 매듭의 고리를 도무지 찾아낼 수가 없었다. 머리속에는 오로지“이거 꿈이지.”라는 한 가지 생각만 반복적으로 회전하고 있었다.     얼마후 강주리는“왕리화는 절대 나를 이렇게 떠날 사람이 아니야.”라는 한마디만 입속으로 거듭 씹고 있었다. 그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강주리가 알고 있는 왕리화라면 절대 이럴 여자가 아니였다. 그는 대답을 찾으려는듯 왕리화가 남긴 쪽지를 읽고 또 읽었다. 왕리화가 자신에게 실망했다는 말은 충분히 리해가 갔지만 다른 사람이 생겼다는 말은 죽어도 믿을 수 없었다. 그리고 왕리화가 강주리에 대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는 말은 비수마냥 강주리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왕리화의 배신자라는 말은 오래도록 강주리의 머리속에 남아서“나는 당신을 절대 배신하지 않아요.”라는 사랑의 맹세로 들렸다.      강주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의 선택을 후회해 본적이 없었고, 자신의 눈을 의심해본적이 없었다. 그는 또 한번 자신을 믿어보기로 했다. 자신을 믿는 것이 곧 왕리화를 믿는 것이니까. 말 못할 사연이 있을 거라고, 꼭 돌아올 것이라고 믿고 기다리고 싶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왕리화에 대한 믿음은 긴 시간 속에서 서서히 허물어져 가기 시작했고 그 믿음의 자리에는 왕리화의 배신이 싹처럼 자라서 강주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였다. 또 5년이 흘렀다. 그 사이 강주리는 분노와 원망으로 왕리화를 저주하면서 살아갔고, 그 다음 5년은  자신이 왕리화보다 선도를 더 잘 키우겠다는 오기로 버텼다. 그 후의 시간은 왕리화를 잊으려고 몸부림치며 살았다. 하지만 왕리화를 잊으려고 할수록 선화가 눈에 밟혀 그녀에 대한 그리움은 더 커갔다. 그렇게 왕리화가 자신을 떠나간 30여년동안 강주리는 단 하루도 왕리화와 선화를 잊어본적이 없었다. 하여 왕리화가 선화만 안고 자신을 떠난 시간이 20년이 되었을 때 강주리 마음에서의 왕리화에 대한 미움은 서서히 사라지고 또다시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게 되였다. 강주리는 선도를 대학에 보내고 집에 혼자 남게 되자 왕리화와 선화에 대한 그리움을 더 이상 떨칠 수 없게 되여 뒤늦게야 왕리화를 찾아나섰다. 어떤 결과라도 좋으니 그냥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강주리는 왕리화를 찾아 석달동안 연변 전역을 돌아다녔지만 왕리화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었다. 강주리는 맨 마지막으로 왕리화를 찾아 산동에도 다녀왔지만 왕리화네 부모마저 어디로 간곳을 모르는 그로서는 역시 헛물만 켜고 말았다. 그렇게 강주리는 36년이 지난 지금까지 왕리화와 강선화의 소식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후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강주리는 작은 쌍둥이배광주리를 엮으면서 그리움을 달래였는데 행복의 뒤끝에 강주리의 아픈 기억을 불러주는 일도 따라왔다. 그것은 종이박스에 사과배를 포장하여 판매한 세월도 30년이 훨씬 넘어왔는데 갑자기 싸리나무로 결은 사과배광주리에 사과배를 포장해달라는 엉뚱한 주문이 들어온 것이었다. 모종의 아련한 추억의 장난이라 할까, 아니면 어려서부터 스물네 살까지 사과배광주리만 겯어 왔던 강주리의“고리백정”천직의 본성이라 할까, 사과배광주리에 대한 아픔으로 한생을 괴롭게 시달리면서도 가끔 아픈 기억이나 모진 그리움으로 잠 못드는 밤이면 겯어둔 사과배광주리가 몇짝 있었는데 그걸 아들 강선도가 핸드폰카메라에 담아 딕톡방송에 옛 추억거리로 올린 것이 화근으로 되여 갑자기 한 고객이 흥분에 떨며 사과배광주리에 관심을 보이더니 기어코 자신이 주문하는 사과배를 그 사과배광주리에 담아달라고 억지를 부려왔었다. 하여 아들 강선도가 그 고객의 주문한 사과배를 강주리가 아픈 추억과 모진 그리움의 소산으로 결은 사과배광주리에 담아 보낸 것이 나비효과로 수많은 고객들의 광주리사과배의 주문으로 이어져 강주리는“핍박에 양산에 오른 격”으로 다시 본격적으로 사과배광주리를 엮기로 하였다. 이제 강주리의 만무과원에서는 또다시“광주리사과배”가 탄생할 조짐이였다. 4. 쌍둥이사과배의 재회     강주리는 옛날 왕리화와 함께 살며 이란성쌍둥이를 낳고, 그들을 키우던 귀틀집에 기거하며 다시 사과배광주리나 겯으면서 여생을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왕리화의 가출은 그에게 거대한 분노를 폭발시켰었고, 오래동안 그녀에 대한 증오와 원망으로 시달렸다. 그러나 36년이란 긴 세월이 흐르면서 그녀에 대한 미움은 천천히 그리움으로 바뀌여 왔다. 그래서 그는 이 저주의 귀틀집을 해마다 보수하면서까지 고수해왔다. 이제 강주리에게 남은 것은 죽기 전에 왕리화의 소식이라도 알고, 이란성쌍둥이 딸 강선화의 얼굴이라도 한번 보게 된다면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았다.      강주리는 귀틀집안에 들어서기 바쁘게 싸리대가지를 삶던 가마부터 부시고 물을 가득 부운후 부엌에 불을 넣었다. 그리고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도구들을 들추어내고, 사과배광주리를 앉아 겯을 구들을 깨끗이 청소했다. 이제 이 귀틀집안에서 새살림을 시작해도 괜찮을 정도로 귀틀집안은 다시 윤기가 알른거렸다. 강주리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밖으로 나와 아까 베여다 부려놓은 싸리대가지 단을 풀어 낫으로 싸리대가지들을 반으로 쪼갠후에 다시 안아 귀틀집안의 가마에 넣고 삶기 시작했다. 이렇게 삶아두면 낼부터 주문 들어온 사과배광주리 두어개를 금방 겯을 수가 있었다.     강주리는 두손을 앞으로 내들고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시늉을 해보았다. 36년동안 사과배광주리를 겯지 않았던 그의 두손은 이미 감각이 무뎌져 있었다. 이렇게 넣고, 이렇게 빼고,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수순마저 그의 기억에서 뒤죽박죽이 되여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았다. 한참을 벙어리가 수화(手話)를 하듯 법석을 떨어서야 겨우 그의 빈손에서 사과배광주리가 겯어지기 시작했다.    “십년을 사과배광주리를 겯어오며 사랑을 나누고, 이란성쌍둥이를 먹여 살리던 고리백정의 솜씨가 300년의 세월이 흐른다고 잊어질 수야 없지. 오래동안 내 마음의 문이 닫히여서 잠간 손끝이 무뎌졌을뿐이지. 이제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다시 사과배광주리를 엮어보아야겠어. 그래서 잃어버린 내 사랑 왕리화 내 딸 강선화를 다시 찾을지도 모르지. 아, 선화야! 너도 이제 예쁜 처녀가 되였겠구나. 아, 우리 딸 선화!…”     강주리는 자신의 빈손에서 겯어지는 사과배광주리에 흡족했지만 자신의 사랑과 피줄을 잃은 슬픔에 빠져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강주리는 자신의 슬픈 감정을 이기지 못해 귀틀집 밖으로 나와 아무런 기약도 보아낼 수 없이 시퍼렇게 깊어만 가는 가을하늘을 쳐다보았다. 마치 자신의 눈물을 하늘바다에 흘려주기라도 하듯이.     바로 그때였다. 아들 강선도가 조금 아래 산중턱에 자리 잡은 사과배박물관 쪽으로부터 헐레벌떡 뛰여올라오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아버지, 아버지! 광주리사과배주문이 또 들어왔어요. 산동 청도에 거주하는 고객이 무려 열 광주리나 사겠다고 해요. 아버지 일주일내로 사과배광주리 열짝을 겯을 수 있지요?”      강주리는 흥분에 젖어있는 아들의 분위기를 맞추어주며“할 수 있고말고. 내가 누구냐. 광주리잖아.”하고 방금전의 슬픔을 어느새 던져버렸던지 환하게 웃어주었다.    “아버지, 이 고객이 요구하는 사과배광주리의 모양은 아주 특별한데 이렇게 쌍둥이사과배광주리로 만들어 달래요. 이 사진을 보세요.”     강선도는 핸드폰을 강주리의 눈앞에 들이밀며 핸드폰모니터에 떠있는 사과배광주리모형을 보여주었다.    “쌍둥이사과배광주리”란 말에 강주리는 놀란 기색을 지으며 강선도의 손에서 핸드폰을 받아 오래도록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굳어지더니 두눈이 당장이라도 빠져나올듯이 커졌다.     핸드폰의 모니터에 떠있는 사과배광주리의 모형은 전에 강주리가 왕리화와 함께 이란성쌍둥이를 키울 때 두 오누이의 요람으로 결었던 사과배광주리 두개가 한데 붙은 요람광주리였다. 강주리는 세상에 이런 요람광주리는 단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었다.     “이거 어디서 난거니? 누가 보내온 거야.”      강주리는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다급히 물었다. 몸속의 피가 골물이 터진듯 빠르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산동의 딕톡 친구인데 직접 물어볼게요.”     선도는 강주리의 곁에서 핸드폰에 대고 한족말로 물었다.    “핑궈(苹果), 이 그림 어디서 난 거냐고 우리 아버지가 물어보는데요?”      그러나 핸드폰에서 잠시 답이 들려오지 않았다. 아마도 그 시각에 딕톡에 온라인 되지 않았던 것 같았다. 그러나 딕톡 창에는 너무나 익숙한 얼굴이 나타나 강주리를 보면서 활짝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은 36년 전 왕리화의 젊고 예뻤던 모습 그대로였다. 강주리는 갑자기 심장에 무엇인가 찔려오는 느낌을 아프게 받으며 오른손에 쥐었던 강선도의 핸드폰을 떨어뜨리고 왼쪽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그는 몸의 평행을 갑자기 잃어버리고 그 자리에서 가슴을 부여잡은 채 쓰러지고 말았다.     강주리가 다시 깨여났을 때는 병원이였다. 의사는 갑자기 만성심장마비가 일어났는데 급성이였으면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못했을 거라고 말했다.     강주리는 잠간 저승에 한번 다녀온 것이였다. 잠간 들렸던 저승에서 그는 왕리화의 얼굴을 보았고, 왕리화와 똑 같게 생긴 처녀도 보았다. 그러나 강주리는 아들 강선도에게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았고, 약간 수심이 비꼈지만 평온한 얼굴로 말없이 수걱수걱 주문 들어온 쌍둥이사과배광주리만 부지런히 겯고 있었다. 하지만 강주리의 내심에서는 풍랑이 일고 있었다.      아들의 딕톡친구라는 핑궈라는 그 젊은 녀자의 얼굴은 왕리화가 젊었을 적의 얼굴로 강주리의 눈앞에서 몹시 알른거렸다. 그러나 그녀는 왕리화가 아니였을 것이였다. 이제 그녀도 거의 륙십이 되였을테니까. 그 젊은 녀자는 어디서 살고 있는 누구인지? 왜 젊었을 적의 왕리화의 얼굴을 그렇게 닮았는지? 강주리의 머리에는 온통 의문투성이였지만 그렇다고 그걸 아들 선도를 통해 자세히 물어볼 립장도 아니였다. 지금까지 선도에게 비밀로 해왔던 가슴 아픈 지난 이야기를 들춰야 하니까. 그것보다 더 두려운건 그 결과였다. 그 애가 강선화가 아니라면 강주리의 가슴앓이는 죽을 때까지 계속 될 것이고 만약에 맞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리속이 복잡하기만 하다.      선도는 요즘 사과배박람회때문에 아버지의 귀틀집에 안 올라온지도 사흘이 넘었다. 강선도가 만무과원에서 전국각지의 사과배주문고객들을 모신다고 하니 기쁜 일이였다. 그래서 강주리는 아들을 조용히 불러 왕리화를 똑 떼여 닮고 쌍둥이사과배광주리요람을 주문해온 그 핑궈라는 처녀애의 신상에 대해 물어볼 기회마저 없으니 대중없이 속만 타들어갔다. 강주리는 사과배광주리를 겯으며 혼자말처럼 중얼거린다.    “선도, 너도 이제 네 엄마와 네 누나에 대해서 알 때가 되였구나. 너희들 이란성쌍둥이오누이가 다시 재회할 수만 있다면 나는 래일 죽어도 원이 없을 것이여!…”     강주리는 긴 한숨을 내쉬고는 울적한 기분을 털어버리려는듯 예전에 왕리화가 즐겨 부르던《사과배꽃(苹果梨花)》의 노래를 절절하게 부르며 36년전에 떠나간 반쪽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시작했는데 그의 손에서는 쌍둥이사과배광주리가 잽싸게 겯어져 나갔다.       苹果梨花迎风摇曳     月光照在怀里     想起了你想起了你     嗳嗳, 嗳嗳, 嗳嗳     只恨你无情无义     一心把人弃     害得我朝朝暮暮     梦魂无所依       그때 갑자기 선도가 문을 떼고 들어서며 놀라운 소리로 묻는다.    “아버지도 이 노래 부르실 줄 아시네요? 이건 헤여진 애인이 그리워서 부르는 노래인데. 아버지도 잊지 못할 애인이 있었나요?”    “거기 앉거라. 아버지의 첫사랑 이야기 해줄가?”     강주리는 선도를 조용히 불러 곁에 앉혔다.    “네.”     강선도는 궁금증을 보이며 강주리 곁에 앉았다.    “나와 한마을에서 같이 자란 한족녀자가 있었는데 얼굴이 예쁘고 마음이 착했어. 그런데 동네아이들이 한족애라고 왕따를 시켰어. 나는 그런 걸 못 봐주는 성격이거든. 그래서 사나이의 영웅본색으로 그 애를 지켜줬지. 그렇게 청매와 홍매로 자란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되였어. 그런데 내가 부모두 없구 돈두 없으니 그 집 부모님들은 우리의 사랑을 견결이 반대했어.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딸을 다른 남자에게 시집보내려고 했지.”     한생 혼자 살아온 아버지에게 이와 같은 로맨틱한 련애사가 있었을 줄을 전혀 몰랐던 선도는 신기한듯 아버지 곁으로 더 밀착해 다가앉으며 물었다.    “아버지, 너무 멋있어요. 그후에는?”    “나는 그 한족처녀를 데리고 도망을 갔어. 바로 지금 이 귀틀집을 짓기 전의 터에 있던 사과배움막으로 왔었어. 해빛도 들지 않고 음침했던 그 움막은 추운 겨울에 대방의 얼굴에 입김을 불어도 금방 서리가 앉을 정도로 추웠고 두 사람이 누우면 등을 돌릴 수도 없이 비좁았어.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어. 우리의 마음은 사랑으로 뜨거웠으니까.”      그때를 떠올릴 때 강주리의 입가에는 행복한 미소가 어렸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담배 곽에서 담배 한 가치를 뽑아 입에 물었다.     강주리의 사랑이야기에 푹 빠졌던 강선도는 아버지가 담배를 입에 물자 눈치있게 강주리 먼저 라이터를 주어들고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 강주리는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더니 습관적으로 천천히 담배연기를 내 뿜으며 네 개의 동그라미를 만들었다. 강주리는 그 네 개의 동그라미가 흩어져 사라질 때까지 넋을 잃은듯 지켜보았다.     “그래서. 어떻게 됐어요?”     뒤이야기가 졸려진 선도는 강주리에게 바투 다가앉으며 재촉했다.     깊은 상념에 잠겼던 강주리는 비장한 얼굴로 강선도를 바라보더니 아주 슬픈 어조로 말을 이어갔다.    “한해겨울 우리 둘은 부지런히 사과배광주리를 겯어 집 지을 돈을 벌었고, 이듬해 봄에 우리는 그 사과배움막을 헐고 그 자리에 아담한 귀틀집을 지었지. 우리는 손수 산에 가서 나무를 베여다 귀틀을 쌓고 손수 흙을 이겨 발랐었지. 그리고 우리는 곧 이란성쌍둥이오누이를 보았어. 이란성쌍둥이오누이가 태어나자 우리는 이 세상을 다 가진듯 행복했었어. 그런데 나같이 지지리 복없는 놈에게 주어졌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어. 이란성쌍둥이오누이가 엇바꾸어 가며 기절해 넘어가는 병을 앓아서 우리는 병원을 제집 나들듯이 하면서 두 아이의 병을 치료도 못하고 오히려 빚만 가득 졌었지. 그때 진짜 죽고 싶을만큼 힘들었어. 그러다 우리는 이란성쌍둥이오누이의 첫돐생일을 맞게 되였지. 애들의 첫돌생일을 잘 쇠여주기 위해 우리는 꼬박 한달동안 밤잠도 한번 제대로 자보지 못했어. 돈줄이라야 사과배광주리를 겯는 일밖에 없었으니 나는 밤낮이 따로 없이 사과배광주리를 겯었고 그녀는 돈을 아끼려고 색동천을 사다가 손수 색동저고리와 색동바지를 지었는데 바느질 한번 못해본 처지라 동네할머니들에게서 어렵게 배워가며 고생고생 해서 겨우 만들었어. 나는 지금처럼 이렇게 구들에 앉아 사괘배광주리를 겯었고, 그녀는 내 등에 등을 기대고 앉아서 쌍둥이들이 잠자는 모습을 지켜보며 바느질을 했지. 등에서 등으로 전달되는 따뜻한 체온은 우리 서로가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해주는 서로에 대한 믿음과 사랑이였어. 그녀는 생일옷을 만들면서 얼마나 바늘에 찔렸는지 몰라. 나는 그녀의 바늘에 찔려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바라볼 때 내 마음에서도 피가 흘렀어. 나는 사랑하는 녀자를 고생시키는 자신이 너무 싫었고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주눅이 들어 있었지. 그래서 더 악착스럽게 사과배광주리를 엮었어. 그때는 그것이 유일한 출로였으니까. 일하다가 너무 졸리면 우리는 그 자리에서 싸리대가지를 베고 누워 잠간 눈을 붙였다가 또다시 일어나서 일했어. 그때 엄청 힘들었지만 그녀와 함께라서 행복했고 그 어렵고 암담한 상황을 잘 이겨낼 수 있었어. 그런데 이란성쌍둥이오누이의 첫돐생일날 새벽에 그녀는 나에게‘지치고 힘들고 희망이 안 보여서 더는 같이 살수 없으니 행복을 찾아 가요’라는 쪽지 한장만 달랑 남기고 이란성쌍둥이오누이 중에서 녀자아이만 안고 어디론가 사라져버렸어.”    강선도는 화가 난듯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나지막하게 물었다.   “나쁜 여자네요. 그래서 찾아다녔어요?”    강주리는 잠간 창밖을 응시하더니 무겁게 답했다.   “찾지 않았어. 너무 화가 나고 자존심 상했고 또 몸도 마음도 지쳐 있어서 찾아다닐 여력두 없었어. 애만 아니라면 그냥 그대로 죽고 싶었거든. 그런데 지금은 다 내려놨어. 그냥 그들의 생사만이라도 알고 싶을뿐이야.”    강선도는 측은한 눈길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나서 볼가요?”    강주리는 그 물음에는 답하지 않고 꽤 길어진 이야기를  급급히 마무리하고는 오히려 되물었다.   “우리 박물관에 투자했던 그 핑궈라는 녀자애는 본이름이뭐냐? 부모님은 뭐하는 사람이래?”     강선도는 의아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다그쳐 물었다.    “왜요? 핑궈가 아버지의 애인을 닮기나 했나요? 아버지가 어제 핑궈의 딕톡초상을 보고 쓰러지던 것도 이상하구요. 딕톡의 고객이라 본명은 모르겠어요. 성은 왕가래요. 그리고 한족이예요. 어려서부터 어머님하고 둘이 청도의 사자구(沙子沟)라는 어촌에서 살았는데 어머님이 생선장사를 해서 힘들게 공부시켰대요. 지금은 잘 살아요. 섬에 고기배도 몇척 있대요.”     강주리는 핑궈라는 젊은 녀자가 은근히 강선화가 아닐가 하는 의심을 가졌었는데 한족이라는 말에 눈에는 실망의 빛이 어리였다.    “박람회일때문에 핑궈는 오늘이나 래일쯤 며칠먼저 도착하여 함께 준비하기로 했어요. 이제 오면 아버지가 직접 자세한걸 물어보세요.”     강선도는 아쉬워하는 아버지의 표정을 읽으며 위안라도 해주듯 이제 핑궈가 오면 직접 물어보라고 했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강선도는 급히 몸을 일으키며 밖으로 나갔다.     강주리는 뛰여나가는 아들을 잡지 않았다.왕리화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마음이 어수선해진 강주리는 일손을 놓고 그전에 왕리화가 하던것처럼 싸리나무단을 베개로 삼아 베고 누웠다. 싱그러운 싸리나무의 향이 코를 자극한다. 왕리화의 그립던 향이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것 같았지만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려 싸리나무단을 적신다. 강주리는 모든 것을 망각하려는듯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튿날 저녁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청아한 목소리로《황토고원》을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렸다. 익숙한 그 가락은 마치도 옛날 왕리화가 그의 귀전에 다가와 불러주는 것 같았다. 그 노래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려온다. 강주리는 노래소리를 찾아 문을 밀고 마당에 나섰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왕리화가 강선도의 손을 잡고 노래를 부르며 귀틀집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강주리는 자기의 눈을 의심했다.    ‘이럴 수가? 왕리화가 어찌 선도의 손을 잡고 내 앞에 나타난단 말인가?’     강주리는 자신이 저승의 문턱을 넘어선 줄로 알았다. 그런데 현실이였다. 강주리는 이제 자신이 환각에 빠진 것이라고 생각되여 자신의 집나간 정신줄을 잡으려는듯 두눈을 꼭 감았다.     갑자기 노래소리가 뚝 멈추었다. 강주리는 천천히 다시 눈을 떴다. 눈앞에 왕리화가 서있었다. 강주리를 보고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드는 그녀는 젊은 왕리화였다. 강주리는 다리가 후두두 떨려오고 심장이 세차게 뛰였다. 강주리는 입을 크게 벌리고“왕리화!”하고 불렀는데 갑자기 머리의 량쪽 태양혈에서 툭 하는 피줄이 어긋나는 소리와 함께 갑자기 앞이 캄캄해난다. 강주리는 눈앞에서 사라지는 왕리화를 잡으려는듯 손을 내민채 귀틀집의 앞마당에서 또다시 쓰러졌다.     강선도는 사과배박람회에 참여하려고 온 핑궈를 아버지에게 소개시켜주려고 왔는데 강주리가 갑자기 쓰러지니 강선도와 핑궈는 동시에“아빠, 아빠! 정신 차리세요?”하며 애타게 부르짖었다.     구급차가 왔고 강선도와 핑궈는 다시 강주리를 병원으로 이송했다. 사람의 원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크고 작은 의료장비로 무장되여 응급실침대에 누워있는 강주리를 쳐다보며 핑궈는 유리창에 매달려 슬프게 울더니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핸드폰을 꺼내 영상통화버튼을 누른다. 그리고는 핸드폰을 강주리 쪽으로 향하고 울먹이며 부르짖는다.    “엄마, 어떡해? 아빠가 쓰러지셨어?”    “뭐라고?”     그러자 핸드폰의 저쪽 공간에서 한 녀인이 엎어지듯 달려와 화면에 놀란 얼굴을 보이며 류창한 조선말로 애타게 웨친다.    “강오빠, 강오빠! 웬 일이야? 어서 정신을 차려요? 날 두고 먼저 가면 안되요? 나 아직 용서도 못 받았는데…… 강오빠!”     갑자기 거쿨진 손이 강선화의 손에서 핸드폰을 와락 빼앗아내더니 땅바닥에 내동댕이치며 갈린 목소리로 웨친다.    “아빠라니? 누가 네 아빠야! 저 녀잔 누구야?”     강선도의 과격한 반응에 핑궈는 놀란 눈을 치뜨고 잘못을 저지른 아이처럼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져 버렸다.     강주리를 오빠라 부르는 그 녀인의 가슴을 허비는듯한 울부짖음은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을 통해 기다란 병실복도의 저 끝까지 메아리가 되여 오래도록 울려 퍼졌다. 5. 사과배나무에 다시 걸린 사랑     핑궈는 강주리의 병상황이 궁금하여 담당의사선생님을 찾았다    “선생님, 저 환자분 상황을 알고 싶어요? 생명의 위험은 없으신 거죠? 언제면 깨여날가요? 정상인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요?”      의사선생님은 초들초들 마른 입술을 감빨며 긴장한 눈빛으로 물어보는 처녀의 눈길을 피하며 대답하였다.    “환자분하고 어떻게 되시는가요? 가족 분들한테 이미 말씀드렸는데요.”      핑궈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딸입니다.”     의사는 의심스럽다는듯 쳐다보더니 너무도 진지한 핑궈의 얼굴에서 거짓말이 아님을 느꼈는지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다.    “다행히 경한 뇌출혈이라서 뇌속에 흘렀던 피는 기본상 다 흡수된 상태구요. 환자의 뇌활동도 정상으로 나와 있어요. 그런데 언제 깨여날지는 저희들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본인이 깨여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작용하거나 혹은 또 어떤 새로운 충격을 받으면 인차 깨여날 수도 있고요.”      핑궈는 착잡한 심정으로 의사사무실을 나와 힘없이 병실로 향했다. 핑궈가 병실문을 열려는데 웬 녀자의 애달픈 부름소리가 들린다.     “강오빠, 강오빠! 눈 떠봐! 내가 왔어. 이렇게 가면 안 되잖아. 우리 같이 가기로 약속했잖아 흑흑…”     핑궈는 잠간 머뭇거리였다.      강선도가 보온병에 물을 받아들고 다가오며 물어왔다.    “무슨 녀자의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데 누가 왔나요?”     핑궈는 강선도의 손을 잡아끌며“우리 잠간 밖에 나가 얘기 좀 하자.”하고 말하며 둘은 병원 밖 화원의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선도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까는 미안했어요. 핑궈가 내 친누나라는것에 너무 놀랐어요. 우리를 두고간 엄마가 미운거지 누나는 잘못이 없는데 내가 너무 흥분했어요. 그리고 그 사이 고마웠어요. 아버지가 괜찮으시니 인제 돌아가세요. 나도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핑궈는 대답대신 머리를 들어 병실 쪽을 응시하더니 강선도의 물음과는 상관없이 동문서답을 한다.    “선도야, 박람회 날이 며칠 안 남았는데 가서 일봐. 여기 걱정은 말구. 나와 엄마가 아버지를 잘 돌봐드릴테니까.”     핑궈는 물기어린 측은한 눈길로 선도를 바라보며 말하였다. 선도는 핑궈의 눈빛에서 무언가를 읽으려는듯 한참을 마주 바라보더니 불안한듯 손에 쥐고 있던 보온병을 두 손으로 만지작거리더니 결심한듯 되물어왔다.    “누나는 언제 알았어요? 우리의 존재를? 엄마는 어떤 분이세요? 왜 우리를 버렸대요?”      강선화는 말없이 보온병을 만지작거리는 불안한 강선도의 손에 자신의 손을 따뜻하게 얹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너랑 핑궈라는 이름으로 딕톡에서 대화한 사람은 우리 엄마야.”     강선도는 튕기듯 벌떡 일어났다. 손에 쥐였던 보온병이 땅에 떨어져 박산나면서 뜨거운 물이 끌신을 신은 선도의 발을 적시였다.      고중입학축하편지를 보내주신 사람도, 그사이 후원자라면서 힘들 때마다 손을 내밀어준 사람, 인생의 갈림길에서 헤맬 때마다 같이 고민해주시고 조언을 해주시던 사람, 고향에 돌아와 지역특성을 발휘해 특산품회사를 차리라고 길을 밝혀준 사람도 바로 아버지의 아픈 사랑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왕리화였다.     ‘아! 어머니는 늘 내 옆에 있으셨구나.’     꿈속을 헤매던 강주리는 아스라하게 들려오는 노래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我家住在黄土高坡,      大风从坡上刮过,     不管是西北风还是东南风     都是我的歌 我的歌      ‘아. 왕리화의 노래다. 밤새 사과배광주리를 겯을 때 졸리면 어깨 겯고 앉아서 서로를 위로하던 노래였는데…… 오랜만에 들어보네. 리화가 보고 싶다. 한평생 잊고 살려고 노력했고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노래를 들으니 또 생각나는구나. 잊으려고 애쓸수록 더 그리웠던 왕리화! 아직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나보다. 아마도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것 같네.’     강주리는 왕리화의 노래를 들으며 깊은 그리움에서 헤매였다.    ‘앗, 뜨거워!’     강주리는 갑자기 뜨거움을 호소했지만 소리가 안 나간다. 누군가 내 손을 뜨거운 물수건으로 닦아준다. 손을 치우려고 하는데 움직여지지가 않는다. 하지만 그 손길이 부드럽다. 싫지가 않다. 너무나 익숙한 느낌이다.     그때 그의 귀전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미안해, 날 많이 원망했지? 그래도 난 믿어. 오빠는 날 미워하지는 않았을 거야. 내가 한시도 잊지 않고 오빠를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나 오빠를 버리지도 않았고 배반하지도 않았어. 우리의 이란성쌍둥이오누이를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였어.…… 그때 우리 애들 많이 아팠잖아. 그러다 우연히 점쟁이를 만났는데 우리 애들이 18살 될 때까지 만나면 안 된대요. 안 그러면 둘 다 죽거나 적어도 한명은 못산다고 했어요. 내가 미신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우리 쌍둥이가 엇바꿔 앓으니 믿을 수밖에 없었어요. 오빠도 알잖아요. 그때의 그 막막함을…… 그리고 생일을 넘기지 말고 새벽 1시 정각에 집 나가라고 해서 새벽에 도망간 거예요. 생일을 앞두고 사라진 우리때문에 오빠가 얼마나 황당하고 화나셨을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찢어져요. 선도를 두고 가는 내 마음에서도 피가 흘렀어요. 그렇다고 점쟁이 말을 믿고 멀리로 가서 살겠다고 오빠한테 실토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말하면 절대 안 보낼테니까. 그래서 저는 그런 엄청난 결정을 했었어요. 그래서인지 우리 애들 다 건강하게 잘 자랐잖아요. 그거면 된 거 아닌가요? 선도가 결혼한다고 하면 결혼식에는 꼭 참가하려고 했었어요. 그때 예쁘게 잘 키운 선화를 데리고 와서 오빠와 선도한테 용서를 빌려고 했었는데 지금 이렇게 쓰러지면 어떡해요. 그러니 어서 일어나세요. 깨어나셔서 나에게 큰 벌이라도 내려주시란 말이예요. 우리 얘들이 시집 장가가는 것도 봐야지요.”    ‘아! 리화다! 이게 꿈은 아니겠지, 꿈이면 제발 깨지 말거라.”     강주리의 심장박동은 빨라졌다. 꿈에서 깨지 않으려고 눈을 더 꼭 감았다. 뜨거운 눈물방울이 손등에 뚝뚝 떨어진다.    ‘리화가 운다. 안 돼. 행복하게 해준다고 약속했는데……. 울지 마!’      왕리화의 눈물은 강주리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강주리는 있는 힘껏 무거운 손을 들어 리화의 눈물을 닦아주려고 하였으나 팔이 말을 듣지 않는다.     갑자기 병실 안에서 왕리화의 새된 목소리가 들린다.    “의사선생님, 의사선생님, 손가락이 움직였어요."     문밖에 서서 병실안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쏟고 있던 강선도와 강선화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의사사무실을 향해 뛰여간다.     문이 여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부산스럽다. 소독수냄새가 심하게 났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며 분주하다. 손가락이 뾰족한 것에 찔려온다. 강주리의 눈앞에서 네개의 동그라미가 흔들거린다. 동그라미 안에는 그립던 얼굴들이 들어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들은 왕리화, 강선도, 강선화였다.    ‘어, 동그라미 하나는 비여있네. 저 동그라미에는 누가 들어가야지. 내 자리인가?’     점점 멀어져가는 동그라미를 붙잡으려는듯 강주리는 손을 내밀었다.     왕리화가 싸리대가지를 섬겨주면 강주리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광주리를 겯어나간다. 귀틀집 앞마당에 지금까지 자라온 사과배나무는 이제 튼튼한 로목으로 자라 있었다. 강주리와 왕리화가 돌배나무에 사과가지를 접목했던 사과배나무였다. 강주리와 왕리화는 그 사과배나무의 튼실한 가지에 쌍둥이사과배광주리그네를 매어놓고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강선화와 강선도를 불렀다. 이란성쌍둥이오누이는 기다렸다는듯이 쌍둥이광주리그네에 들어가 앉는다.      강선도가 익살스레 강선화에게 묻는다.    “누나, 처음 앉아보는 느낌이 어때?”    “나 처음 아니거든, 18살 때 대학입학시험이 끝나고 여기 한본 왔었어. 엄마랑 함께…”     강선화는 엉뚱한 소리를 했다.    “그래? 근데 그때 왜 우리를 만나지 않고 그냥 갔어? 우리를 찾아왔으면 꼭 만나주고 갔어야지. 그랬더라면 우리 모두 더 큰 미움과 그리움을 채우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강선도는 강선화에게 섭섭한 소리를 했다.    “집에 자물쇠가 잠겨 있었고, 사람이 산 흔적이 안 보였어. 마을로 내려가서 수소문해서 사는 집 찾아갔었지. 들여다보니 나와 우리 엄마가 앉아야 할 자리에 다른 엄마와 딸이 앉아있었어. 네 식구가 단란히 앉아서 저녁밥을 먹고 있었어. 그래서 한발 늦었다고 생각했을 거야. 그날 엄마가 한참 집안을 들여다보더니 그냥 가자고 해서 집에 돌아왔지. 돌아가는 내내 엄마가 많이 울었어. 그래서 나도 더 물어보지 못했지.”     강선화는 그때의 그 안타까운 상황을 선도에게 말해주었다.    “아, 우리 뒤집에 살던 아줌마와 그 집 딸이야. 아버지가 농장을 도맡으면서 일군들을 많아 쓰다보니 밥해주는 아줌마가 필요했거든. 그래서 밥은 우리 집에서 같이 드셨어. 그 아줌마는 지금도 우리 사과배박물관의 총무로 일하고 계셔. 우리민족의 전통음식은 그 아줌마 따를 사람 없거든. 엄마가 오해했구나.”     강선도는 그 오해를 풀어주려고 애를 썼다.    “작년에 네가 사과배박물관의 투자상을 찾을 때 엄마가 우리 집 고기 배를 50만원에 팔아서 너한테 투자하라고 나에게 준 거야. 그때에야 엄마도 나에게 네가 내 동생이라면서 우리가족이야기를 다 들려주셨어.”    “나는 동네사람들이 내가 이란성쌍둥이오누이 남자애였다가 쉬쉬 거릴 때도 또 내 엄마가 여자아이만 데리고 달아났다고 했을 때도 믿지 않았어. 아버지가 내 엄마가 죽었다고 한 말만 등신처럼 믿었어. 그처럼 아버지는 내게 아무런 내색도 내지 않고 평온했으니까.”     강선도는 동네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았던 자신을 후회하는 듯했다.     “엄마는 내가 아들인걸. 어떻게 알았을까?”     강선도는 아직 자신이 채 풀지 못한 궁금증을 강선화에게 털어놓았다.    “18살 때 왔다간후로 엄마는 쭉 너를 지켜보고 계셨던 것 같아. 그리고 내 사업에 널 추천해주신 것도 우리 엄마거든.”     엄마의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던 강선도는 강선화의 이야기를 듣고는 가슴이 먹먹해났고, 엄마의 숨은 사랑에 행복감이 그들먹이 괴여 올랐다.    “너, 사과배박람회민속혼례의식에 모델로 나설 분들을 섭외해놨어?”     강선도는 눈물을 쓱 문지르며 그제야 생각난듯 대답했다.    “아, 그거 미처 련계 못했어. 어떡하지? 당장 섭외 못하면 우리 둘이 대신할가?”      선화는 곱게 눈을 흘기며 나무랐다.    “형제간이 결혼하는 거 봤어?”    “그럼 어떡해? 래일인데 갑자기 어디 가서 사람을 구하겠어.”     선화는 웃으면서 귀틀집 앞마당에 나란히 앉아 사과배광주리를 겯고 있는 엄마와 아빠 쪽을 가리킨다.     “저기, 준비된 모텔 두 분이 있잖아.”    “알았어. 이 기회에 우리 엄마아빠의 결혼식부터 먼저 올려드리자.”     이란성쌍둥이오누이는 약속이나 한듯 그네에서 튕겨 일어나며 박람회 준비하러 간다고 강주리와 왕리화에게 말하고는 산아래로 뛰여내려갔다.     강주리와 왕리화는 일손을 멈추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멀어져가는 이란성쌍둥이의 뒤모습을 바라본다.     강주리는 둘만 오붓하게 남자 왕리화에게 물었다.    “그런데 점쟁이는 언제 찾아갔어?”     왕리화는 아문 상처에서 다시 피흐르듯 눈시울을 붉히며 조용히 대답했다.    “우리가 장춘병원에 갔다가 돌아왔는데 선화가 또 발작했잖아요. 그런데 병원까지 가보니 아무 일도 없었던 그날 새벽녘이였어요. 지금도 그 점쟁이가 눈에 선해요.”     왕리화는 천천히 이야기를 계속하였다.    “난 나한테 물었어요.‘왕리화, 넌 엄마로서 최선을 다했어? 인제 진짜 더 이상 방법이 없는 거니? 잘 생각해봐?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잖아.’그때 갑자기 뇌리를 스치는 인물이 있었어요. 기차에서 만났던 그 신비한 아줌마와‘서시장뒤골목’이라고 하던 그 말이 갑자기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서 신이 벗겨진줄도 모르고 선화를 안은채 맨발로 허둥지둥 서시장뒤골목으로 갔어요. 이 골목 저 골목 정신없이 헤맸지요. 내가 찾아갈 곳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아이를 안고 미친년처럼 날이 희붐히 밝아 올 때까지 새벽거리를 누비며 걸었어요. 걷고 걷다가 지치고 힘들어서 룡마루가 높은 집 넓은 기둥에 기대여 잠간 쉬려고 앉았어요. 그런데“삑!”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대문이 천천히 열렸어요. 잠기지 않은 대문이 내 팔꿈치에 닿았던 것 같았어요. 나는 너무 추워서 애가 감기라도 걸릴가봐 몸을 녹일려고 렴치불구하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문을 두드리려고 손을 올리는데 갑자기 전등불이 찰칵 하고 켜지면서‘어서 들어와요.’하는 한 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화들짝 놀란 나는 잠간 망설였지만 무엇에 끌린듯 문고리를 당겼어요. 어스름한 불빛아래 한복을 차려입은 한 녀인이 책상을 마주한채 올방자를 틀고 앉아있었어요. 그 녀인은 우리를 쳐다보지도 않고 눈을 감은채 ‘용케도 잘 찾아 왔구만.’라고 한마디 하더군요. 나는 그 으스스한 분위기가 섬뜩해나서 도망치듯 되돌아나오려는데‘쌍둥이는 한집에서 살면 하나는 잃게 돼 있네.’라고 그 녀인이 한마디 하는거에요. 그 말에 나는 몸을 돌렸어요. 물에 빠진 놈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고 나는 두려움도 잃고 바투 다가가 앉았어요. 그래서 점쟁이가 시키는대로 다 했지요. 우리 얘들을 살릴려고. 절 많이 미워했나요?”     강주리는 멋쩍게 웃으며 대답한다.    “미워했지, 근데 믿었어.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만큼 당신 마음도 그럴 거고 언제든 꼭 돌아올 거라고 기다렸지. 그런데 당신은 날 안 믿었네.”     왕리화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간듯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나도 믿었어요. 그러니까 18년후에라도 찾아간 거죠. 그런데 눈앞에서 다른 녀자랑 새 가족이 함께 있는걸 보니까 믿음이 무너지더라고요. 그런데 만약 그런 일 없어도 너무 미안해서 차마 앞에 나서지 못했을 거예요. 그때부터 선도와는 련계를 가졌어요. 선도는 내가 엄마인줄을 모르지만…”     강주리는 손을 들어 흰머리가 듬성듬성 보이는 왕리화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래, 어떻게 살았어? 힘들지 않았어?”     왕리화는 살며시 강주리의 어깨에 기대며 말했다.    “힘들었지만 그래도 귀인을 만나서 선화를 잘 키웠어요. 집을 나가긴 했지만 어디를 가야 할지 막막했어요. 그래서 고향 산동으로 떠났는데 차마 부모님 만날 면목이 안서더라고요. 가도 받아줄지도 모르구요. 그리고 혹시라도 당신이 찾아올가봐 걱정이 되기도 해서 생각을 바꾸었어요. 그래서 산동역에서 내려 무작정 아무 차나 타고 종점까지 갔는데 거기가 어촌이였어요. 거기에서 자식이 없는 늙은 양주가 우리를 받아주었고 날 양딸로 삼고 같이 살았는데 돌아가실 때 고기배 세척을 남겨주었어요. 한척은 팔아서 선도가 민속박물관 지을 때 보태주었고 한척은 우리 선화가 무역회사 꾸릴 때 선도와 합작하는 조건으로 팔아서 보태주었어요. 그리고 한척이 남았는데 어떻게 할가요? 팔아서 우리 세계려행이나 다닐가요?”     왕리화는 이십대소녀처럼 흥분하며 강주리의 손을 잡고 흔든다.     강주리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왕리화를 바라보더니 팔을 뻗쳐 왕리화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속삭인다.    “난, 아무데도 안가. 이 귀틀집에서 사과배광주리나 겯으면서 살 거야. 선도를 도와 만무과원도 봐줘야 하고. 함께 할 거지?”     왕리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당신과 함께라면 난 뭘 해도 좋아요. 내가 쌍둥이사과배광주리를 주문했잖아요. 사과배농사를 짓다가 고향 떠난 많은 사람들이 추억의 소장품으로 그 쌍둥이사과배광주리를 관상용으로 집에 두겠다고 해서 주문한 거예요. 그럼 여기에다 북경의 올림픽경기장인 새둥지(鸟巢) 건물처럼 쌍둥이사과배광주리 모양으로 된 산장을 짓고 살가요? 사과배광주리가 우리를 끝가지 붙잡아 두네요.”     사과배나무 사이에 매달린 쌍둥이그네도 그 말을 알아듣기라고 한듯 여유롭게 흔들흔들 춤을 춘다.     귀틀집 주변을 둘러싼 사과배나무들에는 사과배들이 주렁주렁 탐스레 열려있었는데 뒤늦게 맞는 환갑년의 결혼식이 부끄러운듯 한쪽 볼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그들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는 향긋한 사과배향을 타고 용천골을 넘어 저 멀리까지 전해갔다.      이 소설의 어떤 結       그는 연변돌배였다. 그녀는 산동사과였다.     그들은 한 마을에서 태여났고 청매와 홍매의 죽마고우로 함께 자랐다.     그들의 고향은 사과배가 많이 나는 고장이였다. 그래서 그들은 어려서부터 사과배광주리를 함께 겯으면서 서로의 사랑을 불태웠고, 그 결합으로 그들은 이란성쌍둥이오누이를 낳게 되었다.     그들은 한 그루의 사과배나무로 되여 쌍둥이사과배를 자신들의 가지에 열었지만 그 쌍둥이사과배는 엇바꿔 시름시름 앓으며 도사리(과실이 자라는 도중에 떨어진 것)의 운명으로 자랄 번 하였다.     그래서 산동사과는 독한 마음을 먹고 쌍둥이사과배의 한쪽을 따가지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로인해 연변돌배는 반쪽만 남은 쌍둥이사과배 한쪽만 키우며 눈물의 세월을 보냈다. 연변돌배는 산동사과를 미워도 했고, 원망도 했다. 그러나 자신의 가지에서 외롭게 자라는 쌍둥이사과배가 도사리의 운명을 면하게 튼실하게 자라갈 때 연변돌배는 산동사과를 사무치게 그리워했다.     그렇게 아픈 세월이 36년이 흘렀을 때 산동사과가 자신이 데리고 갔던 쌍둥이사과배 한쪽을 도사리가 아닌 어여쁜 사과배로 키워 다시 연변돌배를 찾아왔다. 연변돌배와 산동사과는 다시 만났다. 그들은 이제 행복을 찾았다. 그들의 사과배나무가지에는 도사리가 없었다. 감칠맛 나는 사과배만 달려있었을뿐이다. 2023. 도라지 2기 발표
5    재혼에 울고 웃는 여자-허복순 댓글:  조회:10  추천:0  2024-12-08
재혼에 울고 웃는 여자 허복순       십 년 동안 꿈을 꾼 것 같다. 어쩌다 나로 돌아와, 아니 여자로 돌아와 발바닥에 힘을 넣으며 하이힐을 신었다. 치마를 입고 봄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거리에 나섰다. 공기도 새로운 것 같고, 기분은 날 것 같다. 봄꽃의 싱그러운 향기인지, 아니면 내 몸에서 풍기는 향 내음인지 코를 간질이며 내 마음을 더 흥분시킨다. 그러다 어느 거리의 음향설비가게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내 신난 발걸음에 절주감을 더해준다.     결혼은 미친 짓이야     정말 그렇게 생각해     이 좋은 세상을 두고     서로 구속해 안달이야     ………     오, 모두 미쳤나 봐 그런가 봐     왜 자꾸 머뭇거려…     ………     날 그냥 내버려 둬 책임 못져     더 이상 부담 주지마     결혼은 이혼은 재혼은 결혼은     ………     난 화려한 싱글이야     곡은 신나는데 가사는 영 마음에 안 든다. 불혹의 나이인 내가 남편을 잃고, 아들 하나만 10년째 뒷바라지하다가 이제 겨우 마음을 열고 재혼의 맞선을 나서는데 말이다. 게다가“왜 자꾸 머뭇거려”그 부분을 듣는 순간 나도 머뭇거릴 번했다. 어떻게 내린 결정인데…     십 년 동안 어깨위로 내려온 적 없던 쪽진 머리도 어쩌다 내 어깨에 내려앉아 바람을 맞으며 촐싹거린다. 나는 종아리에 힘을 쭉 넣고 허리를 꼿꼿이 펴며 최대한 일자형으로, 사십대 여인이 아닌 이십대 꽃나이의 처녀인 듯 사뿐사뿐 걸음을 옮겼다. 들리는《오늘부터 나는 싱글이야》란 노래를 무시한 채…      아니 나는‘오늘부터 나는 싱글이야!’라고 소리 지르며 일자미소를 짓는다. 지천명의 나이 오십을 다 넘기고 이렇게 맞선 자리에 나서는 기분이 이렇듯 즐거울 줄을 어찌 알았으랴. 1. 어떤 재혼을 꿈꾸며    내 나이 32살에, 아들 열 살에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고 혼자서 힘들게 아들을 키우면서 한 번도 재혼을 생각해보지 않았다. 아버지의 재혼으로 계모의 손에서 눈치 보면서 커왔기에 자식한테 그런 아픔을 주고 싶지가 않았던 것이다. 아들에게 높은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를 만들어주는 것이 어머니로서의 임무라고 생각했고, 아들이 대학이라는 큰 나무로 날아간 후에 자신만을 위한 삶을 살리라 생각하였었다. 하지만 과부의 내 삶은 내 마음대로 순순히 굴러가지 않았다. 가장 힘든 건 경제력이었다. 혼자의 노임으로 아들을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고, 대학에 보낼 돈까지 적금하며 생활하자니 나는 남들이 하는 걸 다 하면서 살 수가 없었다. 여자로서 화장품을 사서 바른지도 까마득한 옛말이 된지가 오랬다.     그러다가 나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우리들의 근검절약의 생활 질서는 깨어지고 적금통장의 수치는 마이너스로 내려가고 말았다.     큰 사람이 되려면 큰물에서 놀아야 된다며 주변사람들이 아들을 연변1중에 보내라고 부추겼다. 성적이 되는데 왜 안 보내느냐고 하는 바람에 돈 때문에 못 보낸다고 말하기는 자존심 상했고, 또 부모를 잘못 만나서 좋은 학교도 못 다녔다는 원망을 들을 것도 같아서 아들의 동의 없이 내가 지망을 용정고중에서 연변1중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면서도 붙어도 되고, 못 붙어도 아쉬울 건 없다고 생각했다. 연변1중에 붙으면 연길 가서 세집을 맡아야 했고, 나도 용정에서 연길로 통근해야 했으므로 내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 부담은 과중하기만 하였다. 시험결과 아들은 겨우 점수 선에 도달하여 연변1중에 입학하였다.       3년간의 학습생활은 간고하였다. 사춘기로 민감한 아들은 낯선 환경에서 싱글 맘의 아들로서 경제조건의 차이로 인한 열등감을 느꼈고, 성적마저 부진하여 자존감마저 상실하였다. 이대로라면 일반대학도 가지 힘들었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 없었던 내가 찾은 방법은“1대1 교사”를 모시는 것이었다.    “1대1 교사”의 학비가 일반 과외보다 두 배 정도 더 높았다. 생각지 않던 과외비로 인해 나름대로 대학자금까지 마련했던 적금은 거의 절반 넘게 축이 났지만 대학 못 가면 그걸 남길 필요도 없으니 일단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했다. 그런 간난신고 끝에 다행히 아들은 일반대학의 통지서를 받게 되었고, 얼마 남지 않은 적금에 대출까지 내어 아들을 겨우 대학에 보내놓고 내 마음은 더 무겁기만 했다.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인생숙제를 완성한 여유를 마음껏 부리며 화려한 싱글로 멋있게 살아갈 것을 생각하며 지금까지 버텨 왔던 나에게 남은 대학 뒷바라지나 그의 결혼을 위한 준비까지 또 나의 목을 조여 왔었다.     나는 출근으로 받는 노임 외에 거의 10년 동안 한국번역 일을 해서 적당한 수입을 충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온 천하가 역병으로 신음소리를 내면서부터 나는 각박한 노임에 목을 해야 했다. 적은 나의 노임으로 아들의 뒷바라지나 그의 결혼자금을 준비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직장을 그만두고 한국에라도 나갈 생각을 해보았지만 그래도 적은 노임이나 확실하게 보장되는 직장을 그만두기 싫었고, 역병의 도가니에서 신음할 때 외국으로 가는 것도 위험한 짓이고, 또한 별 보장이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내게 들어온 주문이 바로 재혼이었다.    “너 이제 재혼을 해라. 이런 때는 돈 좀 있는 남자와 결혼해 살면 편한 거다. 너 아직 예뻐서 돈 많은 총각에게라도 시집 갈 수 있을 거야. 돈 많은 늙은이들이라면 아예 줄을 설 거야.”     나의 절친 명희의 권고이자 주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삼일이고, 일주일이고, 한 달이건 명희의 집요한 권고와 주문에 고민을 거듭하게 되었다. 갑자기 내 생활의 패턴이 깨지기 시작했을까. 조용한 방에는 나의 숨소리만 들리기 시작했다. 고독하고, 외롭고, 왠지 슬펐다.     나도 좋은 남자와 재혼해 살고 싶었다. 그런데 행복한 재혼이 나에게 선물처럼 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역병시대에 자식의 뒷바라지나 결혼준비가 어려울 때 나에게 돈 많은 남자가 필요했었다. 하지만 주변에서 멋진 재혼을 하고 난 후의 피곤함은 나를 겁먹게 했고, 어려서부터“엄마는 영원히 나하고만 살아야 돼.”하던 아들의 말이 귀가에 주문처럼 들려와 갑자기 나는 재혼에 자신이 없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실면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이 많아졌고, 점차 우울해졌다. 인생마저 허무해졌다.     마음이 병들면 만병이 찾아든다고 면역력의 저하로 인해 나도 그예 역병에 걸려 드러눕게 되었다.      열이 너무 올라 혼미해지기까지 했지만 따뜻한 물 한 컵을 건네주는 사람도, 약을 사다주는 사람도, 열을 내린다고 물찜질 해주는 사람도 없이 나 혼자 버텨야 했다. 슬펐다.     열이 내리고 정신이 좀 드니 배가 너무 고팠다. 몸은 솜처럼 해나른하여 손가락 하나 들 힘이 없었고, 입을 벌려 말할 힘조차도 없었다. 처음으로 돌아간 남편생각이 났다. 공장이 파산되어 집에서 외조를 하면서 자격지심으로 하루가 멀다하게 싸웠지만 그래도 하루 세 끼 따듯한 밥을 해놓고 기다리곤 했었다.      처음으로 혼자가 된 것을 후회하였다.      사람이 그리웠다.      목이 좀 나아지는가 싶더니 또 기침이 컹컹 쉴 새 없이 나왔다. 마치 가슴을 도려내는 듯하였다. 나는 처음으로 기침하는 것도 힘이 있어야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기진한 나는 화장실 가는 것조차 힘들었다. 침대에서 벌벌 기어 내려와 화장실 변기를 붙잡고 기침을 하고 가래가 나오면 그 자리에서 뱉었다.      눈물이 났다.     울다가 지쳐서 그대로 화장실 바닥에서 잠들어버렸다. 사람이 힘이 없으면 이렇게 비참해질 수 있다는 것, 존엄 같은 건 운운할 수도 없음을 알았다. 만약 내가 이렇게 화장실 바닥에서 죽음으로 발견된다면…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내 안의‘나’가 말한다. 그건 아니라고, 그건 네가 지금까지 아글타글 살아온 삶에 대한 부정이라고, 갈 때 가더라도 품위 있게 살다 가라며 내 머리를 쥐어박는다.     나는 살아야겠다는 욕망으로 비칠거리며 주방으로 가 냉장고문을 열었다. 감자 두 알에 오이 하나가 있었다. 나는 오이를 꺼내 씻지도 않고 그대로 서걱서걱 씹어 삼켰다. 시원한 오이향이 잠자고 있던 온몸의 세포를 깨운다. 조금 정신이 들었다. 나머지 감자 두 알을 삶아 먹으려고 일어서서 냉장고문을 여는데 어지럼증 때문에 중심을 잡지 못하고 냉장고 손잡이 쪽에 머리를 심하게 부딪치면서 코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손으로 쓱 문질렀다. 손등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보니 죽음의 공포가 밀려들었다.      나는 전화기를 들고 절친 명희의 번호를 눌렀다.      이런 모습을 제일 보여주기 싫은 사람이지만 또 이런 상황에서 제일 믿을 만한 사람이기도 한 명희이다. 전화를 받자마자 명희는 달려왔고, 나는 울며불며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설움과 슬픔을 다 털어 놓았다. 우리는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며칠 후, 아들에게서 편지가 왔다. 인터넷이 발달한 오늘에 아들이 친필로 쓴 편지를 받는 순간 가슴이 뭉클하였다.     사랑하는 어머니께:     요즘 많이 아프셨다고 명희 이모한테서 들었어요. 아프실 때 가장 가족이 그립고, 필요할 텐데 하나밖에 없는 가족인 내가 옆에 있어주지 못해서 어머니가 얼마나 속상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고 아들로서 가책이 됩니다.     절 보내면서 빈 적금통장을 감추며 소녀처럼 부끄러워하던 어머니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학비 걱정은 마세요. 제가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받고, 또 시간 나는 대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해결할게요.     어머니만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면 됩니다.      명희이모가 어머니가 재혼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어 보든데요.      제 대답은 그래요.      절대 저를 위한 재혼은 하지 마시고, 어머니를 위한 재혼을 하세요.     저 이제 대학을 졸업하면 사업에 참여할 것이고, 또 결혼도 할 것예요. 이미 결혼할 상대도 있고요.      지금까지 어머니는 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셨어요. 그러니 어머니의 진정한‘사랑’을 찾으세요.      매 글자마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담았어요. 느끼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내 몸에서도 어머니와 같은 피가 흐르고 있으니까요. 저는 영원히 어머니 착한 아들이 될게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부디 행복하세요!     아들 홍천으로부터      편지를 읽는 내내 눈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실컷 울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나는 이제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쩜 재혼에 미쳐갈 수도…     어수선한 내 마음을 달래준다고 워낙에 활발하고 개방적인 명희는 있는 자리 없는 자리 만들어서 나를 참여시켰다. 여러 유형의 모임에서 여자로서의 나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였고, 남자들의 사랑의 눈길도 많이 받게 되었다. 나는 대담히 재혼에 대하여 생각해보게 되었고, 그런 뜻을 명희에게 내비쳤다. 명희는 기다렸다는 듯이 발 벗고 나서서 주선을 해주었다. 재혼은 말처럼 쉬운 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아들의 짐이 되지 않기 위해, 또 나의 외로운 삶에서 해탈되기 위해 재혼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나의 절친 명희가 나의 재혼상대를 주문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오래간만에 얼굴의 화장을 여러 번 고쳐가며 남자 만나러 나가기 시작했다. 2.첫째 남자가 무섭다고 하오      명희는“카오스 맥주 점”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와, 완전 이십대구나, 너한테 이런 모습이 있는 줄 몰랐지. 너무 예쁘다야.”     명희는 호들갑을 떨며 부러운 듯이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고는 만족스럽다는 듯 내 손을 잡고 안으로 이끈다.      문이 열렸다. 맞은편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두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나는 십 년 동안 보고 연구했던 사람만 몇 천 명은 되는지라 내 눈은 레이저보다 더 예리하고 정확하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명희의 어깨너머로 보이는 두 남자를 한번 눈 빗질 해보니 금방 검사결과가 머리에서 찍혀져 나온다.     남자 1.     키: 175cm정도       체격: 보기 좋음     인물: 보통.     첫인상: 친구로 사귀기 좋은 사람.     실제 나이는 40세인데 삼십대 중반으로 보였다.     성격: 활발하고 직장에서는 상하 급 관계를 잘 처리할 줄 알며 발 빠르고 눈치 빠르고 중간역할을 잘할 수 있는 사람, 그러나 일인자 역할을 하기에는 능력미달인 사람.     남자 2.     키: 168cm정도     체격: 약하고 마름     인물: 보통에 미달     실제 나이는 40세인데 나이 사십대 중반     성격: 내성적이고 직장에서는 누구나 나쁘다는 사람이 없고 업무능력 최상이고 꾸준히 성적을 내는 사람이지만 아무도 견제하지 않는 사람. 상급의 사랑을 받는 충실한 부하직원. 권력과 명예에 둔감한 사람.       스캔을 끝내고 우리는 두 남자와 마주 앉았다. 명희는 키가 168cm 정도인 남자가 나와 맞선을 볼 남자라고 눈치를 주었다. 왜 하필 키가 작은 남자지? 나는 슬그머니 이런 생각이 갈마들면서 서운함 같은 것을 느꼈다. 나와 맞선을 볼 남자도 곁에 앉은 키 큰 남자의 눈치를 받고 나를 주시해보는 것 같았다. 그의 얼굴에는 나에 대한 호감이 아주 강열하다는 것을 나는 보아낼 수 있었다. 명희는 먼저 나와 맞선을 볼 남자를 나에게 인사시켰다.     “서 과장 인사하오. 내 친구 경옥이요.”     남자는 소파에서 살짝 일어서며 남자의 손이라기보다 여자 손이라고 표현할 정도의 부드러운 손으로 내 손을 잡는다.     “서장국입니다.”     내 손을 어찌나 살짝 건드리는지 잡았다는 느낌도 안 들 정도로 짧은 부딪침이었다. 예쁘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면 자연적으로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힘주어 잡거나 아니면 좀 오래 잡는다든가 하는 일반인들의 잣대로는 그 깊이를 잴 수 없는 별종인 것 같았다. 간단한 인사말이 오가고 술잔도 오갔다. 소개인 두 사람은 성격도 비슷한지라 어쩌다 지기를 만난 듯 떠들고 웃으면서 벌써 누나, 동생으로 호칭도 금방 바뀌었다. 하지만 주인공인 우리 두 사람은 가담가담 그들이 던져주는 말에 대답을 할 정도였다. 도대체가 누구를 위한 자리인지가 헛갈릴 정도였다. 보통 남자들이라면 이런 자리에서 나에게 말도 걸어주고, 음식도 권하고 하면서 눈이라도 마주치려고 애쓰건만 내 맞선은 그냥 부어주는 술만 말없이 마셨다. 술 주량은 어느 정도 되는 것 같았다. 한참 떠들던 두 사람은 안 돼 보였는지 그제야 우리 주인공들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서 과장, 내 친구 세 살 위래도 그렇게 안 보이지?”     그 남자는 괜찮다는 듯 빙그레 웃는다. 담배 연기에 그은 듯 누르스레한 이가 보인다.      옆에 친구가 대답한다.     “아이고, 더 어려 보이네요.”     시장반공실 주임으로 일한다는 친구는 소개인답게 옆으로 치기 올려 추기 수법을 썼다.     “저번에 너네 심계국 국장이 우리 과로 왔다가 네 칭찬 많이 하더라. 심계국은 네가 없으면 못 돌아간다고.”     그리고는 나를 보며 농조로 경제력도 과시한다.     “결혼준비를 알뜰히 하느라 지금까지 장가 안 간 겁니다. 집도 있고, 적금도 적잖이 있을 겁니다. 아무 걱정 마세요. 게다가 최 선생님처럼 예쁜 딸까지 안겨주면 가문의 왕이 되시는 거죠.”      애 때문에 신물이 난 사람한테 이제 다시 애를 낳아서 키우라니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저 시무룩이 웃기만 하였다. 올 때의 기분은 다 사그라지고 인제는 일어나고 싶은데 들러리 서러 온 두 사람이 더 신나하면서 2차로 노래방까지 가자고 하였다. 좀 자유로운 장소에 가서 요해를 깊이 하자고 하였지만 나는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거절하였다. 우리는 각기 자기편을 데리고 돌아섰다. 나와 명희는 커피숍으로 향했다.     “어떻데?”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기도 전에 명희는 물었다.    “나랑은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안가.”    “외모만 보면 당연히 너랑 안 어울리지. 그런데 재혼이 실패하는 가장 중요한 건 자식하고 경제문제 아니니? 그런데 총각이여서 자식이 없으니 너한테 마음을 다 줄 것이야. 돈도 따로 돌릴 데가 없으니 집이고 통장이고 고스란히 네 것이 될 거 아니니?”     “그건 그런데… 그래도 아닌 것 같아.”    명희는 답답하다는 듯 입을 다시더니 다시 목소리를 낮추어 말한다.     “야, 너는 네가 아니야! 애 딸린 아줌마라고! 자신을 두어 등급 정도 낮추어 봐라, 아직도 처녀 때 배우자를 고르는 조건으로 견주지 말구.”     ‘나는 나가 아니다.’는 말에 나는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귀까지 뜨거워 난다.     ‘나는 내가 아니라니?’     그럼 나는 누구로 살아야 하지? 외모는 이십대의 표준으로 가꾸어 놓았고, 마음도 이십대로 돌려 놨건만 현실은 나를 나보다 더 형편없는 사람으로 살란다. 내 얼굴색이 변하는 걸 눈치 챈 명희는 커피 한 모금 마시더니 태도를 바꾸어 말한다.     “내가 너 자존심 상하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현실적인 문제를 먼저 보자. 이제 와서 뭘 바라겠니? 사랑? 사랑은 이미 지나갔어. 그냥 네가 마음 편하고 네가 필요한 거 해결해주는 믿음직한 사람이면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음 다 주고, 적금 다 준다면 더 이상을 바라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거야. 너 같은 우수한 여자한테는 좀 불공평하고 억울하겠지만 너 운명을 탓할 수밖에…”     기구한 운명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서 맺히면서 저도 몰래 눈물이 흘러내렸다. 우리는 동갑이고 태어나서부터 한 마을에서 같은 물을 먹고 자랐고, 같은 학교를 나왔다. 학교에서 나는 부반장이고, 명희는 문오위원이었다. 인물체격도 내가 명희보다 못한 거 없었지만 명희는 전교 여자애들이 흠모하는 학생회주석이랑 자유연애로 결혼하여 부시장의 부인으로 시인대반공실 주임으로 지조 높은 삶을 사는데 나는 부모님의 주선으로 연애도 못해보고 결혼하여 사업에서 성과를 따내기도 전에 남편을 잃고 거의 십 년 동안 학교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아들만 바라고 코흘리개들과 싸우면서 살아왔으니 운명을 탓할 수밖에 없는 건가? 도대체 내 인생은 어디에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가 눈물을 흘리자 명희도 말없이 따라 운다. 명희는 슬며시 다가와 내 옆에 앉으면서 내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다. 나는 명희의 어깨에 기대어 눈물이 마음대로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힘들 때마다 어깨를 내어주는 명희가 고마우면서도 부럽다.     며칠 동안 고민한 끝에 나는 소녀 같은 꿈을 내려놓고 명희의 건의를 받아들여 현실에 맞추기로 하였다. 옛날부터 한 번 보기 다르고, 두 번 보기 다르다는 어르신들의 말씀대로 후회를 남기지 않기 위하여 한 번만 더 만나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우리는 꼬치 집에서 만났다. 내가 들어서자 그는 누런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으며 맞은편에 앉으라는 손시늉을 한다. 영화에서는 남자들이 일어나서 걸상을 당겨주면서 여자를 기분 좋게 하건만 매너가 없다. 메뉴판을 주면서 먹고 싶은 걸 시키라고 하여 나는 갈비 살 열 개를 주문했다. 그는 이것저것 서른 개를 더 시켰다. 나는 적이 놀랐다. 지금은 꼬치 열개정도면 다 많이 먹는 편인데 둘이서 40개를 시키다니… 고기가 오르자 그는 열심히 구워서는 반반씩 똑같이 헤어서는 내 쪽으로 절반 옮겨놓았다. 나는 내장은 좋아 안하다고 사양했지만 그는 먹어보라며 기어이 내 앞에도 절반을 넘겨 놓았다. 고기가 절반쯤 축날 때까지도 그는 별말이 없고, 열심히 먹기만 하는 것이었다. 자기가 목이 마를 때마다“한 잔 합시다.”하고는 맥주를 쭉 들이켠다. 답답해난 내가 참지 못하고 먼저 말을 꺼냈다.      “지금, 부모님이랑 같이 사신다고 들었는데 부모님은 다 건강하신가요?”     그는 입 안의 고기를 우물우물 씹으며 대답한다.    “지금 사는 집은 우리 부모님이 내가 공작에 참가하자 내 이름으로 사준 건데 이제는 거의 이십년이 되네요. 내가 결혼하면 고향인 태양으로 내려가시겠다고 해요. 농촌에도 집이 있거든요.”     말이 직설적이긴 해도 궁금증을 단번에 해결 할 수 있어서 대화가 힘들지는 않았다.    “형제는 누나 한 분 있다고 들었는데 뭐하시는 분이신가요?”    “우리 누나는 북경대학을 졸업하고 상해에서 일하는데 잘 살아요. 내가 결혼하면 누나가 결혼 집을 새로 사준다고 했어요. 그리고 부모님도 누나가 다 책임진다고… 나는 그냥 나만 잘 살면 된다고 하네요.”     얼마나 장가를 보내고 싶었으면 가족들이 이럴까 싶었다. 그러한 것들을 너무 당연하듯이 말하는 그가 철이 없어 보였다.     내 앞에 놓인 내장과 고기들을 내가 한 점도 먹지 않는데도 그는 부지런히 구워서는 넘긴다. 축나지 않는 음식이 보이지도 않는지.     “안 좋아하시면 다른 걸로 시켜드릴까요?”     이런 말도 없이 구워주기만 한다. 참 눈치가 없어도…      축나지 않는 내 앞의 고기까지 넘겨다 먹더니 어느 정도 배가 불렀는지 이번에는 마늘을 고기를 다 뽑아먹은 꼬챙이에 꿰어서 굽는다. 노랗게 구워지는 마늘꼬치를 바라보면서 남자는 어쩌다 주동적으로 말을 꺼낸다.    “애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합니다. 거기에 대해서는 부담 갖지 마세요. 그리고 경옥씨 아들에 대해서는 자기 자식처럼 뭐든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고마운 그 말에 가슴에 얹혀있던 큰 돌덩이가 쿵~ 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였다. 나는 맥주잔을 들고 한 잔 하자며 남자를 향해 맑게 웃었다. 다 구워진 마늘 하나 발라서 남자의 앞 접시에 놓아주고 나도 마늘 한쪽을 발라서 입에 넣었다. 들큰한 마늘향이 입안에 꽉 채워지며 시원한 맥주를 부른다. 한결 부드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성격이며, 애호며, 취미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고 영화를 즐기는 공동한 취미가 있음을 기쁘게 발견하였다. 우리는 내친김에 영화 보러 가기로 하였다. 꼬치 집을 나서서 나란히 서서 걸었다. 내가 멋을 내느라 굽 높은 구두까지 신다보니 그가 내려다 보였다. 나는 몸을 흠칫 떨며 재빠르게 주위를 눈 빗질하였다.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우리. 택시 탈까요?”     걸어도 십분도 안 걸릴 거리건만 나는 굳이 택시를 타자고 하였다. 신호등에서 택시가 멈췄다. 그는 슬그머니 팔을 올려 내 어깨를 감싼다. 앞좌석의 기사가 후시경으로 슬쩍 들여다보다가 나하고 눈이 마주쳤다. 나는 단번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뒤로 손을 뻗쳐 허리를 감싸면 티도 안 나고 느낌도 더 좋으련만 굳이 목을 감싸 안는 건 뭘까? 눈치가 없어도. 차가 멈추자 나는 도망치듯 문을 열고 빠져나갔다. 저만치 걸어가는데 택시기사가 부른다.    “손님, 핸드폰을 두고 내렸어요.”    “감사합니다.”하고 급히 몸을 돌리려는데 오지랖이 넓은 운전기사가 달려와서 슬며시 물어왔다.      “저 분은 대상자인가요?”      아까 멋쩍었던 것을 복수라도 하듯 나는 곱지 않게 되물었다.     “왜요? 우리 어울리지 않나요?”     “여사분이 너무 아깝네요.”     지나치게 솔직한 운전기사의 말에 나는 대번에 기분이 잡쳤다.      갑자기 집에 가고 싶어졌다. 어디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집에 갈까 고민하는 사이 남자는 팝콘과 콜라 두 병을 들고 나를 향해 걸어온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는 얼굴이라도 만날까 두렵다. 남자가 더 가까이 오기 전에 나는 우리가 일행이 아닌 듯 먼저 상영관을 향해 걸어갔다. 빨리 어두운 곳에 숨어버리고 싶어서였다. 안은 넓고 고급스러운 의자가 쭉 배열되어 있어 아늑한 느낌이 들었다. 앉아보니 포근하였다. 가운데 팝콘이랑 음료를 놓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한국 드라마에서 연인들이 영화 관람을 하는 장면이 나올 때마다 나도 저런 날이 있을까 싶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인 것 같아 언짢던 기분이 조금 풀어진다. 관람객은 많지 않았다. 연인으로 보이는 남녀가 세 쌍이고 딸을 데리고 온 엄마가 있었다. 우리는 뒤쪽으로 구석진 자리를 찾아 앉았다. 기분이 묘했다. 문화적 정취가 다분한 분위기에서 나도 이십대의 문학소녀로 돌아간 듯하였고, 앞자리에 앉은 젊은 연인들의 사랑행각이 나의 눈을 자극하고 향긋한 팝콘향이 내 코를 간질인다. 영화가 시작되었다. 센스 없어 보이던 남자가 선택한 것은 다행히 멜로영화여서 지금의 분위기와 맞았다. 주인공남녀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에 푹 빠진 나는 내가 여자주인공이라도 된 듯 기쁨과 설렘에 가슴을 태웠다. 달아오른 얼굴을 매만지며 남자를 쳐다보니 그는 끄덕끄덕 졸고 있었다. 나는 콜라병을 집어 쪼록쪼록 소리 내어 빨았다. 잠을 깬 남자는 자기도 콜라병을 들어 후루룩 빤다. 멋쩍은 듯 팝콘 통에 손을 넣는다. 이미 팝콘 한 줌을 집으려던 내 손과 부딪친다. 남자는 흠칫 하는 듯하더니 내 손을 잡는다. 손이 따듯하다. 오랜만에 남자의 손길을 느껴본다. 내 몸의 피가 흐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두 손의 뜨거운 체온에 팝콘의 엿이 녹아내려 손을 적시는 끈적끈적함이 느껴진다. 나는 그제야 손을 빼고 물티슈를 꺼내 손을 닦고 한 장을 뽑아 남자에게도 건네준다.      돌아오는 길에서 두 사람은 말이 없다. 서로가 자기 생각에 잠겨서 걷는다. 현관 앞에 다다랐다. 남자는 마주섰다. 남자는 아쉬운 눈길로 나를 바라보더니“한 번 안아 봐도 될까요?”라고 말한다. 아직 몸의 열이 다 내리지 않은 나는 거절할 생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안아주세요.”하고 대답을 할 수도 없었다. 내가 멍하니 서있자 남자는 그제야 다가와서 나를 끌어안는다. 조심스럽게 감싸던 손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쿵쿵 울리는 남자의 심장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조금 식었던 열기가 다시 가열되어 온몸에 퍼지면서 피가 속도를 가하며 흐른다. 남자의 뜨거운 입술이 서서히 다가와 내 입술위에 얹힌다. 입안에 침이 그들먹이 고인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남자의 뜨거운 숨소리가 내 얼굴을 간질인다. 또 침이 차오른다. 꿀꺽 삼킨다. 그때까지도 남자의 입술은 원 자리에서 미동이다. 빠르게 흐르던 피가 서서히 정상속도로 돌아온다. 나는 남자를 밀어낸다. 우리는 교차로에서 만날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아마도 평행선에서 달려야 할 사람들인 것 같았다.     “늦었어요. 들어갈게요.”     나는 누가 볼세라 부랴부랴 돌아섰다. 남자는 무슨 일이 일어난 지도 모른 채 어정쩡하게 선 채로 멀어져 가는 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서있다. 3. 둘째 남자가 무섭다고 하오          책임성 높은 명희는 기어이 날 시집보내고야 만다고 팔을 걷고 나선다. 이번에는 나보다 여섯 살 이상인 이혼남을 소개하였다. 딸이 한 명 있는데 이미 시집가서 잘 살고 있으니 나한테는 부담될 게 없다고 하였다. 제2선에서 편히 보내고 있는 간부로서 경제력도 있고, 시간도 넉넉하니 사랑받을 일만 남은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      첫 번째 맞선의 실패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도 못하여 달갑지 않았지만 명희의 성화에 만나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들러리도 없이 직접 둘이 만나기로 했다. 마음을 편히 가진다 해도 선 자리는 역시 사람을 긴장시킨다. 나이가 드신 분이라 하니 나는 옷차림도 점잖고 우아한 쪽으로 골라 입고 약간의 흥분을 안고 집을 나섰다. 새까만 벤츠승용차 한 대가 문 앞에 서있다. 운전석문이 열리더니 대머리 아저씨 한 분이 내려와 나를 보며 웃는다.     “최경옥 씨 맞죠.”    “네 그런데요. 누구신지?”    “오늘 만나기로 한 사람입니다. 참 미인이시네요. 타세요.”     대머리는 느슨하게 웃으면서 조수석의 문을 열고 손으로 문 높이를 견주며 내 머리가 차문에 부딪히지 않도록 안쪽으로 안내한다. 드라마 장면속의 주인공들이나 느끼는 향수를 누려보는 것이 즐겁기도 하고 어리둥절하기도 하였지만 기분은 좋았다. 대머리는 자리에 앉자 먼저 내 안전띠를 둘러주었다. 쓰러질듯 몸이 내 쪽으로 기울어 왔고 나는 숨을 죽이었다. 운동으로 다져진 딴딴한 팔뚝이 슬쩍 내 젖가슴을 스치고 지났다. 의식적인지 무의식적인지 정확한 판단을 할 수가 없으니 감점으로 매길 수는 없었다. 승용차가 스르륵 소리도 없이 미끄러져 아파트단지를 빠져나간다. 지인들이 벤츠승용차를 남자와 같이 타는 내 모습을 보고 소문을 내도 무섭지 않을 것 같았다. 마중 온 남편의 고급승용차 조수석에 턱 하니 앉아서 차창 밖으로 머리칼을 휘날리던 여인이 얼마나 부러웠던가? 오늘은 내가 그런 여인으로 되었으니 마음은 꿀 먹은 듯 달콤했다. 저 하늘 끝 어디까지라도 지금처럼 달리고 싶었다.     “시교에 있는 친구가 하는 레스토랑이 있는데 조용하고 음식도 맛있어요.”     느릿하게 전해오는 저음이 무게 있게 들려온다.     “엄마 손맛을 떠올리는 닭곰이나 초두부 같은 것도 있고요. 불고기 같은 것도 있는데 어떤 걸 좋아하세요?”     나는“가리는 거 없이 다 좋아해요.”라고 말할까 하다가 성의 없다고 생각 할 것 같고, 또 자기 주견이 없는 사람으로 볼 것 같아서 똑 부러지게 대답하였다.     “전, 양 꼬치나 불고기 쪽을 좋아해요.”     “저랑 입맛이 비슷하네요. 저도 불고기 좋아하는데 하하하!”      별로 우스운 일도 아닌데 너무 크게 웃는다. 기분이 좋은가보다. 나무가 우거진 수림 속 한가운데 조용하고 아담한 우리민족의 옛 식 건물이 보인다. 앞마당에는 인공폭포에 분수도 있고, 옹기종기 장독도 배열되어 있어 어릴 적 우리 외갓집에 온 듯한 친근감을 준다. 사십대쯤의 사장인 듯한 여인이 마주나오며 반긴다.     “김 국장님, 오랜 만이시네요. 자주 들리시지. 면목도 잊히려고 하네요.”     사장의 목소리는 대머리를 향했지만 눈은 나를 눈 빗질한다.     “나야, 귀한 손님 아니면 여기로 안 모시지 허허. 조용한 방으로 주시오.”     방문을 열고 안으로 안내하는데 나는 선 듯 발을 들여놓지 못했다. 벽에는 분홍색으로 된 원앙새가 그려진 벽보가 걸려있고, 벽 쪽 이불장에는 청색홍색으로 여민 결혼이불과 칠색단요가 얹혀있었다. 온돌방 가운데는 둥근 상에 두툼한 칠색단자부동이 마주 놓여 있고 상우에는 귀여운 옛 식 누런 놋쇠그릇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마치도 나의 신혼 방에 온 듯한 느낌이 들면서 불현듯 남편의 얼굴이 떠오른다. 우리는 우리 나이에는 드물게 옛 식 결혼을 하고, 이런 방에서 첫날밤을 보냈었다.      “최 선생, 어서 올라가세요.”      대머리가 등을 떠미는 바람에 나는 엉겁결에 구들에 올라섰다. 여러 가지 고기들이 오르고 지글지글 고기 익는 소리가 귀맛 좋게 들린다. 부지런히 고기를 뒤번지는 대머리의 이마에선 땀이 번들거린다. 나는 뙤창을 열었다. 산 향기를 실은 싱그러운 산바람이 불어 들어와 가슴을 훑는다. 여러 가지 잡념들도 흩어져간다. 참새 두 마리가 나무위에서 짹―짹 울어댄다.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자연의 정취에 푹 빠져들며 나는 무릉도원에 온 듯하였다. 저 멀리에서 뻐꾹뻐꾹 하는 뻐꾹새의 울음소리도 귀맛 좋게 들려온다.      대머리는 다 익은 고기를 먹기 좋게 잘게 썰고 있다. 나는“제가 할게요.”하면서 가위를 넘겨잡고 싹둑싹둑 잽싸게 잘라서 타지 않게 변두리에 옮겨 놓는다.     대머리는 손수건을 꺼내 흐르는 땀을 닦고는 잔을 든다.    “최 선생님 같은 분을 만나서 너무 기쁩니다. 식상한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첫눈에 반했어요. 내가 바라던 이상형입니다. 한 잔 합시다.”     그는 먼저 고기를 집어 양념에 묻혀서 내 앞에 놓아준 후 다음에 자기도 한 점 집는다. 우물우물 넘기고 말을 잇는다.     “내가 비록 이혼남이기는 하지만 남편으로서 내가 잘못한 건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 아내가 잘못한 것도 없어요. 상황이 그렇게 되다보니 헤어진 겁니다.”     대머리는 이번에는 고기와 야채와 마늘을 고루 얹어 쌈을 만들어 나에게 건넌다. 다행히 입에 넣어주겠다고 하지 않아서 나는 고맙게 받았다. 쌈을 씹는 입안이 달콤해 난다. 나도 제일 궁금했던 점을 물었다.     “국장님, 실례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이혼사유는 무엇이었나요?”     남자는 허구푸게 웃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혼사유를 뭐라고 해야 될지, 아내의 꿈은 여성기업가로 되는 것이었어요. 그만한 꿈을 가질 만큼 능력이 있는 여자죠, 외자기업이 들어서던 시기에 한국인하고 합작하여 작은 기업을 세웠어요. 그런데 그게 잘 안됐어요. 빚이 늘어나자 한국인은 한국으로 도망가 버렸어요.”     대머리는 잠간 말을 멈추더니 다시 고기 한 점 집어서 내 앞에 놓아준다.    “많이 드세요. 몸매보다 건강이 우선이죠.”    ‘내가 다이어트를 하고 있는 건 어떻게 알고 역시 유부남은 어딘가 다르네.’     나는 집어준 고기를 냉큼 입에 넣고 다그쳐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경옥 씨가 궁금해 하면 거짓 없이 다 말해야겠죠? 부부사이엔 믿음이 중요하니까.”     최 선생이 경옥 씨로 바뀌었네. 고기 두 점 받아먹은 것뿐인데 너무 앞서가는 건 아닌가? 아니면 원래 이렇게 능글맞은 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아내는 꿈이 큰 여자였어요. 한 번의 실패로 물러서지 않죠. 나는 언제나 그의 지지자였죠. 내가 좌우지할 수 있는 여자가 아니었어요.”     그의 얼굴에는 아내에 대한 막연함, 존경심, 그리움이 그려져 있었다. 아직도 아내를 사랑하고 있음을 보아낼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나한테 기대고 나만을 바라보는 경옥 씨 같은 여자를 만나고 싶어요. 한번 남자답게 살아보게요.”     나는 조금은 시무룩해졌다. 술 한 잔을 들어 쭉 굽을 냈다. 이건 무슨 감정인가? 질투심? 내가 왜?     “지금은 어디에 계세요?”     대머리도 술 한 잔을 넘기고 말을 이었다.    “미국에요. 인젠 15년 됐어요. 거기서 아마도 기업가의 꿈을 이루고 있겠죠. 오지 않으니 이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 인생만 허무하게 된 거죠. 인제라도 새로운 삶을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처음부터 경옥 씨 같은 분을 만나야 되는데 허허허…”     그의 마른 웃음소리는 자성(磁性)이 없고 메마르게 들려온다.     그는 나에게도 한 잔, 자기 앞에도 한 잔 술을 붓고는 그윽한 눈길로 나를 응시한다.     “이제, 우리 이야기를 할까요?”     대머리는 고기 한 점을 집어서는 비계를 뜯어낸 후, 상추에 올리고 쌈장 듬뿍 바르고 마늘까지 얹어서는 새지 않도록 정성스레 오므려서 내 입으로 가져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입을 벌리고 말았다.    “이제, 경옥 씨는 아무 걱정 말아요. 내가 든든히 지켜줄게요.”     크지 않은 쌈이 목구멍을 꽉 메우면서 코마루가 찡해 온다. 나는 억지로 참으면서 쌈을 꿀꺽 삼키였다. 나의 미세한 감정변화도 대머리의 눈을 피할 수 없었나 보다. 그는 상우로 손을 내밀어 내 손을 다독인다. 그리고는 손을 쥔 채로 일어서더니 상을 에돌아 내 쪽으로 넘어와 나를 살며시 껴안아준다. 넓고 든든한 가슴에 안긴다. 너무 포근하고 따뜻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대로 잠들고 싶다. 이런 품에서라면 공주로 되는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 굽실굽실 파도쳐 내린 내 머리 숲에 남자는 얼굴을 묻는다. 나지막이 속삭인다.    “향이 참 좋다.”     다정하게 내 머리를 어루 쓸면서 남자는 신음하듯 중얼거린다.     “내가 긴 머리를 그렇게 원했건만 한 번도 날 만족시켜 주지 않았어요.”      그 소리는 내 머릿속에서 맴돌더니 기억속의 남자 목소리가 대답한다.     “나도 당신 앞에서 남자이고 싶었어. 그런데 당신은 한 번도 나한테 기대지 않았어.”      마지막 숨을 톺으며 힘겹게 토해내던 남편의 마지막 얼굴이 떠오른다. 깜짝 놀라서 남자를 밀어내치며 가슴에서 빠져 나왔다. 갑작스런 나의 거동에 휘청하던 남자는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듯 부시시 일어나 제자리로 돌아간다. 둘은 말없이 불판에서 부직부직 익어가며 몸이 오그라드는 오징어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남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최 선생. 방금은 실례했습니다.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걸 걸고 남은 인생의 행복을 사고 싶습니다.”     나는 대답 대신 맥주 한잔을 입안에 쏟아 부었다.    “유치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의 목숨까지 걸고 경옥 씨를 지켜주고 싶습니다.”     “지켜준다. 지켜준다. 지켜준다.”     메아리가 되어 가까이에서부터 멀리로 흩어져 간다. 남편이 피 묻은 입술을 감빨며 나한테 남긴 마지막 부탁이었다.    ‘나보다 우수한 당신을 잃을까봐 못되게만 굴었어. 미안해, 힘들었지. 이제 다시 만나면 꼭 당신보다 우수한 사람, 당신을 지켜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서 편하게 살아…’     남편은 오토바이 사고로 하루 만에 세상을 떠났다.      우리 아버지는 농촌간부였고 시아버지는 시정부에서 사업하셨는데 농촌에 사업시찰을 내려오셨다가 우리 집에서 이틀간 묵게 되었다. 그때 나를 보고 마음에 든다며 며느리 삼으셨으면 좋겠다고 하시였다. 나는 농담인 줄로 알았는데 진짜로 진척을 하시였다. 아버지의 간곡한 설복 끝에 나는 남편을 만났고, 조건이나 여러 모로 별로 짝이 지우지 않아 우리 나이에는 드문 부모님들의 소개로 결혼을 하게 되었다. 그 후, 아버지는 발탁되어 현성으로 전근을 하셨고 사업단위 명액으로 헐값으로 집도 분배 받았다.      결혼해서 몇 년은 아기자기 재밌었다. 그러다가 차츰 서로를 깊이 알아가게 되자 집안일은 질서가 잡히기 시작하였다. 가정에서 크고 작은 일은 내가 나서서 처리하게 되었고, 남편은 가장의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남편은 자격지심으로 우울해지는가 싶더니 그 후로는 사사건건 시비를 걸면서 의처증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결국 그 날도 나를 미행하다가 차 사고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당신을 만난 걸 후회 하지 않소. 당신을 사랑하오,’하면서 사랑을 호소했지만‘사랑’할 줄 모르는 두 사람이 만나서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말았다.      그때 나는 결심했다. 이제 다시 결혼을 한다면 절대 조건만남 같은 건 안하리라고. 그러나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현실은 늘 나를 조롱하며 비참하게 만든다. 지금 나는 또다시 조건을 들여다보고 있지 않는가? 그의 화려한 조건에 눈이 멀어 내 마음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은 갈 때와는 달리 무거운 기운이 감돈다. 대리기사가 운전을 하고 우리 둘은 나란히 뒤 좌석에 앉았다. 남자는 조용히 내 손을 잡는다. 나는 항거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별 느낌이 없다. 내가 차에서 내리자 대머리도 따라 내리면서 물었다.     “실례되지 않는 다면 제가 올라가서 커피 한잔 마시고 가면 안 될까요?”     남자의 애원에 찬 눈길을 피하며 나는 거절했다.     머리가 복잡하고 피곤하다. 빨리 눕고 싶었다.    “그럼 악수라도 하고 헤어집시다. 경옥 씨의 전화만 기다리겠습니다.”     남자는 점잖게 악수를 하고는 돌아선다. 현관 등의 불빛에 대머리가 더욱 번쩍거렸고 허리가 휘어든 그림자가 멀어져 간다.      딩동, 문자가 온다. 명희이다. 나는 명희와 메시지대화를 시작했다.    ‘어떻게 됐어? 궁금해서 자지 않고 기다렸어.’    ‘사람도 좋고 조건도 좋더라. 그런데 내 짝은 아닌 것 같아.’    ‘또 뭐가 문젠데 그래? 그 만한 사람 등잔 켜고 찾아도 없어.’    ‘알아, 그런데 결혼까지 갈 마음이 안 생겨.’    ‘안 되는 이유 하나만 말해봐 좀 들어보자.’     나는‘대머리고, 허리도 구부정하고, 나이 들어보여서 싫어.’라고 썼다가‘너 나이에 무슨 외모지상주의니?’라고 할 것 같아 지웠다. 다시‘그 사람 마음엔 아직도 아내가 차지하고 있어서 내 자리가 없어.’라고 썼다가‘전처의 흔적이 없으려면 총각을 만나야지.’라고 할까봐 또 지웠다.      내가 썼다 지웠다 하는 사이에 성미가 급한 명희는 음성통화를 보내왔다.     “도대체 뭐가 또 마음에 안 드니?”     명희의 열띤 목소리에 나는 미안함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사랑의 마음이 안 생겨…”     명희는 어이없다는 듯이 하~ 하는 비웃는 듯한 소리를 내더니 화가 난 듯 말했다.     “어느 때라고 사랑 타령이니? 나 투항이다. 너 혼자 살아.”     그리고는 내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음성통화를 끊어버렸다.     그래, 재혼은 뭐 아무나 하나. 사랑 없는 재혼은 또 다른 결혼의 무덤일 것이다. 두 번 다시 조건결혼을 한다면 그게 더 바보스러운 짓이겠지. 나는 마음을 다독이며 멋있는 싱글 맘으로 살아갈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다가 잠이 들었다. 4. 셋째 남자가 무섭다고 하오    아들을 대학에 보내고 세상을 다 잃은 듯 허전하여 이제는 무얼 바라고 살아야 하나 목표가 없이 헤매다가 재혼으로 또 다른 나로 살아보려던 아름다운 희망도 물거품으로 되었다. 시간이 약이라고 차츰 혼자만의 생활에 적응되어 갔지만 걱정스러운 것이 하나 있었다. 경제상의 어려움이었다. 워낙에도 빠듯한 살림에 명희가 내부인원 가격으로 내놓은 집이 있으니 아들 이름으로 마련해놓으라는 말에 욕심이 생겨서 주머니사정은 생각도 않고 공적금만 믿고 덜컥 사놓았던 것이다. 그런데 공적금으로는 부족하여 은행대출을 받았는데 한 달에 1500원씩 대출금으로 나가고, 아들 생활비로 2000원 학교에 보내고, 나면 4천원 좀 넘게 나오는 로임으로는 고기 한 번 사먹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뭐든 해서 돈을 벌어야 했다. 머리를 짜 봐도 일개 교원이 할 수 있는 부업이라야 과외 밖에 더 없었다. 정부로부터 재직인원은 과외보도를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 지뢰구역에 발을 들여놓았다. 일선교원도 아니고 부교장직에 있다 보니 학생모집도 힘들었다. 나는 반주임들 중에서도 그래도 나랑 나이도 비슷하고 내 사정을 잘 아는 경숙선생한테 부탁하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하였다. 비록 저번 부교장경선에서 나와 두 표 차로 낙선되어 조금 사이가 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라이벌로 20여년 함께 해온 세월이 있는데 도와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선생님, 미안한데 부탁 좀 해도 될까요?”    “오, 최 교장님이시군요. 영도에서 무슨 부탁이라는 단어를 쓰십니까. 호호. 지시만 하세요.”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제가 미안하죠. 그래도 어려운 일이 있으니까 선생님밖에 생각 안 나서 전화 드렸어요. 선생님의 인격을 전 믿어요.”     “농담이요. 무슨 일이요? 말하오.”     그제야 경숙선생은 원 어투로 돌아서며 시원스럽게 나온다.     “선생님도 제 사정을 잘 아시잖아요. 아무래도 과외 좀 해야 내가 살 것 같아요. 힘들어서 굶어죽게 생겼어요.”    “몇 명 보내줄까?”    “지금은 형세도 이렇고 하니 말이 안 나갈 집으로 5명만 모집해주세요.”     경숙선생의 도움으로 일 년 간 밥은 굶지 않고 살 수 있었다. 그 해 연말에 학교에서는 고급교사직함평의를 하게 되었다. 고급교사직함평의는 모든 교원들이 신경을 모으는 일이였다. 조건에 부합되는 인원은 많은데 명액은 제한되어 있다 보니 여러 항목에 따라서 점수를 매기고 선정하였다. 한평생 교원사업을 하면서 고급교사직함도 못 가지고 퇴직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간주되고 있었고 또 로임도 많이 차이가 나다보니 말없는 전투마당이었다. 어떻게 하다 보니 또 한 번 경숙선생하고 내가 후보자로 되었고, 둘 가운데 한 사람만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부교장이다보니 그 선생보다 추가점수가 있어서 내 쪽이 조금 더 유리하다고 보고 있었다. 부교장경선 때도 그렇고 나는 경숙선생을 존경하고 가깝게 보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자꾸 부딪치게 되는지 말할 수 없이 안타깝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발등에 불 떨어진 신세라 양보할 수도 없는 일이라 나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모르는 척 가만히 있었다.      며칠 후, 교장선생님이 부르셨다. 늘 웃어주던 분이 오늘은 전례 없이 엄숙한 얼굴로 말한다.     “최 교장, 혹시 과외를 했소?”     나는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졌고, 뭐라고 해야 할지 생각하는 사이 교장선생님은 대답도 필요 없다는 듯이 계속한다.    “시교육국에서 부르니까 가보오. 시기가 시기인 것만큼 일이 좀 복잡해질 것 같소. 마음준비를 단단히 하고 가서 잘 말해보오.”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인가 싶었다. 나는 두근두근하는 마음을 달래며 교육국 법제과의 문을 열었다. 들어서는 나를 보자 지 과장은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나한테로 다가와 손을 마주비비며 긴장한 듯 말한다.     “제보가 들어왔어요. 여기 아니고 주교육국이에요, 여기 들어오면 그냥 다시는 하지 말라고 권고비평으로 끝낼 수 있는데 조사조까지 내려왔어요.”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지 과장은“저쪽 방으로 갑시다.”하면서 앞장서서 걸어 나간다. 나는 코 꿴 송아지마냥 졸래졸래 따라 나갔다. 머릿속에서는 전쟁이 일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상황을 보면서 숨길 건 숨겨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저쪽 방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이십대 쯤 돼 보이는 젊은이고, 다른 한 명은 내 나이 또래로 보이는 누런 금테안경을 건 남자 분이었는데 피부도 희고 깔끔하고 단정해보였다. 조사는 젊은이가 하였다. 그는 이것저것 사실 확인을 했다. 어찌나 상세하게 알고 있는지 속이고 뭐고 할 게 없었다. 나는 모든 걸 내려놓고 사실대로 승인하였다. 내가 대답을 인차 못하고 긴장해하자 금테안경은 뜨거운 물을 부어 주면서“마시면서 이야기 하세요.”하면서 웃어준다. 가쯘한 하얀 치아가 보인다. 웃고 있는 그 사람이 참 얄밉다. 나는 울고 싶은데…      마지막 결론을 말한다.     “하나는 제보가 들어왔고요. 다음은 일반 교원도 아니고 교장선생님이셔서 영향이 아주 나쁩니다. 세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째는 경고처분을 받고 반성문을 전교교원대회에서 읽는 방안, 둘째는 교장 직에서 면직되는 것이고, 셋째는 교원 대오에서 영원히 제명당할 수도 있습니다. 토론을 거쳐서 며칠 후에 다시 통지를 드리겠습니다. 사상준비를 하고 계세요.”     청천벽력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아들 같은 젊은이 앞임에도 불구하고 예고도 없이 눈물이 뚝 터진 강물처럼 좔좔 흘러내린다. 금테안경은 말없이 손수건을 꺼내 나한테 건넨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내밀어 손수건을 받아 흐르는 눈물을 적셔냈다. 지과장이 들어와서 부축하여 겨우 그 자리를 떠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아무리 생각해도 앞길이 캄캄하다. 이대로 제명당하면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들을 두고 죽을 수도 없고 죽어서도 안 되고 살 수도 없는 이런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라도 알려 줬으면 좋겠다. 그러나 내 옆에는 아무도 없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생계 앞에서는 나의 자랑이었던‘선생님’의 명칭도 내놓을 수 있고 이십여 년 밤낮없이 분투하여 얻었던 부교장이라는 명예도 서슴없이 버릴 수 있었다. 그냥 학교 식당도 좋고 청소공도 좋고 출근만 할 수 있게 해준다면 더 바라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습관적으로 거울 앞에 섰다. 늘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면 나는 그를 찾는다. 거울속의‘나’가 말한다.     ‘너, 결심했어? 다 버릴 수 있지?’     나는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럼, 마지막 발악이라도 해봐? 용기를 내야 돼?’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대충 세수를 하고 집을 나섰다. 택시를 타려고 했으나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보이지 않는다. 내 마음은 급하다. 밤거리를 달린다. 금테안경이 묵고 있다는 진달래호텔에 도착하여 전화를 하였다.    “죄송한데요. 저 아까 낮에 만났던 최 선생입니다. 다 하지 못한 말이 있어서 찾아 왔어요. 잠간 내려와 주시면 안 될까요?”    “시간이 늦었는데 내일 다시 얘기하면 좋을 것 같은 데요.”     나는 숨을 가다듬고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호텔로비까지 왔습니다. 일층 커피숍에서 기다릴게요.”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무례하기는 해도 지금 나는 이것저것 고려할 처지가 못 되었다. 나는 커피숍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어차피 잠도 안 오는데 지금 내려오지 않더라도 죽치고 앉아있으면 아침에라도 내려오면 만날 수 있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렇듯 간절하게 만나고 싶고 만나려고 찾아왔지만 만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은 하얗다. 그냥 만나야 될 것 같다는 생각뿐이다. 나는 물 컵을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앉아있다.      복무원이 단설기와 뜨거운 백과향 차를 가져다 테이블 위에 놓는다. 나는 의아해 하며 묻는다.    “나, 시키지 않았어요.”    “666호실 손님이 시키신 겁니다.”     커피숍 오면 내가 꼭 시키는 두 메뉴, 내려오지 않겠다는 말을 이런 식으로 전달하는구나.     처음 바다를 마주 했을 때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를 보며 환성을 질렀다. 푸른 바다와 하늘이 잇닿아 하나가 돼 보이는 장관 앞에서 나는 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미소한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고, 울고 웃는 세상만사가 이 바다 앞에서는 그냥 아이들의 장난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하였었다.     바다는 조용하다. 가끔씩 출렁이며 기슭의 모래알들을 씻어간다. 나는 한 알의 모래가 되여 바다의 세계에 흔적 없이 묻히고 싶다.     “여기 앉아도 될까요?”     커피 잔을 손에 든 금테안경이 내 앞에 서있다.     나는 생각 밖이라 벌떡 일어섰다. 그가 또 새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며 내 어깨를 잡고 앉으라고 하고는 자기도 마주 앉는다. 금방 샤와를 마친 듯 얼굴과 머리 결이 촉촉해 보이고 알로에비누의 시원한 향이 진하게 풍겨온다.      나는 무슨 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서 뜨거운 백과향차를 꿀꺽꿀꺽 마셨다.     “커피를 시킬까 하다가 잠이 안 오는 분도 있다고 해서 차를 시켰어요.”     ‘고맙다고’머리로는 말하는데 입은 붙었는지 말이 안 나온다.     금테안경은 단설기를 조금 베어 내 앞에 놓아주며 말한다.     “스트레스 받았을 땐 단것을 드시면 해소된대요.”     가슴이 뭉클해난다. 참았던 설움이 임자를 만난 듯 터져 나와 반쯤 비워진 찻잔에 뚝뚝 떨어진다. 금테안경은 찻잔에 떨어지는 눈물을 막으려는 듯 급히 손수건을 꺼내 찻잔을 덮는다. 나도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가로 가져간다. 똑같은 손수건, 낮에 받았던 금테안경의 손수건, 우리 둘은 똑 같은 손수건을 보며 웃는다. 이 와중에 웃음이 나오다니? 사람은 참 이상한 동물인가보다. 단설기를 한입 떼어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감각의 크림이 한입 가득 차오른다. 나는 혀끝을 입천장에 대고 몇 번 더 문지르면서 단맛을 한껏 느낀 후, 사르르 넘겼다. 마음이 진정되고 편안해진다.      나는 오랜 지기를 만난 듯 지금까지 누구하고도 하지 않았던 살아온 이야기와 그 사건들 속에서 느꼈던 세세한 감정까지도 주절주절 이야기 하였다. 금테안경은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 고개만 끄덕거렸다. 내 이야기보다는 중간, 중간 단설기를 베어 내 앞 접시에 놓아주는 것에 더 집중하는 듯하였다.      벼랑 끝에 매달린 사람이 자신이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가를 구구절절 읊조리는 것은 살아온 삶에 대한 미련인지 아니면 벼랑위에 선 사람에게 구하는 애원의 목소리인지…     말을 다 하고나니 마음은 후련해났다. 이런 말까지 하려고 한건 아닌데 극본 없는 연극을 연출한 자신이 관중 없는 무대에서 혼자 놀아난 어릿광대가 된 듯 뒤늦게야 부끄러워 났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나는 급히 코트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연신 사과하였다.     “미안합니다. 늦은 시간에. 제가 실수 했습니다.”     나는 도망치듯 커피숍에서 빠져나왔다. 금테안경의 목소리가 코트자락에 따라온다.     “잠깐만요. 바래다 드릴게요.”     나는 못 들은 척 종종걸음을 치며 홀을 빠져나왔다.      “지금은 택시도 없을 겁니다. 걸읍시다.”     금테안경은 내 손의 코트를 당겨 내 몸에 걸쳐주며 다정하게 말한다.      우리는 강변도로를 걸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오래 동안 쌓였던 체증이 풀린 듯 가슴이 뻥 뚫린다. 어떠한 결론이 나오든지 용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저지른 일이니 노 교원으로서 공산당원으로서 겸허히 받아들이리라 마음을 먹는다.      집문 앞에 다다랐다. 금테안경은 핸드폰을 꺼내며 말한다.    “전화번호를 입력해주세요. 결정이 나면 처음으로 알려 드릴게요. 너무 걱정 하지 마세요. 제일 나쁜 결과까지는 안 가겠지요.”     일말의 희망이 생기는 거 아닌가 싶으며 전화번호를 입력하는 손끝이 떨린다.     실면의 밤이다. 지치고 힘들게 달려오느라 실면이 뭔지 몰랐고 누우면 금방 잠들곤 하였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린다. 주소록을 열고 하나하나의 이름들을 보면서 지나온 시간들을 돌이킨다. 이제 더 이상 필요 없어 보이는 이름들을 하나씩 삭제했다. 갑자기 딩동~ 위챗 추가를 요청하는 메시지가 뜬다. 금테안경이었다. 나는 벌떡 일어나 급히 허락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손수건을 빌려준 남자입니다.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편히 쉬세요.     문자를 읽는 순간 미소가 번진다. 마음이 따뜻해난다.      내안의‘나’가 갑자기 뛰쳐나와 말한다.    ‘그분 참 자상하시고, 말수도 적으시고, 눈길도 그윽하시고 유머감각도 있으시고 참 재미있는 분이네.’     나는 머리를 흔들며‘나’를 나무랐다.    ‘아니야, 지금 심각한 상황인데 너 좀 나대지 마.’     나와‘나’는 밤새 승강이질을 하다가 잠들었다.      소식을 기다리는 시간은 더디게만 흐른다. 월요일에 결정이 난다니까 이 주말은 지옥의 시간이다. 월요일 아침이다. 다섯 시가 되니 어김없이 벨이 울린다. 그렇게 듣기 싫던 벨소리도 오늘만은 정겹게 들려온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자명종을 들어 깨끗이 닦아주고 너도 좀 쉬라고 벨을 끄고 다시 이불을 들쓰고 눕는다. 손에는 전화기만 꼭 쥐고 있다. 여섯 시가 되니 더는 버티고 있을 수 없어 일어났다. 세수를 하고 화장대 앞에 앉는다. 화장을 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거울속의‘나’가 말한다.    ‘화장을 하고 기다려. 금테안경이 도와줄 거야.’     그때 딩동, 메시지가 온다.      금테안경:     출근할 수 있을 겁니다.     간단한 한 줄의 메시지였지만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나는 간단히 화장을 마치고 첫 출근 날 입었던 양복을 찾아 입고 거실 소파에 앉아 교장선생님의 전화만 기다렸다. 출근만 할 수 있다면 체면도 명에도 다 버릴 수 있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드디어 전화벨이 울렸다.    “최 선생, 출근하세요. 먼저 저희 사무실에 들르세요.”     최 교장이 최 선생으로 호칭이 바뀌었다.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인제 출근할 수 있다고 하니 또 마음이 무거워난다. 결국 나는 교원대회에서 반성문을 읽었고, 부교장직에서 해임되었으며 일반교원자격도 박탈당하고 학교 도서관리를 책임지게 되었다. 나는 도서실에서 두문불출하고 책만 열심히 읽었다. 책을 보니 잡생각을 할 사이도 없고 문학소녀의 꿈을 꾸던 그 시절로 되돌아간 듯하였다. 유일한 교제상대는 나의 절친 명희뿐이다. 퇴근준비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위챗문자가 딩동 떠오른다.     명희:     내일 네 생일이지? 저녁 다섯 시에 백옥뀀점에서 기다릴 게, 밤새 놀자.     전화기를 닫으려는데 또 딩동~ 하고 문자가 뜬다.     금테안경:     오늘 일보러 용정에 왔는데 잠간 만나서 함께 식사하실까요?     가슴이 뛴다. 나는 잊고 있었는데 날 기억하고 있었구나. 나는 인사도 할 겸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보쌈집에서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더덕구이에다, 족발 쌈이 올라 있었다. 나는 저번의 어색한 만남을 잊으려는 듯이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 어떻게 내가 좋아하는 것만 시키셨죠?”      내가 환하게 웃자, 그도 흰 이를 드러내며 따라 웃는다.    “최 선생이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전 잘 알고 있습니다.”     나는 놀란 듯 그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진짜요?”     그는 눈을 찡긋해 보이고는 신나게 말한다.    “선생님은 해산물을 좋아하고요. 육류는 안 드시는데 족발하고 닭발만은 예외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또 더 아는 것이 있나요?”      나는 다그쳐 물었다.    “흰색을 좋아하고요, 민요를 잘 부르시고요, 운동은 안 좋아하는데 탁구만은 수준급이다.”     금테안경은 시뚝해 하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저번에 만났던 사람이 맞나 싶을 만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나 있었다. 내 표정이 바뀌자 그제야 그는 웃음을 거두면서 말했다.    “놀라지 마세요. 저는 명희사촌오빱니다. 명희가 선생님을 나한테 소개해준다면서 중학교 때부터 내 앞에서 선생님 자랑을 하더니 지금까지도 소식이 없네요.”     그제야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언젠가 명희한테서 아주 멋있는 사촌오빠가 있다며 자랑하던 말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우리는 그날 많은 말을 하였다. 그도 작가의 꿈을 꾸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두 번째 맥주상자가 굽이 날 무렵에는 함께 다시 문학을 시작해보기로 약속까지 하고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가방 안에서 예쁜 선물함을 발견하고 나서야 나는 그가 선물까지 준비하고 왔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급히 포장을 뜯어보니 예쁜 여자용 시계와 편지 한 장이 있었다. 오랜 편지지는 접은 자리가 찢어져 있었지만 또박또박 쓰인 글만은 똑똑히 읽을 수 있었다.       사랑하는 경옥 씨에게:     생일 축하합니다.     올해부터의 생일은 저랑 함께 보냅시다.    “카오스다방”앞에서 올 때 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명희오빠 명호로부터        1995년 5월 7일        부치지 못한 연애편지. 나는 순간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놀랍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다. 나한테도 이런 낭만적인 사랑의 로맨스가 숨겨져 있었을 줄은 몰랐다. 나는 그때로 되돌아 간 듯 온밤 흥분으로 잠을 설치였다. 그때 이 편지를 받았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 후, 우리 둘은 주말마다 만났고, 서로에게 흠뻑 빠져버렸다. 늦깎이 사랑이 기둥뿌리 뺀다고 나는 일주일이 너무 길었다. 우리가 어디 한곳으로 합치면 어떻겠냐는 나의 제의에 그는 아직은 여러 가지 조건이 구비되지 못하였으니 좀 더 기다리라고 하였다.      며칠 후, 학습 차 연길로 가게 되었고 학습이 끝나고 저녁이나 같이 먹으려고 그의 직장 앞에 차를 주차해놓고 기다렸다. 깜짝쇼를 해주고 싶었다. 다섯 시가 되자 드디어 보고 싶은 얼굴이 나타났다. 역시 늠름하고 지적인데다가 언제나 흰 셔츠에 양복에 넥타이를 맨 깔끔한 그의 모습에 나는 저도 몰래 입이 벌어진다. 저녁에 양 꼬치 먹자고 할까? 불고기 먹자고 할까? 고민하면서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가 전화를 받으려는데 저쪽에서 한 여인이 마주오며“여보, 여기!”하면서 손을 흔든다. 그는 급히 전화기를 닫고 여자의 차에 몸을 싣는다. 웃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이 점차 내 쪽으로 가까워져 온다. 나는 급히 머리를 숙여 모습을 감춘다. 내가 다시 머리를 들었을 땐 그는 이미 가로등불이 명멸하는 퇴근길, 차량의 물결 속에 자취를 감춘 뒤였다.      첫사랑 여자,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는 첫사랑, 죽어서도 영혼 속에 담고 갈 거라던 달콤한 말은 다 거짓말이었을까? 순진해서 귀엽다는 말은 바보스러워서 편했다는 말이었구나. 사랑하지 않는 여자랑 결혼하는 건 무책임한 짓이라서 지금까지 혼자라는 말을 나는 믿었었다.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걸리니까 기다려 달라는 말을 나는 믿었었다. 그는 거짓말쟁이, 바람둥이였고 나는 남자에 미친년, 남의 가정을 파괴하는 제3자이다. 사업에서도 오점을 남겼고 이제 품행에서도 오점을 남긴다면 나는 얼굴을 들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      머릿속은 삼검불처럼 어지럽다. 두서를 잡을 수가 없다. 제3자라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차 앞면 유리에 비친다. 나는 그들의 손가락질을 피하려고 눈을 감았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에어백이 낙하산처럼 펼쳐지면서 내 얼굴을 덮친다.  5. 넷째 남자가 좋다고 하오         사람의 명은 정해졌나보다. 갈 시간이 안 되면 차사고로 차가 다 박살나도 사람은 멀쩡히 살아있다. 경미한 뇌진탕이 전부였다. 이 세상에서 도망가고 싶은데 가지도 못하게 날 붙잡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느님께 묻고 싶다. 내가 전생에 지은 죄를 다 갚지 못하였으니 계속하여 벌을 받으라는 건지 아니면 고생 끝에 낙이 오니 행복을 누리고 가라는 건지…     눈을 떴다. 명희가 보인다. 뭐라고 말한다. 안 들린다. 명희 옆에 웬 남자가 걱정스런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저 눈길 너무 익숙하다. 누구지? 흉터가 보인다. 이마에 동그란 흉터, 아, 내 신랑이다. 애기신랑, 너무 흔들린다. 어지럽다. 다시 눈을 감는다.      마을 공터에서 애들이 모여“가위, 바이, 보!”를 하며 편을 가른다. 철호오빠와 꺽다리 경칠이가 대표로“가위, 바이, 보!”를 하여 이긴 사람이 먼저 마음에 드는 편을 선택한다. 힘찬‘가위, 바위, 보!’하는 소리가 날 때마다 한 명씩 편이 되어 철호 오빠와 꺽다리 경칠이 뒤에 가서 줄을 서고 한 팀이 된 애들은 자기편을 고를 때 더 역빠른 애 이름을 부르곤 하였다. 이제 나이가 제일 어린 나와 명희만 남았다. 마지막‘가위, 바위, 보!’를 한다. 나는 긴장하다. 명희는 나보다 키도 더 크고 달리기도 더 빠르다. 하지만 나는 누구도 선택하지 않는 마지막 나머지 사람으로 편입되기 싫었다. 선택받지 못한 사람의 비참함이 싫었다. 제발 철호오빠가 이기기를 바랐다. 적어도 철호오빠라면 나를 먼저 선택해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지만 꺽다리는 무조건 명희를 선택할 것이니까.    ‘가위 바위, 보!’     철호오빠가 이겼다. 뒤에 선 애들은‘와’하고 외치고는‘명희, 명희, 명희!’하며 절주에 맞추어 외친다. 철호오빠는 나와 명희를 번갈아 본다. 급해난 나는 애원의 눈길로 철호오빠를 쳐다보며 입을 실룩거리며 울음이 터지려고 하였다. 철호오빠는 애들의 외침도 무시한 채“경옥이!’하면서 내 손을 잡았다. 눈물은 어느새 쏙 들어가고 나는 시뚝해서 입을 한발이나 내밀고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명희를 할깃 쳐다보고는 철호오빠 등 뒤에 딱 붙어 서서 옷자락을 꼭 쥐었다.      눈을 떴다. 누군가 다가와 내 침대머리에 꽃병을 갖다 놓고 맞은 편 침대머리에 걸터앉는다. 동공이 흔들려서 초점이 맞춰지지 않는다. 누군지 흐릿하게 보여서 알 수가 없다. 아! 시원한 진달래꽃향이 느껴진다. 나는 눈을 스르르 감고 있는 힘을 다해 숨을 한껏 들이시며 마음껏 마신다.      봄이 오면 내 고향 뒤 동산은 진달래꽃으로 물들었다. 진달래 꽃잎 먹으러 동네조무래기들은 산을 오른다. 가파른 산등성이에 올라설 때면 철호오빠는 앞에서 내 손을 당겨준다. 우리는 뒤 동산에 올라 진달래꽃잎을 배부를 때까지 뜯어 먹는다. 철호오빠는 나를 보며 웃는다.     “너 입술 빨갛게 물들었어, 새 각시 같아.”    “오빠, 나 새 각시 할래. 꽃 너울 만들어 줘.”     철호오빠는 진달래꽃을 뜯어서 내 머리 여기저기에 꽂아준다.    “됐어. 인제 시집가도 되겠다.”    “오빠, 나 오빠한테 시집가도 돼?”    “응, 꼭 나한테 시집와야 돼?”     오빠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한다.    “오빠, 우리 약속해, 새끼손가락 걸자.”     우리는 깍지걸이를 하고는 마주보며 웃는다.     오빠가 운다.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슬피 운다. 오빠가 소 수레에 앉아서 외갓집 동네로 이사 가던 날, 난 동구 밖 시내물이 흐르는 강가까지 따라가며 울었다. 강을 건너서 나와 거리가 멀어지자 오빠도 엄마 품에 머리를 묻으며 울었다. 울다가 다시 돌아보며 외쳤다.      “경옥아, 어른이 되면 너 보러 올게”      나는 엉엉 울면서 외친다.     “꼭 와야 돼?”     “경옥아, 눈 떠 봐. 왜 그래?”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웬 남자가 내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닦아준다.      ‘누구지? 오 이마에 십자모양의 상처? 혹시 철호오빠?’     나는 찬찬히 보려고 몸을 일으킨다.      “누구세요?”     “경옥아, 나야 철호…”     나는 저도 몰래 손을 들어 남자 이마의 상처를 만져본다. 내 손은 그 상처자리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보다 조금 더 깊어진 듯싶었다. 가슴으로부터 뜨거운 것이 욱하고 올리 밀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너, 아직도 울보구나.”     오빠의 말에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되는데… 맞죠. 어머니.”     오빠는 웃으면서 저쪽 침대에 누워있는 한 늙은이한테 말을 건넨다.     나도 그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경옥이니? 오랜 만이다. 우리 며느리 하겠다더니 약속도 안 지키고…”     뇌출혈로 입원한 철호오빠의 어머님이셨다. 나는 현기증 때문에 일어나지는 못하고 그냥 얼굴만 돌린 채 인사를 하였다.     “어머님, 정말 오랜 만이예요. 약속을 못 지켜서 미안해요.”     나는 마치 6살 그때로 되돌아간 듯 스스럼없이 철호오빠의 어머님하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인연이란 참 이상한가보다. 만나야 할 사람은 언제든 만나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철호오빠는 내 동년의 기억 속에서 나의 영웅이었고, 어린 소녀 꿈속의 백마왕자였으며 나의 수호천사였다.      우리 고향마을에는 마을을 에돌아 흐르는 작은 냇물이 있었다. 우리가 마을을 벗어나려면 꼭 그 냇물을 건너야 했다. 날씨가 좋을 때는 오빠의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넜고, 비가 와서 물이 불면 오빠의 등에 업혀 강을 건넜다. 어느 해 이른 봄, 강 얼음이 채 녹지 않아 징검다리가 미끄러워 위험하다며 오빠는 기어이 나를 업고 뼛속까지 얼어드는 얼음물에 들어섰다가 발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넘어지며 돌멩이에 이마를 쫓고 말았다. 이마가 찢어져 여덟 바늘이나 기웠는데 그 자리가‘十’가 되어 보기에 흉측하였다.      어머님이 마음이 아파하시며“어쩌다가 넘어졌어? 조심하지. 흉터가 생기면 어떻게 하냐? 예쁜 색시 못 얻겠다.”고 낙담하시였다. 나는 오빠가 나 때문에 넘어져서 미안하다는 말을 무서워서 감히 하지 못하였다. 오돌오돌 떨고 있는 내 손을 잡아 어머님 앞에 내세우며 오빠는 말한다.     “예쁜 색시 얻었어요. 경옥이가 시집온다고 했어요.”     나는 어머님이 믿지 않을까봐 그렇다고 고개를 두 번, 세 번 끄덕거렸다. 그래야만 덜 미안할 것 같았었다.    “어이구, 우리 애기며느리. 나는 찬성이다.”     어머님은 환하게 웃으시더니 찬장에서 기다란 엿가락을 꺼내어 나에게 주셨다.     그때 먹은 엿이 얼마나 달콤했던지 지금도 엿을 보면 그 때 그 맛을 떠올리곤 한다.      오빠와의 상봉은 나의 생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내가 먼저 퇴원을 한 후, 나는 인사차 몇 번 병원에 찾아갔고 어머님한테서 오빠의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엄마 혼자 키우다 보니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친척들의 도움으로 힘들게 학업을 완성하였다는 것, 오빠의 꿈이 큰 기업가가 되어 도움 받은 사람들에게 보답하는 것이었다는 것, 지금은 진짜 큰 기업을 운영하고 있으며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업에서 성공을 하기 전에는 장가를 안 간다는 걸 내가 우겨서 중매를 서서 서른 살에 결혼시켰는데 애 엄마가 난산으로 애만 남기고 갔어. 얼마나 불쌍하든지, 늙은 것이 주책없이 나서서 일이 이렇게 된 것 같아서…”     어머님은 한숨을 후~ 하고 크게 내쉰다.    “애가 몇 살이에요? 다시 결혼은 안했어요?”    “올해 중학교 1학년에 다녀. 애한테 계모를 안 만들어준다며 지금까지 혼자야. 재혼하라고 해도 말을 안 들으니 나도 더 이상 나서지도 못하고… 그저 우리 손녀만 불쌍하지…”    “어머님도 몸이 편찮으신데 애는 누가 돌봐요?”    “보모를 쓰고 있어. 오늘 퇴원하니까 왔던 김에 집 문이나 알고 가…”     어머님의 강권에 나는 같이 가기로 하였다. 모아산자락의 호화스런 별장마을의 3층 건물이었다. 집은 화려하고 으리으리하였다. 집에 들어서자 손녀가“할머니!…”하며 뛰어와 밀차에 앉은 할머니 품에 안긴다. 그리고는 올롱한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인사해라, 네 아빠 동생이니까 고모야.”    “나한테 고모가 있었어요? 고모!”      여자애는 준비도 없는 나한테 매달리며 응석을 부린다.     어머님이 나무란다.    “애가, 철이 없어. 나하고만 자라서 사람이 그리워서 그런다.”     딸애는 이름이 혜정이었다. 저녁시간은 혜정이한테 다 빼앗겼다. 내 손을 꼭 잡고 자기 방을 구경시키고, 옷도 구경시키고, 친구도 자랑하였다. 저녁에 자고가면 안되냐고 응석을 부렸지만 그건 안 된다고 했더니 위챗추가를 하자고 하였다. 또 놀러 온다고 약속을 받고서야 집을 나설 수 있었다. 철호 오빠는 기어이 차로 집까지 바래다준다고 하였다. 내가 뒷문을 열고 오르려고 하자 오빠는 조수석에 앉으라고 하였다.    “혜정이가 아빠는 조수석에 자기 외에 누구도 못 앉게 한다고 하던데요.”     오빠는 웃으면서“너만은 돼.”라고 하신다. 은근히 좋았다. 삼십여 년 만에 만났지만 전혀 어색하지가 않고 그 때 그 마음 그대로라는 것이 참 신기하기도 하였다.     오빠는 차안에서 조용히 말했다.     “명희한테서 너 얘기 다 들었어. 네 아들, 학비 걱정은 마. 우리 회사 장학금명단에 넣었어. 생활비는 내가 후원해줄게.”    “염치없이 생활비까지 어떻게 그래?”     “괜찮아, 너는 그래도 돼. 대신에 우리 혜정이를 많이 돌봐줘. 나 좀 편해지자.”     오빠의“너만은 그래도 돼.”라는 말을 수십 번 곱씹으며 나는 그날 행복한 밤을 보냈다.      딩동~ 딩동~ 연이어 들려오는 메시지알림소리에 나는 눈을 떴다. 주말인데 이렇게 일찍이 연락 올 사람이 없겠는데 하면서 들여다보았더니 혜정이의 음성메시지였다.    ‘고모, 우리 오늘 진달래축제 보러 같이 가요. 여덟 시 출발합니다. 답 주세요. 급! 급! 급!’      혜정이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어제 오빠와의 약속도 있고, 거기다가 내가 좋아하는 진달래꽃축제라니 가보고 싶었다. 나는 선보러 가는 날보다 더 정성스레 단장을 하였다. 오빠는 히죽이 웃으면서 내 머리를 막 헝클어 놓으며‘예쁘네.’라고 하신다. 오빠의 장난스런 손길이 싫지가 않았다. 오늘은 오빠의 조수석을 비워두고 혜정이와 나는 뒤 좌석에 붙어 앉아 노래를 부르며 신나는 봄나들이에 나섰다.     혜정이는 구경하는 내내 내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면서 나한테서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릴 때처럼 진달래꽃잎을 뜯어 먹어보기도 하고 여러 가지 포즈로 사진을 찍기도 하였다. 오빠는 진달래꽃잎을 뜯어 내 머리에 얹어주었다. 혜정이는“와, 신부 같아요.”라고 하면서 그 장면을 놓칠세라 렌즈에 담는다.      “혜정아!”      친구인 듯한 아이가 멀리서부터 부르며 알은체 한다.      “너도 왔구나, 누구랑 왔어?”     혜정이는 사진을 찍다 말고 내 쪽으로 뛰어와 손을 잡으면서 말했다.    “우리 엄마랑, 아빠랑 같이 왔어.”    “미국 가셨다더니 오셨구나.”     친구인 듯한 아이는 고개를 까딱하고 인사를 하더니 자기 엄마, 아빠 쪽으로 뛰어간다.      혜정이는 멋쩍은 듯이 웃어보이고는 잡았던 손을 놓고는 계속하여 사진을 찍는다.      그 후부터 나는 혜정이의 진짜 엄마노릇을 다 하게 되었다. 옷 사러 같이 다니고, 찜질방도 다니고, 학부모회의도 다니고 하였다. 주말에는 또 우리 집에 와서 내가 해주는 맛있는 음식도 먹고는 자고 가기도 하였다. 점차 나의 생활패턴은 혜정이를 위해 돌아갔다.      며칠 후면 5월 8일 나의 생일이다. 또한 오빠 생일이기도 하다. 우리 둘은 세살차이지만 생일은 하루였다. 나는 오빠한테 무슨 선물을 할까 고민하면서 인터넷쇼핑몰에서 남자용품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오빠의 전화번호가 뜬다. 나는 벨소리가 울리기도 전에 재빨리 통화버튼을 눌렀다.     “울보, 뭐하니?”    “오빠생일선물 뭐 할까 고민 중인데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해.”    “내가 말하면 다 해줄 거야? 뭐든지?”     나는 고민도 없이 대답했다.    “응, 오빠라면 뭐든지 다 해줄게.”    “알았어, 그러면 지금 계란 볶음밥 해줘. 배고파.”    “지금 어떻게 해줘? 만나야 해주지.”    “혜정이가 그러는데 네가 한 계란볶음밥이 맛있다고 해서 달려왔어. 올라가도 돼?”     나는 부랴부랴 머리를 다듬고 화장도 못한 채 립스틱만 급히 바르고 문을 열었다.      오빠는 계란볶음밥을 진짜 맛있게 다 드셨다. 한 숟가락 뜨고는 김치를 얹어달라고 나한테 내밀면 내가 김치 한 조각 얹어준다. 그러면 볼이 미어지게 먹어준다. 대기업의 사장님답지 않게 장난꾸러기 아이 같다. 그릇을 비우고는“잘 먹었다.”하면서 휴지를 뽑아서 입을 닦더니 내 입을 빤히 쳐다본다. 나는 얼굴이 붉어진다.     “너, 나한테 잘 보이려고 급히 발랐구나. 옆에 묻은 거 봐.”라고 하면서 휴지로 닦아준다.      속마음을 들킨 나는 부끄러워 눈을 흘기면서 얄미워서 한매 때리려고 손을 들었다. 오빠는 치켜든 내 주먹을 꽉 잡아 내리고는 억지로 손가락을 펼쳐놓는다. 내가 안 펼치려고 아무리 악을 써도 오빠의 힘을 당할 수 없었다. 펼쳐진 손가락들은 부끄러운 듯 빨갛다. 오빠는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약지를 치켜들고 거기에 반짝거리는 보석반지를 끼워준다. 그리고는 나의 두 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받쳐 들게 하면서 묻는다.      “마음에 들어?”     오빠의 뜨거운 입김이 내 얼굴 전체에 펴진다.     눈과 눈, 코와 코, 입과 입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다.     나는 대답대신 천천히 입술을 오빠의 이마상처자국에 갖다 대고 정성껏 애무한다. 오빠는 그대로 나를 번쩍 안고 침실로 향한다. 나는 애무를 멈추지 않았고, 오빠는 걸음을 빨리하였다. 우리는 삼십여 년 만에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서로의 몸을 마음껏 탐닉하였다.    이 소설의 어떤 結   나는 선택이 제일 두렵다. 선택하기 위한 고민도 싫고, 틀린 선택을 했을 때에 감당해야 하는 후회라는 가슴을 뜯는 고통을 겪는 것도 싫다. 요즘에는 집을 장식하는 일로 바쁘다. 오빠네 집 이층 전부의 설계를 나한테 맡겼다. 앞으로는 내가 살 집이니까 마음에 들도록 고쳐보라고 한다. 일층에는 보모아줌마와 어머님이 거주하시고 2층에는 오빠가 거주하였고 3층은 혜정이 낙원이었다. 침실, 옷방, 공부방, 피아노실, 운동실 등 혜정이 맞춤형으로 설계되어 있었다. 나도 혜정이 3층을 참고로 우리의 신혼 방을 마음대로 꾸며보라고 하여 나는 소녀시절에 머릿속에서 그려보았던 꿈의 궁전을 현실로 만드는 일에 달라붙었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행복하다. 오늘은 주말이라 늦게까지 푹 자려고 하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혹시 혜정이 전화인줄 알고 펼쳐봤더니 입력되지 않은 전화번호인지라 나는 거절을 하고 다시 누웠다. 또 울린다. 다시 거절을 눌렀다. 또 다시 울린다. 조금 짜증이 났지만 요즘 장식하느라 주문한 물건이 많아서 택배회사 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전화를 받았다. 오빠네 집 식모아줌마인데 혜정이에 대해서 긴하게 할 말이 있으니 만나자는 것이었다. 커피숍에서 만난 그 여자는 집에서와 완전 다른 모습이었다. 긴 생머리를 어깨까지 드리우고 명품 옷에 장신구로 전신을 무장하였는데 식모가 아니라 귀부인 같았다. “놀라시네요. 심장에 문제는 없죠? 내 얘기를 듣고 까무러치지는 마세요.” 여자는 내 표정을 할끔 쳐다보고는 말을 계속한다. “혜정이는 내 손으로 다 키웠어요. 25살에 난 이 집 애기보모로 들어왔고요. 한 가족으로 살았어요. 나는 이 집을 위해 청춘을 다 바쳐 헌신한 사람이에요. 결혼도 하지 않고 내가 왜 그랬을까요?” 나는 눈살을 꼿꼿이 세우고 다그쳐 물었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용건만 얘기하세요.” 여자는 전혀 기죽지 않고 도고하게 말한다. “그럼 선택을 하세요. 청춘배상비 10만원을 지불하면 이 집에서 조용히 나갈게요. 안 그러면 혜정이 아빠와 나의 관계를 세상에 공개할겁니다.” 여자는 야비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본다. 나는 된 방망이에 얻어맞은 듯 머리가 떵해났다. 하지만 심리상에서 너한테 지지 않을 것이라는, 정신력으로 이기고야 말거라는 오기가 생겼다. 나는 커피 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떨리는 마음을 안정시켰다. 숨을 고르고 나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면서 말했다. “아줌마는 나한테 문제를 낼 자격이 없어요. 대답할 마음도 없고요. 하지만 나는 철호 오빠를 믿어요. 아줌마가 오늘 내로 그 집을 떠나지 않으면 무함 죄로 콩밥 먹으러 가셔야 될 거예요. 선택을 잘하세요. 커피 값은 내가 낼게요.” 말을 마치고 나는 표연히 그 자리를 떠났다. 커피숍 문을 밀고 나서는 순간 다리맥이 풀리면서 몸이 휘청거렸다. 택시를 탔다. 차에 오르자 설움이 북받친 나는 애처럼 엉엉 소리를 내며 울었다. 운전기사는 후시경으로 들여다보고는 아무 말이 없이 출발한다. 조금 진정이 되자 나는 눈물을 닦고 머리를 다듬고 운전기사에게 사과한다. “미안해요. 내 머릿속을 깨끗이 비울 수 있는 곳으로 가주세요.”   “가까운 곳으로 갈까요? 먼 곳으로 갈까요?” “선택권을 기사님한테 드릴게요.” “믿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운전기사는 즐겁게 웃는다. 내 머리는 하얗게 빈다. 아스팔트길을 지나 울퉁불퉁한 산길을 달린다. 차안은 무거운 정적이 흐른다. 무서울 것도 없고 아무데든 사람이 없는 곳에 조용히 혼자 있고 싶을 뿐이다. 숲이 우거진 나무숲 곁의 도로에 택시가 멈추었다. 기사는“조금 내려가면 시냇물이 있어요.”하면서 차문까지 열어준다. “언제 모시러 올까요?” 택시기사가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무성한 나무숲을 끼고 있는 도로변을 터벅터벅 걸었다. 한참을 걸으니 우거진 나무숲사이로 돌돌돌~ 소리를 내며 시냇물이 흐르는 낮은 계곡에 내려섰다. 계곡 양쪽의 우람한 나무사이에 매달린 그네가 외로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신을 풀밭에 벗어놓고 시냇물에 발을 들여놓았다. 찬 기운이 발바닥에 쫙 퍼지면서 머리가 금세 어떤 충격 따위를 망각하고 맑아진다. 나는 미끌거리는 돌 위를 조심조심 지나서 그네에 앉았다. 내 몸무게에 의해 흔들이그네는 좌우로 흔들린다. 발바닥에 매달렸던 물방울이 내 몸의 흔들림에 따라 흐르는 물에 똑똑 떨어진다. 내 몸에 잠재해 있던 나쁜 기운들이 분해되어 씻겨 내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삐죠롱, 삐죠롱 하는 종다리의 노랫소리가 귀맛 좋게 들려왔다. 머리를 들어보니 나무우듬지가 하늘을 가린 틈서리로 햇빛이 간신히 얼굴을 살짝 드러내며 나한테 윙크를 보내고 있었다. 너무 기분이 좋았다. 나는 길게 숨을 들이셨다. 시원한 자연의 공기는 폐까지 깨끗하게 정화시킨다. 나는 마치 구름을 타고 앉아 선경에 빠져버린 듯싶었다. 그네를 타는 공주는 꿈나라 여행을 시작하였다. 나무에 매달린 연을 내리려고 소녀는 힘겹게 바라 오른다. 연을 잡고 내려오려니 너무 무서웠다. 뛰어내리려니 너무 높고 미끄러져 내려오려니 발을 받칠 그루터기가 없다. 겁난 소녀는 엉엉~ 운다. 한 소년이 뛰어온다. 밑에서 두 팔을 벌리고 소리친다. “날 믿고 뛰어내려…” “무서워, 안 돼…” 울음소리에 놀라 눈을 뜬다. 꿈이었다. 하마터면 그네에서 떨어질 번 하였다. 날이 어두워졌다. 몸까지 으스스 추워나고 모기가 매달린다. 나는 그네에서 내려 무성한 나무숲을 끼고 있는 도로변을 터벅터벅 걸었다. 한참을 걸으니 도로변의 북쪽 수림으로 난 오솔길이 있었다. 나는 무작정 그 길로 들어섰다. 얼마 들어가지 않으니 우거진 나무숲사이로 한 폭의 그림처럼 안겨오는 산장 하나를 발견했다. 산장의 주인은 연로한 양주였다. 나는 사정이야기를 하고 산장의 작은 별채에 며칠 묵어가기로 하였다. 20여 평 되는 작은 집안에는 침대 하나와 그 옆에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책상위에는 구식 전하기 한 대가 유표하게 눈에 띄었다. 수화기를 들어보니 윙~ 하는 소리가 나는 걸 보아서 통화 가능한 것 같았다. 핸드폰 신호도 안 터지는 이 산중에서 유일하게 외부와 연계할 수 있는 도구인 듯싶었다. 나는 그대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눈을 감았다. 머리를 비워두니 잠이 몰려든다. 그냥 이대로 이곳에서 동면하고 싶다. 나는 먹지도 않고 그곳에서 삼일동안 자기만 했다. 그런데 날마다 첫날에 꾸었던 꿈과 똑 같은 꿈을 꾸곤 한다. 오늘은 뭐든지 좀 먹어야 할 것 같았다. 속이 비여서 그런 건 아닌가 싶어 할머니가 진심으로 챙겨주는 저녁을 감사한 마음으로 맛있게 먹었다. 식욕을 채우고 나니 몸에서 수많은 엔도르핀이 생성되면서 기분이 좋아지고 지금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인간은 살아가려면 본능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때에야 기사아저씨가 떠오른다. 내일은 기사아저씨가 데리러 올려나? 내가 기사아저씨를 믿은 건 정확한 선택이었을까? 타인을 믿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천성이고 믿음에는 모험이 따르기 마련이다. 나의 선택이 틀렸다고 해서 인생전체를 부정하는 건 옳지 않은 것이다.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이겨나가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인간의 바람직한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내일은 집으로 돌아가리라 작심하며 나는 홀가분한 심정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제발 그 꿈을 꾸지 말기를 바라면서… 철호 오빠가 두 팔을 벌리고 애타게 소리친다. “경옥아, 나만 믿고 내려와, 뛰어내려…” “안 돼, 무서워,” “그럼 내가 누울게, 내 몸 위에 뛰어내려…” 쿵~ 하고 나는 나무에서 뛰어내렸다. 갑자기 쿵쿵쿵~ 하고 문을 잡아 두드리는 소리에 나는 잠에서 깼다. 한밤중이었다. “경찰입니다. 최경옥 씨 안에 계세요.” 화닥닥 놀란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숨을 죽이고 가만히 있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우르르 사람들이 쓸어 들어왔다. 전등을 켜고 보니 경찰들이 운전기사와 함께 들어왔다. 영문을 모르는 나는 속옷 바람의 부끄러움도 모르고 맨발로 침상 곁에 내려서서 우들우들 떨고 있었다. 갑자기 한 사내가 목멘 소리로“경옥아.”라고 부르며 뛰어들어 와 나를 번쩍 안고 밖으로 나갔는데 그는 철호오빠였다. 철호오빠의 가슴에 안겨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니 놀랐던 내 가슴은 평정을 다시 되찾아 갔다. 꿈은 잠재의식이 주는 일종 암시이다. 나의 잠재의식은 철호오빠를 믿고 있었다. 철호오빠는 사흘 동안 밤잠도 못자고 날 찾아다니다가 나중에 실종신고까지 하게 된 것이다. 택시기사가 억울하게 용의자로 잡혀 들어가서 위치를 알려주었기에 찾아올 수 있었다. 그 번 풍파 끝에 고마운 택시기사는 철호오빠에 의해 나의 전문기사로 취직이 되었고, 겨우 두 달을 일하고 나한테 사기를 치려고 했던 식모아줌마는 나한테 안 먹히자 집의 장신구를 가지고 도망치려다 붙잡혔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많은 위기를 겪게 된다. 그 많은 위기 중에서 가장 힘든 건 믿음이 주는 불신이다. 만약 한 가정, 한 사회에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악몽의 시작일 것이다. 결혼도 초혼이든, 재혼이든 조건맞춤보다는 사랑을 토대로 서로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믿음도 일종의 능력이고, 모든 선택은 모험을 동반한다. 나는 나의 능력을 믿고 재혼이라는 아름다운 사랑의 선택을 다시 하게 되었다. 2023. 송화강 3기 발표
4    '동키 그랑데' 의 일생-허복순 댓글:  조회:18  추천:0  2024-12-08
    3. 실패한 도전   뜰에 소담하게 피어서 여름내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따스한 향기를 풍겨주던 꽃들도 뜨거운 햇빛의 세례에 지쳐 노긋한 몸으로 느슨하게 처져있다. 꽃은 자신의 짧은 인생을 아쉬워하고 있는 걸까? 토마토밭에는 순이 누렇게 죽은 잎사귀 사이에 벌레 주둥이가 얼룩덜룩 누런 지도를 그렸거나, 너무 익어서 벌겋게 갈라 터졌거나, 뒤늦게야 애기주먹만 한 파란 열매를 맺은 토마토가 보인다. 커서 익어보기도 전에 서리 맞고 쓰러질 운명을 그들은 알고나 있을까? 바자굽의 강낭콩덩굴의 그늘에는 누렁이가 뻘건 혀를 한발이나 내밀고 침을 뚝뚝 흘리며 숨을 씩씩 쉬고 있다. 누렁이는 뜨겁게 대지를 달구는 햇빛을 원망하는 걸까? 아니면 더위를 막아주지 못하는 작은 그늘을 지어주는 강낭콩넝쿨을 원망하고 있는 걸까?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짝짝이 다리로 태어났어도, 왼 다리가 오른 다리보다 한 뼘이나 작게 태어나 걸을 때면 엉덩이로 반원을 그리면서 걸어 다녔어야 했어도…….   애들이 술래잡기를 할 때 나는 술래 대신 “꽁꽁 숨어라 머리카락 보인다.” 만을 수백 번 외쳐 목이 다 쉬어버렸어도 놀이에 낄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고, 애들이 강가에서 물놀이를 할 때, 애들의 벗은 옷을 지켜주며 혼자 흙장난을 하면서도 그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고, 청춘남녀들이 짝을 지어 노천극장으로 밤영화 구경을 다닐 때 나는 결혼예단에 놓을 뜨개를 배우면서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었다. 이십여 가지에 달하는 나의 예단감이 거의 다 만들어지고 삯 받고 동네 처녀애들의 예단감까지 나의 앉은 키보다 더 높이 만들어져 가고 있을 때쯤 드디어 나한테도 혼삿말이 들어왔다.    아버지가 대신 만나보고 오케이를 하였다. 총각이 키는 160cm도 안 되지만 몸은 제법 탄탄했고, 얼굴도 준수하고 말도 잘하고 자기 식구만큼은 아끼고 굶기지 않을 것 같더라고 하였다. 그렇게 나는 시집이라는 걸 가게 되었고, 사지가 멀쩡한 사람이면 나한테는 과분하다고 생각하며 뛸 듯이 기쁜 건 아니지만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빨리 시집가서 엄마가 되고 싶었다.    남편은 아버지 말대로 특별히 키가 작은 것 외에는 모자라는 면이 없었다. 일 욕심도 많고, 부지런하였으며 생활을 알뜰히 잘 해나갔다. 다른 집과 다른 점이라면 경제권은 아내인 내가 아닌 본인이 가지겠다는 것이었다. 그 사람의 지나친 절약 정신 때문에 경제에 대해서만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것 같았다. 흠이라면 지나치게 모든 걸 절약하다 보니 생활의 불편을 느낄 때가 있었다.    금방 결혼했을 때, 아침에 먼저 일어나서는 세숫물을 떠 바치는 것이었다. 내가 한 다음에 그 물에 자기도 했고, 저녁에도 나에게 발 씻는 물을 떠다 바친 뒤 내 발도 씻겨주고 그 물에 다시 자기도 발을 씻었다. 해가 져 날이 어두워지면 바로 자자면서 이부자리를 펴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남편의 뜨거운 사랑에 행복의 눈물을 흘렸었다. 그 사랑은 이십 년이 되는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거기에 감동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그런 소행은 사랑보다는 물 절약, 전기 절약을 위해서였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집에는 새것이라는 것이 별로 없다. 먹는 것, 입는 것. 쓰는 물건 어느 하나도…… 나한테 그러는 건 참을 수 있는데 딸애한테까지 그러는 건 도저히 봐줄 수 없어 가끔 대들어보지만 내가 이기는 경우는 극히 적었다. 나는 일도 못하고 얻어먹는 신세니까 그런대로 살겠지만 내 자식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키우고 싶었다. 날마다 정화수를 놓고 빌었던 덕분인가 내 딸이 꿈 같이 북경대학에 붙었는데 안 보내겠다니 이는 내가 목숨을 걸고서라도 막아야 했다. 남편이 이토록 미워 보기는 결혼해서 처음이었다. 어떻게 하면 딸 학비를 마련할 수 있을까? 머리를 동이고 끙끙 앓았다. 목숨 걸고 애걸해볼까? 들어준다고 해도 학교만 보내놓고 계속하여 학비를 대줄 지는 미결이었다. 어떡하면 될까? 방법은 내가 돈을 버는 것 밖에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심했다. 외국으로 가야겠다고. 구걸도 외국이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평생 돈 한 푼 못 벌어본 나는 두려움에 얼음처럼 차가운 가슴을 붙안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슬로모션처럼 흘러가는 창밖 풍경을 굽어보며 나는 “안녕히!” 를 속살거렸다. 손도 흔들어 주었다.    내가 술래잡기를 하던 그 동네와, 흙으로 인형을 만들던 그 냇가와, 시집가던 날 언덕길에 서서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던 어머니의 무덤을 향해…….    연해도시에서 일하다 만난 외국인과 결혼하여 이곳에 정착한 소꿉친구 미화가 공항에 마중 나왔다. 눈물까지 지으며 반갑게 맞이해주는 미화가 너무 고마웠다.    짐을 풀자 바람으로 직업소개소에 등록하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야 주방에서 설거지밖에 더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써주지 않았다. 소개소 소장님한테 사정사정하여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고기집이었다. 거기서 불판을 닦는 일을 하였다.   작은 주방 안에서 일꾼들이 몸을 비비면서 움직였는데 내 걸음새가 뒤뚱거리다 보니 거치적거린다며 다음날부터는 오지 말라고 하였다. 다음날 찾아간 곳은 삼계탕집이었다. 뚝배기가 어찌나 무거운지 그걸 씻어 한 대야씩 담아서는 선반에 올려야 하는데 다리가 불편하다 보니 높은 곳에는 올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걸상 같은데 올라설 수도 없고 하다 보니 또 오지 말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물러설 수 없었다. 딸애의 학비와 5푼 이자로 받아온 돈이 이자가 불어나는데 내가 주저앉으면 딸애의 인생도, 우리 가족도 파산될 일이니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하느님이 무정하지 않으시다면 꼭 내려다보실 거라 생각하면서 다음날도 나갔다. 이번에는 자장면집에서 설거지를 하는 일이었다. 자그마한 가게에서 배달 위주로 하는 집이라 한 평 남짓한 주방에서 두 사람이 일하고 공간이 협소하다 보니 설거지는 주방밖에 따로 비닐로 막을 친 작은 공간에서 했다. 커다란 함지박 하나에는 세척제를 듬뿍 푼 뜨거운 물이 담가져 있고, 다른 하나의 함지박에는 깨끗한 물이 담가져 있었다. 산처럼 쌓인 자장면 그릇을 세척제를 푼 물에서 닦아낸 후, 깨끗한 함지박에 넣고 다시 한번 헹구면 설거지가 완성되었다. 자장면 그릇은 가벼워 쌓아 놓아도 깨질 염려가 없는 재질이라 나한테 딱 맞는 일이니 은근히 마음에 들어서 오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런데 한겨울에 밖에서 일을 하였기에 뜨거운 물을 부어 넣어도 일 분도 채 되지 않아 찬물이 돼버렸고 수도를 틀어서 헹구는 찬물함지박에 손을 넣으면 얼음장처럼 차가워 발끝까지 시려왔다. 게다가 세 시간이 넘어가자 얼굴은 뜨겁게 열기가 나고 발은 아예 감각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하루 열두 시간을 참고 견뎠다. 첫날 7만 원의 일당을 받아 쥔 나는 너무 기뻐 잠이 오지 않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내 손으로 벌어본 돈이었고, 이렇게만 견지한다면 살 길이 나질 것 같았다. 게다가 사장님은 열심히 잘했다며 내일도 나오라고 하였다. 그렇게 그 집에서 3개월을 일하고 봄이 되어 날씨가 괜찮아지면서 희망이 보인다 했더니 그만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가게 되었다.   눈을 떠보니 미화네 집이었다.    “어, 눈을 떴네. 다행이다, 너 바보니? 발이 이렇게 될 때까지 가만 내버려뒀어?”   미화는 눈물이 글썽해서 나무람하였다. 동상을 입은 발이 볼품없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빨갛게 익어버린 발 군데군데에는 허옇게 물집이 져 있었고, 꽁꽁 동인 천 사이로 뻘건 피고름이 흘러나와 있었다.    “별로 아프진 않았어. 근데 자꾸 너한테 신세만 지니 미안해서 어떡해?”   “지금 신세지는 게 문제니. 더 미루었다가는 발을 잃을 수도, 심지어 죽을 수도 있단다. 나을 때까지 꼼짝 말고 우리 집에 있어라. 다음 일은 일단 몸을 춰세운 후에 고민하자. 다른 생각하면 안 돼. 알았지. 너 죽으면 네 딸은 어떡할 건데…….”   미화는 다짐을 받듯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러마고 머리를 끄덕이면서 미화의 손을 꼭 잡았다. 이 은혜를 뭐로 갚아야 하나, 절대 잊지 않으리라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7. 깨어진 꿈   나에게 불면의 하룻밤이었다. 옆에 누워있는 아내가 송충이처럼 끔찍스럽고 싫었다. 나는 이혼을 생각했다. 그런데 재산 분할이 문제였다.    재산이라야 아내가 보내온 돈이 전부인데 그것은 이미 집 사고, 인테리어하고, 이잣돈을 물다 보니 다 없다고 했으니까 나눌 재산이라야 집이다. 집을 10만 위안에 샀으니까 5만 위안 정도 주고 합의이혼을 하고 내보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5만 위안을 어떻게 해결한담? 지금은 손에 돈도 없지만 있다고 해도 자기 주머니에 들어온 돈을 다시 꺼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 머리를 굴리고 굴려도 5만 위안을 해결할 방안이 잘 떠오르지 않아 나는 잠을 설쳤다.    아내가 일찍 일어나 아침 시장에 나간 후에야 나는 시름 놓고 새벽잠에 들었다. 갑자기 “오빠!” 하며 댄스 파트너가 내 방에 들어오며 흔들어 깨운다. 비몽사몽 간에 사랑하는 그녀를 보자 나는 습관적으로 이불 속으로 잡아끌었다. 우리 둘은 떠오르는 아침 해와 함께 뜨겁게 온몸을 달구어 갔다. 온 밤 막혔던 골물이 이제야 분출구를 찾은 듯 힘차게 내달린다.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긴 채 우리는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른 채 정열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갑자기 “뭐하는 짓이야!” 하는 새된 소리에 놀라 우리는 동작을 멈추었다. 채소를 담은 주머니를 땅에 팽개치고 아내는 달려들어 나의 머리를 쥐어뜯고 얼굴을 손톱으로 긁으며 악을 썼다. 나는 아직도 잠을 덜 깬 듯 상황파악을 못한 채 아픈 줄도 모르고 가만히 당하고 있었다. 그 사이 옷을 주어입은 파트너는 슬며시 도망치려고 일어섰다. 아내는 어디서 그런 힘이 생겼는지 자기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파트너를 넘어뜨리고 깔고 앉아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한생을 얌전한 고양이처럼 소리 한 번 크게 내지 않고 자기주장 한 번 내세우지 않은 채 남편이 하자는 대로 따라주기만 하던 그녀가 오늘은 포효하는 암범 같았다.   뭔가 찔리는 데가 있어서 그런지 파트너는 전혀 기운을 쓰지 못하고 그저 “누구세요? 왜 이래요?” 하며 소리만 지를 뿐 아내의 기세에 눌려 당하기만 하고 있었다. 그때에야 제정신이 든 나는 마구 날뛰는 아내의 손목을 잡았다. 아내가 손을 홱 밀치는 그 서슬에 귀뺨을 얼얼하게 얻어맞은 나는 갑자기 화가 욱하고 올라왔다. 나는 아내의 머리채를 확 낚아채고 귀뺨을 세차게 때렸다. 저만치 내팽개쳐진 아내는 귀뺨을 감싸 안고 불이 이는 듯한 눈길로 나를 쏘아본다. 빨간 코피가 뚝 하고 한 방울 떨어지더니 이어 줄줄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제야 빠져나갔던 혼이 돌아온 듯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더니 피가 흐르는 줄도 모르는 양 말 한마디 없이 캐리어를 끌고 맥없이 집 문을 나선다. 나는 떠나가는 아내의 뒤뚱거리는 뒷모습을 멀거니 지켜보기만 했다.    탕! 하는 육중한 문 닫기는 소리가 나의 마음을 더 무겁게 짓누른다. 이어 조용한 침묵이 흐른다.    “왜 갑자기 새벽에 찾아 왔어?”   나의 말에 그녀는 그제야 악몽 같은 시간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듯 당황한 표정으로 말한다.    “우리 조카가 애 데리고 말도 없이 집 나갔어요. 어떡해요? 우리 돈…….”   나는 몸을 벌떡 일으키며 소리 질렀다.   “뭐라고? 돈 갖고 튄 거 아니야?”   “그건 아닐 거예요. 걔 나쁜 사람은 아니에요. 회사가 파산됐다나 뭐 그러는 것 같았어요. 전화하는 걸 들으니까.”   “그런 말 왜 인제야 해? 내가 말해두는데 그 돈 찾아오기 전에는 우리 집에 얼씬도 하지 마. 썩 꺼져.”   나는 손에 잡히는 대로 그녀를 향해 뿌렸다. 눈에서 불이 뚝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갑자기 탁상등을 추켜들고 그녀의 머리를 향해 돌진했다.    “개 같은 년, 너 돈 못 가져오면 죽여 버릴 거야.”   그녀는 머리를 감싸 쥐고 그 방을 뛰쳐나갔다. 나는 분하고 억울해서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아직 빨갛게 아물지 않은 상처 자리에 스며들면서 짜릿한 아픔을 더해준다.    갑자기 일어난 엄청난 이 사태들을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나는 머리가 빠개지듯 아파났다. 나는 “내 돈, 내 돈!……” 을 중얼거리며 우리에 갇힌 사자마냥 집안을 쉼 없이 맴돌았다. 나는 이 벽에 머리를 쪼아보고, 또 저 벽에 머리를 박으면서 다음날 아침까지 으르렁거리다가 지쳐서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멍하니 천정을 쳐다보았다.  이 소설의 어떤 结   ‘동키 그랑데’ 는 죽었다. 그의 아내와 딸은 그의 죽음을 별로 슬퍼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의 죽음에 가족이란 인연 때문에 그의 후사를 잘 치러준 것뿐이다.   ‘동키 그랑데’ 의 아내는 “당신은 절대 꾀를 내지 않는 당나귀처럼 열심히 삼륜차를 끌었지만 당신은 평생 돈밖에 모르는 가난뱅이에 그랑데 영감 같은 수전노였어요. 딸의 학비에까지 이자를 붙여 먹었던 당신의 돈 5만 위안은 저희가 유산으로 남기지 않고 저승길 노자로 함께 보내드릴게요. 안 그러면 당신은 또 그 이자 받으러 올 것이잖아요. 부디 그 돈으로 저승에서 이자를 많이 굴려 대부가 되어도 귀신들에게 선행이라도 좀 베풀길 바랄게요. 그렇지 않는다면 당신은 저승에서도 버림받을 거예요.”   ‘동키 그랑데’ 의 아내는 그의 골회와 함께 그가 남긴 5만 위안의 현금을 함께 묻으며 진저리를 떨었다.   ‘동키 그랑데’ 의 딸은 “그동안 아버지가 저에게 한 짓은 너무 미웠지만 이제 다 용서할게요. 우린 앞으로 잘 살거니 부디 걱정은 마시고요.” 라고 하면서 그의 무덤에 흙을 얹어주었다.    2024. 송화강 1기 발표
3    춤추는 백조-허복순 댓글:  조회:13  추천:0  2024-12-08
1    해산일이 이제 한달 남았다. 은령이는 해산후 산후조리원으로 갈 생각이였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본인이 직접 산후조리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십년 동안 하던 보모일도 그만두고 귀국하겠다고 하였다. 리유는 외손자들도 다 키워주었는데 하나밖에 없는 친손자를 남의 손에 맡길 수 없다는 것이였다. 적어도 애기를 돌까지 키워주고 다시 떠나겠다고 하였다. 은령이는 어떻게든 그런 시어머니를 말리고 싶었다. 은령이는 발레강사이다. 몸매관리가 중요한 직업이라 전문인의 케어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름 대로의 계획이 있었다. 첫째는 순산해서 몸에 칼자국을 남기지 않기. 둘째는 가슴의 형태를 유지하기 위해 모유수유를 하지 않기. 셋째는 해산후 운동을 통해 빠른 시간내에 몸매를 회복하기. 이러한 계획을 실천함에 있어서 시어머니는 방해만 될 뿐 도움이 될 리가 없다. 오히려 시어머니가 경제적인 지원을 해준다면 그것이 진정한 도움이 될 것이다. 시어머니를 설득할 수 있는 사람은 남편뿐이다. 은령이는 시어머니가 귀국하지 않도록 전화를 해서 막으라고 남편을 닥달하였다. “어머니, 은령이 해산 때문이라면 안 오셔도 돼요. 지금은 다들 산후조리원에 가고 은령이도 그걸 원해요.” “야, 그건 량쪽 부모가 안 계시거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어쩔 수 없어 가는 거지. 시엄마가 있는데 왜 거기 가겠니? 들으려니 돈도 몇만원씩 든다더구만…” “돈은 걱정 안하셔도 돼요. 장모님이 못 오셔서 조리원비용을 대주신다고 하셨어요.” “돈도 그렇지만 거기서는 영양식단이다 뭐다 하면서 돼지발쪽과 같은 젖이 잘 나는 음식은 안 먹이고 그저 야채만 먹인다더라. 그러니 애기 엄마들이 젖이 안 나와서 애한테 분유 먹이고 그런다더라. 애는 그래도 혈육이 봐야 진심이지. 남을 어떻게 믿겠니?” “어머니, 지금은 옛날과 달라서 조리원 시스템이 잘돼있어 그런 일 없어요. 그리고 본인이 산후조리원 가고 싶다잖아요.” “솔직히 내가 해주고 싶어서 그런다. 딸네 애들은 셋이나 봐주고 하나밖에 없는 친손자를 안 봐주면 말이 되겠니? 나이 들어서 오래는 돌봐주지 못하지만 산후조리까지 안해주면 내가 이다음 며느리 볼 면목이 없어서 그런다. 마지막에는 그 며느리 손에서 밥 얻어먹어야 할 거 아니니? 날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말리지 말아. 비행기표나 빨리 끊어줘.” 남편을 내세워 시어머니를 설득하려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러나 은령이는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시어머니가 오더라도 산후조리원으로 갈 것이다. 그러려면 남편을 설득해야 했다. “오빠, 몸매가 내 생명인 거 알지? 내가 빨리 몸매를 회복하고 학원에 나가야 우리 집이 사는 거야. 내가 한달 이상 학원에 안 나가면 애들 다 뺏겨. 우리보다 규모가 큰 학원이 날마다 일어서는데 그 때 가서는 어쩔 거야? 집 대출, 차 대출, 학원 임대료까지. 게다가 애가 태여나면 양육비도 엄청 나올 건데 오빠 혼자 수입으로는 안되잖아. 산후조리원 프로그람 좀 봐, 어머님이 해줄 수 있는 거 있나. 한가지라도 있으면 내가 말을 안하겠다.” 은령이는 프린트해놓은 산후회복 프로그람표를 꺼내들고 남편 앞에 내밀었다. “오빠가 말해봐, 어머님이 해줄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한참 들여다보던 남편은 찾았다는듯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있구만. 영양조절과 정서조절은 엄마가 해줄 수 있지 않을가?” 은령이는 신대륙을 발견하듯 기쁨이 흐르는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비꼬듯이 말했다. “모유수유도 안할 건데 돼지발쪽이나 곰탕을 먹는다는 건 나한테 고역일 거고, 그러느라면 나의 정서는 바닥을 칠 건데 정서조절이 될 수 있겠어?” 시무룩해진 남편은 힘없이 대답한다. “알겠어요, 우리 공주님. 어머니가 오시면 제가 잘 말씀 드려볼게요.” “오빠는 완전히 내 편이지? 그 때 가서 또 다른 소리 하기 없기다.” 은령이는 한번 더 그루를 박아놓고는 기분 좋게 웃었다. 다른 의견을 세우다가도 은령이가 고집하면 포기가 빠른 남편이다. 은령이는 주견이 세고 강한 편이였다. 그러나 그건 겉보기만 그렇지 사실은 마음이 여린 녀자였다. 반면 남편은 어려서부터 누나 두명의 기에 눌려서인지 성격이 온순했다. 그래서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보일 때가 많고 남의 요구를 잘 거절하지 못했다. 남편은 은령이의 용기와 결단력과 독립적인 면이 마음에 들었을 거고 은령이는 남편의 온화하고 배려심 많은 성격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사랑은 서로 보완해주며 각자 모서리를 깎아내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 2 결국 시어머니가 왔다. 무거운 캐리어 두개를 끌고 커다란 가방을 메고 들고 그렇게 온몸을 짐가방으로 무장한 채 활기차게 왔다. 손자를 볼 마음에 기분이 한결 들떠있었다. 얼굴에는 형언할 수 없는 설렘이 가득했고 눈에는 기쁨과 기대가 가득차있었다. 아마도 외손자들보다는 친손자가 더 반가운가 보다. 짐을 풀어놓으니 가관이였다. 유아용품에서 산모용품, 산모 몸조리에 필요한 주방용품까지 없는 것이 없었다. 시어머니는 거실 가득 벌려놓은 짐꾸레미들을 만족스러운듯이 둘러보며 설명을 하기 시작하였다. “물론 너희들도 다 준비했겠지만 이건 할머니의 성의다. 그리고 이 몇가지는 내가 특별히 산후도우미를 하는 분을 찾아서 문의하고 산모한테 꼭 필요하다고 해서 산 거야.” 시어머니는 무릎걸음으로 엉기적거리며 기여가 짐무데기 속에서 보따리 하나를 찾아들고 펼쳐보이였다. “이건 수유브라라고 하는 건데 가슴을 지지해주고 처지는 것을 방지해주는 거다. 우리 은령이는 무용수니까 몸매가 중요하잖아. 또 산모의 젖이 새서 옷을 적시는 경우도 방지하고 가슴이 딱딱한 물체에 스치며 생기는 아픔도 예방할 수 있는 거다. 그리고 이건 유축기인데 엄마가 젖이 너무 많아 아기가 다 먹지 못하는 경우 유축기를 사용하여 젖을 빨아내면 젖가슴이 뭉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단다.” 시어머니는 잊어버릴가 봐 메모해둔 종이장을 꺼내들고 신나서 손짓까지 하면서 설명하였다. 이런 시어머니의 성의에 찬물을 끼얹을가 봐 은령이는 송구스러웠다. 모유수유를 하지 않을 것이니 실용가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은령이의 마음을 알 리 없는 시어머니는 계속하여 다음 물건을 소개하였다. “이건 산육용 패드란 거고 또 이건 허리 패드다. 산육용 패드는 산모의 분비물이 침구를 오염시키는 것을 방지할 수도 있고 산후출혈을 관찰할 수도 있고 세균감염도 방지할 수 있어 산모의 건강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구나. 허리 패드는 산후허리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다. 어때? 이런 것들은 너희들이 준비 못했지?” 시어머니는 소리 내여 설명서를 읽고는 만족스러운듯 환하게 웃으신다. 손자뿐만 아니라 며느리인 자신의 건강까지도 챙겨주는 시어머니가 너무 고마워 은령이는 마음이 뭉클해났다. “어머님, 고맙고 미안해요. 그래도 전 어머님 의사를 따를 순 없어요. 죄송해요.”라는 말을 은령이는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산후허리통증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그래서 상철이를 낳은 거야. 산후병은 산후에 치료 받아야 한다고 해서… 안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일할 수 없지. 그런데 넌 순산할 거지?” “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 할 수만 있다면…” “그래. 생각 잘했다. 그런데 우리 친구 며느리는 점 보고 날자를 받아서 수술을 받는다고 그러더라. 산후통증이 무섭고 순산을 하면 관절들이 다 갈라져서 몸매가 망가진다나. 그 집 며느리는 모델이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그랬어. 우리 며느리는 발레무용수인데도 애를 생각해서 순산을 한다고. 그 친구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주었다. 네가 못 봐서 그렇지 그 벌레 씹은 듯한 표정을 보면서 내가 얼마가 고소했는지 알어? 흐흐흐…” 시어머니는 소리 내여 웃는다. 배려심 많고 마음씨 착한 사람으로 알려져있는 시어머니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며 즐거워한다. 그 웃음은 사고를 거치지 않은 행동으로 인간 본성의 자연스러운 발로일 것이다. 인간은 리기적인 동물이니까. 그러나 시어머니는 실언하였다. 은령이한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한 것이 되였다. 은령이는 아차 싶었다. ‘그래, 주역을 보면 출생일과 사람의 운명이 련관이 있다고 했지. 그걸 왜 생각 못했을가? 그래, 좋은 날자를 받아서 수술 받아야지. 몸매도 망가지지 않는다잖아.’ 은령이는 슬그머니 순산에서 제왕절개수술로 생각을 바꾸었다. 수소문 끝에 유명한 주역선생을 찾아가서 거금을 들여 길일을 받았다. 시어머니한테는 출산전검사를 받으러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병원으로 찾아갔다. 일단 검사를 받은 다음에 볼 일이라고 생각하였다. 검사결과 의사선생님은 태아가 작아서 아직 절개수술을 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애들은 하루볕이 새롭다는데 작은 아기를 일찍 태여나게 했다가 혹시라도 건강에 문제라도 생기면 안될 일이였다. 거금을 들인 길일은 그렇게 허무하게 놓쳐버렸다. 하지만 제왕절개수술로 해산하려는 은령이의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은령이는 출산신호만 오면 뼈마디가 벌어지기 전에 즉시 수술을 받을 속셈으로 집에 가서 기다려도 된다는 의사의 말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병원에 입원하였다. 시어머니에게는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서 관찰을 받아야 한다고 또 거짓말을 하였다. 영문을 모르는 시어머니는 지극정성으로 하루 세끼 산모밥을 해서 집과 병원 사이를 오갔다.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이는 시어머니가 불쌍해보이기도 하였다. 이후에 시어머니에게 잘해드려야지 하고 생각하면서 은령이는 미안한 마음을 달래였다. 예정일을 4일 앞두고 새벽부터 산통이 시작되였다. 은령이는 신호가 오자 즉시 간호사를 불러 절개수술을 받을 의향을 밝혔다. 그러나 수술을 하려면 보호자 서명이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제야 남편한테 전화를 하였다. 당장 빛의 속도로 달려오라고 말하였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시간이 지난 뒤였고 하늘땅을 뒤엎을 듯한 통증이 소나기처럼 뼈의 마디마디를 갉아내기 시작할 때였다. 허둥지둥 병실에 들어선 두 사람을 보고 은령이가 소리를 질렀다. “왜 이제야 와? 빨리 의사를 불러와. 수술할 거야.” 남편은 고통으로 범벅이 된 은령이의 얼굴을 보더니 당황한 표정으로 급히 몸을 돌려 병실을 나갔다. 의사는 잠에서 금방 깬듯 부석한 눈을 비비며 병실로 들어와 검사를 하였다. “자궁이 다 열리려면 아직 멀었어요. 두시간후에 다시 부르세요.” 은령이는 애원하듯 말했다. “지금 절개수술을 해주세요. 저 순산을 원하지 않아요.” “순산이 가능한데 이제 와서 수술을 받겠어요? 할 수는 있지만 산모가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가족 분들이 토론하시고 다시 결정해주세요.” 의사는 이 한마디를 남기고 유유히 병실을 떠났다. “아니, 힘들더라도 조금만 참아. 순산이 되는데 왜 수술하겠어? 다들 그러면서 엄마가 되는 거야.” 시어머니의 말에 은령이는 대꾸도 않고 남편을 향해 명령하였다. “빨리 가서 싸인하고 나 수술시켜줘.” 남편은 시어머니와 나의 눈치를 살피면서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그 자리에서 맴돌며 어쩔 바를 몰라하였다. 갑자기 온몸에 지진이 일어난듯 찢기는 통증이 몰려와 은령이는 저도 몰래 “아—” 하고 높고 긴 신음소리를 토해냈다. 온몸은 용광로에 던져진 남비가 오그라들듯 아무렇게나 마구 구겨지더니 드디여 뜨거운 액체가 아래로 콸— 쏟아져나왔다. ‘아— 죽는구나. 죽는다는 게 이렇게 한순간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은령이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산모가 눈을 움직였어요. 산모님, 정신 차리세요. 아기 머리가 나오고 있어요. 조금만 힘을 주세요.” 땀으로 얼룩진 얼굴로 초조하게 은령이를 내려다보는 애된 얼굴의 간호사다. ‘아직 죽지 않았구나. 애를 낳는 중이였구나.’ 그런데 힘을 주려고 해도 힘이 없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이러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 든다. “안되겠어요. 자궁파렬이 너무 심해요. 이러다간 산모까지도 위험할 수 있어요. 빨리 수술을 합시다.” 의사의 단호한 말과 함께 다시 분주히 움직이는 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려온다. 은령이는 무거운 눈꺼풀을 이기지 못한 채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3 긴 꿈에서 깨여난듯 은령이는 갑자기 눈이 떠졌다. 점차 흐려진 시야가 뚜렷해지며 자신이 익숙한 얼굴들에 둘러싸여있음을 발견하였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그녀를 얼마나 걱정하였는지 이야기하고 있었다. 은령이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칼로 에이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파고들었다. 숨 쉴 때마다 수백만마리의 개미가 상처를 물어뜯는 듯한 고통이 그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계획은 결코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다. 길일도 지나치고 몸이 찢기는 듯한 순산의 고통도 겪었다. 은령이는 복부에 긴 칼자국이 생겼고 하부에 봉합수술자국이 생겼으며 마음에도 깊은 상처가 남았다. 죽음의 신에게서 도망쳐 그녀가 얻은 것은 앙앙 울어대는 피덩이뿐이다. 고대 신화에 나오는 릉지처참을 당한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이렇게 엉망진창이 된 몸으로 세상을 살아갈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해났다. 새 생명을 얻은 기쁨보다는 자신을 잃어버린 듯한 슬픔이 더 컸다. 차라리 죽었더라면 더 좋았을걸… 세상만사가 귀찮았다.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아버렸다. “김은령님, 아기 대면시간입니다.” 간호사의 다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은령이는 고통스러워 얼굴을 찡그리며 눈을 떴다. 간호사는 조심스럽게 보에 싼 작은 생명을 그녀 옆에 뉘인다. 코를 쿡 찌르고 들어오는 아기냄새에 그녀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수술실에서 들었던 “공주입니다.”라는 말만 어슴푸레 기억나고 지나친 고통 때문에 아기 얼굴도 제대로 보지 못했었다. 새하얀 보에 싸인 어린 생명은 크고 동그란 눈을 슴벅거리며 주변의 모든 것을 관찰하는 듯하였다. 호기심 많고 활동적인 건 엄마를 닮은 것 같았다. 검고 숱 많은 머리는 아빠를 닮은 것 같았다. 꽃잎처럼 작은 손을 허우적거리며 아기는 이 없는 이몸을 드러내며 웃는다. 은령이는 무장해제 당한듯 온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얼굴에 웃음이 피여오른다. 코를 아기 가까이에 대고 냄새를 킁킁 들이켰다. 아기의 냄새는 은령이에게 너무나 익숙한 본인의 냄새였다. 자신의 분신임을 확인시켜주는 듯하였다. 은령이는 자기를 똑같게 닮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새로운 생명을 바라보며 자연의 위대함과 생명의 기적을 느꼈고 생명의 아름다움과 세상의 따뜻함을 다시 인식하게 되였다. 퇴원후 은령이는 곧바로 산후조리원으로 입소하였다. 기어이 순산을 권하여 며느리가 고통을 겪는 것을 목격한 시어머니는 그것이 자기 잘못이라며 미안해하였다. 그 미안함 때문에 산후조리원으로 가려는 은령이를 막지 못하였다. “그래, 몸도 많이 상했는데 전문인의 간호를 받는 게 좋겠다. 대신 영양식은 내가 책임질게. 한달만 지나면 애 물기가 빠질 거고 그 때면 돌보기도 훨씬 쉬워질 거야.” 시어머니는 이렇게 말을 바꾸었다. 완전히 바뀐 이 주장에 진심이 얼마나 차지할가? 변덕스러움도 인간의 본성이다. 그것은 부동한 사물과 환경에 의하여 변화할 수밖에 없는 생존본능일 것이다. 카멜레온처럼. 아파서 죽는다는데 녀자라면 다 겪는 일이라는 몰인정한 발언을 한 시어머니한테 은령이는 원망스러운 마음이 없지 않았다. 친정엄마라면 아마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서운함이 남아있었다. 산후조리원에서의 생활도 만만치가 않았다. 몸을 조금만 움직여도 상처자리가 아파났고 하혈이 계속되여 생리대를 자주 바꾸어도 옷이나 누운 자리에 자국을 남기였다. 그 때에야 시어머니가 마련한 산육용 패드와 허리 패드가 생각나서 꺼내 사용하였다. 간호사도 어디서 산 거냐며 희한해하였고 입소문이 나서 다른 산모들도 뒤늦게나마 장만하느라고 은령이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좋은 시어머니를 만났다며 부러워하면서 대신 자기들의 시어머니 흉을 한참씩 보고 갔다. 상처가 조금씩 아물어가서 좀 살 만하다 했더니 젖이 불어오면서 또 다른 고통이 시작되였다. 젖이 돌아선 것이였다. 생각보다 량이 많아 애가 빨지 않아도 저절로 뚝뚝 떨어져 부지런히 닦아내도 웃옷을 적시였다. 모유수유를 안하고 싶었다. 젖이라도 안 나오면 구실도 좋으련만 반갑지 않게 이렇게 잘 나올 줄이야. 남들의 눈 때문에 애한테 젖을 물리는 척이라도 해야 될 것 같아 은령이는 젖을 물리려고 아이를 가슴에 안았다. 그런데 은령이의 유두는 안으로 옴폭 패여들어간 함몰유두였다. 애기는 입을 오물거리며 젖꼭지를 찾아 가슴 주위를 더듬었다. 한참을 헤매던 애기는 배도 고프고 화도 났는지 젖꼭지를 찾는 걸 포기한 채 앙앙 울어댔다. 게다가 며칠간 크고 물렁물렁한 젖병을 빨아온 터라 갑자기 작고 빨기도 힘든 엄마의 젖꼭지를 빨려고 애쓰지도 않았다. 은령이는 함몰유두를 주신 친정어머니한테 새삼스레 감사를 드리면서 얼씨구나 하며 모유수유를 자연스럽게 포기하였다. 애를 먹이지 않는데도 젖은 쉼없이 흘러내렸다. 이번에도 시어머니가 사준 수유브라가 큰 작용을 하였다. 시어머니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며칠 지나자 젖가슴이 뭉치면서 돌처럼 딴딴해졌다. 숨을 쉴 때마다 젖가슴이 확장되면서 고통에 신음소리까지 터져나왔다. 살짝 스쳐도 숨 넘어가게 아픈데 손으로 주물러서 딴딴한 것을 풀고 젖을 짜내야 했다. 은령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를 악물고 시어머니가 마련해준 유축기로 젖을 빨아내였다. 많이 빨아내면 젖이 다시 돌 수 있으므로 적당량만 뽑아내야 했다. 뽑아낸 모유를 애한테 먹일가 고민하다가 애가 모유맛을 들이면 분유를 먹지 않을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젖을 뗄 수 없을 것 같아서 은령이는 다 버렸다. 이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시어머니는 날마다 족발이며 사골탕이며 물고기탕이며 산모에게 좋다는 음식을 번갈아가며 만들어서 먼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산후조리원으로 들고 왔다. 먹을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고 못 먹는다고 사정을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시어머니의 정성으로 주변 산모들한테서 사랑해주는 시어머니를 만나서 좋겠다는 칭찬을 받았을 뿐이다. 한달 동안 다른 집 시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은령이는 시어머니가 더욱 고마웠다. 첫인사를 드리러 시집에 갔을 때 아버님이 돈봉투를 주었는데도 조용히 따로 돈봉투를 챙겨주면서 이쁜 옷 사입으라며 환하게 웃어주던 일, 결혼식에서 세트로 입자며 시골에 계시는 은령이의 부모님 복장까지도 같이 맞춰주던 일, 발레를 추는 며느리 발이 걱정되여 외국제 발안마기를 사다 주던 일, 며느리 생일 때마다 류행하는 금장신구를 보내주던 일, 시댁 친척들 대소사 축의금은 걱정 말라며 알아서 다 해주던 일… 그렇게 시집 가문에서 은령이의 위망을 높여주어 별로 한 것도 없이 칭찬 받는 며느리로 만들어주시였고 해산한다고 모든 일을 제쳐놓고 일자리마저 포기한 채 외국에서 달려와주신 시어머니였다. 그런데 시어머니를 속이고 모유수유를 안하려고 애쓰는 자신을 생각하며 은령은 자책을 느꼈다. 그래도 앞으로를 위해서 적당한 희생은 불가피적이라고 생각하며 은령이는 자아위안을 하였다. 일주일 정도 지나니 젖은 자연스럽게 가버렸고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산후조리원에서 나가는 날 차 안에서 은령이는 시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드렸다. 그리고는 속삭이듯 말했다. “어머니, 앞으로 제가 잘할게요. 고마워요.” 시어머니도 은령이의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칼을 쓸어올리며 애틋하게 말씀하셨다. “얼굴이 축 난 거 봐, 고생했다. 녀자로 태여난 게 죄지.” 진심 어린 시어머니의 따뜻한 말에 은령이는 눈물을 흘렸다. 앞으로 시어머니한테 효도하는 착한 며느리가 되리라 마음을 다지였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하늘의 구름처럼 끊임없이 그 모양을 바꾸며 변한다는 것을 멀지 않아 깨닫게 되였다. 삶은 끝없는 거짓과 진실의 공방 속에서 설명할 수 없는 고통과 무력감을 느끼게 한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부단히 변하고 변하지 않는 것은 변화 그 자체뿐이다.   4   젖과의 전쟁을 하는 사이 어언 한달이 지났다. 난산이여서 그런지 은령이의 몸은 회복이 늦었다. 소변이 잦아서 자주 화장실을 다녔는데 한번씩 자리에서 일어날 때마다 허리가 끊어지듯 아팠다. 조금만 힘을 써도 소변이 찔끔찔끔 흘렀다. 산후조리원에서 한두달 더 지내고 싶었으나 날마다 찾아오는 시어머니가 안타까워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집에 돌아온 은령이는 시어머니에게 애기 분유를 먹이는 량에 대해 먼저 알려주었다. “먼저 분유를 한숟가락 평평하게 떠서 젖병에 넣어요. 다음 물온도가 40도를 유지하게 정해놓은 보온병의 물을 젖병에 부어요. 젖병에 100이라고 쓴 금이 있는 데까지 물을 부은 후 잘 흔들어서 먹이면 돼요.” 시어머니는 알았다는듯이 머리를 끄덕이더니 전혀 다른 물음을 제기하였다. “근데 왜 분유를 먹이니? 내가 그렇게 젖이 잘 난다는 음식을 매일같이 가져갔는데 젖이 안 나오니?” 은령이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아니요. 젖이 잘 나왔어요. 근데 난산이라서 그런지 5일후에야 돌아서더라고요. 그사이에 분유를 먹였더니 애가 젖을 안 빨아요. 어머니, 저기 젖병 꼭지를 봐요. 얼마나 커요. 거기에 습관돼서 젖을 빨려면 힘드니까 애가 안 빨아요. 글쎄 어쩌면 갓난애들도 힘든 걸 벌써 싫어하더라고요.” 켕기는 데가 있어서 그런지 은령이는 횡설수설 말이 길었다. 시어머니는 머리를 갸우뚱하며 젖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더니 뭔가 생각난듯 은령이를 유심히 쳐다보며 되물었다. “내가 유축기를 보내주었는데 그걸로 짜서 모유를 보관했다가 다시 먹이는 방법두 있잖니.” “그게요, 어머니, 랭장고에다 보관했다 먹이니까 애가 설사를 하더라고요. 그렇게 먹이다 안 먹이다 하니까 젖이 가버렸어요.” 시어머니의 얼굴색이 변하였다. 젖이 많이 나오라고 한달 내내 고생한 것이 헛수고로 되였으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은령이의 거짓말을 믿는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지는 모르지만 모유수유를 안하는 것은 그렇게 무사히 지나가버렸다. 며칠후 애기의 자지러진 울음소리에 은령이는 잠에서 깨여났다. 애기는 입술이 빨개서 앙앙 울고 있었고 시어머니는 젖병을 들고 어쩔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어머니, 너무 뜨거운 걸 먹이셨네요. 제가 온도 맞추어놓은 물로 하시라고 했는데 끓인 물로 하신 거예요?” “아니, 그게 너무 미지근해서 분유가 제대로 풀리겠나 싶어 내가 뜨거운 물로 풀었지. 아니, 손등에 떨구어보니 괜찮던데…” 말을 마치고 시어머니는 젖병을 입에 물고 쪽 빨았다. 은령이는 저도 몰래 목소리가 높아졌다. “어머니, 그걸 빠시면 어떡해요? 그리고 내가 알려주는 대로 하면 되는데 왜 본인 생각 대로 하시는가 말이예요.” 은령이는 아픈 허리도 돌보지 않고 벌떡 일어났다. 찡— 하는 아픔이 발끝까지 전해지며 미간이 찌프러졌다. 젖병을 시어머니 손에서 나꿔들고 싱크대로 향했다. 뚜껑을 열고 우유를 싱크대에 부어버린 후 꼭지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그후로 시어머니는 다시는 분유를 건드리지 않았다. 낮이나 밤이나 서너시간 꼴로 일어나 분유를 풀어먹이느라 은령이는 늘 잠이 부족했다. 하루는 애가 온밤 울면서 보채여 한잠도 잘 수가 없었다.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머리를 짚어보아도 열은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저귀를 갈려고 보니 엉뎅이부터 항문 주위까지 피부가 빨갛게 까져있었다. “어머니, 기저귀를 두시간에 한번씩은 무조건 바꾸어야 하는데 아깝다고 자주 안 바꾸시더니 이것 좀 보세요.” 시어머니는 주방에서 설겆이를 하다가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며 엎어지듯 달려왔다. “어머, 이걸 어쩌니? 그러니까 내가 뭐랬어. 옛날식 대로 천기저귀를 쓰자고 했잖니. 다 만들어왔구만.” 시어머니는 보따리를 뒤지더니 천기저귀를 꺼내서 애한테 착용시켰다. “그런 걸 쓰지 마세요. 자주 바꾸면 되잖아요. 이런 거는 위생적이지 않다구요.” “씻어서 해볕에 말리면 되지. 그게 제일 좋은 소독이다. 그리고 저 비싼 세탁기는 언제 쓰니? 건조기능에 소독기능도 다 있다면서 이럴 때 쓰는 거 아니니? 우리 때는 그런 거 없어도 애들이 탈 없이 잘만 크더구만…” 이번에는 시어머니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각자 자기가 선호하는 기저귀를 쓰게 되면서 두가지 기저귀를 병용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건조대에서 펄럭이는 기저귀는 마치 시어머니의 승리의 기발처럼 보였다. 은령이는 처음으로 시어머니가 얄밉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령이의 몸은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허리통증에 소변이 잦고 뇨실금이 계속되였고 변비까지 더해져 일상생활이 불편함투성이였다. 게다가 내리지 않는 체중과 망가져버린 몸매를 볼 때마다 이대로 살 수 있을가 하는 위험한 생각까지 들게 만들었다. 밥을 먹지 않으면 힘이 빠져 아기마저도 돌볼 수 없어 억지로 밥상에 마주앉았다. 밥상 가득 차려진 고기반찬을 보며 은령이는 미간을 찌프렸다. “전 젖도 안 먹이고 체중도 줄여야 하는데 이제 채소반찬도 좀 만들어주면 안돼요?” “아니. 산모가 영양보충을 잘해야 몸이 빨리 춰서지. 너 그렇게 안 먹으니까 몸이 춰설 리 있겠니?”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요? 내가 절개수술만 제때에 받았어도 난산이 아닐 테고 몸도 이렇게 망가지지 않았을 거 아닌가요? 어머니가 순산, 순산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아니, 얘 봐라, 그게 어떻게 다 내 탓이냐? 너도 생각이 왔다갔다했잖아. 난 그냥 너 하자는 대로 했을 뿐인데… 내가 잘한 건 아무 것도 없구나.” 결국 두 사람은 목소리를 높였고 얼굴을 붉히고야 말았다. 며칠간 둘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자기 앞의 일만 수걱수걱 하였다. 밥상에는 야채반찬이 오르기 시작하였지만 역시 기름을 듬뿍 붓고 고기까지 넣고 함께 볶은 거라 은령이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야채반찬을 하는 것으로 시어머니는 한발 물러섰건만 은령이가 먹지 않으니 서로의 오해는 깊어만 갔다. 은령이도 그 점을 느끼고 화해할겸 좋은 마음으로 부드럽게 시어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어머니, 채소를 씻어서 견과류를 조금 넣고 깨기름과 샐러드소스를 뿌려서 주세요. 그게 하기도 편하고 단백해서 먹기가 좋아요.” 시어머니는 밥상을 닦던 행주를 탕 소리나게 내려놓더니 얼굴에 노기를 띠며 말했다. “난 샐러든지 뭔지 그런 신식 음식은 할 줄 모른다. 너 절로 알아서 해먹어라.” 시어머니는 쌩 바람소리를 내며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은령이는 놀랐다. 화해의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한 건데 이렇게 될 줄이야. 은령이는 서러웠다. 자신의 아픔과 걱정과 번뇌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게 서러웠다. 산모가 대접을 받기는커녕 이런 랭대를 받다니? 억울하고 슬펐다. 시어머니가 미웠다. 자신을 이렇게 힘들게 만든 남편도 원망스러웠다. 은령이는 흐르는 눈물을 쓱 닦았다. 약해지지 말자, 강해져야지, 엄마니까. 은령이는 이 국면을 타개하기 위한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느라 머리를 짰다.   5   해산한 지 두달이 지났건만 몸은 아직도 회복이 되지 못했다. 몸매회복은커녕 건강까지도 회복이 안되여 은령이는 우울하였다. 요즘은 시어머니와 마찰이 생기면서 우유 먹이는 일과 기저귀 가는 일이 다 은령이 몫으로 되였다. 게다가 야채반찬도 자기절로 만들어야 했다. 시어머니는 애 달래고 재우며 빨래하고 밥하며 설겆이하는 일을 담당하였다. 은령이의 건강상태로는 자신의 몫을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남편이라도 불러서 도와달라고 하면 좋으련만 시어머니의 눈치가 보여서 마음대로 부려먹을 수도 없었다. 아예 시어머니 도움 없이 남편하고 둘이 육아를 하면 더 편하지 않을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시어머니를 도로 가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결국 애기보모를 청하기로 마음 먹었다. “어머니, 우리 애기보모를 쓰면 어때요? 우리 두 사람으로는 힘들어요. 저는 몸도 회복이 안됐고 요즘은 머리카락까지 무더기로 빠져나가요.” 시어머니는 잠간 놀라는 듯하더니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너희 마음대로 하거라. 나야 뭐 편하고 좋지. 돈이 들어서 그렇지. 제 새끼 제 뜻 대로 키우겠다는데 할미가 무슨 발언권이 있겠니.” 말에 가시가 있었지만 그래도 대답을 한 거니 보모를 청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50대 초반의 젊은 아줌마였는데 일을 깔끔하게 잘했다. 육아는 물론 시어머니 몫인 부엌일까지도 시간에 맞춰 척척 해냈다. 은령이가 잔소리 할 것도 없이 너무 마음에 들게 잘하였다. 시어머니가 잘 안되는 한어로 대화를 시도하며 뭔가를 좀 도와주려고 해도 하지 말라며 거절했다. 3만원이나 되는 로임에 해당되는 일을 하느라 그러는지, 아니면 자신의 일자리가 흔들릴가 봐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하기도 버겁던 일을 혼자서 너무나 거뜬하게 해내는 그의 능력에 엄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할 일을 잃은 시어머니는 이 집에 계속 있을 필요성이 없어졌다. 애기 백일잔치를 간단히 마친 후 시어머니는 다시 시누이들이 있는 외국으로 가겠다고 하였다. “나 다시 외국 나가 일하련다. 내가 있어봐야 별 도움도 안되고 가서 돈이나 벌어 보태는 게 더 나을 것 같구나.” 은령이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소리였지만 티를 낼 수 없었다. “년세도 많고 몸도 안 좋으신데 어떻게 일하시겠어요. 우리한테 이만큼 하신 것도 넘치는 겁니다. 늘 고마웠어요.” 은령이의 이 말은 진심이였으나 가지 말라고 간절하게 만류하지는 않았다. “네가 이렇게 말해주니 고맙구나. 이제 다시 가도 마음뿐이지 일을 오래 할 것 같지는 않다. 몸을 빨리 춰세우고 애도 잘 키우거라.” 시어머니는 눈굽을 적시며 구부정한 허리로 캐리어 하나를 달랑 끌고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돌아올 때와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로 떠나가는 시어머니를 은령이는 측은한 눈길로 바래였다. 집에 돌아온 은령이는 마음이 홀가분해졌다. 이제는 완전히 내가 주인이 된 집이구나 하는 생각에 신이 나기도 하였다. 먼저 애기보모에게 그동안 일한 로임을 계산해주며 그만 오라고 하였다. 보모비용을 감당하기에 버거웠고 남편과 둘이 같이 육아를 하면 굳이 보모가 없어도 큰 문제 될 것 없을 것 같았다. 남편도 쾌히 응하였다. 거실에서는 〈백조의 호수〉 발레음악이 잔잔히 흘러나온다. 남편은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서 분주히 움직인다. 은령이는 요람에서 초롱초롱한 눈으로 엄마를 바라보는 아기에게 첫 발레무용을 선 보인다. 거실쏘파에 앉은 채로 곡에 맞춰 발레무용손동작을 선 보인다. 은령이의 현란한 춤동작에 빠져버린 아기는 은령이가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날아가는 새의 동작을 흉내내면서 춤을 출 때마다 까르르 웃군 하였다. 유전자의 힘이란 그토록 강력해 생명의 본질과 의미를 재검토하게 해준다. 은령이는 자신의 훌륭한 유전자를 물려받은 딸의 미래도 한없이 밝을 것이라 생각하며 더 힘있게 나래를 쳤다. “우리 공주님들, 식사합시다.” 하는 남편의 다정한 부름소리에 은령이는 아쉬운듯 동작을 멈추고 일어나 발끝을 세우고 회전하면서 주방으로 향했다. 삶은 계란과 햄까지 얹은 야채샐러드가 밥상 가운데 자리에 번듯하게 놓여져있었고 남편 앞에는 곱게 썰어놓은 수육이 있었다. 석달 만에 가지는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다. 남편은 아끼는 포도주를 잔에 부었다. 두 사람은 엄마, 아빠로 된 걸 자축하였다. 인생에는 다양한 역할이 있지만 부모가 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경험중의 하나라고 생각되였다. 아이가 가져다주는 감동과 행복에 감사드리며 둘은 잔을 부딪쳤다. 그리고 서로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네가 먼저 씻어.” 남편은 은령이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속삭이듯 말했다.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이건 그들만의 사랑의 신호였다. 그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는 첫날밤처럼 긴장되고 기대되기도 하였다. 그녀는 참지 못하고 입속으로 “내 몸이 이전의 그 몸이 아니야.”라며 불안을 표했다. 그는 웃으며 “나는 너의 령혼을 사랑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의 몸은 서로의 따뜻함과 진심을 느끼며 뭉쳤다. 두 사람의 열띤 숨결이 여운처럼 울려퍼지고 그녀는 발끝까지 그들먹이 차오르는 행복을 느꼈다. 갑자기 그녀를 어루만지던 손길이 멈추었다. 남편은 벌떡 일어나더니 불을 켰다. 흥분에서 깨지 못한 은령이의 알몸이 그대로 불빛 아래에 드러났다. “이게 뭐야? 밸이 나왔네.” 놀란 남편이 퀭하니 은령이의 다리 사이를 바라보았다. 은령이는 급히 이불깃으로 몸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다 대보았다. 확실히 웬 고기덩이가 나와있었다. 은령이도 깜짝 놀라서 울음을 터뜨렸다. 두 사람은 그길로 병원급진실로 향했다. 의사선생님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이는 난산인 산모한테서 흔히 생기는 현상인데요, 자궁탈출증이라 합니다. 자궁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골반기저근운동을 규칙적으로 하시면 정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만약 운동치료로 개선이 안되는 경우에는 수술치료를 받으셔야 합니다.” 큰 병이 아니라는 말에 마음이 조금 놓이긴 했지만 어쩐지 모를 불길함에 은령이는 가슴이 떨리였다.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슬픔과 우울함이 담겨있었다. 남편은 직업가수였는데 로임이 적었지만 휴일에 결혼식장에 가서 노래하고 저녁에 클럽에서 노래 부르면서 부수입을 벌었다. 그런데 근년에 직장외의 활동에 참가하는 것이 제한을 받자 아예 직장을 버리고 친구와 함께 자그마한 웨딩회사를 차리였다. 사장이다보니 시간이 자유로웠다. 노래 부르는 일외에는 별로 회사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업무처리를 하군 하였다. 그런 남편을 크게 믿고 시작한 두 사람의 육아는 불화의 시작이 되였다. 남편한테 시키면 마음에 들게 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일을 하고도 나무람만 받으니 남편의 열정도 식어갔다. 처음에는 못 들은 척하거나 뒤로 미루더니 후에는 회사 일을 핑게로 대며 밖으로 나돌기 시작하였다. 힘들고 지친 하루를 마치고 은령이는 거울 앞에 마주앉았다. 거울 속의 녀자는 시간과 현실에 고문을 당한듯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시들어있었다. 그녀는 예전의 밝은 모습을 찾으려고 미소를 지어보았다. 그 미소는 무력함과 슬픔으로 가득차있었고 마음속 깊은 곳의 고통과 걱정은 숨겨지지 않았다. 한때 열정으로 가득차있던 그녀의 손은 이제 그녀의 옆에 힘없이 매달려있었다. 갑자기 짙은 안개가 앞을 가로막은 것처럼 삶이 혼란스러워졌다.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남편이 자신을 더 깊이 가라앉히는 절망으로 서서히 다가옴을 은령이는 어렴풋이 느꼈다.   6 돈 벌어서 보내주겠다던 시어머니는 소식이 없다. 꼬박꼬박 로임을 바치던 남편도 생활비를 내놓지 않는다. 그전에는 남편의 수입이 눈에 차지 않아 바라지도 않았는데 지금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자존심이 상했지만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은령이는 아기를 안고 슬그머니 식사를 하고 있는 남편 앞에 앉았다. “어머니는 이젠 우릴 안 도와주려나 봐, 소식이 없네.” “그만큼 도움 받았으면 감사한 줄 알아야지.” 남편은 은령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퉁명스럽게 대답하였다. 은령이는 남편의 태도에 저으기 놀랐다. ‘내가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 나와?’ 하는 생각에 욱하고 화가 치밀었다. “그럼 당신은 왜 생활비를 안 줘?” “언제는 내 돈은 비려서 안 쓴다며… 차를 새로 바꾸었어.” “차를 바꿔? 나하고 상의도 없이? 너 마음대로야?” “지금까지 살면서 다 네 마음대로 하면서 살았잖아. 나도 한번 쯤 내 마음대로 하면 안되니? 사사건건 너한테 보고해야 돼? 나는 뭐 생각 없는 줄 알아? 나도 좀 숨 쉬고 살자구.” 두 눈을 부릅뜨고 은령이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울부짖는 남편의 모습이 너무나 낯설었다. 남편이 아니라 한마리의 성 난 짐승 같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다정하던 남편이, 은령이의 말이면 무조건 오케이던 남편이, 공주님이라며 떠받들던 남편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다니? 남편이 더는 애 낳고 망가져있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 날 밤 이후로 남편은 한번도 은령이 옆에 온 적이 없었다. 참고 있었던 울화가 화산처럼 폭발하였다. 온몸이 달아오르며 머리가 하얘졌다. “그래서 네가 잃은 게 뭔데? 나는 몸매도 망가지고 녀자두 망가지고 생명 같은 내 발레두 더는 못하는데…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이잖아.” 그녀의 눈은 분노로 가득차있었고 이를 갈며 히스테리적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게 왜 나 때문이야? 다 네가 선택하고 네가 자초한 일이지. 너의 그 우월감과 오만이 날 얼마나 작아지게 하고 비참하게 만들었는지 알아?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구…” 남편은 경멸에 찬 눈초리로 은령이를 손가락질하며 분노를 토해냈다. 이마의 피줄이 솟아 지렁이처럼 꿈틀거렸다. 은령이는 걸상에서 벌떡 일어나며 국그릇을 들어 남편한테 확 뿌렸다. 길다란 미역줄기들이 남편의 얼굴을 가리웠고 시커먼 국물이 미역줄기를 따라 상 우에 뚝뚝 떨어졌다. 남편은 손으로 미역줄기를 확 걷어내더니 “너 미쳤어?” 하고 꽥 소리를 지르더니 은령이의 귀뺨을 찰싹 때렸다. 그 서슬에 은령이는 아기를 안은 채로 밥상에 얼굴을 묻고 엎어졌다. 찝찔한 미역국이 입술에 흘러들었다. 은령이는 그것을 빨았다. 짭짤하니 맛 있었다. 놀란 아기의 자지러진 울음소리가 아스라하게 들려온다. 은령이의 앞에는 맑고 넓은 호수가 펼쳐졌다. 〈백조의 호수〉 음악이 천천히 흘렀고 그녀는 백조가 되여 그 호수에서 마음껏 날아옜다. “은령아, 머리 들어. 왜 그래?” 하는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가 싶더니 곧바로 음악 속에 묻혀버렸다. 남편의 손이 힘껏 은령이의 머리를 받쳐들었다. 은령이는 얼굴에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밥상에서 머리를 들고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주위의 모든 것을 망각한 채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발끝을 세웠다. 회전도 가능했다. 가벼운 점프도 가능했다. 그녀의 춤 추는 자세는 마치 백조의 령혼이 발을 따라 움직이듯 경쾌했다. 눈빛에는 끝없는 슬픔이 담겨있었고 그 슬픔을 화려한 춤으로 변신시켰다. 그녀는 자정까지 계속 춤을 추었고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때에야 침대에 쓰러졌다. 그후에도 은령이는 남편만 집에 들어오면 발레를 췄다. 그것이 남편에 대한 그녀만의 불만과 항의인지 아니면 고통을 해소하는 방법인지 아니면 정신적으로 이상이 온 건지는 그녀만 알았다. 밤 12시를 알리는 알람이 울렸다. 남편은 아직 귀가전이다. 은령이는 수면제 두알을 먹고 자리에 누웠다. 12시는 은령이가 남편한테 정해놓은 통금시간이다. 남편은 그것을 잊고 사는데 은령이 혼자만 지키고 있었다. 탕 하고 차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남편이 돌아온 거다. 은령이는 잠옷바람으로 베란다로 뛰여갔다. 아래를 굽어보니 과연 남편이 새로 뽑은 빨간 차가 정차해있었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사람이 나오질 않는다. 랭전중이라 서로 말을 섞지 않는데 부르기도 무엇하고 또 한밤중에 큰소리를 낼 수도 없는 터라 내려가 볼가 말가를 고민하는 사이 운전석문이 열리고 긴 머리의 녀자가 내렸다. 이어서 오른쪽 차문도 열리더니 남편이 내렸다. 자기 차를 다른 사람이 운전하는 걸 싫어하는 남편이다. 둘은 마주서서 껴안고 키스를 하더니 아쉬운듯 안쪽으로 걸어들어갔다. 10층이라 벽 쪽에 붙어섰는지 잘 내려다보이지 않았다. 은령이는 창문을 살며시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안 보였다. 웃몸을 더 앞으로 내밀고 아래를 굽어보았다. 안 보인다. 발끝까지 쳐들고 기웃거리였다. 이 때 갑자기 “뭐하는 거야?” 하는 소리와 함께 억센 손이 란간에 엎드려있는 은령이의 허리를 안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남편이 가쁜숨을 몰아쉬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은령이가 죽으려고 란간에 엎드려있는 줄로 오해한 것 같았다. 은령이는 쓴웃음이 나왔다. 이런 반응은 뭐지? 내가 죽는 건 두려운 건가? 나한테 남은 그의 감정은 뭘가? 련민? 그런 생각을 하니 남편이 가소로웠다. 은령이는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미친 척해보기로 했다. 도대체 네가 어떻게 나오나 두고볼 심산이였다. 은령이는 입을 크게 벌리고 “하하하” 소리 내여 웃었다. 그리고는 〈백조의 호수〉 발레를 추면서 날을 밝혔다. 어차피 불면의 밤일 테니까. 날이 밝자 은령이는 정신병원으로 옮겨졌다. 아무리 정신 나간 것이 아니라고 해도 남편의 서명으로 그녀는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그 날부터 정신병원에는 ‘백조’라는 별명의 환자 한명이 불었다. 낮에는 백조처럼 댄스치마 바람으로 발레신발을 신고 머리를 높이 묶은 후 챠이꼽스끼의 〈네마리 백조〉의 음악에 맞춰 온 병원을 누비며 춤을 춘다. 발가락은 나비처럼 땅을 가볍게 두드리고 팔은 공중에 아름다운 무늬를 그리며 우아하게 움직인다. 몸의 모든 부분이 옳바른 방식으로 발레를 선 보인다. 저녁에는 《백조의 호수》 책을 펼쳐들고 열독하거나 조용히 사색에 잠겨있는다. 은령이는 그 날 밤에 본 긴 머리 녀자의 익숙한 모습이 머리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자신의 비밀은 바람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건만 은령이는 그녀한테 모든 걸 오픈했었다. 은령이는 리혼하고 오갈 데 없는 그녀를 발레학원 부원장으로 받아주었고 그녀와 가족처럼 지냈다. 은령이가 직업녀성으로서 성공의 희열에 빠져 사회생활에 매진하고 있을 때 자기가 비워둔 안해의 빈자리를 그녀가 은령이 대신 지키고 있었음을 은령이는 오늘에야 깨달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은령이는 남편과의 은밀한 사정까지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어쩌면 남편의 말 대로 자신의 우월감과 오만에 대한 대가를 톡톡히 치른 것이다. 병원에는 날이 갈수록 춤 추는 ‘백조’가 늘어났다. 언제부터인가 병원이 아니라 발레학원인 줄로 착각할 정도로 일렬로 줄을 선 환자들 가운데서 댄스 스틱을 들고 서있는 은령이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발레는 고통을 아름다움으로 바꾸는 예술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백일 동안 ‘백조의 호수’에서 춤 추던 ‘오데트공주’는 드디여 악마의 저주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을 되찾았다.   연변문학 2024년 10월호  
2    천평에 사랑을 담다 댓글:  조회:18  추천:0  2024-12-08
천평에 사랑을 담다 허복순   1 나의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쉰아홉 고개를 넘기지 못하고 생일을 며칠 앞둔 날, 유언 한마디도 없이 심장마비로 조용히 떠났다. 아버지는 원래 성격이 조용했다. 희로애락 같은 걸 표현하기 썩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에 대한 사랑은 무척 깊었다. 언제나 나보다 엄마가 우선이였고 말없이 엄마를 아끼고 보살폈으며 엄마의 의사를 무조건 따르군 하였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엄마가 왕이였고 두분은 평생을 살면서 흔한 부부싸움 한번 하지 않았다.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두분은 금슬도 좋아 주변에서 부러워하는 잉꼬부부였다.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나는 눈물을 흘리지 못했다. 갑작스런 사망소식에 미처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어리벙벙한데 엄마가 히스테리적인 반응을 보이는 통에 더욱 놀라 엄마를 돌보느라 나는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엄마는 “여보”를 목 터지게 웨치면서 식어가는 아버지의 몸에서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뜯어 말려도 또다시 아버지의 시신 우에 엎어졌다. 엄마의 피 터지는 목소리는 복도를 타고 온 병원을 쩌렁쩌렁 울렸다. 의사들도 처음 있는 일이라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였다. 장례식장에서 아버지의 시신을 마주하자 엄마는 두 손을 포개 가슴에 얹으면서 “여보, 사랑해!”를 거듭 웨쳤다.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 말만 수없이 반복하였다. 마치도 아버지가 엄마의 사랑을 의심이라도 하고 있는듯, 그래서 아버지에게 엄마의 절대적인 사랑을 확인시키려는듯 그렇게 가슴 저리게 웨쳤다. 젊은이들도 사람들 앞에서는 부끄러워 감히 내뱉기 힘든 말이 60세를 바라보는 엄마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왔으니 엄마의 ‘애절한 사랑’은 청승맞을 정도였다. 미끄러져 들어가는 아버지의 시신을 엎어지듯 따라가며 웨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장례식장을 떠돌다가 아버지의 시신을 따라 밀려나갔다. 아버지는 뱀띠였다. 뱀띠 석상 앞에서 우리는 고별제를 치렀다. 엄마는 연신 곡을 하였다. 아버지의 령전에 술 한잔 부어놓고 무릎을 꿇고 절을 올린 후 엄마는 “여보,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라는 말을 곱씹으면서 자리에서 일어설 념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아버지의 대답을 기다리는듯 아버지의 유상을 하염없이 쳐다보았다. 엄마는 제정신이 아닌 듯하였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면 연기하는 줄 여길 정도로 그 날의 엄마는 다른 사람 같아보였다. 조문객들도 이상한 눈길로 엄마를 바라보며 나지막하게 수군거렸다. 아버지를 그렇게 보내고 엄마는 슬픔을 못이겨 지쳐 누웠다. 집에 돌아와서는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았고 더 이상의 넉두리도 없었으나 대신 식사도 안하고 이틀 동안 그냥 누워만 있었다. 삼일장까지 치르고 연길로 돌아가기 이틀전, 나는 근심스레 엄마한테 여쭸다. “엄마, 우리 집에 같이 갈가?” 엄마는 그제야 머리를 돌려 나를 보더니 갑자기 이불을 제치고 머리를 매만지면서 일어났다. “내 걱정 말고 가거라. 갈 사람을 보내드렸으니 이제 우리가 잘사는 게 그 사람을 위하는 거야.” 말을 마치고는 랭장고를 열더니 어디서 구해왔는지 깨끗하게 다듬어놓은 닭 한마리를 꺼냈다. “저번부터 해준다던 게 네가 안 와서 그냥 넣어두었다. 래일 해줄 테니 먹고 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아버지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이제 겨우 이틀이 지났는데 엄마는 벌써 언제 그랬느냐 싶게 마치 감기를 앓고 난 사람처럼 툭툭 털고 일어나 나한테 닭곰을 해주겠단다. 나는 아무 말도 안했다. 엄마가 받은 정신적 타격이 큰 것 같았다. 다음날이면 이번 호 잡지를 인쇄부문에 넘겨야 하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엄마만 두고 떠나기에도 난처했다. 속상한 나머지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애꿎은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핸드폰 모니터에는 오도카니 앉아 말똥말똥 나만 쳐다보는 우리 애완견 ‘꽃너울’의 얼굴이 떠있었다. 나는 그제야 집에 두고 온 ‘꽃너울’이 어쩌고 있나 싶어 집에 설치한 카메라의 실시간 영상을 켰다. ‘꽃너울’은 쏘파에서 네다리를 뻗고 시름없이 자고 있었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나는 서서히 해동되는 닭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갑자기 좋은 생각이 머리를 쳤다. 엄마 집에도 이런 카메라를 설치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면 혹시 엄마에게 돌발상황이 발생해도 나는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본인의 동의 없이 카메라를 설치하는 건 위법이고 사생활 침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일은 엄마가 모르게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엄마가 걱정되여서 하는 것이니 효도라며 나는 자신을 위안했다. 이튿날 엄마는 반나절 부엌에서 맴돌다 구수한 닭곰을 만들어 상에 올렸다. 나는 입맛이 당기지 않았지만 엄마의 정성을 몰라라 할 수 없어 무슨 맛인지도 모른 채 닭곰을 먹었다. 그 다음날 나는 연길로 돌아왔다. 엄마는 이틀 만에 평정을 되찾았지만 나는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엄마에 대한 걱정을 한가슴에 안고 살았다.   2 엄마의 남편   남편은 나를 남기고 먼저 갔다. 나는 내가 먼저 가기를 바랐다. 슬픔에 잠긴 남편의 가슴에 안겨 잘못했다고, 용서를 바란다고 유언을 남기려고 했었다. 그러나 순진한 남편은 못된 녀자에게 잘못을 빌 기회마저 주지 않고 홀연히 떠났다. 사람은 죽으면 심장이 멎었어도 귀는 마지막까지 열려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나는 남편의 귀가 닫히기 전에 할 말을 다해야 했다. 사랑한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입으로가 아니라 령혼으로 하였다. “여보, 잘 가요.” 나는 남편의 유상을 만지작거리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는 옷장 뒤의 보이지 않는 곳에 유상을 넣어두었다. 그리고는 서랍을 열고 남편의 흔적이 남아있는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오래동안 펼쳐보지 않았던 작은 앨범 하나가 눈에 띄였다. 펼치자니 엉켜붙어서 잘 떨어지지도 않았다. 힘껏 당기자 쫙 하면서 사진이 찢어졌다. 그것은 흑토신문사를 배경으로 찍은 나와 남편의 사진이였다. 남편의 얼굴은 그대로인데 내 얼굴이 반쪽으로 찢겨나갔다. 나는 찢긴 나를 향해 중얼거렸다. “너의 죄가 컸어. 사랑하는 남편한테 미안한 짓을 많이 해서 남편이 너한테 주는 벌이야.” 나는 남편을 진심으로 사랑했다. 그 진심을 남편이 믿지 않을가 봐 나는 사는 동안 내내 전전긍긍하였다. 대학교 3년 동안 나를 향한 남편의 질긴 추구에도 허락하지 않았던 건 룡택이에 대한 사랑 때문이였다. 교외실습을 시작하기 전, 남편은 자신의 고향인 할빈으로 함께 가자고 하였다. 아버지가 할빈에 있는 흑토신문사 사장이라며 둘이 같이 그 곳에 가서 실습할 수도 있고 잘하면 정식직원으로 남을 수도 있다고 하였다. 솔직히 나는 흑토신문사에서 출근하는 것보다 내가 나서자란 고향과 부모님을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다. 그 집을 떠나야만 나는 인간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은 내가 ‘바보네 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서서히 싹트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소아마비로 어려서부터 두 다리를 쓰지 못하는 앉은뱅이였고 아버지는 사지는 멀쩡하나 지적 장애가 있었다. 동네사람들은 아버지의 이름보다는 ‘바보’라는 호칭을 더 많이 썼고 어머니의 이름보다는 ‘앉은뱅이아줌마’라고 더 많이 불렀다. 한번은 동네어른들이 모여앉은 자리에 우리 또래 애들을 불러놓고 노래를 해보라고 하였다. 여러명중에서 내가 노래를 제일 잘 불렀고 칭찬도 제일 많이 받았다. 새로 이사 온 사람이 나를 기특하다며 사탕을 쥐여주면서 물었다. “누구 집 딸인지 참 예쁘고 똑똑하구나.” 내가 으쓱해서 사탕을 받으려는데 옆에 있던 동네로인이 끼여들었다. “걔는 제일 뒤집에 사는 바보네 딸이요.” 나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처음으로 부끄럽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를 알게 되였다. 나는 귀한 사탕도 받지 않고 홱 돌아서서 눈물을 뿌리며 뛰여갔다. “어머, 바보네 딸인데 저렇게 똑똑할 수가 있나?” “엄마를 닮았겠지, 뭐. 엄마는 앉은뱅이래도 사람이 손부리가 야무지고 영 참하오.” “어휴, 애만 불쌍하네. 어쩌면 저런 집에서 태여나가지고. 쯧쯧…” 내가 공연히 심심한 사람들에게 말거리를 만들어준 셈이였다. 끝없이 이어지는 우리 집 얘기를 피해 나는 뛰고 또 뛰였다. 숨이 차올랐지만 산 정상까지 뛰여올라갔다. 아무도 없는 높은 산꼭대기에서 나는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소리 내여 엉엉 울었다. 눈물이 치마폭을 질펀하게 적시였다. 그 때 나는 알았다. 내가 남보다 뛰여날수록 사람들의 입방아에 더 오를 것이며 우리 어머니, 아버지는 나 때문에 또 한번 혀의 란도질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이곳을 벗어나지 않는 한 나는 영원한 ‘바보네 딸’이라는 것을. 그렇게 일곱살의 어린 녀자애는 너무 일찍 세상의 억울함을 알아버렸다. 그래서일가? 나는 사랑하는 두 남자중에서 내가 ‘바보네 딸’로 살지 않을 수 있는 쪽을 선택하였다. 누구도 모르는 곳에 가서 사람답게 살고 싶은 욕망이 더 커서 룡택이를 버리고 고향을 멀리 등지고 남편을 따라 할빈으로 왔다. “여보, 고마워. 당신 덕에 난 한평생 ‘바보네 딸’이 아닌 기자선생님으로 불리면서 머리 쳐들고 잘살았어.” 또 사진 한장이 눈에 안겨왔다. 딸애 명화의 첫돌생일에 우리 세식구가 활짝 웃으면서 찍은 사진이였다. 나는 사진 속 명화의 코등을 톡톡 치며 혼자 중얼거렸다. “너의 코는 왜 하필 룡택이를 닮아서 한평생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거니? 너의 코를 볼 때마다 네가 혹시 룡택이의 딸이 아닐가 하는 걱정 때문에 평생 발편잠을 못 잤구나…” 사실 명화가 누구 딸인지 나한테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내 배가 아파서 난 내 딸이니까. 솔직히 누구 딸인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다만 룡택이의 딸이라면 남편한테 너무 미안하고 남편의 인생이 너무 비참할 것 같아서 괴로웠을 뿐이다. 여태까지 마음을 졸이며 살아왔는데 이제는 다 부질없는 짓이 되여버렸다. 갑자기 룡택이가 보고 싶었다. 지금은 뭘 하면서 살고 있는지? 그 때 그렇게 헤여지고 나서 그의 소식을 한번도 듣지 못하고 살아왔다. 나는 약속을 지켰으니 이제는 룡택이가 약속을 지킬 차례가 되였다. 내가 그를 필요로 할 때 찾아오겠다던 그 약속을 기억하고나 있을가? 나는 서랍을 빼고 몰래 감추어두었던 사진 한장을 꺼내 들었다. 나와 룡택이가 대학입학통지서를 펼쳐들고 “연변1중”이라고 씌여진 학교 대문 앞에서 활짝 웃으며 찍은 사진이였다. 나는 사진을 잘 닦아서 액자 속에 넣은 후 탁상 우에 살며시 올려놓았다.   3 엄마의 첫사랑   그 날은 나와 영애가 사랑을 약속한 지 30일이 되는 날이였다. 한달이 되는 기념적인 날에 대학입학통지서를 받으러 같이 학교에 가기로 영애와 약속했다. 나와 영애의 인연은 아마도 연변1중 입학통지서를 받은 그 날부터 시작되였던 것 같다. 중점고중에 입학하였다고 아버지는 돼지를 잡고 친척들과  동네어른들을 청하여 잔치를 벌였다. 자정이 넘어도 술판은 끝날 줄 몰랐다. 나는 잠도 안 오는지라 스적스적 강변을 따라 걷다가 마을 앞 호수가에 다달았다. 그런데 고요한 호수가에 웬 사람의 그림자가 언뜻거렸다. 깜짝 놀란 나는 슬며시 몸을 숨기며 한밤중에 뭐하는 사람인지 눈여겨보았다. 그 사람은 신발을 벗고 그대로 호수에 들어서더니 곧바로 수심을 향해 걸어갔다. 물이 가슴을 넘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 급해난 나는 얼결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거 누구요? 거기서 뭐하는 거요?” 그 사람은 놀랐는지 뒤를 돌아보다가 몸을 휘청하더니 그만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렸다.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달려가 물에 뛰여들어 그 사람을 기슭으로 끌어올렸다. 녀자였다. 그녀는 물을 왈칵왈칵 토해내더니 한참후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나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더니 고맙다는 말 대신에 소리를 지르며 오열하였다. “죽게 내버려두지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해? 네가 뭔데?… 아!…” 그녀가 미친듯이 몸부림치는 바람에 겨우 어깨에 걸려있던 옷이 벗겨지며 브래지어를 입지 않은 하얗고 통통한 젖가슴이 달빛 아래에서 처량하게 드러났다. 숨을 고르고 자세히 보니 물에 젖어 얼굴에 찰싹 달라붙은 머리카락 사이로 두개의 하얀 덧이가 유표하게 눈에 띄였다. 그녀는 ‘바보네 딸’ 영애였다. 예쁘장하게 생기기는 했어도 ‘바보네 딸’이고 또 쩍하면 덧이를 드러내고 벌처럼 톡톡 쏘아대는 바람에 그녀와는 평소에 말도 몇마디 섞어보지 못했었다. 나는 말없이 웃옷을 벗어 그녀의 몸을 감싸주고 진정하도록 그녀를 꼭 안아주었다. 그 날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변1중 입학통지서를 받았지만 그녀의 부모는 돈이 없어서 학교에 못 보내준다고 했단다. ‘바보네 딸’로 사는 것이 진저리가 나 이곳을 떠나고 싶고 그러려면 연변1중에 입학해 공부하는 길밖에 없는데 그 길이 막혔으니 죽는 길밖에 없다며 그녀는 입술을 피 터지게 씹었다. 그녀가 불쌍했다. 부모 잘못 만난 게 죄는 아니지 않는가. 이렇듯 고통스럽게 사는 그녀를 도와주고 싶었다. 나는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희떠운 소리를 내뱉었다. “학비만 대달라고 해. 식비나 기타 생활비는 내가 도와줄게.” 그 말에 영애는 벌떡 몸을 일으키더니 동그란 눈을 반짝거리며 되물었다. “진짜지? 너 약속할 수 있어?” 나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녀자는 내가 지켜줘야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남자의 본능적인 책임감이 발동하였던 것 같다. 그후부터 나는 영애의 수호천사로 살았다. 영애네 집앞에 이르니 나무그늘 밑에서 영애는 어머니와 함께 담배를 뱆고 있었다. 한줄에 십전씩 받고 하는 삯일이였다. 영애 어머니는 앉아서 하는 일은 뭐든 잘했다. 그래서 농사철에는 닥치는 대로 삯일을 해서 푼돈을 벌고 겨울철에는 삯바느질을 해서 생활에 보태군 하였다. 내가 온 것을 본 영애는 일하다 말고 오뚝 몸을 일으키며 나한테로 뛰여왔다. 그러자 영애 어머니가 불러세웠다. “이 년아, 또 어디로 튀는 거야? 한푼이라도 벌어야 학교를 가거나 말거나 할 게 아니야!” 영애는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으니 자기 일은 혼자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일가, 그녀는 자기주장이 강했고 세상에 맞서는 자기만의 생존방식이 있었다. 갖고 싶거나 하고 싶은 일은 어떤 수를 써서든지 꼭 이루려고 했다. 학교 정문 옆 커다란 공시란 앞에는 사람들이 꽉 모여서서 본인들의 이름을 찾느라 북적거렸다. 그 속에는 나와 영애도 끼여있었다. 갑자기 영애가 만세소리를 지르며 내 품에 와락 안기였다. “룡택아, 우리 둘 다 조문학부에 붙었어!” 나는 내가 붙은 것보다 영애가 기뻐하는 모습이 더 즐거웠다. 우리는 통지서를 찾아 쥐고 교문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리고는 정원의 정자에 나란히 앉아 입학통지서를 펼쳐들고 다시한번 우리들의 이름을 확인하였다. 통지서에 적힌 글을 내리 읽던 영애의 얼굴이 흐려졌다. 나는 영문을 몰라 통지서를 들여다보았다. ‘박영애’라고 제대로 밝혀져있었다. 의아한 눈길로 쳐다봤더니 영애는 눈에 눈물을 머금은 채 울먹거렸다. “학비가 천원이 넘네. 우리 형편에 어림도 없는데. 나 어떡하지?” 고중 3년 동안 나는 영애의 학업에 영향을 줄가 걱정되여 사랑한다는 말을 꾹 참고 지냈다. 그러다 대학입학시험을 마친 날 저녁, 동네 호수가에서 영애에게 사랑을 고백하였다. 영애도 기다렸다는듯이 순순히 나에게 앵두입술을 내주며 사랑을 약속하였다. 나는 저도 모르게 3년전, 영애가 고중을 다니지 못한다고 호수에 들어서던 정경이 떠올랐다. 그 때도 구해줬는데 지금은 내 녀자, 내 사랑인데 영애한테 가슴 아픈 일이 생기게 할 수 없었다. “일단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해결해줄게. 근데 잠시 내가 대학에 붙었다는 말을 누구하고도 해서는 안된다. 우리 집에도 비밀이야. 알겠어?” “너만 믿을게. 나한테는 너밖에 없다는 걸 알지?” 영애의 애원에 찬 눈길을 바라보며 나는 힘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영애는 대학교에 입학했고 나는 어머니가 사업하는 중학교에 대리교원으로 출근하였다. 벽돌공장 공장장인 아버지와 중학교 교원인 어머니를 둔 나는 경제상의 어려움이 없었다. 내가 대학입시에서 락방한 걸로 알고 부모님은 얼마든지 뒤바라지를 해줄 테니 대학교에 붙을 때까지 5년이고 10년이고 공부를 다시 하라고 권했지만 나는 머리가 아파서 더는 공부를 못하겠다며 기어이 출근을 결정하였다. 영애를 책임질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을 생각해내지 못했다. 4 나의 첫사랑   부모와의 만남도 일종의 인연이라고 한다. 아버지와의 35년 인연을 끝내고 내 삶을 위하여 슬픔에 잠긴 엄마를 혼자 두고 부랴부랴 연길로 돌아오는 나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였다. 인간세상은 륜회라고 하지만 역시 인간은 가장 탐욕적이고 리기적이며 랭혹한 동물인 것 같다. 주필의 사무실 문을 노크하고 들어가 나는 그동안의 자초지종에 대해 보고했다. 언제나 자상하고 나를 딸처럼 아껴주던 주필은 오늘도 나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어머니 곁에 며칠 더 있다가 천천히 와도 된다는데 왜 이렇게 빨리 왔어? 편집본은 내가 이미 인쇄에 넘겼으니까 어서 들어가 쉬여. 입맛이 없을 텐데 이걸 먹어. 남아있는 사람이 너무 슬퍼하면 가신 분 가실 길 제대로 못 가신단다.” 주필은 언제 준비해놓았는지 보건품과 내가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쥐여주면서 어서 집에 들어가 쉬라며 내 등을 떠밀었다. 언제나 가까이에서 나에게 아버지 못지 않은 사랑을 주는 령도이면서 스승이였고 나의 사회생활의 인도자이고 상담사이기도 하였다. 인생을 살면서 귀인을 만난다는 게 이런 만남을 두고 말하는 것 같다. 내가 24살에 대학교 실습으로 《진달래문학》잡지사에 왔을 때 김룡택 주필은 49세의 로총각이였다. 인물, 체격, 재력, 명예, 능력 등 모든 걸 다 갖춘 우수한 남자라 할 수 있는데 왜 그 나이까지 결혼을 안한 건지 나는 몹시 궁금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나를 하나부터 열까지 성심껏 가르쳤다. 또 작품을 감상하고 평하면서 놀라울 만큼 견해가 같을 때가 많아서 더 가까워진 것 같다. 일년이 되여 실습이 끝날 때 나는 내가 김룡택 주필을 사랑하고 있음을 느꼈다. 주변에서도 주필이 딸 벌이 되는 나이 어린 실습생과 좋아한다는 뒤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였다. 실습이 끝나서 학교로 돌아가야 할 때가 되자 나는 고민에 빠졌다. 사랑한다고 고백해야 할지, 아니면 그냥 짝사랑으로 끝내야 할지를 몰라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 때 마지막 만찬을 사준다며 김룡택 주필이 나를 불렀다. 식사자리에서 나는 어떻게 말을 꺼낼가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 한참후 나는 용기를 내여 내 속마음을 고백하려고 입을 뗐다. “주필님, 실은 제가…” 그러나 내 말이 끝나기 전에 주필이 말꼭지를 잘라갔다. “오, 요즘 도는 소문 때문에 그러지? 나도 그것 때문에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 너 우리 잡지사에 남아서 계속 나하고 같이 일할 자신 있어?” 주필과 함께 할 수 있다면 뭐든지 두려울 게 없었다. 나는 상기된 얼굴로 힘있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알았어, 내가 다 해결해놓을 테니 너 소식 기다리고 있다가 내가 오라고 할 때 오면 돼.” 나는 기뻤다. 김룡택 주필도 날 사랑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세상이 더 아름다워보였다. “어린애가 그런 소문을 달고 학교로 돌아가면 너 인생 망친다. 소문은 난 자리에서 주저앉게 해야 돼. 우리의 행동으로 우리는 그런 사이가 아님을 증명해야 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주필의 그 한마디에 무지개처럼 피여올랐던 나의 행복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나는 너무 부끄러워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얼굴이 빨개졌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었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듯 김룡택 주필은 히죽이 웃으면서 빨개진 내 코등을 손으로 꼭 집어놓으며 내 기분을 풀어주었다. “꼭 그 리유만은 아니야. 너 참 능력 있고 참해서 마음에 들었어. 남겨서 같이 일하고 싶었거든. 나를 아빠처럼 믿고 따라와, 다른 생각 말고. 마음에 안 드는 사람하고 일하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르지? 허허허!” 나도 덩달아 웃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 같았고 꿈에서 깬듯 머리가 맑아졌다. 김룡택 주필은 약속 대로 나를 《진달래문학》잡지사의 정식직원으로 받아주었고 나의 인생의 등대가 되여 앞을 환히 비춰주었다. 나에게 좋은 신랑감도 소개시켜주었고 내가 직장에서나 생활에서 곤난이 있을 때마다 직접 나서서 해결해주었다. 인제는 돌아가신 아버지 몫까지 해줄 양 사랑이 듬뿍 담긴 보따리를 안겨주니 나는 눈물나도록 고맙기만 하였다. 집에 들어서자 바람으로 엄마가 걱정되여 카메라를 켰다. 서랍장에 마주앉아 아버지의 물건을 정리하고 있는 엄마의 뒤모습이 너무 처량해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사진첩을 쫙 찢는다. 나는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잠시후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혹시 엄마가 정신이 잘못되지 않았는지 마음이 죄여들었다. 다음에는 내 첫돌사진을 보면서 서글픈 표정으로 내 코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린다. 볼륨을 높이고 들어보니 “넌 누구 딸이니?” 하는 말이 또렷이 들렸다. 뭔 말인지 통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그리고 서랍을 빼고 안쪽에서 또 다른 사진 한장을 꺼낸다. 그 사진을 들여다보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는 액자를 찾아서 사진을 정히 넣고 탁자 우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은 후 어깨를 들먹이며 서럽게 울었다. 액자 유리가 알른거려 사진 속 사람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없었지만 젊은 남녀가 나란히 서있는 사진인 것 같았다. 나는 침대에서 내려 전등을 켰다. 영상다시보기를 클릭하고 화면을 최대한 확대하여 사진을 보았다. 녀자는 엄마였는데 남자는 아버지가 아니였다. 사진 속 남자는 모르는 사람이였는데 어데서 본 것 같기도 했다. 아주 오래전 사진이였다. 다시 실시간 영상화면으로 돌아와 보니 엄마는 사진을 가슴에 꼭 안은 채 탁자 아래 바닥에 누워 잠들어있었다. 나는 머리가 뗑해났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람? 가슴이 침침해나서 되는대로 옷을 걸치고 밖에 나와 강변도로를 무작정 걸었다. 한마디로 엄마한테서 느끼는 배신감과 아버지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마음을 무겁게 했다. 어떻게 남편을 보내고 3일도 안 지났는데 다른 남자를 생각하면서 울 수가 있을가? 장례식장에서의 엄마의 그 애탄 부르짖음은 가식이고 연극이였을가? 엄마가 무서워났다. 그리고 아버지가 불쌍해났다. 사진 속 남자와 엄마는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았다. 불현듯 “넌 누구 딸이니?”라고 중얼거리던 엄마의 말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혹시 나한테 출생의 비밀 같은 게 있는 건 아닐가?   5 엄마의 남자   영애의 순정을 빼앗은 나는 발길을 돌리면서부터 후회했다. 아무래도 보내줄 걸 사나이답게 보내줄 것을. 그 자책감은 내 인생을 동반했고 다른 녀자를 가까이할 수 없게 만들었다. 나는 한평생 총각으로 늙어가도 좋다고 생각했다. 헤여지자는 영애의 말에 나는 미치도록 흥분했다. 죽겠다는 사람을 살려놓고 도와주겠다고 말한 사람은 나였다. 또한 자신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고중 3년 동안 나의 생활비 절반을 덜어 그녀의 식비를 대주었다. 사랑하는 그녀를 위하여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4년 동안 뒤바라지를 해주었다. 그 시간들이 억울해서였을가? 그러나 영애를 위해 대학진학을 포기했지만 실제로는 영애보다 더 많은 공부를 하였다. 나는 계획에 따라 2년제 전문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졸업증을 땄으며 그후에 통신대학에서 조선언어문학을 공부하여 영애와 똑같이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과 본과졸업증을 따냈다. 영애가 대학을 졸업할 때에 나도 똑같이 대학졸업증을 내밀며 놀라게 해줄 예정이였다. 그런데 도리여 영애에게서 생각지도 못한 리별통보를 받을 줄이야. 30여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나는 영애가 나에게 한 그 말을 리해할 수도, 믿을 수도 없었다. 그 날도 우리는 사랑을 약속한 그 호수가에서 만났다. “난 너와 그 남자를 둘 다 사랑해. 둘 다 진심이야. 그런데 너를 선택하면 난 영원히 ‘바보네 딸’로 살아야 하잖아? 내가 ‘바보네 딸’인 걸 모르는 사람하고 살고 싶어. 룡택아, 날 보내줘.” 만약에 그 때 영애가 단지 ‘바보네 딸’로 살기 싫어서 떠나겠다는 말만 했더라면 나는 그렇게 화가 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쩌면 눈물을 흘리면서 사랑하니까 보내준다는 시 같은 말을 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와 그 남자 두 사람을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에 참을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마음은 하나뿐이야, 몸도 하나고 령혼도 하나인 것처럼. 거짓말하지 마.” 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영애는 눈을 크게 뜨더니 억울한듯 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난 너를 사랑한다고. 그 마음이 변한 거 아니야. 그냥 또 다른 사람을 사랑한 것뿐이라고. 제발 믿어줘. 어쩌면 믿을 건데? 이 호수에 빠져 죽을가? 죽으면 믿을 거야?” 영애는 진짜로 호수로 뛰여들려고 하였다. 몇년전의 정경이 떠올라 나는 영애의 팔을 잡았다.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았는지 영애는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고 악을 쓰며 몸부림을 쳤다. 그 바람에 옷이 다 벗겨지고 처음 이곳에서 영애를 만났을 때처럼 그녀의 흰 살결이 드러났다. 순간 우리는 멈칫했다. 영애는 몸을 돌려 내 품에 안기면서 말했다. “너를 사랑해, 영원히. 내 몸으로 증명해줄게.” 내 머리속에는 한가지 생각뿐이였다. ‘사랑은 하나야. 몸도 하나야.’ 나는 그녀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싶은 반발심에 서슴없이 그녀의 몸을 가졌다. 몸으로 사랑의 약속을 하는 그녀를 두고 돌아서는 사나이의 가슴에서는 피가 흘렀다. 그러나 하나만은 더 또렷해졌다. 영애는 영원히 내 녀자라는 것, 영애를 위해 살고 영애를 위해 죽을 것이며 오늘은 영애를 위해 떠나간다고… 나는 영애가 날 필요로 할 때 언제든지 달려갈 준비가 되여있었다. 지금 영애가 날 부르고 있다. 나는 일각이 삼추같았다. 고향에 돌아가 영애와 함께 남은 인생을 보내리라 작심하였다. 퇴직이 반년 정도 남아있으나 아끼는 후배한테 주필자리를 넘겨줄 생각이다. 그 애와는 첫 만남부터 이상하게 남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비록 세대차이가 있었지만 말하지 않아도 나의 의사를 잘 알아주었고 문제를 보는 시각이나 견해도 같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나이가 어리지만 곁에 두고 싶어 정식직원으로 받아주었다. 그런데 리력서를 보는 순간 나는 운명이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재확인하면서 온몸에 전률이 일었다. 엄마가 박영애, 바로 내 첫사랑 영애의 딸이였던 것이다.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잠자던 영애는 그 때로부터 내 주변을 맴돌았다. 영애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착잡했지만 나중에는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 여기며 영애의 딸 명화를 내 딸처럼 살갑게 대해주었다. 마음은 통하는 법이다. 명화도 말로는 주필님이라고 부르지만 날 가족처럼 대했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명화한테 업무를 인계하고 시름 놓고 영애를 찾아가야지 하는 생각에 가슴이 설레면서 잠이 오지 않았다. 그 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현관 카메라 화면에는 명화의 그늘진 얼굴이 나타났다. 례사롭지 않은 표정이였다. 언제나 고민스러운 일이 있으면 나를 찾아오긴 했지만 오늘처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기는 처음이였다. 문을 열어주니 아무렇게나 옷을 걸쳐 입은 명화가 초췌한 얼굴로 맨발에 끌신을 신은 채 서있었다. 집으로 들어온 명화는 곧추 쏘파에 가 맥없이 주저앉았다. 나는 말없이 따뜻한 커피를 타서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 몰몰 피여오르는 커피향이 분위기를 느슨하게 풀어주었다. 명화는 잔을 들어 한모금 마시더니 약간은 진정된듯 조용히 말했다. “주필님, 내가 이 나이 돼서 나의 출생의 비밀 같은 걸 알았다면 꼭 사실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을가요?” 나는 순간 흠칫하면서 커피잔을 든 손이 떨려왔다. “그게 무슨 말이야?” “어머니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리는 걸 들었어요.” 나는 갑자기 머리가 뜨거워났다. 혹시? 나는 왜 그 생각을 단 한번도 못했을가? 복잡해지는 생각을 잠간 멈추고 마음을 추스리며 커피를 단숨에 쭉 굽을 냈다. 그리고는 차분한 목소리로 다독이듯 말했다. “어머니가 너무 슬퍼서 그냥 하는 소리겠지. 진짜 뭔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네가 알아야 할 일이면 자연히 알게 될 것이고 몰라도 되는 일이라면 그냥 내버려두는 게 좋지 않을가 싶은데… 어머니의 선택에 맡기는 게 도리인 것 같구나.” 명화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사색에 잠긴듯 멀거니 캄캄한 창밖을 응시하였다. 나도 명화의 시선을 따라 캄캄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맘속에 오래도록 두고 있던 말을 서서히 내뱉고 말았다. “녀자들은 두 남자를 동시에 사랑할 수 있는 거니?” 밑도 끝도 없는 내 말에 명화는 놀란듯 올롱한 눈으로 나를 이윽히 바라보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할 수 있어요. 나는 지금도 두 남자를 사랑하고 있어요.” 말을 마친 명화는 그윽한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결심한듯 일어서며 창문을 열었다. 이제 곧 동녘이 서서히 밝아오며 어둠을 밀어낼 것이다. 나는 미리 준비했던 인계서류와 문서들을 꺼내놓았다. “새날이 곧 올 거고 생활은 계속될 거야. 래일부터는 네가 주필이다. 그리고 이 집도 네가 맡아줘. 나는 시골로 내려가서 내 글이나 쓰면서 만년을 보내련다. 시간이 나거들랑 종종 찾아다구.” 쫓듯이 명화를 보낸 후 나는 헝클어진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몇시간째 방안을 배회했다. 마지막으로 남은 담배 한가치를 입에 물었다. 영애의 딸이면 내 딸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영애의 딸이 내 친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왜 한번도 해보지 못했을가? 이 세상에 혼자 왔다가 혼자 갈 줄 알았는데 내 피줄이 있다니, 피줄에 대한 강한 끌림과 흥분에 세상마저 달라지는 것 같았다. 명화가 내 자식이면 얼마나 좋을가? 명화가 인정하지 않아도 좋다. 나만 알고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꼭 알고 싶어졌다. 나는 채 태우지 못한 담배를 비벼 끄고 명화가 마셨던 커피잔을 챙겼다.   6 재회   과연 사람은 운명을 벗어날 수 있을가? ‘바보네 딸’로 살기 싫어서 부모님을 버리고 사랑을 배반하고 이방인처럼 고향을 떠나 살아온 세월이 36년이다. 그동안 비록 나를 ‘바보네 딸’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지만 나는 내가 ‘바보네 딸’이라는 생각을 지우지 못했다. 이제는 운명에 머리 숙이고 나의 숙명을 다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먼저 명화한테 영상전화를 걸었다. “명화야, 이번 주말에 엄마랑 같이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보러 가자.” 명화가 놀라운듯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물어왔다. “뭐라구? 나한테 외가집이 있었어? 엄마 혹시 어디 아파?” 나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불안하게 나를 바라보는 명화의 눈길을 피했다. “엄마가 너한테 말 못한 게 있어. 연변 룡정에 석정이란 곳이 있어. 해란강 끝자락에… 거기가 엄마의 고향이야. 외할머니, 외할아버지도 생전이시고. 주말에 엄마랑 같이 가보자. 시간 비우고 기다려라. 자세한 건 만나서 이야기해줄게.” 말을 마치고 나는 전화를 끊어버렸다. 남편도 명화도 나의 부모님에 대해서 모른다. 남편을 따라 여기로 와서 5년후 명화가 첫돌생일을 쇠던 날, 나는 어머니가 실명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삯바느질을 많이 해서인지 아니면 집을 떠난 이 딸이 보고 싶어서인지 어머니는 손녀의 얼굴도 못 본 채 두 눈이 실명되여 더 이상 가정을 이끌어나갈 수 없었다. 하여 나는 두분을 장애자복지시설로 모셨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이야기하였다. “괜찮다, 너만 행복하게 살면 돼. 우리 걱정은 말구. 우리가 죽었다 하구 살어라. 다시는 찾지 말라.” 어머니의 보이지 않는 두 눈에 눈물이 그득 고였다. 나는 아무 말도 안했다. 할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뒤따라 나오며 물었다. “너 어디 가? 우릴 데리러 올 거지?” 내가 사간 사과를 한입 뚝 떼서 입에 문 채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묻는 소리였다. “나 학교 가요. 졸업하면 올게요. 엄마 말을 잘 듣고 계세요.” 늘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내가 어쩌다 차분하게 존대말까지 해서 기분이 좋은지 아버지는 헤헤 소리내여 웃었다. “알았어, 기다릴게. 숙제 빨리 하고 와.” 그렇게 떠난 후 나는 혹간 남편 몰래 엄마와 짧게 통화를 했을 뿐 한번도 찾아가보지 않았다. ‘바보네 딸’은 이제야 그 ‘숙제’를 다 마쳤다. 고향에 돌아가 옛집을 보수한 다음 두분을 모시고 여생을 살아야겠다. 결정을 내리고 나니 마음이 급했다.   새 농촌 건설을 하면서 나라에서 집을 새로 지어주었다는 말은 들었지만 이렇게 2층으로 된 호화로운 전원주택은 아닐 텐데… 나는 빠끔 열려진 문을 조심스럽게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는 포도넝쿨로 갓을 올린 길이 쭉 뻗어있었고 량옆에는 빨갛고 노란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 자라나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 마치 례식장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감히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어정쩡하니 그 자리에 선 채 집주인을 불렀다. “계십니까?” 그 때 포도넝쿨 뒤쪽에서 한 남자가 나타나더니 나를 향해 시나브로 걸어왔다. 저 곱슬머리, 저 미소, 저 걸음걸이, 어쩐지 익숙하다. 아! 룡택이다. 룡택이였다. 가슴이 툭 소리를 내며 뛰였다. 룡택이는 내 앞에 와 서더니 나를 한참 여겨보았다. 그리고는 입을 열었다. “끝내 왔구나. 네가 올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지.” 그는 내 손을 으스러지게 잡았다. 나는 온몸이 굳어져버렸고 그대로 붕 뜨는 것 같았으며 꿈인지 현실인지 정신이 혼미해졌다. 입도 굳어져 말할 수 없었다. 룡택이는 나를 끌고 한발한발 꽃길을 따라 마당을 꿰질러 집안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거실이야. 온 집 식구들이 모여서 텔레비죤도 보고 차도 마시면서 즐기는 공간이야. 량쪽에 방 하나씩 있는데 오른쪽 방은 우리 둘이 쓸 방이야.” 그 방은 젊은 신랑각시의 신혼방처럼 아늑하게 꾸며져있었다. 탁자 우에 놓인 사진이 유표하게 눈에 띄였다. 아, 대학입학통지서를 펼쳐들고 찍은 나와 룡택이의 사진, 나는 끌리듯 다가가 액자를 만지작거렸다. “이걸, 아직도 간직하고 있었네.” 나는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럼, 내 인생에서 첫번째로 따낸 큰 성과인데… 좋은 것들이 많으니까 천천히 보여줄게.” 룡택이는 신이 난듯 빠른 걸음으로 왼쪽 방으로 향했다. 커다란 온돌방이였다. “이 방에는 너희 부모님을 모실 예정이야. 그리고 웃층은 서재와 손님방으로 쓸 거야. 혹시 명화네가 놀러 오면 거기서 지낼 수 있게 말이다.” “명화? 명화를 어떻게 알아?” 명화라는 말에 나는 갑자기 전기에라도 닿은듯 몸을 흠칫 떨었다. “여기에 앉아. 내가 천천히 이야기해줄게.” 룡택이는 차거워진 내 손을 다시 잡았다. 나는 가슴이 옥죄여들었다. 심상치 않은 느낌이 가슴 속에서 스멀스멀 연기처럼 피여올랐다. “명화가 누구 딸이야? 혹시 내 딸이야?” 순간 귀가에서 윙— 하는 소리가 울렸다. “아니야, 누구 딸도 아니고 내 딸이야.” 룡택이는 잠간 생각하더니 서류봉투를 꺼내놓았다. “나 이 세상에 혼자 왔다가 혼자 가려고 했는데 정작 명화가 내 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달라지더구나. 그래서 친자감정을 했어. 너와 함께 보려고 여직껏 두고 있었어.” 그것은 밀봉을 떼지 않은 친자감정서였다.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와 내 심장에 꽂히면서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룡택이는 봉투를 열고 속지를 꺼냈다. “안돼, 꺼내지 마.” 나는 괴성을 지르며 손을 뻗어 속지를 빼앗아 마구 뭉그렸다. 이 때 갑자기 문이 쾅 열리더니 명화가 뛰여들어왔다. “엄마, 난 도대체 누구 딸이야? 나 줘. 나는 알 권리가 있잖아.” 나는 종이를 움켜쥔 손을 뒤로 감추었다. 명화가 다가와 내 손에서 그것을 빼앗으려 하였다. 내 눈에서는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엄마는 진짜 나쁜 사람이야. 아버지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지 마. 자기를 낳아 기른 부모님도 버리고 사랑했던 사람도 배반하고. 내 인생마저 더럽히지 말라고. 내가 엄마 딸이라니 부끄러워!” 명화가 히스테리적으로 소리 질렀다. “나는 ‘바보네 딸’인 게 부끄러웠는데 너도 내 딸인 게 부끄럽다고?” 숨이 막혔다. 나는 두 눈을 조용히 감았다. 하늘에서 남편이 내 손을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끝 2023.연변문학 12기 발표
1    그대 가슴에 심은 내 사랑의 손 댓글:  조회:20  추천:0  2024-12-08
그대 가슴에 심은 내 사랑의 손  허복순 이 소설의 어떤 序       이 세상에서 너를 처음 만나던 날, 너의 왼쪽가슴이 내 바른손에 스치였지. 본의 아니고 우연이였어. 스친 것 치고는 너무 했었지. 내 오른손에 너의 봉긋한 왼쪽가슴이 쥐여졌으니깐. 옷깃 한번만 스치어도 500겁 인연이라 했었지. 그렇다면 너와 나의 인연은 얼마나 될까.     난 바보 같이 잘 모르겠어. 그걸 사람이 헬 수 있나. 부처님이나 헬 수 있는 윤회의 논리이지. 그래도 감격스럽고, 이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서로를 알지 못했던 우리의 인연이 억겁의 연륜으로 이어진 윤회의 소산이라는 것, 아무리 억겁의 연륜으로 거대한 윤회의 산을 넘어도 결국은 네가 이생에서 내 사랑이라는 것만 감회의 행복일 뿐이지.     그날, 우리는 공원의 산책로에서 서로 마주쳤지. 우리가 산책로의 인공호수 외나무다리에서 서로를 스칠 때 너는 나와 어깨가 스치는 걸 피하려다가 그만 좁은 외나무다리에서 떨어질 뻔했었지. 만약 내가 왼손으로 너의 오른쪽 허리를 부둥켜안아 잡지 않았더라면 넌 큰 사고를 당할 뻔 했었어. 그런데 말이야. 우리에게 더 큰 사고가 터지고 말았지. 내가 왼손으로 너의 오른쪽 허리를 부둥켜안았을 때 나의 오른손이 너의 왼쪽가슴으로 뻗어갔고, 너의 가장 소중한 왼쪽 젖가슴이 내 손에 쥐여졌어.     우연치고 너무 아름다운 우연이고, 실수치고 너무 화려한 실수였지. 그때 내 오른손에 쥐여진 것은 너의 왼쪽 젖무덤 뿐만 아니라 너의 심장이였어. 아주 찰나였지만 내 손에서 박동하던 그 심장은 수만 년의 시공간을 초월하는 억겁의 인연을 재생시키는 심장이였지.     그때부터 너와 나의 아름다운 사랑은 시작되였어. 그리고 너의 왼쪽 젖가슴은 내가 너의 마음의 문을 여는 신비의 열쇠였고, 그 속에서 박동하는 너의 심장은 너의 열렬한 사랑을 분출하는 거대한 엔진이였지.     내 사랑의 손은 늘 너의 왼쪽 가슴에 심어져 있었어. 내 사랑의 손이 너의 왼쪽 가슴에 심어질 때마다 나는 너의 가슴을 애무하며 너의 심장을 만졌지. 너는 내 사랑의 손에 너의 자그마하면서도 풍만하고, 탄력이 있는 가슴을 내여주면서 너의 뜨거운 사랑으로 내 젊은 피를 뜨겁게 해주었지.     그렇게 인연이 되여 우리는 행복하고도 달콤한 결혼생활을 8년 동안 영위해왔어. 너의 두 가슴은 이제 내가 사랑의 손을 깨끗이 씻는 샘터가 되였지. 그래서 내 사랑의 손은 이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손으로, 가장 행복한 손으로 되여 너의 거대한 우주를 가질 수 있었어.     그런데 말이야. 너의 왼쪽 젖가슴을 사랑해온지 8년이 되던 그날, 나는 갑자기 6년이란 긴 출장을 가게 되였어. 단 하루라도 너의 왼쪽 젖가슴에 내 사랑의 손을 묻거나 씻지 못하게 된다면 내 사랑의 손은 불안에 떨 것이야. 하지만 별 수가 없지. 내가 안 가겠다고 버틴다 해서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출장이니까. 결국 나는 6년이란 긴 출장에 끌려가고 너의 왼쪽 젖가슴은 내 잠실에 그리움으로 남겨야 했어.     아, 내 사랑하는 그대 왼쪽 젖가슴이여! 잘 있어다오. 나 금방 다녀오리다. 6년의 긴 출장을 단숨에 다녀오리다. 오늘 밤도 너의 아름다운 왼쪽 젖가슴에서 발사된 너의 사랑의 혼신 같은 별이 내 손 끝에 스친다. 1  불안한 손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6개월 동안의 신물 나는 심문과 조사 끝에 간수소생활에 종지부를 찍는 날이다. 지금까지 집에서는 엄친아로, 학교에서는 우수생으로, 직장에서는 모범공무원으로 늘 떠받들려 살아왔는데 이렇게 수갑을 찬 모습으로 법정에 서리라고 나는 꿈에서마저 생각지 못했었다.      나는 죄가 없다. 재정부장으로서 국장님의 한 팔이 되여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    “국장님이 다 알아서 해준다고 했으니까 감옥에 가는 일은 없겠지.”라고 생각하며 오늘저녁에는 안해의 품으로 돌아가 내 사랑의 보물인 그녀의 젖무덤들을 애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은 몹시 설렜다. 나는 한밤중에 호출전화를 받고 일어나 손에 쥐이는 대로 옷 한 벌 주어입고 나온 채 다시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보고 싶다. 만지고 싶다. 보동보동한 안해의 젖무덤들을. 잘 있었겠지. 아마도. 그 사이 안해의 젖무덤들을 애무하지 못해서 나는 잠마저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안해의 가슴을 떠난 내 손이 몹시 힘들어 하는 것 같았다. 오른손이 허전했고, 밤에는 더구나 뭐든지 쥐고 만지작거려야 그나마 잠들 수 있었다.      법정에 도착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는 객석을 한번 눈빛 질하였다. 아는 사람의 얼굴을 찾았다. 아무도 없었다. 국장님도, 내 사랑하는 안해도 보이지 않았다. 태산처럼 믿었던 국장님이 보이지 않자 조금 불안해난다. 날 버린 건 아닐까? 손끝이 저려난다. 저도 몰래 손풍금이 쳐진다. 안해의 가슴과 헤여진 후로 생긴 버릇이다. 불안할 때면 자꾸 안해의 젖무덤들이 생각나고 그 사랑스런 것들과 장난치던 손동작을 하군 한다. 안해가 보이지 않자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보고 싶지만 또 나의 이런 몰골을 보여주기 싫기도 하니 안도의 숨이 내쉬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출장 갔다가 돌아온 듯 그냥 자연스럽게 만나는 게 더 좋을 듯하다.     드디어 재판을 시작하였다. 변호사석에는 국장님이 담보했던 그분은 없었다.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던 국장님인데 설마 약속을 어긴 건 아니겠지 하면서도 불길한 예감이 갈마들면서 슬그머니 당황해난다. 가슴이 세차게 뛰고 얼굴이 달아오른다. 오른손은 또 빠르게 움직인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안해의 젖무덤들을 애무하던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리며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갑자기 익숙한 아카시아향이 코를 자극한다. 아! 왔구나. 사랑하는 안해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면바로 안해의 눈길과 마주쳤다. 그녀는 조금 초췌해지긴 했어도 역시 아름다웠다. 내가 결혼 첫 날밤 사랑의 선물로 사주었던 하얀 잠옷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안해의 그 애잔한 눈길은 내 가슴을 아프게 찔러온다. 저도 몰래 목이 메어오면서 눈물이 그들먹이 고여 오른다. 사내대장부가 웬 눈물? 나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고 눈을 아래로 내리 깔았다. 안해의 봉긋한 가슴사이에로 난 길이 유표하게 내 눈길을 끈다. 안해의 젖무덤들도 격동으로 오르락내리락 움직이며 반갑다는 듯 인사를 보내는 것 같았다. 내 손길이 날마다 다가가던 안해의 가슴 길, 다시 더듬어 가고 싶다. 가슴노출이 너무 심해 잠실에서만 착용하기 편하고, 밖에 입고 나갈 수 없는 잠옷원피스로 우리 둘만의 사랑 기념일에만 입으라고 내가 사줬던 옷이었지만 오늘 안해는 그 옷을 입고 나왔다. 남들 보기에는 참 격에 맞지 않는 옷차림이었을 것이고, 미치지 않았나 생각할 수도 있는, 오늘의 상황과 절대 맞지 않는 옷차림이었다. 세속의 비난을 받더라도 나만을 위한 안해의 뜻있는 옷차림에 내 가슴은 찢어진다. 절대 실망시키지 말아야 할 텐데…    “조용하시오. 최종판결문은 사후에 다시 공포하겠습니다. 탁, 탁, 탁!”      종결을 알리는 법관의 망치소리는 내 머리를 치는 것 같았다. 일순 나는 멍해졌다. 내가 죄범이 된다고? 심장이 멎는 것 같았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나는 구원이라도 바라는 듯 아내를 돌아보았다. 눈물이 차올라 예쁜 안해의 얼굴마저 희미하게 보인다. 안해는 놀란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잠시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의자등받이를 잡고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안해는 왼손으로 오른쪽 가슴을 부여안고 오른손을 들어 왼쪽젖무덤을 호되게, 호되게 때리고 있었다.    “제발 그러지마. 네 가슴을 아프게 하지 마.”라고 나는 안해의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을 달래주고 싶었지만 나에겐 이제 자유가 없다.     간수소생활은 점점 힘들어져 갔다. 하루 이틀이면 나갈 줄 알았건만 일은 점점 복잡해져갔고, 다시 돌아갈 희망은 점점 희미해져 갔다. 나는 거의 밤마다 실면을 했다. 두 사람의 열띤 몸부림에 신나게 춤춰주던 스프링침대는 딴딴하고 차가운 감방바닥으로 바뀌였고, 은은한 아카시아향이 풍기는 아내의 탐스러운 젖가슴에 묻혀서 행복을 꿈꾸던 얼굴은 문틈으로 새여나오는 퀴퀴한 화장실 내음에 절어서 찌그러져 있다.      손을 들어 콧가로 가져간다. 내 손안에서 꼼지락거리며 놀아주던 그 몽글몽글한 것의 아카시아향이 아직도 남아있는 것 같아서 나는 한껏 들숨을 쉰다. 은은한 향이 머릿속을 감돌아치면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눈이 부시다. 스르르 눈이 감겨진다.     자오록한 연무 속 저 멀리로부터 안해가 하얀 드레스를 두 손으로 받쳐 올린 채 해바라기처럼 웃으면서 나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부풀어 오른 하얀 가슴 전체가 점점 가까워져온다. 숨이 차오른다. 잡으려고 손을 뻗쳤다. 두 손에 넘치게 차오를 것만 같던 가슴이 구멍 난 고무풍선처럼 갑자기 쑥 가라앉으면서 밋밋하게 느껴진다. 놀란 손은 놓쳐버린 거나 아닌가 싶어 가슴주변을 부지런히 더듬는다. 뭔가 잡혀진다. 내 손을 간지럽게 하던 그 보동보동한 느낌이 아니다. 어딘가 많이 쭈그러져 있다. 갑자기 내 손을 확 뿌리친다. 이어서 “찰싹” 하는 소리와 함께 귀뺨이 얼얼해 잠에서 깼다.    “야 이 변태새끼야? 죽고 싶니?”하는 소리와 함께 주먹질과 발길질이 날아든다. 나는 상황파악을 하지도 못한 채 한바탕 두들겨 맞았다.      꿈이였다. 안해가 아니였다. 옆에 누웠던 폭행죄로 들어온 사람의 가슴이였다. 나는 매 맞는 몸의 고통보다 잃어버린 꿈속의 안해가슴이 더 아쉬웠다. 그 후로 나는“변태새끼”라는 별명을 가졌고, 아무도 가까이에 누우려고 하지 않아 다시는 그런 꿈을 꿀 기회조차 없었고, 화장실 가까이 제일 구석에 밀려나 지린내를 맡으면서 차가운 벽에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안해의 품이 그립다. 젖 뗀 아이가 엄마가슴을 찾듯이 아내의 가슴이 그립다. 결혼해서 8년 동안 우리는 하루밤도 떨어져 자본적이 없다. 잘 때면 꼭 안해의 젖가슴을 만져야만 잠들 수가 있었다. 혹시라도 잠이 잘 안 올 때면 한참씩 안해의 젖무덤을 조물락거리고 있어야 소르르 잠이 들곤 하였다. 내가 손을 아내의 젖가슴에서 온밤 떼고 있지 않아서 불편하기도 하고, 잠에 지장이 될 법도 하였건만 안해는 단 한 번도 귀찮을 부린 적 없이 다 받아주곤 하였다.      사실 나는 첫눈에 안해의 가슴에 반해 사랑을 추구해왔었다. 처음 만났을 때에도 안해의 가슴은 뭔가 달라보였다. 다른 여자들하고 뭐가 다른지를 발견 못했지만 왠지 달랐다. 그것이 궁금해서 나는 그녀와의 만남을 계속했다. 꼭 알고 싶었다. 도대체 어디가 남다를까? 안해의 젖가슴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안해와 결혼을 하고서야 나는 안해의 신비한 젖가슴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안해의 젖가슴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의 젖가슴이었다는 그 행복감을… 나는 안해와 처음 잠자리를 하던 그때를 떠올렸다. 안해의 젖가슴은 정말 너무 예쁘고 호함져서 내 눈이 황홀했다. 손이 떨려왔다.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손이 닿는 순간 찡하는 전율이 흐르면서 손은 순간적으로 튕겨 나왔다. 다시 시도해봤다. 내 손바닥이 닿는 순간 그 부드러운 촉감은 내 온몸에 전율이 쫙 흐르게 하였고, 그것을 조물락조물락 할 때는 내 호흡이 거칠어지고, 내 심장이 뛰는 소리가 크게 들리였다. 보동보동한 안해의 젖무덤이 손에 잡혀올 때 내 전신은 전율하였고, 무언가가 불뚝 일어섰으며, 조심스럽게 입술이 다가갔을 때 마치 엄마의 젖을 입에 문 갓난아기처럼 내 입은 달콤했고, 내 마음도 그렇게 평온하고 행복할 수가 없었다.      안해는 종래로 브라자를 하지 않았고 가슴에 무한한 자유의 공간을 주었다. 남들처럼 철 테두리를 한 브라자를 입혀 산처럼 높이지도 않았고, 솜 같이 부드러운 브라자를 씌워 부드러움을 강조하지도 않았었다. 그렇게 안해는 순수를 추구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통통 튀는 자신감 넘치고 매력적인 가슴을 가지고 있었다.     그날부터 내 손은 안해의 가슴을 떠나 본적이 없었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서면 일반 신혼부부들은 서로 껴안고 키스로 인사하지만 나는 입술보다 두 손을 동그랗게 하고 안해의 젖가슴부터 만져보았다. 안해도 거기에 습관이 되여 입술대신 가슴을 쑥 내민다. 안해는 가슴보호 장치를 하는 습관이 없어서 그녀의 젖가슴은 아무 때건 만져도 느낌이 좋고 편하였다.     그렇게 내 손을 떠나지 않던 안해의 젖가슴들과 갑작스럽게 생리별을 한 나의 두 손은 너무 허전하여 무엇이라도 잡기 않고서는 내 몸의 일부가 아닌 듯 감각이 없어지고, 어떤 때에는 찡하니 저려나기도 했으며, 갑자기 손끝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가려워나기도 하였다. 낮에 일할 때 손에 무언가가 잡혀있으면 조금 나아지는 듯하였고, 손을 움직여 무언가 만지작거리고 있으면 피가 거침없이 통하는 기분이 들면서 마음이 안정되기도 하였다. 밤이면 증세가 더 심했다. 가려워서 쉼 없이 긁다보니 손바닥이 터져서 피가 막 흘렀다. 자면서 긁는 걸 방지하기 위하여 손을 테이프로 감고 잤다. 그랬더니 손이 부어나고 손끝이 새까맣게 절맥하기 시작하였다. 검사를 받아보면 아무 이상이 없단다.       드디어 판결서가 내려왔다. 직무남용, 횡령죄로 6년 도형이 언도되였다. 6개월간의 간수소생활이 끝나고 나는 감옥으로 이송되였다. 감옥은 간수소보다 여러 가지 시설이 구전하여서 생활하기에 많이 편했다. 가끔 활동실에서 취미에 따라 운동도 할 수 있었고, 컴퓨터로 주어진 내용을 열람할 수도 있었다. 독서실도 있었는데 거기에는 8대의 컴퓨터와 많은 서적들이 마련되여 있었다.     나는 조용한 독서실에 들어섰다. 매일 같이 만지고 일하던 컴퓨터를 이런 환경에서 마주하니 왠지 마음이 아팠다. 나는 천천히 컴퓨터 앞에 다가가 컴퓨터를 처음 보는 사람처럼 컴퓨터를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십여 년간 출근하면서 힘들다고 투정부렸던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행복했었는지가 새삼 느껴진다. 자리에 앉았다. 비록 사무실의 포근한 가죽의자가 아니고 딴딴한 나무걸상이였지만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었다. 마치 내 자리는 원래 여기야 하고 말해주는 듯싶었다. 오른손을 올려 마우스를 잡았다. 아프던 손이 서서히 풀리는 것 같았다. 멈췄던 박동을 다시 시작한 듯 손은 서서히 원색을 회복해가는 것이였다. 포근하게 한손을 꽉 채워주는 느낌, 아! 나는 저도 몰래 신음소리를 냈다. 번개에 치이기라도 한 듯 온 몸에 전율이 일었다. 가슴을 잡은 것 같은 이 감각 너무 좋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머리를 숙여 마우스에 키스를 했다. 손을 들어 그것을 두 손에 꼭 쥐고 가슴에 안은 채 눈물을 흘렸다. 마우스가 있다면 내손이 외롭지 않을 것 같았고, 잠도 잘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은 내꺼야. 내 사랑하던 아내 가슴이 이런 방식으로 날 찾아온 거구나. 나는 모든 걸 망각한 채 아내 가슴의 포근함을 찾았다는 희열에 들떠 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격이였다. 이거면 될 것 같았다. 마우스만 있다면 긴긴 6년 세월 사랑하는 아내의 젖무덤들을 다시 만나는 그날까지 내 손은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내 손은 매일 잠깐씩 감옥독서실에서 마우스를 만지며 아내의 젖무덤에 대한 그리움증후군을 달래여 갔다. 2 불안한 가슴       나는 불안한 가슴을 붙안고 법정으로 향했다. 속으로는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제발 아무 일도 없어라) 라고 수없이 되뇌이였다. 나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면서 법정대문에 들어섰다. 나는 비록 신을 믿지 않았지만 잠간 멈춰 서서 두 손을 합장한 후, 신께 빌었다.    “만약 신이 계신다면 신께 빕니다. 저의 남편은 착한 사람으로 절대 나쁜 일을 안 했을 거예요. 제발 무사히 풀려나오도록 도와주십시오. 제가 이렇게 간절히 빌게요. 저의 소원을 들어주신다면 그 어떤 대가도 치르겠습니다.”     나만의 기원의식을 치르고 마음을 추스른 후, 나는 법정에 들어섰다.      남편의 뒤 모습이 보인다. 나는 천천히 앞쪽으로 걸어가 남편이 잘 보이는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가슴이 후두득후두득 뛴다. 늘 깔끔하게 다듬어져있던 남편의 머리는 아무렇게나 흘러내려 귀를 덮고 있었고, 어깨도 축 처져 내려앉았다. 변하지 않은 건 하얀 두 손뿐이였다. 손목에 채워진 시퍼런 수갑에 대비된 손은 더 희여 보였고, 두 손바닥은 마주향해져 있었으며,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동그랗게 모양을 낸 채 다섯 손가락을 번갈아가며 피아노 치듯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불안을 털어내기 위한 손동작이겠건만 왠지 나는 저 동그란 손안에 내 가슴이 들어가 있는 듯 이상하게 그 손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가슴도 같이 반응하면서 옴찔옴찔하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어이가 없다. 이 억장이 터지는 순간에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게 이상했다.     남편의 손 신경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내 가슴에 느낌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믿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남편도 아마 이 순간을 벗어나고 싶어서 손의 움직임으로 긴장을 완화시키고, 몸은 법정에 있지만 머리는 행복했던 시간에 머무르고 싶었을 것이다. 주변의 모든 것들은 정지되어 있는 듯 나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고, 남편의 손가락만 이 세상을 움직이고 있는 듯싶었다. 귀는 닫히고 눈은 한곳만 응시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서 남편의 손과 내 가슴만 움직이는 듯싶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그 손의 움직임이 뚝 멈추어졌다. 남편이 갑자기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본다. 놀라움에 커다랗게 둥글어진 눈동자에 순간 그늘이 비껴가더니 눈물이 그들먹이 고여진다. 나와 눈길이 마주치는 순간 눈물은 사라지고, 잔잔한 애수가 흘러내려 내 가슴을 아프게 적신다. 거기에는 몇 년 동안 헤어져야 할 지 모르는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억울함, 나에 대한 걱정, 리별의 아쉬움과 사랑의 복잡한 감정이 서로 융합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제복을 입은 사람에게 등을 떠밀린 채 그는 앞으로 한 발작 옮긴다. 다시 한 번 고개를 돌린다. 이번에는 가슴을 향하여 리별의 눈길을 던졌다. 가슴이 찔려온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올려 가슴을 움켜잡았다. 찌르는 듯한 통증이 온몸을 휩쌌다. 그는 입가에 알릴 듯 말 듯한 웃음을 싣더니 결심한 듯 결연히 몸을 돌리고 빠르게 멀어진다. 그와 동시에 그의 두 손은 또다시 옴찔옴찔 피아노 건반을 치기 시작하였다      결혼한 지 8년이 되어가건만 우리는 하룻밤도 떨어져 잔적이 없었고, 여자들만의 특수시간을 빼고는 아름다운 정사를 치르지 않은 날이 없었다. 남편은 첫날밤의 그 정열과 흥분을 전혀 식힐 줄 몰랐다. 그날도 우리는 폭풍우 같은 사랑을 나누었고, 지친 남편은 손으로 내 가슴을 꼭 부여잡은 채 혼곤히 잠들어 있었다.     “당신밖엔 난 몰라…”      한밤중에 갑자기 들려오는 핸드폰음악소리에 화들 놀란 남편의 손은 내 가슴에서 쑥 빠져나가며 전화를 들었다. 남편의 손에서 떨어져나간 가슴은 갑자기 내 몸에서도 튕겨나가는 듯 일순 가슴이 썽하니 차갑게 느껴졌다. 그렇게 급작스럽게 국장님의 전화를 받고 불려나간 남편의 두 손은 지금까지 다시 돌아오지 못한 채 수쇄에 채이였고, 얼어든 내 가슴은 정상 체온을 찾지 못한 채 떨고 있다.     남편이 없는 빈집에 들어서기가 두려웠다. 임자를 잃은 내 가슴은 주인과 만났던 그 자리에만 가면 반응한다. 주사바늘이 두려워 바들바들 떨어대는 아이처럼 나는 화닥화닥 떨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집 문을 연다. 발을 들여놓았다. 습관적으로 마중 나오던 주방 쪽으로 눈길이 간다.    “왔어? 우리 여왕님!”      남편은 앞치마를 두른 채로 달려 나오면서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쓱쓱 문지르고는 두 손을 펼쳐 조심스럽게 한손에 하나씩 가슴을 잡고, 두 가슴사이에 얼굴을 묻으면서 냄새를 킁킁 맡고는 “향이 참 좋아!” 하고는 두 가슴에 한 번씩 입 맞춘 후에야 나는 신발을 벗고 집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는 날마다 하는 의식이였다.     남편의 지나친 가슴사랑이 나는 싫지가 않았다. 남편은 조건이 좋았었다. 높은 자리에 계시는 부모님 덕에 부러운 것 없이 커왔고, 학업이나 일자리도 순풍에 돛단 듯이 잘 풀려 일류대학을 나와서 모모국의 재회과에 분배되었고, 이듬해에 재회과 과장으로 승진하였다. 그 즈음 또 모모국 부국장으로 발탁된다는 소문이 돌 때에 나하고 첫 만남을 가졌었다.     대학도 못 나오고 일개 작은 옷가게의 이름 좋은 사장인 나하고는 조건이 훨씬 우월했건만 첫눈에 나한테 반하여 열렬히 사랑을 추구해왔다. 후에 내가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물었더니 사실은 내 가슴에 반했었다고 하였다. 내 가슴이 다른 여자의 것하고는 달라보였다고 하였다. 내 가슴이 다른 여자하고 달랐다면 그것은 브라자를 하지 않은 것이였을 것이다. 나는 여자들의 필수인 브라자를 종래로 하지 않는다. 웬 일인지 나는 그것만 두르면 가슴피부가 막 가려워나고, 누가 뛰는 심장을 움켜잡고 있는 듯 숨 막혀서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가슴은 맞춤하게 크고 예뻐서 치켜세워주거나 모아주는 공능이 있는 브라자를 하지 않아도 보기 싫지가 않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남편의 눈에 더 큰 매력으로 보였던 것 같다. 결국 나는 가슴 덕에 조건 좋은 남자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였다.      그래서인가 남편의 가슴사랑은 지나칠 정도로 집착에 가까웠다. 마주치기만 하면 가슴을 만지지 않고는 그냥 지나치지를 않는다. 주방에서도, 화장실에서도, 거실에서도 침실에서도 남편의 두 손은 늘 내 가슴을 찾아다녔다.      밤이 싫었다. 남편이 그리웠다. 솔직히 가슴을 만져주던 남편의 손이 더 그리웠다. 아직도 얼마를 더 기다려야 할지 기약이 없다. 어쩐지 마음이 불안하다.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도무지 신심도 생기지 않았다. 힘들었다. 내 가슴이 더 힘들어 했다. 요즘 들어 남편생각만 하면 내 가슴이 아파온다. 내 가슴을 칼로 오리고 파가듯이 너무 아팠다.     밥 한 술 뜨려고 주방에 가면 앞치마 밑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꼭 쥐어주던 그 손이 생각나면서 그 손 모양처럼 가슴통증이 쭉 뻗치여 온다. 나는 저도 몰래 아픈 가슴을 잡는다. 남편의 손 모양대로 문지른다.      화장실에 들어선다. 물을 튼다. 샤와 할 때 보통사람은 머리부터 씻고, 일부 사람들은 아래부터 씻는다는 말은 들었어도 가슴부터 씻는다는 말은 못 들었지만 나는 가슴부터 씻는다. 물줄기가 가슴을 친다. 눈물도 따라 흐른다. 유두에 떨어지는 물방울들이 작은 가시벌레인 듯 유두를 아프게 자극한다. 나는 그런 가시벌레를 털어내려는 듯 두 손가락으로 유두를 잡고 힘주어 문지른다. 빨갛게 껍질이 일 때까지,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문지른다.     힘든 샤와를 마치고 거실소파에 맥없이 주저앉았다. 불을 켜지 않은 방안에 우두커니 혼자 앉아 밤의 장막이 드리운 창밖을 응시한다. 아무 생각도 없는 텅 빈 머리는 메인보드(主板)가 없는 컴퓨터 상자처럼 자리만 지키고 있다. 손은 습관적으로 리모컨을 잡고 TV시작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TV가 켜졌다. 푸르스름한 TV형광판의 불빛에 방안은 조금 밝아진다. TV화면이 움직이고 있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눈에도,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다. 초점 없는 눈길은 TV화면을 바라본다. 남편의 웃는 얼굴이 비친다. 내 무릎을 베고 누워 한손에는 리모컨, 한손은 쑥 올라와 내 왼쪽가슴을 잡고 조물락거리고 있다. 갑자기 가슴통증이 또 시작된다. 저도 모르게 왼쪽젖가슴을 잡고 문지른다. 한참을 문지르고 나니 조금 나아진 것 같다. 이마에선 땀이 흐르고, 온몸은 물먹은 솜처럼 해 나른해 난다.      나는 힘겹게 일어서서 휘청휘청 침실로 향한다. 온몸을 그대로 침대에 던지면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남편이 없는 이 밤을 또 어떻게 지새워야 할지 걱정부터 앞선다. 결혼해서부터 나는 알몸으로 잠을 자는 습관이 생겼다. 남편의 가슴 사랑 때문이였다. 잠잘 때도 남편의 손은 내 가슴을 떠나지 않았다. 두 손으로 내 젖가슴을 꼭 쥐고야 잠이 든다. 이상하게도 자면서도 놓지를 않는다. 처음에는 좀 부담스러웠으나 후에 습관이 되니 나 또한 그 손을 떠나서는 잠들 수가 없을 정도였다. 이 일 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잠을 자본적이 없다. 남편의 손을 떠난 가슴이 마음대로 흔들리는 것이 마치 한겨울의 찬바람이 뼈를 파고들 듯 내 가슴을 파고들어 차갑게 시려났다. 나절로 붙잡고 잠간 잠들었다가도 손이 풀리면 또 깨여난다. 시린 가슴을 덥히려고 별짓 다 했다. 베개를 올려 놓아보기도 하고, 두꺼운 이불을 올려보기도 하고, 뜨거운 물주머니를 올려보기도 하면서 갖은 방법을 다했지만 나아지지가 않는다. 그래서 난생 입지 않던 브라자도 착용해봤다. 엷고 가벼운 것, 해면을 두텁게 감싼 것, 꽉 조여 주는 것, 점점 조여지는 쪽으로 바꾸어봤지만 가슴이 내 몸을 리탈한 것 같은 아픔만 더 커질 뿐 증상은 나아지지를 않는다. 오늘에는 또 무엇으로 가슴을 잡을까 궁리하다가 나는 테이프를 가져다가 가슴을 꽁꽁 동이기 시작했다. 숨도 못 쉴 만큼 동이고, 자리에 누었다.    “제발 오늘은 잠 좀 자자, 내 가슴아!”     나는 주먹으로 내 가슴을 마구 때렸다. 이렇게 된 내 신세를 한탄하고, 나를 두고 간 남편을 원망하고, 남편의 손을 떠나지 못하고 아파하는 가슴을 미워하며 소리 내여 울었다. 울다가 잠들었다. 꿈을 꾸었다. 누군가 내 가슴이 화근이라며 손을 뻗쳐 작고 예리한 수술 칼을 잡고 왼쪽 가슴을 베여갔다. 지나친 통증 때문에 나는 “아!” 하고 소리 질렀다. 눈을 떴다. 나는 가슴을 만져봤다. 다행히 테이프에 감긴 가슴은 그대로였다. 나는 식은땀을 닦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였다. 그렇게 밉던 가슴을 정작 잃는다고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그건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였다. 남편의 사랑인 가슴을 잃는다는 건 남편을 잃는 거나 마찬가지이니까. 나는 조심스럽게 감겨진 테이프를 한 겹, 한 겹 풀어낸다. 아무리 아프고 힘들더라도 절대 남편의 사랑인 내 가슴을 혹독하게 굴지 않고, 아끼고 보듬어서 돌아오는 날까지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돌려주리라고 나는 남편과 무언의 약속을 굳게 해가기 시작했다. 3 행위의 예술     인간은 사회라는 큰 치륜과 가족이라는 작은 치륜이 존재가치라는 피대로 함께 돌아가는 것 같다. 동물적인 각도로 보면 인간은 사회라는 범위에서 령역을 부단히 늘이기 위해 지위, 권력, 재부 등을 목표로 싸우고 있으며 가족이라는 작은 울타리에서 사랑을 동력으로 가장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전제하에서 본능적인 욕구를 만족시키고, 사회라는 큰 치륜을 돌릴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받는 충전소일 것이다.      그런데 큰 치륜을 돌릴 수 없게 된 지금, 내 머리는 텅 비여있다. 존재의 가치를 상실한 큰 치륜은 더 이상 작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가족이라는 작은 치륜만이 운전도 필요 없이 무의식의 지배하에 한 인간의 생명을 영위하고 있었다.      식사 때가 되면 밥맛을 느끼지 못하면서도 꾸역꾸역 입에 밀어 넣는다. 일 하라고 하면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수면시간이라 등을 끄면 억지로 눈을 감지만 잠은 안 온다. 잠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 같았다. 나라는 인간의 영혼 속에 유일하게 살아있는 생명의 느낌인 안해에 대한 사랑과 내 손에 익고, 내 피 속에서 흐르는 산소처럼 떠나서는 숨을 쉴 수 없는 안해의 가슴이 없어서이다. 안해의 가슴을 그리워하는 건 내 의식을 벗어나 이젠 무의식으로 반응한다. 내 몸이 반응하니 나도 어쩔 수 없다. 괴롭다. 6개월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이제 열 배가 더 되는 시간을 안해의 가슴에 대한 애무가 없이 감방에서 살아야 한다니 그 끝이 묘연하기만 했다.      그리움이 사람을 짝태처럼 말릴 수도 있고, 인격을 변태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으며, 심지어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나마 나의 감옥생활에서 다행스러운 것은 요즘 내가 아내 유방들을 대체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대용물을 찾은 것이였다. 컴퓨터 마우스가 내 의식 속에 잠재해있는 안해의 가상유방을 그려주는 예술의 신으로 나서주고 있었다. 마우스만 잡고 있으면 내 손의 그리움통증은 많이 진정되었다. 마우스는 내 손안에 들어와 있던 안해의 유방과 사이즈가 맞아 내 손안에 마우스가 잡혀 있으면 내 마음까지 평온해졌다. 그래서 나는 활동시간이면 무조건 컴퓨터 앞에 마주앉았다. 열람할 내용은 많지 않았다. 열린 인터넷이 아니고, 내부선로에 의해 정해진 내용만 볼 수 있으니 인젠 다 외울 정도였다.     무엇을 작업하면 마우스를 많이 움직여 안해의 유방을 애무하던 내 기분을 찾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나는 내 의식 속의 살아있는 안해의 유방을 직접 그려보기로 하였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림에 남다른 천부를 가지고 있었고, 화가의 꿈을 키우며 그림공부를 십여 년 동안 해왔었다. 끝까지 미술 쪽으로 발전하고 싶었지만 앞으로의 전망을 보면 금융 쪽이 낫다는 부모들의 판단에 의해 나는 재정대학에 지망하게 되였고, 그것이 오늘의 비극을 초래한건 아닌가 하는 터무니없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컴퓨터에는 마침 일러스트프로그램이 깔려 있었다. 나는 일러스트를 켜놓고 마우스를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나는 아내의 풍만하고, 아름다운 젖무덤을 상기하며 마우스를 움직여 가는 재미에 빠졌다. 눈이 스르르 감기면서 머리속 려행을 한다. 행복했던 순간으로 들어간다. 손은 계속하여 움직인다. 조물락조물락, 갑자기 누군가 “야 이 변태새끼야, 그게 네 마누라 거니? 잘 생겼구나.” 하면서 내 뒤통수를 친다. 눈을 떠보니 숱한 사람들이 내 주위에 서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다보면서 킬킬 웃고 있었다. 화면에는 녀자의 가슴이 그려져 있었는데 내가 봐도 너무도 아름다운 꿈에도 보고 싶던 안해의 젖가슴이였다. 깜짝 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어쩌면 내 안해의 가슴이 이렇게 생생한 화면으로 그려질 수가 있을까. 일면 기쁘면서도 또 안해의 소중한 가슴이 여러 사람한테 공개된 것에 미치도록 화가 나기도 했다. 나는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가면서 마우스를 꽉 움켜쥐였다. 빠지직 하는 소리와 함께 마우스가 조각났고, 손에서는 피가 흘러내려 내 발등에 뚝뚝 떨어졌다. 눈에서는 열기가 나는 듯 뜨끈뜨끈해났고, 누군가를 잡아먹을 듯이 날카로운 시선이 뿜겨져 나갔다. 모든 걸 부셔버리고 싶었다. 이름 모를 분노가 치솟아 올랐다. 나의 독기어린 시선에 눌렸던지 “미친 새끼!”하는 말만 남기고 다들 슬금슬금 자리를 피했다.      마우스에 대한 집착은 더 심해가기만 하였다. 나는 기회만 되면 마우스를 잡았지만 사람들의 눈 때문에 머리속에 가득 차 넘치는 아내의 젖가슴을 차마 그려내지는 못하고 뭘 그릴까 궁리하다가 아무 것이나 주변에 보이는 물건들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밥상, 걸상, 책장, 신발장 하여튼 보이는 대로 그리면서 부지런히 마우스를 조물락거렸다. 차츰 흥분이 되고 열정이 오르면 저도 몰래 가슴이 그려지는데 나는 그 가슴을 책상의 가운데 걸상의 등받이 양쪽의 설계인양 동그랗게 모양을 내면서 그리운 가슴을 보물찾기 하듯 설계도 안에 숨겨가며 그려나갔다. 하지만 얼핏 보면 그건 그냥 책상이나 걸상의 조형이여서 다른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고 나만 그 속에 빠져버렸다.     나의 설계 도안은 점점 완벽해져 갔고, 어떤 조형을 만들면 가슴을 눈치 보지 않고 그릴 수 있을까 하는 것에 머리를 쓰기 시작하다보니 대부분은 둥근 모양, 걸상등받이도 위쪽에 둥글게 조형을 만들었는데 거기가 가슴모양을 그려 넣기 가장 적합한 모형이였다. 량쪽에 동그랗게 올려붙이고 다음에 유두까지 그렸지만 그건 얼핏 보면 그냥 잡기 쉽게 하기 위한 인체구조를 배려한 설계로 보였다. 나는 눈만 감으면 안해의 젖가슴 혈액선의 분포까지도 손끝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한참 눈을 감고 느낌을 찾은 다음 섬세하게 그 선을 하나하나 그려 넣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보기에는 그건 그냥 나무자체의 자연선을 돋보이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이 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못해낼 일이 없다고 내 영혼을 불어넣은 설계는 누가 봐도 립체감이 났고, 그건 그림이라기보다 살아 숨쉬는, 목마른 령혼의 웨침과도 같은 마른나무들의 생명에 대한 갈구의 목소리였다. 누구라도 한번 눈길을 주면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다시 들여다보도록 흡인하는 힘이 있었다. 한참씩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눈물을 흘리기도 하는 마력의 설계도들이였다. 그래서 내가 컴퓨터 앞에 앉아 그림을 그릴라치면 많은 사람들이 모여앉아 말없이 숙연한 기분으로 구경하군 하였다. 나는 감옥의 인기 인물로 마술그림을 그리는 “천재인물” 로 소문이 나게 되였다.     나의 설계실력이 인정을 받아 목공실에 배치되였고, 가구설계와 기술 감독을 책임지게 되였다. 인제는 누구 눈치도 볼 필요 없이 직접 가슴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그런데 공장에 가보니 기계설비는 낡았고, 그렇게 정밀한 작업을 할 수가 없었다. 둥그스름하지도 않은 네모 형으로 밖에 만들어지지 않았고, 그것을 동그랗게 만들려면 수공작업이 필요하였는데 여기서는 그런 작업에 필요한 공구가 없었다. 나는 그중 크기가 맞춤한 모형 하나를 집어 들었다. 비록 가슴하고는 차이가 많았지만 나는 그걸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조각에 쓸 만한 공구라고는 드라이버뿐이였다. 그런데 드라이버는 끝이 예리하지가 않아서 작업할 수가 없었다. 나는 먼저 드라이버를 날이 서게 가는 작업부터 시작하였다. 드라이버를 망치 모서리에 대고 쓸면서 갈았다. 드라이버를 조각 작업을 할 수 있을 만큼 조각칼로 만드는데 석 달이란 시간이 걸렸다. 저녁이면 그 나무모형을 가만히 침실까지 가지고 와서는 손에 꼭 쥐고 잤다. 만지작거리면서 가슴의 감각을 찾았고, 다음날 작업할 부분을 미리 생각해두었다. 안해의 가슴을 찾은 나의 손은 안정을 많이 찾았다. 터실터실한 네모난 나무모형이지만 그래도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면서 실물과 똑같이 만들어보겠다는 목표를 세우니 감옥생활의 고달픔도 잊고 지낼 수 있었다.     나의 모든 신경은 아내의 가상가슴을 만드는데 집중되여 있었다. 작업실만 가면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예리하게 날이 선 드라이버로 정성껏 모형을 만들어 나갔다. 한 번, 두 번 쉼 없이 깎고, 또 깎았다. 생생히 떠오르는 안해의 젖가슴을 모형으로, 그것을 만지던 손끝의 감각을 되살리며 한 홈씩 정성껏 깎아갔다. 정성이 지극하면 바위에도 꽃이 핀다고 나무모형은 점차적으로 실물과 가까워졌다. 일 년이라는 간고한 작업 끝에 안해의 가상젖가슴은 끝내 완성되였다. 완성품을 손에 꼭 쥔 나는 자신의 작품에 수백 번 입을 맞춘 후, 심장소리가 들리는 내 가슴에 꼭 붙여 대였다. 내 손은 흥분에 가느다랗게 떨려왔고, 뜨거운 눈물이 주르륵주르륵 흘러내렸다.      나는 나무로 만들어진 안해의 가상유방을 보물 다루듯 소중히 간직하였다. 제일 안전한 곳이 어디일까를 고민하다가 그래도 베개 밑이 제일 합당하다고 생각되여 베개 쪼르래기를 열고 깊숙이 넣어두었다. 나는 밤이면 슬며시 아내의 가상유방을 꺼내어 손에 꼭 쥐고 만지작거렸다. 한 일 년쯤 만지다보니 손 기름이 묻어서 반질반질해졌고, 조금만 느낌이 다르다 싶으면 또 다시 머리속의 모양대로 수정작업을 하였다. 나는 크기도, 모양도, 심지어 유두까지도 세밀하게 다 가공을 하였고, 조금 틀린 부분의 혈액 선은 밤이면 손톱으로 긁어가면서 완성해나갔다. 감옥에서 만든 나무유방은 내 손때가 묻고, 내 땀이 슴배어 들었고, 내 피도 함께 슴배어 들어간 안해에 대한 사랑을 담은 내 영혼이 숨 쉬는 가슴이였다. 유일한 부족 점이라면 탄성이 없는 것이였다.     나는 또 머리를 굴려가기 시작하였다. 어떻게 하면 안해의 가상유방에 살결을 부여하고, 탄성을 부여해야 할지에 대해 오래 동안 고민과 번뇌를 거듭해갔다. 그러나 나무유방에 그 어떤 신경을 넣어줄 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안해의 가상유방에 살결을 부여하고, 탄성을 부여할 수 있는 대안은 바로 내 손에 그런 감성을 키우는 일임을 깨우치게 되였다. 나는 매일 같이 안해의 젖무덤을 매만질 때 느꼈던 감수를 기억해내며 매일 밤 안해의 가상유방을 만지작거렸다. 무엇보다 마음의 도(道)가 중요했다. 그렇게 나는 또 안해의 가상유방을 수행에 가깝도록 일 년 동안 만지작거려서야 겨우 안해가 가지고 있던 유방의 살결과 탄성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의 손은 결국 안해의 가슴에 대한 감성을 움켜지고 말았다. 이제부터 살결과 탄성이 살아있는 안해의 가상유방은 긴 내 감옥생활을 버텨낼 수 있는 유일한 동아줄이고 희망이였다.  4 그리움의 암증   힘든 일 년이 지나고 서서히 두 번째 해에 들어섰다. 그동안 마음도 몸도 많은 안정을 찾아갔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그른데 없다. 남편에게 6년이라는 판결서가 내려졌을 때 나는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다. 남편에 대한 믿음이 무너져 내렸고, 그의 인간성에 대해서까지도 의심을 가지게 되였으며, 나에 대한 사랑마저 거짓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미칠 것 같았다. 8년 동안 속아서 살았다는 생각에 리지를 잃어버린 나는 옷장 문을 열고 남편의 물건이라는 물건은 몽땅 끄집어 내였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가져다 버려 버리고 이 집에서 그의 흔적을 깨끗이 없애버리고 싶었다. 텅 빈 옷장을 멍하니 들여다보고 있자니 그제야 막혔던 숨이 조금 쉬어지는 것 같았다. 빈 서랍들이 퀭하니 입을 벌리고 날 비웃는 것만 같았다. 화가 난 나는 서랍을 와락 잡아 당겼다. 덜커덩 하는 소리와 함께 서랍이 통째로 빠져나와 내 발등에 떨어졌다. 나는 갑자기 느껴오는 통증에 저도 몰래 “아!” 소리를 내며 머리를 숙여 발등을 움켜잡았다. 마음의 아픔인지 육체의 아픔인지 알지 못하는 괴로움의 눈물이 아픈 발등을 적시였다. 한참을 그렇게 퍼더버리고 앉아서 내 아픈 마음을 달래고 발등을 문지르며 마음껏 울었다.     몽롱한 눈물 속에 비쳐드는 통 빠진 서랍장에는 두 다리를 모아세우고, 머리를 다리사이에 파묻은 채 웅크리고 앉아서 억울한 듯 서글픈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남편이 앉아있었다. 나는 어찌된 영문인지 알아보려고 손을 넣어 남편을 끄잡아 당겼다. 문득 서랍장 밑에서 딴딴한 무엇인가가 손에 맞혀왔다. 꺼내 보니 고급스러운 노트였다. 남편이 이런 노트를 쓰는 걸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고, 눈물마저 쏙 들어 가버렸다. 뭘까? 긴장감이 들면서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손도 약간 떨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노트를 펼쳤다.     첫 장에는 정성스레 하트모양으로 오려서 붙인 사진 한 장이 있었다. 내가 처음 보는 사진이였다. 그 사진을 보는 순간 도망갔던 눈물이 또다시 줄줄 흘러내려 사진을 적신다. 나는 사진이 젖어들까 얼른 손으로 닦아 내렸다. 그것은 우리 둘이 첫 정사를 치른 후, 웃 몸을 채 가리지도 못한 채 침상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첫날을 기념한다며 사진을 찍는 걸 내가 결사적으로 말렸었는데 이렇게 여기에 와 붙어 있을 줄은 몰랐다. 나는 다음 장을 넘겼다. 일기였다. 그날부터 남편은 사랑일기를 시작한 것 같았다. 남들 보면 안 되는 적라라한 그런 우리 둘만의 사랑이야기들이였다. 젖가슴에 대한 남편의 깊은 사랑이 페이지마다에 넘쳐나고 있었다. 가슴을 특별히 좋아하는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나도 몰랐다. 또박또박 쓴 글줄에서 남편의 사랑을 읽을 수 있었고, 그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의 눈물은 어느새 싹 날아나고 나는 글줄에 빠져들어 킥킥 거리면서 웃기까지 하였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도 망각한 채 그렇게 한 장, 한 장을 넘기였다. 그러다가 갑가지 벌떡 일어났다. 일기장에 더 이상의 사랑이야기는 없고 이상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다음 장에는 날짜와 수자, 그 다음 장에는 누군가의 이름과 수자. 점점 뒤로 가면서 완전 장부책이였다. 나는 뭔가 느낌이 안 좋았다. 이거 뭐지? 남편의 이번일과 무슨 관계가 있겠다는 감이 왔다. 나는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한밤중에 시댁에 찾아가서 시아버님 앞에 책을 내 놓았다. 령도 직에 오래 계셨고, 또 가족이니까 옳바른 방도를 내세워줄 수 있는 제일 믿음직한 적임자는 시아버님이셨다. 우리들의 밤 이야기가 시아버님한테 공개되는 걸 부끄러워할 상황이 아니였다. 아버님은 보시더니 알았다며 본인이 알아서 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집에 가 있으라고 하셨다.      나는 이제나 저제나 남편이 금방 풀려 나올 줄 알았는데 반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남편밖에 모르는 내 가슴은, 타들어가는 내 마음도 모른 채 시도 때도 없이 남편이 그립다고 그리움을 통증으로 호소해왔다. 이런저런 가슴 띠를 다 해봐도 별 소용이 없었는데 언젠가 사극을 보다가 첫날밤을 보내는 여자가 가슴 띠를 푸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천으로 몇 겹으로 두른 걸 한 겹, 한 겹 풀어나가는 데서 령감을 얻어 나도 저렇게 해보면 어떨까 싶어 천 파는 매장에 가서 부드럽고 탄성이 있는 걸로 열 메터 되게 사왔다. 너비를 세 등분하여 세 개의 가슴 띠를 만들었다. 낮에는 한 벌을 하고 저녁이면 두벌, 통증이 느껴질 때는 세벌로 가슴을 꽁꽁 동이고서야 잠들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 너무 동이고만 있어서 그랬던지 가슴주변의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라서 뜨끈거렸고, 주변을 만져보니 터덜터덜하고 여기저기 알맹이가 뭉쳐져 있었으며 도톰하게 살아있던 유두도 기죽은 듯 쑥 들어가 있었다. 이러다 낫겠지 싶어서 계속 견디려고 했는데 며칠 더 지나 보니 유두에서 분비물까지 흘러나왔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건강검진 일이 아직 두 달 정도 남았지만 나는 기다리지 못하고 검사받으러 갔다. 의사선생님은 기본검사를 끝내고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 재검사를 권유했다. 나는 더럭 겁이 나서 엄중하냐고 걱정스런 마음으로 조심히 물었다. 의사선생님은 “아직 뭐라고 대답은 못하겠습니다. 아직은 나이가 어리시니까 희망을 갖고 결과를 기다려 봅시다.” 라는 애매한 답을 해주셨다.     “그러니까 뭐지? 희망을 가지라고. 그러면 희망적이지 않은 결과의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가 되는 거 아닌가?”     나는 눈앞이 캄캄해나고 하늘이 빙빙 돌아가는 것 같았다. 간신히 집에 돌아와 침대에 쓰러졌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 덮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주위가 캄캄해나니 그제야 안전해진 듯싶다. 세상의 모든 것을 이불로 덮어버린 것 같았다. 근심도, 걱정도, 그리움도, 병마도 다 덮어진 듯싶어서 안도의 숨이 나온다. 나는 사랑받는 녀자가 되고 싶었다. 앉으나 서나, 자나 깨나 나만 생각해주고 사랑해주는 바보 같은 남자를 만나고 싶었었다. 고맙게도 내 가슴은 그런 사랑을 받게 해주었다. 나는 행복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젖이가 돋아난 작은 입으로 나의 깜직한 유두를 한입에 그득 물고 젖을 쫄쫄 빨아대다가 저도 몰래 힘주어 물어서 “아파!” 소리를 내면서 행복한 아픔을 느껴보고 싶었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왜 이러고 있을까? 내 행복의 카드인 가슴이 병났으니 어쩌면 좋단 말인가? 사랑하는 남편도 다시 만날 수 없고, 사랑하는 아기도 있을 수 없게 된다면 내 삶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목이 메어오려고 한다. 나는 “응!” 하고 목에 힘주어 올리 치미는 설움을 억지로 삼켰다. 아닐 거야!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나는 병마를 쫓기라도 하려는 듯 힘껏 머리를 흔들었다. 생각하면 찾아온다는데 그런 생각을 털어버려야지. 웃으면 복이 온다니까 웃어보자. 나는 스튜어디스처럼 입을 벌리고 앞이 여섯 개가 보이게 미소를 지어보았다. 나는 웃음을 멈추고〈나는 행복합니다〉노래를 불러보았다.       나는 행복합니다     정말 정말 행복합니다     기다리던 오늘 그날이 왔어요     즐거운 날이예요     움츠렸던 어깨     답답한 가슴을     활짝 펴봐요       가사의 마디마디가 왜 이렇게 나하고는 정반대일까? 나는 불행한 녀자인가 봐! 참았던 설움이 북받쳐 오른다. 울면 불행이 찾아볼까 두려워 나는 소리를 내지 못하고 이불깃을 두 손으로 꽉 움켜쥔 채 머리를 이불에 파묻었다. 소리가 나오려고 한다. 나는 다시 반듯하게 누웠던 몸을 번져서 이불을 껴안은 채 덥힌 얼굴을 베개 속에 깊숙이 파묻으며 공기와의 접촉을 차단하여 소리의 전파를 막으려고 애썼다. 이마로 베개를 누르며 입술을 깨물고“윽윽!”하고 울음을 집어삼켰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삼일은 하루가 삼추 같았다.    “아니겠지?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신이 나한테 그렇게 무정할 수가 없을 거야. 암이면 어떡하지? 맞을 거야. 내가 가슴을 너무 학대했어. 숨도 못 쉬게 동이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병난 거야. 내가 죄인이야.”     나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잠옷 바람으로 거실을 밤새 오락가락하면서 중얼거렸다. 드디여 기다리던 전화벨이 울렸다. 나는 미친 여자처럼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통화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가늘게 떨리였다.    “안녕하세요. 김은혜 씨 맞은 신가요?”   “네.”     나는 잘못을 저지른 어린아이가 훈육을 기다리듯 기여드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검사결과가 나왔어요. 아홉시로 예약해드릴 테니 가족분하고 함께 오셔서 상담을 받으시면 됩니다.”     “제가 암인가요?”     “죄송한데요. 저희는 알 수 없고요. 직접 오셔서 교수님을 만나보세요.”     전화기가 맥없이 나의 손에서 미끌어 떨어진다. 바탕화면이 켜지면서 그이의 웃는 얼굴이 나타나 나를 그윽히 바라본다. 아무것도 모른 채 웃고 있는 그이의 얼굴에 나의 눈물이 뚝뚝 떨어져 말쑥하고 영준한 그이의 얼굴을 흐린다. 나는 허리 굽혀 전화기를 주어 들어 손바닥으로 남편의 얼굴을 깨끗이 닦아준 후, 그대로 가슴에 꼭 갖다 대며 눈을 스르르 감는다.      “여보, 제발 날 좀 도와줘. 살려줘! 당신이 제일 아끼는 내 가슴 좀 살려줘. 내가 잘못했어. 내가 너무했어. 당신을 찾는 내 가슴이 밉다고 학대했어. 용서해줘. 다시는 안 그럴게. 내가 잘못 했어. 여보, 제발… 흑흑흑!…”     결국 나는 유방암의 진단을 받았고, 바로 일주일 후에 수술날자가 잡혔다. 왼쪽가슴을 절제해야 한단다. 차가운 수술대에 누워 서서히 수술실로 빨려 들어가는 나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5 행위와 그리움의 변주   만나면 뭐라고 먼저 말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났다. 집에 있기는 할까?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겠지? 먼저 웃어야 하나? 아니면 먼저 포옹해야 할지? 예전처럼 안해의 가슴에 직접 손을 대기에는 왠지 자신이 없었다. 집문 앞에 다달았다. 비번이 바뀌였을까? 번호를 찾는 손가락이 흔들려서 정확히 누를 수 없었다. 비번이 바뀌지는 않았을까? 불안한 마음으로 간신히 수자를 입력하니 “드르륵!” 하는 기계음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조심스럽게 발을 들여놓았다. 익숙한 아카시아향이 코를 간지럽힌다. 행복이 밀려든다. 깨끗하게 치워진 집은 그대로이다. 변한 것이 없었다. 텅 빈 거실에는 빈 소파만 주인을 기다리고 있는 듯 싶었다. 주방 쪽에 눈길을 주었다. 꽃묶음과 정히 차려진 밥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던지고 급히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카시아 꽃 한 묶음이 메시지 한 장을 눌러주고 있었다.       돌아온 걸 축하해요. 고생 많으셨지요.    저는 당신을 만날 면목이 없는 사람으로 됐어요.    절 찾지 마시고 힘들겠지만 부디 행복하시기를 바랄 게요.                                                      은혜로부터       민국이는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듯 귀에서 윙 소리가 났다. 이런 상황을 예견 못한 건 아니지만 정작 닥치니 믿었던 담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이 가슴이 허무해났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고개를 깊숙이 떨어뜨렸다. 눈물이 흘러내린다. 두 손으로 다시 얼굴을 감쌌다. 눈물이 손 틈 사이로 새어나와 손등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려 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진다. 한참 후, 민국이는 고개를 들고 밥상위의 종이 통에서 휴지 몇 장 뽑아서 눈물을 닦고는 그대로 상우에 내던지고 밥을 먹으려고 수저를 들었다. 뚜껑 하나를 여니 그가 좋아하는 감자를 얹은 돌솥 밥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여오르고 있었다. 다음의 돌솥 뚜껑을 열었다. 거기에는 그가 좋아하는 돼지갈비찜이 만들어져 있었다.     은혜의 손맛, 얼마나 먹고 싶었던가? 그는 숟가락을 쳐든 채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숟가락을 든 오른손 등으로 눈물을 쓱 문지르고는 밥 한 술 듬뿍 떠서 입에 밀어 넣고 갈비 하나를 쥐여서는 게걸스럽게 고기를 물어뜯는다.     민국이는 휘청이는 걸음으로 침실로 들어갔다. 은혜의 아키시아 내음이 풍겨온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침실은 조용하고 아늑하다. 민국이는 침대에 걸터앉아서 손으로 침대시트를 부드럽게 어루쓴다. 천천히 침대에 올라가 반듯하게 눕는다. 눈을 뜬 채 천정을 한참동안 멍하니 쳐다보더니 눈을 스르르 감으면서 몸을 뒤번져 누워 머리를 베개에 파묻고 숨을 멈춘 듯 그 자세로 죽은 송장처럼 가만히 누워 있었다.     얼마가 지났을까? 민국이는 몸을 천천히 일으키더니 침대에서 내려섰다. 옷장 앞에 다가서더니 옷장 문을 연다. 떠날 때와 똑같이 민국이의 옷이 옷걸이에 곱게 줄느런히 걸려 있었다. 아직도 아카시야향이 그대로 묻어 있는 옷들에서 은혜의 사랑의 손길이 느껴졌다. 은혜와의 첫 데이트기념으로 함께 사 입었던 커플티를 꺼내어 침대 우에 곱게 펴놓았다. 티라도 짝을 맞춰 줘야지 하는 생각에 은혜의 옷장 문을 열었다. 옷걸이는 텅 비여 있었고, 아래쪽에 큰 옷상자 하나만 덩그렇게 놓여 있었다. 상자를 열어보았다. 헉― 깜짝 놀랐다. 거기에는 백 개도 넘을 법한 형형색색의 브라자가 꼴독 담겨져 있었다. 민국이는 눈이 번쩍 뜨이였다. 종래로 브라자를 하지 않던 사람인데 이게 왜 이렇게 많이 있을까? 그 사이 다른 남자를 만나면서 새로 생긴 “습관인가?” 하는 생각에 이름 못할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민국이는 미친 듯이 그 브라자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내여 있는 힘껏 당기고 찢어댔다. 제일 밑에는 부드럽고 얇은 천이 길게 둘둘 말려져 있었는데 아무리 당겨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화가 나서 확 잡아당겨 낚아챘더니 그 안에서 책 한권이 뚝 떨어져 나왔다. 펼쳐보니 은혜의 일기장이였다.       2020년 9월 10일     자기야. 나 아파. 많이 아파. 가슴이 아파. 아파서 잘 수가 없어 여러 가지 브라자를 해봐도 안 돼. 어떡하면 좋아? 좀 알려줘 봐.     2020년 10월 10일     오늘은 자기 생각나서 우리가 함께 보던 사극드라마 다시 봤는데 옛날 녀자들은 브라자를 안 하고 천으로 동인 걸 발견했어. 그래서 나도 그렇게 해봤는데 괜찮네. 많이 좋아졌어, 고마워 자기야.     2020년 11월 10일     자기야 어떡해? 나 병났어. 가슴이 너무 아파. 오늘 검사 받았는데 느낌이 안 좋아. 암일 수도 있대. 나 암이면 어떡해? 죽는 거잖아. 자기 얼굴도 못 보구 죽으면 안 되는데… 나 좀 도와줘, 제발, 암만 아니게 해줘. 나 무서워. 자기야.     2021년 12월 10일     자기야, 미안해, 정말 미안해! 한쪽 가슴 잃어버리게 생겼어.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왼쪽가슴. 내가 죄 지은 거야. 자기 가슴도 잘 지키지 못해서… 내가 이 몸이 되여서 자기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안되겠지? 자신이 없어. 언제든지 올 때까지 고이 기다려 준다구 했는데 약속 못 지켜서 정말 미안해… 아예 죽어버릴까.…       민국이는 일기책을 집어던지고 자기 머리를 마구 잡아 뜯으면서 울부짖는다.    “내가 나쁜 놈이야. 내기 미친놈이야! 다 내 탓이야.내 잘못이야. 내가 네 가슴을 너무 탐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내가 날마다 생각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내가 네 가슴 빼앗아 왔구나. 미안하다. 은혜야!”     실컷 발광을 하고난 후, 민국이는 갑자기 무언가 떠오른 듯 벌떡 일어서더니 거실로 뛰어가 가방을 열어 그렇게 애지중지 하던 가슴모형을 꺼내 방바닥에 내동댕이치고는 발로 마구 짓뭉개버린다. 마치도 은혜의 가슴을 뺏어온 장본인이 이 모형인 듯 발이 터져 피가 나오도록 뭉개고, 또 뭉갰다.     민국이는 찢겨진 발바닥의 아픔도 잊은 채 거리에 뛰쳐나가 목 터지게 부른다.    “은혜야, 사랑해!”    그리고는 “은혜야, 기다려 내가 갈게. 꼭 기다려. 난 네 가슴만 사랑한 거 아니야. 나는 널 사랑하는 거야. 가슴도 네 가슴이라서 사랑하는 거야. 한 쪽이 아니라 두 가슴 다 없어도 괜찮아. 사랑해, 은혜야! 기다려 은혜야! 나 왔어. 은혜야!…”   민국이는 목 터지게 외쳐대면서 자신의 숙명적인 사랑 은혜를 찾아 온 거리를 누벼갔다.     이 소설의 어떤 結      내가 3년이란 긴 출장을 다녀왔을 때 너는 나와의 재회를 거부했었지. 그때 나는 세상을 다 잃은 기분이였어. 나는 긴 출장을 나가 있었던 동안 너의 왼쪽가슴이 너무 그리워 위대한 조각가로 변신하였고, 나무의 재질로 된 너의 가상유방을 창조했었지. 그게 내가 긴 출장을 견딜 수 있었던 유일한 예술작업이였어. 그런데 너는 날 떠나려고 했었지. 나는 진짜 눈물이 났고, 너를 죽도록 원망하기도 했어.     그런데 말이야. 너 역시 내 사랑의 손이 그리워서 너의 왼쪽젖가슴을 너무 조이던 그리움의 암증으로 유방암이란 무서운 병에 시달려 왼쪽가슴을 제거했다고 했어. 그래서 너는 자신의 왼쪽가슴이 없는 현실로 나를 받아들이기 힘겨워 했었지. 너는 바보로 되였어. 물론 나는 너의 왼쪽가슴을 많이 사랑했었지만 내 진정한 사랑은 바로 너였어. 네가 그 무서운 유방암을 이기고 생존해주었다는 것, 나에게는 커다란 은혜였고, 신의 은총이었지. 네 왼쪽젖가슴이 비록 제거되였지만 그게 너에 대한 내 전부의 사랑만 아니였어. 이제 너의 비여진 왼쪽젖가슴에 내 사랑의 손을 영원히 묻어둘 거야. 그래서 네 사랑의 심장을 내 손에서 영원히 놓지 않으려고 생각해.     결국 너는 내게 다시 돌아왔어. 너의 빈 왼쪽젖가슴에 더욱 위대한 사랑을 심어가지고 말이야. 나에게 너의 식을 줄 모를 사랑이 있다면 그게 그 무엇보다 더 소중한 것이지. 너의 변치 않는 사랑이 있고, 나의 열렬한 사랑이 있다면 너의 왼쪽가슴에 아름다운 선물이 다시 탄생하게 될 것이야. 그렇게 너와 나는 다시 재회를 했고, 우리의 사랑 탑은 저 우주에까지 거대하게 솟았지.     우리의 위대한 사랑 탑은 또 다른 어여쁜 생명을 탄생시켰어.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딸아이가 축복처럼 왔지. 딸아이는 너의 오른쪽 젖만 먹고도 튼튼하게 무럭무럭 자라주었어. 이제 “엄마, 아빠!” 하고 종알거리면서 우리에게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주고 있지.     아, 내 사랑하는 그대 왼쪽젖가슴이여! 우리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고귀한 선물을 가져다 준 그대 왼쪽젖가슴이여! 거기서 윤회마저, 억겁의 세월마저 넘어주는 우리의 영원한 사랑이 분출되였어. 오늘 밤도 너의 아름다운 왼쪽젖가슴에서 발사된 행복이 내 손 끝에 따뜻하게 스친다.   2022. 송화강 6기 발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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