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호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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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하토야마 시대 중·일관계 전망 댓글:  조회:3701  추천:57  2009-10-11
하토야마 시대 중·일관계 전망  조호길 중앙당교 교수 일본 민주당 집권 이후의 중·일 관계는 ‘개선론’과 ‘무변화론’이 엇갈리고 있다. 개선론은 하토야마 유키오 민주당 대표가 몇 차례 밝힌 바 있는 원칙들을 근거로 한다. 중·일 관계 중시, 야스쿠니 신사 불참배, 동아시아공동체 구축 등이다. 이와 같은 기본원칙은 민주당이 역사 문제 처리에서 자민당보다 훨씬 부드러운 입장을 취할 것임을 말해주는 것이며 현실 문제도 공동이익 추구를 우선시할 것임을 시사한다. 반면 중·일 관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무변화론은 민주당이 새로운 정당이 아니며 자민당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데 바탕한 것이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야당이 된 자민당이 더욱 우경화하면서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온다.중·일 관계를 되돌아볼 때 1970년대부터 80년대까지는 상당히 우호적이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했다. 당시의 우호관계는 경제이익이 크게 작용했다. 중국 개혁·개방은 일본의 자금과 기술을 필요로 했고, 일본으로서는 중국의 거대한 시장에 매력을 느꼈다. 게다가 양국은 당시의 냉전체제하에서 구 소련에 대처하는 데 같이할 수 있었다.그러나 구 소련의 해체로 냉전체제가 종식된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중국과 일본의 공동위협이 사라짐으로써 양국은 긍정적 변수의 하나를 상실했다. 게다가 개혁·개방 이후 중국 경제의 급성장은 일본에 ‘위협’으로 비치기 시작했다. 긍정적 변수로 작용하던 냉전과 경제이익이 오히려 양국 우호를 해치는 부정적 요소로 바뀌었다. 여기에 역사 문제와 영토 문제 등 양국의 오랜 현안들이 전면에 대두하면서 중·일 관계는 냉각기에 진입했다. 54년간의 자민당 독주를 무너뜨린 민주당 정권이 돛을 올리고 있다. 민주당은 자민당의 냉전의식에서 탈피해 ‘우애’의 외교관계를 추구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주도의 미·일 동맹이 대등한 관계로 바뀌고 중·일 관계도 해빙기를 맞이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적 측면에서 민주당은 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절실히 원하고 있다. 중국의 높은 관세장벽이 부담이었던 일본이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중국은 어느 정도 거부감이 있겠으나 결과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중국은 현재 일본의 에너지 절약 및 환경보호 산업 기술을 필요로 하고 있다.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지 않고 이를 대체할 국립추모시설을 만들겠다는 민주당의 방침은 중·일 관계에 긍정적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반면 영토 문제와 해저자원 개발 등은 두 나라의 관계에서 장애물로 작용할 것이다. 민주당 내 우익 성향이 강한 소장파의 존재, 민주당의 집권경험 부재도 민주당의 집권 정당성을 약화시킬 수 있다. 이외에 특별히 지적해야 할 것은 중·일 양국 젊은 세대 속에서 강하게 형성된 ‘감정적 마찰’이다. 이러한 부정적 변수를 최소화하며 양국 관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정부, 정당 간 교류가 필수적이다. 이에 앞서 더욱 절실한 게 민간 차원의 교류를 확대하는 것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2009.10.3
19    중국과 조선의 정치이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댓글:  조회:3364  추천:68  2009-08-19
중국과 조선의 정치이념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 조호길 개혁개방전 중국의 정치이념은 조선의 그것과 상당한 유사성을 보이고 있었다.두나라 정치엘리트집단 성원들은 극히 유사한 공간적환경과 문화적환경속에서 십분유사한 정치기치지향을 공유하였었다.전쟁과 준전쟁상황속에서 똑같은것을 경험하였었다.중국공산당은 창립에서 정권창출까지 전쟁속에서 살아왔다.정권창출에서 냉전체제해체까지 준전쟁상황에서 살아왔고 조선의 핵실엘리트집단도 전쟁과 준전쟁속에서 같은것을 경험하였다.모택동과 김일성은 정권을 잡기까지 열세로 강세를 상대해야 했었다.정권을 잡은 후에도 약세에 처한 사회주의 진영에서 강세에 처한 자본주의 진영을 상대해야 했었다.현 정권에 도전한 모택동은 2만 5천리 장정,장기간에 걸친 지하활동 등 열락한 환경속에서 생존의 위협을 이겨야 했었다.김일성도 열악한 심산밀림속에서 굶주림,전멸 등 생존위협을 경헙했엇다. 유사한 문화자원을 공유했었다.유교문화,맑스주의,군사문화는 모택동과 김일성의 공유한 문화자원 이있었다.이 세문화자원은 전쟁과 준전쟁 열악한 생존환경,열세 대 강세 등 환경속에서 결합되고 강화되어 모택동과 김일성의 정치가치지향을 형성시켯다.첫째,흑백논리를 극단화시켰다.모택동과 김일성은 모든 사물을 양립할 수없는ㅇ 두가지로 구조화시켰다.예를 들어 자산걔급과 무산계급,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듣이 그것이다.둘째,정신적힘에 대한 집착,극히 열악한 환경속에서 혁명대오의 성원들을 비공리주의적인 정신적힘을 강하게 가지고 있었다.정권을 잡은 후에도 모김은 여전히 정신적힘에 집착하면서 전체 사회성원들에게 비공리주의를 강요하였다.셋째,이상주의,모김은 오늘의 현실적인 어떤 가치보다 내일의 이상에 더 비중을 두면서 정신적힘에 의해 유토피아적인 내일의 이상을 실현하려고 백방 노력하였다.넷쨰,인간에대한 불신,열악한 생존환경에서 인간사이의 신임관계는 특별히 두텁거나 아니면 늘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는 양극에서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개혁개방후 중국의 가치지향은 근본적인 변화를 보이고 있다. 모택동과 등소평의 정치가치 지향 비교 모택동           등소평이상주의        현실주의이념주의        실용주의국가조합주의 사회조합주의 상기 도표에서 보다싶이 중국의 정치가치지향은 국제사회의 보편가치에 접근하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하지만 조선의 정치가치지향은 그 반대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선군정치가 바로 그것이다.김정일 위원장의 선군정치에 관한 언어표현은 48단락밖에 안되는데 논리적으로 요약해보면 다음의 몇가지로 정리된다.우선 흑백논리의 극단화이다.냉전 구조 해체의 결과는 평화와 안정이 아니라 침략과 전쟁이라는 것이다.동서대결로 양극으로 갈라졌던 세계가 미국의 세력권안에 든 하나의 세계로,지구상에서 자본주의만이 존재하는 미국일국이 지배하는 일극화된 세계로 되려는 다시 말해서미국이 세계의 제왕으로 군림하는 강권질서로 변해간다는 것이다.냉전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정치 군사대결구조의 중심은 중쏘미에서 조선반도로 옮겨졌다는 것이다.쏘련동구의 붕괴는 집단당이 군대통제권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맑스주의 한계성은 바로 사회주의 혁명과 사회주의건설시기에 군대가 핵심역량임을 발견하지 몬ㅅ한 데 있따고 보는 조선은 대내,대외로 사회주의 체제를 뒤엎으려는 반동 세력이 존재하는 한 군사가 제일이라는 것이다.다음,총대 제일주의다.”정치는 계급 또는 사회공동이익에 맞게 사람들의 활동을 통일적으로 조직하고 지휘하는 사회적 기능이다.” “이런 정치를 하자면 힘이 있어야 한다.정치를 할 수있는 힘은 곧 정치권력인데 정치권력은 군권에서 최대치를 이루며 또 군권에 의해서만 가장 확실하게 담보된다.”는 것이다.마지막으로 사생결단논리이다.”선군정치는 죽음을 각오한 정치”이며 “총대에다 사생결단의 의지를 더한것이 바로 우리의 선군정치”라는 것이다. “죽음이 두려워 이것저것 재면서 한걸음 두걸음 물러서면 오히려 더 큰 희생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이다. 선군정치는 미국 우익줭권의 강격노선에 대응하는 부득불의 전략선택일 수도 있으며 경제위기와 사회위기로부터 야기되는 정치취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일수도 있다.하지만 선군정치는 필경국제사회의 보편가치에 상충되는것으로서 동북아시아 평화체제구축에 가장 큰 장애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올바른 이념은 옳은 정책과 좋은 결과 를 가져올수 밖에 없고 잘못된 이념은 잘못된 정책과 나쁜결과를 낳을수밖에 없고 따라서 잘못된 정책의 변화는 잘못된 이념의 변화에서만 기대할수 있따고 할 것이다.
18    중국의 정치개혁 어디까지 가능한가 댓글:  조회:3655  추천:57  2009-07-07
시장경제는 민주를 부르고 있다.거듭되는 논쟁과 시행착오를 거쳐 2002년 중국공산당 제16차 당대회에 이르러 중국은 드디어'시장경제는 중국의 기본경제제도'라는 결론과 함께 시장경제 확립기에 돌입했다. 시장경제는 교환,자유,평등,경쟁,규칙 등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계획과 분배가 계획경제의 핵심이었다면 모든 생산 요소들이 교환과정에서 시장에 의해 배분되는 것이 시장경제이다.따라서 그 배분과정은 자유와 평등을 필수로 한다.교환 즉 매매 즉 등가교환원칙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이와 동시에 시장경제는 경쟁과 규칙을 생명으로 한다.시장경제에서 결과의 평등은 있을수가 없는 것이며 경쟁에 의한 우승열태(优胜劣汰:강한 자는 살아남고 약한 자는 도태)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경쟁은 경제과정에 동력이 됨과 동시에 무한경쟁은 또한 여러가지 비리를 동반할 수밖에 없다.그러므로 엄격하고 체계적인 규칙은 시장경제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러한 시장경제의 가치지향은 중국의 정치적인 가치체계의 변화를 부르고 있다.자유 평등과 같은 이념들이 갈수록 보편화되고 있다.이와 같이 시장경제는 경제구조뿐이 아니라 문화구조에도 깊은 변화를 초래할 수밖에 없으며 정치적인 가치체계에도 깊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고 그 변화의 방향은 민주일수밖에 없다.시장경제를 기본경제제도로 선택한 이상민주화는 어떤 힘으로도 거절할 수 없는 필연일 것이다.글로벌시대에 그 어느 나라의 통치 집단도 경쟁속에서 통치의 정당성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그러므로 어떤 통치 집단도 세계의 보편적 흐름을 거스를 수 없는 것이다. 중국은 자기 나름의 민주모델을 탐색할 것이다.중국 정치개혁의 방향은 틀림없이 시장경제의 가치지향과 맥을 같이 할 것이다.2002년 17차당대회에서 시장경제를 선택한 중국 최고당국자들은 중국식 민주화건설에 돌입할 것임을 세상에 선택한 중국 최고당국자들은 중국식 미주화건설에 돌입할 것임을 세상에 선언했다.여기서 중요한 것은 중국식 민주를 탐색한다고 하는 것은 세계 보편가치와 궤도르 달리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는 점이다.중국의 민주화는 다음의 몇 가지 변수가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첫째,국가규모이다.중국은 960㎢만의 영토에 13억 인구를 거느리고 있다.초대규모의 국가 관리는 소규모국가와 같을 수가 없다.둘째,구조상 중국은 굉장히 복잡한 국가구조이다.56개 민족이 살고 있고 지역 간에는 엄청난 발전격차도 있다.북쪽 끝에 눈이 펑펑 쏟아질 때 남쪽 끝에서는 발 벗고 모르 심는다.북경은 하나의 정책으로 전체를 아울러야 한다.셋째,중국은 5000년 역사에 2000여년의 통일국가 경험을 갖고 있다.그 역사경험은 자원임과 동시에 부담이기도 하다.좋든 싫든 역사적경험은 중국의 방향설정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넷째,현재 중국은 '선진-낙후'라는 2원구조의 국제환경 속에서 '강한국가-약한사회'라는 2원구조의 국내환경 속에서 근대화에 매진하고 있다.'선진-낙후'라는 2원구조의 국제환경은 국력을 종합적으로 이용하여 그 효율을 극대화함으로써 선진국과의 발전차이르 될수록 짧은 시일 안에 줄일 것을 필요로 하고 있다.'강한국가-약한사회'라는 2원구조의 국내환경은 정부주도형 발전모델을 적극 받침해주고 있고 향후 상당기간 현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이런 몇가지 원인으로 해서 중국은 자기 나름의 민주모델을 탐색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그것은 세계 보편가치와 궤도를 달리하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자기 몸에 맞는 옷을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인 것일 뿐이다. 중국의 개혁은 정진적 개혁으로 갈 것이다.중국의 경제개혁은 간단한데서 복잡한 데로,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즉 농촌에서 도시로,농업에서 공업으로 그 다음 금융,산업으로 점전적 방법으로 개혁을 추진해왔다.정치개혁도 마찬가지로 간단에서 복잡으로 ,쉬운데서 어려운 데로 점진적 수단으로 추진할 것이다. 현재 현 이하 행정단위에서는 여러 가지 정치개혁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고 광동성 심천시 같은 대규모 도시에서도 정치개혁이 시범적으로 진행되고 있다.이와 같은 작은 단위에서 개혁실험은 점차 보다 큰 범위로 확대될 것이며 언젠가는 전구 범위로 확산될 것이다.  
17    '힘(力)의 정치,와 ‘정(情)’의 정치 댓글:  조회:2439  추천:54  2009-07-06
조선은 반세기 넘게 전체주의체제를 유지하고 있다.조선의 전체주의체제는 수령이 머리이고 당은 심장이고 당원은 혈액이며 대중은 팔다리라는 논리에 의해 제도화,현실화되고 있다.조선은 최고 당국자의 의지에 따라 국가 전체가 움직이게 되는 전체주의체제로 소위 말하는 '말씀정치'인 것이다.   90년대 초반 소련 동구권이 붕괴된 후 조선은 선군정치를 선택했다.선군정치는 나름대로의 논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그 논리는 평양에서 나오는 여러 출판물들에 잘 나타나 있다.   첫째,'총대 제일주의'이다.총대는 곧 국력이며 민족적 자주권이다.군대이자 당이고 국가이며 인민이다.총대 제일주의는 사회주의 혁명 건설의 핵심역량은 군대이지 노동계급이 아님을 전제로 하고 있다.이런 판단은 다음과 같은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정치를 하자면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그 힘이 바로 정치권력이고 정치권력은 군권에서 최대치를 이룬다는 것이다.따라서 군권에 의해서만 정치권력은 가장 확실하게 담보된다는 논리이다.   둘째,'극단적 충돌론'이다.냉전구조 해체의 결과는 평화와 안정이 아니라 전쟁과 침략이라는 것이다.냉전후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군사정치대결의 기본무대는 한반도로 옮겨졌고 냉전 종식을 기점으로 소련과 미국 간 대결의 동서 냉전구조가 조선과 미국의 대결로 바뀌었다는 주장이다.   셋째,'사생결단 논리'이다.김정일 위원장은 '선군정치는 죽음을 각오한 정치이며,총대에 사생결단의 의지를 더한 것이 바로 선군정치'라고 지적하고 있다.죽음이 두려워 이것저것 재면서 한걸음 두걸음 물러서게 되면 오히려 더 큰 희생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는 서구식 자유민주주의 실현과 함께 정치세력의 다양한 이합집산을 동반하고 있다.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사회 전면에 깔려있는 정의 문화를 감지할 수 있다.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가족단위,그것도 3대가 동행하는 여행자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이런 모습은 거의 한국에서나 볼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아파트 단지에 노인정과 어린이 공부방을 만드는 것이 의무화돼 있다는 것을 알고 나는 또 한번 감동했다.이런 정 문화 때문에 한국드라마가 중국에서도 그토록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토록 아름다운 정 문화가 정치에 반영되면 정치는 정책이 아니라 인물중심으로 되기 싶고 이성(理性)이 아니라 정서(情绪)로 가기쉽다는 점이다.이것이 바로 한국에서 나타나는 정과 민주정치의 딜레마가 아닌가 싶다.   정에는 이성이 없다.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을 사랑함은 무조건적이다.즉,정으로 일관된 것이다.그러나 민주정치의 핵심은 경쟁이다.경쟁은 최대한 다수 국민의 의지를 정책화하고 또한 착오를 시정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경쟁에서 규칙은 생명이다.규칙은 개인적인 정서를 최대한 배제한 이성을 전제로 한다.왜냐하면 정당 내지 정치인들 사이의 경쟁은 다수 국민의 의지를 정책화 하고 수시로 진행되는 언론과 야당의 비판 그리고 주기적으로 진행되는 경쟁인 선거는 잘못된 정책과 과오를 시정하는 메커니즘으로 작용한다. 동시에 경쟁은 일련의 부정적인 것들도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여러가지 비리들의 바로 그것이다.그렇기 때문에 엄격한 규칙은 경쟁의 생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엄격한 규칙은 철저한 이성을 전제로 하는데 한국의 정문화는 경쟁 과정의 질서화를 파괴한다,.   다른 한면으로 한국의 가정질서와 사회질서는 여전히 권위주의 틀 속에서 전개되고 있다. 그게 반해 정치질서는 서구에서 특히 미국에서 따온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본토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따라서 가정질서,사회질서와 정치질서는 심한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그와 같은 여러가지 원인으로 한국정치는 다양한 행위주체들 사이의 이합집산 양상을 동반하고 있다.   이처럼 남북의 정치체제는 정반대의 양극을 달리고 있다.그러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개선은 포괄적이고 장지저인 안목과 고도의 정치적인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16    민족주의와 중한관계 (조호길) 댓글:  조회:3205  추천:74  2009-01-08
민족주의와 중한관계 조호길 한국 동북아역사재단이 얼마 전 서울 베이징 도쿄의 시민을 상대로 실시한 한중일 역사인식 조사결과에 의하면 세 나라 모두 상대방에 대한 인식이  전반적으로 악화된것으로분석됐다고 한다.한국인은 한중관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비율이 59.8%에 이르렀고 중국은 한중관계에 있어 16.4%의 국민이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한다.지난해와 비교하면 중국에 대한 한국 국민의 부정적 시각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무엇때문일까.물론 한중 양국은 체제 이데올로기  ,생활방식 그리고 발전수준 등 여러면에서 큰 차이를 가지고 있고 냉전으로 생겼던 여럭 가지 마찰들도 깨끗이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렵다.그리고 가깝게는 불량식품문제,올림픽을 전후한 갈등 등도 영향을 미쳤을 수있다.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한중 양국에 대두하고 있는 민족주의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한다. 중한양국은 모두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갖고 있다, 양국은 모두 농경문화라는 생활방식속에서 혈연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정(情)을 유대로 이루어지는 공동체문화를 창출하였고 근래에 이르기까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우수한 문화를 영위히여 왔다.그런데 근대에 들어오면서 중한양국은 서구와 일본 열강에 많은 치욕을 당했으며 민족적 자부심은 여지없이 부서지고 말았다. 독립후 한국은 짧디짧은 30년 사이에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냈고 또 민주화도 실현하였다.그러면서 한국은 열강으로부터의 치욕을 깨끗이 씻고 민족적 자부심과 자신감을 되찾았다. 중국은 30년에 걸친 개혁개방을 통해 세계가 주목하는 성과를 이루어냈고 그와 함께 민족적 자부심과 사신감도 되찾았다. 중한양국은 민족적 자부심과 자신감을 되찾음과 동시에 민족주의가 서서히 대두하였다. 편협한 민족주의는 "대내안정"과 "대외배척"으로 표현된다.덩치가 크다고 그대로 대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덩치와 함께 너그러움과 포용력을 갖출 때 대국인 것이다.중국은 커져가는 국력과 함께 너그러움과 포용력을 갖추고 마음의 균형을 이루어야 할 것이다.그러면서 대국적 역할을 점차배워 몸에 익히고 또 실천해야 할 것이다.이런 과정은 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십몇위권에 들어선 한국은 경제강국이다.편협한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포용력과 너그러움을 갖추어 명실공히 강국으로 거듭나야 할것이다.중한 양국은 유사한 문화전통을 공유함과 동시에 또 많은 차이점도 가지고 있다.쌀밥을 위주로 하는 한국인과 밀가루를 위주로 하는 중국인의 문화는 같을 수 없다.산과 물과 바다를 가까이 한 한국인은 냉수를 마시고 야채와 해물을 많이 먹는다.이와 반대로 평야로 된 중원(中原)은 거의 모든 음식을 익혀서 먹고 뜨거운 물을 마신다.훌훌 불어가면서 천천히 마실 수밖에 없다.양국의 문화는 차이를 가질수 밖에 없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기준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판단하면 오해가 생길수밖에 없는 것이다.공자께서는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하고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 하였다.소인은 이(利)을 쫓기에 함께 있으면서도 불화(不和)하고 군자는의 )袭)를 따르기에 같지 않음녀서도 서로 화(和)할 수있다는 것이다.중한 양국은 군자로서의 너그러움과 포용력을 갖추어 화이부동(和而不同)해야 할것이다.
15    중국은 평양의 안정을 바란다(조호길) 댓글:  조회:3217  추천:92  2008-10-06
중국은 평양의 안정을 바란다 조호길 어느 나라든 나름의 가치체계와 제도를 갖추고 나름의 논리에 따라 운영되기 마련이다.그 체제의 정당성의 기반은 가치체제와 제도가 어느정도 일치돼있는지,또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는지에 따라 결정된다.외부 세계의 다른 체제들과의 경쟁속에서 정당성을 구축하는 체제가 있고 외부와의 교류를 단절하고 외부세계와는 전혀 다른 체제를 운영하는 경우가 있다.조선이 바로 그런 나라에 해당한다.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하기 전의 중국도 그런 나라였다. 오늘의 조선과 어제의 중국은 그 체제가 지향하는 가치와 이념이 이상주의에 빠질수록 현실은 이상과는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고,잘 보여주었다.하지만 한 체제의 변화는 어디까지나 체제내부로부터 변하는 것이지 외부의 요인만으로 변화되는것이 아니다.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 사이의 중국의 대외전략은 "세계는 충돌과 투쟁으로 충만해있다."는 논리적 전제아래 "2.5전략"을 추구했다.한 손으로는 미국을 다루고,다른 한 손으로는 소련을 다루고,나머지 절반의 손으로는 국지분쟁에 대처한다는 것이다.손은 두개 밖에 없는데,두 개반의 손을 운영하려니 힘에 부칠수 밖에 없었다.바로 그런 시점에 마오쩌둥(毛泽东)은 베트남이라는 수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미국과 핑퐁외교로 중미관계를 개선했다.중미관계가 개선되자 국제정치는 중국 소련 미국의 삼각관계가 형성되면서 평화적인 안보환경이 형성됐다.그런 평화적인 국제질서 아래에서 중국의 최고권력은 마오쩌둥에서 화궈펑(华果锋)을 거쳐 덩샤오핑(邓小平)에게 이양됐고,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1970년대말에 와서 중국은 기본 가치이념"충돌과 투쟁에"에서"평화와 발전"으로 바뀌면서 개혁개방의 시대가 시작됐다.그리고 오늘의 중국이 전개됐다. 중국이 걸어온 길은 참고로 하면 오늘의 조선이 걸어갈 길을 어느 정도 내다볼 수 있다. 특수한 가치체제와 제도적 장치 그리고 특수한 운영 논리와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현재의 조선과 개혁개방 전의 중국은 많은 유사성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중국의 경험이 조선의  앞날에 적용될 가능성을 얼마든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중국의 경우 개혁개방이란 평화적인 외교환경과 힘있는 새 지도자의 등장으로 가능했다.조선도 외부환경이 안정되고,조선 내부 정치에 변화가 일어날 경우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른 개혁개방의 길로 얼마든지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확인해 둬야 하는 것은 개혁개방이란 점진적인 과정이지 급변사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요즘 조선 내부 정치를 둘러싸고 "급변사태"란 중국이 가장 바라지 않는 사태라는 점이다. 거듭 말하면, 중국은 조선의 점진적인 변화에는 긍정적이지만,조선내에 급변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일 것이다.조선내에 급변사태가 일어나면 한국이 어떻게 해야 한다,미국이 어떻게 해야 한다, 유엔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등의 발상은 모두 중국이 바라지 않는 상황이며, 6자회담을 비롯해서 어느 때보다도 미국과 좋은 관계를 유히하고 있는 중국이 바라지 않는 상황이 실제로 일어날수 있을 거라고 중국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중국은 평양에 급변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며,조선의 정치 구조에 변화가 오더라도 안정된 환경에서 급격한 변화 없이 점진적인 변화가 일어나기를 희망하고 있다. 1978년에 개혁개방을 시작해서 30년간 경제발전을 이뤄오기는 했지만 중국이 걸어갈 길은 아직도 멀다.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산처럼 쌓여있다. 이런 때에 평양에 이른바 "급변사태"가 나고 한국과 미국이 어떻게 한다,유엔이 어떻게 한다는 그런 상황은 중국으로서는 결코 바라지 않는 것이며,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중국은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 한국에서 이해되기를 바란다.
14    베이징 올림픽에 나타난 화(和)의 의미(조호길) 댓글:  조회:3525  추천:118  2008-09-11
베이징 올림픽에 나타난 화(和)의 의미조호길   베이징(北京)올림픽을 통해 중국은 5000년 역사의 저력과 찬란한 문화,그리고 지난 30년의 개혁개방의 성과를 한데 엮어 세계무대로의 새로운 등장을 화려하게 신고했다.지난 8일의 개막식은 그 신고의식이었다고 할수 있따.그러나 개막식을 본 세계는 서로 다른 전망들을 내놓고 있다.낙관적인 기대와 비관적인 전망이 엇갈리고 있다.  개막식 공연 가운데 인쇄술 발명을 묘사하는 장면에서 '화(和)'자가 여러 가지 종류의 글씨체로 여러번 나타났다.고대에 '화(和)'는 '오미(五味/쓰고 시고 달고 짜고 매운 맛)'과 '팔음(八音/여덟가지 고대악기가 내는 음)'의 조화를 뜻하는 글자였다 고 한다.현대에 들어와서 '화'는 '조화,평안,온화함'을 뜻하게 됐다.개막식에 나타난 '화'는 중국이 2001년 올림픽 준비를 시작하면서 내놓은 '하나의 세계 하나의 꿈(one world,one dream)'이라는 베이징 올림픽 주제를 한걸음 더 승화시킨 것이라 할것이다.  공자는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고,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고 했다.군자는 의(义)를 추구 하기에 다른 사람들과 잘 어울리면서도 다른 사람과 다른 자신의 견해를 가질 줄 아는 사람이며,소인은 이(利)를 쫓는 자이기에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도 끝없이 이(利)를 따져 다른 사람과 문제를 만든다는 뜻이다.중국이 개막식에 '화(和)'라는 글자를 그린 것은,협소한 민족주의나 공격적인 민족주의에 집착하겠다는 뜻이 아니라,세계속의 중국 ,어디까지나 세계와 하나로 어우러지는 중국이 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중국의 현실에서올림픽주제로서 '화'를 내세운 것이 연출가 장이머우(장예모)개인의 구상과 희망사항만일 수는 없는 것이다.실제로 이 '화'는 후진타오(호금도) 2기 정권 출범식이었던 지난 가을의 중국공산당 제 17차 전당대회에서 제시됐던 5대 대회전략 방침의 기본을 이루는 생각이었다.5대 대외전략방침이란 정치적으로는 상호존중과  평등협력,경제적으로는 상호협력과 보완,문화적으로는 상호 교류,안보상으로는 상호 신뢰와 협력 강화,환경보호면에서도 상호협력 한다는 것이다.'화'를 바탕으로 한 5대 대외전략 방침을 목표로 하는 국제전략이란 국제분쟁이 전쟁이 아닌 평화수단으로 해결한다는 기본 축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말하는 '화'란 단순히 서로 어울리고 도와가며 살겠다는 뜻만 가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중국이 말하는 '화'에는 "선진국을 배우되 모방하지는 않겠다"는 깊은 뜻이 깔려있다. 이(利)를 위해 강한 나라나 우수한 나라에 아부하여 동(同)을 구하는 소인의 '화'가 아니라,자신의 색깔을 분명히 하면서도 서로 다른 가치체계 들과 조화롭게 공존하는 군자의 '화'를 이루겠다는 생각이 깔려 있는 것이다.중국은 960만km2에 13억 인구,56개 민족,5000년의 역사적인 전통을 가진 나라다.남들과 다른 문제들을 많이 안고 있고,또 남들과 다른 경험을 많이 해온 나라이다.그런 중국이기 때문에 중국은 자신에 맞는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물론 그렇다고 해서 세계와 동떨어진 가치를 추구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중국은 시장경제로 동력을 얻고,무한경쟁 때문에 생기는 불평등과 소외계층의 문제를 공동체주의적인 수단으로 풀면서 앞으로 가야할 것이다.그런 점에서 중국과 처지가 비슷한 아시아와 잘 어울릴 수 있는 가치 창출을 위해서도 노력하려고 하는 것이 중국이기도 하다.아시아에서는 두 번째로 ,중국보다 20년 먼저 올림픽을 개최한 한국이 중국에 앞서 많은 것을 경험 하였다.그런 점에서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앞으로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분야가 많을 것이다.
13    요즘 중국 어디로 가고 있나 댓글:  조회:3018  추천:126  2008-03-06
요즘 중국 어디로 가고 있나 조호길 중앙당교 교수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막 시작하던 80년대 초반 갓 서른 살이던 나는 네 가지 문제를 안고 고민했다. '개혁을 한다는데 무엇을 개혁하려고 하는 건지…, 무엇 때문에 개혁을 하는 건지…, 어떻게 개혁을 하려는 건지…, 개혁해서 어떤 사회를 만들려는 건지…' 등이었다. 앞의 세 가지 의문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답을 얻었으나 네 번째 문제 '개혁해서 어떤 사회를 만들려는 건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원래의 사회주의 사회로 가려는 건 아닐 것이라고 그랬지만,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려는 것은 더구나 아니라는 거였다. 이 세상은 자본주의가 아니면 사회주의인데, 그밖에 또 어떤 사회가 있다는 말인가. 그런 문제 의식을 가진 채로 나는 지금까지 고민하고 공부하고 또 강의해 왔다. 그러다가 한 가지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어떤 주의(主義)에 관계없이 나라 관리의 기본 정책 목표는 두 가지, 인민들의 안전과 복지라는 원리였다. 나라가 부흥하면 인민들이 안전해지는 것이요, 인민들의 생활이 윤택해지는 것이 바로 복지라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 사람들이 '개혁·개방의 총설계자'라고 부르는 덩샤오핑(鄧小平)이 제시한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은 바로 그 원리를 대변한 것이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실용주의를 쉽게 표현한 '흑묘백묘론' 은 70년대 말 이후 중국 사회에 나타난 가장 큰 사상 해방의 흐름이었다. 바로 그 사상 해방의 흐름 때문에 중국 경제는 성장 일변도의 흐름을 타고 힘있게 발전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빠른 성장을 하다 보니 성장과 함께 많은 문제점들이 뒤따라 왔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중국 지도자들이 요즘 새롭게 제시한 방침이 '과학발전관, 조화(和諧·허셰)사회, 신농촌 건설'의 세 가지다. '과학발전관'이라는 것은 빠른 경제 발전을 하다 보니 자원 소모와 자연 파괴가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은 결과 나온 것이다. GDP(국민총생산)를 키우는 데 몰두하다 보니 GDP 속에 너무 많은 희생이 섞여 있는 발전이 이뤄졌고, 그 점에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절약 발전, 안전 발전, 청결 발전'으로 요약되는 과학발전관이란 '무조건 발전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어떻게 발전하느냐도 중요하다'는 개념이다. '조화사회'란 '무엇을 위해 발전하느냐'에 대한 답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을 위한 사회 건설, 인간관계가 조화로워지는 사회의 건설이 발전의 목적이지 발전을 위한 발전이 아니라는 뜻이다. '신농촌 건설' 정책은 성장 일변도가 빚어낸 여러 가지 발전 격차 중에 도시와 농촌 격차가 가장 심각해졌기 때문에 제기된 것이다. 조화사회 건설을 위해서 해결해야 하는 급선무가 도·농 격차 축소라는 것이다. 그런 새로운 방침들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개혁·개방정책 시행 이래 세 번째로 진행되는 국가 관리 이념의 변화"라고 말하고 있다. 즉 1979년 말에 시작된 계급 투쟁 위주에서 경제 건설 위주로의 국가 이념 변화가 그 첫 번째 변화였고, 2001년 중국공산당 16차 당대회에서 시장경제를 중국의 기본 경제제도로 확인한 것이 두 번째 변화였다. 즉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이었다. 요즘 진행되는 세 번째 변화는 '투쟁철학의 전환, 건설철학의 전환, 조화철학의 전환'이라고들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도 말하고 있다. "중국공산당은 1920년대에서 1940년대까지는 전쟁을 했고,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는 투쟁을 했으며, 1970년대에서 지금까지는 경쟁을 해왔다…." 다시 말해 충돌일로를 걸어왔지만 지금부터는 조화로 가겠다는 것이 당 기본 이념 변화의 방향이라는 것이다.
12    조선의 경제회생과 그 변수 (조호길) 댓글:  조회:2925  추천:139  2008-01-28
조선의 경제회생과 그 변수조호길 중앙당학교 교수 현재 조선으로서는 뭐니뭐니해도 경제회생이 가장 급선무이다. 90년대초반 급격히 변하는 국제정세에 대처하기 위해 조선은 백방으로 노력하였으나 여러가지 국내외적 원인으로 심각한 위기에 빠지기 시작하였다. 국제적으로 피포위,피고립의식속에 빠지기 시작하였고 경제적으로 분배체계와 계획적체계가 마비되면서 잠재적정치위기를 잉태하기도 하였다.그위기 탈출내지 사전차단전략으로 선택한 것이 7.1조치 ,선군정치 그리고 핵개발이였다.중국의 경우 경제개혁은 국가와 국민,정부와 기업,중앙정부와 지방정부사이의 권리내지 권력의 재분배 과정이였다.개혁전 국민은 국가의 부속물로서 어떤 선택권도 없었다.개혁후 선택권이 국가로부터 국민에게 이전 되였다.개혁전 기업은 단순한 생산조직이지 경영조직이 아니였다.경영권은 정부에 속해 있었다 .개혁후 경영권이 기업에 이전되였다.개혁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권력의 전달자 내지는 연장선일 따름이였다.개혁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권력의 전달자임과 동시에 지방이익의 대표로 변신하여 이중역할수행자로 변했다.이런 변화는 국민,기업,지방정부들이 활력을 가지게 하였으며 전체사회가 경제발전에 효과적으로 동원되였다.개혁과 동시에 추진된 개방은 짧은 시일안에 대량의 자금,기술,시장 및 관리방법을 외부로부터 흡수할수 있었다.하여 개혁으로 생긴 활력은 개방과 혼연일체를 이루면서 가시적인 경제효과를 나타냈다. 조선의 7.1조치 내지 그 후속 조치들은 객관적으로 사회,기업,지방정부의 일정한 활성화를 초래했다. 문제는 개방이 따라주지 못함으로 해서 사회,기업,지방의 활성화가 중국과 같은 가시적 효과를 거둘수 없었다. 핵실험후 조선은 사상대국과 군사대국건설은 이미 완료되였다는 전제하에 경제대국건설에 주력할것을 재천명하였다. 조선의 경제회생전략이 실천에 가장 중요한 변수는 미국의 대북정책,남북관계,조선의 핵개발과 자주국방정책,선군정치 그리고 인플레,군수산업 등이 아닌가 필자는 생각한다. 미국의 대북정책이 조선의 개방여부에 일차적인 변수이다.한국의 대북정책은 조선의 개방에 가장 직접적이고 가장 빠른 변수이다. 핵실험후 재차 경제건설을 일차적 정책목표로 제시한 조선은 지식인 대회와 세포비서대회를 통해 고난의 행군을 총화하고 경제건설에 총동원할것을 전국에 호소하였으며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경제회생에 일차적지원을 한국에 기대했다.핵개발의 포기여부는 대외 개방에 가장 핵심적인 변수이다. 왜냐하면 핵개발 포기여부에 따라 대미,대중,대일,남북 및 기타 대외관계가 좌우지 될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주국방노선을 택하고 있는 조선이 미국의 강경정책앞에서 핵개발을 포기할수 있느냐이다. 핵개발을 포기할 경우 선군정치의 정당성이 약화될 가능성 또한 배제할수 없다.왜냐하면 선군정치는 내외로부터 오는 극단적인 충돌을 논리적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부로부터 오는 극단적인 압력과 긴장관계가 선군정치의 론리적 전제의 하나이다. 핵개발을 어디까지 포기할수 있을지 예측이 어렵다. 군수산업이 너무 큰 비중을 가진 경제구조는 정상가동될수 없다. 특별한 상황에서만 가능하다. 안정된 군수품시장의 확보,지속적인 생산능력,좋은 품질 등이 그것이다.조선은 이런 여건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그 러므로 해서 군수산업을 민용화하는 것만이 경제가 구조적으로 회생할수 있는 길이다.중국의 경제개혁도 군수산업의 민용화가 가장 중요한 일환이었고 쏘련의 붕괴된 중요한 경제적 원인의 하나가 군수산업 비중이 국민들의 수요만족에 너무도 큰 장애요인이였던것이다. 조선의 군수산업의 민용화에는 국가안전보장이 필수적 조건일것이다. 안전보장은 또 핵개발,선군정치 등 전략과 맞물려있다. 마지막 변수는 인플레이다. 현재 암시장에서 1달러가 3200원 이상에 거래되고있다. 이런 인플레는 많은 부정적인 것들을 야기시킬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무엇으로 인플레를 풀지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상기한바와 같이 여러 변수들이 서로 맞물려 있고 그중 상당수의 변수들사이는 마찰관계이다.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이다.
11    이명박 당선자에게 바란다 (조호길) 댓글:  조회:4935  추천:162  2007-12-23
이명박 당선자에게 바란다조호길 중국중앙당학교 교수이명박 당선자는 창조적 실용주의를 주요 국정철학으로 강조하면서 탈이념,중도 실용노선을 추구한다고 하였고 경제살리기와 국민통합,실용정부를 표방하였고 대북정책도 제시하였다. 이와 관련하여 한나라당은 선거운동기간 펴낸 정책공약집을 통해 “이후보의 국가경영철학은 경험적 실용주의에 토대를 둔것”이라며 “자유주의와 공동체주의, 성장과 복지, 시장과 정부는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주의로 그 벽을 넘어서야 한다”고 밝힌바 있다. 이당선자 또한 대선 투표일 100일을 앞둔 9월9일 회견에서 “과거지향적 이념세력을 미래지향적 실용세력으로 바꿔야 한다”고 선언한바 있다.   지난 몇 년간 이념갈등으로 겪었던 갈등을 해소하려는 이당선자의 의지와 목적은 충분히 읽을수 있고 또 공감한다. 그러나 한국이 기대하고 아세아가 기대하고 세계가 기대하는 내일의 한국은 실용주의만 가지고서는 안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한국은 이미 2만불시대에 들어서고 있고 국민의 선거로 정권을 평화롭게 교체하는 정치체제도 갖추면서 많은 개발도상국들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 다른 일면 한국은 짧은 시일안에 경제근대화와 정치민주화를 갑작스레 실현하면서 심한 진통을 겪었고 또 현재도 겪고 있다. 그 진통은 바로 가치체계 마찰에서 오는 것이라 필자는 생각한다.    한국의 경제근대화와 정치민주화는 자연발생적인 역사과정이 아니였고 선진국의 전면적인 시범내지는 도전에 대응하여 선진국의 우수하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받아들여 본토화해오는 과정이였다. 이 과정에 서양의 용기(容器)문화, 규범문화들은 비교적 쉽게 수용되고 정착할수 있었으나 정치가치체계는 쉽게 정착할수 없었다. 민주정치의 제도적장치는 쉽게 이식될수 있었으나 그 제도적 장치가 내포하고 있는 가치지향은 쉽게 또 빨리 정착될수 없었고 그로 인해 민주화과정은 심한 진통을 겪었고 오늘에 와서도 그 진통은 계속되고 있다.   육식위주의 서양인과 초식위주의 동양인의 가치체계는 같을수가 없다. 육식동물은 공격적이다. 살아 움직이는 동물을 힘으로 잡아야 생존이 유지된다. 육식동물은 또한 약육강식이다.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먹게 마련이다. 힘의 논리는 그대로 육식동물세계의 질서이다. 분산적인 육식동물은 힘의 논리로 질서를 구축하고 또 유지한다. 법이란 외부로부터 강요되는 강박적인 행위규범이다. 법으로 질서를 이루는 것이 법치라하겠다. 서양인들은 법위주로 질서를 이뤄왔다. 다수원칙으로 그 법을 만드는 방법과 과정이 바로 민주라할 것이다. 법을 만드는 기관은 국민의 대표들로 구성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법과 민주는 불가분의 관계라 할것이다.   초식동물은 풀위주로 생계를 유지한다. 힘이 약한 초식동물은 뭉쳐있는 것으로 즉 군체생활로 안전을 도모한다. 초식동물들의 군체생활에는 그 나름의 질서논리가 있다. 권위와 도덕이 바로 그것이다.   동양인은 초식동물에 비유된다. 동양인은 공동체를 무어 군체생활을 해왔고 권위와 도덕으로 질서를 이뤄왔다. 법치를 중심으로 했던 진시황시대는 단명에 끝났고 덕정(德政)과 왕도(王道)로 질서를 잡았던 중국의 역대 왕조는 장치구안(長治久安)했었다.    유교를 국교로 했던 이씨왕조 역시 500년을 이을수 있었다. 서양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조선민족은 혈연관계를 질서화하는 과정에 호칭법을 최고로 섬세하게 발전시켰었다. 여기에서 우리는 조선민족의 조상들의 군체생활과 도덕화수준의 단면을 엿볼수 있다. 조선의 고대 명작들은 대개 희극으로 끝나는 것이 많다.  《심청전》 이 그렇고  《춘향전》이 그렇고  《흥부전》  또한 그렇다. 서양고전명작들은 피와 죽음 즉 비극으로 끝나는 것들이 많다. 조선민족과는 상반되는 것이다.발전이란 사물속에 내재한 “미래형태”가 점차 현실화되는 과정이다. 시간적으로(종적으로) 발전은 승계와 창조의 과정이지 역사의 단절이 아니다. 공간적으로(횡적으로) 발전은 모방,학습과 창조의 연속이다. 하기에 발전이란 외래 것이 나의 것을 쫓아내고 외래 것이 자리잡는 과정은 전혀 아닐뿐더러 외래의 것을 전혀 외면한채 내 것만 고집하는것도 물론 아니다.    어제의 것과 오늘의 것, 외래의 것과 내 것이 서로 어울려 새로운 것을 창출해내는 과정이 발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다면 권위와 도덕이 자유평등과 국민주권이 어울려서 새로운 동양적 정치가치를 창출하고 그것을 제도화하는 것이 한국민주화의 핵심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국적 가치체계가 완성될 때 국민통합도 남북통합도 그 토대를 가지게 되며 정책목표도 튼튼한 기반을 가지게 된다. 왜냐하면 정책이란 목표가치를 실천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치목표가 뚜렷하고 국민 모두가 인정할 때 그 가치목표 실현을 위한 정책현실화에 국민들이 적극 동참할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 논리다. 가치공유,상호인정과 상호신임,행위 예측가능성 등은 서로 다른 공동체가 단일화 되는데 가장 중요한 변수임을 유럽 공동체 실현과정이 증명하고 있다. 우선 가치체계가 분명해야 상호인정과 상호신임이 기본적인 토대를 갖게 되고 그 가치체계 실현수단인 제도도 상호인정하게 될 뿐아니라 서로간에 행위예측도 가능해진다. 행위예측 가능성은 또 거꾸로 가치공유와 상호인정,상호신임에 박차를 가해준다.   가치는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발견하고 선택할 따름이며 새로운 가치체계가 구축되는 과정은 당연히 길고긴 역사적 과정이다. 5년을 임기로 하는 한 정권에 그것을 실현해 달라는 주문은 물론 무리다. 다만 이명박정권시대에 새로운 가치체계 구축에 기본적인 틀만이라도 마련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일뿐이다. 그렇게 될 때 중국과 한국은 가치공유, 상호인정, 상호신임, 행위 예측가능성이 커져 탄탄한 친선관계를 유지해 갈 것이며 전 인류에 필요한 또 하나의 모델 즉 동양모델을 창출해 낼 것이다.    
10    중국, 새 사상해방 필요하다 댓글:  조회:3291  추천:112  2007-02-13
유럽은 고대희랍과 고대로마 문명을 거쳐 소위 말하는 '암흑의 중세기'에 빠진다. 이태리에서 시작된 문예부흥은 스페인을 거치고 프랑스를 지나 영국에서 새로운 결실을 맺는다. 하여 유럽은 긴긴 암흑의 중세기를 빠져나와 근대화의 막을 열고 또 그에 동반하여 세계를 지배하려는 식민주의 통치의 막도 함께 열었다.   유럽과는 전혀다른 문명을 개척한 중국은 찬란한 동방문명을 창조하고 유럽의 근대화후로는 쇠퇴 일로를 겪는다. 1910년대의 신문화운동은 하나의 사상해방운동이였다. 그후로 중국은 유럽의 문명을 받아드리면서 현대화를 시도하였다.   1950년대이후 중국은 또다시 새로운 방법으로 중국의 도약을 시도하였으나 의식형태의 배타성으로 하여 실패의 고배를 마셨다. 1970년대 말 중국은 또다시 새로운 현대화에 시동을 걸고 성장일변도로 정신없이 뛰여왔고 세상이 주목하는 성과를 이룩하였다.   중국이 바야흐로 개혁개방의 창을 열던 80년대 초반 나는 도문시의 선전부를 주관하고있으면서 네가지 문제를 고민하였다. '무엇을 개혁하는지', '무엇때문에 개혁하는지', '어떻게 개혁하는지', '개혁하여 어떤 사회를 만드는지'등이였다. 앞의 세가지는 나름대로의 답을 만들었으나 네번째문제는 도무지 감을 잡을수 없었다. 원래의 사회주의는 아니라고 그러고 또 자본주의는 더구나 아니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자본주의가 아니면 사회주의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아니였다. 이런 문제의식속에서 나는 지금까지 공부하고 또 강의하여왔고 고민하여 왔다.   단 한가지 분명한것은 어떤주의에 관계없이 나라관리의 근본가치목표는 단두개, 즉 안전과 복지라는 점이다. 나라가 강할때 국가가 안전할것이요, 국민들의 생활이 윤택을 복지라 할것이다. 등소평어른의 '고양이론'이 바로 이 도리를 대변하고 있다. 바로 이 '고양이론'이 70년대 이후 중국의 가장 큰 사상해방이 였다. 바로 그 사상해방으로 하여 중국은 성장일변도로 줄기차게 오늘에 이르렀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상당한 성장을 하고보니 성장과 함께 많은 문제점들을 동반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국이 새롭게 내놓은 방침이 과학발전관, 조화사회, 신농촌건설이다.   과학발전관이라고 함은 소모와 자연파괴가 너무 많고 안전생산의 결여로 GDP속에 생명과 피가 너무많이 배여있는 발전이 아니라 절약발전 안전발전 청결발전으로 요약되는 발전관 즉 어떻게 발전하는냐에 대한 새로운 방침이라 할수 있을것이다.   조화사회라고 함은 무엇을 위해 발전하느냐에 대한 답이라 할수있는데 인간을 위한 사회건설 인간관계가 조화로운 사회건설이 발전의 목적이지 발전을 위한 발전이 아니라는것이다.   신농촌건설이라고 함은 성정일변도가 빚어낸 여러가지 격차중에 도농격차가 가장 심각함으로 해서 조화사회건설에서 제기되는 가장 급선무가 도농격차축소임을 지적한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금번 새로운 방침의 제시를 두고 어떤 사람들은 개혁개방이래 세번째로 되는 나라관리 이념의 변화라고 하고있다. 즉 70년대말 계급투쟁중심에서 경제건설 중심으로의 전환이 그 첫번째이고 2001년 16차당대회에서 시장경제를 중국의 기본경제제도로 확인한것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의 전환이고 금번의 세번째전환은 투쟁철학에서 건설철학내지 조화철학의 전변이라고 하고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은 20년대에서 40년대까지는 전쟁, 50년대에서 70년까지는 투쟁 70년대에서 지금까지는 경쟁, 즉 충돌일로를 걸어왔고 지금부터는 조화로 가겠다는 집권당의 기본 의념의 변화라고도 하고있다.   어떻게 요약정리하든 중대한 전환임은 틀림없다. 문제는 이런 일련의 이념과 방침의 변화에는 반드시 일련의 새로운 사상해방이 동반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아니할경우 이런 이념과 방침의 변화가 곡해되거나 지속적이고 효과적인 사회변화를 기대할수 없기 때문이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 봤을때 인간과 인권 그리고 국민의 권리, 권력과 국가의 본질, 평등과 공평, 자유와 제도 등등 일련의 개념들이 정확히 설명되고 또 전체국민들에게 보급되지 않고서는 새로운 변화를 동반하는 질서가 도저히 불가능할것이다. 바로 이것때문에 6중전회결의문에서 핵심가치 체계건설문제를 거론했지 않았나 생각한다.
9    자유와 평등 그리고 정치개혁 댓글:  조회:3489  추천:132  2007-02-11
자유평등,너무도 많은 것이 압축된 아름찬 단어이다. 인간의 리상,낭만 그리고 리성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단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또 얼마나 많은 인간들의 피와 생명이 스며있는지 모를 단어이기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또 얼마나 많이 오해되고 곡해되여 있는지 모를 개념이기도 하다.자유는 다음의 몇가지 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첫째, 소극적 자유.소극적자유란 다른사람에게서 오는 속박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둘째,적극적 자유.적극적 자유란 나의 의지대로 행동함을 의미한다. 셋째,속박에서 벗어나고 나의 의지대로 행동할 때 다른 자의 자유를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문명시대에서의 인간들은 어쩔수 없이 개인의 자유 일부 내지는 대부분을 떼여내여 국가와 사회에 바치고 국가는 법이라는 강박적인 행위규범으로 인간의 자유를 제한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고 사회는 도덕규범으로 인간들이 자원적으로 자기의 행위를 절제하게 함으로써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좀 더 자세히 생각해보면 자유는 능력과 직결되여 있는 것 같다. 능력이 크면 소극적 자유도 적즉적 자유로 그 범위가 넓어질수 밖에 없는것 같다. 능력의 크기와 자유의 크기는 정비례된다는 것이다. 그럴 경우 인간사이의 관계는 능력의 격차로 하여 불평등이 생길수 밖에 없고 그 불평등이 어느 한계를 넘으면 사회는 안정을 이룰수가 없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발명해낸것이 두가지인데 그 하나는 사회보장제도이고 다른 하나는 반독점제도이다. 사회보장제도로 인간들의 기본 생존을 보장해주고 반독점제도로 보다 많은 기회를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 두가지 발명이 아니였다면 자본주의는 벌써 숨을 거두었을 것이다.이익의 속성으로부터 봤을 때, 평등은 결과의 평등,기회의 평등, 그리고 규칙의 평등으로 나누어진다. 평등의 기본함의는 같임이라고 할수 있다. 경제평등이라 함은 똑같은 재부를 소유함을 의하할 것이다. 그런데 이 평등이라는 것도 철학적이 아닌 현실생활에서 보면 역시 능력과 직결되여 있는 것 같다. 능력이 큰자에세는 차례지는 것도 많을 것이고 기회 또한 많을 수 밖에 없고 규칙을 이용할수 있는 기회도 보다 많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예를 들어 능력이 큰자와 작은 자가 똑같이 죄를 범하였을 때 능력이 큰자는 보다 고명한 변호사를 고용할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의 격차로 인해 인간사이의 격차가 어느 한계를 넘으면 사회는 불안정할수 밖에 없다. 오늘의 중남미지역이 가장 그 대표적이다. 인구당 수입이 수천불을 넘었으나 빈곤층이 40%이상을 넘어서므로 해서 그 동네는 언제고 바람 잘 날이 없다. 오늘의 중국도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이런 문제를 푸는 방법은 정책적,제도적 측면에서는 역시 사회보장과 반독점이다.그런데 평등은 능력과 직결되여 있기 때문에 근본적인 평등은 교육의 평등이라 할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의 평등은 능력의 평등을 최대한 가능케 할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평등정도가 높은 나라나 지역은 틀림없이 교육평등이 잘 되여 있다고 할수 있을 것이다.정치분야에서는 또 다른 상황이다. 평등주의 민주는 전부 단명으로 끝났다. 고대 아테네,고대 로마가 그랬고 프랑스혁명이 그랬고 빠리꼼뮨이 그랬다. 현존하고 있는 안정된 민주는 전부 자유주의 민주이다. 자유주의 민주는 인간의 정치능력은 평등하지 않다는 데서 부터 출발한다. 현대 사회는 분화되고 전문화되여 있다. 전문화된 업종들은 전문지식과 전문능력을 필요로 한다. 정치도 전문분야이다. 그러기에 전문능력을 갖춘자들이 정치에 종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우리나라의 인민대표대회제도는 평등주의를 그 놀리적 전제로 하고 있다. 인간의 평등한 정치권리와 정치능력을 동일시하고 있다. 정치권리와 정치능력은 별개의 문제이다. 정치권리가 동등하다고해서 각 계층,집단,년령,성별,지역,민족들이 같은 비례로 대표를 뽑아 권력기관을 이룬다. 뛰여난 대표성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능력이 결여되여 있다. 국가권력을 행사할 만한 능력이 없는 것이다. 대표성을 유지함과 동시에 능력이 중시되여야 할것이다. 그래서 대표대회제도를 유지함과 동시에 대표대회 상임위원들은 정치능력을 갖춘 자들이 맡고 또 전직화하여야 할것이다. 요약하면 평등주의에서 자유주의에로 이행해야 할것이다.
8    인간 이성(理性)의 한계와 제도 댓글:  조회:3642  추천:95  2006-04-07
인간 이성(理性)의 한계와 제도조호길제도설계측면에서 보면 어떤 정치공동체에도 “좋은사람”(好人)“나쁜사람”(坏人)이란 없고 다만 “유한이성인”(有限理性人)만 존재할뿐이다. 만일 정치공동체 모든인간이 “좋은사람”이라면 외부로부터 강요하는 강박적 행위규범으로 질서를 잡을 필요도 없을것이고 사상정치사업만으로 인간들의 “선”(姜)을 고약시킨다면 질서가 자연히 유지될것이다. 만일 인간 모두가 “나쁜사람”이라면 각종 행위규범들은 가치기초를 잃을수밖에 없기에 아무런 역할도 할수 없을것이고 따라서 어떤 질서도 건립유지될수 없을것이다.시몬(Simon)의 “유한이성”이론(有限理性)으로부터 우리는 다음의 명세를 얻게된다. 인간은 이성적존재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다. 이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이익을 취하고 해를 피하게 하며(趋刑避害)이성의 한계성은 인간으로 하여금 착오를 범하게 한다. 시몬에 의하면 인간의 행위는 “결정된조건”의 예속하에서 시작된다. 이 “결정된조건”이란 주의력의 한계 감지능력의 한계 정보처리능력의 한계 기억계통의 한계 등이다.첫째 주의력의 한계. 주의력은 관건적인 희소자원이다. 성공적인 관리는 우선 반드시 주의력의 성공적관리여야만 한다. 주의(注意)는 임무집행에 필요한 그량이 한정되여있는 에네르기이며 또 자원이다. 이성의 한계란 바로 주의광도(注意廣度)의 한계에서 오는 결과이다.둘째, 감지능력의 한계. 감각의 한계로인해 사람들은 일정범위내의 자극에만 주의하게 된다. 생리학심리학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감각기(感覺器)에는 감수야(感受野)라는것이 존재하는데 감수야에 작용하는 자극은 두뇌에 의해 식별되고 가공된다. 감수야 밖을 인지(認知)와 가공계통의 망구(盲區)이다. 지각(知覺)도 일종의 주동적인 또 선택적인 구축과정이다. 지각이란 현실자극과 이미 보존되여 있던 경험과의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셋째, 정보가공능력의 한계, 시몬에 의하면 인간은 수색(搜索)으로 문제를 해결한다고 한다. 수색이란 책략을 제출하고 또 그로써 문제를 해결함을 가리킨다. 인간들의 자연과 인간사회에 대한 관찰 감지. 귀납과 예측의 완전무결을 보장할수 보장할수 없는 한 각종문제에 대해 완벽한 해결책을 제시함은 현실을 떠난 환상에 불과할 따름이다. 때문에 인간들이 수색할때 문제해결의 일체가능성을 동시에 전부 생각할수는 없으며 모든 가능성을 동시에 비교할수도 없는것이다.시몬의 유한이성이론은 적어도 정치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것을 제시하고 잇따. 만일 인간들이 자기가 취할 행위에 관한 모든 정보를 알고있고 또 그 행위가 가져올 모든 결과를 전부 예측할수 있다면 인간은 착오를 범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충돌이라는것도 있을수 없을것이다. 그런데 인간을 사회적동물이고 사회성을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인간을 합리적이고 이성적 존재이기도 하지만 다른한면 선과악 이성과 감성(感性)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해서 이기행위(利己行爲)와 이타행위(利他行爲)는 모두 인간행위의 가능한 행위 방향이며 인간공동체는 이기와 이타 합작과 충돌 분기(分歧)와 일치(一致)등 일련의 행위들로 구성되고 유지될수밖에 없는것이다. 바로 인간의 이성에는 한계가 있기에 “인간은 천생(天生)의 정치동물”인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인류 공동체는 반드시 제도라는 강박적 행위규범으로 인간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방법으로서 만이 질서를 이루고 또 유지해 나갈수 있는것이다.(본문은 敎育部《敎學与硏究》2005年)第7期에 발표한 《論制度按排的羅輯起點》의 일부를 요약한것임)
7    충돌과 합작은 인간행위의 기본방식이다 댓글:  조회:4406  추천:148  2006-03-13
충돌(沖突)과 합작은 인간행위의 기본방식이다조호길제도란 충돌을 관리하고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이다. 이는 충돌은 제도건립의 논리적 전제임을 의미하는것이다. 조직이란 인간들이 충돌속에서 합작함으로써 생기는것이다. 충돌이 없으면 조직이 없고 충돌이 없으면 제도라는것도 있을수 없다. 그러기에 모든 제도의 건립과 유지는 충돌을 논리적 전제로 해야만 한다. 만일 이익의 일치(利益一致)를 논리적 전제로 한다면 제도적 절차적(程序) 법제적 질서의 성립은 불가능할수 밖에 없는것이다. 충돌과 합작은 인류역사에 일관되여 있다. 생물학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 충돌은 일체 생물의 본능이요 생물세계는 언제든지 적응한자가 생존하였다. 심리학적 시각으로 보면 인간은 지배욕이 강한자와 지배욕이 막힌자로 분류할수 있을것이고 이는 공격적성향이 많은 자와 복종적인 성향이 많은 자로 나눌수 있을것이다. 경제학적인 시각으로 보면 분배가능한 이익은 언제든지 한계가 있고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한계가 없다. 그러므로 충돌은 불가피한것이다. 문화적시각으로 보면 언어, 종교, 가치관등의 차이 자체가 충돌인것이다. 코셀(coser)의 하기 명제는 성립된다할수 있을것이다. 충돌은 인류사회에 고유한것이다. 충돌은 인류사회진보의 기초이다. 충돌은 인간의 자아의식의 원천이다. 충돌은 인간의 비교의 원천이다. 충돌은 인간의 조직화의 원천이다. 충돌은 인간의 호동관계(互動關係)에 필수적이다.충돌은 모종관계속에 분렬요인을 해소하는데 유리할것이며 새로운 통합에 유리할것이다. 많은 학파(學派)들을 충돌파와 기능파(功能學派)로 나눌때 이 두파는 충돌에 관해 상반되는 입장을 보인다. 충돌파는 사회충돌을 적극적이고 직접적인 기능을 가진다고 역설한다. 코리(cooler)는 충돌은 사회생명의 원천이라 하고있다. 모든 통일체내에는 충돌되는 요소를 내포해 있다는것이다. 로스(ross)는 공개적인 대립이 사회를 보호한다고 하였다. 그 어떤 연합체속에서도 지배적 요인이 이의(異議)를 억제함과 또 다른 형식의 대립은 모두 조직을 분렬시킬수 있다. 조직을 보다 공고히 하려는 노력과 모순속에 빠져있는 어려움이 조직의 존재를 지속시킨다는 것이다. 기능파는 이와 상반되는 입장을 보인다. 파손스(parsons)는 충돌은 파괴성 분렬성을 가지고있다고 하면서 충돌은 일종 병태(病態)라고 하였다. 사회충돌은 사회적불평등속에서 기원한다고 하겠다. 모리스(molees)는 불평등은 평등에 앞서 출현하였다고 지적하면서 가정은 불평등의 일종 모델이다고 하였다. 인간들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권위를 감수하게 되며 또 거부감없이 그대로 받아들인다. 코셀은 충돌은 가치, 희소한 지위에 대한 요구, 권력과 자원에 대한 쟁탈에서 온다고 하였다. 사회적 이익의 불평등한 분배에 관해 충돌파와 기능파는 상반되는 입장을 취한다. 데비스(deves)는 다음과 같이 쓰고있다. 사회불평등은 무의식중에 생겨나고 발전되여온 일종 수단이다. 그 수단에 의해 사회는 가장 중요한 직위를 의도적으로 가장 적합한 자에게 맡긴다. 사회계층은 인류사회의 두가지 가장 기본적인 수요를 만족시키고 있다. 하나는 재능있는 자에게 동력을 부여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평균능력보다 더 큰 능력을 필요로 하는 또 보다 중요하고 보다 어려운 위치를 차지하게 한다. 다른 하나는 사회는 반드시 이런 사람들을 격려하여야 한다. 그들이 일단 이런 위치에 이르게 되면 그들로 하여금 맡은 직책을 충분히 감당할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사회는 반드시 그들에게 보다 많은 보수를 지급해야 한다. 기능학파와는 반대로 충돌학파의 이론가들은 사회의 각종 부동한 개인과 군체들의 입장으로부터 사회불평등 문제를 연구한다. 즉 전체사회의 수요가 아니라 각자 각 군체의 수요와 념원의 입장으로 부터 출발한다. 파손스는 밀스의 《권력엘리트》란 제작을 논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밀스에게서 권력은 하나의 계통적사회속에서 또는 사회를 대표하여 집행하는 기능적 시설물이 아니라 한 군체가 (권력소유자) 다른 군체(권력 소유자외의 사람들)를 저지하여 자기가 얻고 싶은것을 취득하는 것이다. 충돌학파들은 사회불평등은 희소하고 가치가 있는 상품과 서비스를 쟁탈하는데서 생긴다고 간주한다. 기능주의자들은 사회성원들의 공동한 이익을 강조하나 충돌주의자들은 대립된 이익을 강조한다. 기능주의자들은 사회적연계속에서 생성되는 공동이익을 강조하나 충돌주의자들은 통치와 착취부분을 강조한다. 기능주의자들은 사회통일기초의 일치성을 강조하나 충돌학파는 억압을 강조한다. 기능주의자들은 인류사회를 사회계통으로 간주하지만 충돌학파는 사회를 권력과 특권을 쟁탈하는 투쟁의 무대로 간주한다. 불평등은 합리하든 불합리하든 인류사회에 일관되여 왔는바 불평등은 이익모순에서 기원하였고 이익모순은 이익의 유한성(有限性)과 이익추구의 무한성사이에 발생하는 모순운동의 필연적 결과라 하겠다. 시장경제하 충돌은 일체 제도적장치의 논리적 기점(起点)임에 틀림없다. 제도란 인간행위의 규제를 의미한다. 인간행위의 규제는 인간사이에 가능하게 나타날수 있는 충돌을 전제로 하는것이다. 만일 인간사이의 이익이 일치하고 사람마다 성인군자(聖人君子)여서 이익앞에 서로 양보만 한다면 충돌이란 있을리 없고 따라서 인간의 행위규제수단으로서의 제도도 필요없을것 아닌가.(본문은 敎育部《敎學與硏究》2005年第7期에 발표한 《論政治制度安排的邏輯起点》의 한 부분을 요약한것임)
6    권력은“필요악”이다 댓글:  조회:3671  추천:113  2006-03-13
권력은“필요악”이다조호길권력은 어떤 자원으로 다른사람의 의지와 행위를 변화시키는 능력이다. 자원이 다름에 따라 권력의 형태도 다양하다.권위는 지식, 진리, 인격에 의존한다. 권위에 대한 복종은 자원적인 복종이다(心腹口腹). 영향력은 물질내지는 조직에 의존한다. 영향력에 대한 복종은 어쩔수없는 복종이다(不得不服). 복종하면 이익이 있고 불복하면 징벌이 있기때문이다. 다음 강제력에 대한 복종은 공포때문이다(恐怖而服).불복할 경우 자유의 박탈 내지는 생명이 박탈당할수 있기 때문에 복종하는것이다.권력은 지배와 피지배를 의미한다. 명령복종관계를 떠난 권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권력이란 불평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권력자원이 평등하게 나누어져 있다면 명령복종관계는 성립되지 않는다. 때문에 권력이란 생기면서부터 일종의 “악”이다. 그리고 권력은 또 타인의 자유를 박탈함을 의미한다. 타인의 의지와 행위를 변화시킨다는것은 곧 타인의 자유를 박탈하는것이기 때문이다.권력은 “필요악”이다. 인류공동체가 유지되려면 질서가 필수적이다. 질서를 이룬다는것을 곧 행위규제를 의미한다. 행위를 규제하기 위해서는 공(公)권력이 필요하다. 모두가 복종하는 공권력이 없이는 질서가 유지될수 없다.자유란 소극적인 자유와 적극적인 자유로 나뉜다. 소극적인 자유는 다른사람의 속박에서 벗어남을 의미하고 적극적인 자유란 자기의 의지대로 행동함을 의미한다. 절대적 자유란 있을수 없다. 능력이 강한자는 다른 사람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는 정도가 높을것이고 능력이 약한자는 그와 상반될수 밖에 없다.한 공동체가 질서를 유지키 위해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자신의 일부 지위를 공동체에 내놓음으로써 공권력을 형성하고 공권력으로 각자의 행위를 규제해 질서를 잡는것이다.권력은 “자아팽창”속성을 가지고있다. 어떤 권력도 생김과 동시에 권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싶은 충동을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다. 그러므로 권력이란 언제든지 일종의 “침략성”을 띄고 있는것이다. 국가권력의 “침략”앞에 한 개인은 개미만도 못하다. “문화혁명”과 같은 과거의 교훈이 이를 잘 말해주고 있다.권력은 “필요악”이기에 권력이 존재하는 한 권력은 반드시 제약과 감독속에 놓여져야만 하는것이다. 제약과 감독을 떠난 권력은 침략과 부패로 갈수밖에 없는것이다.“절대권력은 절대부패”이다.제약과 감독은 두개의 같지 않은 개념이다. 감독이라함은 하나의 행위주체가 다른 행위 주체를 일방적으로 통제함을 말하는것이고 제약이라고 함은 두개 이상의 행위 주체사이에 상호규제하는것이다.(相互規約).그런데 감독관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감독하는 주체의 권력이 피감독자에 비해 훨씬 커야함이 필수이고 제약 관계가 성립되는데는 권력의 분립 그리고 행위주체사이에 거의 대등한 권력량(權力量)을 소유했을때에야 가능한것이다.아무튼 문명한 정치질서를 확립함에 있어서 권력은 “필요악”이라는 이념은 논리적 전제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아니할 경우 즉 권력을 도덕화시키고 인격화시키고 심지어 의식형태(意識形態)화시킬 경우 정치제도화, 절차화 법제화 즉 문명한 정치질서는 영원히 꿈일뿐이다.((본문은 敎育部《敎學与硏究》2005年第7期에 발표한 《論政治制度按排的羅輯起點》의 한부분을 요약한것임).
5    냉수 마시는 조선인과 뜨거운 물 마시는 중국사람 댓글:  조회:3872  추천:110  2006-02-12
냉수 마시는 조선인과 뜨거운 물 마시는 중국사람조호길80년대초 동해안을 따라 기차로 평양을 방문한 일이 있다. 평양에서 자동차로 금강산 모향산에 갔었다. 나에게는 참으로 충격적인 사건이였다. 묘향산 만폭동을 오르면서“삼천리 금수강산”이라는 글에서나 읽던 말구절을 새삼스레 느낄수 있었다. 전체 조선이 그대로 하나의 공원같다는 느낌이였다.90년대초 한국을 처음 방문했었다. 만 메터 고공에서 내려다 본 한국은 푸른 산으로 뒤덮혀 있었다. 서울에 이어 대전 그리고 대구 포항 경주 다음은 청주 이어서 부산 설악산 제주 등 등이였다. 거칠게 나마 팔도 강산을 두루 돌아본셈이다. 역시 전체 한반도는 그대로 하나의 공원같다는 느낌이였다. 어디가나 푸른산 맑은물이였다. 조선사람은 왜 냉수를 마시는가를 알았다. 나로서는 대단히 중요한 발견이였다. 조선사람은 옛날부터 바다를 가까이 하고 산을 가까이 하고 맑은 물을 가까이 하면서 살아왔구나 하는 느낌이였다. 그러기에 먹는 음식에 해물이 많고 무쳐먹는 산나물이 많았던 것이다. 산이 많은 곳의 흐르는 물이요. 흐르는 물은 맑은 물일수밖에 없다. 그러니 구태여 끓이지 않고도 그대로 냉수는 마셔왔겠구나 하는 느낌이였다. 나로서는 참으로 중대한 발견이였다.90년대중반 미국 포드재단의 경비지원으로 “중국촌민자치와 농촌관리연구”팀이 묶어져 전체 중국대륙을 몇개 지역으로 나누어 조사연구한바 있다. 나는 중원지역(中原地區)을 맡아 몇명으로 구성된 연구팀을 이끌고 산동 하남 하북의 농촌지역을 3년 연속 조사한바 있다. 전형적인 농업지역이였다. 드넓은 평야에 공업자원이 별로 없으므로 해서 농사에만 종사하는 마을 마을들은 대체로 “농호+촌민위원회”의 관리 모델이였다. 강남(江南)지역과 비교하기 위해 상해시의 淸浦현을 선택하였다. 전혀 다른 모습이였다. 대도시 주변덕에 공업자원이 많음으로해서 淸浦현의 마을들은 가공업이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돼 있었다. “농호+公司”형 모델이였다. 마을에서 운영하는 회사가 상당규모의 수익을 올리고있기에 촌에서는 주택, 교육, 의료 등 여러면에서 농민들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있었다. 그러므로 해서 농민들은 촌에 많이 의지하고있는 상황이였다. 바꾸어 말하면 집체에서 통제하고 있는 자원이 많았기에 집체는 농민에 대한 상당한 통제능력을 확보하고 있었다. 중원지역과는 너무나 대조적이였다.이번 조사는 나에게 중국문화를 이해하고 나아가 중국의 변혁과정을 이해하는데 큰도움이 되였다. 물론 짧은 시간안에 주어진 과제를 완성해야만 했기에 여흥은 별로 없었으나 중원지역과 강남지역사이의 지리적 지형차이는 나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강우량이 적은 중원지역에서는 밀농사밖에 할수 없었고 강우량이 많은 장강이남 지역에서는 벼농사가 많았다. 이런 차이는 나에게 많은 여운을 남겼다.2001년 나는 산동성에 1년간 파견되여 어깨에 견장하나 달고 현직간부신분으로 제남시 117개 향진중 28개향진을 돌아볼수 있었다. 한마을에 며칠씩 묵으면서 농민들의 사는 모습을 자세히 볼수 있었다. 20여명으로 무어진 조사단을 이끄노라 별 여가는 없었지만 향진과 마을에서 먹고 자고 하다보니 그나마 생활의 구석구석을 볼수 있었다. 집집의 마당은 대체로 경사지고 제일 낮은 끝머리에는 벽돌과 세멘트로 잘 다듬어진 구덩이들이 있었다. 바로 비물은 받아두는 작은 수고(水庫)였다. 일상생활용수는 수도물을 쓰지만 택지주변의 채소밭에는 그 물을 쓰고 있는 것이였다. 물이 그토록 귀한 것이였다. 전체중원 지역의 지하수위가 136-137메터라 한다. 전체 중원지역은 끝없이 펼쳐지는 평야라 산이 안 보인다. 흐르는 물이 너무나 귀한 평야에서 생활용수는 거의 지하수였다. 현재가 그러니 옛날에는 어떠했을가? 마을마다 큰 구덩이를 파고 비물은 받았다 한다. 고여있는 물이라 깨끗한 물은 아니였을것이다. 그러니 그 물을 끓여서 마실수 밖에 없었음은 밤중에 불보듯이 뻔한것이다. 끓여서 마시는 물이니 뜨거웠을 것이고 뜨거운 물이라 식혀서 마셨을것이다. 훌훌 불어가면서 천천히 마셨을것이다. 황하중하류에 위치한 산동, 하남, 하북은 중국문화의 본산지다. 그러니 뜨거운 물을 마시는것과 중국 전통문화는 직결되여 있다고 보아도 큰 탈은 없을 것이다. 물이 너무나 귀한 중국이다. 현재 중국인구당 물자원 보유량은 세계 평균 수준의 4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북경시는 30분의 1밖에 안 된다고 한다. 물에서 산생됐다고 하는 인간에게 물자원은 얼마나 귀중한것인지 모른다. 어떻게 강조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서부 어떤 지역에는 물이 하도 귀한 나머지 평생 세 번만 목욕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이다. 태여나 한번 결혼 때 한번 죽어서 한번 어느 민족의 문화도 선진 락후로 2분화하면 무단적일것이고 다만 각자 자기의 장단점을 가지고 있다고해야 할것이다. 물이 귀했던 중국인들은 고인 물을 끓여서 마셨으니 “慢慢地”였을 것이고 마실 물도 귀한 중국인들이라 청결에는 관심이 적었을것이다. 평야에 살았으니 산나물을 생으로 무쳐 먹을 수 없었을 것이고 거의 모든 음식물을 대개 볶아서가 아니면 끓여서 즉 익혀서 먹는것이 위주였을 것이다. 모든것은 천천히 하는 인간들에게는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있었을 것이고 그래서 주역이나 로자철학같은 것이 나올수 있었지 않을가 싶다. 로자철학이나 주역같은 깊이를 갖춘 문화였기에 넓이와 무게도 동시에 갖추었을 것이다. 이에 비해 산좋고 물맑은 곳에서 살아온 조선인들은 밝고 맑고 빠른 반면 깊이와 무게와 넓이가 중국인에 못 미치는 부분이 있지 않은가 싶다.수백 만평방키로메터의 크나큰 대륙 그것도 동서, 남북사이여서 너무나 큰 거리적 지형적 내지는 문화적 차이를 가진 대륙을 통일된 하나의 공동체로 수천년 지속해 왔으니 깊고 넓은 문화가 아니였다면 전혀 불가능했을 것이다. 북쪽 끝에 눈이 펑펑 쏟아질 때 남쪽 끝에서는 발 벗고 모를 심는다. 최고 당국은 하나의 같은 이념과 같은 원칙으로 동서남북중을 골고루 아울러야 했으니 말이다.이제까지 중국은 서남과 서북 그리고 동북쪽으로는 인적이 드문 산과 초원 그리고 사막으로 막히고 동쪽과 남쪽으로는 바다로 막혀 있는 봉페된 환경에서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나라를 관리하여 왔고 19세기 말까지는 그 주변국들이 중국을 많이 모방하여 왔었다. 그런데 현재 전체 지구는 하나의 망으로 되여가는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들어서고있다. 그리고 중국의 주변국들은 서양문물을 받아들여 엄청난 변화를 보이고 있고 일부 나라들은 중국을 훨씬 앞서 있다. 크나큰 도전이 아닐수 없다. 여기에 세계가 주목하는 바가 있다. 중국이 어떻게 변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변할 것인지 중국은 이 도전에 잘 적응해 가리라 믿는다. 깊고 넓은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문화가 역사적 부담이 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그 문화가 깊고 넓음으로 해서 그 부담은 더욱 큰것이다. 하지만 역사는 부담만이 아니다. 창조라고 해서 모든것이 전부 변하는것만은 아니다. 물론 창조란 파괴와 갱신을 의미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 창조는 계승을 내포한다. 옛날 중국은 불교를 받아들여 완전히 중국화시킨 경험이 있다. 동서양 문화를 접목시켜 새로운 문화를 창조할것이다. 물론 뜨거운 물을 마시면서 “천천히”말이다.덩치만 크다고 꼭 대국이 되는것은 아니다. 현시점에서 봤을 때 대국은 반드시 세가지 요소를 동시에 갖추어야 만 한다. 첫째 규모이다. 인구, 영토, 경제규모가 커야 한다는것이다. 크다는것을 남을 도울수 있어야 한다는 뜻도 포함된다. 둘째 새로운 제도는 창출할수 있어야 한다. 일사천리로 변하면서 새로운 도전을 받고있는 요즘 세상을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사이의 관계를 조절하는 새로운 제도 창출을 요청하고 있다. 이런 새 제도를 부단히 만들어 낼수 있어야 한다. 셋째, 그 제도를 안받침 할수 있는 새로운 문화를 부단히 생산해 낼수 있어야 한다. 물론 “천천히”지만 중국은 그런 대국으로 변신하리라 믿는다.냉수마시는 조선인도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크게 한몫 할것이다. 정보화시대의 생산은 표준화 대량생산이 아니다. 공업화시대에는 표준화 대량생산이 필수적이다. 새기술 탄생주기(周期)가 걷잡을 수 없이 단기화(短期化)되고 있는 이 세상에 표준화 대량생산은 벌써 물건너 갔다. 냉수 마시는 조선사람은 머리가 잘 돌고 또 빨리 돌아가기에 순발력이 있다. 정보화시대에 잘 적응할수 있는 기질을 타고난 것이다.10여년 전 어느 언론사로부터 “정보혁명”(信息革命)을 설명해 달라는 인터뷰요청을 받은 바 있다. 정보란 우선 지식이다. 지식이란 불확실 요소를 최대한 걷어낸 사실의 체계이다. 즉 “무엇이냐”“무엇때문에”“어떻게 될 것이냐”등의 물음에 대한 답이 바로 지식이다. 그런데 그 지식을 나 혼자만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지식이고 그 지식이 여러 사람사이에 교류될 때는 정보로 변신되는것이다. 즉 교류과정에 들어 간 지식이 바로 정보인 것이다. 정보혁명이라 함은 컴퓨터기술의 발달로 지식생산과정이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키고 있는것을 가리키는 것이다. 변두리 학과(邊緣學科)들이 우후죽순마냥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기술의 발달로 인해 지식교류 과정이 순식간에 완성된다. 지구 한끝에서 다른 한끝까지 몇초사이에 교류과 완성될수 있다. 이를 가리켜 정보혁명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선인은 넓지 못하고 깊지 못한 약점을 지닌 반면 빠르고 밝은 장점을 지니고 있기에 정보화시대에 잘 정응해 나갈것이다. 여기에 우리 민족의 밝은 내일이 있다고 생각한다.뜨거운 물 마시는 중국인과 냉수 마시는 조선인은 서로 장단점을 배우고 보완하면서 잘 어울려 야 하고 또 꼭 잘 어울릴 것이다. 같은 자들만 잘 어울리는 것만은 아니다. 서로 다른자들이 일정한 마찰을 동반하면서 잘 어울리는 것은 법칙일것이다.
4    (론문) 시장경제 도입과 정치개혁 댓글:  조회:3459  추천:106  2005-12-14
개혁개방후 중국국가 발전전략의 변화 및 전망 -정치학적 시각(3)趙虎吉3. 시장경제 도입과 정치개혁 중국의 시장경제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시장경제는 교환의 경제이며 계획경제는 분배경제였다. 둘째, 교환은 평등한 교환이며 등가교환원칙이 통칙이다. 셋째, 교환은 자유로운 교환이여야 하며, 매매는 자유로워야 한다. 넷째, 경쟁적인 교환이다. 결과적인 평등은 있을 수 없다. 다섯째, 엄격한 규칙 속에서의 교환이다. 자유로운 교환, 평등한 교환, 경쟁적인 교환과정이 질서를 이루기 위해서는 엄격한 체계적인 규칙이 생명이다. 상기의 시장경제의 특성은 계획경제 바탕우에 세워진 기존의 정치체제에 심각한 도전을 해오고 있다. 중국의 정치체제는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특성을 갖고 있다. 첫째, 복수이원구조 아래의 도표에서 보듯이 중국의 정치구조는 복수이원구조로 되어 있다. 우선 국민들이 대표를 선거하여 전인대를 구성하고 전인대에서 정부구성원을 선거하며, 정부는 사회를 관리한다. 그리고 중국공산당은 전인대와 정부를 통솔한다. 또한 전인대와 정부 속에 또 다른 중국공산당조직이 들어있다. 둘째, 집권당 권력이 국가화, 행정화 되어 있다.셋째, 제도적 규정과 실제과정이 불일치 하다. 넷째, 제도적 규정만 있고 자세한 절차적 규정이 없다. 다섯째, 정치가 도덕화 되어 있고 도덕이 정치화 되어 있다. 중국의 민주화는 다음과 같은 네단계로 가정할수 있다. 국가통일→중앙정부권위 확립→정치조직 정치과정 제도화 절차화→보편적 참여현재 중국정치개혁은 제 2단계 (중앙정부 권위 확립 단계)에서 제3단계(정치과정의 제도하, 절차화 단계)로 이전 중이라 볼 수 있다. 호금도 온가보 정권은 정치체제개혁을 점진적으로 추진할 것인바 집권당내 민주화와 정치조직과 정치과정의 제도화, 절차화를 중심으로 추진할 것이다. (끝)
3    (론문) 성장제1주의에서 균형발전 전략으로의 변화 댓글:  조회:3404  추천:101  2005-12-04
[상해의 밤거리]개혁개방후 중국국가 발전전략의 변화 및 전망 -정치학적 시각(2)趙虎吉2.성장제1주의에서 균형발전 전략으로의 변화근 25년에 걸쳐 추진되어 온 개혁개방은 성장제 1주의 원칙으로 일관되였는 바 세상이 주목하는 성과를 취득함과 동시에 일련의 불균형을 가져왔다. 도시와 농촌, 지역과 지역, 경제와 사회 인간과 자연 국내발전과 대외개방사이의 불균형이 바로 그것이다. 그중에서도 도시와 농촌지역사이의 불균형이 가장 심각한바 정치불인정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실정이다. 첫째, 1997년에서 2003년까지 7년사이 농촌인구당 년 수입은 695.9원밖에 늘어나지 않았는바 이는 도시주민 년 수입증개액의 5분의 1에 해당된다. 주택, 의료, 교육등 분야에서의 도시주민의 정부혜택을 감안하면 6분의 1밖에 안된다. 2003 년말 년 인구당 수입이 637원 밖에 안되는 절대 빈고층 농민은 2900만명에 달하며 년 인구당 수입이 882원 밖에 않되는 상대빈곤인구는 5600만명에 달한다.절대빈곤층과 상대빈공층은 각 전체 농민인구의 2.7%와 6.0%를 차지한다. 2001년 도시주민의 실제수입은 인구당 6859.58 원이나 농민은 2366.40원 밖에 않된다. 둘째, 지역격차. 2003년 상해시 인구당 교육과학 재정지출은 960.80원이고 인구당 구제금 재정거출은 204.28원이나 귀주성은 187.19원, 79.9원 밖에 안 돼 상해시의 19.48%라 39.11%밖에 않된다.셋째, 과열투자와 저효율. 1992년에 시작된 건축정책은 1997년에 연착륙을로 매듭짓고 1998년부터 투자에 의한 외곽적 성장이 시작되였는바 중국경제는 과열투자로 몸살을 앓고있다. 2002년말 4대 국유은행의 대출액은 전체금융기관대출액의 63%를 차지하는데 4대국유은해의 부실채권은 총대출액의 25%를 차지한다. (GDP의 18%).2003년강철업계의 총투자액은 1400억원으로 2002년에 비해 1005늘어났다. 2003년 강철생산능력은 2.5억톤 2005년에는 3.3억톤으로 늘어나 그중 6000만톤은 판로가 없었을것으로 예상한다. 1998년부터 연 6년간 8000억원의 국채를 발행하였는바 국가재정의 국채 의존도가 50-60%나 된다고 한다. (선진국은 10% 신흥공업국은 25%).ㅣ이에 반해 생산률은 미국의 30분의 1 일본의 18분의 1 프랑스의 16분의 1 독일의 12분의 1 한국의 7분의 1밖에 않된다고 한다. 건국 50년래 GDP는 10배 성장한데 반해 광산물자원 소모량은 40배 늘어났고 전기 강철 시멘트 소모량은 선진국에 비해 21%-45%정도 높다고 한다. 공업 생산액 1만원당 물 소모량은 선진국의 10배에 달한다고 한다. 넷째, 과잉 인력. 2003년 새로 늘어난 노동력은 1000만에 달하고 국유기업 개혁으로 생겨난 실직자가 800만에 이르며 농촌에는 1.5억 과잉노력이 있다. 개혁개방은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 사회 각 분야에 영향을 줌으로써 중국은 천지개벽의 신시기를 맞고 있음과 동시에 엄청난 진통을 겪고 있다. 첫째, 기대와 만족의 불균형에서 오는 심한 조절감.둘째, 불균형적인 발전으로 인한 지역, 계층간의 갈등.셋째, 新舊 교체에서 오는 심한 갈등.이에 대한 경제적 대응로는 서부개발, 동부지역 개발, 三農문제에 관한 정책적 조치 등을 들수 있고, 정치적 대응으로는 당내 민주화와 정치과정 절차화 조치 들이다. 호금도 온가보 정권은 국가발전전략을 성장일변도에서 인간본위주의를 핵심으로하는 성장과 분배의 균형발전으로 전환하였는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철강, 부동산 시멘트 등 분야의 투자규모를 대폭 줄인다. 둘째, 환경보호, 안전생산, 에네르기, 기술개발의 투자를 늘인다. 셋째, 서부와 동북진역의 간접자본 투자를 대폭 늘인다. 넷째, 교육 의료 보건의 투자를 늘인다. 다섯째, 취직 보조비와 저소득층 보조비를 늘인다. 2004년 취직 보조비 83억원 저소득층 보조비는 779억.(계속)
2    (론문) 모택동과 등소평의 정치가치 지향의 차이와 중국개혁 댓글:  조회:3639  추천:81  2005-11-30
개혁개방후 중국국가 발전전략의 변화 및 전망 -정치학적 시각(1)趙虎吉1 모택동과 등소평의 정치가치 지향의 차이와 중국 개혁모택동—이상주의 이념주의 국가조합주의 등소평—현실주의 실용주의 사회조합주의1970년대말 중국은 등소평의 현실주의, 사실주의, 사회조합주의 정치이념에 의해 개혁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하여 4개(노업, 공업, 국방, 과학기술)현대화 실현을 최고의 정책목표로 설정하고 본격적인 경제개혁을 시작하였다. 197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경제체제는 다섯 단계에 걸쳐 개혁되어 왔다. 1978-1988 계획경제체제내 상품경제의 부분적도입시기1989-1991 계획경제 주장과 시장경제 비난시기1992-1997 계획경제론에서 시장경제론으로의 과도기1997-2002 시장경제 전면도입기2202-현재 시장경제 확립기197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의 경제개혁은 세가지 권력관계의 변화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국가와 개인 사이의 권리 재분배, 개혁전 국민들의 모든 선택권은 국가에 집중도어 있었으므로 국민은 절대적인 수동적인 위치에 있어 자신의 노력으로 자신의 생활을 개선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였다. 개혁후 선택권이 국민들에게 돌아옴으로 하여 국민은 자기생활의 주인으로 되고 있다.(경제권에 한함).둘째, 정부와 기업 사이의 권력 재분배. 개혁전 기업은 단순한 생산조직으로 어떠한 자주권도 없었다. 개혁후 경영권이 정부로부터 기업으로 이전되어 기업은 명실상부한 경영주체로 변신하였다. 셋째,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사이의 권력재분배. 개혁전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의 연장선으로서만 존재하였으나 ,개혁후 정책결정권이 점차 하부조직으로 이전되어 “시장경제하에서는 정책결정단위가 작으면 작을수록 좋다”라는 원칙이 관철되기 시작하고 있다. 중국의 개혁은 쉬운것에서 어려운데로 즉 점진적인 전략으로 추진되여왔다. 하여 쉬운부분의 개혁은 거의 끝나가고 어려운 부분들만 남아 있다. 례를 들어 금융체제개혁 정치체제개혁 등이 그것이다. (계속)
1    정(情)과 민주정치의 딜레마 댓글:  조회:3710  추천:69  2005-07-15
정(情)과 민주정치의 딜레마조호길몇해째 한국드라마가 중국전역을 휩쓸고있다.수십개 텔레비채널중 어느 채널을 틀어도 한국드라마가 안나오는 채널은 없을 정도이다.한국드라마가 중국인들의 마음을 끌고있는것은 드라마속에 나타나는 깊은 정(情)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중국드라마와 비교해보면 한국드라마는 인간사이의 끈끈한 정으로 일관되여 있다.부모와 자식간,부부사이,연인사이,형제사이,동료사이에 오고가는 정이 중국인들을 매료하고 있는것이다.언젠가 나는 한국의 어느 유명작가의 작업실에 머물면서 연속 사흘을 동네 목욕탕에 나가게 된적이 있다.자식이 부모를 등에 업고 와 등을 밀어드리는 모습을 내눈으로 직접 목격하였다.말로만 들었던 신화같은 장면이였다.고속도로 휴게소들에서도 가족단위의 여행자들을 많이 보았다.설악산에서는 낚시대를 잡고있는 남자들,밥을 짓고있는 여자들,애들과 즐기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아빠트단지들에 노인정을 만드는것이 거의 의무화되여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는 또 한번 감동했었다.나는 한국에 갈때마다 사회의 구석구석에 스며있는 정을 감지할수 있었다.이런 정(情)문화는 그 민족의 높은 생활질을 보여주는것이며 이런 문화는 인류에게 얼마나 보귀한것인지 모른다.이 정도의 높은 생활질을 영위하고있는 민족은 이세상에 몇 안된다고 나는 생각한다.문제는 이같이 아름다운 정(情)문화가 정치에 반영되면 이성(理性)보다는 정서(情绪)가 앞섬으로해서 정치과정이 정책중심보다는 인물중심으로 되여버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情)과 한국민주정치의 딜레마가 아닌가 생각된다.정(情)에는 이지(理智)가 없다.자식이 부모에게 효도함은 무조건적인것이다.정(情)이 정치과정에 반영되면 인물중심으로 갈수밖에 없는것이다.거기에 극한주의 사고방식이 가미되여 한국정치는 항상 심한 진통을 겪고있는 모습을 발견할수 있다.남북분단으로 인해 한국은 거대규모의 군대를 유지하고 있다.거의 모든 남자 성인들은 군인경험을 갖고있다.이로 인해 군사문화의 흑백논리가 한국정치에 깊이 깔려있다.야당과 여당사이,야당과 정부사이에는 민주정치의 기본인 타협과 절충보다는 극한주의적인 대결이 많음은 주지의 사실이다.하여 정치과정은 생산적인 부분보다는 극단적이 행위들이 많은것같다.민주정치는 강박적인 행위규법 즉 법,감정이 아닌 이성(理性)과 직결되여있다.왜냐하면 민주정치의 핵심은 경쟁이기 때문이다.정당과 정당사이,정치인과 정치인사이는 경쟁관계이다.누가 더 잘하느냐를 국민이 판단하고 선택하는것이다.이런 경쟁은 체계적이고 엄격한 게임규칙을 생명으로 한다.게임규칙은 감정을 배척하기마련이다.감정이 아니라 차디찬 이성(理性)을 절대적인 필요로 한다.육식동물은 힘의 대결로 질서를 잡는다.이와 반대로 초식동물은 힘보다는 권위와 윤리로 질서를 이룬다.왜냐하면 힘이 약한 초식동물은 무리를 지음으로써만이 자기를 보호할수 있고 군체생활은 권위와 도덕을 바탕으로 하기때문이다.육식주의 서양인들은 외부로부터의 강박적인 행위규법 즉 법으로 질서를 잡아왔다.이와 반대로 초식위주의 동양인들은 권위와 도덕중심으로 질서를 이뤄왔다.법과 이지(理智)를 바탕으로 한 서양의 민주정치가 권위와 도덕중심의 동양에 이식(移植)되는 과정은 두 문화의 갈등과 융합과정이다.그 결과는 서양문화와 꼭 같지는 않을것이다.즉 동양의 민주정치는 서양의 그것과 꼭 같지는 않을것이라는 것이다.한국은 동양식 민주화를 앞장서 실험하고 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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