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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문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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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화: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수필, 외2편)
2019년 07월 18일 10시 08분  조회:527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

리화

 

 

아마도 중2 쯤이였을 것이다.

선생님이 제목 여러개를 내주시고는 우리들한테 그중 하나를 골라서 작문한편을 지어오라고 하셨다. 어느 청소년잡지에 보내는 글이라고 하시면서.

그 제목 가운데서 내가 선택한 것은 ‘별빛 흐르는 저 언덕’이였다. 지금 돌이켜보면 어떤 내용으로 작문을 지었던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작문을 완성하고바쳤을 때 선생님은 허허 웃으시면서 다음날 나에게 새롭게 수정한 글을 보여주셨다.

내가 쓴 작문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글이였다. 그리고 ‘별빛 흐르는 저 언덕’이라는 ‘내 글’이 처음으로 지면에 발표되였고 고1 때 료녕성에 있는 어느 학생으로부터 공감의 편지도 받았으며 그 무렵 선생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비보까지 들었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고 나는 그만 책상에 엎드려 엉엉 울었다.

약한 체구에 늘 갈색 안경을 착용하신 큰아버지 같았던 선생님.

시원한 목소리와 털털한 성격을 소유하신 선생님.

언제나 스승의 자리에서 우리에게 배움의 갈증을 해소시켜주셨고 삶의 자세를가르쳐주셨던 선생님.

바로 우리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은 사십대 후반, 오십대 초반이나되셨을가∼

다시는 들을 수도 만날 수도 없는 선생님의 목소리와 그 모습을 회억하며이젠 사십을 바라보는 성인이 된 이 학생이 새롭게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를 제목으로 글을 쓰고 싶다.

벌써 축축해진 눈가와 가슴에 선생님이 다시 떠오르고 저 하늘의 별로 반짝일선생님께 쫑알쫑알 별과 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아, 그리고 선생님께서 수정해주신‘별빛 흐르는 저 언덕’의 글 속에 등장했던 영희와 나, 언덕에 앉아서 도란도란 나누었던 우리의 우정과 성장이야기도언덕 우로 흐르는 그 별들마냥 반짝반짝 영원히 지지 않을 것이다.

 

유년의 별하늘은 아름다웠다

별이 총총한 밤하늘은 아름답다.

나의 유년 시절(사실은 시골에서자란 모든 아이들의 유년 시절)은 검푸른 하늘에 저마다 꼬옥꼬옥 박혀있는 별들을 볼 수 있었고 나는 그 별들을보면서 커왔다. 밤이면 밤마다 별구경을 했고 무작정 좋아했다. 그 시절내가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면 엄마는 제일 밝은 별을 가리키며 새별이라며, 계명성이라고도 부른다고 했다. 한참은 커서 알게 되였지만 그 별은 금성이였으며 새벽에 동쪽 하늘에서 반짝이면 새별, 또는계명성이라 부르고 해가 진 뒤 서쪽 하늘에 뜨면 개밥바라기별이라 부른다는 것도 알게 되였다. 그토록 별을좋아한 리유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이미 성인이 된 지금 나의 느낌을 적는다면 나와 저 별들 사이에는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막연한 이음이 있는 것같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자연과학이라는 학과를 배웠고 밤하늘의 별들도 별자리로나뉘여지는 것을 알게 되였다. 그 후로부터 나는 밤하늘에 더 애착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여름 밤하늘의 은하수와겨울 밤하늘의 오리온자리, 사계절 내내 밤하늘을 지키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자리 등 많은 별과 별자리를 찾고짚으면서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언젠가는 부모님 따라 놀러 갔다가 한밤중에 돌아오는 길에서 동생이랑 함께손잡고 올려다본 밤하늘의 월식이며 비자루 같은 꼬리를 달고 하늘을 가로질러가는 혜성을 보면서 질렀던 환호소리며∼ 밤하늘은 늘 나에게 신비한 세상을펼쳐주기만 했다.

아마도 별에 대한 애착을 넘어선 집착이 나더러 ‘별빛 흐르는 저 언덕’을찜하도록 이끌었던 것 같다.

천체현상이 생긴다 하면 거의 놓치지 않고 도구들을 준비하며 설쳤던 어린시절은 어느덧 흘러가고 이제는 훌쩍 커버린 성인인 내가 서있다. 어린 시절 그 별들이 여전히 그 자리에 뜨고지면서 변함이 없는 것처럼 별에 대한 나의 사랑은 지금도 다름이 없다. 한낮의 태양보다는 밤하늘의 달이나별을 더 좋아하는 나는 아마도 여아대장부女汉子/womenman가 아닌 은은하고 여리여리한 녀자인 것 같다.

 

별과의 대화

어둠의 장막이 일찍 내리는 겨울날의 퇴근 무렵이며, 술 한잔 가볍게 걸친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며, 어렴풋이 새벽이라고느끼면서 깨여나는 날이며∼ 나는 늘 별들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했고 더 가까워지려고 했다.

술을 마신 날이면 밤하늘의 뭇별들은 더 반짝거렸고 좀 어두운 별들을 향해“어험! 어서 밝게 나오지 못할가!” 하면서 주정도 부렸다. 내가 어려서부터 좋아한 너희들이기에 수십년이 지나면 내 머리에 내려달라고 부탁까지 했다.여름 밤하늘의 은하수가 통채로 내려와 내 머리를 은빛폭포처럼 반짝이게 해달라고. 그럴 때마다별들은 촐랑거리는 나를 향해 더 반짝여주었다.

수년 전에는 사계절중 가장 휘황찬란한 겨울철 밤하늘의 별자리인 오리온자리와텔레파시가 통하여 버젓이 <오리온자리>라는 제목으로 기승전결이없는 ‘수필식 소설’을 쓴 적도 있다.

오리온자리에 위치한 오리온성운은 수많은 별들의 탄생지이며 아기별들이 태여나서새로운 별자리를 만드는 데 충실하는, 화려한 빛을 뿌리는 아름다운 천체이다. 여기서부터시작한 나의 ‘수필식 소설’은 인간도 큰 성운을 품고 지상에서 아기별들을 탄생시키면서 빛을 뿌리는 별무리이며 나중에 생을 마감하면 자신의 별을찾아 승천하는 것이라고 이어나갔다.

이런 생명의 별무리들과 용맹한 사냥군-오리온을결합시켜 오리온자리가 산에 자주 다니셨던 그 분의 별이고 그 분의 아득한 전생의 모습이라고 믿었다. 그 때부터하늘에 있는 내 별이 궁금해졌고 나는 대체 어떤 별의 운명을 타고 태여난 것인지, 저 하늘의 수많은 별들가운데서 어느 별이 내 것인지 찾기 시작했으며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망망한 우주 어느 한 귀퉁이에는 분명 내 별도 깜빡이면서 날 굽어보고 있을것이라고 적었다.

멋진 구상을 가지고 그린 그림은 이러한 내용으로 이어졌지만 결국 기승전결이없는 엉뚱하고 황당한 ‘수필식 소설’로 마무리가 되였다.

텔레파시가 제대로 통하지 못했나봐∼ 하고 반성하며 바라본 밤하늘에는 오리온자리가더 름름하게 서있었다. 나와는 멀리멀리 사이를 두고.

별은 너무 멀리 있는 거야. 분명짜릿~ 하고 텔레파시가 통했는데∼

안되겠어. 별을 당겨와야겠어. 바로 눈앞에 놓고 바라볼 수 있게. 그림처럼 척 펼쳐놓고 마주보며 진지하게이야기를 해봐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언젠가는 저 별들을 내 앞에 당겨오기로 마음을 먹었다.

머리 속에는 벌써 류성우처럼 휘우듬하게흘러간 수많은 별들의 궤적이며 기준물체를 중심으로 별들이 소용돌이를 이룬 그림이 떠올랐다. 인터넷에서 많이봐오던 그림이라 머리 속에 그대로 재현이 되였다.

맞어! 내 손으로 찰칵찰칵하면서무한한 하늘의 별들을 축소판으로 만들어 한눈에 보는 거야!

기다리던 여름이 다가오자 마음은 더 급해졌다.맞춤한 날자를 잡아서 친구들과 캠핑을 가기로 했다. 목적지를 쿤위산으로 정했다. 도심을 멀리 떠나 산으로 가면 빛오염이 적어서 카메라에 잘 담길 것 같았다. 그곳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거다. 밤하늘을 바라보는 거다. 별들과온밤 이야기를 나누는 거다.

쿤위산으로 출발하기 전 나는 카메라에 단렌즈와 줌렌즈 두개, 삼각대, 무선 리모콘 등 장비들을 갖추었다. 거대한별들의 강이 밤하늘을 가로지나간 그림을 담기 위해 사전에 촬영지식도 꼼꼼히 찾아보고 암기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가 않는 수많은 별들의 강을 렌즈에 담아야지.

따라오는 친구들을 뒤로 하고 촬영하기 맞춤한 곳에 장비를 설치한 후 사전에찾아봤던 촬영지식을 더듬으며 밤하늘에 앵글을 맞췄다.

어두운 밤하늘에 대고 찰칵찰칵한 지도 한참이 지났다. 야심찬 나의 기대와는 어긋나게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처럼 나를 심쿵하게 해준 그림은 한장도 담기지가 않았다. 별무리에 관한 첫 촬영이라서 촬영환경이나 기준물체 선정, 조리개 값, 셔터스피드, ISO 감도 등 설정에 서툰 것도 있겠지만 이건 너무했다. 결국 어깨를 떨구고텐트로 돌아가자 친구들이 예쁘게 담겼냐며 물었다. 한장도 못 건졌다는 나의 얘기에 그럼 누워서 쏟아지는 별이나구경하라고 했다.

가까운듯 아슴한 별무리들, 나에게는잘 다가오지 않는 별무리들이였다.

대신 그 날 밤은 참 오랜만에 맑은 밤하늘을 볼 수 있었으며 쏟아지는별들의 정겨운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별들의 수다

쿤위산에서 돌아온 후 나는 별무리 사진촬영지식을 더 많이 찾아보고 저장해두었다. 나중에 카메라를 통한 별과의 대화를 다시 시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친구들이모이기만 하면 꼭 시간을 내서 쿤위산으로 가자고 거듭 강조했다. 별무리 사진을 담고야 말겠다는 나의 의지를확고히 밝혔다. 그럴 때마다 친구들은 나한테 ‘별타령’만 하지 말고 앞에 놓인 술이나 마시자고 했다.

찰랑찰랑 술잔이 우리 앞에 놓여있다. 오늘밤 저 하늘에는 별들이 떴는가. 유리잔이 오색령롱한 전등에 반사되여 반짝반짝거린다. 저 하늘의 별들이 술잔으로 다 내려온듯 빛나고 있다.

술 한잔이 넘어가며 우리들의 수다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하늘에서 땅까지, 고대에서 현대까지, 나라에서 민족까지, 어른에서 아이까지, 아픔에서웃음까지, 영화에서 현실까지, 우리에서 우리까지∼

마주앉은 친구들을 바라보니 이름에 다 별 ‘성’자가 들어간 친구들이였다.

어허? 이제 보니 다들 별이네. 반짝반짝거리는 내 곁의 별무리들∼

그래, 니들은 다 별에서 온 그대가아닌 별에서 온 친구들이다.

별나라, 별사랑, 빛나는 별∼

별아, 노래 불러줄가? 별아, 술 한잔 쭉~ 건배! 별아, 영화보러 가자. 한명한명 별이라고불러주면서 ‘수작’을 걸어보았다.

어? 그러네! 그러니까 우리가 니 곁에 별이네. 이제 더는 ‘별타령’ 하지 않겠네~ 하하하하

별들의 수다는자정을 넘어 새벽으로 이어지고 수십년이 지나도 우리의 우정은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 지지 않는 그리움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페의 슬픔과 미학

 

1.

여차여차한 일로 차량견인보관소에 들리게 되였다.

대문을 들어서자 한눈에 헤아릴 수 없는 ‘문제차량’들이 안겨왔다. 작게는 교통규칙을 어겨서 ‘자유’를 잃은 차량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크게는 접촉사고거나 큰 사고로 모셔진 차량들도적지 않은듯 싶었다. 또 페기된 차량들도 안쪽 구석에서 시간의 먼지를 쌓아가고 있었다.

아직 숨 쉬고 있는 차량들과 이미 숨을 거둔 차량들이 내보내는 한숨 같은것과 음산한 기운, 그런 것들이 황량하게 내 몸을 엄습해왔다. 입에서는저도 모르게 하∼ 하는 작은 소리가 새여나왔다.

저마다 사연이 있어 이곳에 모여진 차량들이였다. 일부 차량은 사연을 얼추 짐작할 수도 있었다.

누구의 탈 것으로 존재하다가 이젠 기각된 차량이 보였다. 정확히 그것은 이미 차량이 아니고 껍데기였다.

대만 남은 모습을 봐서는 아주 오래전의 차량 모델이였고 바람과 비와 해볕에녹이 쓸어있었다.

적갈색의 페차.

어느 시대 유물이고 혼자의 박물관인듯그 차량은 거기 숨을 죽이고 살아있었다.

손가락으로 살짝 다치기만 해도 바스라질 것만 같이.

아직 흙으로 먼지로 돌아가지 못하고 시간 속에서 툭 끊어지고 부스러지는순간을 기다리는듯이.

혹은 누가 어서 흙으로 먼지로 보내주기를 기다리고 있는듯이.

세월에 풍화된 저 적갈색과 텅 빈 저 껍데기는 처연하게 아름다웠다. 그것은 시간이 내린 색이였고 그 색에는 길에서 씽씽 달렸던 열정과 로고함, 수많은로정의 풍경들이 침착되여있었다.

생을 다하니 저렇게 페기처분되는구나∼ 하는 허탈함으로 눈물이 솟아올랐다. 모든 사물은 운명을 다하면 사람들처럼 저세상으로 가고 이곳이 바로 페차들이 잠들어있는 무덤이구나∼

저쪽에 페기된 뻐스 한대도 눈에 들어왔다.

그 뻐스도 역시 ‘골격’만 남아있었다. 유리창은다 깨졌고 텅 비여있는 내부와 곳곳에 파괴된 흔적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뻐스 곁에 놓여진 신발 한짝.

불의의 사고에서 크게 다쳤을 어느 길손의 신발 같은.

혹은 어느 망자의 가져가지 못한 신발 같은.

한짝만 남은 신발 우로 오후 해살이 환하게 부서지고 있었다. 그 아픈 사연에 해살이 내려와 음침하고 스산한 기운을 거두어주고 있었다.

시간이 퍼그나 지났지만 그 날 오후 그 차량견인보관소에서 마주쳤던 페의구석구석들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직 숨이 있어서 아름다움이 살아있는 것들보다는 세월의 끝자락에 서있는, 세월의 풍상고초를 고이 받은 모든 것들을 위하여 해살은 좀더 찬연해져야 할 것이다. 그들이흙으로 가는 길이나 무덤가에 아름다운 미소가 피여날 수 있도록.

 

2.

차주전자 뚜껑이 부주의로 깨지자 휴지통으로 던져버렸던 것은 수년 전의일이였다. 귀하게 선물받은 다기세트였고 단아한 모양새로 드물게 아끼던 물건중의 하나였다. 속상한 마음은 금할 수가 없었지만 이미 파괴되여 완정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버렸다. 그리고그 일을 기막히게 후회한 것은 바로 반년 전의 어느 날이였다.

우연하게, 조각나고 부서진 도자기를수선하는 공법을 접하게 되였고 그 수선공법에 감탄했다. 사진을 보니 얼기설기 붙여져있는 모습이 완정할 때보다더 아름다운 것이였다. 조각나고 부서진 상처자국은 금빛으로 된 선과 무늬와 도안으로 붙여지고 장식되여있었다. 그 아픈 곳에는 수선공예가의 상상과 정성어린 손길, 따스한 마음이 스며있었다. 상처를 붙이고 여며서 더 아름다운 가치로 환생시킨 기막힌 수선공법이였다. 파괴된사물에 대한 존중과 결여된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의 마음 앞에서 나는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다.

내가 아끼던 그 도자기도 버리지만 않았더라면∼

그 도자기는 벌써 흙으로 된 지 오래되였겠구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저려왔다. 뚜껑만 깨진 그 차주전자는 꽃병으로 남겨도 단아했을 거였고 깨진 뚜껑을 건사라도 했더라면 나중에 수선공예가의 손끝에서새롭게 탄생할 수도 있었던 거였다.

이젠 파괴된 사물들을 쉽게 버리기 없기다.

아직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남아있을지도 모르니깐.

 

3.

그리고 문득 어느 날, 우리 집에온 곱돌들이 그랬다.

다년간 맛집에서의 사명을 완성하고 우리 집으로 오게 된 이 곱돌들은 첫눈에보니 순 돌을 깎아서 만든 것이였고 아직은 사용할 수 있는 모습이였다.

곱돌 세개 모두가 불에 심하게 그을렀고 물때,기름때, 손때가 고스란히 묻어있었다. 그러나 질박한 미가흐르고 있었다. 그중 하나는 비교적 완정했고 다른 하나는 밑굽의 사분의 일 정도가 얕게 떨어져나가있었다. 아마 손님 밥상에서 치우거나 설겆이를 하다가 떨어뜨렸거나 가장 취약했던 부분이 불의 세례에 못이겨 파괴된 것이리라. 또 다른 하나는 곁부분의 도드라져나온 부분이 약간 떨어져있었다.

세월의 때를 몸에 가득 두른 이 곱돌들은 아직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었다. 존재의 가치를 위한 고생고생을 다했겠지만 아직도 더 살아있을 가치가 있다는듯 생의 메시지를 나에게 전달해주고 있었다.

- 세월이 좀 됐지∼

- 그러네∼ 슬프게 아름답네∼

나는 그만 이 곱돌들의 아픔과 아름다움, 묵묵함에울컥해졌다. 감히 그 아픔을 만질 자격은 나에게 있는 것인가. 조심스럽게떨어져나간 부분을 만지는데 가슴이 저릿저릿해왔고 나는 이 곱돌들을 오래오래 손에서 놓지 못했다.

- 맛있는 음식 잘 부탁할게.

- 아깝게 바라봐줘서 고마워.

그래. 때묻은 너희들이 더 좋고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너희들이 더 멋있다.

조금씩 상처가 난 곱돌이라도 된장국이나 청국장을 끓이면 맛이 일품일 것이다. 곱돌에서 우러나는 맛과 질박한 분위기의 만남이니.

혹은 화로에 목탄불을 붙이고 곱돌을 올려 손질한 조개살을 넣고 맛있는양념까지 곁들이면 또 다른 료리도 완성되지 않는가.

아니면 송이버섯 밥을 지어도 구수한 누룽지까지 먹을 수 있어서 금상첨화일것이다.

곱돌의 사용용도를 생각하니 벌써 입안에 군침이 감돌았다.

 

4.

페, 세상 곳곳에 있는 숨이 있거나없거나 하는 존재들. 슬픔과 아름다움이 함께 공존하는 것들. 시간이많이 쌓여져 누구도 흉내를 낼 수가 없는 것들이였다.

그들의 아픔에 슬퍼하고 그 살아온 세월의 흔적에서 아름다움을 보아내며충직하게 살아온 그들의 시간을 돌이켜보니 먹먹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마음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페도 보여지기 시작했다. 그 페 때문에 마냥 눈물을 흘렸던 자신이 떠올랐고 이제는 그 페도, 그 눈물마저도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다시바라본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웠다.

 

 

그리움의 단상

 

하루

폭우 기상예보가 내려졌습니다.

천둥번개에 강풍을 동반한 폭우라고 합니다. 어떤지역에는 우박도 내린다고 하네요.

하늘에는 먹구름이 낮게 드리우고 열린 창가로 비바람 내음이 들어옵니다.

많이 내려야지∼ 억수로 내려야지∼

초봄부터 비상인 가뭄피해에 땅은 메말라가고쩍쩍 갈라지고 있습니다. 내 가슴 한구석도 가뭄이 든듯 메말라있습니다.

땅의 절규가 들리는듯합니다.

하늘이 그리워서, 하늘이 내려주는 사랑이 그리워서 땅은 절규하고 있는 걸가요.

나도 막연한 누군가가 그리운 걸가요.

하늘은 하늘 대로 높고 땅은 땅 대로낮고 그대들은 이렇게 비며 눈이며 바람이며 해살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겠지요.

나에게 든 가뭄도 감성을 말라 비틀어버리는듯합니다. 그리운 사람을 너무 오래동안 만나지 못했기 때문일가요.

그래서 비가 내리면, 땅이 흠뻑젖어들면 나도 덩달아 촉촉해지고 생기를 찾을 것만 같습니다.

 

이 틀

그리고,

그 날이였습니다.

우리가 만나자고 얘기를 나눈 것은.

-꼭 한번 가야겠네∼ 올해는 꼭 봤으면 좋겠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늘그립다는∼

-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거주하는 남과 북 사이 어디 쯤 만나볼가요? 재밌겠다∼ 이렇게 가운데 쯤 만나면요∼

-하하하 그런 방법도 있네요∼ 수필 한 둬편 나올 것 같은 느낌인데요∼

그래요. 수필도 한 둬편 나와야겠지요.

그보다도 우리는 정말로 만나야겠지요.

저 푸른 록음마저도 숨막히게 드리우는 그런 여름이 시작되고 있네요.

우리는 만나야 해요.

잦은 만남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끔씩이라도 만나야 해요.

만나서 눈빛도 나누고 서로의 가슴을 적셔주어야 해요.

서로의 령혼에 스며들어야 해요.

내가 그대를 쫓아가던가.

그대가 나를 따라오던가.

아니면 가운데 쯤 어디서 만나야 해요.

사람은 결국 자신을 가장 닮은 것을 찾아가게 되는 거지요.

눈빛도

마음도

령혼까지도∼

 

사 흘

따뜻합니다.

뜨거운 물을 따라놓은 지 두시간이 다되는 이 다관이 아직도 온기가 있습니다.

저으기 놀랐습니다.

보이차를 우려놓고 감감 잊은 시간에도날 따스한 온기로 기다려준 다관입니다.

두손으로 다관을 감쌉니다.

어떤 흙으로 빚어지고 어떻게 구워졌길래 너는 잘 식지도 않는구나.

나도 이 다관처럼 오래오래 따뜻한 사람이였던지 생각해봅니다.

누가 그랬던가요?

“이 만큼 살아왔으니 마음도 이 만큼 넓어지고 따뜻해졌다는 것”이라고.

아닙니다.

이 만큼 살아왔는데 마음은 더 좁아지고 서늘해진 것 같습니다.

저으기 자신이 미워집니다.

언제부터 시작되였는지 조금만 어떡해도 언짢아지는 세상입니다.

가끔은 참 시시한 세상이기도 합니다.

미간도 자주 찌프려서 하천 ‘천’자 주름이 제대로 찍혀있습니다.

나는 아직도 넓어지고 따뜻해지려면 한참은 멀었습니다.

그래도 이 다관처럼 오래오래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 것은 욕심일가요?

이 다관처럼 오래오래 따뜻한 사람을 만나고 이 다관 속의 보이차처럼 숙성미가깊은 사람을 만나 내 몸에도 깊은 향이 배이고 그 향 또한 오래오래 내 몸에 머무르게 하고 싶습니다.

그러면 나 역시 향기로워지고 따뜻해지겠지요.

만남은 모든 상처를 치유할 수 있겠지요.

 

나 흘

오후입니다.

작열하는 초여름의 태양도 서산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해도 저기 서산마루에 붉게 걸리겠네요.

하루도 다 지나가버립니다.

만난 사람도 없이.

해놓은 일도 없이.

갑자기 누군가가 그리워집니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너무 오래동안 그대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대도 내 맘처럼 내가 그리운 걸가요.

그대가 그립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그립습니다.

그러나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은 싫습니다.

힘든 고역입니다.

마음과 령혼을 한곬으로 흐르게 하지 못합니다.

때로는 마구 헛갈리기도 합니다.

가능하면 한사람씩 만나고 싶습니다.

그냥 마주앉아서 침묵을 해도 좋습니다.

서로 눈빛만 보아도 통하는 그런 사람이라면 더 좋습니다.

적어도 우리는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이렇게 만나고 생의 일부분을 동행하고있는 것입니다.

만남의 희열과 환희는 살짝 가라앉히고 숨소리와 눈빛으로 우리만의 이 순간을깊게 느끼는 겁니다.

내면으로 흐르는 이 기쁨은 오래가도 잊혀지지가 않을 것입니다.

 

닷 새

새벽부터 비가 내립니다.

그대, 나의 상공 지나며 가슴 저릿하셨나봅니다.

지나간 자리 비로 내리며

그대, 나를 푹 적셔주네요.

이렇게 우리는 서로 스며들었습니다.

조용한 음악을 틀어놓습니다.

가사가 없는 순수한 선률입니다.

슬픔이 잔잔하게 깔려있는 선률이 가슴으로 흘러듭니다.

만남과 리별과 세월이 가득 고여있어 나를 흠뻑 적십니다.

비가 내리고 내가 젖고

오늘은 한결 고와진 하루입니다.

∼ ∼

∼ ∼

∼ ∼

 

무한 겁

언제나 그랬습니다.

하늘이 있고땅이 있고 그대가 있고 내가 있습니다.

출처:<장백산>2017 제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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