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changbaishan 블로그홈 | 로그인
《장백산》문학지

※ 댓글

  •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2017년도 -> 2017년 제5기

왕회우: 새끼새들이 노래 부른다(단편소설)
2019년 07월 18일 10시 14분  조회:533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새끼새들이 노래 부른다
왕회우 지음 · 김홍란 옮김
 
1.
 
내가 살고 있는 곤난해결주택단지(解困小区)의 이름은 동태가원(同泰家园)이며 성서(城西) 평안가 66번지에 위치해있다. 내가 살고 있는 주택단지의 이름과 거리와 골목 이름이 길해서인지 수년간 주택단지를 드나들 때마다 나는 이곳의 공기로부터 류달리 상서로운 냄새를 맡게 되는 것 같다. 일년 전, 나는 예상 밖에 새 이웃을 발견하게 되였으며 주택단지 안에 갈수록 짙게 풍기는 상서로운 분위기는 바로 지척에 있는 이 새 이웃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되였다.
 
그것은 겨울의 어느 날 오전이였다. 내가 다니는 택배(快递)회사가 잠시 체화(滞货)되는 바람에 출근을 가지 않고 있었다. 어쩌다 한가한 시간을 가진 나는 너무 심심하여 침실의 북향 창문에 매달려 바깥풍경을 구경하였다. 그러던 나는 부지불식간에 뭔가를 본 것 같았다. 맞은켠 아빠트의 굽인돌이에 있는 에어컨 도관 구멍에서 작은 머리 같은 게 살짝 보였다가는 신속히 사라지는 것을 어렴풋이 보았던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봤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뒤이어 나는 그 작은 머리가 또다시 불쑥 나오는 걸 제대로 포착했다. 분명히 어떤 살아있는 생명체가 그 에어컨 도관 구멍 안에서 기생하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저 어두운 구멍 안을 드나드는 건 대체 뭘가? 이는 어릴 적부터 강했던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쥐와 박쥐라는 두가지 동물이였다. 그러나 전자는 금시 나에게 부정당했다. 쥐일 리가 없다. 쥐는 굴을 저렇게 높은 곳에 만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박쥐일 확률이 더 높다. 도대체 뭘가? 호기심 많은 나는 줄곧 창문에 매달려 그 구멍어구를 지켜보았다. 반시간이 지나 피로한 두 눈이 시큼해날 무렵, 드디여 참새 한마리가 날아왔다. 참새는 우선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나무가지에 앉아 잠간 숨을 돌렸다. 그런 후 서두르지 않고 주위를 몇바퀴 돌더니 그제야 문득 그 구멍 안으로 신속히 들어갔다… 한참이 지나 참새 두마리가 선후로 짝을 지어서 그 곳에서 날아나왔다… 그제야 나는 완벽하게 수수께끼를 맞출 수 있었다. 놀랍게도 그 곳은 새둥지였던 것이다! 오, 워낙은 집주인에게 버림당한 에어컨 도관이 귀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쌍의 참새들의 따뜻한 ‘집’으로 변하였구나!
 
참새의 ‘집’이 마치 남의 집에 곁방살이하는 것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그러나 이 콘크리트 도시에서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가장 리상적인 ‘집’인 셈이다. 인류의 전기드릴에 의해 뚫린 구멍은 정제된 것이고 정밀하며 또한 그 어떤 절벽에 있는 천연동굴보다도 더 안전하고 믿음이 갔다. 견고한 아빠트가 무너지지 않는 한 새둥지는 비바람 속에서 영원히 허물어지지 않을 것이니까. 도시에서는 사처로 유렵(游猎)다니는 매와 새매가 거의 없고 자유롭게 타고 오르는 뱀과 전갈도 보기 드물며 날이 갈수록 살이 찌고 있는 집고양이와 강아지들이 미끄럽고 가파로운 그 높은 벽을 기어오를가봐 근심할 필요는 더구나 없다. 새둥지는 천적에서 멀리 벗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연재해도 멀리 피하였으며 장난꾸러기 애들로부터 뜻밖에 인재를 받을 일은 더구나 없다. 그러고 보면 참새의 가족은 정말 무탈해보였다. 그 당시 내가 속으로 부러워하며 되뇌였던 말이 생각난다. “련애중에 있는 인류는 모두 바보스럽고 련애중에 있는 참새는 참으로 총명하구나. 저 총명한 새들이 정말 제대로 보금자리를 찾아낸 걸 봐. 나도 달마다 주택 대부금을 천여원씩 내야 하는데 저 둘은 면비로 아빠트에 살고 있잖아.”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단지 내의 C동에서 산다. 애초에 가격을 고려하여 아빠트 가장 서쪽 벽을 끼고 있는 소형주택을 구매했던 것이다. 새둥지는 맞은편 D동의 남향집 굽인돌이 쪽에 위치하고 있다. 역시 3층이며 가장 변두리의 창문 웃쪽에 있다. 새둥지는 나의 침실에서 그닥 멀지 않으며 직선거리는 틀림없이 10메터를 초과하지 않는다. 새둥지는 서쪽 사랑채에 상당하며 오전에만 해빛을 볼 수 있다. 난방 시각에서 보면 새둥지는 가장 서쪽벽을 끼고 있는 나의 집보다 못하다.
 
온 겨울 동안 두마리의 참새는 둥지 안에 있는 시간이 적었으며 대부분의 시간 동안은 둥지 밖의 해빛 아래에서 서로 기대고 있었다. 매번 찬바람이 솔솔 부는 속에 전화선 우에 앉아있는 그들을 볼 때마다 마음속으로부터 동병상련의 친절감이 생기군 했다.
 
봄이 찾아오고 꽃들이 활짝 피자 참새들은 더는 둥지 옆의 전화선 우에만 앉아있지 않았으며 새둥지 주변의 광활한 천지에서 활약하였다. 그들은 주변 몇십메터의 범위 내에서 나풀나풀 춤을 추었고 특히는 아빠트단지 안 록화지대의 높고 낮은 나무가지에서 재롱 부리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정녕 열련중에 있는 두마리의 장년에 들어선 참새임에 틀림없다. 봄 내내 두마리의 참새는 줄곧 고도로 되는 흥분상태에 빠져있었으며 마치 끊임없이 사랑을 주고받는 듯했다… 그야말로 기세 드높고 장기간 지속된 사랑의 쇼였다.
 
나의 수많은 아침잠은 이 이웃의 지절대는 소리에 깨여나군 한다. 나는 필경 서른을 넘긴 로총각임에도 아직 결혼은 막연하고 출세는 가망이 없다. 생계를 위해 매일마다 어김없이 전동차를 몰고 도시의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녀야 하며 나귀마냥 계단을 오르내리며 우편물을 날라줘야 한다. 기분이 나쁠 때면 참새들이 일부러 나 앞에서 뭔가를 과시하는 것 같았으며 그럴 때면 부러움으로부터 질투와 미움으로 바뀌군 했다. 기분이 더 악화되면 나는 지어 어릴 때의 고무총이 떠오르기도 했다… 어릴 때야말로 고려하는 게 많지 않았었다. 저토록 방비를 안하는 참새는 진작 나의 묘준 목표가 되였을 것이다. 그 때의 나는 참새들이 추운지, 련애를 하는지, 집이 있는지 하는 것을 전혀 상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그것은 내 기분이 극도로 나쁠 때에 언뜻 스치는 생각이다. 실제로 나의 기분이 늘 그렇게 엉망인 건 아니다. 상대적으로 나는 선하고 착할 때가 더 많다. 나의 기분이 구름이 많이 끼였다가 조금이라도 개이는 기미가 보이면 나는 또다시 그들의 모습에서 평온한 냄새를 맡아낼 수가 있다. 내 마음 안의 불만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면 즐겁게 노는 두마리의 참새는 더구나 사랑스럽게 보이고 평범하고 단조롭게 들리던 그들의 지절대는 소리도 점점 귀맛 좋게 들린다…
 
초여름이 되자 두마리의 참새에게 자식이 생긴 것 같다. 자식들을 돌보느라 두마리 참새가 지절대던 소리는 분명 많이 줄어들었다. 대신 그 소리는 원래보다 훨씬 급촉해졌고 쉬여있었다. 그들은 훨씬 바빠진 것 같았으며 매일 끊임없이 둥지를 드나들었다.
 
자식들이 제때에 배를 불리도록 하기 위해 두마리의 참새는 분주하게 날아다녀야만 했다. 몇번이라도 더 날아다니기 위해 그들은 지어 줄곧 행적을 감추어오던 천성마저 막무가내로 포기해야 했다. 그들이 입에 곤충 같은 식물을 물고 총망히 날아와서는 주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할 새도 없이 바로 새둥지로 들어가는 걸 자주 볼 수 있다. 때로 귀 기울여 들어보면 새끼새들이 부모들을 보고는 음식물을 서로 먹겠다고 다투면서 기뻐 어쩔 줄 몰라 내는 짹짹거리는 소리가 은은히 들리는 듯하다. 구멍에서 새여나오는 것처럼 어렴풋하고 미약하게 들리던 그 날의 짹짹거리던 소리 역시 바로 저 둥근 구멍 안의 아득히 깊은 곳에서 새여나왔었다…
 
 
2.
 
침실 맞은켠의 아늑한 새둥지는 내 동년의 기억을 자주 떠올리게 한다. 나의 동년은 농촌에서 보냈다. 그 시절, 우리 고향의 언어환경에는 ‘참새(麻雀)’라는 학명이 아직 없었으며 나는 ‘집새(家雀儿)’라고만 알고 있었다. 도시에 와서 생활한 지 20여년이 되였지만 아버지와 년장자들은 지금도 습관적으로 ‘집새’라고 부른다.
 
‘집새’는 일년 사계절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기에 계절 따라 찾아오는 ‘산새(山雀儿, 侯鸟)’보다 훨씬 령리하다. ‘집새’가 비록 늘 눈 가까이에 있지만 아이들이 잡자고 하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도무지 잡지 못하면 어떤 애들은 애가 나서 그놈들을 ‘집도적’이라고 모질게 욕한다. ‘집새’는 비록 인류와 조석으로 함께 지내며 공존하지만 그러나 절대 인류의 사육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불행하게 잡힌 성년의 ‘집새’는 먹는 걸 거부하며 최후의 결과는 거의다 숨이 끊어져 죽는 것이다(어릴 때부터 인공적으로 키워진 ‘집새’는 례외). 그들의 이런 강직한 기개를 매우 숭경하다 보니 나는 ‘집새’에 대한 인상이 줄곧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집새’거나 ‘산새’거나를 막론하고 모두 농촌아이들의 야만적인 오락의 리상적인 상대로 충당되였었다. 세세대대를 이어 ‘집새’와 ‘산새’들은 줄곧 농촌아이들과 함께 했으며 ‘새’잡이 놀음은 거의 모든 농촌아이들의 성장과정에서 지울 수 없는 생명적 표기였다. 
 
봄이 되면 여러 품종의 ‘산새’들은 련애시기에 들어선다. ‘산새’들은 워낙부터 상대적으로 단순한데 련애를 할 때면 더욱 둔감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쉽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산새’는 아이들의 우선적인 사냥물이 되였다… ‘산새’들이 오면 아이들의 손에 들린 고무총과 허리에 차여있던 덫은 몽땅 사용되며 뒤이어 ‘유혹’을 핵심으로 하는 살륙유희가 한바탕 진행된다.
 
해마다 ‘곡우’가 지나면 농촌에는 각종 ‘산새’들이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종류가 많을 뿐만 아니라 수량도 방대하다. 낮에 들에서 싸운 아이들은 밤이면 꿈에 온통 날아다니는 새들로 벅적인다. ‘소만’ 전후에는 살륙유희의 최고봉을 이룬다. 어른들이 농사일로 바쁠 때면 아이들은 한편으로는 아버지의 쟁기를 뒤따르고 한편으로는 반공개된 덫을 놓으며 또 한편으로는 각양각색의 ‘산새’시신들의 전리품을 줏는다… 어쩌다 살아있는 새를 잡게 되면 아이들은 설이라도 쇨 것처럼 온 들판을 뛰여다니며 한참이나 새를 휘둘러댄다…
 
찌물쿠는 점심이 되면 아이들은 덫을 몽땅 집중시켜서는 희소하나 물이 적은 작은 물구덩이 주변에 촘촘히 포위시켜놓는다… 그런 방법으로 갈증이 나서 물을 마시러 오는 ‘산새’들을 잡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마냥 좋아하는 이런 날도 오래 가지 못한다. 봄과 여름 사이의 짧은 환절기는 금방 지나가고 ‘하지’가 되면 ‘산새’들은 더는 떼를 지어서 단체로 먹거리를 찾으러 다니지 않는다. 그들은 앞다투어 가정을 이루고 산림 속으로 흩어져가서 각자의 생활을 시작한다. 해마다 이 시기면 아이들은 불현듯 ‘산새’들의 그림자를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것 같았으며 그제서야 오랜 동반자인 ‘집새’를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제서야 또 습관적으로 자꾸 잊어버리는 한가지 사실을 깊이 인식하게 된다. 일년 사계절 사람들과 함께 하는 ‘집새’들이야말로 수시로 아이들을 동반하여 생사유희를 놀아줄 마지막 배역이라는 것을.
 
‘집새’를 잡는 말만 꺼내면 아이들은 당장에서 흥분해한다. 그들은 아침 일찍부터 밤 늦게까지 동분서주하고 온 정신을 집중하며 재미에 빠져 피곤한 줄을 모른다.
 
내가 도시의 소학교에 온 후부터는 농촌의 그런 광활한 전야가 없었다. 장난꾸러기 아이들은 쩍하면 학교 교수청사의 천장에 올라가 ‘집새’둥지를 들춘다. 때로 아이들은 새끼‘집새’와 새둥지를 함께 들고 내려와서 갖고 놀기도 한다. 아이들은 새끼‘집새’가 인공양육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걸 번연히 알면서도 기어이 며칠간 키우면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새끼‘집새’가 결국 엉망진창으로 죽고 나서야 아이들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그 다음의 살아있는 목표를 찾아간다… 그 때는 아이들이 ‘집새’의 느낌을 배려하는 걸 못 배웠고 ‘집새’들이 그들의 손안에서 살아주기만을 희망하면서 자기들 마음대로 소유하고 손에 들고 감상했었다. 만약 자신들의 ‘관심’과 ‘보살핌’이 없었다면 ‘집새’들은 잘 살았을 것이란 것에 대해 아이들은 종래로 상상해보지 못했다.
 
어느 한번 나는 학교의 천장에 올라가서 새끼‘집새’를 꺼냈다가 아직 털이 자라지 않은 걸 보고 너무 작아 재미 없을 것 같아서 다시 둥지에 넣어주었다. 십여일이 지나 다시 가보니 새끼‘집새’들은 몽땅 날아가고 없었다. 비록 한둥지의 ‘집새’를 몽땅 잃어버려 여러날 동안 짜증 나기도 했지만 그러나 그 속에서 중요한 지식을 얻기도 했다. 그로부터 나는 ‘집새’는 부화해서부터 날 수 있을 때까지 정확히 며칠이 걸리는지를 알았다 - 겨우 반달간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는 것이다.
 
때로 아이들은 지꿎은 장난을 치며 금방 잡은 새끼‘집새’를 한자 길이의 끈에 묶어서 땅에다 고정시키고는 주변에 덫을 한바퀴 놓아둔다. 그렇게 해서 새끼를 보러 온 ‘집새’의 엄마와 아빠를 잡는 것이다. 새끼‘집새’의 여린 부름소리에 평소에 총명하던 어른 ‘집새’들의 지능지수는 급격히 떨어진다. 굶주리고 있는 가련한 새끼 앞에서 어른 ‘집새’들 눈에는 덫 우에 물려있는 살찐 벌레만 보일 뿐이고 놀랍게도 거대한 음모와 치명적인 위험을 무시하게 된다…
 
지나간 일은 차마 다시 돌이키기 싫다. 지금 생각해보면 농촌에서든 도시에서든 아이들의 놀이방식은 참으로 너무나 잔혹했다. 가련한 새끼‘집새’들에게는 정말 과분할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일이였다. 그럼에도 아이들은 더없이 즐거워하면서 ‘집새’들의 어려움과 아픔을 전혀 헤아리지 못했다.
 
근년에 와서 도시에 사는 ‘집새’가 농촌보다 더 많아졌다. 원인은 ‘집새’들이 농촌에서 더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농약과 비료의 대량적인 사용이 한개 측면이고 어떤 촌민들은 지어 새들이 종자를 훔쳐먹는 걸 방지한다며 종자를 뿌릴 때 많은 종자들에 아예 독을 묻히기까지 한다. 장기간 먹을 것이 없게 되자 ‘집새’들은 부득불 농촌을 멀리 떠나 할 수 없이 몹시 붐비는 도시에 이사와서 살길을 찾게 된다. ‘집새’들은 도시에서 곤충과 곡류를 찾아먹기가 쉽지 않았으며 도시사람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주어먹는 경우가 더 많았다. 도시사람들과 똑같이 혼탁한 공기를 마시고 도시사람들과 똑같이 찝찝한 물을 마시였다…
 
‘집새’의 털은 워낙 갈색이였는데 나는 도시에서 가지각색의 ‘집새’를 자주 보게 된다. 검은 것도 있고 흰 것도 있고 빨간 것도 있으며 지어 노란색과 분홍색을 띤 것도 있었다... 공업오염이 갈수록 엄중해지는 도시는 한창 ‘집새’들을 알락달락하게 단장시키고 있었다.
 
인류의 무절제한 개발은 ‘집새’들의 생활공간을 점점 좁히고 있다. 그럼에도 ‘집새’들은 완강하게 살고 있다. 현재의 그들은 최선을 다해 워낙 적응되지 않던 도시생활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다. 아마도 ‘집새’들은 도시에서 생활하면서 괴로울 때가 더 많을 것이다…
 
‘집새’들은 정말 쉽지 않다. 앞으론 진짜 잘 대해줘야지.
 
밤이 깊었다. 바깥에 있는 이웃인 작은 새를 떠올리며 나는 텔레비죤의 소리를 더 낮추었다…
 
 
3.
 
북방도시의 주민들이 겨울을 좀더 무난히 나게 하고 동시에 그에 알맞게 도시의 모습을 미화하기 위해 내가 거주하고 있는 북방도시에서는 한창 대규모적인 주민아빠트 보온개조공사를 단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일명 난방공사(따뜻한 집 만들기 공사, 暖房子工程)라고 한다. 듣는 말에 의하면 공사를 끝낸 집은 겨울에 실내온도가 평균 3도 내지 5도가 올라간다고 한다. 난방이 줄곧 잘 안되던 아빠트단지의 주민들에게는 진정 하늘에서 호박이 넝쿨 채로 떨어지는 셈이다. 몇년을 기다려 이번엔 끝내 동태가원의 차례가 되였다. 오랜 세월 추위에 떨던 아빠트단지의 주민들은 다들 기뻐 어쩔 줄 몰라하며 서로 소식을 전하기에 바빴다. 
 
나도 물론 이 고대하는 사람들 속의 한 성원이며 그중에서도 문제해결이 절박히 수요되는 ‘심각한 재해를 입은 가구’이다. 몇년 전부터 나는 이런 날이 하루빨리 찾아오기를 간절하게 기다렸었다. 우리 집은 서쪽 벽에 기대여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아빠트 맨 서쪽벽을 차지한 영낙없는 ‘제일 서쪽집’이였다. 워낙 주택단지 내의 난방이 그닥 좋지 않은데다 우리 집 온도는 다른 집보다 더 낮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겨울만 되면 끊임없이 재채기를 하고 코물이 흐르는 건 말할 것 없고 그보다 더 짜증나는 건 서쪽벽 전체에 습기가 차는 것이다. 공간이 제한적이다 보니 나의 옷장과 책장은 몽땅 방의 서쪽면을 차지할 수 밖에 없다. 차거운 벽은 옷장과 책장의 뒤면에 항상 서리가 끼게 하였으며 습기가 심하다 보니 서쪽 벽에는 온통 보기 흉한 검은 반점들이 더덕더덕 생기였다. 우리 집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는 건 비현실적인 일이며 그런 것은 이미 하나의 지나친 욕망으로 진화되였다. 옷장 안의 옷이 눅눅해지든 말든 나는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내가 보물처럼 아끼는 그림책이 책장 안에서 훼손되지 않을가가 가장 근심된다. 나는 별다른 애호가 없으며 그림책 모으기가 유일한 애호이다. 그러다 보니 매년 겨울과 봄이면 나는 속상한 마음으로 책장 안을 여러차례 뒤적거리며 책을 정성스레 살펴보군 한다. 
 
1층에 사는 이웃인 장할아버지는 원적이 산동이며 늘 짙은 산동방언으로 말한다. 
 
“다들 그러는데 난방공사가 끝나면 서쪽집들이 습기 차고 추운 문제가 몽땅 해결된다우.”
 
장할아버지는 또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이상하잖수? 적잖은 아빠트단지들에서 원래는 잘 안 팔리던 제일 서쪽 집이 지금은 불티나게 팔린다우. 사람들 인상에 상하좌우의 중간에 끼여있는 집이 좋다던 게 지금은 되려 잘 안 팔린다우.”
 
나와 함께 일하는 어느 동료가 하던 말이 떠오른다. 중간 집은 때론 화장실 냄새가 역하고 음식 만들 때의 연기도 잘 안 빠져나가지… 그러나 제일 가에 있는 집은 보통 개방식 화장실과 통풍 잘되는 주방을 갖추고 있어.
 
한동안 나는 난방공사에 관련된 일에 특별히 신경이 쓰이였다. 내가 관찰한 데 의하면 도시의 난방공사는 흔히 봄에 시작한다. 로동자들은 자신을 도시의 반공중에 매달아놓고는 고도가 다르고 신구가 일치하지 않은 아빠트 벽체를 오르내리면서 원래 회색 투성이던 아빠트 벽체에 흰색의 옷을 튼실하게 입혀놓는다. 도시건설부문에서는 한지역, 한지역 기획하고 로동자들은 한단지, 한단지씩 시공한다. 그렇게 날마다, 달마다 쉬임없이 일하고 해를 거듭하며 일하는 그들은 해마다 늦은 가을, 얼기 전까지 바삐 보낸다. 비록 로동자들이 고생이 많고 하는 일이 매우 위험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들의 몸이 하루빨리 우리 단지 내의 아빠트 벽체에 걸리기를 기대하고 있다. 때로 나는 물건을 배달하는 틈을 타서 그중의 한 사람을 오래도록 주시하는데 그들이 공중에서 무거운 두 팔로 이마에 흐르는 시커먼 땀을 닦아내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때로는 그들이 높은 곳의 모래바람 속에서 야채말이 떡이거나 건두부 대파 말이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에때우는 걸 볼 수도 있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운 높은 곳에서 한번 내려오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며 너무나 많은 시간을 소요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이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는 어떻게 처리하는지 정말 궁금하다. 이 문제에 대해 나는 줄곧 선의적인 호기심을 갖고 있다.
 
 
4.
 
아버지가 사는 단지는 성동(城东)에 있으며 난방공사를 한달 전에 벌써 끝냈다. ‘아버지의 날’에 나는 시간 내여 아버지를 보러 갔다. 속으로는 가는 김에 시공 후의 모습이 어떤지도 보고 싶었다. 아빠트단지 전체의 모습이 완전히 새롭게 변하여 몰라볼 지경이였다. 원래 허술하기 짝이 없던 낡은 아빠트는 로동자들의 표구와 분칠을 거쳐 새 아빠트처럼 변했다. 각종 불법광고에다 벗겨진 벽, 인위적인 상처 등 눈 뜨고 볼 수 없던 모든 흉한 것들이 몽땅 다 없어졌다. 정말 너무 멋졌다!
 
아버지가 그러는데 멀리 출장 갔다가 돌아온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변화가 너무 커서 자기 집을 알아보지 못하기도 한단다.
 
풍습이 있어서 줄곧 추운 걸 두려워하시던 아버지는 기뻐서 나에게 난방공사가 가져다줄 여러가지 좋은 점을 말씀해주셨다. 아버지는 신문 한장을 찾아들고 말씀했다. 여기 신문에서도 소개했잖니. 공사가 끝나면 집이 따뜻해질 뿐만 아니라 소음도 막고 지어 방화작용도 할 수 있다니 사전에 전혀 생각 못한 것들이 아니구 뭐냐.
 
아버지는 난방공사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말씀하시더니 봄날에 본 또 다른 얘기를 하셨다. 아버지는 자신의 마음을 불쾌하게 하는 단 한가지에 대해 말씀했다.
 
“이 공사가 좋긴 하지. 사람들이 따뜻하게 살 수 있으니까. 근데 집새들이 고생이란다. 로동자들이 시공할 때면 처마 밑의 새둥지를 허물 수 밖에 없어. 집새들이 언제 이런 상황을 당해봤겠니? 마구 날며 듣기 거북한 소리로 막 울어대지 않구 뭐겠냐. 어느 날엔가는 낮잠도 안 자고 온 하루 울어대더라. 이젠 한달 넘게 지났건만 아직도 어떤 새들은 돌아갈 집이 없어서 마구 날아다닌단다… 보고 있자니 너무 불쌍해서 참.”
 
처음에 나는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그냥 례의적으로 아버지를 따라 몇번 탄식했을 뿐이다. 그러나 한참 지나 나는 별안간 리유 없이 우려되고 근심스러워졌다. 그렇지, 우리 집 맞은켠에 있는 새둥지는 그 때 가서 어떻게 되는 거지? 역시 철거해야 하는 건가? 나는 마음이 갈수록 무거워졌다… 이번 기회에 새둥지도 우리랑 함께 따뜻해지겠다고 생각했는데 철거라니? 가장 안전하던 곳이 갑자기 가장 위험한 곳으로 변한단 말인가?
 
우리 단지의 난방공사는 그 시간배치가 참으로 리상적이지 못했다. 이른봄에 시공을 시작했다면 새끼참새들이 아직 부화되지 않아서 참새 부부가 알을 포기한 채 날아가버리면 그만일 거고 만약 늦은 가을에 시공한다면 새끼 참새들은 이미 날아다닐 수 있겠는데 이건 빠르지도 늦지도 않은 한여름에 배치되다니 이 시점의 새끼참새는 한창 자라날 때다… 참새는 다른 포유동물과 달라서 위험에 맞닥뜨리면 새끼들을 마음대로 옮겨갈 수 있는 능력이 없다.
 
근심은 나로 하여금 다시 동년의 기억을 훑게 했다. 성인 참새가 언제 둥지를 틀고 언제 알을 낳고 언제 알을 품던가? 새끼참새는 며칠이면 부화되고 며칠이면 털이 무성해지고 며칠이면 날 수 있던가… 나는 조금도 빈틈없이 계산하고 또 계산해보았다. 그 때 가서 새끼 참새들이 못 날면 어쩌지? 그렇다고 난방공사를 중도에 멈출 수도 없는 일이잖아.
 
애초에 나는 총명한 참새들이 버려진 에어컨 도관을 리용한 것에 갈채를 보냈었고 사람들이 안 쓰는 에어컨 도관을 버리지 않은 것에 갈채를 보냈었다. 그러나 나는 지금 내심으로부터 참새를 원망하고 인류를 질책하기 시작했다. 참새야, 참새야, 너희들이 너무 소홀했구나. 갈수록 미덥지 않은 인류를 어쩌면 그리도 쉽게 믿어버리냐? 인류여, 인류여, 너희들은 너무나 책임감이 없구나. 왜 진작 페기한 에어컨 도관 구멍을 틀어막지 않았지? 더 질 높은 삶을 살기 위해 에어컨을 설치하는 건 크게 비난할 바 못 되지만 그러나 사용하지 않을 때면 도관 구멍을 막아버렸어야지! 그랬다면 참새는 여기에 집을 잡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근심스러운 결과에 닥치지도 않았을 게 아닌가…
 
요즘 나는 내내 이런 근심과 우려 속에 나날을 보내고 있다. 매일 퇴근하면 될수록 빨리 집에 돌아왔고 모든 교제활동을 거절한 채 시시각각 난방공사의 진전을 주목했다. 마치 공사와 밀접한 상관이 있는 공사감독일군이라도 되는 것처럼.
 
혹시 그 때 가서 로동자들이 묘한 방법을 생각해낼 수도 있겠지? 로동자들도 그 작은 생명을 무시하진 않을 거야? 여러 날 동안 나는 줄곧 이런 생각만 하느라 한밤중이 지난 시간에야 가까스로 잠들 수 있었다. 
 
 
5.
 
워낙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C동의 시공이 끝나면 일심정력으로 일하러 다닐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맞은켠 D동을 언제 시공하고 또 어떻게 시공하는지 하는 것은 지금 내가 무엇보다 면밀하게 주시하는 초점문제로 되였다. 
 
C동 주민아빠트 시공이 끝났으니 정상 대로 하면 며칠 안 지나 곧 D동 차례가 되는 것이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나는 가능하게 시공을 시작할 것이란 근심에 일하면서도 집중이 잘 안되였다.
 
그 후의 며칠간 나는 줄곧 이런 상태에 처해있었다. 나는 내내 마음이 조급해났고 늦게 출근하고 일찍 퇴근했다. 택배회사의 일이 조금만 덜 긴장해도 나는 틈을 타서 집으로 달려오군 했다. 내가 현장에 없는 시간에 D동의 벽에 난 구멍 안의 새둥지가 로동자들에 의해 막혀버릴가봐 겁났던 것이다.
 
내 손에 있는 우편물 몇개를 제때에 배달하지 못한 관계로 고객들이 회사 총부에 신고전화를 했다. 항상 온화하던 주관경리 ‘안경쟁이’마저 나한테 화를 내며 ‘계속 할 생각이냐?’고 련거퍼 세번이나 물었다. 후날 총화대회에서도 ‘안경쟁이’는 은근히 헐뜯는 어투로 나를 몇마디 찔렀다.
 
금요일이면 택배회사는 일이 많다. 나는 다시는 차실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허둥대며 모든 우편물을 몽땅 배달하고 나니 다섯시가 넘었으며 그제야 나는 급급히 집으로 향했다. 길에는 차량이 가장 붐빌 때라 길이 심하게 막혔다. 집에 도착하니 이미 해질 녘이 되였으며 로동자들은 아니나 다를가 D동 주민아빠트에서 시공하고 있었다. 로동자들은 한창 아래서부터 우로 올라가며 벽에다 스치로폼(泡沫砖)을 붙이고 있었으며 내가 대문에 들어섰을 때는 로동자들이 2층까지 끝낸 상태였다.
 
저녁밥을 지어야 하건만 나의 눈은 그냥 유리 너머 맞은켠 D동을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로동자들이 그 구멍 안의 새둥지와 새끼참새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두고 보는 중이다. 나는 급해서 안달이 난 참새 부모들을 곧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즙액이 포만한 벌레를 입에 문 채 불안한 마음으로 로동자들의 머리 우에서 뱅뱅 돌고 있었다…
 
동태가원은 록화가 잘되여있었다. 주민아빠트 아래에는 라이라크나무가 수북이 자라고 있었고 가지 끝에서는 한창 분홍색 꽃이 활짝 피여있었다. 참새 부모들은 너무 지치면 라이라크나무의 가장 높은 가지 끝에 앉아 쉬였다. 그러나 잠간 숨을 돌리고는 곧바로 가장 마음이 죄여드는 그 곳으로 날아간다…
 
반공중에 매달려있는 로동자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구멍 속의 새둥지를 처리할 기미가 안 보였으며 숙련된 솜씨로 계속하여 한장 또 한장의 스치로폼을 신속히 벽에 붙이였다… 로동자들의 빨간색 안전모가 이미 그 구멍어구에 닿았고 손에 들린 스치로폼으로 마침 그 곳을 맞춰보고 있었으며 아직 점착제를 안 붙였을 뿐이다… 그 시각 참새 부모들은 자지러지듯 울어댔다. 그들은 최대의 노력을 다하고 가장 큰 모험도 무릅쓰며 끊임없이 굴어구로 돌격했다. 굴어구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1초 밖에 안되더라도 그들에게는 너무나 소중할 것 같았다…
 
황혼빛 속에 멀리서 바라보니 그것은 두마리의 참새가 무척 초조해서 비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두개의 돌덩이가 컴컴한 굴어구를 끊임없이 치고 있다고 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나는 일각도 지체할 수 없는 마음으로 창문을 열고 맞은켠의 로동자들을 향해 고함질렀다.
 
“저기요! 방법 좀 대보세요. 그 구멍을 막아버리지 말라구요! 안 보여요? 그건 새둥지라구요! 그 안에 새끼새가 몇마리나 있어요!”
 
하지만 로동자들은 내가 뭐라고 고함지르는지 못 알아들은 것 같다. 그냥 굳은 표정으로 소리나는 내 쪽을 얼핏 보았을 뿐 하던 일을 멈추지 않았다.
 
내가 막 아래층으로 내려가 로동자들을 제지하려는데 로동자들이 갑자기 일을 멈추었다. 
 
어떤 로동자가 먼곳에서 큰소리로 하는 말이 들렸다.
 
“비가 곧 쏟아질 것 같으니 일 끝내고 가서 술이나 마시기오…”
 
술의 력량이 나의 고함소리보다 훨씬 큰가 보다. 나는 아직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창턱에 기대여 거친 숨을 몰아쉬였다.
 
로동자들이 내려오기 바쁘게 두마리의 참새는 성급히 둥지 안으로 들어갔다. 날은 이미 어두워졌고 두마리의 참새 부모들이 이 밤이 마지막 밤이 되리란 걸 안다고 한들 그들에겐 이미 새끼새들에게 배불리 먹여 마지막 길을 보내줄 능력이 없었다. 참새는 야맹증이 있어서 어두워진 날씨는 그들이 나가서 먹이를 찾을 수 없게 했다. 온종일 별로 음식을 먹지 못한 새끼들은 영낙없이 썰썰해나는 배를 안고 야릇한 이 밤을 견뎌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것이 부모님과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이 될 것이란 걸 모르고 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참새의 부모들은 끝내 둥지  안의 자식들과 만났다. 총명한 참새의 부모들도 이 밤이 자식들과 함께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밤이란 걸 알가? 그들은 한없이 조용하게 있었으며 더는 그 어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낮 동안 내내 불안정하던 새둥지는 어둠 속에서 드디여 안정을 찾았다. 시커먼 둥근 구멍은 마치 부들부들 떨면서 이제 닥쳐올 려명을 피하려는 것 같다…
 
천둥소리가 한바탕 울고 지나가더니 곧 장대같은 비가 쏟아졌다. 하늘은 갑자기 훨씬 캄캄해졌고 나는 번개불을 빌어 비 속에서 흠뻑 젖은 채 살길을 갈구하고 있는 동굴어구를 어렴풋이 보았다.
 
인류의 행복한 거주공사가 같은 처마 아래에 사는 참새들에게는 영원히 회복되지 않는 재난을 가져다주게 된다는 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 참새 일가족에게는 금년의 한여름에 들어서서부터 평안가 66번지의 동태가원이 더는 평화롭지 않았다.
 
나는 온밤 실면하면서 동년시대의 아이들이 새를 박해하던 여러가지 정경을 떠올렸고 한동안 새에 대한 동정과 참회 속에 잠기였다…
 
 
6.
 
이튿날은 토요일이였고 나는 오후근무였다. 온밤 눈을 못 붙인 나는 아침잠도 자고 싶지 않아 일찌감치 일어나 창문에 매달려서 밖을 내다보았다… 그런데 온 단지 안이 쥐죽은듯 고요했다. 출근을 안해도 되여서 9시가 넘도록 기다렸지만 일하러 나오는 로동자들이 안 보였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나는 웃쪽으로 눈을 주어 당장 흰색 스치로폼(泡沫砖)에 막혀버릴 것 같은 굴어구와 그 스치로폼 우를 드나드는 두마리의 참새를 곧바로 발견했다. 그 참새들도 갑자기 공사가 정지된 것에 이상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냥 비몽사몽 같아 갈팡질팡하면서 끊임없이 날아들어갔다가 날아나오면서 본능적이고 기계적으로 시일이 얼마 남지 않은 자식들을 위해 최후의 헌신을 다하는 것이다…
 
후에야 나는 부근의 다른 아빠트단지의 로동자들도 몽땅 일을 멈추고 단체로 말없이 앉아있는 걸 발견했다. 회의를 하는 것 같았으나 또 사회를 하거나 회의를 모집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 보기엔 누군가 또 로동자들의 로임을 제때에 지불하지 않은 게 틀림없다. 신문에서 봤는데 많은 로동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로임을 요구한다고 한다.
 
두시간 후에야 나는 장할아버지한테서 사실의 진상을 알게 되였다. 워낙은 어제 갑자기 내린 뢰우에 다른 한 단지에서 일하던 농민공 두명이 의외로 작업대에서 미끄러져 떨어지며 부상 1명에 사망 1명의 가슴 아픈 사고가 생겼다고 한다. 내 심정도 따라서 무거워졌다. 어른이 계시고 아이가 딸렸을 텐데 그들의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도시사람들이 겨울에 좀더 따뜻하게 살도록 하기 위해 두 농민공은 소중한 몸과 목숨을 바쳤다. 멀리 고향에 있는 그들의 부모님과 처자와 자식들은 온기를 얻지도 못한 채 이제 한가족이 의지하고 살던 기둥을 잃어버린 것이다.
 
가족들은 마침내 각자의 먼 고향으로부터 달려왔다. 불현듯 혈육을 잃은 가족들은 지극히 비통해하며 구곡간장이 녹을 정도로 울고불고했다. 하지만 아무리 울고불고한들 죽은 자가 살아 돌아올 수는 없는 것이고 산 자는 또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살아있는 사람이 다른 산 사람을 향해 배상금을 좀더 많이 얻어내거나 나중엔 사망자 가족의 이름으로 친지도 없는 사람한테서 될수록 많은 돈을 받아내는 수 밖에 없다.
 
그 때로부터 우리 아빠트단지 내의 공기 속에 자꾸 불길한 징조가 감도는 듯했다. 며칠이 지나갔지만 여전히 공사를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한창 진행중이던 공사는 줄곧 그렇게 방치되여있었다… 장할아버지의 말씀에 의하면 로동자들은 단체로 사망자와 부상자의 가족을 도와 청부업자한테 법으로 따지며 배상금을 독촉하고 있다고 한다.
 
장할아버지는 또 난방공사가 비록 정부에서 하는 일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실행은 청부업자가 책임진다고 한다. 로동자들도 모두 청부업자가 직접 모집한 것이니 사상자가 생기면 청부업자가 가장 골치 아픈 것이다. 이건 거액의 배상금문제와 관련되며 잘못하면 일년을 헛수고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여기엔 로동자가 반칙작업을 했는지, 개인상해보험에 들었는지, 도시호구가 맞는지 등등 많은 복잡한 문제가 관련되며 그것들을 일일이 확인하고 담판을 해야 했다…
 
나는 은근히 난방공사가 이대로 오래 정체되여 굴 속 새둥지 안의 새끼새들이 날아나올 때까지 지연되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난방공사는 수시로 시공을 다시 시작할 수 있으며 시공복구시간을 잠시 확정하지 못할 뿐이다. 며칠 안 지나서 평안가 66번지 동태가원의 난방공사는 틀림없이 계속 진행될 것이다.
 
로동자들의 고공작업은 확실히 위험하다. 제발 다시는 사고가 안 생겼으면 좋겠고 안전하고 순조롭게 시공하기를 기대한다. 로동자들도 안전하고 참새 가족도 안전하기를… 나는 속으로 묵묵히 기도했다.
 
나는 매일 밖에 나가 일해야 하기 때문에 시시각각으로 집에서 지켜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후에 나는 아래층의 장할아버지를 찾아갔다. 나의 근심거리를 그이에게 말씀해드리면서 나를 도와 시시각각 새둥지를 지켜보다가 필요할 땐 꼭 나한테 전화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장할아버지는 내 말귀를 잘못 알아듣는 것 같다. 그이는 자꾸 같은 말을 반복하며 나한테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우? 대체 무슨 말이우?”
 
나중에야 장할아버지는 내 체면을 많이 봐준다는듯 요구를 들어주겠다며 내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그이는 무뚝뚝하게 한마디 보충했다. 
 
“쓸모 없당께. 내가 봐선 쓸모가 없어.”
 
 
7.
 
이틀 후, 택배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장할아버지한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장할아버지는 급할수록 산동 방언이 더 짙었다. 그이가 전화기에서 큰소리로 말했다.
 
“말해도 쓸모 없는지라. 로동자들이 당장 시공 시작할 모양인 게 얼씨덩 오게.”
 
나는 그릇 안의 음식을 다 먹을 념도 못한 채 가방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차를 굴려서 평안가 66번지를 향해 질주했다…
 
내가 집에 당도했을 때 로동자들은 이미 일을 시작했다. 역시 그 몇사람이였는데 정해진 순서대로 그 날 중단했던 나머지 일을 이어서 하고 있었다… 그들은 일하는 게 질서정연했고 조금도 빈틈이 없었다. 검고 여윈 로동자가 그 날 재여놓은 스치로폼에 점토를 발라 그 굴어구에 붙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한편 두마리의 참새 부모는 한창 그들의 머리 우에서 맴돌고 있었다. 두마리의 참새는 며칠 전 황혼이 깃들던 그 때보다 더 절박하고 더 처참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검고 여윈 로동자의 기계적인 동작은 물론 무서웠으며 그의 굳어있는 표정은 더더욱 가슴을 서늘하게 했다. 그들은 마치 정상적인 정감이 없는듯 줄곧 머리 우에서 감돌며 비명을 지르는 참새들을 보고도 못 본 체, 듣고도 못 들은 체하고 있었다. 설마 생존의 압력이 너무 커서 그들로 하여금 원래는 마땅히 돌봐야 할 생활의 세부를 돌볼 겨를이 없게 만들었단 말인가? 
 
나는 쏜살같이 앞으로 달려가며 고함질렀다.
 
“새가 우는 소리 안 들려요? 제발 빌어요. 수고스럽지만 스치로폼에 구멍 내서 새들에게 출구 좀 만들어주면 안되겠어요?”
 
내가 아무리 말해도 검고 여윈 로동자는 아무런 반응이 없다. 이윽하여 그 검고 여윈 로동자는 무던한 동북말투로 나를 보고 말했다.
 
“형님, 안됩니다. 어떻게 가능하죠? 도시의 아빠트 벽들에는 새둥지가 가득한데 그걸 다 남기면 벽이 온통 채가 되지 뭡니까?”
 
“이번만 파격적으로 하면 어때요? 딱 이것만요?”
 
나는 계속 간절히 부탁했다.
 
“형님, 정말 안됩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겠어요?”
 
검고 여윈 로동자는 또다시 그 스치로폼을 들어올렸다.
 
급해난 나는 말이 거칠어졌다.
 
“xx, 왜 안돼?”
 
검고 여윈 로동자는 여전히 무던한 말투로 말했다.
 
“형님, 안된다면 안되는 겁니다.”
 
나는 끝내 억제하지 못하고 큰소리로 고함질렀다.
 
“제기랄, 넌 량심도 없냐? 정 안되면 그 안에 있는 새끼새들은 꺼내줄 수 있겠지?”
 
검고 여윈 로동자는 나와 맞대고 고함지르지 않고 여전히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말했다.
 
“형님도 살려낼 수 없어요. 참새는 성격이 아주 셉니다. 우린 농촌에서 와서 참새에 대해 잘 알죠.”
 
“그럼 그렇게 숨 막혀 죽게 하겠다는 거야?”
 
나는 올라오는 화를 겨우 참아냈다. 
 
“형님, 그래요. 저기… 이게 가장 좋은 결과입니다. 솔직히 저희들도 새끼새들이 숨 막혀 죽는 게 싫어요. 자세하게 보지도 못한다구요. 실제로 도무지 도울 방법이 없잖아요. 두드려볼 수 밖에 없어요. 날 수 있는 것들은 될수록 날아가게 하죠.”
 
“허튼소리 하고 있네! 그런다고 무슨 소용 있지? 새끼새들이 금방 털이 나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날 수 있냐고!”
 
나는 울부짖었다.
 
검고 여윈 로동자는 말대꾸를 하지 않고 대신 또 다른 도리를 설명했다.
 
“형님, 그리고 벽에다 구멍을 내면 공사검수에 통과되지 못합니다. 그러면 로임을 못 받게 되고 우린 헛수고만 하게 되죠. 저희들은 식구들을 먹여살려야 합니다 형님.”
 
“딱 이것 하나만 구멍 남기는 걸로 하자구. 내가 대신 로임 주면 될 거 아닌가?”
 
나는 화가 치밀어오른 채 최후의 노력을 하고 있었다.
 
“형님, 그래도 안돼요. 진짜 소용 없다구요. 설령 파격적으로 이 구멍을 안 막는다고 해도 천성적으로 의심이 많은 참새는 다시는 새둥지로 경솔하게 들어가지 않을 겁니다. 형님, 우린 이렇게 밖에 할 수 없어요.”
 
그렇게 말하며 검고 여윈 로동자는 손에 들고 있던 스치로폼을 굴어구에 붙이고 꾹꾹 눌렀다.
 
나의 심장이 세차게 떨렸다. 총망히 돌아와서 그냥 구경군 노릇 밖에 못할 줄은 생각 밖이다. 그것도 눈을 펀히 뜨고 그 거대한 흰색의 스치로폼이 굴어구를 든든하게 덮어버리는 걸 보고만 있어야 하다니.
 
그것은 먹이를 달라고 짹짹거리며 울고 있는 새끼새가 몇마리 그 안에 있는 굴어구였다! 그 굴 안의 몇마리 새끼새의 최후는 과연 어떤 모습일가? 새끼새들은 틀림없이 예전처럼 부모들이 먹이를 가져다주기를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더는 기다릴 수 없으니까. 한가닥의 빛이나 한줌의 신선한 공기마저 없어져 새끼새들은 그대로 암흑 속에서 천천히 죽어갈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나는 심장이 칼로 에이는듯 아팠다.
 
조금 지나니 벽 전체가 온통 흰색으로 변했다. 나는 여태껏 벽 전체가 흰 것이 이토록 공포스러운지 몰랐다! 두마리의 참새 부모는 어찌할 바를 몰라 흰색의 스치로폼으로 뒤덮인 아빠트 벽체에서 미친듯이 오르락내리락 날며 고막을 찢을듯 끊임없이 울부짖었다… 마치도 악독한 이 세상을 저주하는 것 같았다. 부모새들의 극도에 달한 비명소리는 동병상련에 처한 다른 참새들을 불러왔으며 갈수록 많은 참새들이 이 비명의 대오에 합류했다… 나는 그들이 틀림없이 이 백색의 공포를 눈에다 꼭 기록했을 것이라 믿는다.
 
 
8.
 
그 후의 며칠간, 그 암흑 속의 새끼새 몇마리가 그냥 내 꿈속에서 맴돌며 나로 하여금 텔레비죤 뉴스에서 본 문천대지진 때 영수중학교의 페허 속에 갇힌 아이들을 떠올리게 했다… 그 당시 나는 내내 아이들 생명의 마지막 순간을 차마 상세하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때와 마찬가지로 새끼새들이 이제 어떻게 그 어린 생명을 끝내게 될지 차마 찬찬히 떠올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도시의 모든 에어컨 도관을 혐오하기 시작했다. 닭창자처럼 각종 모양을 한 채 도시의 아빠트 벽체에 로출되여있는 에어컨 도관을 보면 도시인들의 일관적인 구차하고 지어 허위적인 면을 떠올리게 된다.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게 어디 이것 하나 뿐이랴. 다른 령역에선 이보다 훨씬 많다. 나는 특히 도시의 아빠트들에서 페기하고 사용하지 않는 에어컨 도관 구멍을 보기 싫다. 불쑥 나타난 그런 블랙홀을 볼 때마다 나는 감정을 스스로 억제할 수 없이 모골이 송연해지고 소름이 끼친다…
 
반달이 지나갔다. 아침마다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고 더는 나의 아침잠을 깨우는 새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대신 나는 사는 게 재미가 적어졌다. 창 밖의 나무가지에는 더는 재잘거리는 새가 없었고 라이라크나무도 별 의미가 없어진 것 같았으며 매일매일이 목적없이 적막하고 텅 빈 채 지루하기만 했다…
 
3개월이 지나갔다. 나는 줄곧 그 참새 부모들을 보지 못했다. 그들이 새로 몸 담을 곳을 찾은 것인가? 아니면 화김에 죽어버린  것인가? 나는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었다.
 
겨울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아빠트단지 전체가 말처럼 따뜻해졌다. 우리 집도 전보다 많이 따뜻하다. 나는 더는 재채기를 하지 않았고 더는 코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눈처럼 하얗던 서쪽벽에도 더는 서리가 끼지 않았고 습기가 차지 않았으며 반점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또 자신의 회사를 차렸고 사랑스런 녀자친구도 생겼다. 그럼에도 나는 할 일 없을 때면 여전히 창문을 통해 맞은켠 아빠트의 굽인돌이를 자주 바라보군 한다. 나는 마치 갈수록 맞은켠 아빠트단지 주민들의 진실한 존재에 대해 희미해지는 것 같았고 자꾸만 동태가원 C동의 맞은켠은 D동이 아니라 새끼새들의 가냘픈 묘지 같아 보였다. 
 
또다시 봄이 찾아왔고 창문 밖에서는 어쩌다 멀리서부터 새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여전히 습관적으로 창문을 통해 D동 굽인돌이 쪽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그것은 정녕 평평하고 튼튼한 아주 큰 벽이였다. 세월이 오래 지남에 따라 나는 마치 환청에 빠지는 모병이 생긴 것 같다. 특히 깊은 밤, 사람들이 모두 잠든 고요한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새끼새들이 가느다란 음성으로 “짹짹짹짹” 하고 부르는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출처:<장백산>2017 제5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6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6 <장백산>2017.5 루계215 2019-07-18 1 748
5 왕회우: 새끼새들이 노래 부른다(단편소설) 2019-07-18 0 533
4 장선자: 붉은 달(단편소설) 2019-07-18 0 768
3 김홍월: 탐닉으로의 유혹, 내적 희구로의 전환(수필평) 2019-07-18 0 403
2 리화: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수필, 외2편) 2019-07-18 0 527
1 김혁: 스마트폰 전성시대의 문학(권두언) 2019-07-18 0 40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