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zoglo.net/blog/changbaishan 블로그홈 | 로그인
《장백산》문학지

※ 댓글

  • 등록된 코멘트가 없습니다
<< 11월 2024 >>
     12
3456789
10111213141516
17181920212223
24252627282930

방문자

조글로카테고리 :

나의카테고리 : 2017년도 -> 2017년 제5기

김홍월: 탐닉으로의 유혹, 내적 희구로의 전환(수필평)
2019년 07월 18일 10시 10분  조회:403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탐닉으로의 유혹, 내적 희구로의 전환

김홍월

 

감상에 대한 탐닉은 무엇인가? 세련된 문장을 제공함으로써 문학은우리를 감상에 빠지게 하며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수 있다. 그러나반대로 문학이 우리를 감상의 탐닉자로 만듬으로써 우리를 감상에 이르게 하고 문장을 세련되고 아름답게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그에 대한 실마리를 리화의 세편의 수필이 제공한다.

너무 달콤해서 혀가 아릴 만큼 강렬한 감상적이며 화려한 문장들이 세편의 수필을 빼곡이 채우고 있다. 이러한문장들은 단순한 강렬함에 그치지 않고 리화는 이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탐닉에 빠지도록 유혹을 시도한다. 정확히말하면 리화는 문체의 리면적 공간 속에서 치밀한 계획을 통해 우리를 탐닉자로 유혹한다.

그렇다면 우리를 탐닉자로 만드는 그 치밀한 계획은 무엇인가? 리화는 넌지시 어떤 대상에 대한 욕망을 제시한 후 그 대상의 쟁취에 대한 불가능성을 보여주고 자연스럽게 대상이아닌 대상을 욕망하는 내면과 그 욕망 자체의 아름다움, 완결성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 즉 리화는 표면적이고 외적인 희구에서 눈을 돌려 표면적 욕망의근원에 있는 내적인 희구를 품어가는 과정을 작품 리면에 배치해둔 것이다.

리화의 치밀한 계획은 세편의 수필에 거쳐 동일하게 나타난다. 환희, 련민, 그리움으로 변주되는 희구에 대한 서사가 세 수필의 리면을 관통하고있다. 정확히말하면 희구를해소하는 과정에 대한 서사가 세 작품의 리면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이 희구를 해소하는 과정은 서사적 단계를밟아가며 차근차근 치밀하게 우리의 관심을 외적 희구에서 내적 희구로 이끈다.

 

그리움의 별빛, 환희의 희구

첫 수필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는 중2 때 선생님이 수정해준 화자의 작문<별빛 흐르는 저 언덕>이 지면에 발표된 후 선생님이 돌아갔다는 내용으로부터 시작된다. 선생님의 죽음은 화자를 스스로 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독립시켜주었다고 볼 수 있다.이후 사십대를 바라보는 화자는 같은 제목으로 글을 다시 쓰게 된다. 화자는 유년기부터 별을 무작정좋아하였고 별에 애착을 가졌으며 그 애착을 넘어서 집착까지 하였다. 성인이 되고서도 별에 대한 사랑은 여전히변함이 없으며 한낮의 태양보다는 밤하늘의 달이나 별을 더 좋아한다고 한다. 화자는 자신이 ‘녀아대장부女汉子/womenman’가 아니라 아마도 ‘여린 녀자’인것 같다고 한다. 미래를 향해가는 것이 남성성, 태양이고 과거를 향해가는 것이 녀성성, 달, 별이라고 상징할 수 있다면 화자는 사라져간 것들, 죽어간 것들에 더 예민한 녀성성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화자는 오리온자리와 텔레파시가 통한 것 같아서 <오리온자리>라는 소설을 쓴 적도 있다고 한다. 오리온자리가 ‘산에 자주 다니셨던 그분’의 별이라는 내용이 담겨있다. ‘그 분’이 누구임이 수필 속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화자의 선생님일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죽어서 사라져간 것들이 ‘그 분’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죽어서 별이 된다고 여기는 화자의 태도를 볼 때 별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죽어가고 사라져간 모든 것에 대한그리움일 수 있다.

성인이 된 화자는 그토록 별을 좋아하는 리유를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별들 사이에 막연한 이음이 있는것 같다는 수수께끼를 낸다. 막연한 이음은 ‘사라져버려 그리운 것’에 대한 상징으로 놓인 별과 화자 사이에있는 이끌림이다. 화자가 별을 그리운 대상의 상징으로 여기는 대목은 곳곳에서 발견된다.

 

술을 마신 날이면 밤하늘의 뭇별들은 더반짝거렸고 좀 어두운 별들을 향해 “어험! 어서 밝게 나오지 못할가!”하면서 주정도 부렸다. 내가 어려서부터 좋아한 너희들이기에 수십년이 지나면 내 머리에 내려달라고 부탁까지했다. 여름 밤하늘의 은하수가 통채로 내려와 내 머리를 은빛폭포처럼 반짝이게 해달라고.

 

화자는 별과의 거리가 너무 멀어 별들을 당겨서 한눈으로 보려고도 한다.좋은 장비를 갖춘 카메라를 가지고 산에서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별들을 담아보려고도 한다. 그러나별에 다가가고 싶어하는 화자의 욕망은 번번이 좌절된다. 그러다 결국 포기한다. 포기하니화자는 외려 그 날의 밤하늘은 유난히 맑게 보였고 쏟아지는 별들의 정겨운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환희를 느꼈다. 별이담겨있는 사진이라는 외적 희구가 아니라 화자 마음속의 내적 희구로 점점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화자가 자신의욕망 자체의 파도를 타고 있는 것이다.

별이라는 외적 희구의 포기는 내적 희구의 발견을 통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친구들과 별빛 아래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수다를 떨다 화자는 친구들을 모두 별로 칭한다.친구들을 별로 칭하는 대목은 멀리에 있는 것이 아닌 곁에 있는 것의 소중함에 대한 화자의 발견을 의미한다.원래는 잃어버린 것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고 그리웠는데 이제는 옆에 있는 대상에 대해 소중함과 그리움을 느낄 줄 알게 된다. 꼭 잃어버리지 않아도 그리운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 것은 그리움이 내면에 내재되여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별로 보이는 화자는 자기 내면의 ‘별을 바라볼 수 있는 눈’, ‘소중함을느낄 수 있는 마음’을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화자는 자신의 내면에 별이 살아있음을 발견한다. 내면에별이 있기에 별에 다가가고저 했던 욕망이 채워질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친구들이 별로 보이고, 또한 외적 희구를포기할 수 있었다. 내적 희구는 ‘소중한 것’이라는 외적 대상보다는 소중한 것을 대할 때 마음속에 피여오르는‘환희’라는 내적 대상에 대한 욕망에 가깝다. 그리운 것을 바라보는 환희를, 별빛이없는 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내적 희구를 화자는 알게 된 것이다.

화자는 친구들과의 수다, 그 행복한 시간 속에서 별을 볼 때의환희를 발견했던 것이다.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에서 직접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화자가 발견하고 대면한 것은 별의 내부와 자신의 내면에 존재했던 ‘소중한 것을 간직할 때의 환희’였다. 그러한 환희는 비단 친구들과의 수다 뿐 아니라 삶의 어떤 곳에서든 발견될 것이다. 사실화자가 친구들에게서 외적인 별, 실제 별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화자는별을 볼 때와 같은 환희를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발견했다. 화자는 자신의 삶 속에서 환희를 느끼고 가치를 발견케하는 스스로의 내면에 눈을 뜬 셈이다. 이로써 화자는 외적 추구가 아닌 내적 추구를 하게 된다.

 

구제와 창조의 욕구, 련민의희구

두번째 수필 <페의 슬픔과 미학>에서 화자는 조각나고 부서진 도자기를 수선하는 공법, 즉 상처를 붙이고여며서 더 아름다운 가치로 환생시키는 수선 공법을 접하게 된다. 그 후 화자는 깨진 물건들을 휴지통으로 버렸던자신의 과거 행위에 후회한다. 사물이 표면상의 수명을 다해 가치가 상실된 것처럼 보여도 창조적 재생산을 통해또 다른 가치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가치는 사물의 최초 가치가 아닌 재생산을 통해 형성된 가치이다. 버려진 것들에서 가치를 찾아내야 한다는 교훈을 보여준다. 사물은 충분히 구제, 재활용될 수 있으며 사물에 잠재되여있는 가능성을 함부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함부로 여기지 않는 마음, 잠재성의 발견은 창조적 욕망을 통해실현된다. 수선 공법은 수선공예가의 욕망으로 창조해낸 방법이다. 창조적욕망이 있어야 잠재성에 눈을 뜰 수 있는 것이다. 재생산된 가치에는 수선공예가의 상상과 정성어린 손길, 따스한 마음이 스며있었다. 수선 공법을 통해 수선공예가의 페품을 버리지 않으려고, 되살리려고 하는 마음, 구제의 강한 심리를 보여주었다. 화자는 수선공예가의 내면을 통해 자신의내면을 발견했을 수 있다. 수필의 마지막 대목에서 “그리고 나는 나의 마음구석에 웅크리고 있는 페도 보여지기시작했다. 그 페 때문에 마냥 눈물을 흘렸던 자신이 떠올랐고 이제는 그 페도 그 눈물마저도 너무 아름다웠다. 그리고 다시 바라본 이 세상은 더 아름다웠다.”는 것처럼 화자는 자신의 마음속에있는 휴지통에 버려진 페품을 발견한다. 그 페 때문에 흘린 눈물이 아름다웠다는 것은 페품에 잠재되여있는 가치를발견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의 가치의 구제는 창조적 욕망을 통해 실현될 수 있다. 창조적 욕망이 있어야 잠재성에 눈을 뜰 수 있으며 ‘다시 바라본 세상은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창조적 욕망은 잠재성을 발굴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낼 수 있으며 창조적 욕망은 사물에 따스한 마음을품어야 생기는 것이다. 사물에 대한 화자의 함부로 여기지 않는 마음, 측은한마음은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생을다하니 저렇게 페기처분되는구나∼ 하는 허탈함으로 눈물이 솟아올랐다. 모든 사물은 운명을 다하면 사람들처럼저세상으로 가고 이곳이 바로 페차들이 잠들어있는 무덤이구나∼

- 세월이 좀 됐지∼

- 그러네∼ 슬프게 아름답네∼

나는 그만 이 곱돌들의 아픔과 아름다움, 묵묵함에 울컥해졌다.

 

- 맛있는 음식 잘 부탁할게.

- 아깝게 바라봐줘서 고마워.

 

화자의 측은한 감정이 사물을 의인화하는 련민에 이르고 있음을 드러낸다.화자는 사물이 살아있다고 느낄 만큼 련민을 강하게 품고 있었다.

사물의 내적 가치는 창조적 재생산에의해 발견되고 창조적 재생산은 창조적 욕망을 통해 실현되며 창조적 욕망은 사물에 대한 측은한 미련, 즉 련민에의해 형성된다. 사실 수필 속에서 화자는 구제의 가치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사물들에게서도 무차별적으로 련민을느끼며 가치를 다시 부여하고 싶어한다. 즉 련민이 있기에 구제의 창조적 정신이 발휘된 것이며 이 구제의 가능성을통해 사물에는 내적 가치가 부여될 수 있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면 화자가 구제한 사물들은 기능적 측면을통해서만 그 가치를 회복한 것이 아니다. 외려 파괴된 상태를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이는 사물들의 애처로운 모습이화자의 감정을 자극함으로써 그 사물들은 새로운 가치를 부여받은 면이 크다. 작품 속에서 화자는 내내 심미적측면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필의 제목이 <페의 슬픔과 미학>인 것부터 사물의 기능보다는 심미적 측면을 강조하고있음이 예측된다. 련민은 기능적 측면보다 심미적 측면에서 쉽게 발생될 것이다. 따라서심미적 측면을 먼저 느끼며 강조하고 있는 화자는 사물에 리성적 가치보다는 감성적인 련민을 먼저 품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화자가 궁극적으로 강조하는 것은 사물의구제를 가능케 하는 창조정신, 그 창조정신을 일으켰던 내면의 감정인 련민인 것이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구제와 창조의 욕망, 그 희구가 외적 희구라면 이러한 희구를일으킨 련민은 내적 희구라 할 수 있다. 화자는 이러한 련민을 탐닉하는 자세를 취한다고 할 수 있다. 화자는 표면적으로는 구제의 가능성 때문에 사물에 련민을 보이는 것처럼 말하지만 정작 화자는 련민의 대상을 구제하며련민의 욕구를 해소시키고 있었다. 

 

그리움의 희구

마지막으로 <그리움의 단상>에서는 <별빛흐르는 저 언덕에>와 <페의 슬픔과 미학>의 리면에 구성되여있던 외적 희구에서 내적 희구로의 전환에 대한 비유를 통한 담론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리움의 단상>에서 보여주는 담론의 구조는 매우 선명하며 간략하다. 땅은 하늘과의 만남을 성사시키는 비를 그리워한다. 그런데 자세히살펴보면 땅이 하늘을 그리워하는 것은 짝사랑이 아닌 서로간의 사랑임이 확인된다.

 

하늘은 하늘 대로 높고 땅은 땅 대로 낮고그대들은 이렇게 비며 눈이며 바람이며 해살로 사랑을 나누고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만나자고 얘기를 나눈 것은.

-꼭 한번 가야겠네∼ 올해는 꼭 봤으면 좋겠다∼ 자주 만나진 못하지만 늘그립다는∼

-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거주하는 남과 북 사이 어디 쯤 만나볼가요? 재밌겠다∼ 이렇게 가운데 쯤 만나면요∼

 

이렇듯 하늘과 땅은 서로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사이이다. 이들의만남은 그리움 그 자체만으로도 이루어진다. 땅과 하늘이 서로를 그리워하고 만나지 못해 안타까워하면 그 안타까움이비를 내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움, 만나고 싶은 욕망 자체에 욕망의해소가 내재되여있는 것이다. 혹은 욕망이 있기 때문에 욕망의 해소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서로에 대한 그리움이 있다면 이미 그리움의 해소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그리움자체에 만남이 내재된 것이라면, 욕망 자체에 그 욕망의 해소가 내재된 것이라면 욕망의 대상보다는 욕망 그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욕망의 대상이라는 표피가 아닌 근원인 그 욕망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욕망의 대상과 욕망 자체에 대한 대비는 <그리움의 단상>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래요. 수필도 한 둬편 나와야겠지요.

그보다도 우리는 정말로 만나야겠지요.

만남의 희열과 환희는 살짝 가라앉히고 숨소리와눈빛으로 우리만의 이 순간을 깊게 느끼는 겁니다.

내면으로 흐르는 이 기쁨은 오래가도 잊혀지지가않을 것입니다.

 

인용문에서 ‘수필’은 만남을 이루는 현실적방법이다. 이러한 현실적 방법을 제쳐두고 당장 만나자고 하는 것은 욕망 자체를 부각시킨다. 또한 욕망을 실현시킨 증표인 ‘희열’과 ‘환희’를 제쳐두고 그에 대비되는 내면에 흐르는 ‘기쁨’을 위해 ‘숨소리’와‘눈빛’에 집중하는 것은 내면의 욕망에 집중하기를 요구하는 것과 같다. 이렇듯 욕망의 대상에 집중하는 시각과욕망 자체에 집중하는 시각이 대비되면서 욕망 자체에 눈을 돌리게 된다. 욕망의 대상에 대한 집중이 외적 희구라면욕망 자체에 대한 집중은 내적 희구라 할 수 있다.

 

탐닉

세편의 수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리면의 구도는 내적 희구로의 전환이다. 즉 욕망 자체의 자기 완결성과 아름다움에 대해 리화는 주장하며 우리를 설득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설득의 방식은 직접적이지 않다. 설득하고저 하는 바를 작품의 표면이 아닌리면에 간접적으로 배치함으로써 ‘내적 희구로의 전환’이라는 주제는 부지중에 스며들듯 전달된다. 외적 희구의대상을 통해 이목을 집중시키고 그 사이에 슬며시 리면의 주제를 전달시키며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설득은 점진적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에서는‘별에 대한 욕망(대상에 대한 희구)-좌절(외적희구에 대한 좌절)-환희의 재발견(욕망의 내적 희구)’이라는 점진적 단계를 거쳐 내적 희구라는 주제에 빠져들게 만든다. <페의슬픔과 미학>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여기서는 거꾸로 ‘사물에대한 련민의 강조(욕망의 내적 희구)-사물의 재생산 가능성(욕망의 내적 희구를 실현시키는 기제)-창조를 통한 재생산(욕망의 대상 희구)’의 역전된 흐름을 보여준다.<그리움의 단상>에서는 ‘만남의 좌절(욕망의좌절)-그리움에 대한 관찰(욕망에 대한 관찰)-그리움의 자체적 해소(욕망의 내적 희구)’의점진적 흐름을 보여준다.

리화는 내적 희구로의 전환이라는 주제를 작품의 리면에 배치함으로써 그리고 점진적 단계를 거쳐 형성시킴으로써자연스러운 설득을 이뤄낸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설득 덕분에 우리는 어느새 내적 희구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즉 리화의 세편의 수필을 읽으며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내적 희구를 추구하는 탐닉자가 되는 것이다. 내적 희구의 추구, 즉 욕망 자체에 대한 집중이자 내적 탐닉이기도 하다.

탐닉에 빠진 독자에게는 서두에서 언급했던 ‘너무 달콤해서 혀가 아릴 만큼 강렬한 감상적이며 화려한문장들’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지평을 얻게 된다. 사실 리화의 문장이 제공하는 강렬함은 깊은 울림을 이끌 수도있지만 반대로 독자의 감각을 마비시켜버릴 수도 있는 량날의 검과 같은 것이였다.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지나치게화려하면 감각이 마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리화는 우리를 탐닉자로 만드는 과정에서 작품을 마냥 편하게 읽게만든 것은 아니다. 우리를 탐닉자로 만들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화려한 인상을여전히 조금은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리면적 주제를 리해하지 못하면 극단적으로 진부한 감상적 문장들로리해될 수 있다. 하지만 리화는 그만의 치밀한 계획으로 독자를 내적 희구로 이끌어 탐닉자로 만듬으로써 독자의감각이 쉽게 마모되지 못하게 만든다. 탐닉자는 강렬한 자극에도 쉽게 지치지 않기 때문이다.

한편, 세편의 수필을 빼곡이 채우고 있는 ‘감상적이며 화려한문장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의 공통점이 발견된다. 상당 부분의 화려한 수사들이 화자의 욕망, 희구에 관련된 것이라는 점이다. 욕망은 화려하게 표현될수록 타인에게 전이될가능성이 커진다. 이는 라캉의 “인간은 타자의 욕망을 욕망한다”는 원리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욕망에 대한 화려한 수사도 리면적 주제와 마찬가지로 독자를 탐닉으로 유혹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출처:<장백산>2017 제5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6
번호 제목 날자 추천 조회
6 <장백산>2017.5 루계215 2019-07-18 1 748
5 왕회우: 새끼새들이 노래 부른다(단편소설) 2019-07-18 0 532
4 장선자: 붉은 달(단편소설) 2019-07-18 0 768
3 김홍월: 탐닉으로의 유혹, 내적 희구로의 전환(수필평) 2019-07-18 0 403
2 리화: 별빛 흐르는 저 언덕에(수필, 외2편) 2019-07-18 0 527
1 김혁: 스마트폰 전성시대의 문학(권두언) 2019-07-18 0 40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