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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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분노분석학
2013년 02월 21일 15시 43분  조회:10009  추천:5  작성자: 최균선
                                             분노분석학
 
                                                최 균 선
 
     분노란 분개하여 크게 화를 냄을 이르는 말이다. 분노에는 돌발성분노, 잠재적 분노, 생존성분노, 체념성분노, 수치심에서 비롯된 분노, 배신 등에서 비롯된 분노 등 이 있다. 돌발성분노보다 잠재성적분노가 더 무섭다. 활화산같이 언제 폭발할지 모르 며 일단 폭발하면 그 파괴성이 어마어마하기때문이다.
    건강학자들은 설득한다. “노여움은 분함에서 오고 그것이 분노를 낳는다. 쓸데 없는 노여움은 명줄을 끊는 칼이 되고 격한 분노는 결국 되돌아오는 부메랑이다. 그것들이 내안에 암의 씨앗을 뿌리며 마음에 노여움을 품어 그것이 쌓여지면 스스로 명줄을 끊는것이 된다. 그러니 분함을 참고 노여움을 푸는것이 제 명을 제대로 사는 지름길이다. 한마디로 잦은 노여움은 수명을 단축한다. 노여움은 버려야 마땅하다. 분토처럼 버려라. 그러면 그 자리에 새 생명이 움트리라.”등등, 맞는 말이다.
    분노통제에 관한 명언들도 많다. 영국의 력사가 G. M. 트리벨리언은 “분노는 순간적으로 정신이 나간것이기에 분노를 통제하지 않으면 분노가 여러분을 통제한 다”고 했다. 분노통제에 실패하면 스스로를 해친다는 말인듯싶다. 영국시인 알렉산 더 포프는 “화를 내는것은 남의 잘못에 대한 보복을 우리 스스로에게 하는것 이다”라고 말했고 프랭클린은 “분노로 시작한것은 부끄러움으로 끝나기마련이다”
    이처럼 영,미권문화는 분노에 대해 부정적이다. 화를 낸다는것은 지는것, 인품에 뭔가 모자란것이라는 관념이다. 영국의 정치가 체스터필드는“옹졸하고 악의가 있는 마음은 분노와 복수심으로 가득해 원수를 용서하는 기쁨을 느낄능력이 없다” 고 했고  프랑스 소설가 알퐁스 도데도 “증오는 약자의 분노다”라고 하였으며 “힘이 받 쳐주지 않는 분노는 어리석은 짓이다”라는 독일속담도 있다.
    그러나 이와 상반대되는 관념들도 수두룩하다. 기원전 1세기 씨리아 노예출신의 라틴어작가인 푸블리우스 시루스는 “분노는 회상만해도 점화된다.”고 했다. 분노는 강하다는것을 역설한것이다. 미국의 현대파시인 랠프 월도 에머슨은 “좋은 분노는 어떤 사람의 모든 능력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미국심리학회는 “분노는 전적으로 정상적이며 보통의 경우에는 건강한 인간감정이다”라는 점을 강조한다.
     영국 도미니코수도회 비드 자렛이란 신부는 “세상에는 분노가 필요하다. 세상이 계속 악을 빈번하게 허용하는 리유는 세상이 충분히 분노하고 있지 않기때문이다” 라고 설교했다. 분노는 에너지다. 분노를 동원하면 세상을 개선할수 있으므로 사회의 분노총량이 적당히 많은게 좋으며 개인, 국가발전의 밑거름이 된다는 말도 있다.
    프랑스의 작가 스테판 에셀은《분노하라》에서 이렇게 쓰고있다.“나는 여러분 모두가,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 나름대로 분노의 동기를 갖기바란다. 이건 소중한 일이다. 내가 나치즘에 분노했듯이 여러분이 뭔가에 분노한다면, 그때 우리는 힘있는 투사, 참여하는 투사가 된다. 이럴 때 우리는 역사의 흐름에 합류하게 되며, 역사의 이 도도한 흐름은 우리들 각자의 노력에 힘입어 면면히 이어질것이다.” (15쪽)
    개체정서적인 분노와 리성적인 분노는 구별된다. 에셀이 호소하는 분노는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보다는“참여의 의지”를 가리키는것이다.“내앞가림이나 할수 밖에” 하 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한다면 인간으로서“분노할수 있는 힘”과 인간의 존엄, 나아가서 생존의 권리마저 침탈당할것이다. 에셀은 최악의 태도는 무관심이라고 설교한다.“창조, 그것은 저항이며 저항, 그것은 창조다”라고 쓰고있다. (39쪽)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수 있고, 자신이 서있는 곳을 지킬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수있다. 또 같이, 정의롭지 못한 일이 자행되는 곳에 압박을 가하는것이 우리 각자가 해야 할 일이다.” (55쪽) “화의 뿌리가 사적인것이 아니라 공적인것일 때는 그 공적인 원인 을 해결할 때에만 화는 사라진다. 사실 세상의 진보는 불의에 대한 분노에서 시작하지 않았 던 가.”“우리의 정당한 분노와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꾼다. 각자의 령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여 세상 바꾸기에 나서자.” (71, 79쪽)  
그런데 일컬어“자기애적 분노”는 바람직하지 않다. 자기애적 분노란 미국의 심리학자 하인즈 코헛의《자기심리학》리론에 나오는 용어다. 코헛에 따르면 자기애 적 분노는 자신의 위대함과 전능함에 대한 자기애적 욕구가 외부로부터 공감받지 못해 생기는 구조적 결핍에서 기인한다. 자기애적 상처로 인해 표출되는 공격성 안에 는 자기에게 상처를 준 이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욕구, 그들의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욕구, 그리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상처받은것을 원상태로 되돌리려는 욕구가 잠재돼 있다고 한다. 이런 분노는 자기중심주의에서 기인된다.
    분노는 강자의 특허이다. 하기에 분노할 때는 행동을 전제로 한다, 약자도 분노 할수는 있다. 그러나 약자의 분노는 삼키기 용이다. 그래서 증오하게 되는데 증오 한다는것은 이미 약자의 입장에 선것이요 그에 앞서 약자의 운명에 순종하는것이다. “약자는 분노를 경계하고 강자는 교만을 경계해야 한다. 분노는 삭이는것이 명지하 다” 는것이 삶의 지혜로 인지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분노하라!” 는 직설적이고 선동적인 구호로서 마뜩지 않게 들릴수 있다.
    그러나 참는것이 능사가 아니다. 진정한 심리평형을 찾으려면 분노할것에 분노 해야 한다. 그래도 참고 나와 상관없는 일이면 더구나 관계하지 말라고? 그런 무관심이 비리의 횡행을 윤허한다. 얽히고 얽힌 인간관계, 나비효과라는것이 단순 학술용어가 아니라 정말로 일어나는것이 현대사회의 실정이다. 성향차별, 학벌차별, 빈부격차, 략탈적인 탐욕 등이 눈에 띠지 않을수 있으며 분개하지 않을수 있을가?
    력사는 항상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을 정당화하였다. 인디아인에 대한 학살은 앵글로 색슨족의 원죄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죄인가? 힘, 무력으로 약하고 락후한 인디언인들의 땅과 가원을 강탈하고 불모지에 몰아넣고 그도 성차지않아 도살하고 억압하며 괴롭힌것은 과연 정글법칙으로 해석해야 하는가? 일제가 조선땅을 강점하여 살륙하고 자원을 략탈한것은 약육강식의 법칙으로 넘어가야 하는가?
    동물세계나 인간세계나 약자는 슬프다. 죽이지 못하면 죽어야 되는 생존경쟁의 각투장이다. 나보다 약하고 락후하다해서 강자들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질러 왔는가? 병자호란, 임진왜란, 일제식민지…수많은 비극속에서 참을수 없는 고통을 겪어야 했던 약소민족, 제땅이나 잘 가꾸고 지킬 일이지 왜 남의 작은 땅덩어리조차 욕심내 남을 망국에로 몰아넣었는가? 이런 물음은 현답이 없는 우문이 될것이다.
    약자가 강력한 힘을 갖추면 세상은 위험해진다는 궤변에 따르면 약자는 항상 분노하지만 속절없이 당해야 한다. 강자에게 약하고 악자에게 강한, 그리고 약자를 임의대로 괴롭히고 소외시키고 죽음에로 몰아가는 상황에서 약자가 분노하면 무모 한가? 마침내 강한 힘을 갖추었을 때 분노를 터뜨리면 대역부도한 일인가? 진실은 언제나 약자의 분노속에서 표출된다. 약자의 분노인가? 리념의 갈등인가?
   약자없이 강자가 없듯이 리해 없는 조화가 없고 조화가 없이는 발전이 없다. 령양떼를 호시탐탐, 으르렁거리는 사자의 포효는 절대 친선적일수 없으며 더구나 평화공처를 암시하는 미소일수 없다. 거대한 강압에 항거하는 약자의 분노를 가볍게 볼 일만은 아니다. 토끼가 사자를 이긴것은 동화이지만 모든 선량한 사람들의 념원인 것이다. 그런데 생존의 권리를 지키려는 약자의 분노는 념원으로 체현된다.
    가끔씩 약자에게 지어보일수 있는 강자의 미소는 미소가 아니라 랭소이다. 높은 산정에서 산하를 내려다보는 미소, 거기에는 정복의 긍지감과 자호감이 담길수 밖에 없다. 당신이 약세군체에 속하고 있을 때 대수롭지 않을수 있는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는데도 “아따가라”소리도 칠 생각이 없다면 감각이 도끼등인가?사유가 정지 상태인가? 가진자는 극도로 리기적인데 중용으로 아큐정신승리법을 고양할것인가? 중용은 때와 정도 등 분촌을 가리는것이지 무위무능을 의미하는것은 아니다.  
    적당함에 만족하면 적당히 살게 될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소신껏 살라는것이지 중용지도가 아니다. 개가 짖는다고 해서 따라짖지는 않는다는 귀족적성향체계 (아비 투스)는 비릿하다. 약자의 슬픔과 분노에 대해 그저 가당치않다고 할 권리를 누가 주 었는가? 거짓에 대한 분노는 영원하다. 강압에 대한 분노는 자발적이다. 분노속에서 과거를 잘 정리하지 못하면 미래를 향한 비전도 없을지도 모른다.
    분노를 약자의 콤플렉스라고 생각하는것 그 저의가 아이러니이다. 분노란 약자의 콤플렉스라고 말하는 자들은 언제나 위세부리는 기득권자들이고 강권을 펴는 자들이 다. 강자가 되려면 약자의 분노를 떨쳐야 한다. 분노하지 않아서 발전하는 경우도 있 지만 격정이 없으면 분노가 없고 분노가 없으면 발전이 없다.
    약자가 분노할 때 세상은 뒤바뀐다. 2천여년의 인류력사에서 민중의 분노는 여러차례 봉건왕조들을 뒤엎었다. 일제에 맞선 열혈투사들의 피어린 항쟁이 있었기에 배달민족의 자주독립이 있게 된것이 아닌가? 굴종이야말로 생존경쟁에서 최악의 자세이다. 분노는 아무나 하는것이 아니다. 분노는 아무때나 폭발하는것이 아니다. 
   횡포무도에 저항하려는 담찬 자에게서만 분노가 폭발된다. 바람부는 방향으로만 가서는 결코 내가 가고싶은 곳으로 갈수 없음을, 역풍을 헤치며 나아가야 함을 모를 사람이 없을것이다.   분노도 선택이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지 못함을 분노해야 “분노”가 사라진다. “분노하라! ”강권에 대한 분노는 어느 한 약소국의 항쟁에만 그칠일이 아니다.
 
                                                 2013년 2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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