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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건 추론이건간에…
2013년 05월 07일 11시 46분  조회:8898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추리건 추론이건간에…
 
                                            최 균 선
   
     인간은 유일하게 사유할줄아는 동물이다. 사유활동에서 주되는 모식은 추리와 추론이다. 추리란 알다싶이 출발적판단(전제)으로부터 필연적으로 나오는 새로운 판단 (결론) 을 소여의 판단으로부터 도출하는 과정이다. 어떤 판단은 직접적관찰로부터 출발하여 현실을 재현하며 반영한다. 인간의 생활은 론리학이 아니지만 일정한 론리성에 따라 영위하게 된다. 아니면 생각없이 사는것이나 다를배없다.
    모든 추리는 하나의 전제 또는 여러개의 전제 및 이 전제들로부터 나오는 결론으로써 성립된다. 추리에서 얻어진 지식이 정당한것으로 되기 위해서는 두가지 전제조건을 준수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첫째조건은 출발하는 판단(전제)이 실천에 의하여 검증된 정확한것일것, 둘째조건은 사상, 판단을 잘 결합시킬 능력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사유법칙은 론리적법칙에 따라야 하므로 주관의지나 호악감에 의해 좌우지되지 않는다. 아무도 추리활동의 법칙자체를 외면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추론은 미리 알려진 어떤 생각이나 주제를 근거로 새로운 판단, 또는 결론을 이끌어내거나 어떤 일을 리치에 따라 미루어 생각하여 론하는것을 말한다. 추리는 론리적사고와 절차(과정)를 말하며 추론 (론증) 은 추리를 언어로 표현한것을 말한다. 즉 특정된 원인에서 어떤 결과를 추출해내는 증명의 형식을 취한다. 추론은 일반적으로 타당한 론쟁형태를 분석하여 그 전제가 함축하고있는 결론을 이끌어내는것이다. 졸문의 골자가 추리, 추론을 전문설명하는것이 아니므로 이만 략하고,
   소위 “전문가”들이 가장 잘하는 사유방식은 추리 혹은 추론이다. 만약이란 전제도 없이 무조건 단정하면 추론이 아니다. 추론의 술어는“ㅡㄹ것이다”이지 “ㅡㄴ다, ㅡ였다”가 아니다. 흔히 추리에만 매달리면 자신이 판 자가당착의 구덩이에 잘 빠져들고 그속에 갇히기 좋아한다. 기본개념과 언어의 상관성이 결여한 추론은 억측이 된다. 생각의 차이문제가 아니라 언어의 기본적인 사용문제이다.  
    개념교육을 제대로 받지못한 문제가 아니라 개념자체를 외곡하여 비틀어놓음으로써 추론이 엄청 빗나가는것이다. 진리란 “참”리치라는 말이다. 역설적이라는것이 있지만 추론의 결과는 아니다. 역설과 비슷하지만 좀 다른 모순이란 말이 생긴 중국고대우화 “못뚫는게 없는 창과 못막는게 없는 방패”이야기에서 서로 위배되는 자랑질에서 하나는 거짓임이 분명하다.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찔러보라"는 제의에 당황망조한 고대의 우자(愚者) 를 방불히 보는듯싶다.
    역설은 론리학에 실례로나 보지만 모순은 현실에서 늘 부딪친다. 가장 보편적인것이 언행불일치이다. 행동이 말을 부정하거나 말이 행동을 부정하는 경우다. 모순을 피하려면 입을 닫아걸고있으면 된다. 굳이 한마디 해야겠으면 개념을 정확히 사용하 면서 론리에 맞게 해야 한다. 아니면 “ㄴ것같다”라는 식으로 자기말에 물러설 여지를 남겨두어야 명지하다고 할것이다.
    례컨대 “이 창은 대부분의 방패를 뚫는다”고 하거나 “이 방패는 95%의 창을 막는다”고 했더라면 어페가가 적었을것이다. 추론의 한계성을 극복하지 못하는 유한한 인간이 전칭명제를 사용하면 꼭 이렇게 문제가 되는법이다. 정의상에 같은 말이라도 용례상 차이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인생현장의 많은 일, 생활현상이나 사유활동을 꼭 변증법으로 해석할수는 없다. 특히 적대관계에서 죽고살기의 싸움을 할 때는 “너” 와 “나”밖에 보이지 않는다. 리념투쟁도 마찬가지다. 그걸 아무도 “이분법적오유”라고 거부하지는 않는다.
    공생(共生)을 포기한 사투에도 모두 변증법과 수사학이 필요하다. 그러나 참된것이 거짓을 밝혀내야 정확한 수사학을 구사할수 있다. 거짓된 수사학을 가지고 상대를 설득할수 없기때문이다. 무리 (无理)는 원래 변증법거리가 못된다. 리치에 닿지도 않은데 무슨 변증거리가 있겠는가? 그러나 강권이 우세하는 한 무리가 노상 이기게 되는 비리한 세상이다.
    세상에 예언자란 드믈다. 가석하게도 무슨무슨 “전문가”라는 광환을 두른 사람들이 일인자연 요란피워도 추리도 역시 엉터리추리일뿐 빗나갈때가 너무 많은것을 보면서 왼고개가 비탈린다. 한치앞도 내다볼수 없고 해괴하게 돌아가는 세상이기에 각자 믿는만큼 세상이 달리보이고 그만큼 추론도 각색일수밖에 없다. 추리하든 추론하든 그것은 각자 자유이지만 무릇 추론함에 있어서 분명한 사실을 렬거하고 그것을 설명해줄 가설을 세우는것이 진실에 더 접근할수 있다. 추론에 앞서 전방위적인 배경을 전제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전문가”들은 적대국의 사사건건 징조라고 점찍어놓고 추리, 추론, 추단하기 좋아하던데 대방이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할거라고 호들갑떨어대다가 대방에서 즉시 행동을 취하면 또다시 어떻게 할것이니 어떻게 대응해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그러면 대방에서는 그런 가상적추리까지 뒤엎어버리고있음을 우리는 보고있다. 하루밤 자고나도 국세는 여전히 한치앞을 내다볼수 없는 위기의 형국이다. 아무리 천재적인 분석가, 예언가라도 너무 경솔하게 이럴게다, 저럴게다, 이렇게 되여야 한다는 식으로 추론, 추단한다면 될일도 버르집어놓게 되여“입덕”을 톡톡히 입을수밖에 없다.
    인간의 인식이 닿지 못하는 곳에 무엇인가 있음직하다고 가정하는것은 자유이다. 그러나 인식이 미달이면 그걸 목표로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실체도 없는것이 람용되면 억측기제가 될뿐이다. 해당분야에 전문가가 해야 할일은 바로 시비도리를 캐고 진리를 고양하는것이다. 그러나 너무  어려운 일이다. 가령 하느님이 있어서 판결하면 몰라도 서로가 일리가 있다고 우기는데 그 언제 “합일”에 도달할것인가? 
    하지만 제리익에 맞게 주관추리를 진행하다보면 그런데 신경쓸 여유가 없다. 그냥 내가 정통이고 내게 일리가 있다고 나좋게만 둘러맞추고 그게 정설인듯 한다. 결국은 공생하며 너도 번영하고 나도 잘살자는 목적에 도달하려는것이 아니라 대방을 깕아내리려는 알량한 타산에 골몰할뿐이다. 례컨대 미워하는 대방이 무조건 형편없고 아무것도 아니여야 하는데 상반대여도 “넌 아무것도 아니야. 넌 어쩔 능력도 없어…” 하면서도 “너 위험한 존재야, 허나 두렵지는 않아!” 라는 격으로 제혀를 씹는소리는 정상추리를 하지못하는 사람에게서 나올만한 결론일수밖에 없다. 아니면 말구라는 추단은 유치하다.
    행동하는 철학자, 영국캠브리지대학교수였던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는 존재를 규정한다고 하였다. 그는 “사자가 말을 할수 있다해도 우리는 그 말을 리해할수 없다.”는 명언을 남기였는데 결론이 불가능한 과제에 도전하고있는 애매모호한 철학을 비난했다. 그는 “우리가 론할수 없는것에 대해서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내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이다”라는 명제하에 많은 철학난제들은 언어사용의 불명확성때문에 생긴것이라고 역설하였다.
    그는 “철학적저술에 기반을 둔 많은 명제와 질문들은 사실 거짓이거나 헛소리들이다. 그런 질문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답도 나올수 없다. 다만 그것들이 말도 안되는 헛소리라는것을 립증할수 있을뿐이다. 즉 말할수 없는것에 대해 억지로 말하려고 하는 순간, 철학은 헛소리가 되여버린다”는 명제를 던졌다. 적대국이라고 닭알에서 뼈를 찾으려는듯 작정하고 아직 발생하지도 않은 일을 두고 무슨 분석이요 추리요 추론이요 하는 소위 “전문가제씨”들에게는 귀따가운 경종이 아닐수 없겠다.
                        
                                                2013년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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