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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화창작을 두고 뇌까리다
2013년 12월 06일 08시 36분  조회:7826  추천:3  작성자: 최균선
                                             개인화창작을 두고 뇌까리다
 
                                                                진 언
 
    세인이 공인하다싶이 90년대 중국문학( 조선족문학도)은 다원적이지만 이미 색이 바래고 뒤엉킨 삼검불이 되였다고 해도 틀린말이 아닐것이다. 가위로 썩둑 끊을수도 없고 한오리한오리 가려내여 잘 감아놓을수도 없게 되였다. 그렇게 된 주요원인은 창작자세와 방식이 각양각색이고 그에 대한 주장들이 중구난방이기때문이다. 그러면 서도 제재내용, 문체풍격, 서사방식, 서정토로방식 등 면에서 다양하게 론증하려 하지만 창작자세와 방식상에서는 기실 내재적으로 일치성을 가지고있다.

    변화무상한 인간세상, 돌고도는 인생마당에는 새록새록 다양한 이야기가 자체로 엮어져서 무궁무진하지만 개체의 경력은 제한된 공간과 생명의 제약성으로 쓰고쓰다 보면 마침내 바닥이 드러나고만다. 그다음에는 무엇을 말할수 있을것인가? 작가의 자아는 환원되여야 하지만 시대속의 자아이지 진공상태에 자아가 아닌것이다.

    “개인화”창작을 편면적으로 리해해서도 안된다. 사실상 작가가 자아를 상실하지 않는한 어디까지나 시대의 일원으로 남을수밖에 없다. 작가는 분명 자기립장과 시각마저 내버리지 못하기때문이다. 따라서 창작태도와 방식은 거꾸로 문학의 특징속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자가당착에 빠지고만다. 지난세기 80년대에 비하여 개인화창작에 그렇게 요란떨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내버린것은 아니다. 개인화창작은 마땅히 개인의 화어(话语)공간과 대중화어 공간사이에서 뉴대를 구축하지 못하면 대중의 열독활동에서 배제될수 밖에 없다.

   “개인화”창작과 더불어 “사인화”창작이란 말이 류행되였는데 때론 녀성창작과 뒤섞어 말하기도 하였다. 두 명제는 어의상에서 뚜렷한 구별이 없는것으로 보이지만 사인화창작은 일종 자전체 혹은 반자전체성질의 작품창작 혹은 고의적으로 이런 련상을 가지게 하는 봉페성창작자세라고 한다. 사인적공간은 그의 유일한 창작공간과 화어공간(话语空间)으로서 성의식, 성생리 등에 대한 묘사가 텍스트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나 필경 극단적창작자세와 방식이라는데서는 량자간 공통점이 생긴다.

    문학의“사인화”란 언제부터 제기된 개념인지 명확히 밝힐수는 없으나“대중화”와 상반되는 일종 창작관념으로서 이런 관념과 경향은 문학을 일종 순수개체문화 행위라는 울타리안에 가두고말았다. 문학의“사인화”의 특징은 사회와의“공공대화” 를 거절하고 비의식형태화를 주장하며 문학은 그저 문학으로서 문학의 변연화는 불가피적인 정상상태라고까지 주장한다. 이런 문학창작경향으로 하여 사회를 회피하고 개인의 주체가치를 내세우면서 문학을 독립적인 자족의 “우주”로 축소시키였다.

    문학창작자체는 개인적작업이지만 문인으로는 자기울타리를 벗어나야 창작공간이 개척된다. 작가는 개체의 심리세계도 주목해야지만 자신이 속한 집단의 주류적인 사상과 정서, 가치기준을 외면할수 없다, 자기의“특색”보다 더불어 이루는 문학의 미학적실천에서 독자의 심미추구를 나몰라라 할수 없다는 설명이다.

    작가의 창작관념은 굳어져서는 안되지만 토성우에 갈대처럼 흔들려서도 안될일 이다. 초현실주의 바람이 불면 초현실주에 경도되고 표현주의 하면 기괴한 표현을 하느라고 골머리를 짜노라니 민족의 언어특징을 바탕으로 하는 우리 문학의 특색은 뒤로 밀리고만다. 고전적인 세계명작이 명작으로 된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비판적사실주의가 작품에 관통되여있기때문이 아닐가싶다. 내가 보수적이여서인지 모르지만,

    이를테면18세기의 계몽주의자들인 디드로, 볼떼르, 루쏘와같은 걸출한 작가들은 문학작품을 통해서 봉건사회의 잔재를 청산하고 자유와 평등을 기저로하는 합리적이고 리성적인 시민사회로 나아가는 투쟁을 고무하였다. 17세기의 극작가인 몰리에르는 프랑스고전극의 완성자로서 고전주의미학의 리념을 빛나게 실현한 대문호였다.

    몰리에르는 그의 희극 <아내들의 학교>에서 인민을 몽매하게 만들어 순종밖에 모르는 노예로 삼으려는 지배계급의 정체를 폭로하였으며 그것을 도와주는 종교의 위선을 조소하였다. 종교의 이름으로 합리화시키는 사회불평등과 기만을 날카롭게 비 판한것이다. 그때문에 공연이 금지되고 박해받았으나 그로써 불후의 명작이 되였다.

    개는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 몰리에르는 희극《따르뜌프》에서 예수회회원인 따르뜌프의 악행과 위선을 폭로하였다. 예술이 사회모순을 밝히는데 앞장서야 한다는 사실을 몰리에르는 희곡을 통해 보여주었다. 이와 비슷하게 디드로의 소설《수녀》에서도 종교의 이름으로 인간의 감성을 질식시키는 사회적모순을 까밝혔다. 그런 인소가 발자끄나 유고의 작품에서도 관통되고있다. 세기를 넘어서도 명멸하는 그 사상의 빛발이 바로 세계명작이 된 론거이고 특징이고 사회적가치이다.

    물론 금강산사도 식후경이라고 문학도 배부르고 등따스한 연후에 하는 생명활동이니 배가죽이 등에 붙게 굶주려서 밥을 빌어먹게 된 경우에는 문학이 흥미로울수가 없다. 경제건설의 중심시대, 일체를 휩쓸어버린 상품화시대에 문학이 사회의 주인공이 될수 없고 근근히 보조역으로 등장할수밖에 없지만 문학이 변두리에까지 밀려난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다. 문학이 자고로 공리적인 사회에서“변연화”가 된것은 곡조가 틀린 독주때문인가?자업자득인가? 문학은 일종“도구”로 충당되여서는 안되지만도 되돌아와 사회와 아무런 련계가 있어서는 안되다는 말이 아니다.

    만약 문학이 아직도 사회구석구석에 존재하는 비인간적인 환경속에서의 비극적조우를 펼쳐보이지 않거나, 생존환경속에 아름다운것과 추악한것의 박투, 인성속에 선과 악의 판가리겨룸을 파헤치면서 사회와 인간의 이화에 대하여 비판하지 않으려 하면서, 근근히 자기생존의 울타리안에서 맴돌면서 자아감상, 자아도취에 빠져서 헤여나올줄 모른다면 그 제약성은 나처럼 국외인의 눈에도 문학의 저곡으로 보인다.

    문학공간은 날이갈수록 좁아지고있고 문학평론도 바야흐로 위축되여가는 학과로 연명해가고있다. 작가는 과학자는 아니지만 작가겸 학자형이 된다면 금상첨화이다. 하긴 문학과 문학연구는 서로 다른 개념이지만 문학은 응당 사회적도의와 책임을 질머지여야 하며 그것이 가능한껏 창작에서 효률적으로 체현되여야 바람직하다.

    문학의“말세지감”이 아무리 심각하여도 문학의 대하에 작은 물방울밖에 안되는줄도 안다. 문학이 자아를 상실한 대가로 경제효익을 얻는것은 바람직한가? 문학의 주체성을 고창한다해서 문학고유의 사회가치와 작가의 사회적책임 그에 따른 사회효응의 제특징, 작가적인 량지와 사명감을 구중천에 버릴수는 없다. 문학에 몰두하면 몰두할수록 문학의 위기감을 느끼는것은 곤혹이면서도 문학의 비애가 아닐가?

    문학은 슬프다. 날이 갈수록 인문정신이 소실되기때문이다. 무릇 글이란 어디까지나 사회효응을 첫자리에 놓지않는가? 과거에는 도구로서의 문학을 통탄하고서도 한극단에서 다른 한 극단에로 나아가서 한낱 경제도구로 둔갑하였다. 지금의 문학은 려행, 관광을 선전하는 문화, 술문화, 성문화 등의 선전품에 지나지 않게 되였다.     

    문학의 시장에서는 매력 혹은 흡인력, 혹은 재미, 자극이 팔릴뿐이니 진정 숭고한 문학작품이 고갈되고있는 상태에서 문학이 슬프지 않을수 있겠는가? 광대한 독자를 잃은 문학인데 적막하지 않을수 있겠는가? 중국문학(조선족문학)의 비애는 시대의 비애이며 후대들에 대한 문학교육의 비애도 간과할수 없는 풍경이다. 지금의 초고중학생들은 옛날처럼 고전명작에 매료되는것이 아니라 만화책에 매달리고있다. 누가 그들에게 세계명작을 읽힐인가? 그래서 문학은 현재도 비애이지만 먼 장래에도 비애가 도사리고 있다고 뇌까리고 싶어진것이다.  


                                  1998년 8월 21일 ㅡ    2013년 10 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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