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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사회량심
2013년 12월 24일 10시 05분  조회:7948  추천:0  작성자: 최균선
                                                    이른바 사회량심
 
                                                          진 언
 
    량심이란 현실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하고 자신도 인정하는 행위규범과 가치 표준으로서 인간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량심은 선을 행하고 악을 피하라고 적절한 때 에 인간에게 명령하는 리성의 자률적판단이기도 하다. 현대에 이르러 사람들은 흔히 “량심이란게 몇푼어치가 되는냐?”라는 말을 잘하는데 량심의 위치에 대한 현대사회의 역설적인 평가라할수 있겠으나 아이러니하게 사용빈도는 매우 높은 단어로 되였다.

    갑골문에서 량(良)자는 형태상 마치 상하에 두가닥의 물도관이 있고 중간에 하나로 직결된것이라고 해석한다. 즉 마디마다 구멍을 뚫어 통하게 한 참대를 말하고 심(心)자는 기혈(器皿)을 가리켰다. 여기서 거꾸로 생각해보면“량심”은 고대인들의 생활세절로서 참대로 물을 그릇에 이르게 하는것에 대한 묘술이다. 역으로 생각하면“량심”이 없으면 곧 물이 없고 물이 없으면 당연히 살아갈수 없고 생명도 없다는 뜻으로 된다. 전자체(篆体)에서“良”은 “工”与“曰”자가 거꾸로 된형태이고“心” 은 사람의 심장모양이란다. 즉 전자체에서“良心”은 한사람의 마음이다. 그 사람은 권세가 일수 있고 부자일수 있으며 가난뱅일수도 있으나 심장이 없을수는 없다.

   “량심(良心)”이란 단어가 중국에서 가장 일찌기 선을 보인것은《맹자. 고자(孟子•告子)》라고 전해지고있다.“虽存乎人者,岂无仁义之心哉?其所以放其良心者,亦犹斧斤之於木也。” 朱熹集注:“良心者,本然之善心。即所谓仁义之心也。”여기에서 인의지심에는 련민, 수치, 공경 등 여러가지 정감이 포괄되고있다.

    하여 량심에 대한 위인들의 명언이 많이도 류전되였다. 이를테면 제2차대전시기 영국의 원수인 몽고마리 (詹. 蒙哥马利)는 량심은 죄인의 지옥이라 하였고 발자끄는 겸허는 신체의 량심이라 하였으며 구쏘련의 교육가 쑤호무린쓰끼는 량심은 신념의 정감초병이라 하였다. 또한 량심은 인생의 근본이라 하고 량심의 법칙은 영원히 휴정(休庭)할줄 모른다고 하며 오늘의 량심은 행복에 대한 요구라고도 한다.

    이로부터 사회량심이라 할 때 사회는 모든 사람들의것이고 량심은 자신의것이다. 량심이 있으면 사회에 유조하고 량심이 없으면 사회의 해충에 불과한 고급동물이다. 현실이야 여하튼간에 리론적으로 량심이 있는 사람들만이 이 사회의 들보이고 동력이 된다고 말하는것이다. 인간의 사회적량심이라면 우리는“구라파의 량심”이라는 볼떼르를 떠올리게 된다. 기실 그는 구라파의 량심만이 아니라 전 지구촌의 량심이 였다고해도 과언은 아닐것이다. 하다면 현대사회에서 사회량심은 누구일가?

    우리는 보통 기자들을 이 시대 사회민중의 눈과 귀요 “사회량심”이라고 일컫는다. 정체적으로 말할 때 신문사업일군들은 시대와 사회에서 가장 량심적인 군체의 하나이다. 당전 중국신문계에서는“잡문보”를 창시한 저서경(储瑞耕)을 첫손에 꼽는데 《사회량심-저서경평전》이란 책도 출판되였다. 그의 필촉아래 무려 5000만자의 문장이 엮어졌는데 신문계, 평론계에서 굴지의 문필가로 공인하고 있고 당대중국신문 사업가들의 응유의 사회량심을 체현한 수재라는 칭송소리가 높다.

    문필에 흥취있는 사람은 미국정치가이고 발명가인 프랭클린의“만약 당신이 죽은 후에도 사람들이 잊지 않기를 바란다면 가치있는 글을 써내여 사람들이 읽도록하라. 혹은 어떤 의의가 있는 일들을 후세사람들이 쓰게끔하라.”라는 명구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삼림속에 딱따구리가 없으면 안되듯이 저서경기자야말로 신문계라는 이 “문화삼림”속에 “딱따구리”였기에 중국신문계만의 귀감으로 되였다.   
    주지하다싶이 이미 발생한 사실을 진실하게 보도하는것이 신문의 생명이고 핵심이다. 골목소식도 소식이라지만 떡은 떼고 말은 보태라는 속담처럼 잡다한 풍문들은 대부분 류언비어이다. 그것을 언론화한다면 헛소문을 류포하는것이 된다. 실체도 경 계도 애매모호하고 시정에 떠도는 헛소문일수도 있는데 추적이 어렵고 책임회피도 무난하여 사이비여론의 수단으로는 적격이다. 통념에 가깝고 근거도 출처도 불분명 하기에 정보속성상 지상에 나도는 그 순간에 벌써 가치가 거꾸로 서는 운명이다.

    거개 “-ㄹ것으로 보인다.-ㄹ것으로 관측된다. –ㄹ것으 로 추정된다. -가능성이 커 보인다(작아보인다.),-ㄹ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정보에 의하면, -소식통에 의하 면…” 등 문구가 기본모식이 된 기사는 출처인 “누구?”를 숨기고 의혹의 증폭을 조장하기에 사회적으로 아무도움이 안되고 사실무근의 폭로와 곤혹외에 아무것도 남는것이 없다. 그럴듯 포장해서 매체화하는 사기성언기사들을 두고 한국의 지성인들 은 무책임한“ㅡ카더라"식, 련재소설식기사는 “썩은 언론이라고, 한국언론계가 병들었다고, 망국적난상제조기 언론매체에 대한 대대적청소가 필요하다”고 질타하고있다.

    그렇게 비판받는 리유는 바로 “바른말을 론란거리로 만들고 거짓말을 확산시키는 풍토가 형성되였기때문”이라며 “한국언론은 사회량심커녕 사회를 거짓과 분렬과 혼란의 세상으로 만드는데 선봉장노릇을 하고있는것이다.”라고 타매하고있다. 게다가 추측성에 아전인수하거나 사기성을 침투시켜 호도하기에 중구난방,오리무중이 된다. 기사는 수필이 아니다. 쏜살을 되돌릴수 없듯 호들갑떨며“낭설”에 매달리기전에 사실과 결과가 사개맞도록 투철히 파악하고 운필해야 언론다운 언론이 된다.

    무슨 꼬투리를 잡지 못해 마구다지로, 함부로 써갈기면“곤란”하다. 마치 로신선생이“짧은소매적삼을 보면 하얀 어깨를 떠올리고 곧 전 라체를 떠올리고 생식기를 떠올리고 성교를 련상하며 뒤이여 잡교를 떠올리고 사생아를 떠올린다”고 한 말처럼 상상력비리를 저지르기를 꺼리지 않는데 이런 사기성뉴스를 흘렸으면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하지만 한국언론은 마구 흘리기만할뿐 책임은 질줄 모른다. 어떤 기사를 쓰는가 어떻게 엮어대는가가 그리 요긴한게 아니다. 확실성이 우선이다. 도무지 알수도 없는 타국의 사실도 마치 제눈으로 보고 제귀로 들은듯 엮어대면 인간성이 문제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실인데도 독자의 말초적감각을 자극하는 선정적기사는 문제를 심각하게 만든다. 피의사실에 대한 보도 자체보다 보도과정과 방식이 지나치게 감정적인것도 문제인데 작자의 급공근리적인 허영심마저 개입하니 말이다. 그러나 언론자유라는 궤변이 나온다. 언론자유도 인권이지만 절제없는 언론자유란 곧 무질서, 사회결약의 파괴, 독자에 대한 우롱이 아닐가? 처녀면 다 확실한가?

    범죄심리학에는“마사진 창문효응(破窗效应)”이라는 명제가 있다. 례하여 어느 층집에 유리창이 깨졌을 때 제때에 수리하지 않으면 뭇돌팔매질에 하나둘 마사지다가 폭격맞은 집같이 된다는것을 발견하게 된다. 담장이나 바람벽에 락서질한것을 제때에 지우지 않으면 락서장이 되고 말끔한 곳에 누군가 쓰레기를 던지면 인차 쓰레기장이 되고마는 현상이다. 여론의 역할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가?
    다산 정약용은 일찍 현대언론인과 맞먹는 언관(言官)의 역할을 두고“날마다 적절하고 바른 의론을 올려서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고통이 널리 알려지게 하며 잘못된 짓을 하는 관리들을 물러나게 해야 한다.” 고했다. 언론의 역할은 자고로 만고불변으로서 영향력이 그처럼 막대한것이다.

    정다산은“언관은 모름지기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언관의 직책을 행사하여 탐욕스럽고 비루하고 음탕하며 사치하는 일에는 당연히 손을 써서 조치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게만 의리를 인용해서는 안되고 자기편만 편들고 다른편을 공격해서 엉뚱하게 남을 구렁텅이로 밀어넣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이글은 정다산이 1810년에 쓴것이지만도 비정한 언론인들에게는 금과옥조가 아닐수 없다.  

                                        2013년12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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