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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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
2014년 06월 17일 05시 52분  조회:5628  추천:1  작성자: 최균선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
 
                                                           최 균 선
  
    “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는 스탕달의 묘지명이다. 최초의 사실주의소설로 추앙되는《붉은것과 검은것》을 써서 왕정복고시기의 특권계급에 도전했고 자신처럼 아무구속도 받지않고 자기의 행복을 추구하는 정열적인 주인공들을 소설들에 등장시키 면서 아무리 보기싫은것이라도 사람의 마음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였기에 뒤늦게나마 세계문학의 백화원에 길이 향기만방하게 되였던것이다.
    그의 이색적인 묘지명은 감성적인생, 가정과 사회에서 행복을 얻는 전통적비결을 마음에 항상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거기에 결코 따르지 않은(또는 따르지 못했던) 한 작가의 생애를 상징하는것으로 해석할수 있다. 문헌에 따르면 그는 일정한 주소나 직업을 가져본적이 없었고 집도, 자식도 없었으며 심지어는 애인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천성적으로 사람들과의 친밀한 관계를 갈망했고 대다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간절히 우정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런데 그의 친구들은 진정한 공감을 보이지 않았다. 이런 어경에서 그에게 왜 한사코 글은 썼는가고 물었다면 어떻게 대답하였을가? 이른바 불인지심(不忍之心)에서일가? 문득 열혈의 반항작가 최서해의“혈흔”의 한단락이 어방사한 대답이 될런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글을 사랑한다. 글을 짓는다. 그러나 글재주가 없는것을 나는 잘 안다. 내 글은 세련이 없고 미숙하며, 내글은 현란치 못하고 난삽하며 내글은 맑은하늘, 밝은 달같은 맛이없고 흐린련못 진흙같이 틉틉한줄 잘 안다. 그런데 나는 글을 지으려고 애쓴다. 나는 다만 내가슴에 서리서리 엉킨 뜨겁고 의로운 정을 쏟치면 족할뿐이다. 세상이야 웃거나 욕하거나 나는 내아들을 사랑한다. 내아들이 잘나서 사랑하는것이 아니라 내 고통을 말하여 주는것은 오직 내아들 (창작)뿐인 까닭이다. 내아들은 참말 못났다. 세상에 보이기 무섭게 못생겼다. 그러나 그는 내고통을 알고 말하여준다. 나는 그러므로 사랑한다. ……”
    구구절절 가슴을 울리지만 “나는 내아들을 사랑한다.”는 생각을 마음에 담지 못한다. 스스로 사랑한다고 말할만큼의 글이 아님을 잘 알기때문이다. 하기에 남들이 곱게 보아주었으면 하는 사치한 생각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글짓기에 몰두한다. 쥐도 한모뚫으면 성공한다고 해서도 아니다. 장끼가 아닌 아집인가? 새벽이 되여지면 수탉이 절로 우는것과 같다고 한다면 좀 웃기는 비유가 되겠지만도 하여간 저도 모르게 제소리를 내고싶은 욕망인것은 자명하다.
    즉 표현욕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는것이라고 할수도 있다. 어떤 생각이 떠올라 그것을 세상과 공유하고싶은것은 물이 도랑에 이르면 절로 흘러가는것과 같다고나할가, 참으로 세월의 흐름을 모르는것이 사람의 정신이라 할것이다. 사람은 부귀빈천을 막론하고 자기생명의 가치를 지닌다. 인생을 살고있다는 점에서는 대동소이한 존재이나 어떠한 삶인가는 각자의 취향과 가치추구에 따라 그 양상은 다소 달라진다.     
    무명인이라도 자기 삶의 흔적을 남기는 수단으로는 글이 제일 확실하다고 하겠다. 글로써 자기 존재의 의의를 발굴하면서 나름껏 가치실현을 할수 있기때문이다. 만일 어떤 삶이 가치있는것으로 평가되여 후세에 전할만 하다면 글로 남겨진다. 최고를 바라지는 않고 소신껏 살아가는 자국을 남기려고 자청한 고생이지만 나로서는 유익한 추구이다. 사람은 그저 생명체가 아니라 느끼고 생각하는 정신적존재이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은 글을 쓰는 사람이든 아니든 모두에게 존재의 의거가 된다. 생각이란 그 자체가 그의 인간상과 동일시되기때문이다.
    그만큼 생각하는 기능과 가치를 중요시했음을 뜻한다. 가치롭다는것은 물론 나만이 아닌 보다 큰 범주로서의 공동체 즉 사회적차원에서의 유익함을 뜻한다. 인간의 삶은 대동소이하나 구체적인 인간의 모습을 부각함에서 그가 써낸 글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증명사진”이 될것이다. 글은 유한한 생명을 정신적으로 연장하려는 바람직한 작업이요 생명의 횃불이 타오르는 또 다른 삶의 풍경선이라 할것이다.
    베이컨은 “글을 써라, 그렇지 않으면 죽어사라져라”는 지극히 극렬하고 신랄한 말을 한적이 있는데 살아있는 삶을 글쓰기와 동일시하였고 글쓰지 않는 삶을 죽음과 같이 여겼기에 살아있으려면 글을 쓰고 죽음과 같은 삶을 하려면 글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일것이다. 보편성으로부터 말하면 극단이지만 아마도 글을 쓰려는 사람들에 한한것인듯싶다, 아니면 “국외인들”에게는 불공정할테니 말이다.
    산이 있기에 등산하듯이 글이 있음에 글을 쓰는것이다. 뜻이 있는 이는 상황에 따라 글을 쓴다. 쓰려는 정신이 있기에 쓰는것이다. 모르긴해도 늘 생각하며 갈래갈래 이랑을 지어놓고 무언가 심어 창조의 열매를 맺고싶어하는 이들이 글을 쓸것이며 안쓰고는 못배겨서 쓰리라.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는 말의 진의가 심중에 깊이 배겼을 때 글쓰기의 묘미와 의의가 감관속에서 굽이굽이 메아리칠것이다.
    어쨋건 문화적으로 자기를 표현하는 바람직한 일은 글을 써서 발표하는것만큼 더 보람찬것은 없다. 생명충동으로서의 문자표현은 정신생활을 리드하고 심령세계를 꽃피우는것만은 사실이다. 본능적충동이 멈추지 않는한 운필이 멈춰지지 않을것이다. 로심초사해야 하지만 또 한가지 즐거운 인간수업인 글짓기이다.
   작가에게 글쓰기를 묻는것은 그의 인생 전체를 묻는것과 같다. 왜냐하면 글쓰기 자체가 작가의 인생이기때문이다.왜 발표하냐? 명예를 위해서?글을 지어 남에게 유익한 계시를 주려고? 지금같은 자기본위주의시대, 누가 누구의 말에 귀가 솔깃해 하랴만 그런줄 알면서도 그냥 이른봄 달래캐듯 글밭을 파헤치는것은 “제 잘난멋에” 고집하는 생명분투인가? 돌밭을 갈고있는 소의 고역은 선택이 아니라 숙명이다.
    글짓기에는 부수적으로 다변적인 기능이 따라야 한다. 효과제일주의가 아니라도 결과는 맺혀진다. 남보다 빼여난 글을 쓰려는 분발심도 나무랄것 없지만 자기가 이미 쓴것보다 더 좋은 글을 써내려는 정성은 갸륵하다 하리라. 그런데 누구가가 작가들의 대부분은 뻐스를 놓쳐버린 사람과 같다고했다. 일차성적인 인생길에 뻐스를 놓친다면 다른 “실패자”들과 함께 길위에 남아있을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기 생명의 내용과 절주는 그 자신의 수요에 따라 조절된다는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다. 황차 자기인생은 남을 위해서 사는것이 아님에랴, 무릇 문필을 생명활동의 일종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강렬한 의욕과 의력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 만약 정신수요가 아니라면, 자발적표현수요 즉 글로써 자아를 실현하고싶지 않다면 그리 애모쁘게 쓰지 않아도 된다. 정신수요란 그처럼 집요하고 성스러운것이다. 인생길에 일모도원(日暮途遠)이란 말의 의미는 누구나 인생말년에야 각별하게 인지된다.
    글은 문자유희인가 유희문자인가? 문자유희, 유희문자가 무슨 가치함량을 가지랴만 상품경제시대 글이 공방형앞에 진상품이 되고있는 현실은 아닌가? 스스로 좋아서 쓰는 글은 본래 상품성을 제쳐놓은 자아가치의 체현일뿐이다. 만약 금전의 후광이 문자에 투영된다면 그 문자들은 오히려 색이 바래질것이다.
   “제 갈길을 가라, 남이야 뭐라든!” 라는 단떼의 절창은 진실을 찾아걷는 작가들에게 불멸의 횃불과 같다. 스탕달이야말로 누가 인정하든말든 자신이 가야할 길을 굳건히 걸었기에“살았노라, 썼노라, 사랑했노라”는 세마디로 인생을 총화했을것이다. 붓쟁이로서 그의 인생궤적과 창작사상, 창작태도를 좌표로 삼고“살며 쓰고 사랑하리라”고 표방하는것은 가상하다 하리라.  

                                                  2014년 6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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