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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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 수상록 15 ) 나는 누구인가?
2014년 07월 02일 19시 44분  조회:5914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나는 누구인가?
 
                                                                 진 언
 
    나는 누구인가? 하는 문제는 자아론에 소급되는 문제로서 철학이나 종교 등의 모든 신념체계에서 다루고있는 심오한 생명철학이기도 하다. 한어에 나를 낳기전에는 내가 누구이고 나를 낳을 때 나는 누구인가?(未曾生我谁是我?生我之时我是谁!) 라는 물음도 불교에서 말하는 륜회의 원리로부터 제기된것인지 모르지만도,
    아무튼 자기도 모르게 어찌구러 이 세상에 왔다가는 갈때도 혼미지중에 마지막 숨을 거두는 초로인생, 더구나 자아를 상실하고 실존적방황을 하는것이 우리들의 인생의 려정일진대 “나는 누구인가?”하는 자문은 정체성 론란에 따르면서도 다양한 해답들이 상충할수 있는 엄숙한 인생주제가 된다.
    흔히 “나는 누구인가?”하는 자문에“나는 나이지.”하고 자신한다면 자신은 자기 마음속에 표상인가? 이름으로 상징되는 존재인가? 아니면 타자의 심목속에 비껴있는 형상인가? 내직업이 곧 나인가? 나의 신분, 나의 생김새, 나의 희망, 나의 욕망, 나의 신앙, 나의 혈연관계…이 모든것은 표층적인 자아이거나 허적인 자아일뿐이다.
    례하여 “당신은 누구요?”하는 물음에 “나는 ××현에 ×××장이요”하고 대답한다면 그는 자신의 직업, 직위를 자신으로 알고있는것이다. 직위가 곧 그인가? 그 직위는 한평생 유지될수 없다. 권좌에서 물러난후면 그는 또 누구인가? 그저 아무개라는 사람이 되는가? 이처럼“나는 누구인가?” 하는 명제는 충분히 성립될수 있고 도리가 있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이 자아를 대표하는지 아무도 잘 알지 못한다.
    인간촌에서 각색에 따라 수없이 부각되는 얼굴을 가지게 되는 영화배우들은 더 말할것 없고 보통사람도 누구나 두개 이상의 얼굴을 가지고있다. 공중앞에서는 물론, 일심동체라는 안해앞에서마저 본연의 얼굴을 감추기가 일쑤이다. 례컨대 외도하고 돌아온후 작은 꿀벌과 노닥거리던 얼굴은 의혹이 가득찬 안해의 눈길에 초점을 맞추느라 그렇게 달라질수밖에 없는것이다. 오로지 어두운 밤에 홀로앉아 누구의 눈길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그 얼굴이 진짜 “나”의 얼굴일가
     이러할진대 혹시 세상물정을 모르는 아이들만이 진실한 자아로 세상을 대할지 모른다. 순진무구하기에 사악이 없고 유치하면서도 견정한 애들은 제밸대로 하고 아첨을 모르기에 간교한 거짓미소를 짓지 않으며 곧이곧대로 애증이 표현되는 그 맑은눈 동자속에는 선악에 대한 경계가 뚜렷이 비쳐진다. 그러나 풍진세상속에서 자맥질하며 차차 성숙하면서 진실한 자아를 상실하고 두개 이상의 자아를 부각하게 된다.
    이 시점에서 사람은 자신을 잘 안다고 말할수 없다는것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이른바 자기를 안다는(自己自明)것은 문자상의 추상명사일뿐 실제상 근본적으로 이런 행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사람은 자기를 안다는것은 어렵고 어려운 일이다. 나 는 자기를 알면서도 속이지 않는가? 하는 자문에 대답이 명랑할 사람이 극히 적다.
     우리는 타인과의 비김에서 평가받으려 하고 그로써 자신을 확인하려드는 약점을 가지고있다. 실제상 우리의 리념은 거기에서 쉽게 융합될수 있는바 대방의 차이성을 존중할줄 알아야 하거니와 자신의 특점에서도 자신심이 있어야 한다. 그냥 비김에 열중하다보면 필경 눈이 붉어지게 되고 자비감에서 해탈될수 없다. 자신을 전기적인물로 분장할 필요도 없고 자신을 개미처럼 하찮게 여길 필요도 없다.
     사람은 흔히 자기에 대한 평가와 다른 사람에 대한 평가에서 두가지 표준이 있다. 쟈크 론돈은 “바다의 승냥이”에서 “누구나 자기를 보석으로 여기는데 다른 사람의 눈에서 근근히 다야몬든의 동소이위(同素异位)碳”에 불과하다. 뭇눈길은 그렇듯 저울눈이고 시금석이다”라고 하였다. 사실상 우리는 남의 눈길이라는 저울판에서 살고있다.
    실생활에서 자기를 잘 모르면서 스스로 자신을 잘 알고있는듯이 자처한다면 평생 자기를 알 기회가 오지 않을것이다. 누구나 자기를 속이기는 쉬우며 더우기 쉬운것은 자신을 턱없이 추대하는것이다. 그처럼 자기를 잘 모름으로써 생기는 비애는 자기를 속이는것이다. 그러니 자신을 너무 높이보지도 말고 다른 사람을 너무 낮게 평가하지도 말아야 한다. 설사 자아를 기편하고 있다는것을 알고있더라도 자신을 솔직하게 대하려는 용기를 가진다는것은 결코 용이한 일이 아니다.
    도덕교과서에는 자기를 잘 알아야 참된사람이 되는데 튼튼한 기초가 될수 있다고, 자존, 자애를 가지더라도 자기에 대해 솔직하고 충실해야 자기다운 넋을 가지고 살수 있고 운명의 타격에도 견뎌낼수 있다고, 사람이 사람이 되는 전제는 성실하게 대하는것이라고, 량심의 법정에서 자신을 투시하여 장단점을 저울질할수 있어야 한다고 씌여있다. 그런데 문제는 인생만사가 책처럼 그렇게 잘 정리되지 않는다는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똑바로 산다는것, 또 빼여난다는것은 일종 매우 높은 경계이다. 일정한 의의상에서 똑바로 선다는것은 사람이 되는 도덕이고 뛰여난다는것은 곧 인생의 지혜라 할것이다. 가까운 실례로 권력은 인품의 시금석이라 한다. 고구와같은 악인은 본질적으로 권력의 몽둥이를 휘둘러 약자를 릉멸하고 해친다. 선량한 사람은 자기에게 차례진 권력으로 민생을 살피고 약자군체를 위해 헌신하려 한다. 그러나 력래로 선량한 권력자는 쌀에 뉘만큼도 안된다는것을 력사가 읽어주고있다.
    일체 세속의 가치ㅡ권력, 재부, 명성 등은 그 자신에게 일종 쾌락이 되고 결과적으로 그 자신의 선과 악을 체현한다. 진실은 위인만이 아니라 보통사람들에게도 한가지 특징으로서 자기 인생에 대한 절실한 료해로 된다. 그로써 자기에 대해, 타인에 대해 솔직한것이 바로 자기를 잘 안다는 표징이 된다. 도덕적으로 완성된 사람은 태여나지 않았지만 량심적인 사람은 많다. 고층차적인 자아 (자성본아-自性本我)와 육체적자아(두뇌의식)간의 관계를 어떻게 리해할것인가? 이역시 난제이다.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하는 물음은 진정한 자기, 다른사람과 구별가능한 자기,“이게 바로 나입니다”라고 내세울수 있는, 자기만의 자기란 어디있으냐고 묻고있는것이다. 진정한 변별력을 지닌 내모습이라고 내세울 자기가 있다고, 그런 자기가 있다고 믿는다면 그 사람은 현재 무엇이 되여있건간에 행복한 사람이다. 사이비한 자기를 진정한 자기라고 믿고 진정한 자아를 찾았다고 한다면 그는 래일 죽어도 의미있는 삶을 살아갈 그런 행운아라 할것이다.
    반대로“나”라고 알고있던것들이 내이름으로 지칭되는 나의 가면의 얼굴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될 때“당신은 평생 속히우며 살게 될 운명일것이다”라는 말이 될것이다. 주어진 운명 즉 허울속에 자신을 가두고 편안하게 안주하다가 가면 그것이 행복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지않은 자기만의 행운으로 여기면서 말이다. 진정 오롯한 나자신, 본신진력(本身尽力)이라고 내세울 자기를 찾을수 있을것인가?
    하지만 어른아이 할것없이 진실한 그 자신을 드러내는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리유는 자기의 진면모가 들통날가봐 두려워하기때문이다. 만약 이 세상 사람들이 인생을 진정한 나자신을 찾는 과정으로 여기고 새로운 시도를 하며  사회속에 나의 진면목을 숨김없이 활짝 드러내놓고 산다면 정말 멋진 인생이 되지 않을가?
                   
                                        때때로 흐린 하늘 우러르면
                                        비방울속에 내 눈물도 있다오
                                        서풍불어 락엽이 흩날릴 때
                                        내가 누구인줄 그 뉘가 알가? 
                       
                                                         2010년 1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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