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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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언수상록 (29) 가짜시대 쏘네트
2015년 01월 16일 09시 20분  조회:5787  추천:0  작성자: 최균선
                                        가짜시대 쏘네트
 
                                                진 언
 
   인간세상은 정직보다 속임으로 가득찬 인형극장, 진실과 거짓의 계선이 갈수록 불투명해지는 현시대이다. 동전의 앞뒤면은 분명하지만 앞면이 뒤면이 될수도 있고 뒤면이 앞면으로도 될수 있다. 초침이 달리면 분침도 달리는데 초침이 가장 세밀하게 시간을 재이는가? 분침이 가장 확실하게 시간을 알리는가? 확실한것은 진실의 시계 와 가짜의 시계가 함께 돌아간다는것이다.
   사람들은 근로봉사의 상징물로 꿀벌을 칭송하지만 여름내 꿀벌을 혹사시키고  로동성과를 편취한다. 그런줄 모르는 꿀벌이 진실한가? 인간의 리기심이 진실한것인 가? 꿀은 먹기좋아하면서 꿀벌은 자칫 쏠수 있다는 경계심때문에 경이원지하는 심리, 고와서 꺾이우고 시들면 버림받는 꽃의 운명이 진실인가? 그러는 우리 마음이 더 진실인가?그 모두를 멋스러운 말로 이률배반이라 하면 정답이 되는것인가?
   가짜가 설치고 가짜가 판을 치고 가짜가 진짜의 뺨을 치고 가짜가 진짜를 걷어차고 가짜가 진짜를 궁둥이로 밀어낸다. 가짜가 큰 기침을 하고 가짜가 더 환하게 미소짓고 가짜가 진짜보다 요란한 박수를 받는다. 그래서 가짜가 대도행을 하고 가짜가 진실을 훈계하고 가짜가 참됨을 평론하고 가짜가 진실을 해석한다. 진짜보다 더 으시대는 가짜. 진짜보다 더 점잖을 빼는 가짜, 진짜보다 가짜들이 더 신명나서 챠챠!쿵쟈쿵 삘리리…잘도나 엇박자를 맞추노란다.
   갈수록 가짜가 기승부려 온통 가짜 천지이다. 가짜돈, 가짜약, 가짜상품, 가짜 졸업증, 가짜학위…진짜를 대체하는 가짜, 진짜와 방불한 가짜, 진짜와 상관없는 가짜, 진짜등에 업힌 가짜…진짜보다 가짜가 더 인기있는 현황에 감탄해야 하는가? 대관절 우린 진짜와 가짜를 얼마나  구별하며 살까? 진짜보다 가짜가 더 높게 값이 매겨지는 현실인데 사람도 진짜와 가짜가 있다면 분명하게 식별할수 있을가?
   스스의 마음가짐도 진짜, 가짜를 식별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조금 성공하고도 필요이상으로 어깨를 높이는 자에게 질시와 부러움을 동시에 보내는 우리의 이중심리가 진실이 서러워 숨어버린 이 시대의 풍경선이요 가장 그럴싸하게 거짓말하는 자가 득을 보는것이 인생현장의 번지수이다. 누군가《가가대소하는 입은 많아도 진실을 말하는 입은 적다. 터진입은 있어도 참말을 하는 입은 없다.》고 개탄했지만 거짓말하면 아름차게 득도 안겨지고 힘들도 들지 않는데 어떡할기가?
   인간의 원초적인 량심은 진실을 낳고 거짓을 죽이려 했지만 드디어 진실을 덮고 거짓을 내드는 기량을 터득했다. 누구의 심목속에나 옳고 그름을 흥량하는 눈금자와 저울은 있다. 장돌뱅이에게 저울눈을 속이면 삼대가 망한다고 량심에 경종을 울려주지만 속임수에 이골이난 그들에게는 네미덜머리이다. 우리가 보는 생활의 진실과 책에 씌여진 도덕설교는 그렇게도 다른것이다. 인젠 그것은 비애도 아니다.
   시인 북도의《비루함은 비루한자의 통행증이고 고상함은 고상한자의 묘지명이라는 절창을 본딴다면 가짜는 위선자의 통행증이고 진짜는 성실한자의 묘지명이다. 누구의 량심이 진실을 낳고 거짓을 죽이는지, 누가 거짓을 조장하고 진실을 압살하는지, 진리의 둥지에서 누가 성실을 품고 있을지 쉽게 보아낼수 없다. 속히운자 같으나 진실하지 않을수 있고 남을 속이면서 진실할수도 있으니 이률배반인가?  
   진실은 숭고함의 자매이다. 칸트는 숭고를 둘로 나누었는데 비교를 뛰어넘은 무조건 큰것을 수학적숭고라고 하고 어떤 강대한 장애라도 초월하는 위력이 있는것을 력학적숭고라고 했다. 진실은 유한성과 련계되지만 진리는 무한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칭하는 참말이란 미리 엮은것이 아니고 때에 걸맞게 내쏟는 말들의 완미함과 실용성을 의미한다. 그 목적은 설득이 아니라 감화이며 그 가치를 흥량하는것은 량심의 천평우에 놓이는 량지라는 분동이다.
   가짜는 궤변으로 강변하나 진짜는 미사려구로 수식하지 않고 이실직고한다. 그래서 속히울지언정 누구를 속이는 일은 없다. 진리가 누구를 우롱했던가? 력사를 돌이켜보면 이단시비로 남을 핍박한 자들은 모두 권력자들이였거나 진실의 외투를 걸친 위군자들이였다. 그리고 그들은 진리와 진실을 강간한 가짜들이였다.  
   나는 속히운 진짜인가? 아니면 진짜를 속이는 가짜인가? 마음 지어먹고 다른 사람을 속일때 실상 자신의 량심은 주눅이 들었을것이다. 공자는 "뜻은 크게 가지면서도 정직하지 않으며 무지하면서도 성실하지 않으며 무능하면서도 신의마저 없다면 그런 사람은 내가 알바가 아니다."라고 하였는데 그러나 그게 대수인가? 지금은 알아줄바의 어마어마한 존재로 군림하게 되였다.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입으로 수없이 거짓말을 하고 진짜인것처럼 분식하며 진짜를 속이는게 류행인데, 누구에게나 진짜일 때가 있고 가짜일 때도 있는데, 때에 따라, 대상에 따라 무치한자도 “착한”미소를 지을줄 아는데 누가 진실과 거짓을 두부모베듯 갈라놓을수 있을가? 칼도 없거니와 그럴 용기도 없다. 비리에 침묵하면 금이 아니라 페철이요 행동하지 않는 량심은 악의 편이라는것을 아무도 모르지 않는다.
   흙보살은 강을 건너지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현대화한 가짜는 흙으로 빚은 미륵보살이 아니기에 진실의 강을 무난히 건넌다. 허위를 빤히 꿰뚫어보면서도 눈을 감고있는 위선자가 많기때문이다. 빤히 들여다 보이는데도 아닌보살하는 자야말로 탄복할만한 자이다. 가면극은 원래 감정으로가 아니라 기량으로써 연기되기때문인가.
   허위는 확실히 늘 후광을 쓰고 인성에 존재하며 사람들을 현혹시키며  많은 경우 진실보다 더 많은 추종자를 가진다. 사람들에게 진실보다 허위가 더 잘 접수되는것은 결코 허위의 실력이 아니다. 사람들은 금은 아니여도 번쩍거리기만 하면 선호하는 관성이 있기때문이다. 그래서 상품에도 도금제품이 그냥 환영받는지 모른다.
   진실의 취지인 믿음은 지성의 빛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진실과 허위에 눈뜨게 해준다. 그러나 서책지식이 아니라 지성으로만 통찰할수 있다. 불보듯 뻔한 진실임에도 개변하기가 쉽지 않은것은 외적인 면만을 추구하는 사회문화가 고질적이고 또 그에 순응하기를 강요당하는데 길들여진 우리들의 관념과 사유방식때문이다.
   수천년을 굴러온 사회라는 진부한 수레에는 진짜와 가짜라는 두바퀴가 달려 같이 굴러왔고 지금도 그렇게 굴러간다. 그래서 가짜들에게 륜간당한 진짜는 오늘도 사이비한 아이러니를 낳는것이 아니랴? 민초들의 자질구레한 거짓은 개체의 도덕성에 그치지만 력사진행을 우롱하는 “위대한” 거짓은 인류의 비극을 빚는 력사성가짜다.
   인간은 진실을 말할 때도 하늘을 두고 맹세한다 하고 거짓을 말할 때도 하늘을 두고 담보한다. 아마도 하늘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자신이 참인간임을 확인할수 없음을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처녀면 다 확실인가?”하고 묻는것은 우리들의 자아신뢰도마저 확실하지 않기때문일것이다. 병아닌 병적인것, 찡그릴대신 미소짓는것, 진실대신 허위를 묵인하는것 그 모든것은 “행복해지기” 위해서이리라. 그래서 구두신고 발바닥을 긁는식으로 하나마나한 나의 언동은 하면서도 제속을 긁어놓는다.
   하다면 이렇게 횡설수설하는 나는 진짜인가? 가짜로 자신을 분장할 때가 없는가? 남들이 듣기좋아하는 말만하고 듣기싫어하는 말은 못하지 않았나 반성해보면 대답이 궁색하지만 남의 허물이자 곧 내허물일수 있기에 여러가지로 불편한 허허실실을 나름대로 조명하고 사색하며 “세변대기” 없는 로친처럼 시설질을 해볼뿐이다.   

                                                 2009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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