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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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문)《도덕교과서》 부록
2015년 10월 21일 19시 51분  조회:4939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도덕교과서》 부록
 
   일전에 모출판사에서《도덕교과서》를 내니 책뒤에 첨부할 부록을 써달라는 청탁이 왔다. 수천수백종의 교과서가 있다는것은 알지만《도덕교과서》라니 이게 웬말인 가고 반신반의하다가 점잖게 사절했다.
   내 자신이 원래 도덕수양이 높지 못하여 덕망과는 사돈에 팔촌도 못된 고리삭은 훈장인데 어찌 언감생심 교과서를 범하랴싶어서였다. 그런데도 기어이 써내라고해서 고쳐생각해 보았다. 기껏해야 부록이니 별로 압력도 받을것 없다고 여기고 떠오르는 잡념을 일필휘지하여 적으니 정정은 출판자에게 맡기려 한다.
   각설, 유가의 도통에서 말하는 동방인격에는 “인, 의, 례, 지, 신”을 포괄시키고있다. 어진자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줄 알고 의로운자는 바른 정기가 공평함을 이르고 례의가 있는자는 남을 례로 대하고 남을 축복할줄 알고 기릴줄아는 자이다. 지자란 곧 식견이 넓고 총명하고 지혜로운 자를 이르는것이고 신의가 있는자란 성실하고 남을 속이지 않는 자를 이르는 말이다.
   자고로 중국을 례의지국이라 하였다. 그러나 세월의 물레방아가 돌고돌아 3천년 흐르고 인간의 리기가 극성을 떨게 되자 인격은 더는 엄숙하지 않고 정의와 성실과 신의가 더는 사람으로 되는 신조로 되지 않게 되였다. 사기와 협잡과 허위와 가짜가 판을 치면서부터 인격의 타락이 점점 사회풍기로 되여진것이다.
   지금 량지와 인격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현대인들의 머리속에는 다만 원시적인 욕구만이 있을뿐이다. 인격이 무너졌을뿐만아니라 인성도 쇠갈되고 인간으로서의 기본감정은 선량이라든가 책임감 같은것과 점점 더 멀어지고 오히려 사악과 범죄와 손을 잡고있다. 리익을 위하여서는 육친도 가리지 않고 제명리를 위해서는 친구도  해치는 일이 비일비재이다.
   다른 사람이 불행과 고통에 몸부림쳐도 구경거리로 삼고있다. 남은것이란 오직 금전과 사욕뿐이다. 현실은 다만 금전과 사욕의 각축 마당으로 되였다. 좋은 사람이 오히려 괴물이 되여진 세상이다. 현실사회에는 이중인격의 소유자들이 점점 더 많아 지고있다. 이중성격으로 사회를 대하고 자기도 대하기에 사회책임감이란 없고 거짓말과 허풍치기로 세상과 대화한다. 제리익만 있으면 사회리익은 네미덜머리다.
   도덕은 왜 이처럼 미끄럼타게 되였는가? 어떤 사람들은 원래 자기의 가치준칙이 있었지만 온갖 유혹에 못이겨 리성과 량지와 등졌다. 혀를 꼬브리고 있을지언정 참말 을 하려하려 하지 않으며 말을 해도 신신고 발바닥긁기같이 가렵지도 아프지도 않은 말이거나 붉은찰도깨비 여울건너는 소리같은 두리뭉실한 소리를 한다.
   인성이 랭혹해졌는가? 도덕이 타락했는가? 이런 뉴스가 있다. 란주의 황하가에서 한청년이 자살하려고 하다가 사품치며 흐르는 누런 물을 보며 생각을 고쳐먹었는지 돌아서 기슭으로 나왔다. 잔뜩 호기심을 다독이며 지켜보고있던 한쌍의 남녀가 흥미있는 자살극이 그만 깨여지자 비아냥거렸다.
  《죽을 용기도 없으면서 흉내를 내는거요? 정말 못난이군…》
   이 말을 들은 청년은 주머니에서 돈뭉치를 꺼내여 갈갈이 찢어버리고는 물속에 풍덩 뛰여들었다. 자기 생명을 자살로 마치려는것은 물론 비겁한 행위이긴 하지만도 겨우 자살을 단념한 청년에게 잘 생각한 일이라고 고무하지는 못할망정 자극적인 말을 하여 기어이 죽음에로 인도한 청년남녀는 도덕이 타락했다기보다 숫제 도덕이란게 없는 저렬한 인간찌꺼기들이라고 해야 알맞을것이다.
   역시 황하가에서 벌어진 일이다. 타향에 와서 품팔이하던 한 소년이 부주의하여 물에 빠져 구원을 바랄때 강안에는 백여명의 사람들이 좋은 구경거리나 생긴듯이 손짓발짓하며 고아대고있었다. 전문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값을 흥정하고있을 때 네사람의 시민이 몸을 솟구쳐 강물에 뛰여들어 소년을 구했다. 주위에 구경군들은 머저리짓을 했다고 쉬쉬하였다.
   듣건대 대서북의 사람들은 원래 순박하고 선량하며 인심도 후해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면 너도나도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미풍량속을 가지고있었다고 한다. 그런  란주인들이 어찌하여 이렇게까지 랭혹한 인간들이 되였던가? 하긴 이런 일은 단순히 란주에서만 발생하는것은 아니다.
   이런 뉴스도 읽은 기억이 난다. 한 처녀가 높은 층집꼭대기에 서서 자살하려고 망서리고 있을 때 큰 길거리엔 사람이 인산인해를 이루고있었다. 처녀가 이슥토록   뛰여내리지 않자 아래 구경군들속에서《빨리 뛰여내리라구, 어서 뛰여내려!하나, 둘, 셋!화이팅》하고 응원하는 알량한 인간들도 있었다.
   이런 웃지도 울지도 못할 장거들을 보면서 무엇을 사색하게 되는가? 인간이 선행을 하는가 악행을 하는가 하는것은 물론 천편일률이 아니다. 목숨을 걸고 구해준 사람이 은인의 시체를 보면서도 랭담하게 돌아서고 경찰이 백주날강도와 박투하면서 도와달라고 애원해도 몇백명의 무리속에서 한 사람도 나서지 않는다.
   주은 돈을 주인을 찾아 돌려주면 오히려 오해를 사기 십상이고 자살자가 나중에 구원되면 오히려 실망한 기색으로 수군거린다. 행정사법기관에서 공민의 권리를 무시하는 현상…등등은 현대인들이 어쩌면 이렇듯 랭혹무정하게 변했는가를 자문하지 않을수 없으리라. 국민자질에 녹이 쓸고 구멍이 뚫린게 아닐지,
   상품경제시대이고 물질선행의 시대여서 그럴수도 있다고 한발 물러서서 생각하면 스스로 달통될가?《사회전변의 시기》라는 말로 사람들을 우롱하지 말아야 한다. 보편적인 도덕감의 상실과 정신신앙의 결핍은 이런 인간희비극을 비일비재로 재연시킬수 있을뿐이다. 이것은 인간사회의 비애이고 인간으로서의 수치가 아닐수 없다.
   대부분의 철학자들은 인간도덕률은 리성에 기초하고 있다고 주장한 칸트의 견해에 동의하지만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영국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말처럼 감성에 기초해 도덕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고 주장하고있다. 륜리학계에서는 보편적으로 도 덕의 올리막과 내리막질이라는 두개 관점이 대립되고있다. 쟁론상에서 현실중에 보편적으로 존재하고있는 도덕규범의 결설과 착위문제에 대해서는 홀시되고있다.
   신도가의 각도에서 말하면《도덕》이란 곧《도득(道得)》으로서 곧 사람들이 도에서 얻은 “획득”이고 덕은 인간들이 도를 추구하는 가운데서 산생된“심득”이라고 한다. 도는 어디에 없는 곳이 없다. 그러나 도덕은 어디서나 곤두박질한다.
   광의적의미에서의 도덕은 인류가 진선미를 추구하는 마음이고 협의적의미에서의 도덕은 주요하게 관념,의지 및 행위의 선악에 소급된다. 우리가 인간본성은 선하다고 정의를 내리는것은 사람이 자아와 기타 리익주체와 협조하는 능력을 구비하고 있기때문이다. 이런 능력에는 본능과 자각 두가지가 있는데 전자는 본능적인 선량을 말하고 후자는 자각적인 선량을 말한다.본능적으로 선량한 사람은 왕왕 《솔직한  사람》에 속하고 자각적으로 선량함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자에 속한다. 이 시점에서 지혜가 부족한 사람은 선량함을 갖출수 없다. “악”이란 “선량”이라는 이런 능력의 결핍과 상실을 말하기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정도가 부동할뿐 자고로 사회상에 보편적으로 존재하였다.
   인간은 나면서부터 선량하다는 주장을 전제로 한다면 선행은 일종의 능력이 된다. 《성악설》을 전제로 한다면 도덕은 이 본성적인 악에 대한 자각적인 억제이다. 이런 도덕은 서방종교식의 도덕으로서 도덕과 법률을 전제로 할 때 후천적배양을 근본으로 하는것이 아니기에 금욕주의에서 벗어날수 없다.
   도덕과 욕망은 천성적으로 대립된다. 마치 인간의 욕망은 언제나 생생한것처럼 인류의 령혼과 육체의 융합을 불가능하게 한다. 도덕은 일종 심령의 억제능력이 되여질것이 아니라 심령의 자유적력량이 되여야 바람직하다. 인성악을 전제로 한다면 그 도덕은 필연적으로 타락할수밖에 없다.
   생물학자들이 의의있는 실험을 했다. 수영하지 못하는 침팬지를 물에 빠뜨렸는데 다른 침팬지를 구했다. 벵골원숭이가 음식을 먹을 때 다른 원숭이에게 전기충격이 가하자 이 벵골원숭이는 며칠동안 굶었다. 생물학자들은 령장류의 이같은《착한》 행동이 바로 인간의 도덕률의 원천이라고 주장하고있다.
    령장류학자 프랑드 왈 박사는 인간도덕률의 기원을 원숭이의 사회적행동에서 찾을수 있다고 제기했다. 그는 모든 사회적동물은 집단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행동을 억제하거나 바꾸어야 했다며 원숭이와 침팬지의 행동에서 나타나는 이같은 억제력이 바로 인간도덕률을 형성하는 원천이라고 했다.
   하버드대학 진화생물학자 마크 하우저는 인간은 언어를 습득하는것처럼 유전적으로 도덕률을 얻게 되는 메커니즘(기구, 기계장치)을 갖게 됐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인간도덕률은 진화의 우연한 부산물에 불과하다며 동물행동에서 인간도덕률의 원천을 찾는것에 반대하는 진화생물학자도 있다.
   어느 주장이 적격인지 알배는 없으나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도덕을 전부 상실한다면 그게 원숭이나 침팬지보다 나은게 무엇일가? 도덕은 생명의 발양이고 도덕은 생명의 귀속이다. 도덕의 본질은 영원히 자률이며 도덕의 본질은 생명동력계통이지 군체정합의 률조(律條)가 아니다. 도덕적 인격을 가지고 선량한 인생을 살려는것은 량지가 있는 사람들의 추구라고 믿고있다. 특수경우에 어떤 태도를 선택할것인가는 어디까지나 먼저 자신의 량심에 물어야 하겠지만도.
       
                     2007 년 7월 24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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