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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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마래곡의 비애
2016년 04월 02일 09시 28분  조회:5234  추천:0  작성자: 최균선
                                              마래곡의 비애
 
                                                 최 균 선
                         
    사람은 살다보면 세월따라 많은 사연들이 잊혀지고 제가 한동안 살았던 고장도 기억속에서 차차 멀어지는 법이건만 인생수업을 톡톡이 받으며 살았던 고장때문이여서인지 내게는 산좋고 물맑은 마래곡의 산천과 이왕지사가 종시 잊혀지지 않는다. 더구나 계절의 섬세한 붓끝아래 그려지던 시골의 풍경화가 마냥 동화처럼 떠오른다.
    마래곡은 차길에서 백칠십리, 아흔아홉굽이 늘찬 오랑캐령을 넘는 두만강변의 산간벽지다. 옛그날, 쪽박차고 강을 건넌 흰옷입은 서러운 그림자들이 지쳐서 쓰러지던 한많은 고개의 길로 지금은 뻐스며 자동차들이 드문히 넘나들며 문명사회의 냄새가 점점 짙게 실려들지만 아무튼 산골도 심심산골이다.
    마래곡은 향이라지만 40여호의 합전촌, 공사소재지인 늪득촌, 60여 호되는 하마래촌, 산비탈에 자리잡은 50여호의 조동촌 네개 자연촌으로 이루어진 연변서도 제일 작은 명동(후에는 부유향)공사이다. 백호의 늪득촌이 공사소재지이다. 그러나 참새는 작아도 오장륙부가 구전하다고 조그마한 공사에 문화소, 농기관리잠, 계획생 육위원회, 과학기술보급소 량식관리소 등 없는 기구가 없다. 그리고 시내나들이를 자주 못하는 시골의 젊은녀인들이 있는껏 차려입고 모여드는 곳인즉 공소사여서 소재지로서의 냄새를 그럴듯이 풍기고있다.
    굶어죽어도 자식공부는시킨다는 배달민족의 전통은 이 골령에도 뿌리내려 소학교만이 아니라 산중턱을 까고 절당같은 중학교까지 지어놓아 조그마한 공사소재지에 이체를 돋군다. 만약 강변쪽에 자리잡은 소학교운동장에 오구작작 조무래기들이 뛰노는 모습이 없고 스믈네층으로 된 중학교의 돌층계를 덕지큰 아이들이 오르내리지 않는다면 이 마래곡은 한적하고 스산하기가 말이 아닐것이다.
    도시에서는 얼굴을 갖고 산다지만 시골에서는 인심으로 산다. 골사람들은 누구나 다 조그마한 소망을 안고 산다. 도시에는 극적인 맛이 있고 시골에는 그런게 없지만 서정만은 짙게 물들어있다. 도시처럼 시끌벅적한 유혹이 없다보니 시골에서는 누구나 다 착해지고 후덕을 먹고 살게 된다. 더구나 청일색으로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이 조그마한 시골향은 인심도 자별나게 풋풋하였다.                       
    내가 이 마래곡에 간것은 20세기 80년대의 첫해, 문화혁명의 몹쓸 흑풍이 갓지 나가고 십년나마 들볶이던 사람들이 조금 안정을 찾아 천륜지락을 펴기시작한 개혁개방의 전야였다. 팔월의 해가 벼이삭을 어루더듬고 있는 어느날, 두만강기슭을 따라 헐씨근거리며 달리던 뻐스가 마래곡(부유향)에 도작착하자 나는 구식드렁크를 들고 굴러떨어지듯 차문에서 튕겨나갔다. 하루 한번 다니는 뻐스건만 마침 송이버섯철이여선지 차객이 달랑 나하나뿐이였다.
    산설고 물설은 고장이지만 산기슭 둔덕위에 질서있게 지은 기와집들이 오붓하게 모여앉은 벽촌의 풍경에 취해버려서 곧추 마을로 올라갈 생각도 잊고 떼목이 떠내리는 두만강가에 퍼더버리고 앉아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 몹쓸 상표때문에 긴긴 십칠년을 모아산아래에서 밭고랑타고 세계를 내다보다가 마침내 밝은 정책이 시달되여서 숙망의 교단에 올랐고 일년만에 국가정식교원이 되여 이 마래곡에 전근되였다. 늦게 핀 나의 꿈이 여기 시골학교에서 이어지게 되였지만 서운한 생각이 별로 없다.
    어쩌면 이 심심산촌이 리상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름의 청산과 맑은 골바람에 먼지끼였던 페부를 닦아내고 종을 쳐서 공부철을 놓쳐버린 시골아이들을 불러들여 글을 가르치고 밤이면 유난히 많고 빛나는 별들을 바라보며 산새들이 우는 사연에 귀기울여보는 랑만이 있어 좋을듯싶고 인간의 마음이 진실로 얽히는 보다 원시적인것이 또 하나의 사는 멋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시골에는 한여름 끝자락의 긴긴 해도 지고나면 황혼이 빨리도 기여든다. 야색이 완연해지면 하늘가에 별무리들이 쏟아져내릴듯 흐르고 그런 밤하늘이 더없이 정취를 안겨줄것이다. 석양의 잔광에 물들어있는 두만강건너 변강마을을 얼없이 바라보며 인간의 끓는 정열과 욕망이란 너무도 사소한 생명의 빛에 지나지 않는다는 엉뚱한 생각 이 떠올랐다. 인생의 그 모든 고뇌와 불행은 자기 적성과 능력에 맞는 직업을 찾지 못하고 싫은 일을 하면서 생명을 소모하는데서 비롯되지 않는가?
    도시에는 인간들의 서툰 인생만화에 진저리쳐질수밖에 없지만 여기엔 대자연의 걸작을 마음놓고 볼수 있을것이다. 그 소란스러웠던 청춘시절을 아심아심 망각속에 처넣으며 호젓하게 저무는 학교마당에 앉아서 상념을 보듬는것도 일종 향수일수도 있으리라. 나는 그렇게 교원절반, 농민절반의 시골학교 교원이 되였고 세월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고 소처럼 살게 되였다.
    계절은 도르래기돌듯 그렇게 잘만 돌아갔다. 시골에는 봄이 노량으로 찾아들건만 한왕산 백바위굽에 뿌리깊은 진달래는 봄이 깃들기전에 저혼자 련정에 불타는듯 싶다가도 속절없는 설음속에 스러져 락화의 한을 뿌리에 묻어버린다. 때에 여기저기 제멋대로 자란 개살구나무들이 화사한 웃음을 피워놓고 스쳐가는 바람을 휘젓는다.
    겨우내 꽁꽁 얼었던 몸을 풀고 주절이주절이 옛이야기를 흘리는 두만강기슭의 버드나무에 통통 살이 오른 버들개지들이 다 뛰여내리면 늙은수양버들도 휘휘 긴 머리를 풀고 고독에 흐느적이고 개나리, 함박꽃 싱그러운 대동골 깊은 숲에 철늦은 뻐꾸기울음소리 애를 끓여준다. 변덕많은 4월을 밀어내고 흐믈거리던 5월도 언뜻 스쳐지나 6월의 진초록속에 슬며시 숨어버린다.
    어느새 여름이 지글거린다. 매미가 극성스레 울어댈 때 마을에 개구쟁이들의 발가숭이 몸뚱아리가 두만강가에서 고동색으로 번들거리면 마을앞의 다락논에는 벼이 삭들이 노란물감을 들이기에 서두른다. 뒤미처 더기의 조밭에머리에 헌삿갓을 쓴 허수아비가 헐렁한 팔소매를 펄럭거리며 참새떼의 성화를 말리느라 역사질이다.
    가을은 쫓기듯 물러가고 대동골에 새벽어둠을 쫓으며 열을 내던 송이버섯캐기가 끝나고나면 하늘은 건뜻 들리기 시작하고 산을 넘는 선들바람이 아침저녁으로 골골이 단풍을 불태운다. 그랬다. 계절이 멋대로 오고갈뿐 늙지않는 청산은 예이제 말이 없 다. 그러나 세월이 차차 흐르면서 도목나무에 이밥먹던 시골의 멋도 슴슴해지고 번거로운 세상을 멀리하고 청산에 묻혀 살리라던 랑만도 색바래여갔다…
    어느 여름밤, 대동골에 고기발을 놓고 골령을 새여나가느냐? 그냥 산골귀신이 되 느냐를 두고 속을 끓여본적이 있다. 한시간남아 낑낑거리며 고기발을 놓고나니 달빛 이 골어귀를 꽉 덮어버렸다. 마라초한대 피워물고 활활 타는 우등불길을 바라보노라니 모기떼에 생각마저 뜯기우면서도 정감만은 연기처럼 타래쳐 오른다.
    교교한 달빛에 청산은 말이 없는데 벽계수는 웨 그리 주절거리는지…물흐르는 소리에 황진이의 시조가락도 떠내린다. 청산은 내뜻이요 록수는 님의정/ 록수흘러 간들 청산이야 변할소냐/ 록수도 청산못잊어 울어네여 가는고? 가지말라고 막아선 청바위 옆구리를 내지르며 멈춤없이 내달리는 록수는 오로지 창파만리가 그리워 춤추는것일가? 은은한 달빛의 포옹마저 없다면 청산도 가버리고만 벽계수가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 고독을 울며 몸부림치리라,
    활활 타오르는 우등불에 어둠이 조금씩 밀려갔다가 다시 다가오는데 벽계수도 한번쯤 되돌아 봄직도 하련만 가노라 휘젓는 무정함이 차디차다. 벽계수는 좁은 골령에 얽매인 몸이 아니라고 하지만 청산의 청고함이 없다면 벽계수의 맑음도 없을것이요 청산에 반석같은 뜻이 없다면 님의 정같은 록수도 미련이 없으리라.
    청산이 하나의 바이올린이라면 록수는 가슴을 후벼내는 기묘한 음을 울릴수 없고 청산이 피아노라면 가노라 춤추는 록수는 아름다운 건반을 두드려댈수 없으리니 청산과 록수는 잘도 어울려서 적막한 무주공산에 청산별곡을 연주하는것이 아니랴, 아하! 조화로운 대자연의 교향악은 여기 명동산골 계곡에서 시작되는것이로다.
    달이 휘영청 밝으니 별들도 달그림자속에서 수집음 타는지 마냥 눈을 깜박인다. 별무리의 옹위가 없다면 달은 혼자라도 저렇게 도고할가? 반딧불 꾀여드는 숲속에서 부엉이가 시골의 고독을 운다. 슬픈 그 울음속에 울어서 피가 터진 진두강 가람가의 누나의 한이 얽혀서 청산은 이 밤도 그렇게 숙연해진것일가?
    밤이 깊도록 고즈넉이 지켜앉았건만 어서 떠내려와서 걸리라는 산천어는 어느 바위짬에서 새우잠이 들었는지 월색만 은은히 고기발에 넘치는데 어이 감개무량한지  나도 모른다. 만년을 굳어서 침묵을 쌓고있는 청산만큼 록수의 유유함에 정이 실려 내려서인가? 님의 정이야 흐르거나 말거나 어디서 떠왔는지 외로운 밤구름 한송이 격정없이 명월을 희롱하며 떠날줄 모르는 그늘진 달밤이 마음을 한결 처량케 한다.
    자정이 되도록 잠들줄 모르는 저 부엉이는 누구를 기다려 두눈을 밝히고 있을가? 빈마음에 졸음만 가득담아 흘리며 산곡간을 걷는 시골선비의 발걸음에 달빛만 휘감기는데 골바람이 밤끄트러기를 내쫓느라 휘휘…새벽휘파람을 나무가지에 걸고있다.   거듭날수 없는 청산아래 삶도 시들해졌건만 심야의 시골서정은 생생하기만 하다. 이 새벽 한많은 두만강의 목멘물소리를 귀전에 걸고 이슬젖은 발길에 하염없는 생각을 즈려밟는다는 자체가 진정 시골의 운치있는 서정임에는 틀림없다. 
    나는 왜 이 마래곡에 와야 했던가? 간판은 부유향중학이라 하지만 전교학생이 통털어 56명이고 내가 맡은 반에 학생은 달랑 열셋이다. 그동안 버덕에서는 느끼지 못한 시골의 서정과 인심의 풋풋함을 만끽하면서 푸른 꿈이 푸들치는 시골의 가슴들에 래일의 삶을 준비시킨다는 의로움과 랑만도 역시 색바래기 시작함을 부끄럽게 느낀다. 분명 비둘기패라는 아이들의 푸념은 면하지 못할것같다.
    자기가 하는 일에서 보람을 캐는 사람은 이 시골에서도 행복한것이리라. 그런데 나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소를 살찌우려면 골로 들어가고 자식을 사람을 만들려면 버덕으로 나가라던가? 왜지밭으로 나가기 시작한 아들놈의 장래가 걱정되여 리기심이 머리를 들기시작한것이다. 마음이 떳떳하지 못하면 목소리도 맑지 못하며 마음에 꺼림직한게 있으면 눈동자가 맑지 못하며 다른 눈길을 감히 마주하지 못한다. 나는 자기를 숨기지만 아이들 앞에서 목소리가 흐리지 않았으며 눈길이 당당한가? 자신을 이기는 자가 가장 뛰여난 승리자라는데 나는 분명 자신에게 지고있다.
    값진 인생이란 무어냐? 반생을 허위허위 걸어온 자신을 돌이켜보면 모든것이 허무하다. 무엇을 찾았고 무엇을 잃어버렸던가? 왜 그렇게 익숙한것같은 세상에서 늘 낯선감을 짓씹어야 했는가? 이 심심산촌에 들어와 귀와 눈을 막으면 시끌벅적한 세상 을 도피할수 있을가? 무엇을 도피할수 있단말인가? 망연자실함속에서 바라보면 모든 것이 다 그것같고 모든것이 그것같지 않기도 한데…
    물욕에 매달려 살면서도 자신의 마음도 가꾸는 삶은 더없이 바람직하지만 자기의 마음을 잘 가꾼다는것은 그만큼 어려운것이다. 그러나 자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바른 마음을 지니고 살아갈수는 있다. 사람들은 출세하여 명예와 지위를 다가지고 사는것 만이 행복인줄 알고 “벼슬도 싫다만은 명예도 싫어” 홀가분한 마음으로 사는 무명인 의 즐거움은 알지 못한다.
    탐욕에 의지도 물렁물렁해지고 지혜가 녹쓸며 인자하던 마음도 잔악해지고 깨끗하던 마음도 시궁창이 된다. 그러나 탐욕에 매달리지 않고 사는것이 세속에 얽매이지  않는 일종 삶의 방식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은 내내 마음이 어두운 사람이다. 산다는 즐거움이 먼곳에 있는것은 아니다. 성실하게 사는것이 바로 행복한 삶이다. 하지만 성실하게 산다는게 또 얼마나 어려운가
    세상에 불성실한 사람이 많은데도 남을 믿는것은 바로 자기가 성실하기때문이다. 세상에 성실한 사람이 많은데도 남을 의심하는것은 바로 자기가 성실하지 못하기때문이다. 선악의 주인은 마음이다. 모든 등불가운데는 진실의 등불이 제일이며 모든 마음병을 치료하는 약중에는 진실한 말이 제일이다.
    사람으로서 진실성이 없다면 허수아비이다. 하는 일마다 헛수고를 하게 될것이다. 또 세상을 살아가는데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면 세워놓은 장승과 같아서 가는 곳마다 충돌하게 될것이다. 그리고 무위도식은 마음을 검게 하기 쉽다. 허황한 욕망에 얽매이지 말고 하루를 살아도 성실하게 살아가라. 장래의 희망이나 리상도 요긴하 지만 성실하게 사는것이 더욱 중요한 일이다.
    나는 자신에게 설교한다. 자신을 억제하고 항상 절제하는 사람이 되라. 백년도 안되는 인생에 세월은 덧없이 빠르기만 하다. 나는 얼마나 많은 어제를 살았던가? 이제 얼마나 많은 래일이 남았는가? 묻고 해답해도 결국 오늘이란 현실 속에서 살아 가고 있을뿐이다. 삶의 과정은 결국 무언가를 구하는 과정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뜻은 참된 자기를 찾는데서 열린다. 자기를 찾는다는것은 뜻을 굽히지 말라는것이지 잔뜩 높게만 걸라는것은 아니다.
    나는 자기 허물은 모르고 남만 탓하고있으니 우리안에 돼지같지 아니하며 제입을 잘 가꾸는것은 잊고 석마를 돌리는 나귀를 웃는격이 아닌가? 그렇게 마음이 오락가락 하다가 마침내 5년세월을 몸담그었던 부유중학을 떠나고야 말았다…
…그동안 도문5중, 도문시교원연수학교를 거쳐서 연변사범학교에 오기까지 13년 세월이 흘렀지만 마래곡을 잊은적이 없었다. 그래서 기회만 있으면 찾아보려 하였다.
    1996년도5월, 두번째 마래곡행차는 룡정시북신소학교의 10여명 글짓기애호가들에게 시골체험을 시키기 위해서였다. 산은 옛산이요 두만강도 그 두만강인데 마래 곡의 변화에는 내심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삼합향과 합병하다보니 호기롭던 향정부 의2층건물도 텅비고 내가 4년을 임대맡아 경영하던 공소부식당, 려관도 문에 널 판지들이 붙어있고 북적이던 공소사앞마당도 한산하였다. 그동안 산기슭에 덩실하게 올라앉아 시골에 문화향기를 풍기던 부유중학은 삼합중학교에 합병되고 얼마남지 않은 소학교꼬맹이들이 높다란 돌층계를 가담가담 오르내리고 있었다.
    꽃피는 5월, 인간세상이야 흥망성쇠에 지쳐있든 시골의 봄은 예이제 흥그럽기만 하다. 산기슭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마을의 빈집도, 아직 시골살림을 걷어내지 않은 집들도 오야꽃, 복숭아꽃, 살구꽃 만발한 그속에서도 한산함을 감추고있다. 도시엔 얼굴이 있지만 시골엔 서정이 짙어서 좋다고 생각했던 나자신도 거짓말쟁이가 되였다. 멋대로 흘린 랑만은 묵은 시줄속에 남아있을뿐 골령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격세지감 과 소외와 적막과 황페와 괴로움만이 진짜여서 울며겨자먹기로 살아가리라.
   체육교원이던 최선생은 향교육보도원도 그만두고 그냥 사무한신 월급쟁이로 마래곡에 남아있어서 주숙을 걱정하지 않을수 있었다. 집은 옛날 변방파출소 숙사자리 였다. 저녁을 치르고 마당에 나앉아 옛날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애젊던 최선생도 장년이 되여 있었고 손은 농민들의 손보다 더 투박해졌다.
    ㅡ 이 큰집을 혼자 차지하고 사니 괜찮소그려
    연길시내에서 산다지만 그냥 집고생을 하는 나로서는 너렁청한 집이면 무작정 부러워했다.
   ㅡ 글쎄요, 좋은지 어쩐지…변방파출소가 저아래 소학교를 차지하고 내려가다보니 이 집이 비여있길래 들었습니다만 이 집에서 살고싶은 마음이 싹 없어졌습니다.
   ㅡ 왜서? 이런 좋은 집을 두고…
   ㅡ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번지기도 싫지만…아래쪽 절반은 원래 마선생이 들어살던 집이였는데 작년 여름에 살인사건이 난후 우리 집사람이 딱 질색해 합니다.
   ㅡ 아니? 살인사건이 나다니요?
   ㅡ 최선생님도 마선생을 잘알지요?
   ㅡ 그래 알구말구요, 내가 여기를 떠날 때 대신 사람을 찾아놓고 가라는 바람에 고중을 갓졸업하고 집에서 빈둥거리는 그를 민반교원으로 추천하지 않았소?
   ㅡ 그랬었지요, 그런데 그하고 이 마을에 다른 청년이 강건너마을 사람과 금장사 를 하였는데 작년 여름 어느날 밤, 금을 가지고 건너온 그 사람을 죽이고 손잡이 뜨락또르에 싣어다가 두만강여울목에 처넣었답니다. 밤중에 뜨락또르소리가 나길래 이상하다 하면서도 옆집에서 살인만행이 생길줄은 꿈에도 생각못했습니다.
   ㅡ 그래 어떻게 되였소?
   ㅡ놈들 생각에는 시체가 저쪽 기슭에 떠가려니 했겠지요. 그런데 우리쪽에 떠내려 온것을 방목군이 발견했지요. 혐의범인 그자들을 붙잡으려던 날, 마씨는 버섯캐려 산에갔다 내려오는것을 입빠른 한 아낙네가 귀뜸해서 그길로 내뺀것이 지금 행방불 명이구요 다른 한놈은 납짝 체포되였는데 판결이 났는지 어쩐지 모름니다.
   ㅡ 허허 참, 법없이 살수 있을 어진 사람들이였는데…인심이란게 이렇게 각박해질수 있단 말인가? 정말, 믿어지지 않네그려.
   ㅡ 글쎄말입니다. 그 새끼도 마음은 어지였는데…차차 돈맛을 들이더니 학교에 안착하지 않고 그냥 겉둥치기 한다했지만 일이 생기기전에는 그렇게 극악해질줄은 몰랐습니다. 들을라니 량심이 없이 강을 건너온 녀자들도 몇번 팔아먹었다더군요.
   ㅡ 에이, 인심한번 더럽게도 변했구려, 돈이란게 인성도 비틀어버리긴해도…
   ㅡ지금 마을인심도 황황합니다, 인제 뭐 볼게 있어야 이 산골서 살지요? 후유ㅡ
   세월이 흘러도 그냥 아름다운 추억속에 새겨져있던 마래곡에 드리운 음영으로 하여 나는 기분이 많이도 찜찜해졌다. 애들을 데리고 한왕산에도 오르고 시골얘기랑 해주면서 며칠 묵으려했는데 다시 생각해봐야 했다. 애들이 알면 기겁초풍할 흉집에서 빨리 떠나야 하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일찍 일어나 마을앞 큰길을 바장이며 정들었던 시골마을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때에 마침 낯선 중년사나이가 소를 몰고나왔다. 아마도 아침 이슬풀을 뜯기려고 나온것같았다. 산골이 쩌렁쩌렁 울리게 영각하는 소가 어찌나 호 함졌던지 저도 모르게 눈길이 박혔다. 원래 반평생 소와 씨름하던 농부였고 부유향에 서 일등둥글이도 사양한 기억이 생생한지라 소라면 그저 스쳐보지 않는 나였다.
    그래서 짐짓《참, 소를 잘 키웠습니다그려》하고 감탄에 칭찬을 실었더니 소의 주인은 어리벙벙해서 나를 쳐다보기만 하다가 쓴외보듯 하고는 소궁둥이를 철썩치며 지나쳐버렸다. 내가 무안한김에 게두덜거리는데 마침 담배피우려 나온 최선생이 다가 와서 벌쭉 웃으며 말했다.   
    ㅡ 저사람이 한족입니다. 조선말 하니 알아들을수 있겠습니까?》
    ㅡ 뭐라구요? 아니, 원래 청일색으로 조선족들만 살던 마을이였는데 언제 한족 들이 이사왔단 말이오?
    ㅡ이사온것이 아니라 최선생님도 잘 아는 ×××네 “머슴”이지요. 과수원도 도맡고 논밭도 도맡아 대신 농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집이 한둘이 아닙니다.
    ㅡ그 사람은 머슴부리며 뭘하고 살게?
    ㅡ한국서 돈을 꽤 벌었다고 연길서 노래방인지 커피숍인지 경영한다던데 자세한 내막을 잘 모르겠습니다. 집과 밭을 다 저사람에게 맡기고 자주 오지 않고요…
나는 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시골의 변천이 어느 정도로 심각한가를 짐작 하고도 남았다…곳곳에 흘러가는 조선족농촌마을. 이 산골이라고 례외일가…
…몇년후, 부유중학교에 있었던 동업자들이 오래간만에 명동에서 기념모임을 가지게 되였다. 뻐스에서 내리자 나의 눈길이 찾은 곳은 버릇처럼 산중턱에 덩실하게 앉았던 학교였다. 그런데 이럴줄이야, 시골의 유일한 문화상징물은 온데간데 없었다. 나는 단걸음에 학교의 빈터로 치달아올랐다. 갓허물어갔는지 잡초는 별로 무성하지 않았다. 쓸쓸한 달밤은 아니여도 저도모르게 곡조가 틀리는 노래가락이 새여나왔다.
    황성옛터에 밤이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서린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가엾다 이내 몸은 그무엇 찾으려고/ 끝없는 꿈의 거리를 헤메어 왔노라 /성은 허물 어져 빈터인데 방초만 푸르러…옛가락이 아무리 처절하고 보는 이들의 마음이 아무리 아픈들 시대의 조류에 흘러간 시골중학교의 옛모습을 어찌 찾을수 있으랴,
    점심을 먹으며 나는 또 최선생에게 몇년전에 내가 보았던 그 황둥글이의 임자에 대한 후일담을 캐물었다. 스토리는 간략하고 결과만 말한다면 그때 그“머슴”이 마침 내는 이 마을에 뿌리박고 꽤 오목하게 살고있다고 하였다. 원래의 주인은? 내가 붓쟁이의 통병인 궁금증에 의문의 갈구리를 연신 걸었더니 생각있으면 직접 ×××를 만나서 소설감이나 얻으라 하였다.
    …저녁을 먹고 나는 슬며시 산촌변혁의 주인공이 될수 있을 ×××를 찾아나섰다. 최선생이 가리켜준 헌집을 찾아가니 삽작문은 열려있는데 주인은 없었다. 누군가가 저 서산기슭 소나무아래서 담배를 피우고 있더라고 알려주어서 허위허위 찾아올라가니 정말 기억의 쪽문가에 낮익은 내이야기의 주인공이 눈에 안겨왔다.
    내가 옛고장의 산천구경을 나왔다가 우연히 만난듯 알은체하고 담배를 권하며 빙빙 에돌아 이왕지사로 이끌어갔더니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은 원래 그리 친근하지 않는 사이에는 자기의 치부를 드러내기 꺼려하는법이다. 하지만 구정 이 신정이라 드디어 곡절많은 사연에 자기의 속심까지 조금씩 털어놓았다…
    …마을사람들 앞에서는 잠시적인 귀향이라고 어물어물해 넘기지만 돌아앉아서는 눈물을 삼키며 한탄할수밖에 없는 자신의 여생이 지겹다고했다. 그는 후회하고있었다. 나는 시대의 락오자인가? 아니면 비참한 실패자인가? 하고 부르짖을때마다 그저 주먹 이 쥐여진다. 뜻대로 되여지는 인생이 아닌줄 왜 모르랴만 덕대돈을 버는자도 따로 있는것이다. 아니면 제땅이라도 있어야 하는데 운명의 낭떠러지는 출국의 길에서 시작되였으니 비참할수밖에 더 있으랴, 시대는 자유경쟁의 살기를 띄고 저만치 훌쩍 훌쩍 뛰여간다. 아픔이 응어리진 가슴속에서 허무, 허무만이 나뒹군다.
    당당한 도시민이 되여 떵떵거리며 살줄알았더니 이젠 꿩구워먹은 자리가 되여버린 삶의 터전이요 쪽지떨어진 조롱박신세가 되였으니 앉으나서나 살아갈 근심만 작두질하고있었다. 요모양 요꼴이 될줄 알았더면 차라리 한국돈벌이를 마치고 그길로 귀향이나 했더면 할버지의 피와 아버지의 땀에 절은 가원을 잃지나 않았을것을 이젠 정말 한지에 방아를 걸게 되였고 후회막급도 궁지에 이른셈이다…자칫 도로 그 한족 의 “머슴군”이 되지 않는다고 장담할수도 없는 그의 처지였다.
    그는 날마다 해저무는 산기슭에 앉아서 3대째 내려오며 오붓한 시골살림을 꾸리고 시름걱정없이 살던 덩실한 기와집을 굽어보며 오열을 씹고있다. 시골의 서정과 맑은 대기속에서 성스럽기까지 하였던 감각도 일장춘몽이였던가? 밝은 광환속에서 흥청거리며 물질문명을 내세우는 인간들의 내속을 다시금 돌이켜보니 자기 인생이 더없이 슬퍼지고 혼자만이 이 시대에 배반당한듯 싶어져서 가슴이 막 부글거린다.
    마치 빛이 잘 새여들지 않은 깊고깊은 해저에서 침몰선의 용골을 붙안고 웅심이 발발하던 출국의 초행길을 돌아보며 한숨만 비틀어야 하는 자신이 얼마나 용렬하고 경멸스러운지 모른다. 생각할수록 분통이 터지고 쓰디쓴 웃음이 실실 새여나오는것을 주체할길 없었다…….
    …그가 겪은 이왕지사를 다는 듣지 못했지만 그의 심정만으로도 가히 짐작할수 있었다. 현재의 처지와 스스로 자초한 허무함에 시달리는×××는 물레방아 돌아가 듯 바뀌는 계절에 더구나 심신이 비틀어져있었다. 세상돌아가는 꼴에 환멸을 느끼고 멀직하니 물러나와 인간의 본연대로 시골에 묻혀사는 여유로운 삶이 아니라 완전히 실락자가 되여버린 자신이 바보스러웠다고 허탈감에 후회를 덧쌓있었다.
    여름의 푸른 산골짜기와 시원한 저녁바람이 그의 재가 앉은 가슴을 식혀준다. 인간의 락원은 결코 번거로운 도시에만 있는것이 아닌줄 그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인간 의 마음이 진실을 따라 움직이는 원시상태에 이른바 사는 즐거움이 자라는것이다. 욕망과 경쟁, 유혹과 허영이 꿈틀대지 않는 곳은 아직까지는 심심산골 이 한적한 마래곡에 있다는것을 확신하게 되였을 때 희망의 렬차는 이미 몇굽이를 돌아간 뒤이다.
    나는 어떤 련민이 섞인 마음으로 그를 슬며시 지켜보았다. 해가 서산에 지고 어스름이 슬밋슬밋 기여드는 저녁때면 여기에 나와서 아무생각도 앉아있는다는 그는 욕망과 현실사이에 얼마나 현격한 락차가 존재하고 있는것인가를 새삼스러 곱씹지 않을수 없을것이다. 석양의 잔광이 언녕 사라진 하늘아래 침묵으로 푸름을 떨치는 앞남산과 뒤산을 쳐다보며 인간의 끓는 욕망과 정열이 마지막 잔광처럼 덧없다는것을 심심히 느끼였을가? 나는 딱히 그도 아닌 누구와 엉뚱한 무언의 대화를 하고있다.
    (그래, 저 말없는 한왕산의 웅좌는 당신의 상처에 참고 견뎌내라는“자성”이라 는 약을 발라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긴 당신이 욕망의 진의를 깨달았다면 인생은 철저히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이겠지? 나는 당신이 매일 자책하고 가슴을 칠때마다 잃어버린 욕망의 반기를 보고싶다. 그것은 찢어진 희망의 기폭이겠지만 자성한 인생의 기발, 한국의 공사장에서, 그리고 연길의 거리에 흘려버린 가슴아픈 사연들로 얼룩진 그런 감성적인 기발이래도 좋을듯싶다.  
    그의 이야기와 한탄을 다 들을수는 없고 그 내심세계의 구석구석을 다들여다 볼수는 없었다. 당신은 쓰디쓴 맛에서 단맛을 찾는게 인생이라는 가장 간단한 도리에 말문이 막혀있을것이다. 당신은 욕심껏 단맛만을 보려고 끙끙거렸다. 랭수먹고 된똥 을 누려하듯이…인생의 짜고 단맛을 다 맛보기전에 부평같은 신세가 되였으니 전화 위복이 될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의지를 전제로 하고있다. 인생의 미각의 망각지대가 당신의 새출발점이 되였으면 좀 좋으랴, 당신은 지금 쓴맛을 기껏 맛보고있다고 호소 하고싶을것이다. 그것이 락엽귀근처럼 원초의 마음의 터밭에 밑거름이 될것인가?
    저만치 흰색으로 어둠을 내쫓고있는 백바위굽에 눈길을 박고있었다. 백바위너머로는 그저 우중충한 구름과 검푸른 하늘, 그리고 들리느니 부엉이울음뿐인 소외된 고장으로 변화되여버렸음에 한숨을 톱고있을것이다. 우리가 만화를 보며 저도 모르게 킥 웃음이 나오는것은 다리에 대가리가 붙었거나 눈이 이마에 나붙은 등 그런 괴이한 화면에서라기보다 그 숨은 내용에 우습고 그 기발한 착상에 웃는것이 아닌지…
    만화속같은 세상, 만화속에 인물같은 우리들이 아니던가? 지금 농민들은 저마끔 자기 인생의 만화를 열심히 그리고있다. 얼마나 많은 농민들이 멍든가슴, 주눅이 든 마음을 희망이라는 다리미로 다리고 있을가? 고향에서는 추접은 막벌이가 출국하면 좋은 돈벌이라고 혹하는 가치취향은 눈물겨웁지 않은가? 오늘 많은 농민들의 인생이 희비극으로 엮어질수밖에 없는것은 일확천금사상이 너무 극대화된 탓이 아닐가싶다. 물론 먹고사는데 만족할 걸인이 없고 만족을 아는 부자는 태여난적이 없다. 비교하지 않으면 실망하지 않을것이요 비교를 모르면 늘 자족하리라.
    어느새 날은 완전히 어두워졌다. 산을 내리는 그의 걸음은 몹시 무거워보였다. 그의 뒤모습을 보는 나의 마음도 무거웠다. 일엽지추(一叶知秋)요 한알의 모래 알에서 대천세계를 읽는다했거늘 그의 조우와 처경에서 현재의 우리 조선족농민들의 취향과 행각을 류추할수 있었고 흘러가는 민족군체의 흐름을 공연히 걱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것은 내가 결코 오지랖이 넓어서만이 아니리라.
    도시진출과 외국로무로 인한 농민들의 리농현상은 시대발전의 필연이고 새로운 삶의 터전을 개척하는 장거라고 권장하는 사람들도 있는판에 조선족사회의 위기라고 본다면 근시안적이라고 하리라. 그러나 현실생활이 론리적이 아닌만큼 민족군체의 해체도 공리공담같은 리론으로 해석할 일이 못된다. 말과 소는 거의 같은 고생을 하는 팔자이지만 저마끔 다른 망돌을 끌고있다. 나는 언젠가 읽었던 글귀가 떠올랐다. 륙로가 통하지 않으면 수로로 가야지, 배가 번져졌더라도 구명대가 있기마련, 하다 못해 널판자라도 붙잡고 헤여서 다른 대안에 올라야지…
    속담에 역은 토끼가 굴을 세개 판다는 말이 있다. 앞으로 나갈 때 물러설 자리도 보아두는것이 명지한 처사가 아닐가? 땅을 잃고 가원을 잃게 된다는것은 우리 민족이 설자리가 없게 된다는것을 예시한다. 아닌가? 잠시 성공한 사람들의 현재 상태로는 문제시 될것없다고 볼수도 있겠지만 자기 후대들에게 물려줄것이 없게 된다고 한번 생각해봄직도 하지 않을가? 소수의 성공한 자들을 내놓고 막벌이로 돈을 좀 쥐였 다해서 그것이 영구지책이 될리 없지 않는가?
    다시 한번 심사숙고해본다. 가령 장차 우리에게 우리의 보습을 대일 땅이 없다면 봄도 영원히 버리는것이 될것이며 흙덩이로 엉켰다가 세기를 넘어 마침내 산지사방에 흩어진 모래알로 된다면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것이 자명하다. 자기의 땅을, 자기의 가원을 버린 농민들에게 미래는 아름다운 새 에덴동산만 안겨줄수 없다. 적자생존의, 엄혹한 현실은 원래는 우리의것이였던 그 땅에서 20세기초 소작농으로 근근득실하던 우리네 선조들의 비극이 재현될지도 모른다. 기나라사람 하늘 근심도 아니고 남다른 일가견도 아니다. 준엄한 현실이 미래지향적으로 시사하고 있는 상황 그대로이다.
    …그후 그를 다시 만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어쩐일인지 가끔 그를 생각하게 되였 다. 시골농민치고는 꽤나 지적인 사람이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무얼하고 살아가는지… 소설은 생활속에 있는법, 자초에 그의 조우를 소재로“산촌거변”이라는 이야기를 엮으려고 작심했던 나는 소설을 마무리짓기 위해서라도 다시 명동에 가서 그 사람의 거취를 알고싶었다. 그러나 기회가 없어 못가던차 우연히 최선생을 다시 만나서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을수는 있었다.
    굴러온 돌이 박힌돌을 뺀것인가?아니면 박힌돌이 절로 솟아서 굴러온 돌에 자리를 내준격인가? 그 사람은 마침내 신세가 거꾸로 되여 그 한족집에서 일군으로 있다가 분통이 터진다면서 다시 한국에 나갔단다. 그동안 마음이 변한 안해는 한국사 람에게 시집가서 알콩달콩 잘 살고있지만 끈떨어진 뒤웅박신세가 된 그는 그냥 한국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아들 하나도 시내에서 굴러먹는다고 했다.
    ㅡ 그사람 망해도 참 더럽게 망했지요. 이만하면 소설이 되는겁니까? 사실 그 집만이 아니라 오붓하던 명동은 나날이 황페해지고 있어 걱정입니다….
    ……………………………………………………………………………………???
 
                                                        2008년 7월 20일               (2016년 7월 15일ㅡ7월 29일 련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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