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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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카테고리 : 평론

찬란히 터져오르는 이미지
2014년 05월 20일 11시 10분  조회:2648  추천:7  작성자: 최룡관
찬란히  터져오르는  이미지
 
--김파시인의 열번째시집 태양의 언어 부쳐
 
                       최흔
 
 김파시인의 열번째 시집을 보았다.  립체시라는 일로를 줄기차게 걸어오던 김파시인이 오늘은 <<태양의 언어>> 라는 디지털 하이퍼시라는 작탄을 터지웠다.  이미지들은 야밤의 폭죽불꽃처럼 찬란하다. 폭죽은 순간의 황홀을 보이고 사그러지지만 <<태양의 언어>>는 그런 순간을 영원으로 고착시키는 황홀경을 이룬다고 하겠다. 무의식, 하이퍼특점, 언어들의 독특성을 이 론문에서 살펴보려고 한다.
 
무의식사유의 결실
 
김파의 열번째 시집 <태양의 언어>의 시들은 무의식에 절어있다. 사람들이 시를 쓰는 의식은 대개 세가지가 있으리라고 생각된다. 첫째는 현실의식이고, 둘째는 잠재의식이고, 세째는 무의식이라겠다. 어떤 의식으로 시를 쓰는가는 시인마다 다르다. 현실의식만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 있는가 하면 현실의식과 잠재의식을 혼합시켜 시를 쓰기도 하고 잠재의식과 무의식을 혼합시켜 시를 쓰기도 한다. 김파시인은 이런 류형의  사유로 시를 쓰는것이 아니라 전문적으로 무의식으로 시를 편집하고 있는같다. 여기서 말하는 현실의식이란 현실사물의 현상을 종합하고 처리하는 시를 말하고 잠재의식이란 한사물의 어느 한 현실로부터 시작하여 그 사물의 력사거나 시인의 기억을 더듬어 시를 작성하는것이라 하고, 무의식이란 말그대로 현실의식을 묵살해버리고 새로운 의식으로, 환상적으로 시를 시작하고 발전시키고 마무리하는 시라고 하겠다. 현실사물에 대한 모든 기성관념을 부정하고 새로운 관념으로 시를 쓰기에 무의식이라고 할수 있다. 때문에 시에 나타나는 제재들은 현실적인것이 아니라 시인의 상상과 환각에 의하여 재구성된 표현들이다. 그러므로 무의식이란 오직 시인에게만 있는 새로운 의식이라고 해야 할것이다. 없으면서도 있는 의식!
이제 김파시인의 시의 서두로써 이야기해 보자.
 
 
세월의 틈서리에
산란하는 말씀들
벼루기의 집장고도
--《무제》서두에서
 
 
시간의 얼마나 흘렀는가
고요가 사글어 곰팡이 낀다
고민이 쌓여 발요되는 열기
정감의 세포가 분해되고있다
--《무언의 대화》에서
 
태양이 늪얼음을 깁던날
치마자락으로 부채질하는 바람
바위살같에 소름이 돋힌다
녹 쓴 기억 닦아내고
윤활유 바르는 온도계
스케트날이 시간의 잔등 스친다.
---《기다리는 마음》
 
손톱끝에 지는 피방울
시간을 껍질벗긴다
후리드입술 콩나물 내뱉고
---《예감에 찔리여》
 
우산 든 겨울
벌거 벗은 바위
--《서리낀 말씀》
 
다섯수의 시의 서두를 례로 들었다. 다섯수의 시의 서두는 김파시인의 시의 서두의 보편적인 표현이라고 할수 있다. <무언의 대화>에서 <시간이 어느만큼 흘렀는가.>와
<예감에 찔리여>에서 <손끝에 지는 피방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우리앞에 낯선 세계를 펼쳐주고 있다. 이 두시구는 현실관념이라고 할수 있지만 다음줄에 나오는 시구들과 련계시키면 그렇다고만 할수도 없다. <시간이 어느만큼 흘렀는가/ 고요가 사글어 곰팡이 낀다> 이말은 시간이 고요에 곰팡이 끼게 한다는것이다. 여기에서 제일 주목되는 언어는 <고요>와 <곰팡이>이다. 구상물에 곰팡이가 낀다면 말이 되지만 고요라는 추상물에 곰팡이 낀다는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왜 시적으로 통하는가? 무의식으로 쓰는 시는 생활의 모방이나 재현이 아니라 시인의 절대적인 상상에 의하여 다시 조직되여 그려지는 허상이기때문이다. 재조직된 허상이 아닌 시는 무의식으로 쓴 시가 아니라고 하겠다.
무의식으로 쓴 시는 있는것을 없게 하고 없는것을 있게 하기라고 말할수 있겠다. <예감에 찔리여>의 서두도 마찬가지이다. <손끝에 지는 피방울/ 시간을 껍질 벗긴다/후리드입술 콩나물 뱉고> 하는데 시간이란 껍질이 있고 속이 있는 사물이 아니다. 그런데 시인은 <시간을 껍질벗긴다>고 한다. 무엇이 시간을  껍질벗기는가 시인의 말대로 하면 <손톱끝에 지는 피방울>이다. 피방울이 껍질을 벗기는 도구로 씌였으니까 피방울이 표현하는것은 피방울이 아니라 예리한 칼끝과 같은 은어의 표현으로 되고있다.
현실적인 의식이 슴배인것 같은 시행들이 실제는 아래에 오는 변형에 의하여 원뜻을 잃어버리고 새로운 의식에 동화되여 새로운 의미와 새로운 사물로 다시 새롭게 탄생하고 있다. 이 새로운 탄생은 시인의 시적사유의 사물이지 세상에 존재하는 현실적사물이 아니다. 그래서 싸르트르는 이미지의 핵심을 허상이라고 했을것이다.
현실의식이 작용하는 사물들이 허상의 영향아래 언어자체의 본뜻을 거세당하고 새로운 뜻으로 전이하게 된다. 그러니 워낙 새로운 사물의 운동으로 시작된 나머지 례들은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런 시행들은 100프로 환각된 사물의 운동으로 나타나게 된다. <<세월의 틈서리에/산란하는 말씀들/벼루기의 집장고도>> 여기서 어느 시구나 다 시인이 새롭게 만들어낸것이 아니라고 할수 없다. << 태양이 늪얼음을 깁던날/치마자락으로 부채질하는 바람/바위살같에 소름이 돋힌다/녹 쓴 기억 닦아내고/윤활유 바르는 온도계/스케트날이 시간의 잔등 스친다.>> 여기서도 현실로 통하는것이 아니라 환각으로 통하는것이라고 밖에 할수 없다. << 우산 든 겨울/벌거 벗은 바위>>  이 <<서리낀 말씀>>의 서두도 허상적이거나 환상적이기는 위의 례들과 다를바 없다. <<우산 든 겨울>을 풀이해 말하면 겨울이 우산을 들고 있다는 말이 된다. 환전한 환각상태이다. 일상적인 냄새라곤 털끝만치도 존재하지 않고 꿈에서나 볼수있는 사실을 시인은 떠올리고있다. 아래행도 마찬가지다. <<벌거벗은 바위>>라고 하는데 마치도 바위는 옷을 입고있는 사물이였는데 옷을 벗었다는 뜻이 된다.  너무도 황당한 사실이 아니라고 할수 없다. 시적이미지가 그로데스크하다는 말이 있다. 아마 이런것을 두고 하는 말일것이다. 괴상하여 몽롱한 이미지를 말할것이다. 김파시인의 시가 이런 그로데스크한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데 그것들은 다 현대시특성이 낳는 사물이며 이미지라고 해야 할것이다.
이러한 시의 이미지들은 무의식에 의하여 탄생한것으로 서 철학과도 다르고 력사와도 다른 시인의 환각이나 환상으로 구성되는것으로서 시적예술의 기량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시인은 현실에서 탈출하여 자신만의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여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하이퍼특점
 
 김파시의 특점은 한 사물에 안주하는것이 아니라 여러사물로 뛰여다니고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일반적인 현대시인것이 아니라 디지털시, 하이퍼시라고 할수 있겠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미지뛰기를 하고 있다겠다. 시에서의 이미지뛰기란 한수의 시에서 여러가지 사물이 운동하면서 여러가지 이미지를 구성하고 있는것이라고 할수 있다. 잡히는 대로 한수 적어본다.
 
헤르쯔의 곡선들
 
바람 구름 해빛을 익반죽하여
발효시킨 덩어리들
태양이 낮 12시에 누르는 보당
꽈르릉 땅----
쏴 쏟아지는 소낙비
 
 
TV에서 알리는 예보
<희말라야 배꼽통증이 7.4도>
 
 
콩나물 들볶는 피아노연주가
한아름씩 휘뿌리는 다이야몬드
하늘이 밤뚜껑 덮어
치마자락에 박히는 별들
 
 
응아—
고고성 터뜨리며
로타리에 태여난 사생아
슬픈 시줄 읊어 한구절
흘리는 눈물
 
 
<헤르쯔의 곡선들>의 전문이다. 각련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모두 성질이 다른 이미지들이다. 첫련은 하늘의 조화, 두번째련은  TV소식, 세번째련은 피아노연주, 네번째련은 사생아의 탄생을 썼다고 할수 있다. 네가지 사물과 사물의 운동은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에 종속되거나 련계되는 관계를 맺어주는것이 아니다. 각 련들의 내용은 독자성을 띄고 있으며 객관성을 띄고있다. 각자존재로 된 이러한 시를 하이퍼시라고 하겠다. 하이퍼시에는 링크 즉 련결이 존재하기도 하는데 이 시의 링크는 헤르쯔이다. 시인은 다각적인 각도에서 네가지 사실을 헤르쯔라는 사물과 관계를 맺게 하고있다. 네가지 사실은 네가지 선이라고 할수 있다. 네가지 선으로 되였지만 헤르쯔에 맺혀진 네가지 부동한 열매라고 하겠다. 마치 한나무에 사과도 열리고, 노리도 열리고, 살구도 열리는것처럼 헤르쯔에 여러가지 열매가 열린 셈이다.
시속의 사물들은 고정불변한것이 아니라 한사물이 다른 사물로 둔갑하기도 하고 둔갑된 사물은 움직이며 변화발전하게 된다. 이러한 움직임과 변화발전은 순간적인것이거나 우연적인것일 수도 있지만 시인의 언어에 의하여 영원으로 고착된다.
 
콩나물 들볶는 피아노연주가
한아름씩 휘뿌리는 다이야 몬드
하늘이 밤뚜껑 덮어
치마자락에 박히는 별들
 
피아노연주가는 콩나물을 들복는 사람이 되고 다이야몬드를 한아름씩 휘뿌리는 사람이 된다고 시인은 표현하고 있으며, 하늘이 밤뚜겅을 덮으면 치마자락에 별들이 박힌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언어들은 다른 의미로 쓰이였다. 콩나물은 도레미파음부를 말하고 다이야몬드는 우렁찬 명곡을 말하고 밤뚜껑은 밤을 말하고 치마자락은 검은 밤하늘을 말한다고 할수 있다. 모두가 원래언어의 함의로 씌여지는것이 아니라 다른 함의로 씌여지고 있다겠다. 또 3,4행은 1,2행의 련결적표현이라고 말할수도 있다. 그래서 시의 의미지들은 시인의 령혼속에 떠오르는 이 세상에 없는 새로운 그림이라는 말이 있게 되는것이 아니랴. 그리고 시속의 사물들은 하나의 시간과 공간에 고착되여 있는것이 아니라 그냥 변화하고 운동하고 있다고 말할수 있다. 시를 음미해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바로 이렇게 해석해보는 과정이 음미하는 과정이다. 어떤 시들은 이런 과정이 필요없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시들은 무의식으로 쓴것이 아니라 현실의식이나 잠재의식으로 쓴것이라고 할수 있겠다. 시인과 함께 새로운 경지를 탐구할수 있고 새로운 체험을 할수 있는 시가 필자의 소견에는 무의식으로 씌여진 시라고 할수 있겠다
 
<<헤르쯔의 곡선>>들은 헤르쯔로서 링크가 되지만 <<무제>> 라는  시는 링크가 알리지 않기도 하다. 하이퍼시들은 이런 경우의 시들이 허용을 받게 된다.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사물들은 자연적인것이나 문화적인것이나 다 외계와 천차만별의 관계를 맺고있기때문이다. 스쳐보면 독존같지만 따지고 보면 고립적으로 독존하는 사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이라는 한 사물 , 이 사물은 뼈와 살과 피 그리고 물로 조성된것이라고 할수 있고 하늘 땅 바람 구름들과도 관계를 발생하고 있다고 하겠다. 사람의 얼굴에는 눈, 귀, 코, 입, 귀가 있다. 이런 사물들은 얼굴이라는 사물을 이루고있다. 오관중에서 한가지라도 빠지면 안된다. 하지만 이 오관의 성질과 작용은 서로 완전히 다른것이다. 사람은 자연의 일속에 속한다. 다른 자연의 일속도 마찬가지다. 작은 조약돌도 여러가지 인소로 구성되였고 여러가지 사물과 관계를 맺고있다. 우에 말한 해, 달, 비, 구름과 관계를 맺고있을뿐만 아니라 흙, 개미, 뱀, 쥐, 잠자리, 메뚜기….들과도 관계를 맺고있는것이다. 모든 사물은 순수한 한가지 사물로 구성되지도 않거니와 서로의 관계속에서 존재하기 마련이다. 이런 의미에서 말할때 한수의 시에 어떤 사물들이 병렬된다는 자체가 벌써 링크되였다고 말할수 있게 된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래서 성질이 완전히 다른 사물들이 한수의 시에 배렬되면서 이미지를 형성하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며 자연에도 부합되고 인간문화에도 부합되는것이라고 할수있다. 사실 세상은 하이퍼로 구성되였다고 할수 있으며 시인은 그 하이퍼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사람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이런 경우의 김파시 한수를 보자.
 
무제
 
세월의 틈서리에
산란하는 말씀들
베루기의 집장고도
 
1+1=1
1+1=3
1+1=0
사랑방아 찧는
수학풀이
 
 
하늘도 땅
땅도 하늘
3개
5개
7개
나도 하나의 태양
 
그리고
떠가는 기포들
 
네개의 련으로 구성된 <<무제>>는 일정한 링크가 안겨오지 않고 조잡하게 막 주어붙인것 같다. 첫련은 말씀, 두번째련은 사랑방아, 세번째련은 하늘과 땅, 네번째련은 떠가는 기포를 쓰고있다. 이것들을 련계시키는 링크는 찾아볼수 없다. 조지P란도가 하이퍼텍스트를 말한것처럼 <<불련속 글쓰기>>이다. 불련속이란 분리된다는 말로서 하이퍼시의 중요한 특징의 하나이다. 과거에는 절대대부분의 시가 련속적이였지만 하이퍼시는 불연속이라는 작시법에 의하여 시를 쓰게 된다. 모름지기 중시할바라고 생각 된다. 왜냐하면 불연속 시작시법은 오늘에 새롭게 강조되는 시작시법으로서 하이퍼시를 창출하고있는 시의 기교이기때문이다. 이런 시는 성질이 완전히 다른 이미지로 구성된것 즉 다선구조로 된 시이며 시의 내용이 다층차를 이루게 되여 한수의 시에 여러가지 주제를 내포하기도 한다.
시는 다른 문학쟝르와 다르게 어떤 뜻을 명백하게 전달하는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작업이다. 이미지속에서 독자들은 나름대로 감각을 받고 나름대로 주제를 파악하게끔 열려있다. 새로운 이미지를 떠올리려면 반드시 새로운 언어표현을 써야 한다. 사람들은 기표와 기의에서 기의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시는 기의보다 기표를 더 중시하게 된다. 기의는 기표속에 있는것이다. 기표에 의하여 기의가 결정되는것이지 기의에 의하여 기표가 결정되는것이 아니다. 기표가 없으면 어떤 기의든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의 언어>>에서 김파시인은 기표의 작업에 모를 박고 새로운 이미지들을 떠올리여 시의 신선한 맛과 언어의 새로움을 추구하였다고 할수 있겠다.
 
1+1=1
1+1=3
1+1=0
사랑방아 찧는
수학풀이
 
사랑방아라는 사연이 왕청같은 수확풀이로 나타나 당혹케 한다.
<1+1=1>은 둘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같고,<1+1=3>은 둘이 셋이 된다는 의미같고, <1+1=0>은 둘이 없어진다는 말이거나 둘의 합작이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햇다는 의미같다. 총적으로 무슨 의미일가는 각자가 흔상해볼 일일것 같다. 문제는 여기에 나오는 수자나 더하기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수자나 더하기가 아니라 어떤 사물의 어울림과 그로 인해 빚어지는 결과를 나타낸것 같다.여기서 우리는 이미지란것은 표면에 나타난 기표 그대로의 함의인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내용을 표달하는 기표라는것을 알수있다. 이것이 시적이미지의 특점이라면 특점일것이다. 새로운 사유와 사색을 불러일으키는 이미지가 바로 시적이미지인것이다. 김파시인의 시에는 이런 이미지들이 지천에 널려있다. 표면에 나타난 이미지가 엉뚱하게 새로운 의미를 내포하게 되는 경우도 무의식에 의하여 산생되게 되는.
것이다
하이퍼시를 쓰게 되면 동서남북이나 고금중외를 마음대로 나들이 하지 않으면 안된다. 김파시인이 어떻게 동서남북이나 고금중외를 나들이 하였는가를  살펴보자
 
저기
인도주의저작 옆에 끼고
지름길 걸어오는 니체
---이상한 날씨
 
디스모 독감에 걸린 팔로스
라캉식정신분렬증에
오월이 오금 저려난다
--장미빛 리유                    
 
문턱지키는 데리다
입장권에 지장 찍는다
--밀입
 
해쟁반 울려
리백을 마중하는 테드넬스
함께 기울이는 술잔
---취중에 읊은 시
 
하얀 깃 엮어든 싸르트로
유리벽속을 걸어나온다
---꿈속의 흠모
 
위에 렬거한 인물들은 모두 외국의 인물이거나 신들이다.다들 지나간 력사라고 할수 있다. 력사속의 사건이나 인물들로 쓰지 않고 현실의 움직임으로 쓰고있다. 그리하여 그것들이 죽은 사물인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사물로 된다. 다시 말하면 력사가 아니라 현실로  되는데 그자체가 훌륭한 변형으로 되는것이다.
이러한 수법은 하이퍼시의 절대적인 요구라고도 할수 있다 김파시인은 하이퍼시의 이런 절대적인 요구를 득달하고 있는 같다.그래서 그의 시에 나타나는 력사적이고 외국적인 사건이나 사실들은 고리타분하거나 고정된 낡투로 표현되는것이 아니라 살아서 생생하게 움직이는 생명체로 부각되는것이다.그래서 오늘의 연변의 우리와 만나서 대화하고 있는것이다.이것도 일종 무의식에 의하여 창출되는 이미지라고 할수 있다.
 
 
시어의 독특성
 
김파시인의 오묘한 시어들을 살펴보는것도 김파시인의 시를 리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된다.  <<세월의 틈서리>>와<<산란하는 말씀>>이다. 이 언어들의 오묘함은 추상적언어가 구상적언어와 결합되여 추상어에 대한 감각을 증강시키는데 있다. 세월은 추상어이고 틈서리는 구상어이다. 둘이 결합됨으로써 세월이라는 추상어의 시각화농도를 짙게 한다. <<산란하는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말씀이란 추상어를 산란하다는 동사와 결합시킴으로써 말씀이라는 추상어의 움직임이 우리앞에 떠오르 게 한다. 감각할수 없는것을 시각적으로 감각하게 하게 한다는것은 시어의 묘함이 아닐수 없다. 
그외에도 <<가지끝에 매달렸던 여름>>(지나가는 여름)은 언어의 섬세성과 환상적인 특징을 갖고있고,  <<까마귀 울음 빨아서/ 하얗게 다듬이질 하고>> (지나가는 그림자 들 )는 기이하고 신선한것으로써 청각을 시각화한 공감각이 뛰여나서 경이롭고도 오묘하고 ,<<태양이 눈얼음 깁던 날>>(기다리는  마음)은 이상야릇한 이미지를 창출하여 깜짝 놀랄만큼하고 , <<귀구멍 걸어들어오는 모쟐트>>(그날의로맨스)는 곡을 들으면서 작곡가 모잘트가 귀구멍으로 들어온다고 하였으니 청각을 의인화 시각화 하였을뿐만 아니라 그 변형 또한 신선하고, <<번개잔등우로 달리는 소방차>> (급변된 날씨)는 과장적이고도 괴상한 이미지로써 심리를 새롭게 표현해내고 있고, <<오솔길을 접어 옷고름을 맨 아씨>>(귀뚜라미 소야곡)은 성질이 완전히 다른 언어결합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여 독자의 의식을 새롭게 자극하고, <<태양은 파랗게 하늘을 빨아/ 정오의 바줄우에 널어놓고>> (백과사전 을번지며)는 묘사가 참신할 뿐만아니라 추상어와 구상어의 기상천외한 결합으로 하여 독특함을 감수하게 하고  , <<밤을 빨아 하얗게 /다듬이질하던 방치>>(할미꽃)는 방치에 대한 새로운 전개로 하여 감동을 준다. 이렇듯  경의로운 언어조합과 그로하여 산생되는 참신한 이미지들은 내용을 류례없이 새롭게 나타내고있어 우리는 우리 언어의 미묘함에 경악스럽기도 하지만  충격적인 감탄을  터치게 된다. 이런 언어들은 시속에서 사물들의 다채로운 변형을 나타내고, 그 변형물들의 움직임으로 구성된것들로서 언어조합의 오묘함과 표현의 참신성 및 아름다움을 획득하고있다겠다.
이러한 시구들은 시인의 환각에 의하여 떠오른 시구들이며 현실언어문법과는 전혀 맞지 않는 표현들이다.시인이라면 이런 언어다룸을 익혀야 할것으로 알고있다.시의 작용과 사명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사명은 언어를 창조하 는것이다. 시인은 시를 통하여 한 민족의 언어를 쇄신시키고 발전시키는데 공력을 몰붓는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시인은 자신의 민족어를 발전시키는 사명을 가지고있지 어떤 사상을 선전하는 철학가도 선전가도 아니고 교육가는 더욱 아니다. 김파시인은 자신의 시에서 언어에 대한 쇄신에 매우 큰 공력을 몰붓고 있는데 이는 우리들의 한 본보기로 되기에 손색이 없다.
이렇게 몇가지 방법으로 김파시인의 <<태양의 언어>>의 작시법의 일부를 살펴보았다. 앞으로 어떤 음부나 거이 다 <<콩나물>>로 표현한다든가, <<재채기>>같은 언어를 람용하듯 한다든가, 오솔길을 <<옷고름>>으로 중복하는것 같은 표현들을 삼가하는것이 좋을것 같다.
 
김파시인은 우리시단의 주목을 받는 시인이다.그는 태양을 사랑하는 시인이다.오늘은 <<태양의 언어>>라는 새로운 시적예 술 품을 펼쳐내였다.그전에 <<태양의 종소리>>를 내놓기도 하였다.또 백만자에 달하는 장편소설 <<흑색 태양>>도 출판중에 있다. 그래서 필자는 김파시인을 <<태양의 시인>>이라고 부르고 싶다.그의 <<태양의 종소리>>는 현대시의 한 본보기라고 할수 있고, <<태양의 언어>>는 하이퍼시로서 후기 현대주의시 한 본보기라고 할수 있다.우리 시단의 전렬에 서있는 김파시인에게
축하를 드린다.
   김파시인은 모더니즘 시집을 많이 펴내였지만 문학상을 받은
적이 없고, 오늘의 <<태양의 언어>>도 문학상을 받기여려울것이
다. 묵묵히 시의 정원을 아름답고 찬란하게 가꾸는시인으로서 그의 창작성과는 누구도 부정할수 없으며, 그의 창작생애는 <<작가는 글로 말한다>>는 위대한 진리를 실천하는 시인이라고 말할수밖에 없는 <<태양의 시인>>이다.
김파시인에게 새로운 정진이 있기를 충심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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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 3 ]

3   작성자 : gg
날자:2014-05-21 12:49:29
탐구정신은 대단합니다. 그런데 시정/시의/시미가 너무 적은 또는 그런것들을 아주 내버린것는 시는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임을 모르시는 일이 아닐가요? 무의식시? 이름은 버젓하지만 의식이 없는 시는 없을건데.물론 그런 명칭을 붙혀줄수는 있지만 인간의 시정과 시의와 시미를 만들어내야만 시라고 생각됩니다. 어휘들의 조합만 독특하다고 시가 된는것은 아니라고 생각되는데
2   작성자 : 그래
날자:2014-05-21 06:38:03
김ㅍ시인 시는 좋은데 남자지 영감이니 .......상을 받기 바뿌지
용과이 견해와 같음
김파시인 당을 바꾸쇼 용과이 학생으로 그럼 지용 진달래 문학상 쯤 문제 없음
자기가 자기를 폭로하는 용과이 둔한 사람 왜 말을 이렇게 하노 시인이란 사람.
1   작성자 : 미칱놈의 글
날자:2014-05-20 14:24:44
이 세상 어디에 '태양의 시인이"이 잇어본적있느냐?
나발을불어도 유분수지.
낯짝가려운것도 모르겠냐?
치사스런 아첨에 배가죽터지겟다, 미친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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