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비평은 그 대상의 언어로써 말을 하는것이다. 그것은 메다언어 즉 <<언술에 대한 언술>>이다.
어떤 텍스트도 그것이 차라리 관상물로 받아들여지는가, 또는 차라리 전언으로 받아들여 지는가에 따라 문학일수도 있고 문학이 아닐수도 있다
비평작업의 재료는 안닌게 아니라 작품들이 일단 분해되여 얻어지는 테마 , 모티브, 핵심적단어, 강박적은유, 인용, 자료,카드, 인용출처 등등... 바로 <<인간 소작들의 잔여물들>>인것이다.원초의 대상작품은, 마치 림기응변적 수선가가 모든 목질에 유용할 요소들을 추출하기 위해 파괴하는 그 원래의 전체적인 구조물들처럼 하나의 구조물이다
작가가 세계에 질문을 던진다면 비평가들은 문학 즉 기호의 세계에 질문을 던진다
야콥슨 자신은 1936년에만 하여도 푸슈킨의 어느 시작품을 론하면서 이미지 없는 시의 존재를 론한바 있다. 1958년에 그는 이문제를 다음과 같이 거론하였는데 강조점을 두드러지게 옮겨놓고 있다. <<개론서들은 이미지 없는 시작품들의 존재를 믿고있지만 그러나 실상 어휘적전의에 있어서의 빈약은 화려한 문법적전의와 문채들로 벌충(모자라는것을 대용)되여있다.>>
의미의 애매함은 자체에 중심을 둔 모든 전언의 본질적이고 제거될수 없는 특성이다. 요컨대 그것은 시의 필연적인 규결점인것이다. 우리는 엠프슨과 더불어 , 의미의 애매함의 조작은 시의 뿌리 자체에 있다는것을 되풀이해 말하고자 한다.
오늘날 문학연구에 열려있는 가장 새롭고 가장 풍요로운 길의 하나는 문장의 테두리 - -언어학자체의 경우에는 뛰여 넘을 수 없는--를 넘어 언술의 대단위들의 구조를 연구하는 것일것이다.
문학의 가장 높은 효률성은 독자들의 기대와 <세계의 모든 기대를 릉가하는> 기대리탈의 놀라움, 독자들이 바라고 예견한 <<진실임직한것>>과 창조의 예측 불능적인것, 이 둘사이의 미묘한 작용에 놓여있다. 하지만 예측불능적인것 자체가 , 위대한 작품들의 무한한 충격자체가 그 온 힘으로 진실임직함의 은밀한 심층에서 반향하는게 아닌가? 보르헤스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위대한 시인은 창조하는 자이기보다 발견하는 자이다.>>
아리 스토 텔러스에서 라 아르프에게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믿었던 것처럼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고 , 이미 이젠 우리들은 믿지 않고 있으며 고전주의자들이 무엇보다도 훌륭한 류사성을 추구햇던데 반해 우리들은 반대로 근본적인 독창성과 절대적인 창조를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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