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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식, , 서울대학교 출판부 1987
2009년 05월 16일 21시 23분  조회:1914  추천:0  작성자: 방룡남

-<만세전>은 염상섭 소설의 특질을 밝힘에 주춧돌과 같은 자리에 놓여 있다.(189)

-공간적 구조란 무어서인가. 그것은 <길>이라 할 수 있다. 그 길이란 여로를 뜻하는 것이다....그런데 그 길이 철도(기선)로 되어 있다는 점이야말로 염상섭 문학의 근대적 성격을 지탱하는 척추에 해당된다.(194)

-<만세전>에서 공간개념은 동경서 서울까지의 공간개념과 서울만의 공간개념으로 분절되는바, 이 두 공간개념에 대응되는 시간개념은 정반대로 되어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199)

-아내의 죽음을 앞에 두고 주인공은 서울로 가야 한다는 당위성과 동경에 계속 머물고 싶다는 두 가지 마음의 가닥 속에 놓여 있는데, 이러한 두 마음의 지향성은 실상 <만세전>을 이루고 있는 보이지 않는 구조이다. 그리고 그 구조에서 어느 쪽에 기울어졌느냐를 따지는 것은, 작품평가의 문제점이기보다는 작가의 <개인적 취향>의 문제에 속하는 것이다.(200)

-주인공의 이러한 심리적 뒤틀림(이중성)이야말로 작가 염상섭의 성격이기도 하며 동시에 그것은 <근대적 성격>에 해당되는 것이다. 외골수로 흐르는 심리, 선악이 분명한 것, 이성과 감성이 판연히 갈라진 자리야말로 전근대적인 세계이다. 근대적 성격이란 이와는 달리 복잡성과 갈등구조 위에 구축된다. 그것은 제도적 장치의 복잡성에서 필연적으로 말미암은 것이다.(202)

-동경에서 서울에 이르기까지의 시간관념과 서울에서의 시간관념의 차이는 곧 <만세전>이 어째서 근대소설인가를 밝히는 실마리라 할 수 있다.(203)

-<만세전>의 여로는...겉으로 보기엔 동경서 서울까지에 이르는 여로(길)형이지만 그 내면 구조는 동경에서 서울, 서울에서 다시 동경으로 되돌아가는 회귀형으로 되어있다. 선적 여로형과 회귀형 여로형의 차이는 아주 큰 것이라 할 수 있다. 서울(조선)을 <묘지>라고 외치며 도망치는 주인공의 의식은 동경을 <묘지>와는 정반대인 것, 이를테면 <천국>과 같은 것으로 인식함을 가리킴이다.(205)

-선적 여로형은 막힌 회로인 만큼 그 여로의 끝에는 죽음이 가로놓여 있다.(205)

-<만세전>의 묘지(구데기)콤플렉스는 동경서 서울까지의 여로형이 선적 여로에 해당되었음에서 말미암는다. ...그렇지만 <만세전>은 서울에서 동경으로 되돌아가는 또 하나의 여로형, 즉 회귀형을 갖고 있다. 거기는 동경이라는 곳으로 모든 것이 훤하게 열려 있는 곳이다.(206)

-증기기관의 발명이야말로 근대의 합리주의사상을 낳은 모체이다. 기계의 일종인 증기기관의 구조는 원동력 장치, 그것을 변환시켜 전달하는 장치, 그리고 협의의 기계(도구) 등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증기기관이 원동력이 될 경우 모든 생산을 사람의 신체력 또는 개인적 차이에서 해방시킬 뿐 아니라 물이나 바람의 힘을 필요로 하는 지역적 자연조건에서도 행방시키게 된다. 증기기관의 힘으로 말미암아 도시집중, 합리적 생산과 분배 등 자본제 생산이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빈틈없는 논리체계를 이루어 합리주의적 사고를 만들어 내었다.
 이 사실은 아무리 강조되어도 지나침이 없다. 적어도 우리가 근대를, 그리고 근대문학을 문제삼는 한, 증기기관의 본질을 한시도 머리 속에서 지울 수 없게 되어 있다. 염상섭의 문학은 근대소설을 문제삼을 때 비로소 빛나는 것이다....지금 우리가 여기서 문제삼고 있는 것은 <근대소설>에 지나지 않는다. 근대소설을 문제삼을 때 염상섭이 그 첫 자리에 오는 것이며, 그 이유를 밝히는 이유는 곧 증기기관의 본질을 떠나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다. 이러한 관점에 설 때 <만세전>은 제일 확실한 작품이다.(209)

-염상섭은 증기기관이 낳은 사상이 곧 그를 식민지 백성으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을 적어도 <만세전>에서는 깨닫지 못하고 있다.(211)

-증기기관의 발원지이자 그 총본산이 영국이다. 증기기관의 힘이 세계를 누비고 식민지를 경영하게끔 했고 최고의 부를 축적하게 해주었다.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자본주의가 비로소 확립될 수 있었다. 합리주의 사상이란 거기에서 나온 것이다. 자아의 각성, 개성의 확립이란, 이러한 합리주의 아래서 마침내 나올 수 있는 사상이다. 인습에서의 해방, 그것이 인간성의 행방이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런던이야말로 제도적 장치로서 그러한 사상이 확립된 곳이다. 근대민족국가라는 제도적 장치를 가능케 한 것도 증기기관의 힘이었다. 동양에서 이러한 제도적 장치가 이룩된 것은 상해였고, 그 다음이 동경이었다. 한국유학생들은 주로 동경에서 배웠다. 그들은 근대의 출장소, 동양의 런던이라 불린 동경에서 중등교육부터 받았다. 그것은 일본식 교육이 아니라 근대의 교육이었다.(214-215)

-염상섭이 동경에서 배운 것은 이 제도적 장치로서의 근대였다. 조선유학생들이 동경에서 배운 것은 이것뿐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그 자체가 보편성임을 승인하였다. 근대교육이란 일본 것이 아니고,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일본을 배우는 것이 근대를 배우는 것인 만큼 거기에 잘못이 없음을 그들은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상해라는, 동경보다 일층 고도화된 근대의 존재방식을 알지 못했던 만큼 일본에 기대는 것이 근대를 배우는 유일한 길이었다. 이러한 일은 3.1운동 이래 상해의 존재가 크게 부각되고, 유학생들이 상당수가 상해로 옮기기 전까지 조금도 흔들림 없이 지속되었다.(215-216)

-이인화가 민족주의에로 기울어지면 그럴수록, 동경이라는 근대, 이른바 보편성(중립성)은 사라지게 된다. <만세전>은 아직 이 단계에까지 와 있지 않다. 다만 주인공 이인화가 정자에게 마지막 편지를 쓴 것은 조금 암시적이다.(217)

-물론 근대라는 것과 마르크스주의가 함께 증기기관이 만들어 낸 쌍생아의 사상이지만, 따라서 보편성을 띤 것이지만, <만세전>은 거기에까지 미치지 않았다. 마르크스주의라는 또하나의 근대(보편성)는 <삼대>(1932)에 와서야 겨우 논의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세전>은 이처럼 아직도 증기기관의 사상에 멈추어져 있다. 주인공 이인화가 아직도 학생신분이란 사실에서도 이 점이 분명해진다. 그에게 동경이나 일본이 이데올로기의 수준에 있지 않고 오직 보편성, 근대의 사실로만 일방적으로 보였다. 그러기에 그것은 낙관주의이고 낙천주의적인 것이다. ...<만세전>의 열린 시계, 원점회귀형의 정체는 여기에 있다.(217-218)

-사사건건 비꼬고 풍자하고 비웃음으로써 그 대상에 대해 애착과 빛을 던지는 방식(진리를 밝히는 일)이 염상섭 소설의 최대 강점이자 <만세전>의 문학적 성과이다.(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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