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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양호, , 문예출판사, 1996
2009년 05월 16일 21시 37분  조회:2169  추천:0  작성자: 방룡남

{滿洲詩人集}은 1942년(康德, 9년) 滿洲의 吉林에서 간행된 시집이다. 이 시집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한국어로 된 시이다. 우리는 이 시집의 이러한 점에서부터 논의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주지하듯이 당시의 吉林은 滿洲國의 영토였고, 만주국은 日本의 조종을 받던 나라였다. 그러나 {滿洲詩人集}에는 그때의 그런 정서가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우리가 우선 착목하는 점은 1942년이란 시점에서 어떻게 한국어의 內包를 손상없이 살린 이러한 작품집을 간행할 수 있었는가란 점이다.(13쪽)
한글로 씌여진 시집은 한국인을 독자로 한다는 말이고, 한국인이 독자란 말은 한국인의 정서와 감정을 다룬다는 뜻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때 한국인의 정서란 어떤 것일까. 막연학 추측이나 몇 가지 사례로 단정할 수는 없다. 면밀히 따진 후 할 말이다. 하지만 이 시집을 대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받는 언어의 성육과정(Incarnation)은 새로운 땅, 만주에 대한 기대와 호기심, 국권 상실과 이주, 막연한 이상, 향수, 표박 등의 문제가 {滿洲詩人集}의 대체적인 문학성이라는 판단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정신적으로는 어떤 예속에서 벗어난 세계에 있을 때 가능한 일이 아닐까.(13쪽)
1942년이라면 이미 조선도, 조선인도 존재하지 않던 시대이다. 한반도 내에서 간행되었던 어떤 간행물에도 온전한 조선인의 이름이 존재할 수 없었던 시기가 1942년이다. 조선은 이미 오래 전에 일본에 합방되고, 그런 기정사실에 따라 조선인은 일본 신민이 되었으며, 한반도는 일본제국의 영토로서 제2차 세계대전의 전진기지로 편입되던 게 1940년대 초의 민족사이다.(14쪽)
주지하듯이 만주국은 만주족, 한족, 조선족, 몽고족으로 이루어진 국가였다. 만주란 땅이 주로 이런 민족에 의해 지배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이 대륙을 침범하면서 이 민족들은 피지배민족으로 밀려났다. 표면으로는 五族協和지만 그것은 실상을 호도하던 말이고, 만주족을 비롯한 세 종족은 일본의 통치를 만주국이라는 신생국을 통해 받아야 했다. 특히 조선족은 국가를 잃었다는 점에서 한족이나 몽고족과 또다른 사정에 놓인 민족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만주족처럼 문자를 잃고, 문화를 내버린 족속은 아니었다. 만주족이 자기영토에 나라를 세우고 있다는 사실에서는 한족과 다를 바 없지만 그들의 국가가 문화적으로 한족에 예속되었고, 정치적으로는 일본에 속박된 상태란 점에서는 우리와 달랐다. 우리 조선족은 잃어버린 국가와는 달리 고유의 문화는 유지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 지금 우리가 대하는 이런 {滿洲詩人集}과 같은 자료이다.(15쪽)
국가는 존재하지 않고 민족만 존재하던 시대, 오족협화의 시대 기운 속에 민족 자체의 운명이 소멸되어 가던 시대가 1940년대 초이다. 그런 시대의 만주 이민문학을 어떻게 인식해야 하는가 하는 점은 참으로 난감한 문제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시대에 문학작품을 대입하면 문학의 의미는 가벼워지고, 문학 외적 문제만 무거워진다. 그렇다면 문학은 무엇으로 남을 수 있나. 그것 자체의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특히 시문학은 복잡한 현실로부터 떠난 문학의 갈래가 아닌가. 서정시의 본질이 예술의 낭만적 기질(Bohemian temper)에 근거한다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이런 점에서 1940년대 초 만주에서 간행된 {滿洲詩人集}은 당시의 얼어붙은 현실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다.(16쪽)
한국인의 정서 속에 자리잡고 있는 간도, 만주란 지리적 공간은 특이하다. 그것은 그곳이 지리적 공간이면서도, 단순한 지리적 공간이 아닌 민족의 어떤 정서와 맛닿아 있고, 간도와 만주라는 장소는 기실 지리적 위치와 범위가 다른데, 문학작품에서는 동일한 의미로 나타나기 때문이다.(18쪽)
간도는 보통 서간도, 동간도, 북간도로 구분된다. 서간도는 압록강과 송화강과의 상류 장백산 일대를 가리키며, 우리가 보통 간도라고 말하는 곳은 두만강 건너편 도간도를 지칭한다. 만주는 중국 동북부 지방, 심양, 길림, 흑룡강 삼성으로 된 면적 80만 평방 킬로미터의 대륙인데, 현재의 공식 명칭은 東北三省이다. 이렇다면 만주와 동북삼성은 같은 공간을 지칭하는 다른 이름이고, 간도는 특히 두만강 건너의 땅으로 만주 대륙의 일부분을 가리키는 말이 된다. 이런 지역들이 한국문학 속에서는 막연히 간도, 만주로 불린다.(19쪽)
백두산과 중국 사이에 놓인 넓은 대지 간도가 아버지 어머니를 모셔올 만큼 좋은 곳이란 인식은 당시의 보편적 정서로 보인다.(20쪽)
두만강과 압록강 건너의 땅은 한반도의 네 배나 되는 평야이다. 전 국토의 70%가 산인 한반도에 비하면 만주 천지는 그야말로 일망무제의 광야이다. 그런 광야가 無主空山이라고 믿었던 게 당시 사람들의 대체적인 생각이었다. 그래서 모두 만주나 간도를 동경했다.(20쪽)
간도를 살 만한 곳으로 생각하고 살 길 찾아 떠난다는 문학적 소재는 이광수의 [流浪](1927년 <동아일보>에 연재되다가 미완으로 그침-인용자 주)에서부터 나타났고, 안수길의 [북향보]에서 끝났으니 간도에 대한 이러한 인식은 일제강점기 전기간에 걸쳐 있던 문제였다. 그런데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4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째는 '북간도 벌판이 좋다더라'와 같은 소문을 따라 고향을 떠나는 유형, 둘째는 그렇게 떠나간 사람들이 [북국의 여인](池奉文, {조선문학}, 1937. 민현기 편, {韓國流移民小說選集}계명대학출판부, 1989-인용자 주)처럼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면서 다시 고국을 생각하는 유형, 셋째는 간도나 만주에서 새 고향을 건설하자는 유형, 넷째는 일본의 만주정책에 의해 이주하고, 그들의 보호하에 농업에 종사하는 유형이다.
이 네 유형 중에서 이 항에서 문제 삼으려는 것은 물론 첫 번째 유형이다. 최서해, 강경애(두번째 유형) 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많이 연구되었고, 안수길(세번째 유형)에 대해서도 근래에 상당한 연구성과가 있었다.(김윤식, {안수길 연구}, 형설출판사, 1994. 오양호, [안수길론], {한국문학과 간도}, 문예출판사, 1988. 최경호, {안수길 연구}, 형설출판사, 1994-인용자 주) 네 번째는 주제의 성격상 한국 문학 연구의 과제가 될 수 없다.(21쪽)
만주 이민이 소재인 작품은 모두 고난사로 나타나야 하고, 고난을 극복하고, 만주를 제2의 고향으로 삼고 새로운 출발을 보여주는 이민사는 민족 정서와 배치된다는 논리로만 당시의 현실을 인식한다면, 그것 또한 상투적인 반응이다. 만주 이주의 모든 조선인이 그런 정황이었다면 현재 연변 등지의 동포들이 영위하는 자리잡힌 삶이 차지하고 있는 뚜렷한 민족의 자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25쪽)
우리민족에게 있어서 만주·간도는 정착과 풍요, 삶의 기반과 태반, 열린 신개지이다.(27쪽)
滿洲移住가 모티프가 된 많은 작품들은 이와 같은 고향 회귀 의식이 바탕이 된 정서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런 논거를 토대로 필자는 1920년대에서부터 1945년 해방에 이르는 '간도·만주·연변의 한국문학'을 亡命文學, 移民文學으로 양대별하자고 한다. 이것은 1940년대 초기의 만주·간도의 한국문학이 시간과 공간적 배경은 동일하나 문학을 수행하는 주체에 따라 移民文學, 문학이 형성된 공간의 사정에 의해 在滿韓國文學, 間島文壇, 延邊文學 등으로 달리 불리워지고 있기 때문이다.(白鐵은 {朝鮮新文學思潮史}에서 1940년대의 만주·간도문학을 공간적 기준의 시작으로 다루었고, 金炳翼은 {韓國文壇史}(일지사, 1973)에서 '간도문단'이란 말을 썼다. 오양호는 {韓國文學과 間島} 등의 저서에서 '移民文學'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고, 蔡壎은 {在滿韓國文學}(깊은샘, 1990)에서 '재만한국문학'이라 했다. '연변문학'이란 말은 일반적으로 현재의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조선족 문학을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이 책의 주 24)를 인용자 재인용)이런 현상은 이 방면의 문학 연구가 불과 몇 사람의 연구자에 의해 전담되어 오면서 빚어진 결과이다. 곧 이민문학이란 문학을 수행한 주체를 민족문학적 차원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면, 재만한국문학, 연변문학은 지역(공간)이 분류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다.(32쪽)
망명문학은 국권회복을 전제로 한 문학이다. 망명이란 말이 혁명의 실패 또는 그 밖의 사정으로 제 나라에 있지 못하고 남의 나라로 몸을 피하는 것이라 할 때, 일제강점기의 한국인 중 국외로 탈출한 사(32쪽)람의 반이 이런 인물이다. 문학의 경우 李陸史, 尹東柱, 趙抱石, 李彌勒, 韓黑鷗, 安壽吉, 姜敬愛, {在滿朝鮮詩人集} {滿洲詩人集}에 시를 발표한 시인들의 대부분이 그런 예가 되겠다. 이런 문인과 작품 중 상당수는 고향 회귀를 주제로 삼거나 고향을 상실하고 혹독한 생존 조건이 주어진 타국에서 체험한 실향의식과 유맹화 되는 현실을 문제 삼는다. 이밖에 崔曙海의 [고국], 韓雪野의 [과도기], 許俊의 [잔등], 安懷南의 [鐵鎖 끊어지다], 李箕永의 [대지의 아들] [신개지] 속에는 만주 등지를 떠돌다가 귀향하는 모티프 또는 에피소드가 자주 나타난다.(33쪽)
인간은 자기가 태어났던 장소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애정을 느낀다. 동물들에게 나타나는 회귀본능과 같은 것이다. 이 장소애(topophilia)는 고향에 대한 애정이 그 원형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은 현실적 삶이 불행할수록 더 강하게 나타난다. 삶의 안식처가 더욱 절실하기 때문이다.(34쪽)
3·1운동은 민족독립 운동의 권화였다. 하지만 그것이 실패로 끝나자 많은 민족주의자들이 뿔뿔이 해외로 망명했다. 민족운동에 대한 일제의 박해가 3·1운동으로 하여 겉과 속이 다른 식민지 정책으로 나타남으로써이다. 이래서 우리 민족의 1920년대는 박해와 망명으로 시작되었다. [낙동강]은 이런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35쪽)
망명문학은 이와 같이 작품에서 그 종결이 귀국형태로 나타나거나 그와 유사한 종결구조를 지닌다.(37쪽)
이민문학은 이민 간 사람들이 이민의 땅에서 생산한 문학이다. 망명문학이, 뿌리는 한반도이나 그 반도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민족의 삶을 밖에서 문제 삼는다면, 이민문학은 그 뿌리를 이민 간 땅에(37쪽)서 내려 새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한다. 趙明熙의 [洛東江]은 고향 구포벌로 주인공이 돌아오는 장면부터 이야기가 시작되지만, 安壽吉의 {北鄕譜}(1944)나 창작집 {北原}(1943)에 수록된 거개의 소설들은 만주·간도의 개척민촌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이다.(38쪽)
滿洲·間島의 이민문학은 1930년 동인지 {北鄕}에서부터 시작되었고, 창작집 {싹트는 대지}(1941) 합동시집 {在滿朝鮮詩人集}(1942) {滿洲詩人集}(1942) 등으로 이어지면서 문학적 위상이 잡협다.(38쪽)
동인지 {北鄕}이 간행되던 간도 용정은 고국의 고향과는 수천 리 떨어진 타관이다. 고향은 이미 빼앗긴 땅이라 갈 수 없으니, 여기서 새터를 닦고 새 삶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문인은 열사도 아니고, 義士도 아니다. 열사와 의사 같은 문인도 있다. 만주와 간도란 공간을 기준으로 할 때 滄江 金澤榮, 丹齋 申采浩, 이육사, 윤동주 같은 문인이 그러한 예이다. 그러나 최서해는 살 길 찾아 간도까지 흘러간 유랑문인이고, 안수길 역시 아버지 따라 만주로 간 사람이다. 유치환이나 박계주도 반도보다는 '만주가 좋다'기에 가족을 거느리고 그곳으로 건너갔다고 했다. 문인들의 이런 행동은 이 문인들의 작품 앞에 놓인다. 移民은 말 그대로 자기 나라를 떠나 다른 나라의 영토에 이주하는 일이다. 동인지 {北鄕}의 뿌리가 내리고 있는 토양이 바로 여기다. '팔에 힘을 주어 삽을 잡고 문허진 성터로 나아가지 않으려는가. 새터를 닥끄러'라고 외치고 있다. {北鄕}의 문학적 의미는 이런 반문 다음에 온다.(41쪽)
사실 발해나 고구려가 자리 잡았던 대륙의 땅을 염두에 둘 때, 만주는 낯선 황야가 아니라 한때 영화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가꿔졌던 낯익은 민족 대망의 땅이다. 우리 민족의 한 기질인 상무정신과 열린 큰 배포는 그러한 역사 속에서 형성된 성격이 아닌가.(43쪽)
김택영으로부터 시작되어 신채호, 김창걸, 김학철로 이어지는 문인들의 행적은 독립군의 사상적 이민과 맥을 같이 한다. 최서해, 강경애, 안수길, 박계주, 서정주, 유치환과 같은 문인의 만주행은 닫힌 사회, 막힌 현실의 탈출구로 이루어진 문학적 이민으로 그곳에서의 체험과 삶을 자기 나름으로 성육시켜 우리 문학사에 독특한 작품을 남기고 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근거로, 필자는 1940년대 초 만주·간도에서 쓰여지고, 읽혀지고, 발표된 문학 작품들을 亡命文學과 移民文學으로 양대별하고자 한다.(44쪽)
1940년대의 우리 민족은 본의 아니게 전쟁 당사국이 되었고, 그 전쟁으로 우리는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다.(44쪽)
<만선일보>에 발표된 문학작품들이 오직 조선의 민족정신을 담는 것으로 일관된 투철한 것이란 말은 누구도 한 바 없다. 그러나 1940년 <만선일보> 신춘문예 현상모집에 일등으로 당선된 金鎭秀의 [移民의 아들]과 같은 소설은 비슷한 시기 태평양 전쟁의 합리화에 앞장섰던 <매일신보>류의 신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민족문제를 주제로 다루고 있다.(227쪽)
망명이란 말은 이념을 전제한 말이다. 그러나 평범한 인간에게는 이데올로기나 정치는 2차적인 문제이다. 그들에겐 우선 살아가는 문제가 중요하다.(228쪽)
이 창작집({싹트는 대지}-인용자 주)이 가지는 문학적 의의를 인식하고 검토하는 일은 상당한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당시의 반도 안에서의 민족 문학이 어떠한 상태에 있었던가를 생각하며, 생생하게 살아 있는 모국어와 창씨 개명을 거역한 행동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의미를 시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새벽] [암야] [추석] 등에 나타나는 작가 의식은 태평양 전쟁에 휘말린 본국의 문학작품에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반응으로 보인다.(235쪽)
1940년대의 한국 문학사는 문학작품에 대한 상대적 평가가 본의 아니게 선별적으로 적용되어야 할 불행한 시기이다. 창작집 {싹트는 대지}가 이런 처지의 맨 앞 자리에 선다. 우리는 이런 논리를 1940년대에만 용인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어느 한 시대를 이질적 문학으로 대체시키려는 논리를 펴는 문학사의 기술을 더 이상 방치해 둘 수 없기 때문이다.(2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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