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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잡문 .
엘레베이트 타기
김 혁
...엘리베이터에 대해 구태여 인상을 가지게 된 것은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난 다음부터였다.
신문사에서는 국산용으로 가격이 저렴하고 외관도 툽상스러운 엘리베이터를 사용하였는데 쩍하면 고장이 생기군 했다. 몇몇인가 엘리베이터에 갇혔다는 얘기를 귀전으로 흘려보낸 적 있었는데 이번에는 내가 당착하게 될 줄을 몰랐다. 그것도 오전에 채 마치지 못한 일을 마저 끝내려 점심시간에 남 먼저 식사를 대충 필하고 달려왔는데 그만 오도가도 못하는 짜장 <<령어(囹圄)>>의 몸이 되고만 것 이였다.
소경매질하기로 엘리베이터 속에 배렬 된 버튼을 열싸게 눌러 보았다. 허나 엘리베이터는 작동을 딱 멈추었고 문은 옛말 속의 마적이 잠자고있는 동굴의 문처럼 주문이 맞지 않았던지 도무지 열릴줄 몰랐다. 수리공은 물론 회사직원들의 기척조차 없었다. 그래도 본능 적으로 <<게 누가 없나요? 엘리베이터 고장입니다!>> 하고 소리질러보았고 조바심이 난 나머지 문을 쾅쾅 두드려보기도 했다. 그렇게 반시간 푼 갇혔다가 일찍 출근한 청소부아주머니에 의해 수리공이 달려왔고 그제야 나는 감금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얼마나 혼났던지 이 과정이 나의 어느 한 중편소설에서 큰 편 폭으로 적혀있다.
변강의 오지인 자그만 시가지인지라 엘리베이터는 호텔이나 상업청사의 전용물, 한때는 우리처럼 엘리베이터가 부설되여 있는 사무실도 흔치 않았었다. 하여 11층에 사무실을 정하고있는 나를 보고 <<거기 땐티(電梯)엘리베이터)있나?>> 하고 묻는 이들도 많다. <<주인집아낙이 담살이군 총각 속옷 걱정>>하듯 싱거운 물음이지만 그 소리가 웬지 싫게 들려오지는 않았다. 현대 샐러리맨답게 매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사무를 본다는 소시민적 우월감에 저도 모르게 젖어든 것이다. 그래서 흥감스럽게 엘리베이터를 두고 시를 지은 적도 있다.
마천루공간을 누에처럼 누비다
단조로운 그래프 쉬임없이 긋다
삶에 지쳐 파김치 된 사람들을
삼키고 토하고 또 삼키다.
어, 인생도 엘리베이터 그것처럼
끝없는 오감 속에 해진 신발 바꾸다
실 빠진 붓 들어 굵은 연장선 긋다
어느 문예지에 실린 이 시를 보고 평론가 한 분이 <<기계문명에 의해 이화되고있는 존재현실에 대해 비평의 미학을 견지로 보여준 시>> 라고 나름대로 평을 했고 그로 해서 엘리베이터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한 생각을 머금기도 했었다.
엘리베이터는 우리 삶에서의 하나의 특수한 공간이다.
아는 사람 모르는 사람 본의 아니게 그 속에서 만날수 있다. 으늑한 공간에서 동료들과 아침에 새로 만나 이야기를 주고받기란 그야말로 감미로운 일이다. 지지콜콜한 가정얘기도 좋고 린근에서 일어난 깜짝쇼얘기도 좋고 전날 있은 축구경기의 결과도 좋고.수염터기들의 세계만 이루어졌을 땐 조금 치졸스러우나 유머 적인 상소리도 슬그머니 오간다. 짧은 상봉이지만 아마 그로 하여 엘리베이터 속에서 주고받는 모든 얘기들이 그렇게 감칠맛 나는 것일가? 때로 자기의 적수, 혹은 만나기 꺼리는 사람과 공교롭게 엘리베이터 속에서 맞부딪칠 때도 있다. 그래도 무가내로 견뎌내야만 한다. 차암, 이럴 때면 얄밉기 짝이 없는 엘리베이터다.
우리가 타는 엘리베이터는 보통 정원 13명정도, 1000 킬로를 용납하게 되어있다. 중량초월만 되면 누구든 편가름이 없이 귀따가운 벨소리와 함께 붉은 등을 번쩍이며 축객령을 내린다. 그 사람이 과장님이든 말단 사원이든.엘리베이터는 그렇듯 공정하고 사심없다. 이런 엘리베이터를 나는 팥떡처럼 안팎이 다름없는 정인군자와 같기 부호를 그어보기도 한다. 비록 너무나 동 닿을 비유가 아닐수도 있지만. 그러면 엘리베이터를 인생의 려객렬차와 비해보는 것이 아마 제일 걸 맞는 비유일 듯도 하다. 너나가 서로 다른 행선지를 향해 오르내리고 간혹 놓칠 수도 있고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이 꼭 려객렬차를 닮은 데가 있지 않는가?
이렇게 날로 도타운 정분이 깊어가고 있는 엘리베이터 속에 가담가담 파리 가 날아들어 눈꼴 시려날 때도 있다. 겨우 2층을 오르면서도 10층 높이를 오르지 못해 조갈들게 섰는 이들을 못 본체 허공을 쳐다보는 이들, 늙은이들을 밀치고 제 먼저 오르는 이들, 술과 담배에 절은 몸으로 작은 공간의 순후한 공기를 삽시간에 흐려놓는 이들....
이런 이들만 보면 공리심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라도 말없이 보듬어안고 힘을 바쳐주는 엘리베이터에 미안하지 않은가 힐문을 하고싶은 생각이 굴뚝처럼 치솟곤 한다. 이렇게 엘리베이터는 인간의 고귀한 상정이며 알량한 소행이며를 남김없이 엿볼 수 있는 하나의 농축된 세계이다.
깨끗한 몸가짐과 맑진 속마음으로 인생렬차나 진배없는 엘리베이터에 오르면서 새로운 하루를 어떻게 참답게 이어나갈가 속구구를 뼈무는 것이야말로 진짜 엘리베이터를 활용하는 샐러리맨의 참 자세가 아닐가?
인류는 기원전 2천 5백년 전에 벌써 애급의 피라미트 구축현장에 엘리베이터의 추형(雛形)을 등장시켰다. 오늘에 와서 엘리베이터는 현대생활의 필수도구로 됐지만 여기에는 높은 곳에 오르는데 소모되는 시간을 수직운동을 통해 단축하려는 인류의 수많은 노력이 슴배여있다. 도회지마다에서 하늘을 우습게 삿대질을 하며 치솟는 마천루와 그에 부착된 엘리베이터들, 이는 그 지역 도회지의 발전의 징표이고 고신 과학기술의 표현일뿐더러 인류의 문명이 더 높은 곳을 향해 뻗어 오르려는 상징이 아닐까?
날에 날 따라 높이 오르고있는 마천루와 그것을 톺는 엘리베이터는 고소(高所)공포증과 페소(閉所)공포증을 동시에 지니고있다고 했다. 그리고 현대인들이고 보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병증에 시달리고있다고 했다.
허나 경쟁과 승자를 기대하는 시대에 우리는 그 공포를 억누르고 그 자비감을 씻어야한다. 보다 차원 높고 보다 황홀한 희망의 상아탑에 오르기 위해서는 우리는 끊임없이 뛰쳐나오고 끊임없이 올라야 한다.
하여 마냥 엘리베이터 앞에 마주서면 청운(靑雲)을 꿈꾸는 나는 주문처럼 좌우명 하나를 맘속으로 되뇌여보곤 한다.
--- 열려라, 그리고 올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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