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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차 중국청년작가창작회의 일지 2
나의 소수민족 문우- 아부리커 애신
창작회기간 나와 동숙(同宿)한 문우는 신강에서 온 위글족 작가 아부리커무 애신이였다. 동화작가인 그는 자신의 민족에 대한 긍지감을 크게 갖고 있는 작가였다. 위글족의 생활상에 대해 어눌한 한어로나마 끊임없이 이야기해 주고 자신의 핸드폰에 저장되여 있는 귀여운 두 오누이의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독실한 무슬린 신교자인 그는 대회에서 마련한 성찬을 거부하고 회의기간 내내 멀리 밖에 있는 청진사에서 꾸리는 식당으로 가서 간소한 식사를 하였다.
그 역시 우수한 위글족 작품들이 중국문단에 적시적으로 소개되지 못하고 더 넓은 무대에로 나아가지 못하는 현황에 대해 걱정을 품고 있었다. 20여부나 되는 대하소설을 창작한 걸출한 위글족 작가도 있지만 외인들은 그에 대해 알지못한다며 통탄하기도 했다.
위글족, 장족 등 소수민족 대표들과 함께
소수민족문학의 활보와 그 향후 진로에 대한 사고는 대회에 참가한 소수민족작가들 너나가 괘념하고 있는 동질성의 문제였다. 이면에서 많은 소수민족작가들은 우리 조선족작가들에게 좋은 본을 보여주었다.
솔직히 대회에 참가하여 나는 처음으로 흘로(仡佬)족이라는 소수민족에 대해 알게 되였다. 회의기간 활달한 성미로 뭇눈길을 끈 흘로족 대표 왕화는 20세 초반의 애된 처녀였다. 그의 고향은 귀주성의 변연지구, 오지인지라 마을에 결혼하지 못한 홀애비만도 500여명이나 된다고 했다.
문학에 심취되여 작품들을 륙속 발표하였으나 어느 출판사도 그의 작품을 책자로 묶어주려 하지 않았다. 작품은 훌륭하나 시장이 없다는것이였다. 왕화가 작품속에 써넣은것은 우유차를 마시고 참깨떡을 먹는 흘로족의 낯선 모습이였던것이다. 그의 창작재질을 보아내고 출판상들은 도시제재를 쓰거나 혹은 드라마 시나리오를 창작하라고 귀뜸해 주었다. 허나 이 붙임성 좋지만 주견이 뚜렷한 흘로족 처녀는 자신의 창작자세를 한사코 버리지 않았다. 우유차와 참깨떡으로 뼈를 굳혀온 고향에 대한 끊임없는 묘술이야말로 그자신의 창작과 힘의 원천이라고 하였다. 회의에 참가하기 직전 왕화는 금방 장편소설 창작을 마쳤다. 역시 흘로족의 특유의 생활상을 그려낸 작품, 작품의 제목은 “가원(家园)”이였다. 대회기간 마련한 련환회에서 그가 부른 노래는 “고향길 18리”였다. 전업가수를 뺨치는 구성지고 격앙된 노래에서 우리는 다시 한번 그녀의 생활자세와 창작자세를 읽어낼수 있었다.
적지않은 소수민족작가들은 웅심을 가지고 있으나 자비감도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소수민족지구의 소수민족작가이기에 고독과 무원조함 그리고 분위기의 삭막함을 느낀다고 했다. 하지만 그 자비감과 렬세를 억누루기위한 방편으로 기꺼이 창작에 림하고 있었다.
운남성 소통의 소수민족작가들이 이룩한 “소통현상” 또한 우리에게 많은 계시를 주었다. 운남의 1500여명 작가들중에 소수민족 작가는 나시족, 푸미족, 하니족, 이족등으로 겨우 58명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적은 수효였지만 이미 일정한 소수민족 작가군을 형성하였다. 따라서 적지앟은 문학동호회가 결성되고 열정적인 문학애호가들로 어우러졌다. 그들은 시종 엄숙한 창작자세를 견지하면서 력사문화의 훈육속에 시종 자기민족의 우량한 전통을 소재로 삼았다. 이 문학대오는 문학분위기의 군체적형성에 주의를 돌림으로써 뛰여난 응집력으로 많은 문인들을 조직하여 자신의 생존상황에 대해 적시적으로 표달할수 있었다. 한가지 흥미로운것은 이들은 중문으로 창작활동을 구사할수 있었으나 근래에는 자신들의 모어로 창작하는데 주력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은 이를 가리켜 “창작에서의 본연에로의 회귀”라고 기꺼이 말하고 있었다.
고비사막에서 천애지각에서 심심산골에서… 전국의 방방각지에서 모여온 소수민족 작가들에게서는 저저마다 농후한 생활습성에 안받침 된 심후한 문화충적을 독특한 언어매력으로 표달해내며 문학의 “본색”에로 접근하려는 몸부림이 엿보였다.
고향의 외진 환경은 외려 그들에게 더 큰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신구사물이 교차하고 다종사물이 병존하는 고향, 력사가 유구하고 인문환경이 극히 풍부한 고향은 창작의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마련해 주었고 더욱 큰 정신적 공간을 마련해 주었다.
자기민족의 견인함과 돈후함, 근로한 품질, 그리고 고집과 협애 봉페된 정신상태는 모두 창작소재로 될수 있었는바 이 속에 흐르는것은 민족의 령혼, 골격과 정신이였다. 이를 흡수하고 융합시키고 저장시키는 가운데 그들은 자기만의 독특한 면모와 정신세계를 창조해 냈다. 물욕이 팽배하는 오늘날 사람들의 문학과 예술에 대한 경배가 와해되는 대배경속에서도 소수민족작가들은 자신의 우수함과 렬근에 대해 동시에 꼭 붙잡고 놓지않고 있다. 신구관념의 격돌과 복잡한 생활환경속에서 그 고유함에 대해 다시금 인식하고 리해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다. 자신에 대해 알고 깨치고 다시 돌아보는 와중에 그들은 페쇠에서 벗어나 초월에로 이를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의 많은 작품에서는 무병신음이나 거짓이 보이지 않고 묵직한 자세가 보였다.
지금 우리조선족사회는 미증유의 충격에 부침(浮沈)을 겪고있으며 우리의 문학이 과연 무엇을 수행해야 하는지 반성과 모색이 더욱 요청되는 때이다.
문학을 명예나 날리고 고독이나 달래는 소일거리로 대하며 섣부른 안주에 빠지는가 하면 작가들이 상업주의와 영합하여 싸구려 시정배 꼴이 돼 버리는 작가들이 보이는 요즘이다. 자기 의존적 가치추구에만 몰두한 나머지 현실과 괴리되여 바라만 보는 관조미학의 온상 속에서 자기 소모적인 글쓰기에 정력을 허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부박한 현상이 우리 문학의 주류를 이루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삶을 형상화하고 그 삶에 가치와 빛을 부여하는 것이 다른 무엇보다 더 중요한 문학의 역할과 소명이라고 할 때 탁월한 소명의식을 지닌 다른 민족작가들의 작품, 작가들을 경모의 마음으로 접하게 된다.
시대정신과 민족적인 문화의식이 뚜렷하게 결합되면서 생성된 문학적 가치가 그들을 명가로 그들의 작품을 명작으로 만든 것이다.
우리는 소수민족작가만의 독특한 창조적인 감성과 혜안으로 력사적인 현장에서 그 현실과 의미에 관여하면서 문학이 우리 삶의 경험이 되도록 메시지를 전달해주는 기능을 수행하는 코드에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야 한다. 우리공동체의 운명 속에 몸을 던지고 우리의 삶과 인생에 따뜻한 시선을 주면서 우리 사회가 겪고있는 각종 문제들을 아우를수 있어야 한다. 여러 가지 문학적인 기법과 장치를 리용하여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여실하게 표현하고 그러한 삶의 의지, 혹은 소망을 다각적으로 보여 주어야 한다.
우리만의 삶의 체험과 고뇌를 작가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고 그것과 동화하고 일체가 되는 작업을 문학의 가장 선차적인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봉페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시대와 운명을 함께 하는 우리만의 생각을 글에 담는 작가들이 많아야 우리의 소수민족문학이 살고 우리의 개개인의 문학이 세월과 지역의 시련을 이겨내고 불후에로의 접근을 시도할수 있게 될 것이다.
(계속)
련환회에서 열창하고 있는 소수민족대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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