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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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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주55돐특집] 소설 조선족이민사 (1)
2007년 09월 02일 17시 35분  조회:3410  추천:66  작성자: 김혁
 
 
. 한 부의 소설로 읽는 중국조선족 이민사 . 
 

조모의 傳說 (1)

 

김 혁
             

 

 

... 그때 그 우물에서 룡이 나왔다고 나의 할머니는 이야기하셨다.
백세를 바라보는 세기의 로인임에도 우리는 그이를 <<쌍가매(가마)>> 할머니라 불러 버릇 했다.
할머니의 이마전에서 오른쪽으로 치우쳐 가마가 자리를 틀고 있었다했다.
년세가 든후에는 머리가 많이 빠져 이제 더는 가마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 찾아볼수없는 쌍가마의 정체와 마찬가지로 우물에서 룡이 나왔다는 전설도 우리에게 있어서는 민화나 전설으로 지나 칠 한 대목 이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우물에서 룡이 나왔다고 확신의 어조로 말 하군 했다. 어거지에 가까운 어조였다.
유치원 다니는 증손녀와도 아니고 누구를 보나 그렇게 말 하군 했다.
우리는 그저 로후의 로인의 망녕든 소리쯤으로 치부하고 지나치군 했다.
할머니는 이제는 틀이 끼기조차 힘들어져 체념하고 푹 패인 합죽이로 부대처럼 훌쭉한 볼을 풀럭이면서도 어눌거리는 말씨로 우물에 관한 이야기를 하군 하셨다.
모시빛저고리에 검정 몸베를 받쳐입고 어깨가 시려나는지 무명실수건을 마냥 어깨에 걸치고 한쪽 무릎은 세운채 오두마니 앉아서 할머니는 형형한 눈빛으로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가 즐겨 말하는 그 우물은 현성의 남쪽 가장자리에 있었다.
그곳은 고색 창연했던 이 현성에서 하나의 풍경구가 되여있다.
현성에 들리는 사람 치고 그 우물을 찾아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우물주변에는 철책(鐵柵)을 두르었고 우물 아구리는 철판을 대여 커다란 자물쇠를 잠근 데서 사시장철 쌉스름한 물이 자작하게 괴여 있었다는 우물물을 볼수 없었다. 우물아구리에 놓인 용드레틀도 평소에는 보이지않았고 명절이나 유람객들이 운집하는 관광 호황기에만 그 무슨 무대세트처럼 얹었다가는 다시 떼여 내군 했다. 여하튼 그 우물에서 룡이 나왔으며 우리고장의 이름도 그 우물 그 룡을 따서 달았다는데 대해선 누구나 알고 있었다.

할머니의 전설은 그 우물로부터 시작 되군 했다.
사람끼리 잡아먹었다는 기사년 대기(大飢)의 고개를 넘어 백년전 쌍가매할머니의 아버지는 이곳에 이르렀다.

 


 

 * 이주민들이 건넌 눈물 젖은 두만강


 
  봇짐을 풀던 첫날 칠척의 장한은 대동해 왔던 가족들 앞에서 땅을 치며 목울음을 울었다고 했다. 풍문에 이곳은 물고기가 논 코에 욱실거리고 꿩이 가마에 절로 날아들고 뜰에서 몽둥이로 노루를 때려잡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 했다. 허나 그들을 맞아준것은 천만년 묵은 진펄에 갈대 숲이 우거지고 야수가 출몰하는 인적기라고는 없는 고장 이였다. 천재(天災)를 입은 고향의 풍토가 거칠다고는 하지만 이곳 만주 땅에 비할 바가 아니였다.

삼을 굽는 구덩이를 파놓고 길쌈을 잘했으므로 고향에서는 그네들을 삼굽집이라 불렀다. 그들의 고향에는 3년째 비 한 방울 내리지 않고 있었다. 떡갈나무에 개피를 뿌리며 강우제를 지냈지만 무심한 하늘은 비한방울 내리기에 린색했다. 그리고 집에는 라병환자 아들을 두고 있었다. 굶는 서러움에 <<문둥이집>>이라 사람들로부터 오는 소박에 등허리를 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리향할 생각을 뼈물러 머금었던 것이다. 떠나면서도 삼을 구워야한다며 쌍가매의 어머니가 삼씨 반 사발을 보짐에 품고 왔다.
그들 일가처럼 수효를 셀수 없는 사람들이 처자를 거느리고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망건에 헌 삿갓, 퇴색된 휘양을 쓰고 무명두루마기를 걸치고 미투리를 신은 사람들...
너나가 다를 바없는 따라지 목숨들 이였다.

 

 

* 장사진을 이룬 이주민 행렬


함경북도 부령군에서 왔고
갑산군에서 왔고
정성군에서 왔다.
김액 김씨, 전주 이씨, 미량 박씨들이 왔다.
삼굽는 사람도 왔고
총을 든 포수도 왔고
곡하는 사당패출신도 왔고
안경 건 훈장도 왔다.
대짝같은 보퉁이를 지고 남부녀대하고 밤도와 강을 건너 왔다. 둥지 털린 멧새처럼 민들레 홀씨처럼 여기저기서 날아와 이러구러 동네를 이루었다.

향수에 볼을 적시는 눈물을 뻑 문지르고는 이튿날부터 황무지개간에 나섰다.
버들과 갈을 베고 불을 달았다. 그때 실향민들이 놓은 불은 옹근 하루밤 하루낮을 타올랐다고 한다.
그리고 개간의 첫 모지락괭이를 박았다.
사력을 다한 그네들의 힘으로 비탈에 밭이 일구어지고 갈대숲 무성하던 사득판에 논이 풀리였다.

 


 
* 춘경에 나선 간도 이주민의 모습

그런데 고생중의 고생은 마실 물이 없는것이였다.
리씨성을 가진 훈장 하나가 풍수를 볼줄 아는지라 물 자리를 찾아 나섰다.
풍수를 본즉 이곳은 원체 왕후지지 (王侯之地)도 못비길 명당자리라고 했다. 땅 밑에 룡이 틀고 누워있다는 것이다.
우물자리를 잡고 동네에서는 간소하나만 주과포(酒果脯)를 차려 천지신명에게 제를 지냈다. 그리고나서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모래와 자갈을 들어 내고 돌을 까 내니 샘줄기가 터졌다.
쌍가매의 아버지가 우물맛을 보니 쌉스름하고 이발이 쩡쩡 시려나고 배속을 시원히 찌르는 것이 틀림없는 룡수였다. 물을 마셔본 사람마다가 물맛이 좋다고 절찬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우물 아구리를 정성스레 쌓고 물을 긷기 좋도록 용드레를 앉혔다. 우물가에 수양버들도 한그루 옮겨다 심었다.

좁장한 마을 안자락에 숨은 듯 주저앉아 있는우물가는 한컷의 흑백수묵화를 방불케했다.
곱게 쌓은 돌가퀴우에
룡드레 틀 하나 얹혀져 있고
우물벽체를 이룬 돌틈사이엔 물이끼가 꽃처럼 피여나고...



우물자리에서 룡수가 터지던날 쌍가매 어머니의 양수도 터져올랐다. 쌍가매는 그날 타향에서 탯줄을 끊었다. 어머니는 탯줄을 노전밑에 가만히 감추었다. 언제든 고향에 돌아가면 그곳에 묻어 주려는 것이였다. 그리고 우물물에 쌍가매를 씻겨 내렸다.
찬물의 세례에 쌍가매는 영악스레 울어댔다.

<<썅놈의 종간나(계집애)가 악바리질하고 울어대네.>>

덧불어난 입을 두고 아버지는 귀찮게 뱉었고 문둥이오빠는 가까이에는 오지 못하고 문 짬으로 갓난 애를 들여다보며 못나게 웃었다.

어른들의 타향살이의 애수가 쌍가매에게 옮았던지 아가는 울보가 되여 종일 울음이 그칠새 없었다. 그때마다 칭얼이는 애를 안고 어머니는 어릴적 배웠다는 노래를 흥얼이군 했다.

월편에 나붓기는 갈잎대가지는
애타는 내 가슴을 불러야 보건만
이 몸이 건느면 월강죄란다...

썩후에야 쌍가매는 한 곡조 밖에 흥얼일줄 모르는 어머니의 그노래가 <<월강곡>>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청정부는 월강하여 언감 자기들의 봉금지(封禁地)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잡았고 월강죄로 목을 쳤다. 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죽음을 무릅쓰고 강을 건넌 사람들이 날로 불어만 났고 그네들의 한을 담아 싣고 이 노래는 널리 불리워지고 있었다. 쌍가매의 어머니가 다른 노래는 부를줄 모르고 하여 실향민들의 한이 서렸던 <<월강곡>>은 쌍가매에게서 자장가로 불려 졌다.

 
* 청태조 누르하치,
청정부는 선조가 태여난 장백산 지역을 신성시하여 봉금령을 내렸으며 월강하여 봉금지(封禁地)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을 잡았고 월강죄로 목을 쳤다

                            
                      
   

* 우리의 선조들이 월강하여 맨 처음 이른곳 사이섬
간도라는 이름도 이 섬에서 연유되었다.


어느 달이 휘영청 밝은 밤, 고향생각에 잠머리가 뒤숭숭해져 잠에서 깬 쌍가매의 아버지는 문을 나섰다가 그만 그 자리에 굳어지고 말았다.
글쎄 우물에서 서기가 뿜겨 나오는 것이 아닌가! 사위는 일광단을 펼친 듯 백주처럼 환한데 뒤미처 무지개가 우물우에 비끼고 하늘땅을 뒤흔드는 소리가 나더니 무엇인가 우물속으로 부터 언뜰하고 솟아올랐다. 꿈틀거리며 날아오르는 그것은 틀림없는 룡이아닌가?!

<<룡이다!!! 우물에서 룡이 났소! 우물에서 룡이 났소!>>

아버지가 소리소리질렀고 잠에서 깬 포수네 집에서 사당패네 집에서 훈장네 집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왔다.
사람들은 다투어 우물을 들여다 보았다.
우물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삼굽집 서방의 꿈이 아니면 환각 이였다고 후에 사람들은 말했다.

허나 우물에서 룡이 승천하면 후세에 장수가 나고 이 고장에 행운이 트일 것이라고 동네사람들은 쌍가매아버지의 말을 믿고 룡제를 지냈다. 남에 비해 살림이 조금은 윤택했던 사당패 김씨네가 먼저 자금을 선대하여 이웃 중국동네에 가서 석공을 청해 석비(石碑)를 세웠다. 리훈장이 아무 해 아무 달 아무 시에 우물가에서 룡을 보았다고 비문에 써넣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증조할머니가 어릴 적 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였다.

허나 시간이 흐르면서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물에서 나온 룡을 자기가 직접 본 것으로 바뀌어져 갔다.
할머니의 확고함에 가까운 어거지 같은것에 의해 룡의 전설은 우리 가문의 전설처럼 만들고 있는것 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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