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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관한 동시 모음> 정진아의 '라면의 힘' 외
2017년 04월 04일 13시 56분  조회:1403  추천:0  작성자: 강려



<음식에 관한 동시 모음> 정진아의 '라면의 힘' 외

+ 라면의 힘

꼬불꼬불 산길
즉석 라면 배낭에 담고
성큼
아빠 발자국 따라
종종종
올라간다.

차오른 숨
힘 빠진 다리
배 속에선 꼬르륵

"아빠, 라면 먹고 싶어."
"산꼭대기서 먹어야 더 맛있지."

올라간다
올라가

아빠 주먹만한 라면이
헉헉 지친 나를
산꼭대기로 끌어올린다.
(정진아·아동문학가, 1965-)


+ 상지리 분교 급식 시간 

밥 위에 내려앉은 햇살
시금칫국에 퐁당 빠진 바람
함께 먹는다

"휘어이 훠어이."
다랑논에서 새 쫓던 재덕이네 할아버지
경운기 몰고 돌아가는 소리 들으며
밥을 먹는다

경백이네 과수원
사과 익는 냄새는
입가심으로 먹는다.
(박혜선·아동문학가)


+ 메주의 꿈

알몸으로 매달려 있는 메주. 
엄마가 음식으로 간 맞추듯 
바람도 한소끔 
햇빛도 한소끔 
다녀가면 
짭조름한 맛이 든다. 

또르르 또르르 
마당을 굴러다닌 콩이 
몸을 합쳐 메주로 태어나 
겨울을 나고 있다. 

메주는  
된장이 되어 
보글보글 끓는 
꿈을 꾼다. 
(오순택·아동문학가)


+ 비빔밥, 이 맛 

송송송 썬 김치를 넣어야지요. 
콩나물도 한 젓가락, 
생채도 담뿍 한 젓가락, 
고추장도 빨갛게 한 스푼. 
그러고 그냥 비빌 건가? 
쨀끔, 고소한 참기름도 넣어야지요. 

부벅부벅부벅- 
숟가락을 틀어잡고 비비다가 
어차, 먹어 보자 한 숟갈! 
오오, 맛있네! 

근데 이 맛은 어디서 올까?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서로서로 섞여서 
만들어 내는 이 비빔밥 맛은. 
(권영상·아동문학가)


+ 난 김치예요 

씨앗으로 뿌려질 때부터 
김치가 될 줄 알고 있었기에 
넌출넌출 푸른 잎 키웠지요 
그러나 김치가 되는 건 쉽지 않았지요 
뿌리는 뽑히고 
내 노란 속살에 
굵은 소금이 뿌려져 
나는 부들부들 숨을 죽여야 했어요 
그것뿐인가요 
살갗을 후비는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으로 비벼져 
정신을 잃었지요 
서로 다른 것들과 어울린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 줄 정말 몰랐어요 
그렇지만 항아리 속에 꼭꼭 담겨진 우리는 
조금씩 자기를 버리고 
서로에게 익숙해졌지요 
나에게는 양념 맛이 들고 
양념에겐 내 향이 배고 
그렇게 맛있는 김치가 되었어요 
젓가락으로 김치 한 조각 들어올릴 때 
기억해 줘요, 
한때는 나도 
흙에 뿌리내렸던 배추라는 걸.
(이혜영·아동문학가) 


+ 시래기  
  
할머니가 시장바닥에서
푸른 무청을 주워 온다.
며칠째 주워 온다.

- 할머니, 그런 쓰레기를
   왜 자꾸 주워 모으는 거예요?

- 이건 쓰레기가 아니라
   시래기란다.
   겨울이 되면
   맛있는 시래깃국이 될 거야.

할머니는
무청을 촘촘하게 끈으로 엮어
바람 잘 드는 곳에 매달아 놓는다.

무청이 
사드락사드락 말라 간다.

우리 집 처마 끝으로
겨울이 온다.
(김응·아동문학가)

* 엮은이: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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