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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쳐 말했더니 오 은 영
사다리가 전봇대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하나밖에 없네." 전봇대도 사다리를 보고 놀렸어요. "넌 다리가 두 갠데도 혼자 못 서지?" 사다리가 말을 바꿨어요. "넌 대단해!" 다리가 하난데도 혼자 서잖아!" 전봇대도 고쳐 말햇어요. "네가 더 단단해! 사람들을 높은 데로 이끌어 주잖아." |
꼭 집어낸다 오 은 영
진달래꽃은
와르르 쏟아지는 빛살 속에서 "바로 내 빛깔이야!" 분홍빛 꼭 집어내고 기러기는 많고 많은 하늘길 속에서 "바로 이 길이야!" 가야 할 방향 꼭 집어내고 우리 엄마는 단체 사진 속 콩알만한 얼굴들 사이에서 "여기 너 있다!" 나를 꼭 집어 낸다.
(2004년 여름『시와 동화』제2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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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랑 우리랑 오 은 영
꽃들은
물 한 바가지에 고개 들어 활짝 웃고 우리는 칭찬 한 모금에 어깨 펴며 벙긋 웃고 |
'칭찬 한 모금'은 마음의 따뜻함이다. 인간에게는 따뜻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 (박두순) |
나무에 걸터앉은 햇살 오 은 영
햇살이
라이락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팝콘을 튀기고 있어요. 팝, 팝, 팝 가지마다 다닥다닥 피어 있는 팝콘에서 고소한 냄새가 나요. 솔, 솔, 솔 온 마을이 봄 냄새에 젖어 드네요. 흠, 흠, 흠 |
만유인력의 법칙 오 은 영
'안 떨어질 거야'
얼굴이 노래지도록 안간힘 쓰지만 기어이 열매는 땅으로 끌려가고야 말지. '끝까지 매달릴 거야' 얼굴이 빨개지도록 이 악 물지만 마침내 나뭇잎은 땅으로 떨어지고야 말지. '엄마랑 얘기하나 봐라' 야단맞고 새침하게 토라져 보지만 엄마가 다정하게 부르면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말지.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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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낯설다. 감히 과학 용어를 시어로 쓰다니. 이것이 발상의 전환이다. 고정관념에 매여 있으면 새로운 시는 한 줄도 쓰지 못한다. 시의 소재는 무엇이든 좋다. 다만 시적 육화가 이루어졌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물리학에서 만유인력은 사물이 낙하할 때 지구 중심부를 향해 떨어진다는 원리를 말한다. 1,2연에 그것을 미적으로 잘 드러냈다. 인간 심리에서의 만유인력은 어떤 것인가? 3연에 그것을 심상으로 명쾌히 제시하고 있다. '어느새 엄마 무릎 위로 끌려가고야 마는' 것이다. 그 만유인력은 어머니의 다정함이다. 인간에게 따뜻함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걸 시로 표출하고 있다. (박두순) 이 시는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과학의 법칙을 어머니와 자식의 사랑에 비유한 발상이 돋보이며, 뉴턴이 그랬듯이 둘 사이에 '끌려감의 미학'을 시인은 발견한다. 사람들은 물질에 끌려 생명마저 경시하며 살아가는 일이 많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끌려감의 힘은 물질로는 비교할 수 없는 고귀한 사랑이다. 읽노라면 가슴이 따뜻해오는 그러한 시라 할 수 있겠다. (김진광) |
미끄럼틀 성적 오 은 영
내 성적은
미끄럼틀 성적. 한 계단 두 계단 힘들게 올라가 꼭대기에는 잠깐만 머물고 밤하늘서 미끄럼 타는 별똥처럼 쏜살같이 바닥으로 떨어지거든. 엄마는 그런 내 성적 보며 혀 끌끌 차지만 난 걱정 안해 미끄럼틀은 한번 떨어지면 끝인 별똥과 다른 걸. 마음만 먹으면 엉덩이 툭툭 털고 다시 올라갈 수 있는 걸.
(2004년 가을『한국동시문학』제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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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와 나뭇가지 오 은 영
뿌리는
두레박 가득 남실남실 물 담아 올려 보내며 물방울 편지를 띄웁니다. "빛나는 햇살 보내줘 고마워." 나뭇가지는 빈 두레박에 찰랑찰랑 햇살 채워 내려보내며 햇살 편지를 띄웁니다. "달콤한 물 보내줘 고마워." |
젖 먹는 나무 오 은 영
손발 꽁꽁
마음 꽁꽁 얼어 버린 나무들에게 햇살이 따뜻한 젖 물려요. "칼바람 속에서 춥고 배고팠을 거야." 꿀꺽꿀꺽 배부르게 먹은 나무들 마음이 녹네요 산수유 마음도 진달래 마음도 노랗게 발갛게 웃네요. |
초록 쉼표 오 은 영
우리 동네 느티나무는
커다란 초록 쉼표예요. 떨어지던 빗방울도 초록 잎 의자에 앉아 잠깐 쉬고 떠돌이 채소장수 아저씨도 초록 물든 그늘에 땀방울 잠깐 내려놓고 우리도 학원버스 기다리는 동안 초록빛 너른 품에서 친구랑 어울려 놀지요.
(2004년 가을『한국동시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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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인은 시에서 제목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알고 있다. 제목부터 독자의 마음을 시 속으로 끌어들인다. 내용도 초록만큼 신선하다. (김) |
흉내 오 은 영
뒤뚱뒤뚱 걷는
아기를 보면 오리가 웃겠다 제 흉내 낸다고 뒤뚱뒤뚱 걷는 오리를 보면 아기가 토라지겠다 제 흉내 낸다고 |
남들이 자기 흉내를 내면 그렇게 유쾌하진 않지요. 하지만 우연찮게도 모습이 같아 보일 때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이지요. 뒤뚱뒤뚱 걷는 아가의 걸음마가 오리의 모습과 닮아 보인다는 것을, 오은영(1959~) 시인이 아주 귀엽게 표현해 내었군요. 그런데 아가 걸음걸이를 오리가 흉내냈다니 아가가 토라질 만도 하겠지요. (김용희) |
오 은 영 1959년 ∼ 서울 출생. 여류. 이화여대 불문과 졸업. 1994년 아동문예 문학상에 동시 '휴전선 넘기' 외 2 편 당선. 199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더 멀리, 더 높게, 더 깊이' 당선. 1999년 대산문화재단 창작지원금 받음. 2003년 제2회 은하수동시문학상 신인상 수상. 동시집 : 우산 쓴 지렁이 넌 그럴 때 없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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