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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택 등단 50주년 >기념 동시 . 동시조 100편 [한국]
2017년 06월 12일 20시 32분  조회:2358  추천:0  작성자: 강려

<오순택 등단 50주년 >​

*동시(50편)*

 

 

나비

 

나비는

예쁜 그림책.

 

접었다

펼치는

 

두 장 뿐인

그림책.

 

 

배추흰나비

 

너도

아기였를 땐

 

초록 배춧잎에

송송 구멍을 낸

못말릴 애벌레 였단다.

 

 

모시나비

 

민들레가

제일 좋아하는

머리핀.

 

 

나비의 무게

 

나비의 무게는

몇 그램이나 될까?

 

꽃잎 한 장에

향기를 더한 무게일까?

 

자주제비꽃에 앉은

작은주홍부전나비는

자주제비꽃 향기만큼 무거울까?

 

개망초꽃잎에 앉은

수풀꼬마팔랑나비는

개망초꽃 노랑 꽃잎만큼 무거을까?

 

꽃만 알고 있는

나비의 무게.

 

 

나비의 책 읽기

 

애기똥풀 꽃잎

한 장 한 장은

노란 책장.

 

모시나비가 앉아서

한 장 한 장

책장 넘기며 읽고 있다.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나비야.

 

꽃밭에서

뭐 하니?

 

뽀뽀하지.

 

뽀뽀만 하니?

 

밤이면

꽃잎 덥고

잠자지.

 

 

 

오목눈이

 

이른 아침

우리 집 우편함 속에서

오목눈이가

빠끔 내다보고 있다.

 

어젯밤

집을 잘못 찾아

우편함 속에서 잤나보다.

 

우체부도 한번쯤

저렇게 이쁜 편지

배달해 주었으면 좋겠다.

 

 

노랑턱멧새

 

-나도

꽃이야.

 

불그레한 매화 몽우리 맺힌

가지에

눈빛 고운

노랑턱멧새 한 마리 앉아 있다.

 

아이야!

발소리 가만히 걸어라

꽃 날아갈라.

 

 

뻐꾸기 소리

 

뻐꾸기 소리에선

산국화의

보랏빛 향내가 난다.

 

뻐꾸기 소리에선

보리 익는

누르스름한 냄새가 난다.

 

뻐꾸기 소리는

시골 외할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 같다.

 

 

보리똥나무가 직박구리에게

 

보리똥나무의 열매가

익을 무렵

 

직박구리가 와서

노래를 불러 주었다.

 

풀빛 고운 노래

공짜로 듣는 것 미안해

보리똥나무는

직박구리 입 속에

빨간 열매 하나

넣어 주었다.

 

 

대추 한 개

 

갈색 조그만

대추 한 개.

 

벌레가 먼저

맛을 보고 있었다

 

나는

달짝지근한

대추 한 개를

벌레와 나눠 먹었다.

 

 

따뜻한 밥

 

포클레인은

커다란 숟가락이다.

 

흙밥 푹 퍼서

트럭에게 먹여 준다.

 

고봉밥 먹은 트럭

부릉부르릉

트림하며 간다.

 

 

아이가

운동장에서

공을

찼다.

 

하늘에

공만한

구멍이

뚫렸다.

 

 

우산병원

 

우리 아빠가 원장인

한 평 우산병원.

 

펜치 하나로

날씨를 접었다 폈다 하신다.

 

아빠가 고친 우산은

빗방울의 신나는

미끄럼틀이고

 

아빠가 고친 양산은

고운 햇볕 받아 먹고 핀

접시꽃이다.

 

 

수평선

 

젖은 구름도 걸리고

때로는 물 먹은 미역도 걸려 있다.

 

 

톡, 튕기면

물방울이 뚝, 뚝

떨어질 것 같은

 

팽팽한 빨랫줄.

 

 

꽃을 보고 있으면

 

꽃을 보고 있으면

나도 꽃이 됩니다.

 

꽃이 되면

몸에서 향내가 납니다.

 

 

엄마 냄새

 

아침 햇귀 같은

아가 옷

빨랫줄에 너는

엄마.

 

바람도

가만 와서

아가 옷 속

들락거리고

 

부리 예쁜 새도

빨랫줄에 앉아

엄마 냄새 맡고 있다.

 

 

함께 먹는 식사

 

상추 잎에

구멍이 나 있었다.

 

벌레가 먼저

먹었던 잇자국이다.

 

벌레가 먹고 남긴

상추 잎

나도 맛있게 먹었다.

 

 

마당을 쓸며

 

마당을 쓴다.

아침에

 

어둠은 잘게잘게 부서지고

햇귀는 비질에도

쓸려나가지 않는다.

 

눈 고운 곤줄박이

온음표로 물고 온

아침 햇살

푸르스름하다.

 

 

 

하늘 냄새

 

아침 일찍

들녘에 나갔다.

 

별이 내려와

놀다갔는지

풀잎에서

하늘 냄새가 난다.

 

 

봄비

 

자박자박

아기가

걸어옵니다.

 

하얀 종아리 드러내고

종일 마당에서

자박자박

걸음마를 배웁니다.

 

 

목련

 

입 안에

함빡

봄을 머금고 와서

 

푸우~

푸우~

뱉고 있다.

 

봄이

화르르 쏟아진다.

 

 

파꽃

 

머리에

행성 하나이고 있다.

 

그 행성에서

비릿한 향내 물큰 난다.

 

 

두부

 

처음엔

동그란 콩이었어요.

 

반듯한 네모

보드라운 살빛으로

다시 태어났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가장 보드라운 것을

가장 날카로운 칼로 벱니다.

 

 

선풍기

 

새장에 갇혀

파닥이는

저 날개 좀 봐.

 

날개만 남겨두고

새야!

어디 갔니?

 

 

장미

 

6월이

담장을 넘다가

가시에 찔렸대요.

 

담장이 온통

빨갛게 물들었대요.

 

 

 

여우비

 

어린 하느님이

대낮에

쉬를 하고 있다.

 

부끄럽지도 않나 봐.

 

 

*여우비: 볕이 나 있는데 잠깐 오다 그친 비.

 

너는 누굴 닮을래?

 

물고기는 몸속에 가시를 숨기고 산단다.

고슴도치는 몸 밖에 가시를 내놓고 산단다.

 

너는

누굴 닮을래?

 

 

고드름

 

나는

눈이 아니야.

 

나는

물도 아니야.

 

그럼

넌 누구니?

 

나는

해님이 만든 수정이야.

 

 

겨울나무

 

하느님이

X-레이로

나무의 가슴을

찍었다.

 

나무의 가슴 뼈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겨울나무

참 건강하다.

 

 

 

31. 놀랜 바다

 

건드리지 마라

바람아.

 

푸른 몸

생채기 나면

물고기들도 아파한다.

 

파도가

뭍으로 기어오르는 건

 

상처 난 지구

소금기 묻은 혀로

핥아주는 거란다.

 

 

비 갠 오후

 

꽃밭에

지렁이 한 마리

죽어 있다.

 

까만 옷 입은

개미들이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간다.

 

꽃무늬 옷 입혀

하늘나라로

보내주려나 봐.

 

 

 

마음

 

세모난 꽃씨 봤니?

 

동글동글해야

꽃씨지.

 

네모난 꽃잎 봤니?

 

동그스름해야

꽃잎이지.

 

그래,

모나지 않은

마음이라야

향그럽지.

 

 

걸레

 

누가 너를 함부로 대하랴

엄마가 자주 찾는

이름 아니더냐.

 

보드라운 비의 혓바닥도

환한 바람의 빗자루도

너처럼

세상 구석구석

닦아 주진 못한다.

 

겉보다 마음이 깨끗한

너는

해진 헝겊의

성자다.

 

 

해질 무렵

 

해질 무렵

호숫가에서

발을 씻고 있는

황새 한 마리.

 

-엄마가 걱정하신다

얼른 집에 가거라.

 

갈대가

사르락사르락

말을 건다.

 

 

 

아기의 첫 울음

 

아기의 첫 울음은

알림이에요.

 

하느님에겐

인구 한 명 더 늘어났다고

 

땅에겐

지구가 더 무거워졌다고

 

알리는 것이에요.

 

 

아름다움이 있는 곳

 

내려오려고만 하지마라.

폭포야.

하늘이 아름답지 않니.

 

올라가려고만 하지마라.

분수야.

꽃이 아름답지 않니.

 

 

우리 집

 

오늘 아침

우리 집 뜰엔

세상에서 제일 맑은

아기 웃음 같은

목련꽃이 피었습니다.

 

내 동생이 태어날 때처럼

목련꽃 핀

우리 집이

동네에서 제일 환합니다.

 

 

제비꽃의 봄

 

쪼그만 입으로

봄볕

오물오물 먹고 있는

자주색 제비꽃.

 

모시나비 한 마리

사뿐사뿐 날아와

제비꽃 자주색 입술에

뽀뽀하고 있다.

 

 

미안해

 

놀이터에서

친구와 놀다가

개미를 밟았어.

 

나는

미안하다는 말을 못했어.

 

그런데

잠을 자려는데

개미의 모습이 떠올라

잠이 오지 않았어.

 

‘개미야, 미안해’

맘속으로 말했어.

 

 

 

엄마 스타킹

 

우리 집에

뱀이 살아요.

 

지난 여름

풀밭에서 본

뱀이

허물을 벗어 놓고 갔나 봐요.

 

 

코스모스꽃

 

가녀린 꽃대위에

분홍 접시 하나.

 

접시엔

향기 몇 스푼

 

나비

불러 모아

나눠준다.

 

 

벌레들의 도서관

 

노래책이 빼곡한

벌레들의 도서관.

 

싸르락싸르락

바람이

책장 넘겨주면

 

별이 눈 뜨는 초저녁부터

벌레들은

낭창낭창 글을 읽는다.

 

별은

밤늦도록 자지 않고

벌레들의 글 읽는 소리 듣고 있다.

 

 

자반고등어

 

싸락눈 덮고

자고 있다.

 

보름달

 

밤하늘에

동그란 창하나 있다.

 

그 창문 가만히 열면

 

발 시려

동동거리는

펭귄도 볼 수 있고

 

그 창문 열고 나가면

 

아프리카

눈이 큰 아이도

만날 수 있을까?

 

 

소나기

 

소나기는

하느님의 회초리 인가 봐.

 

풀잎은

소나기 맞고

푸렁물이 들고

 

꽃잎은

소나기 맞고

얼굴이

빨게 진다.

 

 

소금

 

나는 바닷물이었어요.

 

네모진 널찍한 마당에

갇혀있었어요.

 

햇볕도

듬뿍 받아먹고

바람도

함빡 받아먹었지요.

 

고운 햇볕

향그런 바람

참 맛 있었어요.

 

등이 가려웠어요

포슬포슬

몸이 말라 갔어요.

 

사르락사르락

온몸에 하얀 꽃이 피고요.

 

하얀 이 드러내고 웃는

메밀꽃 같았어요

짭조름한 메밀꽃 같았어요.

 

 

4월

 

봄은

민들레 노란 꽃신을 신었어요.

 

부리에 봄을 물고

노랑턱멧새도 와 있었어요.

 

나비는

젖은 날개를 말리느라

햇볕을 쬐고 있어요.

 

제비는

꽃잎 같은 새끼 주둥이에

벌레 넣어주기에 바쁘답니다.

 

 

나무의 육아 법

 

도토리나무는

쬐고만 방에

아기 혼자 잠재우고

 

밤나무는

밖에 가시 울타리 쳐놓고

삼형제를 한 방에서 키운다.

 

포도나무는

여러 형제

뺨 부비며 자라게 하고

 

모과나무는

못생겨도 좋다며

향기로 키운다.

 

 

항아리에 빠진 달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들이 집으로 가면

 

달도

아이들을 따라가요.

 

아이가 쪼르르

방으로 들어가면

 

달은 심심해서

마당을 기웃거리고 다니다가

 

그만

장독대 물 항아리에

풍덩 빠졌대요.
 

오순택 등단 50주년​

*동시조(50편)*

 

바늘 귀

 

가진 건

아주 작은

귀 하나 뿐이어도

 

실을 꿰어

해진 것 다

깁는다.

바늘 너는

 

너처럼

깨끗한 귀 하나

가졌으면 좋겠다.

 

 

하늘만큼만

 

ㅉ ㅉ ㅉ

새소리가

아침을 맑게 연다.

 

순한 햇살

눈을 뜨고

나팔꽃도 입을 연다.

 

아가야,

하늘만큼만

꼭 고만큼만 자라라.

 

 

꽃 발걸음 소리

 

햇볕도 곱게 익은

가을 길 저만치서

 

자박자박 걸어오는

발걸음 소리 들린다.

 

아이야,

내일도 그렇게

분홍으로 걸어라.

 

 

꽃씨 속이 궁금해

 

곱게 접힌

연둣빛 싹

포근히 감싸 안고

 

귀는 반쯤 열어 놓고

빗소리도 듣는단다.

 

나비는

꽃씨 속에서

겨울잠을 잔단다.

 

 

가을 익다

 

백일홍 꽃잎 위에

고추잠자리 앉혀 놓고

 

가을도 덩달아서

빨갛게 익고 있

 

풀무치 초록 날개도

불그스레 물든다.

 

 

그늘 옷 깔고 앉은

 

산에서 저벅저벅

내려온 나무 한 그루.

 

밭 언덕에 서늘한 그늘

벗어놓고 서 있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

그늘 옷 깔고 앉아 있다.

 

 

탱자나무에 갇힌 집

 

오촉짜리 전구만한

노오란 탱자 열매.

 

누가 몰래 따 갈까 봐

가시울타리 쳐 놓았다.

 

울안엔

비릿한 향내

함뿍 젖은 푸른 달빛.

 

 

꽃씨 닮은 아이들

 

이슬 먹고 꽃 피우는

나팔꽃도 닮고 싶고

 

부리에 음표달린

종달새도 닮고 싶은

 

이제 막 여물기 시작한

꽃씨 닮은 아이들.

 

 

아이들이 가꾼 지구

 

사과 한 개 떨어져도

땅이 얼른 받아주고

 

배춧잎도 벌레들의

맛있는 밥이 된다.

 

아이들

웃음소리가

과꽃처럼 피는 곳.

 

 

아파트에 사는 아이

 

뜰이 없다며 햇볕도 돌아가고

골목을 쏘다니던 바람도 길을 잃고

아이는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외롭다.

 

 

그 아이

 

속눈썹 긴

여자 아이.

나리꽃 닮은 아이.

맑은 햇살

창 너머로 들여다 본

5학년 교실.

책상에 금 그어 놓고

넘어오면 안 된다던.

 

 

항아리

 

할머니는

간장 된장 담으면

좋겠다하시고

 

엄마는

꽃병으로 했으면

좋겠다하신다.

 

배 불룩

그 항아리에

나는 꿈을 담고 싶다.

 

 

누에

 

문도 없는 집을 짓고

스스로 들어앉아

 

여러 날 꼼짝 않고

무슨 생각 했는지.

 

동그란 문 하나 내고

나비되어 나온다.

 

 

호미

 

날마다 우리 엄마

텃밭에 글을 쓴다.

 

틀린 글자 지우듯이

잡풀도 뽑아낸다.

 

호미는

엄마의 연필

텃밭은 공책이다.

 

 

몽당연필

 

비밀 일기 쓸 때에도

내가 대신 써 주었지

 

비밀 편지 쓸 때에도

나에게 부탁했지

 

내 키가

작아졌다고

내버리면 안 되지

 

 

반가사유상

 

턱을 괴고

발은 포갠 채

무슨 생각 하시는지.

 

천년을 하루 같이

그대로 계셨지요.

 

이제는

말씀 한 마디

들려주면 안되나요.

 

*반가사유상: 오른 발은 왼 발의 무릎에 얹어 놓고 대좌에 걸터앉아 오른 손을 뺨에 받쳐대고 생각에 잠긴 모습을 한 불상.

 

 

낮달

 

낮달이 둠벙 속에

풍덩 빠져 있습니다.

 

어미 소가 둠벙물을

후루룩 먹습니다.

 

낮달이

어미 소 뱃속에서

쿨렁쿨렁 거립니다.

 

 

첫눈

 

깨금발로

단풍나무 사잇길로 온 첫눈이

 

콩콩콩

발자국만 찍어 놓고 그냥 간다.

 

참새가

좁쌀인 줄 알고 찍어본다.

콕콕콕

 

 

종소리

 

때리면 때릴수록

그 울음

맑고 곱다.

 

아기의 첫 울음이

저렇게 맑았겠지.

 

온 세상

모든 소리가

종소리만 같아라.

 

 

나비의 새 신발

 

순한 벌레 같이

곰실대는 봄 햇살이

이제 막 입을 여는

목련꽃 속으로 들어간다.

 

나비는

새 신발을 신고

어디만큼 오고 있나.

 

 

모과

 

잘 익은 모과 새 개 그 빛깔 향기까지

소반에 올려놓고 우리 엄마 하신 말씀

사람은 겉보다 속이 야무져야 한단다.

 

 

 

달을 보며

 

초승달을 바라보면

채우고 싶어지고

 

보름달을 바라보면

비우고 싶어진다.

 

하늘에

달 하나 있어

나의 꿈도 영근다.

 

 

월식

 

벌레가 둥근달을

아삭아삭 먹고 있다.

 

위성 하나 사라졌다

아이들이 소리친다.

 

담장에

둥근 달이 그린

수채화도 지워졌다.

 

 

겨울 바다

 

얼지 않고 출렁이는

겨울 바다에 가 보아라.

 

부리 고운 갈매기도

고음으로 노래하고

 

파도는 피아노 치듯

방파제를 때린다.

 

 

 

바다가 만들어 놓은

커다란 디딤돌.

 

통통배도 쉬어가고

새들도 딛고 간다.

 

물고긴

튀어 올라와

비린내를 풀어 놓는다.

 

 

강화 갯벌

 

철새들이 찾아오면

갯벌도 바빠진다.

 

갯가재 갯지렁인

온몸엔 뻘투성이다.

 

붉은 발

도요새들도

깝죽깝죽 놀고 있다.

 

 

 

겨울 학교

-순천만

 

출석을 불러본다

흑고니 재두루미·····

 

한국의 겨울이 좋아

너희들 또 왔구나.

 

고맙다

너희들 있어

바닷빛이 곱구나.

 

 

봄 오는 실개천엔

 

멧새가 앉았다 간

실개천 버들가지.

 

새똥만한 잎눈들이

소로록 눈을 뜬다.

 

봄 오는 실개천엔

피라미도 은빛이다.

 

 

봄볕 한나절

 

부리 고운 새 한 마리

봄을 물고 왔나보다.

 

마중 나온 목련꽃이

뾰뾰뾰 입을 연다.

 

아이야,

어서 나와 봐.

봄볕이 참 곱구나.

 

 

꽃밭에선

 

벌레들도

꽃밭에선

온몸에

꽃물 들고

 

바람도

꽃밭에선

향긋한

물이 든다.

 

씨앗들

익는 소리에

꽃밭이

수런댄다.

 

 

둑방길을 걸으며

 

날름날름

송아지가

풀잎싹을

뜯고 있다.

 

고운 덧니

드러내고

풀꽃들이

웃고 있다.

 

실개천

맑은 물소리에

조약돌이

씻긴다.

 

 

여름의 동화

 

온음표 부리에 물고

물총새가 날아간다.

 

송사리 떼 헤엄치는

실개천 차암 맑다.

 

아이는

물장구 치고

순한 햇볕 따스하다.

 

 

가을빛 시골집

 

장독대 옆

봉숭아꽃

또로록 씨 여물고

 

고운 이 드러내고

석류가 익고 있다.

 

할머닌

대문도 없는 집에

꽃과 함께 사신다.

 

 

혼자 온 가을

 

가을이

깨금발로

초록 언덕

건너오면

 

은행잎은

시나브로

노랗게 물이 든다.

 

가지 끝

잎새 하나가

소리없이 내려온다.

 

 

가을산은

 

도토리 데구루루

다람쥐 귀가 쫑긋.

 

꽁지 긴 산새들도

휘파람을 불고 있다.

 

풋 열매

빨갛게 익듯

가을 산도 익는다.

 

 

우리 마을

-봄

 

털 빛깔 뽀오얀

작은 새 두어 마리.

 

봄마중 나왔는가

고개 갸웃갸웃.

 

어미 샌

부리에 햇살 물고

마을을 돌고 있다.

 

 

우리 마을

-여름

 

매미가 오동나무에 악기를 걸어 놓고

여름 내내 음악회를 여는 우리 마을.

장대비 지나가다가 오동잎을 두드린다.

 

 

우리 마을

-가을

 

잘 익은 햇살 한 줌

과일 속에 들어 있다.

 

그 과일 똑 따다가

한 입 가득 깨물면

 

입 안에 가득 고이는

고운 햇살 그 향내.

 

 

 

우리 마을

-겨울

 

싸락싸락 방문앞엔

싸락눈이 쌓이는데

 

아이는 엎드린 채

책상 앞에 잠이 들고

 

엄마의 봉곳한 가슴엔

동화책이 서너 권.

 

 

자연도 저렇게

 

머리가 무거워진 해바라기 고개 숙이고

벼이삭도 잘 익으면 스스로 고개 숙인다.

자연도 익으면 저렇게 머리를 숙일 줄 안다.

 

 

소나기

 

누가 잘 익은 콩을

저헣게 쏟고 있나.

 

또로록 마당 가득

실로폰 소리 난다.

 

소나기 그치고 나면

하늘빛이 더 맑다.

 

 

벌레 잠

 

벌레들이 낙엽 이불

끌어안고 자고 있다.

 

햇볕 묻은 따스한 잎

솜털보다 푹신하다.

 

한자락 바람이 와서

들춰보는 벌레 잠.

 

 

버려진 꽃병

 

이 빠진

꽃병 하나

빈터에

버려져 있다.

 

고양이도 들여다보고

바람도 들락날락

 

한때는 탁자에 앉아

뽐내기도 했었지.

 

 

어른들은 모르는 것

 

산을 뚫고

땅을 파서

새 길을 낼 때마다

 

지구는 아파하고

짐승들도 떠나간다.

 

지구가 병이 드는 걸

어른들은 왜 모를까.

 

 

자연의 이치

 

꽃에게 향기가 없다면

나비가 찾아오겠니?

 

과일이 네모라면

대구루루 굴러 가겠니?

 

심는 건 우리들 차지

가꾸는 건 자연의 일.

 

 

 

복사꽃 피는 마을

 

봄 햇살 꽃물인양

마당귀를 적시는데

 

건넛마을

복사꽃 향기 물고 왔는가.

 

박새는

마을을 돌며

풀피리를 불고 있다.

 

 

산마을의 가을

 

산새는

긴 부리로

메아리를 물어 나르고

 

갈잎 속

벌레들은

고운 꿈 꾸고 있다.

 

도토리 열매가 익는지

나뭇가지 휘어진다.

 

 

바닷가 고깃배

 

닻줄에 매어 있는

고깃배 두어 척이

 

바다로 나가자고

하루 종일 보챈다.

 

파도는

혀를 날름거리며

놀려대고 있었다.

 

 

 

햇빛 고운 한낮에

 

애벌레는 배춧잎에

예쁜 모양 창을 내고

 

장다리 꽃잎위엔

졸고 있는 배추흰나비.

 

맑은 눈 노랑턱멧새

털빛이 더 고웁다.

 

 

하늘에도 길이 있다

 

기러기는 날아갈 땐

줄을 지어 날아간다.

 

하늘에도 길이 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새들도

지킬 줄 안다.

올바른 교통법규.

 

-등단 50주년 기념 동시. 동시조 100편-

꽃 발걸음 소리(2016년 1월 13일: 아침마중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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