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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택의 동시 100편 [한국]
2017년 07월 07일 17시 13분  조회:2317  추천:0  작성자: 강려



<오순택의 동시 100편> 
 
1. 봄비
 
나직나직
꽃의 말에
귀 기울이는
봄비
 
꽃잎에
고운 발자국을 놓고 간다
 
알몸이 되어
푸르르 푸르르 떨고 있는
풀잎에 앉으면
초록 구슬이 되는
봄비
 
연못엔
음표를 놓고 간다
《풀벌레 소리 바구니에 담다》, 아동문예, 1981
 
 
2. 노랑나비
 
노란 꽃잎이
바람도 없는데
하늘하늘 떠간다
 
그 꽃잎은
하느님이 만드신 것 중에서
가장 귀여운 것
가장 예쁜 것
 
바람도 없는데
노란 꽃잎이
나풀나풀 떠간다
 
길가의 민들레가
방긋 웃는다
<풀벌레 소리 바구니에 담다> 아동문예 1981
 
 
3. 새는 꽃빛깔로 운다
 
새의 목소리는 꽃이다
새는
꽃빛깔로 운다
 
새벽녘
마알간 부리로
꽃빛깔 한 모금 물어다가
창 곁에 놓아두고
하늘한 실가지 끝
날개 접고 앉아서
보랏빛으로 운다
 
수수깡 마른 줄기에
된장잠자리
앉았다 날아가는
어스름 녘
 
새는
고운 목소리
꽃잎에 토해 놓고
창 곁에 귀를 잠재운다
 
새는
꽃이다
꽃빛깔로 운다
<까치야 까치야> 아동문예 1985
 
 
4.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혼자 서서
생각하는 나무
 
 
새가 날아와
가지에 똥을 누고 가도
바람이 잎을 마구 흔들어도
말없이 서서
하늘 향해 기도하는
나무
 
나무의 몸에
가만히 등을 기대면
따스한 체온이 묻어나는 것 같고
잎을 만지면
손은 온통
초록 물이 드는 것 같은
나무
 
나는
나무가 좋습니다
<까치야 까치야> 아동문예 1985
 
 
5. 산마을
-겨울
 
눈이 숨겨 놓은
외딴집
고운 발자국이 길을 내었다
 
그 발자국 따라가 보면
보나마나
툇마루엔 함지박이 놓여 있고
함지박 안엔
찐 고구마가 담겨 있을게다
 
누가 왔다 갔는가
알 듯도 하다
우체부 아저씨가
꽃씨 같은 읍내 소식 놓고 갔거나
건너 마을 순이 어머니가
씨 강냉이 얻으러 왔을게다
 
산마을엔
새는 보이지 않고
꽃물 묻은 고운 목소리만
눈처럼
싸리울을 적시고 있다
<까치야 까치야> 아동문예 1985
 
6. 보리
 
하필이면 추운 겨울날
아이들이 손을 호호 불며
보리밭을 밟고 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보리를 밟아대지만
그럴수록 보리는
파르르 파르르 살아나
새처럼 날고 싶어 한다
 
연한 풀잎사귀 같은 것이
겨울을 용케도 견디어 내는 걸 보면
참 대견스럽다
 
손을 호호 불며
보리밭을 밟는
아이들의 가슴 속에
보리 잎사귀 같은
초록 물이 든다
<까치야 까치야> 아동문예 1985
 
 
7. 메밀꽃 피면
 
고추잠자리 쉼 없이 날고 있었지
누나 손을 잡고 메밀밭 가에 서면
소금을 뿌린 듯 메밀꽃 피어 있었지
앉을까말까 고추잠자리 생각하고
살래살래 메밀꽃 고갤 흔든다
 
 
실바람 숨죽이고 모여 있었지
누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 올 때쯤
달빛을 덮고 메밀꽃 자고 있었지
깨울까말까 실바람 생각하고
가만가만 메밀꽃 고운 꿈꾼다.
<종달새 방울 소리> 아동문예 1987
 
8. 자운영꽃 따서
 
학교 가는 길 논둑길의 자운영꽃 따서
꽃시계 만들어 손목에 찹니다
친구 시계는 재깍재깍
내 시계는 소올솔 꽃내음이 납니다
 
돌아오는 길 논둑길의 자운영꽃 따서
꽃목걸이 만들어 목에 걸지요
누나 목걸이는 반짝반작
내 목걸이는 사알살 꽃내음을 풍겨요
<종달새 방울 소리> 아동문예> 1987
 
9. 코스모스 꽃길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서 가면
발자국엔 고운 꽃물이 고여요
 
코스모스 꽃길을 손잡고 가면
손바닥엔 연분홍물이 들지요
 
코스모스 꽃길을 걸어오면
책가방 가득 꽃내음이 담겨요
<종달새 방울 소리> 아동문예 1987
 
10. 예쁜 나무 나의 친구와 나눈 이야기
 
“나무야, 나무야
잠은 언제 자니?”
“봄엔 잎을 피우고
여름엔 꽃을 피워야지
잠잘 시간이 어디 있니”
“밤에 잠을 자면 돼지 뭐”
“밤은 너무 조용해서 잠이 오니”
“그럼 밤엔 무얼 하니?”
“별을 헤이며 하루를 반성하지”
“날마다 반성하니?”
“그럼”
“가을엔 무얼 하니?”
“하늘을 향해 기도 하지
하느님이 열매를 주시니까”
“겨울엔?”
“조용히 서서 귀를 기울이고 있지”
“귀를?”
“봄이 어디만큼 오고 있나 알아보는 거지”
“봄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니?”
“그럼
봄의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지”
“어디 있니?”
“응 그건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지”
“그런 시시한 말이 어디 있니”
“나무는 하느님이 만든 가장 예쁜 시인이야*
봄의 발자국 소리도 들을 수 있고
열매가 자라는 것도 볼 수 있는·······”
*조이스 킬머의 <나무들>에서 따옴.
<종달새 방울 소리> 아동문예 1987
 
 
11.꽃신
 
꽃씨만큼씩만
자라나는
신발 한 켤레
 
우리 현이의
신발에선
꽃내음이 난다
 
의좋은 다섯 발가락
나란히 누워 잠자는
조그만 방
 
밤이면
달님이 내려와
꽃방석 깔아주고 간다
 
꽃나무가 자라듯
밤에만 몰래 크는
꽃신 한 켤레
<부리 고운 동박새> 눈높이 대교출판 1988
 
 
12. 시골 친구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목소리에선
장다리꽃 냄새가 나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호주머니 속에는
풀잎 바람이 들어 있어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신발에는
개울물 소리도 묻어 있지요
 
시골에서 온
내 친구
마음씨는
분꽃 씨 같아요
 
<부리 고운 동박새> 눈높이 대교출판 1988
 
13. 참새
 
참새 서너 마리
부리에 음표를 물고
전깃줄에 앉아 있다
 
다섯 줄 전깃줄이
오선지인 줄 아나 봐
<부리 고운 동박새> 눈높이 대교출판 1988
 
14. 아침마다
 
꽃도 밤에는 잠을 자나 봐
아침마다 이슬로
얼굴을 닦고 있는 걸 보면
 
나무도 잠을 자며 꿈을 꾸나 봐
아침마다 잎사귀들이
반짝반짝 빛나는 걸 보면
<꼬마 시인> 아동문예 1989
 
15. 무지개 
 
여름 오후 해님이
잠깐 졸고 있는 사이
 
소나기가 놓고 간
일곱 줄 현악기
 
부리 고운 새가 날아가며
튕겨보지요
<꼬마 시인> 아동문예 1989
 
 
16. 바다
 
돛단배는
갸우뚱 딛고 가고
 
통통배는
뒤우뚱 딛고 가는 
 
하늘만한
디딤돌
<꼬마 시인> 아동문예 1989
 
17. 까치집
 
키 큰 미루나무
파아란 하늘이 묻은 가지에
둥긋한
집 한 채
 
방 한 칸뿐인
까치집
 
단출한
까치네 식구들
 
하늘은
그의 뜰
 
구름도
까치집 뜰에 와서 논다
<초록빛 마을> 아동문예 1990
 
18. 우리나라의 새
 
우리나라의 새는
악기입니다
 
까치는 이른 아침
사립문에 꽃물 묻은
햇살을 물어다 놓고
까작, 까작, 까작
타악기 소리를 내고
 
실개천 말뚝에 앉은
털빛 고운 물총새는
돌 틈을 흐르는 물소리 같이
목관악기 소리를 냅니다
 
가르마를 타듯
바람이 보리밭을 헤치고 지나가면
종달새는 피리소리를 내며
돌팔매질을 하듯
보리밭에 내려앉고
 
몸은 솔숲에 숨겨 놓고
꽃 같은 고운 목소리만
내어 보이고 있는 뻐꾸기는
금관악기입니다
 
우리나라의 새는
예쁜 악기입니다
<초록빛 마을> 아동문예 1990
 
19. 고추잠자리
 
빨갛게 익었다. 
고추처럼 익었다
 
여름 한낮
뙤약볕 받아먹고
곱게 핀
백일홍 꽃잎 같은
날개
 
파아란 하늘을 날며
꽁지로
시를 쓴다
<작은 별의 소원> 계몽사 1992
 
 
20. 여름 한낮 
 
소나기가 작은 북을 두드리듯
연잎을 밟고 지나가면
 
매미는 미루나무 가지에 앉아
연주를 한다
 
호박 덩굴이 살금살금 기어가는
울타리 너머로
쏘옥 고개 내민 해바라기 얼굴이
햇볕에 누렇게 익은 아빠 얼굴 같다
 
아까부터 장독대 곁 꽃밭에선
봉숭아 씨가 토록토록 여문다
<작은 별의 소원> 계몽사 1992
 
 
21. 연못 
연못은
오선지
 
보슬비가
음표를 놓고 간다
 
연못은
푸른 색종이
 
물방개가
동그라미를 그린다
<작은 별의 소원> 계몽사 1992
 
22. 가을비
 
가을비는
낙엽을 밟고 옵니다
 
외로운 아이처럼
빈 가지만 들고 서 있는
나무 밑을 서성거리다가
까치집 문 밖에서
안을 기웃거립니다
 
가을비는
아이처럼 종종걸음으로 옵니다
 
댓돌 위에 나란히 놓여 있는
꽃신 속에
귀뚜라미를 울려 놓고
사립문 밖에선
굴뚝새가 물고 올
겨울을 기다립니다
<작은 별의 소원> 계몽사 1992
 
 
23. 사과의 무게
 
사과는 땅에 내려오기 위하여
처음엔 모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가지에 매달려 있을 때만 해도
공중으로 날아가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과가
뚝- 하고
땅에 떨어졌을 때
 
지구는
사과의 무게만큼
무거워 졌다
<작은 별의 소원> 계몽사 1992
 
24. 어촌에 가면
 
햇살 고운 돌담 옆에서
어부가 그물을 깁고 있다
 
짙푸른 파도도 걸리게
촘촘히 촘촘히
햇살도 조금 섞어
그물을 깁고 있다
 
조그마한 꽃게 한 마리
푸른 바다 한 조각
집어 들고 와서
그물코에 놓고 가면
 
그물코에 걸린
푸른 바다는
갓 잡아 올린 고기처럼
파닥거린다
 
그물을 깁고 있는
어부의 손등은
비늘 벗겨진 고기 등 같다
<작은 별의 소원> 계몽사 1992
 
 
25. 귀이개
 
귀이개로
귀지를 파다보면
 
친구와 소곤소곤 나눈
귓속말도
귀이개에 묻어 나오고
 
선생님의 귀한 말씀도
부스러기가 되어 버린다
 
그래
쪼끄만 게
내 비밀을 다 캐내는구나
<아름다운 느낌표> 선영사 1993
 
 
26. 아빠 구두
 
밤에만
현관에 놓이는
아빠 구두
 
가만히
구두를 신어 봅니다
 
구두 한 짝 속에
나의 두 발이
포옥 담깁니다
 
아빠의
따스함 묻어 있는
구두 한 켤레
<산은 초록 삼각형이다> 도서출판 가꿈 1995
 
 
27. 하늘 세수
 
세수를 했습니다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을 받아
세수를 했습니다
 
대야엔 찰랑찰랑
강물이 담겼습니다
 
강물엔 산이 빠져있고
하늘이 담겨 있습니다
 
나는 두 손으로 물을 떠서
세수를 했습니다
 
하늘을 떠서
세수를 했습니다
<산은 초록 삼각형이다> 도서출판 가꿈 1995
 
 
28. 개망초꽃 꺾어서
 
들녘에 나가
종일
꽃을 꺾었습니다
 
가슴엔 온통
꽃물이 들었습니다
 
보랏빛 꽃잎을 따서
들녘에 흩뿌렸더니
새가 되어 날아갔습니다
 
이윽고
밤하늘엔
개망초꽃 같은 별이
하나 둘
반짝이기 시작했습니다
<꽃과 새> 학예원 1997
 
29. 갈매기
 
갈매기야
갈매기야
너는 집이 어디니?
 
푸른 물결위에서
너울너울 춤을 추며
3자를 쓰는
갈매기야
 
너는
소녀니?
소년이니?
 
물결은 혀를 날름거리며
방죽을 핥고 있고
배들은 묶인 채
떠나지 않는데
 
끼륵끼륵
갈매기야
누굴 찾고 있니?
 
푸른 바다 위를 가벼이 나는
너는 먼 나라에서 보내 온
편지 같구나
 
갈매기야
갈매기야
너의 예쁜 이름
누가 지어 주었니?
<꽃과 새> 학예원 1997
 
30. 꽃과 나비의 입맞춤
 
나비가
뽀뽀를 했대요
 
꽃의 입술에
뽀뽀를 했대요
 
저것 봐요
나비 입술에
꽃 내음이 묻어있잖아요
<꽃과 새> 학예원 1997
 
31. 찔레꽃
 
수수깡 울타리 위에
등불을 켜 놓고
고샅길을
하얗게 밝혀 주고 있다
<꽃과 새> 학예원 1997
 
 
32. 구두약
 
아기 얼굴은
엄마가 닦아 주고
 
아빠 구두는
구두약이 
닦아 주지요
<1학년 EQ 동시> 문공사 1998
 
33. 개똥벌레
 
꽁무니에
불을 달고
까불대는
벌레 한 마리
 
풀숲에
호롱호롱
불을 켜네요
<1학년 EQ 동시> 문공사 1998
 
34.아이와 우산
 
아이가
산을 들고 갑니다
 
비 오는 날
 
산 속엔
비가 오지 않습니다
<1학년 EQ 동시> 문공사 1998
 
 
35. 나의 신발
 
나의 신발은
배이에요
 
나 혼자
타는
배이에요
 
나를 싣고
학교 가는
작은 배이에요
<1학년 EQ 동시> 문공사 1998
 
36. 거미에게
 
거미야
거미야
 
네가 짜 놓은 그물
바람도 걸리니?
 
거미야
거미야
 
네가 짜 놓은 그물
빗방울도 걸리니?
<1학년 EQ 동시> 문공사 1998
 
37. 우산꽃 
 
비를 맞으면
활짝 피어나는

<1학년 EQ 동시> 문공사 1998
 
38. 아가 이
 
엄마의 숨결 묻은
꽃씨 두어 개
묻어 놓은
아가의 입 속에
 
새하얀
봄이
쏘옥 돋는다
<1학년 EQ 동시> 문공사 1998
 
39. 아름다운 것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아기다
 
아기의 눈
아기의 코
아기의 입
아기의 귀
 
그리고
아기의 손가락
아기의 발가락
 
아기는
이따가 필 꽃이다
<채연이랑 현서랑> 아동문예 2005
 
40. 똥꼬가 뽀꼼
 
엄마가
아기 똥꼬를
들여다봐요
 

나비가 꽃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똥꼬가
뽀꼼 열려요
 
튜브에서
치약이 나오듯
똥이 나와요
 
향내
소올솔 풍겨요
<채연이랑 현서랑> 아동문예 2005
 
41. 아기 양말
 
발가락
포옥
잠재워 주는
아기 양말
 
보송보송
엄마가 사온
털실 양말
 
포근포근
봄 햇살 같아요
<채연이랑 현서랑> 아동문예 2005
 

42. 꽃씨 눈
 
아기 눈은
꽃씨 눈이에요
 
흙 속에서
첫 눈 뜨는
해바라기 씨눈처럼
말똥해요
 
아기는
노랑나비 날개 접듯
살포시 눈 감아요
<채연이랑 현서랑> 아동문예 2005
 
43. 새 싹에서 나는 향내
 
아기 입에선
향내가 나요
 
봉숭아 새 싹에서 나는
향내 같아요
 
아기 입은
금붕어 입처럼
쪼그마해요
<채연이랑 현서랑> 아동문예 2005
 
44. 사슴섬의 뻐꾸기
-한하운 시인에게
 
뻐꾸기 한 마리
숲속에서 울고 있었다
고운 햇살 온몸에 감고
 
손을 내밀어
가만히 잡아 주고 싶은
목이 긴 사람들이 사는
사슴 섬
 
미움도 없고 시새움도 없는
아! 이곳은
아픈 당신들의 천국이었구나
 
어릴 때 함께 뛰어 놀던 친구들
모두 고향에 다 있는데
보리피리 불며불며
서럽게 찾아온 땅
소록도여!
 
그는 죽어 뻐꾸기가 되었는가
뻐꾹, 뻐꾹, 뻐꾹
 
숲속에 숨어
꽃잎에
붉은 울음을 토해 놓고 있었다
*사슴 섬: 전남 고흥군 도양면에 속하는 섬으로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하여 소록도라고 한다.
*한하운: 나병에 걸려 소록도로간 시인.
<그곳에 가면 느낌표가 있다> 아동문예 2007
 
45. 선운사 동백꽃
 
선운사 동백꽃은
누나 입술 같이
곱더라
 
고운 입술에
봄빛 듬뿍 물고
배시시 웃고 있더라
 
지난 겨울
싸락눈 먹고 자란
초록 잎사귀가
저렇게 붉은 꽃 피웠겠지
 
꽃이 지면 어쩌지
붉은 동백꽃 똑똑 따며
봄이 가 버리면 어쩌지
 
어디서 날아왔는지
꽁지 몽땅한
새 한 마리
떨어진 꽃잎을
쪼아 먹고 있더라
*선운사: 전북 고창에 있는 고찰. 대웅전 뒤꼍엔 오래된 동백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곳에 가면 느낌표가 있다> 아동문예 2007.
 
 
 
46. 웃는 돌
-경주 남산에서
 
돌이
앉아서
웃고 있다
 
눈도 웃고
입도 웃고
귀도 웃는다
*경주 남산은 마치 불상들의 박물관 같다.
모두가 웃고 있다. 귀로도 웃고 입으로도 웃고 눈으로도 웃는 돌. 얼굴 없는 불상도 있다.
<그곳에 가면 느낌표가 있다> 아동문예 2007
 
47. 우리가 물이 되어 만난다면
-황지에서 낙동강까지
 
나는 물이에요
졸졸 쫄쫄 촐촐 악기 같은 새 소리도 흉내 내며 산 속 바위틈을 지나 개울에 이르면, 어디서 왔는지 그 곳에는 얼굴이 푸르스름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지요 가다가 숨차면 댐에 갇혀 햇볕에 포슬포슬 등을 말리기도 하고, 그래도 심심하면 폭포처럼 뛰어내려 하야말갛게 부서지며 깔깔댔어요
물은 물끼리 만나면 즐거워요 금세 강에 다다랐는지 토끼풀 주섬주섬 모아 꽃피우는 강가를 바라보며 우리는 한 마음이 되어 큰 강을 만들지요 강은 깊을수록 휘휘 휘파람을 불며 흘러가지요
나는 친구들과 헤어져 어느 집 수도관으로 들어갔지요 수도꼭지를 틀어 놓고 물을 콸콸 흘려버리면 어쩌나 싶어 가슴이 콩닥거렸어요 이윽고 누군가가 수도꼭지를 틀었어요 후유! 손이 조그맣고 귀여운 여자 아이였어요 나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어 주었지요
“너를 만나려고 낙동강 일천삼백 리를 달려왔지”
나는 나푼나푼한 이파리처럼 말하였지요
*황지: 낙동강 일천삼백 리가 시작 되는 연못. 강원도 태백시에 있다.
<그곳에 가면 느낌표가 있다> 아동문예 2007
 
48. 마이산을 바라보며
 
전라북도 진안엔
말의 귀 모양을 한
산이 하나 있는데요
 
가까이 다가가면
바윗덩이만 보이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두 개의 봉우리가
영락없이 쫑긋한 말의 귀 같지요
 
사람 사는 것도 그렇다나요
가까이 있을 땐 몰랐는데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아름다운 마음이
새록새록 솟는데요
 
그래요
자연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소중한 것을 일깨워 주지요
*마이산: 두 개의 산봉우리가 말의 귀를 닮아 마이산(馬耳山)이라고 한다. 높이 685미터.
<그곳에 가면 느낌표가 있다> 아동문예 2007
 
 
49. 하회마을
 
낙동강이 휘돌아 흘러가며
감싸고 있는 마을
 
그곳에 가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아
하늘 맑은 날 찾아갔지요
 
고샅길 따라가면
마른 풀 향내 나는
토담집이 정겹고
 
솟을대문 열고 들어서면
기와 이고 있는 오래 된 집들은
파릇한 손때가 묻어 있었지요
 
그곳에 가면 하회탈 쓰고
더덩실 더덩실 어깨춤 추는
초랭이도 만날 수 있지요
*하회마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낙동강이 감싸고 있는 마을. 물도리동 이라고 함.
한국민속문화의 한 전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전통양반 마을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
*하회탈:9개의 하회탈은 국보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초랭이: 양반의 하인을 상징하는 탈.
<그곳에 가면 느낌표가 있다> 아동문예 2007
 
50. 제암리 예배당
 
제암리엔 일요일이면
하느님이 내려 오셨다가
잠깐 쉬어가는
조그만 예배당이 있습니다
 
예배당 옆
난쟁이 풀꽃들
나직나직 무슨 말 하는지
볼이 불그레한 꽃잎
피어나고 있습니다
 
어린 새싹은
보드라운 손길로
쓰다듬어 주시고
고운 햇살 골라
과일 속에 단물 고이게 하시는
그분 만나기 위해
일요일이면 예배당엔
신발이 가지런히 놓입니다.
 
발가락이 쏘옥 나온
구멍난 양말을 신은 소녀 곁엔
문틈으로 들어온 햇살이
오도마니 앉아 있습니다
 
기도 소리가
하늘까지 닿았는지
구름도 지나가다가
잠시 머물다 갑니다
*제암리: 3 · 1 운동 순교 유적지. 당시 일본군이 마을 기독교 주민 30명을 집단으로 학살한 곳.(경기도 화성군 향남면 제암리)
*교회 뒤쪽에 제암리 3 · 1 운동 순국 묘가 있다.
<그곳에 가면 느낌표가 있다> 아동문예 2007
 
 
51. 풀벌레
 
온종일
풀잎에 앉아 놀더니
 
온몸에
초록물이 들었구나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52. 달팽이
 
풀잎에 맺힌
이슬 핥아 먹고
 
봉숭아 씨 같은
똥을 눈다
 
똥에선
풀꽃 향내 난다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53. 저녁 눈
 
사락사락
누가
연필을 깎고 있다
 
하얀 종이 위에
시를 쓰려나 보다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54. 향내 나는 말
 
운동장 한쪽에 있는 세면대에서
아이들이 까르르까르르
이을 닦고 있습니다
 
입가엔
함박꽃이 핍니다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도
선생님에게 여쭐 말도
반짝반짝 닦입니다
 
양치질을 끝낸 아이들이
쪼르르 교실로 들어옵니다
 
재잘재잘
아이들의 말에서 향내가 납니다
교실에도 향내가 묻어납니다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55. 못
 
한 곳에 박혀 있다고
무시하지 마
 
회사에서 돌아온
아빠 옷도
내가 받아 거는걸
 
쬐그맣고 볼품없다고
무시하지 마
 
너의 온몸 비춰볼 수 있는
거울도
내가 들고 있는걸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56. 쪽배가 된 초승달
 
옥토끼가 갉아 먹다 남은
초승달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다
 
꽁지 몽땅한 새가
잠자러 가면서
쪽배인 줄 알고 타고 간다<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57. 눈 오는 날
 
버스 정류장에
헌 옷 입은 아저씨가
빈 깡통 옆에 놓고 졸고 있다
사람들은 못 본 척
버스를 탄다
하느님은 아까부터
내려다보고 있었나 보다
싸락눈을
빈 깡통에 담아주고 있다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58. 달빛
 
달빛이 햇볕처럼
뜨거워 봐
꽃들이 어떻게 잠을 자겠니
 
달빛이 햇볕처럼
밝아 봐
새들이 어떻게 잠을 자겠니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59.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꽁지 몽땅한 새가 날아가면서
싼 똥
민들레 꽃잎에
똑-
떨어졌다
 
민들레 얼굴이 노래진다
 
새순을 뜯어 먹고 있던
아기 염소가
까르르 웃는다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60. 할아버지의 과일
 
시골 할아버지가 보내 준
과일 속엔
해가 들어 있지요
 
뜨거운 여름 햇볕 받아먹고
빠알가니 익었으니까요
 
시골 할아버지가 보내 준
과일 속엔
빗소리도 들어 있어요
 
뭉게구름 지나가다가
과일 밭에 들러
비 뿌려 주고 갔으니까요
 
시골 할아버지가 보내 준
과일 속엔
새소리도 들어 있지요
 
온음표 물고 날아가던 새
과일나무 가지에 앉아
노래하다 갔으니까요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61. 낚시
 
아빠는
강에
물음표를 놓았습니다
 
강은
대답 대신
고기 한 마리
올려 보냅니다<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62. 누구니? · 1
 
누구니?
 
외딴 마을에
풀꽃 피었다고
나비에게
누가 전화 했니?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63. 캥거루
 
탁아소가
필요 없지요
 
엄마가
항상 데리고 다니니까요
 
유모차가
필요 없지요
 
주머니에
아기를 넣고 다니니까요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64. 슬플 때는
 
꽃이 없다고 나비는 슬퍼하지 않는단다
개미는 바빠서 슬퍼할 겨를이 없단다
 
밤하늘에 박혀있는 별을 따서
가슴 가득 담아 봐
슬플 때는
 
그래도 슬플 땐
들꽃을 만나 봐
 
아무도 보러오지 않아도
웃고 있지 않니
 
그러면
가슴속에 들어 있는 슬픔이
채송화 꽃씨같이 토옥 튀어 나와
동글동글 굴러가 버릴 거야
<아기 염소가 웃는 까닭> 청개구리 2009
 
65. 공룡이 뚜벅뚜벅
 
아이가
공룡이 그려진 책장을 넘깁니다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타르보사우루스가
뚜벅뚜벅 걸어 나옵니다
 
아이의 눈이
동그래집니다
 
엄마가
얼른 책장을 덥습니다
<공룡이 뚜벅뚜벅> 아평 2011
 
 
66. 민들레꽃 웃음
 
아이 손잡고
유치원 가는데
 
누군가 부르는 것 같아
뒤돌아보았다
 
한 떨기 민들레꽃이
노랗게 웃고 있었다
<공룡이 뚜벅뚜벅> 아평 2011
 
67. 딸기
 
내가 좋아하는
주근깨투성이 소녀
 
가만히 바라보면
부끄러워
얼굴 빨개진다
<공룡이 뚜벅뚜벅> 아평 2011
 
 
68. 부탁해
 
나비야
꽃잎 밟지 마라
 
연한 꽃잎에
발자국 생기면 어쩌니
<공룡이 뚜벅뚜벅> 아평 2011
 
 
 
69. 우체통
 
초록 바람이
손을 넣어 보며
 
-없네
 
 
꽁지 몽땅한 새가
들여다보며
 
-비었군
<공룡이 뚜벅뚜벅> 아평 2011
 
 
70. 발가락도 숨을 쉰다
 
발가락이
꼼지락꼼지락 거려요
 
“숨이 막히니?”
 
양말이
빠꼼히 구멍을 내주지요
<공룡이 뚜벅뚜벅> 아평 2011
 
71. 나비의 집
 
나비야
넌 집이 어디니?
 
 
꽃밭
 
그럼
겨울엔 어디서 사니?
 
꽃씨 속
<공룡이 뚜벅뚜벅> 아평 2011
 
72. 제비꽃의 봄
 
쪼그만 입으로
봄볕 오물오물 먹고 있는
자주색 제비꽃
 
모시나비 한 마리
사뿐사뿐 날아와
제비꽃 자주색 입술에
뽀뽀하고 있다
<시인 할아버지의 사진 이야기> 아동문예 2012
 
 
73. 봄은
 
봄은
세 살배기 아기다
 
이제 막 말을 하려고
입을 여는
아기다
 
봄은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74. 신문지 이불
 
지하도에서
아저씨가
신문지 덮고
자고 있다
 
누군가가
다 읽고 버린
신문지도
때로는 이렇게
따뜻한 이불이 된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75. 크레파스
 
살빛은 달라도
한 방에서
나란히 누워 잠잔다
 
태어날 땐
키가 똑같았는데
 
밖에 나가
신나게 놀다오면
키가 작아진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76. 봉선화처럼
 
봉선화 꽃이
손톱에
고운 꽃물을 들여 주듯
 
나도
너의 마음속에
연분홍 꽃물로 물들고 싶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77. 방패연이 걸어놓은 빨랫줄 
 
방패연이
하늘에 걸어놓은
 
팽팽한
빨랫줄
 
해님이
물 먹은 구름을
 
탈탈 털며
널고 있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78. 해바라기와 흰줄표범나비
 
긴 꽃대위에
노랑 쟁반 올려놓고
 
햇볕
달달 볶고 있다
 
흰줄표범나비 한 마리
날름날름
햇볕 핥아 먹고 있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79. 이사 가는 나무
 
미루나무 한 그루
누워서 이사 간다
 
나무에 세 들어 사는
까치네도 함께 간다
 
다친 발 친친 동여매고
트럭에 누워 이사 간다
 
나무가 이사 가는 마을이 궁금해
푸른 하늘도 따라 가고
해님도 빙그레 웃으며 따라 간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80. 빈집·1
 
바닷가에
소라 한 개
버려져 있다
 
-안에 누구 계셔요?
 
갈매기가
목 길게 빼고 들여다본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81. 달걀
 
부엌에선
프라이가 되지만
 
둥우리에선
병아리가 된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82. 탯줄
 
세상에 막 나온
아기에게
엄마가 전화를 했답니다
 
-아가야
세상은 넓은 바다와 같은 거란다
 
-엄마
세상이 참 아름다워요
 
탯줄은
엄마와 아기가 주고받은
아름다운 유선 전화랍니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83. 수평선 
 
하늘과 바다가
그어 놓은
금줄이다
 
하늘을 나는
새는
헤엄을 못치고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는
날지 못해
 
조심하라고
그어 놓은
금줄이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84. 산을 먹은 송아지
 
산이 슬렁슬렁
강으로 내려가 물구나무를 섭니다
 
강둑에서
새순을 뜯어 먹고 있던
송아지가
겅중겅중 뛰어가
후루룩 강물을 먹습니다
 
음매에~
어미 소를 부르는
송아지 울음이
꼭 산의 울음 같습니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85. 봄볕 먹기
 
봄볕이
맛있나 봐
 
민들레 노란 꽃잎에 앉아 있는
모시나비도 먹고
풀밭에서 뛰어 노는
아기 염소도 먹고
 
뜨락에서 뒹구는
고양이도 먹고
유치원에 가는
아이들도 먹는다
 
봄볕이
참 맛있나 봐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86. 나무야, 아프지 마
 
과천 정부청사 앞
나무 한 그루
주사기를 꽂고
링거를 맞고 있다
 
노랑턱멧새 한 마리
문병 와서
포도 알 같은 슬픈 눈망울하고
나무의 어깨에 앉아 울고 있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87. 똥꼬 보고 웃기
 
아이가 길을 가다가
풀밭에 똥을 눴단다
 
바지를 내리고
쪼그리고 앉아
똥을 눴단다
 
똥 덩이에 눌린 풀잎은
푸렁 물이 들었단다
 
누가 연락했는지
쉬파리가 맨 먼저 찾아왔단다
 
풀꽃이
아이 똥꼬를 봤는지
까르르 웃고 있었단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88.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
 
미루나무 줄지어 서 있는
강둑을
아이는 굴렁쇠를 굴리며 달려간다
 
은빛 송사리 떼
헤엄치며 따라가고
 
토끼풀 주섬주섬 모아
꽃피우는 강둑에
잎싹 날름날름 뜯어 먹고 있는
아기 염소 두 마리
끔벅끔벅 눈도 까맣다
 
해님이 잠자러 가면서
노을 한 자락 걸어 놓으면
 
아이는
굴렁쇠에 노을을 감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89. 연못 속의 나무
 
나무 한 그루
연못에 제 모습을 비춰보고 있다 
 
물구나무 서 있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몸을 바르르 떤다
 
이윽고
나뭇가지에 앉아 있던
새가
포르르 날아간다
 
연못이
까르르 웃는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0.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바퀴에 감긴 길을
동그란 실뭉치 풀듯
풀어보고 싶다
 
추운 겨울 누나 목에 두른
목도리 같은
고속도로도 감겨 있고
고운 햇살 머금고
발그레 웃고 있는
코스모스 길도 감겨 있겠지
 
바퀴를 뒤로 굴리면
동글동글한 실뭉치가
둘둘둘둘 풀리듯
고속도로 옆
그림처럼 펼쳐진 산과 들도
손잡고 따라 나오고
코스모스 발그레한 웃음도
향내 머금고 따라 나오겠지
 
동그란 실뭉치 풀듯
바퀴에 감긴 길을
둘둘둘둘 풀어보고 싶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1. 목련
 
남녘에 사는 바람이
편지를 보내왔다
 
연둣빛 봉투 귀퉁이를
가위로 잘랐다
 
이윽고 봄이
좌르르 쏟아졌다
 
뾰뾰뾰 멧새 소리도
들어 있었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2. 똥 싸는 감나무
 
아이가
시골 외할머니 집
감나무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감나무가
끙 힘을 준다
 
홍시 한 개
철벅 땅에 떨어진다
 
아이도 끙 힘을 준다
똥 한 덩이
철벅 떨어진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3. 벌레들의 놀이터
 
풀밭은
벌레들의 놀이터
 
실베짱이는 풀잎에 앉아 첼로를 켜고
긴알락꽃하늘소는 더듬이로 무전을 치고
모시나비는 긴 입으로 꽃에 주사 놓고
버들잎벌레는 풀대 위에서 미끄럼 타고
 
이슬은 무당벌레 등에 업혀
눈 깜박깜박
 
풀밭은
벌레들의 즐거운 놀이터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4. 무 밭에는
 
지하에 방 하나 있다
 
몸매 매끈한
무가 살던 방
 
창문이 없어
햇빛이 들어오지 못하는
무가 이사 간
반지하 방
 
불개미 가족
우글우글 살고 있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5. 달은 힘이 세다
 
달은
힘이 센가 봐요
 
바닷물을
채웠다
비웠다
하잖아요
 
어딘가에
바다보다 더 큰
그릇이 있나 봐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6. 자국
 
비 갠 오후
 
꽃밭에
지렁이 기어간다
 
한 획 휙 그은

 
참새가
그 붓 낚아채간다
 
꽃밭엔
붓 자국만 남는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7. 벌레와 갈잎
 
초록 잎사귀를
사각사각 갉아 먹고 자란
벌레가
 
 
먹다 버린 갈잎을
도르르 말고
겨울잠을 자는 것은
 
갈잎은
여름 뙤약볕을 받아서
햇볕처럼
따스하기 때문이야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8.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
 
아이가
피아노 건반 위를
뛰어 간다
 








 
얼마나 빨리 달리나
신호등이
재깍재깍
시간을 재고
 
자동차는
멈춰 서서
눈 깜박이며
음악 감상 한다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99. 봄의 잠 깨우기
 
겨울의 뒤꼍에 가 보았니?
이따가 한 번 가 봐
싸락눈 내린 고샅길 지나
지붕 야트막한 집 한 채
싸리 울타리 두르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강아지 데리고 살고 있지
마당귀엔 두레박으로 길어 올리는
우물도 있어
겨울 햇살 포슬포슬 놀고 있는
장독대 배불뚝이 항아리들
장맛 잘 들었을 거야
그 뒤꼍에 가 봐
매화나무가 있어
가지마다 이슬만 한
뽀얀 몽우리 맺혀 있지.
봄이 여윈잠 자고 있을 거야
귓불을 간지럼 시켜 봐
머루알 같은 눈 비비며
봄이 깨어날 거야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100. 쉬
 
수원 영통 홈플러스 3층의
인형과 자동차가 있는 완구 코너에서
네 살배기 쌍둥이 손녀손자와 놀고 있는데
두 아이가 오줌 마렵다고 하여
바삐 화장실 앞까지 갔었지요
 
손녀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자고 하고
손자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가야 한다며
나의 손을 잡아끌었지요
 
허허 참!
어쩌면 좋으냐
 
화장실 밖에서
두 아이가 똑같이
 
할아버지
쉬-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다> 아침마중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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