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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학 개론 4. -말 ․ 말 ․ 말 /이오장
2018년 12월 24일 18시 29분  조회:828  추천:0  작성자: 강려
인간학 개론 4.
-말 ․ 말 ․ 말
 
이오장
 
뛰어가며 한 말
빠르다고 진실은 아니다
바람탄 말 물에 젖기 쉽고
입으로 물어온 말
뱉는 순간 부서진다
똑같이 한 말도
속삭였다고 가깝지 않고
강 건너 온 말 귓가에 잡으려면
많은 메아리를 재워야 한다
마주보고 한 말
눈으로 전했다고 색깔이 없을까
믿었다고 하는 대답
눈웃음이다
산 하나 넘을 때마다
울림으로 퍼지다가도
합쳐지질 못하고 휘돌아도
사그라지지 않고 퍼져가는
말. 말. 말
콩 심은데 콩, 팥 심은데 팥
혼자서 한 말도
굴러가면서 번져
말 심은 곳에 허물 돋는다
 
<이선의 시 읽기>
 
  시인은 ‘말’로 ‘시’를 쓴다. 말을 못하는 갓난아기가 하는 ‘말’은 생존에 필요한 ‘요구’와 ‘요청’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말’은 생존의 요구보다는 ‘설득’과 ‘변명’과 ‘거래’의 수단으로 발전하였다. ‘시인’의 ‘말’인 '시'는 더욱 발전하고 고품격화하여, ‘비유’와 ‘이미지’로 진화하였다. ‘다의성’과 ‘모호성’으로 점철된 시인의 말은 ‘사실’과 ‘사물’로부터 점점 멀어지고 있다. 우화적이고 함축된 ‘시’의 ‘언어유희’는 몇 껍질 ‘의미 벗기기’를 하여 수수께끼처럼 ‘말’을 해독해야 한다.
  소쉬르는 말을 ‘기의’와 ‘기표’로 분리하여 정의하였다. 다른 말로 하면 ‘사물’에 옷을 입힌 것을 ‘이름’이라고 본 것이다. ‘이름’은 단지 ‘기호’라고 보았다.  ‘사물에 옷을 입혀 관념의 옷을 벗겨’ 감각적 미의식을 살려야 좋은 시로 인식된다. 대중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관념시’를 좋아하지만, 시인에게 관념은 독이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경구절은, 태초에 ‘사물’이 먼저 존재하고 이름이 붙여졌다는 뜻일까? 구약성서 <창세기>에는 하나님은 사물을 짓고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이미지의 시대인 현대에는 단어는 이미지를 대신한다. ‘강, 바람, 산, 꽃, 구름’이라는 단어를 나열하면 사람들은 기분이 좋아진다. 계곡이나 강으로 여행을 가고 싶어진다. ‘바다, 파도, 갈매기, 돛단배’라는 단어가 나열되면 여름바캉스를 떠나고 싶어진다. 언어는 이제 ‘사물+느낌+행동욕구’까지 함의하고 있다.
  한국어, 프랑스어, 일본어, 중국어가 지시하는 ‘사랑’이라는 말은 한 ‘사실’을 가리킨다. 그러나 ‘사랑해’ ‘I LOVE YOU’ ‘愛’ ‘쥬뎀므’ 는 한 단어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느낌이 다르다.
  ‘사랑해’라는 말도 ‘사랑해’라고 아기가 엄마에게 말하면 애교로 인식된다. 여고생 딸이 아빠에게 말하면 ‘용돈’을 더 타내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청년이 젊은 처녀에게 말하면 그 말은 ‘키스해도 돼?’라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노인이 노파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면 ‘맛있는 밥을 줘서 고마워요’라고 해석될 수도 있다.
  한국말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이 있다. 말의 다의적인 측면을 잘 나타난 말이다. ‘사물’ 앞에 서서 ‘이것’이라고 지시하며 가리켜도, 각각의 사람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오장의 시에서 ‘말 ․ 말 ․ 말’은 ‘전달’과 ‘해석’의 오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가의 해석적 시각으로 말을 분류하였다. 말은 사람의 수만큼, 아니 각 사람의 생각의 갈래만큼 여러 가지로 저마다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위의 시에서도 ‘뛰어가며 한 말, 바람탄 말, 입으로 물어온 말, 뱉는 말, 똑같이 한 말, 강 건너 온 말, 메아리, 마주보고 한 말, 눈으로 한 말, 믿는다는 말, 눈웃음 말, 퍼져가는 말, 혼자서 한 말, 등 여러 말의 실례가 제시되고 있다.
  위의 시에서는 마지막 행에서 ‘말 심은 곳에 허물 돋는다’는 부정적 결론을 내리고 있다. 말에 대한 여러 정황을 제시하고 있지만, 결론은 간략하다.
  말의 종류는 ‘색깔’과 ‘맛’의 종류보다도 복잡하고 많은 것 같다. 위의 시를 발상의 전환을 하여 보면 어떨까? 혜안을 지닌 노시인의 눈이 아닌, 사춘기 소년의 시안으로 ‘말’에 대한 시를 썼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 상상만으로도 재미있다. 소년이 마음을 교환한 사랑하는 소녀에게 보내는 시라고 상상해 보라. 소년에게 ‘말’은 ‘믿음+신뢰+희망’이다. 말은 ‘호기심+친밀함+사랑’의 감정이다. 소년에게 있어서 말은 어른보다 천배, 만배 긍정적인 힘을 가질 것이다. 소년이 가진 ‘말’의 ‘상상력’과 ‘환타지’는 우주까지 뻗어나가리라. 그 시는 분명 긍정적인 시가 될 것이다.
  어린이 때는 ‘눈빛 언어’도 호소력이 강하다. 그러나 청년기를 지나고 기성세대인 어른이 되면 ‘습관성’과 ‘의도성’이 과다 표출되어 ‘말’은 ‘신비주의’의 옷을 벗는다. ‘냉정’과 ‘배반’과 ‘모순’으로 상대를 ‘공격’하며 ‘폭력성’을 갖는다.
  이오장 시를 읽으며 심도있는 자성의 질문을 해 본다. 말의 ‘매력’과 ‘마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말이 ‘호기심’과 ‘매력’을 잃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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