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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장례 /권순자
2018년 12월 24일 20시 30분  조회:804  추천:0  작성자: 강려
나무의 장례
 
권순자
 
 
한 사내가 나무의 가슴을 스윽 벤다
 
나무의 이름과 나무의 얼굴과 나무의 이야기가
잘려나간다
춥고 더웠던
따스하고 정겨웠던 날들
나무의 몸 안에 갇혀있던 언어들이 우르르 톱밥으로 날았다
뚜벅뚜벅 걸어나오는 것이 아니라
수천수만의 날개를 달고
수천수만의 햇살을 타고
가볍게 날았다
 
아,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가
매이고 매여서 놓여나지 못하던 몸이
한 번 발을 내디디니
천길만길 가볍게 날아갈 수 있는 것을
 
무거운 기억들이 허공으로 뜨고
몸속에 갇혀있던 말들이 우르르 쏟아져
사내가 내민 수화에 말문이 터져
사방이 소란스럽다
 
소리의 뼛가루는 몸이 가벼워
저들끼리 부딪치고 엉기며 구화를 나눈다
꾹꾹 눌러온 속을 풀어헤친다
 
물결치는 바람
폭설에 몸 귀퉁이 빌려주었다가 내려앉은 어깨는
이제 썩어서 쉽게 부서져 내렸다
너를 사랑한 푸른 마음은 붉은 죄가 되어
내 몸도 창백하게 병들어갔다
 
푸른 몸에 품었던 열망은 심장에 울음을 쟁이고
울음은 추워도 얼지 않는 눈물이 되었다
 
눈물도 이제는 환한 바람으로 발효되고 있는 중.
 
<이선의 시 읽기>
 
  시가 작가의 무의식적 발현이라면 위의 시는 시의 기본에 충실하다. ‘1연 -나무의 가슴을 벤다, 2연- 나무의 이름과 나무의 얼굴과 나무의 이야기, 3연- 몸이 한번 발을 내 디디니, 4연- 기억, 몸, 말, 5연- 구화, 6연- 꾹꾹 눌러온 속, 7연- 심장, 울음, 눈물, 8연- 눈물의 발효’ 등 모든 연에서 의인화기법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의인화 기법은 시에 생동감을 주며, 직접적이고 감각적인 느낌을 만든다. <나무의 장례>는 한 개의 아름다운 의자가 되어, 또 누군가의 상상력을 자극할 것이다.
 
 위의 시, 1-8연의 등장인물과 시적 구조를 살펴보자.
 1연- 시적화자와 나무를 베는 사내가 등장한다.
 2연- 잘려나간 나무, 나무의 몸에 갇혀 있던 언어들이 자유를 찾는다.
 3연- 움직이지 못하던 나무의 몸이 자유롭게 날아다닌다.
 4연- 갇혀있던 나무의 말이 쏟아진다. 사내의 수화에 말문이 터진다.
 5연- 소리의 원소들이 서로 구화를 나누며 속을 풀어낸다.
 6연- 바람과 폭설에 주저앉고 썩은 나무의 몸.
      내 몸이 병든 이유는 허락받지 않고 너를 사랑했기 때문
 7연- 나무의 열망은 심장에 쌓여 울음과 눈물이 됨.
 8연- 눈물의 발효.
  ‘한 사내가 나무를 벤다’는 간단한 사실에서 출발한 시는, ‘나무의 자유로운 몸’과 ‘나무의 말’과 ‘소리의 원소들의 결합’까지 유추하여 입체적 시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바람과 폭설에 나뭇가지가 썩어나가도 어찌할 수 없는 나무의 운명적 비애를 ‘너를 사랑한 푸른 마음은 붉은 죄가 되어/ 내 몸도 창백하게 병들어갔다(6연 4-5행)’고 의인화하여 사랑의 원죄의식까지 깊이 도출해내고 있다.
  그러나 6연은 나무의 관점에서 출발했던 ‘사물시’가 갑자기 인간화자인 ‘나’의 관점으로 급선회하여 당황스럽다. 작가의 무의식이 반영되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나’와 ‘너’라는 직접적인 화자의 등장은 시 속에 갑자기 작가의 의식이 뛰쳐나와 생경하게 끼어든 느낌이다.
  ‘푸른 하늘을 사랑한 푸른 마음은 죄가 되어/ 나무의 몸은 창백하게 병들어갔다’라고 수정해보면 어떨까? ‘사물이 말하게 하라’는 시적원리를 벗어나지 않고, 관점이 흩어지지 않는다. 관점과 시점이 혼동된 다선구조의 시는 분명한 의도성을 가지고 시도되지 않으면 해석에 혼란을 준다.
  그러나 직접적인 ‘고백’이 독자에게 미치는 파급효과는 크다. 모든 시는 ‘그리움’과 ‘외로움’에서 출발한다. 시가 외롭다는 것은 시인이 외롭다는 증거다. 상상력의 확장을 보여주는 권순자 시인의 ‘나무’는 그 파장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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