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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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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 / 허순행
2018년 12월 25일 15시 59분  조회:869  추천:0  작성자: 강려
황사
 
 
허순행
 
 
햇살이 빈혈을 앓기 시작했다
뼈마디가, 웅크렸던 몸을 펴서 그림자를 키웠다
먼지를 뒤집어쓴 시간들이 수채구멍으로 들었고
바람이 황허강을 건너왔다 허공을 떠돌던 어둠이 붉
은 눈물을 흘렸다
물기가 돌지 않던 자궁에서 낮달이 바깥을 기웃거
렸다
 
(흰옷의 여자와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등장한다)
여자: 당신은 어디에도 없었어요 바람 속에서 바람
처럼 사라지는 말들을 따라다니며 당신을 찾
았어요 걸인처럼(또는 광인처럼) 누군가의 문
을 두드리기도 했어요 떨어지는 해를 지켜보
다가 울음을 토하기도 했어요 그 사람을 만난
건(나로서는) 행운이었지요 오랜만에 정말 깊
은잠을 잤어요 당신이 찾아왔을 때, 그게 생
시였을까요? 유령처럼 서 있는 당신이 실물이
라는 게, 만질 수 있는 실체라는 게 무서웠어
요 골목 끝에서 숨죽여 웃는 운명을 본 듯도
했어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문
뒤로 숨는 나를 지켜봐야 했어요
굴헝처럼 깊은 남자의 눈이 허공을 헤매고 있다
 
밤은 캄캄한 어둠을 기어 나와 달리는 승용차에 올
라타기도 한다 물에 빠진 달그림자를 흔들어보다가
모퉁이에 살고 있는 흰 꿩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다가
구두 뒷축으로 달라붙는 여자의 목소리를 떼어내다가
어둠과 충돌한 그가 어둠 속으로 쓰러졌다
 
밤이 손을 내밀어서 한 생애를 덮어주었다
울음을 매달고 서쪽으로 옮겨가던 별자리가 천년
후의 빛을 쏟아냈다
 
 
 
 
 
 
<이선의 시 읽기>
 
 
 
- 극시 형태의 꿈의 형상화 작업
 
 
위의 시는 꿈을 형상화한 극시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5가지 구조적 특징을 살펴보고 시의 법과 방법론을 분석하고자 한다.
 
첫째, 극시 형태의 시로서 드라마틱하다. <해설- 여자의 대사- 해설>의 1인 모노드라마 형식이다. 2연 도입부에서 ‘흰옷의 여자와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등장한다’는 지문으로 사별한 여자가 죽은 남자를 만났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제2의 등장인물인 남자는 대사가 없이다. 망자인 남자는 허상이다.
또한 ‘전지적 작가 시점’의 ‘관찰자’ 시점인 소설 기법을 차용하였다. 위의 4연의 시는 2연만 극본이다. 1연, 3연, 4연은 해설, 또는 지문에 해당한다. 출연자는 두 명이다. 침묵하는 남자와 일방적으로 말하는 여자다. 배역은 두 명인데 한 목소리만 들린다. 모노드라마적 요소를 가지고 있다.
1연- 해설(또는 지문)
2연- 극본(대사: 여자만, 남자는 침묵. 독백으로 보아야 함)
3연- 해설(또는 지문)
4연- 해설(또는 지문)
모든 시점과 관점은 여자 중심이다. 여자가 극한 상황에 처했음을 나타낸다.
 
둘째, 꿈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황사와 꿈의 ‘불명확성’을 ‘중첩 이미지’로 형상화하였다.
「황사」는 원래 흙과 먼지가 쌓인 곳 위에 또 계속 쌓이는 ‘중첩 이미지’와 시야를 흐릿하게 가리는 ‘불명확성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다 잊어버리고 흐릿한 꿈과 연계된다. 위의 시 제목「황사」는 황사현상을 꿈으로 치환하여, 꿈의 ‘중첩 이미지’로 환원시켜 극적으로 갈등구조를 만들고 있다.
‘햇살이 빈형을 앓고, 물기가 돌지 않는 자궁에서 낮달이 낮달이 바깥을 기웃거린다.’ 부분처럼 이 시에서는 명확한 것이 없다. 남자의 부재로 인하여 여자는 불안정하다. 사물과 스토리가 황당무계하고 불명확하게 보이는 것은 황사와 꿈의 갖고 있는 동질성이다. 모든 것이 부조리한 상황이다.
 
셋째, 시의 기법은 ‘해리현상’처럼 ‘자아’를 ‘타자화’하고 있다. 라깡의 ‘자아의 타자화 기능’이다. 우리는 꿈속에서 객관적으로 타자화 된 자신을 만난다. 자아는 온전히 타자화되어 극을 전개해 나간다. 위의 시에서 ‘여자’는 망자가 된 ‘당신’을 만나고 있다.
1연, 3연, 4연은 자신의 상황을 영화를 보듯이 관찰한다. 시적화자는 여자인 ‘나’이다. 제 삼자의 눈으로 관찰하여 냉정하게 상황을 기록한다.
 
넷째, 극은 독백적이며 고백적이다. 그 이유는 2연의 일방적인 여자만의 대사 때문이다. 고백록이나 일기처럼, 이야기를 혼자 한다. 대사를 치고 있지만 대사를 주고받는 대상이 없다. 그 형식은 독백체이다. 그런데 1, 3, 4연이 시에서 ‘객관화’에 큰 역할을 함에도 불구하고 ‘시적 거리’가 가깝다. 그래서 2연의 톤은 직접적이며 감정적이다.
위의 시의 화자는 시인이고 청자는 독자다. 독백은 니힐하고 직접적 효과가 크다.
 
다섯째, 자동기술기법과 무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의 작품이다. 프로이드는 ‘꿈의 기능’을 숨겨져 있던 ‘무의식’이 의식화하여 밖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았다. 무의식은 ‘술, 꿈, 극도의 흥분’ 상태에서 의식 밖으로 표출된다. 꿈을 시로 형상화한 작품은 상상력의 비약으로 신비스러운 경향을 띤다. 생시에 의식으로는 경험할 수 없는 상상력의 순간접속으로 시를 감각적이게 한다.
위의 시에서는 망자를 초대하여 현실에서처럼 ‘여자’가 ‘말’을 건다. 또한 위의 시 1연, 3연, 4연에서는 ‘자동기술기법’으로 소설의 ‘지문’처럼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시가 시인의 감정의 산물이라면, 시인은 탈출과 극복을 시도한다. 니힐하고 우울한 현재의 갇힌 상황을 꿈으로 극복하려 한다. 현대인의 절대고독과 극한 상황을 제시하고 있다. 사건과 사실만 일방통행으로 존재할 뿐. 드라마적 요소와 ‘꿈’이라는 불확실성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경향을 보이며 여자의 고독과 불안정을 클로즈업 시킨다.
 
갱년기를 지나 노년기에 든 여자의 우울하며 건조한 삶을 반영한다. 여자는 죽은 남자를 밤에 꿈으로 초대하여 고독을 해소하려 한다. 그러나 행동의 제한을 받는 꿈은 여자의 필요충분조건을 만족시켜 주지 못한다.
 
극시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위의 시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생각하게 한다. 무의식의 흐름을 무리하지 않게 객관화시킨 작품이다. 시적 화자와 시인 자신, 망자와의 흐르는 이미지가 제목인「황사」와 조화롭다. 포스트모더니즘 시의 불투명성과 제한성을 극적장치를 하여 선명하게 해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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