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여 흐르다가
문 효 치
사랑이여 흐르다가
물처럼 흐르다가
여울이 되어 소리도 내며 흐르다가
파도가 되어 몸살처럼 부딪다가
사랑이여
물처럼 거침없이 흐르다가
맑고 곱게 흐르다가
때로는 얼음처럼 꽁꽁 막히다가
다시 터져
속 시원히 터져서 흐르거라
어허 사랑이여
<이선의 시 읽기>
인간의 DNA는 죽기 전까지, 사랑에 대한 욕망을 추구한다. ‘사랑’은 ‘생명’이라는 말과 같다. 대중은 사랑 시를 좋아한다. 시인도 사랑 시를 좋아한다. 누구나 사랑에 관해서는 한 마디쯤 할 말이 있다고 믿는다.
문효치는 사랑을 ‘흐르다’로 풀이하였다. 그런데 긍정문이 아닌, ‘흐르다가’라는 애매한 단어가 중심어이다. 단순한 유동적인 ‘흐른다’가 아니다. 이 시의 묘미는 ‘-다가’라는 어미에 반전매력이 있다. ‘흐르다가’는 한 방향으로의 전진이 아니다. ‘행위’와 ‘방향성’의 전환을 예고하는 단어다. 아래 1-4연의 변화된 형태를 살펴보자.
1연: 물처럼 흐르다가
2연: 소리도 내며 흐르다가/ 파도가 되어 몸살처럼 부딪다가
3연: 맑고 곱게 흐르다가
4연: 얼음처럼 꽁꽁 막히다가/ 다시 터져/ 속 시원히 터져서 흐르거라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갑자기 낮은 곳으로 흐를 때는 바위에 몸을 부딪쳐 풍란이 인다. 얕은 계곡에서 얼어붙었다가도, 심연의 깊은 물길은 뚫려 맑은 물이 흐르기도 한다. 사랑도 물과 같다. 필요충분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위태로운 줄타기를 할 때 사랑은 폭발적 힘을 갖는다.
위의 시에서 사랑의 관점은 3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첫째, 한 사람이 ‘타인을 알고- 연애를 하고-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사랑의 과정에서 좌충우돌 겪게 되는 에로스적인 연애과정으로 해석할 수 있다.
둘째, 한 사람이 평생 동안 여러 타입의 사람을 만나고 헤어지는 사랑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충돌과 화해와 조화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사람들의 다양한 사랑의 방식과 모양과 성질을, 소설의 ‘전지적 작가적 시점’으로 관찰한 다시점적 시각의 시로 해석할 수 있다.
문효치의 시는 사랑이라는 관념을 잘 파악하고 있다. ‘불안정’하고 ‘부조리’한 정서는 시의 자질이다. 정서가 행복하고 안정된 시는 힘이 약하다.
사람들은 평생 동안, 여러 개의 사랑을 소유하고 살아간다. 정신적 사랑, 정서적 사랑, 육체적 사랑 등 여러 종류의 사랑이 복합적인 형태로 꼬여 있다. 사랑은 물과 같아서 유동적이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모양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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