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호 시집 해설
내면의식의 오랜 뜨거움이 피워낸 진솔한 독백의 언어
심상운(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글
김순호 시인의 첫 시집『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 』에 실려 있는 66편의 시편들을 읽으면서 그 시편들의 진솔한 독백獨白의 힘에 자신도 모르게 끌려들어갔다. 극적장면劇的場面을 보여주는 서사敍事와 상상想像,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적 이미지, 끝 연의 의미의 함축, 등은 개성적이고 세련된 미적 감각을 느끼게 했다. 또 일정한 규격에 얽매이지 않고 펼쳐내는 독백의 언어 속에 들어있는 여성적인 사랑과 열정의 정서는 자기응시와 생명의식과 현실인식의 밑바탕이 되어 단편적 이미지들을 뜨거운 감동과 깨달음의 언어로 다가오게 했다. 그리고 그의 시에 들어 있는 독특한 성적 감각의 언어는 잘 숙성된 술과 같이 독자들에게 시적 감흥을 안겨주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그것은 그의 시의 감각과 사유가 관념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공간을 안고 있어서 독백의 언어가 객관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시편들은 경험을 밑거름으로 한 시적 에너지의 발산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이는 이 시집의 시편들의 이미지가 시인의 무의식無意識 속에서 오랜 세월 잠재되었다가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나오듯 자연스럽게 언어로 태어난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그래서 김순호의 시를 읽으면서 ‘시는 경험과 무의식의 산물’이라고 한 R.M.릴케의 산문집『말테의 수기手記』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되었다. “나이 어려서 시詩를 쓴다는 것처럼 무의미한 것은 없다. 시는 언제까지나 끈기 있게 기다리지 않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사람은 일생을 두고, 그것도 될 수만 있으면 칠십 년, 혹은 팔십 년을 두고 벌처럼 꿀과 의미意味를 모아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최후에 가서 서너 줄의 훌륭한 시가 씌어질 것이다. ” R.M.릴케의 이 말은 너무 과장되어 반박을 당할 여지도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시의 창작’은 시인의 일생에 걸친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창작의 교훈으로 영원히 남는 말이다. 이런 생각을 근거로 해서 필자는 해설의 제목을 ‘내면의식의 오랜 뜨거움이 피워낸 진솔한 독백의 언어’라고 붙이고, ‘사랑과 열정의 언어’ ‘생명의식과 자연’ ‘자기응시의 이미지’ ‘현실인식 속의 시간 이미지’를 소제목으로 해서 시의 내용과 함께 김순호의 시를 매끄럽게 하고 피부에 닿게 하는 언어의 절제와 감각, 시적 구성에 대해서도 찬찬히 살펴보았다.
2. 시편 들여다보기
가. 사랑과 열정의 언어
20세기의 모더니즘은 현대시에 ‘정서의 절제’와 ‘주지적主知的 인식認識’이라는 시의 방법을 도입하여 현대시를 19세기 낭만주의의 ‘감정의 유로流露’(워즈워드)에서 탈출하게 했다. 그러나 모더니즘이 현대시에서 대상에 대한 낭만적浪漫的 인식까지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지하철 전광판에/그 남자의 집이 있는 동(洞) 이름이 써 있으면/난 하염없이 그 글씨들을 쳐다본다./그 남자는 지금 무엇을 할까/내가 사는 동(洞) 이름을 보면 그 남자도 나를 생각할까/반가움인지 쓸쓸함인지 모를 뒤엉킴 들이/혈관을 타고 발끝까지 퍼져간다.//그 남자의 집/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그 남자의 집은/꿀벌들이 꿀을 나르며/수없이 드나드는 벌집 같기도 하고/빨간 모자를 쓴 성냥개비들이 꼿꼿이 서있는/성냥곽을 포개 놓은 것 같기도 한 아파트/멀리서 바라보다 뜨거운 눈에 어른거려/하나, 둘, 층수만 세어보다 돌아서는 집/언제나 풍경으로만 서있는 그 남자의 집//그 남자/달밤엔 달빛이 창을 뚫고 들어와/마음을 송두리째 훔쳐간다고/비 오는 날엔 옥상에 올라/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전화선에 태우고/내게로 내게로 달려오는/그 남자/창밖엔 지천으로 봄이 왔다간다고/울울창창 까맣게 여름이 퍼져간다고/애틋한 가을이 그만 가고 있다고/무릎 끓은 겨울이 긴긴 밤 울고 있다고/소리로 소리로 소리로/풍경을 그려주는 그 남자//그 남자가 사는 집/막막한 열정에 우는 내 영혼이 연기처럼 스며들어가 서성이는 집/내 영혼이 사는 집 //-「그 남자의 집」전문
이 시집의 첫 시「그 남자의 집」은 시인의 낭만적인 꿈이 일상적인 형이하形而下의 언어를 넘어서서 ‘내 영혼이 사는 집’에 도달하는 형이상적形而上的 상승의 과정을 보여주면서 반복의 언어 속에서 솟아나는 정서의 뜨거운 열기를 감지하게 한다. 그리고 사실적 이미지에 섬세한 언어로 녹아든 여성女性의 풋풋한 감성이 농익은 시의 맛을 한껏 맛보게 한다. “그 남자의 집/한 번도 들어가 보지 못한 그 남자의 집은/꿀벌들이 꿀을 나르며/수없이 드나드는 벌집” 같기도 하다는 상상의 언어는 독자들에게 사랑의 감미로운 감각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그것은 관념이전의 사물적인 언어의 이미지가 주는 사랑의 원초적 감각 때문이다. 그래서 이 시는 읽으면 읽을수록 감미로운 맛을 더 느끼게 되고 사랑의 진실에 동감하게 된다. 이런 순수한 정서의 전달이 주는 감동은 김순호 시인의 가식假飾이 없는 의식이 허공 같이 자유로운 시적 공간을 형성하고 있음을 알게 한다.
꽃을 품고 싶어 안달이 난 남자가/매화꽃 두런거리는 광양 매화마을로 떠났다//'꽃바람 없는 건 남자도 아니지'//그 남잔 스마트폰으로/꽃불 번지는 매화마을을 /소방사가 물을 뿌리듯 구석구석/찍고 또 찍어 보내왔다//지금/매화꽃 고것들은/송곳 같은 꽃술은 감추고/언뜻언뜻 별 같은 심장을 흔들어대며/눈 시리게 활짝 웃고 있겠지//'앙큼한 고것들'//그러다 어느 순간/치명적인 향기를 내뿜어/봄마다 그 남자/꽃병이 들어 허둥지둥 달려오게 만들 거야//- 「매화꽃 고것들은」전문
「매화꽃 고것들은」에서도 감각적인 사랑의 언어가 생동한다. 남자와 매화꽃이 육감적인 사랑의 공간을 만들어내는 이 시는 시인의 언어감각이 얼마나 예민하고 세련되어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꽃바람’ ‘꽃불‘ ’꽃술’ ‘꽃병이 들어’ 등의 언어가 단순한 암시에 머물지 않고 시 속에서 걸림이 없는 낭만의 공간을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 언어들은 독자들에게 맛깔스럽고 풍요로운 시의 맛을 맘껏 즐기게 하는 시적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혹한을 견뎌낸 송곳 같은 순결/꺾고 싶은 도발적인 자태/너를 보고 떨리지 않을 바람이 어디 있으리//다가가면/사르르 벗어버릴 것 같은/투명한 옷자락/실핏줄 비치는 살내음의 유혹/네 앞에서 미치지 않을 가슴 어디 있으리//도도히 온몸을 불사르며/스러지는 교태의 몸짓/그 장엄한 뒷모습/서럽지 않을 영혼이 어디 있으리//아 바람을 타고 싶다/너와 나/태풍에 실려/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순정한 바람//-「꽃1」전문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주방에선/분수처럼 불기둥이 솟는다/푸른 바다 푸른 산 푸른 들이/후라이팬 속에서 오그라들고 있다//그 죽음을 난 먹는다//이제 알겠다/최후의 그날/내손을 잡아줄 이는/사랑했던 사람도/미워했던 사람도 아닌/용암처럼 성난 저 불덩이라는 걸//-「불덩이」전문
「꽃1」도 “다가가면/사르르 벗어버릴 것 같은/투명한 옷자락/실핏줄 비치는 살내음의 유혹” 등 성적 감각의 이미지가 꽃을 육감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이런 성적감각의 언어와 상상은 김순호 시인의 독특한 개성으로 파악된다. 이런 개성이 애정이나 탐애貪愛에 머물지 않고 더 활달한 어법- 어떤 것에도 구속 받지 않는 상상력을 바탕으로 깊고 넓은 자연의 생명력을 담을 때, 전통적인 감성이나 관념의 좁은 울타리를 과감히 부숴버리는 ‘생명의 시’를 탄생시킬 것 같다.「불덩이」는 그런 면에서 주목된다. 탐애에서 생명력으로 넘어가는 가교架橋의 역할을 하는 시로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 단서가 이 시의 끝 연 “최후의 그날/내손을 잡아줄 이는/사랑했던 사람도/미워했던 사람도 아닌/용암처럼 성난 저 불덩이라는 걸 ”에서 발견된다. 이외에도 「애인 하나 있으면 좋겠다」,「열병」등이 뜨거운 인상을 남긴다.
나. 생명의식과 자연
그리스 신화에서 손에 닿는 모든 것을 황금으로 변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이룬 마이더스 왕이 금덩어리가 된 사랑하는 딸을 안고 비로소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는 이야기는 탐욕을 경계하는 교훈으로만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생명이라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따라서 이 신화는 돈을 가치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현대 자본주의를 각성시키는 경종이 되기도 한다. 현대철학에서 인간중심주의humanism의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가 비판의 대상이 되고, 공생인간共生人間이라는 호머심비우스Homo symbious가 거론되고 있는 것도 21세기 인류생존의 활로가 인간이 쌓아놓은 자본資本에 있지 않고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생각할 때, 현대시에서 ’생명의식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시가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하는지 알게 된다. 그것은 20세기 말 독일의 시단에서 태풍을 일으킨 ’생태시生態詩 운동‘이 증명하고 있다. 생태+시로 형성된 생태시는 모든 생명체에 대한 평등한 존중과 보존을 기반으로 한 지구의 생태환경의 보존이라는 선명한 메시지를 담은 시운동으로 세계의 시단에 큰 반향과 영향을 주고 있다. 그것은 생태시의 언어가 인간양심의 소리이며 인간의 생존을 위한 외침이기 때문이다.
싱가폴에선 킹크랩을 먹어야한다고/부둣가 노천식당에 사람들이 구불구불 쇠사슬같이 늘어서있다/자릴잡고 앉아 /빨갛게 삶아져 사람들의 입으로 쓸려 내려가는/킹크랩들의 최후를 본다 //사람들이/가위로 자르고 꼬챙이로 살점을 파내는 형을 집행하고 있을때 /그들의 벌거벗은 살육장에선/긴 다리로 허공을 할키며 질러대는 비명이 천장에 몰려 웅웅운다//부딪혀 꺾이는 소리/수증기 뿜는 소리/포연인 듯 넘실대는 비린 안개가 꽉찬다//싱가폴에선 킹크랩을 먹어야 한다고/먹이사슬의 맨 꼭대기 인간들이 줄지어 몰려온다/그들의 목숨도 줄줄이 끌려온다//싱가폴 부두가 붉디붉다//-「킹크랩」전문
* 킹크랩* 대게와 같은 갑각류* 킹크랩은 대게에 비해 몸통도 더 크고 껍질에 가시가 있으며 색도 대게보다 붉다.
「킹크랩」은 그런 관점에서 주목되는 시이다. 시인은 관념이 아닌 현실 속에서 킹크랩을 먹는 인간들의 행위를 사물적 언어로 생생하게 현장감을 느끼게 표현하여 먹이사슬의 맨 위에 있는 인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이고 잔혹한지를 생태적인 입장에서 관찰하여 보여주고 있다. “사람들이/가위로 자르고 꼬챙이로 살점을 파내는 형을 집행하고 있을 때/그들의 벌거벗은 살육장에선/긴 다리로 허공을 할키며 질러대는 비명이 천장에 몰려 웅웅운다”라고. 그리고 “싱가폴 부두가 붉디붉다”라는 구절로 킹크랩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감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종로 5가에/반라半裸의 여자그림 광고판이 빙글빙글 돌아간다/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드는 쇼 윈도우/네온사인 불빛이 여자들을 난자 한다 //맞은편 바다횟집/물고기들이 납작하게 엎드린 체/오고가는 사람들을 무심히 쳐다본다/그러다 뜰 체가 다가오면/피할곳 없는 수족관 벽에 온몸을 부딪치고 부딪치다/거품은 가라앉히고 진한 비린 향을 고요로 남긴다//-「종로5가에 」전문
「종로5가에 」에서도 시인의 눈은 화려한 쇼윈도우에만 머물지 않고, 뜰 체를 피하려고 이리저리 부딪치던 물고기들의 모습이 사라진 바다횟집의 작은 수족관을 스케치하고 있다. 그것은 어느 날 서울 종로 5가의 단순한 소묘素描이지만 화려한 쇼윈도우의 대칭적 구성이 바다횟집의 수족관이란 점에서 주목된다. 그 장면은 인간과 물고기의 현실을 단편적 이미지로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생명체의 공존의 문제를 화두話頭로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백주에 혁명이 일어났다//하늘은 흰 천을 풀어/순식간에 세상을 덮어버리고/땅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안에 엎드려 항복 한다/백기를 흔들며 빠져나간 바람이/그들의 편이 되어 미친 회오리를 일으킨다//하늘은 드르륵 드르륵/거대한 빙산을 갈아 뿌리며 아래로 내려오고/눈을 찌르고 입을 막고 목을 조이며 휘날리는 눈보라/그것은 세상을 뒤엎는 혁명//나는 종종걸음으로 다지듯이 눈을 밟아나간다/뽀득 뽀득 소리 지르며 납작하게 죽어가는 눈의 무리들/땅은 높아지고 덩달아 나도 높게 들어 올려 진다 /밟아도 밟아도 끈질기게 낙하하는 살아있는 눈덩이들//백주에 혁명이 일어났다//-「폭설」전문
「폭설」은 폭설暴雪을 통해 세상을 개혁하는 혁명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자연이라는 거대한 생명체가 인간에게 어떤 존재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그래서 “하늘은 흰 천을 풀어/순식간에 세상을 덮어버리고/땅에 있는 모든 것은 그 안에 엎드려 항복한다” “밟아도 밟아도 끈질기게 낙하하는 살아있는 눈덩이들”이란 구절들을 생동하는 의미로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문명이 인간의 위대성을 나타낸다고 하지만 무심하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가를 생각하게 하고, 자연을 구성하는 생명체들을 평등한 눈으로 성찰하게 한다.
집을 나오니/이게 웬일인가/몽실몽실 솜사탕을 문 벚꽃들이/안개처럼 새절역 거리를 삼키고 있다//내가/사관생도들이/칼을 높이 들어 도열해 만든 터널 속을/수줍은 신부가 되어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인가/내가/목숨을 걸고 불속을 뛰어들어 걷고 있는 것인가/아니면 내가죽어/꽃상여를 타고 떠나는 것인가//아니다/그것은 햇살을 찢어발기는 태평소 소리/열두 발 상모를 돌려대는 서러운 남사당패의 한마당 같은/꽃들의 살풀이춤/꽃들의 이별이다//-「벚꽃 날리던 날」전문
「벚꽃 날리던 날」은 봄의 벚꽃이 인간에게 선물하는 ‘생명의 환희’를 포착하여 형상화하고 있다. 사관생도들이 도열한 터널 속을 걸어 들어가는 신부, 목숨을 걸고 뛰어든 불꽃 속, 꽃상여 등의 이미지가 시인의 화려한 상상력을 보여준다. 끝 연에서는 시인의 마음과 꽃의 마음이 한 덩이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 “열두 발 상모를 돌려대는 서러운 남사당패의 한마당 같은/꽃들의 살풀이춤”의 장면은 시의 현실은 비현실의 꿈같은 것이지만 그 꿈이 진정한 의미의 현실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있다. 그것은 시의 현실은 가장 본질적인 생명과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다. 자기응시의 이미지
자기응시는 자기도취나 자기탐애, 자기중심적인 나르시시즘(Narcissism)과 크게 다르다. 자기응시는 주관에서 탈피한 객관적 시각에 의한 자기존재의 발견이기 때문이다. 불교佛敎의 선禪은 자기응시를 통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실존적實存的 자기의 존재를 깨닫는 수행법이다. 20세기 한국불교를 대표한 성철成徹스님은 법문집『자기를 바로 봅시다』에서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항상 자기는 변함이 없습니다. 유형, 무형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라고 자기존재의 원형原形을 깨닫게 하였다. 김순호 시인의 자기응시는 이런 철학적 사유와는 사뭇 다른 차원에서 ‘인간의 욕망’을 드러내고 있지만 그 무구無垢한 마음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거리에서/쇼 윈도우를 스치며 언뜻 본 내 모습/아직은 괜찮다 싶다//백화점 화장실 거울은 젊은 여자들이 다 차지하고 붙어있다/그 젊음에 주눅이 들어/나는 내 모습을 보면서도 도둑처럼 쓰윽 훔쳐보며 나온다//그러다 아무도 없을 땐/나도 그녀들처럼 거울로 기어 들어갈 듯 붙어 서서 훑어보는데/씨앗 주머니를 매단듯 늘어진 눈이 그렁그렁 웃으며 답한다/다음 이마를 슬적 들춰서/생선가시처럼 뻗대고 서있는 하얀 머리카락을/검은머리 속으로 꼭꼭 숨바꼭질 시키고/콤팩트를 쇼 윈도우 꺼내 거뭇하게 얼룩진 잡티를 공격한다/두드리면 두드릴수록 /배춧잎을 기어간 벌레의 안간힘처럼 퍼져가는 주름들//샤워를 하고/온 몸을 거울에 비춰본다/촉촉한 물기 때문일까/오. 괜찮다 /나는 한발 뒤로 물러나/도도하게 턱을 위로 치켜들고 서있다//-「쇼 윈도우와 거울」전문
「쇼윈도우와 거울」은 중년여성이 자기의 육체적 젊음을 젊은이들과 비교하고,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장면을 솔직담백하게 가벼운 터치로 그리고 있다. 언제나 젊고 싶은 욕망으로 거울 속의 자기를 바라보는 마음은 인간의 보편적인 욕망이면서 여성에게는 강한 자극을 주는 욕망이다. 이 시는 자신의 존재성을 ‘이성적 의식’(데카르트)이 아닌 ‘무의식의 욕망’(프로이트, 라캉)으로 드러내고 있어서 더 시적 미감을 풍긴다.
뜨겁게 포옹한다/그리고 화들짝 놀라서 깬다/웬 에로틱한 개꿈!//두 남녀를/바라다보고 있는 게 나인지/안겨있는 여자가 나인지 분간키 어렵다/이왕이면 안겨있는 여자이고 싶은데/바라다본 것도 같으니/꿈에서도 나는 아니다//아침 겸 점심을 먹고/잠시 누웠다 잠이 들었는데/사춘기 소녀처럼 야릇한 춘몽이라니/평생 딱 맞추는 꿈 한번 꿔보지 못했는데/심지어는 태몽조차도//송골송골/얼굴에 맺혀있는 땀을 닦으며/방금 꿈에 보았던/실루엣 같은 영상을 떠 올린다//-「개꿈」전문
「개꿈」에서도 무의식 속의 자기와 만나는 시인의 욕망이 적나라赤裸裸하다. 이런 성적인 욕망의 표출은 이성 쪽에서는 감추고 숨기려고 하지만 그럴수록 인간의 이성은 위선의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꿈속에서도 안겨있는 여자이고 싶다는 시인의 개방적이고 솔직한 욕망의 표출은 외설적 표현으로 문제가 되었지만 '사랑의 원초적인 의미의 회복‘ 이라는 평가를 받은 D. H. 로렌스의『채털리 부인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이 외에도 젊은 연인들이 길에서 키스하는 장면을 포착하여 “축복받은 그들이 보란 듯이 키스하고 있다”면서 나도 저렇게 키스를 하고 싶다는 솔직한 욕망을 드러낸 「그들이 우리였으면」이 싱싱한 야생의 감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라. 현실인식 속의 시간 이미지
시는 비현실의 꿈을 현실로 인식하게 하는 정신적 에너지를 발휘하는 언어예술이지만 현실 속에서 사는 시인은 현실을 외면할 수 없다. 현실은 시간과 공간의 결합으로 이루어진다. 떠나온 공간은 돌아갈 수 있지만 떠나온 시간 속으로 다시 돌아 갈 수 없다. 이것이 현실의 조건이다. 이것을 공간의 가역성과 시간의 불가역성이라고 한다. 김순호 시인은 불가역적인 시간을 시속에 담아내고 있다.
북촌 정독도서관엔/낡은 시간의 부스러기들이 굴러다닌다/공지사항과 문학 강연 광고는/옛날 영화 포스터 같이 나를 붙들고/어둑한 복도의 CCTV 카메라는 죄도 없이 무서운데/와본 적도 없는 오래된 복도를 걸으며/아득한 유년의 풍경 속으로 끌려 들어간다//천천히 다가오는 그림자/50 년 전 시립병원에서 죽어간 한 소녀가 웃으며 걸어온다/그림자처럼 복도를 느리게 걸어 다니던 아이/ 어느날 해맑게 웃으며 외출하듯 떠나간 아이/그때도 이렇게 햇살이 너울너울 유리창을 기웃거렸지// 그 애의 침대가 비워지고 /병실가득 뿌려지던 크레졸 냄새가 순간 퍼져온다/와락 달려와 안기는 날카로운 냉기/잊었던 시간들이 때 묻은 벽을 뚫고 있다//무심히 내다본 조각난 유리창 밖/까까머리 소년들이 버리고 간 추억이 먼지를 일으키며 몰려다닌다/떠나는 것은 다 붙들고 싶다 /흙먼지 날리는 쎈 바람도 찢어진 낙엽도// -「 떠나는 것은 다 붙들고 싶다 」전문
「떠나는 것은 다 붙들고 싶다」는 제목 그대로 시간 속에서 떠나는 것들을 붙잡고 싶어 하는 연민의 정이 물수건같이 촉촉한 느낌을 준다. 시인은 정독도서관 내부의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이미지에 50년 전에 죽은 한 아이의 영상을 넣어서 현재와 과거를 하나로 결합하는 입체적인 이미지를 연출하여 시적 효과를 높이고 있다. 이런 시의 구성을 하이퍼적 구성이라고도 한다. 이런 시간의 영상적 기법은 「저 여인 은 누구인가」에서도 시적 공간의 입체성을 만들어내고 있다.
터널속을 달리는 지하철/거울처럼 까만 차창에 박혀있는 한 여인이/손잡이를 잡고 바라본다/저 여인은 누군가/낯설다//눈을 깜박인다/물처럼 맑은 한 계집아이가 천진하게 웃는다/또 눈을 깜박인다/짙푸른 청춘이 터질듯 풋풋하게 웃는다/다시 눈을 깜박인다/이번엔 절정의 중년이 우아하게 웃는다//흔들리는 지하철/까만 차창 속에 박혀있는/한 늙은 여인이 쳐다본다/손잡이를 바꿔 잡자/차창 속 늙은 여인도 바꿔잡는다/까맣게 말라버린 마른 꽃처럼/만지면 바스라질것 같은 모습/저 여인은 누군인가/낯설다//-「저 여인은 누구인가 」전문
터널 속을 달리는 지하철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순간순간 변하는 여인의 모습이 영화의 장면변화 같다. 그것은 한 여인의 일생을 단편적으로 압축해서 보여주는 디지털적인 영상감각의 기법으로 비현실을 현실화하여 시적현실을 창조한다. 현실의 냉혹성을 보여주는「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는 서사적 구성을 현재⟶ 과거⟶현재로 해서 입체감을 살리고 있다. 그리고 시나리오의 기법으로 서사를 영화의 장면같이 보여주고 있다.
(전략)//'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어려서 엄마에게 배워 간직한 유품같은 노래하나/구전동요인지 이후론 한번도 들어보지 못한/그러나 지금도 완벽하게 부를수있는 노래/오늘도 웅얼거리는 그녀의 목젖이 떨리며/살갗을 파고드는 냉기처럼 그날이 밀려온다//(중략)//외딴 초가의 문간방/갑자기 들이닥친 사내/방문은 국방색 담요로 급히 가려지고/깡마른 몸에 푸르스름한 빛의 남루한 옷차림/신발도 벗지 못한 채 산적처럼 수염이 덥수룩한 지아비와/깔끔하게 핀으로 고정된 신여성풍 까미 머리의 지어미가 마주보고 앉아있다/아이는 밥그릇 위로 빙 돌려 올려놓은/물에 씻은 김치를 밥에 얹어 먹으며 힐끔 거린다//(중략)//-「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부분
이 시에는 1950년 한국전쟁(6.25)로 인해 부모와 헤어진 시인의 아픈 기억이 하얀 서리꽃같이 피어있다. 필자는 이 시를 거듭 읽으면서 그 아픔의 사연을 냉정하게 객관화시켜 영화의 화면처럼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밝은 이미지로 끝맺음한 시인의 마음을 꽃동산의 빛으로 느꼈다.
3. 나가는 글
필자는 김순호 시인의 첫 시집『보셔요 꽃동산에 봄이 왔어요 』의 66편의 시편들을 나름대로의 시각으로 읽고 이해하고 해설의 제목을 ‘내면의식의 오랜 뜨거움이 피워낸 진솔한 독백의 언어’라고 붙이고, ‘사랑과 열정의 언어’ ‘생명의식과 자연’ ‘자기응시의 이미지’ ‘현실인식 속의 시간 이미지’를 소제목으로 시를 분류하여 해설했다. 앞의 <들어가는 글>에서 이미 언급했지만 김순호 시인의 진솔한 독백의 언어는 독자들의 가슴에 공감의 울림을 주기에 충분하다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극적장면劇的場面을 보여주는 서사敍事와 상상想像, 군더더기 없이 단순하고 선명한 인상을 남기는 단편적 이미지 등은 오랜 수련의 결과라는 것을 알게 했다. 특히 그의 시에 들어 있는 독특한 성적 감각의 언어는 잘 숙성된 술과 같고 시적 감흥과 싱싱한 생명력을 뿜어내는 항아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김순호의 시가 또 어떤 놀라움을 줄지는 예측할 수 없어도 그의 무의식無意識 속에 오래 잠재되었다가 나오는 매력적인 시의 이미지들이 더 완숙한 경지에 이르리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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