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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2022년 03월 31일 20시 24분  조회:1911  추천:0  작성자: 강려
[공유] 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비니파파의 사랑이야기 | 비니네
 https://blog.naver.com/ydkim0301/20039056890
* 저작권자의 요청시 삭제하겠습니다. *

  국내최초 완역본
  안데르센 동화전집
  저자: 안데르센
  역자: 김숙희 외4인
  출판사: 도서출판 한뜻

 
 
인어공주  안데르센
 
깊은 바다 속은 아름다운 수레국화의 꽃잎처럼 푸르고 투명한 유리처럼 맑습니다. 하지만 그 곳은 어떤 닻줄도 닿지 못하고, 바닥에서 물위까지 수많은 교회 종탑을 쌓아야 닿을 정도로 깊답니다.
그 깊은 곳에 바다의 종족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저 흰 모래밭만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그렇습니다. 그곳에는 이상한 나무와 식물들도 자라고 있습니다. 그 나무와 식물들의 줄기와 잎들은 너무나 부드러워 물살이 조금만 일어도 흔들린답니다. 그 사이로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쳐 다니구요. 마치 새들이 하늘에서 공기 속을 날아다니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는 바다 임금님의 궁전이 있습니다.
궁전의 벽은 산호로 만들었고, 길고 뾰족한 창문들은 가장 맑은 호박으로 만들었습니다. 또 지붕은 물결이 흔들릴 때마다 저절로 열렸다 닫혔다 하는 조개 껍질들로 덮었답니다.
거기 조개껍질 하나하나 속에는 모두 빛나는 진주들이 놓여 있습니다. 정말 그런 궁전의 모습은 굉장하답니다. 거기 진주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해도 임금님의 왕관을 멋지게 장식할 만큼 값진 것들이거든요.
바다 임금님은 혼자 살고 있답니다. 그의 늙은 어머니가 살림을 돌보고 있었습니다. 영리한 그 부인은 자신이 귀족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녀는 꼬리에 열 두 개의 굴을 달고 다녔습니다. 다른 부인들은 여섯 개까지만 달 수 있도록 했지요. 그것만 빼고는 그녀는 다른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지요.
그녀는 나이 어린 바다의 공주들을 몹시 사랑했습니다. 여섯 명의 아름다운 아가씨들이지요. 그 중에서도 막내 공주가 가장 예뻤습니다.
피부는 장미빛처럼 깨끗하고 맑았으며, 두 눈은 깊은 바다처럼 파랗답니다. 하지만 다른 형제들처럼 발이 없고 물고기의 꼬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공주들은 바다 속 궁전에서만 살았습니다.
공주들은 궁전의 커다란 수문에서 하루 종일 놀았습니다. 그 수문 벽에는 살아 있는 꽃들이 자라고 있었어요. 커다란 호박 창문이 열리면 거기로 물고기들이 헤엄쳐 들어오죠. 우리가 창을 열면 제비가 날아 들어오듯이 말이에요.
물고기들이 작은 공주들에게 헤엄쳐 오면 공주들은 먹이를 주기도 하고 물고기를 쓰다듬기도 했습니다.
궁전 바깥에는 불길처럼 붉고 검푸른 나무들이 있는 큰 정원이 있었습니다. 과일들은 황금처럼 빛났고, 꽃들은 타고 있는 불길 같았습니다. 바닥에는 고운 모래가 깔려 있었는데, 그 모래는 유황의 불길 같은 푸른색을 띠고 있었습니다.
바다 속 공주들은 바람이 잠들면 해님을 보러 나왔습니다. 공주들에게는 해님이 자주 빛 꽃처럼 보였습니다. 꽃받침이 모든 빛을 뿜어내는 그런 꽃 말이에요.
공주들은 정원 안에 자기만의 구역을 갖고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땅을 파고 식물을 가꿀 수 있었습니다. 어떤 공주는 고래 모양으로 만들었고, 다른 공주는 인어 모양의 꽃밭을 만들었지요. 그러나 막내 공주는 꽃밭을 해님처럼 둥글게 만들고, 붉게 빛나는 꽃들을 심었습니다.
막내는 조용하고 신중하며 특별한 공주였습니다. 다른 언니 공주들이 난파한 배에서 주워온 진기한 물건들로 치장을 해도 그녀는 저기 위 해님과 닮고, 장미꽃처럼 붉은 꽃들과 오직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만을 가지려 했습니다. 그것은 흰색의 맑은 돌로 조각된 아름다운 소년상이었습니다. 배가 침몰하면서 바다 밑바닥으로 내려온 것이었습니다.
막내 공주는 조각상 옆에 장미빛처럼 붉은 수양버들을 심었습니다. 수양버들은 근사하게 자라 푸른 모랫바닥을 향해 싱싱한 가지를 뻗었습니다. 조각의 그림자가 바이올렛 빛으로 모래바닥에 비치고 수양버들의 가지들이 흔들흔들 움직이면, 마치 수양버들의 꼭대기와 뿌리가 서로 입을 맞추기라도 할 것처럼 보였습니다.
공주는 저 위쪽 인간 세계의 이야기를 아주 좋아했습니다.
할머니는 배와 도시, 인간과 동물 등에 대해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재미있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공주는 그 중에서도 꽃들이 향기를 낸다는 사실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바다 속 꽃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숲들이 초록색이라는 것과 나무들 사이에서 고기들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 등이 정말 신기했습니다.
할머니가 나무들 사이의 고기라고 부른 것은 작은 새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공주들은 한 번도 새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이해하지 못한답니다.
"너희들이 열 다섯 살이 되면 허락을 얻어 바다 위로 나가서 달빛이 비치는 바위 위에 앉아 지나가는 배들을 볼 수 있단다. 그러면 숲들과 도시들도 볼 수 있지."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큰언니 공주가 제일 먼저 열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공주들은 꼭 한 살씩 나이 터울이 졌습니다. 그러니 막내 공주가 인간 세상을 보려면 아직도 5년이나 남은 것이지요. 공주들은 자기가 본 것을, 그리고 첫날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 것을 다른 공주들에게 이야기해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할머니가 얘기해준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그 어떤 공주도 막내 공주만큼 동경으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사려 깊은 막내 공주는 가장 바다 위로 올라가고 싶었지만 가장 오래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녀는 항상 창가에 서서, 물고기들이 지느러미와 꼬리를 움직이며 이리저리 첨벙거리는 바닷물을 통해 저 위를 올려다보곤 했습니다. 그러면 아주 희미하게 비쳤지만 달과 별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검은 구름 같은 무언가가 그 아래를 스쳐 지나가면 고래이거나 아니면 많은 사람들을 태운 배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배에 탄 사람들은 바다 속에서 작고 아름다운 인어 공주가 하얀 손을 내밀고 있으리라곤 정말이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맏이인 첫째 언니 공주가 열 다섯 살이 되어 바다 위로 올라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맏언니는 돌아와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달빛을 받으며 고요한 바닷가의 모래 언덕에 앉아 있는 것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 또 그 곳에 앉아 수백 개의 별 같은 불빛들이 반짝거리는 큰 도시를 바라보는 것, 음악과 마차와 사람들의 소리를 듣는 것, 많은 교회 종탑을 바라보면서 종소리를 들었던 것은 잊지 못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럴수록 막내 공주는 그곳에 가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 모든 것을 정말 그리워했답니다.
아! 막내 공주는 정말 얼마나 열심히 귀를 기울였던지요.
늦은 저녁 창가에 서서 검푸른 물결을 통해 위를 올려다보면서 떠들썩하게 소리가 울리는 큰 도시를 상상했답니다. 그러면서 교회 종소리가 바다 밑까지 울려온다고 믿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둘째 공주가 허락을 얻어 바다 위로 올라갔습니다. 마침 해가 지고 있을 때였지요. 해가 지는 하늘은 정말 아름다웠습니다. 온 하늘이 황금처럼 보였지요. 그리고 그 구름들! 그래요, 그 아름다운 모습은 도저히 그려낼 수 없었답니다.
구름은 붉은 색과 바이올렛 빛을 띠고서 그녀의 머리 위로 노를 저어 갔습니다. 그리고 길고 하얀 면사포처럼 한 떼의 들오리들이 해가 떠 있는 물 위를 향해 구름보다 훨씬 더 빠르게 날아갔습니다.
그녀는 해를 향해 헤엄쳐 갔습니다. 그러나 해는 곧 가라앉고 바다 표면과 구름 위의 장밋빛 홍조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해에는 셋째 공주가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자매들 중에서 가장 호기심이 많았답니다. 그래서 바다로 흘러드는 넓은 강을 따라 헤엄쳐 올라갔습니다.
그녀는 포도 넝쿨이 우거진 찬란한 초록 언덕과 찬란한 숲들 사이로 성을 보았습니다. 또한 공주는 새들이 아름답게 노래하는 것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햇볕이 어찌나 따뜻하게 비치는지 뜨거워진 얼굴을 식히기 위해 물 속으로 들락거려야만 했지요.
바닷가에서는 발가벗은 어린아이들이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며 놀고 있었지요. 공주도 그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공주의 모습을 보더니 놀라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 때 작은 검은 색 동물이 공주에게 뛰어왔어요. 그 동물은 바로 개였지요. 그 개가 얼마나 크게 짖어대는지 공주는 무서워서 얼른 바다 속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셋째 공주는 바다 위에서 본 그 찬란한 숲과 푸른 언덕들, 그리고 물고기 같은 꼬리가 없이도 물 속에서 귀엽게 헤엄치던 그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넷째 공주는 그다지 호기심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냥 바다 한가운데에 머물러 있었답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그곳이 가장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 멀리 수평선이 바라다 보이고, 그 위로 하늘이 마치 유리로 만든 종처럼 펼쳐 있었다는 거예요. 또 멀리 지나가는 배들도 보았답니다. 배들은 마치 갈매기처럼 보였습니다. 돌고래들은 즐겁게 재주를 넘고, 커다란 고래들은 콧구멍을 물을 뿜어댔습니다. 마치 수백 개의 분수처럼 말이에요.
이제 다섯째 언니의 차례였습니다.
다섯째 공주의 생일은 마침 겨울이었습니다. 그래서 공주는 다른 공주들이 보지 못했던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바다는 짙은 초록색이었습니다. 커다란 빙산들이 물위를 떠다니는 그 모습이 마치 진주처럼 보였습니다. 빙산은 사람들이 세운 교회의 종탑보다 더 컸고, 아주 멋진 다이아몬드 모양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가장 커다란 빙산 위에 올라가 앉았습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어 어두워지자 하늘이 온통 시커먼 구름으로 뒤덮였습니다. 번개가 치고, 천둥 소리까지 들렸습니다. 높은 파도가 일어나 커다란 빙산을 때렸습니다. 빙산들은 밝은 번개 불빛 가운데를 둥실둥실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던 배들도 돛을 올렸습니다.
모든 것이 무서워 보였지만 공주는 그래도 떠 다니는 빙산 위에 걸터앉아 푸른 번개 불빛이 지그재그 모양을 그리며 바다로 내리뻗는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바다 위로 올라갔던 공주들은 하나같이 그들이 보았던 새롭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자랑하면서 황홀한 표정을 짓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바다 위로 나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곧 바다 위의 풍경에 대해서도 시들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바다 속 우리 집이 가장 좋다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다섯 공주는 서로 손을 잡고 줄을 지어 바다 위로 올라가곤 했습니다.
인어 공주들은 그 어떤 인간보다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답니다. 폭풍우가 다가올 때면 그들은 바다 위 배 가까이 다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릅니다. 폭풍이 다가온다는 것을 선원들에게 알려주는 것이지요. 하지만 선원들은 인어 공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인어 공주들의 노래 때문에 폭풍이 다가온다고 생각했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그 선원들이 바다 속의 멋진 풍경을 볼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배가 침몰하면 선원들은 모두 시체가 되어 바다 속 궁전으로 오게 되니까요.
언니들이 물을 헤치고 높이 올라가고 나면 막내 공주는 혼자 남아 언니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막내 공주는 울고만 싶었답니다. 하지만 인어들에게는 눈물이란 것이 없었습니다.
"아, 나도 빨리 열 다섯 살이 되면 좋으련만..."
막내 공주는 말했습니다.
"그러면 정말 저 위에 있는 세상과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을 텐데..."
세월이 흘러 마침내 막내 공주도 열 다섯 살이 되었습니다.
"자, 보렴. 너도 이제 다 컸구나."
할머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리 오렴. 너도 다른 언니들처럼 단장을 해야지."
할머니는 하얀 백합꽃으로 화환을 만들어 막내 공주의 머리에 씌워 주었습니다. 그 화환의 꽃잎은 하나하나 모두가 진주였어요.
할머니는 또 여덟 개의 커다란 굴을 공주의 긴 꼬리에 매달아 주었습니다.
"아파요!"
"하지만, 아름다워지려면 이런 건 참아야 한단다."
아, 막내 공주는 차라리 이런 온갖 장식들을 떼어 버리고 무거운 화환도 벗어버리고 싶었어요. 정원에 피어 있는 붉은 꽃들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답니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씀에 거역할 수는 없었어요.
"안녕!"
막내 공주는 마침내 그동안 꿈에 그리던 바깥 세상으로 올라갔습니다.
공주가 바다 위에 올라갔을 때에는 마침 해가 막 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노을에 붉게 물든 구름이 마치 장미꽃처럼 빛나고 있었어요. 그리고 밝게 빛나는 저녁 별들이 떠오르고 있었지요. 공기는 맑고, 바다는 파도 하나 없이 잔잔했습니다.
바다 위에는 돛대를 세 개나 단 커다란 배가 떠 있었습니다. 돛 가운데 하나만 감아 올려져 있었어요. 바다는 바람 한 점 없이 조용했습니다. 배의 활대에는 선원들이 올라가 앉아 있었어요. 배에서는 노래 소리가 흘러나오고, 등불이 몇 백개씩이나 밝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마치 온 세상 나라의 국기들이 바람에 펄럭이는 것 같았답니다.
 
 
인어 공주는 선실의 창문 가까이 헤엄쳐 갔습니다. 일렁이는 물살에 기댄 채 공주는 거울처럼 반짝이는 유리창 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커다랗고 검은 눈을 가진 젊은 왕자님도 있었답니다. 왕자님은 거기 있는 사람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어요. 그리고 열 여섯 살이 넘어 보이지는 않았답니다.
오늘은 바로 왕자님의 생일이었어요. 그래서 배 안을 온통 화려하게 꾸민 것이랍니다. 갑판 위에서는 선원들이 춤을 추고 있었고, 공중에는 불꽃이 펑펑 터지고 있었습니다. 그 불빛은 바다를 대낮처럼 환하게 비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깜짝 놀라 물 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습니다. 그러나 곧 물밖으로 고개를 내밀었습니다. 그 때 보이는 모습은 마치 하늘의 별들이 자기에게 떨어져 내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지금까지 한 번도 불꽃놀이를 본 적이 없었습니다. 불꽃은 이리저리 튀면서 화려하게 빛나는 물고기처럼 푸른 하늘을 날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불꽃은 맑고 조용한 바다를 비추고 있었답니다.
왕자님은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화려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왕자님은 미소를 지으며 사람들과 악수를 하고 있었어요.
점점 밤이 깊어졌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 아름다운 왕자님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답니다. 이제 화려한 등불이 모두 꺼지고 더 이상 불꽃이 하늘로 날아오르지도 않았지요. 대포 소리도 잠잠해졌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혼자서 조용히 배를 바라보고 있었어요. 배는 돛을 활짝 펼치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파도가 점점 높아졌습니다. 커다란 구름도 몰려왔어요. 멀리서 번개가 치고 있었습니다. 곧 폭풍이 몰려올 것 같았습니다.
선원들은 재빨리 돛을 접어 올렸습니다. 배는 커다란 파도 때문에 바다 위를 날 듯이 달렸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마치 그네를 타는 것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시커먼 파도가 마치 배를 덮치려는 듯 높이 솟아올랐습니다. 그리고 배는 높은 파도 사이에서 백조처럼 가라앉았다가 다시 치솟으면서 거칠게 흔들렸어요.
인어 공주는 그런 모습이 무척 재미있었습니다. 하지만 배의 선원들은 그렇지 않았지요. 여기저기서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배가 부서지기 시작했어요. 배의 두꺼운 몸체가 거센 파도에 얻어맞고 휘어졌어요. 그리고 그 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그 순간 돛대가 절반으로 부러져 버렸어요. 그러면서 배는 한쪽으로 기울어졌습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위험해진 것을 보고 인어 공주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어요. 하지만 인어 공주도 부서진 배의 파편들을 피해 다녀야 했습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어요.
그 때 다시 한 번 번개가 번쩍이며 주위를 밝게 비추었습니다.
선원들은 침몰하는 배를 지켜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왕자님이 어디 있는지 여기저기 두리번거렸습니다. 그러나 인어 공주가 막 왕자님을 발견한 순간 배는 완전히 두 동강이 나서 깊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인어 공주는 무척 기뻤습니다. 왕자님이 바다 속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이 반가웠거든요. 하지만 곧 사람은 인어처럼 물 속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물 속으로 들어오면 왕자님은 곧 죽고 말 거예요. 그러나 왕자님은 절대 죽어서는 안됩니다.
인어 공주는 물위에 어지럽게 떠다니는 배의 파편들을 피해 왕자님에게로 헤엄쳐 갔습니다. 자기가 다칠 수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은 전혀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답니다.
인어 공주는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가 다시 파도 위로 떠올라 왕자님에게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왕자님은 정신을 잃고 거친 파도에 휩쓸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아름답던 두 눈은 굳게 닫혀 있었어요. 인어 공주가 아니었다면 왕자님은 틀림없이 죽고 말았을 거예요.
다음 날 아침, 바다는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그러나 지난밤 그 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빛나는 해님이 붉게 떠올랐어요. 왕자님으 두 뺨이 햇빛을 받아 차츰 붉어졌어요. 하지만 아직 두 눈은 그대로 감겨 있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님의 아름다운 이마에 입을 맞추었어요. 그리고 젖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겼어요. 왕자님의 모습은 마치 바다 속 작은 정원에 서 있는 조각상 같았답니다.
인어 공주는 다시 한 번 왕자님에게 입을 맞추었어요. 그리고 왕자님이 살아나기를 기도했습니다.
그 때 인어 공주는 육지를 보았습니다. 높고 푸른 산꼭대기에 백조처럼 하얀 눈이 덮여 있고, 그 아래 바닷가에는 멋있는 푸른 숲이 펼쳐져 있었어요. 그 앞에 있는 집들은 아마 교회나 수도원들이겠지요. 거기 정원에는 레몬과 오렌지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문 앞에는 키가 큰 종려나무들이 서 있었구요. 바닷가에는 고운 모래가 깔린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님을 끌어안고 모래밭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그리고 따뜻한 양지쪽에 왕자님을 눕혔습니다.
그 때 종소리가 울리더니 젊은 처녀들이 정원으로 뛰어 달려왔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래서 얼른 바위 뒤로 몸을 숨겼습니다. 그리고 가엾은 왕자님에게 누가 오는지를 지켜보았어요.
어떤 젊은 아가씨가 왕자님을 발견했습니다. 그 아가씨는 깜짝 놀라 곧 사람들을 불러 왔어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왕자님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미소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인어 공주에게는 미소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가 자기를 구한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몹시 슬펐답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왕자님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인어 공주는 슬픈 마음으로 바다 속 궁전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 막내 공주는 항상 조용하고 말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바깥 세상을 다녀온 뒤로는 더욱 말수가 줄었습니다. 언니들이 막내 공주에게 바깥 세상에서 무엇을 보았느냐고 물었지만 막내 공주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막내 공주는 매일 밤 왕자님이 누워 있던 그 바닷가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 뒤 단 한 번도 왕자님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높은 산을 뒤덮고 있던 하얀 눈도 모두 녹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언제나 슬픈 마음으로 바다 속 궁전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이제 꽃도 가꾸지 않았어요. 그래서 꽃과 나무들이 날이 갈수록 시들고, 정원은 무척 쓸쓸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막내 공주는 한 언니에게 이 얘기를 다 털어놓았습니다. 그리고 차츰 다른 언니들도 이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언니 가운데 하나가 그 왕자님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어요. 그 언니도 배에서 잔치를 하고 있는 왕자님을 보았던 거예요.
"막내야, 이리 오렴."
공주들은 막내 공주를 이끌고 왕자님의 궁전이 있는 곳 가까이 헤엄쳐 갔습니다.
궁전은 노란 돌로 지어져 눈부시게 반짝이고 있었어요. 바다에서부터 커다란 대리석 계단이 궁전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지붕에는 아름다운 탑들 우뚝 솟아 있었습니다. 그 탑의 동그란 지붕에는 황금을 입혀 놓아서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어요. 깨끗한 유리창을 통해 궁전 안을 들여다 볼 수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비싼 커튼과 벽걸이로 장식되어 있고, 벽에는 커다란 그림이 걸려 있었습니다. 방 가운데에는 커다란 분수가 있고, 거기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가 천장을 덮은 둥근 유리창에까지 솟아올랐습니다.
인어 공주는 매일 왕자님의 궁전으로 헤엄쳐 갔습니다. 언니들보다 훨씬 더 육지 가까이 간 것이지요. 바다 위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화려한 대리석 발코니 바로 아래까지도 갔습니다. 그리고 인어 공주는 거기서 왕자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왕자님은 밝은 달빛 아래 혼자서 앉아 있곤 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또 왕자님이 보트를 타며 음악을 듣는 모습도 초록색 갈대 사이로 몰래 훔쳐보았습니다. 인어 공주의 은백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날리곤 했지만 왕자님은 그 모습을 보고 그저 백조가 날개를 퍼덕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인어 공주는 자기가 파도 속에서 이리저리 떠다니던 왕자님을 구했다는 사실이 기뻤어요. 그리고 왕자님이 평화로운 모습으로 자신의 품에 안겨 있던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인어 공주는 그 때 왕자님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넋을 잃고 입을 맞추었답니다. 하지만 왕자님은 그런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지요.
인어 공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바다속보다 훨씬 더 넓은 사람들의 세상에서 살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배를 타고 바다 위를 마음대로 다니는가 하면 높은 구름 위로 올라갈 수도 있답니다. 그리고 물 밖 세상은 숲과 들판이 있고, 인어 공주가 바라보는 곳보다 훨씬 더 멀리 뻗어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고 싶었어요. 하지만 언니들도 거기 대해서는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할머니만이 바다 위의 세상에 대해 알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할머니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물에 빠져 죽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나요? 바다 속 우리와 달리 죽지 않고 살 수 있나요?"
할머니는 말했습니다.
"아니, 사람들도 죽는단다. 오히려 우리보다 훨씬 더 빨리 죽게 되지. 우리는 300년 동안 살 수 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죽은 다음에 그냥 물위의 거품이 되고 마는 거야. 무덤도 없고... 다시 생명을 얻을 수도 없단다. 우리는 저 푸른 갈대와 마찬가지야. 한 번 꺾이면 두 번 다시 파랗게 살아나지 못하는 저 갈대 말이야.
하지만 사람들은 죽어서 흙이 된 뒤에도 그 영혼은 영원히 살 수 있지. 영혼은 맑은 공기를 뚫고 솟아올라서 저 반짝이는 별로 간단다. 우리가 물위로 떠올라 인간의 세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인간의 영혼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그런 곳으로 올라가는 거야."
"우리는 왜 영혼을 얻을 수 없어요?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이 되어 하늘 나라에 갈 수 있다면 저는 얼마든지 제 생명을 버리겠어요!"
"그런 생각을 하면 못써! 우리는 지금 인간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지내지 않니."
"하지만 제가 죽으면 바다 위 거품으로 떠돌겠지요? 파도가 노래하는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름다운 꽃이나 붉게 빛나는 태양도 볼 수 없잖아요? 영혼을 얻으려면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방법은 없단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너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렇게 될 수도 있지. 만약 어떤 사람이 너를 사랑하고, 너와 결혼하면 그 사람의 영혼이 네 몸 속으로 흘러 들어와 너도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을 함께 누리는 거야. 서로의 영혼을 나누게 되는 거지. 하지만 그런 일은 결코 생길 수 없어. 우리는 인간이 아니니까 말이야. 사람들이 네 꼬리를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니? 그들은 우리와 달라서 다리라는 것을 갖고 있지."
인어 공주는 슬픈 얼굴로 자기의 꼬리를 바라보았습니다. 할머니는 말했어요.
"자, 이제 좀더 즐겁게 지내자꾸나. 우리는 300년 동안이나 살 수 있으니까 말이야. 그건 정말 즐거운 거야. 인간들은 무덤으로 가지만 말이야. 오늘 저녁에 궁전에서 무도회를 열도록 하자."
바다 속 무도회는 사람들이 상상도 하기 어려운, 그렇게 화려한 축제예요. 무도회장의 벽과 천장은 투명한 유리로 만들어져 있지요. 장미처럼 붉은 조개와 초록색 조개들이 사방으로 줄을 지어 있구요. 이 조개 껍질들이 파란 불빛을 비춰 무도회장을 아름답게 밝힌답니다. 그리고 수많은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유리벽 사이로 헤엄치구요. 물고기들의 비늘은 자주빛, 붉은 색으로 반짝입니다. 어떤 물고기의 비늘은 금빛과 은빛이랍니다.
맑은 시냇물이 무도회장 가운데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남자 인어들과 여자 인어들이 사랑스러운 노래에 맞춰 춤을 추지요. 아마 사람들은 그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내지는 못할 거예요.
막내 인어 공주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답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렇답니다... 막내 공주는 이 세상에서 누구도 갖고 있지 못한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어요. 하지만 인어 공주는 결코 왕자님을 잊을 수 없었어요. 자기가 왕자님처럼 영혼을 가질 수 없다는 사실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혼자서 몰래 궁전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슬픈 마음으로 작은 정원에 앉았어요. 그 때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마 틀림없이 저 배에는 왕자님이 타고 있을 거야. 왕자님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래, 나는 꼭 왕자님을 얻고야 말 거야. 그리고 영혼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지 다 할 거야. 그래, 마녀에게로 가 보자. 어쩌면 마녀는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인어 공주는 정원을 빠져 나와 바다 저쪽 거칠게 날뛰는 소용돌이 속으로 갔습니다. 마녀는 바로 그 곳에 살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 전에 한 번도 그 길로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꽃은 말할 것도 없고 흔한 바다 풀조차 나 있지 않은 곳이었어요. 쓸쓸한 회색 모래만이 멀리 뻗어 있었습니다.
마녀의 집으로 가려면 소용돌이와 부글부글 끓는 진창을 지나가야 했습니다. 마녀의 집은 거기를 지나 이상한 숲의 한가운데에 있었습니다.
거기 있는 나무와 덤불에는 모두 대가리가 달린 것 같았습니다. 마치 흙에서 솟아나 꿈틀대는, 수백 개 머리가 달린 뱀처럼 말이에요. 가지는 마음대로 휘어지는 긴 팔 같고, 몸통이 따로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것들은 지나가는 것을 단단히 붙잡아 휘어 감아서는 두 번 다시 놓아주지 않는답니다.
인어 공주는 너무나 무서워서 그 앞에 멈춰 서고 말았습니다. 가슴에서 쿵쾅거리는 소리가 들렸어요. 차라리 이제라도 돌아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그 순간 인어 공주는 왕자님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영혼에 대해서도 생각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팔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을 단단히 묶었습니다. 그 살아 움직이는 덤불들이 손을 댈 수 없도록 말이에요. 그리고 두 손을 가슴 위에 모으고, 가지를 내뻗는 무서운 그 덤불 식물들 사이를 물고기처럼 헤엄쳐 지나갔습니다.
그 덤불 속에 사람들의 하얀 해골이 보였습니다. 또 그 덤불들이 목을 졸라 죽인 여자 인어의 모습도 보였습니다. 인어 공주가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무시무시한 모습이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드디어 아주 커다란 늪에 도착했습니다. 살이 찐 커다란 바다뱀이 보기 흉한 노란색 배를 드러낸 채 이리저리 기어다니고 있었어요.
이 늪의 한가운데에 배가 난파당해 물에 빠져 죽은 사람들의 뼈로 만든 집이 서 있었습니다. 바로 거기에 마녀가 살고 있었어요.
"네가 지금 뭘 하려는 건지 난 이미 다 알고 있다."
마녀가 말했습니다.
"그건 어리석은 짓이지. 아름다운 작은 공주님... 하지만 넌 아무리 그래도 네 물고기 꼬리를 없애고 그 대신 인간들처럼 걸어 다니는 두 다리를 갖고 싶은 거겠지? 그 젊은 왕자와 영원히 죽지 않을 그 영혼을 얻고 싶어서 말이야."
마녀는 소름 끼치는, 기분 나쁜 목소리로 낄낄대며 웃었습니다.
"마침 때를 잘 맞춰 왔어. 내일 해가 뜨고 나면, 앞으로 1년이 지날 때까지는 너를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으니 말이야. 내가 아주 효과가 좋은 물약을 만들어 주마. 그걸 가지고 해가 뜨기 전에 육지로 나가야 한다. 그곳에서 그 물약을 마시는 거야. 그러면 네 꼬리가 떨어져나가게 된다. 그 대신 인간들이 갖고 있는 다리가 생기는 거야.
사람들은 너를 보고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라고 얘기할 거야. 하지만 네가 걸어다닐 때는 마치 날카로운 칼 위를 걷는 것처럼 무척 아플 거야. 하지만 별 수 없지. 네가 이 모든 것을 참아낼 수 있다면 내가 너를 도와주마."
"네, 그렇게 하겠어요."
인어 공주는 왕자와, 영원히 죽지 않는 그 영혼을 생각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마녀는 다시 말했어요.
"하지만 잘 생각해보는 게 좋을 거야. 한 번 인간의 몸으로 변하면 두 번 다시 인어가 될 수 없어. 두 번 다시 네 언니들이나 아버지가 있는 궁전으로 내려올 수 없는 거야. 그리고 왕자가 진정으로 널 사랑하지 않으면... 넌 영혼도 얻지 못하고, 결국 네 심장이 쪼개지면서 넌 물위의 거품으로 변하고 만단 말이다."
"그래도 그렇게 하겠어요."
인어 공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몹시 떨고 있었습니다. 마녀는 또 말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요구가 하나 있다. 네 목소리는 여기 바다 밑에서 가장 아름답지. 넌 아마 그 목소리로 왕자를 홀릴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넌 그 목소리를 나에게 주어야 해. 그것으로 물약을 만들어야 하니까 말이야."
"하지만 당신이 내 목소리를 가져가면 난 무얼 갖게 되나요?"
"아름다운 모습이지. 경쾌한 걸음걸이, 속삭이는 듯한 두 눈... 그것만 가지고도 넌 얼마든지 사람들의 마음을 유혹할 수 있어. 어때, 아직도 용기가 남아 있어? 그렇다면 이제 네 혀를 내밀어라. 그걸 잘라야 하니까 말이야."
"그렇게 하겠어요."
마녀는 그 마술 물약을 끓이기 위해 불 위에 솥을 얹었습니다. 그러더니 칼로 자기 가슴을 그어 검은 피를 나오게 해서, 그 핏방울을 뚝뚝 솥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러자 솥에서 김이 솟아올랐습니다. 마녀는 계속해서 솥 안에 뭔가 이상한 물건들을 집어넣었습니다.
마침내 물약이 다 만들어졌습니다. 그 약은 마치 맑은 물처럼 보였습니다.
"자, 이제 네 혀를 다오."
마녀는 인어 공주의 혀를 싹둑 잘랐습니다.
이제 인어 공주는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말을 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네가 숲을 빠져나가려고 할 때 그 괴물 덤불들이 너를 잡으려고 하거든 이 물약을 한 방울만 떨어뜨려라. 그러면 그 덤불들의 팔다리가 산산이 부서질 거야."
그러나 인어 공주는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 덤불들은 물약을 보자마자 소스라쳐 놀라 움츠러들었거든요. 인어 공주는 그 소용돌이 속을 쉽게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궁전에 갔습니다. 무도회장의 불빛은 이미 꺼져 있었어요. 아마 다들 잠이 들었겠지요.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들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여기를 영원히 떠나야 하니까요.
인어 공주는 아버지와 형제들을 생각하고 무척 슬펐습니다. 그래서 살그머니 정원으로 들어가 언니들의 꽃밭에서 꽃을 한 송이씩 꺾었어요. 그리고 나서도 인어 공주는 궁전을 한참 동안이나 바라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푸른 바다로 나왔습니다. 아직 해는 떠오르지 않고, 달빛이 바다를 조용하게 비치고 있었어요. 인어 공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결심을 굳게 하고 물약을 마셨습니다.
마치 날카로운 칼이 부드러운 몸을 뚫고 지나가는 것 같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어요.
인어 공주는 해가 높이 떠오른 다음에야 정신을 차렸습니다. 인어 공주는 실을 에이는 듯한 아픔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녀 앞에 아름다운 왕자님이 서 있는 것 아니겠어요?
왕자님은 검은 두 눈으로 인어 공주를 보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습니다. 꼬리가 있던 자리에는 작고 하얀 두 다리가 있었습니다. 완전히 발가벗은 모습이었어요. 인어 공주는 부끄러워서 긴 머리카락으로 얼른 몸을 감췄습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에게 도대체 누구인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물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부드럽게 왕자님을 바라보았어요. 하지만 혀를 잘린 인어 공주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왕자님은 곧 인어 공주를 궁전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마녀가 말한 것처럼 인어 공주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마치 날카로운 칼 위를 걷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인어 공주는 잘 참았습니다. 왕자님의 손에 이끌려 마치 비누방울처럼 가벼운 걸음으로 걸었습니다. 왕자님은 우아하고 가벼운 인어 공주의 걸음걸이를 보고 감탄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비단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인어 공주는 궁전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가씨였습니다. 하지만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노래를 부를 수도, 말도 할 수 없는 벙어리였어요.
인어 공주를 환영하는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비단과 황금으로 단장한 여인들이 나와 노래를 불렀습니다. 왕자님은 박수를 치면서 여인들에게 미소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슬펐습니다.
'아, 왕자님의 곁에 오기 위하여 내 아름다운 목소리를 버렸다는 사실을 왕자님이 알아줄 수만 있다면!'
여인들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도 춤을 추었습니다. 발끝으로 마루 위에 서서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아름다운 춤을 추었어요. 그 아름다운 춤은 여인들의 노래보다 훨씬 더 깊은 가슴 속 얘기를 하고 있었어요.
왕자님은 인어 공주의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넋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발이 마루에 닿을 때마다 날카로운 칼에 찔리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인어 공주는 더욱 열심히 춤을 추었습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에게 승마복을 입혔습니다. 함께 말을 타기 위해서요. 인어 공주는 왕자님과 함께 말을 타고 초록색 숲을 달렸습니다. 작은 새들이 나무 가지 사이로 날아다니며 노래하고 있었어요. 높은 산에도 올라갔답니다. 그럴 때마다 부드러운 발에서 피가 흘렀지만 인어 공주는 오히려 즐겁게 웃곤 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이면 인어 공주는 넓은 대리석 계단을 걸어 내려와 차가운 바닷물에 발을 담갔습니다. 그러면 타는 듯 쑤시던 발이 시원해지는 것 같았어요. 그러면서 인어 공주는 저 바다 아래 깊은 곳에 있는 언니들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날 밤이었습니다. 이 날도 인어 공주는 뜨거운 발을 바닷물에 담그고 있었어요. 이 때 귀에 익은 노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로 언니들이었어요.
인어 공주는 언니들에게 손짓을 했습니다. 언니들은 다가와 막내 공주 때문에 다들 얼마나 가슴아파 하는지를 얘기했습니다.
그 뒤로 언니들은 매일 밤 인어 공주를 찾아왔습니다. 한 번은 늙은 할머니와 아버지까지도 올라왔답니다. 할머니는 여러 해 동안 한 번도 바다 위로 올라온 적이 없었어요. 하지만 아버지와 할머니는 멀리서 인어 공주에게 손을 흔들기만 하고 육지 가까이로 오지는 못했습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를 무척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를 왕비로 맞아들일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꼭 왕자님과 결혼을 해야 했습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어 공주는 영혼도 얻지 못한 채 바다의 물거품이 되어야 하니까요.
'왕자님, 나를 가장 사랑하실 수는 없나요?'
왕자님이 인어 공주의 이마에 입을 맞추면 인어 공주의 두 눈은 이렇게 묻는 것이었어요.
"그래요, 당신은 나에게 누구보다 사랑스러운 사람이라오. 당신은 이 세상 누구보다 마음씨가 곱고 아름다워요. 그리고 언젠가 내가 보았던 그 아가씨와 너무 닮았습니다. 그 때 나는 배를 타고 있다가 그 배가 난파하는 바람에 파도에 휩쓸려 바닷가로 밀려왔지요. 그리고 어떤 아리따운 아가씨가 나를 살려주었어요.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아가씨를 잊을 수 없답니다. 그런데 당신은 그 아가씨를 꼭 닮았어요. 아마 행운의 여신이 당신을 내게 보낸 모양이지요? 우리 절대 헤어지지 말아요."
'아, 제가 바로 왕자님을 구한 사람이랍니다.'
인어 공주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입으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왕자님이 말하는 그 아가씨는 바로 왕자님을 교회로 옮겼던 바로 그 아가씨였어요.
'그래, 나는 바위 뒤에 숨어서 그 아가씨를 보았어. 왕자님을 교회로 옮긴 아리따운 그 처녀 말이야.'
인어 공주는 깊이깊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래, 그 처녀는 성스러운 수도원에 있다고 했어. 그 아가씨는 절대 이 세상에 나와서 살지 않을 거고, 두 번 다시 왕자님을 만나지도 못할 거야. 하지만 난 이렇게 늘 왕자님 곁에서 지켜보고 있어. 내가 왕자님을 돌볼 거야. 왕자님을 위해 내 생명까지 바칠 수 있어.'
그런데 어느 날 왕자님이 이웃 나라의 공주님과 결혼한다는 소문이 인어 공주의 귀에 들려왔습니다. 인어 공주는 고개를 저으며 미소를 지었습니다. 왕자님의 마음속은 자기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전 이제 떠나야 합니다." 왕자님은 말했습니다.
"부모님이 저에게 결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저는 그 아가씨를 사랑할 수 없어요. 그 아가씨는 너와 그 아리따운 교회의 처녀와도 닮지 않았을 테니까요. 만약 내가 내 뜻대로 신부를 선택한다면 당신을 고를 겁니다."
왕자님은 인어 공주의 붉은 입술에 키스했습니다.
"혹시 바다를 무서워하는 건 아닙니까?"
이웃 나라로 가기 위해 화려한 배에 오른 왕자님이 인어 공주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왕자님은 인어 공주에게 폭풍우, 바람이 잔잔해진 바다, 바다 깊은 곳에 있는 이상한 물고기들에 대해 얘기해 주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왕자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잠자코 미소만 지었습니다. 바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어 공주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거든요.
모두 잠든 밤이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배의 난간에 앉아 맑은 바닷물 속을 들여다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바다 속 궁전이 들여다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렇습니다. 머리에 은관을 쓴 할머니가 인어 공주가 타고 있는 배를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언니들이 물 위로 떠올랐어요. 언니들은 하얀 손을 내밀며 슬픈 눈으로 인어 공주를 바라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언니들에게 손을 흔들며 자기가 얼마나 행복하게 지내고 있는지 알려주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 어떤 선원이 갑판으로 나왔습니다. 그러자 언니들은 서둘러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다음 날 아침, 배는 이웃 나라의 화려한 도시에 도착했습니다. 배가 도착하자 교회들이 일제히 종이 울렸습니다. 깃발이 나부끼고, 번쩍거리는 칼을 찬 군인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높은 탑에서 나팔 소리가 울리면서 사람들이 왕자를 맞이했습니다.
그 도시에서는 매일 밤 무도회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주인공인 그 나라의 공주님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공주님은 멀리 떨어진 어느 수도원에서 왕비가 갖추어야 할 미덕을 배우고 있다고 하는 것이었어요.
드디어 그 나라의 공주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어 공주는 아름다운 그 공주님을 보았습니다. 공주님은 정말 아름다웠어요. 길고 검은 속눈썹, 검푸른 눈... 그렇게 미소를 짓는 그 공주님의 모습은 이 세상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바로 당신이군요! 그 바닷가에서 저를 구해주셨던 분이..." 왕자님은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왕자님은 얼굴을 붉히며 서 있는 공주님을 껴안았습니다.
"아, 나는 너무 행복한 사람이야!"
왕자님은 인어 공주에게도 자신의 기쁨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말했습니다.
"이제 내 소원이 이루어졌어요. 당신도 나의 이 행복을 기뻐해 주겠지요? 당신은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와 생각이 같으니까요."
인어 공주는 왕자님의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무척 슬펐어요. 이제 왕자님이 저 공주님과 결혼을 하면 자신은 바다 위의 물거품으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교회의 종들이 울리고, 심부름꾼들이 여기저기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왕자님과 공주님의 결혼식을 알렸습니다.
도시는 온통 축제 분위기에 휩싸였습니다. 신랑 신부는 나란히 손을 내밀고 주교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인어 공주는 아무 것도 듣지 않고, 아무 것도 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곧 물거품이 되고야 말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죽음의 밤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 날 저녁 신랑 신부는 배에 올랐습니다. 대포가 울려 퍼지고 하늘에는 수많은 깃발이 나부꼈습니다. 배의 한가운데에는 왕자님과 공주님을 위해 황금빛과 자주빛으로 곱게 장식한 방이 마련됐습니다. 바람을 받아 돛이 부풀어오르자 배는 이제 가볍게 맑은 바다 위를 미끄러져 나갔습니다.
사람들은 오색 찬란한 등불을 환하게 밝히고 갑판 이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자신의 생일 날 바다 위에 난생 처음 올라와서 보았던 그 배의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인어 공주도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었습니다. 마치 제비가 날쌔게 맴을 도는 것처럼 그렇게 가볍게 춤을 추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감탄하면서 인어 공주에게 환호성을 올렸습니다. 인어 공주도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답게 춤을 춘 적은 없었답니다. 부드러운 두 다리를 날카로운 칼날이 베는 것 같은 고통도 지금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어 공주는 지금 두 다리보다 마음이 훨씬 더 아픈 거예요. 오늘이 왕자님과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밤이라는 것을 인어 공주는 잘 알고 있었으니까요.
가족과 고향을 떠나 아름다운 목소리까지 마녀에게 주어가면서 이런 고통을 참았던 것은 오직 왕자님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왕자님과 함께 공기를 숨쉬는 것도, 깊은 바다와 별이 빛나는 하늘을 바라보는 것도 모두 오늘이 마지막이랍니다. 영혼을 가질 수 없는 인어 공주를 기다리는 것은 이제 생각도 없고, 꿈도 없는 영원한 밤의 어두움일 뿐이지요.
배 위에서는 자정이 넘도록 즐겁고 흥겨운 축제가 계속되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가슴 속 가득 품고서 계속 춤을 추었습니다.
왕자님은 아름다운 신부에게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신부를 안고서 화려한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배는 다시 조용하고 평화로운 정적에 잠겼습니다. 인어 공주는 하얀 팔을 난간에 기대고서 아침해가 떠오르는 동쪽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때 바닷물 위로 언니들이 떠올랐습니다. 언니들도 인어 공주처럼 슬픈 표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언니들의 길고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어요.
"우린 해가 뜨기 전에 너를 살리려고 이렇게 달려왔단다. 우리 모두 머리카락을 잘라 마녀에게 주고 이렇게 칼을 얻어 왔어. 자 여기 있단다. 해가 떠오르기 전에 이 칼을 왕자의 가슴에 꽂아야 한다. 왕자의 따뜻한 피가 네 발을 적시면 네 꼬리가 다시 자라나는 거야. 그러면 너는 다시 예전처럼 인어가 되어 앞으로 300년을 더 살 수 있어.
서둘러야 해! 해가 떠오르기 전에 왕자를 죽여. 아니면 네가 죽어야 하니까 말이야. 할머니도 너무 슬퍼하시면서 우리와 함께 그 흰 머리카락을 잘라 마녀에게 주었어. 왕자를 죽이고 돌아오려므나! 서둘러야 한단다! 저기를 봐! 하늘에 저렇게 붉은 띠가 나타나는 게 보이니? 이제 금방 해가 솟을 거야. 그러면 넌 죽고 마는 거야!"
언니들은 칼을 인어 공주에게 주고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파도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인어 공주는 자주빛 방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아름다운 공주님이 왕자님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자는 모습이 보였어요. 인어 공주는 허리를 굽혀 공주의 아름다운 이마에 입을 맞추었었습니다. 그리고는 점점 아침 노을이 밝아오는 하늘과 날카로운 칼을 번갈아 바라보았습니다. 왕자님은 꿈을 꾸면서도 신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칼을 쥔 손을 부르르 떨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러나 마침내 그 칼을 멀리 바다 가운데로 던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슬픈 눈으로 왕자님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습니다.
인어 공주는 바다에 몸을 던졌습니다.
바다 위로 해가 떠오르며 세상을 붉게 물들였습니다. 그 부드러운 햇살은 죽음처럼 차디찬 바다를 비추었어요.
인어 공주는 죽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인어 공주는 밝게 빛나는 태양을 볼 수 있었어요. 햇빛 사이로 투명한 모양들이 수백 개나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 투명한 모양들을 통해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바다 위 배의 하얀 돛과 하늘의 붉은 구름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투명한 모양들은 어떤 곡조를 따라 목소리를 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것을 아무도 들을 수 없고, 볼 수도 없었답니다.
인어 공주는 점점 더 하늘 높이 떠올랐습니다. 인어 공주는 그 투명한 형체들과 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습니다.
"난 지금 어디로 가는 건가요?"
인어 공주가 물었습니다.
"공기의 딸들에게로 가는 거예요."
다른 형체들이 대답했습니다.
"인어는 영혼이 없지요.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영원히 사는 영혼을 가질 수 없어요. 공기의 딸들도 역시 영혼은 갖고 있지 않아요.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착한 일을 하면서 영혼을 만들어갈 수 있어요. 우리는 지금 따뜻한 나라로 날아가는 중이에요. 공기를 통해서 꽃의 향기를 이 세상 멀리까지 퍼뜨리는 거랍니다.
300년 동안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면 우리는 영혼을 얻을 수 있어요. 가엾은 인어 공주님, 당신은 마음을 다 바쳐 영혼을 얻으려고 했지요. 엄청난 아픔을 참으면서 말이에요. 하지만 그 고통이 당신을 공기의 요정들의 세계로 끌어올린 거랍니다. 이제 당신이 착하게 살아가면 300년 뒤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영혼을 얻을 수 있답니다."
인어 공주는 하얀 두 팔을 해를 향해 뻗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습니다.
배 위에서는 왕자님이 아름다운 신부와 함께 인어 공주를 찾고 있었어요. 그들은 슬픈 얼굴로 진주빛으로 빛나는 바다의 거품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마치 인어 공주가 바다 속으로 뛰어든 것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인어 공주는 아무도 모르게 신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왕자님에게는 미소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다른 공기의 요정들과 함께 장미빛 구름 위로 올라갔습니다.
"300년이 지나지 않아도 우린 그 곳에 갈 수 있어요. 우리는 지금 어린아이들이 있는 집을 찾아가는 중이랍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리고 부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착한 어린이를 찾아내면 하나님은 우리의 시험 기간을 줄여 주십니다. 그러면 300년 가운데서 1년이 줄어드는 거에요. 하지만 나쁜 아이를 보게 되면 우리는 슬픔의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시험 기간도 하루씩 늘어나게 됩니다."
어느 공기의 요정이 이렇게 속삭였습니다.
 
 
꼬마 이다의 꽃밭  안데르센
 
  "내 불쌍한 꽃들이 모두 죽어 버렸어요!"
  꼬마 이다가 말했습니다.
  "어제 저녁만 해도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요. 그런데 잎들이 시들어서 모두 아래로 축 늘어졌어요. 꽃들이 왜 그러지요?"
  이다는 소파에 앉아 있는 대학생 아저씨에게 물었지요. 그 아저씨가 이다를 몹시 귀여워했습니다.
  그는 온갖 아름다운 옛날 이야기를 알고 있답니다. 또 재미있는 그림들을 오려 주기도 했지요. 그래요, 춤추는 작은 소녀들이 그려진 예쁜 하트 모양의 심장이나, 문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큰 궁전, 그리고 꽃들을 오려 주었어요. 참 재미있는 아저씨랍니다.
  "왜 꽃들이 병이 든 것처럼 보일까요?"
  이다는 다시 물으면서 시들어 버린 꽃 한 송이를 보여 주었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니?"
  아저씨가 부드럽게 물었지요.
  "꽃들은 어젯밤 무도회에 갔었단다. 그래서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는 거란다."
  "하지만 꽃들은 춤을 출 수 없쟎아요?"
  이다는 이상하다는 듯이 물었어요.
  "그렇지 않아. 춤출 수 있단다. 날이 어두워지고 우리가 잠이 들면 꽃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닌단다. 꽃들은 밤마다 무도회를 열지."
  "어린 꽃들도 무도회에 가나요?"
  "물론이지. 아주 어린 데이지꽃과 은방울꽃도 갈 수 있지."
  "그럼, 어디서 춤을 추나요?"
  "성문 밖 큰 궁전 알지? 왕이 살고 있는 곳 말이야. 궁전에는 수많은 꽃들이 만발한 화려한 정원이 있단다. 백조도 보았지? 네가 빵부스러기를 던져 주면 헤엄쳐 오던 백조들 말이야. 그 바깥에 무도회장이 있단다. 알겠니?"
  "어제 엄마와 함께 정원에 가 보았어요. 하지만 나무들만 잎들을 떨군채 서 있고 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어요. 꽃들은 다 어딜 갔을까요? 여름에는 그토록 많이 있었는데 말이에요."
  "꽃들은 모두 궁전 안으로 들어갔단다."
  아저씨는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어요.
  "왕이 시종들과 함께 시내로 나오면 꽃들은 궁전 안으로 달려간단다. 그리고 재미있게 놀지. 너도 그걸 봐야 하는데. 옥좌에는 가장 아름다운 두 송이의 장미가 앉지. 바로 왕과 왕비란다. 그리고 붉은 맨드라미꽃들이 양쪽으로 늘어서서 허리를 굽히고 있어. 그들은 시종들이지. 그러면 무도회가 시작된단다. 해군 소위 후보생인 푸른색 제비꽃은 히아신스와 크로커스꽃들과 춤을 춘단다. 제비꽃들은 히아신스와 크로커스꽃을 아가씨라고 부르지. 튤립과 노란색 큰 백합은 늙은 귀부인들이야.
그들은 꽃들이 춤을 잘 추는지, 무도회가 잘 진행되고 있는지 감독을 한단다."
  "그렇담, 꽃들이 궁전에서 춤추는 걸 방해하거나 혼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나요?"
  "꽃들의 무도회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단다. 밤중에 가끔 늙은 궁전 관리인이 오긴 하지만 그는 큰 열쇠 꾸러미를 갖고 있어서 걸어다닐 때마다 열쇠들이 딸랑거리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꽃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조용히 한단다. 커튼 뒤에서 고개를 내밀고 궁전 관리인을 살피면서 말이야.
그러면 늙은 관리인은 꽃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라고 말하지. 그러나 꽃들을 볼 수는 없어."
  "야, 정말 재미있다!"
  이다는 손뼉을 치며 즐거워했어요.
  "그러면 나도 꽃들을 볼 수 없나요?"
  "아냐, 볼 수 있어."
  아저씨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어요.
  "그 곳에 가면 창문으로 들여다보렴. 그러면 꽃들을 볼 수 있을 거야. 나도 오늘 그렇게 했지. 소파 위에는 긴 부활절 종꽃이 몸을 뻗고 누워 있었어. 그 꽃은 시녀야."
  "식물원의 꽃들도 무도회에 갈 수 있나요? 그 먼 길을 갈 수 있나요?"
  "그럼 물론이지. 꽃들은 마음만 먹으면 날아갈 수 있단다. 아름다운 나비들 알지?
붉은색, 노란색, 흰색 나비들 말이야. 그들은 꼭 꽃처럼 보이지 않니? 사실은 꽃이야. 나비들은 꽃의 줄기에서 높이 뛰어올라 잎들이 마치 날개인 것처럼 퍼덕인단다. 그러면 잎들은 진짜 날개가 되어 날아오른단다. 나비들은 착하기 때문에 낮에 이리저리 돌아다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지. 너도 보았을 거야. 어쩌면 식물원의 꽃들은 궁전에 가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밤이 되면 그 곳이 그렇게 재미있는 줄 알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래서 네게만 얘기해 주는 건데, 여기 옆집에 살고 계시는 식물학 교수님 있잖니. 너도 알지? 그 분이 이 이야기를 알게 되면 정말 놀라실 거야. 네가 만약 옆집 정원에 가게 되거든 한 꽃에게만 살짝 얘기해 주렴. 궁전에서 큰 무도회가 열린다고 말이야. 그러면 그 꽃이 다른 꽃들에게 말해 줄 거야. 그리고는 그 꽃들은 이제 무도회장으로 날아가는 거야. 교수님이 정원에
나와 보면 깜짝 놀라실 거야. 꽃이 한 송이도 없으니까 말이야. 꽃들이 어디로 갔는지 전혀 모르실 거야."
  "꽃이 어떻게 다른 꽃들에게 이야기하지요? 꽃들은 말을 할 줄 모르는데요!"
  "물론 꽃들은 말을 할 줄 모르지. 너, 왜 약간이라도 바람이 불면 꽃들이 서로 고개를 끄덕이며 초록색 잎들을 흔드는 것을 보았지? 바로 그렇게 말을 주고받는단다. 우리가 함께 이야기하듯이 말이야."
  "교수님도 그걸 아시나요?"
  "물론이지. 어느 날 아침 정원에 나온 교수님은, 큰 쐐기풀이 아름답고 붉은 패랭이 꽃잎들과 얘기하는 것을 보셨단다. 쐐기풀은, 패랭이 꽃잎이 예쁘고 또 좋아한다고 했지만 교수님은 그런 것을 좋아하지 않으셨어. 그래서 쐐기풀의 손가락인 잎들을 뽑아 버리셨지. 그러다가 교수님은 그만 쐐기풀 이파리에 찔리고 말았어. 그 뒤로 교수님은 쐐기풀을 건드리지 않는단다."
  "참 재미있네!"
  이다는 크게 웃었답니다.
  "어떻게 어린 아이에게 그런 헛소리를 하지?"
  마침 그 집에 왔다가 얘기를 듣게 된 재미없는 재판소 참사관님이 말했지요.
  그는 대학생을 좋아하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대학생이 이다에게 그림들을 가위로 오려 주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요. 대학생은 가끔 빗자루를 타고 가는 늙은 마귀할멈 그림도 오려 주었답니다. 그 나이 든 재판소 참사관님은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면 그는 지금처럼 "원, 어린아이에게 바보 같은 환상을 심어 주다니!"
하고 말했지요.
  그렇지만 이다는 대학생 아저씨의 이야기가 정말 재미있었답니다. 이다는 꽃들이 밤 내내 무도회에서 춤을 추었기 때문에 피곤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꽃들은 틀림없이 아픈 거야.' 그래서 이다는 꽃들을 작고 아담한 책상 위에 서 있는 장난감들에게로 가져갔답니다.
  서랍 속에는 온통 예쁜 물건들로 가득 차 있고, 인형 침대에는 인형 소피가 잠들어 있었습니다.
  이다는 소피에게 말했습니다.
  "소피야, 네가 좀 도와 주어야겠다. 오늘 밤 너는 서랍 속에서 자야 해. 불쌍한 꽃들이 병들었거든. 오늘은 이 꽃들이 네 침대에서 자야 하니까. 그러면 꽃들이 다시 건강해질지도 몰라."
  이다는 소피를 들어올렸지요. 소피는 몹시 못마땅한 듯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답니다. 침대를 빼앗겨 화가 났던 거랍니다.
  이다는 꽃들을 침대에 눕히고는 작은 이불을 덮어 주었답니다. 그리고는 얌전하게 누워 있으면 차를 끓여 주겠다고 말했지요. 차를 마시고 건강해져서 내일이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이다는 또 해가 비치지 않게 작은 침대에 걸린 망사 커튼을 꼭 여며 주었어요.
  그날 저녁 내내 이다는, 대학생 아저씨가 해 준 이야기를 생각하고 또
생각했답니다. 이다는 자러 가기 전에 창문에 걸려 있는 커튼 뒤를 들여다
보았지요. 거기에는 아름다운 튤립과 히아신스가 있었답니다. 이다는 아주 작은 소리로 속삭였지요.
  "너희들 오늘 밤 무도회에 가지? 난 알고 있어."
  그러나 꽃들은 아무 말도 못 들은 척했어요. 이파리 하나 꼼짝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꼬마 이다는 꽃들의 비밀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다는 침대에 누워 오랫동안 자지 않고 있었답니다. 궁전에서 무도회를 여는 꽃들을 보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있었어요.
  "꽃들이 정말 궁전에 갔을까?"
  그러다가 잠이 들었답니다.
  이다는 한밤중에 깨어났지요. 이다는 꿈 속에서 꽃들과 대학생 아저씨를
보았답니다. 재판소 참사관님이 대학생 아저씨를 야단쳤어요. 어린 이다에게 환상을 심어서는 안 된다고 말이에요.
  방 안은 조용했지요. 엄마도 아빠도 잠들어 있었어요.
  '내 꽃들이 아직 소피의 침대에 누워 있을까?'
  이다는 생각했어요.
  이다는 약간 몸을 일으켜 열려 있는 방문 쪽을 바라보았답니다. 저 안쪽에 꽃들이 누워 있거든요. 이다는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방 안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 오는 것 같았어요. 피아노 소리는 아주 낮았지만, 지금까지 들어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소리였지요.
  '틀림없이 꽃들이 춤을 추고 있는 거야.'
  이다는 생각했어요.
  "정말 보고 싶어!"
  하지만 이다는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답니다. 엄마 아빠가 깨어 나실지도 모르거든요.
  '꽃들이 이리로 들어와 주면 좋으련만^5,5,5^.'
  이다는 그렇게 생각했지요.
  그러나 꽃들은 오지 않았답니다. 피아노 소리는 더욱 아름답게 들려 왔지요.
이다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어요.
  이다는 침대에서 살금살금 기어 나왔답니다. 그리고는 방 안을 들여다 보았어요.
그래요, 방 안에서는 정말 재미있는 무도회가 열리고 있었어요.
  방 안은 대낮처럼 밝았답니다. 달빛이 창을 통해 마룻바닥을 비추고 있었거든요.
히아신스와 튤립은 길게 두 줄로 서 있었어요. 창문 턱에는 빈 화분들만 놓여 있었지요. 마룻바닥 위에서 모든 꽃들이 서로 어울려 아름답게 춤을 추고 있었으니까요.
  꽃들은 빙글빙글 몸을 돌릴 때는 긴 녹색 잎으로 서로를 받쳐 주었답니다. 그리고 피아노 앞에는 노란색 큰 백합이 앉아 있었지요.
  이다는 지난 여름에 그 백합꽃을 보았답니다. 대학생 아저씨가 백합꽃을 보고 리네 아가씨를 닮았다고 말하는 것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지요. 사람들은 그 말을 한 대학생 아저씨를 놀렸었지요. 그런데 이다에게는 그렇게 보였답니다. 정말 리네 아가씨와 닮아 있었어요. 피아노를 치는 모습도 리네 아가씨와 꼭 닮았지요. 때로 노란색의 긴 얼굴을 이쪽으로 돌리는가 하면, 또 금방 반대쪽으로 돌리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근사한 음악에 박자를 맞추는 것이었어요.
  어떤 꽃도 이다가 숨어서 지켜 보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답니다. 푸른 색의 키 큰 크로커스꽃은 장난감이 서 있던 책상 한가운데로 폴짝 뛰어 오르더니 인형 침대로 가서는 침대의 망사 커튼을 열어제쳤습니다.
  침대에는 병든 꽃들이 누워 있었어요. 병든 꽃들은 크로커스꽃을 보더니 함께 춤추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답니다. 그러자 아랫입술이 떨어져 나간 신사가 병든 꽃들을 일으켜 세웠지요. 그는 담배통에 그려진 신사였습니다.
  꽃들은 이제 전혀 아파 보이지 않았답니다. 꽃들은 다른 꽃들에게로 깡충깡충 뛰어갔지요. 그리고는 아주 즐겁게 어울려 춤을 추는 것이었어요.
  그 때 무엇인가 책상에서 굴러 떨어진 것 같았답니다. 이다는 그 쪽을 보았지요.
바로 사육제 지팡이였어요.
지팡이 역시 꽃들과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했지요. 그 지팡이 위에는 납인형이 앉아 있답니다. 재판소 참사관이 쓰는 것과 똑같은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있었지요.
사육제 지팡이는 붉은색 뻗정다리로 꽃들의 한가운데에서 껑충껑충 뛰면서 아주 세게 발을 굴렀답니다. 지팡이가 추는 춤은 마주르카였습니다. 꽃들은 마주르카를 출 수가 없답니다. 너무 가벼워서 세게 발을 구를 수가 없었습니다.
  사육제 지팡이 위의 납 인형이 갑자기 크고 길어졌답니다. 그리고는 빙글빙글 돌더니 아주 크게 소리쳤어요.
  "어린 아이에게 어떻게 그런 환상을 심어 줄 수가 있나? 그건 바보 같은 짓이야!"
  그러자 납 인형은 넓은 모자를 쓴 재판소 참사관과 똑같아졌어요. 늙은
참사관처럼 노랗고 심술궂어 보였지요.
  꽃들은 납 인형의 가는 다리를 때렸답니다. 그러자 납 인형은 다시 오그라들어서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갔어요.
  이다는 어찌나 재미있었던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답니다.
  사육제 지팡이는 계속 춤을 추었습니다. 그래서 참사관을 닮은 납 인형도 함께 춤추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납 인형은 춤추는 것이 싫었답니다. 납 인형은 그냥 검은색 큰 모자를 쓴 작고 노란 납 인형으로 남고 싶었어요. 그래서 꽃들이 지팡이에게 간청했답니다. 특히 병이 들어 누워 있던 꽃들이 애써 주었지요.
  사육제 지팡이는 그 때 서랍 속에서 나는 소리를 들었답니다. 서랍 속에서 장난감들과 함께 누워 있던 인형 소피였지요.
  담배통에 그려져 있던 신사가 책상으로 달려가 서랍을 열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소피가 고개를 내밀며 놀란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어요.
  "지금 무도회가 열리고 있는 모양이지요? 그런데 왜 내게는 그걸 말해 주지 않았지요?"
  소피가 물었습니다.
  "나와 춤추지 않겠어요?"
  담배통에 그려져 있던 신사가 정중하게 청했어요.
  "좋아요. 당신이 적당한 상대같군요."
  소피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새침하게 등을 돌렸답니다.
  그리고는 꽃들 중의 누가 와서 춤을 추자고 청해 오기를 기다렸지요. 그러나 어떤 꽃도 춤을 청하지 않았답니다. 소피는 들으라는 듯이 흠흠 헛기침을 했지요. 그래도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담배통의 신사도 혼자 춤을 추었는데 그 모습도 그렇게 나빠 보이지 않았어요.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자 소피는 마룻바닥으로 뛰어내렸답니다. 쿵 하고 큰 소리가 났지요. 그러자 모든 꽃들이 달려와 어디 다치지 않았느냐고 물었어요.
꽃들은 소피를 걱정했답니다. 특히 침대에 누워 있었던 꽃들이 더 걱정을 했지요.
  소피는 아무데도 다치지 않았어요. 꽃들은 소피가 침대를 내어 준 것을 알고는 소피에게 더욱 잘해 주었지요. 소피도 곧 병들어 있던 꽃들과 함께 달빛이 비치는 마루 한가운데에서 즐겁게 춤을 추었어요. 다른 꽃들은 모두 그들 주위로 원을 그리며 춤을 추었답니다.
  소피는 몹시 만족했지요. 그래서 꽃들에게 자기 침대에 계속 누워 있어도 좋다고 말했어요. 그러자 꽃들이 말했지요.
  "우린 진심으로 너를 고맙게 생각해. 하지만 우린 그리 오래 살 수 없어. 아침이 되면 모두 죽는단다. 네가 이다에게 말해 줘. 카나리아가 노래하는 정원에 우릴 묻어 달라고. 그러면 우린 여름에 다시 자라날 수 있어. 그 땐 훨씬 더 예쁘게 피어날 거야."
  "아냐, 너희들은 죽어선 안돼!"
  소피는 꽃들에게 입맞추었지요.
  그 때 방문이 열리면서 한 떼의 꽃들이 춤을 추며 들어왔답니다. 이다는 그 꽃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전혀 알 수가 없었지요. 틀림없이 궁전에서 온 꽃들일 거예요. 작은 황금 왕관을 쓴 두 송이의 장미꽃이 맨 앞에 서 있었으니까요. 그들은 왕과 왕비였지요. 뒤이어 귀여운 토란꽃과 패랭이꽃들이 들어왔어요. 그들은 모두 꽃들에게 인사를 했어요.
  또 악대도 함께 왔습니다. 큰 양귀비꽃과 작약꽃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완두콩 꼬투리로 나팔을 불었지요. 푸른색 풍령초와 작고 하얀 갈탄투스 꽃은 마치 몸에 종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딸랑거렸답니다. 정말 재미있는 음악이었어요.
  꽃들은 모두 함께 춤을 추었답니다. 푸른 제비꽃, 붉은 팬지꽃, 데이지 꽃, 그리고 은방울꽃, 모두가 서로 정답게 입맞추었지요. 정말 사랑스러운 모습이었어요.
  이윽고 꽃들은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누었답니다. 그래서 이다도 살그머니 침대로 들어갔지요. 이다가 본 이 모든 것을 꿈꾼 침대로 말이에요.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이다는 재빨리 장난감들이 들어 있는 작은 책상으로 달려갔답니다. 꽃들이 아직도 침대에 누워 있는지 보기 위해서 말이지요.
  작은 인형 침대의 망사 커튼을 열었어요. 그래요, 꽃들은 어제보다 훨씬 시든 모습으로 누워 있었답니다. 소피는 그대로 서랍 속에 들어 있었지요. 무척 졸리다는 듯이 말이에요.
  "나에게 할 말이 있지 않니?"
  이다는 물었어요.
  하지만 소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지요.
  "너 아주 못됐구나! 꽃들이 너와 함께 춤춰 주었는데도 꽃들의 부탁을 잊었니?"
  이다는 곧 귀여운 새들이 그려져 있는 작은 종이 상자를 가져왔답니다. 그리고는 시든 꽃들을 그 안에 뉘었지요.
  "이게 너희들의 아름다운 관이란다. 나중에 우리 노르웨이 사촌들이 오면 너희들을 저기 바깥 정원에 묻도록 도와 줄 거야. 너희들이 여름에 다시 아름답게 필 수 있도록 말이야."
  이다에게는 두 명의 사촌이 있었답니다. 모두 명랑한 그들은 요나스와
아돌프였는데 모두들 쾌활했습니다.
  요나스와 아돌프는 아버지에게 새 장난감 활 두 개를 선물 받았답니다. 그래서 이다에게 자랑하기 위해 찾아왔어요.
  이다는 가엾은 꽃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답니다. 그리고 꽃들을 묻어 주자고 했지요.
  요나스와 아돌프는 활을 어깨에 매고 앞장서서 걸었답니다. 이다는 시든 꽃들이 들어 있는 귀여운 상자를 들고 뒤따랐지요.
  이제 정원에는 작은 무덤이 하나 만들어졌답니다. 이다는 꽃들에게 입을 맞추고는 그 상자를 흙 속에 묻었지요. 요나스와 아돌프는 하늘로 활을 쏘아 올렸어요.
 
올레 루쾨이에  안데르센
 
  이 세상에서 올레 루쾨이에처럼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알고 있는 사람도 없을거예요. 그는 이야기를 아주 잘한답니다.
  올레 루쾨이에는, 저녁 무렵 아이들이 아직 식탁 앞에 앉아 있거나 오리 의자위에 앉아 있을 때면 어김없이 찾아온답니다. 살금살금 계단을 올라와 가만히 문을 열지요. 그리고 살짝 아이들의 눈에 달콤한 우유를 뿌려 넣는답니다. 아이들이 눈을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뿌리지요. 그리고 살금살금 아이들의 등 뒤로 와서 목덜미에 부드러운 입김을 불어 넣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의 머리는 무거워지지요. 하지만 아프지는 않답니다. 왜냐하면 올레 루쾨이에가 좋은 생각으로 아이들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니까요. 그는 아이들이 조용해지기를 바랄 뿐이지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조용해야만 한답니다.
  아이들이 잠들면, 올레 루쾨이에는 아이들의 침대맡에 앉는답니다. 그는 몸을 움직일 때마다 초록색이나 붉은색으로, 혹은 파란색으로 반짝이는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두 팔에는 우산을 하나씩 갖고 있었답니다.
  그림이 그려진 우산을 착한 아이들의 머리 위에 펴면 아이들은 그날 밤 내내 멋진 꿈을 꾼답니다. 하지만 아무런 그림도 그려져 있지 않은 우산은 못된 아이들에게 펴준답니다. 그러면 그 아이들은 꿈을 하나도 못 꾸지요.
  이제 우리는 올레 루쾨이에가 1주일 동안 소년 할마르를 찾아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듣게 될 겁니다. 모두 일곱 개의 이야기지요. 1주일은 7일이니까요.

  월요일.
  "잘 들어라."
  올레 루쾨이에는 할마르를 침대에 눕혀 주면서 말했습니다.
  "내가 방을 예쁘게 꾸며 줄게."
  그러자 화병 속의 꽃들은 모두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들은 벽을 따라 긴 가지들을 뻗었습니다.
  온 방 안이 근사한 정원처럼 되었답니다. 가지마다 꽃이 가득 피었으며 장미꽃보다 아름답고 향긋한 향기를 뿜었지요. 사람들은 그 꽃들을 먹고 싶어할 거예요. 집에서 만든 잼보다 더 달콤했으니까요. 열매는 황금처럼 빛났고, 또 정제 건포도가 박힌 과자도 있었어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맛이었지요!
  그 때 할마르의 교과서들이 들어 있는 책상 서랍 속에서 무시무시한 신음 소리가 울려 나왔답니다.
  "대체 무슨 일이야?"
  올레 루쾨이에는 책상으로 다가가 서랍을 열었지요. 신음 소리를 낸 것은 석판이었습니다. 석판은 금이 가고 찌그러져 있었답니다. 산수 숙제에 틀린 숫자가 들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철필은 산수 숙제를 도와 주려는 듯이 껑충 뛰어올랐지만 도울 수가 없었답니다.
  이번에는 할마르의 공책 속에서도 신음 소리가 났습니다. 정말 듣기 싫은 소리였지요. 공책에는 대문자들이 뒤섞여 서 있었으며 그 곁에 소문자들이 열을 이루었답니다. 그것은 글씨 연습용 공책이랍니다. 이 글씨들 옆에는 똑같이 흉내 내어 쓴 글씨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할마르가 쓴 것이었습니다. 그 글씨들은 연필로 그은 줄 위에 서 있었는데도 그 줄 위에 누운 것처럼 보였답니다.
  "너희들은 이렇게 똑바로 하고 있어야 돼!"
  글씨 연습용 공책이 말했습니다.
  "그렇게 형편없이 옆으로 기울어져 있다니. 우리들은 정말 네 말대로 하고 싶어.
하지만 우린 그렇게 할 수가 없어. 우린 힘이 없거든."
  할마르가 쓴 글씨들이 말했습니다.
  "그렇담, 너희들은 아동용 가루약을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올레 루쾨이에가 말했답니다.
  "오, 아니에요!"
  글씨들은 소리쳤지요. 그리고 똑바로 섰습니다. 정말 재미있습니다. 올레
루쾨이에는 다시 말했지요.
  "이제, 훈련을 좀 시켜야겠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는 글씨들을 훈련시켰답니다. 그래서 글씨들은 연습용 글자들이 서 있는 것처럼 똑바로 서 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할마르가 아침에 일어나 글씨들을 보았을 때는 어제처럼 뒤죽박죽인 모습이었답니다.

  화요일.
  할마르가 침대로 가자마자 올레 루쾨이에는 방 안의 모든 가구들에게 마법의 주사를 놓았답니다. 그러자 그들은 금방 수다를 떨기 시작했어요. 모두가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타구만은 예외였답니다.
  타구는 말없이 자기 자리에 서 있었지요. 그리고 모든 가구들이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허영심에 화가 났습니다.
  서랍장 위에는 금빛 액자가 걸려 있었답니다. 풍경화였지요. 오래 된 키 큰 나무들과 풀잎 속의 꽃들, 숲과 많은 성들을 지나 멀리 거친 바다로 흘러가는 강의 큰 물줄기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올레 루쾨이에는 그 그림에도 마법의 주사를 놓았지요. 그러자 새들이 노래하기 시작하고 나뭇가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구름은 풍경 위로 지나가면서 그림자를 만들었습니다.
  올레 루쾨이에는 할마르를 그림 속의 높이 자란 풀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이제 할마르는 그 곳에 서 있었답니다.
  나뭇가지들 사이로 해가 비추었습니다. 할마르는 강가로 달려가서 작은 배에 앉았어요. 그 배는 붉은 색과, 흰색으로 칠해져 있었고, 돛은 은처럼 반짝였으며, 빛나는 푸른 별과 황금관을 쓴 여섯 마리의 백조가 배를 끌고 갔답니다.
  나무들은, 도둑들과 마녀 이야기를 하고, 꽃들은, 작고 귀여운 요정들 이야기를 했습니다. 또 나비들이 그 이야기를 전해 주는 초록색 숲을 지나갔지요.
  금이나 은처럼 반짝이는 비늘을 단 물고기들이 배를 따라 헤엄쳐 왔습니다.
물고기들은 폴짝 뛰어오르면서 물 속에서 "첨벙!" 하고 말했답니다.
  붉은색, 푸른색의 작고 큰 새들은 두 줄을 지어 뒤따라 날아왔습니다.
하루살이들은 춤을 추고, 개똥벌레들은 "붐! 붐!"하고 말했답니다.
  그들은 모두 할마르를 뒤따르고 있었어요. 할마르에게 이야기를 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정말 신나는 여행이었답니다. 숲은 빽빽하고 어두웠다가 금새 햇빛과 꽃이 만발한 화려한 정원처럼 변했습니다. 유리와 대리석으로 된 큰 성들도 있었습니다. 발코니 위에는 공주님들이 서 있었는데 모두 꼬마 아가씨들이었답니다.
  공주님들은 모두 할마르를 잘 알고 있었지요. 공주님들은 할마르에게 손을 뻗어 귀여운 돼지 사탕을 내밀었답니다.
  할마르는 배를 타고 지나가면서 돼지 사탕의 한 쪽 끝을 잡았지요. 공주님도 그것을 꼭 잡고 놓지 않아 한 쪽씩 나눠 갖게 되었답니다. 공주님은 작은 조각, 할마르는 큰 조각을요.
  성에는 꼬마 왕자님들이 보초를 서고 있었답니다. 황금 칼을 찬 진짜 왕자님들이었습니다.
  할마르는 때로는 숲속을, 때로는 큰 궁전을, 또 때로는 도시 한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할마르가 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 언제나 사랑해 주었던 누나가 사는 곳도 지나갔습니다. 누나는 손을 흔들면서 자신의 시를 노래로 불렀지요.

  나는 항상 널 생각한단다.
  나의 할마르, 사랑하는 아이야!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네게 입맞춘단다.
  네 이마에, 네 입술에, 네 속눈썹에.
  나는 너의 첫 울음 소리를 들었지
  하지만 너와 작별 인사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단다.
  어디에 있든지 하느님의 축복과 함께 하기를
  내가 업어 주었던 너, 작은 천사여!

  새들도 함께 노래불렀답니다. 꽃들은 줄기 위에서 춤을 추고 나무들은 고개를 끄덕였지요. 마치 올레 루쾨이에가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수요일.
  바깥에는 비가 억수같이 퍼붓고 있지 않겠어요?
  할마르는 잠을 자면서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올레 루쾨이에가 창문을 열었을 때 바로 창문 턱에까지 물이 차 있었으니까요. 바깥은 그야말로 호수였지요.
그런데 여기에 화려한 배 한 척이 놓여 있었답니다.
  "할마르야, 함께 타고 가겠니? 그러면 오늘 밤 먼 나라에 갔다가 내일 아침 다시 올 수 있단다."
  올레 루쾨이에가 말했지요.
  그러자 할마르는 어느 새 외출복을 입고 화려한 배의 한복판에 서 있는 게 아니겠어요?
  날씨는 금방 좋아졌답니다. 그들은 배를 타고 길거리를 지나 교회 모퉁이를 지나갔지요. 도시는 아주 커다란 바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땅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노를 저었습니다.
  그들은 무리 지어 나는 황새 떼를 보았습니다. 황새들은 고향을 떠나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고 있는 중이랍니다.
  황새들은 차례차례 줄을 지어 날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마리는 지쳤는지 날갯짓하는 것이 무척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 새는 줄의 맨 꼴찌에 따라가다 금방 다른 새들에게 뒤쳐지고 말았어요.
  결국 그 새는 날개를 편 채 급속히 가라앉기 시작했습니다. 두어 번 더 날개를 퍼덕였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배로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새는 쿵 하고 갑판 위에 떨어졌지요.
  할마르는 황새를 안아서 닭들과 오리들과 칠면조들이 있는 우리 속에 넣어 주었답니다.
  황새는 머뭇거리며 서 있었지요.
  "저 녀석을 봐!"
  닭들이 말했습니다.
  칠면조는 한껏 깃털을 뽐내며 몸을 크게 하면서 누구냐고 물었지요. 오리들은 뒷걸음질을 치면서 "정신 차려! 정신 차려!" 하고 푸덕푸덕 소리를 냈습니다.
  황새는 따뜻한 남쪽 나라들에 대해, 피라미드에 대해, 야생마처럼 사막을 달리는 타조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지요. 하지만 오리들은 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기들끼리 서로 푸덕거리기만 했지요.
  "우리 생각에는 쟤가 정말 바보같다, 그치?"
  "그래, 틀림없이 바보야."
  칠면조는 꾸르륵꾸르륵 소리를 내어 울고, 황새는 아무 말없이 조용히 서서 남쪽 나라를 생각했습니다.
  "넌 정말 가늘고 근사한 다리를 갖고 있구나!"
  칠면조가 말했지요.
  "1엘레(옛 독일의 치수 단위로 약 66센티미터)에 얼마나 주고 샀니?"
  "꽥꽥꽥!"
  그러자 오리들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습니다. 황새는 아무것도 못들은 척했지요.
  "너도 함께 웃어도 좋아."
  칠면조가 황새에게 말했습니다.
  "정말 우스운 말이야. 어쩌면 너무 수준이 낮은 건가? 우리끼리 얘기하면서 그냥 우리끼리 재미있는 걸로 하자."
  "꽤 꽤꽥!"
  그들은 자기들의 말이 즐겁고도 놀랍다는 듯이 떠들었지요.
  할마르는 우리로 갔습니다. 문을 열고 황새를 불렀지요.
  황새는 폴짝 뛰어 갑판으로 나왔어요. 황새는 아주 잘 쉬었답니다. 할마르에게 감사하며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날아갔지요.
  "내일 아침에 너희들로 수프로 끓여야겠다."
  할마르는 말했지요. 그러다가 잠이 깨었답니다.
  그는 작은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올레 루쾨이에와 함께 떠난 여행은 정말 멋졌답니다.

  목요일.
  "너 아니?"
  올레 루쾨이에가 말했습니다.
  "무서워하지 마. 이제 작은 생쥐를 보게 될 거야."
  그러면서 그는 가볍고 귀여운 동물을 쥔 손을 내밀었습니다.
  "이 생쥐는 너를 결혼식에 초대하기 위해 왔단다. 오늘 밤 두 마리의 작은 생쥐가 결혼을 하려고 해. 생쥐들은 창고에서 살고 있는데. 이제 그곳을 아주 예쁜 방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단다."
  "그렇지만 내가 어떻게 그 작은 쥐구멍으로 들어갈 수 있나요?"
  할마르가 물었지요.
  "그건 내게 맡겨. 내가 너를 아주 작게 만들어 주마."
  올레 루쾨이에는 할마르에게 마술 주사를 놓았답니다. 할마르는 점점 작아지더니 마침내 작은 손가락 크기만해졌습니다.
  "이제 장난감 병정의 옷을 빌려 입으렴. 네게 꼭 맞을 거야. 결혼식에 갈 때는 제복을 입어야 멋져 보인단다."
  "그럼요."
  할마르는 순식간에 귀여운 장난감 병정의 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할마르님, 당신 어머니가 쓰시는 골무에 앉지 않으시겠어요? 그러면 제가 당신을 태운 골무를 끌고 가는 영광을 얻을 거예요."
  작은 생쥐는 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요."
  할마르도 즐겁게 대답했지요.
  그들은 결혼식에 갔답니다. 처음에 그들은 땅바닥 아래의 긴 복도를 지나갔습니다. 골무를 타고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높이였습니다. 복도는 썩은 나무들로 되어 있었어요.
  "근사한 냄새가 나지 않아요?"
  생쥐가 물었습니다.
  "복도는 전부 베이컨으로 발라져 있어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을 거예요!"
  이윽고 그들은 결혼식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오른쪽에는 숙녀 생쥐들이 서로 귓속말을 속삭이며 서 있고, 왼쪽에는 신사 생쥐들이 앞발로 콧수염을 쓰다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에는 신랑 신부가 서 있었답니다.
  그들은 속이 우묵하게 패인 치즈 껍질 안에 서서, 많은 쥐들이 지켜 보는 가운데 입을 맞추었습니다. 둘은 곧 결혼할 사이였으니까요.
  점점 더 많은 손님들이 들어왔지요. 식장 안은 옆에 있는 쥐의 발을 밟을 정도로 좁아졌습니다. 결혼식장은 복도처럼 베이컨으로 발라져 있었답니다.
  손님들에게는 완두콩 한 알씩을 주었습니다. 그 완두콩에는 신랑 신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어요.
  참 아름다운 결혼식이었답니다. 생쥐들은 모두 즐거운 시간이었다고 말했지요.
  할마르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답니다. 정말 신기한 잔치에 갔다 온 것이지요.

  금요일.
  "정말 놀라운 일이야. 어른들도 나를 그렇게 보고 싶어하다니! 특히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이 날 보고 싶어하지.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단다. '착한 올레야, 우리는 잠을 이룰 수가 없단다. 우리는, 누워서 마치 보기 싫은 작은 악마들처럼 침대 맡에 앉아 있는 우리의 나쁜 행동들을 보면서 밤새도록 뜨거운 눈물을 흘린단다. 네가 와서 좀 그들을 몰아내 주지 않겠니? 우리는 정말 속죄하고 싶단다. 우리가 잠을 좀 잘 수 있도록 말이야.' 그러면서 깊은 한숨을 쉰단다."
  올레 루쾨이에가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할 건가요?"
  할마르가 물었습니다.
  "네가 오늘 저녁에도 결혼식에 가고 싶은지 잘 모르겠구나. 어제와는 전혀 다른 결혼식이란다. 진짜 남자처럼 보이는, 왜 그 헤르만이라고 하는 네 누이동생의 큰 인형이 인형 베르타와 결혼한단다. 게다가 그 인형의 생일날이거든. 그러니 많은 선물도 받게 된단다."
  "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인형에 새 옷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누이는 생일을 차려 주거나 결혼식을 올려 줘요. 벌써 백 번도 더 했을 거예요."
  "그래? 그럼 오늘은 백한 번째 결혼식이 되겠구나. 백한 번째의 결혼식이 끝나면 결혼식은 이제 그만두기로 하자꾸나. 그럼 오늘 결혼식은 정말 멋지게 해야겠구나.
한 번 보려무나."
  할마르는 책상을 바라보았답니다.
  창에 불을 밝힌 인형의 집이 있고, 집 바깥에는 장난감 병정들이 총을 든 채 뽐내고 있었습니다. 신랑 신부는 방에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책상 다리에 몸을 기대고 있었지요. 무슨 이유가 있을 거예요.
  올레 루쾨이에는 신랑 신부를 결혼시켰답니다. 결혼식이 끝나자 방 안의 모든 가구들이 연필이 쓴 노래에 맞추어 즐겁게 노래불렀지요. 맥주통 마개를 두드리는 멜로디에 맞춰서 말이에요.

  노래는 바람처럼 울려 퍼지네
  신랑 신부 만세!
  눈이 먼 그들은 자기 모습을 자랑한다네
  가죽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네.
  만세! 귀가 먹고 눈이 멀었어도 상관없다네
  우리는 폭풍우 속에서도, 겨울에도 노래한다네.

  신랑 신부는 선물을 받았답니다. 하지만 먹을 수 있는 선물은 모두 거절했지요.
사랑만으로도 충분했으니까요.
  "우리 그냥 집으로 들어갈까, 아니면 외국으로 여행을 갈까?"
  신랑이 물었지요.
  많은 여행을 한 제비와 다섯 번이나 병아리를 낳은 암탉이 도움을 주었습니다.
제비는 포도주를 만드는 포도들이 크고 탐스럽게 영글어 매달려 있는 곳, 공기는 온화하고 산들은 사람들이 이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색채를 띠고 있는 그 찬란하고 따뜻한 남쪽 나라들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지요.
  "나는 여름 내내 새끼들과 함께 시골에 가 있었어. 그 곳에는 모래굴이 있지.
우리는 그 안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모래땅을 파헤치며 즐겁게 놀았어. 그런 다음에 우리는 양배추들이 아주 많은 정원으로 들어갔어. 오, 얼마나 근사한 초록색이었는지!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은 생각할 수 없어."
  "그렇지만 양배추 줄기는 다른 것들하고 똑같아 보이는데요, 뭘. 또 시골은 날씨가 안 좋잖아요."
  "그래, 날씨에는 익숙해져 있지만 시골은 추워요. 얼어 죽을 지경이에요!"
  "양배추에게는 이런 날씨가 제격이야. 그리고 따뜻한 날씨가 될 수도 있어. 4년 전에는 여름이 5주 간이나 계속되지 않았니? 그 때는 어찌나 더웠던지. 또 시골에는 독을 품은 동물들이 없어. 자기가 살고 있는 나라가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자는 나빠. 그런 자는 정말 이 나라에 있을 자격이 없어."
  암탉은 울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계속 말을 이었지요.
  "나도 통을 타고 12마일 이상을 여행해 보았어. 여행은 재미있는 일이 아니야."
  "그래, 암탉이 옳아."
  인형 베르타가 말했습니다.
  "나도 산을 기어오르는 것은 재미없어. 올라갔다가 그냥 다시 내려오다니. 우리 양배추 밭이나 걷자."
  그래서 신랑 신부는 시골로 여행을 떠났답니다.

  토요일.
  "또 이야기를 들을 수 있나요?"
  올레 루쾨이에가 할마르를 침대에 눕히자마자 할마르가 물었어요.
  "오늘 밤은 이야기할 시간이 없구나."
  올레 루쾨이에는 가장 아름다운 우산을 할마르의 머리 위에 씌웠습니다.
  "이 중국인들을 보고만 있으려무나!"
  그러자 우산은 커다란 중국 주발처럼 보였답니다. 푸른 나무들, 뾰족한 다리, 그리고 다리 위에는 중국인들이 서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지요.
  "우린 내일을 위해서 온 세상을 아름답게 치장해야 한단다. 내일은 일요일이야.
난 교회 종탑 위로 가 봐야 해. 종이 예쁘게 잘 울릴 수 있도록 꼬마 요정들이 종을 반짝반짝 잘 닦아 놓았는지 살펴봐야 하거든. 또 들판으로 나가 바람이 풀과 잎의 먼지를 털어 냈는지도 살펴봐야 한단다. 그러나 가장 큰 일은 별들을 가지고 내려오는 일이란다. 별들도 반짝반짝 닦아야 하거든. 나는 별들을 앞치마에 담아 온단다. 그 전에 별 하나하나에 번호를 매겨야 하지. 또 별들이 들어 앉아 있는 곳에도 번호를 매겨야 해. 별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 앉을 수 있도록 말이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별들은 제자리를 찾을 수 없고 결국에는 유성이 되어 땅으로 떨어져 내릴거야."
  "이봐요, 루쾨이에 씨!"
  할마르가 잠들어 있는 방의 벽에 걸린 초상화가 말했답니다.
  "난 할마르의 증조 할아버지요. 우리 아이에게 이야기를 들려 주어 감사하오.
그러나 아이의 생각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오. 별들은 데려올 수도, 닦을 수도 없다오. 별들은 우리 지구와 똑같은 천체들이라오."
  "고마워요. 증조 할아버지. 그러나 내가 당신보다 더 나이가 많아요. 로마인들과 그리스 인들은 나를 꿈의 신이라 불렀지요. 나는 아주 고귀한 집에만 들어갔으며 지금도 그런데만 다녀요. 나는 큰 사람들과도, 또 작은 사람들과도 사귈 수 있어요."
  올레 루쾨이에는 우산을 가지고 나가 버렸답니다.
  "원, 자기 의견도 제대로 말할 수가 없군."
  증조 할아버지는 툴툴거렸답니다.
  그 때 할마르가 잠이 깨었습니다.

  일요일.
  "안녕!"
  저녁 때, 올레 루쾨이에가 왔습니다. 할마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일어나서 벽에 걸린 증조 할아버지의 초상화를 돌려 놓았답니다. 어제처럼 말참견하지 못하도록 말이에요.
  "이제 이야기해 주세요. 깍지 속에 살고 있는 다섯 개의 초록색 완두콩과, 암탉들을 치근치근 따라 다니는 수탉에 대해서요. 그리고 고상한 척하면서 자기가 재봉바늘이라고 상상하는 뜨개바늘에 대해서도요."
  "네게 내 동생을 보여 주고 싶어. 동생 이름도 나와 같은 올레 루쾨이에지.
동생은 아무에게도 한 번 이상은 가지 않는단다. 동생은 사람들을 말에 태우고 이야기를 해 준단다. 하지만 아는 이야기는 두 가지밖에 없어. 하나는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생각해 낼 수 없을 정도로 지극히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추악하고 참혹한 이야기란다. 정말 어떻게 표현할 수 없을 정도지."
  그러면서 올레 루쾨이에는 할마르를 창가로 들어올렸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지요.
  "이제 내 동생 올레 루쾨이에가 보일 거다. 사람들은 내 동생을 죽음이라고도 부르지. 어떠냐, 그림책에서 보는 해골처럼 그렇게 보기 흉한 모습은 아니지? 그래, 동생 옷은 은으로 수가 놓여져 있단다. 정말 아름다운 제복이지. 그리고 검은 벨벳으로 된 외투를 입고 있단다. 보렴,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을."
  할마르는 동생 올레 루쾨이에가 말을 타고 달리면서 사람들을 말에 태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몇몇 사람은 자기 앞쪽에, 다른 사람은 뒤쪽에 앉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어 보았지요.
  "성적표는 어떤가?"
  그러면 사람들은 모두 이렇게 대답하지요.
  "좋아요!"
  "그래? 직접 봐야겠어."
  모두 성적표를 내밀었습니다.
  '대단히 잘함' '우수함'을 받은 사람들은 말의 앞쪽에 앉아서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그러나 '보통임'의 성적을 받은 사람들은 뒤에 앉아서 무서운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지요.
  뒤에 탄 사람들은 몸을 떨면서 울었습니다. 말에서 뛰어내리려고도 했지만 그럴 수는 없답니다. 몸이 굳어져 말에 단단히 붙어 버리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는 정말 멋진데요, 뭐. 난 그가 무섭지 않아요."
  할마르는 말했지요.
  "그럼, 무서워해선 안 되지. 네가 좋은 성적표를 갖고 있는지 항상 살펴보거라."
  "그래, 참 교훈적인 이야기로군."
  증조 할아버지의 초상화가 중얼거렸습니다.
  보세요, 이것이 올레 루쾨이에의 이야기랍니다.
  이제 오늘 밤 올레 루쾨이에가 여러분에게 직접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지도 모른답니다
 
황새들  안데르센
 
어느 작은 집 위에 황새 둥지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둥지 속에는 네 마리의 새끼 황새와 엄마 황새가 살고 있었지요.
  검고 작은 부리를 가진 새끼 황새들은 머리를 내밀고 있었고, 그 곳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용마루 위에는 아빠 황새가 아주 당당하고 꼿꼿하게 서 있었답니다.
한쪽 다리를 높이 들고 보초를 서고 있었습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새가 아닌가 하고 의심을 할 정도로 조용하게 말이지요.
  '내 아내가 서 있었다면 정말 우아하게 보일 텐데. 사람들은 내가 남편인 줄은 모를 거야. 아마 내가 여기 서 있도록 명령을 받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래도 여기 서 있는 건 몹시 고상해 보인단 말이야.'
  아빠 황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속 외다리로 서 있었습니다.
  아래쪽에서는 아이들이 놀고 있었답니다. 아이들은 황새를 보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황새야, 황새야, 집으로 들어가거라
  그렇게 외다리로 서 있지 말고
  네 아내는 둥지 속에 누워 있지
  그 곳에서 새끼들의 요람을 흔들어 주지.

  한 새끼는 교수형에 처해지고
  두 번째 새끼는 그을려 죽고
  세 번째 새끼는 총맞아 죽고
  네 번째 새끼는 창에 찔려 죽고.

  "아이들이 노래부르는 것 좀 들어 봐. 우리가 목 매달리고 불에 그을릴거라고 노래부르잖아."
  새끼 황새들이 그 노래를 듣고 말했지요.
  "그런 말에 귀기울일 필요 없단다. 듣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란다."
  엄마 황새가 말했지요.
  아이들은 계속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황새들을 가리켰지요.
  오직 페터라고 불리는 한 아이만이 동물을 놀리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말했어요.
페터는 아이들과 놀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엄마 황새는 새끼들을 달랬습니다.
  "그런 데 신경쓰지 마라. 아빠가 얼마나 평온하게 서 있는지 보렴, 그것도 외다리로 말이야."
  새끼 황새들은 얼른 둥지 속으로 숨었습니다.
  다음 날도 아이들은 다시 그 노래를 불렀답니다.

  하나는 목 매달리고
  다른 하나는 불에 그을리고.

  "우리가 목 매달리고 불에 그을리게 될까요?"
  새끼 황새들이 물었습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너희들은 곧 나는 것을 배우게 될 거란다. 그런 다음 우리는 초원 위를 날아서 개구리들을 찾으러 갈 거야. 개구리들은 연못 속에서 꽥꽥꽥 노래를 부른단다. 바로 그 개구리들이 우리들의 먹이란다."
  "그 다음엔 뭘 하나요?"
  새끼 황새들이 물었습니다.
  "그러고 나면 여기에 살고 있는 황새들이 모두 모이지. 그리고 겨울에 대비하여 나는 연습을 해. 그 때에는 정말 잘 날아야 한단다. 아주 중요하니까. 제대로 잘 날지 못하면 장군 황새가 부리로 물어 죽이지. 그러니 연습이 시작되면 잘 배우도록 노력해야 한단다."
  "그렇다면 우린, 아이들이 노래부르는 것처럼 죽는 건가요? 들어 보세요.
아이들이 또 노래를 불러요."
  "그 노래에 귀기울이지 말아라. 나는 연습을 마치면 우리는 따뜻한 나라로 날아간단다. 이 곳에서 정말 멀리 떨어진 곳이지. 산들을 넘고 숲들을 지나간단다.
그 곳은 이집트라는 곳이야. 거기에는 구름 위까지 뾰족한 지붕이 뻗어 있단다.
사람들은 피라미드라고 부르지. 그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오래 된 거란다. 또 강물이 넘치면 온 나라가 진흙늪이 된단다. 그러면 우리는 늪 속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개구리를 잡아먹지."
  "오!"
  새끼 황새들이 탄성을 질렀습니다.
  "그 곳은 정말 근사한 곳이란다. 하루 종일 먹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어. 우리가 그 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 동안 여기에서는 초록 잎들이 진단다. 그리고 작은 구름들이 조각조각 얼어붙은 채 하얗게 떨어지지."
  엄마 황새가 말한 것은 눈이었습니다.
  "그러면 못된 아이들도 조각조각 얼어붙나요?"
  새끼 황새들이 물었지요.
  "아냐, 아이들은 조각조각 얼지는 않는단다. 하지만 비슷하게 된단다. 아이들은 방
안에 들어앉아 있어야만 하거든. 그렇지만 너희들은 꽃들이 있고 따뜻한 해가 비치는 낯선 나라에서 이리저리 날아다닐 수 있단다."
  새끼 황새들은 둥지 속에서 똑바로 서서 멀리 내다볼 수 있을 정도로 자랐습니다.
  아빠 황새는 날마다 먹이를 물어다 주었습니다. 그리고 늪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이제 너희들은 나는 것을 배워야 한단다."
  어느 날 엄마 황새가 말했지요.
  네 마리의 새끼 황새들은 모두 용마루로 나왔습니다. 다리가 몹시 떨렸지요. 새끼 황새들은 날개로 균형을 잡으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그래도 밑으로 떨어질 뻔했지요.
  "나만 쳐다봐. 이렇게 머리를 들고 발은 이렇게 놓아. 하나 둘, 하나 둘."
  엄마 황새가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는 시범을 보였습니다. 새끼 황새들도 서투르게 약간 날아올랐어요. 하지만 곧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난 날지 않을래요. 따뜻한 나라로 가고 싶지 않아요."
  새끼 황새 한 마리가 둥지 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겨울이 되면 여기서 얼어 죽을래? 아이들이 와서 널 목 매달고 불에 구워도 괜찮겠어?"
  "아니에요!"
  새끼 황새는 다시 다른 새끼들처럼 지붕 위로 폴짝 뛰어나왔습니다.
  사흘째 되는 날, 새끼 황새들은 약간씩 날 수 있었습니다. 공중에서 균형을 잡고 있을 수 있다고 믿었지요. 그러나 다시 곤두박질을 치고 말았답니다. 그것을 보고 아이들이 노래를 불렀지요.

  황새야, 황새야, 집으로 들어가거라!

  "아래로 날아가서 아이들의 눈을 찔러 줄까요?"
  새끼 황새들이 물었습니다.
  "아냐, 그냥 내버려둬. 지금은 이게 훨씬 더 중요한 거란다. 하나, 둘, 셋! 이제 오른쪽으로 돌아 날아봐. 하나, 둘, 셋! 이제 왼쪽으로 저 굴뚝을 돌아봐. 자, 봐.
잘했어. 마지막 날갯짓이 정말 훌륭했어. 내일은 늪으로 나가야겠다. 여러 황새 가족들이 새끼들을 데리고 그 곳으로 온단다. 너희들이 제일 귀엽다는 것을 보여 주거라. 그리고 머리를 똑바로 들고 다녀라. 그러면 당당하게 보인단다."
  "저 못된 아이들에게 복수를 해서는 안 되나요?"
  새끼 황새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하고 싶은 대로 소리지르게 내버려 두려무나. 너희들은 곧 하늘 높이 날아서 피라미드의 나라로 갈 텐데 뭘 그러니. 저 아이들은 이 곳에서 떨면서 지낼 텐데 뭘."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못된 아이는 노래를 처음으로 부른 아이였답니다. 여섯 살도 안 되었을 거예요. 물론 새끼 황새들은 그 아이가 1백살은 되었을 거라고 생각했지요. 아이가 자기들의 엄마 아빠보다 훨씬 컸기 때문이랍니다. 아이들이 몇 살인지 새끼 황새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그 아이는 날마다 노래를 불렀답니다. 새끼 황새들은 참을 수가 없었지요. 그리고 좀더 자라게 되자 더욱 더 참으려고 하지 않았어요.
  결국 엄마 황새는 새끼들에게 복수해도 좋다고 허락을 했답니다. 그렇지만 남쪽 나라로 떠나는 마지막 날에 하라고 했습니다.
  "나는 연습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좀 봐야겠다. 너희들이 잘하지 못하면 장군 황새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되면 아이들의 노래가 맞는 셈이지."
  "좋아요, 그렇게 하세요."
  새끼 황새들은 씩씩하게 대답했지요.
  그리고는 열심히 연습을 했답니다. 나는 것은 참 재미있었지요. 그렇게 산뜻하고 즐거울 수가 없었습니다.
  가을이 되었습니다.
  황새들은 따뜻한 나라로 날아가기 위하여 모두 모였습니다. 그리고 모두 함께 나는 연습을 했어요. 모든 숲들과 도시에는 황새들의 무리가 장관을 이루었답니다.
  새끼 황새들은 아주 훌륭하게 날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좋은 성적을 얻었지요. 이제 개구리를 잡아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복수하자."
  새끼 황새들이 말했습니다.
  "그럼, 물론이지. 나는 아이들이 노는 연못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단다. 아이들은 그 곳에서 황새가 와서 부모에게 데려다 줄 때를 기다리고 있지. 아주 귀엽고 작은 아이들이 그 곳에서 잠을 자면서 아름다운 꿈을 꾼단다. 부모들은 모두 작은 아기를 갖고 싶어한단다. 아이들도 동생을 갖고 싶어하고 우리가 그 연못으로 날아가서 나쁜 노래를 부르지 않은 아이들에게 아기들을 하나씩 갖다 주자. 그리고 우리를 놀린 아이들에게는 아기를 갖다 주지 말자."
  엄마 황새가 말했습니다.
  "그 심술쟁이 나쁜 아이는 대체 어떻게 해 주어야 해요?"
  새끼 황새들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 연못에는 죽은 아이가 하나 있단다. 그 못된 아이에게는 죽은 아이를 갖다 주자. 그러면 엉엉 울 거야. 하지만 동물을 놀리는 것은 나쁜 짓이라고 말한 그 착한 아이에게는 여동생과 남동생을 가져다주자. 그 아이는 이름이 페터라고 했지?
너희들도 모두 페터라고 이름을 붙이자꾸나."
  모든 일이 엄마 황새가 말한 대로 되었답니다.
  그 뒤 모든 황새들은 페터라는 이름을 가졌으며,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답니다.
 
이삿날
 
 
여러분은 아직도 탑지기 올레를 기억하고 있나요?
언젠가 그의 집에 찾아온 두 사람의 방문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오늘은 세번째 방문객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은 아니랍니다. 새해 설날 무렵이면 나는 언제나 탑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번도 으레 있는 그 이삿날이었 습니다.
저 아래쪽에 있는 도시의 거리는 지저분했어요. 쓰레기와 유리 조각들, 그리고 잡동 사니들이 잔뜩 쌓여 있었기 때문이지요. 짚으로 만든 다 낡아빠진 침대도 있었는데 속을 헤집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움푹 패여 있었답니다.
거리를 따라 내려가다가, 흘러 넘치도록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잠자기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아이들은 잠자기 놀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 냈지요. 아이들은 짚 더미 속으로 기어들어가 낡은 벽걸이를 이불로 덜고 있었습니다.
"참 기분 좋은데!"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며 즐거워했지요. 그렇지만 내겐 그 말이 과장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얼른 그 자리를 떠나 올레에게 올라갔답니다.
 "이삿날이야!"
 올레가 말했습니다.
 다음은 올레가 들려 준 이삿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거리와 골목이 온통 쓰레기통이야. 아주 커다란 쓰레기통이 되었어! 내 수레도 가득 찼지. 성탄절 직후에 수레에서 물건 하나를 끄집어내어 거리를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갔지.
날이 축축하고 흐려서 감기 걸리기에 딱 좋은 날씨였지. 청소부가 가득찬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은, 이사철의 코펜하겐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예행연습 이야. 그 수레 뒤에는 크리스마스용 전나무도 실려 있었는데, 그 때까지도 나뭇잎은 푸르고 가지엔 금박이 붙어 있었어. 거리에 버려져 있는 걸 청소부가 수레 뒤쪽에다 실은 거지. 그러나 그 광경은 눈물이 나올 만큼 즐거워 보였어.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럴 때 무얼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말야. 난 많은 생각을 했어. 수레 안에는 뭐가 있을까 하고 말이지. 거기에 찢어진 숙녀용 장갑 한짝이 있었어. 장갑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한 번 알아맞혀 볼까? 장갑은 거기 누워서 작은 손가락으로 전나무 위를 가리켰을 거야. 그리고는 이렇게 불평을 했겠지.
'이 나무가 자꾸 나를 건드려!' '나도 샹들리에와 함께 축제에 있었어! 내 인생은 원래 무도회의 밤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그런데 악수를 하다가 잘못해서 찢어지고 말았던 거야! 그 바람에 내 기억은 끊어지고 말았지. 난 이제 아무것도 없어. 뭘 위해 살아가야 할지!' 이렇게 장갑은 생각했을지도 몰라.
도자기 조각들은 전나무가 멍청하다고 생각했어.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은 언제나
모든 것이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한 번 쓰레기 차 위에 있어 봐. 그럼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고 금박도 입지 못할걸. 난 내가 이 세상에 쓸모가 있다는 걸 알아. 난 저 푸른 전나무보다도 더 쓸모 있다구.'
조각들은 이렇게 말했지. 그래, 이것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질 수 있는 조각들의 생각이지. 그럼에도 전나무의 모습은 참 보기 좋았어. 전나무는 쓰레기 위에 있는 한 편의 시였던 거야.
이삿날의 거리 주변에는 이런 종류의 시가 많아. 저 아래로 난 길은 무척 무겁고 고 달파 보였어. 그래서 호기심을 느낀 난 다시 탑에 올라가 앉아 있기로 했지. 이 탑 위에 앉아서 저 아래를 재미있게 구경하는거야.
착한 사람들이 '작은 나무 바꾸기' 놀이를 하고 있었어. 자질구레한 일상 용품들을 끌어내다가 지쳐 버렸던 거야. 집의 요정도 통 속에 앉아 함께 잡아당기고 있었지. 집안은 온통 시끌벅적했어. 식구들이 소란스럽게 왔다갔다 했고, 걱정과 근심도 함께 옛 집에서 새 집으로 이사 갔지. 그 다음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건 뭘까? 물론 오래 된 시 중 '광고인' 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도 있지.
"죽음이라는 큰 이삿날을 생각하라!"
이것은 결코 가벼운 생각은 아니지만, 이런 말을 듣는 걸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죽음은 수많은 일을 겸해서 하고 있지만, 가장 믿음직한 공무원이지. 이런 걸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있니?
죽음은 버스 운전사이고, 여권을 쓰는 사람이며, 우리들의 신분 증명서 밑에 자기 이름을 쓰는, 삶이라는 커다란 은행의 지배인이지. 이걸 이해할 수 있겠니? 이 지상 에서 행하는 크고 작은 모든 행위들을 우리는 이 은행에 저금하는 거야. 그래서 죽음이 자기의 이사 버스를 타고 오면, 우리는 그 버스에 올라타고 영원의 나라로 가야만 하는 거지.
죽음은 경계선에서 우리의 신분 증명서를 여권으로 바꿔 주는 거란다.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죽음은 은행에서 이런 저런 행위들을 꺼내 가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했던 행위들이란다. 은행에는 우리의 활동과 행위들이 낱낱이 적혀 있거든. 그건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끔찍할 수도 있지.
어느 누구도 이 버스 여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단다. 함께 가서는 안 되었던 예루살렘 의 구두장이가 그걸 얘기해 줄 수 있을 거야. 그는 뒤에서 달려가야만 했지. 그가 만약 버스에 함께 탔다면, 시인의 대우를 받지 못했을 거야.
자, 상상의 날개를 펴고 이 큰 이사 버스 안을 살펴봐! 여러 종류의 사람이 보이지. 한 쪽에는 왕과 거지들이 나란히 앉아 있고, 또 한 편엔 천재와 바보들이 나란히 앉아 있어. 그들은 모두 떠나야 하는 거야. 돈이나 재산도 없이, 오직 신분증명서와 은행에서 꺼낸 여비만 가지고 말야.
그런데 은행에서 어떤 행위들을 꺼내서 가지고 가게 될까? 아마 완두콩만큼이나 아주 작은 것일 거야. 물론 완두콩은 한창 피어나는 덩굴을 달고 갈 수는 있겠지. 매를 맞고 욕을 먹으면서 구석진 곳에서 낮은 의자에 앉아 있는 불쌍한 신데렐라는, 아마 신분 증명서와 여비로 낡아빠진 의자를 받은 모양이군. 그러나 이 낡아빠진 의자는 영원의 나라에서는 가마가 되어 옥좌에 오르게 되지. 아늑한 정자처럼 푸르른 나무들이 우거지고, 금처럼 찬란하게 빛나게 될 거야. 이 세상에서 방황하며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잊어버리려고 즐거움이라는 향기로운 술을 늘 마신 사람은 버스 여행에서는 남김없이 마셔야만 하는 작은 나무통을 받게돼. 이 술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깨끗한 음료인데, 이 술을 마시면 생각이 맑아지고 착하게 되며, 숭고한 감정들이 되살아나게 되지. 그래서 전에는 보고 싶지도 않았고 볼 수도 없었던 것을 보고 느끼게 되어 영원히 죽지 않는 양심의 가책이란 벌을 받게 돼. 술잔에는 '망각' 이라는 말이, 작은 나무통엔 '기억' 이라는 말이 씌어 있지.
만약 내가 올바른 역사책을 읽는다면, 나는 책 속에 나온 인물들이 죽음의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눈을 감고 그려 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게 되겠지. 죽음이 은행에서 그들을 위해 어떤 행위들을 꺼내 갔는지, 또 영원의 나라에 얼마만큼의 여비를 갖고 갔는지. 옛날 프랑스에 어떤 왕이 있었어. 이름은 잊어버렸어. 좋은 사람의 이름은 때때로 잊혀지기 마련이잖아. 나도 그렇고. 그러나 그 왕의 모습은 지금도 또렷하게 떠올라. 그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은인 이었어. 그래서 백성들은 하얀 눈으로 그의 기념비를 세웠단다. 기념비엔 "당신은 이 눈이 녹는 것보다 더 빠르게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 라고 적혀 있었지. 난 상상할 수 있어. 죽음이 이 기념비를 바라보며 이 왕에게 영원히 녹지 않는 한 떨기의 눈송 이를 주고, 그의 머리에서 하얀 나비가 되어 영원의 나라로 날아가는 것을.
또 루드비히 11세라는 왕이 있었어. 그의 이름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악인의 이름은 항상 쉽게 떠오르거든. 내 머릿속엔 그가 한 행동이 자주 떠오르는데, 이 이야기는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
이 왕은 육군 총사령관을 처형시켰어. 정당한 이유가 있든 없든 그는 그렇게 할수 있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더 지독한 것은, 사령관의 죄 없는 여덟 살과 일곱살짜리 두 아이들을 단두대에 서게 해서 아버지의 따뜻한 핏방울이 그들에게 튀게 했던 거야. 그리고 그 다음엔 바스티유 감옥으로 보내서 쇠창살 속에 가두었지. 그들은 감옥에서 단 한 장의 모포도 받지 못했지.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루드비히왕은, 1주일 내내 형리를 보내 형제의 이빨을 하나씩 뽑게 했어. 그들이 편안하게 지내지 못하도록 말이야. 참다못한 형이 말했어.
"어린 내 동생이 굉장히 고통스러워 한다는 걸 어머니가 아시면 걱정하시다 결국 돌아가시고 말 거예요. 제발 제 이빨을 두 개 뽑고 동생은 풀어주세요!"
이 말을 들은 형리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왕의 뜻이 눈물보다 더 강했어. 1주일 내내 은 쟁반에 아이들 이빨 두 개가 얹어져 왕에게 진상되었어. 왕이 그렇게 요구했던 거야. 그는 그걸 받았지.
죽음이 국왕 루드비히 11세를 위해, 삶이라는 은행에서 아이들의 이빨 두 개를 꺼내 영원의 나라로 가는 여행길에 그에게 줄 거야. 죄 없는 아이들의 이빨이 그 왕 앞에서 날아갈 거야. 마치 불타는 파리처럼 말이야. 그리고 그것은 불처럼 활활 타서 왕을 꼬집을 거야. 그 순진 무구한 아이들의 이빨이.
그래, 큰 이삿날의 버스 여행은 참 진지한 여행이지. 그런데 이런 이삿날이 언제 올까? 사람들이 매일 매시간 매초마다 이 버스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진지한
일이야. 그 때가 오면 죽음은 은행에서 우리들의 어떤 행위를 꺼내 우리에게 보여
주게 될까?
그걸 한 번 생각해 보자. 달력에는 이 이삿날이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말야.
 
벌거벗은 임금님  안데르센
 
옛날에, 옷을 매우 좋아하여 많은 돈을 옷치장하는데 낭비하는 임금님이 살고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군인들을 돌보지도 않고, 또 연극 같은 것에도 관심이 없었답니다. 자기의 새 옷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면 숲으로 나가는 것도 좋아하지 않았지요. 하루에도 몇 번씩 옷을 갈아입었답니다. 누군가 임금님을 찾으면 대신들은 "회의중이십니다." 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임금님이 살고 있는 곳은 이웃 나라의 사람들이 오가는 큰 도시였답니다.

어느 날, 두 명의 낯선 사람들이 왔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직공이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감을 짤 수 있다고 말했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짜는 옷감은, 색깔과 무늬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일할 능력이 없거나 바보 같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신비한 옷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것 참, 굉장한 옷이 되겠다. 내가 만약 그 옷을 입는다면 우리 나라 대신들 중 누가 그 직위에 쓸모가 있는지 없는지는 물론 영리한 사람과 바보도 구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즉시 그 옷감을 만들도록 해야겠다."

임금님은 두 사람을 궁궐로 불렀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많은 계약금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두 개의 베틀을 설치했습니다. 그러나 베틀 위에는 아무것도 놓여 있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빈 물레에 앉아 밤늦도록 일하는 척했지요.
임금님은 옷감이 얼마나 짜여졌는지 궁금했답니다. 그러나 바보이거나 직위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는다는 얘기가 생각났습니다. 임금님은 불안했지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답니다. 그래서 꾀를 하나 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이 옷감의 신비한 힘에 대한 얘기는 온 나라 국민들이 알고 있었으니까요. 자기의 이웃이 어떤 사람인지 모두가 알고 싶어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정직한 장관을 직공들에게 보내야겠다. 그 장관이라면 옷감이 어떠한지 잘 볼 수 있을 거야. 그보다 더 자기 직무를 잘 해 내는 사람은 없어."

임금님은 늙은 장관을 보냈습니다.
그래서 늙은 장관은 두 사기꾼이 일하고 있는 방으로 들어갔답니다.
"맙소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구나."
장관은 두 눈을 크게 떴습니다.
두 사기꾼은 부디 가까이 와서 보라고 간청했습니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아름다운 색깔에 예쁜 무늬가 아니냐고 되물었지요.
늙은 장관은 눈을 더 크게 떴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럴 밖에요. 사실 빈 베틀뿐이었으니까요.

'내가 바보란 말인가?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는데. 내겐 장관 직위에 있을 능력이 없단 말인가? 아냐, 이 옷감이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할 수는 없어!'
늙은 장관은 생각에 잠겨 있었어요.
"자, 왜 아무 말씀도 않으십니까?"
직물을 짜는 체하고 있던 직공이 물었습니다.
"오, 정말 아름다워요! 아주 멋지군요! 이 옷감이 썩 마음에 들더라고 임금님께 말씀드리지."
늙은 장관이 대답했습니다.
"그것 참 기쁘군요."
두 직공은 옷감의 이름을 말하면서 그 진귀한 무늬를 설명했답니다. 늙은 장관은 직공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습니다. 임금님에게 돌아가서 똑같이 설명해야 하니까요.
직공들은 옷감을 짜는 데 필요하다면서 많은 돈과 비단과 황금을 요구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기들의 호주머니를 채웠답니다. 베틀에는 실 한 올 걸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직공들은 빈 베틀에서 열심히 일하는 척했지요.

임금님은 옷감이 얼마나 짜여졌는지 알아보기 위하여 곧 다시 다른 정직한 대신을 보냈답니다. 얼마 전에 늙은 장관이 찾아갔을 때와 똑같은 일이 벌어졌겠죠? 빈 베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 그는 당연히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바보가 아니야! 내가 대신의 자격이 없단 말인가? 참 우스운 일이로군.
하지만 사람들이 그걸 알아서는 안 돼!"
그 대신은 보이지도 않는 옷감을 칭찬했습니다.
"네에, 최고입니다!"
직공들을 만나고 온 그는 이렇게 임금님에게 말했습니다.
도시의 사람들은 너나없이 모두 이 옷감에 대해 이야기했답니다.
이제 임금님은 그 옷감을 직접 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대신들을 데리고 그 곳으로 갔답니다. 대신들 중에는 먼저 그 직공들에게 갔던 두 명의 대신도 끼여 있었어요.

여전히 직공들은 실 한 올 없는 베틀에서 열심히 옷감을 짜는 척했답니다.
"정말 근사하지 않습니까? 페하, 보십시오. 이 근사한 색깔과 무늬를!"
직공들을 만났던 두 대신이 텅 빈 베틀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그 옷감이 보인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임금님은 눈앞이 깜깜했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다니! 그것 참 기가 막힌 일이로군. 내가 바보인가? 내가 황제될 자격이 없단 말인가? 거참, 내가 당할 수 있는 가장 기막힌 일이로군.'

임금님은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옷감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 정말 좋구나! 짐의 최고의 찬사를 얻을 만하도다."
임금님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텅 빈 베틀을 살펴보았습니다. 임금님을 따라온 대신들도 아무것도 볼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나 그들도 임금님처럼 말했습니다.
"오, 정말 멋지군요!"
그들은 임금님에게 행진할 때에 새 옷을 입고 나가시라고 말했답니다.
"훌륭합니다! 근사합니다. 기막히게 좋습니다!"
이 옷에 관한 소문은 곧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습니다. 사람들은 모이면 옷감 이야기를 했지요.
임금님은 그 직공들에게 기사 훈장을 수여하고, 궁정 직조사라고 부르도록 했답니다.

행진이 시작되는 바로 전날 밤이었습니다.
직공들은 베틀에 앉아 열여섯 개의 불을 밝혔습니다. 임금님의 새 옷을 마무리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였지요.
직공들은 베틀에서 옷감을 들어내서 공중에서 큰 가위로 잘랐지요. 그리고 실도 없는 바늘로 기웠답니다.

마침내 직공들이 말했습니다.
"자, 옷이 완성되었습니다."
임금님이 대신들을 데리고 그 곳으로 왔습니다.
두 직공은 마치 무엇인가를 받치고 있는 것처럼 한 팔을 높이 들어올렸습니다.
"보십시오, 여기 바지가 있습니다. 이것은 윗도리입니다. 여기 망토가 있습니다.
이 옷은 거미줄처럼 가볍답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것 같지요. 그것이 바로 이 옷의 장점이랍니다."
직공들이 말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대신들로 말했어요.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답니다. 그래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폐하, 이제 그 옷을 벗으시지요. 저희가 직접 새옷을 입혀 드리겠습니다. 여기 큰 거울 앞으로 서십시오."
임금님은 직공들의 말을 듣고, 입고 있던 옷을 모두 벗었습니다. 직공들은 임금에게 새 옷 하나하나를 입혀 주는 척했어요. 그리고 임금님의 몸을 잡고 뒤에 끌리는 옷자락을 단단히 매어 주는 척했지요.

임금님은 거울 앞에서 이리저리 몸을 돌렸습니다.
"훌륭합니다, 폐하. 기막히게 잘 맞습니다."
대신들이 말했습니다.
"행렬 중 폐하의 머리 위에 받치고 갈 천개를 든 시종들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예식 담당 장관이 말했습니다.
"그래, 끝났어. 잘 맞지?"
그러면서 임금님은 한 번 더 거울 앞에서 몸을 돌려 보았답니다. 마치 귀중한 보석이라도 관찰하는 것처럼 보여야 했으니까요.
옷자락을 끌고 가야 할 시종들은, 마치 옷자락을 들어올리려는 것처럼 바닥을 향해 손을 뻗었어요. 그들은 무엇인가를 공중에 들고 있는 것처럼 걸어갔답니다.
자기들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치채게 할 수가 없었던 거지요.

드디어 임금님의 행진이 시작되었답니다.
길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외쳤습니다.
"어머나, 임금님의 새 옷좀 봐. 정말 근사해!"
어느 누구도 자기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는 말을 하지 않았답니다. 만약 그런 말을 했다가는 바보가 되니까요. 임금님의 어떤 옷도 이옷처럼 찬사를 받지는 않았답니다.

그 때였습니다.
"임금님은 아무것도 안 입었잖아."
마침내 한 꼬마가 말했습니다.
"이 순진한 아이의 말을 들으세요."
그 꼬마의 아버지도 주위를 살펴보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은 순식간에 퍼져 나갔답니다.
"임금님은 아무것도 안 입었대. 저기 저 아이가 그러는데 아무것도 안 입었대."
"임금님은 아무것도 안 입었어."

마침내 온 국민이 소리쳤습니다. 그 말은 임금님의 마음도 흔들어 놓았답니다.
임금님도 국민들의 말이 옳은 것 같았거든요.
'그렇다고 이 행차를 도중에서 그만둘 수는 없다.'
임금님은 아까보다 더 자랑스러운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리고 시종들도 여전히 임금님의 기다란 옷 소매를 높이 쳐드는 시늉을 하면서 아주 의젓하게, 그리고 천천히 임금님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완두콩 공주
 
 
진짜 공주님과 결혼하고 싶어하는 왕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왕자는 공주를 찾기 위해 온 세상을 돌아다녔습니다. 공주들이야 이 세상 어딜 가도 많지만 진짜 공주인지 아닌지 그것까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답니다.
결국 왕자는, 공주를 찾지 못하고 다시 집에 돌아와야 했습니다. 그러나 집으로 돌아온 왕자는 몹시 슬펐답니다. 진짜 공주와 결혼하고 싶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니까요.
어느 날 저녁, 무시무시한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렸습니다. 장대 같은 비도 쏟아졌지요. 정말 무시무시했어요. 그런데 누군가가 성문을 두드렸습니다.
늙은 왕이 나가서 문을 열어 주었지요.
문 앞에는 한 공주가 서 있었답니다. 비에 흠뻑 젖은 공주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머리카락과 옷에서는 물이 뚝뚝 떨어지고, 빗물은 구두부리로 들어갔다가 뒤축으로 다시 나오고 있었어요. 그녀는 자기가 진짜공주라고 말했답니다.
”그래? 그거야 우리가 알아 낼 수 있지.'
늙은 왕비는 생각했지요. 그러나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았답니다. 왕비는 곧 침실로 들어가서 이불을 다 걷어 내고 완두콩 한 알을 놓았지요. 그 위로는 스무장의 솜이불을 깔았습니다. 그날 밤 공주는 그 침대에서 자게 되었답니다. 아침이 되자 사람들이 그녀에게 잘 잤느냐고 물었어요.
"오, 정말 무서웠어요. 밤새도록 한숨도 눈을 붙이지 못했어요. 침대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하느님만이 아실 거예요. 침대 밑에 무엇인가 딱딱한 것이 있었어요. 그래서 온몸이 멍이 들었답니다. 정말 끔찍했어요."
사람들은 그녀가 진짜 공주라고 생각했답니다. 스무 장의 이불을 통해서도 한알의 완두콩을 느꼈다면 그건 공주님이 틀림없으니까요. 진짜 공주가 아니고서야 누가 그렇게 예민할 수 있겠어요.
왕자는 공주를 아내로 맞아들였답니다. 그녀가 진짜 공주라고 믿었으니까요. 그리고 그 완두콩은 미술 전시실로 옮겨졌답니다. 누가 훔쳐가지 않는 한 누구나 볼수 있도 록 말이지요.
보세요, 이건 진짜 이야기랍니다.
 
전나무 이야기  안데르센
 
숲속에 키가 작은 전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답니다. 그 전나무가 서 있는 곳은 햇빛이 따뜻하게 내리쬐고 공기도 맑은 곳이었어요.
  전나무 주위에는 키가 큰 전나무들과 가문비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답니다.
  작은 전나무는 키 큰 전나무들이 부러웠어요. 그 전나무는 따뜻한 햇살도 신선한 공기도, 산딸기를 따러 돌아다니며 재잘거리는 농가의 아이들에게도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아이들은 바구니에 딸기를 가득 채우거나, 지푸라기 위에 산딸기를 나란히 늘어놓거나 하면서 작은 전나무 옆에 앉아서 말했어요.

  "아이, 정말 작고 귀엽네!"

  그러나 이 나무는 전혀 그런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답니다.
  다음 해에 나무는 새싹을 틔운 만큼 더 자랐답니다. 그 다음 해에는 또 새싹만큼이나 더 자랐어요. 전나무는 나이테를 보면 몇 해나 자란 나무인지 알 수가 있답니다.

  "나도 다른 나무들처럼 큰 나무였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새들이 내 가지들 속에 둥지를 틀고 바람이 불면 저기 저 다른 전나무들처럼 멋지게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텐데..."

  작은 전나무는 한숨을 쉬었답니다.
  전나무는 햇빛을 즐기지도 않았고 새들이 와도 기뻐하지 않았어요. 아침과 저녁에 자기의 머리 위로 지나가는 붉은 구름을 반가워하지도 않았지요.
  겨울이 와서 그 전나무 주위에는 눈이 쌓였어요. 가끔 토끼 한 마리가 그 작은 전나무를 뛰어넘어가곤 했답니다. 그 전나무는 그럴 때마다 무척 속상했지요.
그러나 두 번째 겨울이 지나가고 세 번째 겨울이 되자, 나무는 너무 커져 토끼는 나무 둘레를 빙글빙글 돌 수밖에 없었지요.
  그 전나무의 소원은 빨리 큰 나무가 되는 것이었답니다.
  가을이 되면 나무꾼들이 와서 아주 큰 나무들 중 몇 개를 베었답니다. 해마다 일어나는 일이었지요. 키가 커진 그 전나무는 그 일이 일어날 때마다 몸을 떨었어요. 크고 화려한 나무들이 우지끈 딱 소리를 내며 땅으로 쓰러졌지요.
가지들이 잘려나가고 나무는 완전히 벌거벗은 채 길고 홀쭉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입니다. 어떤 나무였는지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답니다. 그런 뒤, 말들이 마차에 실린 그들을 숲에서 끌어냈습니다.
  그들은 어디로 가며, 그들에겐 어떤 일이 생기는 것일까?
  봄에 제비와 황새들이 왔을 때 전나무는 물어 보았답니다.
  "너희들은 큰 나무들이 어디로 가는지 아니? 그 나무들 못 만났어?"
제비들은 아무것도 몰랐답니다. 그러나 황새들은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어요.
  "그래, 그런 것 같아. 내가 이집트에서 날아올 때 새 배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 배들 위에 근사해 보이는 돛대들이 그들인 것 같았어. 그들은 전나무 냄새를 풍겼거든. 내가 인사를 전해 줄 수 있지. 그들은 머리를 높이 세우고 있었어."
  "오, 나도 바다 위를 건너갈 수 있을 만큼 빨리 자랐으면^5,5,5^. 그 바다라는 것 말이야. 대체 어떤 거야? 어떻게 생겼어?"
  "설명을 하자면 너무 길어."
  황새는 그렇게 말하고는 날아가 버렸답니다.
  "네가 젊은 것을 기뻐하라. 네 몸 속에 들어 있는 젊은 생명을 기뻐하라."
  해님이 속삭였답니다. 바람이 입맞추었고, 이슬이 눈물을 뿌렸답니다. 그러나 전나무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했지요.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자 많은 어린 나무들이 베어졌어요. 언제나 숲을 떠날 생각만 하고 있는 이 전나무와 비슷한 크기의 가장 젊고 아름다운 나무들이었답니다. 그들이 마차에 실리면 말들이 그들을 숲에서 끌고 갔습니다.
  "저들은 어디로 가는 거야? 나보다 훨씬 작은 나무도 있었어. 어디로 실려 가는거야?"
  전나무가 외쳤답니다.
  "우린 알지.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우리는 알지. 오, 그들은 가장 찬란하고도 호화스러운 데로 간단다. 우린 창문으로 들여다보았지. 그들이 따뜻한 방 한가운데에 심어져서 황금 사과, 꿀과자, 장난감 같은 아름다운 물건들과 수백 개의 등불들로 장식되는 것을 보았단다."
  참새들이 재잘거렸습니다.
  "그러고 나선 어떻게 돼?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거야?"
  "더 이상은 우리도 보지 못했어."
  "나도 그렇게 되겠지? 바다를 건너가는 것보다 그게 훨씬 나아! 오, 얼마나 멋있을까? 지금이 크리스마스라면! 이제 나도 지난 해에 떠나간 나무들처럼 멋지게 자랐어. 오, 내가 맨 먼저 마차에 타고 있다면. 내가 온갖 화려하고 찬란함으로 치장된 그 따뜻한 방에 가 있다면. 그리고 나선 어떻게 되지? 더 좋은 일, 더 아름다운 일이 생기겠지? 그렇지 않다면 왜 그렇게 치장을 해 주겠어! 더 훌륭한 것, 더 화려한 것이 올 거야. 난 그렇게 되고 싶어."
  바람과 햇빛이 말했답니다.
  "자연 속에서 네 싱싱한 젊음을 기뻐하렴."
  그러나 전나무는 그것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요. 오직 빨리 자라고 싶은 마음뿐이었답니다. 어느덧 전나무는 짙은 녹색으로 자라 있었습니다. 그 나무를 본 사람들은 말했어요.
  "참 잘생긴 나무네."
  그리고 크리스마스 때가 되자 맨 먼저 잘렸답니다. 도끼가 몸 속 깊이 때렸지요.
나무는 비명 소리와 함께 땅으로 쓰러졌어요. 나무는 매우 고통스러웠답니다.
행복은 전혀 생각할 수도 없었지요. 나무는 고향을 떠나는 것이 슬펐답니다.
사랑하는 친구들과 주위의 작은 덤불과 꽃들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새들도 더 이상 볼 수 없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답니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신나는 일이 아니었답니다.
  그 전나무는 다른 나무들과 함께 어떤 마당에 내려졌지요. 그리고 한 남자가 말하는 소리를 들었을 때에야 비로소 제정신이 들었답니다.
  "정말 근사해. 우린 이런 나무가 필요해."
  그리고 정장을 한 두 명의 하인이 나와서 그 전나무를 큰 홀로 운반해 갔어요.
  벽에는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큰 난로 옆에는 사자들이 그려진 키 큰 중국제 화병이 놓여 있었지요. 또 그 곳에는 흔들의자와 비단 소파도 있었고, 장난감들과 그림책으로 가득 찬 큰 책상도 놓여 있었답니다.
  그리고 전나무는 모래를 가득 채운 큰 통 속에 세워졌어요. 그러나 아무도 그것이 통이라는 것을 눈치챌 수가 없었답니다. 그 통을 녹색 헝겊으로 둘러 장식하고 크고 화려한 양탄자 위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나무는 온몸을 떨었답니다. 이제 어떻게 될까요? 하인들과 시녀들이 그를 장식했어요. 그들은 가지 하나에 색종이로 만든 작은 그물들을 걸었고, 그물마다 사탕을 매달았습니다. 황금 사자와 호두들은 마치 그 나무에서 자라난 것처럼 자연스럽게 매달려 있었어요. 1백 개가 넘는 붉고 푸르고 하얀 촛불들이 가지들 사이에 단단히 꽂히고, 진짜 사람처럼 보이는 인형들이 녹색 옷을 입은 채 흔들거리고 있었답니다. 나무의 맨 위 꼭대기에는 금박으로 된 큰 별이 놓여졌습니다. 눈부시도록 화려했답니다.
  모두들 저녁에 불을 밝힐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나무는 생각했답니다.
  '어서 저녁이 되었으면. 어서 촛불들이 켜졌으면. 그러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숲에서 온 나무들이 나를 볼까, 참새들이 창문으로 날아올까? 나는 여름이고 겨울이고 장식을 한 채로 이대로 서 있을까?'
  전나무는 어서 그렇게 되고 싶어서 껍질통이 날 지경이었답니다. 나무의 껍질통이란 사람들의 두통만큼이나 고약한 것이랍니다.
  드디어 양초에 불이 밝혀졌답니다. 얼마나 휘황찬란했는지 나무는 기뻐서 온 가지를 떨었지요. 그래서 그만 촛불 하나가 떨어져 녹색 잎을 태우고 말았습니다.
타닥타닥 소리가 났지요.
  "맙소사!"
  하녀가 외치면서 황급히 불을 껐답니다. 나무는 매우 조심했답니다. 그것은 정말 힘든 일이었어요. 나무는 무슨 장식이라도 잃어버릴까 봐 불안했습니다. 나무는 불꽃의 휘황찬란함에 넋이 빠져 있었던 거랍니다.
  얼마 후에 양쪽 문이 열렸습니다. 한 떼의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왔어요. 마치 나무를 덮치려는 듯이. 그리고 어른들이 의젓하게 뒤따라 들어왔어요. 아이들은 아무 말없이 서 있었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 동안이었지요. 곧 다시 소리를 질러서 방 안이 온통 울릴 지경이었답니다.
  아이들은 나무 주위를 돌며 춤을 추었어요. 선물들이 하나하나 나무에서 떨어져 나갔습니다.
  '무얼 하는 거지? 무슨 일이 일어날까?'
  나무는 불안했어요.
  촛불들은 나뭇가지 가까이까지 불타 내려왔습니다.
  촛불이 다 사그라지자 사람들은 그것을 껐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나무를 마음대로 꺾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지요.
  아이들은 우르르 나무에게 덤벼들었답니다. 가지에서 탁탁 소리가 났어요. 만약 맨 꼭대기의 금박 별을 천장에 매달아 놓지 않았더라면 나무는 땅으로 쓰러졌을 거예요.
  그런 뒤, 아이들은 가지를 흔들며 이리저리 춤을 추었답니다. 늙은 하녀만이 계속 나무를 살펴보았어요. 그 하녀도 무화과 한 알이나 사과 한 알이라도 걸려 있지 않을까 하여 가지들 사이를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랍니다.
  "이야기해 주세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주세요."
  아이들은 외치면서 작고 뚱뚱한 남자를 나무 밑으로 끌고 왔답니다. 그 남자는 전나무 아래에 앉았지요.
  "우리가 녹색 나무 아래에 있으면 나무도 함께 들을 수가 있거든. 하지만 난 꼭 한 가지만 이야기할 거야. 너희들 이베데 아베데 이야기를 들을래, 아니면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서도 살아나 공주님을 얻은 클룸페 둠페 이야기를 들을래?"
  "이베데 아베데요!"
  몇몇 아이가 외쳤답니다.
  "클룸페 둠페요!"
  다른 아이들이 외쳤어요.
  전나무도 아이들처럼 하고 싶었답니다.
  그 남자는 클룸페 둠페 이야기를 시작했지요.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도 살아나 공주님을 얻은 이야기를요. 그러자 아이들은 또 박수를 치면서 외쳤답니다.
  "다른 것도 이야기해 주세요."
  아이들은 이베데 아베데 이야기도 듣고 싶어했답니다. 그러나 약속대로 한 가지 이야기밖에 들을 수 없었습니다.
  전나무는 말없이 생각에 잠겨 서 있었어요. 숲속의 새들도 그런 이야기는 한 적이 없었답니다.
  '클룸페 둠페가 계단을 굴러 떨어졌어. 그래도 공주님을 얻었다니. 그래, 세상은 그렇게 되는 모양이야.'
  전나무는 그 이야기가 진짜라고 믿었지요. 그 이야기를 한 사람은 친절한 남자였으니까요.
  "그래, 그래! 누가 알겠어? 어쩌면 나도 계단을 굴러 떨어져서 공주님을 얻게 될지."
  그리고 그는 다음 날도 다시 촛불과 장난감과 과일들로 치장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답니다.
  "내일은 떨지 말아야지. 나는 내게 주어진 모든 찬란함을 즐길 거야. 내일이면 다시 클룸페 둠페 이야기를 듣게 되겠지? 어쩌면 이베데 아베데 이야기도 듣게 될지 몰라."
  나무는 그날 밤 내내 조용히 생각에 잠겨 서 있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하인과 하녀들이 들어왔답니다.
  '이제 새 장식을 시작하려나 봐.'
  나무는 기뻐했지요. 그러나 그들은 나무를 방에서 끌고 나갔답니다. 계단으로 끌고 내려가서 햇빛이라곤 비치지 않는 어두운 구석에 세웠습니다.
  '이게 무슨 일일까? 무엇을 하려는 거지?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얻어듣겠어?'
  나무는 벽에 몸을 기댄 채 생각에 잠겨 있었답니다.
  여러 날이 지나갔습니다. 그 동안 아무도 나무를 찾지 않았답니다. 어느날 누군가가 왔지만 그것은 큰 상자 몇 개를 구석에 세우기 위해서였지요. 이제 나무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완전히 잊혀진 것입니다.
  '바깥은 겨울이구나. 땅은 딱딱하고 눈으로 덮였겠지. 그러니 사람들은 나를 심을 수가 없어. 봄까지 날 보호하느라고 이 곳에 세워 두었을 거야.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몰라. 사람들은 참 착해. 여기가 어둡지만 않다면. 그리고 외롭지만 않다면.
작은 토끼도 없구나. 저 바깥 숲속에선 눈이 오고 작은 토끼가 나를 뛰어넘어가도 괜찮았는데. 정말이야. 날 훌쩍 뛰어넘어가도 괜찮았는데. 그러나 그 땐 그것을 참을 수가 없었지. 이 곳은 너무 외로워.'
  "찌익찍, 찌익찍."
  그 때 작은 생쥐가 휙 스치고 지나갔어요. 뒤이어 또 한 마리가 나왔지요. 그들은 킁킁거리면서 전나무의 냄새를 맡았답니다. 그리고는 전나무가지들 사이로 살짝 기어 들어왔어요.
  "끔찍한 추위야. 그것만 아니라면 여긴 참 좋은데. 그렇지 않니? 늙은 전나무야."
  작은 생쥐들이 말했습니다.
  "난 늙지 않았어! 나보다 훨씬 늙은 나무들도 많아."
  "너 어디서 왔니? 네 이름이 뭐야?"
  생쥐들은 몹시 호기심이 많았어요.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어딘지 얘기 좀 해 줘. 너 거기 가 봤니? 음식물 저장실에 가 본 적이 있니? 널판때기 위엔 치즈가 놓여 있고 천장에는 햄이 걸려 있는 곳, 수지 양초를 칠한 바닥에서 춤을 추는 곳, 말라서 들어갔다가 살이 쪄서 나오는 곳 말이야."
  "난 그런 건 몰라. 그러나 해님이 비치고 새들이 노래하는 숲은 잘 알지."
  전나무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모두 해 주었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는 작은 생쥐들은 귀를 기울였습니다.
  "많은 걸 보았구나. 넌 참 행복했겠구나!"
  "내가?"
  전나무는 자신이 이야기한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어요.
  "그래, 정말 즐거운 시기였어."
  그리고 과자와 촛불이 장식되었던 크리스마스 이브에 관해 이야기했답니다.
  "오! 얼마나 행복했겠니, 늙은 전나무야."
  생쥐들이 부러워했답니다.
  "난 전혀 늙지 않았어. 이번 겨울에 숲에서 나온걸. 난 아주 젊은 나이란다. 좀 빨리 자랐을 뿐이야."
  "너 참 이야기를 잘하는구나."
  생쥐들이 말했지요.
  다음 날 밤 그들은 네 마리의 다른 작은 생쥐들과 함께 왔어요. 그들도 나무가 얘기하는 것을 들으러 온 것이죠. 나무는 이야기를 할수록 점점 더 분명하게 그 모든 것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생각했지요.
  '정말 즐거운 때였어. 그 때가 다시 올 수 있을 거야. 한 번 더 올 거야.
클룸페.. 둠페는 계단을 굴러 떨어졌지만 공주님을 얻었지. 어쩌면 나도 공주님을 얻을 수 있을지 몰라.'
  그러면서 전나무는 숲속에서 자라고 있는 작고 귀여운 자작나무를 생각했답니다.
그 어린 자작나무야말로 전나무에게는 진짜 아름다운 공주였으니까요.
  "클룸페 둠페가 누구야?"
  생쥐들이 물었어요.
  그래서 전나무는 그 동화를 이야기해 주었답니다. 전나무는 단어 하나하나를 모두 기억해 낼 수 있었지요. 생쥐들은 너무나 재미있어서 나무 꼭대기까지 뛰어오를 뻔하였답니다.
  다음 날 밤에는 더 많은 생쥐들이 소문을 듣고 몰려왔지요. 일요일에는 두 마리의 큰 쥐까지 왔답니다. 그러나 이야기가 재미없다고 했지요. 이 말은 생쥐들을 슬프게 했답니다. 생쥐들도 더 이상 같은 이야기는 재미없다고 여기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이 이야기 하나만 알고 계세요?"
  큰 쥐들이 물었답니다.
  "이것 하나만요. 이 이야기는 내가 가장 행복했던 저녁에 들은 거예요. 그러나 나는 그 때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생각을 못했었죠."
  "그건 참 재미없는 이야기로군요. 햄과 수지 양초가 나오는 이야기나, 음식물 저장실 이야기는 모르세요?"
  "몰라요."
  "그래요? 그럼 고맙습니다."
  큰 쥐들은 돌아갔답니다. 결국은 생쥐들도 다 가버렸지요. 나무는 한숨을 쉬었답니다.
  "그 날랜 생쥐들이 둘러앉아 내 이야기를 들을 때는 참 좋았는데. 이제 그것도 다 지나갔구나. 내가 다시 끌려 나가게 되면 정말 기쁠 거야. 그걸 생각해야지."
  어느 날 아침이었답니다. 사람들 소리로 시끌벅적했습니다. 상자들이 치워지고 나무도 끌어냈답니다. 사람들은 나무를 내던졌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해가 비치는 계단으로 나무를 끌어다 놓았지요.
  '이제 다시 생활이 시작되는구나.'
  나무는 생각했답니다. 그리고 싱싱한 공기와 햇빛을 느꼈지요. 나무는 바깥 마당에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나무는 자기 자신을 살펴보는 일 따위는 잊고 있었지요. 주변에 볼 것이 너무나 많았거든요.
  마당은 정원과 맞붙어 있었고, 정원에는 꽃이 만발해 있었습니다. 장미꽃들은 작은 격자 울타리 위로 향기를 풍기며 늘어져 있었고, 보리수나무도 꽃을 피우고 있었답니다. 제비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자신의 주인이 왔다고 소리질렀습니다.
  그러나 제비들이 말한 것은 전나무가 아니었습니다.
  "난 이제 살아난 거야."
  전나무는 환호하면서 가지들을 펼쳤답니다. 그러나 가지들은 전부 시들어 노란색이 되어 있었고 잡초와 쐐기풀 사이의 구석진 곳에 세워져 있었지요.
전나무의 머리 꼭대기에는 아직도 금박 별이 햇빛 속에서 빛을 내고 있었답니다.
  마당에서는 몇 명의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어요. 크리스마스 때 나무 주위를 돌며 즐거워했던 그 아이들이었지요.
  한 꼬마가 달려와 나무의 금박 별을 뽑아 버렸답니다.
  "봐, 저 못생긴 늙은 전나무 위에 이런 것이 있다니."
  그리고는 그 가지를 밟았어요. 나뭇가지는 아이의 장화 아래에서 우지끈 소리를 냈답니다.
  나무는 정원에 핀 꽃들을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자기 자신도 바라보았답니다.
그리고 숲에서 지냈던 날과 크리스마스 이브를 생각했지요. 클룸페 둠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던 생쥐들도 생각했답니다.
  "다 지나갔구나, 지나갔어. 그 때가 좋았었는데. 이젠 지나갔구나. 다 지나갔어."
  그 때 하인이 나와서 전나무를 조각조각 잘랐습니다. 그리고는 작은 나뭇단으로 묶었습니다. 나무는 큰 양조 가마 밑에서 밝게 타올랐지요. 나무는 깊이 한숨을 쉬었답니다. 그리고 한숨은 작은 폭발음이 되었습니다. 놀고 있던 아이들이 달려와서 불 앞에 앉아서 외쳤답니다.
  "빵빵! 탕탕!"
  그러나 불꽃이 소리를 낼 때마다 나무는, 숲에서의 여름날과 별들이 반짝이던 겨울날, 크리스마스 이브를 생각했습니다. 클룸페 둠페 동화를 생각했지요.
나무는 완전히 불타 버렸습니다.
  마당에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는데, 가장 어린 꼬마가 금박 별을 가슴에 달고 있었지요. 전나무가 가장 행복했던 밤에 달았던 그 별이지요. 그러나 그 시간은 지나갔지요. 나무와 함께, 이야기와 함께 지나가 버리고 말았답니다. 모든 이야기가 이렇게 지나가는 것이랍니다

장다리와 꺼꾸리  안데르센
 
어느 마을에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살고 있었답니다. 둘 다 클라우스라는 이름이었지요. 한 클라우스는 네 마리의 말을 갖고 있었지만, 또 다른 클라우스는 단 한 필의 말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답니다. 사람들은 그 둘을 서로 구별하기 위해서 네 필의 말을 가진 클라우스를 '장다리 클라우스', 단 한 필의 말을 가진 클라우스를 '꺼꾸리 클라우스'라고 불렀지요. 이제 우리는 그 두 클라우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듣게 될 거예요. 이건 진짜 이야기랍니다.
  꺼꾸리 클라우스는 한 주일 내내 장다리 클라우스를 위해 밭을 매고 한 마리뿐인
자기의 말을 빌려 주었답니다. 물론 장다리 클라우스도 꺼꾸리 클라우스를
도왔지요. 하지만 장다리 클라우스는 1주일에 한 번만 도왔답니다. 그것도
일요일에만요.
  이럇! 무슨 소리냐구요? 꺼꾸리 클라우스가 말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소리랍니다.
말들은 채찍을 맞으면서 열심히 일을 했지요.
  태양은 찬란하게 비추고, 교회의 종들은 교회로 오라고 울렸답니다.
일요일이니까요. 사람들은 모두 잘 차려입고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러 교회로
가지요. 하지만 꺼꾸리 클라우스는 다섯 마리의 말로 밭을 매느라 열심이었습니다.
꺼꾸리 클라우스는 채찍을 휘두르며 "후, 내 말들" 하고 외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기뻤답니다.
  "너, 그렇게 말해선 안 돼. 한 마리만 네 거잖아."
  장다리 클라우스가 말했지요.
  그러나 꺼꾸리 클라우스는 사람들이 자기 옆을 지나갈 때면 그렇게 말해선 안
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후, 내 말들" 이라고 외치지요. 그러자 화가 난 장다리
클라우스가 말했어요.
  "한 번만 더 그렇게 말하면 네 말을 죽여 버릴 거야. 그러면 넌 끝장이야."
  "다시는 그렇게 말하지 않을게. 정말이야."
  꺼꾸리 클라우스는 약속했지요. 그러나 다시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하자, 꺼꾸리 클라우스는 몹시 기분이 좋았답니다. 다섯 마리의
말을 끌고 밭을 매고 있으니 아주 멋지게 보일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채찍을 휘두르며 외쳤지요.
  "후, 내 말들."
  "어디 맛좀 봐라."
  장다리 클라우스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요. 그래서 꺼꾸리 클라우스의 말을
곤봉으로 쳐서 그만 죽이고 말았답니다.
  "아, 이제 나는 말이 한 마리도 없어."
  꺼꾸리 클라우스는 울어 버렸답니다.
  그는 말가죽을 벗겨서 바람에 잘 말린 뒤 그것을 푸대자루 속에 넣었지요.
그리고는 말가죽을 팔기 위해 도시로 갔어요.
  그는 몹시 먼 길을 가야만 했답니다. 그런데 크고 어두운 숲을 지나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어요. 길을 찾기도 전에 저녁이 되고 말았지요. 또 너무 멀기 왔기
때문에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길가에 큰 농가가 하나 있었답니다. 창문은 모두 닫혀 있었지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기서 하룻밤 머물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농가로 다가가 문을
두드렸어요.
  그러자 한 부인이 문을 열고 나왔지요. 하지만 부인은 꺼꾸리 클라우스의 절박한
이야기를 듣고도 이 곳에서 머물 수 없다고 했어요. 남편이 집에 없어 낯선 사람을
받아들일 수가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헛간이라도 좋습니다."
  꺼꾸리 클라우스 사정했답니다. 하지만 부인은 쾅 하고 문을 닫아 버렸어요.
때마침 농가 옆에는 건초 더미가 놓여 있었고, 이 건초 더미와 농가 사이에는
평평한 초가 지붕을 얹은 작은 헛간이 있었답니다.
  "옳지, 저 위에서 자면 되겠구나."
  꺼꾸리 클라우스는 초가 지붕을 바라보면서 기뻐했지요.
  "근사한 침대가 되겠어. 설마 황새가 날아와서 다리를 물지는 않겠지?"
  그래요, 초가 지붕 위에는 둥지를 틀고 있는 황새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꺼꾸리 클라우스는 지붕위로 기어 올라갔답니다. 그리고는 자리를 잡고서
누웠지요. 그런데 바로 앞으로는 농가의 창문이 나 있어서 창문으로 방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지요.
  방 안에는 큰 식탁이 있었답니다. 식탁 위에는 포도주와 구운 고기,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음식이 차려져 있었지요.
  식탁에는 농부의 아내와 성당의 관리인 둘만이 앉아 있었어요. 부인은 성당
관리인에게 포도주룰 따라주었지요. 성당 관리인은 생선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저걸 좀 얻어먹을 수 있었으면^5.5.5^."
  꺼꾸리 클라우스는 군침을 삼키며 방 안을 자세히 살펴보았답니다. 방안에는 정말
맛있는 과자들이 잔뜩 있었지요. 그래요, 꼭 잔칫집 같았어요.
  그 때 말발굽 소리가 들려 왔답니다. 농부였습니다. 말을 타고 집에 돌아오고
있는 농부는 마음씨가 아주 착한 사람이었답니다. 하지만 농부는 성당 관리인을
굉장히 싫어했지요. 성당 관리인만 보면 꼭 미친 사람처럼 흥분하곤 하지요.
  오늘도 성당 관리인은 농부가 집에 없는 것을 알고 농부의 아내에게 인사라도
하기 위해서 놀러 왔던 거예요. 농부를 닮아 마음씨 좋은 부인도 정성껏 음식을
대접하고 있던 참이었지요.
  그들은 농부가 오는 소리를 듣자 소스라치게 놀랐답니다. 부인은 성당 관리인에게
뒤쪽 모퉁이에 놓여 있는 빈 상자 속에 들어가라고 했지요. 그리고는 재빨리 음식을
모두 화덕 속에다 감추었어요. 만약 남편이 보게 되면 틀림없이 모든 것을
알아차리게 될 테니까요.
  "저걸 어째!"
  꺼꾸리 클라우스는 음식이 없어지는 것을 보고는 안타까운 소리를 냈지요.
  "거기 위에 누가 있소?"
  그 소리를 들은 농부가 꺼꾸리 클라우스를 올려다보았지요.
  "왜 거기 누워 있소?"
  꺼꾸리 클라우스는 길을 잃은 이야기와 함께 하룻밤 머물게 해 준다면 고맙겠다고
했지요.
  "좋소. 어서 우리 집으로 갑시다. 가서 무얼 좀 먹도록 합시다."
  이번에는 부인도 꺼꾸리 클라우스를 친절하게 대했답니다. 하지만 보리죽만
내놓았지요.
  배가 고팠던 농부는 잘 먹었답니다. 하지만 꺼꾸리 클라우스는 화덕 속에 들어
있는 음식들을 생각하면서 군침만 삼켰지요. 그는 화덕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지요.
보리죽은 정말 맛이 없었답니다. 그래서 꺼꾸리 클라우스는 발치에 놓아 둔
푸대자루 위에 발을 올려 놓은 채 화덕 속의 음식을 생각했지요. 그러자 말가죽이
들어 있는 푸대자루 속에서 부스럭부스럭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아니, 푸대자루 속에 뭐가 들어 있소?"
  농부가 물었지요.
  "오, 이 속에 마법사가 있지요."
  꺼꾸리 클라우스는 꾀를 내었어요.
  "우리가 보리죽을 먹어선 안 된다고 말하는군요. 우리를 위해 화덕 속에 구운
고기와 생선과 과자를 만들어 놓았다는군요."
  꺼꾸리 클라우스는 다시 푸대자루 위에 발을 올려 놓고는 말가죽이 부스럭부스럭
소리를 내게 했어요.
  "이번엔 또 뭐라고 하는 거요?"
  농부가 신기한 듯이 물었지요.
  "마법사가 대꾸했습니다. 포도주 세 병도 우릴 위해 만들어 놓았다는군요. 그
포도주는 저기 구석에 있다는군요."
  부인은 하는 수 없이 감춰 두었던 고기와 생선은 물론 포도주도 내와야 했답니다.
  농부는 술을 마시면서 몹시 기분이 좋았어요. 농부도 푸대자루 속에 든 마법사를
갖고 싶었어요.
  "마법사는 악마도 부를 수 있을까?"
  농부가 물었어요.
  "기분이 좋으니까 악마까지도 한 번 보고 싶네, 그려."
  "그러지요."
  꺼꾸리 클라우스는 말했어요.
  "마법사는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이봐, 그렇지?"
  그러면서 꺼꾸리 클라우스는 푸대자루를 건드려 소리가 나게 했지요.
  "마법사가 네라고 대답하는 것 들리지요? 그러나 악마는 너무나 흉해 보인답니다.
차라리 보지 않는 게 나을 텐데요."
  "아니, 하나도 겁 안나네. 대체 악마가 어떻게 생겼소?"
  "악마는 성당 관리인과 꼭 닮은 모습으로 나타날 겁니다."
  "그래? 그것 참 흉하군. 내가 성당 관리인을 보기 싫어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하지만 뭐 괜찮아. 사람은 원래 악마 같은데 뭘. 그러니 쉽게 참을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내게 너무 가까이는 오지 말게 해주시오."
  "좋아요. 마법사에게 물어 볼게요."
  꺼꾸리 클라우스는 푸대자루에 귀를 가까이 갖다 대었지요.
  "마법사가 뭐라고 그래요?"
  "가서 저 구석에 있는 상자를 열어 보면, 그 안에 악마가 웅크리고 앉아
있다는군요. 그러나 악마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뚜껑을 꼭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군요."
  "뚜껑을 잡고 있도록 날 좀 도와 주겠나?"
  농부는 상자로 다가갔답니다. 성당 관리인이 숨어 있는 상자로 말이에요. 성당
관리인은 겁을 잔뜩 집어먹고서 가슴을 조이고 있었지요.
  농부는 뚜껑을 약간 열고 그 안을 들여다보았어요.
  "악마가 있어! 정말 성당 관리인처럼 생겼구려. 정말 끔찍해."
  농부는 그렇게 외치면서 뒤로 풀쩍 물러났어요. 두 사람은 다시 술을 마셨답니다.
밤이 이슥해지도록 마셨어요.
  "자네, 내게 그 마법사를 팔 수 없나?"
  농부가 말했어요.
  "대신 원하는 건 뭐든지 말해. 그래, 자네에게 한 됫박의 돈을 주지."
  "아니, 그럴 수 없어요."
    꺼꾸리 클라우스는 거절했지요.
  "이 마법사가 내게는 너무나 소중하답니다."
  "그래도 정말 마법사가 갖고 싶다네."
  농부는 마법사를 팔라고 계속 졸랐답니다.
  "그럽시다."
  마침내 꺼꾸리 클라우스는 승낙했지요.
  "당신이 마음씨 좋은 사람이라서 할 수 없이 마법사를 파는 겁니다. 대신
약속대로 한 됫박의 돈을 주어야 해요."
  "물론이지!"
  농부는 기분 좋게 말했어요.
  "그런데 악마가 들어 있는 상자는 자네가 가져가야 해. 나는 저 상자를 내 집에
두고 싶지 않아. 악마가 아직도 그 안에 들어 있는지도 몰라."
  꺼꾸리 클라우스는 말린 말가죽이 들어 있는 자루를 농부에게 주었답니다. 그
대신 한 됫박의 돈을, 꼭꼭 채워서 받았지요. 게다가 농부는 돈과 상자를 가져갈 수
있도록 큰 짐수레까지 주었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꺼꾸리 클라우스는 돈과 성당 관리인이 숨어 있는 상자를 가지고 떠났어요.
  숲의 반대 편에는 크고 깊은 강이 흐르고 있었답니다. 강물이 몹시 세게 흐르고
있어서 물결을 거슬러 헤엄칠 수가 없었지요.
  강에는 다리가 하나 놓여져 있었지요. 꺼꾸리 클라우스는 다리 한가운데에 멈춰
서서 상자 안의 성당 관리인이 들을 수 있도록 큰소리로 외쳤지요.
  "그래, 이 바보 같은 상자를 가지고 가서 뭘 하겠어? 무겁기만 하지. 안에
돌멩이가 들었나, 원 계속 가지고 가다간 피곤하기만 할 거야. 그러니 강에다 던져
버려야겠다. 다행히 상자가 강물을 타고서 나를 쫓아온다면 다행이고, 안 그러면
그만이지 뭐."
  그리고는 마치 강물 속에 상자를 당장 던져 넣기라도 할 것처럼 약간
들어올렸습니다.
  "그러지마. 그만둬!"
  성당 관리인이 상자 안에서 소리쳤어요.
  "제발 나를 꺼내줘!"
  "후우!"
  꺼꾸리 클라우스는 겁이 난다는 듯이 외쳤어요.
  "악마가 아직 있군. 빨리 강에다 던져 버려야겠다. 그래야 어서 물에 빠져 죽지."
  "안 돼! 안 돼!"
  성당 관리인은 외쳤어요.
  "나를 살려 주면 한 됫박의 돈을 줄게."
  "아, 그러면 문제가 좀 다르지."
  꺼꾸리 클라우스는 상자를 열었답니다. 성당 관리인은 재빨리 기어 나와서 빈
상자를 강물에다 던지고는 재빨리 집으로 갔지요. 물론 꺼꾸리 클라우스는 한
됫박의 돈을 받았답니다. 이제 손수레는 돈으로 가득 찼어요.
  "말 값을 아주 톡톡히 받았는걸."
  꺼꾸리 클라우스는 매우 기뻤답니다.
  그는 곧 집으로 돌아와 돈을 꺼내 방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아 놓았지요.
  "내가 죽은 말 덕분에 이렇게 부자가 된 것을 장다리 클라우스가 알게 된다면
몹시 화를 낼 거야. 그러니 자랑하지는 말아야지."
  꺼꾸리 클라우스는 이웃집 소년을 시켜 장다리 클라우스에게 재는 됫박을 빌려
오게 했답니다.
  "이걸로 뭘 하려는 걸까?"
  이상하게 생각한 장다리 클라우스는 됫박 아래쪽에다 콜타르를 칠해 놓았지요.
그러면 그 물건이 약간이라도 붙어 남아 있게 되지요.
  장다리 클라우스의 생각은 맞아떨어졌습니다. 됫박을 되돌려 받았을 때 그 안에는
은화 세 개가 붙어 있었답니다.
  "어떻게 된 거지?"
  장다리 클라우스는 즉시 꺼꾸리 클라우스에게 달려갔습니다.
  "너 어디서 그렇게 많은 돈을 얻었니?"
  "아 그건 내 말가죽 값이야. 어제 저녁에 팔았지."
  "정말 값을 잘 받았구나."
  욕심이 생긴 장다리 클라우스는, 재빨리 집으로 달려와 네 마리 말을 모두 일부러
죽여 버렸답니다. 그리고 나서 장다리 클라우스는 큰소리로 외치면서 거리를
돌아다녔지요.
  구두장이들이 모두 몰려나와 얼마를 받겠느냐고 물었어요.
  "가죽 하나에 은화 한 됫박이지요."
  장다리 클라우스는 즐겁게 말했어요. 그러자 모두들 소리를 질렀습니다.
  "정말 미친 놈이로구먼. 누가 그렇게 비싸게 쳐준대?"
  "가죽이오, 가죽, 가죽 사시오."
  장다리 클라우스는 다시 외쳤지요. 그는 값이 얼마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은화 한
됫박" 이라고 말했어요.
  "우릴 바보로 아는구먼."
  모두가 말했습니다. 그리고는 구두장이들은 구두를 팽팽하게 만들 때 쓰는
가죽끈을, 무두장이들은 가죽 앞치마를 들고 나와서 장다리 클라우스를 마구 때리는
것이었어요.
  "가죽이오, 가죽?"
  그들은 장다리 클라우스를 흉내 내며 비웃었지요.
  "우리를 바보로 아는 너 같은 놈은 혼이 나야 해. 이 도시에서 썩 꺼져."
  장다리 클라우스는 힘껏 도망치는 수밖에 없었답니다.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장다리 클라우스는 화가 났지요.
  "꺼꾸리 클라우스에게 꼭 갚아 줄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꺼꾸리 클라우스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할머니는 꺼꾸리
클라우스를 항상 못살게 굴었지만 꺼꾸리 클라우스는 몹시 슬펐어요.
  꺼꾸리 클라우스는 할머니를 자기 침대에 뉘었답니다. 할머니가 혹시 다시
살아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지요.
  그래서 할머니는 그날 밤 꺼꾸리 클라우스의 침대에 편안하게 누워 있었답니다.
꺼꾸리 클라우스는 의자 위에서 잠을 잤습니다.
  밤이 깊었답니다. 그런데 살그머니 문이 열리더니 막대기를 손에 든 장다리
클라우스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꺼꾸리 클라우스의 침대가 어디에 놓여 있는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장다리 클라우스는 곧장 침대로 다가가서 막대기를 내리쳤지요.
그리고는 소리쳤어요.
  "이 나쁜 놈! 이제 더 이상 날 속이지 못할 거다."
  장다리 클라우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자, 꺼꾸리 클라우스는 생각했지요.
  "정말 못된 친구로구나. 나를 때려 죽이려 하다니. 할머니가 이미 돌아가신 게 참
다행이야. 만약 살아 계셨더라면 큰일날 뻔했군."
  꺼꾸리 클라우스는 할머니에게 외출복을 입혔답니다. 그리고 이웃집에서 말을
빌렸지요.
  꺼꾸리 클라우스는 할머니를 마차 뒷자리에 앉히고 숲을 지나 달렸어요.
  아침에 어느 큰 선술집 앞에 닿았습니다. 꺼꾸리 클라우스는 마차를 멈추고, 뭘 좀
먹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 술집 주인은 마음씨가 좋은 사람이었지요. 하지만
성질이 몹시 급해서 화를 자주 냈습니다.
  "어서 오게."
  술집 주인이 꺼꾸리 클라우스에게 말했지요.
  "아침 일찍 왔네. 그려. 그것도 좋은 옷으로 차려입고 말이야."
  "네. 할머니와 도시에 나가는 길이거든요. 할머니는 저기 마차에 앉아 계시죠.
우리 할머니에게도 술을 한 잔 갖다 주시지 않으시겠어요? 그런데 할머니는 귀가
먹었으니까 아주 크게 말씀하셔야 해요."
  "그래, 그렇게 하지."
  술집 주인은 큰 유리잔에 술을 따라서는 꼼짝도 않고 앉아 있는 할머니에게
다가갔지요.
  "할머니, 손자가 드리는 술이라오."
  술집 주인은 말했지요. 그러나 할머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만
있었답니다.
  "안 들리세요?"
  술집 주인은 할머니의 귀에 바짝 대고서 큰소리로 외쳤어요.
  "여기, 당신 손자가 드리는 술이 있어요."
  술집 주인은 말했지요.
  그러나 할머니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만 있었답니다.
  "안 들리세요?"
  술집 주인은 다시 한 번 소리쳤답니다. 몇 번이고 그렇게 소리를 쳤지요. 그래도
할머니는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화가 난 술집 주인은 할머니를 잡고서 이리저리 흔들었답니다. 그 바람에
할머니는 뒤로 넘어지고 말았지요.
  "이게 무슨 짓이오."
  꺼꾸리 클라우스는 문 밖으로 뛰쳐나와 술집 주인의 멱살을 잡았어요.
  "우리 할머니를 죽였어! 당신이 죽였어!"
  "이게 어떻게 된 거지?"
  술집 주인은 몹시 괴로워했지요.
  "모든 게 이 놈의 성질 때문이야. 이거 보게, 꺼꾸리 클라우스. 내 자네에게 한
됫박 가득 돈을 줌세. 또 할머니도 우리 할머니처럼 잘 묻어 줌세. 일이 이렇게
됐으니 어떡하겠나? 달리 위로할 방법이 없네. 이건 정말 끔찍한 일이야."
  이렇게 해서 꺼꾸리 클라우스는 또 한 됫박의 돈을 얻었답니다. 그리고 술집
주인은 할머니를 자기 할머니처럼 여기고 정성껏 묻어 주었지요.
  많은 돈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온 꺼꾸리 클라우스는 다시 이웃집 소년을 장다리
클라우스에게 보냈답니다. 재는 됫박을 좀 빌리기 위해서였지요.
  "뭐라고?"
  장다리 클라우스는 깜짝 놀랐지요.
  "꺼꾸리 클라우스가 죽지 않았단 말이야? 내가 가서 직접 봐야겠다."
  그래서 그는 직접 재는 됫박을 들고 꺼꾸리 클라우스를 찾아왔답니다.
  "아니, 너 그 많은 돈을 어디서 얻었니?'
  그는 꺼꾸리 클라우스가 살아 있다는 것도 놀랐지만 한 됫박의 은화를 보고 더욱
놀랐지요.
  "그날 침대에 누워 있었던 사람은 바로 우리 할머니였어."
  꺼꾸리 클라우스는 장다리 클라우스를 놀리며, 모든 것을 말했지요. 장다리
클라우스는 몹시 분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번에는 장다리 클라우스의 할머니가 돌아가셨답니다. 장다리
클라우스는 몹시 기뻐하면서 약제사를 찾아가 죽은 사람을 사지 않겠느냐고
물었지요.
  "그 사람이 누구요?"
  약제사가 물었어요.
  "바로 우리 할머니지요."
  장다리 클라우스는 신이 나서 말했지요.
  "이런 못된 손자가 다 있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정성스럽게 장사는 못 지내줄
망정 할머니를 돈으로 팔려고 하다니."
  그제야 장다리 클라우스는 큰 죄를 짓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장다리 클라우스는 몹시 부끄러워하면서 자신을 채찍질하며 집으로
달렸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그가 미쳤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습니다.
  "너에게 꼭 복수하고 말 테다!"
  장다리 클라우스는 다짐했지요.
  집에 도착한 장다리 클라우스는 큰 푸대자루를 가지고 꺼꾸리 클라우스에게
달려갔어요.
  "너 나를 또다시 바보로 만들었겠다. 내 말들을 때려 죽인 것도 모두가 너
때문이야. 이제 더 이상 나를 바보로 만들 수는 없을 거야."
  장다리 클라우스는, 꺼꾸리 클라우스의 몸을 묶고는 자루 속에 집어 넣었지요.
  "너를 강물에 빠뜨려 버릴 거야."
  강으로 가는 길은 몹시 멀었답니다. 게다가 꺼꾸리 클라우스는 아주 무거웠지요.
  장다리 클라우스는 교회 곁을 지나가게 되었어요. 오르간 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은
찬송가를 부르고 있었어요. 장다리 클라우스는 꺼꾸리 클라우스가 든 푸대자루를
내려 놓았답니다. 교회 안에 들어가서 합창을 듣고 가는 것도 괜찮은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꺼꾸리 클라우스가 빠져 나올리도 없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교회에
와 있었답니다. 그래서 장다리 클라우스는 교회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사람 살려요!"
  꺼꾸리 클라우스는 푸대자루 안에서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소리를 질렀어요.
하지만 밧줄을 풀고서 푸대자루 속에서 빠져 나올 수는 없었답니다.
  그 때 한 늙은 목자가 교회 쪽으로 오고 있었지요. 눈처럼 흰 머리에 손에는 긴
지팡이를 들고 있었어요. 늙은 목자는 소 떼를 몰고 오던 길이었답니다. 그런데
그만 꺼꾸리 클라우스가 들어 있는 자루에 부딪혀 넘어지고 말았어요.
  "아이쿠! 무슨 일이지? 난 아직도 젊은데, 벌써 하늘 나라에 와 있다니."
  꺼꾸리 클라우스는 깜짝 놀랐지요.
  "아 불쌍한 내 신세. 나는 늙었는데도 아직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오."
  늙은 목자도 한탄을 했지요.
  "자루를 풀어 주세요. 나 대신 들어와 계세요. 그러면 곧 하늘 나라로 갈 수
있답니다."
  꺼꾸리 클라우스는 소리쳤어요.
  "그래? 기꺼이 그렇게 하지."
  늙은 목자는 자루를 풀어 주었지요. 꺼꾸리 클라우스는 얼른 자루에서
나왔습니다.
  "젊은이, 나 대신 가축을 잘 돌봐 주게."
  노인은 자루 안으로 들어갔답니다. 꺼꾸리 클라우스는 자루를 단단히 묶은 뒤 소
떼를 몰고서 도망갔지요.
  조금 있으려니 장다리 클라우스가 교회에서 나왔답니다. 그는 다시 자루를 등에
메었지요. 자루는 훨씬 가벼워져 있었어요. 늙은 목자는 꺼꾸리 클라우스보다 훨씬
가벼웠기 때문이지요.
  "어떻게 이렇게 가벼워졌지? 그래, 아마 내가 찬송가를 듣고 와서 그럴거야."
  이윽고 강에 이르렀답니다. 장다리 클라우스는 흐르는 강물 속에 자루를 힘껏
던졌지요. 그리고는 큰소리로 소리쳤어요.
  "나쁜 놈아! 이제 더 이상 날 바보로 만들지 못할 거야."
  장다리 클라우스는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요?
저쪽에서 가축을 몰고 오는 꺼꾸리 클라우스를 만난 거예요.
  장다리 클라우스는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꺼꾸리 클라우스는 웃으며 대답했어요.
  "그래, 맞아. 자넨 방금 날 강물에 내던졌지."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동물들을 얻은 거지?"
  "이것들은 바다 가축일세."
  꺼꾸리 클라우스는 설명하기 시작했어요.
  "난 자네에게 감사하고 있어. 날 물에 빠져 죽게 해서 말일세. 그래도 난 이렇게
살아 있다네. 더군다나 부자로 말일세. 자네가 날 다리 위에서 차가운 강물 속으로
던졌을 때, 이제 죽었구나 싶었지. 나는 곧 강바닥 깊숙이 가라앉았지. 강바닥에는
아름답고 연한 풀들이 자라고 있었는데, 나는 그 풀 위로 떨어졌어. 그런데 자루가
열리지 않겠나? 눈같이 하얀 옷을 입고 녹색 화관을 쓴 사랑스런 처녀가 내 손을
잡으며 묻더군. '네가 꺼꾸리 클라우스니? 네게 바다 가축을 줄게. 저 위로 한참
올라가면 바다 가축이 있단다. '강은 그 곳 바다 사람들의 큰길이었다네. 바다
사람들은 바다에서부터 육지까지 걸어가기도 하고 물살을 타고 가기도 했어. 우리가
살고 있는 육지까지 말이야. 그 곳은 온갖 꽃들과 싱싱한 풀들이 피어 있어 몹시
아름답다네. 물 속에서 헤엄치던 물고기들은 내 옆을 스치고 지나갔지. 마치 새들이
공중을 가로질러 가듯이 말이야. 정말 얼마나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지
몰라. 게다가 구릉과 제방 위에서 풀을 뜯는 근사한 가축들이라니!"
  "그렇담, 넌 어째서 다시 나온 거야? 그렇게 아름답다면, 나 같으면 돌아오지
않았을 텐데."
  장다리 클라우스가 물었지요.
  그러자 꺼꾸리 클라우스가 말했어요.
  "나는 여기가 더 좋아. 하지만 그 아름다운 곳을 잊을 수가 없어. 내 이야기 잘
들었지? 저 위쪽에 바다 가축이 있다고 바다 처녀가 얘기했던 것 말이야. 그 곳을
가려면 강을 따라 가면 되는데 강이 얼마나 꼬불꼬불 흘러가는지 몰라. 때로는
여기서, 때로는 저기서 휘어지지. 그리고 굉장히 멀어. 하지만 들판을 가로질러 가면
훨씬 더 빨리 바다 가축에게 갈 수가 있단다."
  "오, 너는 참 행복한 사람이로구나!"
  장다리 클라우스는 부러운 듯이 말했지요.
  "나도 너처럼 바다가축을 얻을 수 있을까?"
  "그래, 그럴 수 있어."
  꺼꾸리 클라우스는 말했지요.
  "하지만 난 너를 자루에 넣어서 강까지 들고 갈 수는 없어. 넌 너무 무겁거든.
네가 그 곳까지 가서 직접 자루 속에 들어가겠다면 기꺼이 널 던져 줄 수는 있어."
  "정말 고맙다. 그러나 내가 바다 가축을 얻지 못하게 되면 그땐 널 정말 가만 안
둘 거야. 내 말 명심해!"
  "그래, 알았어."
  두 사람은 강으로 갔답니다. 목이 말랐던 소 떼는 물을 보자마자 강가로
달려갔어요.
  "저것 봐. 저 가축들이 달려가는 걸. 다시 강 속으로 내려가고 싶은 거야."
  꺼꾸리 클라우스가 말했어요.
  "자, 어서 날 도와 줘."
  장다리 클라우스는 바다 가축을 얻고 싶은 욕심에 재촉했답니다. 그리고는 자루
속으로 들어갔지요.
  "돌을 하나 넣어 줘. 안 그러면 가라앉지 않을지도 몰라."
  "괜찮은데 뭘."
  꺼꾸리 클라우스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큰 돌을 자루 속에 넣었어요. 그리고
단단히 자루를 묶고는 발로 찼지요. 첨벙! 자루는 강물 속으로 떨어져서 강바닥
깊숙이 가라앉았답니다.
  "장다리 클라우스가 바다 가축을 찾지 못하면 어떡하지?"
  꺼꾸리 클라우스는 중얼거리며 소 떼를 몰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행복의 덧신  안데르센
 
1.       시작

  쾨니히시노이 시장에서 가까운 코펜하겐의 외스트 슈트라세의 어느 집에서 모임이 열리고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런 모임을 열어야 했습니다. 그래야만 또 초대를 받으니까요.
  손님들 중 절반은 카드 놀이 탁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손님들은, 이 집 주부의 "이제 무엇을 할까요?"에 이어서 과연 어떤 화제가 이어질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화제가 중세로 넘어갔답니다. 몇몇 사람들은 중세가 지금보다 훨씬 좋다고 말했습니다. 법률 고문관 크납 씨는 어찌나 열렬히 이 의견을 찬성했는지 이 집 여주인은 금방 그의 의견에 동의하고 말았습니다. 두 사람은 연감에 씌어 있는 외르스테드 씨의 말을 반대했지요. 연감에는 지금이 훨씬 이점이 많다고 씌어 있었으니까요.
  법률 고문관은, 덴마크의 한스 왕(1513년 사망, 작센 선제 후 에른스트공의 딸 크리스티네와 결혼) 시대를 찬란하고 가장 행복했던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었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서로 자기가 옳다고 주장했습니다. 때마침 신문이 배달되어 잠시 대화가 중단되었습니다. 그러나 신문에는 특별한 읽을거리가 없었답니다.
그리고 외투나 지팡이, 우산과 덧신들을 보관하는 방이 하나 있었답니다. 그 방에 두명의 처녀가 앉아 있었습니다. 젊은 처녀와 나이가 조금 든 처녀였는데, 마치 주인들을 따라온 하녀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녀라고 하기엔 손이 너무나 고왔어요. 또 태도와 움직임이 당당했고 독특한 옷을 입고 있었답니다. 그들은 바로 요정이었습니다. 젊은 처녀는, 행복의 작은 선물들을 이리저리 들고 다니는 행복의 요정이었고, 나이가 든 처녀는 대단히 엄격해 보이는 근심의 요정이었습니다.

두 요정은 오늘 일어났던 일들을 서로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행복의 요정은 몇 가지 하찮은 일들을 처리했답니다. 소나기로부터 새 모자를 구해 주었고, 어느 남자에게 별 중요치 않은 인사를 전해 준 일이었지요. 그러나 이제 아주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 남아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늘은 나의 생일이랍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한 쌍의 덧신이 맡겨졌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 덧신을 전해 주어야 해요. 이 덧신은 신기한 덧신이에요. 덧신을 신자마자 가장 가고 싶어하던 곳으로 갈 수 있거든요. 장소와 시간에 관계없이 소망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리고 그 사람은 마침내 행복하게 된답니다."
  그러자 근심의 요정이 말했습니다.
  "그래요, 당신은 아마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하지만 그 사람은 불행하게 되어서 그가 그 덧신에서 해방되는 순간을 축복할 거예요."
  "절대로 그렇지 않을 거예요. 이제 덧신을 문 앞에 세워 두어야겠어요. 누군가 발을 잘못 디뎌서 그 덧신을 신게 되면 그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거지요."


2. 법률 고문관에게 생긴 일

밤이 되었습니다.
한스 왕의 시대에 깊이 빠져 있던 법률 고문관 크납 씨가 집에 돌아가려고 일어섰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덧신 대신 행복의 덧신을 신도록 운명지어져
있었답니다.
  그는 행복의 덧신을 신은 채 외스트 슈트라세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그는 덧신의
마법과 같은 힘 때움에 한스 왕의 시대로 되돌아가 있었답니다. 그는 진창에 발이
빠졌습니다. 그 시대에는 아직 길이 포장되지 않았으니까요.
  "야 지독하구나. 왜 이리 더럽지? 보도는 다 어디 가고, 가로등들도 다 꺼져
버렸담".
  법률 고문관은 투덜거렸습니다. 달님이 구름 속에 숨어 있어서 주변의 모든 것이
희미했습니다. 길 모퉁이의 성모 마리아 상 앞에 가로등이 하나 켜져 있긴 했지만,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그 밑에 섰을 때에야 비로소 그 불빛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법률 고문관의 두 눈은 어머니와 아이를 그린 그림에 머물렀습니다.
  "아마도 미술품 진열실인 모양인데 간판 들여놓는 것을 잊어버린 게로군."
  그 때 이상한 복장을 한 두어 명의 사람들이 그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가장 무도회에라도 갔다 오는 걸까?"
  갑자기 북소리와 호각 소리가 들려오더니 횃불이 환하게 비쳤습니다. 법률
고문관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이 이상한 행렬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맨 앞쪽에는 악기를 든 사람들이 가고, 그 뒤에는 활과 석궁을 든 친위병들이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 행렬 중에서 가장 품위 있어 보이는 사람은 성직자였습니다.
  법률 고문관은 지나가는 사람에게 그가 누구인지 물어 보았답니다.
  "제란트의 주교님이십니다."
  "주교님이 웬 행차시지?"
  법률 고문관은 생각에 잠긴 채 외스트 슈트라세를 통과해서 그리고 호엔브뤽켄
광장을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슬로스 광장으로 건너가는 다리를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때 희미하게 시내의 강둑이 보였습니다. 그
쪽으로 다가가니 보트 안에 두 명의 남자가 있었습니다.
  "거기, 신사분들은 홀름으로 건너가려 하시는가요?"
  그들이 물었습니다.
  "홀름으로 건너간다구?"
  자기가 어느 시대에 와 있는지 모르는 법률 고문관이 대답했습니다.
  "난 크리스티안 항구로 가서 슈트라세 시장으로 가려는 중이오."
  그 두 남자는 법률 고문관을 빤히 바라보았답니다.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다리가 어디 있는지만 말해 주시오. 가로등도 하나 밝혀져 있지 않다니, 이 무슨
창피스런 일이람. 마치 늪 속을 걷는 것 같군. 불쾌해."
  보트에 있는 사람들과 얘기할수록 법률 고문관은 점점 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난 당신들이 쓰는 옛날 홀름 말을 전혀 못 알아듣겠소."
  화가 난 법률 고문관은 발길을 돌렸습니다. 하지만 다리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다리로 올라가는 난간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참 별일이군."
  법률 고문관은 이날 밤처럼 지금 시대가 비참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습니다.
  "마차를 타야겠군."
  그런데 마차 한 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쾨니히스노이 시장으로 되돌아가야겠군. 그 곳에는 마차들이 있겠지. 이러다간
크리스티안 항구로 못 나갈 거야."
  법률 고문관은 다시 외스트 슈트라세로 향했답니다.
  그 길을 거의 다 지나왔을 때 구름 속에서 달이 나왔습니다.
  "맙소사, 여기다가 뭐 이런 것을 세워 놓았을까!"
  법률 고문관은 외스트 슈트라세의 끝에 서 있던 외스트 성문을 보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래도 마침 성문 하나가 열려 있었습니다.
  법률 고문관은 그 문을 통해서 노이 시장으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 곳 역시
넓다란 초원이었습니다. 덤불이 군데군데 솟아 있었고, 초원을 가로질러 시내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홀란드 배들을 위한 목로 주점이 몇 개 저쪽 강둑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곳의 이름이 홀랜다우가 되었답니다.
  "내가 신기루를 보고 있는 걸까? 아니면 취한 것일까?"
  법률 고문관은 탄식했습니다.
  "이게 웬일이야?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법률 고문관은 아파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외스트 슈트라세로 되돌아온 그는 집들을 좀더 자세하게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집들은 대부분 나무로 뼈대를 넣은 파흐베르크(흔히 보는 유럽가옥)였는데 초가
지붕을 이고 있었습니다.
  "그래, 내가 정말 몸이 안 좋은가 봐."
  법률 고문관은 한숨을 쉬었습니다.
  "펀치 한 잔을 마셨을 뿐인데 왜 이렇지?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 펀치와 따뜻한
연어를 함께 주다니, 미친 짓이었어. 그 집 여주인에게 얘길 좀 해야겠어. 다시
올라가서 내가 어떤 상태인지 얘기를 할까? 그것도 참 우습게 보이겠지. 또 그들이
없을지도 모르지."
  법률 고문관은 두리번거렸으나, 그 집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참 기막힌 일이네! 외스트 슈트라세를 알아볼 수가 없다니. 상점도 하나 없어.
눈에 보이는 것은 비참하게 쓰러질 것 같은 낡은 오두막들뿐이니. 마치
로에스킬데나 링슈테드 같은 옛 도시에 있는 것 같아. 아, 내가 아픈가봐.
주저하다간 이로울 게 없지. 그런데 도대체 그 집이 어디 있는 거야? 이런! 저 안에
아직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양이야."
  법률 고문관은 열려진 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는 문을 밀쳤습니다. 그 것은 그
당시의 맥주집이었습니다.
  술집 안은 홀슈타인 식 마루청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선원들, 코펜하겐의 시민들,
그리고 두어 명의 학자들이 술잔을 앞에 놓고 이야기에 빠져있어, 들어오는
사람에게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실례합니다."
  법률 고문관은 그에게 다가오던 술집 여주인에게 말했습니다.
  "몸이 몹시 좋지 않아요. 크리스티안 항구로 가게 마차를 한 대 불러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여자는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그러더니 독일어로 말을 걸었습니다.
  법률 고문관은, 그녀가 덴마크 어를 모르는 모양이라고 생각하고 독일어로
말했습니다. 그녀는 법률 고문관의 복장이나 태도가 이상해 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금방 알아챘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물 한 잔을 가져다 주었답니다.
약간 짠맛이 나는 물이었습니다. 바깥 샘에서 길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률 고문관은 손으로 얼굴을 받치고 자기에게 일어나고 있는 이 이상한 일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그 [데어 타크](날이라는 뜻) 지가 오늘 건가요?"
  술집 여주인이 종이 조각을 치우는 것을 보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법률 고문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것을 건네 주었습니다. 그것은
쾰른 상공에서 본 공중 기상도를 나타내는 목판화였습니다.
  "대단히 오래 된 거로군."
  법률 고문관은 오래 된 물건을 만나게 되어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대체 어떻게 해서 이 진기한 그림을 손에 넣었습니까? 이 그림은 상상으로
그려졌지만 그래도 대단히 흥미로운 일이지요. 이러한 대기 현상을 사람들이 본
것은 북극광 때문이라고 설명을 하지요. 그러나 내 생각에는 이 대기의 현상들은
전기에 의해 생겨나는 것입니다."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그를 매우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았습니다. 그
중 한 사람이 몸을 일으켰습니다. 예의의 표시로 모자를 벗더니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했습니다.
  "선생, 당신은 대단한 학식을 갖추신 분이군요."
  "오, 아닙니다. 저는 이것저것 그저 조금 알고 있을 뿐입니다."
  법률 고문관이 대답했습니다.
  "겸손함이란 아름다운 것이지요. 그런데 귀하의 견해에 대해서 말해야겠소이다.
내 생각에는 그게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당신이 어떤 분인지 여쭈어 보아도 되겠습니까?"
  법률 고문관이 물었습니다.
  "저는 성서 학자올시다."
  법률 고문관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그의 복장이 그걸 말해 주었으니까요.
  "사실 이 곳에는 뛰어난 학자가 없어요. 그러니 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당신은
옛 문서에 대해 잘 알고 계시지요?"
  성서 학자가 물었습니다.
  "물론이지요! 저는 옛 문서 읽기를 좋아한답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것도 읽기를
좋아하지요. 실제 생화에서도 충분히 보고 듣는 평범한 책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평범한 이야기라구요?"
  "네, 그 왜 소설이라는 것 말입니다. 요즘 나오는 것들요."
  "오, 그것들에도 많은 정신이 들어 있어요. 궁중에서 읽혀지고 있답니다. 우리의
왕은 특히 이프벤 씨와 가우디안 씨의 소설을 좋아하십니다. 아더 왕과 그의 원탁의
기사들을 다루고 있는 소설들 말입니다. 폐하께서는 대신들과 그 소설에 관해
농담까지 주고받으셨답니다."
  "전 아직 그것을 읽어보지 못했군요. 하이베르크 출판사에서 나온 최근의 책인
모양이지요."
  "아닙니다. 하이베르크가 아니라 고드프레드 폰 게멘 출판사에서 나왔답니다."
  "그게 저자 이름인가요? 그건 대단히 오래 된 이름이죠! 아마도 덴마크 최초의
인쇄업자 이름이 아닌가요?"
  "네, 우리 나라 최초의 인쇄업자이지요."
  순조롭게 이야기가 진행되었습니다. 그러자 손님들 가운데 한 사람이 두어 해
전에 전국을 휩쓸었던 페스트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그 사람이 말한 것은
1484년의 페스트였습니다.
  법률 고문관은 그것이 콜레라에 관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1490년의
약탈 전쟁도 이야기되었답니다. 영국의 해적 약탈자들이 정박소에서 배를
훔쳐갔다고도 했습니다. 1801년의 사건을 경험했던 법률 고문관은 영국인들에 대한
미움이 솟아나서 맞장구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 외의 이야기는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성서 학자는 너무나 아는 게
없었지요. 법률 고문관의 단순한 이야기들이 성서 학자에게는 너무 대담하고
공상적인 것으로 들렸습니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어색해졌습니다. 그러자
성서 학자는 라틴 어로 말을 했답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을 더 잘 이해하리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제, 좀 어떠세요?"
  술집 여주인이 법률 고문관의 소매를 잡아당겼습니다. 그러자 법률 고문관은
정신이 들었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자기에게 일어났던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입니다.
  "맙소사, 여기가 도대체 어딥니까?"
  법률 고문관은 다시 머리가 어지러워졌습니다.
  우리 맥주를 마십시다. 브레멘 맥주와 밀주를 마십시다, 당신도 함께 마십시다."
  손님들 가운데 누군가가 외쳤습니다.
  그 때, 두 명의 처녀가 들어왔습니다. 한 처녀는, 두 가지 색깔로 된 두건(한스
왕의 법률에 따라 나쁜 행동을 한 여자는 그런 두건을 쓰게 되어 있었다)을 쓰고
있었습니다.
  여자들은 술을 따르면서 허리를 굽혔습니다. 법률 고문관은 등골이
오싹해졌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야? 무슨 일이냐구?"
  법률 고문관이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꼼짝없이 술을 마셔야 했답니다. 그리고 그
두 처녀는 웃으면서 법률 고문관에게 다가왔습니다. 법률 고문관은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누군가가 그에게 취했다고 말하자 자신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륜마차를 하나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법률 고문관이 이제
모스크바의 말을 하는 줄 알고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법률 고문관은 그토록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모임에 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이교도들의 시대로 되돌아갔나, 원. 내 인생의 가장 무시무시한 순간이로군."
  법률 고문관은 탁자 아래로 허리를 굽히고 문 쪽으로 기어갔습니다. 거의
출입문에 다 왔을 때에야, 사람들은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알아차렸습니다.
  그들은 법률 고문관의 발을 붙들었습니다. 그 바람에 다행스럽게도 덧신이 그만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이 모든 마법 같은 일도 사라졌습니다.
  법률 고문관은 자기 앞에 가로등이 켜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가로등
뒤에 큰 집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눈에 익고 근사해 보였답니다. 그 곳은 바로
외스트 슈트라세였습니다.
  법률 고문관은 성의 작은 문 쪽에 발을 뻗고 누워 있었습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경비병이 앉아서 잠들어 있었지요.
  "아이쿠, 맙소사! 내가 길 위에 누워 꿈을 꾸었단 말인가. 그래, 여기가 외스트
슈트라세야. 얼마나 근사하고 밝은가! 펀치 한 잔에 이 꼴이 되다니, 기막힌
일이로군."
  잠시 후 법률 고문관은 크리스티안 항구로 가는 이륜마차 속에 앉아 있었답니다.
자기가 겪은 불안과 그 위급했던 상황을 생각하면서 말이에요. 그리고 진심으로 이
행복한 현실을 찬양했습니다. 얼마 전에 머물렀던 그 시대보다는 훨씬 좋은 지금을
말이에요.
      ----------
    3. 경비병의 모험
  "야, 덧신이네! 틀림없이 저 위에 사는 소위의 것일 거야. 그 문 앞에 놓여
있으니까."
  잠에서 깨어난 경비병이 말했습니다.
  경비병은 벨을 눌러 그 덧신을 전해 주고 싶었답니다. 방에 아직 불이 켜져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웃 사람들을 깨우게 될까 봐 그만두고 말았습니다.
  "저걸 신으면 참 따뜻할 거야. 가죽이라 부드럽고."
  그 덧신은 경비병의 발에 꼭 맞았습니다.
  "세상이란 참 우스워. 소위는 따뜻한 침대 속에 누워 있어도 되니 말야. 어디 한
번 볼까, 그가 무얼 하고 있는지. 방 안을 왔다갔다 하고 있네. 참 행복한 사람이야!
딸린 가족이 없으니 매일 밤 친구들이나 만나고 말이야. 오, 내가 만약 그라면
얼마나 행복할까?"
  경비병이 이렇게 말하자마자 그가 신고 있던 덧신이 요술을 부려 경비병은 소위로
변해 있었습니다. 방안에 서서 손가락 사이에 장미처럼 붉은 빛깔의 종이를 들고
있었지요. 그 종이에는 시가 씌어져 있었답니다. 소위가 직접 쓴 시였습니다. 평생
시 한편 써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생각한 것을 글로 쓰면 바로
시가 되는 거랍니다.

  오, 내가 부자라면

  오, 내가 부자라면!
  거의 두 치 키도 안 될 어렸을 때부터
  나는 자주 그렇게 소망했다네
  오, 내가 부자라면! 난 장교가 될 텐데
  칼을 차고 군복을 입고 탄띠를 두른 장교
  때가 와서 나는 장교가 되었네
  그래도 나는 부자가 아니고 부자가 되지도 못했네
  난 가난한 사람.
  자비로운 신이여, 나를 도우소서!

  언젠가 젊은 시절 저녁에 나는 인생을 기뻐하며 앉아 있었네
  소녀가 내 입술에 입맞추었지
  나는 동화를 짓는 부자였거든
  그러나 황금은. 아, 그 때처럼 가난한 적이 없었네
  그 아이는 오직 문학만을 원했지
  그 때 나는 부자였지. 그러나 황금을 가진 부자는 아니야
  난 가난한 사람.
  자비로운 신이여, 그대는 알리라.

  오, 내가 부자라면! 신에게 올리는 나의 애원이라네
  그 아이가 처녀로 자라는 것을 나는 보았네
  그토록 영리하고 아름다우며 선량한 그녀
  내 가슴에 들어 있는 생각을 그녀가 안다면
  그 위대한 동화를 안다면, 그녀는 내게 잘해 줄 텐데!
  그러나 나는 침묵해야 할 운명. 난 가난한 사람
  자비로운 신이여, 당신이 그걸 원하므로.

  오, 내가 여기 위로와 평안을 구하는데 부자라면
  그렇다면 내 모든 고통을 이 종이 위에 옮기지 않으리
  그대 나를 이해하는가, 나를 바친 그대여
  그렇게 내 청춘 시절의 이 종이를 읽어 다오
  어두운 밤에 바쳐진 어두운 동화를.
  내 눈엔 오직 어두운 미래만 보일 뿐. 아, 나는 가난한 사람!
  그대를 축복하리라, 자비로우신 이여.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이런 시를 쓸 수 있답니다. 그러나 사려 깊은 사람이라면
이런 것을 인쇄하지는 않습니다. 소유, 사랑, 가난, 이것은 삼각형을 이루거나,
행복이라는 주사위의 부러진 반쪽이라고나 할까요. 소위도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꼈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창틀에 기대고 깊이 한 숨을 쉬었답니다.
  "길 위의 저 가난한 경비병이 나보다 훨씬 더 행복할 거야. 그는 내가 외로운
것을 모르지. 그에게는 가정이 있으니까. 슬플 때 함께 울고 기쁠 때 함께 즐거워
해 줄 아내와 자식이 있어. 만약 내가 저 경비병이 된다면, 나는 지금의 나보다
행복해질 텐데^5,5,5^. 그가 나보다 행복하니까 말이야."
  그 순간 소위가 되었던 경비병은 다시 경비병이 되었습니다. 행복의 덧신 때문에
그는 소위가 되었던 것이니까요. 그러나 소위가 된 그는 본래의 그로 돌아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참 나쁜 꿈이네. 하지만 재미있군. 마치 내가 정말 저 위의 소위가 된 것 같았어.
그런데 그건 하나도 즐거운 일이 아니었어. 아내도 없고 내게 달려들어 입맞추는
아들녀석도 없었단 말야."
  경비병은 앉아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그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아직 덧신을 신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때 하늘에서 별똥별 하나가 떨어졌습니다
  "저기, 별 하나가 떨어지네. 그래도 하늘에는 별이 많이 있단 말이야. 저것들을 좀
가까이에서 보았으면 좋겠어. 특히 저 달을 말이야. 달 같은 것은 쉽게 손에서
미끄러지는 물건이 아니거든. 우리 마누라가 빨래를 해주는 그 대학생은 우리가
죽으면 이 별에서 저 별로 날아가는 거라고 말했지. 그건 거짓말이야. 하지만
사실이라면 멋질 거야. 살짝 저 달 위로 뛰어올라가 보았으면 좋겠어. 몸은 그냥
계단에 그대로 놓아 둔 채 말이야."
  그래요, 말은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행복의 덧신을 신었을때는 더욱
조심해야지요.
  경비병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여러분은 속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빠르기 말이에요. 증기로 달리는
열차나 배에서 이미 그것을 시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빛이 가진 속도에
비한다면 그것은 그저 나무늘보의 산보나 달팽이가 행진하는 것쯤 된답니다.
  빛은 가장 빨리 달리는 경주자보다 9천만 배나 빠르니까요. 그런데 전기는 빛보다
빠르답니다. 죽음은 우리가 심장에 얻는 전기 충격이랍니다. 영혼은 전기의 날개를
타고 날아갑니다. 8분 몇 초면 햇빛은 2천만 마일 이상을 여행할 수 있지만,
전기라는 특급 우편 마차를 타면 영혼은, 햇빛보다 몇 분이나 더 짧은 시간에 같은
거리를 여행할 수 있습니다. 천체들 사이의 공간은 영혼에게는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들 집 사이의 거리보다도 좁답니다. 집이 서로 나란히 있다 해도 말입니다.
그런데 이 전기 충격은 경비병처럼 행복의 덧신을 신고 있지 않을 때는, 몸과
마음을 함께 있지 못하게 하지요.
  불과 몇 초도 되지 않아서 경비병은, 달에 이르는 5만 2천 마일을 날아 갔답니다.
달은 지구보다 훨씬 가벼운 물질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갓 내린 눈처럼
부드럽답니다.
  경비병은, 메들러 박사의 대형 달 지도에 있는 동그란 반지같이 생긴 산에
올랐습니다.
  반지 산은 안쪽에서 보면, 솥의 안쪽처럼 가파르게 굽어 있었습니다. 대략 반 마일
정도 크기였지요. 그리고 아래쪽에 도시가 놓여 있었답니다. 마치 물이 담긴 유리잔
속의 달걀 흰자처럼 보였습니다. 탑과 둥근 지붕과 돛 모양의 발코니를 가진 도시는
공기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구는 경비병의 머리 위에서 크고
검붉은 공처럼 뛰어다니고 있었답니다.
  달에도 많은 생물체들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었지요. 그러나 그들은 우리와는
완전히 다르답니다. 그들도 말을 했습니다.
  경비병의 영혼은 놀랍게도 달 주민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지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어요. 지구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답니다. 사람들이 살기에는 지구의 공기가 너무 탁하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달만이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이라 여기고 있었습니다. 달이야말로 먼 옛날에
최초의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라고 믿고 있었답니다.
  자, 이제 다시 외스트 슈트라세로 가서 경비병의 몸이 어떻게 되었는지 볼까요?
  경비병은 계단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손에서는 창이 굴러 떨어졌고 두
눈은 달쪽을 향했습니다.
  "경비병, 지금 몇 시요.?"
  지나가던 사람이 물었어요. 그러나 경비병은 대답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 사람이
아주 부드럽게 경비병의 코를 꼬집자, 경비병의 몸은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졌습니다. 그래요, 죽은 것입니다. 코를 꼬집었던 사람은 무서웠습니다.
  "경비병이 죽었어. 죽어 있어."
  아침이 되자 사람들은 경비병의 몸을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다시 돌아온 영혼은 분명 외스트 슈트라세에서 자기 몸을 찾겠지요? 그러나 찾을
수 있을까요? 아마 영혼은, 우선 경찰서로 가고 다음은 분실물센터로 달려가겠지요.
그러다가 맨 마지막으로 병원으로 달려갈 것입니다. 영혼이 자기 혼자 행동할 때는
대단히 영리하다는 사실이 그나마 좀 위로가 될까요. 영혼을 우둔하게 만드는 것은
몸이니까요.
  경비병의 몸은 병원의 세척실로 옮겨졌습니다. 사람들이 맨 처음 한 일은 물론
덧신을 벗겨 내는 일이었습니다. 그러자 영혼이 들어왔으며 곧장 몸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경비병이 살아났습니다.
  경비병은 가장 무시무시한 밤이었다고 단언했습니다. 2탈러를 준다 해도 다시는
그런 감정은 갖기 싫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젠 다 지나간 일이었습니다.
  그 날 경비병은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덧신은 그대로 병원에 둔
채였습니다.
    ------------
    4. 매우 이상한 여행
  프리드리히 병원의 입구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코펜하겐의 사람들은 모두 알
것입니다. 그러나 코펜하겐에 살고 있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짧게라도 설명을 해야
하겠지요?
  병원은 높은 격자 창살로 거리와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 문의 쇠막대기들은 아주
널찍하게 박혀 있어 몸이 아주 홀쭉한 사람만이 쇠막대기 사이를 뚫고 나올 수도
있고, 바깥에서 살짝 들어갈 수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 때 드나들기가 제일 어려운
부분이 머리통이랍니다. 그러니까 머리통이 작은 사람이 유리했답니다. 이 정도
얘기면 충분히 상상이 되겠지요?
  이 날 밤, 한 수련의가 당직을 서고 있었습니다. 그는 큰 머리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그는 밖으로 나가고 싶었습니다.
  "15분이면 돼. 쇠막대기 사이로 살짝 뚫고 나갈 수만 있다면 수위에게 말할
필요도 없어."
  그는 중얼거렸습니다.
  그가 문을 열자 경비병이 잊고 간 덧신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것이 행복의
덧신이라는 것을 꿈에도 알 리 없었지요.
  그 덧신은 이런 날씨에는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것을 신었답니다. 이제
쇠막대기 사이로 나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문제였지요. 그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
곳으로 빠져 나가 본 적이 없었습니다.
  "머리통만 바깥으로 빠져 나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말을 하자마자 순식간에 그의 머리통이 살짝 빠져 나갔습니다. 행복의
덧신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는 몸도 앞으로 내밀었습니다. 그런데 빠지지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오, 내가 너무 뚱뚱한가 봐. 머리통이 가장 문제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빠져 나갈
수가 없네."
  그는 재빨리 머리통을 다시 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는 목만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슬며시 화가 났습니다.
식은땀도 줄줄 흘렀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답니다.
  그는 안간힘을 쓰면서 몸을 움직였지만 그 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습니다.
  비는 더욱 세차게 쏟아졌고 거리에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현관의
벨에도 닿을 수가 없었습니다. 자, 어떻게 빠져 나가야 할까요? 그는 아침 시간까지
여기 이대로 서 있어야 할 것이고 아침이 되면 사람들은 자물쇠공을 불러서
쇠창살을 톱으로 자르겠지요. 그러나 그 일은 시간이 오래 걸릴 것입니다. 그러면
바로 건너편에 있는 빈민학교 학생들이 몰려올 것이고, 그의 우스운 꼴을 보려고
선원 구역의 사람들도 달려올 것입니다.
  "후유! 피가 거꾸로 솟겠네. 미쳐 버리겠어. 그래, 정말 미쳐 버리겠어. 오, 제발
빠졌으면! 그러면 이 일이 무사히 지나갈 텐데^5,5,5^."
  그는 진작 이 말을 했어야 했습니다.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자마자 그의 머리통은
빠져서 안으로 튕겨 들어왔습니다. 그는 놀라 어쩔 줄 몰랐습니다.
  여기서 모든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일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그 다음 날이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덧신을 찾으러 오지 않았습니다. 그
날 저녁, 카니케 가세에 있는 작은 극장에서 공연이 있었습니다. 극장은
만원이었답니다. 관객들 속에는 그 수련의도 있었습니다. 그는 전날 밤의 모험을
잊어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는 아직도 그 덧신을 신고 있었습니다. 찾으러 오는
사람도 없고 길이 진창이어서 덧신은 안성맞춤이었지요.
  (백모님의 안경)이라는 새로운 시가 낭송되었습니다. 이 안경을 낀 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있으면 사람들이 모두 트럼프 카드처럼 보인다는 시였답니다. 그리고
내년에 일어날 모든 일을 알아볼 수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신기한 안경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그는 그런 안경을 하나 갖고
싶어졌습니다. 만약 그 안경만 있다면, 사람들의 마음 속을 똑바로 들여다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야말로 내년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아는 것 보다 훨씬
흥미로울 거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내년에 생길 일이야 어차피 경험하게 되겠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을 아는 것은 결코 경험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맨 앞줄에 앉은 신사 숙녀들의 심장 속을 볼 수 있다면. 그래, 아마 상점 문을
여는 것과 같을 거야. 상점 안에서 내 눈이 휘둥그래지겠지. 저기 저
귀부인에게서는 틀림없이 유행하는 옷이랑 물건들을 잔뜩 발견하게 될거야. 또 이
숙녀의 상점은 텅텅 비어 있겠지. 깨끗이 청소를 한다 해서 상점에 해로울 건 없어.
그런데 정말 건실하고 단단한 상점이 있을까.?"
  그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래, 어떤 상점을 알고 있긴 하지. 그 안의 물건은 모두 단단하지만 벌써 하인이
한 사람 들어 있어. 그것이 이 상점의 결점인걸. 이 상점 저 상점에서 '어서
오세요!' 하고 외치겠지. 그래, 내가 작고 귀여운 생각처럼 가슴 속에로 살짝 뚫고
들어갈 수 있다면^5,5,5^."
  보십시오! 덧신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수련의의 몸이 쪼그라들었습니다. 그리고 맨 앞줄에 앉은 관객들의 마음 속을
뚫고 들어가는 이상한 여행이 시작되었지요.
  그가 뚫고 들어간 첫 번째 마음은 숙녀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순간,
정형외과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답니다. 의사가 사람의 뼈를 들어내고
상처를 고치는 그런 곳 말이에요. 깁스로 뜬 팔다리들이 사방 벽에 걸려
있었습니다. 정형외과에서는 환자가 오면 그 깁스들이 같이 없어 지지요. 그러나 이
숙녀의 마음 속에서는 들어왔던 사람들이 나간 뒤에도 깁스들이 만들어진 그대로
보관이 되고 있었습니다. 이 곳에 있는 것은 여자 친구들의 깁스였답니다. 그 여자
친구들의 몸과 마음의 결점들이 보관되어 있었던 것이랍니다.
  그는 재빨리 다른 여자의 마음으로 들어갔습니다. 이곳은 크고 성스러운 교회처럼
보였습니다. 높은 제단 위에는 흰 비둘기가 날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싶어졌지요. 그러나 그 곳을 떠나 다음 마음으로 날아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아직도
풍금 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했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또 다른
성스러운 장소에 별로 주저하지 않고 들어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곳은 병든 어머니가 있는 초라한 다락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열려진 창으로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지붕의 작은 나무 상자에서는 장미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습니다. 병든 어머니가 딸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하는 동안, 두 마리의 하늘빛
새가 기쁨을 노래했습니다.
  그는 다시 손과 발등 위를 기어 고기들이 가득한 찬 푸줏간으로 들어갔습니다.
그가 부딪치는 것은 오로지 살코기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유명 인사 주소록에 이름이
올라 있을 부자의 심장이었지요.
  그리고 다시 그 부자의 아내의 마음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곳은 낡고
쓰러져 가는 비둘기집이었습니다. 남편의 초상화가 부채로 이용되고 있었답니다. 이
부채는 문과 연결되어 있어 남편이 몸을 돌릴 때마다 이 문이 닫혔다 열렸다
했습니다.
  뒤이어서 그는, 로젠베르거 성에서나 볼 것 같은 유리거울 방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러나 이 곳의 거울들은 믿을 수 없을 만큼 크게 비쳐 보였습니다. 방바닥
한가운데에는 초라한 사람이 앉아 있었어요. 마치 달라이 라마처럼 앉아서 놀란
눈으로 자기 자신의 크기를 보고 있었지요. 그는 뾰족한 바늘들로 가득 찬 바늘
쌈지 속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습니다. '결혼 못한 늙은 노처녀의 가슴임이 틀림없어.'
그러나 그의 생각이 틀렸습니다. 많은 훈장을 탄 젊은 장교였답니다. 사람들이
가슴과 정신을 함께 지닌 사람이라고 말하는 이였지요.
  수련의의 정신이 멍해져서 첫째줄의 마지막 가슴을 나왔습니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정리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방금 겪은 일들은 자신의
지나친 상상력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느님 맙소사! 나는 미칠지도 몰라. 그런데 이 극장 안은 왜 이렇게 덥지? 피가
머리로 오르는 것 같아."
  그는 머리가 병원 문의 쇠창살 사이에 끼었던 어제 저녁이 생각났습니다.
  "그래, 나는 확실히 알았어. 제때에 무슨 일이라도 해야겠어. 러시아 식 목욕이
좋을 거야. 우선 가장 높은 판대기 위에 누워야겠어."
  그러자 그는 증기가 뿜어 나오는 목욕탕의 높은 판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나
옷을 입고 부츠에 덧신까지 신은 채 였습니다. 천장에서 뜨거운 물방울들이 그의
얼굴로 떨어졌습니다.
  "이럴 수가!"
  그는 소리를 지르면서 벌떡 일어나 찬물에 뛰어들었습니다. 경비원이 욕조 속에서
옷 입은 사람을 보자 소리를 질렀습니다.
  수련의는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경비원의 귀에 대고 변명의 말을 속삭였습니다.
  "내기를 하고 있는 중이요."
  그리고 자기의 방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스페인제 파리 잡는 끈끈이를 목에도 한 장, 등에도 한 장 붙였습니다. 미친
기운이 밖으로 새어 나가라고 한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그의 등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가 행운의
덧신에게서 얻은 상처랍니다.
    ------------
  5. 글씨 베끼는 서기의 변신
  죽었다가 살아난 그 경비병은 어느 날 문득 덧신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그
덧신을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소위도, 이 거리에 사는 어느 누구도 덧신을 아는
척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덧신을 경찰에 넘겼습니다.
  "내 덧신하고 똑같아 보인단 말이야. 구두장이의 눈이라도 둘을 구별하기가
어렵겠는걸."
  경찰서 서기가 자기의 덧신과 경비병이 가지고 온 덧신을 나란히 세워놓고 보고
있었습니다.
  "여보세요, 서기님."
  서류를 가지고 들어온 사환이 그를 불렀습니다.
  서기는 몸을 돌려 사환과 이야기를 하고 다시 덧신들을 보았을 때, 그는 어느
것이 자기 것인지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젖은 것이 내 것임에 틀림없어."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잘못된 생각이었답니다. 바로 행운의 덧신이었으니까요.
그는 그 덧신을 신고 서류 몇 장을 호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또 다른 서류들은 들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꼼꼼히 읽고 베껴 쓸 참이었습니다. 그 날은 일요일
오전이었으며, 날씨는 매우 맑았답니다.
  "프레데릭스베르그로 산책을 가야겠군."
  그는 천천히 걸으면서 생각했습니다.
  그는 조용하고 착실한 사람이랍니다. 오랜 시간 책상에 앉아 있는 그에게 산책은
좋은 운동이었습니다. 그는 아무 생각 없이 천천히 걷고 있었어요. 그래서 덧신은
마법을 발휘할 기회가 없었답니다.
  그는 길에서 아는 사람을 만났어요. 그 사람은 시인인데, 내일 여름 여행을
떠난다고 했습니다.
  "또 여행을 떠나신다구요? 당신은 정말 행복하고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원하는 곳
어디나 갈 수 있으니까요. 우리 같은 사람은 발에 고리가 묶여 있는데 말씀이에요."
  "하지만 당신은 먹고 사는 걱정이 없잖습니까. 다음 날을 걱정할 필요도 없구요.
또 늙으면 연금을 타지요."
  시인이 말했습니다.
  "그래도 당신이 더 좋지요. 앉아서 시를 쓴다는 것은 만족스런 일이니까요. 온
세상 사람들이 모두 당신에게 좋은 이야기를 하지요. 게다가 당신은 당신 자신의
주인이잖아요. 별 것 아닌 사소한 일 때문에 법원에 앉아있는 것을 한 번 시험
삼아서라도 해 보십시오."
  시인은 머리를 흔들었답니다. 서기도 머리를 흔들었지요. 두 사람은 서로 자기
의견이 옳다고 고집했습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졌답니다.
  "시인들이란 이상한 사람이야. 한 번 시험 삼아 그런 사람이 되어 보고 싶어.
시인이 된다면 난 다른 사람들처럼 그런 탄식조의 시는 쓰지 않을 거야. 정말
시인이 되기에 알맞은 봄날이로구나. 공기는 맑고 구름은 이토록 아름답고 초록
풀들은 향기를 풍기누나. 그래, 지난 몇 년 동안 이 순간처럼 느껴 본 적이 없었어."
  그는 이미 시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시인이 되었다는 사실이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습니다. 시인이 보통 사람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바보
같은 생각입니다. 보통 사람들 중에도 위대한 시인들보다 더 아름다운 시를 쓰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시인은 생각과 감정을 명확한 글로 옮겨 놓을 때까지
그것을 꼭 붙잡고 있다는 점이 보통 사람들과 다를 뿐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금방
잊어버린답니다. 그러나 평범한 성격에서 재능 있는 성격으로 넘어가는 것도 어쨌든
변화는 변화이니까요. 이제 그 변화를 서기가 겪고 있었습니다.
  "이 찬란한 향기! 로네 아줌마의 작은 오랑캐꽃이 기억나는구나. 그래, 내가 아주
어린 아이 때였지. 맙소사, 정말 오랫동안 그것을 잊고 살았네. 그 착하던 노처녀를
말야. 그녀는 저기 저 거래소 뒤편에 살았었지. 겨울이 아무리 춥고 가혹할 때라도
그녀는 항상 나뭇가지나 두어 개의 초록색 새싹을 물 속에 담가 두고 있었지. 내가
손으로 데운 동전을 언 유리창에 대고 구멍을 만들어 그 안을 들여다보면 오랑캐꽃
향기가 은은히 풍겨 왔었어. 참 멋진 풍경이었지. 저쪽 바깥 운하에서는 배들이 언
채 정박해 있었어. 배에는 사람들이 다 떠나고 없었지. 까악까악 우는 까마귀 한
마리가 유일한 승무원이었지. 봄의 공기가 불어 오면 세상은 활기를 띠었어.
사람들은 노래를 부르며 톱으로 얼음을 동강냈지. 배에는 콜타르가 칠해지고 기계도
수리되었어. 그리고는 먼 나라들로 떠나갔지. 그런데 나는 여기 머물러 있었지. 늘
경찰서에 앉아 다른 사람들이 여권을 발급 받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다니. 이게 내
운명이야. 오, 그래!"
  그는 깊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뚝 멈추어 섰습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예전에는 결코 한 번도 이런 생각을 하거나 이렇게
느낀 적이 없었잖아. 봄 때문인가 봐. 유쾌하지만 복잡해지거든."
  그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서류를 찾았습니다.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야."
  그는 첫 번째 종이로 눈을 돌렸습니다.
  "'지그브리트 부인 5막 창작극.' 이게 뭐야? 내 글씨 아냐. 내가 이 비극을 썼단
말이야? '제방 위에서의 음모, 혹은 참회 기도일'이라? 대체 이게 어디서 났지?
누군가가 내 호주머니에 넣었음에 틀림없어. 여기 편지가 있군."
  그것은 극장 담당자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그 작품의 평이 좋지 않게 되어
있었습니다. 편지의 어투도 전혀 정중하지 못했습니다.
  서기는 벤치 위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곁에 있는 꽃 한 송이를
꺾었습니다. 작고 소박한 데이지꽃이었어요.
  식물 학자가 여러 번의 강의를 통해 알려 주는 것을 꽃은 몇 분 안에 알게 해
준답니다. 그 꽃은 자신이 태어나게 된 것과, 잎을 넓혀 주고 향기가 나도록 해 주는
해님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꽃의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 속에 감정을 일깨워 주는 생명력을
생각했답니다. 꽃의 친구는 공기와 해님입니다. 그 중에서도 더 친한 것은
해님이지요. 꽃은 해님을 바라보고 있다가 해님이 사라지면 잎들을 접고 공기의
포옹 속에서 잠이 든답니다.
  "저를 아름답게 치장하는 것은 해님이랍니다."
  데이지꽃이 말했습니다.
  "하지만 너를 숨쉬게 하는 것은 공기잖아."
  시인이 속삭였습니다.
  그 때 한 소년이 다가와서 막대기로 진흙투성이의 도랑 속을 휘젓자 물방울들이
초록색 가지들 사이로 튀어올랐습니다. 시인은 공중으로 높이 튀어 오르는 물방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수백만 개의 작은 동물들을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의 크기가
다른 것처럼 그것들도 크기가 각기 다르지요. 구름까지 높이 소용돌이를 치며
올라가는 아주 작은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일어난 모든 변화를
생각하면서 서기는 미소를 지었습니다.
  "내가 자면서 꿈을 꾸고 있나 봐. 아주 자연스럽게 꿈을 꾸면서 그것이 꿈이란
것을 알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내일 아침, 내가 깨어나도 기억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군. 기분이 좋아. 모든 것에 대해 맑은 시선을 가지고 있고, 또 이렇게
원기 왕성하게 느끼고 있어. 하지만 내일도 이런 기분을 조금이라도 유지하려
한다면 그건 바보 같은 짓이겠지. 예전에도 겪어 봤잖아. 꿈 속에서 듣고 말하는
것은 땅 속의 황금 같은 거야. 그것을 얻게 되면 부자가 되고 화려해지지. 그러나
밝은 낮에 보면 그건 돌맹이와 시든 잎일 뿐이야."
  그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리고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즐겁게 날아다니며
노래하는 새를 보았습니다.
  "저들이 나보다 훨씬 낫다. 난다는 것, 그건 정말 훌륭한 기술이야. 날수 있도록
태어난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일 거야. 만약 내가 다른 것으로 변할 수 있다면,
저런 종달새가 되고 싶어."
  그 순간, 윗옷자락과 팔소매는 오그라들어 날개가 되고, 옷은 깃털이 되고, 덧신은
발톱이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참, 내가 꿈꾸는 걸 볼 수가 있다니. 그런데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해본 적이
없어."
  그는 녹색 가지 위로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불렀답니다. 그러나 노래
속에는 생각이나 감정이 없었지요. 시인의 재능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무슨 일이든
철저하게 하려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렇듯이, 덧신도 한 번에 한 가지 일밖에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먼저 시인이 되고 싶어 시인이 되었고, 그리고 다시 작은
새가 되고 싶어 작은 새가 되자 시인의 재능은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참 재미있군. 낮에는 경찰서에서 딱딱한 서류 더미 속에 앉아 있었지. 밤에는
종달새가 되어 프레데릭스베륵 공원을 나는 꿈을 꿀 수 있다니. 이걸로 진짜 코미디
극본을 써도 되겠어."
  그는 풀섶에 내려앉았습니다. 고개를 사방으로 돌리면서 부리로 잘 휘어지는
풀줄기들을 쪼았습니다. 지금의 그의 몸 크기에 비하면 북아프리카의 종려나무
가지만큼이나 커보이는 풀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주위가 깜깜해지더니 거대한 물체가 그의
머리를 덮쳤습니다. 그것은 선원 구역에 살고 있는 소년이 던진 큰 모자였습니다.
모자 속에서 손이 하나 들어오더니 새가 된 서기의 등과 날개를 거머쥐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큰 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이 염치없는 장난꾸러기야. 나는 경찰서의 서기야."
  그러나 소년에게는 여전히 짹짹거리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소년은 새의 부리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새가 들어 있는 모자를 안고 그 곳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길에서 소년은, 짓궂은 상급생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새를 8실링에
샀답니다. 그래서 서기는 코펜하겐의 고터 슈트라세에 있는 어느 가정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꿈이라서 다행이야. 꿈이 아니라면 화가 나서 죽었을 거야. 처음에 나는
시인이었어. 그런데 이제는 종달새야. 그래, 나를 이 작은 동물로 만든 것은 필시 그
놈의 시인이야. 새가 된다는 건 참 슬픈 일이로군. 특히 장난꾸러기들의 손에
들어가면 말이야. 이제 어떻게 될지 궁금하구나."
  새가 된 서기가 말했습니다.
  소년들은 그를 잘 꾸며진 방으로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뚱뚱한 여인이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볼품없는 새를 집으로 가지고온 것을 전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오늘만 허락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들은 창가에 서 있는 빈 새장에 새를 넣었습니다.
  "아마도 우리 앵무새가 기뻐할지 모르겠구나."
  그녀는 덧붙이면서 녹색의 큰 앵무새를 보고 웃었습니다. 앵무새는 화려한 놋쇠
새장 안의 둥근 쇠굴레에서 우아하게 그네를 타고 있었습니다.
  "오늘이 앵무새의 생일이란다. 그래서 이 작은 들새가 축하하려는 거야."
  그녀가 말했습니다.
  앵무새는 한마디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이리저리 그네만 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여름 따뜻한 고향에서 이 곳으로 온 예쁜 카나리아가 큰 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울보."
  여인은 흰 보자기를 카나리아에게 덮어씌웠습니다.
  "짹짹."
  서기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서기가 변신한 종달새는 앵무새와 멀지 않은 곳에서 카나리아와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앵무새가 지껄이는 유일한 인간의 말은 '아냐, 우리를 인간답게 해
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아주 우스꽝스럽게 들렸답니다. 그 소리 외에는
카나리아의 지저귐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새가 되어 있는 서기는 새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답니다.
  "나는 초록색 종려나무들과 꽃 핀 편도나무 아래를 날아다녔어. 난 언니 오빠들과
함께 화려한 꽃들 위와 식물들이 땅 위에서 고갯짓하는 거울처럼 맑은 호수 위를
날아다녔지. 아름다운 앵무새들도 많이 보았어. 그들은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 주었지. 아주 긴 이야기들 말야."
  카나리아가 말했습니다.
  "그건 야생의 새들이야. 교양이 없어. 아냐, 우리를 인간이게 해 줘. 너 왜 안
웃니? 다른 사람들이 모두 웃는다면 너도 웃을 수 있는 거야. 재미있는 것을 즐기지
않는 것은 잘못이야. 아니 그저 나를 인간이게만 해 줘."
  앵무새가 말했습니다.
  "오, 너 기억하니? 꽃이 만발한 곳에 펼쳐진 천막 아래에서 춤추던 그 아름다운
소녀들 말이야. 너 기억하니? 달콤한 과일들과 우거진 잡초들 속의 서늘한 물을."
  카나리아가 물었습니다.
  "응, 그래. 그러나 나는 이 곳에서 훨씬 더 잘살고 있어. 나는 좋은 음식과 대우를
받고 있지. 나는 좋은 머리를 가졌어. 더 이상은 바라지 않아. 그저 인간이게만 해
줘. 너는 시인의 영혼이야. 사람들이 하는 말을 빌리면 말야. 나는 지식과 재치를
가지고 있지. 그러나 너는 천재지만 신중함이 없어. 자주 너무 높은 자연의
음색으로 올라간단 말야. 그 때문에 너를 덮어씌우는 거야. 사람들은 내겐 그렇게
하지 않아. 내가 그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거든. 나는 내 부리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 주지. 그리고 '재치 재치' 하고 지저귈 수 있어. 우리를 인간이게 만 해
줘."
  "오, 꽃피는 나의 따뜻한 고향이여! 나는 너의 암록색 나무들을 노래하고 싶구나.
내 형제 자매의 기쁨을 노래하고 싶구나. 황량한 선인장이 자라는 곳이여."
  "그렇게 짜는 소린 그만둬.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것을 노래해. 웃음은 생각할
수 있다는 표시야. 개나 말이 웃는 것 봤니? 아니지. 그들은 울 수는 있지만 웃을
수는 없어. 웃음은 사람에게만 주어진 거야. 호호호."
  앵무새는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우리를 인간이게 해 줘."
  "작은 갈색의 덴마크 새야. 너도 잡힌 몸이로구나. 네가 있던 숲속은 확실히 춥지.
그러나 그 곳엔 자유가 있어. 날아가. 사람들이 널 가두는 것을 잊었단다. 위쪽
창문이 열려 있어. 날아가. 날아."
  서기는 카나리아의 말대로 했습니다.
  휘익! 그는 새장에서 빠져 나왔습니다. 그 순간 옆방으로 통하는 반쯤 열린 문이
삐걱거렸습니다. 그리고 번득이는 초록색 눈을 가진 집 고양이가 기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를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카나리아가 새장 속에서
퍼덕거리고, 앵무새는 날개를 치면서 말했습니다.
  "우리를 인간이게 해 줘."
  서기는 무서웠습니다. 창으로 나와서 거리로 도망쳤습니다. 이제 그는 쉬고
싶어졌답니다.
  한참을 가다 보니 맞은편 집이 낯익고 아늑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창문 하나가
열려 있어 그는 그 곳에서 날아갔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의 방이었습니다.
  그는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이럴 수가!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와서 잠에 골아 떨어졌지? 무서운 꿈이었어.
정말 엉터리 같은 이야기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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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덧신이 가져다 준 최상의 것

  다음 날 이른 아침이었습니다. 서기가 아직 침대에 누워 있을 때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같은 층에 사는 대학생이었는데 목사가 되려고 공부하고
있었습니다.
  "덧신 좀 빌려 주세요. 정원이 몹시 젖어 있어서요. 하지만 햇볕이 너무 좋아서
저 아래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어요."
  그 대학생은 덧신을 빌려 신었습니다. 그는 사과나무와 자두나무가 한 그루씩 서
있는 아래쪽 정원으로 내려갔습니다. 작은 정원이지만 코펜하겐 시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잘 가꾸어진 것이었습니다.
  그 신학생은 마당을 왔다갔다 했습니다. 시계는 여섯 시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바깥에서 우편 마차의 종소리가 울려왔습니다.
  "오, 여행! 여행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지. 내 소망은 바로 여행하는 거야.
그러면 내가 느끼는 이 불안이 잠재워질 거야. 찬란한 스위스를 보고 싶구나,
이탈리아도 여행하고 싶고^5,5,5^."
  신학생이 외치자 덧신이 즉시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만약 그 덧신이 아니었더라면
그는 먼 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녀야 했을 것입니다.
  그는 스위스의 한가운데에 와 있었습니다. 여덟 명의 여행객들과 함께 마차 안에
끼여 앉아 있었지요.
  그는 머리가 아프고 등도 쑤셨으며, 부츠에 짓눌린 발이 부어올랐습니다. 그의
오른쪽 호주머니에는 신용장(오늘날의 신용 카드에 해당하는 것인 듯함)이 들어
있었고, 왼쪽 호주머니에는 여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은 가죽 지갑에는
프랑스 금화가 조금 들어 있었습니다.
  그는 잠깐씩 졸 때마다 금화를 잃어버리는 꿈을 꾸고는 소스라쳐 일어나곤
했습니다. 그는 그 물건을 더듬어서 그대로 있는지 확인해 보았답니다. 그리고 바깥
경치보다도 더 관심이 가는 것은, 그의 머리 위에 있는 그물망 속에서 그네를 타듯
출렁거리는 우산, 지팡이, 모자였습니다. 그는 그것들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의
가슴은 우리가 알고 있는 시인이 이미 노래했지만 아직 인쇄되지 않은 시를
노래하고 있었습니다.

  이 곳은 아름다워, 가슴이 원하는 그대로야
  나는 몽블랑을 보네, 그 가파른 몽블랑을.
  돈이 조금만 더 있다면
  아, 이 곳에 좀더 머물 텐데!

  그를 둘러싼 자연은 위대하고 엄숙했습니다. 전나무 숲들은 마치 높은 바위 위에
솟아 있는 히드처럼 보였습니다. 그 숲의 봉우리가 구름 속에 가리워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눈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차가운 바람도 불어 왔지요.
  "후유."
  그는 한숨을 쉬었습니다.
  "만약 알프스 산맥 반대편에 있다면^5,5,5^. 그 곳은 지금 여름일 거야. 그러면
나는 신용장으로 돈을 꺼내 썼을 거야. 돈 때문에 스위스를 돌아보지 못할 것이라는
불안한 예감이 들어. 오, 내가 반대편에 있었으면!"
  그러나 마차는 알프스 산맥의 반대편인 이탈리아의 피렌체와 로마 사이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저녁놀 속의 트라지멘 호수는 마치 불붙은 황금처럼 암청색 산들
사이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니발이 플라미니우스를 쳐부순 이 곳에는 이제 포도
넝쿨들이 녹색 손가락처럼 기어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길가에서는 헐벗은 아이들이
월계수나무 아래에서 석탄처럼 검은 돼지 떼를 몰고 갔습니다. 만약 이 경치를
정확히 설명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찬란한 이탈리아여!" 라고 환호할 것입니다.
그러나 신학생이나 마차에 타고 있는 그 어느 승객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수천 마리의 파리와 하루살이들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도금양나무가지로
주위를 이리저리 내리쳤으나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얼굴이
부어오르고 피가 났습니다. 불쌍한 말들은 마치 썩은 짐승의 시체처럼 보였습니다.
파리들이 말의 몸에 까맣게 달라붙어 있었습니다.
  마부가 내려서 파리들을 쫓아 버렸지만 그 때뿐이었습니다.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해가 지자 추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주변의 산들과 구름은 찬란한 빛을
띠었습니다.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거라고 여행객들은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몹시 배가 고프고 피곤했습니다. 여행객들은 모두 편안하게 쉬고 싶어졌답니다.
아름다운 자연보다는 그런 것이 훨씬 그리웠으니까요.
  마차는 올리브 숲을 지나갔습니다. 마치 고향의 수양버들 길로 이끌려 가는 것
같았습니다. 얼마쯤 지나자 여관이 한 채 보였습니다. 대여섯 명의 불구자들이
구걸을 하며 그 앞에 앉아 있었는데, 그들의 모습은 비참했습니다. 눈이 멀었거나,
비쩍 마른 다리로 걷지 못하고 손으로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손가락이 없는 팔을 내밀기도 했습니다.
  "선생님, 불쌍히 여겨 주소서!."
  그들은 한숨을 쉬면서 병든 팔다리를 내밀었습니다.
  맨발에 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더러운 옷을 입은 여주인이 손님들을 맞았습니다.
문이란 문은 모두 끈으로 묶여져 있었고 방바닥은 군데군데 벽돌들을 내보이고
있었습니다. 천장에서는 박쥐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또 지독한
냄새가 났답니다.
  "차라리 외양간에다 식탁을 차려 주시오. 그 곳이라면 무슨 냄새인지 알기나
하지."
  여행객 가운데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신선한 공기가 들어오게 창을 모두 열었습니다. 그러나 신선한 공기보다 더
빠르게 비참한 팔들과 "선생님,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탄식이 먼저 날아
들어왔습니다. 벽은 낙서투성이였는데 그 중 절반은 찬란한 이탈리아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습니다.
  식사가 왔습니다. 후추와 부패된 기름이 섞인 물로 만든 수프였어요. 그리고
샐러드에도 같은 기름이 들어 있습니다. 그 중 썩은 달걀과 구운 닭벼슬이 가장
훌륭한 요리였답니다. 포도주조차도 이상한 맛이 났습니다. 그야말로 뒤죽박죽 섞인
맛이었답니다.
  밤이 되자 문에다 가방들을 세우고, 다른 사람들이 잠자는 동안 한 사람이 보초를
서기로 했습니다. 신학생이 보초를 섰습니다. 방이 얼마나 후덥지근한지 그 열기가
사람을 짓누를 지경이었습니다. 하루살이들은 윙윙거리며 날아들었고, 바깥에서는
"불쌍히 여기소서!" 라는 탄식이 끊임없이 들려왔습니다.
  "그래, 여행이란 좋은 거지. 사람이 몸을 안 가지고 있다면 말이야. 몸은 가만히
있고 정신만 날아다닌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대체 어딜 가든지 불행한 일들이 있단
말이야. 내가 갖고 싶은 것은 순간적인 것보다 좋은 것, 보다 나은 거야. 그래, 보다
나은 것. 최상의 것 그런데 그것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지? 그래, 난 내가 원하는
걸 잘 알고 있어. 나는 행복을 느끼고 싶어. 그 어느 것보다도 행복을 느끼고
싶다구!"
  이 말을 입 밖에 내자마자 그는 집에 와 있었습니다. 창문에는 길고 흰 망사
커튼이 내려져 있었습니다. 방바닥 한가운데에는 검은 관이 놓여 있었지요. 이 관
속에서 신학생은 잠에 취해 누워 있었답니다. 그의 소망이 실현된 거지요. 몸은
가만히 쉬고 정신만 여행을 하고 있으니까요. 무덤에 들어가지 전에는 아무에게도
행복하다는 찬양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은 솔론이었던가요? 이 말은 여기서 새로이
입증된 셈이지요.
  모든 시체는 스핑크스랍니다. 여기 검은 관 속의 스핑크스 역시 이틀 전 살아
있었을 때 자기가 썼던 것을 우리에게 설명해 주지 않습니다.

  너, 막강한 죽음이여. 네 침묵이 전율을 일깨우도다
  네 자취는 오직 교회 묘지의 무덤일 뿐
  정신은 야곱의 사다리를 올려다봐서는 안 되나요?
  오직 죽음의 풀이 되어야만 부활하나요?
  세상은 가장 큰 고통은 보지 못하나니!
  너, 네 종말에 이르도록까지 외로운 너.
  그토록 많은 의무들이 가슴을 짓누르도다
  여기 지상, 관의 벽 속에서보다 훨씬 더 무겁게.

  방 안에서는 두 개의 그림자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근심의 요정과 행복의
요정이었어요. 두 요정은 죽은 사람에게 몸을 굽혔답니다.
  "보세요 이 덧신이 사람들에게 대체 어떤 행복을 가져다 주었나요?"
  근심의 요정이 물었습니다.
  "여기 잠자는 이 사람에게 계속되는 기쁨을 가져다 주었지요."
  행복의 요정이 대답했습니다.
  "오! 아닙니다. 그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해요. 정해진 운명대로 그가 이 지상에서
해야 할 일이 있어요. 그의 정신력은 강하지 못하답니다. 그래서 내가 그에게
선물을 하나 주겠어요."
  근심의 요정은 신학생의 발에서 덧신을 벗겼습니다. 그러자 죽음의 잠은 끝이
났지요.
  신학생은 몸을 일으켰습니다. 근심의 요정은 사라졌고, 덧신도 사라졌답니다.
근심의 요정은 덧신을 자신의 재산으로 생각했나 봅니다.
 
꿋꿋한 장난감 병정   안데르센
 
스물다섯 명의 장난감 병정이 있었답니다. 그들은 모두 낡은 주석 숟가락으로 만들어진 형제였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팔에는 총을 들고, 얼굴은 똑바로 앞을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붉고 푸른색 군복은 아주 화려했지요. 병정들이 이 세상에서 들은 최초의 소리는 "야! 장난감 병정들이야" 라는 것이었습니다.
  한 작은 소년이 이렇게 외치면서 손뼉을 쳤습니다. 소년은 생일선물로 장난감 병정들을 받았던 거예요. 소년은 병정들을 책상 위에 세워 놓았습니다.
  병정들은 모두 하나같이 꼭 닮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병정은 다리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이 병정은 맨 마지막으로 만들어졌는데, 주석이 모자라서 그렇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병정은 두 다리를 가진 다른 병정들과 똑같이 한쪽 다리로 꼿꼿이 서 있었답니다. 우리가 할 이야기는 바로 이 외다리 병정 이야기랍니다.

  책상 위에는 다른 장난감들도 많이 있었답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종이로 만들어진 예쁜 성이었습니다.
  작은 창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면 기둥이 없는 복도가 보입니다. 성의 앞쪽에는 호수가 있고 작은 나무들이 빙 둘러 있습니다. 그 호수 위에는 밀랍으로 만든 백조들이 떠다니고 있었지요. 모든 것이 산뜻하고 귀여웠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귀여운 것은 열려진 성문 한가운데에 서 있는 작은 숙녀랍니다. 그녀 역시 종이로 오려서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아주 좋은 리넨으로 치마를 입고 있었고 어깨에는 작고 가느다란 푸른색 띠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만큼이나 커다란 금박으로 된 장미 한 송이가 띠에 꽂혀 있었습니다.
  작은 숙녀는 양팔을 하늘로 내뻗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무희였답니다. 다리 하나를 위로 높이 들어올리고 있었지요. 이것을 보지 못한 외다리 병정은 그녀도 자기처럼 다리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내 색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외다리 병정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귀족처럼 성에서 혼자 살잖아. 나는 스물다섯 명과 함께 상자에서 사는데 말이야. 상자 속은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아. 그러면 친구로라도 사귈 수 있는지 좀 알아봐야겠다.'
  외다리 병정은 책상 위에 서 있는 깡통 담배통 뒤로 한껏 몸을 길게 뻗고 누웠답니다. 그제야 비로소 한 다리로 균형을 잃지 않고 서 있는 그 우아한 숙녀를 제대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었답니다. 병정들은 잠을 자기 위해 모두 상자 속으로 들어갔고, 식구들도 모두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책상 위의 장난감들은 이제 저희들끼리 마음대로 놀기 시작했습니다. 전쟁을 하기도 하고 무도회를 열기도 했어요. 그들과 함께 놀고 싶어 병정들은 상자 속에서 몸을 꼼지락 거렸습니다. 그러나 상자 뚜껑을 열 수가 없었답니다.
  호두까기는 공중제비를 넘고, 철필은 책상 위를 돌아다니며 즐겁게 웃었습니다.
잠시 소란스런 소리도 났습니다. 카나리아가 잠에서 깨어 수다를 떨기 시작했거든요. 그것도 시를 읊으면서 말이에요. 움직이지 않는 것은, 외다리 병정과 춤추는 무희뿐이었답니다.
  그녀는 두 팔을 내뻗고 까치발로 가만히 서 있고, 외다리 병정은 꿋꿋하게 외다리로 서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답니다.
  시계가 열두 시를 쳤습니다. 그러자 털썩 담배통의 뚜껑이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담배가 아니라 검은색의 작은 오뚝이 였습니다.
  "외다리 병정? 너하고 상관없는 그 숙녀를 쳐다보지 마."
  오뚝이가 말했어요. 그러나 외다리 병정은 그 말을 못 들은 체했지요.
  "어쭈, 그래 내일까지만 기다려."
  오뚝이가 다시 말했습니다.

  아침이 되었답니다. 아이들도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외다리 병정은 창가에 그대로 서 있었어요. 그런데 오뚝이의 장난 때문일까요, 아니면 바람 때문일까요. 갑자기 창문이 확 열리면서 외다리 병정은 거꾸로 땅에 떨어지고 말았답니다. 참으로
무시무시한 여행이었습니다. 외다리 병정은 공중으로 다리를 뻗고 멋진 칼을 포도 사이에 박은 채 떨어졌습니다.
  소년이 금방 달려 내려왔습니다. 소년은 외다리 병정을 밟을 뻔했으면서도 보지 못했어요.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외다리 병정이 외쳤더라면 소년은 금방 찾았겠지요. 하지만 외다리 병정은 그렇게 하지 않았답니다. 멋진 군복을 입은 병정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비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빗줄기는 굵어지더니 억수같이 퍼붓는 소나기로 변했답니다.
  소나기가 지나가고 나자 소년 두 명이 외다리 병정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저기 봐!"
  한 아이가 말했어요.
  "장난감 병정이 있어. 가져가서 종이 배를 태워 줘야겠다."
  아이들은 신문지를 찢어 종이 배를 만들고 그 위에 외다리 병정을 태웠습니다.
  외다리 병정은 종이 배를 타고 도랑을 따라 떠내려갔습니다. 아이들도 손뼉을 치며 따라왔지요.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억수같이 퍼부은 비 때문에 도랑의 물살이 세어져서 종이 배는 이리저리 요동을 쳤답니다. 어떨 때는 갑자기 휙 돌기도 했는데 그 때마다 외다리 병정은 몸을 떨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표정 하나 찡그리지 않고 꿋꿋하게 잘 견뎠답니다.
  종이 배는 긴 하수구로 휩쓸려 들어갔습니다. 몹시 어두워서 꼭 상자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지요.
  "이제, 어디로 가는 걸까? 그래, 이게 다 그 오뚝이 때문이야. 아, 이 종이 배에 그 작은 숙녀와 같이 탔다면 캄캄해도 좋을 텐데."
  외다리 병정은 겁이 났어요.
  그 때 갑자기 하수구에 살고 있는 큰 시궁쥐가 나타났습니다.
  "너 통행증 있어?"
  시궁쥐가 물었어요.
  "통행증 내놔."
  외다리 병정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단단히 총을 잡았습니다. 종이배가 그 곳을 떠나려하자 시궁쥐가 뒤쫓아 왔습니다. 시궁쥐는 이빨을 드러내고 하수구의 나무 조각들과 지푸라기들에게 외쳤습니다.
  저 배를 잡아. 통행료를 안 냈어. 통행증을 보이지 않았단 말이야."
  물살은 점점 더 거세졌습니다. 외다리 병정은 간신히 하수구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무리 용감한 사람이라도 깜짝 놀랄 만한 쏴쏴 하는 큰 굉음이 들려 왔습니다. 하수구는 곧장 큰 운하와 연결돼 있었답니다. 큰 폭포 속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우리 인간에게나 장난감 병정에게나 똑같이 위험한 일이지요.
  이제 더 이상 배를 붙잡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종이 배는 쏜살같이 미끄러졌습니다. 외다리 병정은 그래도 몸을 꼿꼿이 세우고 앉아 있었어요. 누가 보더라도 눈 한 번 깜박거리지 않았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종이 배는 몇 번씩이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습니다. 가장자리까지 물이 가득 찼습니다. 이제 가라앉을 수밖에요!
  그래도 외다리 병정은 목까지 물에 잠긴 채 서 있었답니다. 종이 배는 점점 더 깊이 가라앉더니 마침내 종이가 찢어지고 말았습니다. 외다리 병정의 머리 위로 물이 덮쳤습니다. 외다리 병정은 이제는 다시 볼 수 없을 그 귀엽고 작은 무희를 생각했답니다. 그 때였습니다. 귓전에 시가 들려 왔습니다.

  타고 가려나, 오 전사여!
  그대는 죽음을 견뎌야 하느니라!

  마침내 종이 배는 두 동강이 나고 외다리 병정은 거꾸로 떨어졌습니다.
  그 순간, 큰 물고기가 외다리 병정을 삼켜 버리고 말았습니다.
  오, 그 안은 너무나 어두웠습니다. 하수구보다 더 기분 나쁜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몹시 좁았습니다. 하지만 외다리 병정은 꿋꿋하게 견뎠답니다. 총을 단단히 쥐고 말이에요.
  물고기는 이리저리 헤엄을 쳤습니다. 그러다가 조용해졌지요.
  외다리 병정의 눈앞으로 번개 같은 것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아주 밝은 빛이 들어왔습니다.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야, 장난감 병정이다!"
  그래요, 물고기는 어부에게 잡혀 시장으로 옮겨졌고, 다시 팔려 부엌으로 왔던 것입니다. 한 아주머니가 큰 칼로 배를 가르고 외다리 병정을 꺼내 방으로 가져갔지요.
  아이들이 물고기의 뱃속을 여행하고 온 장난감 병정을 보려고 몰려왔어요. 하지만 외다리 병정은 전혀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았답니다. 아이들은 그를 책상 위에 세워 놓았지요. 그런데 세상에는 참 희한한 일도 있지요! 그 방은 바로 자신이 있던 방이었습니다.
  책상 위에는 옛 친구들이 그대로 있고, 귀여운 작은 무희가 서 있는 화려한 성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한 쪽 다리를 높이 세운 채 나머지 다리로 서 있었답니다. 그녀 역시 꿋꿋했지요. 그 모습을 본 외다리 병정은 감동했어요.
하마터면 눈물을 쏟을 뻔했지요. 하지만 그것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 참았답니다.
  외다리 병정은 그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녀 역시 외다리 병정을 바라 보았지요,
그러나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이 하나가 외다리 병정을 집더니 곧장 난로 속에 집어 넣는 게 아니겠어요? 그 아이는 아무 이유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틀림없이 깡통 속에 들어있는 오뚝이 때문이었을 거예요.
  외다리 병정은 불 속에 서 있었습니다. 무시무시한 열을 느꼈지요. 그러나 그 열이 실제 불길에서 오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에서 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몸을 감싸고 있던 붉고 푸른 색깔이 다 벗겨져 나갔어요. 여행 중에 그렇게 된 것인지 근심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인지는 아무도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외다리 병정은 그 작은 숙녀를 바라보았답니다. 그녀도 외다리 병정을 바라보았지요. 이제 외다리 병정은 천천히 녹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여전히 총을 들고 꿋꿋하게 서 있었답니다. 그 때 문이 열리더니 바람이 그 숙녀를 붙잡았습니다.
  그녀는 마치 공기의 요정처럼 외다리 병정에게로 날아왔어요. 그리고는 불꽃 속에 타올라 사라져 버렸답니다. 물론 외다리 병정도 다 녹아 버렸지요.
  다음 날 아침, 난로에서 하녀가 재를 끄집어냈을 때 그녀는, 외다리 병정의 주석이 작은 하트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작은 숙녀에게서는 금박 장미만이 남아 있었지요. 석탄처럼 까맣게 타 버린 모습으로.
 
소시지 꼬챙이로 만든 수프
 
1

  "어제 점심 식사는 굉장했었어요."
  늙은 쥐 부인이 향연에 참석하지 않았던 다른 쥐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늙은 쥐 대왕님 옆 21번 좌석에 앉아 있었어요. 모든 것이 훌륭했답니다.
음식들도 아주 잘 차려졌었지요. 곰팡이가 난 빵, 베이컨 껍질, 수지 초와 소시지,
그리고 나서 처음부터 다시 같은 음식들이 나왔지요. 그것은 우리들이 두 끼 식사를
대신할 만큼 엄청난 양이었어요. 마치 가족간의 모임처럼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유쾌한 농담들이 오갔죠. 소시지 꼬챙이밖에는 단 한 조각도 남은 것이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이야기했어요. 소시지 꼬챙이로 수프를 끓일 수 있을까 하고 말이죠.
모두들 그런 수프를 만드는 법에 능통한 사람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모두가 입을 다물었어요. 그것을 생각해 낸 이의 건강을 위해 멋지게 축배를
들었지요. 그는 장차 가난한 자들의 대표가 될 것이랍니다. 그 때 대왕님께서
일어나셔서 젊은 여자 쥐 중에서 소시지 꼬챙이로 수프를 가장 맛있게 끓일 수 있는
쥐는 자신의 부인으로 맞겠다고 약속했답니다. 대왕님은 단 1년 동안 시간을
주었지요."
  "그것 좋은 생각이로군요."
  다른 쥐 부인이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수프를 어떻게 만들까요?"
  "그래요, 그걸 어떻게 만드는가? 젊거나 늙은 여자 쥐들이 똑같이 물었죠. 누구나
왕비가 되고 싶었답니다. 마지못해 하는 노력이긴 했어도, 그것을 배우기 위해 넓은
세상으로 나가고자 했지요. 그래요, 그걸 필요가 있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가족들과
행복한 생활을 팽개치고 떠나는 것이 누구에게나 가능하지는 않았죠. 먼 길을
떠나면, 치즈 껍질이 날마다 길위에 있을 리 없고, 베이컨 껍질 냄새도 맡기
힘들어질 테니까요. 아니, 결국은 굶주림에 허덕이게 될 거예요. 그럼요, 결국엔
고양이에게 산 채로 잡아먹힐 거라구요."
  이런 생각들이 탐문 여행에 나서려는 쥐들을 위협했었죠. 결국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은 젊고 장애가 없고 가난한 네 마리의 쥐들뿐이었답니다.
  그녀들은 각자 동서남북 중의 한 방향으로 가기로 했답니다. 누구에게 행운이
오느냐는 거기에 달려 있죠. 무엇 때문에 그들이 길을 떠났는가를 잊지 않도록 각자
소시지 꼬챙이 하나씩 챙겼답니다. 그것은 그녀들의 지팡이 노릇도 할 것입니다.
  그녀들은 5월 초에 그곳에서 떠났어요. 그리고 1년 후인 5월 초에 돌아왔어요.
그러나 돌아온 쥐는 셋뿐이었고 네 번째 쥐에게는 아무런 소식 조차 없었어요. 며칠
뒤, 드디어 결정의 날이 왔습니다.
  "가장 큰 기쁨은 항상 슬픔을 동반하는구나!"
  대왕 쥐는 그렇게 말하면서 몇 마일 내의 모든 쥐들을 초대하라는 명령을
내렸어요. 그들은 모두 부엌에 모였답니다. 여행을 떠났던 세 마리의 쥐들은 한
줄로 섰고, 오지 못한 네 번째 쥐를 위해서는 검은 상장을 휘감은 소시지 꼬챙이를
세웠어요. 그 세 마리 쥐들이 말하기 전이나, 계속해서 말하라는 대왕 쥐의 명령이
있기 전에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견을 말하면 안 되었어요.
  마침내 우리는 그 이야기를 듣게 될 것입니다.
    ------
      2
  "제가 넓은 세상으로 나갔을 때^5,5,5^."
  작은 쥐의 이야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제 또래의 많은 아이들이 얘기한 것처럼 제가 세상의 지혜를 섭렵할 수
있으리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어요. 그 사건이 있기까지 세월이
걸렸죠. 저는 곧바로 바다로 갔습니다. 북쪽으로 가는 배를 탔지요. 거기서 저는
배의 요리사가 어떻게 혼자서 요리를 해결하는가를 알아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충분한 베이컨 조각과 소금에 절인 고기들, 그리고 곰팡내 나는 밀가루를
가진 사람이라면 음식 장만쯤 혼자서 해결하는 것은 간단한 일이었습니다. 인간은
맛있게 먹고 살더군요. 그러나 사람들은 어떻게 소시지 꼬챙이로 수프를 만드는가는
모르고 있더군요. 우리는 여러 날을 항해했습니다. 배는 흔들렸고 배 안까지 물이
들어와 모든 것이 젖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목표했던 곳에 닿았을 때 저는 배에서
나왔습니다. 그 곳은 아주 북쪽이었어요.
  집에서 떠난다는 것, 또 하나의 생활인 배를 타고 항해하는 것, 그리고 갑자기
수백 마일 멀리 떨어져 낯선 땅에 서 있게 된 것은 특별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곳에는 소나무와 자작나무 숲이 있었습니다. 그 숲에서는 아주 강한 냄새가
났습니다. 저는 그 냄새가 싫었어요. 야생 식물들은 그렇게 강렬한 냄새가 나더군요.
그 곳에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는데, 그 호수는 가까운 곳에서는 아주 맑게 보였지만,
멀리서는 잉크처럼 검게 보였습니다. 백조들이 호수에서 헤엄을 치는데 어찌나
조용히 떠 있던지 저는 거품인 줄 알았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들이 나는 것도 보고 뛰는 것도 보았죠. 그 때야 저는 그들을
다시 알아봤어요. 그들은 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거위 종류에 속해요. 누구도 그와
같은 종족임을 부인할 수 없죠. 저는 저를, 요리에 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는
야생쥐나 들쥐와 다르지 않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제가 외국으로 갔었던
거죠.
  소시지 꼬챙이로 수프를 끓인다는 생각은 그들에게는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는 곧바로 숲 전체로 퍼졌지요. 그러나 그들로서는 그 방법을 알아 낼 수가
없었죠. 그래도 저는 최소한 그 곳에서, 게다가 그 밤안에 조리 방법이 전수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 때는 한여름이었죠. 그래서 숲은 더욱 강한 향기를 내뿜고,
호수들이 그처럼 맑으며 흰 백조들이 떠 있을 때는 물빛이 더욱 검게 보인다고
했습니다.
  숲가에 있는 서너 집 사이에 큰 돛대처럼 막대가 높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꼭대기에는 화관과 리본이 달려 있었지요. 그것은 메이폴(서양에서 5월 1일 광장에
세우고 꽃리본으로 장식하는 기둥. 그 주위에서 춤을 추며 즐김)이었습니다.
  소녀들과 소년들은 빙 둘러서 춤을 추었고, 바이올린 켜는 사람과 경쟁이라도
하듯, 큰 소리로 노래하였습니다. 노랫소리는 석양과 달빛 속에서도 흥겹게
계속되었지요. 그러나 저는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숲의 향연에서 한 작은 쥐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어요. 저는 부드러운 이끼 속에 앉아서 소시지 꼬챙이를 꽉
잡았어요. 달빛은 특이한 이끼가 낀 나무를 비추었습니다. 이끼는 정말 부드러웠죠.
그래요, 말하자면 대왕님의 털처럼 그렇게 부드러웠습니다. 달빛은 녹색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은총과도 같이 보였을 겁니다.
  그 때 갑자기 깜짝 놀랄 만큼 작은 사람들이 행진해 왔습니다. 그들은 겨우 제
무릎에나 닿을 만큼 작았습니다. 그들은 사람처럼 보였지만, 훨씬더 균형이 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요정이라 불렀는데, 파리와 모기의 날개 장식이 달린
꽃잎으로 만든, 섬세하고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그들이 무엇인지를
찾고 있었을 때는, 저는 영문을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몇 명이 내게로 와서
그들 중의 대표가 내 소시지 꼬챙이를 가리키며 말했어요.
  '우리는 바로 그것이 필요해요! 그것은 똑바로 잘라졌어요. 아주 알맞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제 지팡이를 바라보며 점점 더 만족해 했습니다.
  '좋아요. 빌려 주겠어요. 그러나 돌려 주셔야 합니다.'
  '갖지 않을게요.'
  그들이 동시에 대답하였습니다. 제가 지팡이를 건네자, 그들은 그 소시지 꼬챙이를
잡고서 춤추는 듯한 발걸음으로 곱게 이끼 낀 장소로 걸어갔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꼬챙이를 녹지 한가운데에 세웠습니다. 그들도 메이폴을 갖고 싶었는데 마치 그러기
위해 잘라 놓은 것처럼 소시지 꼬챙이는 그들의 메이폴로 안성맞춤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꼬챙이는 장식이 되었던 것이지요. 그래요, 이제 소시지 꼬챙이는 달라
보였어요.
  작은 거미들은 그 나무 둘레를 금빛 거미줄로 짜고, 곱게 짜여진 달빛속에서
눈처럼 눈부시게 빛나는 하늘거리는 베일과 깃발들을 매달았습니다. 요정들은 나비
날개에서 물감을 만들어 하얀 천 위에 떨어뜨려, 꽃과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저의 소시지 꼬챙이를 더 이상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이런 메이폴은 세상에 다시 없는 것이었어요. 그런 후에야 정말 곱고 예쁜 옷을
입은 많은 요정들이 왔습니다. 저는 그 장관을 볼 수 있도록 초대 받았습니다.
그러나 멀리서만 볼 수 있었죠. 왜냐하면 제가 요정들에 비해서 너무 컸으니까요.
  드디어 연주가 시작되었습니다. 수천 개의 유리 종들이 한꺼번에 올렸을 때,
백조들이 노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요, 뻐꾸기와 개똥지빠귀들의 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어요. 마지막에는 숲 전체가 함께 노래하였지요. 그것은 아이들의 노랫소리,
종소리와 새들의 노래가 만드는 감동스런 가락이었습니다. 이 모든 훌륭한 것은
요정의 메이폴에서 흘러나왔고, 그것은 최고의 종소리 연주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제
소시지 꼬챙이였습니다. 저는 소시지 꼬챙이에서 그처럼 많은 것이 터져
나오리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완전히 감동하였습니다. 커다란 기쁨으로 눈물까지 흘렸지요.
  그 밤은 너무나 짧았어요. 밤은 더 이상 그 곳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동이 트자 호수에 잔물결이 일게 하는 바람이 불었습니다. 그 섬세하고 하늘거리던
베일과 깃발들은 하늘 높이 날아가 버렸습니다. 거미줄로 엮은 흔들거리는 정자나,
구름 다리들과 난간들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여섯 명의 요정들이 제게 와서 소시지 꼬챙이를 돌려 주었습니다. 요정들은
자기들이 들어줄 수 있는 소원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정들에게
어떻게 소시지 꼬챙이로 수프를 끓일 수 있는지 말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했던 것처럼. 당신이 바로 전에 보았던 것처럼. 당신은 당신의 소시지
꼬챙이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요정들의 대표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아, 그걸 말씀하시는군요.'
  저는, 어떻게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고향에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를 대략
설명했습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쥐 대왕님과 우리의 거대한 왕국의 모든 이에게 내가 이처럼 기적 같은 광경을
보았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 나는 소시지 꼬챙이를 흔들면서 말할
수는 없어요, 보라, 여기 꼬챙이가 있다. 이제 수프가 나온다. 이미 배가 부르다면,
어떤 요리 같은 것이 있을 텐데^5,5,5^.'
  그 때 요정이 작은 손가락을 바이올렛 꽃 속에 넣으면서 말했습니다.
  '잘 보세요. 당신의 지팡이에 칠을 해 주겠어요. 그리고 당신이 대왕 쥐의 성으로
돌아갔을 때, 그 막대로 대왕의 따스한 가슴을 건드리면 막대둘레 전체에서
바이올렛이 피어나게 될 거예요. 한겨울일지라도. 집에가면 당신은 이 막대에서
항상 무엇인가를 얻게 될 거예요. 게다가 약간의 덤까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덤이 무엇인지를 쥐가 말하기 전에 대왕은 막대를 가슴에 들이댔습니다.
그러자 실제로 장말 아름다운 꽃다발이 피어났습니다. 그 꽃의 향기는 대왕 쥐가
쥐들에게, 괴상한 냄새가 나도록 곧바로 쥐들의 꼬리를 굴뚝의 불 속에 넣어야
한다고 명령할 만큼 강한 냄새가 났습니다. 왜냐하면 바이올렛의 향기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이올렛 향기가 아닌 참을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네가 이야기하였던 덤이라는 게 무엇이었느냐"
  대왕 쥐가 물었습니다.
  "예,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백미라 일컫는 것이지요."
  그리고 나서 그 쥐는 소시지 꼬챙이를 돌렸습니다. 그러자 꽃들이 사라지고 쥐는
민둥민둥한 꼬챙이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쥐는 그 막대를 지위봉인 양 높이
들었습니다.
  "바이올렛 꽃들은 눈을 위해, 냄새를 위해, 그리고 감각을 위해' 라고 요정이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밖에 귀와 혀를 위한 어떤 것이 있지요."
  그리고 나서 쥐는 막대로 박자를 쳤습니다. 그러자 음악이 흘러나왔는데 숲속
요정들의 축제에서 울려 퍼지던 그 음악이 아니었습니다. 그 음악은 부엌에서 들을
수 있는 것이었어요. 그래요, 그것은 엄청난 소리였습니다. 아주 갑작스런 바람이
모든 불구멍으로 분 것처럼 주전자와 냄비들이 끓어 넘치고 부젓가락은 구리
주전자를 진동시키고 나서 단번에 조용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아주 신비한 찻주전자의 조용한 노래를 들었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중단되었는지, 시작되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였습니다. 작은 냄비가 끓고, 큰 냄비가
끓었습니다. 냄비들은 전혀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 작은 쥐는 지휘봉을 계속해서 격렬하게 흔들었습니다. 냄비들에서 거품이
일었고 부글부글 끓어 올랐으며, 흘러 넘쳤습니다. 바람이 불어 왔고, 굴뚝은 피리
소리를 냈습니다 그것은 작은 생쥐도 자기의 막대를 떨어뜨릴 정도로 공포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굉장한 수프로구나! 지금 음식은 안 나오느냐?"
  늙은 대왕 쥐가 말했습니다.
  "이것이 전부입니다."
  작은 쥐가 말하면서 무릎을 끓고 절을 하였습니다.
  "이게 전부라고? 좋아, 그럼 다음 쥐가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 보자."
  대왕 쥐가 말했습니다.
    ------
      3
  "저는 성의 서재에서 태어났죠."
  두 번째 쥐가 말했습니다.
  "저와 저의 많은 친척들은 그 곳에서 식당이 있는 방으로 갈 수 있는 행운을 얻지
못했습니다. 하물며 부엌으로까지야 이를 말이겠습니다.
  제가 여행길에 올랐을 때와 바로 오늘 여기서 처음 부엌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서재에서 약간 배가 고프게 지냈지만 많은 지식을 섭렵했습니다. 그 곳에 있었던
우리에게, 소시지 꼬챙이로 수프를 만들면 상을 주겠다는 소문이 들려 왔고, 곧바로
늙은 할머니가 제게 오셨습니다.
  할머니는 한 편의 원고를 꺼내셨습니다. 할머니는 원고를 읽을 수 없었지만 읽는
것을 들을 수는 있었지요. 거기에 씌어 있기를 '시인이라면 소시지 꼬챙이로 수프를
끓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시인인지 물었습니다. 저는 아니라고
했고, 할머니는 그렇다면 제가 시인이 될 수 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인이 되기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냐고 여쭤 봤어요.
왜냐하면 시인이 되는 것은, 그 수프를 끓이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었으니까요.
할머니께서는 책에 나온대로라면 세 가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점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고력, 환상, 그리고 느낌 네가 그것들을 간직할 수 있다면 너는
시인이 된단다. 그러면 너는 소시지 꼬챙이로 그 수프를 끓일 수 있단다.'
  그리하여 저는 시인이 되기 위해 서쪽의 먼 세상으로 나갔어요. 저는 사고력이
모든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저는 맨 먼저 사고력을
찾기 위해 바깥 세상으로 갔어요.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을까? 개미들에게 가면
지혜로워질 거라고 유대 나라의 왕이 말했었죠. 저는 그것을 서재에서 알았어요.
그래서 저는 커다란 개밋둑에 닿을 때까지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나아갔어요.
지혜롭게 행동하기 위해 저는 그 개밋둑 옆에 몸을 숨기고 기다렸죠.
  개미들은 아주 복종심이 강한 종족입니다. 정말 뛰어난 사고력도 가지고 있지요.
그들은 모든 것들을 정말 자로 잰 듯한 계산 문제같이 풀어 버립니다. 개미들은
노동과 알 낳는 일은 그 시대를 살아가고 후세를 위해 물려주는 것이라 했고,
그대로 행합니다. 개미들은 깨끗하고도 끈적끈적한 개미들에게서 태어납니다.
그들에겐 서열이 있지요. 여왕개미가 제1호입니다. 그녀의 의견이야말로 최상의
그리고 유일한 진리입니다. 여왕개미는 매우 지혜로웠으며 그 지혜를 경험하는 것은
제게 중요하였습니다. 그녀는 많은 것들을 이야기했는데 대단히 지혜롭다는 것을 알
수 있었죠. 물론 제가 보기엔 종종 어리석은 점도 있었지만,
  여왕개미는 자신의 개밋둑이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을 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개밋둑 바로 옆에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어요. 그 나무는 개미보다 훨씬 더
높았지요. 누가 봐도 분명한 것이었죠. 그렇지만 아무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느날 밤, 개미 한 마리가 길을 잃고, 그 나무줄기로 기어
올라갔습니다.꼭대기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떤 개미도 가 보지 못했던 훨씬 높은
곳까지 올라갔습니다.
  그 개미는 가까스로 집에 돌아와서 개밋둑 바깥에 있는 훨씬 높았던 무언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개미들은 그가 전체 사회를 모독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리하여 그 개미에게 마스크가 씌워지고 한없이 외로움을 당해야
하는 형벌에 처해졌답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또 다른 개미 한 마리가 그 나무에
오르게 되었고, 똑같은 여행을 하고서 똑같은 발견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
개미는 사람들이 말하듯이 그 사실을 신중하면서도 암시하듯이 이야기했습니다.
게다가 그 개미는 품행이 바른 개미로 존경 받는 개미였으므로 이번엔 그 개미의
말을 믿었습니다. 그 개미가 죽자, 다른 개미들은 알껍질을 그녀의 기념석으로 세워
주기까지 했습니다. 왜냐하면 학자들이 그 개미를 존경했기 때문입니다."
  그 작은 쥐는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저는 개미들이 계속해서 자기들의 알을 등 위로 올려 운반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개미가 자기의 알을 떨어뜨리면, 그것을 다시 들어올리는데 아주 힘들어 합니다.
그 때 그 개미 가까이에 있던 두 마리의 다른 개미들이 와서 힘을 내어 돕는답니다.
자기들이 등에 지고 있던 알을 놓아 버리고 말입니다. 그렇지만 개미들은 곧바로 그
알들이 제자리에 놓이게 합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스스로 다음 개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왕개미는, 이것이 바로 가슴과 사고력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런 두 가지 특성들이 우리 개미들을 이상적 동물 중에서도 가장 이성적인
동물이라고 평가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고력은 아주 중요한 것이며, 또 모두가 그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가장 많은 사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왕 개미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맨 뒤에 있는 다리들을 똑바로 일으켜
세웠습니다. 저는 여왕 개미를 가지면 지혜로워질 수 있다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개미를 삼켜 버렸지요. 개미에게 가라, 그러면 지혜롭게 되리라. 이제 나는
그 여왕개미의 사고력을 가진 것입니다.
  저는 곁에 있는, 아까 언급했던 높은 나무 가까이로 갔습니다. 그 나무는
떡갈나무였습니다. 떡갈나무는 높은 줄기와 거대한 나무관을 갖고 있었는데, 아주
나이가 많았습니다. 저는 여기에, 드루야데(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무 요정)라
불리는 여자가 산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녀는 나무와 함께 태어나고 나무와 함께
죽는답니다. 저는 예전에 서재에서 그 여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떡갈나무 여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녀는 나를 보자 무서운 소리를
냈습니다. 그녀는 다른 여자들처럼 쥐들에 대해 아주 불안해 했지요. 더욱이 그녀는
다른 여자들보다도 훨씬 더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나무를
깨물어 뜯어 구멍을 낼 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그녀는 죽어 버리게 되기
때문이었지요.
저는 친절하게 말을 걸며 그녀에게 접근해서 용기를 주었어요. 그리하여 그녀는
나를 믿고 그녀의 고운 손 위에 올려놓게까지 되었습니다. 그녀는 무엇 때문에 제가
넓은 세상으로 나왔는가를 알고서는, 그 날 밤에 아직 찾아 헤매고 있는 그 두 가지
보물 중의 하나를 얻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판타수스와 그녀는 아주 잘
아는 친구인데, 판타수스는 사랑의 신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나뭇가지밑에 앉아
있었으며, 나뭇가지들로 살랑살랑 소리를 내면서 안정을 얻기도 한다고 말했습니다.
  판타수스는 그녀를 자신의 드루야데라고 부른다고 했습니다. 판타수스는 모든
나무를 자신의 나무라고 하고, 특히 마디가 있고 힘이 있는 아름다운 떡갈나무는
놀랄 만큼 자기 뜻대로 자라난 것이라고 드루야데에게 말하였습니다. 땅 속에 깊고
단단하게 뿌리가 내려져 있으며 나무 줄기와 수관은 공중에 높이 솟아 몰아치는
눈과 매서운 바람, 그리고 따뜻한 햇살을 알고 있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마치
사람들이 이런 모든 것을 알아야 하는 것처럼.
  "새들은 저 위에서 노래하고 낯선 나라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구나. 그리고
하나뿐인 메마른 가지 위에 황새는 보금자리를 짓는다. 그것은 멋진 장식물이고
사람들은 피라미드의 나라에 대해 조금이나마 경험하게 된단다. 이 모든 것을
판타수스는 아주 좋아하지. 하지만 그것만으로 그는 만족스럽지 않아 하거든.
그래서 나는 그에게 숲 속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해 주곤 한단다. 나도 그 나무도
모두 어렸을 때, 그래서 쐐기풀들로 덮일 만큼 작았던 그 나무가 크고 거대하게
자라난 동안의 이야기 말이야, 자, 거기 밑에 앉아 산림 감시원이 오는지 잘 보렴.
판타수스가 오면 기회를 보아 그의 날개에서 작은 깃털을 뽑아 줄테니 그 깃털을
가지렴. 어떤 시인도 아직 더 좋은 것을 갖지 못했단다. 그것이라면 충분할 거야.'
  잠시 후 판타수스가 왔을 때, 드루야데는 제게 그의 깃털을 뽑아 주었습니다. 저는
깃털을 가졌어요."
  작은 쥐가 말하였습니다.
  "저는 그 깃털을 부드럽게 될 때까지 물 속에 담갔어요. 처음에는 소화시키기가
힘들었지만, 저는 그걸 다 깨물어 먹었답니다. 단지 시인이 되겠다는 마음만으로
그것을 다 씹어 먹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목이
막히도록 삼켜야 되는 커다란 것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이제 저는
그 두 가지, 즉 사고력과 상상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고력과 상상력의 힘을 빌어,
저는 세 번째 것은 서재에서 찾아야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위대한
사람이, 인간들이 넘치는 눈물로부터 자유롭도록 하기 위해 소설이 있다고 글로 쓴
것을 본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스펀지처럼 그 내부로 감정을
빨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런 책들 중에서 몇 권이 떠올랐습니다. 언제나 흥미를
돋우는 낡고 반점투성이의 책들이었습니다. 그 책들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자기 자신 안에 받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고향의 서재로 와서 곧바로 소설 한 권을 거의 다 먹었습니다. 거의 다
먹었다는 것은 책의 겉표지, 즉 책의 연한 본체는 다 먹고 표지는 놔 두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그 소설을 소화시켰을 때, 저는 그것이 제 속을 휘젓는 것처럼
느꼈어요. 세 번째 것 중에서 가장 어렵게 소화를 시킨 것이지요. 그 때부터 저는
스스로를 시인이라고 불렀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머리와
창자에 아픔을 느꼈지요. 저는 소시지 꼬챙이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엮어졌는지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나무들이 제 감각 속에 떠올랐습니다. 그
여왕개미는 독특한 사고력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입에 흰 막대를 물었다가는 그
막대를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했던 한 사람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나무 머리들, 나무
사내들, 나무 사과들, 그리고 우리들 관에 박힐 못들을 생각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나무로 만들어졌어요. 시인이라면 그런 이야기들로 시를 지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시인입니다. 힘껏 노력하여 시인이 되었지요. 저는 이런
방식으로 당신에게 1주일 내내 이야기를 해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저의 수프입니다."
  "자, 그러면 이제 세 번째 쥐의 이야기를 듣기로 하자."
  대왕 쥐가 말하였습니다.
  그 때 부엌 문 쪽에서 찍찍! 하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리고 죽었다고 생각했던 네
번째 쥐가 쏜살같이 달려들어 왔습니다. 그 쥐는 헐떡거리면서 검은 베일을 단
소시지 꼬챙이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습니다. 매우 흐트러진 몰골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쥐는 소시지 꼬챙이를 잃어버렸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말은 잃어 버리지
않았습니다. 쥐는 마치 모두가 자기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바쁘게 이야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마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처럼 쥐는 이야기를 시작하자마자, 곧 이야기를 마쳐 버렸지요.
쥐는 그렇게 예기치 않게 왔으며, 이야기하는 동안에 아무도 그 쥐와 그 이야기에
대해 열중할 시간을 갖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그 이야기를 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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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저는 곧바로 가장 큰 도시로 갔어요."
  네 번째 쥐가 말했습니다.
  "그 도시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저는 압류된 물건들에 실려 시청으로
갔습니다. 제가 탔던 기차에 압류된 물건들이 실려 있었던 거지요. 그리고 나서
저는 붙잡힌 사람들을 감시하는 사람에게 넘겨졌습니다. 그는 자기가 감시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하면서 투덜거렸습니다. 특히, 분별 없던 일들에 대해 말했던 어떤
죄수 이야기를 가장 신나게 했지요. 그렇게 분별 없는 일들은 당연히 나쁜 결과를
초래하게 되겠지요.
  '그 모든 것은 소시지 꼬챙이로 만든 수프에 지나지 않아. 그러나 그 수프가
그에게는 목숨에 관계되는 일일 수도 있어.'
  이렇게 해서 저는 그 죄수에 대해 흥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기회를 틈타 그 죄수가 있는 곳으로 미끄러져 들어갔습니다. 닫힌 문들 뒤에
있는 쥐구멍으로 쉽게 들어갔지요. 갇혀 있는 그 죄수는 창백한 얼굴에 긴 수염과
빛나는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등불이 그을음을 내며 타올랐지만, 벽들은 이미
그을릴 대로 그을려 더 이상 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죄수는 검은 바탕에 하얗게 그림을 그려 자국을 내고, 거기에 시를 써
넣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들을 읽지 못하였지요. 그는 몹시 지루해 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저를 보자 무척 기뻐했지요. 그는 말랑말랑한 빵으로 저를
유혹하여 자기 쪽으로 오게 하였으며, 휘파람과 부드러운 말로 저를 꾀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해서 서로 친해지게 되었답니다. 그와 나는 빵과 물을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는 내게 치즈와 소시지를 선물해 주기도 했지요. 그렇게 그 곳에서의
생활은 멋진 것이었죠.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와 제가 참 좋은
관계였다는 점입니다. 그는 저를 그의 손과 팔 위로 돌아 다니게 하였고 소매
속에서도 놀게 하였답니다. 그는 저를 자기의 수염 속에서도 기어다니게 하였으며,
작은 여자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였습니다. 그도 저를 사랑했지요. 그러다가 저는 제가
넓은 세상 밖으로 나와 무엇을 하려 했던가를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저의
소시지 꼬챙이도 마룻바닥 틈에서 잃어버렸습니다. 그 막대기는 아직도 그 곳에
있겠지요 저는 제가 있던 곳에 머물려고 했었습니다. 제가 떠나 버렸다면 그 불쌍한
죄수에겐 정말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그 곳에 머물렀지만, 그가
영원히 그 곳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아주 슬프게 제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다른 때보다 두배나 많은
빵과 치즈 껍질을 선물했고, 저의 손에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리곤 그는 가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후의 그의 이야기를 알지 못합니다. 그제야
'소시지 꼬챙이로 만든 수프' 라고 맨 처음 말했던 간수가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저는 그 간수에게 갔지만 그는 저를 귀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를 손 위에
올려놓기는 했지만 저를 우리 속에, 죄수에게 벌로 밟게 하는 답차에다 넣어
버렸습니다. 너무해요, 달려도 달려도 좁은 답차 안일 뿐, 웃음거리만 될 뿐이었죠.
  그 때 금발의 고수머리, 기쁨에 가득 찬 눈과 항상 미소 짓는 입을 가진 그
간수의 손녀가 다가왔어요. 그 아이는 매력적인 아이였어요. '불쌍한 작은 쥐야!'
라고 말하면서 제가 갇힌 지긋지긋한 우리를 굽어보더니 쇠로 된 걸림쇠를
뽑았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창문 홈통과 추녀 홈통을 통해 달아날 수 있었습니다.
자유, 자유다. 저는 오직 그것만을 생각했고 여행 목적은 생각나지도 않았어요.
  그 때는 너무 깊은 밤이라 어두웠습니다. 저는 옛 탑 속에서 피난처가 될 만한
곳을 발견했습니다. 그 곳에는 파수꾼 한 사람과 부엉이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 둘 다 믿지 않았습니다. 부엉이는 고양이처럼 쥐들을
잡아먹지요. 그에 비하면 사람은 때때로 어리석기도 하죠. 하지만 그 부엉이는
존경스러울 만큼 대단히 교양 있는 늙은 부엉이였어요. 파수꾼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 젊은 부엉이들은 아주 작은 일까지도 그 부엉이에게 하소연했습니다.
  늙은 부엉이는 소시지 꼬챙이로는 수프를 만들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그
부엉이가 말할 수 있었던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었습니다. 그 부엉이는 부엉이
가족들에게서 깊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저 또한 제가 겪었던 그 고난에서 빠져
나왔다는 안도감과 부엉이에 대한 신뢰감을 느꼈습니다. 저의 그런 신뢰감이 부엉이
맘에 들었던지, 부엉이는 제가 자신의 보호 아래 있게 될 것임을 확신시켜
주었습니다. 어떤 동물도 저한테 나쁘게 굴 수 없게 되었지요. 하지만 부엉이의
속뜻은 음흉했습니다. 겨울에 양식이 다 떨어져 가면 저를 먹으려는 수작이었죠.
  부엉이는 매우 영리했습니다. 파수꾼은 느슨하게 걸려 있는 나팔이 없이는
울부짖지 못한다는 것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그 파수꾼은 나팔에 대해 대단한 자만심을 갖고 있지. 말하자면 그는 종루 속의
부엉이야. 대단한 것일 수도 있고 하찮은 것일 수도 있지. 소시지 꼬챙이로 만든
수프나 마찬가지라구.'
  저는 그 부엉이에게 비법을 알려 줄 수 있느냐고 요청했고, 그 부엉이는 드디어
제게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소시지 꼬챙이로 만든 수프란 단지 사람들이 말하는 표현 방법이지. 그것은
사람에 따라 여러 가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단다. 그리고 누구나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그 자체는 원래 없는 거야.'
  '없는 것이라구요.'
  저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말은 너무나 충격적인
것이었거든요.
  '진실이란 항상 달콤하지만은 않지. 하지만 진실이 최고란다.'
  그 늙은 부엉이는 말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서 깨달음을 얻었어요. 제가 만약 최상의 것을
가져간다면, 소시지 꼬챙이로 만든 수프보다 더 많은 것을 가져갈 거라고
생각했지요. 그래서 그 때 저는, 때맞춰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또 최상의 것과
최고의 것을 가져오기 위해 서둘렀습니다. 진실을 전하기 위해
  쥐들은 깨어 있는 종족이고 쥐 대왕님께서는 그들보다 훨씬 월등하십니다. 쥐
대왕님께서는 진실을 위해 저를 왕비로 만드실 수 있는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것은 거짓말이야! 저는 그 수프를 끓일 수 있습니다. 제가 그것을 해
보이겠습니다."'
  아직 말하지 않은 세 번째 쥐가 소리쳤습니다.
    ------
      5
  "저는 여행하지 않았어요. 저는 이 땅에 있었어요. 이것이 유일한 진실입니다.
여행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이 곳에서도 똑같이 얻을 수 있어요. 저는
여기 있었다구요. 저는 수프 만드는 법을 초자연적인 것에서 배우지도 않았고,
무엇을 갉아 먹지도 않았고, 부엉이와 이야기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제 생각대로
만들었어요. 자, 물을 가득 붓고 솥을 좀 걸어 주세요. 불을 지펴 물을 끓여 주세요.
충분히 끓여야 합니다. 이제, 소시지 꼬챙이를 던져 넣으세요. 친절하신 대왕님,
당신의 꼬리를 충분히 끓고 있는 물 속에 넣고 저어 주십시오. 오랫동안 저으면
저을수록 수프는 점점 더 진해집니다. 돈 한푼 들지 않습니다. 조미료도 필요
없습니다. 오직 젓기만 하면 됩니다."
  세 번째 쥐가 말했습니다.
  "다른 쥐가 할 수는 없느냐?"
  대왕 쥐가 물었습니다.
  "안 됩니다. 이러한 힘은 오직 대왕님의 꼬리에만 있습니다."
  그 쥐가 대답했습니다.
  그리하여 물은 펄펄 끓어 올랐고, 대왕 쥐는 솥 가까이에 섰습니다. 매우 위험해
보였습니다. 그 다음에 그는 쥐들이 우유 창고에서 양푼 속의 연유를 퍼내고 나서
꼬리에 묻어 있는 연유를 핥듯이 자신의 꼬리를 내밀었습니다. 하지만 대왕 쥐는
뜨거운 증기만 쏘였을 뿐, 더 이상 꼬리를 내밀지 못했습니다.
  겁먹은 대왕 쥐가 급히 되돌아 내려오며 소리쳤지요.
  "너야말로 나의 왕비로다! 그 수프는 우리의 금혼식까지 기다리기로 하자. 그리고
내 왕국의 가난한 자들에게는 그들이 기뻐할 수 있도록 식량을 나누어 주어라.
모두가 기뻐할 수 있도록!"
  그리고 나서 그들은 결혼 잔치를 베풀었어요. 그러나 쥐들 중의 몇몇은 집으로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소시지 꼬챙이로 만든 수프라고 말할 수는 없고, 정확히 말하자면 쥐꼬리
수프였어요."
  그들은 이러쿵저러쿵 떠들긴 했지만, 완전히 다른 방법을 쓸 수도 있었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나라면 그렇고 그렇게 이야기했을 텐테^5,5,5^."
  그것이 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항상 지혜로운 것입니다. 언제까지라도.
  그리하여 이 이야기는 전 세계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나라마다, 또 사람마다 서로
견해가 달랐지만 원래의 이야기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어른이 되어서도, 소시지 꼬챙이로 만든 수프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진실한
것입니다.
  ('소시지 꼬챙이로 만든 수프'는 옛날 덴마크에서 쓰던 관용어로 헛수고, 공연한
소동이라는 뜻)
 
메밀
 
 
  뇌우가 치고 난 뒤 메밀밭을 지나가다 보면 메밀이 까맣게 탄 것을 볼 수
있답니다. 불길이 스쳐 지나간 듯한 모양을 하고 있지요. 그러면 농부들은 이렇게
말한답니다.
  "벼락을 맞았군."
  왜 메밀은 벼락을 맞았을까요?
  참새가 얘기해 준 것을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들려 줄게요. 참새는 메밀밭에 서
있는 늙은 버드나무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답니다. 정말 굉장히 큰 버드나무인데,
지금은 몹시 늙었습니다. 그리고 한가운데가 둘로 쪼개져있지요. 그 쪼개진 틈으로
풀과 딸기 넝쿨들이 마구 자라나 있답니다. 또 초록색 머릿결 같은 가지들이 완전히
땅바닥까지 늘어져 있습니다.
  들판에는 호밀, 보리, 그리고 메귀리 들이 자라고 있었답니다. 메귀리는 작은
노란색 카나리아들이 한 무더기 앉아 있는 것처럼 근사하게 보인답니다. 그리고
이식이 무거워질수록 겸손하게 더욱 깊이 머리를 숙이지요.
  메밀밭은 바로 버드나무 반대 편에 있었습니다. 메밀은 다른 곡식들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았답니다. 오히려 거만하고 뻣뻣하게 높이 고개를 쳐들었습니다.
  "나도 다른 곡식들처럼 부자야. 게다가 나는 훨씬 더 예뻐. 사과나무꽃처럼
아름답지. 내 친구들을 바라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야. 늙은 버드나무야, 우리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알고 있니?"
  버드나무는 '그래, 물론 그렇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지요. 메밀은
거드름을 피우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보 같은 늙은 나무 같으니라구! 몸에서 풀들이 마구 자라다니."
  무시무시한 폭풍우가 몰려왔답니다. 모든 들꽃은 폭풍이 몰려오자 잎들을 접거나
연약한 머리를 숙였지요. 하지만 메밀은 오만하게 머리를 높이 들었습니다.
  "우리처럼 머리를 숙여."
  꽃들이 말했지요.
  "난 그럴 필요가 없어."
  메밀은 꽃들을 비웃었어요.
  "우리처럼 고개를 숙여."
  곡식들도 외쳤어요.
  "이제 폭풍이 몰아칠 거야. 폭풍은 구름에서부터 땅에까지 이르는 진동을 몰고
온단다. 네가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청하기도 전에 널 뚫고 지나가 버릴 거야."
  "그래? 그래도 나는 굽히지 않겠어."
  메밀은 말했어요.
  "네 꽃을 닫고 잎을 숙여. 구름이 쪼개질 때 절대로 번개를 올려다보지마.
사람들도 그렇게 하지 않아. 만약 그렇게 하면 곧 장님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야.
하물며 사람보다 훨씬 못한 우리가 감히 그런다면 어떻게 되겠니!"
  늙은 버드나무도 말했지요.
  "사람보다 훨씬 못하다고?"
  메밀이 말했지요.
  "좋아, 하늘을 똑바로 올려다볼 테다!"
  그래요, 오만한 메밀은 정말 그렇게 했답니다. 온 세상이 불길 속에 휩싸일 것처럼
번개가 쳤는데도 말이에요.
  폭풍우가 지나가자 꽃들과 곡식들은, 다시 기운을 차리고 고요하고 순수한 대기
속에 일어섰답니다. 그러나 메밀은 번개를 맞아 석탄처럼 까맣게 되어 버렸지요.
시든 잡초가 되어 버린 것이랍니다.
  늙은 버드나무는 바람 속에서 가지들을 흔들었지요. 녹색 앞에서 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마치 나무가 우는 것처럼요.
  참새들이 늙은 버드나무에게 물었지요.
  "왜 우세요? 이 곳은 축복 받는 곳인데요. 보세요, 해님이 비치는 것을. 보세요,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꽃 향기를 맡지 못하세요? 늙은 버드나무님, 왜 우세요?"
  버드나무는 메밀의 오만함에 대해서 이야기했답니다. 그리고 언제나 따라 다니는
천벌에 대한 이야기도 해 주었지요.
  참새들이 들려 준 이야기가 어때요? 참새들은 내가 동화를 하나 해 달라고 조르자
이 이야기를 들려 주었답니다.
 
돼지치기 소년  안데르센
 
아주 작은 왕국에 가난한 왕자가 살고 있었답니다. 왕자는 왕국을 갖고 있긴 했지만 아주 작은 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위에서 결혼을 할 정도로는 넓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혼을 하려고 했습니다.
  왕자가 감히 황제의 따님에게 "나를 사랑하오?" 하고 물어 본 것은 정말 용기 있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왕자는 그렇게 했답니다. 왕자는 아주 유명했으니까요. 그말을 다른 공주들에게 했다면 아마 모든 공주들이 "네" 라고 대답을 했을 것입니다.
과연 황제의 따님이 그렇게 할까요?
  자, 이제 어떻게 되었는지 보기로 해요.
  왕자의 아버지의 무덤 위에는 아름다운 장미 덤불이 자라고 있었답니다. 장미 덤불은 5년마다 꽃을 피웠지요. 오직 한 송이의 장미꽃을. 그 장미꽃은 어찌나 달콤한 향기를 풍겼던지 향기를 맡는 사람은 누구나 모든 근심과 걱정을 잊어버린답니다. 왕자는 또 온갖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나이팅게일도 한마리 가지고 있었지요,

  왕자는 장미꽃과 나이팅게일을 은으로 만들어진 상자 속에 넣어서 공주에게 보냈답니다.
  황제는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선물을 보고는 기뻐서 박수를 쳤지요. 하지만 공주님은 이렇게 말했어요.
  "암고양이였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시녀들은 찬란한 장미꽃을 보며 감탄을 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장미인가!"
  황제도 탄성을 질렀답니다.
  "정말 매혹적인 장미로구나!"
  그러나 공주는 장미를 만져 보더니 실망한 듯 말했지요.
  "피, 인공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거예요."
  황제는 공주를 달래며 말했지요.
  "화를 내기 전에 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도록 하자."
  이번에는 나이팅게일이 나왔어요. 나이팅게일이 어찌나 아름답게 노래했던지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지 못했답니다.
  "정말 훌륭해!"
  시녀들이 말했어요.
  "저 새가 황후 폐하의 자동 주악기를 생각나게 하는군요."
  한 늙은 기사가 말했지요.
  "그래, 정말 똑같은 음조에 똑같은 연주야."
  그러나 공주는 울 듯이 말했습니다.
  "살아 있는 노래를 부를 수는 없나요?"
  그러자 새를 가져왔던 사람들이 말했지요.
  "네, 이 새는 살아 있는 새랍니다."
  "그러면 새를 날아가게 내버려두세요."
  그러면서 공주는 왕자가 오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나 왕자는 실망하지 않았지요. 왕자는 초라한 모습으로 변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황제를 찾아갔지요.
  "안녕하십니까? 황제님, 제가 이 궁전에서 일할 수 없을까요?"
  그래? 일을 찾는 사람들은 참으로 많지. 그렇지만 어디 보자. 마침 돼지를 돌보는 사람이 하나 필요한데, 아주 잘됐구나."
  그래서 왕자는 돼지치기가 되었답니다. 돼지우리에 작고 초라한 방 하나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지냈습니다.
  왕자는 온종일 일을 했지요. 그리고 저녁에는 작고 귀여운 냄비를 하나 만들어 냄비 둘레에는 방울들을 달았지요. 음식을 끓이면 냄비는 아름다운 노래를 연주한답니다.

  아, 너 사랑하는 아우구스틴,
  모든 것이 끝났구나, 끝났구나!

  이 냄비는 신기한 요술을 부렸습니다. 냄비가 끓을 때 내는 김 속에 손가락을 대기만 하면 어떤 집에서 어떤 음식을 만들고 있는지 금방 냄새를 맡을 수 있었지요. 신기한 요술이지요?
  하루는 공주가 시녀들과 함께 산책을 나왔답니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공주는 몹시 기뻐했습니다. 자신도 '아, 너 사랑스러운 아우구스틴!' 을 연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공주는 손가락 하나로 연주할 수 있답니다.
  "나도 연주할 수 있는 거야. 아주 교양 있는 돼지치기로구나. 애들아, 돼지치기에게 가서 그 악기가 얼마인지 물어 보아라."
  시녀 한 사람이 돼지치기에게 가서 물었지요.
  "그 냄비를 얼마면 팔겠니?"
  "공주님이 입맞춤을 열 번 해 주면 그냥 주지."
  "뭐라고?"
  "그러지 않으면 절대로 줄 수 없어."
  공주는 시녀의 말을 듣고 몹시 화를 냈답니다.
  못된 녀석 같으니라고!"
  그러면서 공주가 직접 갔습니다. 그 때 다시 종소리가 아름답게 울렸습니다.

  아, 너 사랑하는 아우구스틴,
  모든 것이 끝났구나!

  공주는 다시 시녀에게 말했지요.
  "시녀의 입맞춤을 대신 받으면 안 되겠냐고 물어 보아라."
  하지만 돼지치기는 거절했지요.
  "공주님이 아니면 절대로 안 됩니다."
  하는 수 없이 공주는 그렇게 하기로 했지요.
  "할 수 없지. 그렇담, 아무도 보지 않도록 너희들이 가리고 있으렴."
  시녀들은 옷을 넓게 펼쳐서 아무도 보지 못하게 가려 주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주는 냄비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냄비의 요술을 알게 된 것이랍니다. 어떤 집에서 어떤 음식을 만들고 있는지 모두 알 수 있었지요. 공주는 손뼉을 쳤습니다.
  "누가 달콤한 수프를 먹는지, 누가 달걀 요리를 먹는지 우린 알고 있다네. 누가 보리죽을 먹고 누가 커틀릿을 얻어 먹는지 우린 알고 있다네.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야."
  시녀들도 재미있다는 듯이 손뼉을 쳤지요.
  "정말 재미있는 일이네요."
  "그래, 하지만 모두들 모르는 체하고 있어."
  "물론이지요. 그렇고말고요."
  왕자는 또다시 딸랑이를 하나 만들었답니다. 그 딸랑이를 흔들면 온갖 무도회 음악이 흘러나왔습니다.
  공주님은 그 소리도 듣게 되었습니다.
  "정말 훌륭하구나! 이보다 더 아름다운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어. 애들아, 그 악기가 얼마나 하는지 물어 보아라. 하지만 이번에는 절대로 입맞춤하지 않을거야."
  "공주님, 이번에는 입맞춤을 백 번이나 해야 주겠답니다."
  돼지치기에게 다녀온 시녀가 말했지요.
  "정말 나쁜 놈이군!"
  공주는 화를 내면서 그냥 가 버렸지요. 하지만 곧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황제의 딸이야! 그에게 말해라. 입맞춤 열 번만 받고 나머지는 시녀들에게 받으라고."
  그러자 시녀들이 말했어요.
  "그렇지만 우린 하고 싶지 않아요."
  "안돼! 내가 할 수 있다면 너희들도 할 수 있어. 그렇게 하면 너희들에게 상을 줄테다."
  하지만 돼지치기는 공주가 아니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공주는 할 수 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시녀들이 공주를 둘러싸고 공주는 왕자에게 입맞춤을 했습니다.
  "저기 돼지우리에서 웬 소란인고?"
  마침 그 모습을 멀리서 본 황제가 물었어요.
  "시녀들이 몰려 있구나. 어디 한 번 가 봐야겠다."
  황제는 시녀들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조용히 다가갔답니다. 시녀들도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지요. 돼지치기가 백 번을 넘지 못하게 하려고 열심히 수를 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슨 일이냐?"
  가까이 다가간 황제가 큰소리로 호통을 쳤답니다. 그 때 돼지치기는 여든여섯 번째의 입맞춤을 받을 참이었지요.
  "아니 이런 일이!"
  황제는 깜짝 놀랐답니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래요, 공주도 돼지치기도 멀리 쫓겨나고 말았답니다. 공주는 울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후회하기 시작했지요.
  "아, 그 때 내가 그 잘생긴 왕자와 결혼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돼지치기는 나무 뒤로 가서 누더기 옷을 벗고 다시 공주 앞에 나타났습니다. 오, 어찌나 잘생긴 모습이었는지 공주는 허리를 굽혀 인사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난 당신을 비웃어 주려고 왔어. 당신은 아름다운 장미도 나이팅게일도 알아보지 못했어. 그러면서 돼지치기에게는 욕심을 채우려고 입을 맞추었어. 이제 그 벌을 받는 거야."

  이렇게 말한 왕자는, 작은 왕국으로 돌아가 성문을 닫아 버렸답니다. 공주는 성문 밖에 서서 슬프게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 너 사랑하는 아우구스틴,
모든 것이 끝났구나, 끝났구나!
 
내 인생의 동화, 문학은 없었다.
  (
안데르센이 직접 쓴 자신의 이야기)
 
    1
  내 인생은 아름다운 한 편의 동화다. 그토록 풍요롭고도 행복한.
  내가 헐벗은 채 세상에 나왔을 때 만약 한 요정이 나타나, "원하는 대로 네
인생의 길과 목표를 선택하여라. 그러하면 내 너를 보호하고 이끌리라. 꼭 그렇게
되도록 열심히 살거라" 하고 말했다 한들, 내 운명은 내가 지내 온 것보다 더
행복하고 더 낫게 이끌려 오지 않았을 것이다. 내 인생 이야기를, 이 세상이 내게
말해 준 그대로 되돌려 말해 주겠다. 그것은 세상 모든 것을 최상으로 이끄는
사랑에 찬 신이 존재한다는 이야기이다.
  내 조국 덴마크는 시적인 나라다. 민담과 옛 민요들, 그리고 이웃 나라인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역사와 함께 얽혀 있는 풍요로운 역사로 가득 찬 나라다. 덴마크의
섬들은 찬란한 너도밤나무 숲과 밀밭과 크로바 들판으로 덮여 있어서 마치 위대한
양식을 갖춘 정원들처럼 보인다.
  내가 태어난 곳 오덴세는 이 섬들 중의 하나인 핀에 있는데, 오덴세라는 이름은
이 곳에 살았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오딘이라는 신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것이다.
이 곳은 우리 주의 서울이며 코펜하겐으로부터 34.2킬로미터 떨어져 있다.
  1805년, 이 곳의 어느 작고 초라한 방에는 서로 끝없이 사랑하는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신기료장이인 남편은 채 스물두 살이 되지 않은, 시적 천성을 가진
재주 많은 사람이었고, 몇 년 연상인 아내는 세상일이나 사는 일에는 서툴렀으나
사랑으로 가득한 가슴을 지니고 있었다.
  이 젊은 부부는, 단칸방에 구둣방과 살림방을 차렸는데 바로 얼마 전 세상을 뜬
트람페 백작의 관을 운반하는데 쓰였던 목재 틀을 이용해서 신혼부부의 침대를
꾸몄다. 침대 테두리에 붙어 있는 검은 천 조각이 아직 그것을 상기시켜 주고
있었다.
  1805년 4월 2일, 이 침대에는 베일과 촛대에 둘러싸인 백작의 시체 대신 생명을
지닌 어린아이가 누워 울고 있었다. 바로 나,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다.
  태어나서 며칠 간 큰 소리로 우는 동안 나의 아버지는 침대머리에 앉아
홀베르그를 큰 소리로 읽었다 한다. 그리고 농담조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너 잘 테냐, 조용히 들을 테냐?"
  그러나 나는 계속 울어 대었고, 교회에서 세례를 받을 때도 큰 소리로 울었으므로
다혈질인 목사님은, "얘는 꼭 고양이처럼 우는군요" 라고 말했다. 어머니는
목사님의 이 말을 결코 잊어버릴 수가 없었다고 한다. 가난한 이민으로 나의 대부가
되었던 고마트 아저씨는 내가 어린 아이 때 큰 소리로 울면 울수록 자라서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을 것이라는 말로 어머니를 위로하곤 했다.
  구두 수선 도구들, 침대 그리고 내가 누워 잠자는 벤치로 꽉차 버린 우리의
유일한 작은 방이 내 유년 시절의 거처였다. 그러나 사방 벽은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고, 구둣방의 천장 쪽에는 책과 노래책으로 가득 찬 널빤지로 된 서가가 있었다.
  작은 부엌은 반짝반짝 빛나는 접시와 그릇들로 가득했다. 옆집을 마주한 추녀의
홈통에는 흙과 야채들이 자라고 있는 큰 상자가 있었는데 ^6,36^이것이 내 어머니의
정원이었다^36,3^ 사다리 위에 올라서면 이 곳으로 뛰어내릴 수가 있었다. 내가 쓴
동화 '눈의 여왕' 속에서 이 정원은 아직도 꽃피어 있다.
  무녀 독남인 나는 몹시 엄하게 자랐다. 나는 어머니로부터, 어머니 어렸을 때보다
훨씬 행복하며, 어머니에 비하면 백작 아들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어머니는
어린 아이 때 동냥질을 하라고 부모로부터 집에서 내쫓겼으며, 그 짓을 할 수가
없자 온종일 다리 아래 앉아 울었다 한다. 내 작품 '즉흥시인'에 나오는 늙은
도미니카의 모습 속에, 그리고 '바이올린 켜는 사람'의 어머니 속에 나는 두 가지
다른 형태로 내 어머니의 품성을 재현해 놓았다.
  아버지는 모든 것을 내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 두었다. 나는 그의 완전한 사랑을
소유했으며, 그는 오로지 나를 위해 살았다.
  일요일이면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주고, 변화하는 그림들이라 할 수 있는 연극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리고 홀베르그의 코미디와 '천일야화'를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그러한 순간에만 아버지는 진정 즐거워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왜냐하면 아버지의
인생에 있어, 그리고 수공업자로서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부모님은 유복한 농사꾼이었다. 그러나 불행한 일들이 계속해서 그들을
덮쳤다. 가축들이 죽었고 마당이 불탔다. 그 충격으로 마침내 할아버지는 실성을 해
버렸다. 그래서 할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오덴세로 이사를 와서 원기 왕성하던
소년이던 아버지를 구두장이 수업을 받도록 했던 것이다. 라틴어 학교를 다니는
것이 아버지의 불붙는 소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보다못한 두어 명의 잘사는 사람들이 한때 아버지를 도와 주기로 했지만 그것은
말로 그치고 말았다. 불쌍한 나의 아버지는 자기의 열렬한 소망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 후 그 일은 결코 그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 때, 라틴어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우리 집에 와서 구두를 맞추면서
책을 내보이고 자신이 배운 것을 이야기했을 때 아버지의 눈에 눈물이 고이던 것을
기억한다.
  "나도 저 길을 가야만 했는데^5,5,5^." 하고 아버지는 말했었다. 그리고 내게
격하게 입을 맞추고는 그 날 저녁 내내 말이 없었다.
  아버지는 같은 직업의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드물었다.
  대신 일요일이면 숲으로 나갔다. 그 때는 꼭 나를 데리고 갔다. 그러나 아버지는
밖에 나가면 별로 말을 하지 않고 생각에 잠겨 조용히 앉아 있곤했다. 그러면 나는
그 주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풀잎 위에 딸기를 늘어 놓거나 화환을 만들기도
했다.
  1년에 한 번, 특히 5월에 싹이 파릇파릇 돋을 때면 어머니도 함께 숲으로 나갔다.
그럴 때면 어머니는 1년을 통틀어 그녀의 유일한 외출복인 면직물 원피스, 성찬식
때나 차려 입곤 하던 그 옷을 입고 나갔다. 그리고 언제나 한 무더기의 싱싱한
너도밤나무 가지를 집으로 가져 오곤 했다.
  가져와서는 반짝반짝 윤이 나는 난로 뒤에다 심었다. 더 때가 지나면 성요하네스
잡초가 들보의 틈서리에 꽂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 자라나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우리가 오래 살 것인지 아닌지를 추측해 보곤 했다.
  어머니는 깨끗하고 청결한 우리의 작은 방을 늘 풀과 그림들로 장식했다. 그리고
침대보와 커튼이 언제나 하얗게 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자부심을 찾기도 했다.
  할머니는 비록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린 손자를 보기 위해 매일 우리 집에 왔다.
나는 할머니의 기쁨이요, 행복이었다.
  할머니는 온화한 푸른 눈과 어렵게 생을 견뎌 온 가냘픈 체구를 가진 지극히
사랑스러운 조용한 늙은이였다. 유복한 농부의 아내였던 할머니는 이제 몹시
궁핍하게 되어 정신 박약인 할아버지와 함께 조금 남은 재산으로 구입한 작은 집에
살고 있었다. 나는 결코 할머니가 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러나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할머니의 외할머니에 대해 이야기할때면 더욱 깊은 인상을 남겼다. 즉
독일의 카셀 출신인 할머니의 외할머니는, (우리 할머니의 표현을 빌자면) '딴따라
패'와 눈이 맞아 마음대로 결혼을 하고는 부모와 고향을 버리고 도망을 쳤으며,
그리고 이제 그 후손들이 그 죄값을 치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우리 할머니가
외할머니의 성을 부르는 것을 결코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녀는 타고난 덴마크
인이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빈민 병원 곁 한구석에 정원을 가꾸었으며, 토요일 저녁이면 꽃들을
얻어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 꽃들은 어머니의 서랍장을 장식했으나 또한 나의
것이기도 했다. 그러면 나는 허락을 얻어 그 꽃들을 물잔 속에 넣어 두곤 했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던가!
  할머니는 모든 것을 내게 가져다 주었다. 그녀는 온 영혼으로 나를 사랑하였다.
나는 그것을 알았고, 그리고 이해했다.
  할머니는 1년에 두 번 정원에서 나오는 녹색 쓰레기들을 불에 태웠다. 그럴 때면
나는 할머니를 따라 빈민 병원에 들어갈 수 있었으며, 녹색 잎들과 완두콩 줄기,
그리고 많은 꽃들 속에서 놀았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많은 가치를 두던
것이었는데, 나는 거기에서 집에서보다 훨씬 좋은 음식을 먹을 수가 있었다.
  병원 마당에는 정신병 환자들이 마음대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는
호기심과 공포심이 뒤섞인 채 그들을 뒤쫓아다녔다. 나는 경비병들과 함께 미쳐
날뛰는 환자들에게 들어가 보려고 시도하기까지 했다. 긴 복도가 그들의 병실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경비병이 없는 틈을 이용해서 땅바닥에 누워 문틈으로 한 병실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짚으로 된 침대 위에 벌거벗은 여자가 앉아 있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늘어져 있었으며 아주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내가 누워 있는 문틈으로 돌진해
왔다. 음식을 넣어 주는 작은 벼락닫이 문이 열렸다. 그녀는 노려보면서 나를 향해
긴 팔을 뻗었다.
  나는 공포에 쌓여 비명을 질렀다 ^6,36^나는 그녀의 손가락 끝이 내 옷에 닿는
것을 느꼈다^36,3^. 반쯤 넋을 잃고 있을 때에야 경비병이 왔다. 후일 나이가
들어서도 이 때의 광경, 이 때의 인상은 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잎들을 태우는 장소 아주 가까이에 가난한 할머니들이 물레를 돌리는 방이
있었다. 나는 자주 그 곳에 놀러갔는데 곧 그들의 귀염둥이가 되었다. 나는 아주
말을 잘 해서 그들 모두를 놀라게 하였다.
  나는 우연히 인간의 내장이 어떤 모양으로 생겼는지에 관해 듣게 되었다. 물론
그것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말이다. 그러나 바로 이 비밀스러운 것이 나를
잡아 끌었다.
  나는 백묵으로 그 할머니들의 방문에다 마구 둥근 모양의 나선들을 그려 놓았다.
내 딴에는 사람의 내장을 그린다고 한 것이었다. 심장과 폐에 관한 나의 묘사는
할머니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이상하고 영리한 아이로 여겨졌다.
내가 말을 잘한 대가로 할머니들은 옛날 이야기들을 하는 것으로 보상을 해 주었다.
'천일야화'에 나오는 것같이 풍요로운 세계가 내 눈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그러는
사이 할머니들의 옛날 이야기들과 내가 빈민 병원에서 본 미친 사람들의 모습은
어찌나 내게 깊은 영향을 미쳤던지 나는 어두워지기만 하면 감히 집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또 해가 지면 꽃무늬의 긴 커튼이 달린 부모님의 침대에 누워도 좋다는
허락을 얻곤 했다. 왜냐하면 내가 잠자는 침대가 당시 그 방의 공간을 좁혀서는 안
되었는데다가 부모님의 침대에 누워 있으면, 마치 실제 세계가 내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정신 박약인 할아버지에게는 무지무지한 공포를 가지고 있었다. 단 몇번밖에
할아버지와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할아버지는 나에게 '당신' 이라는 이상한 호칭을
사용하였다. 그는, 동물의 머리가 달린 인간들이나 날개 달린 동물 같은 이상한
형체들을 목각으로 만들어서는 그것들을 바구니에 싸서 밖으로 나가곤 했다. 그러면
농부의 아내들이 어디에서나 그를 대접했다. 그는 그 목각들을 그들의 아이들에게
선물하곤 했기 때문이다. 어느 날 나는, 길거리에서 아이들이 할아버지의 뒤를
쫓아가면서 소리지르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무서워서 계단 뒤로 몸을 숨겼다. 내가
그이 살과 피로 이루어진 존재임을 잘 알고 있었던 까닭이었다.
  내가 자란 바로 그 환경은 오직 나의 상상력을 채워 주는 데에만 도움을 주었다.
아직 증기선도 없고 우편 연결도 쉽지 않던 그 당시 오덴세는 오늘날과는 완전히
다른 도시였다. 다른 도시에 비해 한 1백 년쯤 뒤져 있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옛날에나 있음직한 많은 미신 같은 관습들이 아직도 오덴세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으로도 그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수공업자 조합은 이리저리 떼를 지어
행진을 했고, 그들의 앞에는 채찍과 방울을 든 광대들이 앞서갔다. 참회 화요일 전의
월요일(사육제 전의 월요일)에는 백정들이 꽃으로 장식을 한 가장 살찐 황소를
데리고 거리를 지나갔다. 그 황소의 등에는 날개 달린 흰옷을 입은 소년이 앉아
있었다. 선원들은 음악에 맞춰 깃발을 휘두르며 시내를 통과했다. 마지막으로
바다에서는 두 대의 보트사이에 널빤지를 놓고 그 위에서 가장 용감한 두 사람이
격투를 했다. 물속에 빠지지 않는 자가 승자였다.
  그러나 내 기억 속에 특별히 남아 있는 것은 1808년 스페인 군의 핀 주둔이다.
나는 그 때 사실 세 살밖에 되지 않았으나 거리를 떠들며 돌아다니던 갈색의
이방인들과 그들이 공중으로 쏘아 올리던 대표를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나는
빈민 병원 옆의 다 쓰러져 가는 낡은 교회의 짚더미 위에서 사람들이 잠자는 것을
보았다.
  어느 날인가는 어느 스페인 병사가 나를 자기 팔에 안아서 가슴에 달고 있던
은으로 된 그림을 내 입술에다 눌렀다. 어머니는 그 일로 화를 내었다. 어머니는
그것이 카톨릭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그 그림이 마음에 들었다. 나와
춤을 추었던 그 이방의 병사는 내게 입을 맞추고 울었다. 그도 고향 스페인에 내
또래의 자식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이 동료 한 사람이 처형장으로 끌려가는 것도 보았다. 프랑스 인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일에 자극을 받아서 여러 해가 지난 후 '병사' 라는
짧은 시를 썼다. 그것을 샤미소가 독일어로 번역하여 후일 '병사의 노래' 라는
책에도 수록이 되었다.
  나는 거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아 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서도 그들과 함께
놀지 않고 교실 안에 있었다. 집에서도 장난감은 충분했다. 아버지가 내게 만들어
준 것들이었다.
  가장 큰 기쁨은, 인형의 옷을 깁는다든지 아니면 어머니의 앞치마를 벽과 마당에
심어진 구즈베리 딸기 숲 앞의 두 개의 막대기 사이에 걸어 놓고 햇빛에 비치는
이파리를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이상하게 꿈꾸는 듯한 아이였다. 자주 두 눈을 꼭 감고 걸었으므로 사람들은
내 시력이 약한 것으로 믿었다. 바로 이 감각이야말로 아주 특별하게 발달이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때때로 수확철이 되면 어머니는 들판으로 나가서 이삭들을 주워 왔다. 그럴 때면
나도 어머니를 따랐다. 마치 보아의 풍성한 들판으로 나가는 성경의 룻처럼
따라나갔다. 어느 날 우리는, 관리인이 거칠기로 소문난 곳으로 가게 되었다.
  우리는 그가 무시무시하게 큰 채찍을 들고 달려오는 것을 보았다. 어머니와 다른
사람들은 도망을 쳤다. 그러나 나는 아무것도 신지 않은 것 같은 발레용 나막신을
신고 있었기 때문에 그루터기들이 마구 찔러 대어서 달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자리에 그냥 남아 있었다.
  나는 벌써 채찍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들여다보며
나도 모르게 부르짖었다.
  "저기 하느님이 보고 계신데 어떻게 당신이 날 때릴 수 있겠어요!"
  가혹하기로 이름난 그 사람이 갑자기 나를 부드럽게 바라보더니, 내 뺨을
쓰다듬으며 내 이름을 묻고 돈을 주었다.
  내가 어머니에게 그 돈을 보여 주자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얘는, 정말 이상한 아이에요. 한스 크리스티안 말이에요. 모두가 그에겐 잘해
주거든요. 저 나쁜 작자까지 그에게 돈을 주었어요."
  나는 경건하게 그러나 미신적으로 자라났다. 또한 나는 결핍이라든가 부족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연명해 갈 정도의 살림살이였으나 나에게는
모든 것이 풍족했다. 어떤 할머니는 아버지의 옷을 내게 맞게 고쳐 주기도 했다.
  나는 때때로 부모님을 따라 극장에 갔다. 나는 그 곳에서 처음으로 독일어로 된
연극을 보았다.
  '도나우강의 여자'는 온 도시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나는
오페라로 취급된 홀베르그의 '술집 정치극'을 보았다. 극장과 거기 모인
사람들에게서 받은 첫인상은 결코 내 속에 정치적인 것이 잠자고 있다는 그런
인식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내가 그 많은 삶을 보았을 때 내뱉은 첫 반응은, "이
곳의 사람들처럼 많은 버터 통을 가졌더라면 정말 좋은 버터를 먹었을텐데!"라는
탄성이었던 것이다.
  극장은 곧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아주 드물게 밖에 그
곳에 갈 수 없었으므로 나는 영화 광고지를 돌리는 사람을 사귀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매일 광고지 한 장씩을 주었다. 나는 그것을 가지고 극장 한
귀퉁이에 앉아서 그 연극의 제목에 다른 코미디를 내 나름대로 새롭게 창작해
보기도 하고, 그 속에 다른 인물들을 집어 넣어 보기도 했다. 그것이 내 최초의
무의식적인 창작이었다.
  아버지가 즐겨 읽어 주었던 것은 코미디나 단편들만은 아니었다. 역사책이나
성경같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는 조용히 생각에 잠기면서 자기가 읽어 준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곤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그는 점점 말이 없어져 갔다. 어느 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성경을
덮었다.
  "예수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었어. 그러나 비상한 인간이었지."
  어머니는 이 말에 소스라치게 놀라서 눈물을 터뜨렸다.
  나도 불안에 싸여서 하느님에게 아버지의 이 불경한 말을 용서해 달라고 빌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 속에 지니고 있는 이외의 다른 악마는 없다"고 아버지가
말하는 것도 나는 들었다.
  나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영혼을 걱정하였다. 그래서 나는 어느 날 아침 아버지가
못을 뽑다가 팔에 세 군데나 깊이 찔리자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내기 위하여
지난 밤에 아버지를 찾아온 악마의 소행이라는 어머니와 이웃 여자의 의견에 완전히
동의했다.
  아버지가 숲을 찾아가는 일이 잦아졌다.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신문에서 호기심을 가지고 읽은 독일에서의 전쟁 소식이 그의 가슴 속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그의 영웅이었다. 더구나 당시 덴마크는 프랑스와
연합해 있었다. 그러다보니 아버지의 관심사는 오직 전쟁 이야기뿐이었다.
  아버지는 소위로 귀환할 것이라는 희망으로 군대에 갔다. 어머니는 울었다. 이웃
사람들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총에 맞아 죽으러 나가는 것은
만용이라고 말했다.
  군대가 출발하는 날 아침, 나는 아버지가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그러나 가슴은 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와의 입맞춤에서
그것을 알아차렸다. 나는 마침 홍역에 걸려 방에 누워 있었다. 북소리가 울리고
어머니는 울면서 성문 밖까지 아버지를 전송 나갔다. 그들이 집을 나가자 할머니가
찾아왔다. 할머니는 온화한 눈으로 나를 찬찬히 살피더니, 내가 지금 죽는다해도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좋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내가 기억하는 고통에 찬
최초의 아침들 중의 하나였다.
  그 사이 아버지의 연대는 홀슈타인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고전했다.
  평화가 다시 찾아왔고 지원병들은 자신들의 일터로 돌아왔다.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듯이 보였다.
  나는 다시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코미디 연극 놀이를 독일어로 하였다. 왜냐하면
독일어로 된 것만을 보아 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내 독일어는 되는 대로 만들어
붙인 나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독일어였다. 그 중에는 유일하게 제대로 된 독일어가
한마디 있었는데 그것은 '빗자루'라는 단어로 아버지가 홀슈타인에서 가지고 온 여러
가지 말 중에서 언뜻 들었던 것이었다.
  "네가 내 여행 덕을 보는구나." 하고 아버지는 농담을 했다.
  "네가 나처럼 멀리까지 가게 될지는 신만이 아신단다. 그러나 그렇게 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을 생각해 보아라. 한스 크리스티안."
  그러나 어머니는 내가 집에 남아 있어야 하며 아버지처럼 건강을 잃어서는 안
되며 집을 떠나 멀리 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건강 때문에 고통 받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그는 심한 환상 속에서 일어나더니 전쟁에 나갔던 것과 나폴레옹
이야기만을 늘어놓았다. 그는 나폴레옹으로부터 명령을 받았으며, 스스로 직접
지휘를 한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즉시 나를 의사에게로가 아니라 오덴세에서 반 마일쯤 떨어진 곳에 살고
있는 용하다는 여자에게로 보냈다. 그녀는 아버지의 상태를 꼬치꼬치 캐묻더니 내
팔 위에다 털실을 재고 이상한 표시를 하더니 마지막으로 내 가슴에 초록 가지
하나를 놓았다. 구세주께서 처형당한 나무와 같은 종류의 조각이라고 말했다.
  "이제 가거라! 강을 따라 집으로 가거라. 만약 아버지가 이번에 돌아가신다면
너는 그의 영혼을 만날 것이다."
  내가 얼마나 불안해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토록 미신에 가득
찼었고 내게서는 환상이 그토록 가볍게 움직이고 있었다.
  "너, 아무도 안 만났지?"
  내가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어머니는 물었다. 나는 뛰는 가슴을 누르며 아니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로부터 사흘째 되는 날 죽었다. 그의 시체는 침대에 눕혀졌다.
나는 그 앞에 어머니와 함께 누워 있었다. 간밤 내내 귀뚜라미가 찌륵찌륵 울었다.
  "그는 죽었단다. 너는 그를 부를 필요가 없어. 얼음 처녀가 그를 데려갔단다."
  어머니는 귀뚜라미에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고 있었다. 지난 겨울 우리 방의 유리창이
얼어붙었을 때, 아버지는 그 유리창에 나있는 팔을 벌린 처녀의 형태와 비슷한
그림을 가리키면서, "아마도 그녀가 날 데려갈 거야"라고 농담처럼 말했던 것이다.
  세인트 크누츠 교회 묘지에 묻혔다. 할머니는 아버지의 무덤위에 장미를 심었다.
  이제 같은 장소에는 두 개의 낯선 무덤이 있다. 이 무덤들 위로 풀이 무성하게
자랐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나는 완전히 나 자신을 책임져야만 했다. 어머니는
다른 사람들의 빨래를 해 주러 다녔다. 나는 집에 혼자 앉아 연극 놀이를 하고
인형을 깁고 연극 작품들을 읽었다. 사람들은 내게 언제나 깨끗하게 옷을 잘 입고
다닌다고 말했다. 나는 후리후리하게 키가 컸고 거의 노란색에 가까운 밝은 색의
머리카락에 모자를 쓰지 않고 다녔다.
  우리 이웃에는 마담 분케플로트라는 이름의 목사 미망인이 올케와 함께 살고
있었다. 그 부인은 내게 퍽 친절하게 대해 주었다.
  고인이 된 목사님은 시를 썼었고, 그 당시 덴마크 문단에서는 꽤 명성을 얻고
있었다. 그의 '물레노래'는 당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
  나는 '덴마크 시인들을 위한 동판화'에서 내 동시대인들이 잊어버린 그를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물레가락이 달그락달그락,
  물레가 돌아간다
  물레 노래가 날아간다
  청춘의 노래는 곧
  옛 멜로디가 되리니.
  이 집에서 나는 처음으로 시인의 이름이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들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성스러운 것을 상징하는 것처럼 존경의 대상으로 불리는 것도 들었다.
  아버지는 홀베르그의 코미디를 자주 읽어 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작가에
대해 말한 것이 아니라 그저 그의 문학에 대해서 얘기했던 것이다.
  분케플로트 목사의 누이동생은, 자신의 오빠를 시인이라고 말했다. 그럴 때 그녀의
두 눈은 반짝였다. 나는 시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찬란한 것, 행복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셰익스피어를 읽었다. 대담한 묘사나 유혈의 사건들,
마녀와 유령들은 바로 내 취향에 맞았다. 나는 즉시 셰익스피어를 인형극으로
연기했다. 햄릿의 유령을 보았고, 리어 왕과 함께 황야에서 살았다. 나는 작품
속에서 사람이 많이 죽으면 죽을수록 더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첫 작품을 쓴 것도 바로 그 때였다. 그것은 물론, 모든 등장 인물들이 죽은
비극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나는 피라무스와 티스베의 옛 노래에서 내용을
빌어왔다. 그러나 나는 둘 다 티스베를 사랑하여 그녀가 죽자 따라 자살하는 그의
아들을 등장시켜 줄거리를 확대시켰다. 은자의 대사 중 많은 부분은 성경에서, 교리
문답에서, 특히 '이웃에 대한 의무' 에서 따왔다. 그 작품은 '아보르와 엘비라'였다.
  "농어와 건대구(얼간이나 멍청이를 가르킴)라는 제목이 더 맞을걸 그랬구나."
  내가 그 작품을 우리 골목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읽어 주고 그녀에게 보이자
이웃 부인은 이렇게 말을 했다.
  나는 완전히 기가 죽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칭찬하는 작품을 그녀가
놀리는 것으로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슬퍼하면서 그것을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자기 아들이 그런 것을 짓지 못하니까 그렇게 말하는 거야."
  어머니는 대꾸했다.
  나는 그 말에 위로를 받고 왕과 왕비가 등장하는 새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셰익스피어에나 나오는 왕과 왕비가 보통 사람들처럼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어머니나 다른 사람들에게 도대체 왕은 어떻게 말하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제대로 알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오덴세에 왕이 있었던 것은
오래 전의 일이며, 아마도 그 왕은 외국어로 말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독일어, 불어, 영어가 덴마크어로 번역되어 있는 일종의 사전을 하나 마련했다.
그것은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각국의 언어에서 한 단어를 골라 그것을 내 작품의
왕과 왕비의 대사에다 끼워 넣었다. 그러나 내가 그토록 고귀한 인물들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한 언어는 바빌론의 언어가 되고 말았다.
  모든 사람들이 내 작품을 들어야만 했다. 그것을 낭독하는 것이 내게는 진정한
축복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같은 기쁨을 느끼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머리에
떠오르지도 않았다.
  이웃집 아들은 직물 공장에 기숙하면서 매주 약간의 돈을 집으로 가지고 왔다.
사람들은 내가 하는 일 없이 빈둥거리기만 한다고 했다. 나 역시 공장에 다녀야
한다는 것이었다.
  "돈 때문만은 아니란다. 그래야 네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잖니."
  어머니도 그렇게 말을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마음 속으로 몹시 슬퍼하면서 나를
한쪽으로 끌고 갔다. 내가 다른 가난한 아이들과 그런 곳에 함께 다니게 될 줄은
정말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공장에는 많은 독일 직공들이 와서 일하고 있었다. 그들은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이야기했다. 또한 나는 많은 야비한 농담들이 오고가는 것을 들으면서, 어린 아이는
그러한 것도 순진한 귀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러한 것은 내 마음에
아무런 자리도 차지하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이상하리 만큼 곱고 높은 소프라노 음성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우리 집의 작은 정원에서 노래를 할 때면 골목의 사람들은 귀를 귀울였다. 우리
골목에 붙어 있는 추밀원 정원에 있는 고상한 외국 사람들도 판자 울타리에 기대
서서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공장 사람들이 내게 노래할 수 있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자신있게 노래를
불렀다. 모든 베틀이 멈추었으며, 직공들이 내 노래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부르고
또 불러야만 했다. 내가 맡은 일은 다른 소년들에게 떠넘겨졌다. 이제 나는
코미디도 연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홀베르그와 셰익스피어의 온갖 장면들을
생각해 내었다. 모두가 나를 좋아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공장에서의 첫 며칠을
아주 재미있게 보냈다.
  그러나 어느 날 내가 노래에 열중해 있을 테였다.
  "저 자식은 사내 새끼가 아니라 어린 계집아이야."
  어느 직공이 소리치더니 나를 붙잡았다. 나는 비명을 지르면서 신음하였다. 다른
직공들도 그 농담을 재미있다고 생각하면서 내 팔과 다리를 꼭 붙잡았다. 나는
계집아이처럼 큰 소리로, 바보처럼 애원을 했다.
  공장에서 뛰쳐나와 어머니에게로 달려갔다. 어머니는 즉시 더 이상 그런 곳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해 주었다.
  나는 다시 분케플로트 부인을 찾아갈 수 있었다. 그녀의 생일날 나는 하얀
비단으로 직접 바늘 쌈지를 만들어 선물했다.
  우리 이웃에 있는 또 다른 늙은 목사 미망인들과도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에게
순회 도서관에서 빌려 온 장편 소설들을 낭독하게 했다.
  어떤 소설은 다음과 같이 시작되고 있었다.
  폭풍우가 치는 밤이었다. 비가 유리창을 때리고 있었다.
  "참 훌륭한 책이구나."
  하고 그 늙은 부인은 말했다.
  나는 어떻게 그런 것을 아느냐고 아주 순진하게 물었다.
  "나는 첫 문장만 듣고도 안단다. 아주 훌륭하게 되어갈 거라는 걸 말이야."
  나는 그녀의 통찰력에 매우 놀랐다.
  언젠가 수확기에 나와 어머니는, 어머니가 태어났던 보겐세 근처에 있는 귀족의
장원으로 오덴세에서 수마일 떨어진 길을 갔다. 그 곳의 귀부인이 ^6,36^어머니는
그 귀부인의 부모의 시중을 들었다^36,3^ 어머니에게 한 번 방문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던 것이다.
  그것은 내게는 대여행이었다. 우리는 걸어갔다. 이틀은 족히 걸렸을 것이다.
  그 곳에서 나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마침 홉을 수확하는 철이었다. 창고 속에서
큰 통을 빙둘러 나는 어머니 곁에 앉아서 홉 가려내는 일을 도왔다. 사람들은, 옛날
이야기와 그리고 각자 보고 겪었던 이상한 일들을 이야기하였다.
  어느 날 오후 나는 한 늙은 남자가, 신은 이 곳에서 일어나는 일과 그리고 앞으로
일어나게 될 일을 모두 아신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이 말이 내 생각을 온통
빼앗았다.
  저녁때 나는 혼자 마당으로 나갔다. 마당에는 깊은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 속에
있는 몇 개의 돌 위에 발을 올려 놓았을 때, 여기서 일어나는 일을 정말 신이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만약 신이, 내가 앞으로도 여러 해
더 살아가도록 정해 놓았다면 이제 물 속에 뛰어든다해도 그것이 신의 뜻이라면
나는 익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간적으로 나는 물에 빠지기로 결심하고,
가장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 때였다. 또 다른 생각이 내 영혼을 스쳐갔다.
  나는 비명을 지르면 누가 나를 쫓아오기라도 하듯 달렸다. 그리고 울면서
어머니의 품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어머니도 그 어느 누구도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 낼 수 없었다. 어느 부인은 내가 틀림없이 유령을 보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 자신도 그 말을 믿었다.
  어머니는 젊은 수공업자와 재혼했다. 그러나 역시 수공업자 신분인 그의 가족은
그가 너무 보잘것 없는 짝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머니도 나도 그의 가족을
방문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 낼 수 없었다.
  나의 계부는 전혀 나의 교육에 관여하려 하지 않은 조용한 젊은이였다. 그래서
나는 완전히 요지경 속을 들여다보며 인형 놀이를 하며 살았다. 여러 가지 색의
헝겊을 모으는 것은 나의 가장 큰 행복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 모은 헝겊들을 직접
자르고 바느질했다. 어머니는 그것을 내가 재단사가 되기 위한 좋은 연습이라고
생각했으며, 틀림없이 그 일을 위해 태어났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극장에 가서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반대였다. 어머니는 떠돌아다니는
유랑 극단과 줄타기 광대 이외의 다른 연극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나는 꼭
재단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재단사라는 직업의 운명에서 날 어느 정도 위로한 유일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되면 내가 인형극에 쓸 제법 많은 헝겊을 얻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나의 독서욕이나, 많은 연극 장면들, 특히 아름다운 목소리는 오덴세에 있는 몇몇
고상한 상류 가정에서 주목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들에게 자주 불러갔다. 그리고
나의 특이한 사람 됨됨이가 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방문하게 된 많은 사람들 중 회크 굴트베르크 대령과 그의 가족은 많은
관심을 보여 주었다. 언젠가는 지금은 왕이 된 크리스티안 왕자에게 데려가기도
했다.
  지난 해에 나는 약간의 돈을 저축했다. 세어 보니 13탈러였다. 나는 이제껏
그토록 많은 재산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가 아주 확고하게 내가 이제 재단
기술을 배우러 가야 한다고 말했으므로 나는 어머니에게 코펜하겐으로 여행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다. 코펜하겐은 그 당시 내게 있어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거기 가서 뭐가 될래?"
  "난 유명하게 될래요."
  이렇게 대답하면서 내가 읽은 위대한 남자들에 관해 어머니에게 이야기했다.
  "우선 많은 역경을 뚫고 나가면 그 다음에는 유명해진대요."
  정말이지 나를 이끌던 설명할 길 없는 충동이었다. 나는 울고 간청했다. 어머니는
마침내 굴복했다. 그러나 우선 카드와 커피로 내 미래의 운명을 점쳐 보기 위해
빈민 구호소에 있는 용하다는 늙은 여자를 데려오게 했다.
  "당신의 아들은 위대한 사람이 될 거요. 그의 명예를 기리기 위하여 오덴세에는
언젠가 환히 불이 밝혀질 거예요."
  그 말을 듣자 어머니는 울었다.
  나는 여행 허락을 얻었다. 이웃 사람들은 모두 어머니에게 열네 살밖에 안 된
나를 그토록 멀리 떨어지고 혼란스런 도시인 코펜하겐으로 가게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래요, 자식이 날 안심시키지 않는군요. 하지만 난 허락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니보르크 이상 더 가지 못할 거라고 믿어요. 그 거친 바다를 보면
불안해져도 아마도 다시 되돌아올 거예요."
  어머니는 이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내가 견진 성사를 받기 전 여름에 왕립 극장의 가수와 배우들이 오덴세에 와서
오페라와 비극을 공연한 일이 있었다. 온 도시가 그 일로 술렁거렸다. 광고지를
돌리는 사람과 알고 있었던 나는, 무대 뒤에서 모든 공연을 볼 수 있었다. 심지어는
시동이나 은자 등의 배역으로 무대에 등장하여 몇 마디 대사까지 했었다. 나는
어찌나 열심이었던지, 배우들이 무대 옷을 갈아입기 위해서 올 때면 이미 옷을 다
차려 입고 서 있을 정도였다.
  이런 일로 해서 그들은 나를 주목하게 되었고, 나의 어린애다움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들은 내게 친절하게 말을 걸었고, 나는 지상의 신들을 우러르듯 그들을
보았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나는 연극을 위해 태어났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유명한 사람이 되어야 할 곳은 코펜하겐이었다. 그 때문에 코펜하겐은 내가
추구하는 목표였다. 나는 코펜하겐에 있는 큰 극장들에 대해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특히 사람들은 발레리나인 마담 샬을 그 누구보다 첫째로
꼽았다. 그 까닭에 나는 그녀를, 내가 그녀의 보호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날 위해
모든 것을 마련해 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람으로 보았다.
  이러한 생각에 가득 차서 나는 오덴세의 명망 있는 시민 중의 한사람인 늙은
인쇄업자 이베르센 씨를 찾아갔다. 그는 배우들이 오덴세에 왔을 때 그들과 많은
교분을 맺었던 사람이었다. 그 발레리나도 알고 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에게 그녀에게 줄 추천서를 부탁할 작정이었다. 그 나머지의 것은 신이 덧붙여 줄
것이다.
  그 늙은 분은 처음으로 나를 보는데도 나의 청원을 친절하게 귀담아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런 짓을 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충고했으며, 수공업을 배우라고 말했다.
  "그건 정말이지 큰 죄가 될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는 내 말에 멈칫 놀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는 그 발레리나를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편지를
써 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편지를 얻었다. 그리고 벌써 목표에 가까이 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어머니는 작은 옷 보따리를 쌌다. 그리고 마부에게 눈먼 승객이나 다름없는 나를
코펜하겐까지 데려가 달라고 당부했다. 거기에 3탈러가 들어있었다.
  그 날 오후, 어머니는 슬퍼하면서 나를 성문 밖까지 배웅했다. 성문 밖에는
할머니가 서 있었다. 할머니의 아름답던 머릿결은 백발이 되어 있었다. 할머니는 내
목에 매달리면서 한 마디 말도 못하고 울었다. 나 역시 매우 슬펐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할머니를 다시는 보지 못했다. 할머니는 다음 해에
돌아가셨다. 나는 그녀의 무덤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녀는 빈민 공동 묘지에
쉬고 있다.
  마부가 경적을 불었다. 해가 찬란하게 빛나는 오후였다. 해는 곧 나의 가벼운,
어린애다운 감각 속으로도 비쳤다. 나는 모든 것이 즐겁고 신기했다. 동경하던
목적지를 향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니보르크의 대발트 해협에 도착하고,
배가 섬에서 멀어졌을 때, 나는 하늘의 신 이외에는 알지 못하는 고독하고 내버려진
사람임을 절실하게 느꼈다.
  제란트 섬에 도착하자마자 해변가에 서 있는 창고 뒤로 가서 무릎을 꿇고 신에게
도와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렇게 하자 위로가 되었다. 나는 확고하게 신과 내
행복을 믿었다.
  도시와 마을들을 지나갔다.
  짐을 다시 꾸리는 동안 나는 마차 옆에 서서 빵을 씹어 먹었다.
  나는 벌써 넓은 세상으로 나와 있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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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1819년 9월 5일 월요일 아침, 난생 처음 나는 프레데릭스베르그 언덕에서
코펜하겐을 볼 수 있었다. 작은 짐 꾸러미를 들고 슐로스그르텐을 지나, 긴 가로수
길과 시 외곽을 지나 시내로 들어갔다. 내가 도착하기 바로 전날 저녁은, 유럽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간 그 유명한 유태인 박해가 터진 날이었다. 온 도시가 흥분 속에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길거리에 나와 있었다. 따라서 코펜하겐의 소란과 소요는
당시 내게는 가장 큰 도시였던 코펜하겐에 대해 상상하던 것과 일치했다.
  호주머니에는 채 10탈러도 안 된 돈을 가지고 나는 작은 여관에 들었다.
  내가 맨 먼저 찾아간 곳은 극장이었다. 나는 여러 번 같은 극장 주변을 돌며 벽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극장을 내 고향을 보듯 살펴보았다. 이 곳을 매일 서성거리며
표파는 사람이 나를 유심히 보고는 표를 갖겠느냐고 믿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제의를 대단히 감사해 하면서 받아들였다. 그는 내가 자기를 놀린다고 생각하고
화를 내었으므로, 나는 놀라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 장소를 떠나고 말았다. 그 때
나는 전혀 예상조차 하지 못했다. 10년 후 내 처녀작이 그 곳에서 공연되리라는
사실을, 내가 그런 방식으로 덴마크 관객 앞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다음 날 나는 견진 성사 때 입던 옷을 꺼내 입었다. 부츠도 잊지 않았다.
나로서는 가장 잘 차려 입고, 눈까지 내려오는 모자를 쓰고 발레리나인 마담 샬을
찾아갔다. 그녀에게 내 추천서를 전하기 위하여.
  벨을 누르기 전에 나는 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내가 여기서 도움과 보호를
찾게 해 달라고 신에게 간구했다. 그 때 바구니를 든 하녀가 계단을 올라왔다.
그녀는 나를 보고 친절하게 미소 짓더니 내게 1실링을 주고는 뛰어갔다. 나는
놀라서 그녀와 1실링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견진 성사때의 옷까지 꺼내 입었으니
제법 단정해 보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녀는 어떻게 내가 구걸을 하려 한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
  나는 그녀를 소리쳐 불렀다.
  "그냥 가져!"
  그녀는 소리치고는 가 버렸다.
  마침내 나는 발레리나의 면회를 허락 받았다. 그녀는 나를 아주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면서도 내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녀는 이 편지를 써 준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연극에 대한 내
마음 속의 욕망을 토로하였다.
  어떤 역할을 연기할 수 있느냐는 그녀의 질문에 나는 "신데렐라" 라고 대답했다.
이 작품은 오덴세에서 왕립 극단에 의해 공연되었는데 주인공이 어찌나 나를
감동시켰던지 기억만으로 완벽하게 그것을 연기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나는 부츠를
벗어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 부츠를 신고는 가볍게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큰 모자를 탬버린 삼아 춤추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이 지상의 지위와 부도
  근심 걱정을 면할 수는 없지요.
나의 거동을 본 발레리나는 나를 미친 사람으로 간주했다. 결국 나는 쫓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이에 실망하지 않고 일자리를 얻기 위하여 극장주를 찾아갔다.
  그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더니 연극을 하기에는 너무 말랐다고 말했다. 나는, 1백
탈러의 출연료로 취직만 될 수 있다면 살이 찔 거라고 말했다. 그러나 극장주는 내
길을 가라고 말하면서 여기는 교양을 갖춘 사람만 고용한다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매우 슬펐다. 위로와 충고를 해 줄 사람도 없었다. 죽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곧 신을 생각했다. 어린 아이가 완벽한 믿음으로
아버지에게 매달리듯이 내 생각은 신에게로 향했다.
  나는 실컷 울고 나서 나 자신에게 말했다. 만약 모든 것이 불행하게 흘러간다면
신은 나에게 도움을 보내리라. 나는 그걸 믿었다. 무엇인가를 성취하기 전에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하는 법이다.
  나는 극장으로 가서 오페라 '포올과 비르지니'의 맨 위층의 싼 관람석의 표를
샀다. 연인들의 이별은 몹시 내 마음을 감동시켜서 나는 격하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두어 명의 부인들이 그저 연극일 뿐이라고, 저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나를 위로했다. 한 부인은 내게 소시지가 들어 있는 큰 샌드위치를
주기도 했다.
  나는 모든 사람을 신뢰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주 솔직하게 포올과 비르지니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연극을 나의 비르지니로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만약
연극과 이별한다면 나도 포올처럼 불행해질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는 것이라고
고백하였다. 그들은 나를 천천히 바라보았으나 나를 이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나는 내가 왜 코펜하겐으로 왔는지, 내가 얼마나 고독하게 여기 있는지를
이야기하였다. 그 부인은 내게 더 많은 빵과 과일과 과자를 주었다.
  나는 길거리를 지나갔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했다. 나는 완전히 버림받은
몸이었다. 그러자 나는 오덴세에 있을 때 어느 신문에서 시보니라는 이탈리아 인에
관해 읽은 생각이 났다. 그는 코펜하겐의 음악 학교 교장이었다.
  '그래, 모든 사람들이 내 목소리를 칭찬했었지. 어쩌면 그가 나를 돌봐 줄지도
몰라.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나는 그 날 밤을 집으로 돌아가는 배를 찾아야 하리라.'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자 나는 더 격하게 마음이 움직였다. 이러한
고통스러운 상황에서 나는 시보니 씨를 찾아갔다. 그는 마침 점심 모임을 갖고
있었다. 내게 문을 열어 준 가정부에게 나는 가수로 취직하고 싶다는 내 갈망뿐
아니라, 내 살아온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녀는 동정심을 가지고 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었다. 그녀는 내 이야기의 대부분을 손님들에게 반복했음에 틀림없었다.
나는 오래 기다려야 했으니까 말이다.
  문이 열리자, 모든 손님들이 나와서 나를 관찰했다. 나는 노래를 불러야 했다.
시보니 씨는 주의 깊게 들었다. 나는 홀베르그의 연극 몇 장면과 두어 편의 시를
낭송했다. 그러자 나 자신의 불행한 처지가 생각나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모든
손님들이 박수를 쳤다.
  "내가 예언하겠네. 이 아이는 언젠가는 크게 될 거야. 그러나 후일 모든 관객이
네게 박수 갈채를 보내더라도 너무 허영심에 들뜨지 말아라!"
  바게센 씨가 말했다.
  그는 순수하고 진정한 천분에 관해 몇 마디 덧붙이면서 천분이란 나이를
먹을수록, 사람들 사이에 섞일수록 파멸해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다. 시보니 씨는 내 목소리를 교육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내가 왕립 극장의 가수로 데뷔할 수 있도록 도와
주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너무나 행복해서 웃고 울었다.
  가정부가 나를 밖으로 불러 내 볼을 쓰다듬으며 내일 바이제 교수에게 가 보라고
했다.
  나는 바이제 교수에게 갔다. 그 역시 가난하게 태어나서 열심히 노력하여 성공한
사람이었다.
  그는 내 처지를 이해했다. 그리고 나를 위해 70탈러를 모금해 주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첫 편지를 썼다. 환호하는 편지였다. 온 세상의 행복이 내게로
밀려들고 있었다.
  어머니는 기쁜 나머지 편지를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주었다. 몇 사람은
놀라워했고, 다른 사람들은 미소 지었다.
  시보니 씨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독일어를 배워야 했다. 오덴세에서 코펜하겐으로
올 때 함께 타고 온 어느 코펜하겐 여성이, 자신이 아는 어학선생에게서 공짜로 몇
시간 배울 수 있게 알선해 주었다. 그래서 나는 독일어를 배웠다. 시보니 씨는 네게
자기 집을 언제나 드나들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자 내 목소리는
변성기가 되었다. 아니면 겨울내내 변변히 신지도 못하고, 따뜻한 외투도 없이 지낸
까닭에 목소리가 상한 것인지도 몰랐다.
  내가 훌륭한 가수가 될 전망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시보니 씨는 내게
정직하게 그것을 말해 주면서 오덴세로 돌아가 그 곳에서 수공업을 배우라고 충고해
주었다. 내 상상력의 풍요로운 색채로 실제 느꼈던 행복을 어머니에게로 그려
보냈던 나는 이제 오덴세로 돌아가서 웃음거리가 되어야 하다니!
  이러한 생각에 고통당하면서 나는 으깨어지는 듯한 심정으로 서 있었다. 그러나
큰 불행처럼 보이는 곳에 보다 나은 상태로의 계단이 놓여 있었다.
  버림받은 기분으로 그 곳에 서서 외로이 내가 뭘 시작해야 할 것인지 곰곰
생각하고 있을 때 내게 그토록 많은 호의를 베풀어 주었던 오덴세의 굴트베르크
대령의 동생인 시인이 코펜하겐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당시 시 외곽의 새로 단장한 교회 묘지 옆에 살고 있었다. 이 묘지를 그는
자신의 시에서 그토록 아름답게 노래했었다.
  나는 그에게 편지를 써서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뒤이어 그를 찾아간 나는 그가
활기 넘치며 다정한 사람임을 알았다. 그는 나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 그는 내
편지에서 내가 얼마나 글자를 틀리게 쓰고 있는지 알았으므로 내게 덴마크 어
수업을 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독일어도 가르쳐 주겠다고 했다. 그는 당시
출간된 책의 수입 일부를 내게 주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1백탈러 이상이
들어왔던 것으로 기억된다. 바이제 씨와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나를 후원해
주었던 것이다.
  여관에서 사는 것은 내게 너무나 비쌌다. 나는 좀더 싼 집을 찾아야 했다.
  세상 물정을 몰랐던 나는 코펜하겐에서 가장 악명 높은 거리에 있는 어느 과부의
집에 방을 얻었다. 그녀는 좋아하면서 나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내 주위에 어떤
세계가 돌고 있는지 예감하지 못했다.
  그녀는 엄격하면서도 활동적인 여자였다. 그녀가 도시의 모든 다른 사람들을
어찌나 무시무시한 악인으로 묘사했던지 나는 그녀의 곁에 있으면 안전한 항구에
있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는 방 한 칸에 매달 20탈러를 지불해야 했다. 창문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빈
식당을 방으로 썼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거실에 앉아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
나는 우선 이틀 동안 그것을 시도해 보았다. 쉽게 사람을 사귀는 나는 그 동안
그녀가 좋아져서 마치 고향집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월 16탈러 이상을 낼
수는 없었다. 바이제 씨와 굴트베르크 씨로부터 받는 돈이 바로 이 액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는 한 번도 그 이외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슬펐다.
  주인 여자가 외출을 한 다음 나는 소파 위에 앉아 죽은 그녀 남편의 초상화를
보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나는 아직 어린애였다. 눈물이 내 뺨위를 흘러내리자
나는 그 그림의 두 눈을 내 눈물로 발랐다. 내가 얼마나 슬픈지 그 죽은 남편이
느끼도록 하기 위하여, 그의 아내의 가슴에 영향을 미치도록 하기 위하여. 그녀는
내게서 더 이상 짜낼 수 없다는 것을 파악했음에 틀림없었다.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는 계속 16탈러로 있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신과 그리고 그 죽은 남편에게
감사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친절한 젊은 숙녀가 있었다. 혼자 살고 있는 그녀는 때때로
울었다. 매일 저녁 그녀의 늙은 아버지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자주 그에게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눈에 띄지 않는 수수한 옷을 입고 목을
완전히 싸 감추고 모자를 눈 위에까지 내려쓰고 있었다. 그는 항상 딸과 차를
마셨는데 그 때에는 아무도 그 자리에 함께 있어서는 안되었다. 그가 사람을
싫어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오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러 해가 흐른 후 어느 날 저녁 나는 불빛이 찬란한 홀의 한가운데로 훈장을 단
고상한 늙은 남자가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바로 내가 문을 열어 주곤 했던 그
아버지였다. 그가 손님이었을 당시, 그는 내가 문을 열어 준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또 그 당시 내 편에서도 코미디 연극에만 온 정신이 쏠려 있었다.
즉 인형놀이를 하고 인형 옷을 깁는 데에만 열중해 있을 만큼 유치했던 것이다.
  나는 여러 가지 헝겊을 얻기 위해 상점마다 돌아다니며 주인들에게 간청을 하곤
했다. 나는 단 한 푼의 돈도 없었다. 내 하숙집 여주인이 한 달 선불로 모든 돈을
가졌기 때문이다. 때때로 내가 달라고 할 때에만 그녀는 약간의 돈을 주었다.
그러면 나는 그 돈으로 종이나 혹은 코미디 책을 사는 데 썼다. 그럴 때면 나는
몹시 기뻤다. 또 굴트베르크 교수가 극장의 제일가는 희곡작가요, 대단히 선량하고
교양 있는 작가인 린드그렌씨로 하여금 나에게 수업을 베풀어주도록 주선해 주었을
때에는 정말 곱절이나 기뻤다. 그는 내게 헨드릭이나, 혹은 내가 특별한 재능을
보이고 있다고 사람들이 말한 바보 소년 같은, 홀베르그 연극의 여러 역할을
배우도록 해 주었다. 그러나 내가 진정 하고 싶었던 것은 위대한 화가 코레기오의
역할이었다. 린드그렌 씨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엄숙하게 위대한 화가 코레기오의
역할을 흉내 낼 수 있겠느냐고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어이 나 혼자
힘으로라도 이 역을 습득해도 좋다는 허락을 얻었다.
  나는 코레기오의 화랑에서의 모놀로그를 어찌나 감정을 섞어 잘 암송했던지
린드그렌 씨는 내게, 이렇게 말을 할 정도였다.
  "감정은 그대로 지니시오. 그러나 배우는 되지 마시오! 당신이 무엇이 될
것인지는 신만이 아시는 일이긴 하지만. 굴트베르크 교수와 의논해 보시오! 라틴
어를 좀 배우도록 해요. 그것이 대학생이 되는 길이니."
  내가 대학생이 되다니! 그런 생각은 아직 내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내게는
극장이 훨씬 가까이 있었고 또 그것이 더 좋았기 때문이다. 우선 나는 공짜로
독일어 수업을 해 주고 있던 아가씨와 그 문제에 관해 상의했다. 그녀는 라틴
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비싼 언어이며, 그것을 공짜로 배우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사이 굴트베르크 씨는 내가 그의 친구 한 사람에게 1주 몇 시간 라틴 어
수업을 받도록 주선해 주었다. 남성 무용수 달렌 씨였다. 그의 아내는 당시 덴마크
무대의 일류 예술가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나는 자주 그의 집에 갔다. 그 부드럽고 다정한 부인은 내게 잘 대해 주었다.
달렌 씨는 나를 자신의 무용 학교에 받아 주었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는 연극
무대로 나아가는 또 하나의 발걸음이었다.
  나는 오전 내내 긴 막대기처럼 다리를 뻗으며 서 있었다. 그러나 나의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달렌 씨는 내가 단역 배우 이상은 더 발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도 나는 얻은 게 있었다. 어느 날 저녁인가 무대 뒤편에 있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던 것이다. 단역들이 있는 칸막이 좌석의 맨 뒷줄에 앉아 있어도
되었던 것이다.
  벌써 무대에 발을 들여놓은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나 나는 무대 위에는 아직 한
번도 선 적이 없었다.
  오페레타 '두 명의 사보아 사람'이 공연되던 어느 저녁이었다.
  시장 장면에서는 무대를 꽉채우기 위해 누구나 무대 위에 등장할 수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약간 분장을 하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행복한 기분으로 무대로
나갔다. 나는 늘 입던 옷을 입고 있었다. 견진 성사 때의 그 옷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솔질을 하고 수선을 했어도 그 옷은 초라해 보였다. 나는 또 얼굴을 덮는 큰
모자도 썼다. 나는 내 꼴이 우습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고, 내 모습을 감추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이 때문에 오히려 내 움직임이 도드라졌다. 내 짧은 조끼가 내
긴 몸체에 비해 너무 드러나지 않게 하려면 나는 가만히 서 있어서는 안 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웃음거리로 삼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이 순간
난생 처음 조명을 받으며 무대에 등장했다. 그 때 당시에는 대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잊혀진 가수가 나왔다. 그는 내 손을 잡더니 비웃으면서 내 무대 데뷔에
행운을 빈다고 말했다.
  "제가 덴마크 관객에게 당신을 소개해도 되겠습니까?"
  그는 말하면서 나를 조명 아래로 이끌었다. 사람들은 내 모습을 보고 웃었다.
나는 그것을 느꼈으며,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그를 뿌리치고 무대를 떠났다. 그러나 그 후 곧 달렌 씨가 발레에서 단역을
하도록 해 주었다. 내가 맡은 것은 악마 역할이었다. 나는 이 발레의 인연으로 교수
하이베르크 여사를 알게 되었다. 시인의 부인이요, 지금은 덴마크 무대의 존경 받는
예술가인 그녀는, 그 당시 그 발레에 어린 소녀 역을 맡아 출연했던 것이다.
  우리의 이름이 프로그램 종이 위에 인쇄되어 있었다. 그것은 내 일생에서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내 이름이 인쇄되다니! 나는 그 속에서 불멸의 후광을 보았다고
믿었다. 나는 그 인쇄된 이름을 보고 또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날 밤 발레 프로그램을 손에 들고 잠자리에 들었다. 누워서 불빛에 내 이름을
읽었다. 나는 행복했다.
  이제 나는 코펜하겐에서의 두 해째를 맞고 있었다. 나를 위해 모금되었던 돈은 다
쓰고 없었다. 그러나 나는 수치스러워서 결핍과 곤궁함을 고백할 수가 없었다.
  나는 거처를 아침 커피만을 제공하는 어느 선원의 미망인 집으로 옮겼다. 어둡고
암울한 날들이었다. 하숙집 여주인은 내가 다른 집에서 식사하기 위해 외출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킬스베르그 공원 벤치에서 작은 빵을 씹고 있었다. 아주
드물게 허름한 식당에 가서 가장 멀찍이 떨어진 식탁을 골라 앉기도 했다. 버림받은
상태였으나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내게 친절하게 말을 거는
사람이면 모두 정직한 친구로 생각했다. 신은 내 작은 방에 함께 계셨고 저녁
기도를 올리는 저녁마다 나는 순진하게 신에게 물었다.
  "곧 나아지겠지요?"
  나는 1년 중 첫날의 상태가 그 해 내내 지속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내
최상의 목표는 연극에서 배역을 얻는 것이었다. 바로 새해 첫날이었다. 극장은 문을
닫고 있었다. 반쯤 눈이 먼 늙은 수위만이 무대로 통하는 입구에 앉아 있었다.
무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살짝 수위 곁을 지나 무대위로 올라가 무릎을 꿇고
아무도 없는 객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 한 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큰 소리로
'주기도문'을 외운 후, 새해 첫날 무대에서 객석을 향해 이야기했으니 올해에는 이
곳에서 더 많은 배역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아래 그 곳을 나왔다.
  코펜하겐에 온 두 해째에도 밖으로 나가 보지 못했다. 딱 한 번 동물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이 곳에서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세 해째 되던 어느 봄날 아침 나는 처음 밖으로 나갔다. 그 곳은 프리드리히
6세가 여름 별장으로 이용하던 프레데릭스베르그가 가르텐이라는 곳이었다.
  나는 이제 막 싹트기 시작한 너도밤나무 아래 서 있었다. 태양이 잎들을 투명하게
만들고, 새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이 풍경에 압도당하여 크게 소리를 지르고 내 양팔을 나무 둘레에 감고는
입맞추었다.
  "미친 사람아냐!"
  내 곁에서 어떤 남자가 말했다. 그는 이 궁정의 관리였다. 나는 놀라서 도망을
쳤다. 그리고는 풀이 죽은 채 시내로 되돌아왔다.
  나중에 사귀게 된 친구 한 사람이 이 시절의 나를 처음으로 보았노라고 말해
주었다. 그것은 어느 부유한 상인의 살롱에서였는데, 사람들은 나를 놀리려고 일부러
자작시를 한 편 낭독해 달라고 청했다. 나는 몹시 감정을 섞어서 시를 낭송했다고
한다. 그래서 조롱하려던 기분은 동정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내가 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으면 참 좋을 것이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은 내게 학문에 전념하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아무도 날 위해 한걸음을
내디뎌 주지 않았다. 목숨을 연명하는 것도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그 때 비극을 한
편 써서 왕립 극장에 제출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돈을 받게
되면 나는 대학 공부를 시작하고 싶었다.
  그 해 여름 내내 나는 극심한 고통으로 시달렸다. 그러나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조금이라도 내 고통에 대해 이야기하였더라면 내게 관심을 보여
준 많은 사람들은 틀림없이 내 고통이 덜어지도록 도와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의 내 사정이 어떤지 말하지 못하도록 거짓 거품이 나를 막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행복감에 도취해 있었으니 그 때 처음으로 월터 스콧을 읽었던 것이다. 새로운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나는 현실을 잊었다. 그리고 점심 비용을 도서관에서 책을 빌리는 데 썼다.
  내게 제 2의 아버지가 되어 준 분은 지금의 상공회의소 고문인 콜린 씨였다. 또
그의 자식들과도 형제 자매처럼 지냈다. 나는 그 당시 처음으로 그를 보았는데, 그는
최고의 유능함과 고귀한 마음이 결합한, 덴마크의 가장 중요한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다. 나는 그를 존경했다. 그는 벌써 그때 왕립 극장 극장장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내게 관심을 가져 준다면 가장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난생
처음으로, 후일 내게 그토록 소중하게 될 그 집을 찾아가게 되었다.
  코펜하겐의 제방이 확장되기 이전에 그의 집은 성문밖에 있었으며 스페인 공사의
여름 별장으로도 사용되었다. 지금도 약간 삐뚜름히 기울어진, 각이 진 그 집은
그대로 명망 높은 거리 그 곳에 같은 모습으로 놓여있다. 입구 쪽으로는 고대풍의
나무 발코니가 이어져 있고 마당과 뾰족한 합각 지붕 위로는 큰 나무가 초록색
가지들을 뻗치고 있었다. 그 집은 내게 내 부모님의 집이 되어야만 했다.
  나는 처음에 콜린 씨에게서 상인 같은 느낌만을 받았다. 그는 몇마디하진
않았으나 진지했다. 관심은 기대하지도 않은 채 나왔다. 그러나 진정으로 나를
걱정해 주고 모든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린 사람은 바로 콜린씨였다. 그 당시
나는 그가 내 말에 귀기울이는 조용함을 이해하지 못했다. 곤궁하다는 나의 말에,
그의 가슴에서는 피가 끓고 있고 항상 열성과 행운으로 날 위해 영향을 끼쳐 주고
날 도와 줄 것을 다짐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칭찬을 늘어놓은 내 제출 작품 '알프솔'에 대해 그는 어찌나
가볍게 언급했던지 그가 보호자라기보다는 적으로 생각될 지경이었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극장 관리부로 호출을 받았다. 그 곳에서 라베크 씨는 '알프솔'은
무대 공연에는 쓸모가 없는 작품이라고 돌려 주었다. 그러면서 그 작품 속에는 많은
황금 낟알이 들어 있으며, 내가 진지하게 공부를 하면, 언젠가는 덴마크 무대를 위해
작품을 쓸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가져도 될 것이라고 덧붙여 주었다. 그는 내게
공연할 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 주었다.
  콜린 씨는 내가 수업을 받으며 생활해 갈 수 있도록 프리드리히 5세 왕에게
장학생으로 추천해 주었다. 왕은 몇 년 동안 매해 일정 금액을 장학금으로 주었다.
아울러 마침 활동적인 교장이 새로 부임한 슬라겔세의 라틴 어 학교에서도 콜린
씨의 주선에 의해 공짜 수업을 받기로 되었다. 나는 너무 놀라 벙어리가 될
지경이었다.
  나는 내 인생이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리라고는 결코 생각해 보지 않았었다.
  나는 코펜하겐에서 12마일 떨어져 있는 슬라겔세로 떠나게 되었다. 그곳은 시인
바게센 씨와 잉게만 씨가 학교를 다닌 곳이기도 했다.
  나는 콜린 씨로부터 3개월마다 돈을 받았다. 그는 내 열성과 진도를 시험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두 번째 그에게 갔을 때, 나는 감사의 마음을 표시했다. 그러자
그는 부드럽고 다정하게 말했다.
  "자네에게 부족한 것이나 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든 것을 숨김없이 써
보내게."
  이 시간부터 나는 그의 마음 속에 뿌리를 박았다. 어떤 아버지도 그가 내게 해
주고 있는 이상의 것을 해 줄 수는 없을 것이다. 후일 내가 누리게 된 행운을
그보다 더 마음 속으로 기뻐해 준 사람은 없었다. 또 내 근심을 그보다 더 진정으로
함께 걱정해 준 사람도 없었다. 덴마크의 가장 유능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 나를
자기 친자식처럼 생각해 주었다고 말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
  어느 아름다운 가을날, 나는 우편 마차 편으로 코펜하겐을 떠났다. 슬라겔세에서
학교 생활을 시작하기 위해서였다. 내 옆에는, 한 달 전에 대학에서의 첫 시험을
치르고 이제 대학생이 된 모습을 보여 주기, 부모와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고향인
유틀란트로 가는 대학생이 앉아 있었다. 그는 이제 자기 앞에 놓여 있는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쁨으로 환호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그가 만약 나 같은 사정에 처해
있다면, 그래서 다시 라틴 어 학교에 다니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면,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나 나는 용기를 가지고 제란트의 그
작은 섬으로 여행했다.
  어머니는 아마 나로부터 가장 행복한 편지를 받았을 것이다. 아버지와 늙은
할머니가 아직 살아 계셔서 내가 라틴 어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이신다면 얼마나 좋으셨을까.
    ------
      3
  늦은 저녁 슬라겔세에 있는 여관에 도착하자, 나는 여관 여주인에게 이 도시에 볼
만한 것이 있는 지를 물었다.
  "그럼, 새로운 영국제 소화기와 바스트홀름 목사님의 도서관이지."
  여주인의 말처럼 그것들이 이 도시에서 주목해 볼 만한 전부였다.
  두어 명의 창기병 장교들이 세련된 사교계를 이끌고 있었다. 어떤 집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학생의 성적이 올라갔는지 떨어졌는지 등의 것을 모두 빤히
알고 있었다. 총연습 때면 라틴 어 학교의 학생들과 시내의 하녀들에게 공짜로
입장을 시켜 주었던 사립극장이 대화의 풍성한 소재를 제공해 주었다. 그 곳은
숲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해안까지는 더욱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러나 중요 우편
도로는 시내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종종 우편 마차의 호각 소리가 울려 오기도
했다.
  나는 교양 있는 계층의 점잖은 미망인 집에 하숙을 얻었다. 나는 배우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지만, 바다에 내던져진 것처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파도가 한
차례 지나가고 나면 다음 파도가 뒤따랐다. 문법, 지리, 수학. 나는 그런 것들에게
압도당할 것처럼 느꼈고, 내가 이 모든 것에 결코 적응할 수 없을지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모든 사람을 비웃고자 하는 특이한 욕망을 가진 교장은 물론 나라고 해서 예외로
삼지 않았다. 그는 내게는 신성 그 자체처럼 그 곳에 서 있었다. 그가 내뱉는 모든
말을 절대적으로 믿었다. 어느 날 내가 그의 질문에 틀린 대답을 하고, 뒤이어 그가
날더러 바보라고 말했을 때 나는 콜린 씨에게 이 사실을 알리면서 사람들이 내게
베풀어 준 것에 대해 보답을 못할 것 같다고 토로를 할 정도였다. 그러면 콜린 씨는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나는 차츰 좋은 성적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은 내게
진심으로 잘해주었다. 그러나 잘해 나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점점 더 나
자신에 대한 신뢰를 잃고 있었다. 그러나 첫 시험에서 나는 교장의 칭찬을 얻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기록부에다 기입해 주었다. 이 일에 기뻐하면서 나는 며칠 후
코펜하겐으로 왔다.
  나의 발전을 알아차린 굴트베르크 씨는 친절하게 맞아 주면서 나의 열성을 칭찬해
주었다. 오덴세에 있는 그의 형님도 내가 모험을 떠난 이후 한 번도 가 보지 못한
내 고향을 다음 여름에는 다시 볼 수 있도록 비용을 약속해 주었다.
  나는 발트 해협을 건너 걸어서 오덴세로 갔다. 고향에 가까워지고 오래된 높은
교회 종탑을 쳐다보자 내 가슴은 점점 부드럽게 녹아 갔다. 신의 보호를 가슴 깊이
느꼈다.
  어머니를 만나자마자 나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어머니는 행복해하셨고
이베르센 씨네 가족과 굴트베르크 씨네 가족도 모두 나를 진심으로 반겨 주었다.
작은 골목에서 사람들이 내 뒷모습을 보기 위해 창문을 여는 것을 보았다. 내가
기막히게 일이 잘 풀렸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집 위에 높은 탑을 지어 놓은 가장 부유한 사람이 나를 초대해 그 탑으로
이끌었을 때, 도시와 그 주변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그리고 광장 아래쪽에서 내가
어릴 때부터 알고 있던 빈민 병원의 몇몇 불쌍한 여인네들이 날 올려다보았을 때
나는 진정 행복의 성벽 위에 서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슬라겔세로
돌아가자마자 이 후광은 사라져 버리고 이에 대한 생각도 모두 사라져 버렸다.
  나는 행동 및 태도와 관련하여 기록부에 항상 '대단히 우수함'의 성적을 얻었다.
언젠가 한 번은 그냥 '우수함'의 성적을 받는 일이 일어났다. 그 때문에 나는 콜린
씨에게 편지를 쓰고 '우수함'의 성적을 받은 것은 전혀 내 잘못이 아니라고 진지하게
단언을 할 만큼, 나는 걱정 많고 유치한 아이였다.
  교장 선생님은 슬라겔세에 머무는 것에 싫증을 내고, 헬싱괴르에 있는 라틴 어
학교의 임기가 다 된 교장의 후임을 간청하여 그 자리를 얻었다. 그는 내게 그
이야기를 해 주면서 내가 자신을 따라 그 곳으로 가도 좋으며 자신의 집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콜린 씨에게 써도 좋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당장 이사와도 좋다고
말하였다. 그러면 나는 1년 반 후에 대학생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그 같은 일은 내가
그 곳에 남아 있으면 일어 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가 직접 내게 라틴
어와 그리스 어를 몇 시간씩 개인 수업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교장은
직접 콜린 씨에게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6,36^후일 내가 보게 되었지만^36,3^
나의 열성과 진도와 훌륭한 능력에 대한 최상의 칭찬을 담고 있었다. 내 능력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전혀 잘못 생각했고, 그 능력의 결핍 때문에 자주 울었다. 나는
교장 선생님이 나를 그토록 좋게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전혀 아무런 감도
잡을 수 없었다. 만약 그가 내게 그것을 표명해 주었더라면 나는 고무 받고 기운을
얻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그는 끊임없이 나를 비난하여 나의 기를 꺾어
놓았던 것이다.
  나는 물론 즉각 콜린 씨의 허락을 얻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곳은 내게는 불행의 집이었다.
  나는 그를 따라 헬싱괴르로 옮겨 갔다. 한 번도 1마일 이상 넓이를 가져 본 적이
없고 마치 덴마크와 스웨덴 사이의 부풀어오른 푸른 강처럼 보이는 외레준트에
밀접해 있는, 덴마크의 가장 아름다운 곳의 하나인 그 곳으로.
  온갖 국적의 배들이 수백 척씩 그 곳을 지나갔다. 겨울이면 얼음이 얼어 나라들
사이에 단단한 다리를 놓아 주었고, 봄이 되어 얼음이 깨어질 때면 그것은 마치
떠내려가는 빙하와도 같았다.
  이 곳의 자연은 내게 생생한 인상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나는 몰래 그 자연을
훔쳐보아야 했다.
  학교 시간이 끝나면 대개 집의 문이 닫혀져 버렸다. 나는 후덥 지근한 공부방에
앉아서 라틴 어를 배우거나 아이들과 놀거나 아니면 내 작은 방에 들어앉아
있어야만 했다. 집 밖으로 놀러 나갈 수가 없었다. 이 집에서의 생활은 내 기억의
가장 어두운 부분을 차지한다. 나는 거의 질식할 지경이었다. 저녁마다 신께 올리는
기도에서 이 성찬을 거두어 차라리 죽음을 내리게 해 달라고 빌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어떠한 믿음도 가질 수가 없었다. 교장이 나를 조롱하고 내 감정을
우스꽝스럽게 만드는 데서 즐거움을 느낄 때, 그것이 얼마나 내게 심한 일인가를
나는 결코 편지에서 발설한 적이 없었다. 나는 나 자신을 제외하고는 그 어느
누구도 탓해 본적이 없었다.
  "저 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거야. 저 환상적인 작자는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거야."
  코펜하겐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절 콜린
씨에게 가는 내 편지는 그토록 음침하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콜린 씨의 마음을 깊이 감동시켰다. 그러나 그는 나를 도울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그 이유가 내 내면의 문제 때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 감정은 몹시
탄력성이 있었고, 모든 햇빛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었다. 그러나 코펜하겐으로 여행
허가를 얻는 휴일만 이 감정 속으로 살짝 빠져 들어갔다. 코펜하겐의 집으로
돌아가는 그 며칠 동안은 얼마나 굉장한 변화가 일어났던가!
  모든 우아함과 청결함, 교양 갖춘 세계의 안락함이 있는 코펜하겐의 집으로!
그러나 나는 며칠 후면 다시 교장에게로 돌아가야 했다.
  교장은 코펜하겐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는데, 내가 그 곳에서 자작시를 낭독했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 시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가 그 시에서 문학의 불꽃을
발견한다면 날 용서해 주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떨면서 시 '죽어 가는 아이'를 가져갔다.
  그는 읽고 나더니 그것은 감정의 장난이며 시시덕거리는 잡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그는 노골적으로 화를 냈다. 내가 시를 쓰는 것으로 시간을 헛되이
낭비하고 있다는 믿음에서 그가 나를 비난했더라면 괜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것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이날부터 나는 더욱 불행해졌다. 정신적으로 어찌나 고통을 받았던지 거의 파멸할
지경이었다. 내 인생에 있어 가장 음울하고 불행한 시기였다. 그 때 마침 교사 한
사람이 코펜하겐으로 여행을 하게 되어 콜린 씨에게 내 사정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가 임시로 날 학교에서 그리고 교장의
집에서 빼내어 주었다.
  교장과 작별하면서, 내가 받았던 호의에 감사하다고 말했을 때 이 격렬한 남자는
나를 저주하면서 내가 결코 대학생이 될 수 없을 것이며, 시는 서점 바닥에서
먼지가 앉고, 나 자신은 정신 병원에서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나는 마음 속 깊이 충격을 받으면서 그를 떠났다.
  여러 해가 지난 후 내 작품들이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즉흥시인'이 출간되었을 때,
코펜하겐에서 그를 다시 만났다. 그는 내게 화해하는 태도로 손을 내밀면서 나를
잘못 생각했으며 잘못 판단했노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내게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 어둡고 암울하던 날도 내 인생에 축복을 가져다
주었던 것이다.
  북방 언어 및 시에 대한 열성으로 후일 덴마크에서 명성을 얻게 된 젊은 남자가
내 선생님이 되었다. 나는 작은 다락방을 빌려 살았다. 그 방은 '바이올린'에
묘사되어 있다. 또한 '그림 없는 그림책'을 읽으며 사람들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 곳에서 자주 달의 방문을 받았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나를 후원하는 사람들로부터 일정한 금액을 받을 수 있었다. 이제 수업료도
지불해야 했다. 다시 말해 다른 방식으로 절약을 해야 했다. 몇몇 가정이 내게
그들의 식탁에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주 중에 그 식탁들은 모두 자리가 찼다. 나는
당시 많은 코펜하겐의 가난한 대학생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일종의 '밥 먹으러 오는
사람' 이었다. 여러 가정의 다양함을 들여다보는 것도 기분 전환이 되었다.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헬싱괴르에서는 특히 수학에서 아주 우수한 성적을
얻었다. 따라서 이 과목들은 이제 나 스스로에게 맡겨졌고 모든 것은 그리스 어와
라틴 어에서 뒤떨어진 것을 보충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방향에서 ^6,36^아마도 사람들은 믿을 수 없겠지만^36,3^ 많이
도와 주어야겠다고 탁월한 선생님은 생각했는데, 그것은 바로 종교 과목이었다. 그는
엄격하게 성서의 말씀을 지키고 있었다. 성경은 나도 잘 알고 있었다. 학교에 처음
들어가면서부터 나는 성서에서 말하고 가르치는 모든 것을 생생하게 받아들였다.
신은 사랑이라는 것을 감정과 개념으로 파악했다. 이에 반대하는 모든 것, 영겁의
불이 지속되는 지옥을 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교실 의자 위의 억압 받는 존재로부터 벗어나자 나는 모순으로 뒤죽박죽이
되었다. 나는 마치 자연인인 것처럼 말을 했다. 아주 고귀하고 사랑스러운, 그러나
철저하게 글자 그대로의 성경을 믿고 있던 선생님은 자주 나를 걱정하게 되었다.
우리는 똑같이 순수한 불길을 가슴에 담은 채 논쟁을 했다. 이 더럽혀지지 않고,
재능 있는 젊은 사람과 만난 것은 내게는 참으로 잘된 일이었다.
  이즈음 덴마크 문학에는 신선한 물결이 지나가고 있었다. 국민들은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에 비하면 정치는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 탁월한 작품인
'사이코'와 '도공 발터'로 인정 받고, 시인이라는 명성까지 얻은 하이베르크가 덴마크
무대에 보드빌(프랑스에서 생긴 통속 가극)을 끌어들인 것이다. 그것은 덴마크 식
보드빌이었다. 그 때문에 그것은 환호와 함께 받아들여졌고 다른 모든 것을 거의
몰아내 버렸던 것이다. 탈리아가 덴마크 무대에 사육제를 개최했다면, 하이베르크는
덴마크 무대의 비서 격이었다.
  나는 외르스테드 근처에서 처음으로 그와 알게 되었다. 세련되고 말 잘하고 그
당시의 영웅이었던 하이베르크는 나를 높게 평가하여 말을 걸어 주었다. 그는
친절하게 대해 주었으며 나는 그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는 나의 해학에 찬 시들을 가치 있다고 판단, 주간지 '날으는 우편마차'에 실어
주었다. 그보다 바로 직전에 시 '죽어 가는 아이'가 어느 신문에 실리게 할 수
있었다. 평소 보잘 것 없는 작품들을 잘 받아들이던 그 수많은 잡지 발행인들 어느
누구도 나같은 학생의 시를 실어 줄 용기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당시 나의 가장 잘
알려진 시는 일종의 사과문과 함께 게재될 수밖에 없었다.
  하이베르크는 이것을 알고, 자기 신문의 명예로운 자리를 내게 내 주었던 것이다.
두 편의 해학적인 내 시는 'h'라는 이니셜로 제대로 데뷔를 한 셈이었다.
  나는 '날으는 우편마차'가 내 시를 싣고 나왔던 그 첫날 저녁을 기억한다. 나는,
내게 잘해 주었으나 나의 시인 기질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며, 시 한줄 한줄마다
비난을 하는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 있던 중이었다. 주인 남자가 '날으는 우편마차'를
손에 들고 들어왔다.
  "오늘 저녁 두 편의 우수한 시가 실려 있어. 하이베르크의 시야. 다른 어느
누구도 그런 것을 쓸 수가 없어."
  그리고 그 시를 열광하여 낭송했다. 내가 몰래 숭배하던 이 집의 딸이 그것을
지은 사람이 나라고 기뻐하며 외쳤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그것은 내 마음을 매우 아프게 했다.
  1828년 9월,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시험을 끝내자 수천 가지의 아이디어와
생각들이 흡사 벌떼처럼 쏟아져 나왔다. 특히 내 처녀작 '아마크로가는 도보여행'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 어떤 서적상도 그 작은 책을 출판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자비로 출판을 감행했으며 그것은 나오자마자 며칠 만에 다 팔리고
말았다. 서적상 라이제 씨가 두 번째 판권을 샀다. 뒤이어 그는 제3판을 찍어 냈다.
그 책은 스웨덴에서도 출판이 되었다. 모두가 그 책을 읽었다. 나는 환호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대학생' 이었으며 내 최고의 목표에 도달해 있었다. 나는 기쁨에
도취되었다. 이러한 도취 속에서 나는 운율을 맞춘 시로 된 내 최초의 희곡
'니콜라이 탑 위에서의 사람' 혹은 '1층 좌석 사람들은 뭐라고 말하나요?'를 썼다.
이 작품은 우리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즉 기사극을 풍자함으로써
실패하고 말았다. 그 외에도 이 작품은 보드빌에 대한 열광을 조롱하고 있었다.
함께 공부하는 동료 학생들은 그 작품을 환호하면서 받아들였다. 그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그 해에 덴마크 무대에 작품을 올린 두 번째 동창생이었다.
나와 같은 대학생이었던 아르네젠이 보드빌 '민중 극장에서의 음모'를 썼던 것이다.
이 작품은 장기 공연목록에 올라가 있었다. 우리는 10월의 두 젊은 작가였고, 이
학기가 배출한 열여섯 시인 가운데 두 명이었다. 사람들은 농담으로 이 열여섯을
네명은 크고 열두명은 작다고 분류했다.
  이제 나는 행복한 사람이었다. 시인의 용기와 젊음의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집들이 내게 문을 열기 시작했다. 나는 이 서클에서 저 서클로 날아다녔다. 그러나
나는 또한 상당히 배짱을 가지고 공부를 했기 때문에 1829년 9월 문헌학과 철학
시험에 좋은 성적으로 합격하고, 많은 갈채를 받은 내 처녀 시집을 출간할 수
있었다. 생은 햇빛을 받으며 내 앞에 놓여 있었다.
  시인이 된 나는 소위 이 나라의 제1급 가정들에게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의 좋은 점을 높이 사주고 그들의 교제 범위에 나를 받아 주었다.
또 그들의 행복하고 풍요로운 여름 휴가에 나를 참여하도록 해 주었다. 나는 그
곳에서 자연과, 숲의 고독, 시골 생활에 나 자신을 내맡길 수가 있었다. 그 곳에서야
비로소 나는 제대로 된 덴마크의 자연 속에 들어가 살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동화의 대부분을 지었다. 나를 둘러싼 자연, 그리고 내 속의 본성이 내
직업에 관해 설교를 해 주었다. 옛 기셀펠트의 들판 위에서, 예전의 수도원에서,
깊은 고독의 한가운데에서, 호수와 언덕과 함께 행복한 날들을 보냈다. 성의
소유주이며 아우구스텐부르크 공작 부인의 어머니인 단네스크욜트 백작 부인은
참으로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부인이었다. 나는 민중의 가난한 어린아이가 아니라
친절하게 받아들여진 손님이었다. 지금은 자연 속에 있는 그녀의 무덤에
너도밤나무들이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기셀펠크보다 더 풍요로운 녹지가 있는 브레겐트베드도 있었다. 덴마크 재무상
몰트케 백작의 소유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풍요롭고 아름다운 영지 중의 하나인 이
장소에서 내가 누렸던 손님으로서의 자유, 그리고 나를 둘러싸고 있던 행복한 가정
생활은 내 생 위에 비치는 햇빛을 더욱 넓게 만들어 놓았다. 어쩌면, 혹 내가 이
이름들을 강조하여 자랑하려는 것처럼, 혹은 내가 이 이름들에게 감사의 말을
늘어놓으려는 것처럼 비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들은 그런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또 만약 내가 그러한 의도를 갖고 있다면 나는 더 많은 이름들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두 장소와 또 토르발센 씨에 의해 유명해진
슈탐페 남작 소유나 니제만을 언급하려 한다. 그 곳에서 나는 그 위대한 예술가
토르발센 씨와 함께 지냈다. 내 젊은 시절의 가장 값진 친구이며 후일의 소유주인
사람과 우정을 맺었던 것이다.
  이 여러 가지 다른 범주에서의 생활은 내게 큰 영향을 미쳤다. 영주들에게서도,
귀족들에게서도, 또 아주 가난한 민중들에게서도 고귀하며 인간적인 것을
발견하였다. 선량함에 있어 우리 모두는 같다!
  덴마크의 겨울 역시 아름답고 풍요롭다. 그 때에도 나는 시골에서 며칠을 보내며
자연속에서의 본래적인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1년 중 가장 많은 시간은
코펜하겐에서 지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콜린 씨의 결혼한 아들
딸들의 집에서 나는 고향에 온 듯이 느꼈다. 천재적인 작곡가 하르트만과의 우정도
해가 갈수록 돈독해졌다. 그의 집에는 예술과 자연의 싱싱함이 꽃피어 있었다.
  실제 생활에 있어서 내 충고자가 콜린 씨였다면 새로운 작품에 있어서의 충고자는
외르스테드 씨였다. 극장은 내가 매일 저녁 찾아가는 클럽이 되었다. 바로 이 해에
나는 소위 궁정 1층 관람석에 자리 하나를 얻었다. 그것은 물론 내 자신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었다.
  첫번째 작품이 받아들여지고 나면 1층의 최하층 좌석을 얻는다. 두 번째 작품
후에는 연극 배우들의 자리인 공짜 1층석에, 그리고 세 개의 큰 작품이나 여러 개의
작은 작품들이 받아들여지고 나면 작가는 번호가 매겨진 일등 좌석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토르발센이나, 외렌슐레거 등 몇몇 나이 든 시인들을 만날 수
있고 나 역시 1840년 일곱 작품을 공연한 후에 이 곳에 자리 하나를 차지했던
것이다. 토르발센 씨가 살아 있었을 때 나는 그의 요청에 따라 자주 그의 옆자리에
앉곤 했다. 외렌슐레거 역시 나의 다정한 이웃이었다. 그리고 많은 저녁 시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이 위대한 두 정신 사이에 앉아 있으면 경건한
겸손함이 내 영혼을 뚫고 지나가는 것이었다. 지난 날의 내 인생이 눈앞을 떠돌며
흘러간다.
  내가 단역 배우들의 맨 뒷자리에 앉아있던 때도, 또 유치하게 미신에 잠겨 어두운
저 무대 위에 무릎을 꿇고 바로 지금 내가 최상급의 중요한 인물들 사이에 앉아
있는 이 자리 앞에서 주기도문을 외웠던 시절도 흘러간다. 만약 나의 동료가 나를
보고서, 저기 두 위대한 정신들 사이에 안데르센이 오만하고 자랑스럽게 앉아
있다고 판단한다면 그는 얼마나 날 잘못 판단하고 있는 것인가!
  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겸손함이요, 내 행복을 벌어들일 힘을 달라는
신에게의 간구일 뿐이다. 신이여, 항상 제게 이 감정을 허용하소서! 나는
토르발센에게서도, 오렌슐레거에서도 우정을 발견하였다. 북방의 지평선 위에 있는
이 중요한 두 별에게서 말이다. 내 마음 속에 있는, 그리고 날 둘러싸고 있는 두
분의 반사광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1843년 성탄절, 나는 동화집을 출간함으로써 덴마크에서 인정을 받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한탄할 이유가 없게 되었다. 나는 내가 벌어들인 것을, 아니 더 이상의
것을 내 고향을 위해 쓰기도 했다. 나는 내가 지금까지 써온 모든 것 덴마크에서
절대적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은 이 문학에 나의 온 힘을 쏟았다.
  맨 처음 출간된 책에서 나는, 어렸을 때 들었던 전래 동화를 이야기하였다. 그
책은 나 자신의 독창적인 동화로 끝을 맺고 있다. 그 동화는 호프마(독일
낭만주의의 작가)의 동화와 상당히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것은 바로 이 동화인 것 같다.
  따라서 나는 점점 더 동화 쪽으로 기울어지게 됨에 따라 대부분의 동화를 나
스스로 창작하고자 했다. 그 다음 해에 새로운 동화책이 나왔고 뒤이어 곧 세 번째
동화책이 나왔다. 그 속에 들어 있는 상당히 긴 동화 '인어 공주'는 나의
창작품이었다.
  이 동화로 인해 사람들의 관심이 특히 높아졌고 다음에 나오는 동화집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매해 크리스마스 때마다 새로운 동화집이 나와서 나의 동화집이
걸리지 않는 크리스마스 트리는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일급 희극 배우들 중 몇몇은
내 동화 하나하나를 무대에서 관객들에게 이야기해 주는 시도를 하기도 했다.
그것은 지겨울 정도로 많이 들은 시 낭송으로부터의 전환이기도 했다. 이렇게 하여
'꿋꿋한 장난감 병정' '돼지치기 소년' '사랑하는 연인들'이나 동화가, 왕립 극장이나,
사립 극장의 무대에 올려져 좋은 반응을 얻었다.
  동화를 이야기하는 방식을 고려하여, 독자를 올바른 관점으로 이끌기 위하여 나는
첫 동화집에다 "어린이에게 들려 주는 동화"라는 제목을 붙였다. 직접 어린이들에게
이야기로 들려 준다는 기분으로 종이 위에 옮겨 썼다. 그렇게 하자 여러 연령층의
사람들이 좋아하게 되었다.
  어린이들은 내가 장식물이라 부르고 싶은 것을 특히 재미있어 하였다. 그에 반해
나이 든 사람들은 보다 깊은 이념을 담고 있는 작품들에 관심을 가졌다.
  동화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모두 읽는 장르가 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동화를
쓰려는 사람들에게 어려운 과제를 안겨 주게 되었다. 동화는 덴마크의 열려진
가슴들을 찾았다. 누구나가 그것을 읽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들에게 들려 주는"
이라는 수식어를 지웠다. 그리고 모두 내가 창작한 세 권의 새로운 동화집을
내놓았다. 이들은 모두 내 조국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나는 더 이상의 것을 바랄
수가 없다.
  동시에 나는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그토록 명예로운 평가가 정당화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불안을, 아니 공포를 느꼈다. 가슴을 시원하게 해 주는 한 줄기 햇빛이
나를 뚫고 들어온다. 나는 용기와 기쁨을 느끼고 더욱 이 방향으로 나를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과 동화의 본질 속으로 뚫고 들어가서 내가 길어 퍼 올려야
할 동화의 원천과 본질을 더욱 깊이 주의해야 겠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예술과 인생이 내게 분명해지면 해질수록 더욱 많은 햇빛이 바깥으로부터
내 영혼으로 뚫고 들어오는 행복한 체험을 하였다. 어두웠던 젊은 시절에 비해
지극한 축복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내 마음을 뚫고 들어온 것은 확신과 안정이었다. 게다가 그 안정감은 가끔씩 하는
여행과 잘 조화를 이루었다. 나는 어디에 가나 집에 있는 것처럼 느꼈다. 사람들과
쉽게 사귀었고 그러면 그들은 신뢰와 다정함을 되돌려 주었다.
  나는 올덴부르크에서 동화를 여러 차례 독일어로 낭독했다. 물론 도처에서 덴마크
어로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덴마크 어로 읽어야 낭독이 가질 수 있는 조명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덴마크 어에는 번역이 재생시킬 수 없는 언어의 힘이 놓여 있다.
독일어로 읽으면 동화는 내게 좀 낯선 것이 되어 버린다. 낭독할 때 나의 영혼을
독일어 속에 옮겨 놓은 것은 어렵다. 또 나의 독일어 발음도 너무 부드럽다. 그래서
단어 하나하나를 발음할 때마다 그것을 목구멍 밖으로 내오기 위해 마치 달리기 할
때의 도움닫기를 해야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도 독일 어디에서나 나의 독일어 동화 낭독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동화
낭독에서 외국어 발음이 가장 많이 허용되었다고 믿고 싶다. 여기서 외국적이란
것은 거의 순진성이라는 말과 동의어일 정도로 크게 중요치 않다. 그것은 오히려
낭독에 자연적인 색채 효과를 부여해 주었다. 어디에서나 나는 탁월한 남자들과,
재치 있는 여성들이 관심을 가지고 따르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내게 읽어 달라고
간청하였고 나는 기꺼이 그렇게 하였다.
  이 시간까지의 내 인생의 동화가 내 앞에 펼쳐져 있다. 그토록 풍요롭고
아름답게.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이렇게 창작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내가
행운아라고 느낀다. 내가 만난 거의 모든 사람들이 내게 마음을 열고 다정하게 맞아
주었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실망으로 변하는 일은 드물었다. 영주에서부터 아주
가난한 농사꾼에 이르기까지 나는 고귀한 인간의 가슴이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산다는 것, 신과 인간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이다.
  내가 사랑하는 친구들 사이에 앉아서 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는 솔직하게 모두를
믿으면서 나 자신의 살아온 동화를 이야기하였다. 내 행복은 물론 근심도
털어놓았다. 마치 신 앞에 털어놓듯이 내가 누린 경의와 인정에 대한 기쁨을
토로하였다. 그것이 허영심일까? 그렇게는 생각되지 않는다. 내 감정은 격해
있으면서도 동시에 겸손하다. 나는 신에게 감사를 드린다.

      옮기고 나서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이 있다. 그 어린 시절의 가슴에 아로새겨진 이름들 중에는
반드시 '안데르센'이 포함되어 있다. 어머니가 흔들어 주던 요람에서부터 유년기,
소년^5,23^소녀기, 청년기를 거치면서 어떤 형태로 된 것이든, 안데르센의 동화를
접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성인이 된 어른들의 머릿속에도 '인어공주'
'성냥팔이 소녀' '야생 백조들' '빨간 신' '미운 오리새끼' 등의 동화는 아름답고 또
혹은 슬픈 모습으로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정작 우리는 안데르센의 문학 세계가 어떠한지, 그가 어떤 배경에서
동화를 쓰게 되었는지 또 그가 어떠한 환경에서 자라났는지는 잘 알지 못한다.
  여기 모아진 '안데르센 동화 전집(전7권)'은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화는 물론 그
동안 우리가 접할 수 없었던 그의 모든 동화가 수록되어 있어 안데르센 문학의
참모습을 보여 준다. 또 전집 1권에 실린 자전적인 이야기 '내 인생의 동화, 문학은
없었다'는 작가 안데르센에 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 준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은, 1805년 4월 덴마크의 오덴세에서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독서를 많이 하고 사색적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어린 안데르센의 정서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또한 북구의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유년 시절의 정서는 안데르센 문학 세계의 뿌리를 받치고 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열네 살 소년의 몸으로 단신 상경한 안데르센은 모진 가난과 역경
속에서도 오직 선량한 마음씨, 그리고 신과 인간에 대한 믿음 하나로 주위의 도움을
얻어 대학생이 되었고 문학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않아 결국은 세계 동화 문학에
우뚝 솟은 사람이 되었다.
  안데르센은 처음 희곡과 시에서부터 그의 문학 세계를 출발시켰다. 그러나
동화라는 장르에 들어섬으로써 자신만의 독자적인 문학 세계를 이룰 수 있었다.
동화는 안데르센의 인생에 안정과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었을 뿐 아니라 온 세계
아이들에게 또 어른들에게 동화라는 아름다운 세계를 열어 주었다.
  안데르센의 동화는 창작 예술 동화이다. 그는 애초 어린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염두에 두고 동화를 만들었다. 전승되어 온 민담이나 설화 등을 바탕으로 한 것도
있으나, 그 어느 것이든 안데르센 자신의 독창적인 상상력이 들어가지 않은 동화는
없다. 바로 이 점이 전래 동화들만을 모아 놓은 독일 그림 형제의 동화집과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는 점이 아닐까싶다.
  정령이나 동물들의 세계에 대한 의인화가 민간 전승 동화에 비해 비교적 적은 점,
지하세계나 저승 세계가 등장하더라도 그것이 고대 설화와는 다른 감각으로
그려지고 있는 점, 또 어떤 동화에서든 내용이 반드시 권선 징악으로 귀결되지는
않는 점 등은 안데르센의 동화가 창작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승 동화가
민속적인 장르인데 비해 안데르센의 창작동화는 문학이요, 예술 장르에 속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의 동화가 어린이들에게서는 물론 어른들에게서 반응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이 동화들이 바로 그의 창작품이며 그 속에 우리 인간의 문제,
세상살이의 모습이 진솔하게 동화의 색채를 빌어 그대로 반영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안데르센의 동화는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누구나 읽어도 좋다. 어린이에게는
무한한 상상력을 길러 주고, 어른에게는 때묻지 않은 인간 본연의 순수함을 일깨워
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정서를 남겨 준 안데르센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1994년 12월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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