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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이네 여름동화ㅡ황광지
2022년 05월 26일 14시 50분  조회:571  추천:0  작성자: 강려
유정이네 여름동화황광지


우리집을 보러 부동산 아줌마와 엄마아빠를 따라온 여자 아이는 작은 핸드백을 들고 있었다. 어린이용품이었지만 조신한 숙녀처럼 찬찬한 몸짓에 핸드백이 제법 어울렸다. 나는 어른들에게 내가 사는 아파트를 성심껏 알려줘야 했으므로 부지런히 세 사람을 따라다니느라 말없는 그 아이를 뒷전으로 돌렸다. 집을 다 둘러본 어른들을 따라 현관문을 나갈 때까지 아이는 한 마디도, 사부작거리는 동작 한 번도 없었다.
 
그날 당장 매매계약을 하겠다는 통지가 있어 부동산중개소로 갔더니 핸드백을 앞에 둔 아이도 함께 있었다. 아이가 아홉 살쯤 되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꽤 절차가 길었음에도 아이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묵묵히 기다렸다. 부부가 공동으로 계약한다는 말에 나는 단번에 젊은 남자에게 호의가 갔다. ‘민’이란 이름의 아빠는 준수한 용모에 어진 말투가 사람을 편하게 했다. ‘빈’이란 이름의 엄마는 딸아이처럼 가냘픈 몸매였는데, 이미지가 지혜롭게 느껴지고 사랑스러웠다. 젊은 부부가 좀 더 큰집을 마련하고 새로운 설계를 하는 희망 같은 것이 그들에게서 솔솔 뿜어졌다.
 
며칠 뒤에 이 가족들이 세상이치에 밝은 아이의 외할아버지를 앞세우고 아침시간에 다시 한 번 집을 보러 왔을 때도 아이는 핸드백을 들고 사뿐사뿐 집에 들어섰다. 외할아버지가 복층아파트를 오르내리며 구석구석 요모조모 심사하는 동안 엄마는 똘똘하게 의견을 말하는 것 같았고, 아빠는 내게 미안한 눈빛을 두어 번 보내며 조용했다. 나는, 입을 꼭 닫고 있는 아이를 보면서 몸은 엄마를 닮았고 성품은 아빠를 닮았나보다는 생각을 얼핏 했다. 그러면서 과연 집을 잘 판 것인가에 골똘했다. 값 안 나가는 복층이라는 부동산 소장의 중개에 손들고, 너무 헐값에 판 것 같아 이들 측에서 계약을 파기하자면 얼씨구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말끔히 가신 기회가 왔다. 얼마 뒤, 내가 아름다운가게에서 판매천사로 일일봉사를 하고 있을 때, 뜻밖에도 이 부부가 나타났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고 반가워서 손을 마주 잡았다. 딸아이 옷 중에 작아서 못 입는 것을 기증하러 왔다며, 평소에도 아름다운가게에 자주 들린다고 했다. 진실이 담겨있는 부부의 태도가 가슴에 닿았다. 그렇다면 그들도 같은 지향점을 두고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무한한 신뢰가 갔다. 이 기증천사들이 우리집에 살게 된다는 것이 벅차서, 참 집을 잘 팔았다는 마음으로 굳어졌다.
 
나는 집을 줄여서 이사하는데 반해, 이 젊은 부부는 업그레이드 된 인생의 새로운 설계를 하는 터라 세심하게 일을 진행시키는 것 같았다. 인테리어 업자를 대동해서 견적을 낸다고 며칠 뒤 아침에 또 왔고, 일주일 후에는 분야별 시공업자들을 대동하고 치수를 잰다고 또 아침에 왔다.
 
그때마다 딸아이는 분홍색 핸드백을 꼭 들고 따라왔다. 업자들이 치수를 잰다고 제법 시간이 걸렸다. 나는 모임에 나갈 채비를 다 마치고 그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다, 소파에 입을 굳게 닫고 흐트러짐 없이 앉은 아이 곁에 처음으로 앉는 여유를 가졌다.
 
내가 관심을 보이자 아이는 핸드백을 열고 그 속에 있는 손지갑을 꺼냈다. 어린이용이지만 어른 것처럼 구색이 갖추어져 있었다. 신분증 같은 것도 있고, 신용카드를 흉내 낸 것도 있었다. ‘유정’이라는 이름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유정이가 물건들을 보여주며 조용조용 설명도 덧붙였다. 내가 아이에게 그 동안 너무 무심했던 것이 죄스러워 호들갑을 더해서 이것저것 물었고, 유정이가 환한 얼굴로 자기 귀중품들을 꺼내 보였다.
 
이 아이가 우리집에 살게 될 것을 상상하니 마음이 아주 환해졌다. 복층 아파트를 젊은이들 취향에 맞게 잘 꾸며서, 유정이는 동화 속의 공주처럼 사뿐사뿐 여기저기 다니면서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다. 유정이가 이층 계단을 내려오며 엄마아빠에게 아침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그려보았다.
 
바다가 보이는 이 집에 애착을 가지면서도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혼자 살기에 버거운 크기라며 방치하다시피 하고 살았는데, 딱 맞춤인 새 주인을 만나 집이 빛나게 될 것이다. 아이 엄마는 이층 한 방을 과외교실로 꾸며 아이들을 가르칠 것이라니, 이 집이 더 이상 적막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팽개쳐 놓았던 넓은 베란다에서 유정이를 닮은 꽃들이 피어나서 예쁜 정원을 이루는 상상도 했다.
 
이 가족에게 완전히 내 마음이 열렸다. 어떤 요구라고 큰 무리가 없으면 들어주고 싶었다. 부부가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고, 리모델링 때문이라며 일주일을 당긴 이삿날에서 일주일을 더 당겨달라고 찾아왔을 때도 쉽게 응했다. 잔금을 받는 날도 금액을 채우지 못한 사정을 듣고, 며칠 후에 받기로 하고 흔쾌히 이삿짐을 내렸다. 내가 이사 들어갈 집을 기다리며 이삿짐센터에 짐을 맡기고 호텔에서 묵을 때도 유정이네가 집을 예쁘게 잘 손봐서 행복하게 엮어진 동화처럼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이사철도 아닌 여름의 한복판에서도 나는 내게 맞는 아담한 새 보금자리를 꾸미느라 더위를 탓할 겨를이 없었다. 유정이네도 무미건조한 헌집을 반짝이는 새집으로 만들어 세 식구의 새로운 인연을 엮느라고 아름다운 여름을 보내고 있으리라. 유정이는 핸드백을 어디에 올려놓았을까?
-가향문학회17인 사화집 [작업]
 
|작법공부|
 
인류문화는 끊임없는 발전의 역사다. 발전의 원리와 원동력은 변화에 있다. 그 중심 자리에서 새로운 인류문화의 산파역을 하고 있는 것이 문학이다. 문학은 원시 종합무용예술로부터 오늘날의 다양한 장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변신과 진화를 계속하여왔다. 몽테뉴의 에세이 문학도 예외일 수 없다. 오늘날 지구촌의 에세이는 더 이상 몽테뉴 본래의 에세이가 아니다. 영문 웹사이트에서 ‘creative essay’라는 단어를 검색해 보면 <창작적인 에세이>에 관한 자료들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창작적(creative essay)인 에세이에 관한 개념을 전혀 언급조차 하고 있지 않는 일단의 사람들이 있다. 바로 대한민국의 수필계라는 곳이다. ‘창작적인 수필’은 대한민국 문학학자들 모두도 말하고 있다.(백철 · 조연현) 그러나 오직 대한민국 수필계라는 곳의 수필이론은 이에 관하여 암흑천지다.
 
그렇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일선 수필가들 모두가 그 같은 암흑천지에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이기는 하지만 최남선으로부터 이양하, 한흑구, 윤오영, 피천득을 거쳐서 적지 않은 현역작가들에 이르기 까지 신변잡기 일색인 수필문단 한 모퉁이에서 끊임없는 문학적 변신과 진화를 계속하여 오고 있음을 저들의 작품이 스스로 증언해 주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수필문학은 수필계에서 말하는 문학적 국적불명의 수필이론(필자주 : ‘붓 가는 대로’를 방치하고 있는 수필계에서 말하는 수필이론이라는 것은 고전문학 이론도 아니고 현대문학 이론도 아니다.)을 말하고 있는 수필문학 잡지들과 수필문학 교실을 중심으로한 선생님들 밑에서 공부(?)하여 등단하고 있는 수필가들의 ‘기존의 수필’과 창작문예수필 작가들의 작품이 혼재된 상태에서 발표되고 있다. 필자는 그 가운데서 기존의 수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수가 적은 <창작 · 창작적>인 수필 작품들을 찾아내서 이를 증거물로 <수필의 현대문학 창작이론화 운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창작문예수필은 기존의 수필이 아니다.’ 라는 점을 강조한다. 창작문예수필은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새로운 양식의 창작문학이다. 그렇다면 그 실제 작품과 작법(이론)은 어떤 것인가? 필자는 현재까지 약 4백편에 가까운 창작문예수필 작품들을 발굴하여 창작비평과 함께 발표한바 있다. 여기 또 한 편의 작품을 소개한다.
 
황광지의 「유정이네 동화」는 기존의 수필 시각으로는 어떻게도 비평 할 길이 없는 작품이다. 기존의 수필에는 이 같은 작품을 비평 할 창작론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기존의 수필계에서 행하고 있는 수필비평 자체가 창작론적 근거가 없는 비평들이다. 이를 가리켜 좋은 말로는 인상비평이라고 하지만, 인상비평 그 자체가 현대문학 이론의 한 가지다. 그러나 기존의 수필은 현대문학 이론에 근거한 문학이 아니다. 홍매의 ‘붓 가는 대로’에 의한 글쓰기는 문학이론적으로는 잡문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은 문학이 아니다. 그러므로 기존의 수필 비평은 세간의 조롱대로 ‘주례사 비평’이라는 말을 공론처럼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기존의 수필을 가리켜서 ‘수필도 문학이냐’고 하는 비난은 바로 이 같은 이론부재의 글쓰기를 지적하여 하는 말이었던 것이다.
 
현대문학 이론에 의하면 이 작품은 동화 작품이 아니라 정교하게 구성된 아름다움 창작문예수필 작품이다.
이 작품의 소재는 살던 아파트를 팔게 된 집 매매 이야기이다. 기존의 수필쓰기라면 당연히 왜 집을 팔게 되었으며, 그 집에서 살아온 사연은 어떻고, 집을 판 후에는 어디로 가서 어떻게 살 계획인지, 등등 신변잡사적인 사연들을 늘어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작가는 그 모든 사연들을 ‘집을 보러 온 부모를 따라 온 여자 아이와 그 여자 아이가 들고 있는 작은 핸드백’에 묶어서 동화 같은 이야기로 엮어서 보여주고 있다.
 
서두 문장에서 작가는 ‘핸드백을 들고 있는 여자 아이’에게 주목하도록 독자들의 시선을 유도한다. 그러나 정작 작품 속의 화자는 아이에게 관심을 두지 못하는 상황을 설정해서 독자의 ‘아이에게’ 향한 시선 유도를 외면하는 갈등 구조를 만들어내고 있다.
 
작가는 ‘핸드백을 든 여자 아이’를 독자들 눈앞에 계속, 반복 등장 시킨다. 그러나 준수한 용모의 아이 아빠, 그리고 가냘픈 몸매의 아이 엄마, 그리고 외할아버지까지 등장하여 매매가 성사되어 이사준비를 하게 되기까지 작중 화자의 관심은 여전히 아이에게 머물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사 준비가 진행될 때까지 작가는 반복적으로 독자들 눈앞에 ‘핸드백을 들고 있는 아이’를 등장시킨다.
 
이쯤 되면 독자들은 이 작품이 기존의 천편일률적인 ‘작가가 경험한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쓰는 그런 작법의 수필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수필에 대한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다음과 같다.
수필 : 일정한 형식을 따르지 않고 느낌이나 체험을 생각나는 대로 쓴 산문형식의 글(에센스 국어사전)
 
즉 기존의 수필은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작가는 지금 그런 ‘생각나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닌 <의도적인 작법>의 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창작이란 의도적인 작법의 작품 만들기를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글을 쓰는 것이고 작품은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이 문예창작 이론으로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창작하는 행위에 ‘생각나는 대로 ’란 있을 수 없다. 기존의 수필이 이 같은 국어사전의 낱말 뜻풀이를 방치하고 있는 한 그것은 문학이 아니다. 이런 형편에 기존의 수필을 놓고 ‘수필창작’ 혹은 ‘창작수필’ 운운하는 것은 대한민국 문학의 수치일 뿐이다. 더구나 ‘붓 가는 대로’라는 개념 하에 쓴 글을 놓고 ‘노스롭 프라이’니 ‘가스통 바스라르’니 하는 유명 문학이론가의 이론을 적용하는 것은 넌센스다. 기존의 수필이 언제부터 현대문학 이론에 의한 문학이 되었기에 이들 현대문학 이론가들의 이론을 적용한단 말인가? 먼저 ‘붓 가는 대로’부터 부정하고 나서 ‘노스롭 프라이’도 말하고 ‘가스통 바스라르’도 거론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의 ‘핸드백을 들고 있는 여자 아이’에 대한 독자들의 의문과 흥미 고조법은 작중 화자의 관심 돌리기뿐만이 아니다. 작품 후반부에 들어서기까지 아이의 이름이 유정이라는 것마저 베일에 가려져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제목은 「유정이네 여름동화」인 것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아이의 이름이 유정이일 텐데, 왜 유정이 이름이 안 나올까, 혹 핸드백을 든 아이가 아닌 다른 아이가 등장하는 걸까, 그러면 여름동화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작품 후반부에 이르도록 팽배하게 된다.
 
여기까지 작가는 무슨 창작을 어떻게 하여 왔는가? 작가는 「유정이네 여름동화」라는 ‘동화 같은 상상력의 이야기’를 독자의 머리속에 만들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읽도록 독자들의 뇌리 속에 ‘핸드백을 들고 있는’ 의문의 ‘여자 아이’를 놓고 상상해 온 ‘여름동화’ 이야기가 곧 작가가 작품 후반부에 펼쳐 보여주고 있는 「유정이네 여름동화」 그 이야기였던 것이다. 이 같은 창조적 구성법이 기존의 수필과 창작문예수필의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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