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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격정과 랑만의 화신-림휘교수님
2019년 07월 14일 09시 34분  조회:1070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격정과 랑만의 화신-림휘교수님

김호웅

 

 

2018년 5월 1일 아침, 연변의 천산만야에 연분홍 진달래가 피고 있는데 천하 명기 황진이黄真伊가 노래했듯이 인걸도 물과 같아 가고 아니 오는 법이라, 연변대학 조문학부의 1기 졸업생이며 저명한 교수인 림휘林辉 선생께서 88세를 일기로 천수를 다 누리고 승천하셨습니다. 

선생네 가문의 원적은 함경북도 명천군, 선생은 1930년 연길현 덕신구 안방촌德新区 安邦村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났습니다. 선생은 덕신소학교, 룡정중학교를 거쳐 1949년 4월 연변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선생은 정판룡, 권철, 최윤갑 등 동창생들과 함께 불철주야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1952년 12월부터 1956년 2월까지 3년 반 동안 동북사범대학 연구부에서 쏘련문학을 전공했고 1956년 2월부터 1991년 정년을 할 때까지 연변대학 조문학부에서 주로 로씨야문학과 쏘베트문학을 강의하셨습니다. 선생은 연변대학 조문학부 외국문학교연실 강좌장, 전국고등학교 동방문학연구회 리사, 길림성 외국문학연구회 부회장, 연변외국문학학회 부회장 등 직책을 맡고 자신의 열과 성을 다해 일했습니다. 하여 선생은 1984년 길림성 고등학교 우수교사로 표창을 받았습니다.       

선생은 이목구비가 수려한 미남인데 젊은 시절부터 팔방미인으로 불릴 만큼 다재다능했습니다. 학생연극단의 배우 겸 감독으로 뛰여난 연기와 리더십을 선보였고 학생시절에는 축구장을 주름잡는 미드필더로 맹활약을 하였으며 한때 연변대학 학생축구팀 코치를 맡기도 했습니다. 교수시절에는 연변대학 조문학부 축구팀 감독으로 ‘장기집권’을 하셨는데 선수 선발도 엄격하게 했지만 아무리 유명 선수라 해도 개인영웅주의를 부리면 가차없이 갈아치우곤 했습니다. 후보선수들은 선생의 지시에 따라 그라운드 밖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몸을 풀기도 했지만 정작 그라운드를 밟는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였습니다. 

애주가이신 선생은 권철선생 버금으로 두주불사斗酒不辞하는 호연지기浩然之气를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호음이불란豪饮而不乱이라고 호쾌하게 마시되 단 한번도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선생이 계시는 장소는 늘 흥성거렸고 선생이 없는 조문학부의 놀이판은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하기에 연변대학 조문학부의 창립자이며 소설가인 김창걸선생은 “림휘는 천재야!” 하고 치하를 했다가 정치운동 때 학생들에게 영웅사관英雄史觀을 고취했다고 반성까지 한 적 있습니다.

선생의 강의는 연변대학에 정평이 나있고 거의 예술에 가깝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학생들을 단번에 휘여잡는 정열적인 눈빛, 조리정연하면서도 격정으로 넘치는 강의, 때로는 로씨야나 쏘련의 가곡이나 아리아까지 부르는데 그 노래솜씨 또한 프로가수를 뺨 칠 지경이였습니다. 이 시각도 “아 고요한 돈의 물결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눈물로 넘치누나” 하고 노벨상 수상자 숄로호브의 문학에 대해 강의하던 모습이 눈에 삼삼, 귀에 쟁쟁합니다.   

선생의 제자사랑은 남다른 데 있었습니다. 선생은 정색을 하고 학생들에게 설교를 하거나 학문적인 문제만 미주알고주알 캐는 고리타분한 교수가 아니였습니다. 선생은 학생들의 친근한 벗이 되여주었습니다. 그 어려운 세월에도 학생들은 물론이요, 대학을 찾아오는 학부모들까지 따뜻하게 식사대접을 해주었습니다. 술 한잔 사주면서 허물없이 인생을 론하고 문학과 철학을 론하던 선생, 그래서 우리 제자들은 선생을 영영 잊을 수 없습니다.

선생은 사모님께서 오랜 병환으로 고생하는 바람에 강의와 연구에 많은 애로가 있었습니다. 황차 선생은 박봉으로 로모를 모시고 동생과 네 자녀를 키우고 공부시키면서 어렵게 지냈습니다. 하지만 외국문학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을 가지고 훌륭한 저서들을 펴내기도 했습니다. 선생은 정판룡, 허호일, 서일권 등 교수들과 함께 부지런히 붓을 날려 1980년에 조문판으로 《세계문학간사》를 펴낸 데 이어 1985년에 중문판으로 《동방문학간사》를 펴냈으며 허문섭교수와 손잡고 《조선고전문학선집》 전 20권을 펴내는 데도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특히 《동방문학간사》 는 국내 22개 소의 대학 교수들이 편찬한 국가통용교과서인데 선생께서 쏘련문학 부분을 맡아 집필하셨습니다. 이 저서는 유럽중심주의 문학사관을 뒤엎고 동방문학을 세계문학의 중심적 위치에 놓고 서술한 최초의 시도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선생은 언제 어디서나 명리와는 담을 쌓고 달갑게 ‘제2바이올리니스트’로 일하셨습니다. 사실 선생은 정판룡선생보다는 두어살 선배이지만 평생 그 분을 도와 성심성의로 일했습니다. 이처럼 정판룡, 림휘, 허호일, 서일권 네분 교수가 일심동체가 되여 수십년을 하루와 같이 노력했기에 외국문학교연실은 국내 일류의 교연실로 평가를 받았고 국내 외국문학연구를 리드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선생은 평생 강좌장 이상의 벼슬은 한 적 없지만 언제나 학자의 량심과 혜안을 가지고 학과건설에 나서는 문제들을 정곡을 찔러 지적했고 자라나는 제자들을 이끌어주고 밀어주셨습니다. 축구감독의 혜안은 신진교사 양성에도 그대로 나타났는데 김관웅, 최웅권, 우상렬 등 박사도 선생께서 알심 들여 선발하고 키워준 덕분에 일가一家를 이루게 되였습니다.

여러분, 

로년에 사모님을 잃고 중풍으로 고생하던 선생께서 이제는 만단시름을 털고 하늘나라에 가셨습니다. 그러나 선생께서 남긴 고매한 인격, 불같은 격정과 랑만, 그리고 선생의 빛나는 업적과 아름다운 일화는 우리 모두의 귀감으로 될 것이며 우리 학원 내지 우리 대학 발전의 소중한 자산으로 될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우물을 마실 때 우물을 판 사람을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선생과 같은 원로 교수님들의 헌신적인 봉사와 가르침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 학원은 국가중점학과를 거쳐 글로벌 일류학과 프로젝트에 선정되는 쾌거를 일구어낼 수 있었습니다. 저희들은 선생께서 물려준 계주봉을 이어받아 우리 민족의 말과 글을 비롯한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반석 우에 올려놓기 위해 대를 이어 노력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황진이의 시조로 우리 모두의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고 선생의 명복을 빌고저 합니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니 옛 물이 있을소냐.

인걸도 물과 같아야 가고 아니 오노매라.

 

평생의 지기들인 정판룡, 허호일, 서일권 등 선생들을 앞세우고 선생께서도 하늘나라에 가시게 되였으니 오랜만에 서로 얼싸안고 술 한잔 나누면서 그간의 회포를 푸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저 하늘의 별이 되여 우리 제자들이 가는 길을 비추어주시옵소서!  

출처:<장백산>2018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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