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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화와 다원공생시대의 문화전략
2011년 04월 28일 13시 57분  조회:1730  추천:24  작성자: 김호웅

글로벌화와 다원공생시대의 문화전략

 ― 중국조선족사회의 생존과 발전을 중심으로

김호웅

                                           

 


   “세상은 아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한국의 미학이론가 유흥준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는 게 이전과 다르니라.”고 했다.

   오늘은 21세기 글로벌화라는 세계사적 변화에 대응해 탈식민주의문화이론과「갑신문화성명」, 변연문화와 접목의 원리에 입각해 민족문화를 고수하고 발전, 확장시킬 문제를 논의하고자 한다. 겸해서 민족문화의 발전을 위한 대안을 생각해보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으로 된 오늘 어느 한 지역이나 민족의 생존방식은 세계화의 물결과 세계사적 패러다임(paradigm, 사상이나 이론의 틀)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1. 글로벌화와 인류가 직면한 양대(兩大) 문제

 


    글로벌화(世界化, 全球化, global)라는 개념은 1992년 미국 피츠보(匹玆保)대학교 사회학교수 로버슨(羅伯森)이 그의 저서 『글로벌화』에서 처음 내놓았다. 세계화는 한 지역의 생활과 그와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벌어진 사건과의 의뢰성 또는 상호 역동성(互動性)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일례로 중국의 한 사무원의 개인 생활을 보면 그의 손목시계는 스위스 제품이고 텔레비전은 일본 마쯔시다 제품이며, 휴대폰은 삼성 제품이고 자가용은 독일 벤츠일 수 있다. 이처럼 한 개인의 생활도 세계화되고 있다. 특히 통신기술은 지역적 한계를 극복해 지구촌을 순식간에 연계시킨다. 세계화는 3개의 마당(競技場)이 있는데 그것은 경제적, 정제(政體)적, 문화적 마당이다. 1)

    하지만 글로벌화는 장구한 근대적 과정과 연계되며 오랜 역사발전의 소산이다. 

17세기 중반 이후 영국의 산업혁명, 18세기 미국의 독립전쟁과 프랑스의 시민혁명 후, 세계는 거대한 변화를 경험했으며 인류의 삶의 여건은 많이 개선되었다. 특히 지난 100년 간 과학기술에 의해 전대미문의 기적을 창조했으니 핵기술(核技術), 우주항공(航天航空)기술, 컴퓨터인터넷(情報网絡)기술, 유전자(基因)기술의 발전만을 보아도 이는 너무나 명백하다.2)

   특히 컴퓨터인터넷기술은 세계를 그야말로 하나의 지구촌으로 되게 하였으며 60억 인류가 하나의 거대한 호텔에 입주한 형국으로 만들었다. 상술한 기술력에 의해 지구촌은 무한경쟁의 시대에 들어섰고 19세기 이후 인위적인 국경이 가지는 의미가 약화되었으며 그 대신 우수한 민족은 국경밖에 “문화영토”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구미 중심의 근대화는 인류에게 전례 없는 복음을 가져다줌과 아울러 그 병폐도 충분히 드러냈다.

    첫째로 구미 중심의 근대사회의 생성과 발전은 봉건적 신분관계를 해체하고 자유, 평등, 박애에 의한 인간의 해방을 가져온 반면, 약소(弱小) 국가와 민족에 대한 약탈과 지배를 감행했으며 후자에 대한 인종적 멸시와 국권 유린을 거리낌 없이 자행했다. 샤무엘 헌팅턴이 그의『문명의 충돌』에서 말한 바와 같이 서구 중심의 근대화로 말미암아 오늘날 이념과 체재의 대립은 문명권 사이의 충돌로 비화되고 있다.

   둘째로 인간과 자연의 이원론적 관점과 인간중심주의를 주장하는 서양의 근세철학에 기초한 구미 중심의 산업화는 인류역사상 전대미문의 물질적 부와 복지를 창조한 반면에 자연을 무차별하게 개발, 이용하고 환경을 오염시킴으로써 자연자원의 고갈과 지구의 황폐화를 초래했다.

   구미 중심의 근대화는 결국 21세기의 양대 문제를 파생한다. 하나는 문명(또는 문화)의 문제요, 다른 하나는 생태환경의 문제이다. 2001년 미국 뉴욕의 “9.11”참사와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 핵발전소의 폭발은 구미 중심의 근대에 대한 회의와 반성을 촉구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하여 1992년 세계 여러 나라 정상들이 모여 생태파괴와 환경오염을 극복하기 위하 리우선언3)을 채택하기도 했다.

  

   2. 글로벌화와 다원공생의 시대에 있어서 중국 지성인들의 대응

 


    오늘날 세계는 근대화, 글로벌화(世界化)가 진행되는 가운데 서양 대 동방, 강대 민족 대 약소민족 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두 가지 문제가 파생한다.

    첫째는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밝힌 바와 같이 동방의 여러 나라들이 구미의 정신적 지배에서 벗어나는 문제이다. 구미의 동양연구 내지 동양학이라는 것은 동방에 대한 유럽의 문화적 지배양식으로서 거기서는 서양이 “문명=지배자"로 설정되고 동양은 후진적, 기교(奇矯, 언행이 기괴하고 익살스러움)적 이미지로 다루어진다. 말하자면 구미와 동방의 이원대립을 조장하고 허구에 의해 동방의 “신화”를 창조함으로써 무력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문화적인 지배를 꾀하고 있다. 이리하여 약소민족은 점차 주변으로 밀려나 낙후와 답보를 면할 수 없게 된다.

   둘째로 국민국가의 쇠퇴가 예상되면서도 국민=민족적 동일성으로 환원할 수 없는 소수파(minority)가 생긴다. 말하자면 세계가 하나의 시장경제에 급속도로 편입되어 가면 갈수록 한편에서는 각종 하위집단(이를테면 국가와 국가 사이에 끼인 약소민족들)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는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거기서 때로는 마이너리티 내셔널리즘 (minority nationalism, 소수의 어떤 민족이 다른 민족이나 국가 등의 침략으로부터 벗어나 그 민족의 일체성을 확보하고 발전시키려는 사상이나 운동, 민족주의 또는 민족자결주의)이라는 말이 발생하게 되어 자타 모두 “내셔널리즘”이라고 인정하는 집단적 정치행위가 활발해지고 있다. 최근 베네수엘라 등 남미 여러 국가에서 좌파세력이 정권을 잡고 미국의 독주(獨奏)와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거세찬 움직임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민족정체성의 갈등을 증언하고 문화제국주의의 지배에 정면으로 도전한 첫 사람은 프란츠 파농(1925-1961)이다. 파농은 북아프리카 알제리인의 후예로서 중부 아메리카의 마르티니크섬에서 출생했다. 그의 전기 『나는 내가 아니다』를 보면, 그는 “식민지의 조국” 프랑스가 독일 파쇼에 의해 강점당하자 비분을 이기지 못해 친구들과 함께 의용군을 무어 대서양을 건너 프랑스에 들어가 참전한다. 그는 유명한 노르망디 상륙작전에도 참가하고 베를린을 함락하는 전투에도 참가해 혁혁한 공훈을 세우고 무공훈장을 타지만 해방된 프랑스의 수도 파리의 승전 축하 파티에서 오히려 프랑스 여인들의 질시와 외면을 당한다. 프랑스 여인들은 포로가 된 무솔리니의 이탈리아 병정들과는 춤을 추지 못해 발광을 하지만 아무리 자기들을 해방시켜 준 사람이라 해도 “깜둥이”들과는 춤을 출수 없었던 것이다. 여기서 파농은 “나는 과연 누구인가?” 하고 자문하게 되며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

  후에 파농은 정신의학을 전공하고 조상의 땅―알제리에 가서 의학자로, 혁명가로 활동하는데 거기서 더욱 큰 충격을 받는다. 낮에는 전야에서 검은 피부를 드러내고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일하고 장난질을 하던 알제리인들이 일단 주말이 되어 교회에 갈 때는 부끄러워 전전긍긍한다. 그네들은 백인 신부와 목사에게 검은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고 저마다 마스크를 끼고 나타난다. 무력에 의한 식민지배는 끝나가고 있지만 정신적인, 문화적인 지배는 계속되고 있음을 절감한 것이다. 이리하여 프란츠 파농은『검은 피부, 흰 가면』(1954)이라는 명저를 내놓는다.

   프란츠 파농이 경험했던 갈등과 비애는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로버트 김의 사건에서도 드러나고 제일조선인문학의 기반을 다진 김사량의 단편 「빛속에서」, 재미동포 작가 이창래의 『본토박이』에서도 볼 수 있으며 중국조선족작가가 김재국의 『한국은 없다』와 허련순의『누가 나비의 집을 보았을가』에서도 볼 수 있다. 정체성의 갈등은 이방에서 살고 있는 모든 해외동포들의 보편적인 정신적 고뇌이다. 

   그럼 정체성이란 무엇인가? 정체성(identity)은 복수(複數)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어야 하는 주체의 귀속과 관련되는 문제이다. 정체성의 분열은 커다란 심리적 고통을 동반하며 집단적인 폭력이나 성격의 파멸을 불러올 수도 있다. 미국 사회에서의 흑인들의 난동이나 재일조선인 젊은이들의 분신자살의 경우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정체성은 복잡한 개념이며 여러 가지 국면과 상황을 내포한다. 민족적, 국가적, 사회적, 가정적 정체성의 문제가 모두 야기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민족적 정체성은 가장 본질적이며 21세기 “문명의 충돌” 시대에서 약소민족이나 그 개체가 가장 심각히 고민하는 문제이다.

   프란츠 파농의 선구적인 업적에 토대하면서 에드워드 사이드, 호머 바바, 스피박 등에 의해 탈식민주의문화이론이 대두된다. 이들이 관심하는 초점은 약소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구미 중심의 식민주의체제의 권위를 뒤엎어버리는 문제였다. 사이드는 하위 주체의 담론은 구미사회에 통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아웃사이더, (局外者)”가 “인사이드, (테니스나 배구 등에서 공이 일정한 경계선 안으로 떨어지는 일)”로 될 때만이 하위주체의 의지와 염원을 구미사회에 관철시킬 수 있다고 했다. 호머 바바는 서구 중심의 권위를 깨뜨리는 대안으로 패러디의 방법을 내놓았고 스피박은 동방 여인들의 이중적인 피해 상황을 지적함과 아울러 “단절속의 반복”이라는 유명한 명제를 내놓기도 한다.

   탈식민주의문화이론과는 좀 다른 갈래이지만 “성찰적 근대론의 기수”들인 울리히 백, 앤서니 기든스, 스콧 래쉬 등은 구미 중심의 근대를 지양하고 이른바 근대를 더욱 “인간답고 아름다운 근대”로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외에도 E.V 스퉁키스의 디아스포라(경계인)의 논리나 니니안 스마트의 “세계 종교”와 “세계철학”을 창출할 데 관한의 논리 등이 있다.

   중국의 경우 여러 소수민족들이 자신의 문화를 보존하고 발전시킬 수 있는 논리가 최근 중국의 지성인사회에서 논의되고 있어 특별히 주목된다. 최근 중국의 북경에서는 “세계화와 중화문화”라는 테마를 걸고 《2004문화고위급논단》을 개최하였다. 이 회의에서는 세계문명의 다양성을 고수하기 위한 「갑신문화선언」을 채택하였는데 이 선언의 요지는 두 가지로 개괄할 수 있다.

   첫째, “그 어떤 국가나 민족이든지 모두 자기의 전통문화를 보존하는 권리와 의무를 갖고 있으며 외래문화를 자주적으로 선택, 수용하거나 또는 비완전(不完全)히 접수하거나 일부 영역에서는 완전히 접수하지 않을 수 있는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인류가 공동하게 관심하는 문화문제에 대하여 자기의 의견을 발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둘째, “중화문화에 고유한 인격, 윤리, 이타(利他), 화해를 중요시하는 동방품격과 평화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인문정신은 오늘날 세계의 개인지상주의, 물욕지상주의, 악성 경쟁, 약탈적인 개발 및 여러 가지 근심스러운 현상에 대하여, 인류의 안녕과 행복에 대하여 모두 중요한 사상적 계시를 줄 수 있다고 확신한다.”4)

   이는 순수한 문화적 상대주의 입장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시대는 다양한 문명의 공존과 공생의 시대이다. 화단(花壇)에 비유하자면, 오늘의 문화적 제국주의 입장은 인위적이고 독단적으로 선택된 하나의 꽃으로 화단을 통일시키려는 의도를 갖는다. 그리고 그 실현은 그 나머지 다른 화초들을 인위적으로 꽃밭으로부터 강제적으로 축출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다시 말해서 꽃들이 스스로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처음부터 박탈하는 것이다. 이에 반해 순수한 문화적 상대주의의 입장은 당분간 꽃밭의 통일 자체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화단이 결코 서열화 될 수 없는 각양각색의 꽃들로 구성되어야 하고 꽃들은 자신의 모습에 끝까지 충실함으로써 전체적인 조화를 이룩한다고 보고 있다. 문명의 다양성과 공존, 공생을 주장하는 상술한 중국 지성인사회의 변화는 조선족의 문화건설에 푸른 등을 켜주고 있다.

 


    3.  글로벌화와 다원공생시대의 문화전략

 


   조선족공동체의 민족적정체성에 대해서 처음으로 이론적 차원에서 언급한 분은 정판룡(1931-2001) 교수이다. 그는 조선족문화는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고 하면서 조선족은 중국이라는 대가족에 시집을 온 며느리와 같다고 하였다. 말하자면 조선족은 한반도에서 중국에 시집온 며느리이기에 친정집에서 익힌 문화도 갖고 있고 그와 동시에 시집에 와서 배운 문화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런즉 조선족은 위선 시집살이를 잘 해야 한다. 오로지 시집살이를 잘 해야 시부모나 남편의 신뢰를 얻어 친정집을 도울 수 있다. 만약 시집살이를 하면서도 늘 친정집 생각만 한다면 시집의 의심을 받고 “왕따”를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5)

    정판룡 교수의 “이중성격론”과 “며느리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융합론”을 내놓은 학자는 김강일 교수이다. 그는「변연문화의 문화적 기능과 중국조선족사회의 문화적 우세」6) 라는 논문에서 중국조선족문화는 “문화의 변연성(邊緣性)”을 갖고 있다는 관점을 내놓았다. 이는 문화인류학에서 구미의 학자들이 내놓은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 라는 개념과 합치된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흩어 뿌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바빌론 포로”7)를 계기로 고국 팔레스타인을 떠나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을 가리킨다. 이 말은 민족적인 이산(離散)을 뜻하는 말로 해석되어 20세기에 와서 여러 가지 이유로 말미암아 고국을 떠난 사람들의 경험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이용되었다. 즉 디아스포라는 근대의 여러 가지 힘, 이를테면 정치권력, 경제력이나 군사력, 전쟁, 혁명 등이 낳은 “경계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국민국가라는 틀에서 쫓겨난 존재로서 경계(혹은 변두리)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 또는 민족들의 공동체이다.

   중국의 조선족 역시 세계상의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는 디아스포라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는데 김관웅 교수는 이를 변연문화형태라고 표현했다.8) 그의 논리에 따르면 조선족은 과경(跨境) 민족, 또는 이민(移民) 민족으로서 혈통과 문화전통 면에서는 한반도와 깊은 관련을 갖고 있고 한민족(韓民族)과 동일한 민족이다. 하지만 그들은 한반도에서 중국으로 이주한 민족공동체로서 100여년 남짓한 세월 속에서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생활에 적극 참여하면서 점차 중국문화를 몸에 익히게 되고 점차 중국의 소수민족의 하나로 되었다. 즉 조선족공동체는 한반도문화와 중국문화의 사이에 있는 변연문화형태에 속한다고 했다. 그럼 변연문화는 어떤 특성을 갖고 있는가?

   첫째, 변연문화란 부동한 문화의 사이나 변두리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문화계통은 세계 각지에 산재해 있다. 이를테면 세계 각지에 산재해있는 유태인 공동체, 유럽의 스위스의 독일인공동체, 캐나다의 퀘벡의 프랑스후예공동체에는 이런 문화계통이 존재한다. 변연문화구역은 자기의 특수한 문화적인 특질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이러한 문화구역은 두 개 이상의 문화계통과의 쌍개방(雙開放) 성격에 있다. 

   둘째, 변연문화계통은 그 특수한 다중문화구조(多重文化構造)로 인해 새로운 문화 요소를 창출할 수 있기에 단일문화구조(單一文化構造)를 가진 문화계통에서는 갖출 수 없는 기능을 갖고 있다. 시스템론의 시각에서 보면 변연문화란 새로운 문화계통을 의미하며 그것은 일반적인 문화계통보다 더 강한 문화기능을 나타낼 수 있다.

   셋째, 변연문화의 성격은 인류 문화발전의 필연적인 추세이다. 미래의 세계는 문화계통간의 부단한 교류로 인해 복합적인 성격을 보다 강하게 나타내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 어느 문화계통이든지 모두 자기가 고유했던 전통적인 문화만을 고수할 수 없을 것이며 복합적인 문화계통으로 새로운 문화기능을 창출해야만 발전에 필수적인 문화적인 에너지를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그 어떤 변연문화계통이나를 막론하고 모두 그 존재의 합리성을 띠고 있다. 왜냐하면 문화란 부단히 변해 가는 생활환경에 대한 인간들의 필연적인 반응이고 적응방식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생활리듬의 가속화로 더욱 그러할 것이다.

   변연문화의 형태는 두 개 이상의 문화권을 연결할 수 있는 모든 문화계통을 내포하고 있다. 즉 그것들은 두 개 혹은 두 개 이상의 문화계통이 서로 맞닿은, 문화의 중심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변두리에서 형성될 수도 있고 문화의 중심지역에서도 형성될 수도 있으며 또 두 개 혹은 두 개 이상의 문화계통 간의 상호 문화교류과정에서 형성될 수도 있다. 예컨대 중국조선족사회는 전자에 속한다면 미국의 한인사회는 문화의 중심지역에 형성된 변연문화계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두 민족공동체는 모두 두 개 이상 문화계통간의 교차형태를 이루고 있기에 그것들은 모두 변연문화의 특징을 갖고 있다.

   변연문화계통의 가장 돌출한 문화적인 특징은 그것이 갖고 있는 강력한 문화전환기능에 있다. 우리는 오늘의 시대를 정보화시대, 지식산업시대라고 한다. 오늘날의 새로운 시대에 있어서 변연문화는 세계의 각종 문화를 전환하여 전달하는 정보망의 망점을 이루고 있으며 그것이 각국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제반 영역의 발전에 주는 영향은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변연문화계통은 모체문화보다도 더 많은 기능을 가지게 된다. 즉 원 문화계통속에는 없는 언어중개와 문화중개의 역할을 함은 물론이고 두 개 문화계통을 연결하는 문화전환계통까지 생겨나게 된다. 특히 변연문화구역은 지리적으로 두 개 이상의 문화권을 연결하는 위치에 처해 있으므로 정치, 경제, 문화 등 각 분야에서 상호 교류의 중요한 매개역할을 감당할 수 있으며 그러한 문화전환기능으로 빠른 시일 내에 보다 효과적으로 두 개 부동한 문화계통의 연계를 강화할 수 있다. 하기에 이러한 변연문화는 일반적인 문화계통에서는 구비할 수 없는 정치 경제, 문화적인 중요한 가치와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조선족문화의 경우, 그것이 변연성을 띠고 있다고 해서 그것은 모국문화와 중국문화의 1대 1의 기계적 조합이라고 생각해서는 아니 된다. 더욱이 중국의 주류문화에 기울어져 자기의 전통을 망각해서는 더욱 아니 된다. 이와는 반대로 자기의 민족문화전통을 굳건히 지킴과 동시에 중국문화를 지혜롭게 수용하는 자세를 취해야 한다. 쉽게 비유하자면 조선족문화는 한반도에서 갖고 온 모체문화라는 접본(接本 혹은 臺木)에 중국문화라는 접목(椄木)을 가접시켜 새롭게 생겨난 문화라고 할 수 있다.9)      

   나무를 놓고 보면 그 생명의 바탕은 예외 없이 그 나무의 뿌리이다. 세계 제일의 품질을 자랑하는 한국 사과인 후지도 그 뿌리는 야생종인 매조의 일종이다. 그런데 매조의 열매는 크기가 도토리보다도 작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세계 각국에서 여왕의 자리를 차지했던 피스(평화)라는 유명한 장미꽃은 그 예술적인 색깔과 모양으로 세계인들을 매료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열렸던 제1차 UN총회에 모인 각국 대표들은 모두 이 피스 장미꽃을 가슴에 꽂았다. 그런데 이 장미의 접본은 찔레뿌리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연변의 사과배는 중국의 조선족이라는 이 변연문화의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사과배 역시 가접과수(嫁接果樹)이다. 말하자면 연변의 사과배는 북조선 함경남도 북청(北靑)의 배나무 가지를 연변의 산야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야생 돌배나무에 가접(嫁接)시켜 개발한 새로운 과수품종이다.

   잡종강세(雜種强勢)는 사과배에서도 볼 수 있다. 가접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배 품종 - 사과배는 연변의 야생 돌배보다 훨씬 크고 달며 심지어 북청의 배보다 도 더 크고 달뿐만 아니라 배 껍질이 두꺼워 오래 동안 저장할 수 있다. 중국 산동성 라이양(萊陽)의 배나 한국 전라남도 나주(羅州)의 배가 유명하다고 하나 연변 사과배의 맛에는 미치지 못한다.

   한국의 후지사과, 미국의 피스장미, 연변의 사과배의 경우 그 생명의 바탕이 되는 뿌리인 접본은 예외 없이 야생종이다. 이는 우리에게 커다란 계시를 준다. 그것은 나무의 생명의 바탕은 예외 없이 그 나무의 뿌리인 까닭이다. 한 식물의 종(種)이 아무리 인간에 의해 변이(變異)를 많이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그 원형은 자연 상태의 야생으로부터 진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생물의 세계에서만이 아니라 인간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식물의 경우 줄기나 잎보다 뿌리가 중요하듯이 문화의 경우도 줄기나 잎보다도 뿌리가 중요하다.

   그러면 한 민족의 정신문화의 핵과 뿌리는 어디에 있는가? 관념문화에 있고 그 관념문화를 담고 나르는 문자부호와 철학, 역사, 문학, 예술 같은 데 있다. 민족이나 나라가 아닌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첨단과학의 권위자라고 해도, 또 아무리 대단한 작가나 예술가라고 해도 그가 영원한 인간이 되려면 그 정신의 접본은 제 민족의 정신문화와 그 역사에서 찾아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약소민족은 다양한 문화와의 접촉과 융합을 지향하되 오직 접본을 중요시하는 접목의 원리를 지킬 때만이 민족적 정체성을 지킬 수 있고 주변문화의 자양분을 흡수해 보다 강대한 민족으로 거듭날 수 있다. 중국의 조선족은 100년간 이 접본의 원리를 고수함으로써 겨레의 얼을 지키고 중국땅의 문화민족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4. 글로벌화와 다원공생시대 조선족문화의 현황과 전망

 


   세계사적인 글로벌화를 배경으로 1978년 중국에서 개혁과 개방을 실시하자 조선족의 제3차 이민이 시작되었다. 현재 조선족 인구의 4분의 1이 되는 50만 인구가 원래의 거주지를 떠나 한국, 일본, 러시아를 비롯한 세계의 여러 나라와 지역, 그리고 할빈, 목단강, 장춘, 길림, 연길, 심양, 대련 등 동북의 주요 도시와 산해관 이남의 북경, 청도, 상해, 광주 등 대도시와 연해지역에 진출했다.

   외국에 나간 경우를 보면 현재 한국에 12만 명, 일본에 2만 명, 미국 뉴욕 및 뉴저지 일대에만 1만 여명이 살고 있는데, 뉴욕 및 뉴저지의 경우 그들은 조선족협회까지 출범시켰다.10) 연변의 경우만 보아도 연인수로 30만 명이 외국에 나가 일했거나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11)

   중국 경내 조선족의 유동상황만을 보기로 하자.

   지난날 조선족은 주로 동북3성과 내몽골에 살았지만 지금은 송화강기슭으로부터 주강(珠江) 삼각주까지, 동부의 해변도시로부터 서부의 파미르고원까지 널리 퍼져있다. 연변의 경우만 보더라도 2001년 현재 농촌지역의 25% 인구가 도시에 들어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 현재 청도, 연대, 위해를 중심으로 하는 산동반도에만 12만 명의 조선족들이 살고 있다.

   여기서 조선족의 3차의 이민을 서로 비교해 보자.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의 이민을 제1차이민이라고 하고 1945년 이후 해방 공간의 이민을 제2차 이민이라 하며 1978년 이후의 이민을 제3차 이민이라고 한다.

   1) 제1차 이민은 남에서 북으로, 조선반도에서 중국의 동북지역으로의 이민이며 고국에서 외국으로의 이민이다. 제1차 이민은 일제의 침탈에 의한 타의적인 이민의 성격이 다분하다면, 제2차와 제3차는 생존권 또는 부의 축적을 위한 자의적인 성격이 강하다.

    2) 제1차 이민과 제2차 이민은 두만강, 압록강을 사이 둔 단선(單線)적인 이민이라고 한다면 제3차 이민은 다국적, 전방위(全方位)적인 이민이다.

    3) 제1차, 제2차 이민은 농경문화 내에서의 지역적인 이동이라고 한다면 제3차 이민은 농경문화에서 산업문화로의 이동을 의미한다.

    4) 제1차 이민은 중국 국민과의 융합을 의미하고 제2차 이민은 모국으로의 회귀를 의미하지만 제3차 이민은 다국 국민, 적어도 조선족, 중국인, 한국인과의 융합을 의미한다.

    5) 제1차, 제2차 이민은 폐쇄적인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한 평면적인 이동이지만 제3차 이민은 고도로 발달한 항공, 통신을 배경으로 한 입체적인 이동이다. 

   당면한 조선족공동체의 지각변동을 어떻게 보아야 하며 그 전망은 어떠한가? 당면한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을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산업화와 도시화, 정보통신과 무한경쟁의 시대이니 만큼 조선족의 인구이동은 불가피하다. 이러한 이문물결의 대세를 방관하거나 비난할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국내외 이주지에(移住地)에 우리민족의 문화영토를 개척하고 가꾸어나가는 것이 요긴하다.

   한국 고려대학교 전임총장이며 저명한 문화학자인 홍일식박사는 일찍 1981년에 현존하는 지리적 국경의 공허성과 그것에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개념으로써 “문화영토”라는 개념을 내놓은 바 있다.12) 이 경우 한 나라의 국민이 다른 나라에 가서 영구히 살아가는 경우와 설사 영구히 거주하지는 않더라도 새로운 나라에 그들 문화를 꽃피우거나 그 문화상품들이 선호되는 경우를 말한다. 한국의 경우 전자는 세계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있는 코리안 타운이요, 후자의 경우는 한류 열풍과 같은 경우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국가와 국가 간에는 물론이요, 다민족 국가의 경우 지역과 지역의 사이에도 여전히 작용한다. 우리 조선족이 새로운 지역에 가서 자기의 문화적 뿌리를 내리고 주변의 민족과 더불어 잘 살면 바로 국경 밖, 전통적인 거주지역 밖의 자기 영토로 되는 법이다. 이 경우 민족의 총적 에너지는 쇠퇴, 유실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확산되고 그 총량이 커지는 법이다.

   황차 세계화, 정보화사회는 다 중심시대요, 컴퓨터인터넷을 통한 광범위한 네트워크를 조성할 수 있어 연변을 중심으로 보다 폭넓은 문화영토를 경영할 수 있다. 이라한 견지에서 우리는 향후 조선족문화의 발전상을 아래와 같이 예언할 수 있겠다.

    1) 많은 조선족인구의 이동에도 불구하고 동북의 여러 도시와 농촌지역에 조선족공동체가 의연히 존재하며 동북지역의 조선족공동체를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경주되고 있다. 향후 20년, 길게 잡아야 30년 사이에 조선반도는 통일이 될 것이요, 그 때가 되면 연변은 다시 복 받은 땅으로 떠오를 것이다. 그런즉 동북지역의 조선족공동체를 살리는 작업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2) 흑룡강 해림시의 신합촌, 길림시 주변의 금풍촌, 심양의 주변의 만융촌, 화평촌의 경우와 같이 대도시 주변에 “집중촌”이 일떠서고 있다. 산업과 서비스업을 중심으로 교육, 문화, 복지를 아우르는 “집중촌”은 향후 조선족공동체의 새로운 모델이 될 것이다. 이를테면 해림시 신합촌은 이동춘 이사장의 인솔 하에 마을의 땅을 활용해 농촌집단기업을 만들었다. 즉 도시 근교에 자리를 잡은 마을의 지리적 여건을 십분 활용해 농경지를 아예 2, 3차 산업기지로 바꿔버린 것이다. 그리고 그곳을 다시 공업단지 · 아파트단지 · 문화오락단지 · 공원과 민속촌 단지로 나누어, 촌민들에게로 재분배한 것이다. 심양시 만융촌도 이와 비슷한 발전 모델을 지향하고 있다. 이밖에 현재 논의되고 있는 조선족 “집중촌” 모델로는 중국 최대의 코리안 타운으로 유명한 심양의 서탑거리와 같은 “도시 중심형” 조선족공동체, 길림시의 아라디촌처럼 도시 외곽에 있지만 도시 중심에 일부 “집중촌”들을 끼고 있는 “중심촌형” 조선족공동체, 그리고 한국의 “두레마을”이 연변 등지에 세운 대규모 생태농업단지 등이 있다. 이처럼 선진적인 영농법을 기반으로 고부가가치 농산품을 생산해야 조선족사회의 해체를 막고 한국에서 돌아온 조선족들을 품어 안을 수 있는 경제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3) 산해관 이남의 북경, 천지, 청도, 상해 등지에 새로운 코리안 타운이 들어서고 있다. 이 새로운 코리안 타운은 중국조선족과 한국인사회의 통합형태로 나타난다. 청도, 위해, 연대를 중심으로 하는 산동반도에만 하더라도 12만 명의 조선족과 함께 6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 북경의 조선족 인구는 1990년에는 7천 6백 명이었지만 2001년 현재 5만 명으로 늘어났으며 망경신성(望京新城)에는 6만 명의 한국인이 살고 있다.13) 아무튼 조선족과 한국인이 통합되어 하나의 새로운 민족사회를 이룰 전망이다. 청도에서 발간하는『연해소식』은 현지 조선족과 한국인들의 정신 ․문화적인 유대로 되고 있다.

   4) 상술한 3개 여건이 주어지면 산업과 무역, 교육과 언론을 아우르고 동북과 황해권(黃海圈)을 연결하는 민족공동체 문화네트워크,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동북아 우리민족 경제 네트워크가 이루어질 전망이다.

   21세기는 동북아의 시대다. 중국이 거대한 시장과 전 세계에 걸친 강력한 화교 네트워크를 발판으로 떠오르고 있듯이, 우리민족도 경제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만일 남북한,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 연해주 일대에 흩어져 있는 우리민족의 역량을 하나로 결집할 수 있다면, 우리도 화교나 유태인 부럽지 않은 번영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14)

   이러한 조선족공동체의 지각변동과 발전방향을 모색함에 있어서 가장 경계하고 심층적으로 대처해야 할 문제는 민족적 정체성의 상실이다. 민족적 정체성을 상실한 개인과 집단의 부(富)의 축적은 의미가 없다. 일찍 중원을 지배했던 만주족이 자기의 문화를 상실함으로써 소금이 물에 녹듯이 자취를 감춘 전철을 다시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조선족의 제3차 이민의 물결을 좌시(坐視)하지 말고 새로 일어난 우리민족의 공동체에 교육과 문화, 문학과 예술의 씨를 심는 작업을 서둘러야 하리라 생각한다. 바꾸어 말하면 산해관 이남으로의 인력 진출에 교육, 문화의 진출을 동보(同步)시켜야 할 것이다. 그 결과는 동북아 우리민족 경제문화 네트워크로 나타날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민족적 정체성을 고수하는 작업만 잘 한다면 제3차 이민물결에서 우리가 얻는 것은 민족공동체의 풍요와 확장이지, 잃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맺는 말

 


   200여 년간 지속된 서구 중심의 근대화는 인류의 복지를 획기적으로 개선했지만 문명의 충돌, 환경오염과 생태파괴라는 커다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오늘의 인류는 서구 중심의 근대를 성찰하고 보다 인간적인 근대를 지향해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민족문화의 평화적 공존과 선의적인 경쟁만이 보다 아름다운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 우리민족공동체도 이 새로운 세계문화사적 패러다임을 자각하고 그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때만이 자체의 존재와 발전을 기할 수 있다.

   앞으로 조선족사회는 우리 겨레의 얼을 지키고 우리 전통문화의 우수성을 새롭게 확인하면서 중국문화를 비롯한 타민족의 문화, 예컨대 선진적인 공중도덕과 기업문화, 법치관념과 합리주의적인 행위방식 등을 받아들여 자정력(自淨力)과 자생력(自生力)을 높여야 한다. 특히 교육, 언론, 출판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인들의 자질 향상을 비롯한 전반 조선족의 문화적 힘을 키워야 한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은 문화 고유의 운동법칙이다. 오직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살리고 그 경쟁력을 높일 때만이 우리 문화를 고수하고 그 문화영토를 넓힐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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