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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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단의 재녀 박옥남씨
2011년 04월 28일 14시 00분  조회:2087  추천:39  작성자: 김호웅

 - 인물평 -  
 
우리 문단의 재녀 박옥남씨

 


                                       김 호 웅

 


 요즘 시를 쓰고 수필을 쓰는 이들은 많지만 소설을 쓰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시를 무지개 같이 현란한 빛이라고 하고 수필을 그러한 빛이 어린 아담한 신방이라 한다면 소설은 적어도 고래등 같은 팔간집이다. 이 집에는 부엌도 있고 정주도 있고 안방에 사랑채도 있다. 더더구나 늙은 시부모도 있고 철없는 시동생들도 있으며그밖에 시도 때도 없이 드나드는 일가친척들도 있어 툭하면 갈등이 빚어지고 아옹다옹 다투기 마련인데 소설가는 이러한 인간들의 갈등에 바탕을 투고 허구를 가미해 이야기를 엮고 성격을 창조한다. 그런즉 인간과 사회를 입체적으로 다면적으로 그리는 소설 쓰기란 아무래도 시나 수필을 쓰기보다 어렵고 그만큼 소설가를 얻기가 쉬운 노릇이 아닌가보다.

  1980년대 초반 이원길씨가 <백성의 마음>과 <배움의 길>이라는 단편소설을 들고 나왔을 때 우리는 얼마나 놀랐던가. <연변문예> 소설편집이었던 한수동 선생은 이원길씨의 소설을 보고 너무나 반가와 “연변에 이기영이 나왔다, 이기영이!” 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걸며 즐거운 비명을 질렀었다. 과연 우리는 이원길씨의 구수한 언어와 재치 있는 이야기 솜씨를 만끽하며 여러 해를 즐겁게 살 수 있었다.

  내가 20여 년 전 한수동 선생과 같이 한 이름 없는 작가의 출현을 두고 화들짝 놀란 것은 2006년 봄이었다. 목단강시에 있었던 흑룡강조선민족출판사에 <2005 중국조선족문학 우수작품집> 심사 차 갔다가 우연히 박옥남씨의 단편소설 <둥지>를 읽게 되었는데 그의 예리한 주제의식과 감칠맛 나는 소설언어에 흠뻑 취하고 말았던 것이다. “둥지가 무너지면 알인들 어찌 성하랴”는 말도 있지만 풍전등화 같이 흔들리고 있는 우리 농촌사회를 “둥지”에 비유하면서 어수선하게 털린 둥지 형국이 된 우리 농촌의 피폐상을 어린 소년의 시각을 통해 고발한 박옥남씨의 소설은 그야말로 충격 그 자체였다. 나는 흥분을 감출 길 없어 <새농촌 건설의 기폭제가 될 만한 소설>이라는 짧은 서평을 달아 연변조선족문화발전추진회 사이트 등에 보내서 실었다.

  하긴 그 짧은 서평에서 박옥남씨를 <톰아저씨의 집>을 쓴 스토우 부인에 비겨서 논의했는데 풋내기 작가를 너무 추어올렸다는 뒷말을 들을까봐 좀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고맙게도 박옥남씨는 내 판단이 적중했음을 증명해 주었다. 그녀는 2005년 단편 <둥지>로 <도라지 장락주문학상>을 수상하고 2006년 <도라지>잡지에 단편 <목욕탕에 온 여자들>에 이어 <마이허>를 발표해 2007년 <제1회 김학철문학상>을 거머쥐더니 올해는 <연변문학>에 연속 <내 이름은 개똥녀>와 <장손>을 발표했다. 또 풍편에 <붉은 넥타이>라는 장편수기로 한국 재외동포재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도 했다. 2, 3년 사이에 알찬 단편 4-5편을 써내고 굵직굵직한 문학상들을 거머쥐었으니 그는 작가적 역량을 유감없이 과시했다고 하겠다.

  박옥남씨의 출현은 적어도 아래와 같은 몇 개 방면에서 우리 소설문학으로 놓고 말하면 하나의 축복으로 된다고 하겠다.

  첫째, 박옥남씨는 코리안 디아스포라로서의 자기의 본질과 특성을 자각하고 조선족과 한족, 중국과 한국이라는 두 갈래 문화의 합수목에서 문학의 살찐 고기들을 낚아 올리고 있다. 그는 어릴 적부터 왼손잡이로서 부모님의 눈총과 꾸지람을 많이 받았었다. 말하자면 천성적으로 소외의 쓴 맛을 보았는데 하필이면 조선족과 한족이 어울려 사는 잡거지역에서, 오도가도 못 하는 중국과 모국의 사이에서 민족적 정체성의 갈등을 뼈아프게 겪어야 하였다. 그의 단편 <둥지>, <마이허>, <장손>, <내 이름은 개똥녀> 등은 모두 그러한 민족적 정체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편 <장손>의 경우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조상이 일군 땅을 지키기는 고사하고 부모님의 초상마저 지키지 못하고 개처럼 죽어가는 “장손”, 주변의 민족에게 맥없이 동화, 침몰되어 가는 “장손”의 비극을 다룸으로써 소설의 사회비판성을 고양시키고 있다.  

  둘째, 박옥남씨는 소도구들을 통해 은유, 상징 기법들을 소설에 기묘하게 도입하고 공간화의 기법과 여성 특유의 섬세한 관찰력을 선보이고 있다. 둥지, 마이허, 장손, 개똥녀 등은 다분히 상징성을 띠고 있는데 그것들은 소설의 인물성격창조와 서사구조에 상징성을 부여해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목욕탕에 온 여자들>은 여탕이라는 특정 공간에 실 한 오리 걸치지 않은 다양한 연령대, 계층과 성격의 여자들을 등장시켜 조선족 여성들의 육체적인 나상(裸像)만이 아닌 심적인 나상도 적나라하게 드러내 보였다.

  셋째, 박옥남씨는 방언에 바탕을 둔 생동하는 인물대화를 구사하는 명수이다. 그는 “거칠고 촌스러워 뚝배기 같은 사투리, 그러나 그 뚝배기 속에는 사골탕 같이 끓이면 끓일수록 감칠맛이 더 우러나는 사투리 자체의 진맛이 보글보글 끓고 있다. 그런 짙은 국물을 우려내서 독자들의 입맛을 돋우어주는 것이 내가 작품 속에 사투리를 쫑당쫑당 썰어 넣는 이유이다.” 라고 말한다. 참으로 박옥남씨의 소설은 인물의 대화를 절제 있게 설정하고 있으나 거개가 인물의 기질과 성격, 신분과 경력이 잘 드러나는 명대사이다. 그러한 명대사는 주로 다양한 사투리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박옥남씨의 소설은 한창 진행형이요, 설사 이미 발표된 소설만을 깊이 논의하고자 해도 제한된 편폭으로는 도저히 어찌할 도리가 없다. 박옥남씨를 딱 한 번 만나보고 서로 두어 번 메일을 주고 받은 이야기를 하고 이 글을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겠다.

  바로 2007년 4월 23일 제1회 김학철문학상시상식 때다. <도라지> 잡지에서 본 시체 태양모를 쓴, 둥실하고 시원스럽게 생긴 귀부인의 모습과는 달리 박옥남씨는 중키가 되나마나한 키에 단정하게 정장을 한 모범교사의 모습이었다. 원고 없이 또박또박 수상소감을 말하고 나서 술상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는 여러 문인들이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소리를 듣는지 마는지 그린 듯이 앉아만 있었다. 실없이 치근덕거리는 문인들의 물음에는 좀 찬바람이 돌 지경으로 단마디명창으로 대답을 줄 뿐이었다. 그 날 주최 측은 한국에서 온 손님들을 모시느라 경황이 없었고 박옥남씨는 파장이 된 장거리 같은 호텔을 혼자 지킬 수는 없어 그 날 밤차로 연길을 떠나고 말았다.

  이틀 후 문뜩 박옥남씨의 메일을 받은 것은 나였다. 천여리 길을 달려온 수상자를 동무해 주는 사람이 없어 밤차로 돌아가기는 했지만 대상을 받고 술 한 잔 내지 못하고 떠나온 게 아무래도 결례가 된 것 같다고 하면서 방금 학교 앞 우체국에 가서 돈 1000원을 부쳐 보냈으니 심사위원들과 함께 식사나 하면 마음이 내려 갈 것 같다는 사연의 편지였다. 빈 말로 인사치레만 하는 얄팍한 여성들과는 달리 맺고 끊듯이 확실한 박옥남씨였다. 이왕 성의껏 보내온 돈을 돌려보내는 것도 예의가 아닌지라 우리 심사위원들은 국제호텔에서 술잔을 나누면서 박옥남씨의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다음은 박옥남씨에게는 실례가 되는지 모르겠지만 요즘 받은 메일을 그대로 옮겨 놓는다.

 


  김호웅 선생님:

 


  가뜩이나 바쁘신 일상에 저의 일까지 겹쳐 시간적으로 많이 시달렸을 줄로 압니다. <인물평>을 보았습니다. 정말이지 저는 남이 저를 평하는 말(그것이 폄하하는 말이든 치하하는 말이든)을 들으면 퍼그나 오랜 시간을 고민하는 여자입니다. 그만큼 저는 소심한 인간인가 봅니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구석 쪽을 좋아합니다. 남의 눈길이 닿지 않는 곳에 거추장스럽지 않게 몸을 숨기고 앉아 있을 때가 가장 맘 편하거든요. 오늘 분에 넘치는 칭찬을 받고 보니 그 글이 나간 후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이 읽고 나서 다 잊어먹을 때까지 저는 몸을 한껏 옹송그리고 있을 겁니다. 못난 고양이에게 큰 우장을 씌웠다고 할까 봐서요. 아무튼 수고 많으셨구요. 좋게 봐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달의 문인> 평을 쓰시는데 다소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서 <붉은 넥타이>를 보내드렸을 뿐인데 그것을 연재하려 한다니 도통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사실 재외동포재단에서 요구하는 4만자의 원고분량을 채우느라고 생각나는 대로 아무 소리나 긁적거린 것(그것도 한 달이라는 제한된 시간 내에)뿐입니다. 한국 측 심사위원들은 좋게 보아준 것 같습니다만, 그 옛날 그 역사를 직접 겪어온 선배님들 앞에는 그 글을 감히 내놓을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선생님의 제의를 받고 보니 이젠 더 이상 어디론가 뺑소니칠 길도 없는 듯싶네요.

  하다면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요. 선생님께서 다시 그 글을 보고 옳지 않은 표현이라든가 사실에 부합되지 않는 곳을 골라 가차 없이 빼고 다듬어서 발표해주시기 바랍니다.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도와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만약 그렇게 해주신다면 굳이 연재를 반대할 이유가 저에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믿고 맡기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절에 온 새색시 같은 일면이 있는가 하면 무슨 일이나 똑 부러지게 처사를 하는 박옥남씨다.

  원고를 받아 다듬든지 말든지, 그 건 연변문학 편집진의 몫, 내 둔한 필치로 감당할 바가 아니다. 아무튼 조일남 주간이 쾌히 싣기로 응낙을 했으니 다음 기부터 박옥남씨의 장편수기 <붉은 넥타이>를 통해 그의 인간과 문학을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박옥남씨의 건필을 빈다.

 


                                     - 2008년 11월 13일 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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