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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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矛盾激化(황제와 소녀 연재)
2012년 03월 22일 17시 12분  조회:5787  추천:0  작성자: 김정룡
11. 矛盾激化: 모순격화

헌원에게 고난이 닥치다

옥녀의 지하궁궐에서 서북쪽으로 3,500보를 가면 봇나무, 소나무, 복숭아나무를 비롯해 수천 년을 묵은 여러 나무들이 수림을 이루고 있다. 이곳에 들어서면 나무들이 가지를 빼곡히 뻗고 있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곤륜산 일대에서 가장 심산수림이다. 밀림의 크기는 사방 50리이며 밀림 한가운데에 둘레 천 길이 되는 보옥호수가 있다. 각종 들짐승들이 갈증이 나면 이 보옥호수 물을 들이켠다. 물이 좋은 덕분에 들짐승들은 저마다 눈동자가 빛나고 털이 윤기가 반지르르하고 생명력이 넘친다.
10년 전부터 보옥호수 주변 아름드리나무에 100여 개의 커다란 둥지가 생겨났다. 둥지의 주인공은 네 발 달린 들짐승이나 덩치가 큰 조류가 아니다. 사람의 몸에 새의 날개가 달린 반인반조(半人半鳥)들이다. 기이한 것은 그 반인반조들은 단 한 마리의 수컷도 없이 모두 암컷들이다. 이들은 때에 따라 하늘색이었다가 때로는 푸른색으로 변하고 또 때로는 검은색이 되기도 한다.
반인반조들은 새처럼 날아다니는 재주가 있고 사람처럼 걷기도 한다. 이들의 하는 일이란 매일 하루 종일 무예를 닦는 것이다. 나무 사이를 날아다니고 풀 위를 걷고 때로는 푸른 하늘을 날아오른다. 활을 쏘아 들짐승을 잡는데 아무리 날랜 호랑이나 빠른 노루도 이들의 손을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날아다니며 사람의 급소를 가격하는 무예를 연마하여 천하장수인 개명수, 우돌, 육오 등 거인들도 상대가 되지 못했다.
이 무리들이 10년 넘는 세월 동안 활동해 왔으나 이들의 존재를 아는 이는 옥녀와 아신, 파랑새뿐이다. 어떻게 그리 오랫동안 비밀이 새지 않았을까?
헌원이 태어난 이후 옥녀는 꿈에 용이 자주 나타나 괴롭힘을 당했다. 아신의 간계에 의해 개명수와 우돌을 보내 헌원을 죽이려 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 이후 헌원이 입궁하여 옥녀와 여러 차례 질펀한 방사를 나누었으나 옥녀는 아신의 충고를 잊지 않고 비밀리에 대비책을 세웠다. 헌원이 역모를 꾸밀 일에 대비해 비밀 군대를 만든 것이다. 비록 옥녀가 헌원의 양물에 취해 밤마다 그것을 그리워하고 탐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의 자리를 빼앗길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오직 세 사람만 알고 있었다.
아신은 헌원을 미워하여 여러 차례 이 비밀 군대를 동원해 쥐도새도 모르게 처치해버리려 했으나 번번이 옥녀의 반대에 부딪쳤다. 아직 헌원이 쓸모가 많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신은 신궁이 완성되자 깊은 고민에 빠졌다. 앞날을 예측해보니 헌원이 왕이 될 확률이 높은 것이었다.
“이대로 계속 옥녀를 섬기느냐? 아니면 옥녀를 배신하고 헌원을 도와 그를 왕위에 오르게 하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몇날며칠 고민한 끝에 아신은 옥녀를 계속 섬기기로 했다. 설사 헌원에게 간다한들 그가 받아준다는 보장도 없었다. 헌원은 사내다운 사내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한편 옥녀와 헌원은 교합에 실패했으나 신궁 잔치는 계속되었다. 인류가 천지개벽이 있은 후 첫 지상궁궐이 등장하면서 온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천신들과 신선들, 저 멀리 동방에 있는 복희와 여와부부, 신농(염제)과 치우 등 세상의 모든 신들과 반신반인들이 곤륜산에 모였다. 이들은 왕모의 입주식 날까지 보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잔치를 즐겼다.
왕모가 보름의 대축제를 위해 준비한 고기가 숲을 이루고 술은 연못을 이뤘다. 그야말로 주지육림이었다. 1만2천 개의 횃불을 준비해 사방 50리를 비추게 했다. 1,800명의 악사를 불러모아 주악소리가 사방 백리에 울려퍼졌다. 천여 명의 미남미녀들을 모아 장야의 음(長夜之飮)에 장야의 음(長夜之音)으로 축제 분위기를 돋구고 장야의 음(長夜之淫: 난륜)으로 축제를 고조로 끌어올릴 계획이었다.
이러한 준비를 하느라 옥녀는 몸이 축 늘어졌다. 사실은 일이 과해 몸이 피곤한 것이 아니라 헌원과의 방사에 실패한 탓이었다. 옥녀의 머릿속에는 오직 쭈그러든 헌원의 양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내 뜨거운 몸을 식혀달라고 그렇게 애원을 했건만 헌원의 양물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실상 옥녀가 퇴짜를 맞은 셈이다. 하늘에 오르는 풍선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던 흥분이 심산계곡으로 추락했다. 옥녀는 실망감과 분노, 슬픔에 겨워 침실로 들어와 쓰러졌다.
잠시 후 누군가 옥녀의 침실 문을 두드렸다.
“누구냐?”
“아신이옵니다.”
“무슨 일이더냐?”
“긴히 드릴 말씀이.”
“들어오너라.”
옥녀는 침실에서 몸을 일으켜 위엄있는 자세로 앉았다. 신하에게 퇴짜 맞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신은 들어오자마자 본론을 꺼냈다.
“소신의 짐작으로는 아무래도 심상치 않은 큰일이 발생할 것이라 사료되옵나이다.”
“심상치 않는 큰일이라고? 그게 무엇이더냐?”
“헌원이 큰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허나 여왕님께서는 걱정을 붙들어 매십시오. 소신이 그동안 반인반조 군대를 훈련시켜 신궁 주변에 대기해 놓았사옵니다. 여차하면 헌원과 그를 따르는 무리들을 일거에 쓸어버리겠나이다.”
“하하, 역시 자네답네.”
옥녀와 아신이 소곤소곤 말을 주고받고 있을 때 느닷없이 문이 열리며 불청객들이 들이닥쳤다. 개명수, 우돌, 육오였다. 화가 치민 왕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놈들,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허락도 없이 무례하게 행동하느냐?”
괴물들이 왕모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면서 거들먹거렸다. 개명수가 비웃듯이 말했다.
“여기는 헌원이 지은 신궁입니다. 왕모님께서 이곳에 오신 것은 굴러온 돌이 아니겠습니까.”
듣고 있던 아신이 참지 못하고 호통을 쳤다.
“네, 이놈, 우주 만물이 전부 왕모님 것이란 사실을 모른단 말이냐. 곤륜산 일대의 일초일목이 모두 왕모님의 소유인데 신궁이라고 다를 바가 뭐더냐?”
세 괴물은 힘만 셌지 머리는 아둔하기 그지없었다. 셋 중에서 그나마 재상을 지낸 육오가 조리 있게 말했다.
“왕모님께선 신궁을 죄다 둘러보셨겠죠?”
묻는 투가 몹시 괘씸했으나 옥녀는 이들이 왜 이런 망동을 하는지 이유를 알고 싶어 잠자코 대답했다.
“내 너희들의 무례함을 도저히 알 수 없구나. 신궁을 둘러본 것이 어쨌단 말이냐?”
“신궁이 지하가 아닌 땅 위에 축조된 것은, 왕모님이 기거하는 지하 석실이 왕모님의 자궁을 상징한다면 이 신궁은 남근이 땅 위에 표출된 상징물이옵니다.”
아신은 그 말을 듣자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라고 생각했다. 언젠가는 헌원이 역모를 꾀할 것이라 짐작하고 있었는데 그때가 온 것이었다. 육오가 득의양양해서 계속 열변을 늘여놓았다.
“신궁은 비단 외형뿐만 아니라 그 안에도 다리 세 개 달린 까마귀로 치장되어 있고 호랑이가 아닌 용으로 장식되어 있습죠. 아다시피 용은 암컷이 없고 수컷만이 존재합니다.”
옥녀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육오는 상대가 주눅드는 모습에 기세가 등등해졌다.
“어디 그뿐인가요, 신궁의 지붕은 남근을 상징하는 삼각형 모양이고 그 위에 꽂은 깃발을 보았습죠? 그 깃발들 모두 철두철미하게 남근을 대변하는 표본이랍니다.”
아신이 더는 듣고 싶지 않아 냅다 소리를 쳤다.
“네 이놈, 죽고 싶어 환장한 게로구나.”
그러나 세 괴물은 아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사기가 충천한 육오가 결정적인 말을 했다.
“자, 이젠 결론에 들어가죠. 왕모님께서 이 신궁에 입주하지 못할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바지를 벗은 후 우람한 양물을 꺼냈다.
“왕모님은 이와 같은 물건이 없는 것이 치명적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남근을 상징하는 신궁에 어떻게 남근이 없는 여인이 주인으로 들어올 수 있겠습니까?”
아신이 신궁 주변에 배치해놓은 반인반조 군대를 불러들이자는 눈짓을 보냈으나 옥녀는 고개를 저었다.
“네 말을 잘 알겠다. 한 가지만 묻겠다. 이 생각은 정녕 무식한 너희들의 생각이냐? 아니면 헌원의 의중이냐?”
세 괴물이 입에 재갈을 문 듯 머뭇거렸다. 옥녀가 큰소리로 외쳤다.
“이 무지막지한 놈들과는 말할 게 못되니 즉시 헌원을 불러들이라.”
파랑새가 포르르 날아가 헌원에게 명을 전했다.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전혀 모르는 헌원이 부랴부랴 달려왔다. 헌원이 도착하자 세 괴물이 일제히 두 팔을 허공에 올리고 환호성을 올렸다. 어리둥절해하는 헌원에게 아신이 분노를 삭이며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헌원이 분기탱천해 세 괴물을 개 패듯이 패고 또 팼다. 괴물들이 바닥에 쓰러져 신음을 내뱉자 헌원은 옥녀에게 사과의 말을 올렸다.
“왕모님께 죄송하고 또 죄송한 일이나 소인의 뜻과 무관한 행위였음을 재삼 맹세 드리나이다. 신궁은 왕모님을 위해 지은 것이니 조금의 의심도 갖지 말아주십시오. 오늘 오후 신시에 열릴 준공식과 보름 뒤에 있을 입주식을 약속대로 추진하겠나이다.”

준공식 다음날 아침 육오가 보이지 않았다. 다리 세 개 달린 파랑새가 헌원에게 소식을 알려주었다.
“육오가 아신의 간계에 의해 저승의 염라대왕 먹이가 되었다네.”
천하지존인 왕모의 심기를 건드렸으니, 그것도 치명적인 공격으로 왕모의 위상을 바닥에 떨어뜨렸으니 죽어도 마땅하다. 그러나 헌원에게 무서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가만 생각해보니 이번 일은 자신의 뜻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으나 언젠가는 왕모와 한바탕 전쟁을 치를 것이 분명했다.
“음. 전쟁은 불가피해. 그렇다면 나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내 주변에는 출모획책(出謀劃策)을 도와줄 참모가 없는 것이 유감이구나.”
헌원은 너무 똑똑하고 출중했기에 참모가 필요 없었다. 그러나 큰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충성스런 신하와 영리한 참모가 있어야 하고 온갖 시련도 겪어보아야 했다. 그러나 자기에게는 그것이 부족했다. 그렇게 한숨을 내쉬는 헌원에게 준공식이 열리고 3일 후 동박삭이 나타났다.
“나의 관찰이 틀리지 않다면 자네 요즘 큰 심병에 시달리고 있구먼.”
동방삭의 출현이 헌원에겐 가뭄에 시들어가던 곡식에 단비가 내린 셈이었다. 헌원이 저도 모르게 무릎을 쳤다. 아버지가 죽음 직전에 말한 “큰 시련에 부딪치면 꼭 동방삭을 찾거라. 그 분은 틀림없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유언이 떠올랐다.
“네, 소인은 지금까지 험악한 구곡폭포를 물 따라 헤엄치듯 순탄하게 살아왔습니다. 헌데 요즘 들어 처음으로 큰 시련에 부딪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자네는 지금까지 총명에 의지해 순탄하게 살아왔지, 허나 자네가 갖고 있는 총명과 재질을 언젠가는 세상이 가만두지 않을 걸세. 그 시점이 바로 요즘이라네.”
헌원이 잘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뭇 백성들이 자신을 숭배하고 있는데 왜 가만두지 않는단 말인가?
“그대의 능력이 돋보이면 뭇사람들이 따르게 마련이고 그러다보면 본의 아니게 우두머리로 떠오르게 되지. 그렇게 되면 새로운 권력을 쥐고 기존의 권력에 도전하게 된다네. 자네는 그럴 생각이 없으나 세상이 그렇게 만들어가지. 이번 사건이 바로 그런 것이라네. 인류 사회의 질서는 영구불변이 아니라 신생 세력에 의해 바뀌어간다네. 그 과정에서 승자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지.”
동방삭의 차분한 설명에 헌원이 하나하나 터득하게 되어 머리를 끄덕였다.
“싸움을 피하는 방법은 없는가요?”
“싸우지 않으면 구질서가 신질서로 바뀌는 법이 없다네. 하물며 자네는 이미 본의 아니게 왕모에게 무서운 도전의 패를 던지고 말았다네. 자네가 발명한 정자 지붕과 쟁기, 깃발, 신궁 등은 남근 숭배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왕모는 매우 불편해하네. 그러나 그것들은 백성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놓을 것이네.”
“그렇다면 소인은 어떻게 해야 하나요?”
동방삭은 헌원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자네, 왕이 되고 싶지 않는가?”
헌원이 지금까지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이라 크게 놀랐다.
“왕이라니요?”
“자네는 용의 기운을 듬뿍 타고 났지. 또 창의력이 뛰어나고 통솔력이 훌륭해 왕이 될 자질이 충분하다네.”
헌원이 머리를 가로 젓고 손사래를 쳤다.
“행여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왕모가 있는데 어찌 소인이 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때 소름 끼치는 비보가 날아들었다. 다리가 세 개 달린 파랑새가 후드득 날아들어 소식을 전했다.
“어머니가 방금 비명횡사했습니다.”
아신의 농간이었다. 아신은 육오를 살해해 헌원에게 본때를 보여주려 했다. 그러나 육오 하나를 죽이는 것으로 성이 차지 않아 헌원을 해치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헌원을 죽이면 파장이 너무 커 뒤를 감당키 어려우리라 짐작되어 일단 멈추었다.
“무슨 좋은 수가 없을까?”
그렇게 궁리하다가 아신은 좋은 계략을 떠올렸다. 헌원을 궁궐에서 쫓아내는 것이었고 그를 위해서는 그의 어미를 죽이면 될 것이었다. 아신은 반조반신 군대를 보내 헌원의 어머니를 죽이게 했다. 그것은 너무 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후환을 생각지 않은 것이 불찰이었다.
어머니의 죽음 소식을 전해들은 헌원은 분노에 겨워 자신을 따르는 장수들과 사내들, 노예들까지 모두 불러모았다. 아신과 한판 승부를 벌이기 위함이었다. 그가 전술 작전을 모의하고 있을 때 동방삭이 찾아왔다.
“우선 자네 모친의 불행에 대해 애도를 표하네.”
눈에서 이글거리는 불을 뿜는 헌원이 천하를 뒤엎을 태세였다.
“소인은 왕모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했으나 아무런 죄가 없는 저의 어머니를 죽임으로 인해 더 이상 그들과 함께 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동방삭이 긴 한숨을 지었다.
“어찌할 셈인가?”
“악은 악으로 맞서야죠.”
“뒤엎을 겐가?”
헌원은 이를 부드득 갈며 비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분노를 잘 알겠네. 하지만 하나를 맞으면 하나를 갚는 식의 대처는 현명한 방식이 아닐세. 천하를 도모할 대장부는 참을 줄 알아야 더 큰 세상을 얻을 수 있다네. 내가 자네라면 이곳을 떠나 더 큰 세상으로 나가겠네.”
“이곳을 떠나라고요?”
헌원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훌륭한 재주를 이 좁은 곤륜산에서 펼치기엔 무대가 너무 좁네. 나는 일찍이 세상천하를 주유했네. 이 곤륜산은 저 동방의 중원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세. 몇날 며칠 말을 타고 달리고 또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가 펼쳐져 있고 옥토도 끝없이 많다네. 그 너머에는 대양이 있어서 가도가도 끝이 없는 바다가 펼쳐져 있지. 그리고 중원은 이곳에 비해 문명이 발달해 있지. 한 가지 유감스런 것은 강력한 우두머리가 없는 점이라네. 만약 자네가 중원에 진출한다면 곧 패자가 되고, 중원을 얻으면 천하를 얻게 될 것이네.”
“모친의 원수를 갚지 않고 이곳을 떠나란 말씀입니까?”
“두 세력이 붙으면 자네가 분명 이길 걸세. 그러나 양쪽 모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을 것이네. 사적인 원수는 참고 기다리게나. 하늘이 해결해 줄 것일세.”
헌원의 어머니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아소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이 평화로운 세상에서 아무런 죄도 없는 헌원의 어머니를 죽이다니! 아소는 아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곧 왕모를 찾아갔다.
“아신이 헌원의 어머니를 죽였다 하옵니다. 여왕님이 다스리는 이 땅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을 그냥 놔두시렵니까?”
옥녀는 묵묵히 딸의 말을 들었다. 그녀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용납이 되지 않았다.
“여봐라. 아신을 붙잡아 들여라.”
호위병들이 우르르 몰려가 아신을 오랏줄로 꽁꽁 묶어 궁으로 데려왔다.
“소신은 오직 왕모님께 충성을 하고자 한 것입니다. 신궁의 잔칫날에 육오가 벌인 발칙한 행동을 잊으셨나이까?”
“그것은 헌원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 않느냐? 그리고 헌원의 어머니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옥녀는 그를 능지처참에 처하고 싶었으나 결자해지를 위해 아신을 헌원에게 보냈다. 죽이든 살리든 땅에 생매장을 하든 구곡폭포에 수장을 시키든 알아서 하라는 처사였다. 동방삭의 예측이 그대로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헌원은 아신을 한참 노려보다가 그가 측은한 생각이 들어 풀어주려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한 신하가 반대했다.
“사람을 죽인 자를 살려두면 이후에도 살인이 빈번할 것입니다.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인간 세상이 평화로워질 것입니다.”
결국 헌원은 그를 죽이기로 했다. 산 채로 가죽포대에 넣어 강물에 띄워 보내는 형벌이었다. 헌원이 아신을 처리한 이 방법에 의해 세상에 또 하나의 규칙이 생겨났다. 바로 ‘법(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즉 죄인을 강물(氵)에 띄워 보내는(去) 관습에 의해 법이 탄생하게 되었다.
아신이 물귀신이 되어 사라지자 천하가 고요하고 평화로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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