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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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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야기-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옛 훈장이 빛나는-영국을 가다
2019년 07월 16일 09시 15분  조회:500  추천:0  작성자: 문학닷컴

영국 문학 탐방 이야기
                                          류재순

 

영국이란 나라를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나로서는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이 오래전에 봤던 영화 《OLIVER TWiST雾都孤儿》의 장면들이였다. 안개 속에 가려진 우중충한 하늘과 침침한 추위와 음침한 사람들 속에서 한 고아가 겪는 비참한 정경들… 정말 찬란한 해빛과는 대조적인 인상이였다.

12시간의 비행을 거쳐 그 찬란했던 력사와 문화의 유적지에 도착하였다.

한국문인협회 문효치 리사장의 <세계적 대문호를 낳은 영국 땅을 밟으며>란 축사로부터 양왕용 부리사장님의 <한국 현대시에 수용된 영국시의 양상>, 문학 평론가 임영천선생님의 <19세기 영국 소설과 20세기 한국 소설> 그리고 수필가이며 한국 문학사 편찬 위원장인 권대근선생님의 <현대 영국 에세이와 영국 희극의 두갈래 오솔길>이란 강좌를 하셔 한국 문학과 영국 문학의 탐방 길에 참고의 시야를 만들어주셨다. 

해외 문학상은 미국 텍사스에서 온 박인애 시인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한국 작가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영국 부커서가 제정한 맨부커상이였다는 점에 우리의 생각은 오래 머무르고 있었다.

1.케임브리지대학교(cambrige University)

우즈강 지류인 캠강의 동안- 케임브리지, 예로부터 런던과 북부 지방을 잇는 교통요지이며 중세기에는 스타브리지 시장도시로 알려진 상업도시였는데 지금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소재지로 영국의 유일한 ‘참다운 도시’로 일컬어져있다고 하였다. 

중국이나 한국 혹은 미국처럼 학교교사校舍가 한군데 멋지게 운집되여있는 것이 아니라 도시의 중앙을 흐르는 캠강 량안의 력사를 자랑하는 35개의 칼리지가 여기저기 흩어져 케임브리지대학교란 이미지를 형성하고 있었다. 각 칼리지는 자치적으로 운영되며 법적으로도 독립되여있었다.

대학교에는 114개의 도서관이 있는데 서울대학교의 30배에 달한다고 한다. 무려 3000 만권의 장서와 각종 자료가 비치되여있다고 하니 영국출신 노벨 수상자 90 명 중 32명이 이 대학교 출신이라는 기적적인 인재배출의 놀라운 수자도 당연한 결과가 아닐가 싶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바와 같이 워즈워드 등 문인과 뉴턴, 베이컨, 반고 등 유명 인사들이 수학한 유서 깊은 곳이란 점에서 더욱 마음을 사로잡았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월계관을 쓰고 있던 중세기의 영국의 주역들을 키워냈고 지금도 새로운 주역들을 키우고 있는 요람임이 분명하였다.

별로 크지 않은 사과나무가 만유인력을 창조한 뉴턴이 수학했던 한 켈리지 문앞 정원에 자라고 있어 유람객들의 발길을 끌고 있었다. 앞다투어 기념사진 남기느라 분주한 그들을 바라보며 나는 년륜이 전혀 나타나지 않는 저 작고 애된 나무가 과연 몇백년 전의 그 나무일가 머리가 갸우뚱거려졌다.

그가 쓴 《돈 주앙》은 우리에게 아주 익숙한 작품이였다. 날카로운 통찰과 비판의식, 자유분방하고 유려한 문체로 랑만주의 문학을 이끈 이 시인은 자신이 “하루라고 밤 자고 났더니 유명해졌더라.”라고 할 정도로 한때 쓰나미처럼 영국 전역을 휩쓸며 천재적 위상을 떨쳤지만 “내가 영국에 맞지 않던가, 영국이 내게 맞지 않다.”는 비감을 토로하며 세상을 떠돌아다녔다. 만나는 녀성들을 기절시킬 정도라는 그의 조각 같은 멋진 외모와 과분한 자유분방함으로 하여 그의 천부적 시 창작으로 인기가 치솟는 시기 녀성들과의 너무 많은 염문을 뿌리며 센세이션을 일으켜 상류계층의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구름 한점 없이 빛나는 밤하늘처럼

어둠과 광명의 모든 정화는

하늘이 눈부신 한낮엔 보이지 않는

 

A.《폭풍의 언덕》 브론테Bronte 자매의 령혼 

 

리즈에서 우리는 아트 갤러리를 관람하였는데 조각가 헨리 무어의 작품들이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갤러리 관람을 끝마치는 대로 우리는 급급히 하워드를 향한 뻐스에 올라탔다.

영국 전체의 면적은 한반도와 비슷하지만 산지가 적어 가용 면적이 한국의 4~5배 수준이라 하는데 목축업과 밀, 보리, 감자 농사가 위주이고 물가가 아주 비싼 데 비해 감자는 굉장히 싼 모양이다. 가이드의 말에 툭탁하면 돈 떨어지면 감자만 먹는다는 말이 자주 나왔다. 겨울에는 령하로 내려가는 추위도 없지만 여름엔 안개와 비가 많고 섭씨 30도를 못 넘기는, 따가운 해볕이 없는 이 나라 땅에는 벼농사를 할 수 없어 입쌀밥을 먹을 수 없다는 게 우리에겐 은근한 거부감을 안겨주었다. 

드디여 우리는 브론테 자매의 고장 하워드에 도착했다. 

나는 저 멀리 우거진 숲속에서 관광 온 련인들이 작은 벤치에서 은밀한 정을 나누는 다문다문 눈에 띄는 그림 같은 풍경들을 훔쳐보며 폭풍의 언덕에 나오는 사랑 스토리를 음미한다. 그리고 우리 문학의 영원한 주제가 사랑이 될 수 밖에 없는 원인을 해석해본다. 《폭풍의 언덕》이 만들어낸 워킹 코스를 따라 산책하던 나도 언덕의 한 의자 우에서 한컷을 남긴다. 나에게 사랑은 어떤 것이였던가…

《폭풍의 언덕》 견학 후 우리는 근 5시간의 뻐스 질주를 거쳐 스코틀랜드의 상징인 에든버러에 도착하였다. 에든버러에 도착하며 가이드는 먼저 에든버러성에 깃든 잉글랜드에 정복당한 스코틀랜드 왕가의 비운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에든버러성은 에든버러의 캐슬 록이라는 가파른 바위산에 세워진 고대의 군사요새였다. 그 치욕을 담은 력사의 후환으로 지금도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하다못해 스포츠 경기를 볼 때도 잉글랜드가 우승하는 꼴을 못 본다는 우스개도 하였다.(영국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4개의 구성국이 합쳐진 나라다.)

스코틀랜드의 대문호 월터 스콧의 기념탑을 먼저 둘러보았다. 그의 대표작이라는 《아이반호》를 읽어보지 못해 유감이였다. 이어서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의 구상을 무르익혔다는 엘리펀트하우스 카페에 들어갔다. 작은 카페였는데 역시 관광객이 바글바글하여 급급히 나와버렸다. 작가 롤링이 사색을 더듬었을 그 분위기를 체험해보려던 나의 욕망은 무산되여버렸다. 이어서 ‘작가박물관’ 왕관모양의 지붕이 독특한 ‘성자일스성당’의 외관도 둘러보았다. 

 

에든버러에서 하루밤 잠을 자고 우리는 또 5시간의 뻐스 운행을 거쳐 잉글랜드 중부 원드미어로 향했다. 원드미어는 시인 윌리엄 워즈워드의 생가가 있는 글라스미어와 이어져있다. 원드미어에는 길이 17㎞ 된다는, 중국의 서호와 닮은 아름다운 호수가 있다. 그리고 15개의 호수가 주변의 수려한 산들과 아기자기한 농가들로 어우러져 수많은 시인과 예술가들의 령감을 안겨준 아름다운 도시로 유명했다.

원드미어에서 나와 반시간 쯤 달렸더니 드디여 작은 호수 그리스미어가 보이고 부근 한적한 시골에 윌리엄 워즈워드 시인의 생가에 도착하였다. 돌로 쌓아올린 소박한 중세기 시골집 형태였다. 문학사에서 차지하는 그의 비중과 유명세를 생각하면 조금은 뜻밖이란 생각이 들었다. 2층으로 된 조금은 침침하고 크지 않은 침실과 서재 복도 층계… 시인의 자취를 찾아본다. 정원의 한쪽에는 시인의 묘와 안해의 묘 그리고 평생 결혼도 안하고 존경하는 오빠의 시 작품들을 내조하였던 녀동생의 묘도 나란히 있었다.

초원의 빛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 희미해진다면

나는 그대를 잊을 수 있겠습니다.

꽃의 영광이여

차라리 그 속 깊이 간직한 오묘한 힘을 찾으소서!

 

그리고 오스틴Austin…

드디여 오늘의 목적지, 쉐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Straford upon Avon)에 도착하였다. 세계 최대 문호라는 타이틀을 가진 불멸의 작가 쉐익스피어를 탄생시킨 이 소도시로 들어서면서부터 흥분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희극과 비극, 력사와 시 등 47여편의 작품 중에서 내가 읽은 글은 고작 《로미오와 줄리엣》, 《햄릿》, 《오셀로》, 《베니스의 상인》 등 몇편 밖에 없다. 세인들은 그를 “뛰여난 시적 상상력, 인간성의 안팎을 넓고 깊게 꿰뚫어보는 통찰력, 놀랄 만큼 풍부한 언어 구사, 다양한 무대 형상화 등에서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고 평한다.

마을 입구의 광장으로 들어서니 쉐익스피어의 연극 <뜻대로 하세요>에 나오는 어리광대 터치스톤의 동상이 유람객들을 맞아주고 있었다. 크지 않은 소도시는 올드 시티와 뉴 시티로 나뉘여져있었는데 쉐익스피어 센트는 뉴 시티- 스트랫퍼드다. 센트 입구로 들어서면서 먼저 눈에 띄는 것은 RSC라고 크게 쓴 간판이다. 그의 극 작품을 공연하는 대형 극장이였다. 이어서 쉐익스피어 박물관 생가 등등이 거리 안쪽으로 들어가며 차례로 눈에 안겨왔다. 길 량쪽으로 줄 지어선 목조 건물들이 중세기의 모습 그대로 선을 보이고 있었다. 

우선 먼저 2층으로 된 그의 생가로 들어갔다. 역시 400여년 된 목조 건물이다. 그가 쓰던 침실, 서재, 거실, 식탁… 우리는 이 대문호의 옛 자취와 정서를 찾느라 구석구석 조용조용 살펴보며 머리와 가슴에 무엇인가 묻어보았다.

도시 전체를 가로질러 흐르는 에어번강- 강 우를 자유로이 헤염치는 백조들, 각양각색의 요트, 강가의 잘 다듬어진 산책로, 벤치… 그리고 좀더 걸으면 쉐익스피어의 무덤, 8세 년상이였던 안해-앤과 쌍둥이 남매 자식들의 무덤도 있다는데 우리는 가보지 못하였다. 가이드가 말하기를 쉐익스피어는 자기의 무덤에 “내 무덤을 파는 자는 엄정한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는 비문을 남겼다 하여 충격을 받았다. 왜 그랬을가? 

관광 중 나는 많은 생각을 하였다. 대학교육도 받지 못했다는, 하나의 장갑 제조업자의 아들, 그러나 “대학을 다니진 않았지만 자연과 인간의 실제 삶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다”고 세인들은 평한다. 비평가 칼리일이 “영국 식민지 인도와도 바꿀 수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위대한 인류의 유산으로 되였다. 그의 작품 속에는 수많은 명언이 있다. 그중 두마디를 골라본다.

“녀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

D.제인 오스틴

배스는 로마 시대로부터 잘 알려진 온천 도시로 18세기부터 영국의 부유층이 가장 선호하는 료양과 사교의 세련된 도시로 거듭났다고 한다. 이곳에는 1801년부터 1806년까지 오스틴이 살던 집이 있었다. 사실은 내부를 개조하여 오스틴이 살았던 거리와 집안 분위기를 재현한 것이였다. 11살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오스틴은 처음엔 닉명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지만 왕궁의 왕세자도 그의 작품을 좋아하는 등 사후 그의 작품은 식상하고 진부할 수 있는 소재와 통속적인 구조 속에서도 주제의식과 재미 두가지를 다 잡아낸 작가라는 평가의 재조명을 받았다. 우리는 그 후 관람했던 원체스톤 성당에서 그의 납골탑이 세워진 것을 알게 되였다.

3.이곳저곳 볼거리, 그리고 그 의미들

영국기행을 시작 할 때부터 우리는 안개와 비가 많으리라는 영국의 기후 특점에 비추어 사람마다 우선 비옷과 우산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생각 밖으로 어느 날이나 날씨가 다 맑았고 특히 관광할 때는 해볕이 따가울 정도여서 녀사님 둘이는 양산을 받쳐들고 걸었다. 그러자 가이드가 그 분들께 대오에서 떨어져 걸으라는 충고까지 하였다. 왜냐 하면 쉽지 않게 내리쬐는 영국 하늘의 해볕을 그들은 소중하게 여기며 모처럼의 일광욕으로 즐기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눈에 양산으로 해볕을 가리고 걷는 일은 도저히 리해할 수 없는 비정상 행위이기 때문이다. 

영국은 날씨가 영국 사람들을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설도 있다. 겨울엔 거의 한달 내내 해빛을 보기 힘들다 한다. 추운 날씨와 강한 바람, 해가 잘 나지 않는 어둠침침한 날들이 지속되면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닫고 그들만의 마음속 깊은 곳의 숨겨진 공간으로 들어가 생각의 깊은 곬을 만든다고들 한다. 영국에 대문호들이 많은 것도 이렇게 고독과 사색을 만들어내는 날씨 때문이 아닌가 하는 사람들도 있다.

4500년 전, 선사 시대의 높이 8메터 무게 50톤에 달하는 거석 여든여개가 황야에 덩그러니 세워져있었다. 누가, 어떻게, 왜 만들었는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지금도 해명되지 못하고 있다고 하였다. 세계 7대 불가사의 하나로 꼽힌다고 했다. 대자연은 영원한 신비이고 력사 속에 묻혀진 비밀들은 영원한 탐구의 과제로 남아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비슷한 정체불명의 ‘존재’들을 이미 많이 접촉하고 있는듯하다. 그래도 신비설은 계속 흐르고 관광객은 계속 찾아온다.

이튿날, 우리는 다시 런던으로 향했다. 그러니 우리는 남단의 런던에서 시작하여 북단의 스코틀랜드를 거쳐 다시 런던으로, 서쪽과 동쪽을 모두 누비며 영국을 한바퀴 도는 셈이다. 

먼저 윈체스터 성공회의 대성당에 들렸다. 영국엔 성공회, 감리교, 구세군 장로회 등이 있는데 주요 성공회가 대부분이다.

이어서 우리는 런던 근처의 윈저성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런던 근교의 성으로 엘리자베스 2세 녀왕이 주말에 와서 쉬는 궁전이며 국빈을 영접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왕이 올 때는 탑 우에 영국 국기가 아닌 왕실기로 바뀐다고 하였다. 우리가 도착한 바로 2주 전에 세계적인 풍문을 날렸던 다이애나비의 둘째아들 해리 왕자와 미국 할리우드 배우 매건마크리의 결혼식이 여기서 거행됐었다는 점으로 나는 많이 흥분되였다. 영국 왕실 최초 혼혈 왕세자비라고 한다. 윈저성 세인트 조지 성당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500여명의 하객이 참석하였다고 하였다. 우리는 그들의 웨딩마차가 요란스레 들어왔을 멋진 그 왕의 길에서 앞을 다투어 인증샷을 날렸다.

 

런던은 진짜 볼거리가 많았다. 버킹엄 궁전, 웨스트민스터 사원, 대영 박물관, 그 밖에도 유명한 런던 브리지…

다음은 유명한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대영 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이곳에는 전세계의 문명권의 력사 문화 유적 800만점 이상이 소장되여 있다고 한다. 그러나 관람을 하면서 알고 보니 그 대부분은 모두 중세기에 많은 식민지를 만들며 타국에서 ‘략탈’해온 귀중한 문물임을 느끼게 된다. 다시 말해 당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위력과 탐욕의 전리품들이라는 것이 오히려 맞지 않을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박물관 입구에 보면 첫눈에 안겨오는 것은 불교의 대형 부처상이다. 중국 혹은 인도의 문물? 똑똑히 알 수 없었다. 운반 중 과실이였는지 팔 하나가 떨어진 상태다. 그다음 보이는 아늑한 한국식 한옥모델 하우스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스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에서 가져온 신전 전시관도 주목을 끌었다. 그 속에는 영국 배가 그 문물들을 실어오다 바다에 침몰하여 그 아까운 장식물들 대부분을 다 잃어버리고 조각들만 남았다는 스토리가 전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갑자기 훼손당하고 잃어버린 중국의 유명한 문물-원명원 圆明园이 생각나 가슴이 아팠다. 

그리고 이집트 미라가 전시관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래세에 다시 살아나기 위해 죽는 즉시로 70일 동안 피기 없이 가공하여 40일 산에서 바싹 말려 이루어진다는 각양각색의 미라들을 보면서 인간의 생명에 대한 집착과 그 허망함을 사색해보았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영국 성공회 본부로 국왕의 대관식과 결혼식, 장례식이 거행되는 왕실 교회인바 잉글랜드와 영국 왕의 장지葬地이기도 하다. 성당 밖에 따로 무덤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당 안에 유해를 안치한다. 력대 왕들과 총리들, 그리고 아이작 뉴턴을 비롯한 위인들의 무덤이 성당 곳곳에 있는데 우리가 주목한 것은 이곳에도 역시 유명 문인들-챨스 디킨스, 토머스 하디, 키플린 등이 있었으며 다른 지역에 묻힌 쉐익스피어, 브로테 자매, 제인 오스틴 등의 기념비까지 보충해놓았다는 것이다. 영국에서의 문인들의 가치와 열애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사원의 화려하고 장엄한 건축물은 영국건물의 전통적이고 전형적인, 뾰족뾰족한 고딕형 지붕으로 된 클래식한 품격의 최고치인 것 같았다. 그 모던한 구성감각 또한 감탄이 절로 나온다.

 

13일간의 해외 문학 탐방을 끝내고 서울행 비행기에 오르게 되였다.

관광뻐스 창밖으로 펼쳐지는 무한대의 그린세계, 하늘의 구름, 새, 풍차 흰 양떼들… 그것들은 밝은 날 흐린 날 상관 없이 대자연과 인류의 큰 재앙 없이 여유 있고 평화로운 이 섬나라에 펼쳐져있다.

물론 아쉬운 이야기도 들었다. 자연은 아름다우나 고률의 세금과 높은 물가로 실질 소득은 적으며 의료 복지가 잘되여 병원비가 전액 무료인 데다 친절하기까지 한다지만 예약과 실질 진료 혜택이 너무 동떨어져 작년에 수술을 기다리다 죽은 사람이 4200명이라니 무상복지의 민낯이 보인다. 

김재진 시인이 쓴 려행시 한구절이 생각이 난다.

지구의 반대편을 걸어와 함께 시간을 나누던 

기약 없는 리별일 때 있어라

때로는 마음이 저절로 움직여

모르는 녀인을 안고 싶을 때 있어라 

출처:<장백산>2018 제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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